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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상고전연구 [Yeol-sang Journal of Classical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열상고전연구회 [Society of Yol-Sang Academy]
  • ISSN
    1738-2734
  • 간기
    격월간
  • 수록기간
    1988~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한국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810 DDC 810
제40집 (23건)
No

기획 1 : 과거제도와 관련된 문화 탐색, 과문(科文) 연구

1

기획의도

허경진, 詹杭倫, 이상욱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0집 2014.06 pp.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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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0원

2

中國的律賦學與科舉學

劉海峰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0집 2014.06 pp.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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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0원

3

科試 참고서를 통해 본 조선시대 受驗 문화의 한 국면 - 科文 規式 참고서를 중심으로 -

허경진, 최영화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0집 2014.06 pp.3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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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새롭게 발굴된 과문 규식 참고서를 소개하고, 과거 수험생들이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 보고, 아울러 과거 수험문화의 한 국면을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우선 과거시험의 출제범위와 출제빈도가 높았던 科文에 대해 알아보고, 응시생들은 효율적인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어떻게 준비를 하였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효과적인 과거 응시 방책이 모색되는 과정에, 과거에 합격하기 위한 요령을 위주로 과거시험 대비를 위한 科試 참고서들이 만들어졌는데, 본고에서는 출제 빈도가 높은 문체를 중점적으로 연마하기 위해 만들어진 과문 작성법을 알려주는 ‘科文 規式 참고서’에 주목 하여, 이러한 참고서들이 구체적인 편찬 양상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러한 과시 참고서가 출현하게 된 원인은 과거시험에서 엄격한 문체 격식을 갖춘 과문의 작성이 과거시험의 당락을 결정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했고, 과거 경쟁이 점차 치열해 졌던 것과 관계된다. 이는 表가 실용적인 문체로 특히 중국과의 외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였고, 箴, 銘, 訟에 비해 변별력이 높은 문체였으며, 평점 시에도 두 배의 점수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 다. 賦는 출제빈도가 높고 소과와 대과에 모두 부과되는 핵심문체였으나 관련 참고서가 보이지 않는다. 科賦 참고서가 드문 것은 과부 작성에서 엄격한 程式이 해체되었던 당시의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 과거 수험용 서적은 대부분 편자미상의 필사본으로 18세기 이후의 것들이 많다. 이러한 참고서들은 대체로 문 중에서 제작하거나, 개인이 공부를 위해 필요한 부분을 抄하거나, 함께 공부하는 소규모 집단에서 작성한 것 들이다. 이러한 과시 참고서들은 주로 교유 관계망을 매개로 전사하거나 빌려보면서 유통되었는데, 정보력이 취약한 지방의 수험생들보다 서울의 수험생들이 용이하게 활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本論文主要通過幾種具有代表性的科文規式參考書的分析,考察了考生準備科舉試的方法與科舉應試文化。整 個朝鮮時代,科舉中榜是大部分士大夫的願望,然而科舉考試的難度很高,尤其是表文。考生要花很多時間和 經歷準備科考,為了有效應試,士大夫文人之間流行了類似於科考參考書的書籍,其中最常見的是科表文參考 書。朝鮮時代的科舉最注重的是應試者的科文的寫作能力。因此科舉的中榜與否主要取決於賦、表、策等詞章 的寫作能力。其中,表文是跟中國的外交關係中至關重要的文體;又是考核考生寫作能力時,一種辨別力較高 的文體,因此科舉大科的時候出題“表”的時候較多。科舉應試生則認為表是最難的科舉文體形式。因此考生多 用科考用參考書來練習表的寫作。而這種情況從朝鮮初期開始一直延續到朝鮮後期。這種科舉準備方式的普及 反映了朝鮮科舉文化的一個方面。科舉科文的寫作一定程度上限制了作者的發揮。但是朝鮮文人爲了應試從小 習作科文,科舉及第之後持續地寫作表文,在這過程中積累的寫作能力,反應在其他的文學題材的寫作上。

6,000원

4

조선 科賦의 성립 문제

李祥旭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0집 2014.06 pp.6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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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科賦)는 조선 후기에 진사시, 문과, 문신제술, 성균관 학교시, 각종 백일장 등에서 빠지지 않고 시험되던 문체이다. 과부 자료는 현재까지도 상당히 많은 양이 전하고 있다. 과부는 6언구를 기본으로 하고, 30구로 성 편하며, 압운은 하지 않고, 파제-포서-회제-회하의 결구구조를 갖는다. 과부의 성립에 대해서 기존의 연구는 17세기를 지목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대략적인 추정에 불과하고, 실제 작품들의 양상을 자세히 살피지 못했 다. 본고에서는 16세기와 17세기의 시부(試賦) 자료들을 선별해 그 형식들을 분석함으로써, 17세기 중반부터 고착화되기 시작하는 과부의 성립과정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 조선 후기 과거 시험에서 ‘독점적’ 지위를 구가 하던 6언 과부가 어떠한 자질들을 어떻게 특화시켜 성립된 것인지 알아본다.
在高麗和朝鮮初、中期,引進中國科舉制度中賦的格式進行了考試。考試的文體和形式雖然略有出入,但大多是以漢代的古賦或唐代的律賦交替形式出題。賦不僅用於小科(進士試, 製述),而且用於文科的所有考試科目,并經常出現在成均館的學校試,以及已經走上仕途的文臣的文臣製述等試題當中。我們暫且不談是否可以把學校試和文臣製述等考試看做是科舉考試的一部分,但小科和大科在中15世紀中期和16世紀中期用於律賦考試之外,直到17世紀中期一直維持使用古賦體制。16世紀初期的科賦作品,文章中句的字數為4言、5言、6言、7言、8言等,形式自由,句數多樣。到了17世紀, 科賦以六言句為本,三十句成篇,不押韻,具有破題-鋪敘-回題-回下的結構。就科賦的成立問題,之前的研究關注的是17世紀,而且大都還屬於推斷性論述,並沒有實際考察作品的樣相。因此本論文針對性地選一些16,17世紀的試賦材料,分析其形式,考察了17世紀中期以後逐漸被固定的科賦的成立過程。在此基礎上,論述了朝鮮後期科舉考試中具有‘獨佔’地位的六言科賦是特化賦的哪些資質的過程中形成的。

7,200원

5

唐代試賦與長安之帝都文化

蘇瑞隆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0집 2014.06 pp.9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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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周、秦、西漢、新、東漢(獻帝初)、西晉(湣帝)、前趙、前秦、後秦、西魏、北周、隋、唐等十三朝先後定都長安。長久以來, 長安為中國的政治中心, 自然也成為漢賦家筆下最重要的描寫對象之一。班固的≪兩都賦≫被列為≪昭明文選≫的卷首之篇, 說明瞭六朝人對京城之賦的重視。漢代辭賦內容描繪經國之大業, 頌揚帝王之恩澤。其風格文字雍容華貴, 描寫長安之宏偉結構, 冠蓋如雲, 遊俠豪舉, 盡展長安一代帝都之風采。長安就是整個帝國的縮影, 京都之賦也成為辭賦中最重要的一種次文類。到了唐代, 長安更發展為空前未有的國際大都會, 唐人不僅在其詩歌、傳奇小說中描寫長安, 在各類試賦中更是全方位地描繪長安。然而在詩歌中, 詩人偏重抒發個人對長安生活經驗的悲歡之情;而在素以雅正凝重之風為典型的辭賦傳統中, 賦家則著重描寫象徵帝都的各類事物。有的篇章直接描寫整體的長安, 如崔損的<北斗城賦>;有的篇章集中書寫長安特定的建築物, 例如花萼樓、明光殿;有的則聚焦於其顯著的地標, 如華山、灞橋等等。本論文擬將這些描繪長安的律賦分類加以研究, 以觀察有唐一代文人如何以辭賦建構其帝都之文化。

5,400원

6

論唐代律賦的聲病

趙俊波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0집 2014.06 pp.115-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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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文選取十篇唐代名賦, 分析其聲律狀況, 認為唐代律賦的聲病非常多。雖然如此, 考生也依然能夠及第。其中原因, 一是因為唐人在評價律賦時, 常以意為主, 而聲律次之;二是聲律不可能完全諧和的實際情況, 使評判時不能嚴格執行聲律標準;三是唐代的科考氛圍比較寬鬆, 致使作品聲病百出;四是唐代律賦的聲律要求是發展變化的, 這些都造成了聲律多有不合規則的現象。

5,700원

기획 2 : 새로 발굴된 고소설 관련 자료에 대한 연구

7

기획의도

유춘동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0집 2014.06 p.138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에 따라 개인회원에게 무료로 제공됩니다.

8

경판 <홍길동전> 축약의 양상과 그 의미

이윤석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0집 2014.06 pp.139-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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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판(안성판 포함) <홍길동전>은 7종이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앞선 것은 경판 30장본이고, 나머지 6종은 경판 30장본에서 파생된 것이다. 이와 같이 경판 <홍길동전>의 계통은 선명하게 정리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경판 30장본의 원천은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동안 연구자들이 제대로 접근하지 못했다.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작자가 허균이라는 학계의 통설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연구자들이 <홍길동전> 이본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논문에서 경판 30장본은 세책을 저본으로 축약한 것임을 밝혔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홍길동전>의 작자는 세책집과 관련을 맺고 있는 인물이며, 세책으로 인기를 얻은 작품을 축약해서 만든 것이 경판 소설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필자는 이 논문에서 세책집이 고소설의 창작과 유통의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Today, there remain seven versions of the Gyeongpan Hongkildong-jeon. It has been made clear that amongst these versions (including Anseongpan), the earliest one is the Gyeongpan 30-sheet and the rest is derived from it. Then, what would be the original text of the Gyeongpan 30-sheet? The preceding studies have not been able to provide a clear answer to this question. It is mainly because the standard theory that Heo Gyun was the writer of the piece has hindered such attempt. Another reason would be the fact that researchers have not given thorough examination on its various editions. This paper has elucidated the fact that the original text of the Gyeongpan 30-sheet was the abridgement from rental book. And this led to the following understandings: Firstly, the writer of Hongkildong-jeon was someone who had connection with lending library. Secondly, Gyeongpan novel had its basis in the popular pieces from rental books which were abridged into appropriate length. These are the concrete evidences which show that lending library was at the center of the creation of Old Novels and its distribution.

7,200원

9

완질 『溪西雜錄』(일사 (1)본)의 출현에 따른 제 문제

정명기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0집 2014.06 pp.17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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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완질『溪西雜錄』의 존재를 학계에 최초로 소개하고, 이 이본을 포함하여 다른 이본들의 계열화를 중 심으로 살펴보려는 의도 아래 이루어졌다. 본고에서 새롭게 소개한 12종의『계서잡록』이본들에 나타난 서술 문면의 탈락, 대체, 오기(독), 첨가 등을 통하여 그 계열을 살펴본 결과, 그들 이본은 대체로 일사 (1)본을 선행 모본으로 하여 형성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일사 (2), 저초 (1)본 등은 그러한 일반적 현상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나아가 완질『계서잡록』의 출현에 따른 의의를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하였다. 첫째, 완질 『계서잡록』을 통해 이 자료집 전체의 話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비로소 얻게 되었다는 사실과 < 李思觀이야기>를 두고 빚어졌던 그간의 오류를 시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둘째, 완질 『계서잡록』을 통해 『계서잡록』이본군의 계열을 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셋째, 완질 『계서잡록』을 통해 일사 (1)본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알려졌던 여러 이본들 또한 여러 가지의 한 계를 지니고 있는 이본임을 파악할 수 있었기에 對校의 필요성이 더한층 높아졌다는 사실을 제고했다는 점 등 이 그것이다.
本論文是最初向學界介紹了完帙 『溪西雜錄』的存在。在此基礎上, 將原先的其他異本與新發現的異本一並進行了系列化。本論文針對十二種 『溪西雜錄』異本進行了敍述的脫落, 替代, 誤記, 添加等校對工作, 發現這些異本大體都是將一蓑 (1) 本作爲母本的。但只有一蓑 (2) 本與翥初 (1) 本不符合此現象。進而整理了完帙 『溪西雜錄』出現的意義。第一, 完帙 『溪西雜錄』的出現, 能整理出整個資料集的話數的準確情報, 進而能修正關於 <李思觀故事> 的誤解。第二, 通過完帙 『溪西雜錄』的發現, 能進一步明確 『溪西雜錄』的異本群的系列。第三, 通過完帙 『溪西雜錄』的發現, 了解到了包括一蓑 (1) 本在內的諸多異本具有局限性。因此向後需要細緻的校對。

8,100원

10

선문대 중한번역문헌연구소 소장 『충의수호지』연구

유춘동, 박재연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0집 2014.06 pp.209-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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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선문대 중한번역문헌연구소 소장 『충의수호지』을 대상으로 자료의 서지(書誌), 번역본으로서의 전반적인 성격과 특징, 국어학적인 특성 등을 살펴본 것이다. 이 자료는 원래 화봉문고에 비장(秘藏)되어 있던 것으로 최근에 연구를 위하여 선문대 중한번역연구소에서 구 매한 것이다. 이 책은 낙질본으로 현재 <권2>, <권3>, <권10>까지 모두 3책만이 남아있다. 그러나 이책의 서배(書背)를 보면 ‘共二十三’으로 쓰여 있어, 완질(完帙)은 23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자료는 세책본이다. 모리스쿠랑은 『조선서지(Bibliographie Coréenne)』에서 23책의 한글 필사본 『충의수호지』의 존재를 언급한 바 있다. 이 자료가 세책본이고 완질은 23책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모리스쿠랑 이 세책점에서 보았던 세책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주목할 점은 이 책의 제명이 『수호전』이 아닌『충의지(忠義志)』라는 다른 제명으로 불렸다는 점이다. 『수호전』은 내용으로 인하여 늘 논란을 일으켰던 작품인데, ‘충의(忠義)’라는 제명을 내세워 이 작품이 지닌 논란을 사전에 잠재우려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자료를 통해 국어학적인 특성을 살펴보면 일부 고형의 어휘들이 보이지만 표기법, 음운형태 등으로 보아 최초의 번역은 18세기에 이루어졌고, 이후 19세기 후반 경에 다시 필사된 것으로 보인다. 차후 과제는 두 종의 세책본 『충의수호지』를 정밀하게 대조하는 일이다. 이 작업을 통하여 세책본간의 성격, 번역 양상은 물론, 두 종의 세책본의 성격 등이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This thesis addresses the bibliographical information and overall characteristics and linguistic traits as a translated version of ChoonguiShuihuzhuan(The Story of Warriors, 忠義水滸傳) which is in possession of the Institute for the Translation of Chinese Classical Literature of Sun Moon University. This translated version, which was originally in possession of Whabongmoongo, has recently been purchased by the Institute. The translated version is an incomplete set of works, composed of volume 2, 3 and 10 only. On the back of the volume "共二十三" is written, meaning that it was originally a set of 23 volumes. This volume was intended for lending. Maurice Courant mentioned the existence of the 23 volumes of Korean manuscript of ChoonguiShuihuzhuan in his book Bibliographie Coréenne. Considering the fact this version was for lending, and that it was a set of 23 volumes, it is highly likely that these three volumes were the ones for lending. What merits attention is the fact that this book was named ChoonuigiChoongui Shuihuzhuan(The Story of Patriots)rather than Shuihuzhuan(The Story of Warriors). The name change seems to have been an attempt to muffle possible controversies associated with the contents of the book. A study of the linguistic characteristics such as phoneme forms and orthography of the volumes, despite the appearance of the occasional old words, suggests that the first translation was accomplished in the early 18th century and re-transcribed in the late 19th century. The next step is to scrutinize the discrepancies between the two different versions of ChoonguiShuihuzhuan, which would reveal the different styles of translation and characteristics of the two versions.

5,800원

11

한글필사본 충무공행장에 대하여 - 새 자료 우리한글박물관 소장 『튱무공행장』을 중심으로 -

김영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0집 2014.06 pp.231-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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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우리의 역사에서 민족적 영웅이며 불멸의 정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이순신의 전기라고 할 수 있는 충무공행록에 대한 고찰이다. 그중에서도 한글로 번역 필사된 행장(行狀) 우리한글박물관 소장 <튱무공행장 >을 집중적으로 분석 고찰하여 가치와 의미를 조명하고자 하였다. 우리한글박물관 소장 <튱무공행장>은 1책으로 전체 99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체적인 필사 시기 기록은 없 지만, 나타나는 어휘의 형태와 표기로 미루어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덕수 이씨 후손가 집안에서 여성들을 위해 선조의 행적을 기리고 본받을 수 있도록 특별히 한글로 작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확인되는 한글필사본 행장은 총 4종이다. 우리한글박물관 소장본은 현존하는 필사본 가운데 시기가 가 장 이르다. 내용은 비교적 충실히 李芬의 「行錄」을 옮겨 적고 있지만, 일부분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1795년에 간행된 <李忠武公全書>의 「行錄」에 없는 어린 시절 일화가 수록되어 있기도 하고, 「行錄」이 아닌 다른 문헌에 보이는 기록들이 수록되어 있는 등 복잡한 모습이다. 향후 이순신 연구를 위한 기초 사료로 널리 활용될 수 있 기를 고대한다.
This is the historical contemplation about the memoirs of biography of Yi Sun-Sin[李舜臣] revered as a national hero and immortal spirit in Korean history. In this study, I have tried to illuminate the value and meaning on the hangul manuscript ‘Haengjang’[行狀] in Joseon dynasty. Especially [튱무공행장], a new material of the collection in Woori Hangul Museum, has been analyzed more intensively. in Woori Hangul Museum is one book and estimated that it might be published during the late 18th through the early 19th century according to the form and writing patterns of the words. It is considered that it is written for women who may not know chinese characters to pay respect and remember their ancestors' deeds even if there is no information about the transcriber. ‘Chungmugonghaengrok’ has undergone certain modifications over the period of time. A typical example is a part of childhood anecdotes. It showed two episodes in the chinese version [忠武錄] presumed to be published before 1643, but they haven't appeared on 「Haengrok」[行錄] of [李忠武公全書] released under the order of King Jeonjo in 1795. However, is a valuable translated material which well reflects the early Hangul Haengjangl. Furthermore it is expected to be widely used for the basic material on future research of Yi Sun-sin.

7,000원

일반논문

12

중국 북경지역에서의 한국 문학 연구 현황과 그 과제

한용호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0집 2014.06 pp.261-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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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연구목적은 중국 북경지역 학자들이 한국문학연구의 현 주소와 특징, 앞으로 해결하여야 할 과제를 전망하여 보았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되어 2014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국에서의 한국문학연구의 단계를 세 개로 나누어 대체적으로 고찰하였다. 각 시기별로 중요한 연구 성과들을 고찰함과 아울러 존재하는 문제점 을 집어보고 북경지역에서의 특별한 연구를 고전문학과 현대문학 연구로 나누어 분석해 보았다. 또 그로부터 북경지역이 가지고 있는 학문적 우세와 발전방향을 구체적으로 해석해 본 기초 상에서 학문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는 중국학자들의 연구태도에 긍정적인 평가를 부여하였다. 따라서 북경지역에서의 한국 문학 연구의 현황을 살펴보는 것은 과거 동일한 문화권 내의 주변국의 문학에 대 한 연구로서 의의가 있을 뿐만 아니라 현 중국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한류현상의 심층적인 연구를 진행함 에 일조할 수 있고 중국 문화에 대한 타민족의 견해와 평가를 알아보는 데도 의의가 있으며 자기 민족의 문학 을 연구함에 있어서 중요한 민족성을 고양시키는 것에 상당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The paper aims to show the present situation and features of scholars’ re searches on Korean culture in Beijing area as well as the issues facing in the future. During the period from 1949(the time when New China was founded) to 2014, Korean literary studies can be divided into three stages. The paper introduces important research results and corresponding problems of various periods. It classifies the special researches in Beijing area into classical literature and modern literature. After interpretation on the advantages and developmental direction of academic researches in Beijing area, it gives pertinent evaluation to Chinese scholars who have been working tirelessly for academic development. An in-depth discussion of present research situation on Korean lite rature in Beijing are aisimportant, not only to th eliterarystudies of neighbor ing countries within the same cultural circle, but also to furtherresear cheson Hallyu-asurgein China in recentyears. In addition, ithelpstocomprehendo the rnations’ opinionsan devaluation of Chinese culture. It is also of great value to improvescholars’ national consciousness when conducting Chinese literaturere search.
本文的研究目标在于展示中国北京地区学者们关于韩国文化研究的现况和特征, 及今后面临的课题。从新中国成立到2014年为止, 中国的韩国文学研究大致可以分为三个阶段。本文介绍了各时期重要的研究成果和相应的问题点, 将北京地区的特殊研究分成古典文学和现代文学两大模块。并在具体阐释了北京地区学术研究的优势和发展方向的基础上, 积极评价了为学术的发展一直孜孜不倦努力的中国学者们的研究态度。深入探讨北京地区韩国文学研究的现况, 不仅作为对同一文化圈内邻国文学的研究有重要意义, 也有助于对近年来在中国掀起热潮的韩流现象进行深层次研究。此外, 还有助于了解他民族对中国文化的见解和评价, 在进行本民族文学研究时, 提升民族意识等方面, 均具有重要的价值。

7,500원

13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육의 문학교재로서의 <동동>의 가치

길태숙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0집 2014.06 pp.295-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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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에 있어서 문학교재 자료로서 <동동>이 가지는 가치에 대해 고찰하였다. 이를 위하여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에서의 문화교육의 항목과 주제를 조사하고, 전통문화교육의 주제적 측면과의 연계성을 중심으로 <동동>을 분석하였다. <동동>은 다음의 4가지 측면에서 외국인을 위한 학습교재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음을 조명할 수 있었다. 첫째, 언어적 측면에서, <동동>은 한글로 전해지고 있는 고려시대의 노래라는 점에서 한국의 전통적인 언어와 문화 및 그 안에 녹아있는 사고를 경험케 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둘째, 연희의 측면에서 <동동>은 궁중의례에서 불린 노래라는 점에서 한국의 전통의례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 셋째, 소재의 측면에서 <동동>은 세시풍속을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는 노래로서 세시풍속에 대한 정의적 이해를 뛰어넘어 상황적 이해를 도울 수 있다. 넷째, 정서의 측면에서 <동동>에서의 님이 가진 복합적 의미(송축과 애정)에 대한 이해를 통해 한국문학에 나타난 님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다. 곧, <동동>은 한글, 고려시대, 궁중의례, 궁중연향악, 세시풍속, 명절, 명절 음식, 불교문화, 송축, 문학 등 한국어교육에서 주목하는 한국전통문화교육의 주제 및 항목과 연관성을 가진 작품으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육의 문학 교재로 활용될 가치가 충분함을 살필 수 있었다.
This paper is designed to consider the value of as a literature material for Korean education as a second language. This research includes examination of a variety of items and subjects for educating cultures in teaching Korean language for foreign people and analysis of 'Dongdong' by combining the main theme of the traditional culture education. It is possible to discuss that has a value as a Korean literature material for foreigners from four kinds aspect. First, in terms of linguistic level, has an advantage which it makes learners to experience traditional language, culture, and thinking as a Goryeo Dynasty’s song to be handed down in Korean. Second, in terms of performance, the learners can understand Korean traditional royal court ceremony, through which had been performed as a royal court ceremony during the Goryeo and Joseon Dynasty. Third, in terms of the materials, enable the learners to understand the definition of annual customs as well as context awareness of it, in regard to a song which deals with annual customs as a main material. Fourth, in terms of poetic emotions, the learners can understand complex images of “Nim(님)” in Korean literature through ’s “Nim(님)” which romance and Blessing are reflected in. is a Korean literature which is related to traditional cultural subjects and learning items such as 'Hangeul', 'Goryeo Dynasty', 'Royal court ritual', 'Royal court banquet music', 'Annual customs', 'Traditional festivals', 'Traditional festival food', 'Buddhist festivals', 'Blessing', etc. As a result, has been recognized as a valuable literature material for teaching Korean as a second language.

8,500원

14

한국 칠언시 음송 연구 - 허권수 교수의 음송을 예로 들어 -

劉暢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0집 2014.06 pp.335-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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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중국에서 음송(吟誦)의 전통이 있으니 지금까지 전승되어 끊어지지 않고 있다. 한국은 동양한문화권의 중요한 일부로 중국과 같아서 오랫동안 경서와 시문 등 음송의 전통이 있다. 한국어 자체가 중국 고대 어음을 보존하고 한국 음송의 곡조가 상대적으로 묵직하고 길게 울리므로, 중국보다 한국 음송은 더 소박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을 준다. 이 논문은 한국 칠언시 음송 가운데, 허권수 교수가 음송한 한국 한시 <送人>, <登岳陽樓歎關山戎馬>와 중국 고시 <蜀相>, <贈汪倫>, 합계 4수의 음송 자료를 예로 삼았다. 한국의 독특한 懸吐와 음송 곡조를 바탕으로 해서, 한국 칠언시 음송의 내용과 멜로디 특징을 탐구하고 필자가 정리한 허 교수 음송의 악보를 첨부하기 하여, 독자들이 한국 칠언시 음송을 알게 하고 중국 음송을 되돌아보는데 목적이 있다. <送人>, <贈汪倫>이 七言絕句이고, <蜀相>이 七言律詩이며 <登岳陽樓歎關山戎馬>가 조선시대의 과체시로 22聯이다.
From ancient times, there is a tradition of Eum-song in China, continues to this day. Korea, as an important part of the sinosphere, in which, there's also an tradition of Eum-song, as a way of learning the Confucian classics, poems, and articles written in Chinese character, for a long time. As the Korean langue has contained the speech sounds of ancient China, and the melody of Korean Eum-song is lower, deeper and lasting a long period of time, the Korean Eum-song is more unsophisticated and quaint. Here, I will make some instances of Korean Professor Heo's Eum-song of Seven-character poems, such as <送人>, <登岳陽樓歎關山戎馬>, written by ancient Korean people and <蜀相>, <贈汪倫>, written by ancient Chinese people. Through analysing Hyunto(懸吐) and melody, explore the contexts and features of Seven- character Poems and then enclose the music score of Professor Heo's Eum-song. I hope the readers would know the Korean Eum-song of Seven-character Poems better, after reading this essay, and feel helpful of understanding the Chinese Eum-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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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포도업침>ㆍ<천지왕본풀이>의 구조를 통해 본 창세신화와 영웅신화의 관계

신연우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0집 2014.06 pp.357-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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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굿의 대표적 의례인 초감제에는 무가 <베포도업침>과 <천지왕본풀이>가 들어 있다. <베포도업침> 의 자연-인간의 문제와 <천지왕본풀이>의 인간-인간의 문제의 차이가 있고 그 해결의 서사는 유사하다는 것 이 드러난다. 처음의 상황인 천지개벽은 창세신화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독립적인 화소이다. 무질서에서 질서 로 이행하는 것이 바로 창조 또는 창세이다. 해와 달이 둘씩 있다거나 기껏 만들어놓은 지상에 악인이 존재한 다는 것은 창세가 인간에게 불완전한 것이며 창세가 새롭게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물이나 불로 세상을 징치하는 신화가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이를 천지재창조신화라 할 수 있다. 일월 문제 등을 천지왕이 해결하지 못하고 지상녀와 혼인하여 아들 형제를 얻는 내용인 해결시도와 해결방안을 하 나로 묶어볼 수 있다. 성장한 아들 형제가 일월문제나 수명장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문제 해결이다. 다음으 로 아들들이 이승을 놓고 경쟁하여 결국 소별왕이 이승을 차지한 결과 이승에 악이 지속되고 말게 된 것은 결 과이다. 이러한 서사구성을 간략히 ‘1.천지개벽, 2.천지 재창조 필요, 3.아들 형제 탄생, 4.아들형제가 문제 해 결, 5.이승법 마련’ 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천상의 존재는 인간 현실과 다른 차원의 질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상의 문제를 천상의 힘으로 일시적으로 해결할 수는 있어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상적이면서 천상적인 존재가 필 요하다. 지상적인 요소는 지상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갖기 위해서이고 천상적인 요소는 지상을 뛰어넘는 능 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존재를 갖기 위해서 하늘에서 내려온 아버지와 지상에서 고난을 겪고 사는 어머니가 필요하다. 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지상에서의 삶의 고난의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수용해서 문제 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지며, 천상의 안목과 능력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렇게 정신적인 것 영적인 것 문화적인 것을 아는 것은 자연의 창조와는 다른 인간 사회에 더욱 긴요하다. 자 연의 창조를 모방하지만 필요한 것은 인간 사회의 건설이다. 영웅의 최종 목표는 바람직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제주도의 초감제 신화를 통해서 제주도를 넘어서는 신화론을 점검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In the beginning of the shamanistic ritual in Jeju Island, shamans sing and , sometimes in succession, sometimes separately. These two narratives share the motifs of creation myth and hero myth in common. I would like to show that it is important to understand that these two stories are functioning as one plot. The motif of and lies in order like this; the first condition (Creation)-problematic condition-attempt to solve-solution-new problem-present condition(earthly evils). The myth ends but the evil lasts to the present. We can also show the common ground plot of and . 1. Cosmic Creation --------- the first condition2. Re-creation ---------- problem and attemp to solve3. Birth of the son(of ---------- birth of the heroheavenly king andearthly mother)4. the son's solving of the --------- problem solving of the heroproblem5. setting up the order of --------- new order and unfinished problemsthe earth 1 and 2 are creation myth, 4 and 5 are hero myth. 3 is the bridge that combine the creation and the hero. The myths of and explain how the hero got the capability to solve the earthly problems. The problem of "nature-man" of and that of "man-man" of are different but the aspect of the problem-solving is similar. The motif of the beginning of the world is in and that of the competition of blooming flower and playing riddles is in only. For the heavenly beings have different level of order from that of the earthly human beings, they cannot settle the earthly problems fundamentally. We need the heavenly-earthly being to solve the problem; a hero. He needs earthly elements to understand earthly problems, and on the other hand, he needs heavenly elements to have the super power and capability far beyond the earthly man to solve the problem. To have this hero we need a celestial being as his father and an earthly woman who goes through a hard time in this very world as his mother. The self awareness of his existence is like a rebirth and it is we call an init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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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ㆍ중 설화에 나타난 국왕인식 비교

손지봉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0집 2014.06 pp.409-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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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한국과 중국의 설화에서 국왕 인식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국왕은 국가의 우두머리이며, 설화는 서민들의 공동작으로 국왕설화는 역사서로만은 알 수 없는 서민들의 국왕에 대한 정서 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궁극적으로 한중 양국의 상호 이해의 폭과 깊이를 확충하는데 기 여할 것이다. 서민들에게 국왕은 어떤 존재인가?, 국왕이 어떤 정치를 수행하고 있는가? 그리고 국왕의 폭정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여 왔는가? 등은 중요한 관심사항이었으며 이는 고스란히 설화로 구연되어 왔다. 본고에서는 이를 국 왕의 자격, 국왕의 정치행위, 국왕의 폭정에 대한 대응 등으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첫째, 국왕의 자격으로 한국설화에서는 풍수담 등을 통해 국왕은 하늘이 정한다고 생각했으며, 중국설화에서는 국왕은 비범한 ‘능력’ 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둘째, 국왕의 정치행위에 대해 한국설화는 남의 아내를 약탈하는 경우 폭정도 나타 나지만 암행을 통해 민정을 살피고 백성의 소원을 들어주는 선정(善政)이 주를 이루었다. 중국설화에서는 선 정을 베푸는 설화는 많지 않았으며, 폭정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왕위 유지를 위한 경우가 가장 많았고 기타 재물과 수명연장 등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데 국왕의 권세를 활용하곤 하였다. 셋째, 국왕의 폭정에 대한 대응 으로 한국설화에서는 대응자가 주로 백성이며, 국왕을 물리치거나 죽이는 경우가 많았지만 중국설화에서는 대응자가 공자, 보살 등 초월적 존재이거나 재상, 주지 등 높은 지위의 인물들이 많았고 물리치고 죽이는 경우 보다 국왕을 조롱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외에 국왕 자신도 모르게 다른 혈통이 후계자가 되게 하는 가혹한 징 치의 양상도 보여주었다. 본고에서는 한국설화에서의 국왕은 왕위 찬탈에 대한 두려움이나 재물과 수명에 대해 욕심낼 필요 없이 백성의 안녕만을 걱정하면 되는 안정과 부귀를 지닌 존재로 여겨진 반면 중국설화에서의 국왕은 백성을 챙기기에 앞서 자신의 안전과 위상부터 확고히 해야 하는 부족한 존재로 인식하였음을 밝혔다.
This thesis addresses both commonalities and differences in perceptions about kings as shown in the folk-tales of China and of Korea. A king was a pivotal entity in society presiding over his kingdom in the Middle Ages. In this respect, the perceptions of a king would enhance the understanding of a country. Comparisons of folk-tales about kings in China and kings in Korea would shed light on how kings were regarded in their respective countries. Furthermore, folk-tales, jointly compiled by the hoi polloi, would unveil how the grass-roots of society viewed the kings unlike history books and would contribute to expanding the depth and breadth of understanding of both countries by revealing how the general public thought about their kings. This study is based on a total of 84 volumes of “The Series of Korea’s Literature of Oral Traditions” and a total of 40 volumes of “The Complete Works of Chinese Folk-tales.” It compares the two countries’ folk- tales in various aspects of a king’s qualifications, political actions and autocratic rule. According to Korean folk-tales, a king was considered to be chosen by heaven as shown in tales of geomancy. In Chinese folk-tales, a king was to have an extraordinary “ability.” Korean folk-tales mainly depicted the king as a just ruler who monitors and listens to his people, travelling incognito. Chinese folk-tales were short on this point and even if they were not, kings took precedence over people. Korean folk-tales were characterized by kings who took someone else’s wife as his, while Chinese folk- tales put emphasis on kings maintaining their royal power, using their authority to pursue fortunes and longevity. Korean folk-tales pit ordinary people against tyranny, leading to the defeat and killing of kings. In contrast, Chinese folk-tales show supernatural beings such as Confucius and Buddhist saints or people existing in high social echelon such as prime ministers and chief Buddhist monks challenging the authority of kings. In Chinese folk-tales, kings were ridiculed rather than defeated and killed. Sometimes thrones were usurped by others unbeknownst to the king. Korean folk-tales described kings as a being whose sole responsibility was to take care of the people without fear of usurpation and without having to worry about wealth or longevity thanks to their stable grip on power, while Chinese folk-tales characterize kings as beings preoccupied with their safety and power without regard to people’s welf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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誠信交隣의 表象性과 淸見寺의 매화 - 使行錄을 중심으로 -

진영미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0집 2014.06 pp.447-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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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7년에 시작된 통신사행은 1811년까지 총 12차례 이루어졌다. 12차례 통신사행 가운데 京都까지만 다녀온 1617년 사행과 對馬島로 사행 장소를 바꾼 1811년 易地通信을 제외한 나머지 사행은 사행 때마다 통신사가 반 드시 세이켄지를 들르거나 지나갔다. 특히 1607년, 1624년, 1643년, 1655년, 1711년, 1748년, 1764년 사행 때는 세이켄지에 머물거나 잠시라도 들러 이전 통신사들이 남긴 옛 자취와 함께 境內 물상들을 구경하고 그 느낌을 다시 시문으로 남겼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세이켄지와 관련하여 통신사들이 남긴 약 200여 년 동안의 사행록 에 나오는 ‘梅花’라는 경물에 초점을 맞추어, 세이켄지의 매화가 통신사들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 그리고 세 이켄지의 매화가 세이켄지의 경물 나아가 세이켄지에 남아 있는 통신사들의 옛 자취와는 어떤 관련성을 지니 고 있는지, 아울러 세이켄지의 매화가 갖는 상징적 의미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다. 결과, 세이켄지의 매화는 조선과 일본 양국의 誠信交隣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구체적 사물로 表象化된 것으로 상황에 따라 때로는 老梅나 老査香梅로 때로는 落梅나 蟠梅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곧, 세 이켄지 경내 매화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和好의 뜻이 담긴 老梅이면서, 동시에 세이켄지의 옛 자취[이전 통 신사들이 남긴 陳迹]에 대한 통신사들의 새로운 감회가 서린 老査香梅이기도 하고, 때로는 세이켄지를 방문 하지 못한 아쉬움을 드러낸 落梅이기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세이켄지의 매화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통 신사들이 그리워했던 蟠梅로도 형상화되었다. 역사적 사실이 경물과 함께 어우러져 문학이라는 장치와 결합 하게 되면, 그 사실은 자연과 인공의 힘에 의해 시공을 뛰어넘어 전해지면서, 미적 가치 또한 더욱 상승하게 됨을 알 수 있다.
1607年に始まった通信使行は1811年まで計12回実施された。12回の通信使行のうち、京都まで行った1617年 の使行と対馬島へと使行地を変えた1811年の易地通信を除いた残りの使行は使行時の度に通信使たちが必ず この清見寺に寄って行った。特に1607年、1624年、1643年、1711年、1748年、1764年の使行時は、清見寺に 宿泊するか、短時間でも立ち寄って、以前通信使たちが残した面影とともに、境内の景観を見物し、感じた ことを再び詩文にして残している。したがって、本稿では清見寺と関連し、通信使たちが約二百年にわたっ て残した詩文のなかに出てくるその時々の「梅花」に焦点を合わせ、清見寺の梅花が通信使たちにいかに近づ いてきたのか、またその梅花がもつ象徴的な意味は何なのか。とともに、清見寺の梅花が清見寺の折々の景 観、さらには清見寺に残っている通信使たちの昔の痕跡といかなる関連をもっているかなどについて簡単に 考察したいと思う。1607年、徳川家康は壬辰倭亂(文禄・慶長の役)により敵国になった朝鮮に和親を要請し、 国境回復を実現し、朝鮮の通信使一行に清見寺を宿所として提供した。通信使たちが江戸に向かう途中、は じめて清見寺に立ち寄ったときにしても、梅花は勿論、境内の景観のうち何一つ通信使たちの視野に入って きたものはなかった。事実、1607年は壬辰・丁酉という二つの乱が終わってから何年も経っておらず、江戸幕 府もまた、成立してからいくらも経っていない時なので、通信使たちは再度の侵攻情報の収集と戦乱中に連 れていかれた被擄人の送還という責務を負いながら、内心では日本への警戒を緩めなかった時期である。こ うした状況で、家康は通信使たちが清見寺に留まっている間、「和好之意」を引き続きあらわし、続いて帰国 の際には自分が留まっている駿河府中の駿府城に通信使たちを招待し、自ら接見しただけでなく、それに前 だち専用御座船五隻を出し、通信使をしてそれに乗り、清見寺の沖である駿河湾を観光できるよう便宜を提 供してもいた。こうした家康の誠信相接の真心により通信使たちの警戒心は弱まり、同時に江戸での国書伝 達という使行の任務をすでに終えた後なので、心にも余裕が生じたからなのか、江戸に向かうときには見え なかった清見寺の境内の景観、なかでも特に家康が幼年時代自ら接木したという「老梅(臥龍梅)」が通信使た ちの視野にはじめて入ってきた。1624年の通信使たちは江戸に向かう12月7日と、江戸で国書を伝達し、戻 って行く12月28日に清見寺に泊っている。副使、姜広重の󰡔東槎錄󰡕に収録されている12月7日の記録を見 ると、年輪を重ね、幹は肌理が荒く、曲がった梅の老木が庭の中を百歩余りほど長く枝を延ばし、枝ごとに 梅の蕾をつけ、今にも咲きだしそうで咲きださない、そればちょうど陽の光の下に老いた龍が横たわり鱗ご とに光を発しているのと似ていると記した。躍動感溢れる描写だ。捉えた景観のなかに感興と生気が溢れて いる。清見寺の「梅の老木」が発する香りは、ちょうど蕾が今にも開こうとする瞬間であったからかも知れな い。また一方では、それに先立つ1607年の通信使行時に呂祐吉、慶暹、丁好寬の三使臣がここ清見寺に宿泊 し、詠んだ三篇の詩が壁に掲げられ以前のまま残っており、そのうえ、この時には上の三人のうち呂公だけ が生存しており、残りの二人はどちらもなくなり、目に入ってくるそれらの詩が人々をして感懐を抱かせた からだろう。姜広重は清見寺の「老梅」を見た瞬間、梅花に感情移入し、鼻先に梅の香りが漂ってきて、その ため清見寺の境内にある梅花のイメージが「老梅」から「老査香梅」へと変わったいる。1607年の通信使行時、清 見寺の梅が徳川家康の「和好之意」をこめた、すなわち「信」を表象化した古木というイメージと「文字香」を表象 化した香りのイメージとしての「老査香梅」へと変わったことがわかる。1963年の通信使行時には、清見寺か らさらに十里ほど行ったところに駅を設置した。駅を清見寺に置かなかった理由について任絖は、1607年の 使行と1624年の使行時、清見寺の施設に痛んだ所があってそうしたのではないかと彼なりに診断を下してい る。こうして、その情状は快くは受け入れられないが、我が国の人たちもまた、自らの行動に慎重さが足り なかったことに恥かしい気がないはずがないと述べている。二つの国が交隣することは恭敬の禮があり、真 心のこもった信があってのことなのだが、それが行き違ってしまったと思われる。両国間の誠心相接が行き 違ってしまうことで、清見寺の景観と先人たちの面影を全く見ることができなくなり、結局そのために、 1936年の使行当時の清見寺に関連した詩文がほとんど残されていない。僅かに残っている金世濂の詩を見る と、「落梅清見寺」と形象化されており、清見寺の梅花を見て描写した「老梅」や「老査香梅」とは詩的雰囲気が 全く異なっていることがわかる。正月は時期的に見て、梅の種類によっては、どうかすると梅花を見ること の出来る時期でもある。そして、詩のもつ許容性により、たとえ梅花が咲いていない状態であっても、梅花 の姿を詩的に形容することができる。だが、金世濂の当時の心境はそうはできなかった。たとえ、梅花が咲 いている時期だとして異国での愁いに沈んだ鬱積した心情では、その上、清見寺を訪ねることもできない状 況では「落梅」がお似合いだったのだろう。1764年の通信使行時に製述官の南玉が記した󰡔日観記󰡕の2月11日 付の使行記録の文脈を見ると、以前の面影-景観-面影-景観の順で続きながら、以前の面影と景観との間に間 隙がなく、自然に混一していることがわかる。以前の面影と景観の混一は「東側の寮舎の潜龍室という扁額は 金佐丞の揮毫で、池に接しており、ひじょうにきれいですっきりしていたと述べているのは、扁額は已に以 前の使行が残した一昔前の面影としての扁額であることを越えて、一つの景観としての扁額なのだ。扁額の 景観化である。このようになると、通信使たちが残した昔の面影は、今や清見寺の境内の景観のなかの何か の異物ではなく、まさに清見寺の境内の景観となったと言えるだろう。そのため、使行時の度に通信使たち は清見寺に行きたく思い、特に1764年の使行時には、早朝から雨がしきりに降り、終日止むことがなく、夜 遅くまで上がらない荒れた天候のなか、雨に濡れることもいとわずに清見寺の境内にある池をめぐりながら 、滝を眺め、花と樹木の回りを隈無く歩きまわったのだ。通信使たちは清見寺之境内に留まることだけでは 満足せず、清見寺を出てからも梅花を懐かしんだ。1624年の通信使行時、副使の姜広重は翌年の1月10日、 守山に泊り、大津に向かいつつ、湖に映った膳素城の天守閣を眺めつつ、清見寺の「蟠梅」を想い浮かべた。 1764年の通信使行時、製述官の南玉は󰡔日観記󰡕の「総記」で「駿河州」について紹介しながら、清見寺の蟠梅 がきわめて飛び抜けており、1811年の易地通信時の書記の李明五は対馬で李顕相、松崎慊堂などと筆談を交 しながら、今回の使行で清見寺の梅と琵琶湖とを見られなかったことが残念でならないと記している。以上 で見てきたように、清見寺の梅は朝鮮と日本の両国の誠信交隣という抽象的な概念を具体的な事物に表象化 したものであり、状況により、時には 「老梅」 や 「老査香梅」に、時には「落梅」や「蟠梅」などにと、多様に表現 されていることがわかる。すなわち、清見寺の境内の梅は徳川家康の和好の意思がこめられた老梅でありつ つ、同時に清見寺の以前の面影への通信使たちの新たな感懐がにじんだ「老査香梅」でもあり、時には清見寺 を訪問できない無念さをあらわした「落梅」にと形象化された。歴史的な事実が景観とあいまって文学という 仕組みと結合すると、その事実は自然と人工の力により、時空を飛び越え、伝わりながら、美的価値または いっそう上昇することになる。終わりに、清見寺の大方丈の前庭を埋めている梅花の香りが、今年六月、ユ ネスコ世界文化遺産に指定された富士山とともに、世界の人々のための平和を象徴するものとして永遠に続 くことを祈りた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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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隴西公族譜』에 실린 星州 李氏家 肖像畵에 대한 고찰

이상주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0집 2014.06 pp.48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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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隴西公族譜』와 거기에 부착한 4점의 이문건 선조의 초상화는 이문건의 친필 저술인『養兒錄』ㆍ『默休唱 酬』의 「雨中詠齋號」와 運筆法을 대조해본 결과 이문건의 친필작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 초상화를 모사해 놓은 부분의 한지를 방사선탄소연대를 측정하면 명확하게 판정된다. 현존 最古의 족보는 1476년(成宗 7年)에 간행된 安東 權氏 족보『成化譜』이다. 『隴西公族譜』는 이문건이 1545년 模寫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족보이다. 李文楗(1494~1567)은 1545년 『隴西公族譜』를 模寫하고, 1547년 지금 경북 星州 安峯寺에 봉안돼있는 그 선조 7명의 초상화를 模寫하여 『隴西公族譜』에 첨부했다. 이 중 李稷(1362~1432), 李師厚(1388~1435), 李 崇仁(1347~ 1392) 등 3명의 초상화는 남아있지 않고, 李長庚, 李兆年(1269~1343), 李褒(1287~1373), 李仁敏 (1330~1393) 등 4명의 초상화는 남아있다. 이 초상화들은 模寫本이지만 模寫한 연대가 확실한 초상화로 현존 하는 초상화 중에서 제작연대가 가장 앞섰다. 『隴西公族譜』에 모사해놓은 그 先祖 4명의 초상화는 얼굴을 그린 부분이 화폭 전체의 거의 절반이 된다. 즉 얼굴을 중심으로 그렸다. 4명의 눈빛과 얼굴 표정을 그린 것을 살펴보면, 傳神論을 적용하여 그린 것으로 여 겨진다. 이제까지 알려진 바로는, 얼굴을 중심으로 그린 초상화는 조선 후기 尹斗緖(1668~1715)의 自畵像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문건이 모사한 얼굴 중심의 초상화는 윤두서의 자화상 보다 약 170년 정도 앞섰다. 종합해 볼 때 이문건이 모사한 그 선조 4명의 초상화는 傳神論과 초보적이고 미미하나 暈染法을 적용한 현존 최고의 顔面中心肖像畵帖이라 그 초상화기법적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Lee, Mungeon(李文楗 1494~1567)did copy the Nongseogongjokbo『(隴西公族譜)』in 1545 and added the Nongseogongjokbo through did copy his 7 ancestors' portraits who enshrined in Anbongsa(安峯寺) in Seongju(星州) Gyeongbuk in 1547 at that times. Among them, there aren't 3 portraits of Lee, Jik(李稷 1362 ~1432), Lee, Sahu(李師厚 1388~1435), and Lee, Sungin(李崇仁 1347~1392) but 4 portraits remain such as Lee, Janggyeong(李長庚), Lee, Jonyeon(李兆年 1269~1343), Lee, Po(李褒 1287~1373) and Lee, Inmin( 李仁敏 1330~1393) and so on. The portraits of 4 ancestors which did copy at the Nongseogongjokbo『(隴西公族譜)』, faces parts covered almost half in whole picture. That is to say, they are painted centering face. When I examine the paintings of the expression of 4 ancestors(先祖)' eyes and faces countenances, they seemed to paint through apply the Jeonsinnon(傳神論). Until now, it was found that the portrait of centering face is Yun, Duseo's self-portrait(自畵像) in the late Choson YI dynasty at first. The portrait of centering face by Lee, Mungeon copying about 170 years moreover preceded than Yun, Duseo(尹斗緖)'s self-portrait. Like this, they can be the most ancient(最古) book of paitings(肖像畵帖) and they were extant 4 ancestors' portraits of centering face by Lee Mungeon cop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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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江 趙瑗의 「三都賦」 硏究

윤호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0집 2014.06 pp.545-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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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江 趙瑗은 조선의 대표적 여류시인인 玉峰 李氏의 남편이며, 退溪 李滉과 쌍벽을 이루던 학자 南冥 曺植의 제자이며, 조선 중기의 이름난 문인인 竹陰 趙希逸의 아버지이고, 소설가로 유명한 拙修齋 趙聖期의 증조이다 . 이처럼 여러 사람과의 관계만 살펴보아도 흥미를 가질만한 인물인 그는 문학적인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하지 만 그에 대해서 아직까지 한 번도 연구된 바가 없다. 그의 작품은 독립적으로 전하지 않고, 󰡔嘉林世稿󰡕 속에 있는 󰡔雲江遺稿󰡕에 실려 있기 때문에 그의 유집이 일반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이것이 그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 않은 중요한 원인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 가운데 우선 이옥봉과 주고받은 것으로 보이는 여러 편의 시작품들은 이옥봉을 연구하는 데에도 중요한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고, 그 밖에 그가 남긴 시작품들은 문학적 전통이 강한 가학을 연 것으 로 눈여겨 볼 필요가 있고, 특히 그가 남긴 몇 편의 산문 가운데 「三都賦」는 주목을 요하는 것이다. 이 글의 전체적인 구조는 평양을 대표하는 浮遊子, 개성을 대표하는 發微先生, 그리고 한양을 대표하는 漢都 公子라는 가상의 세 인물을 내세워 각각 평양, 개성, 한양의 뛰어난 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 나간 왕조의 수도였던 평양과 개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유자와 발미선생의 논의는 조선의 수도인 한양을 대 표하는 한도공자가 이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한양의 뛰어난 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고구려와 고려의 수도인 평양과 개성보다는 조선의 수도인 한양이 뛰어나다는 것이지만, 궁극적으 로는 고구려 왕조나 고려 왕조보다는 조선의 왕조가 여러 가지 면에서 훌륭하므로, 영원하고 무궁하도록 이어 졌으면 하는 소망과 찬양을 겸한 작품이라 할 것이다. 이 「삼도부」는 조원이 아직 어렸을 적에 지은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삼도부」 계열의 작품 가운데 가장 길면서 작품성이 뛰어난 것이다.
I’ve been examined the contents and the structure of Cho Yuen’s Samdobu compared with Choi ja and Yi mok’s Samdobu, and tried to criticise them comparatively. Cho Yuen’s Samdobu is an etude which Cho Yuen wrote when he was young, but the quantity and quality of the work are far above those of a child that it is worth studying in diverse aspects. This work is similar to Choi ja and Yi mok’s Samdobu for taking a formation that is a conversation taken by imaginary people talking about three cities. However, in contrast to Yi mok’s Samdobu following Choi ja’s Samdobu taking the same names, it is worth paying attention that Cho Yuen’s Samdobu not olny used different names, but the length of the work is twice as long as Yi mok and Choi ja’s. It is no comparison to be made with its story’s detail and richness, which is consisted of the history and culture about the Dynasty whose capitals were three cities mentioned in the work. In the formation, it is a dialog of Buyooja representing KoKurye’s Capital Pyungyang, Teacher Balmi representing Korye’s Capital Kaesheng, and Hando representing Choseon’s Capital Hanyang. When the rich man and Teacher Balmi are talking about advantages of Pyungyang and Kaesheng relatively, Hando criticizes and shows negative opinions about them, but nobody raises rejections when he talks about advantages of Hanyang. This alluded the writer’s intention to show that Choseon’s Hanyang is way better than Kogurye and Korye’s Pyungyang and Kaesheng, and futhermore Choseon Dynasty is the best dynasty. I could confirm it with a peace song children sang and the final part he sang. In conclusion, this work is to praise Choseon’s Capital, but ultimately is to praise Choseon’s Dynasty that he hoped it could permanently exist.

7,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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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龍 體訓의 문학세계

김종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0집 2014.06 pp.577-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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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후기 문집으로 작가가 밝혀지지 않은 채『한국불교전서』에 수록된 『義龍集』의 작가를 밝히고 그 문학적 특징을 살펴본 글이다. 『의룡집』의 작가는 義龍 體訓으로 1820년대 초에 출생하여 1890년대 초에 입적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사의 스승은 枕松 戒彦(19세기 중후반)이며 대사의 주요 활동 공간은 범어사이다. 대사는 삶에 대한 회고와 성찰을 시에 담아내었고, 시를 인생의 회한을 풀어내는 매개로 활용하고 있어 효용 론적 시론을 실제의 시를 통해 표출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 대사의 시는 외적 사물에 대한 시적 탐구를 통한 서정성의 발현이 두드러진다. 동래지역의 관료들과의 교유시, 금정산과 범어사의 지역적 소재를 담은 시 는 이 문집의 지역문학적 가치를 담보하는 요인이 된다. 대사의 시에는 선적 사유보다는 일상에서 시적 탐구를 진행하는 시인의 면모가 더 부각되는 특징을 보여준다. 대사의 서정성이 충만한 문학적 성격은 다음 세대의 근대 서정시의 감각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근대와 전근대 문학의 지속과 비교 가능성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대사는 여러 불사에 모연문이나 중창기를 썼고 사찰계(甲契, 宗契)에 참여했으며 그 과정과 목적을 기록한 기 문(「임오갑헌답유공기(壬午甲獻畓有功記)」, 「종계서(宗契序)」)을 남겼다. 범어사가 근대에 포교 교육 종단 운 영에서 혁신적인 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던 저변에 다수의 사찰계를 운영해 왔던 범어사의 전통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대사의 기문은 이러한 상황을 일부 반영하는 것으로서 의의가 있다. 「범어사폐막조 건기(梵魚寺弊瘼條件記)」에는 19세기 중후반에 범어사가 당면한 경제적 상황이 반영되어 있고, 「범어사승군 등장(梵魚寺僧軍等狀)」에는 범어사 승군에 대한 관가의 대우가 어떠했고 그에 대한 범어사 차원의 대응은 어 떠했는지 당시의 현실 상황이 담겨 있다. 이를 통해 대사의 기문이 지니는 현실문학적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
This study attempted to identify the author of Euiryongjip (義龍集) included in The Complete Collection of Korean Buddhism (韓國佛敎全書) and to examine its literary characteristics. The writer of Euiryongjip is Euiryong Chehoon (義龍 體訓) who was presumably born in the early 1820s and died in the early 1890s. The Buddhist priest’s teacher was Chimsong Gyeeon (枕松戒彦. mid and late 19th century), and his main dwelling was the Beomeo sa Temple(梵魚寺). As the priest’s poems contain recollection of and reflection on his life and are used as a medium for venting out remorse of life, they may be considered to express the poet’s poetic view for the practical use of poetry. In addition, his poetry is remarkable in the manifestation of lyricism through the poetic exploration of external things, and the collection upgrades the value of local literature by its inclusion of poems written together with government officials in the Dongrae(東萊) area and those related to Mt. Geumjeong(金井山) and the Beomeo sa Temple. The priest’s poems are characterized more by the poet’s personality inclined to poetic exploration in his daily life than by Zen thought. What is more, his literary nature full of lyricism is significant in the history of literature in that it could lead to the sense of modern lyrics following just after him and suggests the possibility of continuance and comparison between modern and premodern poetry. Euiryong wrote Moyeonmun (募緣文-A Buddhist monk’s writing for encouraging donations and seeking the establishment of good relationships) and Jungchanggi (重創記-records on temple reconstruction) for various Buddhist projects, and was involved in Sachalgye (寺刹契-a mutual aid society of the temples) and left inscriptions recording its process and purpose. Considering the fact that the Beomeo sa Temple could wage innovative movements on missionary work, education, and the operation of the religious order based on the tradition of the temple in operating a number of Sachalgyes, the priest’s inscriptions are meaningful in that they reflect such a situation. Beomeo sa Pyemak Jogeongi (梵魚寺弊瘼條件記-Records on the evil practices of the Beomeo sa Temple and measures against them) reflects the economic situation faced by the Beomeo sa Temple in the mid and late 19th century, and Beomeo sa Seunggun Deungjang (梵魚寺僧軍等狀 Beomeo sa Temple monk army’s petition) describes contemporary situations related to how the government offices treated the Beomeo sa Temple monk army and how the Beomeo sa Temple responded to the treatment. These support the value of engagement literature contained in the priest’s inscriptions.

7,800원

21

학봉 김성일의 대명사행문학 연구

윤세형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0집 2014.06 pp.613-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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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학봉 김성일의 1577년 중국사행기록을 살펴보았다. 학봉은 사행기록을 ①사행시로 되어있는 <朝天錄>, ②7언 장편으로 되어있는 <朝天紀行>, ③산문으로 기록된 <朝天日記>의 세 가지 형태로 남겼다. <朝天錄>에 있는 중국사행 관련 한시는 총 34題 41首로 忠과 孝 사이에서의 내면갈등을 드러낸 작품이 많았다. 나랏일을 완수해야 한다는 공적인 의무감과 고향에 계신 부친을 생각하는 사적인 마음 사이의 갈등이었다. 그렇지만 사신의 업무를 잘 완수한 후 복명숙배 하겠다는 결의를 나타내었다. <朝天紀行>은 한양에서 출발해 북경에 도착하기까지의 연로변의 풍경과 감회를 경쾌하게 읊어 사행의 전체적인 景槪를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북경에서는 궁궐의 웅장함, 관원들의 활기찬 모습, 조정에 인재가 많음, 그리고 각국 사신단의 朝會풍경을 묘사하였는데, 각국 사신단의 朝會를 ‘王會’로 표현하여 당시대의 사대의식의 한계를 노출하기도 하였다. <朝天日記>에서는 북경체류중의 종계변무활동과 이어서 북경 往還중의 중국체험과 인식을 살펴보았다. 종계변무의 실무는 주로 통사를 통해 이루어졌지만 학봉이 章奏文에 능하여 종계변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음을 崔晛의 기록을 통하여 확인하였다. 학봉은 북경체류시 門禁으로 인해 주로 숙소에서 칩거하며 종계변무에 힘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경往還중에는 뇌물요구로 사행길이 지체되기도 하였는데 학봉은 적극적으로 중국정세에 대해 탐문하였다. 고구려의 옛 성에서는 우리 故土에 대한 역사의식을 느꼈고 정학서원에서는 중국 변방의 부패상과 유학의 침체함을 목도하였다. 군사를 내어 호송을 요청할 정도로 당시 산해관 밖 요동사행길은 달적이 수시로 출몰하는 위험한 길이었다.
This paper is to examine Hakbong Kim, Seongil’s envoy travel literature to China in 1577. Hakbong left his envoy travel records in three styles such as ① in the form of envoy travel poem, ② in the form of long poem being composed of 7 letters per line and ③ in the form of a prose. Chinse poems about envoy travel to China in were 41 pieces in total. And many of them expressed inner conflict between loyalty and filial piety. It was conflict between public duty to complete state affairs and private mind of considering his father in his hometown. However, he indicated his mind trying to obey King’s order by completing his duty as an envoy first. In , he expressed landscape alongside the travel routes from Hanyang to arrival in Beijing and his feelings rhythmically, which enables us to grasp overall outline of envoy travel. In Beijing, he expressed the grandeur of palaces, vibrant look of government officials, plenty of talent in the palace and landscape of morning meetings of envoys from various countries. But his expression of morning meetings of envoys from various countries as ‘King’s meeting’ revealed his limit of worship of the powerful that was common at that time. In , he expressed his Jongkyebyeonmu activities (request to change incorrect record of Lee, Sungkye’s family history?) during his stay in Beijing and examined his experience in China and his recognition distinctively. Actual work of Jongkyebyeonmu activities were mainly performed by Interpreters. But I could confirm that because Hakbong was familiar with government documents, he did the leading role in Jongkyebyeonmu activities. While Hakbong was staying in Beijing, he mainly stayed in his lodging in seclusion because of confinement and endeavored for Jongkyebyeonmu activities. When he returned from his visit to Beijing, Hakbong obtained information about the political situations of China actively. When he saw the old castle of Goguryeo, he felt a sense of history of our old territory. And when he saw broken-down building at Jeonghakseowon, he grasped corruption in the frontier of China and recession of Confucianism. Because of demand of bribe, envoy travel was often delayed. The envoy travel course in Yodong outside of Sanhaegwan at that time was very dangerous roads because of frequent appearance of thieves.

7,800원

22

장외시화(場外詩話)

南相鎬, 詹杭倫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0집 2014.06 pp.649-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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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0원

부록

23

휘보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0집 2014.06 pp.663-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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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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