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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연구 [The Study of the Eastern Classic]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동양고전학회 [The Society of the Eastern Classic]
  • pISSN
    1226-7910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1993 ~ 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유교학
  • 십진분류
    KDC 910 DDC 950
제30집 (13건)
No

文學

1

여말선초 서사시 체재 계승 : <月印釋譜>

신명숙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제30집 2008.03 pp.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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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0원

≪月印釋譜≫는 세조가 수양대군 시절에 지은 ≪釋譜詳節≫과 세종이 지은 ≪月印千江之曲≫의 合編으로, 세조 5년(1459)에 편찬되었다. ≪석보상절≫과 ≪月印千江之曲≫은 산문 문학과 운문 문학 각각의 위치에서 작품성을 갖추고 있지만, 이 두 작품이 조화를 이룸으로써 상층민과 기층민이 모두 향유할 수 있는 형태인 ≪월인석보≫를 생산할 수 있었다.≪월인석보≫는 표면적으로는 개인적 감회, 통치자의 敎化사업, 한글의 실용성과 가치 검토라는 의도에서 편찬되었지만, 이면적으로는 세종이 이루지 못한 개정 사업을 이루려는 세조의 효심과 조선의 불경을 만들고자 한 주체성, 세조 본인의 崇佛의식, 여말선초 서사시 양식의 계승과 완성이라는 의도를 품고 있다.특히, 이야기 ≪석보상절≫, 노래 ≪월인천강지곡≫을, 합편하여 ≪월인석보≫를 완성함으로써 여말선초 서사시 체재를 계승하고, 한국서사시의 특성을 갖춘 일련의 작품에 계보를 형성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여말선초 서사시는 운문과 산문의 조화를 통해 서사 대상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고, 객관적인 태도로, 집단의 자긍심을 일깨우고 총체성 회복을 지향하는 특성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운문과 산문의 결합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월인석보≫는 체재 완성의 과정을 알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두 번째 의미가 있다. 운문과 산문의 조화는, 후대 다시 분할되어 서사시는 서사적 성격의 시가작품으로, 산문은 불교계 국문소설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월인석보≫가 문학사 전개에 일정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는 점에 세 번째 의미가 있다. 이런 까닭에 ≪월인석보≫에 대한 문학적 접근이 보다 충실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2

『眉巖日記』의 글쓰기 방식 일고찰

宋宰鏞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제30집 2008.03 pp.4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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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0원

柳希春의 眉巖日記(보물 제260호, 11책)는 개인의 일상생활사 뿐만 아니라 왕조사회의 상층부에서 國事를 논의한 사실까지 기록한 일기로, 정치경제사회문화역사사상민속어문학적으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그러므로 필자는 여기에 주목하고, 眉巖日記의 글쓰기 방식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았다.眉巖日記를 보면, 柳希春은 매일 시간적 순서 위주로 일기를 썼다. 그리고 私的 事實들의 경우 중요한 일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간명하게 기술한 반면, 國事와 관련된 公的 事實들은 거개가 상세하게 기술하였다.眉巖日記의 글쓰기 방식은 일기문학적 측면과 관련지어 대략 6分할 수 있다. 첫째, 記錄의 철저성과 정확성, 둘째, 客觀的 記述과 主觀的 記述의 混合, 셋째, 反復的 表現과 心境描寫, 넷째, 直喩와 寫實的 描寫, 다섯째, 體驗의 事實性과 情緖的 反應, 여섯째, 眞率한 自己告白 등이다. 柳希春은 일기를 쓸 때 충실하고 정확을 기하였을 뿐만 아니라, 반복적 표현이나 직유 등 수사적 기법을 통해 자신의 심경이나 체험사실을 실감 있게 묘사하였다. 특히 부끄럽고 창피한 일 등 밝힐 수 없는 일까지도 진솔하게 고백하고 있는바, 여타의 일기와는 그 차원이 다르다고 하겠다. 이 같은 기술은 높이 평가된다.眉巖日記는 당시의 모든 면을 총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는바, 16세기의 대표적인 일기라 하겠다. 뿐만 아니라 眉巖日記의 글쓰기 방식은 일기 쓰기의 표본의 하나라 할 수 있다.

3

「춘향전」과 호남적 정서와의 연관성

민미숙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제30집 2008.03 pp.6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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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0원

춘향전연구는 지금까지 대략 200여 편이 있는데 그중 춘향의 행동양식과 관련한 문제제기는 매우 흥미롭다. 춘향의 신분이 기생인 경우에는 합리적인 반면에 퇴기의 딸인 경우에는 비합리적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관념적 유교이념을 기준으로 했을 때 도출되는 평가일 뿐, 오히려 서울경기를 중심으로 한 경판본과 호남을 중심으로 한 완판본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좋은 예가 되고 있다. 즉, 경판본이 서울경기의 사변적 유교윤리이념에 충실한 것처럼 수요층의 정서에 따라 작품의 내용은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완판본의 경우도 호남의 정서가 반영된 것으로 보아야한다는 것이 본고의 논점이다. 호남의 정서는 천혜의 자연적 조건을 갖고 있으면서도 역사적으로는 계속해서 토착세력의 멸망을 겪는 이율배반성을 기저로 하고 있다. 그 위에 기대승의 학풍을 위시로 한 현실주의적 성향을 비롯하여 저항정신도가적 성향비판적 성향 등이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호남적 정서와 춘향전 및 춘향의 성격을 살펴본 결과 춘향은 매우 현실적 인물이며 이는 호남의 실학중심의 현실주의적 성향과 닮아있음을 알 수 있다. 춘향의 죽음을 각오로 한 수절은 호남의 저항정신을, 구원자 역할을 수행하는 이도령은 호남의 민담 가운데 도가적 영웅들을, 작품 전반에 나타나는 희화화를 통한 골계정신 역시 호남의 비판적 성향과 유사함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열녀춘향수절가는 수요층인 호남의 정서를 바탕으로 형성되었으며 그 위에 판소리 문학의 특징인 당대 민중적 정서가 결합되어 보편성을 획득한 것으로 이해된다.

4

《三國演義》與《赤壁歌》之比較

裵仁秀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제30집 2008.03 pp.9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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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0원

한국과 중국은 옛날부터 지리적으로 가깝고 교통이 발달하여 두 나라의 문화、정치、경제 등 각 방면의 교류가 대단히 빈번하였다. 한국은 고대 문자가 있기 전에 이미 중국의 漢字를 빌어 그 사상을 표현해왔다. 특히 신라통일이후 많은 한국유학생과 사신들이 귀국할 때 많은 중국의 文物典籍들을 들여왔고 이후 이것들은 한국의 여러 방면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과 중국의 민간문예의 교류도 활발하였으며, 양국의 민간문학작품 역시 많은 교류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동일 유형의 故事들이 그 배경과 줄거리에 있어 적지 않은 부분이 각자의 입장에서 다르게 표현되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故事의 서술자가 각자의 특성에 맞게 故事의 기본 구조를 변형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특정한 부분을 임의로 첨가하거나 삭제하여 이야기를 더욱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고 대중들로 하여금 더욱 흥취를 느끼게 하는 자기화(본토화) 작업을 시도한 때문이다.

哲學

5

南溪 朴世采의 ‘四端理發 七情氣發’ 이해

김현수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제30집 2008.03 pp.115-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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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0원

朴世采의 四端理發七情氣發說은 16세기 사단칠정논쟁이나, 이황의 호발설 인식에 있어 중요한 단초를 제공해준다. 朱子 이후 남송원대 성리학의 흐름과 이황의 호발설의 관련성을 문제 삼기 때문이다. 우선 박세채가 사단리발칠정기발설에서 중요하게 파악한 것은 朱子語類의 ‘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이 주자의 중요한 사상이라는 점이다. 이를 밝히기 위해 주자 이후 陳淳, 黃과 원대 성리학자인 許謙, 程復心에게서 사단칠정을 리기로 분속시켜 설명하는 경향을 지적했다. 하지만 이는 이황의 호발설 및 16세기 사단칠정논쟁에까지 연관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남송원대 성리학뿐만 아니라 權近의 入學圖說, 鄭之雲의 天命圖처럼 16세기 사단칠정논쟁 전의 조선 성리학에서 이미 사단칠정을 리기로 분속시켜 설명하는 경향이 보이며, 이황 또한 이기호발설을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주자어류의 ‘사단리지발, 칠정기지발’을 내세웠기 때문이다.하지만 박세채는 사단리발칠정기발설에서 사단칠정을 리기로 구분시켜 보는 인식과 호발설을 차별시켜 보고자 했다. 그는 이발/기발에 대해 重한 곳으로 나아가 말한 것이라고 했듯이, 이발을 形狀이나 造化의 일과 같은 ‘사실적실재적’인 측면이 아니라, ‘인식적논리적’ 차원에서 접근했다. 이는 곧 주자 이후 남송원대 성리학의 사단칠정을 리기로 구분시켜 보는 인식은 도덕 실천의 가능 근거를 확보하려는 측면으로 이해해야 하며, 理의 능동성 및 理發의 실재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점이 남송원대의 성리학과 이황의 호발설의 同異라는 것이 박세채의 주장이다.

6

6,700원

신분제는 신분에 따라 사람을 구별하여 통치의 한 도구로 활용한 것이 그 발단이다. 전통적 신분제의 주요 논거는 주역(周易)의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니 건곤(乾坤)이 정해지고, 낮은 것과 높은 것이 이로써 베풀어지니 귀천(貴賤)이 자리를 잡는다.”는 내용이나 논어(論語)의 “군군신신 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의 명분론 등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본래 사회의 위계질서를 전제로 각자가 자신의 본분을 다할 것을 요구한 것이나, 한편으로는 신분차별을 합리화할 수 있는 논거로도 기능할 수 있는 것이었다.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신분차별은 양민(良民)과 천민(賤民), 적자(嫡子)와 서자(庶子)의 차별이었다. 특히 조선사회는 출신문벌(出身門閥) 외에도 출신지역에 의한 차별도 심하였다. 사람들은 출신신분이나 지역에 따라 권리, 의무에 커다란 차별을 받았다. 토지소유, 관직등용의 기회, 군역(軍役)과 납세, 형벌 등 모든 영역에 걸쳐 철저한 차별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신분사회의 확립은 국가의 질서를 유지하고 사회의 안정을 확보하는데 기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가 심해짐에 따라 사회적 갈등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조선후기 실학파의 학인(學人)들은 이러한 사회 모순을 시정하기 위한 신분제 개혁론을 주장하였다. 이들은 양반(兩班)중인(中人)양인(良人)천인(賤人)의 신분주의(身分主義)에 입각한 사회신분을 탈피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초등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각자의 능력에 따라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직업을 선택하는 직분주의(職分主義)에 입각한 사민제도(四民制度)를 확립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통해 만민평등의 이상사회를 꿈꾸었던 것이다.

7

8,800원

폭력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일어나고 인류의 생존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인간이 지적 탐구를 진행해 온 역사는 크게 자연의 재해를 극복하는 것과 생활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 그리고 정신적 심리적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세 분야 가운데 정신적 심리적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것은 바로 인간이 모여서 사회를 이루고 사는 목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글은 폭력의 개념과 그 정의를 알아보고, 한국사회의 사상적 전통인 유학에서 폭력의 개념과 발생원인, 그리고 그 해결방법을 알아보는데 그 목적이 있다. 유학은 폭력의 종류와 폭력의 방지를 위한 개인적 수양과 사회제도의 확립을 위한 기초이념으로 예(禮)를 중시하였다. 유학의 극기복례(克己復禮)는 개인적 사회적 일체의 폭력적 행위를 예방하고 다양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기초적 수양론이다. 이 논문에서는 ‘예’와 중용(中庸)의 개념을 중심으로 대동사회의 실현을 위한 폭력의 판단근거와 예방을 위한 철학적 성찰을 진행하였다. 폭력은 사욕(私欲)이 가장 근원적 원인이며, 폭력의 판단도 ‘예’에 근거한다는 것도 알아보았다. 그리고 중용은 유학의 정신을 대표하는 최고의 가치원리이다. 이 중용은 개인과 단체 그리고 전 인류가 함께 실천해야 할 행위규범이며 내재적 최고 가치임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유학의 ‘예’와 중용의 이념을 오늘의 시정에 맞게 되살린다면 우리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심각한 도덕불감증과 이기적이고 편파적 사고와 행위들을 극복하는데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8

古學ㆍ國學 그리고 尊王攘夷論

이용수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제30집 2008.03 pp.203-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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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0원

다음과 같다. 즉 종래의 주자학에서는 인간과 자연을 ‘理’‘氣’라는 추상적이고 또 관념적인 개념으로서만 설명하려고 했었다. 따라서 인간에 있어서, 純善인 ‘天’의 형상인 ‘성인’을 지향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였다. 그러므로 天과 人은 연속적인 것, 즉 각각의 존재 방식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통일적인 ‘理’로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소라이에 의하면 천은 천, 사람은 사람으로서 각각의 존재근거의 영역이 다르므로 天과 人은 개별적인 것이다. 이런 논리를 그 전의 유학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선왕이 만든’ ‘六經’에 근거하지 않고, 朱子가 이를 재해석한 ‘宋學’에 따랐기 때문이다. ‘육경’은 ‘선왕’(성인)이 직접 만든 것이고 ‘凡人’은 ‘기질불변’이기 때문에 성인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세상을 다스림은, 治者가 선왕의 도를 따름으로써 안정되는 것이다. 또 선왕의 도는 오직 ‘치국안민’의 현실에만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비로소 도덕과 정치는 각각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물론 소라이도 치자가 도덕적 수양을 쌓는 것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그 근거는 ‘天理’가 아니라 ‘安民’에 두었다. 즉 소라이는 진사이에게서 싹이 보이기 시작했던 人道와 天道의 구분을 더욱 확연히 함으로써, 사람에게서는 하늘에 속박되지 않는 개성의 확장을 제공하고攀 이는 ‘天地도 活物이고, 사람도 活物이다’이라는 소라이의 말이 뒷받침한다[荻生徠, 徠先生問答書 上(日本倫理彙編, 古學派の部 上 六), 153쪽(原文 和漢混用)].攀攀, 하늘에 있어서는 ‘선왕’이라는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만물의 존재근거로서의 자격을 부여한 것이다. ‘天’과 ‘人’에 대한 이러한 그의 인식은, 토쿠가와 시대가 정치적인 면에 있어서 진일보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 것으로 보아도 크게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文化

9

婚姻에 나타난 儒家的 特性

曺南貞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제30집 2008.03 pp.241-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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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0원

혼인은 일종의 사회 질서이다. 원시 공동체에서 사유제사회로 변화함에 따라 亂婚에서 진일보하여 일부일처제가 성립되었다. 이것은 새로운 사회 제도의 성립으로 인해 안정된 사회질서 유지를 요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짝을 지어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새로운 탄생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그 가정을 화목하고 평안하게 이끌어 갈 남녀 공동의 노력과 책임이 뒤따르게 된다. 그러므로 가정 속에서 서로 도와서 생활 하는 가운데 개인의 인격을 서로 보완하고, 나아가 자기완성의 기틀로 삼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입장에서는 개개인의 자기완성을 통해 사회질서를 안정되게 유지할 수 있는 바탕이 성립된다.예부터 유가에서는 의례를 시대적 변화에 맞게 조정하여 시행해왔다. 그러나 그 근거에 깃들여 있는 예의 보편적 근본 원리는 잊지 않도록 했다. 따라서 유교적 의례인 혼인례 또한 시행되기 시작했던 시점으로부터 시대는 변화했지만 그 속에 내재된 근본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다만 그 시행이 고금의 발전에 따라 변화해왔을 뿐이다. 현재 혼인례는 서구식과 우리전통과 중국의 것이 섞여 올바른 의례를 행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있으며, 그 의미 또한 허례허식에 치우쳐 되새기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혼인의 근본 의미를 이해해야만 그 의례절차 또한 시대와 사회적 문화배경, 경제적 차이 등에 따라 알맞게 조정 가능하다. 적합하게 제정한 의례 속에는 남녀가 부부가 됨에 서로 공경하고 화합하여 원만한 가정을 이루어 나갈 것을 맹세하는 정신적 가치가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정신적 가치를 정립하여 가정이 건전해질 때 비로소 사회의 질서가 올바르게 유지 될 수 있다. 修身齊家가 바로 이것이다. 이렇듯 원만한 가정을 유지하는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 혼인에 내재된 철학적 의미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Confucianist characteristic in marriage / Cho, nam-jeongMarriage is a kind of order. As primitive community changes to private property system, it has been established stepping forward from promiscuity. It means new stabilized social order was required by setting up new social system. It's a kind of new birth which means making family combinating between a man and a woman And cooperated effort and responsibility should be followed while they make peace for their family. The perfection of self can be accomplished helping each other and making up their personality in their family. In case of society, social order can be maintained by the perfection of self. In the past, Confucianist controlled propriety based on the change of age. But the fundamental principle was not gone out of their head. Thus, the inner fundamental meaning of marriage propriety should not changed even though the age was changed from the time which it started. The only thing changed was operation of propriety as all ages develope. Currently, the propriety of marriage can be performed mixing up with all of different ways from western's, ours and china's. Also, the meaning is being faded with empty formalities and vanity.The procedure of propriety can be also controlled based on the age, social background and the difference of finance when we understand the fundamental meaning of marriage which is disregarded. In well-established propriety for marriage, the spiritual value which means respect and harmony should be inherent in it. Social order can only be maintained when the spiritual value is established and our family can be healthy. In this paper, the philosophical meaning for marriage is renewed to find out the alternative which is maintaining harmonious family.

10

유교의 禮 정신이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윤리에 주는 함의

이근용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제30집 2008.03 pp.261-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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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0원

이 연구는 유교의 예 정신이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윤리에 주는 함의를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인터넷은 현재 기존 커뮤니케이션 형태를 수렴하면서 다감각의 미디어로서 인간 커뮤니케이션 확장에 여러 가지 가능성을 던져주는 한편으로, 음란물 유통, 프라이버시 침해, 허위사실 유포 등과 같은 부작용도 낳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에서도 윤리와 규범이 정립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각 국은 인터넷 미디어의 가능성을 살리면서 자율적으로 윤리가 정립되도록 유도하는 경향을 보이며 최소한의 필요한 규제를 가하고 있다. 유교의 예는 형식과 절차 못지않게 인, 충서, 공경, 절제 등의 그 속에 담긴 정신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유교의 예 정신과 예가 성립되고 변해 온 과정들은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윤리 정립에 틀을 지어주는 하나의 지침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은 이전의 다른 커뮤니케이션 형태보다 커뮤니케이션 이념을 구현할 가능성을 확대해 준다는 점에서, 유교의 예가 담고 있는 본질이나 정신이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윤리가 필요한 상황에 일정한 함의를 준다고 보았다.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은 한정된 범위의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도 있지만, 일단은 인터넷이 들어가 있는 곳이면 어디의 누구와도 그리고 모든 사람들과 동시에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한다. 유교의 예는 개인과 사회 및 천인관계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범위의 무한성을 특징으로 하는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이 이 시대에 맞는 예 정신을 새롭게 구현해 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하겠다.

11

李尙迪과 <歲寒圖> 관람 淸朝 인사 19인의 교유

鄭後洙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제30집 2008.03 pp.293-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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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秋史 金正喜가 1844년 李尙迪에게 그려준 <세한도>를 소재로 한 논문이다. 이 글의 목적은, 당시 제주도에 유배 중이었던 김정희가 보내준 이 그림을 북경에 가지고 가서 題贊을 받아온 이상적의 의도가 무엇인지 밝히고자 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이를 위해 우선 <세한도>를 관람한 19인에 대한 履歷 및 李尙迪과 이들의 교유관계를 살펴보았다. 본문에서 살핀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19인의 연령대는 20대부터 60대에 걸쳐 있으며, 대부분의 人士가 江蘇省을 중심으로 한 동일지역 출신이다. 또한 대부분의 人士가 科擧 及第者인 進士와 그에 버금가는 擧人으로 最高 知識人이었다. 이들 중 <세한도> 관람 이전부터 李尙迪과 교류를 가진 인사는 5인이며, 그중에서 吳贊과 張曜孫이 가장 밀접한 교유가 있었다. 따라서 <세한도> 관람의 周旋은 이 두 사람이 주도했을 것이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세한도>를 감상한 구성원들은 江蘇省을 중심으로 하는 지식인 계층이었으며, <세한도> 관람 모임은 이상적과 일찍부터 교유가 있었던 오찬과 장요손에 의해 주도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강소성 중에서도 이 모임의 주선자 장요손의 출신지인 陽湖 지방 출신이 많았으며, 그들이 중심이 된 陽湖學派 구성원들의 모임이란 성격이 짙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12

秋史 書法正統觀의 筆法的 考察

金熙政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제30집 2008.03 pp.319-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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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가 완당전집 여러 곳에서 누누이 언급한 예서와 육조비, 종요삭정왕희지, 그리고 구양순과 저수량이라는 서법정통 계승의 키워드를 접하면서 이른바 ‘추사체’라고 하는 그의 서체풍격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직각(直覺)하고, 그의 서풍이 어떤 의식을 배경으로 형성되었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그래서 서풍형성의 관건(關鍵)인 필법을 단서(端緖)로 추사의 서예를 파악해 보았다. 추사체의 형태특징은 대략 고졸(古拙)하면서 창경(蒼勁)한 필획과 글자의 외곽선이 중심으로 끌려 들어와 수렴(垂簾)되는 꼴이다. 추사가 서법의 종장(宗長)으로 여기고 있는 왕희지 서법의 형성배경을 이루고 있는 예서와 육조의 비판(碑版)서예 그리고 왕희지 서법의 정수를 전수한 구양순체의 서법특징도 대개 외곽의 윤곽선이 안으로 끌려 들어온 모양으로 추사서예의 특징과 유사하다. 이러한 특징들은 대개 내엽(內)의 필법에 의해서 형성된다. 따라서 추사가 서법의 정통으로 여기던 글꼴은 내엽의 필법으로 쓰여 진 것임을 알 수 있다.또 왕희지 서법에 집착한 이유는 그가 남파(南派)에 속하면서 북파(北派)의 유풍을 지녔기 때문인데, 이는 추사 자신이 이미 익숙한 첩학서예의 필법과 비학서예의 형상과 기운을 융합하고자 노력했던 이상점에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이미 익숙해진 남파의 서법에 북파의 유풍을 간직한 육조의 비판과 남북서파가 나누어지기 이전의 서체인 예서를 통해 왕희지의 원형을 회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자신의 신분인 유인(儒人)으로서, 문인(文人)으로서 나를 속이지 않는(不欺心) 인격수양을 통한 성(誠)을 독실하게 실천하고자 했던 그의 이상실현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13

東洋古典學會 彙報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제30집 2008.03 pp.339-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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