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 특히 다산실학은 전체 조선 성리학의 흐름과 무관한 새로운 학문체계인가? 아니면 일정한 한계 안에서나마 조선 성리학의 흐름을 계승하고 있는가? 이 논문은 이러한 물음을 안고 다산실학과 조선 성리학의 관련성을 찾아 떠난 여정이다.우주 혹은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 그대로 인간을 바라보는 주희의 철학체계에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가 내재해 있었다. 즉 그의 철학체계 속에서는 그가 추구하였던 도덕의 필연성을 담보할 수 있는 리理(性)의 가치론적 우선성과 기氣에 대한 리理의 주재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기氣인 마음과 리理인 성性의 근원적 이질성으로 인해 성선性善이 곧 심선心善을 보장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였고, 기질을 악의 근원으로 설정함으로써 악은 후천적 노력에 의해서도 극복 불가능한 것이 되어 버리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는 주자학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이미 주희 당대에 육구연으로부터 시작되어 명대의 왕수인으로 이어졌지만, 그러한 비판은 어디까지나 주희의 철학체계 밖에서 혹은 그 철학체계의 해체를 통해 진행된 것이었다.이러한 외적인 비판과 함께 주희철학 내부에서도 자신의 학적체계에 내재하는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을 수정하려는 움직임이 등장하였다.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 바로 중국에서 등장한 오징吳澄 등의 주륙화회론이고, 조선에서는 퇴계심학과 기호학파의 낙학계열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자학을 수정하려는 움직임은 주로 주자학에 내재해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음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도덕의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것은 결국 리기론 중심의 주자학적 체계를 심성론 중심으로 그 무게중심을 옮겨가는 작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학적 체계를 ‘주자학적 심학’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다산실학이 리기론적 틀을 해체해버리고 마음을 유일한 실체로 인정하는 측면은 그의 철학을 이러한 ‘주자학적 심학’의 정점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