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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하시 토오루(高橋亨)의 皇道儒學 ― 李滉, 高橋亨, 朴鍾鴻의 朱子性理學과 중앙집권·국가주의 비판
대동철학회 대동철학 제55집 2011.06 p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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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은 인접국가로서 문화사상적 교류와 침략전쟁이나 강점 및 선린우호를 공유하고 있다.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문화사상 연구와 교류에 큰 영향을 제공한 일본의 학자 가운데 타카하시 토오루(高橋亨, 1878-1967)가 있다. 타카하시는 1903년에 한국에 건너와 중학교 교사에서 대학 교수 등을 그만두고 1945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가 한국에 거주하며 일제강점기 전체시기에 행한 연구와 작업들이 후일 한국의 학교와 교과서, 우리 학자와 저술 등에 지독한 훈습이 배이게 하였다. 타카하시는 일제말기에 총독부 어용학자로서 조선유학연구의 공로로 훈장을 받고 이른바 ‘황도유학’ 주창한 당사자였다. 그는 이를 통해 일본 신민뿐만 아니라 식민지 조선 민족도 이른바 ‘일선동조론’에 바탕하여 ‘황국의 신민(국민)’으로 만들어 갔다. 한국철학사에서 유학사상의 대표적 인물로 조선시대 이황(1501-1570)과 이이(1536-1584)를 일컫는다. 이들을 일반적으로 ‘정주성리학자’로 지칭한다. 이들의 사상체계는 최근까지 조선조의 국가철학인 성리학에 부응하는 학문연구와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정치질서를 온존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에도 유교적 가부장제 질서 속의 일왕(천황)이 ‘일군만민’이란 전제정치를 지속하게 하였다. 이황과 이이의 학문사상은 유교적 사회질서와 중앙집권적 국가주의의 정치체제로 전화될 수 있는 요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타카하시는 조선조의 철학사상을 이황과 이이 중심의 ‘사칠논변’ 등의 성리학으로 파악하여 전개하였다. 그를 답습한 박종홍과 이병도를 비롯한 한국의 철학자와 역사학자들은 타카하시의 앵무새가 되었고 교과서를 편찬하고 그 제자들을 그렇게 교육하였다. 철학은 ‘시대정신의 정화’다. 그렇기 때문에 왜곡된 현실의 뿌리에 도사린 굴절된 시대정신을 비판하여야 한다. 그 구제적인 핵심은 한국 전통사상에 대한 박종홍의 인식태도, 특히 퇴계철학에 대한 그의 논의에서 출발한다고 보았다.
Between Korea and Japan, there are exchange of culture and thought, wars of aggression, occupation period and neighborly relations. Takahashi Toohru(高橋亨, 1878-1967) was one of the most important person among Japanese scholars who influenced on studying on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n culture and thought. Takahashi visited Korea in 1903 and returned to Japan in 1945. His studies and works, for living in Korea, were severe effect on Korean textbooks, scholars and their writings afterward. Takahashi, as a government-patronized scholar of the colonial Japanese government was awarded a medal for studying on Confucianism in Joseon and he advanced a theory of 'Imperial Confucianism(Hwangdo Confuciansm 皇道儒學)'. With this theory that based on the ideology of 'Oneness of Japan and Joseon(日鮮同祖論)', he made Korean people, not only Japanese, 'subjects of the empire'. In the history of Korean philosophy, Yi Hwang(李滉, 1501-1570) and Yi Yi(李珥, 1536-1584) are representative person as scholars of Confucianism in Joseon. They are called as 'the scholars of Neo-Confucianism of Chung-tzu' learning'. Their studies and thoughts about Neo-Confucianism have played important roles in keeping the political system of nationalism recently. Those continued the arbitrary rule that contained the thought of Japanese emperor as an patriarch of Confucianism system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akahashi described the philosophy in Joseon dynasty as Yi Hwang and Yi Yi's Neo-Confucianism like 'Four-Seven debate(四七論辨)'. Korean philosophers and historians like Park Jong-hong and Lee Byeong-do, who followed Takahashi, became his parrots. And then, they compiled textbooks and educated their pupils in accordance with Takahashi's thoughts. Philosophy is 'the essence of the spirit of the times'. So we should criticize the distorted spirit of the times based on roots of distorted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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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계의 가장 고질적인 병폐는 식민성(植民性: colonialness)과 연관된다. 식민성은 비단 일제시기의 학문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식민성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남의 것을 베끼는 데 익숙한 모든 것’을 말한다. 남의 것을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나의 것인 양 생각하는, 가장 몽상적인 학문태도가 바로 식민주의(colonialism)인 것이다. 동양학을 하는 사람은 이런 식민성과 무관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동양학을 하는 사람들은 자칫 ‘우리 것’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실제로는 중국학을 하면서도 동양학이라는 이름 때문에 우리 것을 한다고 오해할 때 그 식민주의의 자기함몰성은 더욱 심각하다. ‘오리엔탈 오리엔탈리즘’ 또는 ‘바나나주의’(bananaism)는 동양의 동양폄하주의를 가리킨다. 일본은 일찍부터 아시아를 떠나 유럽으로 가고자 했다. 이른바 ‘탈아입구’(脫亞入歐)의 주장은 일본근대화의 모토였다. 선진 유럽의 문화와 제도로 동양제국을 지배하여 계도하자. 이러한 일본의 태도는 동양의 동양주의가 서양의 그것보다 좀 더 고질(痼疾)임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식민주의는 아래와 같이 네 가지로 드러난다. 첫째, 미개조선의 폭정과 궁핍으로부터 일본제국에로의 귀화. 둘째, 중국의 후진식민에서 일본의 선진식민으로의 개화. 셋째, 서구의 식민정책에 대항하는 황국신민화. 넷째, 세계제국 속에서 동아시아인으로서의 자격화. 첫째는 무정부 상황에서 인간의 조건-‘인권’이 문제되고, 둘째는 기존질서에서 새로운 질서에로의 변화-‘진보’의 목적이 문제가 되고, 셋째는 최선(最善)을 대신하는 차선(次善)의 악(惡)-‘선한 악’ 또는 ‘필요악’이라는 관념이 문제가 되며, 넷째는 서구화에 대항하는 동아시아 주류의 공동체-‘주체’와 ‘자각’이라는 개념이 문제가 된다. 이 모두 계몽(啓蒙: enlightenment)의 신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등장한 문제들은 오늘도 여전히 철학적 주제로 유효하다. 조선유학연구의 시발은 일본인 학자 타카하시 토오루(高橋亨: 1878-1967)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 역시 여러 종류의 식민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수많은 명분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일본의 조선 지배를 위한 조선유학의 비하를 넘어서지 못했다. 문제는 우리의 초창기 유학연구자들이 모두 그로부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고, 그들로부터 교육받은 사람들이 현재의 한국유학전문가라는 점이다. 생물학적 세대로 말하자면, 타카하시와 그를 논박한 장지연(張志淵: 1864-1921)이 1세대, 그에게 직간접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2세대, 2세대를 스승으로 삼은 사람들이 3세대가 된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타카하시가 제시한 주리(主理)와 주기(主氣)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학문적으로는 모두 제1세대에 속한다. 학문적 2세대의 모색을 위해서 타카하시를 다시 바라보아야 한다. 이글은 타카하시에 대한 여러 의견을 정리하고 비판한 것이다.
韓國學術界的最大毛病連繫於植民主義. 植民主義指的非但是日據時代的學問, 而且是「自己本身不想自己問題」的所有態度. 做東方學的人與植民主義無關嗎? 決不是. 在韓國的東方學實際上大多數是中國學, 而不是「我之學」. 東方的東方主義意味着東方對東方的貶下. 我們可稱之謂香蕉主義, 也就是說, 外表上是黃人而裏面是白人. 日本早起想到「脫亞入歐」, 是一種近代化的口號. 學習先進歐州的文化和制度而後, 支配或啓導東方諸國. 在此可知, 日本的這樣態度比起西方的東方主義更爲痼疾. 日本的植民主義可分爲以下四種: 第一, 從未開朝鮮的暴政和窮乏「歸化」到日本帝國. 第二, 從中國的後進植民「開化」到日本的先進植民. 第三, 對抗歐美植民政策的「皇國臣民化」. 第四, 做爲東亞細亞人的「質量化」於世界諸國中. 朝鮮儒學的硏究起於日本學者高橋亨(1878-1967). 他也不能脫離當時植民主義的惡鬼. 他保持了不少名分和理由, 不過, 他仍然無法超越日本植民主義對於朝鮮的蔑視. 他主張了朝鮮儒學不得不需要外部的傍忙. 不知不覺之間, 早期朝鮮儒學硏究者被他影向到, 並且, 現在朝鮮儒學硏究者是他們的學生. 這便是問題所在. 旣然如此, 高橋亨的「主理」和「主氣」的二分法還在通行. 爲了學問第二世代的成立, 我們必須再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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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타카하시 토오루(高橋亨)의 조선유학사 서술의 문제점을 다룬 것이다. 타카하시 토오루는 일찍이 가학(家學)을 계승하면서 도쿄제국대학에서 신학문(新學問)을 탐구하였다. 졸업 후, 구주일보(九州日報) 주필로 활동하다가 인도 연구에 권위자 영국의 메러디스 타운스윈드(Meredith Townswind)의 아시아 그리고 유럽(Asia and Europe)을 번역하며 제국주주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의도를 갖는다. 1903년 한국으로 건너와 먼저 조선 국어학을 탐구하고 연구의 방향을 조선사상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학문적 전이는 조선인의 풍속습관을 파악하고 그 사상사적 관점에서 조선인의 민족적 특성을 간취하여 조선사회를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타카하시 토오루는 조선 유학을 사적(史的) 맥락에서 대관(大觀)의 형식을 이용하여 기술하는데 진력하였다. 그의 조선유학에 대한 대관적 연구는, 삼국시대와 고려 유학을 간명하게 기술하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조선의 유학자 이언적(李彦迪)․이황(李滉)․기대승(奇大升)․이이(李珥)․성혼(成渾) 등을 리기이원론자(理氣二元論者)로 여기다가, 이황과 이이가 사단칠정론에 대한 논지 전개 용어를 가지고 단순히 ‘주리파(主理派)’와 ‘주기파(主氣派)’로 도식화하고, 조선의 유학은 사상적 특징이 없고 그저 주자학의 시험장이라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유학 즉 성리학은 우주론보다는 심성론을 치밀하게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심화시켰다. 타카하시 토오루는 조선의 심화 전개된 성리학을 간과하고 그 ‘주리파’와 ‘주기파’ 용어를 가지고 당론으로까지 연결시켰다. 그 당론이란 남인(南人)은 이황의 학설을 존숭하고, 노론(老論)은 이이의 학설을 존숭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당론으로 연결시켜 조선의 사상과 종교, 그리고 문화를 강력히 부정하였다. 그 부정이란 변화발전이 없다는 사상의 고착성과 독창적 견해가 없다는 사상의 종속성을 부각시킨 것이다. 그는 이를 적극 이용하여 종국에 일본의 문화와 사상을 주입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연구는 그가 추구한 지식이 식민제국 일본의 욕망과 그 궤를 함께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본 논문은 타카하시 토오루의 조선유학사 연구경향에 대한 문제점을 다루었으나 부족한 점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동안 그의 연구경향을 지식사회학적 측면에서 재검토하는 데 약간의 보탬은 있을 것이다.
This thesis is studing the Pproblems of Takahachi Doloo(1878~1967)’s Depiction on a History of Korean Confucianism. As Takahachi Doloo succeeded to the learning of his family, he did research on the new sciences in University of Tokyo. After university, he was intended to realize Japan’s ideal of imperialism as translating Britain sociologist Meredith Townswind’s Asia and Europe into Japanese during acting by the editor in chief. In 1903, he came to Korea, and first make a Korean linguistics. After he moved a research project direction toward Korean thought. Such change of learning was that he aimed to control Korean society after grasping manners and customs of Korean and selecting Korean characteristic in the viewpoint of thought history. He did his best of using a frame of large view in the historic context on studying Confucianism which many scholars developped in Korea. After he, in particular, syudied New-Confucianism of Lee Hwang(李滉: 1501~1570) and Lee Yi(李珥: 1536~1584) of scholars in the Joseon Dynasty period, he divided into two classes with their viewpoint. It is just of Joolipa(主理派) and Joogipa(主氣派). He involved Joolipa and Joogipa of two classes with political party strife. As attaching them to Korean Confucianism, especially he emphatically denied thought, religion, and culture of Korea. This negative study was of the reason that his pursuit of knowledge was with Japanese imperialistic wants. Finally, this research paper is a lack of study to Takahachi Doloo. But this would benefit in reconsideration on his study inclination during the Japanese work in a sociologic aspect of know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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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형성 박사의 「타카하시 토오루(高橋亨: 1878-1967)의 조선유학사 서술의 문제점」을 읽고 논평과 함께 한국유학연구에서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문제의 내용과 향후 연구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 글에서 일본의 어용학자였던 타카하시 토오루의 조선유학사의 왜곡된 관점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여섯 가지를 제시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present a critical comment on Dr. Lee( Hyung-sung)'s "The Problem of Writing of Dakahashi Toru(高橋亨: 1878-1967)'s The history of Confucianism of Chosun". In this paper, I present necessary six solutions to overcome the distorted view in a government-patronized scholar, Dakahashi Toru's The history of Confucianism of Ch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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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장지연과 타카하시 토오루가 한국유학사를 기술하는 과정에서 제기한 실용의 학 즉 실학담론은 퇴계학의 평가와 연동되면서 그 의미가 부여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들은 조선시대 성리학계의 병폐로 지목되는 당쟁을 비판하며 실용의 학을 제창한다. 그 과정에서 장지연은 퇴계학파와 율곡학파가 분기되는 사단칠정론에 주목한다. 그는 퇴율 당시 이루어진 논쟁을 군자의 논쟁이라고 하며, 후대의 당쟁은 소인의 논쟁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조선성리학을 모두 공리공담으로 치부하는 타카하시의 견해에 반대한다. 따라서 그는 사단칠정론을 군자의 인격을 도야하는 공부론을 중심으로 평가하게 된다. 반면 타카하시는 당쟁을 조선성리학의 학문적 성격인 공리공담에서 야기된 것으로 본다. 그는 실천을 배제한 이론화로 치닫게 된 것을 조선성리학의 특징으로 보고, 이러한 흐름을 형성한 주요인물을 퇴계 이황이라고 한다. 따라서 그는 조선성리학을 연구할 때 이기론을 중심으로 한 형이상학적 이론구명에 치중하며 논리적인 문제점들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 흐름과 대조되는 흐름으로 율곡학을 둠으로써 율곡학을 실학의 범주로 두게 된다. 그러나 국가사상으로 다시 읽힌 유교를 통해 신동아 질서를 구축하여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주의를 포장하고자 했던 열기가 고조되는 1930년대, 타카하시는 자연스럽게 조선 성리학의 태두라 할 수 있는 퇴계 이황을 다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도덕가로 부각시키게 된다. 따라서 1910년대 장지연이 독해한 한국유학사 구분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 유학을 퇴계 이황 전후와 우암 송시열 전후로 나누게 된다. 이처럼 한국의 전통사상을 근대적인 학문체계 하에 재편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장지연과 타카하시의 한국유학사 기술과정은 실학과 퇴계학에 대한 평가를 통해 한국유학사 주제들을 발굴 재편성하여 가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This thesis investigates the discourse on Silhak, the practical learning which Jang Ji Youn and Takahasi Toru posed describing the confucian history in Korea was given its meaning associated with the evaluation of Toegye’ learning. They raised Silhak, criticizing party rivalry which was a problem in the Confucianism in Chosun dynasty. In the process, Jang paid attention to Four-Seven Debate, by which the school of Toegye and that of Yulgok were divided. He called the debate between Toegye and Yulgok as that between the virtuous men, while he defined the rival party after them as the debate among the mean men. He opposed the viewpoint that Takahasi regarded all the confucian arguments in Chosun as empty discourses. Instead he estimated Four-Seven Debate centered upon the learning on moral culture of how the character of a person is cultivated. In contrast, Takahasi argued the party rivalry had been caused by an empty theory, which was a trait of Chosun’s confucianism. Seeing its characteristic was a doctrinairism without any practice, he insisted that it was Toegye that formed such a stream. Therefore, when studying Chosun’s confucianism, he pointed out its problems laying stress on examining metaphysical theories centered on those of Li and Ki. Meanwhile, he saw Yulgok’s learning contrasted with Toegye’s, defining it as the category of Silhak. However, in 1930’s when high spirits were enhanced that tried to wrap the aggressive policy of Japanese imperialism by constructing a new East Asian order through the confucianism newly interpreted as nationalism, now he naturally highlighted Toegye as a moralist equipped with practice as well as theory. Therefore, just as the division in the confucian history in Korea which Jang interpreted in 1910’s, he came to divide it the confucianism around Toegye’ and the later one centered on Song Si Youl’s. This process in which Jang and Takahasi described Korean confucian history, which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middle of reconstructing Korean traditional thought under the modern system of learning, was a step where the subjects lying in the history of Korean confucianism were dug up and reorganized through the evaluation of Silhak and Toegye’s 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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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타카하시 토오루의 조선유학 이해가 가진 특성과 그 내용을 분석 정리함으로써 그 위상이 가진 허와 실을 드러내는 한편, 타카하시가 한국유학사 정립에 미친 영향을 재평가한 것이다. 기존 연구에서는 식민지 지배의 정당화를 위해 다카하시는 조선유학을 부정적으로 기술했다는 비판과 함께 근대적 방식으로 조선유학 이해의 틀을 제공한 최조의 철학자로 평가되고 있다. 타카하시는 분명 한국유학을 근대적 방식으로 정리한 최초의 학자임에 들림없다. 그러나 타카하시는 당시 일본의 한국이해 방식을 조선유학 이해에 적용하였을 뿐, 자신의 철학적 견해는 갖고 있지 않은 일본 제국주의의 관변학자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타카하시가 규정한 조선유학의 특성인 고착성, 종속성, 분열성은 당시 일본의 동양이해의 틀을 그대로 조선에 적용한 것이며, 그의 조선유학의 기술 내용 역시 그가 새롭게 제시해 주었다기 보다는 퇴계학파가 퇴계의 주리 주기의 구분을 원용하여 율곡학파를 비판한 퇴계학파의 조선유학 이해를 정리하고 있을 뿐 그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타카하시가 제시한 주리파와 주기파의 대립이라는 이해 방식은 퇴계학파의 입장을 차용한 것이며, 그것을 서술한 대립과 발전이라는 형식적 체계 역시 당시 일본 학자들이 일본과 동아시아 이해에 사용한 구도로, 독일 헤겔이후 신칸트주의의 변증법에서 유래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는 퇴계학파의 이해를 빌어 퇴계학의 옹호와 율곡학의 비판이라는 도식으로 조선유학사를 근대적 방식으로 정리해 준 것이다. 그리고 주리와 주기의 대립 뒤에 덧붙인 절충파의 제시 역시 변증법적 발전의 형태만을 갖추고 있지, 그 내용은 율곡학파가 주자학적 정통성을 갖지 못하였고, 율곡학파 내부에서도 율곡을 비판했으며, 결국 율곡학파의 발전 과정에서 그 견해가 퇴계학적으로 수렴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퇴계학파 중심의 견해가 일방적으로 제시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타카하시에 대한 기존의 평가는 과평가 되어 있으며, 오히려 그럴듯한 제목과 형식에 전통유학의 체계적 이해가 가려지게 된 것이었다. 본 연구를 통해서 타카하시의 허명에 가려진 전통 조선유학의 계보학적 이해와 기존 한국철학사 류의 저술들이 재평가되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해 질 것이다.
This Thesis reveals the truth and falisty in Takahashi Toru's understanding of Chosun Confucianism and re-evaluates his influence over Korean Confucianism through analyzing characteristics of Takahashi Toru's understanding of Chosun Confucianism. In former studies, Takahashi Toru is appraised for providing outline for understanding Chosun Confucianism with modern method. And at the same time, he is criticized for negatively describing Chosun Confucianism to justify colonial rules. Even though it is true that Takahashi was the first scholar to organize Chosun Confucianism with modern method, being a Japanese-patronized scholar, he only applied 'Japanese way of understanding Chosun' in understanding of Chosun Confucianism without his own philosophical opinion. Characteristics of Chosun Confucianism defined by Takahashi are fixation, subordination and disassociation. However, these characteristics are based on Japanese way of understanding of Chosun. Also, his description of Chosun Confucianism is rather from ChuLi-ChuKi seperation of Toegye school, which criticized Yulgok school, meaning that it is not his own understanding. Takahashi's described Chosun Confucianism as development in school of ChuLi(主理zhuli, principle(li) as the predominant factor) and school of ChuKi(主氣zhuqi, materail force(ki) as the predominant factor). However, this type of understanding is dialectic method of neo-Kantianism, which was widely used by Japanese scholars in understanding Japan and East-Asia. Through this modern method, Takahashi criticized Yulgok school and supported Toegye school. Suggestion of eclectic school only had dialectic development. The idea was that Yulgok school was criticized within itself, and it was inevitable for Yulgok school but to be absorbed by Toegye school. Conclusionally, former evaluation of Takahashi is overrated and systematic understanding of traditional Confucianism is shaded by his elaborate title and form. Therefore, it is obvious that writings of genealogy of traditional Chosun Confucianism and History of Korean Philosophy, which was covered by false name of Takahashi, should be re-evalu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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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하시는 일제 강점기 식민관료였을 뿐만 아니라 학자였다. 그의 주리주기론은 여전히 한국철학사 연구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그는 주리주기론을 통해 한국의 당파성을 설명하려 하였고, 그것이 한국이 멸망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주리주기론은 이론적으로 모순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논의 자체가 쓸모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것을 무시하고 주리주기론을 무비판적으로 쓰고 있다. 배종호는 주리주기의 문제점을 알고 있고, 그것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이를 주기적 기발일도설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여전히 타카하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리주기란 개념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Takahashi is a occupation of the colonial bureaucracy as well as the scholars. His theory is Juri-Jugi. his research is still an important concept in a history of korea confucian philosophy. His theory trying to account for party affiliation, it has led to the fall of Korea is to prove that. Juri-Jugi theory has a theoretical contradiction, because the discussion itself, it will be useless. Studying confucian philosophy in Korea ignors this and write a rest period theory is uncritical. Bae Jong Ho knows the problems of that, and it has been criticized. However, he set Yi yi as gi bal il do seol in Ju gi meaning. He still has not departing from Takaha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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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타카하시 토오루의 주리·주기라는 개념틀이 하나의 고약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사소한 철학적 은유라고 주장하려고 한다. 일차적인 의미에서 타카하시의 개념틀은 발선(發善)·교악(矯惡)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수양론의 양대 유형을 본체론적 차원의 진술로 대체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은유적 표현이다. 이 은유는 정확한 의미에서 성리학의 본체론과 수양론이 갖는다고 가정된 이론적 인과성을 바탕으로 한다. 즉 수양론은 심성론에 좌우되고, 심성론은 본체론에 좌우된다는 이론적 관계를 가정하고, 이 가정 속에 포함된 인과성을 연결 고리로 해서 수양론에 해당하는 진술을 본체론에 해당하는 진술들로 표현한 것이다. 이차적인 의미에서 타카하시의 개념틀은 유가 도덕성 이론의 ‘범주소(範疇素)’라고 할 수 있는 규범성의 원천에 대한 논의를 포괄하지 못한다. 유가 사상의 근원적인 논점은 송명 모든 유가 사상가들을 동일한 사유의 궤적으로 이끄는 규범성의 원천이라는 철학소 자체이다. 그리고 성리학에서 규범성의 원천에 대한 탐구는 초월-선험 논변의 착종이다. 이러한 논변의 타당성과 한계를 검토하고 비판적으로 유가사상을 재구성하려는 우리의 당면한 철학적 목표와 작업에 비춰볼 때, 타카하시의 개념틀은 거의 언급의 여지가 없는 낡은 철학적 은유라는 점이 밝혀진다.
這一篇論文的主要探討問題是關於高橋亨的主理․主氣這兩個槪念範疇, 認爲這兩個槪念範疇是怪異的, 也是幷不重要的哲學之隱喩. 首先, 高橋亨的這些槪念範疇可以稱爲‘發善’․‘矯惡’的修養論之兩大類型, 也代替了本體論的層次, 因此這些槪念範疇是一種隱喩的表現. 這一隱喩的正確的內含就是基于以性理學的本體論與修養論爲理論的因果. 換言之, 筆者認爲, 這一類隱喩基于: 修養論本于心性論, 心性論本于本體論, 這樣的理論的假定, 而且在這類假定里, 已包含了以因果爲連環, 不僅如此, 以修養論的理論代替了本體論的理論. 其次, 高橋亨的槪念範疇不能包含儒家道德理論的所謂‘哲學素’, 則規範的根源. 儒家哲學之核心的觀點, 就是‘哲學素’自身, 它是規範之源泉, 使儒家思想家走同一的思想軌道. 在性理學當中, 對規範的根源探究, 是超越-先驗的論辯之錯綜. 筆者認爲當前我們的哲學之目標是對儒家思想的轉化. 因此, 我們對于這類論辯的探究和批評時, 認爲高橋亨的槪念範疇已經是落後的隱喩.
주리(主理)·주기(主氣)의 함의 고찰 ― ‘타카하시 토오루의 주리·주기’에 관한 비판과 대안의 검토: 이향준 교수의 「타카하시의 고약한 은유」에 대한 논평을 겸함
대동철학회 대동철학 제55집 2011.06 pp.153-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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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유학사에 대한 주리·주기의 분류는 과연 타당한가? 이 문제는 주리·주기의 분류가 식민사관의 창시자 타카하시 토오루에 의해 학문적으로 확립되었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비판적으로 논의되어 왔으며, 결론은 한결같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왜 타당하지 않은지를 정확히 밝히려면, 타카하시가 주리·주기로 분류할 때의 분류기준을 찾아내어 그 기준이 왜 적절하지 않은지를 밝혀야 하는데, 그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본고에서는 타카하시가 따른 분류의 기준은 혹자가 논하듯 규범성의 원천도 아니고 또 혹자가 논하듯 리의 실재성도 아니며, 바로 리의 활동성이라는 것을 논하였다. 리의 활동성은 곧 리의 주재성이고 자각성이며, 우주창발의 근원성이고 우리 마음의 영성이다. 이러한 리의 활동성을 인정하는가(주리) 아닌가(주기)의 차이는 퇴계가 고봉을 보고 느꼈던 차이이고, 퇴계학파가 율곡학파를 보고 알아낸 차이이다. 따라서 주리와 주기의 분류는 조선유학자들 자신이 만든 분류이지 타카하시 토오루가 비로소 생각해낸 분류가 아니며, 리의 활동성을 인정하는 퇴계적 관점에서 보면 언제까지나 타당한 분류이다. 오늘날 우리가 주리·주기의 분류를 부당한 분류라고 여기는 것은 우리 자신이 이미 리의 활동성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 주기론자(유물론자)의 관점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언급하였다.
就朝鮮儒學史區分主理·主氣的觀點確實妥當嗎? 這個問題以主理·主氣的分類由植民史觀的創始人高橋徹所建立的認識爲前提之下, 歷來紛紛被批判討論過; 其結論一向是‘不妥當’. 可是如果要究明那個問題爲什麽不妥當, 應該首先找到高橋徹區分主理主氣時候的分類依據, 而證明其依據有什麽不妥的地方; 可惜不容易看到對其問題的正確說明. 本論文討論的是高橋徹所從的分類依據旣不是有人所論的規範性的來源, 又不是理的實在性; 就是理的活動性. 理的活動性就是理的主宰性, 也是理的自覺性. 他又是宇宙創發的根源性, 而且是我們心裏的靈性. 是否肯定理的這樣活動性的兩種不同觀點, 就等於是退溪和高峰之間的差別, 也就是退溪學派從栗谷學派那裏看出來的與他們不同之處. 因而可以說主理·主氣的區分是朝鮮儒學者們自己所做出來的, 而不是高橋徹才想出來的區分. 從肯定理的活動性的退溪的觀點來看, 那一向是妥當不過的區分. 筆者在這篇論文中特別說到現在的我們以主理·主氣的區分爲不妥當, 其原因就在我們站在已經失去對理的活動性的感覺的主氣論者(唯物論者)的觀點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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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주희를 비롯한 송대 성리학자들이 상정한 리 개념인 무정의(無情意), 무조작(無造作), 무계탁(無計度)등의 일반적인 규정을 넘어서 이황 철학의 독특성으로 평가받고 있는 ‘리동설(理動說)’, ‘리발설(理發說)’에 따른 리의 능동적인 자발성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전개하였다. 이황은 리의 능동성과 작용성을 강조하여 리에 대해 직접 작위‧ 운동성까지 인정하였고, 리의 작용인 리발(理發)과 리자도(理自到)가 가능하다고 하여 ‘리기호발’을 강조한다. 그 결과 주리와 주기를 통한 리발‧ 기발의 관점에 기초하여, 사단과 칠정, 본연성과 기질성, 인심과 도심을 구분하여 설명한다. 이러한 이황의 사상은 심성론으로는 ‘리존기천(理尊氣賤)’의 사상으로 표출되고 있으며, 리존의 가치적 입장에 따라 ‘절대선(絶對善)’을 지향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존재론에서는 주리를 주장하는 리기론으로, 가치론에서는 가치지향성을 강하게 나타내는 수양론으로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이황의 리기호발에 근거한 주리적 가치관은 도덕주체로서 인간 심성의 ‘순선(純善)’함을 강조함으로써 ‘거경궁리(居敬窮理)’를 바탕으로 한 수양, 즉 실천과 표리관계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This article is undertaken with the focus on uniqueness of Yi-hwang philosopy, such as, the active volunary intent of principle following the principle force theory and, 'material force theory' beyond the general provisions of no-sentiment, no-manipulation and no understanding in principle concept by the Confucius scholars in the Song Dynasty including Joo-hee. Yi-hwang emphasized the activeness and reaction of principle to recognize the direct action and mobility on principle as presented to have no-shape and no equivalence in general under the Confucianism, and it also emphasizes the Theory of the mutual stimulation of principle and material force as it is possible for reaction of principle in principle and material force and lijado. As a result, under the point of view of principle and material force through the periodic principle and time are classified as clue and emotion, intrinsic nature and temperament, human nature and right way of nature. This ideology of Yi-hwang is expressed in mentality as the ideal of 'rizongicheon' and as a way of striving for 'absolute line' in accordance with the value position of principle, it displays the reasoning theory in asserting the principle under the existence theory and cultivation theory that strongly presents the value striving nature under the value theory. Therefore, his principle value point based on Yi-hwang's mutual stimulation of principle and material force emphasizes the 'sunseon' of human nature as the main body of ethics to have the learning on the basis of 'Goegyeonggungri' to form the relationship of practice and duplicity. Lee Hwang's sense of values that Looking at the point of view of RIB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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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중국 화론에서 가장 중요한 이론인 전신론과 기운생동론의 발전과정을 살펴보고,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동양미학사상의 특징을 밝히려 하였다. 이 글에서는 전신과 기운생동론의 계승·발전의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그 과정을 관통하는 몇 가지 공통된 관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서 이 글에서는 전신론과 기운생동론이 함축하고 있는 동양회화미학의 특징을 서양회화미학과 대비시키면서 개괄하였다. 전신론과 기운생동론은 주객동일성이라는 관점에서 예술의 근본적인 역할과 임무는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표현하고 도모하는 일이라고 보면서 전신과 기운생동을 통해 그것을 달성하려고 하며, 그것을 미적인 가치판단의 기준이자 예술작품의 수준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는다. 이것은 좁은 의미에서의 ‘미’를 넘어서는 ‘미와 추를 초월한 천연의 미’를 추구하는 것으로서, 회화의 목적을 대상 속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비례관계와 같은 미를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라 보는 서양회화에서 오랫동안 지배적이었던 입장과 대조를 이룬다. 다음으로 이처럼 주객이 교융하며 자연의 기운을 관조해서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 동양회화에서는 한 시점에서 자연의 외형만을 보이는 대로 그리는 서양의 초점투시법과는 다른 유동적인 투시법을 중시하였다. 또한 동양화에서는 정교한 사실적 표현보다는 주관적인 정서와 사상을 표현하는 동시에 불필요한 형은 생략하면서도 사물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는 神似에 치중하면서 사물의 모습과 완전히 같지도 완전히 다르지도 않은 ‘不卽不離’, ‘닮지 않음의 닮음(不似之似)’을 지향하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또 전신과 기운생동을 위주로 하는 전통적인 동양화에서는 극히 개인적인 감정의 격렬한 표현은 지향하지 않았으며, 이는 근대 이후 서양에서 유행하게 된 하나의 경향, 즉 회화의 목적을 개인의 주관적 감정의 표현에 두는 경향과 대조를 이루는 것이었다.
本文的目的在于闡明傳神論和氣韻生動論的發展過程,进而闡明它所包含的東方美學思想的特點. 本文通過傳神論和氣韻生動論的繼承發展過程的分析, 探明了那個過程之中的幾個共同的觀點. 然后本文通過東方繪畵美學和西方繪畵美學之比較分析, 闡明了傳神論和氣韻生動論所包含的東方繪畵美學的特點. 傳神論和氣韻生動論用主客同一性觀點來把藝術之根本任務看做表現自然和人之間的合而成一, 把傳神和氣韻生動視爲判斷美之價値和藝術水平的標準. 这是超過狭义的美和追求超過美醜的天然之美的. 这是對把表現客觀存在的比例之美看做繪畵之目標的西方繪畵之觀點形成明显的对比. 東方繪畵爲了主客交融和觀照和表現自然之氣韻重視流動的透視法. 这是跟描寫事物之外面形態的西方透視法不同的. 東方繪畵的特點是重視表現主體情緖和思想比表現詳細的事實的. 这是略去不必要的形象和重視神似的. 这就是向往‘不卽不離’或者‘不似之似’的特點. 以傳神和氣韻生動爲主的傳統東方繪畵不向往表現個人的激烈感情. 这是對把表現個人的感情看做繪畵之目標的近代之後的西方繪畵之傾向形成明显的对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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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철학자들이 정의를 정치학이나 윤리학의 중심문제로 다루었다. 현재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자유주의 이론 역시 정의의 문제를 논의의 중심으로 삼았다. 개인주의를 그 본질적 특징으로 하는 자유주의 이론에서 정의가 논의되는 지평은 주로 ‘계약의 공정성’, 특히 ‘재화의 분배’에 집중되어 있다. 레비나스 역시 정의를 철학의 중심 문제로 삼았다. 레비나스는 정의 물음의 원천을 ‘나의 존재 권리’를 문제 삼는 데서, 다시 말해 타자에 대한 나의 책임 속에서 발견한다. 그에 따르면 “내가 존재할 권리가 있는가?”에 대한 물음, 즉 “태양 아래의 나의 자리”에 대한 물음이야말로 정의가 논의되는 근원적인 지평이다. 이렇듯 레비나스의 정의론에는 ‘나의 존재 유지 경향conauts essendi이 가지는 현실적인 (혹은 잠재적인) 폭력성에 대한 반성’이 자리 잡고 있다. 그의 정의론은 그의 타자론에 기초해 있다. 레비나스의 정의론은 ‘책임으로서의 정의’이다. 하지만 삼자의 등장 이후 레비나스의 정의론은 ‘공평으로서의 정의’로 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삼자의 등장이 동등성과 상호성의 관계, 정치적 합리성의 관계의 수립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삼자가 레비나스의 작업 속에 공평과 평등에 대한 요구를 도입한다고 해서 ‘타자에 대한 나의 책임’이라는 종래의 발상이 포기되는 것은 아니다. 삼자는 책임의 무한성, 다시 말해 ‘정의의 아포리’를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레비나스의 정의는 ‘타인의 선’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발상은 우리에게 새로운 공동체를 위한 조건들을 제공한다. 독특성과 차이에 대한 인정 그리고 코나투스를 거스르는 책임이 바로 그것이다.
Many philosophers have considered justice as the main theme of ethics and politics. Liberalism that recently dominates our society has focused on the 'fairness of contract' and the 'distribution of wealth' when it describes the concept of justice. On the contrary, while regarding justice as a core issue in his philosophy as well, Levinas turns its proposition inside out. In his philosophy, the source of justice is to call 'my right to be' into question, that is to say, my responsibility for the other. According to him, the question of 'Have I the right to be?' and 'my place in the sun' is an original horizon in which justice is discussed. In Levinasian theory of justice, therefore, there is a reflection of real (or potential) violence that is my 'conatus essendi'. His theory of justice is based on his theory of the Other. It is 'justice as responsibility' as well. After the entry of a third party, however, 'justice as equity' is introduced, because the entry of a third party requires a parity, reciprocity and political rationality. Although the third party introduces a demand for impartiality and equality in Levinas' work, 'the responsibility of the Other' that his philosophy seeks to maintain is not given up. The third party plays an important role in emphasizing the infinity of responsibility, which is 'aporia of justice'. His justice is interpreted as 'the Other's goodness'. His opinion gives us the condition for a new community. That is just the recognition of singularity and difference, the responsibility countercurrent a cona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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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광고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윤리적 문제 탐구에 주력하고 있다. 첫째, 광고의 역할에 대한 문제로서 광고가 현대 자유 시장경제 체제 속에서 긍정적 역할을 하는 것인지 그렇지 못한 것인지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이 논문은 이를 통해 자유 시장 속에서의 광고는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소비자의 불합리한 소비 활동을 촉진시켜 결국 자유 시장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둘째, 표현 자유와 관련된 광고의 도덕적 지위에 대한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이 논문은 광고가 표현 자유라는 도덕적 지위를 남용하여 소비자의 가치관과 행동 양식에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셋째, 광고의 설득에 대한 문제로서 광고의 설득적 기법 가운데 어떤 것들이 도덕적으로 문제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 논문은 광고가 제품에 대한 사실 은폐나 사실 조작 등을 통해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직접 기만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넷째, 광고의 설득적 본성 자체와 관련된 문제로서 설득의 목표에 치중한 광고가 도덕적으로 어떤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지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이 논문은 설득의 목표에 치중한 광고는 인간의 행위를 직접 통제하여 자율성을 파괴하거나 합리적 선택 능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모든 논의를 통해 이 논문은 광고와 관련된 윤리적 문제 모두 광고가 소비자에 대한 올바른 정보 전달을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경우에 발생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하였다. 다시 말해, 제품 판매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 창출과 관련하여 광고의 정보 제공 기능이 그 직접적 의의를 상실하는 순간 발생될 수 있는 문제점들을 명백히 드러내고자 하였다. 따라서 이 논문은 결론적으로, 광고가 인간의 자율성을 침해하거나 불합리한 욕구를 조장해서는 안 되며, 소비자를 설득한다고 해도 그 방식이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합리적 설득이란 정확한 정보 전달을 통해 소비자에게 올바른 선택의 길을 열어두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자 하였다.
This paper is to focus that there are the four ethical issues which emerges between the critics and defenders of advertising. First, defenders of advertising may claim that advertising is necessary for economic growth which, in turn, benefits us all. However the truth of this is open to ethical debate. The critics charge that there is no reason to think that advertising even tends to maximize the well-being of consumers. Second, defenders of advertising claim that advertising is legal right to free speech, and that the legal right is morally justifiable. However critics of advertising claim that if advertisements were shown to have undesirable social consequences, or if certain sorts of ads relied on objectionable or nonrational persuasive techniques, then there would be a strong moral argument against such advertisements regardless of their legal status. Third, advertisements almost always conceal relevant negative facts about their products, and they base themselves more and more frequently on subtle appeals to psychological needs, which the products they peddle are unlikely to satisfy. This is the basis for some critic's wholesale repudiation of advertising on moral ground. Fourth, according to critics of advertising, advertising's statement holds ultimately for controlling consumer's behavior. In critic's opinion the desires to which business is supposed to respond, far from being original to the consumer, are often themselves created by business. Therefore, accordingly this opinion, the consumer's wants are a function of advertising and not necessarily representative of his real or true w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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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은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사적 언어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사적 언어의 불가능성은 고립된 언어의 불가능성을 함축하는가? 사적 언어가 불가능한 이유를 그것이 사적 감각을 지시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들에 의하면 사적 언어가 불가능하다고 해서 고립된 언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사적 언어가 불가능한 이유는 낱말의 적용의 올바름을 검사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낱말의 의미인 어떤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감각 낱말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낱말들에, 따라서 고립된 언어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어떤 대상을 명명하기 위해서는 동일성의 인식이 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다시 잘못의 가능성을 요구한다. 사적 언어와 마찬가지로 고립된 언어의 경우에도 이러한 잘못의 가능성이 생각될 수 없다면, 비트겐슈타인이 고립된 언어가 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Wittgenstein insists that private language which other people can not understand is not possible. Does the impossibility of private language imply the impossibility of a solitary language? According to the people who find the reason its impossibility in its denoting private sensation, the impossibility of private language does not mean the impossibility of a solitary language. However according to Wittgenstein, the reason why private language is not possible is we can not examine the correctness of application of language, but there is nothing like meaning of words. This is applied to not only sensation-words but also to all sorts of words including the case of a solitary language. When an object is named, cognition of identity has to be possible in advance. And this requires possibility of error. As in private language, if this kind of possibility of error is not considered in a solitary language, it is difficult for us to understand that Wittgenstein insists a solitary language is poss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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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와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 이후, 미디어에 관한 논의는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새로운 미디어가 우리의 삶을 급격하게 그리고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같은 디지털 전자미디어는 네트워크사회로의 이행을 가져왔으며, 텔레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는 우리의 지식획득 방식이나 노동방식, 심지어는 여가를 보내는 방식에도 큰 변화를 일으켰다. 오늘날 철학은 우리의 문화와 생활세계에서 강력한 규정적 힘을 발휘하고 있는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성찰을 피할 수 없다. 우리의 지각, 사유, 행위가 미디어에 의존적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철학은 이러한 미디어성(Medialität)을 삶의 근본 조건으로 받아들여 인간의 미디어적 실존을 사유하도록, 미디어기술에 의해 생산된 새로운 현실을 심층적으로 파악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미디어철학 담론은 지난 세기 말부터 형성되고 있다. 미디어철학 담론은 아주 최근에 탄생된 최신의 것이다. 따라서 미디어철학 담론은 아직 종결되지 않은 발전의 과정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이러한 상황을 전제로 하면서 독일에서 미디어철학 개념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논쟁들을 서술함으로써 미디어철학 개념의 윤곽을 그려내고자 한다. 본 논문은 미디어철학의 정체성과 정당성을 논의하고 있는 여섯 개의 미디어철학에 대해 서술할 것이고 각각의 유형들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미디어철학의 다른 입장들을 수용하여 가장 포괄적인 차원에서 자신의 미디어철학을 구상하고 있는 하르트만의 미디어철학 개념을 좀 더 집중적으로 다루게 될 것이다.
After the advent of new media such as computer and internet, an lively discussion of new media is in progress. The reason is that new media rapidly and radically transform our lives. For example, digital electronic media resulted in the shift of our society into the network-society, and telecommunication network brought about the enormous changes of the way that we acquire our knowledge, pursue our own career and further spend our leisure time. It is inevitable for the contemporary philosophy to think about the new media that has exercised great regulative influence over our culture and everyday life. It goes without saying that our perception, thought, and action are heavily reliant on the media. So, philosophy is asked to accept such Medialität as the basic condition of human life and consider the media existence of human beings and grasp the new reality profoundly which is produced by the media technology. Against these backgrounds, the discourse of media philosophy has been constructed since the last century. This discourse is the latest thing created in recent years. Therefore, it is at a developmental process when it isn't done yet.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give an outline the concept of media philosophy by describing the debates about the concept in Germany. In addition, this paper is to give full details of six media theories which discuss the identity and justification of the media philosophy and to examine carefully the characteristic of those theories. Especially, it is to deal with the conception of Hartmann's media philosophy that plans to accommodate the other conceptions in order to construct its own philosophy at the most comprehensive le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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