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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학보 [The Korean Journal of Japanology]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국일본학회 [Korea Association Of Japanology]
  • pISSN
    1225-1453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1973 ~ 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일본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913 DDC 952
제42권 (25건)
No
1

他動詞と使役性

權勝林

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제42권 1999.06 p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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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0원

타동사라는 카테고리에 속하는 동사를 의미적으로 분석해 보면, 다양한 의미를 나타내고, 그 다양한 의미는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뉘어짐을 알 수 있다. 본 연구는, 일본어의 타동사를 대상으로 하여, 우선 형태소를 추출하여 형태적 유형을 분류한 다음, 각 유형의 형태적·의미적 특징을 분석하였다. 다음으로, 형태적 측면에서, 타동사의 형태소중 일부는 사역의 형태소와 유사함을 제시하였다. 사역성을 띄는 타동사의 형태소는{-s, -as, -se}이다. 이는 사역문의 형태소{-(s)as, -se, (s)ase}와 유사성을 갖는다. 또한, 의미적 측면에서, 행위주의 행위의 성질과 행위와 사태성립과의 관계라는 시점에서 타동사문과 사역문의 분석을 행하였다. 타동사 중 사역성을 띄는 동사인 경우, 행위가 대상의 어떠한 성질 또는 기능에 의존함으로써 사태가 성립됨을 보여 준다. 이러한 의존관계는 사역문에 있어서의 사역주와 피사역자간의 의존관계와 유사하다. 사역과의 연속성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도표 타동사의 형태소가 사역의 형태소의 형태에 근접할수록, 의존관계도 사역의 의존관계에 근접하고 있음을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동작실현의 意味含意여부라는 관점에서, 타동사문과 사역동사문, 그리고 전형적 사역문을 분석하여, 사역문은 결과를 함의한다는 종래의 분석을 비판하고, 전형적 사역문의 경우, 동작 실현여부는 전적으로 동작주인 피사역자에 있으므로, 사역문은 곧 결과 함의문이라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못함을 제시하였다.

2

現在が「スル」と「シテイル」で表現される動詞をめぐって

牟世鍾

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제42권 1999.06 pp.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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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0원

현재의 상태를 나타내는 형식에는「する」「している」「した」 등의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見える·聞こえる><思う·考える><存在する·現存する><違う·異なる>등과 같은 동사는 현재의 상태를 나타내는데「する」와「している」가 그다지 의미적 차이를 보이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見える·聞こえる>와 같이 지각활동을 나타내는 동사의 경우, 화자의 상태에 초점을 맞추어 표현하면 「スル」가 우선적으로 선택되지만, 하지만 지각활동의 대상이 되는 부분에 초점이 맞추어진 표현이라면, 그 대상의 변화(움직임)의 측면이 고려되기 때문에「シテイ ル」가 적극적으로 사용되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思う·考える>와 같은 사고활동을 나타내는 동사는 어떤 사항에 대해 같고 있던 상태적 사항을 표현하는 것으로, 동적인 활동처럼 생각되지만, 대상에 대한 사고나 견해 등이 어떤 상태임을 나타내는 상태표현인 것이다. 따라서「スル」를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며, 상태표현이기 때문에 그 전용 형식인「シテイル」가 사용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동사들은 주체적 표현에만 사용되는 것들로, 제삼자의 지각이나 심적태도는 알 수 없는 것이기에, 제삼자의 표현에는 객체적 표현인「シテイル」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들 동사는 표현내용이 일반적인 사실인지 구체적인 사실인지 하는 것에 따라「スル」와「シテイル」의 치환가능성이 가려지는 측면도 있다. 즉 단순한 일반적인 사항에 대한 표현에는「スル」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다. <存在する·現存する><遠う·異なる> 등은 상태만을 나타내는 동사로 그 표현에「スル」만으로 충분하지만, 상태표현의 전용형식인「シテイル」가 사용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현재표현에「する」와「している」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는 동사에 대한 의미분석을 통하여, 현재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에 있어서의 그 형식과 의미를 고찰함으로써 시제표현의 체계를 재음미하였다.

3

太田全斎著「漢吳音 」における韓語利用

閔丙燦

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제42권 1999.06 pp.3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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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0원

본 논문은 한자음 연구사상 한 획을 긋는 성과물로서 평가받는 太田全齊 著『漢吳音圖」에 있어서의 韓語 이용에 주목하여, 그 전체상을 밝히려한 것이다. 특히 그의 韓語를 다루는 수법과 그 이용의 뒷받침이 되는 논리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조선한자음을「原音」의 전거로서 이용하고있는 全齋는 그 이용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수순을 밟고있다. 그는 한글과「眞字」가 체계상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하여「眞字」를 배려하면서 한글을 假名로 치환했다. 그리고 그 假名에 의거하여 조선한자음을 구할 때에는 假名反切 논리를 적용했다. 나아가「眞字」와 조선한자음(假名)이 서로 다를 경우에는 相通說등을 도입하여 가능한 한 조선한자음을「眞字」에 합치시키려했다. 즉 그는 선행하는 일본한자음연구의 방법에 의해 韓語가 해석될 수 있다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할 것이다. 또한 그의 韓語 이용이 모두 당시의 다른 음운연구와 마찬가지로 假名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졌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하겠다. 한편 全齊가 韓語를 이용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언급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지만, 江戶後期 한자음연구사를 통해 보면, 韓語에 착안하여 한글의 취급법과 그 이용 가능성을 시사하여, 그의 영향을 받은 예컨대 白井寬蔭 및 黑川春村 등이 韓語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적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라는 점에서, 그에대한 신분야의 개척자로서의 자리매김이 새로이 요구된다 할 것이다.

4

일본어투 군대용어 사용 분석

朴在權

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제42권 1999.06 pp.5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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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0원

文化部,國立國語硏究院,國防部なとをはじめとする關係機關のこれまでの國語醇化の努力一韓國語をまじりけのない純粹なものにしようとする努力-にも關わらず, 日常生活の中で日本語または日本語式の用語がいまだに多く使われているように,軍隊生活中でも日常的な用語や軍隊用語におい日本語式用語がかなり多く使用されていることが今回の調査を通じてある程度分かった. 本論文においての分析は日本語式用語4グル-プ,すなわち1)日本語の訓讀みの漠字語をそのまま韓國式漠字音で讀んだ場合,2)日本語の音讀みの漢字語をそのまま韓國式漢字音宇で讀んだ場合,3)日本語式外來語 を韓國式の音で讀んだ場合,4)日本語をそのまま使用する場合の中で 1),2)にあたる用語に限った. 1)グル-プの用語の中で`假一(假入學など)`,`一係(人事係など)`はいまだに日本式用語だけが現われていることががかった.紺色,驅足[昔の形は`驅步き‘],氣合, 手入れ`の場合は日本語式用語と醇化用語が-緖に使われているが,非公式·會話體を除いた場合は`群靑色,뜀걸음,얼 차려,손질`の醇化用語がほぼ定着していることが現われた.`指環`は特殊な-その使用が陸士資料にった-場合で,`指環贈呈式`のような傳統的で.固定的な用語としては日本語式の`指環`が使われているが,その他の場合は徐徐醇化用語の`반지`の使用が廣まっていることが分かった. 2)グル-プの用語の中で`貴官,國防色,私物`の場合は日本語式用語だけが現われているのに對して,`役員.酒保`の場合は日本語式用語は死語になり, 醇化用語の`任員, 營內賣店`などが完全にそれらに取って代わっていることが分かった.`便所.주식`の場合もその使用が國語用語の`化粧室,中食`で定着してことが現われた.`官物, 毛布,洗面`の場合はまだその使用度が醇化用語より高かったが,特に`毛布,洗面`の場合.公式文書などにおいてはいまだに日本語式用語が`そのきま使われていることが分かった. また一部の用語はその本來の意味が現實に合わせて變わったものもあったが,`國防色`がその中の-つである.すなわち,`國防色`は日本語においては舊日本陸軍の軍服色(=カ-キ色)であったが,これが韓國軍隊または韓國社會においては韓國陸軍の軍服色の靑色を表わすようになった場合である.また,`ざんぱん(殘飯)`という用語も元來は`食`べ終わった殘りの飯`の意味であったが.現在は俗語化して`軍隊で兵隊たちが食べるまずい飯`の意味に變わって使われているのである. 今度の資料調査を通じて氣付いた-つの興味深い事實は日本語式用語からの類推から韓國で作られた用語の存在することである.すなわち,韓國軍隊(特に陸軍士官學校)用語の`조등(早燈)`は日本語式用語`延燈`の類推からてきたし.步哨`동초(動哨)`も日本軍隊用語の`立哨`からの類推かれ作られたと思われる. 今度の資料調査は完全でないだけに,これからも續けて軍隊內での日本語式用語使用の現狀を捉え,また分析していくことが必要であろう. また本稿においては日本語式軍隊用語の使用についての現狀だけを示し,醇化用語の普及とか新しい醇化用語の制定などに對しては國語硏究者·日本語硏究者のこれからの課題として殘しておきたいと思うのである.

5

「万葉集」における「似る」

柳椿姬

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제42권 1999.06 pp.6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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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0원

일본어에 있어서 A가 B를 닮다라고 할 때 동사「似る」가 사용되고 있다. 「似る」는 현대어의 경우에는 주로 구체적이고 근거가 있는 유사를 나타내는 표현에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고전어의 경우, 특히, 『萬葉集」에 있어서의「似る」는 구체적이고 근거가 있는 유사를 나타내는 표현뿐만아니라, 말(言葉)의 내용이 유사한 내용적 유사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또,「似る」는 현대어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아스펙트를 나타내는「テイル」가 승접하고 있지만, 『萬葉集』에서는 아스펙트적인 조동사「タリ」가 승접하고 있는 예가 극히 드물다. 본 논문에서는『萬葉集』에 있어서의「似る」와 平安時代의「似る」를 비교하여「似る」의 의미와 아스펙트적인 조동사「タリ」가 승접하지 않는 이유를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그 결과,『萬葉集』에 있어서의「似る」는 「似 テイル」「ノヨウダ」「トオナジダ」의 의미로 사용될 정도로 의미의 확장이 보인다. 또, 아스펙트적인 조동사 「タリ」가 승접하지 않는 이유는 「似る」가 의미적, 문법적 역할이 형용사에 가깝기 때문에「タリ」가 승접하지 않아도 무리가 없었던 점이 지적된다.

6

オノマトペの意味ㆍ用法の分化 - 「と」 「に」 型を中心として -

張鎭暎

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제42권 1999.06 pp.7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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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00원

일본어의 오노마토페가 연용수식용법으로 사용될 경우,「と」나「に」가 붙어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경우 같은 오노마토페라도「と」와 結合하는 경우와「に」와 結合하는 경우, 그 意味, 用法에 相違点이 發生한다. 本稿에서는「と」·「に」兩型의 오노마토페를 意味分化의 樣相에 따라 세 개의 그룹으로 나누고, 각각 結合하는 動詞의 성질에 관해 검토해 보았다. 그 結果,「と」·「に」兩型의 오노마토페는,「と」型으로서 사용될 때는 擬音語,「に」型으로서 사용될 때는 擬態語인 A類,「と」型과「に」型에 意味의 分化가 생기는 B類, 또한,「と」型과「に」型에 意味의 分化가 생기지 않는 C類로 下位分類할 수 있다. 이 경우, A·B·C類는 結合하는 動詞에도 相違点이 확인되었다. 우선, A類의 경우는, 「と」型으로서 사용될 때는 擬音語이므로 結合하는 動詞도「鳴る, 泣く」와 같이 音을 수반하는 動詞이지만,「に」型으로서 사용될 때는 擬態語이므로 結合하는 動詞에 있어서, 「と」型과 같이 音을 수반하는 動詞와 結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점은 B類의 경우로, B類의「と」型은(+動作性)의 오노마토페로서, 主體의 動作을 나타내는 動詞와 結合해서 動作의 狀態를 수식하는 것을 주된 機能으로 한다. 이에 비해, B類의 「に」型은 (-動作性)의 오노마토페로서 主體의 變化를 나타내는 動詞와 結合해서, 動作의 狀態를 수식하기보다는 動作의 結果, 變化된 主體의 狀態를 나타내는 것을 주된 機能으로 하고 있다. 마지막의 C類의 경우는「と」型일 때와「に」型 일때, 意味, 用法에 相違点이 나타나지 않는(-動作性)의 것이 대부분 이다. 따라서 結合하는 動詞에 있어서도, 兩型 모두 主體의 變化를 나타내는 動詞와 結合해서 動作의 結果, 變化된 主體의 狀態를 나타낸다. 이상,「と」·「に」兩型과 結合하는 動詞와의 結合에 관한 諸相의 考察을 통해, 오노마토페가「と」와 結合할 때와「に」와 結合할 때, 오노마토페自體의 意味變化뿐만 아니라, 用法에 있어서도, 통어적인 기능에 있어서도 相違点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7

「~かと思う」の意味と用法

鄭夏俊

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제42권 1999.06 pp.9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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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と思う」라는 표현형식에 대해서는 많은 일본어연구자들에 의해서 발화시의 화자의 심적태도를 나타내는 판단계의 모달리티형식으로 다루어져, 특히「だろう」와의 비교연구가 이루어져 있지만,「∼と思う」의 인용구를 의문화한「∼かと思う」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고 있지 않다. 「∼かと思う」는「∼と思う」와 비교해볼 때 미묘한 늬앙스의 차이를 나타내고 있지만 그 정확한 의미를 나타내기는 쉽지 않으며, 특히 초급중급수준의 한국인 일본어 학습자에게는 한국어번역이 쉽지 않은 것 같다 본고에서는「∼かと思う」의 의미와 용법을「∼と思う」와의 비교를 통해서 밝혀보고자 한 것으로 먼저「∼かと思う」의 주된 의미와 용법에는「추량적인 판단」「자문납득·발견」「의지의 망설임」「원망·희망」「복합사화한 것」등이 있으며,「∼と思う」와「∼かと思う」의 의미와 용법의 차이는「추량적 용법」「의문문으로서의 사용」「부정사ない의 문말 이동」「화자의 의지」「화자의 감정·감각을 나타내는 형용사」등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화자의 심적 태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는 문말표현형식(だろう·きい·かもしれない·にちがいない·そうだ·らしい·ようだ·みたいだ はずだ·なければならない·てはいけない べきだ べきではない·(た)ほうがいい·ていい·たい (て)ほしい·つもりだ べきだった·(た)ほうがよかった·はずだった등)과 두 표현형식이 결합을 할 경우 어떤 차이가 두 표현형식에 발생하는 가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8

6,000원

本考は,山田孝雄發言以來あまり注目されなかった上代日本語の格助詞`ツ`と古代韓國語における持格助詞`ㅅ`との關聯性について,その機能的な側面,用字的な側面,それから音價的な側面,の3つの觀點から考察を行ったものである.以下,これを纏めて示すと次の通りである. 1)古代韓國語における`ㅅ`は鄕歌の用例1から,中世きの場合と同じように主として$lt;名詞+名詞$gt;間で持格助詞としての役割を果たしていたことが確認できた.それから,「叱·次」など`破擦音系字母と「斯·戶」なと摩擦音系字母の使用及び中世のハングル表記法なとから察しで`ㅅ`の音價を/s/のような弱破擦性設摩擦音として推定し,これが2つの語辭の境目において「促聲的內破化」という持格助詞としての音韻論的機能を遂行するに當たって內破音的な/‘s’/の音價を持つようになるが,このような作用の結果として,前接音節の音環境により母音の場合には促聲的な[t],有聲子音の場合には休止性の[?]のよiな入聲內破音として現れることを述べた. 2)上代日本語の格助詞`シ`は上代文獻における用例かt見る通り,ほとんど凡ての場合において$lt;名詞+名詞$gt;間で二つの語辭を繫ぐ連體格の役割を遂行しているが,上代文獻全般に亘って-般的に「都·追·토(ツ).豆·圖(ヅ)」なとの字母が,それから-部の文獻において「度(ド) 止(ト乙)」などの宇母が使われることを確認した.しかし.大寶2年戶籍の人名表記を調べた結果,格助詞‘シ‘の異形態表記として判斷される字母が上代文獻一般に現れた「部·豆」字母を含めて「多·太(タ),大(ダ),志·斯(シ).須(ス),저·提(テ).代(デ).曾(ソ乙),止(ト乙)」なと實に多樣な形として現れていて,しかもタ行の字母としてだけでなく「志?新(シ).須(ス).曾(ソ乙)」なとサ行の字母としても現れることを指摘した.これは日本書紀?新撰姓氏錄なと日本側の文獻に見える古代韓國關係固有名詞標記に「志新?曾」など戶籍と同じような宇母が現れること,鄕歌及び古代韓國文獻に使われた`ㅅ`表記が主に「叱?次」なと破擦音系字母と「斯.戶」など摩擦音系字母であること.そしてこれら兩系統の字母は古代日本語において主にサ行音宇音假名として現れるという鮎で,戶籍におけるこのような用宇法は格助詞`シ`の古い形が反映された異形態表記として見受けtれ,兩者間におけるこのような用字上の共通點から古代韓國語の持格助詞`ㅅ’と上代日本語における格助詞`ツ`との密接した關聯性のあることを推定した. 3)上記のようなことを根據にして,古代韓國語の持格助詞`ㅅ`と上代日本語の格助詞`ン`との 類似性を次に指摘し.山田の發言同順樣兩者間同一語源の可能性のあることを推定してみる. (1)$lt;名詞+名詞$gt;間で2つの語辭を繫ぐという同じ構文論的機能を遂行する (2)音韻論的な側面から韓國語の場合,2つの語解の境目において持格助詞`ㅅ`が內破音か/‘s’/として機能しなが`ら前接音節が母音の場合には促聲的な[t]として,有聲子音の場合には休止性の(?)として實現されるが,開音節語である日本語の格助詞`シ`([tu])と音性的資質が似ている. (3)大寶2年戶籍の人名表記における多樣な用字形態は上代日本語の格助詞`ツ`の古形の姿が反映された異形態表記として見受けられるが,その中でも特にサ行音系字母の表記形態は古代韓國語の持格助詞`ㅅ`表記及び上代日本文獻に現れた古代韓國關條の固有名詞表記の字母と同じ表記形態をしていて用宇上の共通點が認められる.

9

後期洒落本における演劇的趣向について

康志賢

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제42권 1999.06 pp.137-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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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0원

寬政개혁(18세기 후반기)이후에 있어서, 후기 酒落本의 3대 작가라고 하면 振鷺亭, 式亭三馬, 十返舍一九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酒落本에는 山東京傳이 구사했던 연극적 수법이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는 공통점이 보인다. 본고에서는 이점에 착목하여, 지금까지 거의 논해진 바가 없는 이들의 酒落本의 연극적 취향에 대하여 논함으로써, 각자의 酒落本에 관한 창작 자세를 엿보았다. 그 결과 歌舞伎 음곡으로부터 소재를 추구하여, 애처로운 분위기를 끌어내려고 한 후기 酒落本의 경향과 다를 바 없이, 一九, 振鷺亭, 三馬도 연극적 취향에 취재한 酒落本을 간행하고 있으나, 그 중에서도 특히 振鷺亭가 전 작품의 절반 이상을 연극적 취향으로 각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세명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작자라고 한 수 있다. 의외로 一九의 酒落本 중에서 전체적 취향이 연극인 것은 2작품뿐이었지만, 京傳, 振鷺亭의 작품만큼 원작을 크게 벗어나는 일은 없고, 파로디화를 의식하면서 원작에 의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三馬의 酒落本은 一九보다도 더 한층 충실히 연극 대본의 세계를 酒落本화 하고 있는 점등, 동시대의 대표적 작가의 창작 자세를 비교 분석 할 수 있었다.

10

八代集の掛詞表現考 - 動物名を中心として

金基瑞

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제42권 1999.06 pp.153-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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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0원

八代集における動物の名とその關連語に注目し,これらを中心とする掛詞表現を通して各各の持つ歌語としての特性を察した.その結果,掛話として使われているものは動物の中では14種もある鳥類の名が多く,關連語の場合は動物の鳴き聲が特に目立っていることが分かった.和歌における掛詞は限ぎられた表現の空間を廣げる役割を果たしているが,掛詞をなす上記の動物とその關連語の場合も例外ではない.掛詞として表出してある言葉を見るといつもとは決まっていないが,多くの場合,心象と物象を表わ言葉がダブっている.本稿を通して考察した動物名とそれらの鳴き聲などは視覺や聽覺などの感覺を通して捉えられるものであるから,物象にあたると言えよう.一方,これに重っているもう一つの言葉は心象語がほとんどである.たびにダブっているものが物象語であったりしてもそれらは人事と關わりを持つものであることが分かる.このことは掛詞表現の動物及びその關連語が八代集の表現においてどういう役割を受け持っているかを物語る.自然の情景を歌いつつその裏面に人事的な要素を加えたり,しゃれなことを입ませたりできるのはもっぱら掛詞あっての話である.要するに愛や離別や死など人事にまつわるさまざまな感情が同音の動物名を通して連想されるわけで,掛詞表現の動物名は主題に近づくための橋わたりになっている歌材であると言える.

11

4,500원

『雨月物語』の作者として有名な上田秋成は,作家であると同時に歌人であり,國學者でもあった.長らく國學者として活動していた秋成は死ぬ直前になって,再び物語作家にもどり,『春雨物語』という物語集を創作した.當然のことながら,『春雨物語』には至る所に長年の國學硏究の成果が盛り입まれている,江戶中期文學の最大の特徵の-つとして文學と學問の密接な關わりを擧げることができるが,『春雨物語』にはそういう時代的特徵がよく反映されている.したがって,『春雨物語』を正しく理解するためには,これが「文學と學問の接解」の結果として生まれたことを念頭において,物語の世界の一部分をなしているその「學問的要素」をできるだけ深り出すことによって,『春雨物詰』における$lt;國學者秋成$gt;と$lt;作家秋成$gt;の共存の樣相を浮彫にすることに焦点を合わせねばならない. 本論文では,そのような觀点に立脚して,『春雨物語』の中で「目ひとつの神」を取り上げた.「目ひとつの神」を取を上げた理由は,『雨月物誇』と同じく妖怪たちが登場する怪異世界が描かれており,思想性の高い『春雨物語』の中で異端視されてきた作品だからである.從來浪漫約で神秘的な怪談として見なされてきた「目ひとつの神」に對して,秋成の國學關連の著述や貢制,宣長の著述を參照しつつ綿密に分析し,この作品に描かれたき怪異世界の裏面に潛んでいる象徵的な意味や思想的背景などを採ってみた.その結果,神と憎の忠告を通して,あるいは森の中で行なわれた人間と動物と妖怪たちが-つになって樂しむ酒宴を通して,秋成が描こうとしたのは.「法」や規範に拘束されずに自然で自由に生きたか古代の人たち,そして平和で安定した古代世界であるという結論に達した.このように,儒敎や佛敎のような外來思想によって순수な日本精神が汚染される以前の古代世界は,秋成が理想とした世界であり,また眞淵の復古思想の形象化でもある.

12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여성관

金采洙

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제42권 1999.06 pp.185-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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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0원

川端康成の代表作品の基本構造は,作者の分身という形を取って作品の世界に入り,作品の世界の中心的な役割を果たす一人の男性が,作品の世界の中の女性たちに關心を持っていく過程で成り立っている.より具體的に述べると,中心人物の役割の一人の男性が三つの次元の女性たちに關心を持っていく過程を軸として成り立っ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る.三つの次元の女性たちは,家の內で內助の役割を果たす妻と,外で性的な關係の可能な女性と,職場や學會,あるいは旅先なとで.自分よリ美約な感貫を呼び起こす女性とを指ず.このように,川端康成の文學は彼自身の女性大いに對しての關心を軸として形成されているのである.それ程,彼の文學は女性といに關係があるということになる.川端の代表作品のそのような構造は,言うまでもなく,彼自身の女姓に對する絶え間ない關心の結果にほかならない. 彼のそのような關心は,彼自身の人竝み外れた成長造程から形成されたのであろう,接は4歲の時,母と死別し,その後.彼は組母と一緖に暮らすことになるが,8歲の時,組母とも死別する,11歲の時には,母が死んだ後,親戚の家に預けられた姉ヨシフ(芳子)が死ぬ.16歲になってからは.彼と一緖に暮らしてかた祖父にまで死なれ,天涯孤獨になる.その後,孤兒として生きながら,この世にはもういない母,姉,祖母を思い出していく.かれらを思い出す過程で,女性に對する認識の수が形成さるようになった.つまり,それを通じて世の中を認識して行ったという話になる.彼の作品の世界へ作者の分身として入ってきた主人公たちは,女性を犧牲にし,不滿の自分の現實を受け取って行く.このような事實を基にして考察して見ると,川端にとっての女性とは,彼が自分の現實を受け取る手段として把握できる. 日本の中世文學を代表する「源氏物語」(1008頃)は,女性を犧牲にして一次元より高い自分の存在領域を確保して行き,自分の生活を實現して行く男性を主人公とする作品である.日本の近世文學を代表する,「好色一代男」(1682),「春色梅兒譽美」(1832)などもそのような人物を扱った作品である. これらの作品が日本文學を代表するといっのは,日本人がこれらの作品をそれほど大いに讀んで來たことであり,日本人がこれらの作品を愛讀してきたというのは,日本人がこの作品の主人公と共感する部分がそれ程多かったということを意味するのである.こういうことを考え合わせると,日本文學の特性のなかの-つは.男性が女性に關心を持って行く過程,あるいは,人間が異性に對しての關心を持って行く過程を記述したものとして術べることが可能になるのではないだろうか.それでは.日本文學は何故そのような特性を持つようになったのであろうか.それは,人間の異性に對しての開心こそが,人間にとっての最も根本的な問題として把握されて來た所以ではなぃだろうか. 人間の異性に對しての關心は,人間が自分の存在を支えていく主軸である.また,それは人問がき自分の存在の質を一次元より高める方法に成リ得る.文學が主に異性の問題を扱うものだというのは,人間に於いての文學とぃうものが,異性を手段として人間の生の質を一次元よリ高めて行く手段だという事實を意味するのではないだろうか.

13

5,400원

この論文は日本現代文學において普遍化されてきたと言える,私小說という小說形式の中で比較的に原形的な意味を帶びている私小說的性向を說皮しながらも,今でもやはり私小說という境界地点で絶えずに私小說的ヌ場を堅持してきたように見られる作家の中で,特に,代表的な現代作家である二人の作家(田官虎彦,大江健三郎)と後代作家たちを檢討して,彼らの文學性向を私小說的な批評角度で硏究しようとすることを執筆目的にしている. 田宮虎彦の場合は1950年代から1960年代に至る時期にかけて作品活動をしてきた作家であり,大江健三郎の場合は1970年代から1990年代の最近に至る時期にかけて作品活動をしてきた作家であって,この二人の作家を-つの同一の派絡構造線の上で硏究の焦點を合わすというのは,私小說の境界領域に位置している日本現代作家の-つの脈絡を漠索してみることがでくる点で,この硏究の意義を持てるのであろう. 田官鹿彦の場合は彼の文學上の軌跡から見て客觀小說を書いた作家であると同時に歷史小說をも書いた作家だという評價をもらうのであるが,だからといって,彼の發表した作品は澈底に慮構だけを追求したて作家だというふうに評價するには多少の疑問点を殘す作品がある.そして,やはり何人かの批評家から彼のそんな私小說的意場を堅持する作品が常に問題になってきた. 大江健三郎の場合は彼の作品の中で美驗的敍事方法を驅使することによって原形的な意味の私小說のありを模糊にしている.私小說の方法で作品を造形していきながら,その中で作中作法を驅使していく.從って大江健三郎の場合も作品外約要素を充分に確認しないと作品の接違がとても難しくて理解できない点がありうる.

14

4,500원

夏目激石(1867-1916)は1907年,朝日新聞社に入社する直前に書いた「僕の昔」という談話で,自分の生きて來た過去を振り返って見ながら`小供の時分には講釋がすきで東京中の講釋の寄席は大抵聞きに廻つた`と回顧している.また,自分の寄席趣味について自傳的な作品や隨筆などで繰り返し述べている. しかし,今まで行われた漱石の作家以前についての先行硏究は落語を中心に硏究されてきたのだが,幼い時,彼がよく經驗したと思われる講談の影響についでの硏究は皆無である. 本稿ではこの点に着目して,激變する明治維新という時代狀況の下で當時の民衆に日本の歷史を語りながら皇國の精神を傳えた,最も日本的な性格を特性とする藝能というべき講談が明治維新期に生まれた漱石の幼年期と少年期,そして靑年期にどんな影響を與えたかについて考察してみた. その考察において,幼年期に養父と供に出入りしながら聞き始めた寄席での講談師の史實に基づぃた 「漢楚軍談」の覺えが,イギリスでの留學の時,シェ-クスピアの作品「King Riㅊhard the Second」を讀む時,思い出されたり,1909年に書いた『滿韓ところどころ」では, 中國の노동자か동いている場面を見て`余は不圖漢禁軍談を思ひ出した.`と書いたりするところから,むかし講談師から聞いた講談が大きな影響を與えたことが分った. そして,このような歷史意識をもとにして.彼は當時11才という幼い時に南北朝の英雄である補正成に自分を投影して「正成論」という作文を書いた.また,二松學舍に入學して習った史書である「左國史漢」(『春秋左氏傳」.『國語』.『史記』『前後漢書』の略稱は役の文學理論の基礎を形成することになって,『文學論」の「問隔論」を執筆する時,この『春秋左氏傳」の「언능の戰」を引用して說明したり,『吾輩は描である」では`左氏が언능の戰を記するに當つても先づ敵の陣勢から述べて居る`という文章を引用するなど,講談が漱石の文學に影響した痕迹を見ることができる. それで本人は,今後の課題として今は凋落の一途をたとりつつあるが,明治維新という特殊な時代に國史を聞かせながら民衆に歷史意識を植えた講談師の講が漱石の作品にどのような形で表れているのかを分析してみたい.

15

5,100원

一般的に茶川の作品の活動は三つの時期に分けられ,その中でも後期(1925年∼1927年)の作品は茶川自身の美意識(創作活動の理念)の變化が著じるしく生じた中で創作された.その變化の核心は意識から無意識に,人工から自然に,そして知性から抒情へとかえっていくことであったと言われている.それで,本稿ではその中にも`意識から無意識への變化`を主題にして,後期作品の分析を中心に茶川における`無意識的藝術活動`の意味を究明しようとするものである. その硏究の方法としては後期作品に表われている夢に焦點をあてて見ることにする.その理由は茶川の後期の作品の中に表われている主人公の夢に,`意識の關の外`とか`無意識`に關する用語が見られるからである. したがって,その考察の方法として夢と無意識にどのような相關性があるのかということを機念的に考えてみた後,その`無意識`の-般的な槪念としてはフ口イトによって明らかにされた`潛在意識`という槪念を引用して見ることができた. 結局,このような夢を通して,茶川の`無意識的藝術活動`の目指す本質的な意味は,象徵的な夢に描かれている主人公の夢のように.作品のプロットとはあまり連繫性が强くないということが言える.それはこれらの夢の含められている作品が茶川の後期の文藝理論の-つである`「話」らしい話のない小說`.いわば詩的小說`を形象化しようとする茶川自身の意圖から創作されたものであったからである. 一方,て家の茶川は事實的な夢を通して,意識の下に抑壓されている自身の間題を露出させていたのである.それは作家の個人的な魂`の世界を作品に投影するより外はなかったということを意味するものだと思われる.したがって,茶川の無意識への變化の意味は誇的精神に基づぃている詩的小說への志向であり,作品の中で作家の自己露出を肯定しようとしたものであったことがわかる.

16

4,800원

長籍小說「死靈」の作家,植谷雄高は作品の獨自性と日本文學史上での孤立性がしばしば指摘される.それは$lt;自同律の不快$gt;という難解なテ-マにあることは言うまでもないが,その`難解さ`は埴谷が自己の觀念を展開する場と通常我我が理論を立てる場との差異によるものと思われる.埴谷は意識する自己と存在する自已が重ならないことから生じる$lt;自同律の不快$gt;を新しい存在形態を摸索することで乘り越えんとしたのであるが,そこに非現美的空間が求められたのである.そこで本稿ではその非現實的空間を考察するにあたって處女作『洞窟』を通してそこにあらわれた原型を調べてみた. 埴谷は小說を自己の觀念を表出する手段としてとらえていたことから,まず,埴谷の思想が形成される過程を空間を中心に捉え直した.稙谷は植民地體驗を通して培った現實嫌惡を社會運動を通して打破しようとしたが,當時の共産黨が本の植民地支配の構造と同じものであることを認識し,人間をそうあらしめる現實世界に限界を實感する.その後,カントから$lt;무한판단화$gt;を,そしてドストエフスキイから$lt;小說$gt;を學ふことtり,非現實的空問への轉位をなす.このような過程は後年,明らかにされたものであり,「洞窟』着筆時には理論化されていたとは言い難いが.埴谷の念頭に非現實的空問が想定されていたと言える. 「洞窟」における非現實的空間の必然性とは,自己をそうあらしめる現實世界からの逸脫をそれを不快と感じる內的感賞を押し廣げることによってなさんとするためであり,そのような相反する志向を倂せ持つ自己の姿態の客觀化をなすことにある.このように小說空間として設定された非現實的空間とは,$lt;ありえないもの)を渴望する上で,矛盾した思考の飛躍を促す必要條件であったのであり,「洞窟」はそれを最も原初的なかたちで表出した作品であったと言えよう.

17

4,600원

17宇の形式と季語を必須要件とした傳續俳句派と自稱し,返代俳壇において多くの俳人の支持をうけた高浜虛子の排句を理解するために`花鳥諷詠`について考察してみた. 第1章でば花鳥諷詠`の槪念について述べた. まず,虛子の排句論である「花鳥諷詠」論の內容を自然界·人間界の現象と俳句傳統性,そして文壇での俳句の位相順とに區分して察してみた.虛子の自然界の現象に人間事の現象も含めるという方法が特異すべきである.日本人にとって排句とは昔から自然なものであることを說明しつつ,日本が第一の國家になるときのため日本獨特な文學として俳句を確立させようとする自負心があるのもかった.次は`花鳥諷詠`の意味を昔の排句と虛子の立場とに分けて察してみた.`花鳥諷詠`が普の排句では作家の感興をあらわす手段としてつかわれたが,虛子においては俳句の對象.すなわち.俳句というのは自然の描寫であるという定義ら相異がみられる. 第2章ではまず.虛子俳句の多樣性を確認するために「花鳥諷詠」發表前後の句が集められた自選句集『五百句』を內容面からつにが類してみた. ユ-モア.골담の排句と浪漫約·空想的な俳句,そして自然を讚美した俳句とに分けて察してみた結果,ユ-モア·골담の句と浪漫的·空想的な句は後期になると減少し,自然を讚美したが多くなることを確認した.このような變化は初期の感情や抒情などを直接移入する方法が,自然をそのままを描寫しよする創作技法に變わったことによると思われる. 第3章では,`花鳥諷詠認`の根幹である自然への同化を察してみた. まず,自然への愛情において人間が自然の構成員であり主體者としてみるのは一般的な見解であるが虛子は自然の變化に順應しながら有情の目で肯定的にうけいれれば,自然は人間を害することがないと信じている.このような自然への愛情は俳句という文學をとおして自然と人問とが時によって大きく,時によって小さく表現されていることがわかった.また,自然への順應は諦念の消極的な姿勢ではなく,文學としての表現,すなわち,`諷詠`を通して自然の再創造を試みる積極的なものであることがわかった. このように虛子は絶對眞理という自然への同化にょって自然を俳句による客觀化,すなわち,`諷詠`という積極的な姿勢を持って獨自の文學をひろげていったゆえに近代俳壇の源泉になったとみら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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芥川龍之介の「或阿呆の一生」考 - 第三の 「 遺書 」 として -

曺紗玉

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제42권 1999.06 pp.281-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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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0원

芥川龍之介가 자살하기 직전인 1927년에「유서」라고도 할 수 있는 다섯 작품을 남기고 있다. 그 중「河童」,「齒車」에 대해서는 이미 논문으로 발표하였으므로, 本稿에서는 3번째 작품인「어느 바보의 一生」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즉「어느 바보의 一生」를 통해서 芥川가 어떻게「시와 진실」을 그렸고,「그리스도」라는「超바보」에 대하여 응시하였으며, 실제로 絶筆이 된「西方의 사람」,「續西方의 사람」의 구도를 그려 왔는지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상의「어느 바보의 一生」에 대한 고찰을 통해 다음과 같은 점을 읽을 수 있었다. 「神」과「世紀末의 惡鬼」에 대한 문제, 포기한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문제, 양극성의 문제, 인생에 대한 패배의 문제,「西方의 사람」,「續西方의 사람」을 쓰게 된 필연성에 대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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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키(漱石)의 漢詩文 研究 - 子規와의 交遊를 중심으로 -

崔奉完

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제42권 1999.06 pp.29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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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0원

小說家漱石という名前は彼の生涯の中で殆と後半期の文學活動に因って名付けられた呼稱である.だから一般的に漱石とすると小說家として或いは東京帝大の英文科の敎授に在職した經歷から英文學者として聯想しやすい.しかし,彼の文學世界の形成は遙かに幼年時代から學習した傳統の詩歌と中國風の漢詩から始まる.ただ時代の流れが傳統の固守としては生き殘られない世紀末の思想と新たな世紀の思潮の押し寄せから徐徐に現實を追隨するしか仕方がなかっただろう. 本稿では,小說家以前の漱石の文學思想が窺われる漢文と漢詩について考察してみた.そのなかで漱石が子規に書簡の形で送った內容をテ-マとして漱石が子規に宛てた書簡の意義と分析,子規の「七草集」に對する漱石の「「七草集」評」及び「木屑錄」の漢詩文について考察してみた. 先ず,漱石の書簡文が一九九六年版「漱石全集」によると2486通のなかで子規に宛てたのが現在89通が收錄されてある.それなのに子規が漱石に宛てたのはようやく21通に過ぎない.このように予規の方がずっと少ないのは色色推し測られるが,本稿では本論との關聯性が薄いので具體的には究めるには現存する資料の不足と子規の言及がなかったので推論にとどまっている.ただ,兩氏の間の書簡の特徵は日常生活の身邊雜記にとどまらず,文學の同伴者として一方では習う學生として,一方では敎える先生として樣樣な形を書簡という形式を通じてやりとりしたのに意義があると思われる. 「七草集評」に表れた漢詩文には子規の「七草集」の中で漢詩文に書かれた「蘭之卷」(漢文)と「萩之卷」(漢詩)に對しては言及しなくて,他の五卷に對して評を下し,末尾に漢詩九首を載せている.漢文では自分を謙って(無鹽)に譬え.予規をげて(西施)に託している.漱石の漢文が六篇しか殘っていなかったので判斷の準據をこの作品でしか出來ないが,子規の立派な漢文驅使に刺戰されて本格的に漢文と漢詩を作らせた原因は子規の「七草集」の影響だと思われる.漱石は「七草集」について$lt;情優にして辭寡く,淸秀超說,神韻を以て勝る$gt;とロをきわめて賞讚しながらも,$lt;蕪句鄙言有り$gt;と評釋する自分なりの知的な自信感と詩的な挑戰心理を現している.なお,九首の漢詩では子規が上京して向島の香樓に宿ってに樓に宿ってから去るまでの生涯がものがたり性で詠談じている. 「木屑錄」に表れた漢詩文には[木屑」のいう言葉の意味から分にかるようにつまらない木くずとかおがくずの意味である.しかし,漱石がこのように名付けたのはどこまでも謙辭の語であり,實際には「木屑錄」をきっかけに漱石が子規より漢詩文の場合には高い境地に達するようになる.子規も「木屑錄評」で$lt;其の詩也株璣,山を敍し水を狀$gt;して,,$lt;支那の古文を讀むが如し$gt;(「筆まかせ」)と感歎している. 一方, 漢詩では漱石の[黃]·[傷]·[郞]の韻字を使って子規が次韻詩で答えると,そのように評價を受けるほどではないと謙讓の美德で應酬するこそ,二人の問に敎學相長じの基盤を築きあげることが出來たのではないかと思わ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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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쿠보쿠(啄木)의 단가(短歌)와 한(恨) - 가집 (歌集) 을 중심으로 -

韓基連

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제42권 1999.06 pp.31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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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0원

石川啄木の短歌の代表的な情緖の-つとして多くの硏究家は,「悲しみ」をあげている.「悲しみ」と「喜び」は,常に全ての人間の生の中に腰をおろしている.よって,「悲しみ」と「喜び」に關 する硏究は,人間の本質的な面にせまる-つの方法であると言えるだろう.啄木の短歌の代表的な情緖の-つである「悲しみ」に對する硏究は, 啄木を正しく理解するための-つの方法として.啄木の硏究においてとても重要な意味をもっていると言えよう. このような理由から,私は啄木の歌集『一握の砂』と『悲しき玩具』の短歌を中心に啄木が歌った「悲しみ」の情緖を,韓國の「悲しみ」の情緖を代表する「恨(ハン)」の視角から考えてみたのである.また,同じ視角から彼の人生も考えてみようとした. このような硏究の意義は,啄木のもっているあたらしぃ意味の穿鑿を企ることである.また,日本の國民詩人である啄木を韓國の「悲しみ」の情緖を代表する「恨」の視角で再照明することで,明治の日本人の「悲しみ」の情緖を理解するのに,役に立つだろうと考えられる. さて,韓國「悲しみ」の情緖を代表する「恨」という視角を用いて,啄木の歌集『一握の砂』と『悲しき玩具』の短歌を再照明することは,一種の讀者論と言える.讀者論の立場から作品硏究を行う時,作家は排除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しかし,短歌が一人稱文學であることから啄木を短歌の解釋から排除するよりは短歌の中の「我」と「啄木」との差異を明らかにるために,啄木の傳記は短歌の解釋の資料として採用された.以上のような硏究態度をもって啄木の短歌を,「恨」の視角から,再照明し,次のような結果を得たのである. 啄木自身を素材にした短歌では,啄木の人生が困窮を極めた狀態から生じた悲哀(かなしみ)としての 「恨」のイメ-ジとその悲慘な現實から脫け出たいという强い欲求,卽ち願望としての「恨」のイメ-ジが見いだされる.そして,「恨」の否定的な屬性の對他的な攻擊性のひとつである怨念,よりは對自的攻擊性のひとつである自責の念にかられた彼の姿がよく表われている.對他的な攻擊性よりは,對自的な攻擊性が彼の短歌からよく表われているのは,彼にできた「恨」の主な原因が啄木自身にあったためであると思われる. 家庭や家族を歌った啄木の短歌からは,經濟的な困窮は啄木だけでなく家族全員.を精神的·肉體的に苦しめたということがわかる.啄木は家族に對する愛を歌った短歌をもって,家族を不幸に導いた-つの原因提供者としての否定的なイメ-ジを克服したといえるだろう.それで,苦痛に喘いでいた當時の農民や勞動考を歌った彼の短歌がより眞實をものに評價されたのであろう. 故鄕を歌った啄木の短歌からは,貧しいゆえに故鄕喪失の立場に追われた啄木の胸の奧に, 故鄕までも失われたという故鄕喪失の悲しみがうかがわれる.故鄕喪失は,啄木自らはどうすることもできない,心の中の病になっていた.故鄕喪失からできた望鄕の「恨」は.悲慘な現實のなかの啄木に,故鄕をよりなつかしいものに思わせたといえる. それから,故鄕を歌った短歌から,故鄕の人人に對する彼の憐憫の心が感じ取られた.啄木個人の故鄕喪失の悲しみや苦痛だけを歌う次元を索り越え,當時の時代の矛盾に苦しめられていた農民や勞動者の悲慘な生活までも短歌に受け容れようとしたのである. 啄木がまずしかった農民や勞動者のことについて心底から理解でき,それを同情する短歌を殘すことができたのは, 啄木自ら貧しい生活からの苦痛や悲哀を經驗したからである.そして啄木自ら誰よりも苦しい人生を生きた.にもかかわらず, 自分だけの世界に止まらず,他人の苦痛や悲衰をうたった短歌を殘せた.そのようなことから歌人であり. 思想家として苦惱しつつ短歌を作り續けた彼の秀れた一面が感じられる. そのような啄木のて作家精神は,實際の人生での否定的なイメ-ジをのりこえて,今日,肯定的なイメ-ジをもって多くの讀者にの愛着をえることができたと考えられる. それから,當時の日本社會がもっていた構造的な矛盾を理論的に把握し,これを打破しようとした啄木は,思想的な面においてもすぐれた先覺者をとして評價されるべき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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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0원

本稿は1920年代初めの東京であった韓人社會思想家たちの活動とその背景に光そあて,從來等閑視された在日韓人社會運動の萌芽期に對する歷史的位相をあらためて求めようとする試論である. 1921年11月東京で結成された在日韓人最初の社會思想團體黑濤會は.その構成員たちが當時日本の社會思想界との交流を通じ吸收した運動觀を獨自の思想運動に應用したものであった,黑濤會は廣範な社會主義的性向をもつ人たちの團體であったが, 當初からマルクス主義やアナ-キズムの二つのグル-ブに分かれて活動した.ただし,當時の黑濤會員の活動は基本的に3?1運動あとにおける民族解放のめの新たな方法を追求する過程でのものであるので, 民族主義に根をおいたという點で日本人による社會運動と異なった. 信濃川韓人勞動者虐殺事件を糾彈する大會で見せてくれた共同鬪爭はその良い例である. 黑濤會は, 勞動運動の方法論をめぐって非政治的な直接行動を主張するアナ-キズム勢力と勞動者政府の樹立を追究するボルシェビズム勢力との對立が激烈した日本社會運動界の影響を受け,內部分裂をおこし1922年9月に解散した.黑濤會員同士のこの對立はむろん運動方法論の相違こよるものであったが,活動家たちの經濟的環境も原因の-つであった.1年にもならない短い壽命であったが.黑濤會の存在意義は在日韓人の社會運動をアナとボル二つの方向に「交通整理」したことに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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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役者論語』 를 통해 본 近世 日本人의 演劇觀

朴銓烈

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제42권 1999.06 pp.353-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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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0원

本硏究は近世演劇を代表する藝能ジャンルである歌舞伎の藝を論ずる『役者論語』形戒環境とその內容の深層分析を試みることに目的を置く. 『役者論語』で代表される藝談集の形成環境としては「聞書き」の形式で刊行された隣接した藝能の秘傳書が存在し,刊行段階にこれらの影響を受けたのである. 近世俳優の理想像を提示するなかで,俳優は身體的訓續を積み重ね,肉體的演技をもって觀客に感動を與えなければならないとの基本論理を前提にしている.しかし,望ましい演劇の姿というのは,排優の精神的側面.修養的側面から形成されることと思われ,演技者としての名聲を得るより人格を大事にすること,そして舞台のと上では相對の排優を配慮する心講えをもつこと,常に新しい演技の領域を開拓し,觀客の呼應を得ようとする創作精神を何によ優位に置くことなどを演劇觀の中心において,俳優と觀客はむろん,劇場關係者もこのような精神を實現しようと努力した. このような過程を充實に履行する排優には多くの비희が集り援提し,また,場合には俳優の間でも理想の俳優を神格化する風潮まで起きたことが確認された.多くの排優は,自身の限界を冷靜に把握しえなかった.その中でも,歌舞伎に對する情熱は熱く,その發展と觀客の奈持を持ち續けるために努力した. 近世の觀客は劇場を視祭空間ととらえ,世間とは異る秩序を味いながら觀劇を樂しんだ.觀客は排優の演技や演技力を「藝」という觀點から把握し,稽古で鍛えられた演技力を高く評價した.しかし.これとともに高度の修養からなる調和力,すなわち.「孤自當(我ひとりあてんする)ぶを極力克服しようとする情神力が望まれた.近世の演劇精神は觀客だけを意識し,まわりの配役を意識しない.あるいは外見だけを豪華に節ろうとする舞台を作ることよりは,高揚された精神面を表現する演技をより上位の價値機念と泥握することであった.また,このような演劇觀には當代の類似藝能ジャソルの藝能觀の影響がうかがわ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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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鮮一體」理論의 樣相

鄭昌石

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제42권 1999.06 pp.37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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所調「內鮮一體」は單純に朝鮮人と日本人が對等に共存することを意味するものではない.すなわち,日韓倂合が「韓國が完全廢滅に歸して日本の一部となる意」であるように.「內鮮一體」とは朝鮮人が完全に日本人となり,朝鮮人という民族が地球上に於て姿を消すことを意味していた.いわば,民族抹殺政策であったのである.そして,「內鮮一體」の具體的な方法論として「國體の明徵」という條件付きの「皇民化」が强行されたのであり.「皇民化」要求の必然性を「內鮮一體」の論理が提供したのである.しかも,その根底には日韓倂合がそうであるよう,「內鮮一體」が日本帝國主義が施す朝鮮民族への「恩惠」であるという施惠意識と,日本民族は朝鮮民族が同化されるべき優秀な民族であるという優越感が基調をなしていた.この場合,施惠意識は日本人の朝鮮人にたいする建前を形成し,「內鮮一體」を宣傳しながらも,本音を形成する優越感の中には所謂「國體の明徵」を武器とする「皇民化」の循環論理を繰り返し,その「內鮮一體」を拒否し續ける仕組みを隱していた.これは,日本帝國主義が終りまで朝鮮人の「皇國臣民」としての未熟性だけを指摘し續けながら,「內鮮一體」ところか差別一本槍で通り拔けたことからも察知できる,これは朝鮮における日本帝國主義の所謂 「國體の明徵」に潛んでいる循環論理からも當然の結果であった.こうして,所謂「內鮮一體」の支配イデオロニギ-はその一方に於て「皇民化」を强行する「えさ」として利用されたし.他方に於て朝鮮人の「皇國臣民」としての道德的未熟性を指摘しつつ,その實行を永遠に延期するところにも利用された.このような「內鮮一體」の二重構造は日本帝國主義の朝鮮に對する國籍法の適用にも現れる.倂合後の朝鮮人は「日本臣民と見なす」こととなったが,實際は日本の國籍法の適用外に置かれ,朝鮮總督の「命令」によって統治されていた.日本の國籍法は植民地全期間を通じて朝鮮に實施されたことはついになかった.しかし,この國籍の開題は,便利にも日本帝國主義の「利害開係」においては內外的に朝鮮人を拘束する力を發揮したのである.朝鮮人は「日本臣民と見」なされたので國內的にはあらゆる日本帝國主義の法律は勿論,朝鮮總督の「命令」の適用を受けたし,國外的には特立連動家の逮捕,引き渡し,外交の取引の材料に利用された.日本帝國主義が朝鮮人を國籍法で拘束しながらも,なぜ朝鮮に日本の國籍法を實施しなかったかは問う必要もないことであろう.日本の國籍法を朝鮮に適用することはそのまま朝鮮人の政治的參加すなわち參政權の許容ということである.朝鮮人の政治參加は朝鮮人の政治的選擇につながり,日本帝國主義の朝鮮支配を根底から否定することである.このようにして倂合後の朝鮮人はその義務に於て「日本人」.その權利に於て「朝鮮人」, という差別的な二重構造の上に置かれていた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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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文化と 日本政治經濟の非公式性

曺圭哲

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제42권 1999.06 pp.393-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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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일본문화의 진실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일본문화론과 일본정치경제론이라는 2개의 독립된 학문영역으로부터 동시에 제시되어 온 유력한 주장을 `비공식성`과 `평판의 경제적 가치`라고 하는 개념을 이용해 재구성함으로써 실험적이나마 일본문화론과 일본정치경제론의 수렴을 시도하기 위한 것이다. 나라마다 특수한 문화가 있고 그 문화가 정치나 경제에도 일정 정도의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지만, 문제는 일본문화가 일본정치경제에 미친 영향의 정도를 특별히 크게 평가하는 데에 있다. 일본의 정치경제구조는 다른 나라의 그것보다 문화의 영향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한 것이 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본고는 그 해답을 `평판의 경제적 가치`를 중시하는 일본문화와 일본 정치경제시스템의 비공식성에서 구하고 있다. 즉, 지금까지의 일본정치경제론, 특히 일본의 정부-기업 관계론이 설명변수로서 컨센서스 지향적인 일본문화를 강조해 온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에 대해서, 2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가지는 일본문화론 그 자체를 의심하는 입장에서의 가능성이다. 즉, 일본문화론은 진실로서의 일본문화와는 별개로 일본국내 정치경제와 국제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다분히 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 조작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일본정치경제론자에게 유용한 형태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다. 전후 개발된 일본문화론의 대부분은 일본경제의 성장기에 제출된 것으로, 이 시기에는 일본문화가 일본적경영론의 유용한 이념으로 인정되던 시기였다. 일본문화 특수론은 일본정치경제론과 맞물려 상호의존적인 논리구조를 완성했을 때, 보다 안정된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른 한가지 가능성은 일본문화론을 긍정하는 입장의 대답이다. 다시말해 일본정치경제의 특징인 비공식성의 장점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었던 것은「평판의 경제적 가치」를 중시하는 일본문화의 지지(支持)가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입장이다. 이 입장에서는 일본정치경제론에도 일본문화론에도 오류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일본정치경제론과 일본문화론이 상호의존적인 논리구조를 유지하는 것은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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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이덕봉 저 『 일본어 교육의 이론과 방법 』

李成圭

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제42권 1999.06 pp.405-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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