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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한철학 [PAN-KOREAN PHILOSOPHY]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범한철학회 [Bumhan philosophical society]
  • pISSN
    1225-1410
  • eISSN
    2713-9344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1987 ~ 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철학
  • 십진분류
    KDC 105 DDC 105
제49집 (9건)
No
1

유형원 철학에서 실리(實理)의 적용 방식

서영이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49집 2008.06 p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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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00원

본 논문의 주된 목적은 유형원의 실리론이 정주 이기론의 체계와 궁극적 목적을 계승하며, 단지 그 실현 방법만을 달리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기존의 연구는 유형원의 철학을 두고 정주학을 긍정하는 차원에서 ‘리 중심적 사유’로 규정하거나, 정주학을 회의하는 차원에서 ‘기 중심적 사유’로 규정한다. 이렇듯 상반된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모두 유형원이 현실 적용 가능한 실제적ㆍ실증적 지식을 강조함으로써 ‘정주학을 극복’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는 유형원의 실리론이 ‘리의 본원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도덕 이상의 실현’을 여전히 지향한다는 점에서 ‘회의’와 ‘극복’이 아닌, 정주의 철학 체계를 그대로 계승한다고 본다. 다만 실리를 ‘법ㆍ제도’에 적용함으로써 ‘규범성’을 갖춘 실질적ㆍ직접적인 실현 방법을 제시했을 뿐이다. 이는 정주가 리를 ‘도덕적 근거’로 제시하고 ‘권유’를 통해 그 궁극의 목적을 이루려 했던 것과 다른 점이다. 이처럼 정주의 리는 유형원에 와서 구체적 사회 원리로 전환, 응용된다. 유형원은 도(道)를 담은 ‘법ㆍ제도의 실현’으로 국가의 안정을 이루고, 이를 기반으로 ‘도덕 이상’을 실현시키려 했다. 유형원 실리의 제도적 전개는 첫째 정주의 ‘리’가 여러 차원으로 응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해준다는 점에서, 둘째 ‘리’를 사회적 차원으로 전환시켜 응용함으로써 다차원적인 현실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갖는다.

The main purpose of this paper is to show that although Yu, Hyong Won's theory of substantial reason succeeded to the system and ultimate goal of Cheng-Zhu's theory of Li and Gi, it was different from Cheng-Zhu's in practical ways. Previous researchers have defined the thought of Yu Hyong Won as either a ‘Li-orientated thought’ in terms of affirming Cheng-Zhu study or a ‘GI-orientated thought’ in terms of denying one. Even though their opposing views, they all agree with this suggestion that Yu Hyong Won goes beyond Cheng-Zhu study by emphasizing the available practical and positive knowledges. However, I suggest that Yu Hyong Won's theory of substantial reason succeed to the philosophical system of Cheng-Zhu study in view of the fact that Yu Hyong Won emphasizes ‘the originality of LI’ and still pursues ‘the realization of moral ideal.’ Yu Hyoung Won suggests the direct and practical way which includes ‘morality,’ applying substantial reason to the law and institution while Cheng-Zhu views Li as ‘the ground of morality’ and tries to achieve the ultimate goal according to Li. Thus, Cheng-Zhu's idea of Li is changed and applied as a concrete social principle in Yu Hyong Won's view. Yu Hyong Won intends to make a state comfortable and tries to realize the moral ideal through realization of it's law and institutions based on tao. Yu, Hyong Won's philosophy makes sense for the following reason by applying the theory of substantial reason[實理] to an institution.: first, it shows that Cheng-Zhu's idea of Li has the possibility of being available in many levels. second, it suggests a new way to solve various practical problems by applying Li to the social levels.

2

생태주의 윤리규범으로서 도가사상의 가능성

강지연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49집 2008.06 pp.3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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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생태주의 담론과 유비될 때 도가사상이 갖는 사유적 특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먼저, 근본생태론과 유비되는 도가의 천인합일론을 설명한다. 근본생태론에 의하면 자연은 물질과 에너지의 순환체계에서 출발하거나 관계를 맺는 ‘하나의 유기체’이다. 한 부분에 대한 파괴가 곧 전체 유기체를 병들게 하므로 이 모든 것을 동등하게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본생태론의 유기체적 세계관은 중국철학에서의 천인합일과 유사점을 가진다. 도가의 천일합일은 인간과 자연은 각자 차이성을 보유하면서 자연스럽게 융합되는 것, 즉 자연과 인간의 각자 생존 권리와 생존방식을 보호해야 한다고 해석된다. 이 생태주의담론은 反인간중심주의로 정의되어 설명되어졌다. 그런데 필자는 인간중심주의와 反인간중심주의, 생태중심주의는 과연 이분법적인 양 극단의 세계관인지 그 비판점을 든다. 그런데 현대 철학적으로 해석되고, 문제제기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도가에는 도가생태윤 리라고 불릴 수 있는 자체로 ‘고유한’ 기본 원칙과 규범체계가 있다. 이 글에서는 생태주의 담론으로서 도가가 제시할 수 있는 윤리 규범으로서 ‘무위’와 ‘삼보론’을 위주로 설명한다.

This article attempts to show the philosophical characteristics of Taoism which stand in juxtaposition with the discourse of ecologism. First, this paper explores Taoist Theory of Unification of Heaven-Man is to be juxtapositioned with fun-damental ecologism. Fundamental ecologism purports to argue that nature is “an organism” which comes into being through the cyclical system involving matter and energy or from the established relationships in such cyclical system. Destruction of parts of such an organism eventually bring down the entire organism. Therefore, every aspect of such an organism must be respected equally. The organic world view derived from fundamental ecologism evinces similarties with that of Unificatio Theory of Heaven-Man of Chinese Philosophy. Taoism's Unification of Heaven-Man purports to preserve differences in person and nature with an eye toward natural amalgamation (fusion) of all the differences. Put differently, Taoism's Unification of Heaven and Man is to argue for each being to have its own right to exist and its way of existence to be preserved. Fundamental ecologism and Such a Taoist world view can be called “transcendental human centrism”. However, this paper presents critical appraisal of some related questions pertaining to whether human centrism, anti-human centrism or eco-centrism are dualistic and thus rather bipolar world views. Further, this paper explore “wuwei” and “discourse on three treasures” as a concrete code of conduct to be presented by Taoism and as a variant of ecological discourse.

3

계사상편 제1장과 건곤원리(乾坤原理)

임병학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49집 2008.06 pp.5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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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0원

계사상편 제1장에서는 ‘천지(天地)’, ‘건곤(乾坤)’, ‘일월(日月)’, ‘강유(剛柔)’, ‘건도(乾道)’, ‘곤도(坤道)’, ‘이간(易簡)’, ‘천하(天下)’, ‘덕(德)’, ‘업(業)’ 등 건곤지도(乾坤之道)와 직접 관련된 개념들을 밝히고 있어, 『주역』의 학문적 체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장이라 하겠다. 상편 제1장을 세 부분에서 나누어 고찰한 결과, 첫 번째 부분은 천지의 인격성을 건곤으로 표상하였음을 밝히고, 두 번째 부분은 괘상원리를 표상하는 건곤이 일월로 표상되는 천도인 시간원리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세 번째 부분은 건곤의 내용이 이간의 덕이며 이간의 덕이 천하의 이치임을 밝히고 있다. 이 세 부분을 구체적으로 요약해 보면, 첫째 부분에서는 괘상원리를 위주로 하는 『주역』의 역도는 건곤으로 표상되며, 건곤은 천지의 인격성을 상징하는 것임으로 인도인 예의(禮義)를 표상하여 길흉을 판단하는 기준이 됨을 밝히고 있다. 또한 하늘의 상(象)과 땅의 형(形)이 이루어져 변화가 드러남을 밝히고 있다. 둘째 부분에서는 건곤으로 표상되는 괘상원리가 음양원리를 표상하는 일월원리에 근거하고 있으며, 건곤에 의해서 만물의 시작과 완성이 이루어짐을 밝히고 있다. 또한 건괘는 성인지도를 표상하고, 곤괘는 군자지도를 위주로 표상하기 때문에 남과 여는 성인과 군자를 상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부분에서는 건곤의 내용이 이간이며, 이 이간의 덕을 그대로 계승한 것인 군자의 사명인 덕과 사업임을 밝히고 있다. 또한 인격적 세계의 구현은 모두 이간의 덕을 자각한 군자에서 이루어짐을 밝히고 있다.

This study on the first chapter the first volume of Xici(繫辭) in the I Ching is new attempting that is the study of I Ching. The first chapter of the first volume of Xici is the main discourse in Xici. The first chapter of the first volume of Xici is composed of a fundamental problem in the Book of Changes. The first chapter of the first volume of Xici tells on the Providence of Creative and Receptive(Ch'ienK'un, 乾坤) and on The Changes in the Universe. The first chapter of the first volume of Xici is composed of three equal parts, The first part is from “Heaven is high, the earth is low” to “In this way change and transformation become manifest.", The Second part is from “Therefore the eight trigrams succeed one another by turns" to “The Receptive completes the finished things.", The third part is from “The Creatve knows through the easy" to “therein lies perfection." The first part explains the core of Providence of Guàxiàng(卦象) that is composed of the Providence of Creative and Receptive. The Providence of Creative and Receptive are contained in the person-alism from the Book of Changes. The second part explains the basis of Providence of Creative and Receptive that is the tao of heaven and earth ; the tao of sun and moon. The third part explains the contents of Providence of Creative and Receptive as The easy and simple(易簡). It is based on the view expressed the moral doctrine of changes.

4

헤겔 미학의 형식과 내용에 관한 연구

배용준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49집 2008.06 pp.7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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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0원

바움가르텐이 독립된 미학을 정초한 후에도 미학은 독자적인 영역을 확립하지는 못했다. 특히 근대에 이르러서 미학은 많은 이론과 그에 대한 논쟁을 거치면서 학적인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다. 근대의 미학에서도 헤겔의 미학은 이전의 미학을 수용하면서 이를 종합하였고 미학이 철학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체계적으로 논증하였다. 헤겔은 예술의 내용은 이념이고 이를 구체화시키는 것이 형식이며 미학은 예술은 미 이념이 감각적으로 드러난 가상 혹은 현상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예술은 이념이 자기를 드러내는 절대정신의 영역에서 감각적 형상으로 존재한다고 한다. 그런데 감각적으로 드러난 미 이념이란 예술의 본성으로 인해서 예술은 이념이 자신을 전개하는 다음 단계인 종교의 영역에서는 사라져야 한다고 하며 예술의 종말을 단언한다. 본 논문은 헤겔의 예술에서 형식과 내용의 통일로서 예술의 규정을 살펴보고 이러한 예술의 전제가 사변적이고 절대적인 관념론에서 논의되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 순서는 1) 형식과 내용의 통일로서 예술의 의미 2) 『논리학』에서 형식과 내용의 통일의 변증법적 사변적 논리 3) 예술사에 나타난 형식의 분류와 변증법적 전개 4) 절대 정신의 영역에서 미학과 종교와 예술과의 관계에서 미학 5)형식과 내용의 통일로서 미학을 규정한 헤겔의 주장에 대한 현실적인 비판을 통해서 결론을 맺는다.

Es war noch nicht moeglich, nach der Bestimmung der unabhaengigen Aesthetik Baumgartens ihren selbstaendigen Bereich festzustellen. Erst nach der vielfaeltigen Kontroverse konnte die moderne Aestetik das eigene wissenschaftliche System gewinnen. Nach Hegel ist die Idee der Inhalt der Kunst. Dagegen konkretisiert die Form deren Idee. Darueber hinaus soll die Aesthetik als ein Phaenomen, in dem die Idee der Schoenheit sich zeigt, bestimmt werden. Die Kunst besthet also darin, im sich selbst zeigenden absoluten Geist als eine sinnliche Form zu existieren. Jedoch soll die Kunst in der Stufe der die eigene Idee verwirklichenden Religion verschwinden, da die Kunst nur in der sinnlichen From besteht. In diesem Aufsatz geht es also darum, einerseits die Bestimmung der Kunst als die Einheit von Forum und Inhalt in der aesthetischen Theorie Hegels zu diskutieren, andererseits die aesthetische Bedingung im spekulativen und absoluten Idealismus zu untersuchen. Also besteht unsere Forschung aus fuenf Elemente: 1) Die Bedeutung der Kunst als Einheit von Forum und Inhalt ; 2) dialektische und spekulative Logik als die Einheit von Forum und Inhalt in der Wissenschaft der Logik Hegels ; 3) Klassifikation der Form in der Kunstgeschichte und ihre dialektische Entwicklung ; 4) Aesthetik im Bereich des absoluten Geistes sowie im Verhaeltnis von Religion und Kunst ; 5) Kritik der hegelschen Theorie der Aesthetik als die Einheit von Forum und Inhalt.

5

존 듀이의 경험 미학과 마당극의 ‘신명’

박연숙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49집 2008.06 pp.115-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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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원

본 논문은 무관심성을 토대로 한 근대 이후 서양 미학이 갖는 한계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18세기에 성립된 서양 미학은 전통 이성중심주의 철학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났다. 이성 중심의 철학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던 인간의 주관적인 심리 현상들, 예컨대 감각이나 상상, 감정 등이 새로이 강조되고 이성이 아닌 상상에 의해 수행되는 예술 활동에 주목하면서 감성적 인식에 관한 학이라는 의미의 ‘미학’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미학’의 본래 뜻은 이성과 반대되는 감정의 전 영역을 기술하는 것을 의미하며, 감각적인 것의 자율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근대 미학에서 미적인 것의 완전한 독립과 미학의 자율성을 이루는 중요한 토대는 미적 무관심성 개념이다. 칸트는 순수한 미적 경험이란 대상에 대한 실제적인 관심으로부터 벗어난 순수한 관조적 관심이라고 본다. 미적으로 가치 있는 경험은 감각적 희열, 도덕적 개선, 과학적 지식, 개인 또는 사회의 유용성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벗어난 대상의 형식 그 자체에 대한 순수한 관조적 관심이다. 현대 미학을 대표하는 미적 태도론 역시 근대 미학의 무관심성 개념을 계승하고 있다. 이들은 ‘특정한 지각의 방식’이 대상이 지니고 있는 미적 성질을 파악하는 필요조건이 라고 주장하는데 이 ‘특정한 지각의 방식’이 무관심성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무관심성 개념을 중심으로 한 근대 이후 서양 미학은 인식적, 실제적, 도덕적 관심으로부터 미적 관심을 구분하여 미적인 것의 고유하고 전문적인 영역을 이끌어내 미학의 자율성을 확립하였지만 미적 경험이 일체의 관심을 배제한 채 대상 자체만을 지각할 때 가능하다는 주장에는 한계가 있다. 무관심성을 바탕으로 한 미학은 무엇보다도 일상과 예술의 단절을 함축한다. 일상의 관심, 현실적인 관심을 배제하고 일상적 지각과는 다른 차원의 미적 경험을 주장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예술의 신비화로 빠질 우려가 있다. 뿐만 아니라 무관심성을 근거로 한 미적 경험에서 감상자는 수동적이고 정적인 관조자에 지나지 않는다. 미적 관조에서 감상자는 현실의 관심을 억제하고 적극적 의지로부터 분리해야 하기 때문에 수동적 응시자가 될 우려가 있다. 필자는 이러한 위험성을 지닌 미적 경험이 예술 일반에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나아가 감상자와 작품 간에 끊임없는 상호작용으로 생겨나는 미적 경험을 설명할 수 없다고 비판하고자 한다. 본 논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미적 경험은 한국 전통 민속극의 ‘신명’이다. 본 논문에서는 서양의 대표적인 미적 경험인 카타르시스와 한국 전통 민속극의 미적 경험인 신명의 차이점을 논의하고 무관심적 개념을 근거로 한 미학과 대비되는 경험 미학의 가능성을 논의 해 보고자 한다. 신명과 카타르시스의 가장 큰 차이는 신명이 외향적인 반면 카타르시스는 내향적이라는 것이다. 카타르시스는 에너지를 안으로 끌어 들이는 내향적인 과정을 겪으며 그 체험의 표현 역시 내면화한다. 관객이 공포와 연민을 경험할 때 발생하는 카타르시스는 무엇보다 먼저 극의 주인공에게 몰입한다. 관객이 극중 주인공에 몰입함으로써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극적 현실을 자신의 머릿속으로 끌어 들이고, 극중 주인공이 겪는 고통과 몰락을 보면서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이입한다. 관객은 극의 해결에 이르러 극도의 긴장감에서 해방되게 되는데, 그 해방감으로 인한 에너지의 발산 역시 마음의 긴장을 놓아 버림으로써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바깥으로 흘러나오게 하며, 그 결과 내적인 평정과 정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러한 과정으로 볼 때 카타르시스는 내향적이고 내면적인 경향이라 하겠다. 그에 비해 신명은 에너지가 안으로부터 밖으로 뿜어 나오는 것이다. 억압된 생명력이 한꺼번에 풀어지는 것으로 안에 내재되어 있으되 일상적 억압에 의해 드러나지 못했던 생명력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바깥으로 나오는 것이다. 내재하는 생명력을 움직이게 만들어 터져 나오게 하는 신명에는 외적인 움직임이 작용한다. 외적인 움직임을 통해 내재하는 생명력이 움직일 계기를 갖는 것이다. 신명과 카타르시스는 미적 경험을 하는 감상자의 태도에서도 차이가 있다.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관객은 지정된 좌석에 앉아 감정의 고조와 해결을 차분히 안으로 정화하며 박수로만 답하지만 신명을 체험하는 관중은 외적인 움직임을 동반한 적극적인 반응으로 공연 내내 공연자와 교류한다. 신명을 체험한 관중은 공연이 끝날 때 어깨춤을 추기도 하고 공연자와 어우러져 혼연일체가 되는 놀이판을 벌이기도 한다. 신명은 내재하는 생명력을 밖으로 점점 강하게 내뿜으며 고조시킨다. 그리고 절정의 경지에 이르러서는 바깥세상과 자신이 하나가 된다. 신명과 카타르시스는 외부 세계와 갖는 일체감의 종류에 있어서 또 다른 차이를 갖는다. 카타르시스도 감정이입을 통해 주인공과 감정적 동화를 이루기는 하지만 그것은 직접적인 일체감과는 다른 것이다. 카타르시스는 감정이입에 의해 간접적으로 체험되는 것인 반면 신명은 직접적으로 체험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카타르시스가 연민과 공포를 환기시키는 어떤 사건을 매개로 하여 체험되는 것인 반면 신명은 플롯에 의해 구체적인 사건을 매개로 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외부 대상에 투사하여 즐거움을 얻지 않는다. 신명이 외부 세계와 ‘직접적’으로 일체감을 갖는다고 할 때 이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즐기는 것이다. 여기서 직접 자기 자신을 즐긴다는 것은 배우의 즉흥성과 그 성격이 동일하다. 배우에게 있어서 이러한 즉흥성의 근거는 희곡 텍스트에 종속되어 있는 연기가 아닌 바로 자신의 육체이다. 신명의 체험에는 육체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한국 전통 민속극에서 공연자는 정서를 바깥으로 내뱉고, 관중의 호흡도 적극적, 자발적으로 밖으로 내뱉는 방식으로 극에 개입하며, 어깨와 손뼉 등의 몸의 움직임을 수반한다. 카타르시스가 주로 머리와 마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체험이라면 신명은 마음과 몸의 어우러짐으로 이루어진다. 육체와 정신의 분리에서가 아니라 이 둘 간의 어우러진 통합에서 비롯된 것이다. 엉덩이가 들썩거린다든가 어깨춤이 절로 난다는 식으로 신명을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이 육체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마당의 특성과 신명의 특성은 전통 서양 미학에 대해 반대하는 듀이 경험 미학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 듀이가 전통 서양 미학에 가장 반대하는 지점이 일상과의 단절인데 마당극은 이와 정반대의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듀이는 프래그머티즘의 새로운 경험 개념을 토대로 미학을 수립하였는데, 이를 본 논문에서는 '경험 미학'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듀이는 자신의 철학 사상을 '자연주의적 경험주의로 규정한 바 있다. 듀이가 말하는 경험은 이성과 대비되는 수동적 주관적 경험이 아니라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유기체적 경험이다. 듀이 이전의 미적 경험은 무관심성을 토대로 한 관조로서의 미적 지각이며 일상과 단절되고 수동적이며 고립된 경험이다. 그러나 프래그머티즘의 새로운 경험 개념인 유기체적 경험을 전제로 바라보면 미적 경험은 더 이상 무관심한 지각이 아니다. 유기체로서의 인간은 끊임없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환경에 반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기체적 경험에 근거하면 미적 경험 역시 더 이상 일상과 단절되지도 않고 정적이지도 수동적이지도 않다. 경험 자체가 고립된 주관의 심리가 아니라 역동적으로 객관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기체적 경험 개념이 미학의 토대가 될 때 미학은 전통의 내면적이고 정적인 특성의 한계를 넘어선다. 예술가, 감상자, 예술 작품, 작품이 제시되는 환경 모두가 고려될 뿐 아니라 그들 간에 지속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이들 간의 상호작용을 인정하는 것은 예술 작품에 일상과 괴리된 고립적이고 신비화된 관점을 거부하는 것이고, 감상자의 수동성을 거부하는 것이고, 예술가 또는 예술작품의 지위를 현실의 차원에 끌어 들여 공동체의 삶의 맥락 안에서 적극적으로 의미 부여를 하며 자신의 생명 기운을 북돋우는 것이다. 서양 전통 미학의 한계점을 지적하는 존 듀이의 경험 미학이 ‘신명’을 이론적으로 지지하고, 무관심성 개념을 근거로 한 미학의 한계점을 ‘신명’으로 보완,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 본 논문의 의의이다.

This article was motivated by the problem that the western modern aesthetics focusing on the concept of disinterestedness can not properly analyze the aesthetic experiences of the Korean traditional theatrical performances. Since the modernistic turn in the west, the concept of disinterestedness has played the key role in the aesthetics. However, aesthetics based on the concept of disinterestedness has separated art and daily life strictly, considering the aesthetic experience only as a subjective mental state. If the aesthetic experience were understood that way, the appreciator of art would only be a passive receiver. But such an understanding of art can not hold valid regarding the aesthetic experience in general, especially regarding the unique experience of ‘Sin-Myung’ appeared in the Korean traditional theatric performances. In order to understand ‘Sin-Myung’ in the Korean traditional arts, we may need a new basis which allows us to see the continuity of art and daily life, interactivity of appreciator and works of art. In this article, I will try to propose John Dewey’s experiential aesthetics as such an alternative conceptual basis for deeper understanding of art experiences. As John Dewey saw it, our experience is a continuously interacting process with environments. Thus he considered the demand of being disinterestedness unattainable. Also he denied the notion of art experience considered as limited in mental states, and that of appreciator understood as mere passive receiver. Therefore, by supplementing modern aesthetics with John Dewey’s aesthetics based on his unique concept of experience, we can recover the lost continuity between art and daily life, and reestablish the active interaction between appreciator and works of art. Moreover such features as continuity of art and life or interaction between the appreciator and the works of art will lead us to the deeper understanding and higher evaluation of ‘Sin Myung’ which characterizes the aesthetic experience of the Korean traditional theatric performances.

6

로티의 토대 없는 자유주의

주선희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49집 2008.06 pp.145-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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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0원

이 논문의 주된 목적은 로티가 자유주의에 대한 밀의 기본 가정을 수용하지만, 허무주의적 상대주의의 위험성을 안고 있는 원칙 없는 자유주의를 견지함으로써, 자유주의의 우선성을 주장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밀은 자유주의의 근거를 ‘쾌락’이라는 공리주의의 원리에 둠으로써 자유주의의 이론적 지반을 마련한다. 반면 로티는 자유의 한계를 ‘잔인성을 피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지만, 그가 세계를 완전한 우연성으로 규정 하는 한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 해줄 아무런 근거도 갖지 못한다. 로티는 자유주의가 어떤 비순환적인 논변에 의해서 지지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실용주의적 기준을 제시한다. 그러나 로티의 방법론 없는 실용주의는 ‘무엇이든 좋다’는 식의 상대주의의 문제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잔인함을 피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수 없다. 또한 ‘잔인성을 최고로 나쁜 짓이라고 생각하는’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는 일종의 당위를 전제하기 때문에 로티의 일관된 입장과 양립할 수 없다. 따라서 우연성에 근거한 로티의 실용주의적 관점으로부터 자유주의의 우선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The main purpose of this paper is to show that although Rorty accepts Mill's main point of view about liberalism, he fails in advocating the priority of liberalism. That’s because Rorty maintains liberalism without any principles which contains the danger of nihilistic relativism. Mill’s liberalism is based on the principle of utilitarianism, “pleasure.” However, Rorty cannot have any base which supports his suggestion that liberalism is avoiding cruel acts, as far as he considers our world of language as the contingent absolutely. Rorty suggests a pragmatistic criterion insisting that liberalism doesn’t have to be justified by a certain foundation. However, Rorty’s pragmatism without method cannot support his claim of liberalism. Because liberalists who think cruelty is the worst thing they do imply something we must do, it is uncompatible with Rorty’s philosophical point of view. Consequently, Rorty cannot held the priority of liberalism in terms of the contingency of the world of language.

7

내성과 자기인식

안세권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49집 2008.06 pp.171-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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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0원

내성은 전통적으로 자기인식의 중요한 방법으로 각광을 받아왔다. 현대에 들어와 내성의 역할과 관련하여 많은 비판적 견해들이 나왔지만 내성의 정체를 해명하는 일은 여전히 철학자들에게 유효한 과제로 남아 있다. 이 글에서는 현대 심리철학에서 내성과 자기인식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이 문제에 대해 가장 진지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온 슈메이커(Sydney Shoemaker)의 입장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슈메이커가 우리의 주목을 끄는 이유는 그가 역사적으로 이 문제에 관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흄(Hume)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즉 슈메이커는 데카르트적 자아를 거부하여 철학적 논란을 일으킨 흄의 논증을 긍정적 관점에서 검토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제시하는 방법을 쓰는데, 이러한 분석을 통해 내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이 글에서 필자는 먼저 내성 개념에 대한 정의를 간략히 검토하고, 다음으로 지각 모델에 근거한 전통적 내성 이론에 대한 슈메이커의 비판과 대안을 차례로 살펴본 다음, 마지막으로 그가 제시한 비지각적 내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Traditionally, introspection had been regarded as an important method of self-knowledge. Although in modern times it has been criticized by many philosophers, satisfactory account of the nature and role of introspection is still needed. In this paper, I examine how this controversial problem of the relation of introspection and self-knowledge is treated by an influential contemporary philosopher of mind, i.e., Sydney Shoemaker who gives an original account of the concept of introspection by reinterpreting David Hume's view of self-knowledge. After giving a preliminary definition of introspection, I examine Shoemaker's critique of traditional perceptual model of introspection and his alternative, the non-perceptual model which is based on the notion of self-awareness. Finally, I try to suggest a way to develop his model from a broader per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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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기술화에 대하여

문병호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49집 2008.06 pp.189-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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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0원

오늘날 기술은 자연을 총체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며, 기술과 자연의 화해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모든 생명체들이 생존하는 데 최소한의 조건이 되는 외적 자연에 대한 기술의 지배는 자연생태계의 총체적 위기로 드러나고 있고, 생명의 본질, 생명체의 본성을 의미하는 내적 자연에 대한 지배는 유전자 조작을 통한 생명체의 조작과 복제에까지 도달하였다. 이것은 자연의 기술화가 유발한 결과이다. 인류가 자연의 절대적 위력에 직면하여 생존을 도모할 목적으로 구석기 시대에 도구를 사용한 것에서 발원한 기술이 자연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술과 자연의 화해는 더욱 절박하게 되었다. 기술과 자연과 화해 가능성을 기술철학적 관점에서 모색하기 위해 이 논문은 일차적으로 자연의 기술화를 논의한다. 서구에서 자연 개념은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변전되었음을 먼저 밝힌 후, 자연의 기술화를 인간의 자기보존을 위한 자연에의 개입 단계, 외적 자연에 대한 지배와 재조직화 단계, 외적 자연에 대한 전 지구적 지배체계의 완성과 내적 자연의 대체 단계, 내적 자연에 대한 지배와 조작 단계로 구분하여 분석한다. 이 분석은 다음 논문에 이어질 기술적 행위(합리성)가 자연생태계 및 내적 자연의 본질과의 관계에서 유발하는 갈등을 논의하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있으며, 논문들이 의도하는 최종적 인식관심인 기술과 자연의 화해 가능성을 향한 첫 걸음이다.

Heutzutage erscheint die Totalität der Naturbeherrschung durch die Technologie, und sie bringt einen unversöhnlichen Konflikt zwischen Technologie und Natur hervor. Die lückenlose Beherrschung äußerer Natur verursacht totale Krise des natürlichen Ökosystems. Die Beherrschung innerer Natur wurde seit der Entdeckung von DNA 1953 rasch beschleunigt und reicht jetzt in Manipulation und Duplikation der Kreaturen mittels der Gentechnologie. In dieser Unversöhntheit von Technik und Natur gilt es, beide miteinander zu versöhnen. Um eine Möglichkeit dieser Versöhnung technikphilosophisch zu versuchen, analysiert diese Arbeit die Technisierung der Natur in erster Linie. Sie skizziert zunächst einmal den Wandel des Naturbegriffs, und zwar in der Sicht, daß er im Abenland der im jeweiligen Zeitalter unterschiedlich erscheinenden Weltanschung entsprechend variiert worden ist. Die Technisierung der Natur gliedert sich in dieser Arbeit in 4 Phasen. Die Phase des Zugriffs auf die Natur um der Selbsterhatung des Menschen willen, die Phase der Beherrschung und Reorganisation gegenüber äußerer Natur, die Vollendung des globalen Beherrschungssystems gegenüber äußerer Natur und die Substitution innerer Natur, und schließlich die Phase der Beherrschung und Manipultion gegenüber innerer Natur. Diese Analyse dient der nachfolgenden Untersuchung über den Konflikt zwischen technischem Handeln und natürlichem Ökosystem und dem Wesen der inneren Nat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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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 지식에 관한 전통적 이론과 언어적 이론

한상기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49집 2008.06 pp.215-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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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0원

선천적 지식의 본성에 대해서는 많은 견해가 있어 왔다. 플라톤으로부터 데카르트, 라이프니츠를 거쳐 칸트로 이어져 온 견해는 선천적 지식에 관한 전통적 이론이라 부를 수 있다. 전통적 이론은 (1) 선천적으로 알려지는 모든 명제는 필연명제이어야 하고, (2) 어떤 명제의 필연성을 “파악하는 일”이나 “보는 일”이 어떤 사람에게 그 명제의 선천적 정당화를 제공하는 데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전통적 이론에 따르면, 선천적 정당화의 원천은 순수하게 이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래서 전통적 이론은 칸트의 선천적 종합명제에 대한 주장, 즉 감각의 도움 없이 세계에 관한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는 주장에서 정점을 이룬다. 하지만 전통적 이론은 나중에 심각한 공격의 표적이 되는데, 특히 논리 실증주의자들에 의해 집중 공격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에이어(A. J. Ayer)는 그의 언어적 이론에 기초를 두고 칸트의 견해를 비판했다. 이 논문은 선천적 지식에 관한 전통적 이론과 현대의 언어적 이론을 비교 검토함으로써 선천적 지식을 둘러싼 논쟁의 초점을 명료화하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세 종류의 구별, 즉 선천적 지식 대 후천적 지식, 필연명제와 우연명제, 분석명제와 종합명제의 구별을 설명하고, 각 구별 간의 연관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세 종류의 구별을 통해 선천적 지식에 관한 전통적 견해의 요점과 난점을 드러내고, 전통적 견해를 비판하면서 제시된 언어적 이론을 살필 것이다. 마지막으로 언어적 이론 역시 궁극적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일 것이다.

There have been many views about the nature of a priori knowledge. The views about it by Plato, Descartes, Leibniz, and Kant can be called the traditional view. The traditional view holds that a proposition knowable a priori is necessary as opposed to contingent, that a cognitive agent’s grasping it or seeing it amounts to a justification for it, and that the justification is derived from reason, not from experience. The traditional view culminates in Kant’s assertion about synthetic a priori knowledge, viz., we can grasp the truth about the world without observing it. But the traditional view received severe attacks, especially from logical positivists. For example, A. J. Ayer criticized Kant’s view on the basis of the linguistic theory. This paper aims to clarify the main points in the debate over the nature of a priori knowledge by comparing and contrasting the traditional view and the linguistic view. In order to achieve the aim, I first explain and expose the connections among the three distinctions: a priori knowledge vs. a posteriori knowledge, necessary proposition vs. contingent proposition, and analytic proposition and synthetic proposition. Next, I discuss the content and the problems of the traditional view, and move onto the linguistic view that was proposed as a replacement of the traditional view. Finally, I show that the linguistic view has its own probl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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