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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한철학 [PAN-KOREAN PHILOSOPHY]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범한철학회 [Bumhan philosophical society]
  • pISSN
    1225-1410
  • eISSN
    2713-9344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1987 ~ 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철학
  • 십진분류
    KDC 105 DDC 105
제31집 (12건)
No
1

주자철학에 있어서 '敬·知·行' 공부의 구조적 이해

이광률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1집 2003.12 pp.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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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원

2

플라톤의 『정치가』에서 측정술(metretike)

김태경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1집 2003.12 pp.3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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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0원

만일 측정술이 양적인 대상에 관여한다면, 그것은 수적인 엄밀성에 제한된 산술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질적인 대상에 관여한다면, 그것은 변증술일 수 있다. 그러나 측정술이 좋음의 실현에 관여하는 실천적 기술이라면, 그것은 변화하는 생성의 세계에 관여하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엄밀한 학문일 수 없다.이런 문제와 관련해 이 논문은 『정치가』에서 논의된 두 측정술을 구별하고 그것이 산술 및 변증술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필레보스』와 연관해서 논의한다. 물론 이 논의에 앞서 이 대화편의 기술방식인 나눔과 측정술의 관계를 이 대화편 분석을 통해 논의하고 측정술 자체에 대한 언급들도 분석한다. 이 논의를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첫째, 『정치가』의 첫 번째 측정술은 양적 대상들에 적용되지만, 두 번째 측정술은 질적인 대상들에 적용된다. 앞엣것은 『필레보스』에서 구별된 두 종류의 산술, 즉 대중의 산술과 철학적 산술 모두에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뒤엣것은 감각적인 것들의 생성과 완성에 관련된 것으로, 추상적 양인 수학적 본질의 생성에 관여하지 않으며, 『필레보스』의 철학적 산술과도 동일시 될 수 없다.둘째, 그렇다면 감각적인 것의 생성에 관여하는 『정치가』의 두 번째 측정술은 형상(이데아)들의 생성에 적용되는 변증술과 동일시 될 수 있을까? 『필레보스』에서의 측정술은 양적인 것과 질적인 것에 관여해서 감각적인 것의 생성을 완성하는 데에 사용된다. 그 때문에 그것은 양적 질서와 질적 질서 모두에 관여하는 이 대화편의 변증술과 유사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두 대화편에서의 측정술은 모두 실재적 생성에 관여하며, 그 점에서 변증술과 구별된다. 따라서 측정술은 변증술과 동일한 것이기 보다는 그것의 단순한 도구일 뿐이다.

3

이성단계의 의식과 현실 :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역사철학을 중심으로

박인성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1집 2003.12 pp.6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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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0원

본고에서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중심으로 하여 이성단계의 의식의 형태와 헤겔의 역사철학을 중심으로 하여 이성단계의 현실역사의 그 이데올르기를 각각 분석하고 양자의 이데올르기가 서로 일치하는 상태에 이르는 것을 도출해 낸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에 있어서 이성적 의식이란 절대적 실체이자 동시에 절대적 주체이기도한 정신으로서의 의식일반과 자신이 통일되어 있다는 것을 파악한 상태이고, 그리하여 자기 스스로를 확신하게된 이성적 의식은 그 자신이 실재한다는 것을 확신한다. 즉 자신의 사고가 현실적인 것임을 안다. 그리하여 세계에 이성이 있고, 또 세계가 이성적임이 드러나게 되어 대상과 의식, 현상과 본질의 귀일점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이성단계에 조응하는 현실역사는 헤겔의 역사철학에서는 근대의 게르만적 세계로 나타난다. 말하자면 독일에서는 현실 즉 세속계의 일체가 이미 종교개혁의 원리에 의하여 思惟의 원리는 상당히 유화되어 있었고, 프랑스에서는 이성의 원리가 실천적으로 현존의 권리에 반대해서 자기의 주장을 행동화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근대 게르만적 세계에 와서야 정신의 영역과 세속적 영역이 완전한 합일화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긴다. 어찌하여 개별적 의식으로서의 이성이 그 시대의 역사적 현실과 일치할 수가 있는 가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헤겔은 “진리는 실체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주체로서 파악되어야 한다”라고 말한 그 말속에서 그것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즉 헤겔의 이 말은 주체가 실체와 동일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Hegel의 정신현상학이 프랑스혁명에 대한 독일관념론의 대응이란 점을 간과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헤겔의 정신현상학에 있어서 대상의식에서부터 이성으로 진행하는 운동은 동시에 각각 그 시대의 역사적 현실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4

양자이론으로부터 추론 가능한 패러다임이론의 성립 배경

김종일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1집 2003.12 pp.8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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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00원

이 글에서는 먼저 1962년 쿤(Thomas Kuhn)이 저술한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에 처음 소개된 패러다임이론과 양자이론의 구조와 내용 사이에 간과하기 어려운 유사점이 있다는 것을 보인다. 패러다임의 정의는 양자상태의 그것, 패러다임의 공약 불가능성은 양자상태의 직교성, 그리고 패러다임의 혁명적 전환은 양자상태의 양자도약에 각각 대응될 수 있다는 점을 보인다. 이러한 비교를 바탕으로, 패러다임이론은 물리학을 전공했던 쿤이 자신에게 익숙한 양자이론에서 착안한 모형일 수 있다는 색다른 가설을 제시한다. 이와 같은 해석이 과거에 없던 새로운 것이며 또한 앞으로 상당한 논의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이 같은 해석의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몇 가지 증거를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쿤이 언급한 내용들에서 찾아 제시하는 것으로 논의를 제한한다.

5

소쇄원 양산보의 의리사상

오종일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1집 2003.12 pp.9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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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0원

이 글은 소쇄원 양산보의 의리 정신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 그는 조광조의 문인으로서 기묘사화를 피하여 귀향한 도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은일의 선비가 아니라 자신의 도를 밝혀, 사림의 원기를 회복하도록 하고, 호남의 도학을 열어, 의리를 실천하게 하고, 문학적 업적을 남기도록 한 인물이다. 그러므로 이 논문은 그와 같은 학문적 업적과 행의를 밝힌 것이다.이 글은 Ⅱ장에서 조선조의 의리의식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하는 것을 서술하였다. 조선조의 의리는 충절의 실천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중국과는 다른, 조선조만이 지니는 특징이 있음을 논하였다. 그것이 조선조의 충절정신으로서 조선조의 도학은 충절과 의리로 定着되었음을 밝힌 것이다. Ⅲ장은 조선조 의리사상의 정통성이 호남의 정신으로 정립되기까지의 과정을 논한 것이다. 그 것은 조선조 의리정신의 연원은 호남의 의식과 관계되고 기묘사화와 연관된다. 여기에서 양산보와 기묘사화의 관계, 사화의 환경이 양산보의 인생관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가 하는 것을 서술하고, 양산보의 학문과 행의가 호남의 정신에 무엇을 기여하였는가 하는 것을 이해하도록 하였다. 그 중요한 내용은 기묘사화를 전후하여 호남으로 내려온 인물들이 사림의 정신을 계승하여 호남의 사림으로 하여금 조선조 도학의 정통성을 계승하게된 과정을 밝힌 것이다. Ⅳ장은 양산보의 도학 세계를 논한 것이다. 양산보의 행의와 내면세계를 통하여 그가 추구하였던 정신적 실체와, 그 학문은 어디에 말미암은 것인가. 그러한 의식은 그와 교유하였던 많은 선비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하는 것을 밝혀, 그의 의리정신의 특징과 도학세계가 단순한 은일이 아니라 송학을 계승하고 조선조 사림의 정신을 계승하는데 있었음을 밝힌 것이다. Ⅴ장은 양산보의 의리 실천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된 결과를 서술한 것이다. 호남 도학의 발전적 특징과, 의리의 실천으로서 나타난 구국 운동, 학문적 성과로서 얻어진 성리학의 연구가 조선조의 국맥을 튼튼히 하는데 어떤 공헌을 하게되었는가 하는 것을 논하여 양산보의 위상을 새롭게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양산보의 의리정신은 조선조 초기 호남유학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는데 있어서 그 업적을 새롭게 인식하여야 한다는 것이 본 논문의 중요한 내용이다.

6

安藤昌益의 自然觀

박문현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1집 2003.12 pp.12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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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0원

安藤昌益은 18C 일본의 독창적이고도 진보적인 氣哲學者였다. 농민운동으로 인해 탄압받던 昌益이 잠적한 이후 150년간 잊혀진 사상가로 묻혀있다 20C에 다시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그의 主著는 자연의 참다운 운동법칙을 뜻하는 自然眞營道이다. 그의 사상체계는 특히 그 기초적인 자연철학에 있어 지극히 광범위하고 상세하다. 그는 ‘자연’의 개념을 운동성을 강조하여 ‘홀로 하다’로 풀이하고 자연계를 의미하는 말로 썼다. 이것은 독창적인 해석이다. 그는 자연을 극히 다이내믹한 자기운동성을 본질로 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자기운동의 근원적 주체는‘活眞’이며, 사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상관적 성질을 ‘互性’이라고 한다. 또 그는 농민을 사회의 주인공으로 하는 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土’의 생성력을 강조하는 ‘四行論’을 주장한다. 氣一元論的 입장에서 자연계 전체가 氣의 운동의 나타남이라 본 그는 생태계의 순환을 체계화한 ‘通 橫 逆’ 이론을 내놓는다. 그의 자연관이 독창적인 용어로 구성되어 있지만 易과 道家사상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강조하는 만물의 평등과 조화를 위해 자연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天人合一論은 오늘의 사회에도 많은 시사를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7

푸코의 남성주체에 관한 몸과 성의 담론 : 『性의 역사』를 중심으로

양해림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1집 2003.12 pp.149-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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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21세기를 소비사회라 부른다. 이러한 소비사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호는 몸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부터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몸과 성에 대한 몸의 담론이 크게 확산되면서 예술 문학 생명복제 성형수술 유전공학 스포츠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20세기 후반 들어 몸은 지금까지 남성중심의 가부장제를 극복하려는 페미니스트들의 일련의 실천 활동의 노력으로 학문적으로도 개념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여성들의 이러한 사회 구성적 입장에서 몸과 성에 관한 담론은 미셸 푸코의 저서『성의 역사(I, II, III)』와 합류하면서 진전을 보이고 있다.푸코는 서구의 남성철학자들과는 다르게 인간의 성과 몸에 관심을 보이면서 성과 몸이 사회적 담론이 됨을 밝혔다. 그는 몸과 성이 단순한 성인 남녀의 담론이 아니라 남성들의 거대한 권력조직과 연결되고 있다고 보았다. 필자는 이 논문에서 지금까지의 남성중심적인 성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가를 푸코의 눈을 통해서 조명해 보고자 한다.

8

6,100원

근대의 이성적 인간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는 자기의식 개념의 철학사적 선택지들은 데카르트의 지성주의적존재론적 모델과 흄의 경험론적회의론적 모델이다. 데카르트의 자기의식은 실체적 영혼으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지성적 자아의 자기확신인 반면에, 흄에겐 자기의식은 단순히 의식상태들에 대한 의식에 불과하다. 자기의식적 순수주관을 철학의 기초로 삼고자 하는 칸트는 통각의 종합적 통일과 통각의 분석적 통일이라는 개념들의 설명을 통해 선험적-관념론적 자기의식 이론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의 이론에는 순환논증과 무한역행의 논증이라는 논리적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반면에 칸트의 실천이성 은 직접적 자기관계를 포함하므로 이 문제들을 회피할 수 있다.우선 칸트의 모델을 반성 이론으로 해석하는 헨리히는 위의 문제들을 피히테의 - 물론 칸트도 전비판기에서 구상한 바 있는 - 지성적 자기직관의 개념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지만, 학문의 안전한 길을 위해 칸트에게서의 자기의식적 순수주관의 단순성과 동일성의 원리들을 분석하여 인식론적 반성 이론을 추구한다. 그러나 투겐트하트는 데카르트, 칸트, 피히테는 물론 헨리히도 속한 것으로 생각한 고전적 자기의식 이론에 대한 언어분석적 해석을 수행한다. 그는 한편으론 ‘자아=자아’와 ‘자아=a’의 근본적 차이점을 밝히고, 다른 한편으론 ‘자아’라는 명사적 개념을 ‘자아’라는 지시적 표현으로 대치함으로써, 자기의식의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한다. 흄의 입장에 관계하는 그의 해석은 의식상태들에 대한 문장들에 관해 한편으론 인식론적 비대칭이, 다른 한편으론 사실적 대칭이 있음을 밝힌다. 그러나 투겐트하트의 언어분석적 정식에도 순환논증의 철저화된 형태인 무한역행의 논증이라는 논리적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9

엔트로피 이론에 의한 스미스슨 조각 해석

최병길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1집 2003.12 pp.203-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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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슨의 엔트로피 이론은 시간의 변화하는 역사적 양극인 먼 과거와 먼 미래를 언급함으로써 유럽의 미술양식을 미국화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한다. 그의 지적 도전은 공간적이지 않고 시간적이다. 그리고 그는 생물학적 비유를 미술사에 부적합한 것으로 간주하며, 추상 표현주의에 잠재하는 인간변형주의도 비판한다.그의 이론의 주요 대상은 나선형이다. 그는 시간을 자신 예술의 주요한 주제 중 하나이자 자신의 가장 중요한 매체 중 하나로서도 취한다. 그에게 있어 시간은 결코 비 실체적 추상이 아니라 항상 만져볼 수 있는 구체적 실재이다. 따라서 그의 대표작인 <나선형 방파제>는 공간과 시간을 통하여 계기적 흐름을 가진 경험으로써 역사적 공식을 대신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한 계기적 흐름의 이미지를 통하여 조각은 정적이고 관념화된 매체로부터 시간적이고 물질적인 매체로 변형되었다. 그는 그러한 나선형 형태를 이용하여 성장과 파괴라는 수많은 연상들을 현상학적 관점에서 유도해낸 것이다. 오웬스는 그의 조각을 우의의 관점에서 고찰하였는데, 그 작품이 환경에 물리적으로 병합된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한다. 그는 더 나아가 환경의 지형적 특이성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관람자의 정신적 반향도 대지에 대한 스미스슨의 특별한 해독에 관계한다고 주장한다. 오웬스는 지속되지 않는 특별한 장소에 설치된 대지-특수성 작품이 무상하다고 보았다. 그러한 점에서 그 조각이 사진으로써만 보존될 수 있을 뿐인데, 오웬스는 이점에 착안하여 사진예술의 우의적 잠재력을 강조하고 있다. 오웬스는 스미스슨의 <나선형 방파제>가 바르트, 레리스, 데리다 등의 이론들과 유사성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스미스슨은 언어를 단단하고, 완고하며, 3차원적인 투영으로 간주함으로써 언어를 관념이 아닌 물질로 보고 있다. 더불어 그는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텍스트로 간주하므로 기록된 텍스트를 마치 자신의 작품처럼 단단한 재료로 만들어진 것으로 간주한 것이다. 그는 언어가 문자적 의미화와 비유적 의미화 사이에서 작용한다고 보았는데, 그것은 언어를 항상 발전하는 과정으로 보는 견해이다. 그리고 스미스슨의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진 측면 중 하나는 역설적으로 숭고에 대한 낭만주의적 환기를 창조하기 위하여 반 낭만주의적, 반 숭고적 자세를 강력하게 활용하는 방식이다. 그의 작품에서 숭고는 무의미한 인간 현존과 관련지어 구조화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인

10

인간과 동물간 무경계적 인식과 실천 : 불교와 동물해방론의 경우

안옥선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1집 2003.12 pp.231-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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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윤리학은 동물과 인간을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로 규정하는 동물과 인간간 경계(boundary)를 설정해 왔다. 그 경계는 인간에 의한 동물차별을 정당화해온 대전제였다. 이와 달리 불교와 동물해방론은 동물과 인간간 무경계적/탈경계적 인식에 근거하여 동물배려를 주장한다.불교의 동물과 인간간 무경계적 인식은 연기설과 업에 따른 윤회설 등으로 설명된다. 이러한 무경계적 인식은 탐진치 지멸의 무경계적 심해탈과 불살생/자비의 실천을 요구하는데, 불살생의 실천에 있어서는 ‘쾌추구고회피’라는 인간과 동물의 공통속성에 호소한다. 다른 한편 동물해방론의 탈경계적 인식은 동물의 고통감수력에 근거한다. 이러한 동물해방론의 탈경계적 인식은 동물도 인간처럼 고통을 느낀다는 점에 입각하여 동물배려의 윤리를 요청한다. 경계해체의 기준인 고통감수력에 의해서 동물과 인간이 평등하며, 따라서 동물은 자신의 본성에 따라 동등고려(equal consideration)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이다.이 논문은 불교와 동물해방론이 이러한 인식과 윤리를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접점을 이루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초기불교와 동물해방론은 유비될 수 없는 이질적 체계임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동물간 경계해체적 인식과 윤리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만난다는 것이 이 논문의 주된 주장이다.

11

키에르케고르의 사랑의 개념에 관한 일 고찰

임규정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1집 2003.12 pp.261-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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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키에르케고르의 사상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이다. 그에게 궁극적인 사랑은 신적 사랑이자 아가페이다. 그의 삶에서 신과의 투쟁 및 자기 자신과의 투쟁은 처음에는 고통과 고뇌로 시작되지만 깊은 통찰을 통해 마침내 사랑을 찾아내고 또 진정한 자기를 되찾게 된다. 불행한 연애 사건으로 인해 사랑은 그의 불변의 주제가 되었으며, 또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그의 종교적 고뇌의 원천이자 삶의 추진력이었다.논자는 이 글에서 사랑에 대한 키에르케고르의 견해를 이러한 종교적 맥락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키에르케고르의 사상, 특히 사랑에 대한 그의 견해는 그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따라서 논의를 위해 논자는 먼저 그의 저작에서 언급되고 있는 사랑에 관한 내용을 간략하게 훑어 본 다음 그의 생애와, 그의 두 종류의 사랑, 즉 관능적 사랑과 이웃 사랑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 두 사랑은 모순적 개념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오히려 두 사랑이 하느님이 계명으로 준 사랑 의무의 서로 다른 형태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하느님의 사랑은 “이기심의 가장 강력하고 가장 심오한 표현”인 관능적 사랑을 변화시킨다. 하느님이 나타날 때 사랑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사라지는 것은 이기적, 관능적 사랑이며 이런 사랑은 하느님에 의해서 이웃 사랑으로 변화되어 존재한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사마리아인의 예를 통해 우리의 이웃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느냐에 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은 어떤 존재이냐에 관하여 말씀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깨달음과 동시에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가 통찰해 낸 궁극적인 사랑은 하느님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 포함되는 모든 난해한 특징들을 담고 있다. 이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하게 하여 우리를 하느님이 가진 신비의 핵심으로 인도한다. 사랑은 신비를 드러내는 것인 동시에 그 원천이기도 하다.

12

도가의 자연관과 환경윤리

정륜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1집 2003.12 pp.289-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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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단기적 이익에 현혹된 집단은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을 일삼고 자연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탐욕을 위해서 무지를 지혜로 가장하고 있다. 이들의 신념 속에는 이원적이고 적대적인 세계관이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관은 역사적으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을 서로 대립 투쟁의 관계로 본다. 환경윤리는 이러한 세계관을 바꾸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도가는 도(道)를 축으로 하는 기화(氣化)의 자연관을 제시하고 모든 존재의 상호 회통성을 보여준다. 도가의 환경윤리는 모든 존재가 본래 하나라는 입장으로부터 도출된다. 여기에 인간은 생명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대지윤리, 인간의 계급구조가 자연착취를 가속화시킨다는 사회생태주의, 자연과 여성의 가치를 부각시키는 생태여성주의 등의 요소가 모두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도 도가의 환경윤리는 ‘무용의 대용’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이 도가적 환경윤리의 특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윤리 아닌 윤리의 무위성을 그 본질로 하고 있다. 환경윤리를 위해서는 우선 인간의 대립구조를 철폐하고 전쟁이 방지하는 평화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여기에는 인간의 탐욕과 무지를 제거하면서 개별적 존재의 독자성과 통일성을 보장하는 일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연과 소통하는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여실히 파악하고 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이에 따라 인간도 수행적 자세를 반드시 가져야만 한다. 인간이 변화하지 않고서는 환경문제가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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