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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진리론의 특징은 사견을 버리고 정견에 다가감으로써 고통지멸에 이르게 하는 방편성에 있다. 이 글은 고통, 진리, 방편을 키워드로 택해 초기불교에 나타난 진리의 요체를 탐구한다. 이 논문의 핵심주장은 다음과 같다. 1. 진리론은 고통의 자각과 해소 사이의 문제로서 인간존재에 본래적으로 내재된 고통의 문제를 다룬다. 2. 사성제는 대표적포괄적 진리로서 붓다가 말하는 모든 진리를 대표하고 포괄한다. 3. 사성제에 의하면 중생의 인식은 집착, 갈애, 혹은 탐진치라는 중생심에 묶여 있는데, 이러한 중생심을 지멸시키는 방법이 사성제의 도제/팔정도이다. 4. 팔정도는 중생으로 하여금 신구의 청정을 익히게 하는 자기변형의 수단인데, 이러한 자기변형을 통해 열반이라는 목적이 달성될 때 진리는 방편으로서의 역할을 다한 것이다. 5. 진리가 방편이라고 할 때, 그것은 진리에 대한 무집착과 진리의 유용성/유익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불교 진리론의 시사점은 이렇다. 즉, 고통해소 만큼 절실한 것은 없으며, 고통의 ‘근본적’ 원인은 밖에 있지 않고 우리 안에 있으며(고통의 계기는 우리 안의 ‘갈애, 집착, 탐진치’라는 중생심, 그리고 이로부터 비롯되는 사견이며), 진정한 진리는 방편적이어서 자기부정의 무집착과 자기활용의 유용성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진리론의 관점에서 볼 때 중생은 오염된 욕망에 따라 진리를 왜곡하여 인식하며 그렇게 인식된 진리에 집착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진리에서 소외시키고 탐진치의 삶/문명을 사랑하고 추구한다.
Buddhist truth is expedient. It leads us to obtain right view and cease suffering. This paper explores the heart of Buddhist truth by taking ‘suffering, truth, and expediency’ as key words. The main ideas of this paper is as follows. 1. Buddhist truth as a matter of knowing and ceasing suffering deals with inherent suffering of humans. 2. The Four Noble Truths are a representative and inclusive truth that comprehends all the truths told by the Buddha. 3. According to the Four Noble Truths, human knowledge is bounded by the mind of attachment, craving, or greed-hatred-confusion, and this defiled mind can be destroyed by practicing the fourth Truth (The Noble Eight-fold Path). 4. The Noble Eight-fold Path as a way of self-transformation helps us to purify bodily actions, talks, and thoughts. When the purpose of nibbāna is fulfilled through this self-transformation, Buddhist truth completes its role as an expedient means. 5. When we say that truth is an expedient means, it means non-attachment and usefulness/beneficialness. What this theory of Buddhist truth implies is as follows. The most important thing is to cease suffering, the ‘fundamental’ cause of suffering is not external but internal, and truth with nature of non-attachment and usefulness is expedient. We distort truth by our defiled desires and attach to it. Futhermore, We alienate ourselves from truth on our own.
7,800원
본고는 한국선도의 양대 경전인 『천부경』·『삼일신고』의 근간인 ‘一·三論’ 및 ‘一·三·九論’을 통하여 한국선도의 존재론적 인식의 일단을 살핀 글이다· 현재 한국선도의 존재론에 대한 연구는 ‘존재 자체’를 의미하는 ‘一’, 또 ‘존재의 세 차원’을 의미하는 ‘三’의 논리를 중심으로 하는 형편으로(‘一·三論’) 이외의 다양한 논리들에 대한 연구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형편이다· 본고에서는 ‘一·三論’의 하부 논리로서 ‘九元論’까지 함께 고찰(‘一·三·九論'), ‘一·三論’을 한 단계 확장해보았다· 먼저 『천부경』 중의 ‘一·三論’을 통하여 ‘一’의 세 차원, 곧 존재의 세 차원인 天(정보)·地(질료)·人(에너지) 三元을 살펴보았는데, 三元 중에서도 특히 ‘人(氣에너지)’ 차원에 삼원을 조화시키는 중심적인 역할이 부여되는 점을 한국선도 ‘一·三論’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보았다· 다음으로 『천부경』 및 『삼일신고』에서 천·지·인 삼원이 3차에 걸쳐 轉變되는 과정을 추적, ‘一’에서 ‘三’으로, ‘三’에서 다시 ‘九’로 전변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로써 ‘一’의 아홉 차원, 곧 존재의 九元이 ‘性(天一·天天)·命(人一·人天)·精(地一·地天)·心(天二·天人)·氣(人二·人人)·身(地二·地人)·感(天三·天地)·息(人三·人地)·觸(地三·地地)’이며, 이 九元은 ‘性(天一·天天)→命(人一·人天)→精(地一·地天)→心(天二·天人)→氣(人二·人人)→身(地二·地人)→感(天三·天地)→息(人三·人地)→觸(地三·地地)’의 과정을 거치면서 구체적인 존재의 모습으로 전화하게 됨을 살펴보았다· 또 삼원의 3차에 걸친 전변 과정의 의미가 (一· : 존재의 근본상태→) ① 三眞 : 無善惡·無淸濁·無厚薄 상태 : 존재의 형상화 이전의 상태→② 三妄 : 有善惡·有淸濁·有厚薄 상태 : 존재의 형상화 이후의 상태→③ 三途 : 無善惡·無淸濁·無厚薄 상태+有善惡·有淸濁·有厚薄 상태 : 존재의 형상화되기 이전 상태+존재의 형상화된 상태’임을 살펴보았다· ‘一()’이 곧 三元이며, 三元이 3차에 걸쳐 轉變한 것이 九元이라면, ‘一()’을 體, 三元 및 九을 用으로 볼 수 있다· ‘一·三論’과 ‘一·三·九論’은 결국 규모만 다를 뿐 동일한 이론인 것이다·
This thesis is the study on the ontology of Korean Sundo(韓國仙道). The key theories are two, that is, the theory on One-Three(一․三論) and the theory on One-Three-Nine(一․三․九論), These theories are based on the logics of 『Chunbu-kyung天符經』 and 『Samil-singo三一誥』. Until now the study on the ontology of Korean Sundo has been focused on One-Three(一․三論) and the different viewpoint hardly presented. But in this thesis, the theory on One-Three-Nine(一․三․九論) is been examined as the detailed logic of the theory on One-Three(一․三論). So to speak, the theory on One-Three(一․三論) can be extended to the theory on One-Three-Nine(一․三․九論). According to the theory on One-Three(一․三論) of 『Chunbu-kyung天符經』 and 『Samil-singo三一誥』, the Il一(Oneness, the whole, God, Sin하느님) is composed of three dimensions of the being, the Sam三. They are Chun天(Information or Naught無․空), Ji地(Material) and In人(Energy, Ki氣). Among the Sam三, In(人 : Energy : Ki氣) is considered the central part to harmonize the Sam三. This feature is the most distinctive peculiarity of Korean Sundo. Next the changing process of the Sam三 is detected. This processes has two steps. First step is the change from the Il一(Oneness, the whole, God, Sin하느님) to the Sam三 and second step is the change from the Sam三 to the Gu九. The Gu九 means the nine dimensions of the being or the universe and it is composed of Sung性(the first state of Chun天), Myung(命 : the first state of Ji地), Jung精(the first state of In人), Sim心(the second state of Chun天), Ki氣(the second state of Ji地), Sin身(the second state of In人), Kam感(the third state of Chun天), Sik息( the third state of Ji地), Chok觸(the third state of In人). The concrete changing process from the Sam三 to the Gu九 is the process of Sung性→Myung命→Jung精→Sim心→Ki氣→Sin身→Kam感→Sik息→Chok觸. With this process, concrete individuals are come into the world from Il一(Sin․하느님). The meaning of this changing process can be summarized like this. “(Il一․Sin 하느님 : the fundamental state of being→) ①Samjin(Sung性․Myung命․Jung精 : the pre-formed state of being)→ ② Sammang(Sim心․Ki氣․Sin身 : the post-formed state of being)→③ Samdo(Kam感․Sik息․Chok觸 : the pre-formed state of being + the post-formed state of being)" As the Il一(Sin하느님) is changed to the Sam三 and the Sam三 is changed to the Gu九, it can be said that Il一(Sin하느님) is the thing(體) and the Sam三 and the Gu九 are its functions(用). In conclusion, the theory on One-Three(一․三論) and the theory on One-Three-Nine(一․三․九論) are the same theory, although the scales of theories are different.
7,000원
이 글은 주자어류의 첫 구절을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리(理)가 있다’는 주희의 진술을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에 비추어 어떻게 해석할 할 것인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 철학 논고에 따르면 ‘리가 있다’는 형이상학적 진술은 명제적 진술의 한계를 넘어선 헛소리의 영역에 속한다. 이와 달리 철학적 탐구에서는 언어놀이언어의 다양한 사용일상 언어의 중심성 등을 역설하면서 형이상학적 진술들 일반이 어떤 문법적 착각에 근거한 혼동 속에 놓여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혼동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으로 언어의 다양한 사용 방식을 일상 언어의 사용 방식과 대조하며 이해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런 입장을 주자어류에 적용하면 ‘리가 있다’와 같은 종류의 성리학적 진술들은 일상성의 영역에서 일상 언어와의 대조에 의해 그 의미가 파악되어야 한다는 일반적인 해석 방법론을 도출할 수 있다. 결국 이 글은 주자어류의 첫 구절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적인 해석을 통해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진술들에 대한 일상성과 일상 언어에 근거한 해석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这篇文章是把朱子语类的第一个句子, 从维根斯坦的观点角度来解释的. 进一步具体地阐述, 按照维根斯坦的语言哲学怎样解释‘有里’的朱喜的说法的问题. 按维根斯坦的论理哲学論考, ‘有里’的形而上学的阐述是属於超越命题的限界的闲话. 而相反在哲学的探究有力地说语言游戲․语言的多样的使用․日常语言的中心性等, 说明形而上学的陈述放在根据甚麽错误的混同里面. 维根斯坦为了除去这种混同, 应该对照理解语言的多样的使用方式和日常语言的使用方式. 如果把这个观点要适用於朱子语类的话, 在日常性的領域像‘有里’的性理学的陈述, 该和日常语言的对照来把握其含意. 最後, 这篇文章通过对於朱子语类的第一个句子的维根斯坦的的解释来, 提起有关性理学的形而上学的陈述的日常性和根据日常语言的可能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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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표상개념에는 정리 13과 정리 16 사이에 명백한 모순이 존재한다. 정리 13에서처럼 인간정신을 구성하고 있는 관념의 대상이 인간신체만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정리 16의 진술처럼 인간신체뿐만 아니라 인간신체에 작용하는 외부물체까지 포함하는지에 대해 스피노자는 우리에게 상충되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이 문제에 관심 있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스피노자가 관념이라는 용어를 이중적인 의미로 사용함으로써 표상론과 평행론 사이에서 심각하게 혼동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그러나 델라 로카의 말처럼 우리는 스피노자가 자기모순을 범했다고 결론내리기 이전에 모든 가능한 시도를 해 보아야 한다. 스피노자를 자기모순으로부터 구하기 위한 델라 로카의 재치 있는 시도는 아깝게도 성공하지 못했다. 필자 역시 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의 가능한 시도를 해보았다. 정리 13에서의 라틴어 ‘corpus’ 를 ‘인간신체(the body)’가 아닌 ‘물체(a body)’라고 번역함으로써 정리 16과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필자의 부정관사(a body) 번역 시도는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여러 진술들에서 스피노자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 해결을 포기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스피노자를 자기모순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또 다른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볼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우리는 스피노자 표상개념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헤겔 『개념 논리학』 에 있어서 '주체'의 의미 - '개념 일반에 관하여'에서 주체로서의 개념에 대한 서론적 이해 -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44집 2007.03 pp.117-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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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헤겔의 개념 논리학에서 주체 개념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그 서론이라고 할 ‘개념 일반에 관하여’에서 그 도입부에 해당하는 부분적인 문단들의 원문에 기초한 정확한 내재적 해석에 초점을 맞춘다. 그것은 동시에 헤겔의 논리학적인 개념어들의 산만한 사용을 지양하기 위한 의도도 함께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논문의 제목처럼 헤겔의 개념 논리학에서 개념으로서의 주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 목적이라고 할지라도 오히려 그에 대한 본질적인 대답은 이 논문의 범위를 훨씬 벗어난, ‘주관성’이나 ‘객관성’에서보다는 ‘이념’ 편에서나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헤겔이 객관 논리학에서 간헐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자유의 개념이 개념 논리학에 이르러 보다 분명하게 주체로서의 개념이 자유라는 것을 언급할 때 그 논리적 과정을 이해한다는 것은 헤겔 논리학 전체에 걸친 매우 난해한 주제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 의미의 연관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가 잠정적으로나마 여기에서 더불어 논의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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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니체철학에서 철학치료의 인식론적 기반이나 방법론적 기초가 될 수 있는 텍스트 해석의 문제를 다루었다.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시간적 지평과 기억과 망각, 고통과 해방이라는 실존적 의미지평은 몸의 텍스트에 유비되어 설명될 수 있다. 니체는 관점주의를 통해 몸과 삶, 세계의 텍스트에 기록된 진리와 사실, 해석의 관계를 새롭게 해석한다. 즉 진리와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세계는 무한한 해석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사람들은 특정한 과거의 사실에 고착됨으로써 심리적 고통을 느끼고, 일상세계에서 이항대립적 사고를 가짐으로써 타자에 대한 배타성을 증식시키는 삶을 살아간다. 이러한 문제는 삶의 텍스트를 어떻게 읽는가 하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니체는 과거의 텍스트를 긍정적으로 읽기 위해서는 현재의 삶의 긍정과 강한 삶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즉 이는 과거로부터의 해방이 현실의 긍정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할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삶의 의지가 현재를 긍정하고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삶의 창조성의 문제는 역시 삶의 치료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Nietzsche, die Auslegung des Textes und die philosophische TherapieJyunghyun Kim攀* Wonkwang University.攀攀Diese Arbeit zielt ab, zu zeigen, wie die Erkenntnistheoretische Methode der philosophischen Praxis auf der Nietzsches Auffassung der Textinterpretation fundiert werden kann. Der zeitliche Horizont wie Vergangenheit, Gegenwart und Zukunft, der existentiale Sinnhorizont wie Erinnerung und Vergessenheit, Leiden und Heilung knnen im dem Text des Leibes analogisch aufgefaßt werden. Nietzsche faßt das Problem von Wahrheit, Tatsache und Auslegung wie folgt auf : Wahrheit und Tatsachen gibt es nicht, nur Interpretationen.Daraus kann geschlossen werden : Man leidet nicht an der bestimmten Tatsache der Vergangenheit, sondern an der Auslegung der Vergangenheit. Hier handelt es sich um die Auslegung des Textes des Lebens. Damit der Text der Vergangenheit positiv wiedergelesen wird, werden, Nietzsches Meinung nach, die Bejahung des gegenwrtigen Lebens und der starke Wille zum Leben in Anspruch genommen. Das bedeutet, daß die Befreiung von der Vergangenheit mit der Bejahung der Wirklichkeit begonnen werden kann. Weiter hinaus wird der Lebenswille zur Zukunft bentigt, um hier und jetzt(die Gegenwart) gesund zu fhren. Des weiteren geht die Schaffenskraft des Lebens mit der Heilung des Lebens ein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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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주제는 니체에 비추어 언어, 언어의 불확실성, 예술의 근거, 예술의 필연성에 대해 살펴보는 데에 있다. 우리는 여기서 니체 사상의 기본적인 틀에 대해, 즉 그가 플라톤주의를 비판하고 예술에 주목한 이유와 그의 사상이 반사회적 색채를 띠게 되는 근거에 대해 살펴보았다.니체의 은유 이론은 인간의 언어사유와 감각감정 사이에 필연적인 차이와 틈이 있음을 증명한다. 바로 그 차이와 틈에서 인간의 예술에 대한 욕망이 발생한다. 또한 언어사유가 인간의 문화와 사회를 떠받치고 있다면, 언어와 사유의 한계에서 발생하는 예술은 반문화적반사회적 성격을 띠게 된다. 우리가 니체의 은유 이론을 참조한 후 마주하게 되는 상황은 예술과 사회문화 사이의 갈등상황이다.
6,400원
먼저 서론에서 한국의 철학자들이 자유주의-공동체주의 논쟁을 어떻게 수용하고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생산적 모색을 하고 있는지 정리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테일러 사상을 소개한다.(1) 테일러에게서 공동체는 인간의 행위와 자아인식의 구조적 전제조건이다. 인간은 원자적 개인이 아니다. 테일러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일은 파편화 현상이다. 테일러는 파편화 현상을 극복할 두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하나는 민주적 시민운동이고, 다음은 국가 권력의 분산화이다. 테일러에게서 공동체는 언제나 전일주의와 원자주의의 중간지점에서 긴장관계를 유지한다.(2) 테일러는 겔너를 수용하고 뛰어넘는다. 그는 현대 민족주의의 근원을 국가로 환원하는 것은 불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는 민족주의를 자유로운 것과 살인적인 것으로 엄격히 구분 짓는다. 국가가 서로 다른 문화와 민족들을 하나로 포괄하는 원리는 자유로운 애국주의이며, 결코 충성과 희생을 강요하는 전일주의가 아니다. 테일러는 원래 민족주의는 민주제와 잘 조화를 이루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것이었다는 것이다.이러한 테일러의 사상은 공동체 및 민족주의에 대한 필자의 주장들을 뒷받침해준다.
6,400원
본고의 목적은 이른바 실증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경제와 윤리의 공약 불가능성 테제에 맞서 경제 윤리의 필연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시장의 무도덕성(amorality)이나 경제 행위의 가치중립성을 역설하는 모든 이론은 하나의 자가당착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시장과 경제 행위에 관한 모든 이론은 순수하게 기술적인 요소만을 포함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시장 이론과 그것의 기초를 제공하는 호모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의 인간학은 사실상 하나의 기술적인 진리 이상의 어떤 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환언하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정당한 행위의 동기라는 규범적인 선입견이 그러한 이론적 장치들을 통해 일종의 선험적인 예단으로서 우리에게 강요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증 경제학의 시장 이론과 호모에코노미쿠스의 인간학은 명백히 우리의 경제 행위를 우리의 사유의 규범적인 차원과 결부시키는 하나의 방식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경제와 윤리가 공약 불가능하다는 실증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그들의 이론 자체에 숨어 있는 암묵적인 전제들에 의해 반박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경제와 윤리의 일상적인 상호 관련과 함께 경제 윤리의 필연성을 의식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 경제 윤리는 경제적인 관계들이 존재하는 삶의 모든 고리에서 호모에코노미쿠스의 맹목적인 극대화 충동을 규제하는 ‘경제의 정치’ 역할을 수행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는 곧 경제적인 합리성과 도덕적인 합리성이 경제 윤리라는 접점에서 수렴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6,300원
심층 생태론과 생태 여성주의를 비롯한 대부분의 생태 철학은 ‘생명의 그물’ 이론과 ‘생명 평등설’로 인간 중심주의적 세계관과 윤리를 극복하고자 한다. 그러나 켄 윌버는 성, 생태, 영성(1995)에서 대부분의 생태 철학이 ‘평원적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있어서 내면 세계와 상호 주관적 세계를 외면적인 ‘그것들’의 세계로 환원한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대자연과 문화와는 구분되는 감각 세계로서의 자연을 혼동하여 정신권을 생물권으로 환원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윌버에 따르면 우주는 전체이자 동시에 부분인 홀론(holon)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홀론은 기저 가치, 내재적 가치, 외재적 가치라는 세가지 유형의 가치를 갖고 있다. 모든 홀론은 절대자의 완벽한 현현으로서 동등한 ‘기저 가치’(Ground value)를 갖고 있으며 또한 상대적인 전체로서 ‘내재적 가치’(intrinsic value)의 차이를 지니고 있고 한 부분으로서는 다른 홀론들을 위한 ‘외재적 가치’(extrinsic value)를 지니고 있다. 원숭이와 원자는 ‘영’의 완벽한 표현으로서 동등한 ‘기저’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원숭이는 세포분자원자를 모두 내부 구조에 포함하고 있으므로 원자보다 더 깊은 깊이(의식)와 더 많은 내재적 가치를 갖고 있다. 생물 평등설은 기저 가치를 내재적 가치와 혼동함으로써 홀론들간의 가치의 차등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깊이를 부정하는 평원의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 윌버의 진단이다. 윌버의 홀론적 생태론은 모든 홀론이 동등한 ‘기저’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생물 평등설을 수용하는 동시에 모든 홀론에 내재적 가치의 차이를 인정함으로써 의식의 위계나 홀라키가 있다는 동물 권리보호 운동가들과 화이트헤드 학파의 주장을 수용한다. 또한 인간이야말로 가장 큰 깊이를 지니고 있으므로 생물권의 번영에 가장 큰 책임을 지니고 있다는 관리의무 학파의 주장도 수용한다. 또한 환경 위기의 극복은 내면적 변용과 상호주관적 이해로부터 온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다른 환경 철학과 구분된다.그의 이론이 갖는 난점은 생명과 문화의 진화에 방향성이 있다는 목적론적 진화론을 옹호한다는 점, 그리고 다양한 생태 철학을 지나치게 일반화하여 비판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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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생태론과 생태 여성주의를 비롯한 대부분의 생태 철학은 ‘생명의 그물’ 이론과 ‘생명 평등설’로 인간 중심주의적 세계관과 윤리를 극복하고자 한다. 그러나 켄 윌버는 성, 생태, 영성(1995)에서 대부분의 생태 철학이 ‘평원적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있어서 내면 세계와 상호 주관적 세계를 외면적인 ‘그것들’의 세계로 환원한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대자연과 문화와는 구분되는 감각 세계로서의 자연을 혼동하여 정신권을 생물권으로 환원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윌버에 따르면 우주는 전체이자 동시에 부분인 홀론(holon)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홀론은 기저 가치, 내재적 가치, 외재적 가치라는 세가지 유형의 가치를 갖고 있다. 모든 홀론은 절대자의 완벽한 현현으로서 동등한 ‘기저 가치’(Ground value)를 갖고 있으며 또한 상대적인 전체로서 ‘내재적 가치’(intrinsic value)의 차이를 지니고 있고 한 부분으로서는 다른 홀론들을 위한 ‘외재적 가치’(extrinsic value)를 지니고 있다. 원숭이와 원자는 ‘영’의 완벽한 표현으로서 동등한 ‘기저’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원숭이는 세포분자원자를 모두 내부 구조에 포함하고 있으므로 원자보다 더 깊은 깊이(의식)와 더 많은 내재적 가치를 갖고 있다. 생물 평등설은 기저 가치를 내재적 가치와 혼동함으로써 홀론들간의 가치의 차등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깊이를 부정하는 평원의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 윌버의 진단이다. 윌버의 홀론적 생태론은 모든 홀론이 동등한 ‘기저’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생물 평등설을 수용하는 동시에 모든 홀론에 내재적 가치의 차이를 인정함으로써 의식의 위계나 홀라키가 있다는 동물 권리보호 운동가들과 화이트헤드 학파의 주장을 수용한다. 또한 인간이야말로 가장 큰 깊이를 지니고 있으므로 생물권의 번영에 가장 큰 책임을 지니고 있다는 관리의무 학파의 주장도 수용한다. 또한 환경 위기의 극복은 내면적 변용과 상호주관적 이해로부터 온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다른 환경 철학과 구분된다.그의 이론이 갖는 난점은 생명과 문화의 진화에 방향성이 있다는 목적론적 진화론을 옹호한다는 점, 그리고 다양한 생태 철학을 지나치게 일반화하여 비판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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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점preemption은 인과관계를 반사실적 의존관계로 해명하는 반사실인과이론에 대한 문제로서 제기되었다. 최근에 선점은 인과관계를 확률의 관계로 해명하는 확률인과이론에 대한 문제로서 다시 부각되었다. 문제의 핵심은, 확률의 관계가 인과관계를 해명하는 데 필요하지도 충분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필자는 다음을 논의한다. 첫째, 선점의 문제는 확률인과이론의 반례가 아니라 사건 수준의 인과관계를 위한 확률인과이론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필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인과관계의 개념으로 이 필요성을 입증한다. 둘째, 사건 수준의 새로운 확률인과이론으로서 엘스Eells(1998, 2002)의 확률궤적이론과 선점 현상에 대한 이 이론의 해명을 소개한다. 셋째, 셰퍼Schaffer(2001)가 제시한 새로운 유형의 선점의 문제와 이 문제를 해결하는 셰퍼의 두 가지 분석을 소개하고, 확률궤적이론이 그 문제를 어떻게 분석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넷째, 보다 복잡한 선점의 현상에서 세퍼의 분석과 확률궤적이론을 비교하여 인과유관성을 해명하는 데 확률궤적이론이 어떤 수월성을 가지는지 보여준다. 또 사건 수준의 인과유관성을 확률의 관계로 해명하는 데, 확률의 변화와 구체적인 기술 그리고 다양한 속성의 예화로서 사건의 개념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다섯째, 확률궤적이론이 해결해야 할 다른 문제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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