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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孔)・맹(孟)・순(荀)으로 대표되는 선진 유가는 정치 영역과 윤리・도덕 영역을 동일한 선상에서 고려했다. 그들은 통치자와 지배 계층이 자기 수양과 자기 절제를 통해 도덕적으로 성숙한 인격자가 되어야 하고, 법과 제도보다 덕과 교화를 통해 정치적 행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유가적 정치사상에서 ‘덕(德)’과 다양한 덕목들은 통치자나 지배 계층의 자기 수양뿐만 아니라 정치 행위에서 논의되는 핵심 개념들이다. 그러므로 선진 유가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논의 속에 등장하는 ‘덕(德)’과 덕목들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논문에서는 우선 『논어』, 『맹자』, 『순자』에서 ‘덕’이 어떤 개별적 덕목들을 포괄하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전체적 이해로 나아가는 하나의 단계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러한 문헌들에서 ‘덕’ 개념의 포괄적 측면을 분석해보면, 공・맹・순의 ‘덕’ 개념이 행위 경향에서 (도덕적) 성품으로, 나아가 성격 특질까지 의미하는 하향적 확장의 길을 걸어갔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공・맹・순의 마음에 대한 관심의 깊이와 차이를 반영한 것이다.
The pre-Qin Confucianism represented by Confucius, Mencius and Xunzi regards that politics is connected with morality. According to them, a ruler and the ruling class should be virtuous by means of self-cultivation and temperance and run the government with virtue and moral edification rather than law and institutions. In the Confucian ideas, the term 'de' and other virtues are critical concepts in the moral cultivation of the ruler or the ruling class as well as in their political actions. In order to understand the pre-Qin Confucianism, it is accordingly necessary for us to grasp the concept of 'de' and other virtues. Therefore, this article attempts to examine what specific virtues the term 'de' encompasses in the Analects, the Mencius, and the Xunzi so as to present a more comprehensive picture of the concept of 'de' and particular virt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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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인간의 삶속에서 항상 존재하는 우환(憂患)을 어떻게 해결하고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 『역』의 관점에서 서술한 것이다. 우환에 대한 이해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필자는 『역』의 관점에서 우환을 해결하는 방법을 세 가지로 제시했다. 첫째, 기미(幾微)를 아는 것이다. 둘째, 시(時)와 위(位)를 살피는 것이다. 셋째, 경계(警戒)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기미를 알고서 시와 위를 살피고 자기에게 처한 모든 상황을 경계하면, 우환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을지라도 줄일 수 있다. 더 나아가 우환의 문제는 길흉(吉凶)의 문제로 환원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환을 근심하는 까닭은 흉을 벗어나 길로 향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우환의 문제는 길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흉하게 될 가능성에 대해 걱정하는 마음과 지금 흉의 상황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서 생겨나는 문제이다. 결국 우환의 문제는 흉의 문제로 귀결된다. 우리는 흉 자체가 나쁘지만, 어쩔 수 없이 닥쳐오는 경우에 받아들이거나 이겨내려는 긍정적인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더욱 성숙한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역』은 그 자체로 흉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흉을 제거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인간의 태도와 의지를 요구할 뿐이다.
本论文在《易》的观点上探讨如何理解和消除生活当中遇到的各种忧患的问题。感悟忧患与人的生活息息相关。笔者从《易》的角度提出解决忧患问题的三种方法。第一,把握幾微;第二,观察时位;第三,时刻警戒。如果我们能够及时把握幾微,观察时位,警戒自己,那么,即使没有完全消除忧患,也可以最大限度地减少忧患。忧患问题是一个吉凶问题。这是因为忧患正是要避凶趋吉。但是,其实忧患的問題并不是个趋吉的问题,它是一种对于未来凶兆的担忧及其当前急于避凶的心态。所以,忧患问题归根到底是一个避凶的问题。凶本身固然不好,但在万不得已的情况下,我们还是要坦然面对和积极去克服它,只有拥有这样一种积极的人生态度,我们的生活才能更加趋于圆熟、完美。由此可见,《易》本身并不是消除凶,而是提供一个消除凶的方法,并要求人们培养正确应对凶的态度和意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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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불교계에서 인간의 존재론적 본질 문제에 대한 본격적이고 집중적인 탐구의 대표적 사례로는 한말위진기와 남북조기, 그리고 당대후기에 전개된 논변이 유명하다. 이 글의 중심주제는 인간의 존재론적 본질로서 정신의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된 이 세 시기의 논변에 초점을 맞추어 비교론적 관점에서 고찰하는 것이다. 작업과정에서는 각 논변에 보이는 불교 내・외적 정합성과 설득력에 주목하면서 이들 인간이해의 특징과 한계를 고찰함으로써 불교 인간론의 중국적 전개과정을 확인하였다. 인도 전래의 인간관에 대한 당시 중국지식인 사회의 반응은 호의적 관심과 부정적 비판으로 크게 양분되며, 이 두 길은 끝내 만나지 못하고 평행선을 긋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난제는 윤회의 주체 문제였으며, 무아론에 토대한 인간관과 윤회설 앞에서 중국인의 불교 수용은 난관에 봉착한다. 정신을 육체와 독립적인 것으로 분리함과 동시에, 다시 정신을 본체와 작용의 두 영역으로 나누어 본체 영역의 불변상속성을 주장하거나, 정신 내지 영혼의 본질로서 지(知)에 주목하여, 그 궁극의 양태로서 열반・법신・불성을 상정함으로써 정신의 불멸성을 확보하여 윤회응보 교설의 진리성을 논증하는 방식, 이것이 중국 불교도들이 찾아낸 해법이었다. 불교 수행론의 진리성 역시 여기에서 확인되며, 중국 전통사상에 대한 불교의 차별성과 우월성도 이 지점에서 확인한다. 다만 이러한 이해는 회의적 시각에서 불교에 제기된 비판에 대한 답변으로도 불충분한 것이었을 뿐 아니라 불교교리 내적으로도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것이었다. 회의론자들의 요구는 육체에 대응하는 정신・영혼의 불멸성 증명이었으며, 열반・법신・불성으로서의 정신 내지 그것의 불멸성 증명이 아니었다. 중국 불교도들의 이해는 무아설 내지 무아윤회설의 후퇴라는 내부적 비판 역시 피하기 어려웠다. 불교에서 열반・법신・불성의 관념은 무아론의 토대 위에 있는 것으로 이를 곧바로 불멸의 정신과 결부시키는 것은 쉽지 않으며, 여기에는 불교가 극복하고자 했던 정신의 실체화 내지 본질주의로의 회귀라는 혐의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물론 이같은 한계 자체는 중국심성론 전개에 대해 불교심식설이 갖는 의의 문제와는 무관한 것으로 불교심식설이 끼친 영향력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유아론적 인간관 내지 윤회설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철학적・종교적 기능이 예상되는 것이다. 불교의 초기 전래와 해석 단계에서 일종의 비의도적 과실의 결과로 형성된 인간관과 윤회설은 교리적 차원에서의 무아론과는 별개로 중국에서 일반화된다. 이러한 사정은 종밀에게서 일종의 의도적 과실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 이념적 차원과 현실적 차원의 이중성은 다시 확인된다. 중국불교도들이 처한 특수한 상황과 고뇌가 확인되는 지점이다.
中國佛敎界において人間の存在論的本質の問題に対する本格的で集中的な探究の代表的事例としては、漢末魏晉期と南北朝期、そして唐代後期に展開された論辯が有名である。この論文の中心主題は人間の存在論的本質として精神の問題をめぐって展開されたこれら論辯に焦點をあわせ、比較論的觀點から考察することである。作業の過程では各々の論辯に見られる佛敎內・外的整合性と說得力に注目しながら、これら人間理解の特徵と限界を考察することによって佛敎人間論の中國的展開過程を確認した。印度傳來の人間觀に対する中國知識人社會の反應は好意的關心と否定的批判に大きく兩分され、この二つの道は遂に会うことなく平行線を引くものと見られる。最も大きな難題は輪廻の主體問題だったのであり、無我論に基づく人間觀と輪廻說を前に中國人の佛敎受容は難關に逢着する。精神を肉體と獨立的なものに分離すると同時に、さらに精神を本體と作用の両領域に分け、本體領域の不變相續性を主張するや、精神ないし靈魂の本質として知に注目し、その窮極の樣態として涅槃・法身・佛性を想定することによって、精神の不滅性を確保し、輪廻應報說の眞理性を論證する方式、これが中國佛敎徒たちが見い出した解法であった。佛敎修行論の眞理性もまたここから確認され、中國傳統思想に対する佛敎の差別性と優越性もこの地點から確認する。ただ、このような理解は懷疑的観点から佛敎に提起された批判に対する答辯としても不充分なものであったのみならず、佛敎敎理內的にも正當性を認定されかたいものであった。懷疑論者たちの要求は肉體に對應する精神・靈魂の不滅性證明であったのであり、涅槃・法身・佛性としての精神ないしそれの不滅性證明ではなかったのである。中國佛敎徒たちの理解は無我說ないし無我輪廻說の後退という內部的批判からも逃れかたいものであった。佛敎において涅槃・法身・佛性の觀念は無我論に基づくもので、これを直ちに不滅の精神と結び付けることは容易でなく、ここには佛敎が克服しようとした精神の實體化ないし本質主義への回歸という嫌疑がつくからである。佛敎の初期傳來および解釋の段階で一種の非意圖的過失の結果として形成された人間觀と輪廻說は、敎理的次元での無我論とは別に中國で一般化される。このような事情は、宗密において一種の意圖的過失の過程を経ながら、その理念的次元と現實的次元の二重性は再び確認される。中國佛敎徒たちが置かれた特殊な狀況と苦惱が確認される地點である。
대만 근대불교의 형성과 정체성 모색 - 仁順의 ‘인간 불교’ 개념을 중심으로 -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61집 2011.06 pp.9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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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인순(仁順, 1906-2005)의 ‘인간 불교’ 개념을 중심으로, 대만 근대불교의 성격과 정체성을 찾아보려는 것이다. ‘인간 불교’는 중국 근대시기 태허가 최초로 제기하였고, 그 이후 인순이 구체적으로 발전시키고 특히 대만에서 실천적으로 계승하게 된 개념이다. 중국 전통불교가 ‘산중 불교’ 성격을 띤 데 반하여, ‘인간 불교’는 세속의 현실 참여, 현실 개혁의 성격을 띠고 인간 사회와 문화에 관여하는 참여 불교이다. 인순은 불교는 본래 ‘인간’이어야 하고, 내생이나 귀신, 인간 외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현실과 인간 그 자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여기에서 불교는 인간학으로 성격지워지게 된다. 그는 불성의 완성은 자기 속의 인성에 의지하면 그 결과로 불성에 도달하게 된다고 보았다. ‘인간’을 의지하고 ‘인간’에서 출발하는 것이 불성을 완성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 인순의 ‘인간 불교’의 기본 구도이다. 그는 또한 불교에는 일반적인 도덕과 상통하는 요소 외에 불교만의 특색있는 도덕이 있다고 보았다. 일반적인 도덕인 자비는 유학의 ‘인자(仁慈)’, ‘인애(仁愛)’와 상통하지만, 또다른 불교화된 도덕은 반야에서 이끌어낸 대자대비로서 다른 사상과 공통되지 않는다. 그는 인간 불교가 세속적이며 현실적이고 인생 중심이므로 일반적인 도덕과 크게 다르지 않는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실제로는 더 깊은 차원의 '무아'의 지혜를 언급함으로써 인간 불교가 단순히 세속의 도덕으로 추락하는 것에는 반대하였다. 또한 그는 종교의 역할을 자기 강화와 자기 정화, 두 측면으로 보았는데, 이것은 그의 인간 불교가 갖는 근대성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자기 정화와 자기 강화를 함께 가지고 있는 이 ‘자아의 종교’에 ‘평등’과 ‘자유’가 포함된 것은 명백히 근대 민권론의 영향이다. 그는 이러한 자아 종교에 불교는 물론 기독교, 회교, 인도 베단타교 등을 모두 포함시키고 있다. 이것은 그가 기존 종교의 테두리에 제한되지 않고 종교의 핵심을 ‘인간’ 자신에게 두는 열린 시각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 불교와 유학의 관계 역시 ‘지관(止觀)’과 ‘격물치지’의 회통을 말함으로써 근본적으로 일치한다고 보았다. 인순의 이 ‘인간 불교’는 아시아 근현대 불교를 대표할 만한 개념으로, 대만 뿐 아니라 향후 한국・중국・일본 등 전 아시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여겨진다. 아시아 근현대불교의 역할은 산중 불교가 아닌 인간 중심의 현실참여 불교일 것이기 때문이다.
The aim of this paper is to research the contents of Yin Shun's(仁順, 1906-2005)' 'The Human Buddhism'. 'The Human Buddhism' is the concept brought up by Tai Xu(太虛) for the first time, and then developed further by Yin Shun, especially in Taiwan. Chinese traditional Buddhism has a character of a 'mountain Buddhism', but on the other hand 'the Human Buddhism' possess a character of participation in real life. That is, 'The Human Buddhism' is participative Buddhism concerned in human society and culture. Yin Shun insisted that Buddhism was originally 'human', and should watch with deep concern Human itself, not the life after death, the outside of Human. Here Buddhism was identified as a scholarship of Human. He argued that if one rely on 'the human nature'(人性) in oneself, he or she would acquire 'the Buddha Nature'(佛性). The structure of 'the Human Buddhism' is that the way to accomplish the Buddha Nature is to rely on 'Human', and start from 'Human'. Besides this, he insisted that there are two senses of morality, general morality and special morality of Buddhism. He thought that 'the Human Buddhism' was worldly, practical and had a humane center, so it was not different from general morality. But he opposed that 'the Human Buddhism' merely go down into worldly morality, by insisting the wisdom of 'non-self'(無我). Also he thought the role of religion had two sides, self-reinforcement and self-purification, under the influence of the modern asserts of the people’s rights. This 'self religion' involved the concepts of 'equality' and 'freedom', and this fact was owing to the asserts of the people’s rights. He included Buddhism, Christianity, Islam, and Indian Vedanta Philosophy. It means he showed his open mind to all religions and didn't limit it to a framework of ready-made religions. As a matter of course he emphasized Confucianism and Buddhism were identical fundamentally, based on the same concept. This concept of Yin Shun's 'The Human Buddhism' represents Asian Modern Buddhism. It finds that 'The Human Buddhism' will play an important part in the whole of Asia including Korea, China, and Japan. I argue that the role of Asian Modern Buddhism is 'participative Buddhism', not 'mountain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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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일체유부는 객관 대상에서 인식의 조건을 찾았다. 경량부는 외경을 추리에 의해 요청하였고 유식학파는 연속하는 마음의 흐름에서 지각의 조건을 구했다. 설일체유부는 외경 실재론으로서 무형상지식론으로 대표되며 경량부와 유식학파는 인식 주관에 관해 논의하는 유형상지식론의 입장에 서있다. 그런데 외적인 대상의 존재성을 부정해서 인식 주관만을 인정하는 인식 실재론의 유식학파의 경우 인식이 어떤 계기로서 생기하는가라는 문제에 직면한다. 그 문제를 해소하는 이론으로서 유식학파는 종자의 공능이라는 개념을 설정한다. 짠드라끼르띠는 공능에 관한 비판에서 인식 발생에 있어서 대상이 있는가 없는가를 논증하지는 않는다. 그는 공능이 성숙하는가 성숙하지 않는가를 바탕으로 논의하고 있다. 짠드라끼르띠는 상대의 논리에 즉해서 논지를 전개한다. 그는 부정의 형식을 통해 인식상의 혼돈만을 배격한다. 혼돈이란, 비유하자면 실재하지 않는 머리카락과 같아서, 배격되어도 우리의 삶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역설적이지만 혼돈이 언어에서 기인했어도 언어에 의해서 혼돈은 배격될 수 있다. 그것을 배격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가 무자성이다. 이 말은 단지 실체론의 크기에 비례하는 ‘그림자’처럼 실체적인 이해가 사라지면 그 기능도 없어진다. 그래서 무자성은 자립적으로 성립하는 이론이 아니다. 이상의 논의는 설일체유부에서 경량부를 거쳐 유식학파까지 연속하는 인식론의 전개와 발전을 거친 결과물이다. 그리고 유식학파 비판은 바바비베카와 다르마팔라의 공(空)・유(有) 논쟁을 잇는 두 번째 중관학파와 유식학파의 논쟁으로서 중관학파의 견해를 최고의 견해로 위치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즉 자성 없는 대상과 인식, 대상과 인식의 상호 의존은 짠드라끼르띠의 인식에 관한 입장이다. 이것은 그의 견해라기보다는 나가르주나의 중관 전통의 회복이라고 부르는 편이 자연스럽다.
説一切有部は客観対象から認識の条件を求めた。経量部は外境を推理によって要請し、唯識学派は連続する心の流れから知覺の条件を求めた。説一切有部は外境実在論として無形相知識論に代表され、経量部と唯識学派は認識主観に関して論議する有形相知識論の立場に立っている。ところで外的な対象の存在性を否定して認識主観のみを認める認識実在論として唯識学派の場合、認識がいかなる継起によって生起するかという問題に直面する。その問題を解消する理論として唯識学派は種子の功能という概念を設定する. チァンドラキルティ(Candrakīrti)は、功能に関する論議の中で認識発生において対象の有無については論証していない。彼は功能の成熟の有無を中心に論議している。チァンドラキルティは相手の論理に卽して論旨を展開する。彼は不定の形式を通じて認識上の混沌のみを排撃する。混沌とは実在しない髪の毛のようなもので、排撃されても本人の生において消えるものは何もない。逆説的であるが、混沌は言語に起因したとしても言語によって排撃されうる。それを排撃するために使う言語として無自性が用いられる。この言葉はただ実体論の大きさに比例する'影'のように、実体的理解が消えればその機能も消える。つまり、無自性は自立的に成り立つ理論ではない. 以上の論議は、説一切有部から経量部を経て唯識学派にまで連続する認識論の展開と発展を経った結果物である。そして唯識学派批判は、バーバビベカ(Bhāvaviveka)とダルマパーラと(Dharmapāla)の空・有論争を引き継く二番目の論争として、中観学派の見解を最高のものとして位置させようとする努力の一環である。すなわち自性のない対象と認識、対象と認識の相互依存はチァンドラキルティの認識に関する立場である。これは彼の見解というよりは、ナーガールジュナ(Nāgārjuna)の中観伝統の回復と呼ぶ方が自然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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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장질서에 토대를 둔 근대 시민사회에서 개인은 경제적 주체로서 자신의 삶을 오직 자신에게만 의존해야 하는 실존적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홉즈는 자기보존의 원리를 철학적으로 정당화 시킨 근대의 대표적인 철학자이다. 그는 ‘자기보존’ 문제를 개인들의 절대적인 권리로 인정하며, 새로운 정치질서를 오직 개인들의 자기보존의 권리에 근거 지운다. 홉즈는 전쟁에서 평화로의 구체적 이행을 자기보존이라는 자연적 원리로부터, 그리고 이러한 자기 보존의 원리에 의해 작동되는 이성으로부터 유추해낸다. 그는 이성을 자기보존이라는 자연적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함으로써 자연과 이성을 대립적인 것으로 이해한 근대적 사유의 이분법적 전통으로부터 벗어난다. 또한 그는 자기 보존욕망에 내재해 있는 이성의 도구성 속에서 배타적인 근대적 자아와 타자를 매개할 수 있는 실천철학적 원리를 간취해낸다. 홉즈는 인간의 자기 보존욕망 속에 내재해 있는 도구적 이성 속에서 무엇보다도 타자를 자신과 동일하게 인정함으로써 타자와의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단초를 찾아낸다. 그는 이성의 명령인 자연법을 통해 인간의 자기 보존이 타인을 지배하고, 자신의 힘을 무한히 늘리려는 욕망을 통해서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인정을 토대로 한 평화의 추구에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는 한에 있어서 홉즈의 자기 보존적 이성개념은 근대적 분열을 극복하고 타자와의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현실적 원리라 할 수 있다.
Hobbes stellt einen repräsentativen Fall für die modernen Philosophen dar, die sich darum bemüht haben, das Prinzip der Selbsterhaltung philosophisch zu begründen. Er leitet den Übergang vom Kriegszustand zum Frieden aus dem natürlichen Prinzip der Selbsterhaltung ab. Außerdem liest er aus der der Begierde der Selbserhaltung immanenten Instrumentalität der Vernunft einen praktischphilosophischen Prinzip heraus, das in der Lage ist, das exklusive Selbst mit dem Anderen zu vermitteln. Er zeigt konkret an Hand des Naturrechts als dem Befehl der Vernunft, daß die Selbsterhaltung des Menschen schließlich in dem Streben nach dem Frieden auf der Grundlage der Anerkennung des Anderen besteht. Insofern ist der Hobbs‘sche Vernunftbegriff der Selbsterhaltung als ein reales Prinzip zu erachten, welches es ermöglicht, die Zerrißenheit in der Moderne zu überwinden und die Beziehung zu den Anderen zu begrün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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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의 위기에 대한 원인의 분석과 진단 작업은 현대 환경윤리학의 중요한 논의 주제다. 이 논문은 생태계의 위기 문제와 관련하여 비판과 비난이 쏟아지는 철학의 여러 지점들 중에서 무엇보다도 프란시스 베이컨의 과학기술적 유토피아 사상에 대해 비판한 한스 요나스(H. Jonas), 마이어-아비치(K. M. Meyer-Abich), 그리고 그것을 나름대로 옹호한 로타 쉐퍼(L. Schäfer)의 입장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베이컨의 이상 혹은 과학기술적 유토피아주의가 무분별하고 무차별적이며 전제적인 인간중심주의인가에 대한 일정한 답을 시도하고 있다.
Hierbei geht es um eine kritische Frage, ob das Baconische Ideal oder die wissenschaftsgestuezten technologischen Utopia ein ruecksichtsloser Anthropozentrismus zu versthehen ist. Zu ihrer Beantwortung werden einersits die Gesichtspunkte ueber das Baconische Ideal bzw. seine wissenschaftsgestuezten technologischen Utopia von H. Jonas, K. M. Meyer-Abich und L. Schaefer betrachtet. Und dann andererseits werden einige der grundlegenden Charakteristika der Baconischen Philosophie durchgegangen. Nach meiner Auffassung kann der Fortschrittsoptimismus Bacons nicht ruecksichtslos genannt werden, weil er eine Art eine humane Anthropozentrik enthae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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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칸트미학과 아도르노미학에서 드러난 자연미와 이에 대한 미메시스로서의 예술에 대한 사고가 주체가 마주하고 있는 세계와 어떠한 의미 연관관계를 함축하고 있는지 고찰해 보는 데 있다. 칸트에게서 자연미가 지닌 의미는 주체가 자신 내부의 초감성적인 도덕적 이념의 추구를 통해 자연과 화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자연미를 닮은 예술이란 주체의 도덕성을 실현을 위해 합목적적인 세계이해방식을 드러내준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아도르노 미학에서 자연미는 주체의 영역으로 환원되지 않는 현존재 그 이상의 가능한 상태에 대한 암호이다. 그에게서 자연미에 대한 동경은 소외된 현실세계와 화해가 불가능한 세계고통에 대한 체험과 더불어 자연의 약속이라는 알레고리를 드러내준다. 아도르노에 있어서 참된 예술은 자연미에 대한 미메시스의 기관이다. 그에게 자연미를 닮은 예술은 도구적 이성에 의해 지배되고 사물화되어가는 총체적으로 ‘관리되는 사회’를 부정하는 비판적 잠재력과 자연의 약속을 실현하는 유토피아에 대한 가상을 제시하는 것이다. 칸트나 아도르노에게서 예술경험은 주체의 도구적 이성에 의해 지배되지 않고 사물화와 개념화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반성적 사고를 일으키며 현실에 대한 종속을 부정하는 심미적인 자율적 영역을 지닌다. 그것이 칸트에게서는 주체 내부의 도덕적 이념의 흔적을 보여주지만, 아도르노에게는 실현 불가능한 주체 너머의 비존재에 대한 동경을 통해 현실에 대한 저항력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Die vorliegende Arbeit stellt sich die Aufgabe, die Bedeutung des Naturschönen und die Kunst bei Adornos- und Kants Ästhetik im Zusammenhang mit der Weltsicht des Subjektes zu untersuchen. Das Naturschöne bei Kant weist auf die Spur der moralischen Idee in uns, zeigt die Möglichkeit der Versöhnung des Subjektes mit der Natur. Sie wird als die Gunst der Natur für die Beföderung der Kultur der menschlichen Natur reflektiert. Die Kunst wiederholt die bedeutenden Momente der Naturschönheit durch die Darstellung der ästhetischen Ideen. Sie verweist das zweckmässige Weltverständnis für das moralische Subjekt. Dagegen wird das Naturschöne bei Adorno als Chiffre des noch nicht Seiendes jenseits der Spaltung des Subjektes und Objektes vor der menschlichen Herrschaft gehalten. Sie deutet auf die Allegorie des Versprechens der Nautur hin. Die wahre Kunst ahmt die Naturschönheit nach, sie zeigt den Schein der Utopia und übt die potentiale Kritik gegen die verwalteten Gegellschaft aus. Die Kunst sucht die Erinnerungsspur der Mimesis des Natuturschönen, rührt die Weltschmerzen, nämlich die Wunde der Natur, die unter der Herrschaft des Subjekts vermenschlicht wurde. Die Erfahrung der Kunst bezieht sich bei Kant und Adorno auf die Unbestimmtheit und Unvergegenständlichkeit, die ständig dinghafte Realität versagt und dadurch ihre Autotomie gewinnt. Im diesen Zusammenhang mit der ästhetischen Freiheit deutet die Mimesis der Naturschönheit bei Kant auf die Spuren der moralischen Ideen im Subjekt hin, dagegen bei Adornos auf den Schein als Utopie hin, die durch die Negation der verwalteten Gesellschaft das Versprechen der Natur antizipieren läs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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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John W. Cook)은 비트겐슈타인이 1916년부터 그의 생애까지 마지막까지 윌리엄 제임스가 발전시킨 ‘중립적 일원론’을 수용했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이러한 쿡의 주장이 과연 정당한지를 검토할 것이다. 이 목표를 위해 지금까지 두 철학자들 사이의 관계를 확인하려 시도했던 저자들이 완전히 간과했던 제임스의 후기 논문들에 초점을 맞추면서, 의식에 관한 제임스와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을 비교할 것이다. 이 연구 결과들로부터, 필자는 의식에 관한 제임스의 후기 입장이 비트겐슈타인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게 하는 두 철학자들이 서로 공유하는 중요한 국면들을 밝힐 것이다. 비록 이 증거들이 제임스의 중립적 일원론을 형성하는 주요 아이디어들을 비트겐슈타인이 공유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비트겐슈타인 역시 중립적 일원론자였음을 확인시켜주지는 못한다. 쿡은 『논고』 안에 나타난 ‘유아론’과 ‘단순 대상’ 개념의 의미를 오해하면서 비트겐슈타인이 입장을 중립적 일원론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이 두 개념은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언어적 기획에 따라서 이해되어야 한다. 『논고』 이후의 경우, 쿡은 비트겐슈타인이 “‘감각자료’가 ‘물리적 대상’과 다른 종류의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BB p. 64)는 것을 근거로 그가 중립적 일원론자임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 언명을 통해 비트겐슈타인이 뜻한 바는, 쿡의 주장처럼, 감각자료에 너머의 어떤 것으로서의 이원론적 관점의 물리적 대상을 기각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 ‘감각자료’, ‘물리적 대상’과 같은 낱말에 대한 문법적 탐구를 통해 의식의 대상화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쿡의 주장처럼, 비트겐슈타인이 존재론적으로 물리적 대상을 감각자료로 환원하는 중립적 일원론을 견지했다고 결론내릴 어떠한 근거도 없다.
John W. Cook argues that from 1916 until his death, Wittgenstein had embraced ‘neutral monism’ that was originally developed by William James. To investigate whether this ascription of ‘neutral monism’ to Wittgenstein is valid, I will draw a comparison between James’ and Wittgenstein’s views on consciousness, focusing on James’ later essays, which present his mature view on consciousness by adopting ‘neutral monism’.Other authors who have tried to identify a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philosophers, have totally ignored this approach. Among the results of this research, I excavate some significant features shared by the two philosopher’s positions, which make us conclude that it is highly possible to hypothesize that the later works of James may have had an important influence on Wittgenstein’s view on consciousness. Although this evidence shows that Wittgenstein shares with James some very important ideas which serve to constitute James’ neutral monist views, it does not confirm that Wittgenstein was a supporter of neutral monism. Cook explicitly interprets Wittgenstein’s position in the Tractatus as Neutral monism, misunderstanding the meaning of ‘solipsism’ and that of ‘simple objects’ in the tractarian sense. However, both terms are supposed to be understood as Wittgenstein’s logico-linguistic commitments. In the case of the post-tractarian period, Cook argues that Wittgenstein does not think that ‘a sense-datum is a different kind of object from a physical object’ (BB p. 64). However, what Wittgenstein means by this assertion is not to dismiss the physical object of dualistic view, which is something over and above sense-data, as Cook insists, but rather to simply warn against the objectification of consciousness, as a result of this grammatical research for the words ‘I’ and ‘sense-datum’. Consequently, there is no reason to conclude that Wittgenstein maintains a neutral monist view, ontologically reducing physical objects to sense-data, as Cook insists.
7,200원
이 논문은 자아의 동일성에 대한 철학적 분석이다. 자아의 동일성을 논문의 주제로 택한 이유는 우리들의 삶이 다른 누가 아닌 나 자신의 행복과 불행, 나의 슬픔과 기쁨에 연관되어 있으며, 이 세계는 나의 세계일 때만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동일성이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관심을 갖는 자아가 지금 이 순간의 나뿐 아니라 과거 그리고 미래와 연관되는 자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 속에서 동일성을 유지하는 자아가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는 우리에게 중요하다. 그러나 1장에서 제시하였듯이 우리의 변화하는 삶 속에서 동일하게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는 나의 동일성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문제는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 특히 유전 공학과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통하여 예상되는 뇌이식, 뇌양분, 복제 등의 상황 속에서 자아의 동일성이 어디에 있는가하는 것은 진짜 철학적 문제가 된다. 이 철학적 문제을 해결하기 위해 2장에서는 자아의 동일성의 기준을 평가하고 검토하기 위한 두 가지 틀을 제시한다. 첫째는 동일성에 대한 개념 분석이다. 동일성에 대한 분석은 동일성의 개념들이 서로 다른 유형-수준(type-level)에서의 같음을 포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한 시점 t1에서의 a가 a와 같다는 동일성이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사물들의 동일성과 혼돈됨으로써, 많은 철학적 문제가 발생했으며 특히 자아의 동일성 문제에서도 언제나 불변하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이끈 계기가 되었음을 시사한다. 둘째는, 비트겐슈타인의 가족유사성의 개념을 토대로 한 언어의 본질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변화 속에 불변하는 것으로서 어떤 것을 그것으로 만드는 것은 형상 즉 본질이라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주의이다. 그러나 사실상 이 본질주의를 뒷받침하는 것은 언어의 본질주의이다. 즉 어떤 대상을 지칭하는 단어에는 모든 시간적 흐름과 변화 속에서도 유지되는 고정 불변의 의미가 있으며, 이것이 곧 그 대상을 대상이게끔 해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언어의 본질주의를 논박하고 있는 것이 가족유사성이라는 개념을 토대로 한 비트겐슈타인의 사용으로서의 의미론이다. 이 의미론이 자아를 포함한 모든 일반 명칭에 적용됨을 밝히고 본질주의를 포기하더라도 의미는 유지됨을 보여줌으로써 자아의 개념이 고정 불변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상황에 따라 유의미하게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3장에서는 자아의 동일성에 대한 대표적 대안들이 제시된다. 데카르트의 직접적으로 인식되는 정신적 실체로서의 자아, 로크의 기억, 흄의 관념의 다발로서의 자아. 에이어의 육체로서의 자아가 자아의 동일성 기준에 대한 대표적 대안으로 제시된다. 그리고 4장에서는 2장에서 제시된 분석의 틀을 경계선상의 경우들에 대입하면서 위의 기준들 중 어느 것이 적합한가를 검토한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의 가족유사성의 개념을 자아의 동일성의 문제에 적용하면, 자아의 동일성을 부여하는 어떤 고정 불변한 것이 있다는 믿음은, 자아라는 개념에 어떤 불변하는 본질이 있다는 언어적 본질주의에 기원함을 재확인한다. 그러므로 만약 언어적 본질주의가 타파되었다면, 자아의 동일성은 항상 고정적이며 따라서 그 개념에 포섭되는 대상은 확정적이라는 믿음도 타파될 수 있다는 것이 발견된다. 이러한 발견은 자아의 동일성이 정도의 문제일 수 있다는 주장을 정당화해줌으로써 자아의 동일성은 심리적 연관성의 정도에 따라 규정된다는 모델이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5장에서는, 예견되는 비판에 대한 답변을 통해서 이러한 자아의 동일성에 대한 대안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철학적 가치가 음미된다.
This thesis is the analysis of Self-Identity. I chose the theme because we are all concerned with our happiness and unhappiness, sorrow and joy as ourselves. The Self which we are concerned with is not only the Self of this moment, but of the past and future. To wit, the Self which is important to me is something that maintains identity through time. Hence the problem of Self-Identity is very important and worth to examine. But, as I point out in chapter 1, the problem is not so simple as it seems. Why do we think of ourselves as remaining the same throughout changing experiences that make up our lives? Especially, with rapidly developing genetic engineering and medical technologies, we have to meet the cases of brain-transplant, brain-bisection, human cloning and so on. To solve this philosophical problem, in chapter 2, two frameworks are given. One is the analysis of the concept of identity. It shows that the concept of identity integrates the different type-levels of "sameness"; And the confusion between the sameness of one instant and that of enduring time was led to many philosophical mistakes, specially the idea of Self-Identity as immortal and unchangeable substance. The other is the critical analysis of linguistic essentialism using the concept of Wittgenstein's family resemblance. It is Aristotle's essentialism which claims that the essence makes a thing itself and changeless. But it is, in fact, a disguised linguistic essentialism that could be refuted by Wittgenstein's meaning as use based on the concept of family resemblance. And by showing that all general terms can be applied to this and still be meaningful without essentialism, it is suggested that the concept of self is not fixed but varied to time and circumstance. In chapter 3, several representative theories of Self-Identity are presented. The substance of Descartes, the memory of Locke, Self as a bundle of ideas of Hume and bodily identity theory of Ayer are discussed. In chapter 4, applying two frames provided in chapter 2 on the borderline cases, these theories are assessed. And we reassure that Wittgenstein's family resemblance can release us from our blind faith in fixed and changeless Self-Identity. This justifies our argument that Self-Identity is just a matter of degree within psychological connectedness. In last chapter, through answering some anticipated questions, the meaning and value of such an alternative notion of Self are shown.
6,100원
선결문제요구 논증은 오류이다. 이는 기초 논리학 수준의 상식이다. 그러나 선결문제요구에 관한 최근의 논의를 보면 이런 상식 자체가 검토를 요구하는 논란거리이다. 여기서는 선결문제요구의 오류 여부를 알기 위해서, 선결문제요구의 개념과 선결문제요구의 주체인 논증 개념을 명확히 하고자 했다. 또한, 선결문제요구에 관한 상식적 견해를 검토하기 위해서 논증평가의 표준, 특히 건전성 기준에 관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그래서 선결문제요구는 순환성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였고, 논증의 일반 목적이 아닌 특수 목적에 따라 선결문제요구 논증은 오류일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또한, 선결문제요구의 오류 여부에 관한 논의를 통해서, 우리는 건전성 기준이 논증평가의 일반적 기준으로서 충분하거나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밝힐 수 있다.
Begging the Question is a fallacy. This is common sense in everyday life and even logic class. But there are enormous controversies about begging the question among informal logicians and argument theorists. Is it always fallacious? When an argument can be question begging? If a question begging argument is fallacious, why is it? To answer these thoroughly, the conception of argument and argument evaluation must be examined. This paper shows that the wide conception of argument works well enough, that the soundness of argument is not sufficient and sometimes not necessary, and that to evaluate arguments we need to consider the specific purpose of argument as well as the general one. On this basis, the conception of begging the question and the fallaciousness of begging the question will be illuminated.
6,900원
글쓴이는 아래 논문에서 인간의 철학함과 과학 함 그리고 일상적 삶 속에서 가장 큰 쟁점들 가운데 하나인 심신 문제를 후설에 초점을 맞추어 주제 삼는다. 정확히 말하여 후설 철학 또는 그의 자아의 현상학에서 심신 문제와 심신 관계에 관한 후설의 통찰 내용과 견해를 읽어내고자 시도 한다. 이러한 시도에서 글쓴이는, 1. 후설 철학에 관한 내재적 해석을 수행하며, 2. 철학사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주요 심신 이론의 약사를 도입하며, 3. 부정의 길을 따라서 후설의 심신 이론이 철학사 속에서 잘 알려진 한 가지 대표적 유형의 심신 이론인 데카르트적 심신 이원론(과 심신 상호작용론)이 아님을 주장하며, 4. 긍정의 길을 따라서 후설의 심신 이론의 핵심 특징을 심신 융합 모형에서 찾아내면서 심신 문제에 관한 언어적 논리적 해명과 경험 과학적 설명보다 마음과 몸이라는 사태 자체에 관한 통찰과 기술을 더 중시하는 후설의 현상학적 심리 철학이 현대의 철학함과 과학 함 그리고 일상적 전체 삶에 속에서 가질 수 있는 건설적 함의의 윤곽을 제시하고자 한다.
Dieser Aufsatz behandelt das Leib-Seele Problem,das für unser Alltagsleben, Philosophieren und die Wissenschaften grosse Relevanz hat. Hauptsächlich Husserls Einsichten über das Leib-Seele Verhältnis stehen im Mittelpunkt.Es wird beabsichtigt, an der von Husserl beschriebenen Phänomenolgie des Ich die von ihm aufgewiesene Leib-Seele Theorie abzulesen. Dieser Aufsatz gründet sich auf die Husserls Phänomenologie des Ich, die sich thematisch auf das Bewusstseinsleben,den Leib und die verschmolzene personale Einheit von Leib (Körper) und Seele(Geist) bezieht, und geht wie folgt vor:1. Eine kleine Geschichte des Leib-Seele Problems wird herangezogen, um via negativa Husserls Leib-Seele Thoerie im Gegensatz zu Descartes Leib-Seele Dualismus und seinen Varianten aufzuzeigen, 2. Via positiva werden die Grundzüge der von Husserl eingesehenen Philosophie des Geistes hervorgehoben,die für verschmolzene personale Einheit von Leib und Seele plädieret. Husserls phänomenologisch geprägte Leib-Seele Theorie lässt sich unterscheiden vor allem von der gegenwärtigen Leib-Seele Theorie, die in ihrer thematischen Beschäftigung mit dem Leib-Seele Problem auf die Sprachlogik und Neurowissenschaften besonderen Nachdruck legt.Dieser Aufsatz vertritt die folgende Hauptthese, dass Husserls (auf seine Phäenomenologie des personalen Ich intim bezogene)Philosophie des Geistes im Kontrast zu der von Sprachlogik und Neurowissenschaften durchtränkten Leib-Seele Theorie eine positive und konstruktive Rolle für unser Alltagsleben, Philosophieren und die Wissenschaften spielen kann. Dies lässt sich zum Beispiel an einer einfachen, aber grundlegenden Theorie in der Moralphilosophie (d.h.the theory of agency in general or the theory of moral agents in particular) beweisen.
6,300원
이 글은 유토피아를 화해의 이념(Idee der Versöhnung)으로 규정하며 출발한다. 유토피아는 일반적으로 이상적인 정치체제 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초월세계에 대한 내용적 전망을 제시하는 개념으로 이해되지만, 그 내적 형식에 비추어 볼 때 나와 너, 나와 우리, 우리와 우리가 화해된 세계에 대한 이념을 함축한다. 필자는 먼저 우리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유토피아가 화해와 지배의 변증법적 긴장관계를 잃어버린 도구적 이성에 기초하고 있음을 상세히 서술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필자는 1516년 모어(Th. More)의 『유토피아』와 1932년 헉슬리(A. Huxley)의 『멋진 신세계』, 약 4세기를 사이에 둔 문학공간들을 비교해볼 것이다. 16세기 모어의 유토피아가 만인의 평등한 삶을 위해 엄격한 규율과 통제가 요구되는 모순적 사회였다면, 20세기 헉슬리의 유토피아는 지배와 억압의 상태가 모든 사람의 행복과 안녕으로 둔갑해있는, 그야말로 이상하고 기이한 나라다. 이 글은 화해의 이념으로서 유토피아의 새로운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 마르쿠제(H. Marcuse)와 아도르노(Th. W. Adorno)를 경유한다. 마르쿠제와 아도르노는 각각 상상력과 미메시스라는 인간의 감성적 능력에 이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인식의 권한을 부여하는 가운데 새로운 화해의 원리를 설정한다. 마르쿠제의 상상력이 특수한 내용과 현실적 상황으로부터의 거리두기를 통해 나 자신과 타자, 즉 우리의 형식적 동일성을 지각한다면, 아도르노의 미메시스는 구체적인 삶의 지평 속에서 배제되고 감금된 너의 타자성이, 만약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우리의 잣대가 아니라면 그 자체로 동일적인 너의 개별성임을 인식하게 한다. 이 둘은 도구적 이성이 야기한 디스토피아적 상황을 명확하게 인식하면서 여전히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둘의 차이는 이 가능성이 마르쿠제에서는 문명사의 관점에서, 아도르노에서는 자연사의 관점에서 서술된다는 점에서 비롯한다.
In this article I try to regard Utopia as Idea of Reconciliation. The focus of the study is given to examine the possibility of Utopia, that is based on the mediation between Reason and Sensibility. First I point out that Utopia of instrumental Reason is not proper to the Idea of Reconciliation because of its exclusive identity-principle. Second, I look into theories of Marcuse and Adorno. Marcuse warms that modern society cause degradation of life-form, because of the generalization of instrumental Reason. However he does not advocate abolition of Reason itself. He try to mediate Reason and Sensibility by esthetic Sensibility. Esthetic Sensibility can show the Possibility of Reconciliation, that does not adopt the other as a self-sufficient object or an object for practice. But Marcuse's esthetic Sensibility has a limitation on political implication. Adorno rejects a political position of Marcuse. He suggests that Mimesis as a principle of the mediation between Reason and Sensibility. Mimesis explicate negative utopia instead of making reconciliation substantial.
7,600원
롤즈는 자유, 기회, 소득, 부, 자존감 등으로 대변되는 사회적 기본가치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본적 가치로서 자존감을 지목한다. 이 논문의 목적은, 롤즈의 자존감 이론을 체계적이고 온전한 모습으로 구성해 보는데 있다. 이를 위하여 필자는 롤즈의 자존감 이론을 이해하는 관점을 도덕 심리학적 관점과 도덕 규범적 관점으로 나누어 접근해 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들에서 각각 이해된 롤즈의 자존감의 개념이 상호 정합적일 수 있음을 다올이 제시한 존중의 두 차원을 차용하여 밝혀볼 것이다. 도덕 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자존감은 본질적으로 가치감과 자신감으로 구성된다. 롤즈는 주로 가치감을 유지해주는 여건들에 대한 탐구에 천착한다. 이 여건들은 우리의 합리적 인생계획이 아리스토텔레스적 원칙을 만족시켜야 하며 또한 우리의 인격이나 행위가 타인들에 의해서 평가되고, 인정받으며, 그들의 조직체에 의해서 향유되어야 한다는 두 가지의 내용으로 구성된다. 도덕 규범적 관점에서, 롤즈의 자존감 이론은 상호 존중의 의무가 반영된 정의의 두 원칙에 의거한 사회적 기본가치의 분배가 우리의 자존감을 지원하고 지지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다올에 의해서 제시된 존중의 두 차원을 적용하여 롤즈의 자존감의 차원을 구분해 볼 경우, 아리스토텔레스적 원칙과 그것의 동반 효과는 가치감의 평가적 존중의 차원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분류된다. 반면에 상호 존중의 의무가 반영된 정의의 두 원칙에서 평등한 자유의 원칙은 자신감의 인정적 존중의 차원을 지지하며,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과 차등의 원칙은 가치감의 인정적 존중의 차원을 지지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Rawls thinks that self-respect is most important primary good among the all social values - liberty, opportunity, income and wealth, self-respect, etc. In this paper my aim is to construct Rawls’ theory of self-respect in the systematic and on the whole. For my end, I divide a standpoint for analyzing of Rawls’ theory of self-respect into viewpoints of the moral psychology and the moral norm. And then I try to show that Rawls’ concepts of self-respect which is argued separately in the two viewpoints are coherent in the light of Darwall’s dimensions of respect. In the viewpoint of moral psychology, self-respect consists of the sense of one’s own value and the confidence. Rawls pursues mainly circumstances that support the sense of our own worth. These ones require essentially two. First, our rational plan of life has to satisfy the Aristotelian Principle. Second, we have to know that our person and deeds are appreciated and confirmed by others, and enjoyed with their association. In the viewpoint of moral norm, Rawls’ theory of self-respect brings into focus on how to support our self-respect by social primary goods which are distributed in accordance with the two principles of justice reflecting the duty of mutual respect. The dimensions of respect suggested by Darwall show the following effects when we apply them to Rawls’ the concepts of self-respect in the viewpoints. The Aristotelian Principle and its companion effect support the dimension of appraisal respect in the sense of one’s own value. While the principle of equal liberties supports the dimension of recognition respect in the confidence. And the principle of fair equality of opportunity and the difference principle support the dimension of recognition respect in the sense of one’s own value.
6,300원
바바는 식민지배자와 피식민자의 관계를 이항대립으로 도식화하여 정형화하는 식민담론의 문제를 분석하고, 더 나아가 그러한 담론들에 스며있는 이항대립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체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과거 식민지였던 지역의 차원은 물론 현재의 전지구적 문화 환경에서 이질적인 문화들이 접촉할 때 발생하는 갈등과 투쟁 그리고 차별을 협상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문화적 공간을 구성하려고 한다. 바바의 새로운 식민 담론의 효과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리고 있다. 로버트 영(Robert Young)은 바바의 작업을 통해서 민족, 문화, 인종 사이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역사적 글쓰기의 새로운 논리학’이라고 격찬하는 반면, 바트 무어-길버트(Bart Moore-Gilbert)는 그러한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에 의하면. 바바의 역사적 글쓰기는 문화적 해방이라는 멋진 신세계의 도래를 앞당기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텍스트화’, ‘텍스트의 정치화’를 초래하여, 담론적 저항과 텍스트적 투쟁으로 후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패리(Benita Parry)는 바바가 서구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에 과도하게 의존하여 담론의 과잉과 사회 경제적, 정치적 실천에 대해 무관심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 왔으며, 오히려 파농과 제3세계 작가들이 시도한 탈식민화를 후퇴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바바의 식민 담론에 대한 이러한 비판들은 과연 타당한가? 진정 ‘정치의 텍스트화’와 ‘텍스트적 투쟁’은 탈식민화를 후퇴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앞서 밝힌 로버트 영의 주장대로 ‘역사적 글쓰기의 새로운 논리학’인가? 필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이항대립 구조를 탈피하여 새로이 문화적 차이의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는 바바의 식민 담론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가를 새로운 글쓰기 방식을 제창하고 있는 데리다의 해체론을 차용하여 밝혀 보려고 한다.
Criticizing the colonial discourses which formulate the relationship between colonizer and colonized as binary opposition, Homi K. Bhabha attempts to deconstruct the binary structure of those discourses. Thus he tries to construct the new cultural space which can negotiate the conflict, struggle and discrimination of different cultures not only in the past colonial space but also the present global cultural environments. The criticisms of the efffect of Bhabha's colonial discourse are much varied. Robert Young praises it as "a new logics of historical writing" through which reinterpretation of the relation of nation, culture and race is possible. While Bart Moore-Gilbert and Benita Parry stand against him. According to Bart Moore-Gilbert, Bhabha's historical writing brings about 'textualization of politics,' and 'politicization of text' and retreating into discourse resistance and textual fight rather than advancing the great new world of cultural liberation. In the same way, Parry criticizes him for depending too much the Western theory of Poststructuralism, causing people to neglect the social, economical and political practice, and thereby delaying the decolonization that Franz Fanon and the third world writers have attempted. Are all these criticisms against Bhabha valid? Or Is Bhabha's theory "a new logics of historical writing" as Young claims? Starting from this question, this paper aims to illuminate the genuine purpose of Bhabha's colonial discourse which attempts a new writing of cultural difference by means of Derrida's Deconstructio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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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이다. 이러한 인권의 정의에도 불구하고 인권은 제한되거나 침해된다. 논자는 인권의 제한과 침해 사례로써 학생인권의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학생인권의 쟁점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논자가 생각하는 학생인권의 쟁점은 2가지이다. 첫째, 학생인권과 교육권의 양립가능 여부이다. 둘째, 체벌에 관한 찬반논의이다. 논자는 학생인권과 교육권이 양립가능하며 체벌이 금지되어야함을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논자는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인권보장을 위한 필요조건임을 주장한다.
Human right is universal to everyone. Despite such sense, human rights are confined or infringed. This study is to look into students' human rights problems with the cases where students rights are confined or infringed, especially the issues being raised during the discussions on enactment of Students' Human Rights Ordinance. Two issues are being raised. The first one is whether it is possible for students' human rights and teachers' educational authority to stand side by side. The other one is cons and pros of the corporal punishment. This study suggests that students' rights and teachers authority be compatible and corporal punishment be banned. In conclusion, it implies Ordinance of Students' Human Rights is a must to guarantee students' human r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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