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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대동철학회 [The Daedong Philosophical Association]
  • pISSN
    1229-0750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1998 ~ 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철학
  • 십진분류
    KDC 105 DDC 105
제36집 (9건)
No
1

王弼의 內聖과 外王觀

권광호

대동철학회 대동철학 제36집 2006.09 p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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ꡔ莊子ꡕ는 「天下篇」에서 先秦 諸子學의 기본정신은 곧 ‘內聖과 外王의 道’라고 하였다. 內聖이란 天道에 대한 심오한 이해를 가리키며, 外王이란 天道에서 人道에 이르기까지 仁義禮樂法道 등 다양한 人間事를 가리킨다. 內聖의 學은 ‘根本적인 이치를 밝히는 것’이라면, 外王의 學은 ‘말단적인 制度와 관계있는 것’으로 이는 모두 聖王의 학문이자 경계라고 할 수 있다. 魏晋玄學을 대표하는 王弼의 핵심철학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바로 정신적 경계에 관한 학문이다. 有와 無, 自然과 名敎 등의 논쟁은 모두 이러한 ‘境界’를 설명하기 위한 어떤 부수적인 수단에 불과하다. 마치 ꡔ老子ꡕ에서 道를 설명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표현이 사용된 것과 같다. 따라서 본 연구의 주요 내용은 魏晉玄學에 있어서 특히 王弼의 정신적 초월의 ‘境界’ 문제에 초점을 두고 진행되었다. 또한 先秦의 道家나 魏晉의 玄學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극복하기위하여 이상적인 최고의 경계를 추구하는데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실 생활 속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수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간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것을 잘 극복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생각이 세속적인 현실에 속박되어 초현실적인 정신경계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王弼은 道와 하나가 되어 內聖外王의 道를 이룬 聖人을 가장 이상적인 인간으로 보았다. 본 연구의 목적은 당시 암울한 시대를 살았던 魏晉時代의 대표적인 玄學家 왕필의 정신적 ‘境界’를 통하여 現代를 살아가는 수많은 凡人들의 고뇌를 덜어줄 초월적 정신경계를 찾아보고자 노력하였다.

內聖外王之道是ꡔ莊子 天下篇ꡕ槪括先秦天人學第一次提出來的. 內聖是指對天道的深奧理解, 外王是指從天道到人道仁義禮樂法度等多樣複雜的人間事. 內聖之學說明根本理致, 外王之學有關末流的制道, 不過都是聖王的學文而境界. 代表魏晋玄學的王弼之核心哲學也說一句話就是精神境界論. 有與無, 自然與名敎等的論爭, 都是爲了這樣的境界的手段而已. 好象在ꡔ老子ꡕ爲說明道表現出的好多方法. 因此本硏究的主題重點在關于王弼的境界論. 以此不關先秦之道學惑魏晋之玄學可以說特別要克復現實與理想的精神距離. 現代人經常逢到生活的壓力, 不少人難以克服這樣的痛苦. 那就是因爲達不到超越的精神境界. 王弼把和道同體而得到內聖外王之道的聖人認爲最理想之人. 本硏究的目的是通過當時生活在悲觀時代的玄學家們境界論, 要探討解決在現代生活中的好多的痛苦.

2

한비자의 통치술에서 사적 의도들의 문제

정용환

대동철학회 대동철학 제36집 2006.09 pp.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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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비자의 통치술에서 사적 의도들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고찰하고 평가하였다. 한비자는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다양한 욕구들의 대립을 통찰하며, 그러한 대립의 해결방안으로서 법가적 통치술을 제시한다. 그의 법가적 통치술은 ① 화/복을 내림으로써 자연을 주재하는 도(道)의 통치, ② 상/벌의 시스템에 따라 처벌과 보상을 내림으로써 사회를 주재하는 절대 군주의 통치 ③ 내적인 자기검열을 통해 평안을 획득하는 주체의 자기반성적 통치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한비자의 법가적 통치술은 유가의 덕치(德治)나 예치(禮治)가 아닌 힘과 법에 의한 지배를 가장 정련된 형태로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사상사적 의의가 크지만, 여전히 선결문제 미해결의 한계를 지닌다. 즉 그의 법가적 통치술의 주된 목적인 사회적 통치의 달성 과정에서 여러 사적인 의도들의 간섭이 진정으로 제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사적 의도들의 제거 가능성 문제), 그리고 어떻게 법가적 통치자가 사적 의도를 비우고 초연함을 획득할 것인지(통치자의 객관성 문제)에 대해 더 기나긴 논증이 필요하다. 그의 소망과 달리 통치 과정에서 통치자의 객관성이란 극히 달성하기 어려운 불안정한 이념이며, 사적 의도들 역시 완전히 제거해야할 부정적 요소들이라기보다 통치행위가 폭력적 전제로 흘러들지 못하게 하는 해석학적 항체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사적 의도들의 순기능적 측면을 고려한다면, 한비자의 법가적 통치술이 현실적 합리성을 얻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적 의도들을 제거함으로써 절대적 객관성을 추구하기보다 차라리 다양한 사적 의도들을 수용할 수 있는 다원성에 근거한 통치모델을 숙고해야 할 것이다.

tried to describe the critical points of Hanfei(韓非)'s governmental thought that is dependent on the ancient Chinese legalism. According to him, the society and the individual can achieve higher values when the repaying system of reward and punishment is worked well. He supports that the absolute monarchy can govern social disturbances and that conquering oneself can dissolve one's mental conflicts. His technique of governance giving priority to a strong superintendence can bring about the question how a ruler can get the quality that can judge what is right and wrong. With the result that he want to control other's intentions by an absolute monarch and one's mental conflicts by self-conquering, various desires in society can be wrecked. The judgements that a monarch carry out would be one of the decisions such as others do, as long as he should be a man having desires.

3

올바른 인식을 위한 荀子의 提言

최정묵

대동철학회 대동철학 제36집 2006.09 pp.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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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올바른 인식을 위한 기본조건이 무엇인가에 대한 순자의 주장을 정리한 것이다. 순자는 두 가지의 기본 조건이 제대로 갖추어질 때 올바른 인식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대상에 대한 규정과 인식주체의 문제가 이것이다. 대상에 대한 규정 문제는 「正名」편을 통하여 명칭제정 등에 대한 내용으로 정리하였고, 인식주체에 대한 것은 「解蔽」편에서 마음이 일으키는 문제점 등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다. 순자의 명칭제정에 대한 강조는 사실에 대한 올바른 분별과 명확한 정보전달을 통하여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다. 올바른 인식이 사회의 혼란을 막고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초석으로 보고있는 것이다. 이름의 제정은 사회적 약속으로 이루지는 것이지만, 여기에는 대상의 속성을 잘 드러내야 한다는 기능적인 측면도 고려되고 있다. 그래서 세부적인 제명의 원칙들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개념의 명료성을 확실히 하기 위한 制名 외에 올바른 인식의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는 두 번째 요소는 마음의 문제이다. 인식작용의 주체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이 마음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이 편견과 선입견을 갖고 대상을 대하거나, 잘못된 인식내용에만 몰두하게 됨으로써 올바른 인식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解蔽」편에 적시하고 있는 내용들은 바로 마음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폐단에 대한 지적과 이것에서 벗어나야 함을 말한 것이다. 欲․惡, 始․終, 遠․近, 博․淺, 古․今의 한 쪽으로 치우친 것에 대한 문제점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폐단을 넘어서서 올바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虛, 靜, 壹이 가능하기 때문이라 한다. 저장된 정보가 새롭게 들어오는 것들을 거부하지 않고(虛), 서로 다른 정보가 들어온다 해도 이것들이 서로 방해하지 않으며(壹), 고요하게 정리하는 기능(靜)이 온전히 유지될 때 최상의 인식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되는데, 이러한 상 태를 大淸明이라 한다. 대청명은 도를 체득하여 통찰하고 실천하는 경지를 말하는 것으로, 만물의 실상을 깨닫고 그실현의 기운이 우주를 포괄하는 데까지 이르는 것이다. 순자의 이러한 의식은 삶의 주체가 바로 인간 자신임을 표명하려는 의도를 깔고 있다. 인간 외의 그 어떤 것에 의존하지 않은, 오로지 인간의 인식능력과 실천의 의지에 입각한 인간 존재의미의 천명인 것이다.

The aim of this thesis is to arrange the matter of knowledge suggested by Hsun-tzu. Hsun-tzu thought that one can know correctly when two basic conditions are ready. They are the prescription of objects and the matter of the knowing subject. Hsun-tzu's emphasis on the establishment of names has the purpose of smooth communication through the correct differentiation of facts and the correct transmission of information. He thinks that the right knowledge is the cornerstone to curb the confusion of the society and maintain its order. The establish of names are made by the promise of the society, but the functional aspect that the property of objects must be revealed is also considered. Thus, he refers to the elaborate principles of naming. In addition to the establishment of names for making sure of the clearness of concept, the second element which is suggested as the condition of knowledge is the matter of the mind. He thinks of what take up the subjective role of the operation of knowledge as the mind. However, this mind cannot have the right knowledge by facing objects with bias and prejudice or being absorbing in the wrong contents of knowledge. There are some examples such liking, disliking, beginning, ending, etc. But the important thing is that one can know correctly beyond these customs. That is why there can be emptiness, tranquillity, and oneness. When one doesn't turn down new information (emptiness), the advent of information doesn't interrupt one another (oneness), and the tranquillizing function is maintained, the best knowledge can be possible. This is the Great Clearness and Brightness. The Great Clearness and Brightness is the state of obtaining, looking into, and perform Tao, realizing the real aspect of all things and having the performing energy contain the universe. This awareness of Hsun-tzu's has the intention to show that the subject of living is man. This reveals the meaning of human being based on man's ability to know and perform, not dependi! ng on anything else except human be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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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상호주관성에 입각한 실천적 규범학의 정초 이론이라는 관점에서 피히테의 승인이론을 고찰한다. 피히테의 승인이론은 자아와 타아가 상호요청적 관계 속에서 등근원적으로 서로를 구성하며, 바로 이러한 상호주관성에서 이성적인 사회 규범과 제도를 구축하기 위한 실천 원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피히테는 이러한 승인 운동을 통해 개별 의식의 구체적인 주관성의 형성(개체화)과 보편적 상호주관성의 형성(사회화)이 하나의 과정 속에서 상호관련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자아로부터의 발생론적 증명을 통해 보여준다. 여기서 자아와 타아는 서로에 대해 내재적 구성 조건으로 파악되며, 이러한 승인 운동을 통해 창출되고 의식화된 자아와 타아 간의 평등하고 대칭적인 관계가 법이나 도덕 같은 사회 규범의 근본 원리로 제시된다. 본 논문은 피히테의 승인이론에 관한 연구의 일부로서 우선 칸트의 실천철학과의 연관 속에서 피히테의 승인이론이 발생하게 되는 문제사적 맥락을 재구성할 것이다.

Der vorliegende Aufsatz ist eine Untersuchung über die Fichtesche Anerkennungstheorie als eine auf der Intersubjektivität fundierende Begründungstheorie der praktisch-normativen Wissen- schaft. In seiner Anerkennungstheorie behauptet Fichte, daß das Ich und das Andere in einem transitiven Verhältnis sich gleichursprünglich konstituieren, und daß in einer solchen Intersub- jektivität das praktische Prinzip für die Errichtung der vernünftigen sozialen Normen und Institutionen gesucht werden müsse. In einem genetischen Beweis aus dem Ich zeigt Fichte, daß die Bildung der konkreten Subjektivität des einzelnen Bewußtseins (Individuierung) und die Formierung der allgemeinen Intersubjektivität (Sozialisierung) in einem Prozeß gegenseitig bedingend zustande kommen. Dabei werden das Ich und das Andere füreinander als die immanente reziproke Konstitutionsbedingung gefaßt und das gleiche und symmetrische Verhältnis zwischen ihnen, das durch die Anerkennungsbewegung hergestellt und bewußt geworden ist, wird als das Grundprinzip der Sozialnormen wie das Recht oder die Moral aufgestellt. Als einem Teil der Untersuchung über die Fichtesche Anerkennungstheorie geht es in diesem Aufsatz zuerst um die Rekonstruktion der Entstehung der Fichteschen Anerkennungstheorie in der problemgeschicht- lichen Beziehung auf die praktische Philosophie K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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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철학에서 판단력과 매개 활동에 관한 연구

박종식

대동철학회 대동철학 제36집 2006.09 pp.8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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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칸트 철학에서 규정적 판단력과 반성적 판단력의 역할과 각 능력들 간의 일치와 조화, 매개 활동에 관해서 다루고 있다. 오성, 상상력, 이성이라는 능력들 사이의 구분과 갈등 및 그 능력들의 일치와 조화, 매개 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추적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나 개념이 무엇인지를 밝혀보고자 한다. 특히 ꡔ순수이성비판ꡕ에서 오성 범주의 정당성 문제와 감성과 오성의 매개의 문제는 이후 ꡔ판단력비판ꡕ에서 자연과 자유를 매개시키는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우리는 ꡔ순수이성비판ꡕ과 ꡔ실천이성비판ꡕ, 그리고 ꡔ판단력비판ꡕ에 나타나는 각각의 이성 능력들의 역할이 각 영역마다 상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 영역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이성 능력이 있고 이 능력은 다른 능력과 조화를 이루지만 그러나 또 다른 영역에서는 서로 다른 역할 때문에 갈등하고 분쟁한다. 그러나 이런 부조화를 결국 조화, 일치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ꡔ판단력비판ꡕ에서 말하는 공통감이다. 이 공통감에 근거해서 이성의 각 관심영역에서 조화와 일치가 가능하다. 이처럼 칸트 철학의 전체계는 인식 능력들의 조화와 일치, 매개라는 상호적인 관계를 통해서 진리에 대한 내재적인 기준을 제시해 준다. 이것이 바로 칸트가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통해서 실제로 제시한 진리관이다. 초월적인 기준에 의해서 진리 여부가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이성이 지닌 각각의 능력과 각각의 관심 영역들 속에서 각각의 능력은 다른 능력과 분쟁하고 갈등한다. 그러나 이 능력들은 결국 일치, 조화, 매개를 수행하는데 이것이 가능한 궁극적 근거는 바로 공통감이다. 이런 측면에서 칸트의 철학은 이성 능력들의 분리와 단절을 통한 조화, 매개, 일치의 철학이다. 우리는 이 논문에서 이성 능력들의 단절과 조화, 매개 과정을 구체적으로 추적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이질적인 능력들의 조화와 일치를 가능하게 하는 칸트의 사유가 현대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간단히 살펴볼 것이다.

Es handelt sich bei dieser Aufsatz um die bestimmende, reflektierende Urteilskraft und die Vermittlungsleistung der Erkenntnisvermögen in Kants Philosophie. Kants Philosophie ist streng dualistisch konzipiert. Sie zerfällt in die zwei Hauptteile der theoretischen und der praktischen Philosophie, in die Hauptteile von sinnlicher Rezeptivität und intellektueller Spontaneität bzw. Anschauung und Begriff, von Natur und Vernunft bzw. Erscheinung und Idee, von Verstand und Einbildungskraft. Die Dichotomien der Kantischen Philosophie immer wieder kommen vor eine unübersehbare Kluft zu stehen. Also wir müssen sich darauf besinnen, wie über die Abgründe Brücke geschlagen werden können, wenn anders die Philosophie, die Erkenntnis und gleichsam die Welt eine Einheit haben sollen, und der Mensch eine Einheit. Aufhebbar sind die Dichotomien auf dem Boden der Kantischen Philosophie zwar in keinem Fall, weil deren Grundfigur eine Polarität ist. Die Pole der Kantischen Philosophie sind nicht schon mit dem jeweils andern vermittelt, sondern müssen als unabhängig von einander bestehend gedacht werden; Doch wir können in keinem Fall auf die Verknüpfung der Getrennten verzicht werden. Die Instanz, von der Kant die Leistung notwendiger Verknüpfungen erwartet, ist die Urteilskraft, und zwar sofern sie reflektierend, nicht sofern sie bestimmend verfährt. Sie fungiert als ein Vermögen, nur zum Verknüpfen zu dienen. Die zu überbrückenden Klüfte sind zwar vielfältig, das überbrückende Vermögen aber gleichwohl im Grunde nur eines Vermögen; eine Urteilskraft. Wir sind zu untersuchen, zwischen welchen der Gegensätze die von Kant vorgeschlagene Vermittlungsinstanz der reflektierenden Urteilskraft zu vermitteln vermag, und auf welche Weise ihr das gelingt. Die Lösung der spezifische Verknüpfungsaufgabe erwartet Kant von der Urteilskraft und Gemeinsi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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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재 분석과 현존재 분석론

손영삼

대동철학회 대동철학 제36집 2006.09 pp.107-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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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보스의 현존재 분석은 정신치료 또는 정신의학에서 자연과학적 입장과 태도를 넘어설 수 있는 길잡이를 하이데거의 현존재 분석론에서 찾았다. 현존재 분석론에서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존재이해를 밝혀 드러내고자 했다. 이 분석론에서 이해되고 해석되는 현존재를 보스는 인간의 본성으로 파악했다. 이 인간의 본성에 근거하여 정신병리 또는 정신장애 현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현존재 분석은 현실에 대한 철학의 적용으로서 우리의 관심 대상이다. 철학을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적용하는 철학과 적용되는 현실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 야 한다. 보스의 현존재 분석은 하이데거의 현존재 분석론으로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을 보완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이 비록 자연과학적 입장과 태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그 밑바탕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스는 파악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비록 어렴풋하나마 존재이해가 모든 인간의 삶 밑바탕에 놓여 있으며, 이 존재이해의 근원이 현존재의 존재이해이다. 이런 점에서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에도 그 밑바탕에는 존재이해가 놓여 있을 것이며, 이 존재이해를 밝혀 드러내는 일이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을 보완하는 일이기도 하며, 그 결과가 보스의 현존재 분석이다. 이와 같이 보스의 현존재 분석은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을 하이데거의 현존재 분석론으로 보완한 것이다. 이와 같은 현존재 분석에서 정신건강은 현존재의 존재론적 구조에 따른 현상이며, 그렇지 않은 현상은 정신병리 또는 정신장애로 이해될 것이다. 그런데 정신병리 또는 정신 장애로 이해되는 현상이 현존재의 비본래성에서 비롯하는가, 아니면 인간의 존재망각에서 비롯하는가? 이것이 문제이다. 하이데거의 현존재 분석론에서는 현존재의 실존이 분석되고 있으며, 보스의 현존재 분석에서는 인간의 정신 현상이 분석되고 있다. 현존재의 실존과 인간의 정신 현상 사이의 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한, 현존재 분석에 따른 진단과 치료는 그 근본의도와는 달리 어림짐작으로 그칠 수 있다. 하이데거의 현존재분석론에서 현존재의 비본래성은 인간의 일상적 삶에서 나타나는 어떤 현상과 일대 일 대응관계를 가지지는 않으며, 비본래성은 현존재의 존재론적 구조에 따라 본래성으로 바뀔 수 있다. 인간의 존재망각은 인간의 근원에 현존재의 존재이해가 놓여 있다는 것에 대한 망각이다. 이를테면,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에 존재망각이라는 지적이 가능하며, 이 존재망각을 보스가 일깨우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M. Boss' Daseinsanalyse erblickte einen Leidfaden in Heideggers Daseinsanalytik, mit welchem sie naturwissenschaftliche Einstellung und Verhaltung in Psychiatrie und Psychotherapie ueberwinden koennte. In der Daseinsanalytik wollte Heidegger das Seinsverstaendnis des Daseins aufschliessen. Das in dieser Analytik verstandene und ausgelegte Dasein fasste Boss als Wesen des Menschen auf. Insofern Daseinsanalyse, die psychische Phaenomene auf Grund dieses Wesen vom Menschen zu verstehen und auslegen, eine Anwendung der Philosophie auf die Wirklichkeit ist, zieht sie auf sich unser Interesse. Um Philosophie auf die Wirklichkeit anzuwenden, soll das Verstaendnis fuer die Philosophie und die Wirklichkeit vorausgesetzt werden. Boss' Daseinanalyse hatte die Absicht, Freuds Psychoanalyse mit Heideggers Daseinanalytik zu bewahren. Obgleich Freuds Psychoanalyse sich nicht aus naturwissenschaftlicher Einstellung und Verhaltung befreien konnte, ihr zu Grunde liegt das Verstaendnis vom Wesen des Menschen. Nach Heidegger, liegt ein Seinsverstaendnis allem Menschenleben zugrunde, und der Ursprung dieses Verstaendnises ist das Seinsverstaendnis des Daseins. In dieser Hinsicht liegt das Seinsverstaendnis des Daseins auch der Psychoanalyse von Freud zugrund, und das Aufschliessen des Seinsverstaendnis des Daseins in Freuds Psychoanalyse ist es, diese zu bewahren. In dieser Daseinsanalyse ist Gesundheit ein ontologischer Struktur angemessenes Phaenomen, und Krankheit ist ein ontologischer Struktur unangemessenes Phaenomen. Aber dann ist dieses Phaenomen aus der Uneigentlichkeit des Daseins oder aus der Seinsvergessenheit des Menschen? In Heideggers Daseinsanalytik wird die Existenz des Daseins analysiert, und in Boss' Daseinsanalyse wird das psychische Phaenomen des Menschen. Wenn das Verhaeltnis zwischen die Existenz des Daseins und das psychische Phaenomen des Menschen nur ausdruecklich aufschliessen wird, dann wird die Daseinsanalyse ein Weg zum eigentlichen Zweck und Ziel. In der Heideggers Philosophie soll die Seinsvergessenheit des Menschen und die Uneigentlichkeit des Daseins voneinander untersieden we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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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의 방법

원석영

대동철학회 대동철학 제36집 2006.09 pp.125-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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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방법서설」 2부에 제시된 4개의 규칙들로 이루어진 데카르트의 방법에 대한 이해를 구할 목적으로 쓴 글이다. 데카르트의 방법과 그의 설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당시에도 그랬지만 그 이후 지금까지도 실로 극과 극이다. 데카르트의 방법과 방법에 대한 그의 설명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방법과 방법론을 독립된 하나의 중요한 연구주제로 삼는 사람들이 한 극을 이룬다. 다른 한 극은 데카르트의 방법과 방법에 대한 그의 설명에 회의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나는 이 글에서 후자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슈스터와의 논의를 통해 중간자적인 입장을 견지해보고자 한다.

In this paper I am trying to understand Descartes‘s Method. The reader’s reaction to the method which Descartes introduces in the second part of "Discourse on Method", and which consists of 4 rules, ran to two extremities at the time when it was published. And time could have made no difference in that respect. There were people who thought that Descartes‘s method is very efficacious and his explanation of it is very plausible. And encouraged by this thought they build a new scientific field, namely methodology for researching into method generally. Today, led by that tradition, many scholars live in that field. But there were also people who found Descartes’s method non-efficacious and his explanation inane. I will here try to find a middle way between these two poles by critically discussing with Schuster who speaks very strongly for the second position.

8

6,600원

이 글은 오늘날 배아복제 연구가 진정으로 도덕적․법적인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가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난치병 치료를 위한 줄기세포의 확립에는 선행적 연구로서 배아복제가 반드시 요구된다. 왜냐하면 이로써 이른바 환자 개인에 대한 맞춤형 의학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아복제 실험을 둘러싼 찬성론자와 반대론자의 견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찬성논변이 근본적으로 공리주의의 공리성을 그 논거로 삼는 반면에, 반대논변은 공리성의 원리가 가져올 인간성의 위기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이런 양자 사이의 오해와 불신을 조정해야 할 1차적인 책임은 국가에 의한 법적 규제에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국가의 법 정책 수립은 언제나 정치적 타협을 통해 그 갈등을 해결하려고 함으로써, 여전히 효용성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법정책상의 한계는 생명의 규범적 가치와 생명의 과학적 현상을 슬기롭게 접목시키지 못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불러오는 요인이 된다. 법정책상의 한계로 인해 생명의 규범적 가치에 대한 판단은 결국 윤리의 몫으로 돌려진다. 그러나 배아복제의 도덕성 논쟁을 통해 윤리는 근본적으로 규범적 논거와 과학적 사실 사이에 건너뛸 수 없는 괴리가 있음을 확인시켜 줄 따름이다. 이로써 과학과 윤리 사이에는 화해와 의사소통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며, 이에 이 글은 그 현실적 대안으로서 의사결정에 이르는 “공정한 절차”와 “중첩적 합의”가 요구됨을 지적하고, 그 의의를 살펴본다.

This thesis is a critical study how the embryo cloning, which is a preceding study in order to establish the Stem Cell for curing of terminal ill patients, can be justified ethically and legally. An embryo cloning will enable us to settle an adjusted medicine for a patient in the future. But It is true that there are many controversies between an approval argument and disapproval argument about an embryo cloning experimentation today. The former argument supports the right and interest of patient prior to those of embryo, but the latter reversely. In the first chapter I observed what stem cell is and the sources of ethical-legal conflict between an approval argument and disapproval argument that stem cell research evokes. And the substances and disputed points of legal regulation to protect the human embryo are discussed in the second chapter. The status of cloned embryo and the axiological standard of an experimentation using the cloned embryo for terminal ill patients are discussed in the third chapter. Finally are searched the problems how we can arrive at overlapping consensus on the consented embryo experimentations and secure a procedural fairness to be required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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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신의 사랑

이현복

대동철학회 대동철학 제36집 2006.09 pp.171-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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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스피노자에 있어서 “신의 사랑”을 주제로 삼고 있다. 이 주제는 스피노자의 자유의 윤리학이 마침표를 찍는 곳이다. 예속인에서 자유인으로, 수동인에서 능동인으로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는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결국 신을 사랑함으로써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영혼의 평정에 이룰 수 있다는 것에 도달한다. 스피노자에 있어 사랑은 그 대상에 따라 구별된다. 소멸되는 사물에 대한 사랑과 불멸의 사물에 대한 사랑이다. 사랑이 사랑하는 주체와 사랑되는 대상과의 합일이라면, 전자의 사랑은 무상하고 부질없는 것인 반면, 후자의 사랑은 영원하고 불변하는 것이다. 바로 영원하고 불변한 대상, 즉 신에 대한 사랑이야 말로 스피노자에 있어서 최상의 행복일 수 있다. 신의 사랑을 스피노자는 두 가지로 나누어 고찰한다. 신에 대한 사랑과 신의 지적 사랑이 그것이다. 신에 대한 사랑은 직관지에 이르지 못한 정신이 정서의 예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임시적 방편이다. 신체의 변용에 대한 명석 판명한 관념을 형성하고, 이것을 신의 관념과 결부해서 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신체와 연관된 한에서의 이 사랑은 모든 정서 가운데 가장 항구적이긴 하지만 신체와 더불어 소멸된다. 반면에 신체와 무관한 한에서의 신의 지적 사랑은 직관지에서 생기며, 따라서 이 사랑은 영원하고, 어떠한 것도 이 사랑을 파괴할 수 없다. 정신의 영원한 부분인 지성이 신을 지적으로 사랑하는 것으로서, 이 사랑은 신이 자신을 사랑하는 무한한 사랑의 일부이다. 정신의 신에 대한 지적 사랑은 신의 자신에 대한 무한한 사랑의 일부이다. 바로 이 사랑에서 정신과 신을 합일을 이루고, 이것에 인간의 지복, 구원, 자유가 있다는 것이 스피노자 윤리학의 결론이다.

Diese Areit versucht Spinozas Begriff Gottesliebe zu erklären. Es ist kein Zweilfel, daß dieser Begriff in der Spinosas ethica eine wichtigste Rolle spielt. Denn der Ziel von Spinozas ethica besteht in der humana liebertas, die letztlich in der Gottesliebe ermöglicht werden kann. In der Korte Verhandeling van God, de Mensch, en deszelvs Welstand und ethica stellt Spinoza die Bedeutung bzw. Wesenheit der Gottesliebe dar, und dabei untersucht er die Gottesliebe in zwei Aspekte: nämlich, amor erga deum und amor dei intellectualis. Die amor erga deum bezieht sich auf die Affektionen des Körpers, die vom Geist klar und deutlich erkannt werden soll. Diese Liebe ist unter allen Affekten behärrlichste, dennoch kann sie mit dem Körper selbst zerstört werden. Demgegenüber entspringt die amor dei intellctualis nur aus scientiva intuitiva und daher ist diese Liebe ewig, weil die scientiva intuitiva ewig ist. Nach Spinoza ist die amor dei intellectualis eben die Liebe Gottes, womit Gott sich selbst liebt; d. h. die amor dei intellectualis ist ein Teil der unendlichen Liebe, womit Gott sich selbst liebt. Durch diese intellctuelle Liebe wird der Geist mit Gott vereinigt, und Spinoza betont, daß die beatitudo, salus und liebertas in der amor dei intellectualis beste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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