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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대동철학회 [The Daedong Philosophical Association]
  • pISSN
    1229-0750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1998 ~ 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철학
  • 십진분류
    KDC 105 DDC 105
제17집 (5건)
No
1

J.S. Mill과 근대중국

양일모

대동철학회 대동철학 제17집 2002.06 p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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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0원

1903년 중국에서는 J. S. Mill의 On Liberty(1859)에 대한 두권의 중국어 번역본이 간행되었다. 한권은 근대 중국에서 서양 사상 번역의 제일인자로 알려진 복(􈛤􈎨)이 번역한 『군기권계론』(群􇼶權界􈅖)이며, 또 한권은 무명의 혁명가인 군무(􈇖君􈉶)가 번역한 『자유원리』(􈦞􈣍􈡴􈆱)이다. 이 글은 밀의 『자유론』에 대한 중국어 번역을 중심으로, 20세기 초 중국인들이 밀의 『자유론』에 대한 번역 작업을 통해 서양 사상을 사색하고 탐구하는 과정을 더듬어보고자 한다. 당시는 중국의 전통사상과 서양 사상이 새롭게 만나기 작하는 단계였다. 초기의 번역 작업은 서양의 언어 체계를 중국어 언어 체계로 치환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초기의 번역 작업을 분석하기 위해서, 이 글은 초기의 중국어 번역 서적이 서양의 사상을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했는가 하는 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영국의 사상가 밀과는 시대와 문화를 달리하는 중국인 지식인들이 밀의 『자유론』을 어떻게 이해하면서 중국의 독자들에게 무엇을 전해주고자 하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자유론』에 대한 두권의 중국어 번역이 간행되기 이전부터 밀의 사상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양계초이었으며, 그는 『자유론』에서 정치적 자유와 종교적 자유의 중요성을 읽어냈다. 이에 반해, 마군무는 밀이 제시한 사회적 자유를 공중(公􈭆)의 자유로 번역하였으며, 엄복은 군리자유(群􈆱􈦞􈣍)로 번역하였다. 이들은 각각 서로 다른 용어를 통해 밀의 저작을 이해하였지만, 이러한 문제는 단지 번역 기술 상의 차이로 단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들의 번역은 중국어 체계를 통해 개인과 사회, 국가, 여론, 그리고 이들 각 항목들 사이의 관련성에 대해 새로운 이해 체계를 정립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In 1903, two Chinese versions of J. S. Mill`s On Liberty(1859) were published. One is Qun Ji Quan JieLun(群􇼶權界􈅖) translated by famous translator Yan Fu, the other is Zi You Yuan Li(􈦞􈣍􈡴􈆱) by young revolutionist Ma Junwu. This paper is focused on these translations of the western philosophical works, accomplished by Chinese intellectuals at a turning point of the twentieth century. It can be said, these primitive translations of the western thought into Chinese were not merely a introduction, but a process of transformation from western language into Chinese language system. Therefore, my research on the translated works starts from the following questions; not how exactly the western works were translated into Chinese, but what Chinese intellectuals faced with a different cultural and historical background from Mill, tried to grasp and to convey to Chinese people in translating On Liberty. Before the publishment of two versions of translation on Mill's work, a famous journalist Liang Qichao had read it in Japanese version, thought Mill proposed the problem of political and religious liberty. Mill obviously asserted in his work, the subject of this essay is a Civil, or Social Liberty. Ma Junwu translated it gongzhong ziyou(公􈭆􈦞􈣍, popular freedom), influenced by Rousseau`s concept of sovereignty . As contrasted, Yan Fu translated it qunli ziyou(群􈆱􈦞􈣍), rejecting a tendency of understanding Mill in relations to Rousseauism, prevailed in Chinese political atmosphere at that time. I think, a difference of terminology between Ma Junwu and Yan Fu is not a technical and accidental problem, but a difference in the premise about the following concept; individual, society, state, public opinion. I would like to assert that these primitive Chinese translations played an important role in building Chinese modern languages and thoughts.

2

동아시아적 사유구조

吳二煥

대동철학회 대동철학 제17집 2002.06 pp.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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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0원

오늘날 동아시아로 일컬어지는 지역은 역사적으로 중국 문명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점에 그 공통점이 있다. 로마에 의해 종합된 유럽적 보편문화에 해당하는 것이 동아시아에서는 중국문화의 보편성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유럽의 라틴어에 해당하는 것이 한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유럽을 라틴어문화권이라고 한다면 동아시아는 한자문화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의 지리적 조건을 보면,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에 치우쳐 있으면서도 그 이외의 지역과는 거의 거대한 산맥과 사막에 의해 격리되어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중국인이 스스로를 가리켜 중화라 이르고 있는 것은 민족적 개념이라기보다는 문화적 개념에 더 가까운 것인데, 중국인의 이러한 자존 의식은 동아시아 지역의 지형적 고립성과 그로 말미암아 다른 문명권과 본격적 접촉의 기회가 적었던 사실에 관계되어 있다. 중국적 학문은 인문학적 전통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원래 철학􍿞사학􍿞문학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므로, 그 중에서 철학이라고 하는 것을 엄격히 분리해 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실에 있어서는 동아시아에 철학이라고 하는 학문 자체가 존재한 적이 없었다. 동아시아에 있어서는 서양 학문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까지 전통적 학문에 뚜렷한 분화는 없었던 것이다. 중국에서는 한의무제 이후로 유학이 국가가 인정하는 공식적 학문, 즉 관학의 지위를 차지하였기 때문에 이후의 학술은 유학이 중심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유학, 즉 경학이란 어디까지나 고전 연구인 것이지 서양식 철학의 범주에 포함되기는 어렵다. 동아시아에서는 진리를 도라고 부른다. 그것은 유􍿞불􍿞도가 다 마찬가지로서, 도의 본래 뜻은 길이다. 그러므로 도란 인간이 마땅히 밟고 나아가야 할 지침, 즉 규범의 뜻을 내포하고 있으며, 동양철학에서 진리란 이론 자체를 위한 이론이 아니라 언제나 길을 찾는 작업, 즉 구도의 행위와 관련되어 있었다. 동아시아적 사유에 있어서 철학적 관심은 처음부터 인간의 실천을 전제로 하고 또 그것을 인도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3

시스템과 인간

서도식

대동철학회 대동철학 제17집 2002.06 pp.4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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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0원

이 논문은 루만의 사회 시스템 이론에 대한 하나의 사회철학적 평가를 시도한 글이다. 필자가 다룬 핵심적인 논점은 시스템 내에서의 인간의 지위에 관한 문제이다. 루만의 이론에서 사회 시스템은 의사소통의 자기재생산 시스템, 곧 의사소통을 오로지 의사소통으로부터만 산출하는 폐쇄적인 자동제작적 시스템이다. 이러한 시스템 내부에서 인식과 행위의 주체인 인간은 더 이상 실체의 지위를 갖지 않는다. 여기서 인간은 시스템의 구성 요소가 아니라 그것의 환경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점은 루만의 시스템 이론이 인간의 사회적 삶의 관계를 인간으로부터 도려내어진 의사소통 시스템으로써 대체하고 이 시스템만을 유일하게 실재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데에서 비롯한다. 물론 사회 체계 이론은 기능적으로 분화된, 과잉복잡성의 근대 사회를 관찰자의 관점에서 살펴보는데 유리한 면이 있다. 그러나 체계가 아니라 생활세계 참여자의 관점에서 보면 체계로서의 사회는 총체적으로 사물화된 세계로 간주된다. 기존의 사회 관계 일체가 인간의 가치 지향적 행위의 산물이 아니라 자기 생존 명령을 이행하는 시스템의 작동의 산물이라는 주장은 사회 질서를 규범적으로 비판하거나 바람직한 방향으로 인도하려는 그 어떤 인간적인 노력도 이론적인 사안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In dieser Arbeit versuche Ich eine sozialphilosophische Kritik der Luhmanns Theorie der sozialen Systeme. Mein Hauptthema hier ist die Stelle des Menschen in sozialen Systeme. Die sozialen Systeme in Luhmanns Theorie sind sich selbst reproduzierende Kommunikationssysteme, nämlich die autopoietisch geschlossenen Systeme, die Kommunikation aus Kommunikation allein erzeugen. Innerhalb der Systeme hat der Mensch, das Erkenntnis- und Handlungssubjekt nicht mehr die Stelle als Substanz. Hier ist er nicht ein Element, sondern nur eine Umwelt des Systems. Dies ergibt sich daraus, dass in Luhmanns Systemtheorie menschliche gesellschaftliche Lebensverhältnisse durch das Kommunikationssystem, das den Menschen durchschnitt, ersetzt werden, und dass dieses System allein als das Reale betrachtet wird. Die Theorie der sozialen Systeme hat zwar den Vorteil, funktional ausdifferenzierte, überkomplexe, moderne Gesellschaften aus den Perspektiven des Beobachters zu beobachten. Aber aus den Perspektiven des lebensweltlichen Beteiligten werden solche Gesellschaften als die total verdinglichten Welten betrachtet. In der Behauptung, dass die totalen bestehenden Gesellschaftsordnungen nicht die Produkten der menschlichen wertorientierten Handlungen, sondern die der die Selbsterhaltungsimperative erfüllenden Systemoperationen seien, kann man keine theoretische Anstregung, die gesellschaftlichen Ordnungen normativ zu kritisieren und sie auf den erwünschten Weg zu bringen, sehen.

4

‘이성의 간지’ 개념에 대한 현대적 재조명

서유석

대동철학회 대동철학 제17집 2002.06 pp.6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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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0원

본 논문은 근대의 사회􍿞역사 철학에 독특한 개념인 ‘이성의 간지’에 대한 현대적 고찰이다. 근대 시민사회의 등장은 개개인의 목적활동으로부터 일정하게 독립된 사회적 실재와 그 운동에 대한 철학적 반성, 그리고 이를 적절히 담아낼 새로운 사회과학적 탐구 전략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헤겔의 ‘이성의 간지’ 개념을 전후하여 라이프니츠의 ‘예정 조화’, 칸트의 ‘자연의 의도’,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퍼거슨의 ‘행위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 마르크스의 ‘소외’, ‘등뒤에서 작동하는 자본의 논리’ 등의 개념은 바로 이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유사 개념이었다. 이 개념들은 각 철학자의 사상 속에 구체화될 때 서로간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분명한 공통의 문제의식을 담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행위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unintended consequences of human actions)를 사회과학과 철학의 주요 탐구대상으로 설정하고 이를 해명하고자 한 문제의식이다. 본고의 기본 의도는 비록 근대의 사회􍿞역사 철학이 많은 부분에 있어 이론적, 현실적 적합성을 상실하였다 할 지라도 바로 이 문제의식만큼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데 있다. 아울러 이 개념에 함축된 ‘도덕적 정열’(moral passion) 또한 현대적 유의미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This paper investigates a conception of ‘Cunning of the Reason’ from today's point of view. In modern social philosophies, there were a number of similar conceptions ; ‘invisible hand’(A. Smith), ‘Absicht der Natur’(I. Kant), ‘List der Vernunft’(G. W. F. Hegel), ‘Entfremdung’(Marx) and so on. These concepts were meaningful frameworks to theorize the new characteristics of social life in modern bourgeois society. These concepts are closely connected to the today's conception in social sciences, ‘the unintended consequences of human action’, which is regarded as one of the most important targets of social sciences and as main framework in social research as well. The main interests of this article are 1) to trace the history of these family-resemblant concepts, 2) to evaluate their position in contemporary social sciences, and finally 3) to reconsider the meaning of the conceptions from contemporary view-point. In conclusion, this paper tries to show that the concepts could be a very useful and enlightening category to investigate contemporary social facts, e.g. the world-market, mass culture, various kinds of conflicts between races, gender, religions, ideologies and so on.

5

이익사회의 기획으로서의 공동사회?

이재성

대동철학회 대동철학 제17집 2002.06 pp.8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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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0원

이 글은 현대 사회이론의 사회적 통합형식인 이익사회와 공동사회의 구조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익사회와 공동사회는 페르디낭드 퇴니스에 의해서 처음으로 분명하게 구별된다. 그의 구별이후 양 개념은 무엇이 상위개념인지가 항상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다. 일반적으로 현대 사회이론에서는 이익사회가 상위개념이며 공동사회는 이익사회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위기로 가득찬 현대사회의 진단 방법으로 공동사회를 강조한다면 그것이 현대사회의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일어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필자는 기존의 이론을 재구성하는 문제에 초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이 글은 재구성의 문제는 공동사회를 이익사회라는 틀 속에서 존립하는 경험적 현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사회의 사회 구성원들의 의무화를 통해서 형성되는 이익사회의 결합문제를 공동사회에 의해서 해결하려 하거나 아니면 공동사회를 이익사회의 모델로 강조하려고 할 경우에 도출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문제로 삼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동사회와 이익사회의 차이는 구조-차이로서 재구성된다. 이러한 방법론을 통해 필자는 퇴니스의 주저 “공동사회와 이익사회”를 재구성하면서 이익사회와 관계하는 공동사회의 현대적 의미를 모색하고자 한다.

Gegenstand der Untersuchung ist die Struktur der Gesellschaft und Gemeinschaft als zusammenfassende Form der modernen Gesellschaftstheorie. Ferdinand Tönnies war der erste, der zwischen der Gesellschaft und der Gemeinschaft deutlich unterschieden hat. Seitdem ist unaufhörlich darüber diskutiert worden, welcher dieser beiden Begriffe den Oberbegriff darstellt. Die moderne Gesellschaftstheorie versteht im allgemeinen die Gesellschaft als Oberbegriff, und die Gemeinschaft als etwas, das nur innnerhalb der Gesellschaft möglich ist. Wenn wir jedoch die Gemeinschaft als eine Methode zur Untersuchung der mit Krisen behafteten modernen Gesellschaft betonen, dann stellt sich die Frage, ob die Gemeinschaft eine Alternative zur Überwindung der Krise der modernen Gesellschaft sein kann. An diesem Punkt wird mein Versuch einer Rekonstruktion der bestehenden Theorien ansetzen. Dabei befasst sich das Problem der Rekonstruktion nicht mit der Gemeinschaft als empirisches Phänomen, das nur im Rahmen der Gesellschaft existieren kann. Es soll vielmehr aufgezeigt werden, was dabei herauskommt, wenn das Problem des Zusammenhalts der Gesellschaft, das sich durch die Verpflichtung der einzelnen Mitglieder der Gesellschaft bildet, durch die Gemeinschaft geregelt wird, oder wenn die Gemeinschaft als Modell der Gesellschaft hervorgehoben wird. In diesem Zusammenhang wird der Unterschied zwischen der Gesellschaft und der Gemeinschaft als Struktur- Differenz rekonstruiert. Anhand dieser Methodologie soll Ferdinand Tönnies ’Gemeinschaft und Gesellschaft  rekonstruiert, und der heutige Sinn der in Bezug zur Gesellschaft stehenden Gemeinschaft betrachtet we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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