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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연구 [The Study of the Eastern Classic]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동양고전학회 [The Society of the Eastern Classic]
  • pISSN
    1226-7910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1993 ~ 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유교학
  • 십진분류
    KDC 910 DDC 950
제42집 (13건)
No

企劃論文 : 한국의 향교(II) : 향교의 이상과 미래

1

향교설립 이전의 유가경전 수용과 교육현황

朴載福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제42집 2011.03 pp.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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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원

대부분의 기존 향교지에서는 고려시기 향교가 정식으로 설립된 이후의 내용들을 주요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전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한반도 전역에서 고고학적으로 출토되는 목간과 같은 문자자료들이 다량으로 발견되었고, 고려이전의 교육제도에 관한 연구도 상당히 진척되었다. 특히 유가경전과 관련된 자료들이 발견됨으로써 고대 동아시아에서 한자의 전파는 물론 유가사상의 전래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교육현황에 대해서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따라서 역대 교육제도 내에서 향교의 위상을 재정립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조선시대의 ‘鄕校’는 고려 때 중국에서 유입된 ‘鄕學’을 계승하여 지방에 설립된 교육기관으로, 중국의 고대 문헌에서 그 어원을 찾아 볼 수 있다. 문헌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夏나라에는 ‘가르치다(敎)’라는 의미의 ‘校’, 殷나라에는 ‘기르다(養)’라는 의미의 ‘庠’, 周나라에는 ‘활쏘다(射)’라는 의미의 ‘序’라는 향교가 존재하였고, ‘鄉校’라는 명칭은 󰡔左傳󰡕 襄公31年(기원전 542년)조에 처음 등장하는데, 당시 향교를 없애려고 한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기원전 108년에 漢四郡이 설치되어 한나라의 영향권에 들게 되면서 중국의 교육제도도 한반도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였다. 특히 낙랑지역에서 출토된 󰡔論語󰡕竹簡과 ‘樂浪禮官’이란 와당 및 한나라의 교육제도에 의거하면, 낙랑에 이미 鄕學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삼국 중에서는 고구려가 가장 먼저 중국의 교육제도를 받아들어 중앙에는 太學을 설치하고 지방에는 扃堂을 세웠으며, 유가경전뿐만 아니라 역사서와 자전을 주로 강독하였다. 백제의 학교에 관한 자료가 없고 교육제도에 관한 기록도 간략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고구려와 같이 중앙에는 太學을 설치하여 博士를 두었으며, 중국 남조와 활발히 교류를 하였고 일본의 교육제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신라는 적어도 5-6세기에는 한자사용이 보편화 되었으며, 초기의 교육은 유목문화에 유래된 화랑제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점차 당나라와 교류가 빈번해지자 인재를 선발해 당나라에 유학을 보내 선진문화를 받아 들였고, 神文王 2년(682년)에는 당나라의 교육제도를 도입하여 國學을 설립하게 되었다. 이와같이 본고는 선행연구들이 전래문헌에 국한된 한계를 극복하고, 최근 고고학적으로 출토되는 문자자료와 전래문헌을 종합적으로 검토함으로써 고려 때 향교가 정식으로 설립되기 이전에도 한반도에 그 명칭과 성격에 차이가 있기는 하였지만 후대의 향교와 같은 교육기관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Most of existing the study have been briefly remarked Hyanggyo before Koryŏ. Because it was formally established during Koryŏ, and they have been concerned it after the period. Recently text such as archaeologically excavated the wooden tablets was many found in Korea. Owing to it the study of educational institute before Koryŏ has been considerable advanced. Text closely related to classics. It make researchers understand spread of the chinese character, introduce of confucianism and state of education at that time. Therefore I think to need to reorganize the local school in educational history. Hyanggyo was established in local during Koryŏ, which inherited Hyanghark(鄕學) and derived a word from ancient text in China. Though the word was some different from text, mostly it mean an instruction(校) in Xia dynasty, nurture(庠) in Shang Dynasty and to shoot an arrow(序) in Zhou Dynasty. The term of Hyanggyo appeared in 󰡔左傳󰡕襄公 31(542 B.C) for the first time. That was the content to abolish Hyanghark. It had been long exist. In 108 B.C the Four Commanderies of Han(漢四郡) was set up by Han Dynasty in Korean territories, and educational institute of China has an effect on Korea. Specially Bamboo Analects(󰡔論語󰡕竹簡) and Wadang(瓦當) were excavated in Nakrang. Because of artifact I found that Hyanghark had been already exist in Nakrang. Among Three Kingdoms, Koguryo was earlier adopted educational system, and established Taixue(太學) in center, Gyeongdang(扃堂) in local, which was not only read classics, but also history and dictionary. Baekje was not materials of school, but was a brief record of educational system. Baekje set up Taixue(太學) and doctor in capital. Baekje tie with South Dynasty in China and had an effect on education in Japan. Silla was generalized using Chinese character between 5 and 6 century, early education was derived from Hwarangdo(花郞道). After Silla had been gradually frequent T'ang in China, they sent students to T'ang and received an advanced cultural from there. In 682, Sinmunwang(神文王) established Imperial university school which introduced into T'ang. I will overcome the limitation of existing the study. I will look over both extant text and artifact which recently excavated. Although Hyanggyo made a difference between term and nature before Koryŏ, I will confirm that educational system such as Hyanggyo remain in antiquity.

2

향교의 현대적 활용방안 모색

이미림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제42집 2011.03 pp.3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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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0원

향교는 오늘날 단순한 유교문화의 전통으로만 인식되고 있다. 현대사회에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죽어 있는 향교를 어떻게 다시 세울것인가의 문제는 부단한 노력이 요구된다. 전통문화의 재건이라는 측면에서 향교의 부활을 논의하는 것은 의미있는 작업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 시점에서 전통 그대로의 부활을 주창할 경우, 현대사회에서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그대로 남게 된다. 따라서 오늘날 향교의 발전방향을 논의하고자 한다면, ‘전통문화의 재건’이라는 하나의 키워드에 접근하는 방법이 다양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의 방법론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현대 사회학의 ‘여가’개념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생활의 질을 추구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일보다는 여가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추세이다. 이런 시대적 흐름을 잘 짚어 낸다면, 향교가 지역문화의 거점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교육문제와 함께 삶의 질의 문제를 같이 생각해 볼 때 향교가 충분히 지역 거점문화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향교의 지역사회 문화중심으로서의 사회적 역할 등을 생각해 볼 때 ‘놀이’, 즉 재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사회학의 ‘여가’개념을 도입하는 것이 중요하며, 여가개념의 ‘놀이’에 교육을 더하는 방법으로 ‘여가적 교육’의 개념을 향교의 현대적 발전모델로서 제시해 볼 수 있는 것이다.

Hyanggyo(local school annexed to the Confucian shrine, 鄕校) is just recognized as a simple Confucian's culture today. Much effort is required ceaselessly to rebuild hyanggyo of which functions are not fulfilled and dormant in this modern society. It is a meaningful work to make hyanggyo revitalized as an aspect of rebuilding of a traditional culture but it is still remained how much persuasion will be in effect, in case what the tradition was is restored at this point. Then to discuss development of hyanggyo today, the method ought to be various to approach the key word, restoration of a traditional culture. So a proposing method is to introduce the leisure concept of modern society. Because modern society is the period of seeking the quality of life, it is a trend that those who are pursuing the meaning of life in leisure are increasing. Well knowing with the trend of the flow of this generation, hyanggyo will be restored. For it can be shown that hyanggyo is useful enough as a positional place for local culture, considering the matters of the quality of life with the educational problem. When reflecting the social roles of hyanggyo in local society, it is no use of thinking without the play, that is, amusement. That is why it is important to introduce the leisure concept of modern society and it is possible to propose the educational concept of leisure as a modern developmental method of hyanggyo with adding the play of leisure concept with education

3

소악루 이유 시가의 소통지향성과 담화 특성

최은숙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제42집 2011.03 pp.5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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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0원

본고는 이유(李渘, 1675~1753) 시가의 창작 및 전승 기반을 살피고, 그의 작품을 담화양상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한 논문이다. 이를 위해 이유의 시가가 왜 소통의 시각에서 분석되어야 하는가, 구체적인 소통의 양상은 어떠한가, 그리고 그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를 진행하였다. 먼저 이유 시가의 창작기반과 작품이 실려 있는 󰡔고시헌철󰡕의 성격을 살필 때, 이유는 시가를 소통의 틀로 이해하고 시가를 통해 당대와 소통하고자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로써 이유는 시가작품을 주체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성 즉 상호주관성을 나타내는 징표로 이해하고 있음을 논의하였다. 다음으로 이유 시가에 나타난 소통의 구체적 양상을 살펴 보았다. 이를 위해 이유의 시가작품을 화자를 중심으로 화자와 작중인물, 화자와 시적대상, 화자와 청자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유 시가의 담화 특성을 분석해 보고, 그 의미를 도출하였다. 이유의 시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다수의 작중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다수의 작중인물이란, 전체적으로 담화를 이끌어가는 화자는 단일하지만 다수의 작중인물이 등장하여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양상이다. 이러한 양상은 대화체로 담화가 구현된다는 특징이 있다. 다수의 작중인물을 통해 화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 타인과의 소통이 자기 이해의 전제로 작용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유 시가에 나타난 담화 특성을 화자와 시적 대상과의 거리를 통해 확인해 보았다. 이를 위해 이유의 시가텍스트 중 <망미인가>와 <충효가>를 주목해 보았다. <망미인가>에서 화자는 지속적인 소통 의지와 좌절 그리고 새로운 의지의 반복으로 시적대상과의 거리를 무화시키려는 노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시적 대상과의 현실적 거리가 멀어 질수록 소통의 욕구와 의지는 더 강렬해짐을 확인하였다. <충효가>에서도 화자는 시가를 통해 가족 안의 관계성과 소통의지를 드러내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충효가>는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고착된 위계에의 파괴를 발견하고 가족의 관계성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텍스트에 나타난 화자와 청자의 관계에 관한 탐구를 통해 텍스트의 소통지향성을 확인하였다. 이유 시가에서 ‘청자’는 실제 독자를 겨냥한 것으로 적극적 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배려는 일상적인 용어와 감성에 호소하는 시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이유의 시가가 타자의 언어로 말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타자와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청자에 대한 배려는 궁극적으로 타자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다. 이로써 텍스트는 독자를 작품과 소통하게 하는 동시에 작품을 매개로 인간들 상호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이유의 시가작품은 당대 널리 창작되었던 여타 시가의 유형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시작품을 텍스트가 지닌 미적 독자성을 기준으로 이해하면 작품 이해에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왜 그의 시가작품이 당대 필사되어 전승될 수 있었는가에 주목하였다. 그 결과 남겨진 시가작품들이 당대 시가 연행의 장에서 소통 지향성을 인정받았음을 확인하였고, 텍스트의 구체적 담화양상을 분석하여 소통의 구체적 양상을 논의하였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이유의 시가 작품에서 ‘자기인정과 이해-대상과의 소통의지-타인의 이해’라는 일련의 소통 양상과 지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로써 본고는 이유 시가에 대한 보다 세밀한 접근을 시도하였으며, 그의 시가 작품 전반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해 내는 틀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일정한 의의를 가질 수 있다.

This paper examined creation and traditional types of poetry of Lee Yu(李渘, 1675~1753) and analyzed his literary works from the standpoint of discourse aspects. For that, in this paper, discussion was made about why his works must be analyzed from the communicative viewpoint, what the concrete communicative aspect is and what it means. The works of Lee Yu's poetry are characterized by corporeality. So, if we try to understand his trial work on the basis of aesthetic peculiarity the text contains, we may face a certain limit in understanding his work. Accordingly, this paper paid attention to why his poetic works can be transcribed and handed down at that time. As a result, it was confirmed that the remaining poetic works were recognized in their communicative orientation in the poetry in that day, concrete discourse aspects of the text were analyzed and concrete communicative aspects were discussed. Through above discussions, a series of communicative aspects and directivity of 'self recognition and understanding-communicative desire with the subject-other's understanding' was confirmed in Lee Yu's poetic works. Like this, an attempt to closely examine Lee Yu's poetry was made, and this paper is significant in that it has proposed a framework enabling newly interpreting overall meaning of his poetic works.

一般論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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吾堂 姜東曦의 實事的 삶과 시세계

김규선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제42집 2011.03 pp.8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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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0원

오당(吾堂) 강동희(姜東曦, 1886~1963)는 개화기로부터 남북 분단의 시기를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시문과 서화에 뛰어난 예술가였고 시무(時務)에도 밝았던 사업가였다. 그는 호남삼걸의 한 사람이었던 석정 이정직(1841~1910)의 문하생이었고, 위당 정인보⋅현산 이현규⋅석전 박한영을 비롯한 당대 명사들과 교류하기도 하였다. 그는 대한제국 때의 실학자이자 애국지사였던 해학(海鶴) 이기(李沂)의 시문집인 󰡔해학유서󰡕를 수집하여 출간을 주선하기도 하였다. 오당은 어려웠던 문화계 인사들을 위해 후원하면서 패트론 역할을 하였다. 그는 1925년에 간척사업에 뛰어들어 東津水利組合의 책임자로서 호남평야의 광활한 땅을 대대적으로 간척하여 새로운 옥토를 조성하였다. 하지만 그는 그것에 적극 참여하면서 조선총독부의 참의원을 지냈고 오늘날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는 오명을 남기고 있다. 그의 시문집인 󰡔超然齋未定藁󰡕에는 405제 616수의 한시가 실려 있다. 시작품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그가 일제강점기, 8⋅15광복과 6⋅25전쟁, 그리고 4․19학생혁명과 5․16군사혁명과 같은 역사적 변동에서 느꼈던 자신의 내면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민족의식이나 망국민으로서 느끼는 불편한 내면을 시로 담거나 질곡에 허덕이는 민초들의 힘든 삶을 형상화하기도 하였다. 이 중에는 국권 회복의 의지를 담은 작품도 있다. 하지만 시작품에서와는 달리, 그의 친일을 둘러싼 의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는 의문이 든다. 한편, 이외에도 젊은 시절에 지었던 작품들 중에는 자연이나 사물과의 교감을 내용으로 하는 시들이 있다. 그러나 그는 나이가 들수록 자연에 대한 미감보다는 현실에 대한 시름이나 근심을 담고 있는 작품들이 증가하는 특징이 있다.

Odang Gang Dong-Hee is a person who lived from the time of enlightenment through the time of division of the country into the South and the North. He was an artist who was excellent in poetry and prose as well as paintings and calligraphic works and also had a head for current affairs. He was a pupil of Seokjeong Lee Jeong-Jik and interacted with prominent figure of the time including Damwon Jeong In-Bo, Hyeonsan Lee Hyeon-Gyu and Seokjeon Park Han-Yeong. He arranged the publication of 󰡔Haehakyuseo󰡕 which is a collection of the works of Haehak who was a patriot and he supported people who had difficulties and served the role of patrons during the Japanese ruling era. He made an entrance onto a reclamation project and reclaimed a wide land in the Honam plain as a manager of practical works of Dongjin irrigation association to form a new fertile land. However, with the achievement, he served as a member of the upper house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which disgraced his name to be included in the pro-Japanese biographical dictionary today. His garland 󰡔Choyeonjaemijeonggo󰡕 contained 616 Chinese poems under 405 titles. The most notable things of the garland is that the poems contain his inner side he felt during the historical period of upheaval. He contained the dark inner side of ruined people or embodied the hard life of the grass-roots who struggled in ordeals. Among these poems, there are works that contain the will of the revival of our nation to be achieved by our people with one accord. However, unlike his works of poems, it is doubtful how the suspicion about him surrounding his pro-Japanese past should be interpre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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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平九傳」硏究

柳權錫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제42집 2011.03 pp.118-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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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00원

鄭平九는 諧謔이 담긴 이야기의 生産者이며 異人的인 행동을 한 것으로 有名하다. 이런 정평구의 독특한 삶을 다룬 人物傳이 近代 儒學者였던 宋基冕의 文集에 실려 있다. 정평구에 관한 이야기는 野談에서도 발견되는데, 「정평구전」이 지어진 시기가 󰡔구비문학대계󰡕보다 앞선다는 점에서 다양한 문헌들에 존재하는 이야기들을 수용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또한 허구적인 내용들이 가미되어 있지만 유학자의 가치관과 배치되는 비현실적인 내용들은 제외시키고 있으며 최대한 인물전의 기술 방식에 부합되도록 간략하게 제시하고 있음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인물전은 褒貶意識을 基底로 하여 일정한 樣式的 특징을 固守해 왔는데, 「鄭平九傳」의 전개 방식을 分析해 본 결과 導入部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들은 잘 갖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서두부에 해당하는 입전취지가 논찬부에 나타나 있는 것과 활약에 해당하는 행적부분 전체가 일화를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는 것이 매우 異例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평구전」에는 전반적으로 좌절된 삶에 대한 悔恨의 정서와 批判意識이 내재되어 있다. 이는 능력은 있으나 가난하고 낮은 문벌로 태어나 重用되지 못한 데서 오는 안타까움에서 기인된 것이다. 이러한 유재의 爲政者에 대한 비판의식은 그가 지은 詩와 賦, 書에도 확인된다.

Jung Pyeong-gu is the author of humorous stories but also he is well known for his distinguished conduct. A biography which tells of his colorful life is contained in an anthology by the modern Confucian scholar, Song Ki-myeon. Generally, a biography follows specific literary conventions, mixing both praise and censure, and furthermore the biography of 'Jung Pyeong-gu' is also well formalized as a result of its stories serving an instructional purpose. All of his activities in the highlighted part are described in nine anecdotes, though these are only considered to be the exceptional cases. The anecdotes are based on fictitious stories and use writing materials from the modern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even though 'Jung Pyeong-gu' lived during the middle period of this dynasty. Somewhat paradoxically, he is a Confucian scholar with strong feudal values though his attitude tends to be critical towards politicians. According to an analysis of the nine anecdotes, 'Jung Pyeong-gu' demonstrates his special skills with humor and jokes. The biography of 'Jung Pyeong-gu' also has a significant tragic allegory about an unjust social system that discriminates against people who are poor or come from the lower orders even though they are capable individuals. Thus the incompetence of the hierarchy is connected to the tragedy of the poor. 'Youjae Song Ki-myeon' was intended to awaken the social conscience of politicians and convey moral lessons to future generations in accordance with the principles enshrined in the biography of 'Jung Pyeong-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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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전이야기 연행과 공동체 경계의 재구성

김영희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제42집 2011.03 pp.139-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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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00원

구전이야기(oral-narrative)의 연행은 공동체(community)를 근간으로 이루어진다. 공동체의 가치와 규범을 전수하고 이를 통해 공동체를 유지⋅존속하는 것이 연행 동기의 핵심부를 구성하며, 연행 주체는 연행(performance)을 통해 집단적 정체성을 수행(遂行)한다. 집단적 동일성에 기반한 정체성의 시나리오가 구전이야기의 서사적 뼈대를 구성한다면 구전이야기의 연행은 전(前) 존재로서는 죽고[단절 내지는 절연] 공동체가 승인하는 존재로 거듭나는[재생 내지는 재접속] 입사식의 장면을 연출[기능적이고 상징적인 계승]한다. 연행 주체는 구전이야기 연행에 참여함으로써 공동체의 규범과 가치를 내면화하고 동질화 요구에 자발적으로 굴복하는 동화와 순응의 주체화(subjectivation) 과정을 수행케 되는 것이다. 구전이야기의 연행이 정체성을 수행하는 과정이고 이와 같은 수행의 반복적 실행이 공동체 성원 중의 일인을 구성하는 과정이라면, 구전이야기 연행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구전이야기 연행을 통해 형성되는 주체는 구전이야기 연행이 세운 공동체 경계 내부의 일인(一人)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공동체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를 세움으로써 연행 주체로 하여금 스스로를 경계 내부로 귀속시키고 이에 안주하게 만드는 이야기 연행의 효과와 작용, 곧 ‘이야기의 힘’을 발견하게 된다. 이 글에서는 ‘남성’ 동성 집단 내 구전이야기의 연행이 가문, 계층, 지역 등을 근거로 공동체를 구성함으로써 집단적 동일성에 통합되거나 집단적 유대감으로 결속하는, ‘남성’의 주체화 여정을 분석한다. 가문과 계층과 지역이라는 서로 다른 공동체 구성 요인은 ‘남성 동성 집단’의 연행을 통해 상호 경합하면서 다원적이고 다중적인 복수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간다. 이때 ‘가문’과 ‘계층’과 ‘지역’은 서로 겹치거나 충돌하는데, 이들 세 요인이 다함께 공동체 구성의 구심적 요인으로 작용할 때 구전이야기 연행은 지배 담론의 기획을 벗어난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예고하기도 한다. 일종의 준공공영역으로서 구전이야기 연행의 장은 공동체의 경계를 세워 안과 밖을 구분함으로써 집단적 동일성에 동화된 주체를 구성하는, 일상적인 정치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장에서 지배 담론의 기획과 전략만이 전일적으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일상 생활 세계의 예측 불가능성과 구술 담화의 다성성(多聲性)이 이 기획과 전략에 일정한 균열을 만들기 때문이다. 집단적 동질화의 기획이 비껴가는 지점, 바로 정체성의 정치가 의도한 바를 완전히 실현하지 못하는 틈새의 영역에서 폐쇄적 공동체의 해체와 함께 새로운 공동체 경계 구성의 징후가 발견된다.

This study is intended to analyze performance of the oral-narrative re-constructing the border of community. According to the point of view of looking upon a locutionary act as a performance with social and powerful effects, oral-narrative performances are also to be interpreted as perlocutionary and performative acts. If the oral-narratives constitute scenarios indicating specific social identities concerning with various communities and its performance implies symptoms of the gendered. For example, performing the oral-narrative is the processes of enacting the gender-identity of male or female and the performative mechanism is the matrix which produces the gendered subject. Furthermore, when the performances of some oral-narratives present the structure having an effect of initiation into a society, they work on individual performers as a normalization system based on the criterion and standard of social homogenization. Especially the performance of oral-narrative in the men's homo-society has the male subject himself to exclude the individualized factors that disturb a group unity and can't be recognized by a homo-society, out of the boundary of social homogenization, so that he can join in the masculine and paternalistic community and may fulfill his initiation into a society. The performance of oral-narrative in the men's homo-society constitutes male's communities pivoting around family, class and locality for the unity. This presents the process of male's subjectivation. On the other hand factors composing male's communities, as family, class and locality compete and conflict sometimes to construct the borders of pluralistic and plural communities. So symptoms of cleavage and escape, de-constructing borders of male's communities are revea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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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宣王과 麗蒙 관계 ― 배경적 요인들을 중심으로

안외순, 뱜바수렝 얼즈자르갈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제42집 2011.03 pp.199-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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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00원

이 연구는 고려시대 충선왕(忠宣王)의 생애에 나타난 여몽(麗蒙) 관계를 고찰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현대 한몽관계의 역사적 이해를 돕는 데 목적이 있다. 최초의 혼혈군주였던 충선왕은 태생부터 서거시까지 고려와 몽골(:元)의 이중적 정체성을 지닐 수밖에 없는 정치인의 신분이었다. 따라서 그의 행보는 항시 고려와 몽골 양국의 이해를 모두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충선왕에 대한 연구는 주로 그의 개혁정치에 관한 것과 그것에 미친 몽골의 영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 연구에서는 이들 기존연구와 1차문헌에 토대하여 충선왕의생애에 나타난 여몽관계를 살펴보았다. 먼저 2장에서는 배경적 요인으로 양국의 동맹과 전쟁관계 그리고 강화의 양국관계를 검토하였으며, 이어서 쿠빌라이의 외손이자 몽골황실의 부마로서의 위상과 여몽 관계를 살펴보았고, 마지막으로 이 두 가지에 기초한 고려국왕의 대외적 위상을 살펴보았다. 3장에서는 충선왕의 생애를 중심으로 여몽 관계를 살펴보되, 2장에서 살펴본 요소들과 연계 위에서 검토하였다. 다만 충선왕의 순수한 의지가 꺽이기 전인 1차 재위기를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The objective of this research is to investigate the merit and demerit of exchange between Korea and Mongolia through historical relation between both countries, namely, the dual activity of King Chungseon in the age of Koryo. The international exchange of both countries in the age of King Chungseon that has been checked so far is generally understood only in the position of hostile relation through war or the intervening period of Yuan. Investigating such recognition in other aspect, the relation of both countries is generally realized in terms of mutual positive exchange of politics, society and culture in this period. Referring to development of historic exchange of modern Korea and Mongolia to check Korea and Mongolia in this aspect, the author determined to investigate the necessity and merit/demerit of Koryo and Mongolia on the basis of King Chungseon. The specific research method for this research is as follows. First, the age background of history of both countries is investigated. The process of Mongolia and Korea countries including federation, war relation and the enhancement of the age of Koryo, both countries were in difficult relation and in the most active exchange in this age. However, the peculiarity of relation between Koryo and Mongolia, specifically, the relation between Koryo and Mongolia in the age of Koryo for characteristics of matrimonial relation and national position of royal families of both countries can be understood only as unstable relation of war and intervention of Yuan to people. At first, both countries started from the mutually amicable relation of federation through joint operation to annihilate Georan. However, the relation of both countries was interrupted when Mongolian envoy was slain on his way to fatherland. Further, the accident gave rise to war between both countries. After war, both countries realized matrimony between royal family as the factor to conclude enhance and federation. Koryo and Mongolia could stabilize the unstable relation through matrimonial relation. The marriage between royal family of both countries maintained the relation of both countries in special form, while considering the interest of both countries. Second, the author checked relation of both countries through King Chungseon. As the first king of mixed blood of Mongolia and the grandchild of Sejo, King Chungseon exerted strong politic power in both countries of Koryo and Yuan. King Chungseon had peculiar position, actively accepting the custom and system of Yuan. Namely, King Chungseon controlled relation of Koryo-Yuan with such politic power. The specific chronicle, his enthronement and enthrone protocol of King Chungseon shows the dual figure of Koryo and Mongolia. As King Chungseon was re-enthroned, Koryo further depended on Mongolia. The king even stayed in Yuan during most of reign to rule the country at distant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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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書에서 본 마음 修養에 관한 小考

최동락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제42집 2011.03 pp.233-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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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계는 물질문화가 이룬 첨단과학의 혜택 속에서 풍요롭게 살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하고, 갈등과 번민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이러한 원인은 사람이 태어날 때 순수하게 밝았던 마음이 욕심으로 인해 사물을 바르게 볼 수 있는 시야기 흐려져서이다. 사물을 바르게 보고 판단을 할 수 없으면 각자의 관점 차이로 일어나는 이견 때문에 인간관계는 갈등을 유발하게 되고, 결국 사회는 그런 갈등들이 뒤얽혀서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 유학의 마음수양 공부는 바로 이렇게 혼란을 일으키는 욕심을 다시 속으로 수렴하여 정화시키는 공부이다. 이러한 유학의 수양공부 방법은 유학의 시원이라 할 수 있는 󰡔書經󰡕의 첫 장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도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四書는 전체 내용이 바로 이 마음수양 공부를 토대로 하여 만들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본 논문은 四書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유학에서 말하는 마음의 개념과 마음수양의 방법, 그리고 마음수양의 결과로 나타나는 효과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四書에서는 마음을 性, 明德, 天命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러므로 유학에서 말하는 마음수양 공부가 궁극에 이르고자 하는 경지는 바로 마음속에 性으로 내재하고 있는 하늘의 밝은 빛인 明德을 다시 회복하여 하늘의 빛과 하나가 되는 天命을 아는데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하늘의 빛과 내 마음의 빛이 하나로 통하게 되면, 만물 속에 내재하여 밖으로 드러나는 다양한 모습의 빛과도 하나가 될 수 있다. 이것이 곧 天地自然과 조화를 이루며, 만물과 더불어 살게 하는 삶을 이루게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보면 유학의 마음수양 공부는 오늘날 세계가 겪고 있는 다양한 갈등을 해소하고, 모두 함께 더불어 살 수 있게 하는 미래지향적인 수양공부가 될 수 있다고 하겠다.

今天的世界在物質文化形成的尖端科學的恩惠中生活富饒。 儘管如此, 人們也不能得到心靈上的安定, 努力通過各種手段和方法求得心靈上的安定。 這是因爲稟受於天的本來之心被面向事物的欲望所引誘變得黑暗。 如果原本明亮的心因爲欲望被黑暗遮擋, 就不能正確認識事物作出正確的判斷。 不能正確判斷事物就會因爲觀点上的差異引發人間關係的矛盾, 結果社會也會因爲矛盾交錯而變得混亂。 儒學的心靈修養工夫, 正是重新把這種引起混亂的欲望收斂起來進行淨化的工夫。 這種儒學的修養工夫法從儒學的起源󰡔書經󰡕的首章開始, 綿綿不息地延續到今天。 其中特別是四書, 其全部內容正是在心靈修養工夫的基礎上編纂而成的。 所以本論文以四書的內容爲基礎, 對儒學中所說的心的槪念和心靈修養的方法以及心靈修養所體現的效果進行了考察。 在四書裏心被描述爲性、明德、天命。 因此儒學中所說的心靈修養工夫正是重新恢復內在於心中之性的天空的明亮之光, 與天合一。 當天空之光與我心之光融爲一體時, 就能與萬物呈現在外的千姿百態之光融爲一體, 達成和諧。 從這個觀點來看, 儒學的心靈修養工夫能够成爲消解當今世界正在經歷的各種矛盾使大家共同生活的未來指向的工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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儒家의 孝悌意識과 情感美學

이종진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제42집 2011.03 pp.269-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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儒家사상이 금세기에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것은 서양의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에 대한 반작용이다. 서양의 산업문명은 기계문명으로 분화하는 것에 바탕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도 기능시하여 분리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결과는 결국 인간 소외로 이어지고 있다. 儒家사상은 인간을 말하고 철저하게 인간을 포용하는 것으로 情感에 근원하고 있다. 󰡔論語󰡕의 수편에서 제기한 仁學은 孝悌慈⋅忠恕⋅克己復禮로 요약이 된다. 孝⋅悌⋅慈는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仁을 확충해 가는 것이다. 이러한 실천성은 仁情으로부터 비롯된다. 이에 비해 恕는 나를 미루어서 남을 헤아리는 것이며, 克己復禮는 자신의 사욕을 이기고 안과 밖을 규제하는 것이다. 이의 실천적 공효는 남에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는데, 情을 中道에 맞게 단속함으로써 仁情으로 회귀하게 된다. 仁情에서 비롯되는 실천성은 美的 특징이 있다. 儒家의 孝⋅悌⋅慈는 人情에 바탕하고 있다. 人情이란 진실한 마음에서 나온다. 人情을 통한 孝悌는 사람마다 그의 어버이를 어버이답게 모시는 것이며, 어른을 어른답게 대우하는 것이다. 이것을 확충시켜 남을 배려해 간다면, 곧 사람이 살만한 社會를 이룰 수 있게 된다. 儒家가 추구하는 社會는 孝⋅悌⋅慈를 통하여 이러한 人情을 擴充시켜 가는 것이다. 따라서 孝⋅悌⋅慈의 실천과 확장은 바람직한 社會性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儒家의 孝悌意識은 情感에 바탕한 것으로,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로부터 無怨不爭의 원만한 사회를 이루는 핵심요소라 할 수 있다. 효제의식의 근원이 되는 禮樂은 문화의식의 소산이다. 따라서 孝悌意識을 통해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확대시켜 가면, 그러한 세상은 기쁘고 즐거운 悅樂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儒家가 지향하는 이상사회의 모습이며, 情感에 바탕을 둔 인간美學의 실현인 것이다.

本論文通過四書首章的仁學對儒家的孝悌意識進行了考察。 孝悌意識根源於人的情感, 同時包含着社會性和悅樂性。 󰡔論語󰡕中所表現的儒家的仁情就是給予人的愛與關心。 其中的核心是實踐孝、悌、慈使其擴張爲社會性。 其實踐性是根源於人情的。 人間關係中, 人情交流的基礎始於父子關係, 再擴散到與他人的關係, 卽不怨不爭融爲一體。 󰡔論語󰡕首章之學根源於仁情。 仁情的實踐具體地區分爲孝悌、忠恕、克己復禮。 孝悌乃孝順親愛、恭敬友愛, 是指儒家的家庭倫理向社會倫理發展的過程。 忠恕乃推己及人, 是通過絜矩之道實踐仁情的方法。 與此相比, 克己復禮則是儒家爲了體現仁情所提示的具體的實踐方法。 作爲仁情的內涵, 卽四勿的具體的實踐是制內謹外和制外謹內。 這種功效表現爲對別人不犯同樣的錯誤。 󰡔論語󰡕等四書的核心思想主要體現在首章之中。 因此, 󰡔論語󰡕首章之學與󰡔大學󰡕三綱領有着密切的關聯。 丁若鏞認爲, 󰡔大學󰡕的三綱領都只是孝、悌、慈而已。 尤其“止於至善”是至極地實踐孝、悌、慈。 這裏的“止”事實上是中庸的實踐。 因爲“中”不是固定的, 所以人一生下來就是慈的對象。 然而成長之後組成家庭, 就與孝、悌、慈同時延續爲社會性實踐。 而且隨着年齡的增長, 應當同時實踐慈與完吾身的孝。 這種儒家的孝悌意識從最近的人間關係開始, 形成無怨不爭的圓滿的社會。 能够形成無怨不爭的禮樂作爲文化意識所産, 根源於我與你關係的和諧。 如果以孝悌意識盡自己的本分擴大圓滿的人間關係, 世界就會變成悅樂世界。 因此, 根本孝悌意識的情感是仁情人間的美學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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陰陽五行과 干支의 象徵 — 命理學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김학목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제42집 2011.03 pp.295-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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干支에 陰陽五行論이 결합될 때, 간지는 시간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10천간은 하늘에서 반복⋅순환하며 변화하는 시간의 흐름을 木⋅火⋅土⋅金⋅水라는 다섯 단위로 나누어 각 단위를 다시 陰과 陽으로 세분한 것이다. 12지지는 땅에서 반복⋅순환하며 변화하는 시간의 흐름을 木⋅火⋅金⋅水라는 네 단위로 나누어 각 단위를 다시 陰과 陽으로 세분하고 그 끝마다 나머지 오행 土를 부가한 것이다. 때문에 간지에는 음양오행의 상징적 의미가 들어있다. 천간과 지지에서 土가 각기 다른 위치에 있는 것은 하늘과 땅이 氣와 質이라는 각기 다른 요소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氣로 이루어진 하늘은 변화하기 쉬워 火와 金 사이에 土가 있고, 質로 이루어진 땅은 변화하기 어려워 매 계절의 끝마다 土가 있다. 土의 역할은 전환을 중재하는 것인데, 하늘과 땅이 각기 다른 요소로 이루어져 그 흐름이 다르니, 이것에 맞추어 土가 배치되었고, 결국 천간은 10개, 지지는 12개가 되었다. 천지만물은 생멸을 거듭하며 변화하니, 干支에서 木⋅火는 생장의 상징이고, 金⋅水는 소멸의 상징이다. 氣로 이루어진 하늘은 木에서 火로의 성장 사이에서는 물론 金에서 水로의 사멸 사이에서도 土의 중재 역할이 필요 없다. 오직 木⋅火의 생장에서 金⋅水의 소멸로 전환될 때에만 그 사이에 土의 중재가 필요하다. 그런데 質로 이루어진 땅은 하나의 오행 단위에서 이어지는 다른 오행 단위로 전환될 때마다 모두 土의 중재가 필요하다. 천지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간지이니, 사람을 포함하여 천지의 흐름과 함께 하는 만물 역시 상징적인 간지의 원리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인간의 운명을 점치려는 노력은 간지의 상징과 그 변화법칙에 대한 연구로 집중되니, 그것이 바로 명리학이다. 이 논문에서는 명리학의 학문적 기반을 비판하기 위해 먼저 간지의 상징적 원리를 따져보고, 그런 다음 실제 四柱에서 그 상징이 맞는지 검증해 보겠다.

干支與陰陽五行論結合時, 干支象徵地顯示時間之流行. 十天干, 是在天把反復循環的時間之流行, 分爲木⋅火⋅土⋅金⋅水之五個單位, 而又把各單位細分爲陰與陽之兩方面的. 十二地支, 是在地把反復循環的時間之流行, 分爲木⋅火⋅金⋅水之四個單位, 而又把各單位細分爲陰與陽之兩方面, 而且在各單位之末附着土的. 因此, 十天干與十二地支具有陰陽五行之象徵的意義. 在十天干與十二地支, 土的位置不同的原因, 以天與地構成著各有不同的因素卽氣與質故. 以氣所構成的天容易變化, 所以土存在著火與金之間; 以質所構成的地不容易變化, 所以土存在著各季節之末. 土之功能是仲裁各季節之轉換的. 但是天與地構成著各有不同的因素, 而其流行亦各有不同, 故隨不同的流行, 土的位置不同配置, 終於成爲十個的天干與十二個的地支. 天地萬物以生長消滅不斷變化, 在干支, 木⋅火是生長的象徵, 金⋅水是消滅的象徵. 以氣所構成的天, 不僅從木到火之成長過程中, 不須要土的仲裁功能, 又從金到水之死滅過程中, 亦不須要土的仲裁功能, 只要從木⋅火的生長轉變到金⋅水的消滅過程中, 才須要土的仲裁功能. 然而以質所構成的地, 在木⋅火⋅金⋅水之四個單位循次轉變時, 都須要土的仲裁功能. 干支, 卽是把天地之流行象徵地表出的. 與天地同流的人們和萬物, 亦隨著干支之象徵原理變化流行而已. 因此, 人類從來對於干支之象徵原理與變化法則, 不斷地硏究, 而把它要運用算命的道. 此就是所謂命理學. 本論文爲了批判的檢討命理學之學的基盤, 先要論破干支的象徵原理, 還要檢證干支的象徵原理與個人的四柱如何相關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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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해체주의적 사유와 윤리설의 특징

金相來.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제42집 2011.03 pp.323-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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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과 문화적 연계를 이루는 사회의 지식인들 중에는 2천년 이상의 오랜 세월 동안 공식적 영역에서는 유교사상에 입각하여 삶을 영위하여 왔지만 사적인 영역에서는 노장사상에 경도되어 삶을 유지한 사람들이 많았다. 비록 대부분의 사상가들에게 사적인 영역을 담보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본다면 노장사상 내지 도가사상을 대표하는 󰡔노자󰡕는 결코 세상을 회피하는 은둔자의 허무주의만을 지향하는 사유체계가 아니었음을 과거의 역사와 사상가들이 알려주고 있다. 중국고대 사회라는 토양에서 생겨난 󰡔노자󰡕는 치열했던 춘추전국시대를 살아가는 처세의 지혜이며, 특수한 통치이론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국적 특수성을 강하게 피력하는 특징을 보인다. 나아가 세계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제공함으로써 보편성을 지니고 있으며, 오래 기간 동안 유교와 함께 동양인의 정신세계에 영양분을 공급해 왔으며, 오늘날까지 세계인의 교과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겠다. 고대 중국의 지적 유산 중 오랜 기간 중국을 지배해 온 이데올로기의 근원과 시작으로 작용한 이 두 사유체계의 본질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논어󰡕와 󰡔노자󰡕일 것이다. 이 두 텍스트는 오늘날 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을 독자로 확보하고 있다. 세계의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고 해석되고 있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것이며,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 두 중국고전에 대한 번역과 해설, 전문적 논저들은 셀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 두 고전은 기본적인 성격에서 차이를 보인다. 즉, 󰡔논어󰡕에 보이는 사상에는 중국사회의 정치적이며 인륜적인 질서를 보호하려는 의비가 강한 반면, 󰡔노자󰡕에는 세계 속에서부터 한걸음 물러나 개인의 내면적 충실을 추구하며, 자연적 세계에 대해서 통찰하는 면이 많은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논어󰡕와 󰡔노자󰡕의 이러한 특징은 시대와 지역의 제약을 넘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직접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전자를 낮의 교과서 후자를 밤의 교과서로 비유하면서 구별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산업이 급속도로 발달하며 물질적이며 과학적이 문명이 최고조에 도달한 오늘날의 사회에도 이런 경향성은 엄존하여 현대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노자󰡕를 삶의 지남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주요 이름난 산 속에서 소위 “도를 닦는다”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하는데, 이들은 불교 아니면 도교적 전통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노자󰡕는 그 체계와 구성이 단편적인 언어의 조합이라고 말할 수 있으므로,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이 논문은 현대 철학의 주요 이론 중 하나인 데리다의 해체주의적 관점에서 󰡔노자󰡕를 검토한 것이다. 1973년 帛書 󰡔노자󰡕, 1993년 楚簡 󰡔노자󰡕의 발견으로 그간의 󰡔노자󰡕 연구는 연구사의 획을 긋는다. 이 두 󰡔노자󰡕의 발견을 계기로 그 이전에 주로 시도되었던 󰡔노자󰡕의 원형을 복원하기를 시도하거나 재구성하는 연구는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러나 각 부분의 언어적, 해석학적 연구는 이 두 판본의 발견과 관계없이 꾸준하게 시도되고 있다. 여기서는 문헌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관점이 아닌 인간과 세계를 읽어내는 해체주의적 관점에 근거하여 󰡔노자󰡕의 사유를 정리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동양학의 연구방법 측면에서의 새로운 시도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Tao (道) has many different meanings in the history of Chinese philosophy. It means a way, a method, or a truth. Moreover, it means ‘to speak’. Usually Tao in the system of Lao Tzu's thinking is metaphysically regarded as a principle of being, as a moral principle of human life, as Absolute Truth, as Ultimate Reality, and as Eternal Ground of Being, etc.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show that there are textual similarities what between Lao Tzu(老子)' Tao and Derrida says about ‘differance’, ‘trace’, and ‘play’, etc. With this understanding, It is helpful to correct the notion that Tao is the Eternal Ground of Being. get a new insight into Taoist philosophy by way of Derridian deconstructive theory. Lao Tzu like Derrida deconstruct all kinds of traditional and metaphisical thoughts which can be termed dualistic system of thinking. We can get a new philosophical insight into Taoist philosophy by way of Derridian deconstructive theroy. With our discussion of the aspects of Tao from Lao Tzu and Derrida's ‘differance’, ‘trace’ and ‘play’, we will establish a philosophy affinity between Taoist and Derridian deconstructive thinking. As pointed at this study, Derrida and Lao Tzu present a challenge against traditional or conventional thought, the common denominator of which can be termed dualistic system of thinking. Under this dualistic thinking, all terms like ‘True’ and ‘False’, ‘Being’ and ‘Nothing’, ‘Beauty’ and ‘Ugliness’ designate the state of self-presence, plentitude, and interiority. And they inevitably generate their logical opposites as the marginal and insubstantial. This kind of thought shows its sturdiness while dividing the world of meanings into true and false, good and evil, beauty and ugliness. In this dichotomy, the first considers the latter as the object of violence. Derrida defines this dominant tradition to ‘the metaphysics of presence’ and the thinking of Taoist philosophy like Lao Tzu attacks and seeks to overthrow the tyranny of metaphysical-dualistic concepts. In this perspective, we find ourselves in a paradoxical situation of theorizing a non-theory and conceptualizing a non-conception in order to understand ‘differance’, ‘trace’, ‘play’ as well as ‘Tao’ with Derrida and Lao Tzu. The doubleness or paradox of differance as well as Tao can be discussed in two ways. On the one hand, it indicates the disruption or the transgression of any metaphysical dualistic concept, on the other hand, it reveals the interplay or the complicity between two apparent stabilities. They propose that a thinking that deconstructs all centrisms like westerncentrism, malecentrism, phonocentrism, and moralcentrism is to create an enjoyable play-space for human beings in this world. Their suggestions provide us in the transition towards the 21st century with a fresh perspective to look differently at human beings and this world we live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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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紀效新書節要}에 대한 검토

곽낙현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제42집 2011.03 pp.355-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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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조선후기 선조대에 간행된 {紀效新書節要}에 대한 내용을 검토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결론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紀效新書節要}는 {紀效新書}의 내용 가운데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내용을 발췌하여 조선의 군사상황에 맞게 필요한 내용만을 새롭게 간추렸다고 볼 수 있다. 둘째, {紀效新書節要}는 명나라에서 들여온 새로운 전술체계를 조선의 군사실정에 맞게 이해하고 정리한 무예서이다. 셋째, {紀效新書節要}는 {紀效新書}의 내용을 군사조련과 진법훈련의 목적에 맞추어 하나하나 재조합하여 조선의 책으로 다시 펴냈다는 사실 자체가 새로운 군사기술을 습득하고자 했던 조선의 적극적인 자세를 재확인시켜주었다. 넷째, 조선에서 간행된 {紀效新書節要}는 {紀效新書}의 요약서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단병전술체계에 시발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 조선후기 무예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This study aimed to examine Gihyosinsejeoryo published in the late of Joseon dynasty. The conclusion are as in the following. First, Gihyosinsejeoryo is accounted of a book extracted from the Gihyosinse and summarized according to military situation in Joseon. Second, the Gihyosinsejeoryo is considred a military book that is organized and understood of a new military strategy system in Myung Dynasty in China. Third, Gihyosinsejeoryo is reconfirmed as an active position of Joseon to acquire new military skills because it is republished as a book of Joseon recombined contents of Gihyosinse with the purpose of military training and battle formation. Forth, even though Gihyosinsejeoryo is the summary of Gihyosinse, it can be given important meaning in martial art history in the late of Joseon dynasty because it played an ground role in military strategy system in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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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學會훨쫓報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제42집 2011.03 pp.379-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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