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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한철학 [PAN-KOREAN PHILOSOPHY]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범한철학회 [Bumhan philosophical society]
  • pISSN
    1225-1410
  • eISSN
    2713-9344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1987 ~ 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철학
  • 십진분류
    KDC 105 DDC 105
제39집 (12건)
No
1

경험으로서의 가치

노양진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9집 2005.12 pp.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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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0원

이 논문의 주된 목적은 사실/가치 이분법적 구분에 대한 의미론적 접근의 부적절성을 지적하고, 사실/가치의 문제가 경험의 방식들로 이해됨으로써 가치의 본성이 더 적절하게 해명될 수 있음을 보이려는 것이다. 특히 20세기의 의미론적 접근은 사실/가치 문제를 의미론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 그릇된 가정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것은 사실 문장과 가치 문장이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으며, 동시에 사실 문장과 가치 문장이 각각 사실 경험과 가치 경험과 일대일 대응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과 가치의 간격을 메우려는 설의 시도와 사실/가치 이분법에 대한 퍼트남의 지속적 비판은 이 문제에 관한 경험주의의 부적절성을 드러내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지만 그 자체로 사실과 가치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해명에 이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오히려 논리실증주의의 그릇된 가정을 넘어섬으로써 가치가 사실과의 관련성 속에서 다루어져야 할 근거를 잃게 된다고 본다. 대신에 필자는 가치가 ‘경험의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탐구될 수 있으며, 따라서 가치의 본성이 경험 구조의 일반적 해명의 일부로 다루어질 수 있다고 제안했다.

The main purpose of this paper is to reveal the inadequacy of a semantic approach to the fact/value dichotomy, and to suggest that the nature of fact and value can be better accounted for by regarding them as ways of our experience. At the heart of the logical positivists' semantic approach lie two misleading assumptions: First, there can be a clear distinction between fact statements and value statements; secondly, a fact statement or a value statement corresponds respectively to factual experience and value experience. Along with these assumptions, logical positivist analysis ended up with the unfortunate claim that any science on value is impossible at all. Despite Searle's and Putnam's successful endeavors to refute the fact/value dichotomy, their works did not seem to amount to a richer account of the nature of value. I suggest that the nature of value can be more appropriately appreciated by taking a naturalistic stance a la Dewey, and dealing with value as part of a comprehensive account of our experience. And this richer, but never ending approach will lead us to another facet of ethical inquiry.

2

비극적 인식과 인륜성

임흥빈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9집 2005.12 pp.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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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0원

문예작품으로서의 비극은 비극적인 것과 구별되며 후자는 미학의 영역을 넘어서는 철학적 관심의 대상으로 설정되어 왔다. 특히 쉴러와 쉘링, 헤겔, 횔덜린 등의 독일 관념론의 전성기에 비극에 대한 이론적 관심이 고조되었는데, 여기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이나 칸트의 ‘판단력비판’의 경우와 달리 미학적 감성의 고유한 차원이나 감성적 판단의 조건들에 대한 이론적 탐색을 넘어서, 비극적인 것의 규범적 잠재력을 논구하는 것이 주된 과제로 부각되었다. 비극적 인식에 대한 통찰은 어디까지나, 보다 조화롭고 포괄적인 사회정치적 통합을 추구하기 위한 작업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이는 이성중심의 계몽주의나 계약사회, 근대적 개인주의 등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함축한다.그러나 논자는 비극적 인식의 의미가 두 가지, 상호 연관된 관점 하에서 새롭게 규명될 수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비극적인 것은 비록 그 전형이 고대 그리스의 제한된 시기에 태동했으나, 그 의미와 파장은 서구적 규범문화의 전개과정에서 주축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근대의 대표적인 비극론으로 알려진 헤겔의 비극론, 특히 ‘안티고네’에 대한 해석을 통해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비극과 비극적 인식이 현상적 수준에서는 물론 철학적, 문학적 담론을 형성함으로써 일종의 문화적 도구로 변형되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비극에 대한 담론의 분석은 어떻게 ‘비극적인 것’이 서구 중심의 규범적 관점을 강화해온 문화적 기제로 사용되었는지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게 만들어 준다. 비극적 인식에 대한 이해는 결국 서구적 규범문화의 심층적 분석의 한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Die Tragdie unterscheidet sich von dem allgemeinen Begriff des Tragischen, welches weit ber die sthetische Dimension hinaus zu einem eminenten Thema der Philosophie avanciert worden ist. Der deutsche Idealismus befasst sich auch intensiv mit dem Problemkomplex des Tragischen, da Schiller, Hlderlin, Hegel, und Schelling ein gemeinsames Interesse an dem sittlichen Aspekt des Tragischen entwickelt haben. Dies versteht sich als ein Versuch, eine alternative Theorie der Moderne zu rekonstruieren. Der Verfasser ist der Ansicht, dass die Interpretation des Tragischen eine universelle Perspektive der Genese des sittlichen Bewusstseins aufzeigen kann. Nicht zu vergessen wre auch die Diskursformation des Tragischen berhaupt, welche als eine kulturelle Ideologie fr das Selbstverstndnis der westlichen Zivilisation eine nicht unbedeutende Funktion gehabt hatte. Wir betrachten also das Tragische als ein wesentliches Moment fr die Bildung des europischen Selbstidentitt.

3

대타 존재(I' etre pour autre)와 아리스토텔레스의 필리아(philia)

김요한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9집 2005.12 pp.4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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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원

물밀 듯 들어오는 신자유주의의 시대적 조류에 발맞춰 우리 사회는 급기야 ‘황금’이라는 바알신(Baal)을 숭배하는 황금만능세상으로 탈전통화가 이루어졌고 무한경쟁을 최고 도덕 가치로 숭상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우리는 내신, 대학 입시, 취업, 승진으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경쟁 구도 속에 적자생존의 원칙에 따라 끊임없이 타인을 절대적 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왜곡된 타인상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왜곡된 타인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사유 틀을 우리는 가질 수 없는 것일까?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연구자는 이 글에서 다음과 같은 논의를 제안한다. 우선 사르트르의 대타 존재라는 개념을 통해 신자유주의에 의해 왜곡된 타인의 개념을 분석할 것이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인간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묻고 자신을 초월해가는 자유로운 주체, 즉 자신의 행동으로 스스로를 창조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바로 이 자유의 실현이 무한 경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씨앗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 모두가 함께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이 있는 가 그 가능성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사르트르는 『변증법적 이성비판』에서 그 가능성을 마르크스주의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연구자는 이 가능성을 아리스토텔레스의 필리아 개념에서 확보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그 핵심 개념을 『니코마코스 윤리학』 VIII 2와 『수사학』 II 4를 중심으로 살펴 볼 것이다. 이 연구는 인간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타인의 본질로 보고 서로에게 선의를 갖는 필리아의 개념을 통해서 어떻게 우리 안의 왜곡된 타인의 모습들이 회복될 수 있는지 살펴 볼 것이다. 연구자는 필리아의 개념 연구가 끊임없이 경쟁을 유도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타인과의 관계 극복할 수 있는 도덕성의 기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Aristotelian philia can stand for any mutual attraction between human beings. Man can and should take a warm personal interest in other people. A man wishes well to his friend for his friend's sake, not as a means to his own happiness. The various forms of friendships mentioned by Aristotle are all illustrations of the essentially social nature of man. On the lowest plane he needs friendships of utility, since he is not economically self-sufficing. On a higher plane, he forms friendships of pleasure. He takes a natural delight in the society of his fellows. On a higher still, he forms friendships of goodness in which friend helps friend to live the best life. The most interesting part of the discussion is that in which Aristotle propounds the view that friendship is based on the love of the good man for himself. The good man wishes and does the best for the intellectual element in him which is most truly himself. He has most harmony with himself at any given moment, and most constancy from moment to moment. It is because these relations exist within the good man and because his friend is to him another self, that friendship is held to possess these characteristic. Aristotle's theory here is an attempt to break down the antithesis between egoism and altruism by showing that the egoism of a good man has just the same characteristics as altruism.

4

문화학은 어떻게 가능한가 : 현대 문화학의 발생과 전망

원승룡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9집 2005.12 pp.79-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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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00원

본 논문은 20세기 중엽쯤 논의되기 시작한 현대적 형태의 문화학의 발생과정과 앞으로의 전망을 그리고 있다. 문화학은 19세기 말부터 급변한 사회문화적 변동의 학문적 대응이었다. 고전적 형태의 인문학으로는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현실을 담아낼 수도 대처할 수도 없다는 인식 아래 각 개별 인문사회과학이 자신의 경계를 넘어 상호협력함으로써 날로 새로워지는 문화적 현실을 총체적으로 기술평가할 수 있는 종합학문으로 모색된 것이 문화학이다. 영어권에서는 ‘문화연구’가, 독일어권에서는 ‘문화학’이 하나의 대안으로 등장하여 오늘날까지도 현재진행형인 학문이 문화학이다. 문화학은 자체적으로 또 하나의 인문과학이 아니라 각 개별 인문과학들을 네트워킹하여 사회문화적 현상을 종합적으로 보려는 시도이며 이를 사회적 실천에 반영하려는 실천적 성향의 학문이다. 이의 성공가능성은 아직 미지수이나 문화학은 개별화전문화한 인문학의 상황을 반성하고 현실의 문화적 삶의 영역을 다시 획득하려는 하나의 시도로 존재의미를 가진다.

This paper aims at investigating the emergence and vision of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 the main frame of which has been emerged around the mid-20th century. Cultural studies was an academical response to the enormous socio-cultural change in the 20th century. Under the awakening that existing classical human studies could no longer handle the complexity and the diversity of social problems successfully, it has tried to establish a unified science in a transdisciplinary way, which networks distinct human/social sciences and understands cultural realities in a submerging perspective. In english speaking world, "Cultural Studies" was proposed as a transdisciplinary study in the 60s, while in German speaking region in the 80s. under the name of "Kulturwissenschaft". It is yet to be determined how successful cultural studies might be. However, it should still be a meaningful attempt to unify the specialized, fragmented disciplines into a submerging whole, which may offer a richer account of actual human life as a cultural animal.

5

孟子-告子의 인성론 논쟁에 대한 재고찰

임헌규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9집 2005.12 pp.109-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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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원

“인간 본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은 인간의 자기 정체해명이라는 점에서 인간이 제기하는 다른 모든 물음에 선행하는 중요한 물음이다. 고대 중국에서 이 물음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인 논변은 孟子와 告子간에 있었던 “인성론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논변은 논변의 한 당사자인 맹자 측의 의한 일방적인 기록이라는 문제점이 있지만, 인성론의 문제에서 제기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입장(자연주의 대 선험주의)이 잘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그런데 이 논변은 많은 고찰이 있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오해가 있는 듯하다. 따라서 이 글은 이 논변을 차례대로 면밀히 다시 한번 살펴봄으로써 그 동안의 오해들을 비정하고, 이해를 도모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먼저 필자는 여기서 맹자와 고자와 人性과 仁義에 관계에 대해 일종의 비유(버들과 그릇, 여울물과 물의 흐름)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여, 이 비유들이 과연 정당한가 하는 점을 존재론과 가치론의 대립에 초점을 맞추어 해명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특히 필자는 告子의 “生之謂性”이라는 명제에 대한 맹자의 대답을 두고 해석자들이 제기한 비판적 문제제기를 살펴보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몇 가지 입론을 소개하면서 필자의 해설을 부가하였다. 나아가 필자는 告子의 “仁內義外”라는 명제 및 孟子의 “義 또한 內이다”는 주장에 대해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을 비정하고, 그것이 함축하는 의미를 다양한 철학사조를 통해 해석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필자는 맹자가 말하는 人性의 범위를 어디까지에 제한해야 하는 지를 『孟子』의 텍스트에 즉해서 해명하면서, 人性과 人欲의 관계를 규명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결론으로서 필자는 현대 주도적인 자연주의(물리주의)는 告子적인 無性論의 입장에서 인간의 존재규명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를 인간의 위기로 단정하면서 맹자 인성론의 재구성에 인간이 이념이 부활할 수 있는 관건이 놓여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하였다.

對人間的 ‘正體解明’, “人間本性是什麽?”的問題是 人間 提起 很多的問題中 最重要的問題. 在古代 中國的時候, 這個問題的 最初論爭是 孟子和告子 互相論難“人性論論爭”. 這論爭 因爲有人性論問題的 最高基本的立場(自然主義和先驗主義) 所以 注目了. 但是 在這個論爭, 有很多考察, 可是 有很多誤解. 所以 這論文的目的是 再考察 這人性論論爭, 對幾個誤解 理解的 圖謀.告子說 1) 關于性和‘仁義’的 關係, 打了幾個比喩, 做定義了 性是食色, 說 性跟生是一樣的槪念, 沒有 善還是不善 就是中性的槪念. 關于這告子說, 孟子先做暗示 仁義 因爲歪曲人性 所以 附加槪念, 1) 性自然而然志向善, 不一樣生的槪念 2) 主張了仁義也不是 經驗的 事實, 應該說 內. 在這論辨上, 了解得很確實 孟子 說心之所同然者的 人性 跟生物學的 資質一定應解辨別, 不是生物學的 而是人間本性. 關于人間存在糾明, 現代 主導的自然主義(物理主義)在告子 無性論的 立場上. 這就是 人間的 危機, 于是 孟子人性論的再構成是 人間理念 回復的 關鍵問題.

6

윤리 공동체의 범위와 육식의 윤리성

김학택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9집 2005.12 pp.13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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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의 윤리성은 윤리 공동체의 범위, 즉 도덕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대상의 범위에 크게 좌우된다. 동물 중심적 윤리는 그들의 이익, 고통 혹은 권리를 고려하고 존중해야 한다. 동물의 희생으로 인한 인간의 이익이 사소할 경우 그 행위는 도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그들은 육식이 인간의 사치일 뿐 필요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동물 중심적 윤리에서는 육식이 인간의 사치가 아니라 필요인 경우 도덕적으로 정당화된다. 또한 복지가 보장되는 환경에서 방목되어 사육된 고기일 경우에도 육식은 허용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을 확인하고 검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동물 중심적 윤리에서 허용될 수 있는 육식은 그것 없이는 인간의 생존이 불가능한 경우뿐이다.전체론적 윤리에서는 전체와의 관계에서 가치가 결정되고 옳고 그름이 결정되기 때문에 육식 자체가 도덕적으로 그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육식은 자연을 오염시키는 전방위적인 계기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론적 윤리는 육식을 금지하거나 최소한 절제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육식이 자연 환경에 미치는 다양한 악영향은 인간만을 윤리 공동체의 일원으로 여기는 인간 중심적 윤리에서도 육식을 허용할 수 없게 만든다. 그것은 여러 가지 환경오염을 초래하고, 환경오염은 인간의 생존에 위협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물 중심적 윤리는 육식 없이는 인간의 생존이 불가능한 경우뿐 아니라 일반적 상황에서도 육식은 허용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있다. 따라서 육식의 문제는 전체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할 뿐 아니라 설득력도 가질 수 있다.

The morality of our use of animals for food relies on the boundary of moral community. In animocentric ethics, we have respect for interests, sufferings or rights of animals as well as human. They don't allow major interests to be sacrificed for minor interests. P. Singer asserts the animal flesh is a luxury rather than a necessity. Therefore, our use of animals for food is morally justifiable if animal flesh is a necessity. If the flesh we are considering eating was produced without suffering, it is also morally justifiable. But we are living in cities where it is difficult to know how the animals we might eat have lived and died.In holistic ethics, our use of animals for food is always not morally wrong act because an act is valued in the relation with the whole of nature. But in fact it gives various causes of environmental crisis. Therefore, it must be forbidden, at least reduced. The effect of the use of animals for food on the nature makes it to immoral act in anthropocentric ethics. It brings to the pollution of nature that does human life harm. After all, although we have different view on the boundary of moral community, we must forbidden, at least reduced to the use of animals for food.

7

하이데거의 존재지평과 발현사건으로서의 존재

박유정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9집 2005.12 pp.157-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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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0원

이 글은 하이데거 사유의 핵심인 존재개념에 대한 고찰이다. 하이데거는 그의 전기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존개개념(우시아로서 현전의 형이상학)이 중세의 제작 형이상학으로, 급기야 근대의 주체 형이상학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고찰하고, 현존과 부재의 유동성이 현전성으로 파악되던 그리스 존재개념이 회복할 수 없는 존재망각의 상황으로 치달았다고 진단한다. 이로써 존재가 아닌 존재자성에 입각한 존재론은 하나의 세계편견이고 세계상일 뿐임을 지적하고 그것을 보다 기초적인 현존재의 존재론을 통해 근원적으로 근거지우려 했다. 이러한 그의 기획은 후기에는 보다 철저하고 근원적으로 나아가서, 그는 서구 존재론의 역사 이전에 피지스와 알레테이아로서 경험되던 존재역사의 시원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한다. 왜냐하면 존재의 발현사건을 모르는 서구 플라톤 이래의 존재론으로는 존재망각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구사유가 지닌 근원적 한계를 자신의 존재물음을 통해 제시하는 하이데거의 지평은, 헤겔이 존재의 운동과 현실을 부정의 논리를 통해 지시한 데서도 드러났지만, 하이데거는 보다 존재론적인 입장에서 존재 자체를 포착하고자 하므로, 그 근원성에서 동양적 사유와의 대화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In meiner Arbeit handelt es sich um den Begriff des Seins bei Heidegger. Heideggersches Grundgedenken ist Seinsdenken, d.h. Seinsfrage. Indem Heidegger abendlndlische Metaphysik betrachtet, kritisiert er Seinsvergessenheit der Metaphysik und versucht er zu berwinden sie. Deshalb konnten wir besttigen, daß Heideggersches Seinsdenken in seiner Entwicklung sehr verschieden ist, und daß sein Denken ein Verhltnis zum orientalen Denken wie Laotze hat.

8

생명과학은 물리과학으로 환원되는가?

고인석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9집 2005.12 pp.179-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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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0원

생명을 지닌 것들 즉 유기체에 대한 연구는 오랫동안 생명 없는 물리적 대상에 대한 연구와는 상이한 탐구 방법과 전제들을 지닌 독립적 영역으로 존립해 왔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 생물학이 보여준 발전의 양상은 빈 학단의 구성원들이 구상했던 물리과학 기반의 환원적 통일이 공허한 상상만은 아니라는 인식을 일깨우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 논문은 오래된, 그러나 심물 관계에 관한 그것 못지않게 여전히 현실적인 이 물음을 다룬다: 생명과학은 물리과학으로 환원가능한가? 이 논문은 생기론-기계론의 논쟁사에 대한 간략한 고찰에서 출발하여 생명현상에 대한 현대의 생물학적 이해의 바탕에 깔린 존재론적 기반으로서의 유기체론을 검토하고, 마이어가 생물학적 설명의 특징을 서술하기 위해 끌어들인 궁극인과의 개념을 검토한 뒤 그것의 특성을 전통적인 목적인의 개념 및 데닛의 개념쌍 ‘skyhook-crane’과 비교한다. 생명현상을 물리과학적 접근방식을 통해 서술하고 설명하는 일은 국소적으로 높은 효율성을 나타내고 또 설명 구도의 광범위한 통일을 달성한다는 의미의 경제성을 드러내지만, 생명현상 전반 특히 진화의 역사와 생명현상의 다양성에 대한 고려라는 측면에서 볼 때 부적절성을 노정한다.

While biology has a long tradition as an autonomous science, its development in the second half of 20th century seems to support the Carnap-Oppenheim-Putnamian view on the hierarchical structure of science which implies the reducibility of the biological to the physical. Is the theories of biology reducible to those of physical science? This article analyses this question in three parts: 1) Investigation of the vitalism-mechanism debate in 19th century and its settlement. 2) Conceptual analysis of teleological, mechanical, and organicist view of the living world. 3) Ernst Mayr's ‘ultimate causation’ is compared with Daniel Dennett's notions of ‘skyhook versus crane’. The organicist perspective seems to give the most comprehensive view on the biological world, even if the mechanist view brings high efficiency to some research field. Further, the physico-chemical reductionist approach fails to encompass the evolutionary aspect of species and populations which is essential for biological thinking.

9

개연적 판단 : 논증과 추론

이상하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9집 2005.12 pp.20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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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0원

이론과 실천의 독립적 관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지와 실천지의 구분에서 명백히 나타나며, 합리성의 실천적 측면은 상황에 합당한 행위와 판단을 지향한다. 추론 형식과 형식 계산만으로는 실제 판단에서 논증의 합당함을 평가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점을 분명히 했으며, 그가 말한 실천적 그리고 수사학적 삼단논법은 상황에 합당한 개연적 판단이다. 개연성은 판단 유형에 따라 다 측면으로 나타난다. 근대 확실성 추구의 시대정신 속에서 개연성의 몇 측면은 추론 및 계산 형식으로 대체되고, 상황에 합당함으로서 개연적 판단은 합리성의 맥락에서 배제된다. 하지만, 그러한 개연적 판단은 현실세계에서 실천 영역의 합리성에 속한다. 윤리학과 수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요한 문제는 상황에 합당한 개연적 판단의 도덕적 차원을 논하는 것이다.상황 및 행위자 보편화를 추구하는 규범윤리의 이론은 하나가 아니다.攀규범윤리의 전통과 분류는 다음에서 다뤘다. 이상하(2005).攀攀 갈등하는 상황에 규범윤리의 이론들이 개입할 때 결과는 중재에 의한 실천적 해결이 아니라 윤리적 딜레마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윤리적 딜레마는 다양한 윤리 이론들의 모순을 보여주는 창이 된다. 이론 다양성에 의한 윤리적 딜레마의 인식은 ‘이론 의존 위험성’의 인식으로 이어졌고, 이 점은 현대 실천윤리의 부활에 결정적 동기가 된다. 이론 의존성의 위험을 인식할 때 이론과 실천의 두 관계가 주제로 떠오른다. 사후 정당화 혹은 평가에서 이론의 간접적 역할을 강조하거나 혹은 실천적 문제 해결에서 이론의 개선을 지향하는 이론과 실천의 상보적 관계와 이론과 실천의 독립적 관계가 그 두 가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강한 실천 정신은 이론과 실천의 독립적 관계의 지향 속에서 나타난다. 규범윤리와의 대비 속에서 실천윤리 정신을 과거 전통에서 찾고, 다원화된 가치체계 속에서 실천윤리가 극복해야 할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 이 글의 작은 목적이다.

The Independence relation between theory and practice is apparent in Aristotle's distinction of moral virtues form intellectual virtues. The practical aspect of rationality bears a close relation to reasonable judgements and action appropriate for situation. The reasonableness of an argument in substantial judgement and action cannot be evaluated only by formal structure of inference and calculus. This is clear in Aristotle's conception of practice. His practical and rhetorical syllogism is a kind of probable judgement in which situational factors cannot be ignored. The several aspects of being probable are inherent in various types of judgement. Some of those aspects have been substituted for formal inference and probability calculus. Since the modern Zeitgeist represented by the 'Pursuit of Certainty', probabilism in judgement doesn't belong to the context of rationality. But probabilism in judgement cannot be excluded in human rationality in the real world. Good judgement is a probable judgement supportable by a reasonable argument in which situational factors are considered.

10

막스 쉘러의 몸과 메를로-퐁티의 몸과 살

김종헌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9집 2005.12 pp.235-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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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0원

11

7,000원

12

책임개념에 대한 실천윤리적 해명

김양현, 노영란, 변순용, 임채광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9집 2005.12 pp.29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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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현대 윤리학에서 제기되는 책임의 윤리를 유럽철학에서는 쉬바이처, 봐이쉐델, 요나스, 레비나스, 렝크의 논의를 중심으로, 영미철학에서는 피셔, 왈라스, 워커, 프렌치의 논의를 중심으로 분석하여, 현대 책임윤리의 근본적 특징을 책임개념의 확장임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확장은 우선 자유에 근거한 책임으로부터의 확대, 상호성에 근거한 책임으로부터의 확대, 과거지향적인 책임으로부터의 확대의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책임윤리는 생태윤리, 생명윤리, 정보윤리 등의 실천윤리 분야에서 다양하게 적용가능하다. 이 글에서는 실천철학에서 책임윤리가 가지는 의미를 네 가지로 제시하였는데, 우선 책임윤리에서의 도덕판단은 행위나 행위자중 어느 하나만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책임주체로서의 행위자에 토대를 두면서 책임의 대상으로서의 행위를 주목한다는 것이다. 둘째, 책임이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셋째, 책임윤리는 원칙윤리적 입장과 결과윤리적 입장의 결합을 시도하며, 끝으로 책임윤리는 이론과 실천의 매개기능을 갖는다.

In der vorliegenden Abhandlung haben die Verfasser die Verantwortungsethik einerseits in bezug auf A. Schweitzer, W. Weischedel, H. Jonas, E. Levinas und H. Lenk in der europischen Philosophie und andererseits J. Fischer, R. Wallace, M. Walker, P.A. French in der anglo-amerikanischen Philosophie analysiert. Die Verfasser behaupten, dass das wesentliche Merkmal der heutigen Verantwortungsethik in der Erweiterung des Verantwortungsbegriffs liegt. Diese Erweiterung hat drei Tendenzen: von dem Freiheitsbegriff zu dem Verantwortungsbegriff sich selbst, von der Reziprozitt zu der Asymmetrie und von der retrospektiven Verantwortung zu der prospektiven Verantwortung. Die auf die erweiterte Verantworung begrndete Ethik kann in der Gebiet der praktischen Ethik, z.B. in der kologischen Ethik, in der Bioethik, in der Informationsethik, u.a., angewendet werden. Die Verfasser schlagen vier Bedeutungen der Verantwortungsethik in der praktischen Philosophie vor. Zum erstens, man denkt nicht nur an eine Handlung als einen Gegenstand der Verantwortung, sondern zugliech auch an einen Handelnder als ein Subjekt der Verantwortung, wenn man eine moralischen Urteil in der Verantwortungsethik abgibt. Zweitens, die Verantwortungsethik ermglicht einen konkreten und individuellen Ansatz fr die verschiedenen Bereiche der praktischen Ethik. Drittens, Sie versucht eine Verbindung zwischen der Prinzipienethik und der Folgenethik. Letztlich sie hat eine vermittelnde Funktion zwischen Theorie und Prax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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