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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한철학 [PAN-KOREAN PHILOSOPHY]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범한철학회 [Bumhan philosophical society]
  • pISSN
    1225-1410
  • eISSN
    2713-9344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1987 ~ 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철학
  • 십진분류
    KDC 105 DDC 105
제43집 (11건)
No
1

이제마의 사단론

최대우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43집 2006.12 p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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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원

동무 이제마는 사상의학의 기초 이론을 성명론(性命論)과 함께 사단론(四端論)을 근거로 마련했지만 여기에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해석을 가한다. 이 논문의 목적은 동무의 사단론을 종래의 유학과 대비적으로 검토함으로써 그의 독자적인 면모를 밝혀내려는 데 있다. 이를 위해 필자는 관점의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주자와 다산의 사단론을 동무의 견해와 비교하여 검토했다. 주자는 사단을 천리로 해석하여 형이상학적 이해를 시도했지만, 다산은 이러한 관념적 해석을 벗어나 인간의 자율성으로 사단의 실현을 설명했다. 그런데 그것은 인간의 의지에 앞서 상제천의 명령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동무는 사단이 선천적으로 주어진 도덕성임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은 인간이 事物과 관계하는 과정 속에서 실현된다고 해석함으로써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이해했다. 동무의 관점은 천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바뀌었지만 이것은 사상의학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동무의 사단론은 의학적 지식과의 접목을 통해 인간의 종합적인 해석을 시도한 독창적인 성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攀 * 이 논문은 2005년도 전남대학교 학술연구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東武李濟馬的四象醫學理論的基礎在於性命論和四端論,但其理論的解釋是和以前的理論不同的.這篇論文的目的是:筆者想通過東武的四端論和以前儒家理論的對比․檢討,探討東武理論所具有的獨特的面目.爲了這一目的,筆者比較․檢討了東武和朱子․茶山的四端論.朱子把四端論解釋爲天理,試圖形上學的解釋;茶山脫離了這樣形上學的解釋,認爲四端的實現表現爲人的自律性.但茶山的解釋有界限:人的意志必須聽從上帝天的命令.東武雖然接手四端是先天的道德性,但還認爲四端應該實現在於人和事․物的關係之中,這樣以人爲中心的觀點解釋.東武的觀點是從天爲中心轉化爲人爲中心的,這都是爲了具備四象醫學理論的根據.因此,我們可以評價如下:東武的四端論是通過和醫學的知識連繫,試圖對人的綜合解釋,得到了獨特的成就.

2

5,700원

本稿가 柳永善에 대해 注目하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다. 필자는 全羅北道 儒林에 대해 관심을 갖고 資料를 調査하며 艮齋 田愚(1841-1922)라는 傑出한 儒學者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유림들에 대한 硏究 調査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이 지역 유림에 대하여 發掘하고 積極的으로 알려야겠다는 일념으로 자료를 조사하던 중 玄谷 柳永善이란 인물을 알게 되었다. 玄谷 柳永善(1893-1960)은 甲午改革과 東學革命이 일어나기 한 해 前인 1893년에 고창에서 태어나, 나라가 망하는 것을 지켜보았고 日帝强占期에서 靑壯年의 시기를 보냈다. 그리고 光復을 맞아 人生의 후반기를 보냈으니 一生의 대부분을 혼란기에서 보낸 셈이다. 12歲에 儒學이 사람이 되는 學問이라는 것을 알고 儒學의 根本인 ‘爲己之學’에 뜻을 세운 뒤, 당시 聖學으로 名聲이 있던 艮齋 田愚를 古阜 瀛洲山으로 찾아가 執贄하고 門下에 들어갔다. 현곡이 계화도, 왕등도에서 간재를 陪從하며 공부한 12년은 현곡의 학문적 성취와 성리설에 대한 견해를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곡의 성리학은 栗谷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기호학파의 이론과 학설을 계승 발전 시킨 것으로 스승인 간재의 영향을 특히 많이 받았다. 玄谷은 道心은 성명의 바름에서 근원한 것이고, 기가 발하여 중절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道心은 普遍理 즉 本然理에 대한 認識에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다. 玄谷의 人心道心論은 情에 대한 構造的 解明이 아니라 마음의 機能에 대한 認識的實踐的 論議라고 할 수 있다. 현곡의 人物性同異論에 대한 생각은 未發일 때에 限定하여 氣質은 聖人이나 凡人 모두 같다는 것이다. 程朱 理學의 관점에 의하면 氣質의 淸濁粹駁은 一種의 先天的으로 賦與 받은 것이며, 氣質之性은 天命之性이 淸濁粹駁이 일정하지 않은 氣質과 관계된 것으로 보았다. 人性과 物性의 質的 差異는 氣稟에 있는 것이며 순수한 理로써 말하면 五常의 粹然함이 人物의 구별이 없다고 보았다. 현곡의 인심도심설은 인심과 도심이 모두 已發과 情의 범주에 속한다는 입장에서 조선성리학을 계승 발전시켰다. 현곡은 인물성동이론은 人性과 物性의 질적 차이의 원인을 氣稟의 차이로 생각하였다. 순수한 理로만 생각하면 五常의 粹然함이 人物의 구별이 없다고 생각한 전통 기호학을 계승하고 도학이 泯滅해가는 근대에 성리학을 계승하였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本稿对柳永善所注目的动机如下。笔者对全罗北道儒林有所关心调查资料时发现。虽然有叫艮齐田愚(1841-1922)的杰出儒学者但对于这地方的儒林研究调查还不够。还很差。所以这地区的儒林。开始积极发掘的这一个念头查资料中发现有叫玄谷柳永善的人。 玄谷柳永善(1983-1960)是甲午改革和东学革命起发前一年1893年在高敞出生的。他看到了国亡, 日帝强占期度过了青年时代。后来经光复到了人生的后半期可以说他的一生是混乱期度过的。12岁时就知道了, 儒学是成人的学问, 所以以儒学的根本 ‘为已之学' 为目标, 去找住在古阜瀛洲山的当时的圣学者所有名的艮齐田愚执贽后进到了他的门下。 玄谷在界华岛·旺嶝岛·陪艮齐所学习的12年, 在玄谷的学问之成就和对性理学的见解中, 成了重要的动机。 玄谷的性理学是从栗谷传下来的畿湖学派的理论和学说发展起来的。所以受到了老师艮齐的很大影响。 玄谷想道心起源于性的从里到外的呈现气以动举为中止的知道了道心就是对普遍理本然理的认识。玄谷的人心道心论不是对情的构造的解明而是对心的机能的认识的·实践的理论。 玄谷的人物性同异论说明的是未发时限定对于圣人和凡人的气质是一样的。程朱理学的观点来看, 气质的清浊·粹驳是一种先天性的是所被赋于的人性和物性的质的差异在于气禀以纯理来说, 五常的粹然对人·物是没有区别的。 玄谷的人心道心学是被人心和道心在已发和情的规范的立场中所发展继承性理学的。 玄谷想人物性同异论是人性和物性的质的差异的原因是气禀的差。以纯理来想的话, 五常的粹然继承没有人·物区别的正统畿湖学, 道学要泯灭的近代来, 继承性理学才有所意义。

3

이발설(理發說)과 은유 : 체험주의적 분석의 필요성

이향준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43집 2006.12 pp.4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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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원

4

이데올로기의 終結인가 ― 중국 당대 이데올로기의 문화 定向 ―

이상옥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43집 2006.12 pp.77-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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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0원

“문화”의 의미와 기능이 중국에서 이데올로기를 위해 기여하는 역사적인 맥락을 중국 공산당의 이데올로기 담론의 추이를 통해 알 수 있다. “중국문화”는 “중국특색의 이데올로기”와 내용면에서 동등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결국 표현의 부호체계에서 이데올로기의 空洞化를 表象하고 있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를 대신한 중국의 문화연구의 이론적 모색은 서구 자본주의의 비판과 대중문화, 지배계층과 피 지배계층의 문화적 대항을 그 주요 내용으로 한다. 아울러 시대적 조류에 의거 “세계화”의 문화 의미를 전달한다. 이러한 이론들은 민간 지식계에는 한낮 공담에 불과하고 문화 조작의 주체인 지배계층에 의해 총체적으로 통제되어 개혁, 개방과 적절한 보조를 맞추는 역할을 수행할 목적으로 주의를 끌고 있는 특징을 보인다. 문화에 대한 서양 이론의 중국 도입은 중국에서의 “적합성” 여부를 차치하고서라도 해결해야 할 사항들에 직면하고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는 “자각적인 문화”의 중국에서의 가능성이다. 그러나 중국 현실에서는 건전한 “노동자 문화” 내지는 “중산계층 문화”는 요원하다. 둘째, “시민사회”의 “주류”이데올로기에 대한 자주성의 확립이 “시민문화”의 존립과 발전의 중요 요소가 된다. 셋째, “대중문화”에 대해서는 “주류” 이데올로기와의 관계에 있어서 “주류”이데올로기의 “대중문화”의 직접 제조와 운용과 서양 위주 소스의 “대중문화”에 대한 “대중”과의 격리 내지 부정적 이미지 조성 등의 특징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이데올로기를 대체할 “문화”의 체계로 두 가지 중요한 상호 모순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다. 첫째는 “주류문화”의 강화 여지 가능성이다. 둘째는 “언론자유”로 대변되는 억압과 반항, 자유와 성숙의 추세에 대한 적절한 대응인 것이다.

“文化”的意思和功能在当代中国为意识形态服务, 这是我们通过探讨共产主义的意识形态话语的一种历史性脉络, 达到的结论。“中国文化”和 “具有中国特色的意识形态” 在其内涵方面同等的意思, 表象意识形态的空洞化于符号体制。 在中国文化代替意识形态现象的研究主要关注诸如西方资本主义的批判, 大众文化和文化性对抗于支配阶层和被支配阶层。同时, 探索依据时代潮流 “全球化” 沟通的文化脉络。这些理论的贡献明显突出民间知识界的讨论将归于空谈, 意识形态主体的支配阶层却全面掌握其控制权, 以与改革开放同步进行操作。 共产党党政意味着毛泽东主导意识形态话语, “文化” 建设显示马克思主义在中国终归失败, 而中国传统统治思想转移到毛泽东主义。在结论, 将讨论 “文化体制建设” 是一种依序 “经济建设”和 “政治建设” 完成的国家建设, 以现代化的超级大国面貌出现。

5

무아에서 진아까지 ― 불교 무아 개념의 형성과 전개 ―

김종욱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43집 2006.12 pp.10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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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0원

6

法藏의 敎判에 대한 문제 제기

김도공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43집 2006.12 pp.13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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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네스의 도덕불필요론과 불교의 자애의 윤리

안옥선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43집 2006.12 pp.155-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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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0원

심층생태학자 네스(A. Naess)는 자연존중자연보살핌에 있어서 도덕이 불필요하다고 본다. 이 논문은 그의 도덕불필요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것을 불교의 자애윤리가 보완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검토한다. 네스는 생태학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도덕이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대신에 그는 자연적 성향으로부터 자발적으로 자연을 존중하고 보살피는 ‘미적행위(beautiful actions)’가 필요하다고 본다. 미적행위는 강제나 의무로부터 비롯되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도덕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입장은 도덕에 관한 칸트적 정의 안에서만 타당하다. 덕윤리적 관점에서 보면 네스의 도덕불필요론은 사실상 도덕필요성을 인정하는 모순적인 것이다. 다른 한편 불교는 생태문제에 대한 하나의 처방으로서 자애(mett) 수행을 제시한다. 자애수행은 자애의 마음을 내면화함으로써 탐진치에서 벗어나 자비로울 수밖에 없는 성품을 체득해 가는 윤리적명상적 수행이다. 모든 존재에 대하여 항상 자비로울 수밖에 없는 성품을 습득하는 것이 자애수행의 핵심이다. 불교의 이러한 입장은 자연에 대한 자발적 보살핌의 태도를 익히는 데 있어서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는 점에서 네스의 도덕불필요론과 다르다.네스의 도덕불필요론은 불교의 자애의 윤리에 의해서 보완될 수 있으며 그리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네스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자연존중이나 자연보살핌의 태도는 의도적인 노력 없이 저절로 습득되지 않는다. 불교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그것은 자애수행과 같은 의도적인 윤리적 노력을 요구한다.

This paper examines Naess' position rejecting morals in protecting nature. It points out some problems and limits. Futhermore, it suggests Buddhist notion of loving-kindness(mettā) as a complement. Naess thinks that we do not need morals in order to solve ecological problems. Instead he thinks that we need “beautiful actions" respecting and caring nature out of our natural dispositions. For him, beautiful actions are not morals in Kantian sense because they have nothing to do with forcefulness or duty. However, beautiful actions require moral practice such as character transformation in the sense of virtue ethics. So Naess' position of moral rejection is contradictory. Furthermore, Naess makes a fallacy considering knowing as practice and ignores a habituation process transforming knowing into practice. On the other hand, Buddhism suggests practice of loving-kindness as a prescription for ecological problems. Practicing loving-kindness aims at internalizing the mind of loving-kindness, ceasing the three defiled minds, and finally maintaining a compassionate character. The heart of this loving-kindness practice is to cultivate a character that cannot but be always compassionate naturally. This paper suggests that Naess' position needs to be complemented by this Buddhist ethics of loving-kindness.

8

르네상스철학자 폼포나치의 절충주의

이재경, 김태규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43집 2006.12 pp.183-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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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원

폼포나치는 르네상스시대를 대표하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철학함’은 아리스토텔레스 저작만을 주해하거나 그의 사유를 그대로 좇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이 글은 영혼의 불멸성에 관하여에 등장하는 폼포나치의 이론을 살펴봄으로써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에 천착하고 있을지라도 여러 가지 사상에서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취사선택하여 자신의 이론을 구성하려는 절충주의적 경향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 경향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 신체기관에 의존해야 하는 물질적 감각작용을 수행하는 사멸하는 본성과 비물질적 사고작용을 수행하는 불멸하는 본성이 어떻게 인간영혼 안에 양립할 수 있는지를 놓고 폼포나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문제를 신플라톤주의에 의존하여 푼다. 둘째, 폼포나치는 덕과 악덕이 사후에만 적절하게 보상받을 수 있기 위해 불멸성이 도덕적으로 요청된다는 반론에 대해 스토아주의 윤리학에 의존하여 답변을 한다. 그는 그러한 보상의 도덕적 가치를 부정한다. 덕의 본질적 보상은 덕 그 자체고, 악덕의 본질적 형벌은 악덕 그 자체다. 셋째, 종교의 실천적 가치를 강조하는 점은 아베로에스의 주장과 흡사하다. 이것은 진리의 탐구가 신학자가 아니라 철학자의 몫이라는 폼포나치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Pomponazzi has been recognized as one of the most important Aristotelian philosophers in the Renaissance. He makes great efforts to get back to the real meaning of Aristotle without regard for religious teaching. In spite of his resolve to adhere to the text and to explicate it in its own terms, he draws material from non-Aristotelian sources simply since he thinks that the insights found among the texts from other traditions can usefully be applied to strengthening his own philosophy. This paper is intended to show his eclecticism. In the De immortalitate animae, Pomponazzi places man at the center of the universe much in the same way as Ficino and Pico had done a generation earlier, while in another context he argues that virtue is its own reward, a favorite Stoic theme known to him through Seneca and many other sources. Furthermore, Pomponazzi is indebted to Averroes for the idea that the value of religion lies not finding truth but rather in controlling community life. Immortality for Pomponazzi is a fairy tale, or rather a fiction; the purpose of this fiction is to maintain order in society.

9

6,600원

로티의 철학과 자연의 거울(1979)은 지금까지 어느 저서보다 가장 광범위하고 중요한 저작이다. 특히 그는 1969-1979사이에 걸쳐 많은 저작을 남겼다. 이 책은 근대 철학과 함께 일반적인 해체로서 이해하였다. 로티의 관점에서 우리시대의 가장 중요한 세 철학자, 즉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 듀이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다가온다. 로티가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 듀이를 동일한 선상에서 주요한 인물로 설정한 한 것은 그다지 임의적인 것이 아니기에 쉽게 혼란에 빠지지는 않는다. 로티에게 있어서 해석학은 전체주의적이고 전일주의적인 접근방식과 밀접히 연관된다. 우리는 최소한 전체의 이해에 대한 先개념 없이 낯선 문화, 실천, 이론들의 개별적인 부분을 이해할 수 없다. 로티는 해석학의 개념에 대한 적용을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1960)의 저서에서 의존하였다. 결정적으로 로티는 가다머의 육성개념을 통해 그의 인식개념을 설정하였다. 로티의 주요과제는 다음과 같이 진행 된다: 기초주의와 연관된 특징은 현대철학의 주요한 실패이다. 이러한 실패는 근대 이후로 데카르트가 정신과 육체를 분리한 차원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필자는 로티의 해석학을 네오프래그머티즘의 해석학이라 지칭한다. 이러한 맥락에 따라 필자는 로티의 철학을 “인식론에서 해석학의 전회, 반표상주의의 해석학, 통상적 담론과 비통상적 담론, 체계적 철학과 교화적 철학”을 구분하고 이것들을 차례로 살펴보고, 그가 의도하고자 하는 바를 찾고자 한다.

“Philosophie und der Spiegel der Natur”(1979) ist Richard Rortys bisher umfangreichstes und bedeutendstes Werk. Er hat zehn Jahre, von 1969 bis 1979, daran geschrieben. Dieses Buch versteht sich Generalabrechnung mit der neuzeitlichen Philosophie. Die Drei in Rortys Augen bedeutendsten Philosophen unseres Jahrhundertes, Wittgenstein, Heidegger und Dewey stehen für einen vollkommen andern Stil. Wenn Wittgenstein, Heidegger und Dewey von Rorty auf ein- und dieselbe Liste von Kronzeugen gesetzt werden, irritiert das nur solange, als nicht bedacht wird, was er durch diese Zeugen belaubigen lassen will. Hermeneutik und die von Rorty vertretene ganzheitliche, holistische Herangehensweise hängen eng miteinander zusammenen. Wir können einzelne Teile einer fremden Kultur, Praxis, Theorie, Sprache etc. nicht verstehen, ohne schon zumindest versuchsweise Vorgriffe auf ein Verständnis des Ganzen zu machen. Die Verwendung des Begriffs Hermeneutik verdankt Rorty weitgehend einem einzigen Buch: Gadamers “Wahrheit und Methode”(1960). Entscheidend ist seine Ersetzung des Erkenntnisbegriffs durch den Bildung. Rortys Kernthese lautet: Die Verknüpfung des Mentalen mit dem Fundamentalen ist der Hauptfehler der gegenwärtigen Philosophie. Diese Fehler began an der Wende zur Neuzeit mit Descartes, der das Mentale als eigene abgetrennte Dimension verstanden ha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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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도덕적 지위에 대한 비판적 고찰

김양현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43집 2006.12 pp.235-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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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원

전통 윤리에서는 도덕적인 행위능력이 없는 동물이나 식물, 그리고 생명이 없는 자연물은 도덕의 주체가 될 수 없음은 말할 필요도 없겠고, 도덕의 객체, 곧 의무의 대상이나 도덕적인 고려의 대상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攀 K. Bayertz, “Praktische Philosophie als angewandte Ethik", in: ders. (hrsg.), Praktische Philosophie. Grundorientierunen angewandter Ethik, Hamburg 1991, 7-47쪽, 37쪽 이하 참조; 전통 윤리학의 한계와 관련된 국내의 논의로 김일랑, 인간 이외의 존재의 도덕적 지위와 권리, 대한철학회 편, 철학연구, 제69집(1999), 143-172쪽, 144쪽 이하 참조.攀攀 환경윤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전통 윤리의 인간중심적 토대가 불러온 귀결은 분명하다. 전통 윤리학은 도덕적 규범과 규칙의 타당한 범위를 인간 상호간의 행위에만 한정함으로써, 인간에게 자연과의 관계에서 도덕적으로 무한히 자유로운 행위의 공간을 창출해 주었다. 그리고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결과적으로는 인간의 자연이용이나 파괴행위가 도덕적 판단의 영역밖에 위치함으로써, 인간의 자연이용과 실천 행위가 무차별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근거가 제공되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의 이익과 욕구충족만이 항상 자연 존재의 이익관심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될 수밖에 없었다. 전통 윤리학의 인간중심적 토대에서 비롯된 귀결들을 이렇게 이해하게 되면, 전통 윤리학의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은 포기되거나 수정되어야 하고, 도덕적 책임과 의무의 대상이 새롭게 숙고되어야 할 것처럼 보인다. 또한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 존재를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도덕공동체에 대한 이론적 숙고가 필수불가결한 일처럼 보인다.

Wie umfangreich sind wir verantwortlich fuer die Natur? Welchen moralischen Status der Mensch bzw. die nichtmenschlichen Naturwesen haben. Diese Fragen lassen sich zu beantworten, ueber die Problematik des moralischen Status der Natur kritisch zu diskutieren. Daraus ergibt sich folgende Punkte: (1) Es ist klar, dass die Moral zwar als ein eigenes Geschaeft des Menschen betrachtet werden muss, aber die Gegenstaende der moralischen Beruecksichtigung nicht nur die Menschen als Moralsubjekte beschraekt werden sollen. (2) Nach meiner Auffassung kann der moralischen Status den nichtmenschlichen Naturwesen zuschrieben werden, indem man zwischen einer moralischen Gemeinschaft im engeren Sinn und einer im weiteren Sinn unterscheidet; wenn die moralische Gemeinschaft im engeren Sinn auf alle Wesen referiert, die zugleich Traeger von Rechten und Pflichten sind, dann die moralische Gemeinschaft im weiteren Sinn auf alle Wesen referiert, die Traeger von moralischen Anspruechen sind, unabhaengig davon, ob sie moegliche Adressaten von Pflichten sind. (3) Es ist die Instanz moralischer Verantwortung dadurch deutlich zu machen, dass die verantwortungsfaeigen und autonomen Personen Mitglieder der moralischen Gemeinschaft im engeren Sinn s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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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자본주의 사회의 소비와 생산

김도종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43집 2006.12 pp.259-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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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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