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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대동철학회 [The Daedong Philosophical Association]
  • pISSN
    1229-0750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1998 ~ 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철학
  • 십진분류
    KDC 105 DDC 105
제12집 (7건)
No
1

孔門弟子 冉有에 관한 小考

김경옥

대동철학회 대동철학 제12집 2001.03 p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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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00원

2

주자철학에서 도덕주체의 보편성 문제

대동철학회 대동철학 제12집 2001.03 pp.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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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0원

적어도 유가철학에서 말해지는 ‘도덕주체’는 심을 가리킨다. 20세기 중국어권의 유가철학자들이 현대의 시대 여건에 부응하여 재조명해 낸 전통의 유가철학에 따르면, 주자학에서는 도덕주체의 보편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심즉리’ 명제를 세운 양명학에서는 심이 형이상자이기 때문에 도덕주체의 보편성이 확실하게 확보되는 반면에, ‘성즉리’ 명제를 강조하는 주자학에서는 심이 형이하자인 기(��·��Ç)이기 때문에 도덕주체의 보편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맥락을 요약하면, 양명학에서의 심은 형이상의 이심(��Ç��·��Ç��·)이고 이것이 도덕의 주체이므로 도덕적 선악의 근원이 확실하고 도덕적인 것과 비-도덕적인 것의 분별이 확연해지는 데 비하여, 주자학에서는 심이 형이하의 기심(��Ç��·��Ç��·)이라서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도덕주체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고 설령 도덕주체가 된다 해도 그 심은 근본적으로 기이기 때문에 개인들 간의 기질 차이로 인하여 보편성 확보가 안 되고 따라서 ‘완전한 도덕주체의 지위’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논의는 주자의 도덕철학에서 심이 갖는 지위와 역할에 등에 관하여 근원적인 이해를 해 나가는 가운데, 주자학에서 심의 소속층이 기인 점은 부인할 수 없으나 심의 기와 그밖의 다른 기와는 구별된다는 점에 근거하여 주자학에서도 도덕주체의 선천적 보편성이 확보됨을 증명하는 논증이다. 주자철학에서의 심은 기심이기 때문에 각 개인들의 기가 갖는 선천적ㆍ후천적 편차(��·��Ç��·��Ç)로 인하여 도덕주체인 심의 보편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비판은 어디까지나 심즉리 진영에서 볼 때 그러한 것일 뿐이요, 주자의 사유세계 및 도덕철학의 구조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온 것일 따름이다.

3

王陽明의 中思想에 관한 哲學的 探究

민황기

대동철학회 대동철학 제12집 2001.03 pp.3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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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0원

4

엠페도클레스와 콰인

김명석

대동철학회 대동철학 제12집 2001.03 pp.6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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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0원

자연주의는 인식론이 선험적 이론이 아니라, 자연과학 또는 심리학의 한 부분일 것을 요구한다. 특히 콰인은 자연화된 인식론(1968)에서, 근대 인식론의 기초주의적 프로그램이 성공할 수 없음을 지적하고, 그 대안으로서 감각적 입력과 인지적 출력 사이의 인과적 관계를 탐구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자연주의 인식론의 첫 형태는 엠페도클레스의 이론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이 글은 콰인의 인식론에 대한 보다 나은 이해를 희망하며, 엠페도클레스의 인지과학을 해명 및 해설하는 데 집중하였다. 엠페도클레스의 방출이론에서, 인식과정에 대한 설명은 매우 간단하다. 인식대상으로부터 물질적 분말이 방출되고, 그 방출물들은 감각기관의 구멍 속으로 유입된다. 방출물이 구멍에 들어맞을 경우 지각이 성립되고, 육체 속으로 들어온 방출물이 혈액 속의 원소 배합을 변경시킬 때, 사고의 변화가 야기된다. 한편 콰인은 ‘방출물’ 대신, ‘자극’ 또는 ‘신경유입’을 외부세계에 관한 정보의 원천으로 간주했는데, 그의 자연화된 인식론의 기본적인 패러다임은 엠페도클레스의 방출이론과 매우 흡사하다.

Naturalism claims that epistemology is not an a priori theory but a chapter of psychology or of natural science. In particular, Quine in “Epistemology Naturalized”(1968) points that foundationalist program of modern epistemology cannot be successful, instead proposes new program as an alternative which does not study evidential relations between sensory input and cognitive output, but causal relations between them. The first form of naturalistic theory of knowledge can be found in Empedocles’ Fragments. The paper focuses on explaining and explicating Empedocles’ cognitive science with wishing better understanding about Quine’s naturalized epistemology. We are to find how much similar two cognitive sciences are in their underlying paradigms.

5

신실용주의는 종교와 윤리를 어떻게 보는가

김영태

대동철학회 대동철학 제12집 2001.03 pp.9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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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원

리차드 로티(1931- )는 현존하고 있는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이다. 그러나 고전 실용주의자들의 유산을 액면 그대로 물려받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이미 고전적 의미의 실용주의자는 아니다. 로티는 크게 고전적 실용주의를 지양함으로써 이른바 신실용주의의 노선을 걷고 있는 것이다. 로티는 전통적인 실재론, 표상주의, 권위주의를 배격하는 데서부터 그의 실용주의 철학을 구성한다. 그러므로 로티는 줄곧 영원 불변한 진리를 외쳐온 전통적 종교들의 로고센트리즘(logocentrism)을 비판 내지 거부하면서, 새로운 종교관 및 윤리관을 제창하는 것이다. 로티는 제임스와 듀이에게서 다신론 내지 다원주의적 요소를 발견하고 다원주의 사회에 걸맞는 새로운 종교관으로서의 낭만적 다신론을 주창한다. 따라서 고정불변하고 확고부동한 일자(􈥮􈦝)혹은 하나님 개념을 거부하고 그러한 것에 대한 관심 내지 신앙을 인류간의 대화(conversation)를 통한 인류애 쪽으로 돌릴 것을 역설한다. 이것의 구체적인 실천방안으로 사회적 실행(social practice) 및 연대성(solidarity)이라는 실천철학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도덕을 인간들의 삶의 방식으로 보고 그것을 종교보다 더 중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논지는 결국 종교로부터의 휴머니즘에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래서 로티는 신중심의 세계관을 인간중심의 세계관으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Richard Rorty (1931- ) is an existing American pragmatic philosopher. However, unlike classical pragmatism, he claims another pragmatism, so called, neopragmatism. First of all, he wants to construct his neopragmatism on antirealism, antirepresentationalism, and authoritarianism. Therefore, Rorty rejects traditional logocentrism, but he hopes to establish a new view of religion and morality. Rorty found polytheism and pluralism in William James and John Dewey's philosophy, and on these bases he tried to establish romantic polytheism. The purpose of romantic polytheism is to turn traditional concern for "The One" or God towards humanism. In order to realize humanism or philanthropism, we need social practice and solidarity. Especially, we must exclude cruelty in modern society. In conclusion, it seems to me that Rorty attempts a Copernican revolution from theocentrism to anthropocentrism in his new pragmatic philosophy.

6

靈氣란 무엇인가 ― 헤겔의 영기 개념

양우석

대동철학회 대동철학 제12집 2001.03 pp.11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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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0원

헤겔의 영기 개념은 예나 시대의 “예나의 체계 기획”에 있어서 중심 개념의 하나로서 그의 객관적 관념론의 형이상학적 체계 형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 흥미로운 역할을 한다. 헤겔은 영기를 후기의 절대 정신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면서도 “절대적 물질”이라 하여 훨씬 풍부한 해석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형이상학의 궁극적 문제의 하나인 세계의 발생 문제에 있어서 영기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헤겔은 세계의 기원을 기독교 신론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의 창조에 설정하지만 그것을 무조건 무로부터의 창조라 이해하지는 않는다. 신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세계를 창조하며 바로 이 자기 자신은 신과 동일하면서도 다르다. 이 신의 자기 자신이 곧 영기이다. 그것은 인간적 의미에서의 감각적 대상은 아니며 다만 원일자(das Ureine)로서 물질과 정신을 포함하고 있다.

Als ein Zentralbegriff spielt Hegels Äher im “Jenaer Systementwüfe I, II, III” eine sehr wichtige und interessante Rolle zur metapysischen Systembildung seiner objektiven Idealismus. Hegel verwendet den Begriff Äher im gleichen Bedeutung mit dem des absoluten Geistes im späeren Zeit und zugleich rämt als “absolute Materie” die Mölichkeit einer noch reicheren Auslegung ein. Der Äher spielt eine entscheidende Rolle in dem Problem der Weltentstehung, einem des letzten Problems der Metaphysik. Hegel setzt die Entstehung der Welt in der Erschaffung des Gottes so wie in der christlichen Gotteslehre, jedoch versteht dies nicht unbedingt als kreatio ex nihilo. Gott erschafft die Welt aus sich selbst und dieses Sich selbst ist gleich mit Gott und zugleich nicht. Dieses sich Selbst ist eben der Aether. Das ist kein sinnliche Gegenstand im menschlichen Sinne, sondern umfasst als das Ureine in sich die Materie und den Geist.

7

칸트의 결합 개념에 대한 초월적 고찰

황순우

대동철학회 대동철학 제12집 2001.03 pp.13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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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00원

칸트는 범주의 초월 연역론 (재판) 15장에서부터 결합 개념을 ―알려진 통설과는 달리― 이미 본격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근원적 결합은 지성 행위와 감성적 직관의 체계적 관련성에 대한 지속적인 토대를 마련해 주는데, 이것은 곧 연역 자체의 실질적인 시작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논문은 15장에서 전개되고 있는 칸트의 근원적 결합 개념에 대한 심층적 분석으로서, 결합과 직관이라고 하는 근본적인 개념들과, 연역의 전체적 관련 속에서 15장이 갖는 체계성의 의미를 밝혀 보고자 한다. 1장은 결합 일반에 대한 개념 규정이다. 근원적인 선험적 결합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원칙적으로 다음과 같은 두 문장에 의지하고 있다. i) 모든 결합은 지성 행위이다. ii) 이 지성 행위는 근원적으로 (ursprüglich) 하나이고 모든 결합에 한결같이 유효하다. 두 문장을 중심으로 하는 분석 방법은, 결합개념으로부터 얻어지는 선험적 인식의 의미를 연역에 내재되어 있는 초월적-논리적인 구조와 연결시킴으로써, 결합을 이중적 의미를 지닌 하나의 개념에 근접시킨다. 근원적인 선험적 결합은 근원적인 선험적 지성 행위, 즉 결합행위(ein transzendentaler Verbindungsakt)이기도 하고, 또한 이와 같은 행위에 의해 만들어진 초월적 표상, 즉 결합표상(eine durch diesen Akt konstituierte, transzendentale Verbindungs-vorstellung)이기도 하다. 2장은 이중적 의미를 지닌 근원적 결합에 대한 세밀한 분석에 해당된다. 여기에서는 근원적 결합이 선험적 인식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로서 표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초월적인 선험적 인식 요소의 의미는 다음과 같은 칸트식의 표현에 함축되어 있다. 우리는 어떻게 일련의 표상들이 선험적으로만 사용되거나 또는 가능할 것인가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하며, 그리고 이처럼 선험적으로만 사용된다거나 또는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함께 바움(M. Baum)의 고찰 방식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서 초월적 고찰 방식을 제시한다. 3장은 선험적 인식 요소들에 대한 초월적 고찰의 계속이다. 선험적 인식 요소들이라 함은 범주와 결합 개념뿐만 아니라, 직관 개념 또한 이에 포함되기에, 초월 연역론이 갖는 초월 감성론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직관 개념을 고찰하고자 한다.

In diesem Aufsatz geht es um eine Analyse von Kants Exposition der Verbindung in § 15 der Deduktion der Kategorien (1787), in der sowohl grundlegende Termini Verbindung ― und Anschauung ― als auch die systematische Bedeutung des § 15 im Gesamtzusammenhang der Deduktion herausgearbeitet werden soll. Der § 15 bietet eine bleibende Grundlage des systematischen Zusammenhangs von Verstandeshandlung und Anschauung. Unsere Üerlegung zur ursprüglichen Verbindung a priori kann sich definitiv auf zwei Säze stüzen; alle Verbindung ist eine Verstandeshandlung und diese Verstandeshandlung muß ursprüglich einig und fü alle Verbindung gleichgeltend sein. Unsere Üerlegung knüft sich an die transzendental-logische Struktur und Bedeutung der Erkenntnis a priori an, und dadurch wird die Verbindung an einen Begriff in einem doppelten Sinn herangebracht; die ursprügliche Verbindung a priori ist sowohl ein ursprüglicher Verstandesakt a priori, als auch eine dadurch hervorgebrachte transzendentale Vorstellung. Danach soll gezeigt werden, daß die ursprügliche Verbindung als ein Element der Erkenntnis a priori vorgestellt sein muß. Dabei wird Baums Betrachtungsweise üerprüt und demgegenüer unsere transzendentale Betrachtungsweise als eine Alternative vorgeschlagen. Schließlich ist eine fortlaufende transzendentale Betrachtung der Elemente der Erkenntnis a priori, zu denen also auch der Begriff der Anschauung gehöen s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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