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2025 (29)
2024 (23)
2023 (24)
2022 (33)
2021 (37)
2020 (29)
2019 (30)
2018 (34)
2017 (44)
2016 (50)
2015 (54)
2014 (59)
2013 (49)
2012 (44)
2011 (56)
2010 (60)
2009 (62)
2008 (55)
2007 (51)
2006 (46)
2005 (48)
2004 (48)
2003 (54)
2002 (33)
2001 (39)
2000 (32)
1999 (35)
1998 (43)
1997 (29)
1996 (30)
1995 (28)
1994 (17)
1993 (18)
1992 (13)
1991 (10)
1990 (10)
1989 (11)
1988 (15)
1987 (22)
6,400원
동무 이제마의 사상의학은 유학적 배경에서 출발하면서도 핵심적인 문제들에 있어서 당시 주류적 흐름을 이루고 있던 성리학적 가정들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체계를 이루고 있다. 이 논문의 주된 목적은 동무의 성정론을 성리학적 관점과 대비적으로 검토함으로써 그의 독창적인 해석 체계와 의도를 밝히는 데 있다. 이를 위해 필자는 주자의 성정론과 동무의 성정론을 대비적으로 검토했다. 주자는 공맹유학을 계승했지만 성정을 이기론이라는 형이상학적 체계 안에서 해명하려고 했다. 반면에 동무는 성정을 몸 중심의 관점에서 해명함으로써 몸 기능으로 주어진 성정을 자각하고 실천하는 실증적 방법을 모색했다. 동무의 이러한 시도는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전통과의 단절의 의미하며, 방법론적으로는 사변적 탐구를 벗어나 임상적 경험에 근거한 실증적 탐구에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동무의 성정론은 도덕성의 본성과 구조에 대한 독창적 해명이며, 그것은 인간을 의학이나 과학적 지식과의 접목을 통해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계기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東武李濟馬的四象醫學, 以儒家的背景爲出發點, 但它的核心問題脫離了當時成爲主流的性理學的假定, 而建立了獨特的體系. 這一篇文章的目的, 是通過東武的性情論和性理學的觀點的對比, 考察東武的理論體系的獨創性與意圖. 爲了解決這一問題, 筆者比較·檢討了朱子的性情論和東武的性情論. 朱子雖然繼承了孔孟儒學, 但從形上學的觀點來理解性情. 反而, 東武李濟馬的觀點, 是以身體爲核心理解, 把性情認爲身體的功能, 幷且用實證的方法探索. 東武李濟馬的這樣的意圖, 一邊意味着和性理學的形上學之傳統斷絶, 另一邊意味着在方法論上, 從觀念的理解轉化爲根據臨床的經驗的實證的探討. 因此, 我們可以評價, 東武的性情論, 是對道德的本性和構造獨特的觀點, 而且也是提供了爲對人的醫學與科學知識融合的綜合的理解之創新的解釋.
6,700원
본 논문의 목적은 주희의 문도론에 나타난 언어관을 밝히는데 있다. 중국 당송 교체기에 사상 전환의 한 양상으로 언어관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이 글은 주희 언어관을 밝히기 위해 어떻게 언어관의 전환을 포함하게 되었는가를 살피고자 하였다. 그 결과 교체기 당시에 ‘언어사용 규범’의 문제를 둘러싸고 이론적 대립과 갈등이 있었고, 이후 성리학의 형성과 더불어 독특한 언어 사용의 규범이 확립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 말기를 대표하는 한유와 소식 등은 언어를 진리 재현의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감성을 표현하는 기능이라고 인식하였다. 그러나 문학적 글쓰기를 옹호하면서 감성 표현을 중시한 이들의 언어관은 주돈이를 거쳐 주희에 이르면서 새로운 관점으로 대체되었다. 주희의 문도론을 검토한 결과 ‘언어란 진리를 재현하는 수단’이라는 언어관의 확립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는 이러한 주희의 언어관을 성리설적 학문체계의 형성과정에서 언어의 기능에 대한 이해 방식이 진리 재현 중심의 언어관으로 전환된 결과라고 결론지었다.
這一篇論文考察了朱熹‘文道論’中的語言觀. 在中國從唐代到宋代之際, 發生了思想的轉化之一的語言觀的轉換. 這一篇論文爲了考察朱熹的語言觀, 探索了當時語言觀的轉化的具體的過程, 而且宋代性理學的形成過程當中爲什麽包括語言觀在內的原因. 其結果, 筆者發現了, 在唐宋交替期間當時存在着圍繞‘語言使用的規範’進行了理論的對立和鬪爭, 幷且此後在性理學的形成過程當中, 確立了有獨特的語言觀使用的規範. 唐代末期爲代表的人物韓愈和蘇軾認爲, 語言不是再現眞理的手段, 而是强調爲了表達人的感性的功能. 因此他們肯定文學性的寫作, 而且很重視感性的表現的語言觀. 但是經過周惇頤和朱熹的時代, 被否定, 而取代了新的觀點. 筆者通過檢討朱熹的語言觀, 得到了他的語言觀就是: 語言是再現眞理的手段. 總而言之, 筆者認爲在性理學的形成過程當中, 朱熹的語言觀就是對語言的解釋方式上爲再現眞理的手段的轉化.
4,900원
물리학사를 보면, 공간의 본성에 대해 Newton은 실체적 모델(substantival model)을 주창했고 Mach은 상대적 모델(relational model)을 옹호했다. 실체적 모델에 의하면, 공간은 물체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실체로 존재한다. 이에 반해 상대적 모델에 의하면, 공간이란 물체들이 맺는 관계에 불과하다. Newton은 절대공간(absolute space)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두레박 사고실험과 구슬 사고실험을 전개했다. Mach은 절대공간을 끌어들이지 않고 두 사고실험의 결과를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비판했으며, 절대공간이라는 개념은 Newton의 제3운동의 법칙과 모순을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내가 보기에, 모순을 일으킨다는 Mach의 비판은 강력하다. 그러나 절대공간을 끌어들이지 않고도 두레박 사고실험의 결과와 구슬 사고실험의 결과를 설명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절대공간을 끌어들이지 않는 대신 또 다른 힘(extra force)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형이상학적 대상을 끌어들이는 대가를 치렀기 때문이다.
In the history of physics, Newton defended the substantival model and Mach advocated the relational model over the nature of space. According to the substantival model, space is a substance like a material object, and according to the relational model, space is a relation between material objects. Newton performed the buck thought experiment and a globe thought experiment to support the view that absolute space exists. In response, Mach explained the results of the two experiments without invoking absolute space. He also pointed out that the notion of absolute space contradicts Newton's third law of motion. In my view, Mach is right that the concept of absolute space contradicts the third law of motion. But it is problematic for him to say that the results of the two thought experiments can be explained without bringing in absolute space because he did it at the cost of appealing to another problematic metaphysical entity: extra force.
마틴 부버 대화철학에서의 ‘원간격(原間隔, Urdistanz)’과 ‘간격(間隔, Zwischen)' 개념에 관한 존재론적 고찰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46집 2007.09 pp.71-108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8,200원
6,700원
사드는 흔히 우리에게 극단적으로 기이하고 음란한 작품을 남긴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은 공포의 감정을 가져다 줄 수도 있지만, 너무나 비현실적이기에 내버려도 좋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우리는 이 논문에서 그의 글쓰기가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반성의 결과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으며, 섹슈얼리티의 관점이 아닌 정치적 관점에서 그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밝히고자 한다.이 논문에서의 논점들은 다음과 같다.1. 모든 것을 부정하고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을 전적으로 긍정하는 사디즘은 불가능하다.2. 사드의 사상은 감각적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는 사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스토아주의이다.3. 사드의 사상은 궁극적으로 에로티시즘을 부정하며, 어떠한 조건 하에서 에로티시즘이 발생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사드의 영향을 많이 받은 조르주 바타유가 대답을 준다.4. 사드의 사상에는 여러 역설이 존재하며, 사드는 자신이 눈에 보이게 명백히 주장한 것과는 다른 것을 말한다.
Sade est connu comme un penseur qui a laissé des écrits extrêmement étrange et luxurieux. Ils peuvent nous donner un sentiment affreux, mais, plupart d'entre nous, ils sont si iréels et insignifiants. Dans cette étude, nous essayons de montrer que l'écriture de Sade provient d'une réflexion sur la Révolution française et d'éclairer, non sur le plan de sexualité, mais celui de politique, ce qu'il veut dire vraiment. Les arguments qui s'en suivent. 1. Si le sadisme est la pensée qui est l'affirmation de la négation de tout et de la destruction de tout, il est une pensée impossible. 2. La pensée de Sade n'est pas une éloge des plaisirs sensibles et sensuels, mais une sorte de stoïcisme. 3. La pensée de Sade nie l'érotisme, mais Georges Bataille sur qui elle exerce une grande influence montre sous quelle condition il donne lieu. 4. Dans cette pensée, il y a plusieurs paradoxes. Sade dit ce qui est différent de ce qu'il démontre clairement et visiblement.
7,500원
이 글의 목적은 타자로서의 한국 내 이주민(여성결혼이민자)의 처지를 생활세계의 지평에서 기술하고, 이주민과 관련하여 제시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문화다원주의적 담론들의 명암을 분석한 다음, 이주민이 단지 수혜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기 위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데 있다. 급속한 세계화의 진행 속에서 한국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이주민과 문화 다원성에 대한 문제는 이주민이 추구하는 자기실현의 욕구와 한국 사회가 추구하는 자기보존의 욕구 간 갈등을 어떻게 종합할 것인지로 그 초점이 모아진다. 문화적 다원성을 어떻게 종합할 것인지와 관련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제안되고 있는 자문화중심주의문화상대주의시장지상주의 등은 ‘모두’의 철학이나 ‘우리’의 철학을 극단적으로 추종함으로써 복수의 가치들이 인정투쟁을 통해 의사소통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제약하거나 부정한다는 점에서 옳지 못하다. 그렇다면 문화다원주의는 ‘모두’의 철학이나 ‘우리’의 철학 아닌 ‘우리 안의 타자 철학’의 관점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이주민이 서로주체성과 탈주체성의 경계 위에서 수혜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종 관계로 된 법률의 폐지, 이주민이 시민으로서 참여하는 거버넌스(governance)의 형성, 다중 언어 학습의 지원, 자율적 문화 선택의 기회 부여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한국사회의 건전한 소통과 연대는 홀로주체성을 강요하는 한국문화에 대한 이주민의 저항에서 시작될 것이다.
This essay is a study to describe the horizon of living world of migrants as others in Korea, to analyze the weak points of different kinds of cultural pluralistic discourses about migrants, and to suggest a political alternative for migrants not to live as objects of beneficiary but as subjects of human rights. The problem of migrants and cultural plurality in Korea is converged into the critical point how we synthesize the discrepancy between migrants' desires of self-realization and native Korean desires of self-preservation. Ethnocentrism, cultural relativism, and extreme capitalism can not be answers to the discrepancy, because they restrict the possibility of communicative struggle for recognition by depending on Philosophy of All or Philosophy of Us. Accordingly, cultural pluralism must be considered as Philosophy of Others in Us. In order that migrants do not live as objects of beneficiary but as subjects of human rights standing on the border between inter-subjectivity and post-subjectivity, we should abolish unequal laws of treating migrants as servants, organize mutual governance to consider migrants as citizens, support policy of multi-language learning, and guarantee the liberty of cultural choice. Above all, sound communication and solidarity of Korean plural society can be started with migrants' resistance against the exclusive subjectivity of Korean cultures.
자유로운 아이러니스트가 된 위버멘쉬 ― 로티의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성』에 드러난 니체 해석 ―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46집 2007.09 pp.171-191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5,700원
이 논문은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성에 나타나는 니체에 대한 로티의 해석을 살펴보면서 그 의미를 밝혀보고자 한다. 이러한 로티의 시도는 니체의 철학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 중에서도 특히 실용주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로티는 우선 니체의 은유적 언어관을 수용하여 데이비슨의 ‘찰나 이론’과 접합시키면서 니체의 창조적인 메타포가 현실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실용주의적 성격을 지니도록 만든다. 더 나아가 로티는 철저하게 전체론을 수용하면서도 개인의 사적인 영역을 최대한 인정하기 위해서 사적인 영역과 타인을 고려하고 책임을 묻는 공적인 영역을 구분시킨다. 로티는 니체에 대한 재서술에서 프로이트를 통해 이러한 사적 영역을 강조한다. 이 과정을 통해 니체의 위버멘쉬는 공적인 영역의 어휘들을 제거하고 언어와 자아와 역사적 우연성을 받아들이는 자유로운 아이러니스트가 된다. 로티의 니체 재서술은 자칫 사적인 영역에 갇혀서 이상적인 사회를 추구하는 현대의 지식인들에게 사적인 영역을 최대한 발현하면서도 세상의 고통과 굴욕에 민감하게 대처하고 미래의 희망을 창안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
Bei der vorliegenden Arbeit handelt es sich um die Besprechung der Nietzsche-Interpretation Rortys aus seinem Buch Kontingenz, Ironie und Solidarität. Unter den vielfältigen Nietzsche-Interpretationen handelt es sich bei Rortys Versuch um einen Lösungsvorschlag, wie Nietzsches Philosophie in unserer Zeit pragmatisch anzuwenden sei. Rorty nimmt Nietzsches Metapher-Theorie auf und dann verknüpft sie mit der “vorläufigen Theorie" von Davidson. Dadurch gewinnt die schaffende Metapher einen pragmatischen Charakter, wie auf die Welt aktiv zu reagieren ist. Um individuellen Privatbereich zu würdigen, unterscheidet Rorty zwischen dem privaten und dem öffentlichen Bereich, in dem wir andere berücksichtigen und mit der Frage nach Verantwortung konfrontiert sind. In der Nietzsche-Erzählung wird der Privatbereich durch die freudische Theorie betont. Mit der Abkoppelung des öffentlichen Bereichs von der privaten Sphäre wird Nietzsches Übermensch zur liberalen Ironikerin, die die Kontingenz der Sprache, des Ich und der Geschichte akzeptiert. Daher lässt sich Rortys Nietzsche-Erzaehlung als das Anzeigen einer Methode verstehen, mit der Intellektuelle trotz des Primats der grösstmöglichen Verwirklichung im Privatbereich sensibel auf das Leiden anderer und die Beleidigung reagieren und zugleich zukünftige Hoffnung schöpfen.
6,400원
자연 환경 파괴는 우리 인간의 생존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자연 환경에 대한 인식 변화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환경윤리란 인간과 자연 환경과의 윤리적 관계에 대한 체계적 설명이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인간 이외의 자연적 대상 역시 윤리적 논의의 세계에 포함시켜야 한다. 특히, 우리는 우리 자신이 속해 있는 서식 환경에 폭넓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서식 환경에 대한 윤리적 고려의 중요성을 환경윤리의 기초 과제로 표방한 사람은 알도 레오폴드이다. 그는 땅에 대한 새로운 시각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다. 땅을 단순한 소유 재산이 아닌 생태학적 대상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레오폴드는 ‘대지윤리’라는 생태중심의 윤리를 건설하고자 했다. 본고는 ‘대지윤리’라는 레오폴드의 환경윤리 사상을 체계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그리고 대지윤리가 상당 부분 생태학적 이해에 기초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생태학적 관점에서 대지윤리가 기존 환경윤리 사상의 난점을 어떻게 극복하고자 했는지도 검토하고자 한다.
Aldo Leopold's A Sand County Almanac called for a revolution in environmental ethics, a revolution in the way we behave toward ‘land'. He noted that one behave unethically regarding land. But Leopold's ethics, land-community ethics, so called ‘land ethic' investigate the claim that land is a member of the moral community of humans. Land ethic was an understanding of land as something far more complex than a set of resources, or even a collection of individual plants and animals. Rather it was a set of ecological interactions and relationships, interactions and relationships that could be disrupted only at great risk to the health and integrity of the land. This Paper aims to show that the core of Leopold's land ethic was his linkage of ethics to ecology.
5,200원
컴퓨터 관련 정보통신기술의 오용과 남용으로 발생하는 주요 문제들 중에 해킹 문제와 관련된 것들을 분석 검토한다. 우선 ‘해킹’의 의미를 명료화한다. 둘째로, 해킹의 사례들을 분석하고, 그 경우들에 대한 도덕적 정당화가 가능하다고 보는 경우와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경우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결론적으로, 해킹 행위가 프라이버시 침해, 지적 소유권 훼손을 수반하고 있고, 들어갈 권리를 갖지 못하는 다른 사람의 영역에 침입하고 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I will analyze the problem of hacking arising from the misuse and overuse of advanced information-technology related computers. First of all, I will make the meaning of hacking clear; and, then, critically examine the ethical debate between pros and cons concerning hacking. I will conclude that hacking is morally wrong because it is attended with invasion of privacy, injury of intellectural property and trespass.
행위론에 입각한 앎의 성격에 관한 연구 - 왕양명과 비트겐슈타인의 앎에 대한 연구를 중심으로 -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46집 2007.09 pp.263-287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6,300원
왕양명(1472~1529)과 비트겐슈타인(1889~1951)은 지금까지 서로의 철학적 연관성에 대해서 연구자들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우선 지역적으로나 시대적으로 상당히 떨어져 있다는 점 이외에, 무엇보다도 이들의 철학적 성찰의 토대인 ‘행위론’에 기반을 둔 ‘앎’의 개념에 대한 동서양의 비교철학적 이해가 아직 충분하지 못한 점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왕양명이 앎(知)과 행함(行)을 별개의 것으로 보는 기존의 학설에 반대하여 ‘행함(行)’의 측면에서 앎을 이해하고, 행함만이 앎의 증험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가진 점과, 비트겐슈타인의 경우 ‘어떤 것을 이해함(understanding)’에는 언어로 기술될 수 있는 ‘지식(Wissen)’ 뿐만 아니라, ‘할 수 있음(Knnen)’의 측면이 있으며, 바로 후자는 언어의 경우 '사용(use)'으로, 좀 더 일반적으로는 '행위(action)'로 나타남을 강조하였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이 두 사상가들은 ‘행위론에 입각한 앎’에 그들의 철학적 성찰의 핵심을 정립하려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본 논문은 왕양명과 비트겐슈타인의 비교연구를 통해 그들이 주장하는 '앎의 성격'을 면밀히 비교 고찰함으로써 두 사람이 '행위론적인 앎'이라는 입각점에서 깊이 조우하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I think that the concepts and expression used by Wang Yang-Ming and Wittgenstein are different but they have quite a few common parts in terms of philosophical introspection. Wang Yang-Ming, in opposition to the intellectualist theories which considered knowledge different from acting, understood the knowledge in an acting aspect and regarded acting only as a true trial, while Wittgenstein found that understanding has an aspect of ‘being capable (kőnnen)' as well as ‘knowledge (Wissen)' which could be described in languages, and emphasized that, in case of language, the latter was expressed by ‘using' and more generally by ‘an action'. In this respect, the two philosophers appear to try to establish the core of their philosophical introspection on ‘the knowledge based on the theory of action'.
6,600원
논술이란 주어진 자료나 글을 비판적으로 읽고 문제를 설정한 다음 그 문제에 대한 창의적 해결책을 끌어내어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논술은 비판적 읽기, 문제 설정과 창의적 해결, 논리적 서술의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논술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은 비판적 사고다. 이 글은 논술의 토대로 인정되는 비판적 사고 운동을 소개하고, 그 동안의 비판적 사고의 역사와 정의 등을 살핀다. 이 과정에서 최근의 비판적 사고 운동에 초점을 모으고, 70년대 초반 무렵부터 시작된 제1물결, 80년대 중반 무렵부터 시작된 제2물결을 소개할 것이다. 두 물결은 일정한 성과도 있었으나 나름대로 한계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최근에는 두 물결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려는 제3물결 운동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제3물결 운동이 필요한 이유를 밝히고, 제3물결의 한 견본 사례로 폴(R. Paul)의 이론을 소개하고, 그의 이론이 논술의 토대로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 검토한다.
To write argumentatively is to critically read a given material, to set up a problem, to propose a creative solution to it, and to write logically. So argumentative writing is composed of three stages: critical reading, setting up a problem and proposing a creative solution to it, and logical writing. Critical thinking plays the key role in all the three stages. This paper introduces the movement of critical thinking, the foundation for argumentative writing. It also investigates the history and the definition of critical thinking. In doing these, it focuses on the movement of critical thinking, the first-wave that began in the early 1970s, and the second-wave that began in the mid 1980s. The two waves will be seen to have certain good results but limitations as well. There is a growing demand that we should take the strengths of the two waves and make up for the weaknesses. So I present reasons for the need of the third-wave, introduce R. Paul's work as an example of the third wave, and examines how his theory can be applied to the foundation for argumentative writing.
6,100원
필자는 비개념적 내용의 정체성을 밝힘으로써 이 주제를 둘러싸고 쉽게 혼동될 수 있는 여러 입장들의 지도를 그려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필자는 다음과 같은 논증의 단계를 취하고자 한다. 첫째, 비개념적 내용의 정체성을 밝히기 위해서는 개념적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개념적 내용을 규정하려는 여러 시도가 구별된다.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무의식적인 정신 상태가 아니라 내용을 갖춘 정신적 상태이며, 이를 철학적 용어로 다시 말하자면 지향적인 정신 상태이다. 필자는 지향성에 대한 다양한 규정들이 상호 함축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일 것이다. 둘째, 이렇게 다양한 지향성 개념에 대응하여 비개념적 내용 역시 다양하게 규정된다는 것을 보인다. 이를 통해 비개념적 내용에 대한 여러 입장들이 구별하고, 대표적인 비개념적인 내용의 사례로 네 가지를 분석할 것이다. 개념적 내용의 다양성과는 달리, 비개념적 내용은 다양성과 동시에 통일성을 갖고 있음을 보일 것이다. 셋째, 비개념적 내용을 받아들이는 철학적 입장이 단지 ‘개념’이나 ‘내용’에 대한 언어적 재정의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 비개념적 내용이 철학적으로 요구되는 정당한 근거를 보일 것이다.
In this paper I clarify what nonconceptual content is and thereby sort out various and sometimes confusing claims concerning this issue. I shall follow the following three argument steps: First, we need to clarify what conceptual content is in order to clarify the notion of nonconceputal content. Conceptual content, philosophically paraphrased, is what is about in content-directed mental states, or mental states with intentionality. I shall enumerate eight characterizations on intentionality which shows that they are not implied by one another. Second, in relations with various characterizations of intentionality, I shall show that there are four typical kinds of nonconceptual content. Third, I shall show that nonconceptual content debate is not just a verbal dispute by showing that nonconceptual contents play a philosophically indispensable role in justifying our empirical content.
0개의 논문이 장바구니에 담겼습니다.
선택하신 파일을 압축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