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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적 물리주의(ontological physicalism)를 확립하기 위한 출발점은 속성이원론의 형태를 띠고 있어야 한다. 가장 근본적인 인과의 항으로 속성의 예화인 사건의 존재를 가정하고, 사건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방식에 따라서 이것은 비환원주의적 또는 환원주의적 물리주의로 나누어진다. 여기서 우리는 형이상학적 기초와 설명적 모델의 형식과 목적의 측면에서 존재론적 물리주의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데카르트식의 존재론적 이원론(ontological dualism)은 과연 적절한 대안일 수 있는가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김재권은 이 이원론이 속성이원론 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고 주장 한다: 이것은 부수현상론자들 조차도 선택할 수 없는 이론으로 전락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이 논문의 목적은 두 가지 다른 형태의 이원론들, 존재론적 이원론과 속성이원론, 이 과연 적절한 정신인과이론일 수 있는지를 검토해보는 것이다. 결론은 데카르트식의 설명적 모델은 그것이 가정하는 근본적인 형이상학적 전제들로 인해서 공간개념과 의존개념을 차례로 포함하지 못하기 때문에 적절치 못한 이론으로 전락하는 반면, 속성이원론을 가장 치명적으로 공격하는 수반논변은 비환원주의를 심각하게 괴롭힐 만한 주장을 포함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테드 월필드와 토마스 크리스프의 반수반논변을 변호할 것이다. 이 두 이원론들은 그 근본적인 형이상적 전제와 설명적 형식과 목적들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들이다. 그래서 심신문제를 다를 때 이 두 가지를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필자는 이런 와중에서 특히 정대현이 그런 두 형태의 존재론들과는 다른 새로운 토대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신체성 개념을 검토해볼 것이다. 그러나 이 개념이 기껏해야 속성이원론자들의 심신개념을 주장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그가 위에서 논의하는 두 가지 형태의 존재론들을 혼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하겠다.
It is natural to think that there are two different types of dualism, substance dualism and property dualism in terms of their metaphysical foundation and their formality and purpose as plausible explanatory models of the mind/body theory. Property dualism should be called the ontological physicalism while substance dualism is called ontological dualism. According to ontological physicalists, all concrete existences are physical, but there are some nonphysical properties that remain unreducible to their physical base properties. By contrast, ontological dualists hold that there are two entirely distinct substances, mental and physical substances, in the world. Arises an immediate question. Does this dualism provide a plausible solution to the problem of mental causation? Jaegwon Kim forcefully argues that the ontology of immaterial minds does not help us with mental causation problem. In this paper, first, I will examine the two types of dualism by critically discussing their main claims and what lack to be plausible theories of mind. In so doing, I will try to show that Cartesian dualism is untenable because the mental substance of this dualism lacks a spatial location, which in turn makes it committed to what Kim calls “the paring problem.” To this point, I will provide another important concept “dependency” as a theoretical flaw of Cartesianism. Second, I will look into the supervenience argument as the most serious argument against the property dualism. But, I will conclude that the property dualism remains unharmed. Finally, I will briefly examine a seemingly new concept “Sinchesng (maybe, the property of being body as the union of mind and body)” provided by Dae-Hyun Jung as overcoming problems of dualism by providing three unclarified points shown in his claims in understanding the two concepts of dualism.
6,300원
역학의 학문적 과제는 역도이다. 그리고 역도를 자각하고 천명한 주체는 성인이다. 성인은 자각한 역도를 여러 이치로 해부하는 이해와 이해된 이치를 나열하여 그 의미를 밝히는 설명을 통하여 천명한다. 성인이 역도를 이해하고 설명한 결과는 역경으로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역경 가운데는 이해와 설명을 통하여 밝히고자한 이론 체계가 담겨 있다. 따라서 역학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역학의 이론 체계를 연구하는 것이 선행되어야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역도를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론 체계를 구성하는 논리와 범주가 필요하다. 역도 자체를 일정한 범주를 통하여 구분하고 그것을 일정한 논리에 의하여 구성함으로서 이론 체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학을 연구하는 이해와 설명의 방법을 밝히기 위해서는 이해와 설명의 범주와 논리가 무엇인지를 밝혀야 한다. 역학의 이론 체계는 체용의 구조에 의하여 구성된다. 본체와 작용의 관계는 일원의 관계로 본체는 작용으로 드러나고, 작용은 본체로 수렴된다. 체용적 구조원리의 내용을 표상하는 형식은 삼양원리이다. 삼은 본체 원리를 표상하는 형식이며, 양은 작용원리를 표상하는 형식이다. 삼양원리는 간지도수와 도서상수 및 괘효상수를 통하여 표상된다. 간지도수는 삼양원리를 음양이 합덕된 관점에서 체용을 표상하며, 도서상수는 음양으로 나누어서 체와 용을 표상하며, 괘효상수는 음양이합덕된 관점에서 체용원리를 표상한다. 삼양원리의 내용은 삼극의 도와 삼재의 도이다. 삼극의 도를 음양이 합덕된 관점에서 표상한 것이 간지도수이며, 체와 용을 구분하여 나타낸 것이 도서상수이다. 간지도수와 도서상수에 의하여 표상되는 삼극의 도의 내용은 역수원리이다. 삼재지도는 괘효상수를 통하여 표상되며, 그 내용은 성명의 이치이다.
The Science of Change(易學)’s academic theme is YeogDo(易道). The man who recognizes and reveals YeogDo is a sage. A sage anatomizes recognized YeogDo into several principles and explains the meaning of the principles. The results that sages understand and explain on YeogDo is YeogGyeong(易經) and YeogGyeong possesses the theoretical systems that must be established with logical understanding and explanation. Thus, to study YeogGyeong, to understand theoretical system of YeogGyeong is necessary. To understand and explain YeogGyeong, the logic and category that consist of a theoretical system are needed because YeogGyeong itself is divided into specific categories by regular logics and forms a theoretical system. Thus, to recognize the methods of understanding and explanation to study YeogGyeong, it is important to know what the logic and category of explanation are. The theoretical system of YeogGyeong is composed of the principle of CheYong(體用). The relation between the body and its operation is unitary relation. The body is revealed by its operation and its operation, by the body. The form of indicating the principle of CheYong is a principle of SamYang(三兩). Sam(三) is a symbol for the principle of the body and Yang(兩) is a form to indicate the principle of the body's operation. The principle of SamYang are GanjiDosu(干支度數), DoseoSangsu(圖書象數), and GwaehyoSangsu(卦爻象數). GanjiDosu symbolizes the principle of SamYang in a viewpoint of integrating the Yum(陰) and Yang(陽). DoseoSangsu symbolizes Che(體) and Yong(用) by Yum(陰) and Yang(陽). GwaehyoSangsu symbolizes the principle of CheYong in a viewpoint of integrating the Yum(陰) and Yang(陽). The principle of SamYang is principle of SamJae(三才) and SamGeug(三極). The principle of Yeogsu(曆數) is symbolized the principle of SamGeug by GanjiDosu and DoseoSangsu. The principle of SamJae is symbolized by GwaehyoSangsu and its contents are principles of SeongMyeong.
7,200원
사회 문제와 사회 개선에 열정적인 관심을 가졌던 포퍼는 우리 사회의 미래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역사의 필연성에 달려있다고 보는 역사 법칙주의에 반대한다. 특히 포퍼는 역사의 필연적 발전 과정을 지배하는 사회의 운동 법칙을 밝히고 그 법칙에 의거해서 사회주의 낙원을 예언하고 낙원의 도래를 위한 계급 간의 투쟁과 혁명을 역설했던 마르크스의 역사 법칙주의 사회 이론을 비판의 표적으로 삼는다.이 글은 역사 법칙주의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우선 역사 법칙주의의 여러 유형을 살펴본 다음, 역사 법칙주의의 이론적 기초 역할을 하는 역사 법칙론, 본질주의. 전체주의, 유토피아주의에 대한 포퍼의 비판적 검토를 통해서 역사 법칙주의가 사회 과학의 방법론으로서 지지될 수 없다는 점을 밝히고. 사회 과학이 하나의 학문으로서 발전하고 성과를 올릴 수 있으려면 다른 과학들과 마찬가지로 비판적 합리주의의 노선 위에서 시행착오 방법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Historicism” is an approach to the social sciences which assumes that historical prediction is their principal aim, and which assumes that this aim is attainable by discovering the “rhythms” or “patterns”, the “laws” or the “trends” that underlie the evolution of history.The aim of this article is to give a refutation of Historicism. The argument is as follow: The course of human history is strongly influenced by the growth of human knowledge. We cannot predict, by rational or scientific methods, the future growth of our scientific knowledge. We cannot, therefore, predict the future course of human history. This means that we must reject the possibility of a theoretical history; that is to say, of a historical social science that would correspond to theoretical physics. The fundamental aim of historicist methods is therefore misconceived; and historicism collapses.Every version of historicism expresses the feeling of being swept into the future by irresistible forces.
6,300원
실학, 특히 다산실학은 전체 조선 성리학의 흐름과 무관한 새로운 학문체계인가? 아니면 일정한 한계 안에서나마 조선 성리학의 흐름을 계승하고 있는가? 이 논문은 이러한 물음을 안고 다산실학과 조선 성리학의 관련성을 찾아 떠난 여정이다.우주 혹은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 그대로 인간을 바라보는 주희의 철학체계에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가 내재해 있었다. 즉 그의 철학체계 속에서는 그가 추구하였던 도덕의 필연성을 담보할 수 있는 리理(性)의 가치론적 우선성과 기氣에 대한 리理의 주재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기氣인 마음과 리理인 성性의 근원적 이질성으로 인해 성선性善이 곧 심선心善을 보장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였고, 기질을 악의 근원으로 설정함으로써 악은 후천적 노력에 의해서도 극복 불가능한 것이 되어 버리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는 주자학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이미 주희 당대에 육구연으로부터 시작되어 명대의 왕수인으로 이어졌지만, 그러한 비판은 어디까지나 주희의 철학체계 밖에서 혹은 그 철학체계의 해체를 통해 진행된 것이었다.이러한 외적인 비판과 함께 주희철학 내부에서도 자신의 학적체계에 내재하는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을 수정하려는 움직임이 등장하였다.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 바로 중국에서 등장한 오징吳澄 등의 주륙화회론이고, 조선에서는 퇴계심학과 기호학파의 낙학계열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자학을 수정하려는 움직임은 주로 주자학에 내재해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음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도덕의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것은 결국 리기론 중심의 주자학적 체계를 심성론 중심으로 그 무게중심을 옮겨가는 작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학적 체계를 ‘주자학적 심학’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다산실학이 리기론적 틀을 해체해버리고 마음을 유일한 실체로 인정하는 측면은 그의 철학을 이러한 ‘주자학적 심학’의 정점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있다.
實學, 尤其茶山實學是否獨立於朝鮮性理學之新學術體系? 不然在一定的界限內, 它是否繼承朝鮮性理學的傳統? 從如此的問題意識, 這一論文是以茶山實學與朝鮮性理學之關聯性的解明爲目的. 朱熹哲學是從把握宇宙的觀點來看人以及人之道德. 所以朱熹哲學存在如此的幾個問題. 卽朱熹哲學是不能充分地確保理之價値論的優先性, 以及對氣的理之主宰力. 還有在他的哲學體系裏心是氣, 性只是理而已, 心與性是根源地異質的, 因此發生性善不能保障心善之問題. 再來朱熹認爲以人之氣質爲惡的根源, 所以不能脫離氣質的人又成爲不能克復惡的存在. 對內在於這些問題之朱熹哲學的批判是已經開始於陸九淵, 繼承於王守仁, 然而這些批判都是朱熹哲學體系之外進行的. 除了這些從外來的批判以外, 在朱子學派裏面, 也認識自己哲學體系之問題, 而登場要修正哲學理論之要求. 中國的吳澄等朱陸和會論, 以及朝鮮的退溪心學與畿湖學派的洛學就是這些要求而來的. 這些修正朱熹哲學之要求的主要志向就是在心確保道德之根據, 也是從理氣論爲中心的朱子學體系到心性論中心之變換過程. 所以他們的學術體系叫做‘朱子學的心學’. 而且茶山實學是解體朱子學之理氣論的結構, 而在心性論上建立其理論體系, 又肯定心是唯一的實體. 從這些茶山實學之特性, 我們可以確認茶山哲學之心學的一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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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의 존재사유에서 1930년대 이후 그의 사유를 이끄는 주도어는 ‘발현’이다. 왜냐하면 하이데거 스스로가 그렇게 표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후기 작품 도처에서 발현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이데거의 후기 존재사유는 발현사유라고 지칭될 수 있다. 그런데 발현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발현함’을 통해 해명될 수 있는데, 이때 ‘발현함’이란 발현의 사태관계로서, ‘존재, 인간, 시간, 세계, 사물, 언어’등의 ‘함께 속해 있음(공속)’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함께 속해 있음’은 어떤 ‘동등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함’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각자의 ‘고유함’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존재, 인간, 시간, 세계, 사물, 언어 등등은 각각의 고유함을 유지한 채 서로 서로 속해 있다는 것이다. 이때 이렇게 서로 서로 속해 있는 곳이 바로 발현의 영역이다.그러나 이 발현의 영역에서 발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즉 그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선 주관과 객관의 이분법적인 사유 이전의 근원적인 사태 내지는 사태관계를 말한다. 그래서 발현의 발현함에서는 세계란 단순히 우주 자연, 피조물들의 집합, 존재자의 전체가 아니라, 모든 사물을 사물로서 있을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열린 장’으로서, 모든 것을 모으면서 서로 서로 속해 있게 하고, 그러면서도 각자의 고유한 머무름을 부여하는 ‘만남의 장’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만남의 장과 같은 세계는 사물을 사물로서 사물화한다. 다시 말해 사물을 그 사물로서 고유하게 있게 한다. 따라서 발현의 발현함에서 사물은 자신의 고유한 모습을 상실한 채 부품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회복한 본래의 모습으로 있게 될 수 있다. 그것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발현의 발현함을 통해서만 ‘존재자가 존재한다’는 모든 경이 중의 경이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퓌시스’로서의 자연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이데거의 발현 사유는 하나의 시원적인 사유로서 우리가 앞으로 준비해야할 미래적 사유일 것이다.
Das Ereignis im Seinsdenken Heideggers ist das hchste Wort, das ist das Kernswort im spten Denken Heideggers. Daher das Denken des Seins Heideggers ist das Ereignisdenken.Was ist das Ereignis? Es ist geklrt worden durch das Ereignen. Dabei das Ereignen als das Sach-Verhalt des Ereignis besagt, daß das ist die Zusammengehrigkeit von Seins, Menschen, Zeit, Welt, Dinges, und Sprache. Dennoch die Zusammengehrigkeit hat nicht die Bedeutung der Gleichheit, sondern als die Bedeutung der Selbigkeit sagt die ihrer Eigentlichkeit. So das Sein, der Mensch, die Zeit, die Welt, das Ding, die Sprache gehren zu einander in der Erhaltung der ihrer Eigentlichkeit. Aber die Stelle des Zueinandergehren ist der Bereich des Ereignisses.Und dann, was ist der Sinn des Ereignisses? Es sagt die ursprungliche Sache, d. i. das Sach-Verhalt, das geschiet vor dem Denken von Subjekt und Objekt. Aber im Ereignen des Ereignisses die Welt weltet. Dabei Die Welt dingt das Ding als das Ding und offenbart sich als Bereich des Ereignisses.
5,800원
양명후학은 왕양명 이후부터 청초까지의 양명학 계승자들의 계보를 지칭한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2004년까지 우리나라의 양명후학 연구 현황을 분석하여 양명후학에 대한 연구 특성과 문제점, 그리고 앞으로 지향해야할 연구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 논문의 목적은 순수한 철학적 의리에 관한 논쟁에 있지 않고, 현재까지 연구 현황을 근거로 한편으로는 이러한 연구가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사회적 배경을 이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 적극적으로 연구되지 않은 인물과 분야 및 철학 의리를 소개하여 양명후학 연구를 계통적으로 진행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함에 있다. 유교는 한대 이래 줄곧 중국에서 名敎의 대표적 위치를 차지하였다. 그 중에서도 송명이학의 大宗이었던 주자학은 明代에 이르러 관학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 전통은 청말까지 지속된다. 또 주자학은 조선왕조의 정치적 이념이었다. 이 때문에 주자학 관련 연구는 범중국권과 한국의 유학계를 불문하고 여타 학파의 연구에 비해 지금까지 줄 곳 성황을 이루었다. 비록 연구의 열기가 주자학만은 못하지만, 최근 국내의 연구 현황은 양명학뿐만 아니라 양명후학에 대하여 비교적 적극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추세이다. 1980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하여 1990년대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맞물려 양적으로 크게 증가한다. 그러나 양명후학에 대한 종합적이고 계통적인 연구보다는 어느 한 학파, 혹은 한 학자에 대하여 극히 편중되어 연구되고 있다. 필자는 그 이유를 양명후학의 학술 논쟁과 우리나라의 시대적 상황 변화에서 찾고서, ‘이탁오의 반명교주의와 한국의 시대정신’‘왕용계와 전덕홍의 四無敎와 四有敎 논쟁’‘왕용계의 現成良知와 섭쌍강의 良知歸寂說’‘유즙산의 왕용계와 태주학파에 대한 비평과 문제점’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또 전망과 과제의 주제로 ‘양명후학에서 심체 문제’‘공부 문제’‘광경타파 문제’‘철학과 문학 그리고 종교 및 정치와의 관련을 통한 연구’를 제시하였다.
所謂陽明後學是指從王陽明以後到淸初的繼承陽明哲學之思想家.筆者分析到2004年,在韓國硏究陽明後學之槪況(包括書與學短篇文以及學位論文),而指出陽明後學硏究之特性與問題以及以後硏究之方向.此論文之目的並不在於純粹的哲學義理爭論,乃在於根據到現在之硏究情況,一方面理解硏究之時代的或社會的背景,另一方面介紹未硏究之學派與學者之思想,而導硏究以後陽明後學思想之路道.儒敎是從漢代以來一直佔有中國傳統名敎之地位.其中朱子學之地位與作用更爲突顯.朱子學代表宋明理學的學術思想,它在明初始升爲官學,此傳統持續於淸末.並且朱子學是朝鮮王朝之政治理念.因此無論在汎中華圈或韓國,硏究朱子學之風潮比其他學術思想盛得很.雖然在韓國硏究陽明學之風潮不比朱子學如此盛,但最近的情況始好戰, 比較積極地硏究之趨勢.硏究陽明學者從1980年開始增加,又1990年代在韓國的民主化運動之氣風下,學術硏究之數量爆發地增加.但考察硏究之情況,並不能評爲綜合或系統之硏究.陽明後學之硏究偏於某個學派或學者之思想.筆者把其原因找於陽明後學之學術爭論與當時韓國之時代情神.筆者所指出之硏究題目如下.一爲‘李卓吾的反名敎主義與韓國的時代情神’.二爲‘王龍溪與錢德洪之四無四有爭論’.三爲‘王龍溪的現成良知與聶雙江的良知歸寂說’.四爲‘對於王龍溪與李卓吾的劉蕺山批評之問題’.並且筆者所指出之向後硏究課題如下.一爲‘在陽明後學心體之問題’.二爲‘工夫問題’.三爲‘光景打破問題’.四爲‘透過哲學與文學以及宗敎還有政治之綜合而硏究.’
5,200원
동양인의 깊고도 은근한 사랑의 정신은 墨子에 뿌리를 박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孔子의 ‘仁’의 사상 속에서도 우리는 이미 사랑의 정신을 깊게 인지하였지만 그것은 「墨子」처럼 구체적이고도 적극적인 게 못되었기 때문이다. 墨子는 제자백가 중에서도 난해한 고전 중의 하나로 특히 유학자들 사이에 이단시 되어 오랫동안 그 연구가 끊겼기 때문에 전수되는 과정에서 숱한 訛傳과 錯誤를 낳게 되었다. 또한 墨子는 한나라 이전에는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알 길이 없다. 그러나漢書 藝文志 에 비로소 墨子71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것은 漢代에 劉向(B.C.7~B.C.6)이 秘府의 책들을 교정할 때 정리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劉向에 의해 71편으로 정리되었던 墨子도 시대가 흐름에 따라 18편이 없어지고 53편만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없어진 18편 중 8편의 제명은 전해지고 있으나, 나머지 10편은 제명 마저도 알길이 없다. 墨子가운데 尙賢 尙同 兼愛 非攻 節葬 天志 明鬼 非樂 非儒 非命의 제편은 가장 오래된 것으로, 墨學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墨子 자신이 직접 저술한 것은 아니고 제자들이 후에 墨子의 敎說을 편집한 것으로 추측된다.墨子는 겸애사상의 원천을 天의 속성에 두었다. 天의 덕은 천하의 백성을 두루 밝혀주고, 먹여주며, 공평하게 사랑을 베풀어 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天이 모든 사람들을 두루 공평하게 사랑해 주듯이, 사람들도 서로 ‘너’‘나’의 구별없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天의 뜻(天志)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런 天의 뜻을 거역하면 사람들은 벌을 받게 되고, 반대로 天의 뜻을 실천하면 상을 받게 된다. 그래서 墨子는 사람들이 天을 섬기고, 그의 뜻을 살펴 行하기를 주장하였다. 또한 墨子는 인간과 天의 중간 존재로서 귀신의 존재를 긍정하였다. 墨子에 의하면 귀신은 天으로부터 명령을 받고 天을 대행해서 인간의 행위를 심판하며 상벌을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墨子는 天과 더불어, 天의 뜻을 수행한 귀신도 사람들이 받들어 섬기기를 주장하였다.논자는 ‘겸애’를 주장하는 묵자의 견해를 간략하게 소개한 다음 조선조 유학자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였으며 평가하였는지를 살피면서 아울러 묵자사상의 현대적 의의를 논하고자 한다.
It would be exaggeration to say that the deep and subdued loving spirit of the Orientals is originated from Mo-zi's. Even though Confucius left a profound evidence for the concept of love in his ideology of perfect virtue, Mo-zi's is relatively more concrete and positiveThe core idea of Mo-zi is a 'universal love'. This is evident from an early commentary of Mencius: " Mo-zi's stands for a universal love He will not stop doing for the favor of the world until the very moment he gets bold or his heels have worn thin." When a man falls in a universal love, he will love the other as mush as he loves himself and,then, he will see no distinction between 'you' and 'me' and love with each other first, last and all the. Eventually, there will be neither war, nor social conflict, nor urban ills, but there will come peace and happiness in this world, instead. He found in it a system that plunders Mo-zi's found the origin of his idea about the concurrent love in theattributes of the Heaven. The Heaven is bound to enlighten, feed and love the entire people equally and fairly. As the Heaven does, people themselves, too, should love with each other without discrimination of 'you' and 'me' That is so called the will of the Heaven. Persons who oppose to it will be doomed to punishment, whereas those who are pros will be applauded. Mo-zi's emphasized, thus, to obey the Heaven and to practice its will. About the core idea of Mo-zi, 'universal love' I will examine how scholars of Chosun Dynasty understood and evaluated Mo-zi's significant thought, and what it mean to us today.
5,700원
이름을 중시하는 것은 동북아시아의 오랜 전통이다. 이러한 전통은 바로 이름(名)과 실제(實)의 관계를 논의하는 명실관계의 문제로 귀결된다. 명실관계는 중국고대인들이 사회정치적 혼란을 해결하여 질서를 건립하기 위해 몰두한 문제이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사회혼란의 원인이 이름과 실질이 괴리되어 서로 부합되지 않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명실관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공자는 명(名)으로 실(實)을 바로 잡는 정명론을 제시하였으며, 묵자는 실을 취해서 명을 부여하는 견해를 주장하였고, 노자는 무명론(無名論)을, 공손룡은 명실론 등을 제시하였다. 순자는 이들의 주장을 공자의 정명론을 중심으로 비판적으로 수용 종합하여 실천적인 측면과 논리적인 측면을 모두 집대성한 정명론을 제시한다. 순자는 정명이 사회질서를 실현하는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는 이름을 바로잡아야 하는 목적과 어떻게 이름을 바로잡을 수 있는지, 그리고 이름을 바로잡을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등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탐구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위의 문제를 검토하고, 정명의 문제는 여전히 마음의 인식작용이 잘 발휘되느냐에 달려있다는 점을 지적하려고 한다.
헤겔 『본질 논리학』에 있어 반성규정들에 대한 연구(III-2) - '상이성'에 대한 해석(2)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40집 2006.03 pp.205-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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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헤겔 본질논리학에 있어서 반성규정으로서의 ‘상이성’ 개념에 대한 이해와 해석의 하나이다. 상이성 개념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여기의 논문은 그 두 번째 부분에 대한 것으로 동일성의 규정으로서의 즉자적 반성과 구별의 규정으로서의 외적 반성을 그 주요 내용으로 한다. 구별의 두 계기들, 즉 동일성과 구별 그 자체는 반성의 의미에 있어서는 즉자적 반성이고 외적 반성에 해당한다. 그러나 즉자적 반성으로서의 동일성의 규정은 비교 개념에 있어서는 동등성이며, 외적 반성으로서의 구별의 규정은 부등성이기도 하다. 어떤 것과 다른 어떤 것과의 비교 개념은 그 두 사물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만 언급될 수 있을 따름이며, 따라서 동등성과 부등성은 그 두 사물의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동등성이나 부등성은 어떤 것에도 속하지 않고 다른 어떤 것에도 물론 속하지 않는다. 그 두 사물들에는 해당되지 않는 ‘제3자의 어떠한 관점’에 있어서만 그 사물은 동등하거나 부등한 것이다. 그 때문에 동등성은 외면적인 동일성이며, 부등성은 외면적 구별이기도 하다.
Die vorliegende Arbeit geht von der Frage aus, wie der Begriff “Verschieden-heit” als eine der Reflexionsbestimmungen in der Wesenslogik Hegels zu verstehen und interpretieren ist. Der Aufbau der Arbeit folgt unmittelbar Hegels Text, d.h. es schließen sich an eine wrtliche bersetzung von Hegels Stzen aus dem Deutschen ins Koreanische Anmerkungen und Interpretationen usw. an.Wir knnen Folgendes zusammenfassen: nach der Hegelschen Logik bedeutet die Reflexion an sich die Bestimmung der Identitt, whrend die ußere Reflexion auf den Unterschied zielt. Die zwei Momente des Unterschiedes, Identitt und Unterschied seblst, sind die sogenante Reflexion an sich und die ußere Reflexion im Sinne der Reflexion. Sie gehen also auch ußerlich in Gleichheit und Ungleichheit in Rcksicht auf eine Drittes ber, welches außer den sich vergleichenden Dingen liegt.Der zugleich einfache und doch auch wieder schwierige Zugang zum Verstndnis der Hegelschen Logik ffnet den Blick auf weitere mannigfaltige Probleme.
緣起와 自性의 양립불가능성에 대한 龍樹의 입장 : 說一切有部의 四緣에 대한 龍樹의 비판
범한철학회 범한철학 제40집 2006.03 pp.225-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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緣起說은 불교가 불교일 수 있는 제1근거로서 불교의 가장 중요한 핵심 교리이다. 龍樹(Ngrjuna)는 緣起를 ‘相依’로 해석하여 연기와 자성의 양립 불가능성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이 글은 용수가 연기와 自性을 어떻게 정의하며, 어떠한 논리적 근거에서 연기와 자성이 양립할 수 없다고 하는지를 고찰하고자 하는 것이다.용수는 연기를 ‘A는 B에 의존하고 B는 A에 의존’하는 相依(apek)의 관계로 파악하여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으며, 만들어지지 않는 것”으로 정의한 자성(svabhva) 개념과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모순관계에 있음을 주장하였다. 따라서 자성을 전제한다면 說一切有部(Sarvstivda)가 주장하는 4가지 연(四緣)은 물론 일체의 현상적 존재와 개념적 사유가 성립할 수 없게 된다. 용수는 이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프라상가(prasaga) 논법에 의해 이분화와 딜레마, 무한소급, 운동과 시간의 부정 등 다양한 주제와 방식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취급하는 주제와 방식이 아무리 많을 지라도 결국 그의 비판의 초점은 자성을 상정한 입장에서는 어떠한 학설도, 어떠한 명제도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용수가 자성의 부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하였던 것은 제 요소의 실체성을 空으로 환원시켜버림으로써 실체론적인 사고 그 자체를 지양하는 데 있다. 그 결과 드러나는 것은 우리의 일상적 관행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명칭과 개념은 실재하지 않는 허구에 불과하며, 이를 자각함으로써 비로소 현상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지혜의 눈[반야바라밀]을 갖게 된다.
The purpose of this treatise is that Nāgārjuna will often be seen whether define pratītyasamutpāda and svabhāva however. Why pratītyasamutpāda and svabhāva are incompatible again will often be seen. Nāgārjuna is that grasps pratītyasamutpāda by apekṣā. That is, it grasps as relations of interdependence. Therefore, pratītyasamutpāda and svabhāva are inconsistency relations at each other. It is of which pratītyasamutpāda and svabhāva cannot consist after carrying out the premise of the Realism-viewpoint. Moreover, phenomenon-existence and a view sense-reason cannot be realized, either. Nāgārjuna used prasaṇga, in order to prove this. It is a proof sake about pratītyasamutpāda and svabhāva being contradictory at each other, uses logic of emptiness such as denial of dilemma, infinite-return, movement, and time. If the premise of the svabhāva is carried out after all, no theories and noted titles can be realized It is denial to the substantiality of all existence which Nāgārjuna tended to show conclusively. It is made to return by emptiness, and substantialism-thinking is taken and removed. Consequently, a notional name and actual existence understand fabrication. If this is recognized, it comes to have Spiritual enlightenment which comes to understand a thing with phenomenal fact true as it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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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한국선도의 인간학 중 인성론에 관한 연구이다. 한국선도는 儒佛道 삼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존재해 온 민족의 고유한 문화이다. 한국선도에 관한 기존연구는 주로 역사와 종교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졌다. 그 이유는 한국철학 중 한국선도로 규정할 수 있는 사상적 준거가 부재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선도는 인간론에 있어서 인간과 존재적 근원과의 관계, 인격론, 인성론, 수양론, 인생론, 이상사회론에 관하여 ‘人合一論’, ‘人’, ‘性’, ‘止感調息禁觸’, ‘朝天과天化’, ‘在世理化 弘益人間’ 등의 고유한 인간론적 개념들을 갖고 있다. 한국선도의 인성론은 인간에게 三眞(性命精), 三妄(心氣身), 三途(感息觸)의 세 가지 차원이 공존한다고 본다. 그 중 인간의 본성은 三眞이며, 三眞이 곧 性이다. 한국선도에서 인간은 三途에서 三妄으로, 三妄에서 三眞으로 나아가 궁극의 경지인 과 하나됨을 추구하며, 이를 人合一이라고 한다. 현대의 인간성 회복이란 感息觸에서 오는 18가지의 三途의 현상적인 차원에 의존하지 않고 善心, 淸氣, 厚身의 三妄 차원을 회복하는 것이며, 한국선도에서는 여기서 더 나아가 三眞과 性의 회복이 진정한 인간성 회복이라고 보고 있다. 인간에게 내재하는 三眞의 완전성과 神人合一의 회귀성이 그러한 인간성 회복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The object of this essay is to study Korean Sundo anthropology especially in Treaties of Human Nature. Korean Sundo is Korean traditional culture that had been existed in Korea before the imported religions such as Buddhism, Confucianism, and Taoism. Most of the preceding studies on Korean Sundo had a tendency to focus on the historical and religious aspects since there was no adequate concepts or ideas to study Sundo in Korean philosophy. Korean Sundo has many anthropological concepts such as Shin-il-hap-il theory (Integration of God and human, 人合一論), Shin-in (人), Shin-sung (Divinity 性), Gi-gam·Jo-shik·Geum-chok (stopping feeling, easing breath, restraining touch, 止感·調息·禁觸), Jo-cheon & Chun-wha (one can reach back the original state of being 朝天과亻天化), and Jae-se-e-wha & Hong-ik-in-gan (governing by cosmic order & doing it for the sake of people 在世理化 弘益人間). Trearties of Human Nature in Korean Sundo sees three levels of nature in humans: Three Truths(三眞:性·命·精), Three Falls(三妄:心·氣·身), and Three Ways(三途:感·息·觸). Three Truths, which represents Divinity, is the original human nature and Three Truths means divinity. Korean Sundo aims at combination of God and Human Shin-in-hap-il (人合一) through which people recover the divine nature inside them, and then eventually return to the root of their existence. Finally, the recovery of true human nature in modern times depends on finding Three Truths and Divine Nature insidee human beings. Korean Sundo argues each human can reach the stage of Shin-in-hap-il because he or she was perfectly born with Three Truths and Divine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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