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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학보 [The Korean Journal of Japanology]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국일본학회 [Korea Association Of Japanology]
  • pISSN
    1225-1453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1973 ~ 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일본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913 DDC 952
제45권 (42건)
No
31

弘法大師說話에 관한 고찰 - 「入定說話」 를 중심으로 -

李瑛雅

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제45권 2000.12 pp.409-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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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0원

眞言宗의 開組 코보다이시(弘法大師) 쿠카이(空海)는 天台宗의 開祖 덴쿄다이시(傳敎大師) 사이쵸(最燈)와 함께 平安 신불교의 개혁을 주도한 인물이다. 空海가 당에서 귀국한 뒤 開山한 코야산(高野山)에는 834년(承和2年)에 入寂한 空海가 지금도 살아있는 채로 入定에 들어가서 56억 7천만년 후 彌勒菩薩이 下生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 는「入定信仰」이 전해지고 있다. 본래 佛敎的인 意味의 「定」이란 欲에서 떠나 不善을 멀리하고 점차 禪定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空海는 不死의 몸으로 지금도「定」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入定信仰」이다. 本稿에서는「入定信仰」의 토대가 된「入定說話」의 형성과 의의에 대해서 고찰해보고자 한다. 「入定說話」의 근간을 이루는 信仰은 彌勒下生信仰이다. 生前의 空海는 彌勒上生信仰을 가졌지만 空海 死後 제자인 觀賢등에 의해 空海가 彌勒菩薩가 세상에 出現할 56억 7천만년 후까지 대중을 위해 入定에 들어가 있다는「入定說話」 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空海「入定說話」에서 보이는 彌勒信仰은 末法時代에 들어선 일본의 민중들에게 구원의 신앙으로서 자리잡게 되어 高野山을 彌勒菩薩의 淨土 도솔천으로 신앙하게 된다. 空海의 「入定說話」는 「本朝神仙傳」에서 가장 먼저 보이기 시작하는데 11세기에서 12세기사이에 완성된 설화의 형태가 갖춰졌다. 佐伯氏라는 한국 渡來人氏 출신의 空海는 일본과 견원지간의 사이인 新羅의 上人들에게 만남의 기쁨을 노래한 詩文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空海의 질녀의 아들인 天台宗 제5대 座主인 円珍이 彌勒佛을 園城寺의 本尊으로 삼고 新羅明神을 守護神로 모신 것도 空海의 영향이라고 여겨진다. 일본 미륵신앙의 발전에 있어서 한국의 영향과 그리고 空海 개인의 출신환경 등에도 불구하고 空海 「入定說話」는 민중들의 高野山 信仰과 다수의 入定者를 내는 등 日本的인 독특한 신앙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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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0원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양석일의 작품들은 연작 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그 내용은 작품 제명에 잘 상징되어 나타나고 있다. 즉 미로와 같은 일본사회를 질주한다는 의미의「미주」에서 작가는 사회와 인간들의 모습을 통해 일본사회 여러가지의 병리 현상을 파헤치고 있다「공동생활」에서는 일본 사회의 밑바닥 계층에까지 존재하는 조선인 차별은 구조적이고 맹목적이고 생리적인데, 일본인들의 내면에 잠복해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 실체를 드러내는 익명성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크레이지 호스」는 도산 직전의 회사를 통해 일본사회를 불안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동창생인 이사무를 통하여 챔피온의 꿈, 아내, 자식, 어머니를 잃은 사내가 정신질환에 시달리다 망가져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불안스럽게 바라보고 있다.「크레이지 호스」2 역시 정상에서 일탈한 사람들을 등장시켜 허식에 감춰진 일본사회의 참 모습을 파헤친다. 회사의 도산후 화재 발생시 세차장 노인의 분신자살을 상정함으로서 그를 방치하는 사회를 고발하고 다시 분신자살이 착각임을 통하여 강한 생명력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양석일의 작품은 사회의 부조리와 산업사회에서 소외되고 파멸되어 가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통해 일본 사회의 허식을 벗겨내고 있다. 이처럼 강열한 메시지는 자신의 체험을 아무런 가식없이 정확하고 세밀하며 감각적으로 그려낸 그의 문체와 더불어 독자를 사로잡고 있다. 그런데 이들 작품은 민족의식만을 고집하던 종래의 재일 동포문학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는 일본 사회와 동포사이의 변화에서 야기된 것으로 양석일이 변화의 선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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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타 야스나리(川鍴康成)의 「호수(みづうみ)」의 세계

林種碩

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제45권 2000.12 pp.443-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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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00원

『호수(みづうみ)』는 주인공 모모이 긴페(桃井銀平)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루어진 세계이다. 긴페는 발이 못생긴 사내인데, 이 못 생긴 발은 그의 내면의 추함과 함께 용모의 추함도 상징하고 있다. 이발은 그 추함으로 인해 오히려 미를 동경하여 미녀를 미행하게 하였다. 작품세계에는 긴페와 이성으로서 관련성이 있는 여자 다섯 명이 등장하는데, 이 중에 세 명은 긴페가 직접 미행한 여자이고 두 명은 미행과 다소라 할지라도 관련이 있는 여자이다. 긴페가 미행한 여자는 히사코 미야코·마치에의 세 명인데, 마치에를 제외한 두 명의 여자를 긴페가 미행한 것은 물론 아름다움을 동경하여서이지만, 이 두 명의 여자는 마성의 여자로서 魔氣를 내품어 긴페로 하여금 자기들을 미행하도록 하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마치에는 聖少女였기에 작품의 세계에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었으며, 유나는 긴페의 시녀가 되어 그에게 패러다이스를 제공해 주었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호수」는 긴페의 모성의 상징이요, 그가 결국 돌아가야 할 영원한 고향의 상징이다. 아니, 어쩌면 호수는 그에게 있어 자신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深淵인지도 모른다. 막연하게 동경하여 자기 인생의 종착점으로 하고 싶은 밑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 그것이 그에게 있어서의 호수인지도 모른다. 하여튼 호수는 이 소설「호수」의 세계의 主調音을 이루어 작품세계 전면에 걸쳐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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芥川龍之介の「西方の人」論 - <3 聖靈> をめぐて -

林薰植

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제45권 2000.12 pp.465-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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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0원

「西方の人」は,イエス·キリストに關する芥川龍之介の見解の書であると言える.その中の第三章$lt;聖靈$gt;において芥川は,キリスト敎における聖靈の意味とは懸け離れた彼一流の聖靈論を展開していた.そのような芥川の聖靈論の意味を,主に注釋的に考察することに本稿の目的がある.その考察の結果,芥川は$lt;聖靈$gt;を人生に동く偶然という$quot;運命$quot;として捉えて,イエスの一生に投影していたことが分かった. つまり,凡俗の母から生まれた$quot;運命の子$quot;イエスは,運命的に聖靈の支配を受けつつ苦難の人生の通を步んでいったと思う.偶然による運命的な出生に對する芥川のこのような視角は,バプテスマのヨハネとイエスとの出生の比較とか,ロンブロ-ゾの天才狂氣說の引用にも現れていた.要するに芥川は,聖靈は$lt;聖なるもの$gt;ではなく,$lt;永遠に超えんとするもの$gt;と主張して,イエスを聖靈に支配されている人物に描いたが,これは人間の人生に絶對的な影響を及ぼす$quot;運命$quot;を秉り越えようとする芥川の凄絶な足搔きの象徵的を表現であったと思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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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方の人」は,1927年7月10日書き終え,同年「改造」8月號に揭載した.次に書かれた「續西方の人」と共に,このクリストに關する評論がまさに芥川龍之介の最後の「遣書」になった. 「西方の人」「續西方の人」は硏究者により,さまざまの角度から分析されてきたが本稿では,特に兩作品を分けて別の作品として取り上げて見たいと思う. そのためにまず「西方の人」だけを中心にして考察する.すなわち,芥川の注目したクリストの十字架の意味は何であり,クリストのジャ-ナリズムや復活の意味は何であるかである.これらの考察を通してイエスはなぜ芥川の「わたしのクリスト」になり得たのかを考えて行きた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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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0원

지금까지 다니자키의 작품은 대개 예술적인 차원에서 연구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의 최대의 장편「사사메유키」역시 시대상황과는 무관한 미적 세계를 중심으로 연구되어 왔다. 그러나, 이 작품은 태평양전쟁이라는 군국주의가 난무하던 시대에 집필되었으며 작품의 배경도 중·일 전쟁에서 태평양전쟁 전까지로 전쟁이라는 시대상황과 유리되어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다니자키는 이러한 시대상황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작가로 파악되어 왔으나, 군부의 요청에 의해 일본이 싱가폴을 함락한 다음날 방송원고로 쓰여진「싱가폴 함락에 즈음하여」와 일본문학보국회의 제창에 응해서 쓴「莫忘想」에는 일본의 침략행위를 성전수행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가미가제를 절실히 기다리는 형제의 대화내용을 싣고 있다. 이것은 다니자키 全文學 활동중에서도 이례적인 것으로 戰時라는 비상시국에 대처해야 했던 작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의 글인 것이다. 또한, 그의 회고록이나 수필을 통해서도 어두운 시국이 작품에 영향을 미쳤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따라서, 필자는 다니자키가 시국에 무관하다는 종래의 시각과는 달리 시대상황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작품에 반영시키고 있다는 관점에서 고찰해본 결과 작품 속에 등장인물인 러시아인과 독일인을 통해서 일본숭배, 천황찬양, 동멩국간의 연대 의식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리고 전형적인 일본여성이며 깨끗한 이미지의 유키코의 옹호는 깨꿋한 내용만을 써야 했던 시대상황과 무관하지 않으며 이러한 시대적 요구가 작가의 인식을 통해 작품 속에 반영되어 나타났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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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0원

시대적 붐을 타고 집필된「만주/조선의 이모저모」이란 작품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직접적인 체험기로서 당시의 일기 서간 등과 함께「조선/중국인」에 관한 나쓰메의 생각을 짚어 보는데 매우 유효한 자료라 하겠다. 이 여행에 앞서 나쓰메는 2 년여간의 런던 생활을 경험하는데 당시 나쓰메가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 정책에 대해 강한 반발심을 느꼈다는 것은 메이지 34·5년경의 일기와 서간을 통해서 확인된다. 이를 계기로 나쓰메가 일본의 근대화 및 동양과 서양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많이 생각하게 되고 상대주의자로 성장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겠다. 이에 비하면「조선/만주」여행은 당시 나쓰메에게 일상으로부터 탈출이란 가볍고 짧은 여행인 점도 있어서 오랫동안 나쓰메 연구자들에게 큰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최근 몇몇 논자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국민작가로서 명성이 높은 나쓰메를 무작정 감싸고 보려는 듯한 논조가 많은 것을 보면「만한」을 둘러싼 논란은 좀더 지속될 것 같다. 어쨌건「조선/만주」여행은 짧았지만 나쓰메 세계관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점이 인정되는데 무엇보다도 이 여행이「조선/만주」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이 최고조에 달했을 무렵에 행해진 것으로 나쓰메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무엇을 보고자 했는지가 흥미롭다 하겠다. 본고에서는「만한」에 나타난 나쓰메의 이국/이국인에 대한 생각이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과연 균형이 잡힌 상대주의자 또는 평등주의자의 것으로 볼 수 있는지를 런던 유학 중에 남긴 여러 가지 자료와 함께 비교 분석해 보았다. 이 때 나는 아무리 나쓰메라 할지라도 한번 확보된 상대주의적 시선이라는 것은 입장이나 상황이 바뀌면 변할 수 있다는 점을 기본 생각으로 삼았다. 그 과정에서 나쓰메는 서구 열강과 일본의 관계에서는 철저히 상대주의자적 면모를 보여 주면서도 일본제국과 아시아 제국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전혀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독자들을 차별적 시선으로 유도하는 표현을 일삼아 결국 입장 변화에 따라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마는데 이러한 나쓰메의 모순된 일면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지적했다. 그러나 당시 대개의 지식인이 서양화=근대화란 틀에 집착하여 단지 수박 겉 핥기 식의 외적 개화에 들떠 있을 며 나쓰메는 드물게 상황을 비판적으로 주시한 지식인으로 일본인/일본문화에 의한 독자적인 내적 근대화를 주창하고「자기」를 중심에 둔「자기본위」의 세계관을 구축하려고 했는데 이러한 나쓰메의 자각과 노력은 마땅히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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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0원

아쿠타가와의 중기 기독교 관련 작품 중 마지막 작품에 해당하는「南京의 그리스도」는 강림한 예수가 어린 창녀의 매독을 치유한 기적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어,「현대의 신화」나「현대의 우화」혹은「메르헨」등으로 규정되곤 한다. 본 논문에서는 과연 본 작품에서 그려진 주인공의 병의 치유가「신앙의 기적」으로 밖에 해석될 수 없으며, 그것이 기적이 아닐 수 있는 근거는 찾아 볼 수 없는가를 의문으로, 함축적인 표현내용에 유의하며 각 장면의 의미 분석을 시도해 보고자 한 것이다. 그 결과, 본 작품은 현실의 논리에 거슬러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금화의 신앙과 함께 현실에서의 사랑을 꿈꾸는 그녀의 잠재된 갈망이 결국 좌절을 맞게되는 사건을 전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거기서 드러나는 것은 한 어린 창녀의 지극히 인간적이라고 할 願望을 결코 허용하려 않는 냉혹한 현실이었으며, 그녀가 믿은 기적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본 작품에서 다루어진 사건을 현실의 논리에 의거한 합리적인 해석을 거부하는 기적으로는 읽을 수 없다. 아쿠타가와는 좌절된 금화의 願望의 이야기를 통하여, 사회적으로 가장 낮고 약한 자의 인간적 욕구의 충족을 허용치 않는 현실의 냉혹함을「생의 잔혹한 진실」로서 제시하고 있으며, 신앙은 그러한 현실을 견딜 수 있는 희망을 선사할 수는 있으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직접적인 힘으로 작용할 수는 없음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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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戶幕府의 帶刀統制와 帶刀政策의 전환

구태훈

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제45권 2000.12 pp.54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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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0원

17세기 중기는 에도 막부의 정책이 무단통치에서 문치정치로 전환하였던 시기였다. 이러한 정치의 전환과 궤도를 같이하여 막부의 대도통제 정책도 질적으로 크게 변화하였다. 막부는 17세기 전기에는 大刀·大脇指의 단속에 초점을 맞추어 대도를 통제하였다. 그것은 大刀·大脇指가 당시의 사회 질서를 문란하게 하였던「가부키모노」를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가부키모노」의 탄압과 관련하여 통제하였던 것이다. 17세기 중기에 이르면 사회질서가 안정되었다. 또 막부의 지속적인 탄압의 결과「가부키모노」는 점차로 소멸하게 되었고, 大刀 ·大脇指로 상징되던 그들의 풍속도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러자 막부의 대도통제 정책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막부의 대도통제 정책은 닌 문제와도 깊은 관련성이 있었다. 17세기 중기에 이르면 로닌은 더 이상 막부에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으나, 그들은 죠닌 사회의 일원이 되어서도 계속 대도를 하고 있었다 17세기 후기에 이르러 신분제 사회가 확립되면서 막부는 이들 帶刀人을 파악할 필요성에 직면하였다. 17세기 중기는 무가사회의 질적으로 변화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年期奉公人이 일반적으로 성립되었고, 그 수도 증가하였다. 그들의 증가는 도시의 대도 인구의 증가를 의미하였다. 그들은 신분적으로는 비록 서민이었으나 무가사회의 일원이 되면 그 직분에 따라서 帶刃가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는 일시적으로 실업한 자들도 일상적으로 대도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막부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들을 통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대도를 기준으로 하는 방법이 가장 유용하였다. 막부가 17세기 전기의 치안 유지에 중점을 둔 정책에서 신분질서 유지에 중점을 둔 정책으로 전환하였던 배경에는 이와 같은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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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代日本文人의 韓國人識 - 淸日戰爭에서 韓日合邦까지 -

柳相熙

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제45권 2000.12 pp.559-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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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일본인의 대부분은 한국인에 대하여 우월감과 경멸감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한국 침략·지배를 당연시하고 편견없는 한국관을 이단시하였다. 최고의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문인들도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동소이했다. 본고에서는 明治期의 문인들 중 비교적 거시적 안목으로 나름대로 동시대적 限界에 도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5인을 골라 고찰해 보았다. 우치무라 간조가 청일전쟁 이후 非戰論을 주장한 것은 한국침략을 반대해서가 아니라 무력침략보다 경제적 침략이 효과적이고 평화적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따라서 그의 기독교 정신에 의한 四海同胞主義도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찬성하였으며, 특히 ‘滿韓旅行`을 계기로 제국주의에 대한 의식이 크게 변하였다. 그의 의식의 변화는 작품에도 반영되어, 종전의 정부·사회비판, 문명비판이 사라진 반면 시선을 내부로 돌려 오로지 인간의 에고이즘 천착에 진력하였고, 한국이나 만주는 항상 어두운 이미지로 묘사하였다. 기노시타 나오에의 논설문「敬愛하는 朝鮮」은 고토쿠 슈스이의 것으로 오인된 경우가 많은데, 나오에는 이 社說에서 청일·러일전쟁을 침략전쟁으로 규정하고 조선민족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신뢰하였다. 그는 청일전쟁부터 일관되게 극렬한 반전운동과 체제비판을 했으나, 한계를 느끼고 중도에 후퇴하였다. 그러나 그의 올바른 한국인식과 미래에 대한 통찰력은 유례없는 것으로서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다카하마 교시의 르포소설「朝鮮」은 한국민에 대한 연민의 정은 배어 있으나, 일본의 한국지배를 부정하지 않아 당시의 조선총독 데라우치의 사례를 받을만큼 식민지정책에 일조한 작품이다. 다쿠보쿠는 강한 감수성과 내셔널리즘의 소유자로 반전론을 맹렬히 비난하고 이토 히로부미를 지극히 존경하는 동시에 "조선지도에…"라는 短歌를 지어 `亡國` 한국에 대한 동정을 표했다. 그러나 그가 한일합방을 반대하거나 애도한 것으로 보는 것은 지나치다. 그는 자주 亡國에 대한 관심과 동정을 표명하였는데, 이는 그의 강한 내셔널리즘의 반증이다. 그가 `大逆事件` 이후 제국주의의 폭력에 저항한 것은 감수성 강한 애국청년의 진정한 애국심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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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일당우위체제의 붕괴에 관한 試論

이성환

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제45권 2000.12 pp.577-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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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0원

본 논문은 1993년 자민당 일당 우위 지배 체제가 붕괴하는 과정과 요인을 냉전체제의 붕괴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 정세의 변화에 대한 자민당 정치의 부적응이라는 관점에서 재검토 한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는, 주로 정치 부패 스캔들 등 국내적 요인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록히드 사건을 비롯해 많은 정치 부패 사건이 과거에도 수 차례 반복되었으나, 자민당 정권이 유지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정치 부패와 그에 따른 정치 불신만으로 자민당 정권의 붕괴를 완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역설적으로 이야기하면, 과거 수 차례의 정치부패 스캔들에서 보는 바와 같이, 냉전의 붕괴라는 외부적 환경 변화가 없었다면 자민당 장기 집권 체재는 붕괴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리도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냉전체제라는 국제 환경이 사라지므로서, 국내적으로는 이데올로기적 체제 선택론이 현실적 의미를 상실하고, 국민들의 정당 선택의 유동성이 커졌기 때문에 정치 부패라는 코스트를 지불하면서까지 자민당 장기 집권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경제의 국제화에 의해 자민당 지배 시스템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던 이익배분 시스템도 효용 가치를 상실하므로서, 지지기반에 대한 균열 현상도 나타나게 되었다. 1989년 참의원 선거의 결과는 자민당의 일당 지배 체제와 외부적 정치 환경 변화의 괴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걸프전의 대응, 정치 개혁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 후에도 자민당은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함으로서 국제 정치·경제적 변화와 유권자의 요구에 부응할 수 없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1993년 7월 총선거에서 자민당은 과반수 획득에 실패하게 된 것이다. 물론 자민당 정권 붕괴의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은 미야자와 정권의 정치 개혁 실패에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그것은 냉전의 붕괴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서 나타난 자민당 정치 시스템과의 부적응의 표출이었다.

42

4,900원

이 글은 일본 촌락사회에 존재하는 `고(講)`와 동호회(同好會)에 대해 그 실상을 가능한 한 자세히 기술하고, 임의결사라는 조직이나 집단론적 시각에서 결사의 성원이라는 자격이 가지는 의미, 결사의 사회통합적 의미와 기능 및 사회적응적 특성을 분석한 것이다. 그 결과 첫째 임의결사는 크게 나누어 이에(家)와 세대(household)를 단위로 한 것과 연령이나 세대(generation), 성별을 기준으로한 것으로 나뉘어지며, 둘째 새로운 사회적 상황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변형시키는 적응성이 풍부하며, 셋째 결사조직의 분석을 통해 일본적 횡적 관계의 전형을 규명할 수 있으며, 넷째 촌락사회에서 관찰되는 여러 형태의 결사조직은 현대 일본인의 다양한 삶의 방식과 가치관, 연대와 통합의 형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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