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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한철학 [PAN-KOREAN PHILOSOPHY]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범한철학회 [Bumhan philosophical society]
  • pISSN
    1225-1410
  • eISSN
    2713-9344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1987 ~ 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철학
  • 십진분류
    KDC 105 DDC 105
제30집 (13건)
No
1

湖西儒學의 展開樣相과 特性

황의동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0집 2003.09 pp.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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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0원

2

근대성과 자유 : 사적 자유의 문제성 분석

소병철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0집 2003.09 pp.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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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0원

근대성의 키워드였던 자유 개념은 개인의 쾌락 및 자기 이익과 화해함으로써 사적인 욕망의 자의와 같은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사적 자유는 다른 사적 자유와의 관계에서 권력으로 현상할 뿐만 아니라 개인들간의 공적 상호행위를 위축시킴으로써 정치와 경제 양 차원에서 초개인적 권력의 메커니즘을 만들어내는 매개로 작용한다. 이와 같은 자유의 자기모순은 자유가 근대성과 함께 결정적으로 실패한 기획임을 입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유는 복잡하고 다기하며 양가적인 기획이었다. 근대성의 철학적 기획으로서의 자유는 사적 개인의 경제적 합리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의사소통적 차원을 내포하고 있는데, 그러한 차원은 무엇보다도 사적인 개체성의 초월을 요구하며 이를 통해 상호주관적으로 승인될 수 있는 도덕적 규범들의 토대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적 자유의 자기모순과 함께 근대성의 모든 의의가 고갈되어 버렸다고 선언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근대적 자유의 양가적 의미는 그 자체로 근대성의 역동적 생명력을 보여주는 징후이다. 왜냐하면 단 하나의 동일성에 수렴되지 않는 비판적 차원의 도전들이야말로 숱한 자기모순 속에서 끊임없이 활로를 모색해 온 근대성의 건강한 자양분이기 때문이다.

Modernity and FreedomByung-Chul SoThe concept 'freedom', the key word of modernity has been understood as the arbitrariness of private desires ever since it was reconciled with individual pleasures and self-interests. But private freedom like that does not only appear as a power in relation to other ones, but also creates and maintains the mechanisms of transindividual power indirectly through shrinking public interaction among individuals. This self-contradiction of freedom seems to prove that along with modernity freedom is a decisively failed project. But freedom has been a complex and ambivalent project. Freedom as a philosophical project of modernity connotes the communicative dimension that is not reduced to private individual's economic rationality. On that account it demands the transcendence of private individuality and functions as the foundation of intersubjectively recognizable moral norms. Hence there is no reason for declaring that every significance of modernity was drained on the ground of the self-contradiction of private freedom. The ambivalence of modern freedom, as such, is a mark of the dynamic vitality of modernity. For the challenges of the critical dimensions that are not reduced to a single identity are the healthy nutrients of modernity that has groped its way undergoing all sorts of self-contradictions.

3

간호윤리의 정체성을 위한 철학적 탐구

공병혜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0집 2003.09 pp.6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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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원

이 논문은 간호에서의 인간 이해와 윤리적 성격을 근거 지울 수 있는 철학적 기본 전제들을 탐구해 봄으로 간호윤리의 이론적 기반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여기서 인간의 신체는 실존적 주체로서의 간호요구를 지닌 전인적 인간간호의 출발점일 뿐만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보살핌이라는 윤리적 관계의 기초가 된다특히 메를로 퐁티의 신체이론은 간호학자들에 의해 전인간호를 위한 적합한 인간관으로서 지지되고 있다. 특히 그의 신체이론은 간호행위에 있어서 상호 신체적 교감에 기초한 인격적 인간관계의 상호성을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준다. 그러나 메를로 퐁티의 존재론은 간호요구를 받아들여 이에 응답해야한 하는 간호사의 환자와의 비대칭적인 윤리적 차원을 설명해 주기 어렵다. 인간의 신체적 감수성에 기초한 타자에 대한 응답과 책임의 윤리로서 레비나스의 윤리는 바로 간호 상황에서 비대칭적인 윤리적 관계를 설명해 줄 수 있다. 레비나스의 윤리는 바로 신체의 수동적 감수성에 기초한 타자의 얼굴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그들의 호소에 응답하고 책임을 질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레비나스의 주체의 수동적 감수성에 기초한 타율적인 책임의 윤리는 보살핌의 관계의 형성에 있어서 간호사의 도덕적 자율성을 간과하기 쉽다. 또한 타자의 고통을 대리하는 윤리적 주체의 모습은 오늘날 직업윤리가 되기에는 너무 과도한 요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A Philosophical Inquiry on the Identity of the Nursing Ethics Byung-Hye Kong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propose a philosophical foundation for the nursing ethics through the ontological understanding of human being, which is suitable for a nursing practice. For the holistic human care and the foundation of care ethics for the others, understanding of the bodily self as a subject was a starting point. In regard of the ontology of human being, Merleau-ponty's view has been supported by nursing scholars as a suitable ontology for the holistic human care in nursing. At a point of Merleau-ponty's view on ontology of person, the bodily consciousness is emphasized, and provided the foundation for the understanding of interaction and the reciprocity of the interpersonal-relationship based on bodily contact in nursing practice. However, the ethical dimension regarding an obligation and responsibility for the others was not mentioned. On the other hand, Levinas concerned the altruistic ethical dimension on the subject of the responsibility for the vulnerable other in nursing. According to his theory, the bodily sensibility of a nurse is required. A nurse herself/himself has to response to the need of suffering other and to take responsibility for it. In view of that, his approach could be a proper theory for the explanation of the altruistic feather of the nursing ethics. Still, it is not clear how a nurse as a moral subject with autonomy could form caring relationship to the others. Moreover, his ethics demands altruistic self -sacrifice, which could be, nowadays, too excessive obligation for the professional nurse.

4

장자의 상대주의적 관점에 대한 반성적 고찰

박유정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0집 2003.09 pp.9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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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0원

일반적으로 지식론에 있어서 상대주의는 진리가 항상 의존적으로 다른 것과의 관계에 의해서 어떤 일정한 조건에 의해서만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측면에 있어서 상대주의는 분별지의 영역과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다. 그만큼 상대주의의 성격은 주관적 사변성을 띤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동양 철학에 있어서 이러한 상대주의와 관련하여 장자만큼 많은 연관성을 갖는 철학자도 없다는 것이 현재의 일반화된 견해이다.그러나 장자를 상대주의자라고 규정하고, 그의 철학을 상대주의로서 평가하는 태도는 일면 긍정될 수도 있지만, 전적으로 그렇다고만 볼 수도 없다는 것이 본고의 논의 대상이다. 장자는 상대주의와 비상대주의를 함께 거론하며, 특히 분별적 현상의 존재에 인간의 지식이 관여하는 한에서 상대주의적 관점을 용인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대주의적 관점은 장자에게서 궁극적 목적으로 제안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전략적 방법으로 채택될 뿐이며, 상대주의를 통하여 상대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철학적 상승의 효과를 장자가 스스로 기획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장자 철학에 있어서 상대주의는 기존의 독단적 교리들에 대한 부정의 양상으로 나타나며, 또한 인간 중심주의 내지는 자아 중심주의의 사유 방식을 부정하여 파기하려는 목적으로 제시된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이상과 같은 내용의 전개를 통하여 장자 철학에 나타난 상대주의적 관점들이 분별지의 부정적 성격들을 보여주는 지식에 대한 반성적 전략의 일환일 뿐이라는 것을 밝히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장자 철학에 나타나는 일체의 상대주의적 진술들은 다만 현상계를 대상적으로 분별하는 정신의 의견이나 논쟁의 세계에만 존립할 수 있는 한계를 지닌 것으로 평가되는 것이다.이러한 논의의 결과 장자는 극단적인 주관적 관념을 통하여 상대주의의 변론을 위한 상대주의의 옹호론자에 머무는 단순한 상대주의자가 아니라, 도리어 상대주의의 논의를 토대로 상대주의를 벗어남으로써 절대적 진리의 세계인 도의 경역에 도달하고자 하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는 비상대주의자로서 의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장자의 철학에 있어서 절대의 세계는 우리의 경험적 지식은 물론, 이를 대상으로 하는 사변적 추론까지도 불허하는 포월적 존재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5

하이데거에 있어서 언어와 신비

이종성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0집 2003.09 pp.10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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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0원

이 글은 하이데거에 있어서 언어의 문제를 신비의 문제와 연결시켜 보고자 하는 것이다. 하이데거에 있어서 언어는 대상적 접근방식으로는 포착되어지지 않고 그것을 넘어선 어떤 결단을 요구한다. 특히 전회 이후의 하이데거에서 이러한 점은 두드러지며, 후기로 갈수록 언어는 더 이상 인간의 합리적 이성의 분석과 조작의 산물이 아니다. 따라서 인간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말하는 그 영역, 즉 인간의 말을 가능하게 하는 영역에서야 비로소 언어의 본래적 모습이 발현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주관과 객관을 엄격하게 나누고 객관 위에서 무세계적인 주관이라는 인간중심적 사고를 벗어난 영역, 즉 탈인간중심적이고 초합리적인 영역으로서의 신비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이데거에 있어서 언어가 빛과 어둠을 개방하는 열려 있음으로서의 밝힘(Lichtung)과 발현(Ereignis)이라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기괴한 신기(mystre)가 아니라 존재의 말할 수 없는 시원인 신비(mystique)를 지칭하기 위해서 부득이 그가 고안해 낸 어법이다. 따라서 언어를 신비로서 바라볼 때, 그리고 그럴 수 있을 때, 언어는 자신을 개시하며, 또 그러한 것으로 맞아들여야 하는 인간 존재의 심층이다.

6

니체철학에서 생명의 자연성과 인위성 - 도덕비판을 중심으로 -

홍일희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0집 2003.09 pp.129-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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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하이데거의 생명이해와 생명중심윤리

문동규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0집 2003.09 pp.153-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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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0원

이 글은 하이데거의 생명 이해를 통해 생명중심윤리에서 말하는 ‘생명 중심적 관점’을 인간이 수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글이다. 물론 생명중심윤리는 인간 중심 윤리와는 반대편에 서 있는 윤리다. 그래서 생명 중심적 관점은 인간 중심적 관점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생명중심윤리에서 말하는 ‘생명 중심적 관점’은,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지구 생명공동체의 구성원이고, 인간을 포함해 모든 종은 상호의존 체계의 일부이며, 모든 생명체는 자기 고유의 방식으로 자기 고유의 선을 추구하며, 인간이 다른 생명체보다 내재적으로 우월한 것은 아니다’라는 ‘핵심신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때 이 핵심신념들의 의미는 인간이 각각의 생명체의 ‘내재적 가치’를 인정하고, 살아있는 것, 즉 생명체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가져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어떠하기에 이 생명 중심적 관점을 받아들이면서 살아있는 자연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가질 수 있는가? 이것은 하이데거의 존재사유를 통해, 그것도 그가 말하는 ‘생명’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생명’, 즉 ‘살아있는 자연’은 생명체의 존재방식이다. 그래서 하이데거의 존재사유에서 생명체는 자신의 방식으로 존재하면서 자신의 내재적 가치를 가지고 자신의 고유한 선을 추구할 수 있다. 물론 이 생명의 문제는 ‘존재’, ‘퓌시스’, ‘세계’와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생명체의 존재방식인 ‘생명’은 자기 자신의 존재뿐만 아니라 그 이외의 존재자의 존재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인간 ‘현존재’에 의해 이해되어진다. 이때 현존재는 존재일반이 열어 밝혀지는 ‘현’이자 인간이 실존하는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중심윤리에서 말하는 생명 중심적 관점은 하이데거가 말하는 생명체의 존재방식인 ‘생명’과, ‘존재’, ‘퓌시스’, ‘세계’ 그리고 이 ‘생명’을 이해하는 인간 ‘현존재’에 의해 이루어지게 된다. 그렇지만 하이데거의 존재사유에서 인간은 인간 이외의 생명체를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존재자의 주인이 아니라 존재자의 존재의 목자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간은 살아있는 자연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가지고 그것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8

슐라이어마허에 있어서의 번역과 해석

이선관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0집 2003.09 pp.185-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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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0원

번역은 해석이며, 번역자는 해석자이다. 번역의 기능은 원천어 텍스트를 목표어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체계에서 재생산하는 데에 있다. 이렇게 번역자는 텍스트와 독자 사이에서 이해를 매개한다. 그러나 ‘이해의 매개’는 필연적으로 ‘텍스트 자체의 이해’를 전제하고 있다. 텍스트의 메시지 자체를 이해하는 것은 번역의 가능조건에 해당하며, 이 문제는 곧 해석학의 중요한 과제에 속한다. 본 논문은 번역행위의 해석학적인 전제들을 슐라이어마허의 해석학적 성찰을 통해 고찰한다.슐라이어마허의 해석학적 번역이론은 ‘사상과 표현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즉, ‘개인의 사상과 사상의 표현은 분리될 수 없다’는 기본적 확신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확신은 인간이 언어에 대해서 가지는 이중적인 관계 - (i) ‘언어는 인간의 사유를 규정한다’(언어의 정신), (ii) ‘언어는 인간에 의해서 형성발전된다’(개인의 사유하는 정신) - 에 근거한다. 이 양자의 본질적인 상관관계에 기초해서, 슐라이어마허의 해석학적 성찰이 수행된다. 여기에 속하는 테제들은, (i) 그의 해석학의 두 축을 형성하는 문법적 해석과 기술적 해석, (ii) 해석학의 역사에서 그의 독창적인 업적으로 평가되는 것으로서, 끊임없는 해석(번역)의 길을 열어 놓는 ‘오해의 보편성’의 문제, 그리고 (iii) 개인적 앎을 넘어 균형 있는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대화’ 및 ‘예료’의 문제이다. 이러한 성찰은 번역이론의 가능한 조건들에 속한다.

9

공동체주의적 사회비판의 가능성 : 마이클 왈쩌의 논의를 중심으로

박정순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0집 2003.09 pp.21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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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0원

롤즈의 자유주의적 정의론의 공동체주의적 대안으로서 제시된 왈쩌의 정의론은 <자유주의 대 공동체주의 논쟁>에서 주요한 쟁점 사항이다. 자유주의적 정의론은 불편부당한 추상적 관점에서 개인주의적 합의를 통해 도출된 보편적인 도덕원칙에 의거하여 인간 사회를 객관적으로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보편주의를 거부하는 왈쩌의 정의론은 가치의 공유된 사회적 의미 기준과 그러한 기준에 따른 분배적 영역들의 자율성을 추구하는 복합평등론이 요체이다. 왈쩌는 가치의 공유된 의미와 분배적 영역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것이 부정의이므로 자신의 정의론이 사회비판 원칙으로 작동한다고 역설한다.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은 왈쩌의 정의론이 특수한 공동체의 공유된 사회적 의미에 의존하므로 상대주의적이고 보수주의적이며, 도덕적 불일치를 무시하며, 또한 복합평등론이 각 분배영역 내의 불평등은 방치한다고 논박한다. 왈쩌는 가치의 공유된 사회적 의미 기준은 최소한의 보편적인 도덕규범을 전제하므로 상대주의적이 아니며, 현존 도덕에 대한 해석을 통한 내재적 비판이 가능하므로 보수수주의적이 아니며, 도덕적 불일치는 포괄적인 해석적 평결을 통해서 상당한 정도 해소되며, 복합평등론은 분산된 인간의 재능이 다양한 분배 영역에서 발휘되도록 하므로 각 영역 내의 불평등이 전반적인 평등으로 해소될 있다고 대응한다.왈쩌의 공동체주의적 정의론과 사회비판 가능성 입론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이러한 논쟁의 해명과 평가를 통해서 한국 사회에 대한 타산지석으로서 현대 서구 규범철학의 현재 성과와 향후 과제가 판정되고 적시된다.

10

누가 구체적으로 사유하는가 : 헤겔과 총체적 사유

백훈승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0집 2003.09 pp.249-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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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0원

어떤 대상을 외면적으로, 다른 대상들과의 연관 속에서 파악하려 하지 않고 그것만을 따로 떼어서 고찰한다든가, 혹은 그 대상을 그 내면적인 일부분만을 고립시켜 파악하여, 마치 그것이 그 대상의 전체인 것으로 오인하는 사유를 추상적인 사유라 한다. 이에 반해 구체적인 사유란, 한 대상을 그 내부와 외부에 있어서의 상호연관 속에서 고찰하는 방식이다. 우리의 사유는 결코 추상적이어서는 안되며, 대상의 일면적이고 부분적인 파악으로부터 점차로 진행하여 총체적인 파악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사유하는 사람이 바로 교양있는 사람이며, 이러한 사람들의 사회가 바로 아름다운 사회, 훌륭한 사회라고 헤겔은 말한다. 필자는 ‘추상’과 ‘구체’의 문제를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논리학, 그리고 이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누가 추상적으로 사유하는가?라는 소논문을 중심으로 다룬다.

11

초작업의 자유도와 시간역전 대칭성

김종일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0집 2003.09 pp.271-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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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0원

제논 역설에 논리적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제논류 역설에 등장하는 무한기계(infinite machine)의 초작업(supertask)과 관련된 논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초작업의 최종상태의 논리적 정당성이다. 다른 하나는 아킬레스의 경주가 초작업과 본질적으로 동등한가라는 점이다. 이전에 발표한 글에서 필자는 초작업의 최종상태가 양자역학의 이론적 체계 내에서 모순 없이 이해될 수 있음을 보인 바 있다. 이 글에서는 두 번째 문제를 다룬다. 즉, 초작업의 완수와 아킬레스의 경주는 서로 다른 자유도(degree of freedom)를 가지고 있어 이들 사이에 일대일 대응이 성립하지 않음을 보인다. 또한, 일반적으로 초작업에 대한 비결정적 진술은 시간에 의존하는 물리적 사건이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물리학의 원리 중 하나인 시간역전 대칭성(time reversal symmetry)을 만족시키지 못함을 보인다. 이와 같은 논의를 바탕으로, 무한기계의 초작업을 논거로 제논 역설의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는 신제논류 역설의 주장이 성립할 수 없음을 보이고, 또한 시간의 흐름을 포함하는 진술의 논리적 정당성을 판단하는 하나의 필요조건으로 시간역전 대칭성을 제시한다.

12

유학의 경서와 학적 전통

이경무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0집 2003.09 pp.28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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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0원

유학의 학적 전통은 크게 두 가지의 토대 위에서 전개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유학의 기본 정신을 이루어 온 도통 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유학의 사상적 원천을 담고 있는 경서다. 이에 본 고에서는 유학의 형성 및 전개 과정 속에서 경서에 관한 관점과 논의들이 다양하게 변천되어 갔음을 살펴보았다.먼저 선진에서는 상고 문화의 전통을 담고 있는 시, 서, 예, 악, 역, 춘추가 공자에 의해 정리되어 유학의 근본 문헌으로 확정되고 나아가 ‘육경’으로 확정되었다. 이어 한 당대에서는 분서 이후 육경을 복원하려는 과정 속에서 금문학과 고문학이 성립되고, 오경으로부터 십삼경에 이르는 변화가 있었다. 또 송 명 대 에서는 선진 유학의 근본 정신을 우주 본체론적 관점에서 정초하려는 형이상학적 의리지학이 탐구되면서 사서오경이 확정되고 사서가 오경보다 더 중시되었다. 그리고 청 대에서는 고경에 대한 고증이 강조되면서 다시 오경이 중시되고 이와 함께 사, 자, 집 등이 정리되었다. 이러한 내용들은 유학의 시대적 변천과 그 특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 자체로 유용하다. 나아가 본 고의 내용은 앞으로 각 시대별 변천에 따른 유학 사상의 중심 내용과 경서와의 관련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기초로 활용될 수도 있다.그러나 본 고는 유학의 학적 전통에 있어서 도통과 경서의 상관성을 밝혀보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다루어졌다. 따라서 유학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본 고의 논의에 덧붙여 ‘유학의 도통과 학적 전통’에 관한 논의가 보완되어야 한다.

13

메를로 퐁티의 몸과 세계 그리고 타자

김종현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30집 2003.09 pp.309-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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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0원

본 논문은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의 핵심 개념인 몸, 세계, 타자의 상호관계성을 규명해 냄으로써, 그것들이 애매성이라는 주제로 집약되고 있음을 밝힐 것이다. 몸, 세계, 타자는 순환적 구조를 지니고 있음으로 반드시 세 개념은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그런데 몸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의 애매한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몸의 애매성은 바로 객관주의와 극단적 주관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핵심적인 근거가 되는 것이다. 본 논문은 이점에 착안하여 몸, 세계, 타자의 개념을 분석해 가고 있다.몸은 ‘애매한 존재 방식’으로 우리에게 드러나지만, ‘상호감각’의 주체이다. 우리는 몸을 통해서 소리를 보고, 색깔을 들을 수 있다. ‘몸 도식’은 이러한 감각 상호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며 세계에 대한 상징 체계를 형성한다. 몸은 감각되는 것과 ‘교류’, ‘지향적 관계’, ‘교접’의 방식으로 작용한다. 몸과 세계는 하나가 능동적 역할을 하고 다른 쪽은 수동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애매한 관계 방식을 이루고 있다. 몸의 이러한 애매성은 지성주의나 경험주의적 방식으로 설명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메를로 퐁티는 극단적 주관주의에 빠지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익명적 실존, 상호 맞물림, 우리 등의 개념을 포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본 논문은 몸의 존재 방식인 애매성의 의미를 탐구함으로써 객관주의와 극단적 주관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존재와 인식의 지평을 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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