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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역도의 내용인 역수원리를 바탕으로 선천의 관점에서 학문을 중심으로 군자의 도를 고찰하였다. 다만 본고에서는 군자의 도를 학문 원리 자체를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 아니라 학문과 실천의 관계를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天道의 내용은 曆數原理로 그것을 요약하여 나타내면 선후천원리이다. 선후천 변화원리를 포함한 선후천합덕원리가 선후천원리의 내용이다. 선후천원리를 중심으로 군자의 삶을 나타내면 학문 중심의 선천과 실천 중심의 후천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실천은 학문을 통하여 자신의 본성을 자각하지 않고는 할 수 없으며, 학문은 실천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올바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학문과 실천은 일체적 문제이면서 동시에 始終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학문과 실천의 관계를 나타내는 개념이 信과 誠이다. 信은 군자가 학문을 통하여 자신의 德을 향상시키는 근거이며, 誠은 信의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信은 逆生의 관점에서 倒成에 서는 것이며, 倒生逆成의 관점에서 그 결과를 나타내는 것이 誠이다. 信은 군자의 본성이 형이상적 존재이며, 그 존재근거가 天道임을 믿음으로써 倒生逆成의 세계에 定立하는 것이다. 그리고 誠은 倒生逆成의 관점에서 本性을 주체로 그것을 發用시키는 것이다. 忠信을 통하여 倒生逆成의 세계에 定立한 것이 立志이며, 立志를 바탕으로 본성을 發用시키는 것이 盡性이고, 성인의 말씀을 통하여 誠을 세우는 것이 窮理이며, 성인의 말씀 가운데 담겨진 天道를 본성의 세계에서 밝히는 것이 至命이다. 그러므로 信과 誠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군자의 학문은 倒生逆成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立志와 盡性 그리고 逆生倒成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窮理와 至命으로 구분하여 나타낼 수 있다.
该论文是以易道的内容即历数原理为背景, 来考察在先天的观点中以学问为中心的君子之道。但是在本文中, 不是以具体的君子之道来作为学问原理来考察的, 而是以学问和实践的关系为中心进行考察的。 天道的内容若通过历数原理来概要并表达出来, 则其是一种先后天原理。包含先后天变化原理的先后天合德原理属于先后天原理的内容。 若以先后天原理为中心体现出君子的生活, 则其可以区分为学问中心的先天和实践中心的后天。通过实践中心的学问不可能不感知自身的本性, 学问若不能成为实践就不能说是正确地实现。由此, 学问和实践可以说是一体的问题同时又是始终的关系。体现这样的学问和实践关系的概念就是信和诚。 君子通过学问来提高自身的德, 而信则是其依据 : 诚是体现信的结果的东西。信是在逆生观点中建立在倒成之上的东西。在倒生逆成的观点上体现其观点的则是诚。 信是君子本性形而上的存在, 其存在的依据是凭借相信天道而订立于倒生逆成的世界之中。而且, 诚是在倒成逆成的观点中把本性作为主体来使其发挥作用的东西。 通过忠信, 在倒生逆成的世界中定立的东西则是立志, 把立志作为基础来使本性发挥作用的东西则是尽性, 通过圣人的话来树立诚, 这样的东西则是穷理, 圣人的话中隐藏的天道在本性的世界中被阐明, 其则为至命。因而, 通过信和诚来实现的君子的学问, 可以分为在倒生逆成的观点中实现的立志和尽性, 还有在倒生逆成的观点中实现的穷理和至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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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대학』에서 인용하고 있는 시(詩)와 서(書)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 대학』은 명명덕 친민을 통하여 지선에 이르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 가르침의 사실과 근거를 모두 시(詩)와 서(書)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에서 인용하고 있는 시와 서는 모두 20 구절로서, 어느 부분을 인용하였으며, 그 본래의 뜻은 무엇이었는가, 그 출전(出典)에 대한 파악이다. 다음으로는 그 내용이 지니고 있는 본의와 함께 그 시대정신을 이해하여 대학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이상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을 밝혀 시(詩) 서(書)의 가르침과 대학의 이상이 어떻게 일치하는가 하는 것을 밝히고자 하였다.그 결과 삼강령에서 인용한 시와 서 들은 모두가 천명을 실현하는 과정을 밝히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와 같은 사상적 연원은 주 나라가 천명을 획득하는 과정에 두었지만,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상서의 기록과 요전에 나타난 사실들을 함께 인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제가치국장에서는 문왕과 무왕이 주 나라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몸소 이룩한 제가 치국의 사실을 인용하고 또한 주 나라의 감화가 제후국가에까지 미치어 평천하에 이르게된 것을 말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치국평천하의 정신은 평천하에 이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덕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더욱 경계하는 가르침으로서, 이는 언제나 나라를 걱정하는 우환의식에서 나온 것이었다.이와 같이 확인한다면 대학의 가르침은 모두가 명덕을 밝혀 지선에 이르는 과정이었지만, 이와 같은 성취는 실제로는 주 나라의 건국에서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대학에서 지선에 이르는 것을 가르친 것은, 주 나라의 제가와 치국평천하의 정신에 그 사상적 연원을 두고 있었다는 것이 이 논문의 서술 내용이다.
This paper describes what meanings poetry and writing, quoted in DaeHak have. Dae Hak teach how to reach Ji Sun(Reaching a level of paramount goodness) through Myung Myung Duk(Brightening original character) and Chin min(making surroundings be good with recovery of own original nature). Zhou Ja set a new system of Dae Hak by reorganizing it through Dae Hak Jang Gu. It is the characteristic that Dae Hak explains fact and basis used in teaching with poetry and writing. It is the point that all poetries and writings quoted at Sam Gang Ryung investigated the process, actualizing providence. This ideological origin was based on the process when Zhou got providence, butthe facts from Yo Jun and the records from Sang-Su were quoted together. In the chapter of Jae Ga Chi Kuk, We can know it quoted the fact of managing a household and governing a country, achieved personally while King Mun and King Mu establish found Zhou country, furthermore we can identify the influence of Zhou could reach peace of whole lands of feudal lords. The purpose of spirit of Chi Kuk Pyung Chun Ha is not reaching a peace, but is warning lesson that a governor should not lose virtue. This was from anxiety awareness. The teaching of Dae Hak is the process that people clarify Myung Duk(bright virtue) to reach paramount goodness, but actually this achievement was able to be clarified from the foundation of Zhou country. Accordingly, this paper's description explains it is resulted with anxiety awareness that the method reaching a paramount goodness in Dae Hak was ideologically based on the spirit of Zhou's Je Ga and Chi Kuk Pyung Chun Ha. However, more important fact is that the providence is not always, but is only when all people are governed well.
공자(孔子) 인학(仁學)과 ‘예술(藝術)’, ‘미(美)’ 그리고 ‘미학(美學)’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42집 2006.09 pp.8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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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화인 아트’와 ‘뷰티’ 그리고 ‘에스테틱스’에 대한 동양 한자문화권의 역어로서 ‘예술(藝術)’과 ‘미(美)’의 개념 그리고 ‘미학(美學)’이라는 학명의 의미와 그 적절성을 공자 仁學의 체계 속에서 고찰해 보았다. 이는 동양과 서양 학문의 만남을 위한 반성적 숙고의 과정으로써 이루어 진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먼저, ‘미학’이라는 명칭은 ‘에스테틱스’의 연구 대상이 ‘미(美)’임을 나타낼 뿐, ‘에스테틱스’에 함축된 ‘감성적 인식’의 의미를 드러내지는 못하고 있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개별 학문의 명칭으로서는 ‘에스테틱스’보다 ‘미학’이 훨씬 더 적절해 보인다. 다음으로 공자 인학의 체계에서 보면 ‘예술(藝術)’은 육예(六藝)와 육경(六經)을 포괄하는 것이고, 따라서 이른바 시(詩)악(樂)과 서(書)화(畵)를 통칭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화인 아트’와는 그 체제가 다르다. 또 ‘에스테틱스’에서 ‘화인 아트’는 ‘뷰티’와 긴밀한 등식 성립의 관계로 이해되고 있음에 비해, 공자에게 있어서 ‘예(藝)’는 도(道)와 덕(德) 그리고 인(仁)과 서로 통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끝으로 인학의 체계 속에서 ‘미(美)’는 부분적으로는 ‘뷰티’처럼 외재적 심미 형식으로서의 감각적 가치를 나타내는 개념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내재적 정신 내용으로서의 도덕적 가치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따라서 ‘에스테틱스’에서 ‘뷰티’가 도덕적 선(善)과 구별되는데 비해 공자에게 있어서 미는 선과 같은 것이며, 그래서 공자는 미를 인학의 탐구 주제로 설정하기보다는 인(仁)과 예(藝)의 표준이나 규정으로 제시하고 있다.
藝術, 美, 美學是漢字文化圈的飜譯語對於西歐哲學槪念的. 它們槪念確立在西歐近代時期 從以具有哲學或個別科學的內涵. 但如 從東洋漢字文化圈的傳統看 它們槪念的意味異於西歐哲學的內涵也. 幷且 西洋用語之二重性 美學在東洋 僅是指示着個別學問的對象 不是著見感性的認識之意味. 因以由此 美學適合於個別學問之名稱也. 且如 因爲在孔子底仁學整體中 藝術包括六藝與六經 所爲藝通稱詩樂和書畵 但也孔子所言之藝只是通於道與德與仁也. 因爲美的槪念在孔子仁學整體內 不僅是指示感覺的審美價値 以且志向精神的道德價値. 是故孔子提示以善美合一的大美爲仁與藝的標準和規定 而强調仁的本質和精神 進而追求藝的技能和活用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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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는 고착된 관념을 역으로 활용하여 제시하는 일종의 장치이다. 선사들은 이 화두의 장치에 수행자들이 미혹되어 걸려들도록 유도한 다음 그것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방법에 의하여 그들의 헛된 분별과 인식을 모조리 쳐부수는 전략을 펼친다. 화두를 바른 방향에서 궁구하지 못하여 생기는 병통은 이러한 화두의 장치를 오해하는 것에 따른다. 곧 화두의 장치를 진실한 것으로 수용하여 그 말들에 들어 있는 논리와 개념이 화두의 본래 뜻이라고 오인하는 것을 말한다.간화선 수행의 핵심은 화두를 의심하며 잠시도 그것과 떨어지지 않는 방법에 달려 있다. 끊어짐도 없고 빈틈도 없이 궁구하는 무간단(無間斷)과 화두를 일상의 반경에서도 놓치지 않고 의심하는 것이 화두 참구의 바른 방향이다. 장치에 대한 오해와 이러한 수행법의 기초를 망각할 때 병통이 발생한다. 이러한 근본적인 맥락에서만 간화십종병의 실상을 밝힐 수 있다. 조주선사가 제시한 무자 화두를 공부함에 있어서 드러나는 병통을 열 가지로 분류하여 제시한 것이 십종병이다. 이 십종병은 간화선의 종장인 대혜종고에 의해서 시발된 이래로 우리나라 간화선의 전통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수행법상의 주요 사항일 뿐만 아니라 그 속에는 선사상의 요체가 함축적으로 들어 있기도 하다. 이 논문의 목적은 이상과 같이 화두의 일반적인 특징과 병통을 관련시켜 이해하고, 그것을 토대로 무자 화두와 관련된 십종병이라는 특수한 병통이 상기의 것들과 필연적인 관계가 있다는 점을 해명하여 그 연원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A whadu(話頭) is a kind of equipment for making use of the opponent's stiff notion inversely. The zen masters induce the disciplinants to this equipment and then destroy all their empty discriminations. That is the unique strategy of theirs. The malfunctions that is originated from mis- practicing in whadu are basically attributable to the misunderstanding about this equipment of whadu. In other word, by regarding the eqipment of whadu as a true proposition they misunderstand the superficial logic and conception in a whadu as the primary meaning of whadu. The core of discipline in Khanwha-sôn depends on the method of meditating on one's whadu whithout a break and pause. When we mis apprehend about the equiment and forget the basic principle of practice, the malfunctions will arise. Only in this fundammental context, we can elucidate the ten malfunctions in the practice of whadu. Since the great zen master Chochu(趙州) had presented the whadu mu(無), Daehe(大慧) suggested the original form of the ten malfunctions. And in the Korea zen lineage, it is settled as the ceaseless tradition that show the important feature and measure to practice. The purpose of this essay is to understand the relation of the general characteristic of whadu and the malfunctions and in accordance with it to expose the inevitable connection between the malfunctions and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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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티노스 형이상학은 일자, 정신 그리고 영혼이라는 세 가지의 실체로 구성된다고 볼 수 있다. 그들 실체들은 각각의 고유한 특성들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또한 서로 긴밀한 연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런 연관관계는 크게 보면 두 가지로 형태를 가지는데, 말하자면 존재론적 측면에서의 논의와 인식론적 측면에서의 논의다. 존재론적 측면에서는 일자에 대한 논의를 출발점으로 하여 일자가 정신으로 그리고 정신에서 영혼으로 하향하는 형식으로 산출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으며, 인식론적 측면에서는 상승(上昇)이라는 도식을 통하여, 영혼이 정신을 거쳐서 자신의 원천인 일자에로 귀향하는 과정을 기억(상기)과 자기인식이라는 측면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두 가지 측면에서의 논의를 중심으로 하여 플로티노스 형이상학이 갖는 구조와 실체들 간의 관계 그리고 그 개별적인 특징들을 살펴보면서, 플로티노스가 진정한 의미의 형이상학자인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Plotinische Metaphysik besteht aus den drei Hypostasen, dem Einen, Geist und der Seele. Diese drei Hypostasen haben voneinander den eigentlichen Charakter und auch miteinander den engen Zusammenhang. Dieser Zusammenhang hat in dem breiten Sinnen zwei Formen, und zwar ontologische und erkenntnis-theoretische Erlaeuterung. Im Hinblick auf die ontologische Behandlung nimmt Plotin einen Hervorgang aus dem Einen zur Materie an. Das Eine ist für Plotin die oberste Stufe, Hypostase. Darauf folgt als naechste Hypostase die Stufe des Nous. Sodann folgt als die dritte Hypostase die Stufe der Seele, darunter die des Koerperlichen und der unbestimmten Materie. Im Hinblick auf die erkenntnistheoretische Behandlung nimmt er den Aufstieg zum Einen von der Seele. In dieser Untersuchung versucht man mit den plotinischen zwei Aspekten, die Struktur, den Zusammenhang mit den Hypostasen und individuellen Charakter der plotinischen Metaphysik dazustellen. Schliesslich wird man danach fragen, ob Plotin wirklich ein Metaphysiker ist.
Struktur und Charakter der plotinischen Metaphysik Plotinische Metaphysik besteht aus den drei Hypostasen, dem Einen, Geist und der Seele. Diese drei Hypostasen haben voneinander den eigentlichen Charakter und auch miteinander den engen Zusammenhang. Dieser Zusammenhang hat in dem breiten Sinnen zwei Formen, und zwar ontologische und erkenntnis-theoretische Erlaeuterung. Im Hinblick auf die ontologische Behandlung nimmt Plotin einen Hervorgang aus dem Einen zur Materie an. Das Eine ist für Plotin die oberste Stufe, Hypostase. Darauf folgt als naechste Hypostase die Stufe des Nous. Sodann folgt als die dritte Hypostase die Stufe der Seele, darunter die des Koerperlichen und der unbestimmten Materie. Im Hinblick auf die erkenntnistheoretische Behandlung nimmt er den Aufstieg zum Einen von der Seele. In dieser Untersuchung versucht man mit den plotinischen zwei Aspekten, die Struktur, den Zusammenhang mit den Hypostasen und individuellen Charakter der plotinischen Metaphysik dazustellen. Schliesslich wird man danach fragen, ob Plotin wirklich ein Metaphysiker 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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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헤겔의 스피노자 독해가 갖는 그 이론적 함의와 정당성을 살펴보는 것이다. 헤겔은 스피노자의 철학을 세 가지 관점에서 비판한다. 첫째로 기하학적 방법의 문제, 둘째, 실체의 부동성에 관한 문제, 셋째, 속성의 위상 문제가 그것이다. 헤겔은 스피노자의 철학이 갖는 이 세 가지 특징이 스피노자 철학을 결함 있는 철학으로 만든다고 보고, 스피노자의 실체를 주체로 고양시킴으로써 이 결함을 지양하고자 한다. 그런데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현대의 연구는 헤겔의 스피노자 독해가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오해’와 ‘왜곡’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헤겔이 대결하고 있는 스피노자는 ‘진짜 스피노자’가 아닌 ‘상상적 스피노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헤겔이 스피노자의 철학과 유사한 것으로 이해한 유출이론은 스피노자 자신의 사상과는 전적으로 무관한 것이며, 기하학적 방법을 오성적 방법으로 보고, 여기에 그의 철학적 방법을 대립시키고 있는 것 역시 헤겔의 스피노자 독해가 갖는 잘못된 귀결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문제는 헤겔의 스피노자 독해에서 ‘상상의 스피노자’와 ‘진짜 스피노자’를 구분하고, 이들을 대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철학적 역사적 맥락에서 상상의 스피노자와 진짜 스피노자가 만들어질 수 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헤겔 텍스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통하여 헤겔의 스피노자 독해를 그의 철학 체계 내에서 선명하게 이해해 보는 작업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글은 헤겔의 스피노자 독해에 대한 현대적 비판을 염두에 두고, 헤겔이 스피노자 독해로부터 끌어낸 귀결이 그의 철학이 놓여 있었던 시대적 문제의식에 대한 헤겔적 답변이라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본 논문은 헤겔의 스피노자 해석이 헤겔의 철학 체계 내에서 어떤 이론적 함축을 갖는지, 그리고 그 정당성이 어디로부터 마련될 수 있는지를 검토할 것이다.
The aim of this paper is to examine a theoretical implication and justification of Hegel's reading of Baruch Spinoza. Hegel criticizes his philosophy in three different respects: the problem of the geometrical method, the problem of immobility, and the problem of status of property. Hegel thinks that these three problems make his theory defective and tries to overcome it by enhancing Spinoza's substance into subject. Recent studies on Spinoza's philosophy, however, claim that Hegel's criticism is based on his own 'misunderstanding' and 'distortion' of Spinoza's and arguing against not 'real Spinoza' but his 'imaginative Spinoza'. According to them, emanation theory, which Hegel considers to be similar to Spinoza's theory, is nothing to do with Spinoza's own theory. Furthermore, the fact that Hegel regards the geometrical method as the method of understanding and opposes Spinoza's theory to this results from Hegel's misunderstanding of Spinoza. As I understand it, what matters is not distinguishing between 'imaginative Spinoza' and 'real Spinoza' in Hegel's reading and contrasting them but understanding what sort of philosophical context made 'imaginative Spinoza' and 'real Spinoza' inevitable to be produced. In order to do this, it is necessary to go through Hegel's understanding of Spinoza in his own philosophical system doing a precise analysis of Hegel's texts. Having in view of recent criticism on Hegel's understanding of Spinoza, I hold that his conclusion from his understanding of Spinoza is the answer to his own question about the society coming from his problem consciousness. I also examined what Hegel's understanding of Spinoza implies and what justifies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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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머의 보편적 해석학은 하이데거의 해석학을 발판으로 출발한다. 그의 해석학적 사유는 “모든 이해에는 항상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인다. 가다머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해석학을 토대로 하여 역사성과 언어성을 구체화시키고, 하이데거의 이해의 선구조에서 先파악함(Vorgriff)에 착안하고 있다. 하이데거의 관점에서 이해가 존재이해이며 현존재의 자기이해라고 규정된다면, 인간에게서 선입견(Vorurteil)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겨난다. 가다머는 선입견을 이해작용으로 관련짓기 때문에 이해의 방해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는 선입견의 개념을 역사의 과정에서 드러난 이해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이해에 작용하는 선입견으로서의 역사를 영향사(Wirkungsgeschichte)라 부른다. 가다머에 있어서 영향사적 의식에 대한 역사이해는 언어에서 등장난다. 여기서 언어는 해석학적 경험의 매체가 된다. 따라서 가다머에게 있어서 언어의 문제는 해석학적 철학의 중심논제로 등장한다. 그는 언어에 대한 관심을 초기의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해석학에 영향을 받고 언어의 보편성에 대한 이론을 전개하였다. 언어와 존재의 관계를 해석학적 단서로 파악할 수 있는 관점은 하이데거가 주장하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명제와 가다머가 “존재는 진리의 집”이라 언급한 표현에서 잘 나타난다. 따라서 필자는 가다머의 해석학적 이해에서 중요한 열쇠개념으로서 작용하는 이해의 역사성, 영향사적 의식, 해석학적 경험의 매체인 언어를 중심으로 일별하고, 가다머 해석학의 영향사적 의미를 고찰하고자 한다.
Gadamers "Wahrheit und Methode" stellt die wohl bedeutendste, sicherlich wirkungskräftigste Leistung aus der Schule Heideggers dar. Den Ausgangspunkt bildet Heideggers Kritik der neuzeitlichen Wissenschaft, die die wirkliche Erfahrung des Menschen verfehle. Darin weiß sich Gadamer mit anderen Entwürfen verbunden, die die Wahrheit antiken Philosophierens gegen die Methode neuzeitlicher Wissenschaft zu bewahren suchen. Nun hat Gadamer gegenüber dem Historismus, vor allem Diltheys, zweifellos recht, und es ist imponierend, wie er aus dessen Aporien seine eigene Fragestellung entwickelt und durchführt. Es ist also konsequent, wenn die Analysen von "Wahrheit und Methode" ihren Abschluß in der Identifikation von Sein, Sprache und Selbst darstellen finden, wobei Sprache dann nicht mehr nur als die der Kunst oder Geschichte, sondern als allem Seinden zugehörig begriffen werden muß. Gadamer besteht, dabei Sprache nur als wirkliches Gespräch, als ein Dialog, als Frage und Antwort und als Wort und Antwort ihre innerste Wahrheit erhä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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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주된 목적은 로티의 철학적 관점으로서의 역사주의를 특징짓고 그 의의와 한계를 규명하는 데 있다. 로티의 역사주의의 목적은 표상주의에 근거한 전통적인 진리관 및 철학 개념을 비판하고 보다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철학 개념을 제시하기 위한 관점의 전환에 있다. 해체론자로 잘 알려진 로티의 역사주의를 필자는 더 구체적으로 치유로서의 역사주의, 명목론적 역사주의, 자연화된 헤겔주의로서의 역사주의로 특징지어 접근한다. 이러한 특징들에 대한 검토를 통해 로티의 역사주의에 대한 기본 입장은 초월적인 것을 거부하고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는 변화를 수용하는 고전적 역사주의와는 동일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로티의 역사주의는 실용주의 입장에서 전체론적 언어관을 통해 전개되며, 역사주의와 언어에 관한 어떠한 이론 구성의 가능성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고전적 역사주의와는 구분된다. 그 결과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한 로티의 역사주의는 초월적인 것에 근거한 형이상학을 거부하고 인간을 중심으로 한 철학적 담론을 실현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문제는 로티가 역사주의와 언어의 우연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참신한 언어의 창안을 통한 다양한 해석만을 주장하므로 극단적 맥락주의의 위험성에 직면한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로티의 역사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는 언어관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필자는 체험주의에 근거해서 로티의 언어관의 한계를 지적한다.
The main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haracterize Rorty's view as a form of historicism and to present it's significan- ces and limits. The main task of Rorty's historicism is to overthrow the traditional view of truth and the notion of philosophy based on representationalism, and to suggest a more practical and realistic conception of philosophy. In this paper I characterize Rorty's historicism with its deconstruc- tivist decline in the following aspects: historicism as a therapy, nominalist historicism, and naturalized Hegelia- nism. Putting these three aspects altogether, we may say that Rorty's historicism runs on the same trail with the classical form of historicism by rejecting a transcendental point of view and putting an emphasis on concrete historical contexts. Nevertheless, Rorty's historicism turns away form a the classical historicism by holding a holistic view of language based on pragmatism, and refusing any possibility of theori- zation on historicism and language at all. As a result, Rorty's historicism seems to offer a highly precious insight on the necessity and possibility of anthropocentric discourse while refusing any form of transcendental metaphysics. However, the problem is that Rorty's excessive emphasis on contingency, by exclusively insisting on the creation of novel vocabularies and a variety of interpretation, gives rise to a fear of nihilistic contextualism. I suggest that this critical problem is deeply rooted in his view of language, which can be successfully redressed by the experientialist notion of 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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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시언은 외재론과 특권적 자기 지식과의 양립가능성 논변을 외재론자들의 입장에서 재구성함으로써 외재론은 개념의 대상 의존성을 필함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외재론과 특권적 자기 지식의 양립가능성을 비판했다고 보고 있다. 보고시언에 따르면 외재론은 우리가 한 개념을 갖는다는 것은 그 개념을 갖게 한 대상의 존재에 의존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이를 특권적 자기 지식과의 양립가능론으로 구성하면 외재론자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가 선험적으로 안다.”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론을 주장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보고시언의 외재론과 특권적 자기 지식의 양립가능론에 대한 비판은 논변 과정에 대한 세부적인 분석에 따라 외재론자들에 의해 다양하게 반박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은 쌍둥이 지구 사고 실험이 외재론으로 이행하기 위한 충분조건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보고시언이 추가한 전제들부터 이끌어지는 개념의 대상의존성을 외재론자들이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보고시언이 외재론과 특권적 자기 지식의 양립가능성 논변을 정당하게 논파했다고 볼 이유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Boghossian argued that externalism maintains the object dependency of concept by restructuring the controversy over the compatibility between externalism and privileged self-knowledge from externalists’ position. For this, Boghossian examined if the premises of Putnam's Twin Earth Experiment are enough to be translated into externalism, suggested premises to be added and derived externalists’ opinions from the previous premises and the additional ones. According to externalistic idea, that we have a concept means that we depend on the existence of the object that produced the concept and, if a compatibility theory between this idea and privileged self-knowledge is formulated, it will draw an unacceptable conclusion, ‘We know a priori that an object (natural kind) exists.’ Boghossian’s such a criticism of the compatibility theory between externalism and privileged self-knowledge can be refuted by externalists in various ways. However, the present research draws a conclusion that externalists may not accept this by clarifying the ground of Boghossian’s contention that we cannot deny ‘If I have the concept of water I know a priori that there exists water,’ which was assumed in Boghossian’s argu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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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증의 분류기준을 명확히 하는 일은 논증이나 추론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데 중요하다. 그간에 논리학 관련 저작에서는 연역과 귀납이라는 단순한 분류에 만족하는 경향이 있었다. 비형식 논리학과 일부 비판적 사고의 출현은 이런 경향을 벗어나기 위한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여기서는 논증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몇 가지 분류기준을 제시하고 그 기준에 의한 분류를 시도하였고, 나아가 서로 다른 기준에 의한 분류를 교차함으로써 논증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가 커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비판적 사고, 비형식 논리학 등을 포함한 논리학 관련 분야에서 이루어진 논증에 관한 몇 가지 분류 및 분류의 교차가 어떤 점에서 부적절했으며, 어떤 점에서 논증의 분석과 평가에 기여했는지 지적하였다.
To clarify classifications of argument is important for analyzing and evaluating arguments. Most works in logic, informal logic, and critical thinking paid no great attention to the criterion of classifying arguments. We are trying to give consistent and systematic ways of argument classifying and several ways of crossover between the sorts of argument. Some crossovers given by logic, informal logic, and critical thinking are criticized and the significance of a good crossover is considered. By doing these works, what we can learn from critical thinking and informal logic as well as logic is revea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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