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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상고전연구 [Yeol-sang Journal of Classical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열상고전연구회 [Society of Yol-Sang Academy]
  • ISSN
    1738-2734
  • 간기
    격월간
  • 수록기간
    1988~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한국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810 DDC 810
제48집 (21건)
No
1

4,000원

기획의도

2

도시재생사업과 인문학의 만남

유춘동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8집 2015.12 pp.9-10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에 따라 개인회원에게 무료로 제공됩니다.

기획논문 : 도시재생사업과 인문학의 만남

3

都市再生事業에서의 인문학의 역할과 방향

김기덕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8집 2015.12 pp.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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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인문학 및 사회학의 활용 분야에 있어 가장 뜨거운 연구주제 중의 하나는 ‘도시재생’이다. 흔히 ‘지역재생’, ‘창조도시’, ‘소프트시티’, ‘역사문화 거리조성’, ‘마을만들기’ 등으로 표현되는 것들은 비록 대상 지역의 차이는 있지만, 크게 보면 같은 방향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본 학술대회의 기획의도에서 제시되었듯이, 이러한 사업들이 지나치게 都市․工學的인 입장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시도들이 성공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인문학과의 연계가 각 단계마다 지속적으로 관철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제는 인문학자의 역할을 요청하는 것이면서, 또한 인문학자의 책임을 수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본 글에서는 도시재생사업에 있어 인문학의 역할을 제시하여 지속 가능한 도시재생의 방향의 일단을 모색해 보고자 하였다. 기존 선행 연구업적을 참고하면서, 필자는 도시재생사업에 있어 인문학의 역할과 방향을 ①팩트(Fact)의 힘, ②원형(Archetype)과 맥락(Context)의 힘, ③재해석(Reinterpretation)과 융합(Convergence)의 힘의 3가지로 제시해 보았다.
Currently, one of the hottest study subjects in the use of liberal arts and sociology is 'urban regeneration'. There may be a difference in what are expressed as ‘regional regeneration’, ‘creative city’, ‘soft city’, ‘making of the historical and cultural street’, ‘village making’ and the like according to competent regions. But it can be said that they pursue the same direction in a broad sense. But as well presented in the intention of planning the academic conference, it can be pointed out that there is a problem that these projects are implemented from an excessively urban․engineering position. Accordingly, for these attempts to be successful, their linkage with liberal arts, among other things, should continually be kept at each stage. In this sense, this task requires the role of liberal-arts academicians and their responsibility as well. This study attempted to present the role of liberal arts to extend them to the urban regeneration project and ultimately to pursue the direction of sustainable urban regeneration that can keep the quality of life. And it attempted to present the role and direction of liberal arts in the urban regeneration project as three forces such as ① the force of facts, ② the force of the archetype and context and ③ the force of reinterpretation and convergence by reference to existing previous studies.

5,100원

4

전주시 역사문화자원의 활용과 도시재생 - 전주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

홍성덕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8집 2015.12 pp.2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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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 사이에 가장 주목할 만한 도시재생의 사례로 손꼽을 수 있는 곳 중의 하나는 전주한옥마을이다. 1977년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된 이후 1995년 미관지구가 해제됨에 따라 무분별한 개발이 예정되었던 공간이 전통문화 지구단위 계획으로 단순 ‘보존’에서 특색있는 ‘개발’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본 논문은 한옥보존지구 지정으로 슬럼화한 한옥마을이 한국을 대표하는 ‘한옥마을’로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본 것이다. 전주한옥마을의 개발은 한옥보존지구의 해제와 2002년 한․일월드컵 개최도시 지정이 맞물리면서 기획되었다. 지구단위 계획을 통해서 재개발된 전주한옥마을의 성공요인은 한옥이라는 전통 주거공간과 조선왕실문화, 유교문화, 종교문화 등 다양한 역사문화자원이 반경 5백미터 이내에 밀집된 역사문화자원이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전통문화중심의 도시화 사업을 전략적으로 추진한 결과이기도 하다. 사업 추진 및 협력 주체로서 전통문화중심도시추진단은 모범적인 민관거버넌스였다. 한옥마을 공간 내 역사문화자원의 활용은 진정성을 강화하는 방향, 전통문화상품 개발 및 판매를 촉진하는 상품화 확대방안, 숨어 있는 콘텐츠를 발굴 알리는 체험과 교육의 콘텐츠 구축방안 등 세 영역으로 진행되었다. 공공영역이 민간영역의 활성화를 뒷받침하는 균형점을 이루었다. 역사문화자원의 활용은 도시정체성으로 연결되었다. 한옥마을 내에 담은 역사문화자원과 전통문화는 전주의 도시정체성으로 발전해 나갔다. 한옥마을의 공간적 확대가 불가피 하며 그 대상은 마을 밖의 구도심이다. 전라감영 복원으로 대표되는 도시재생이 이어질 계획이다. 한옥마을의 성공은 새로운 도시재생 공간의 득이 될 수도 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도시재생의 성공여부는 공간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This is a study of the urban regeneration process of Jeonju Hanok Village which had gradually become slums while it had remained as a hanok preservation zone for 20 years. Jeonju Hanok Village seems a dense area where over 700 hanoks are clustered, but, actually, it is not a traditional one but a modernized urban town. In addition, there are various cultural resources clustered from loyal families of the Joseon Dynasty, confucianism, and other religions. The real urban regeneration of Jeonju Hanok Village was begun when Jeonju was designated as a city of the 2002 FIFA Worldcup Korea-Japan. The urban regeneration proceeded focussing on three directions: to keep the authenticity of the cultural heritages in the village, make the traditional cultural resources goods favourable on the market, and develop relatively unknown contents. During the urban regeneration project, the private and public joint governance, like the Project Team of Traditional Culture-centered City, was a critical factor of its success. As a result, Jeonju Hanok Village has grown up to a famous tourist destination which over six million tourists visit a year. For everlasting success of the village, there have been lively discussions on the identity of the city. Based on the Jeonju citizens' consensus of 'the Jeonju spirit', urban regeneration of the parts which have been lagged behind is on the way again. The success stories of Jeonju Hanok Village have suggested new visions towards urban regeneration projects, and the success of new projects is as clear as day light.

7,500원

5

역사문화환경을 활용한 부산 도시재생의 특성과 지향

강동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8집 2015.12 pp.6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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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지난 10여 년 동안(2004~2015) 부산에서 진행된 역사문화환경과 관련된 각종 재생사업들에 대한 특성과 지향점에 대한 분석을 기본 목적으로 한다. 이의 달성은 도시 전반에 걸쳐 진행되었던 각종 재생활동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 부산이 추구하여야 할 도시재생사업의 방향 재설정의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한다. 부산의 경우,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재생사업의 대상으로 활용하는 시도는 전국 어느 도시보다 많은 것으로 분석되며, 최근 산복도로와 원도심을 중심으로 한 재생사업의 성과도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표면적인 결과에 비해, 재생사업의 근거가 되는 역사문화환경들이 왜 소중하고 또한 미래에도 지속가능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의 심도는 크게 부족한 상태이다. 이에 대한 방향성 타진이 본 연구의 출발점이었다. 본 연구는 지난 10여 년 동안 역사문화환경과 관련된 52건의 재생사업들을 분석하였다. 이 중 재생과정에 있어 특이성과 양면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6개소 사업의 재생과정에 대해서는 미시 분석을 하였다. 이의 결과들을 종합화하여 역사문화환경과 관련된 부산 도시재생의 경향과 특성을 도출하였다. 결론적으로, ‘도시조직,’ ‘생활․산업유산,’ ‘문화경관’ 등 세 가지 요소들이 부산 역사문화환경의 핵심적인 근원(체)이라는 점을 규명하였고, 이에 근거하여 ‘일상의 삶 개선,’ ‘맥락 보존,’ ‘부산다움의 발굴’을 역사문화환경과 관련된 부산 도시재생의 지향점으로 정립하였다. 이와 함께 지향점 실천의 수단으로 ‘부산 근대성 보존재단의 설립’과 ‘부산유산 개념의 제도화’를 결론으로 도출하였다.
This research analyzes the characteristics and direction points of the urban regeneration project that have taken place in Busan’s historic cultural environment for last 10 years(2004-2015), and a new aim of urban regeneration projects is proposed based on our analysis. Busan is considered to be the most attentive city in utilizing its history and culture as the target of urban regeneration project, and recently many results in regeneration projects have been observed in Snabockdoro(Hillside Road) and historic urban core. However, despite the results, an intensive study of historic cultural environments’ meaning and their sustainability is still lacking for supporting regeneration projects. For this reason, we analyzed more than 50 urban generation projects related to historic cultural environments executed within past 10 years, and we propose a new direction for future urban regeneration projects. In fact, our research conducted a microscopic analysis on Yeongdo Bridge, Camp Hialeah, Youngjudong Step Alley, Daecheong-Ro, Dong River, Abandoned Railroad of Donghaenambu Line, which exhibited uniqueness and double-sidedness during its regeneration process. Upon summarizing our results, the trends and characteristics of urban regeneration process in Busan were acquired. The results show that 1) urban fabric, 2) living and industrial heritage and 3) cultural landscape are the three core elements that Busan’s historic culture environments are made of. And based on this result we propose an 1) improvement of daily life, 2) preservation of context and 3) discovery of “Busan-ness” as the new goal of Busan’s urban regeneration projects related to the historic culture environments. As a method to realize this new direction, we suggest an 1) establishment of the Busan Modernity Preservation Foundation and 2) institutionalization of Busan Heritage.

7,500원

6

역사문화유산과 도시재생 - 독일 루르지역 엠셔공원의 사례 -

신명훈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8집 2015.12 pp.97-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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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루르지역은 석탄과 철을 중심으로 한 중공업지역으로서 독일 산업화의 상징적 존재였다. 1960년대 이후 기술의 발전과 세계경제의 구조적 변화로 인해 루르지역은 경기침체를 겪으며 대량실업, 환경오염, 도시의 침체, 사회적 갈등과 같은 많은 문제에 직면하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1989년부터 십년동안 진행된 엠셔공원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한 루르지역의 도시재생은 그 방향성과 목표, 집행방식, 주민들의 참여, 산업역사문화유산의 활용 등에 있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사례가 되었다. 지역이 직면한 포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로 시작된 루르지역의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지속가능성, 생태성, 새로운 산업으로의 전환, 사회적 통합 등을 목표로 하였다. 도시재생으로서의 엠셔공원 프로젝트는 엠셔강을 중심으로 한 광대한 지역에 중공업시대의 산업문화유산을 살린 경관공원과 테크노파크를 건립하고, 오염된 엠셔강을 재자연화하며, 문화와 예술을 생활 속에 스며들게 함으로써 도시재생의 새로운 모델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정부와 전문가그룹, 시민사회와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을 통해 진행됨으로써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도시문제에 대한 장기적이고 통합적인 접근, 주민들의 민주적 참여, 산업문화유산의 적극적 활용, 지역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고양시키기 위한 다양한 접근 등으로 오늘 한국의 도시재생에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The Ruhr region in Germany was a symbol for German industrialization with its coal and steal industry. However it confronted with many problems such as mass unemployment, environmental pollution, urban decline, and social conflicts due to the technical development and structural changes of the world economy since 1960s. The IBA Emscher park project was an attempt to meet such problems, which attracts attention from the whole world for its oranization, goals, participation of the citizens, reuse of industrial heritage. Its main goals as an urban regeneration project were sustainability, ecology, transformation of the economy and social integration. The Emscher park project as an urban regeneration was estimated to have created a new model for urban regeneration through the building of landscape parks and techno parks by conservation and reuse of industrial heritage, renaturalization of the contaminated Emscher river system, and revitalization of culture and arts in everyday life of the citizens. Its success lies primarily in the cooperation and participation of all involved subjects like the local governments, experts groups, civil society and citizens. It can have meaningfull implications for Korean practice of urban regeneration through its characteristics of a longterm and holistic approach to the urban problems, democratic participation of citizens, conservation and reuse of the industrial heritage, and measures for promoting of identity and pride of the region.

7,500원

7

대구 역사공원과 고전문학의 연계 방안 연구

서혜은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8집 2015.12 pp.131-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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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대구의 경상감영 공원, 망우당 공원, 달성 공원을 역사공원으로 규정짓고 이 세 공원에 고전문학을 연계하는 방안과 기대 효과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을 연구의 목적으로 한다. 대구의 세 역사공원에서는 고전문학을 연계할 수 있는 환경이 이미 조성되어 있다. 경상감영 공원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풍속 재연 행사와 공원 인근에 있는 대구문학관의 소설 낭독 공연, 망우당 공원 내 임란의병관에 전시되어 있는 곽재우와 영남 의병들의 문집과 일기 그리고 달성 공원 내 대구향토역사관에 소개 및 전시되어 있는 서거정의 <달성십경>과 서사원과 최동보의 문집이 그것이다. 이렇게 이미 고전문학을 연계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경상감영 공원에서는 판소리와 고전소설 낭독 공연을, 망우당 공원에서는 곽재우가 지은 한시와 곽재우 관련 서사를, 달성 공원에서는 달성 서씨의 설화와 서사원이 지은 한시의 활용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방안들이 구체적으로 실현된다면 경상감영 공원, 망우당 공원, 달성 공원이 역사공원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대구의 지역성을 쇄신하는 기반이 됨과 동시에 침체된 고전문학이 대중성을 확보하고 영남학이 발전되는 토대가 될 수 있다.
This paper is on the connection plan and expected effect of historical park in Daegu and classical literature. Kyungsang-Gamyeong park, Mangwoodang park, Dalseong park are historical park in Daegu. And these parks are related the Joseon Dynasty period. Therefore the connection of these three parks and classical literature is possible. Kyungsang-Gamyeong park, Mangwoodang park, Dalseong park are created environment that is able to connect classical literature. Every year repeat performance event of manners and customs is regularly opened from 2006 in Kyungsang-Gamyeong park. And novel reading performance is held from 2015 in Daegu Literature Museum that is neighboring Kyungsang-Gamyeong park. Then there are Gwak Jae-Woo and Yeongnam patriotic soldiers' diary and anthology at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Museum of patriotic soldier in Mangwoodang park. Furthermore is introduced and there are Seo Sa-Won and Choi Dong-Bo's anthology at Daegu Folk Museum of History in Dalseong park. So the connection of Kyungsang-Gamyeong park, Mangwoodang park, Dalseong park and classical literature is possible. Specific plan is as follows. Pansori and classical novels reading performance are able to connect in Kyungsang-Gamyeong park. Then Gwak Jae-Woo's Chinese poem and narration about Gwak Jae-Woo are able to use in Mangwoodang park. Specially literary work is have to stand out Gwak Jae-Woo's faithful mind. Because Gwak Jae-Woo was Yeongnam patriotic soldier. And Dalseong Seo's folk tale and Seo Sa-Won's Chinese poem. These three historical parks in Daegu and classical literature are will establish identity of historical park and renovate locality. And classical literature are will retain popularity and progress study of Yeongnam.

7,300원

일반논문

8

Transnational prejudices - Sino-Korean mutual perception through Japanese lenses -

Samuel Guex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8집 2015.12 pp.163-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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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20-30년대에 한국을 방문했던 두 중국학자인 판 양야오(Pan Yangyao)와 후앙 양페이(Huang Yanpei)의 글과 후앙 양페이의 글에 반박하여 1934년 저서를 낸 이시영(李始榮)의 글을 분석함으로써, 식민지시기의 한중 상호 관념을 고찰하였다. 중국인의 한국인들에 대한 평가는 한국인들은 게으르고 신뢰할 수 없다고 여겼던 일본의 고정관념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이 저자들의 눈에는, 한국인의 결점들은 대개 일본인과 연결된 자질들을 고양하기 위해 대조군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여기서의 대조는 중국과 반대된 것으로서 한국을 표현하는 이분법이 아니라, 일본과 반대된 것으로서 한국을 바라본 것이었다. 즉, 한국은 중국의 민족의식이 불러일으켜지지 않는다면 중국에 일어날 수 있는 것에 대한 경고로서 표현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국인이 식민지 한국을 관찰하고 묘사할 때에, 그들의 내러티브는 사실상 보다 중국에 대한 것이었다. 이시영이 후앙 양페이를 반박한 글은 중국의 타자성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같은 방식의 도치를 보여준다. 이시명은 중국의 결점들을 강조하기 위해 일본의 특성들을 칭송하였다. 중국은 한국의 반대된 것으로서가 아니라 일본의 반대된 것으로서 표현되었다. 다시 말해, 식민지 시기 한중의 상호 관념은 단순히 한국인들의 중국 경험이나 중국인들의 한국 경험이라는 직접적 경험의 결과가 아니라, 중국과 한국에 대한 일본의 관점과 고정관념의 산물이기도 하였는바, 이것이 중국인과 한국인들에게 그들 상호간의 타자성을 설명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This essay focuses on the mutual perception of Koreans and Chinese during the colonial period through the analysis of writings from Pan Yangyao and Huang Yanpei, two Chinese intellectuals who visited Korea in the 1920s and 1930s, and from Yi Siyǒng, who published in 1934 a rebuttal to Huang Yanpei’s book. Chinese assessment of Koreans draws heavily on the Japanese stereotyped view of Koreans as lazy and untrustworthy. In those authors’ eyes, Korean flaws often seem to serve as a contrast to enhance qualities associated with the Japanese. Here inversion is not so much a dichotomized binary with Korea as the inverted China, but rather with Korea as an inverted Japan. In other words, Korea is presented as a warning of what could happen to China without an arousing of Chinese national consciousness. Consequently, while the Chinese are observing and describing colonial Korea, their narrative is actually more about China. The rebuttal of Huang Yanpei by Yi Siyŏng displays the same pattern of inversion in figurating Chinese alterity. Yi praises Japan’s qualities in order to underscore Chinese shortcomings. China is not so much presented as an inverted Korea than as an inverted Japan.In other words, Sino-Korean mutual perception during the colonial period was not simply the result of direct experience in China for Koreans and in Korea for Chinese; it was also the product of the Japanese views and stereotypes on both China and Korea which were used as a means for Chinese and Koreans to figurate their mutual alterity.

5,700원

9

한ㆍ중 설화에 나타난 통치자 형상 비교 연구

김효림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8집 2015.12 pp.185-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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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의 문화는 오랫동안 한자문화권에 속하며 불교․유교․도교의 종교적인 배경에서 많은 유사성을 갖게 되었고, 유상성과 비례하여 이질성 또한 많이 생겨났다. 이에 본 연구는 한․중 설화를 다음과 같이 고찰하였다. 먼저 두 나라의 자료는 각국의 지역별로 신화․전설․민담 등의 모든 설화를 망라하여 조사되었으며, 자료 수집도 전국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비교 대상으로 정하였다. 또한 양국의 다양한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리적․사회적으로 비슷한 특성을 가진 수도권을 중심으로 연구하였다. 다음으로 건국을 한 통치자, 윤리도덕적인 통치자, 미행을 자주 한 통치자, 포악하고 잔인한 통치자, 미련하고 나약한 통치자의 형상에 대해 비교하여 고찰하였다. 그 결과로 첫째, 건국을 한 통치자의 형상에서는 한국의 이성계 설화와 중국의 주원장설화를 통해 두 통치자 모두 건국주로서 비범함과 신성성을 갖춘 설화가 등장하지만 역천(逆天)을 하여 이룬 건국이었기 때문에 부정적인 형상도 나타난다. 둘째, 윤리도덕적인 통치자의 형상에 있어서 한국은 통치사상과 유학사상이 밀접한 관계가 있어 ‘충과 효’를 중요시하고 그 중 가장 기본이 되는 ‘효(孝)’를 강조함으로써 통치자의 윤리도덕적인 면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중국은 효(孝)를 중시하는 통치자의 형상은 뚜렷하게 등장하지 않으나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통치하는 모습을 통해 윤리도덕적인 면을 강조하였다. 셋째, 미행을 자주 한 통치자의 형상에서 한국은 영웅적이며 절대적인 힘을 가진 통치자가 민심을 살펴 고난에 빠진 백성들을 구제하나 중국은 현실적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그것을 정치에 반영하는 냉철하고 이성적인 통치자의 형상이 나타난다. 넷째, 포악하고 잔인한 통치자로 한국은 반역에 실패한 통치자의 형상이 포악하고 잔인하게 나타나지만 중국은 반역에 성공한 통치자라도 그 포악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다섯째, 미련하고 나약한 통치자의 형상에서는 양국 모두 혼란한 시대에 통치를 했던 통치자의 형상이 미련하고 나약한 통치자로 그려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설화는 다양한 삶을 반영하고 있으며 주로 인류의 보편적 정서를 다루었으므로 삶을 대하는 진실성과 교훈을 전달하는 데 있어 그 교육적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보편성을 특성으로 하는 설화는 공통의 화소를 지닌 이야기가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다. 반면에 각 나라의 설화가 갖는 특수성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교육적으로도 비교문학적 연구를 통해 설화가 갖는 보편성 및 특수성을 보다 효과적으로 지도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The Culture of Korea and that of China have belonged to the culture area of Chinese character for a long time and have plenty of similarities from the religious background of Buddhism, Confucianism, and Taoism, whereas there have also emerged heterogeneous nature in proportion to their similarities. This study, hence, explored the tales of Korea and China as follows. First of all, the materials of two nations are determined as the comparison target because they are investigated with all stories from each region of each country such as myths, legends and fork tales, and the gathering of the data is conducted all over the country. Also, in order to overcome diverse differences within two nations, I researched with capital areas as the center which have similar characteristics geographically and socially. In sequence, I studied by comparison of the sovereign images, including the sovereign who founded a country, the sovereign who was virtuous, the sovereign who often shadowed, the sovereign who was vicious and brutal, and the sovereign who was bovine and vulnerable. First, as the image of the sovereign who founded a nation, both Korean Yi Seong-gye tales and Chinese Zhu Yuanzhang tales have the stories of a ruler establishing his country who was extrarodinary and sacred, yet there appeared some negative images since the foundation was against Heaven's will. Second, as the image of the sovereign who was virtuous, Korean stories emphasized the moral and ethical aspect of the ruler by stressing on ‘loyalty and filial duty’ and accentuating 'filial duty' which is the most fundamental duty among them, because Korean ruling idea had close relations with Confucian idea. However Chinese stories emphasized the ethical and moral point through ruling with the heart understanding other's agonies. Third, as the image of the sovereign who often shadowed, Korean ruler succoured people who had in trouble by his heroic and absolute power, meanwhile in China, there appeared the dispassionate and rational image of ruler who examine the society realistically and reflected it to his reign. Forth, as the sovereign who was vicious and brutal, the image of ruler who failed treason appeared tyrannical and cruel in Korea, yet in China, even the sovereign who succeeded treason also revealed clearly his viciousness. Fifth, as the image of the sovereign who was bovine and vulnerable, in both the two countries, the image of ruler who governed a country in a chaotic period was depicted as a sovereign of stupidity and frailty. Fork tales reflect various lives and mainly deal with universal emotion of mankind, so they have great significance to education so as to convey veracity and lessons about life. Especially, in case of fork tales with the character of universality, the stories which have common materials of conversation are found from all parts of the world. Therefore, if we utilize the method of comparative literature with these characteristics of fork tales, universality and specialty of fork tales are expected to be taught effectively in the educational situations.

7,800원

10

조선족 주몽설화의 변이와 의미

임철호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8집 2015.12 pp.22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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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의 고구려에 대한 인식은 조선왕조와는 달리 매우 긍정적이다. 조선은 버림받거나 살기 힘들어 떠나온 곳이고, 고구려는 조선족의 거주지에 존재했던 국가였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영토가 현재의 중국과 한국에 걸쳐 있었다는 점에서 조선족의 민족적 기원을 고구려에 두는 것은 중국과 조선 두 나라와의 친연성을 강조하는 결과가 된다. 조선족 주몽설화 가운데에는 주몽신화 전승에서 변이가 거의 일어나지 않은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설화는 다양한 변이를 보이고 있다. 조선족의 현실인식과 역사의식은 주몽설화 전승에서 변이된 부여 왕과 주몽, 부여와 고구려의 관계를 통해 보다 분명하게 파악된다. 주몽신화와 달리 주몽설화에서 주몽은 비록 서자이기는 했지만 부여 왕의 친아들이고, 고구려는 부여를 계승하여 이름만 바꾼 국가로 되어 있다. 조선족은 이러한 고구려에 뿌리를 둔 민족이고, 조선족의 정신 또한 고구려 정신을 계승했다는 것이 조선족 주몽설화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주몽설화의 변이에는 조선족이 19세기 중엽부터 조선인의 이주에 의해 형성된 천입민족, 과경민족, 즉 불법체류자가 아니라 조상의 땅에 대대로 살아온 주인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성이 깔려 있다. 고구려에 대한 조선족의 이러한 인식은 중국의 정책적 역사의식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결과적으로 부여와 고구려, 그리고 발해가 중국 역사의 일부라는 중국의 역사인식에 동조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족이 이러한 인식을 갖게 된 배경에는 조선족이 중국의 적이 아니라 중국인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같은 민족이라는 조선족 특유의 민족적 정체성이 깔려 있다. 조선족에게 중요한 과제는 조선인으로서 가져야 하는 민족의식이 아니라 중국 땅에서 중국인인과 더불어 살아야 했던 생존 그 자체였다.
Chosunjok’s understanding of the Goguryeo kingdom is very positive. In their folktales of Jumong, Chosunjok traces their ethnic and cultural roots back to the ancient Goguryeo era. The existence of Chosunjok in the present Chinese territory originates in the migration of the people of the Chosun Dynasty in the middle of the nineteenth century. They seek their origin in Goguryeo because they have left the Chosun Dynasty due to the adversities they have suffered there and Goguryeo was a nation founded on the dwelling place of Chosunjok, which is today’s Chinese soil. Chosunjok’s perception of reality and historical consciousness are more clearly grasped by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king of Buyeo and Jumong as well as between Buyeo and Goguryeo, which is found in a modified form in the folktales of Jumong. Unlike the myth of Jumong, the folktales describe that Jumong is, though illegitimate, a son of a king of Buyeo and Goguryeo is a successor to Buyeo, only with a new name. These changes found in the folktales of Jumong reveal the intention to underline that Chosunjok are not illegal aliens who have sneaked into China but residents who have lived for generations on the soil of their ancestors, that is, they are part of Chinese people. This view in turn resulted in sympathizing, if inadvertently, with the view of history spread by the Chinese government of late that Buyeo, Goguryeo, and Balhae are all part of Chinese history. Behind this historical perception Chosunjok embraced lies the need for giving priority to being incorporated into Chinese society for survival over claiming their ethnic identity.

8,4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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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시가의 문화 콘텐츠 소재로의 활용 사례 분석 - 고려가요 <쌍화점>의 영화화를 중심으로 -

최선경, 길태숙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8집 2015.12 pp.261-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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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고전 작품의 현대적 활용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영화 <쌍화점>을 분석한 것이다. 고전 작품에 대한 이해와 대중의 이미지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영화 <쌍화점>을 살펴봄으로써 고전문학의 현대적 콘텐츠로의 변용과 그 의미에 대해 분석하고, 활용의 다양성을 모색해 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고려가요 <쌍화점>에 대한 문학적 해석과 영화 <쌍화점>의 창작 토대가 된 역사기록을 검토하고, 고려가요 <쌍화점>이 어떻게 영화 <쌍화점>으로 재탄생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영화 <쌍화점>은 고려 공민왕대의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창작된 영화로 다양한 역사 기록이 영화 속 사건들로 재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역사 기록을 토대로 한 여타 역사 영화와 달리 <쌍화점>은 정치적, 역사적 사건보다는 궁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이루어진 세 남녀의 일탈적 사랑과 욕망에 집중함으로써 역사 기록이라는 팩트보다 남녀상열지사로서의 노래의 해석과 대중적 이미지에 기대어 공유되고 있다. ‘일탈적 성관계’, ‘여성의 성적 욕망에 대한 긍정’, ‘관음’은 바로 고려가요 <쌍화점>과 영화<쌍화점>이 교차되는 지점으로, 주제, 이미지, 구조 등 다양한 측면에서 고전작품의 현대적 매체로의 확장 가능성을 시사해 주고 있다. 영화 <쌍화점>은 일탈적 성관계, 그러한 현장을 훔쳐보는 목격자, 성적 공간에 대한 상상과 소문의 확대, 성적 욕망의 확산이 이루어지는 담론의 현장에 대한 묘사라는 점에서 고려가요 <쌍화점>의 외연을 넓힌 영화이며, 고전 가요의 현대 서사물로의 활용 가능성을 시사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The paper was designed to analyze the movie in the aspects of modern utilization of Classics. The movie was examined in understanding classics and utilizing public images in order to analyze the transformation of classics as modern contents and its meaning and to explore the diversity of utilization. Literary interpretation of Goryeo-gayo and the historic record of creativity foundation of the movie were reviewed and how the song is adapted into the movie was studied. The movie was created on the basis of the historic record of King Gongmin era of Goryeo dynasty and the film reconstructed various historical events. However, instead of focusing on the political and historical events like any other historical films based on the true story of historic record, highlighted the intertwining story of an aberrant love triangle and their desire in a special space, such as palace. Therefore, the movie was remade in the sense of love song between male and female and shared as popular images rather than relying on the facts of historic record. ‘Deviated sexual relationships’, ‘affirmation regarding sexual desire of female’ and ‘voyeurism’ are known as the points of intersection that Goryeo-gayo and the movie are interrelated, hence its various aspects such as themes, images, structures and etc. suggests the possibility of the classic works' extension to the modern media. By depicting deviated sexual relationships, voyeuristic witness of the scene, imagination of sexual area, expansion of rumors, and the place of discourse where the extended sexual desire is realized, the movie expanded denotation of Goryeo-gayo and it suggests the possibility of flexible utilization of classical popular song as modern narrative.

7,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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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대학 소장 한국 희귀도서『ㅎ.다』 연구

이숙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8집 2015.12 pp.293-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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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옥스퍼드 대학 보들리안(Bodleian) 도서관에서 한국 희귀 도서로 소개된 ‘ᄒᆞ다’의 저자 및 출판 동기를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이 책 표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1896년이라는 출판년도와 몇몇 용례의 출처가 Lumen이라는 점이었다. 이 논문에서는 1896년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Lumen의 실체를 밝히는 과정에서 『ᄒᆞ다』가 영국 성공회 선교단에서 출판된 책임을 파악했다. 그리고 『ᄒᆞ다』의 출판 시기에 성공회 선교단에서 한국 관련 문헌을 수집했던 장서가들의 책 목록인 랜디스문고 목록을 찾아서 『ᄒᆞ다』의 저자가 한국 성공회의 초대 주교였던 코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아울러 이 논문에서는 『ᄒᆞ다』가 지니는 어학적 가치를 분석해 보았으며, 또한 코프가 의도했던 대로 이 책이 한국어학습 교재로서의 기능을 가졌던 것인지 언어학습 관점에서 설명하고자 하였다.
『ᄒᆞ다』, held in the Bodleian Library of the University of Oxford, is considered as a rare book of Korea. However, virtually nothing is known about the author of the book or the purpose of its publication. This paper seeks to identify the author of the book and understand the author's motive in publishing the book based on two pieces of evidence found on the cover of the book: that the book was published in 1896 and that the examples used therein are from Lumen. By studying the historical context based on the publication year and investigating the identity of 『Lumen』, this study was able to discover that the book was published by the English Church Missionaries in Korea. Nonetheless, it was difficult to identify the author of 『ᄒᆞ다』since the publication records of the Anglican Church yielded no information on the publication of the book. However, through other records of the Anglican Church, this study was able to discover that the collection of Trollope and Landis, who collected Korea-related materials at the time of the publication of 『ᄒᆞ다』remained in the catalogue of Landis Library. And through the catalogue, this study was able to discover that the author of 『ᄒᆞ다』was Bishop Charles John Corfe, the first diocesan bishop of the Anglican Church in Korea. In addition, this paper analyzes the linguistic value of 『ᄒᆞ다』and seeks to explain, from a language learning perspective, why Corfe was unable to successfully acquire the Korean language in spite of his authorship of the book.

6,1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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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일본어 조선동화집의 개작 양상 -『조선동화집』(1924)과의 관련양상을 중심으로-

김광식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8집 2015.12 pp.317-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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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종래에 제한된 자료집을 대상으로 한 연구 성과를 극복하고, 1926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본어 조선동화집이 간행되었음을 제시하고, 그 영향 관계를 구체적으로 검토하였다. 그 결과, 1913년 조선총독부 학무국이 조사한 보고서 내용과 다나카 우메키치가 개작한『조선동화집』(조선총독부, 1924)에 공통의 옛이야기 8편 이상이 수록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본론에서는 1913년 및 다나카 개작을 대조 검토하고, 후대 조선동화집의 개작 상황을 실증적으로 검토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이후 조선총독부의 『조선동화집』 연구가 본격화 되었지만, 1913년 학무국 보고서에 대한 검토가 행해지지 않아, 그 개작 양상에 대한 논의는 추론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었다. 이에 대해 본 연구에서는 일본인의 설화 개작에 대한 전반적인 양태를 실증하여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었다. 나아가 본고에서는 1913년 학무국 보고서 및 1924년 다나카 『조선동화집』, 제2기 아시다 국어독본(일본어 교과서, 1923-1924)을 기초로 하여 총독부의 설화 채집과 동화화의 의미를 검토하고, 1926년에 조선동화집이 확산되는 양상을 검토하였다. 이처럼 1920년 중반에 행해진 동화 개작 양상을 다면적으로 검토함으로써, 각 편자의 의도와 개작의 방향성을 입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 결과 다나카 동화집은 전체적으로 1913년 보고서에 실린 원 설화의 모티브와 줄거리를 유지하며 부드럽고 고상한 일본어 교육을 목표로 착한 어린이를 교화하기 위해 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시다가 편찬한 총독부 일본어 교과서 내용과 비교해 본 결과, 다나카는 아시다와 달리, 거짓말 하는 내용을 그대로 기술하는 등 비교적 충실하게 모티브와 줄거리를 유지하였다. 한편, 나카무라는 아름다운 조선의 이야기를 이상화 시켜 다나카에 비해 자유롭게 개작했는데, 한일 설화의 친밀성 즉 ‘일선동조론’을 의식해 설화를 개작했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에 비해 다나카 동화집은 나카무라와는 달리, ‘일선동조론’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측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치카와는 나카무라에 비해 더욱 자유롭게 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카무라와 다치카와 동화집은 둘 다 도쿄에서 일본인 독자를 대상으로 출판되었는데, 다치카와는 형제담을 일본 설화에 자주 보이는 이웃집 노인담 형태로 변화시켰다. 이에 따라 등장인물이 바뀌고 인물 설정이 크게 변화하였다. 또한 실연동화를 의식해서 앞부분과 뒷부분에 설명문을 첨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노래를 삽입하는 등 파격적인 개작 양상을 선보였다. 1920년대 일본어 동화집과 방정환, 심의린을 포함한 조선인 동화집과의 비교를 통한 당대의 다양한 움직임에 대한 총체적인 검토는 앞으로의 과제다.
This paper took up the Chosun fairy tale collection which was written in various Japanese issued until 1926. And after checking that, the influential relation was considered. It was confirmed by this research that more than 8 pieces of story in the report of the General Government of Chosun investigated in 1913 and fact common to "the Chosun fairy tale collection" (The General Government of Chosun, 1924) that Umekichi Tanaka adapted exist. So the change was considered based on comparative examination of story in 1913 and 1924 in the main subject. And the contents of a Rewrite in the Chosun fairy tale collection issued after it could be considered positively. A study to the "Chosun fairy tale collection" of the General Government of Chosun gets into full swing after 1990's. But it wasn't considered about a report of 1913. Argument to the contents of the Rewrite couldn't sneak out of the reach of the inference with that. The significance of this paper is to indicate that, and new study direction was opened. And this research compared "The Chosun fairy tale collection"(1924) and Ashida's Japanese textbook(1923-4) with a report of 1913. The aspect which feels considers the meaning that the General Government of Chosun collected a story and issued the fairy tale collection and the Chosun fairy tale collection is wide in 1926 could be considered positively. After the Rewrite of the performed fairy tale was considered multilaterally in 1920's by this research like the above, the opportunity which can analyze the respective editor's aim and directionality of the Rewrite in three dimensions could be established. As a result, Tanaka's fairy tale collection maintains the contents on a report of 1913 overall, and it's possible to confirm that it was adapted using noble Japanese. After it was compared in a Japanese textbook of Ashida compiled, Tanaka was different from Ashida. Tanaka describes the contents about which a main character lies just as it is and maintains a motif and an outline faithfully in comparative way. On the other hand, Nakamura idealizes beautiful Chosun story and is adapting freely compared with Tanaka. But the other fairy tale collections are conscious of close friendship in Chosun and Japan intentionally, and are the different contents. Tanaka's fairy tale collection is different from Nakamura’s fairy tale collection on the one hand, and Japanese close friendship isn't being emphasized with Chosun. Tachikawa’s fairy tale collection is the fairy tale collection ignored perfectly so far in spite of its importance. Tachikawa confirmed that it was adapted based on Tanaka's fairy tale collection though he was conscious of narrating fairy tale. It was possible to confirm that Tachikawa’s fairy tale collection was adapted freely further compared with Nakamura’s fairy tale collection. Both of two are Tokyo in Japan and Nakamura and Tachikawa’s fairy tale collection is issued targeted for the Japanese reader. Tachikawa adapted Chosun story more freely than Nakamura. Tachikawa changed brother tan into the next tan of aged people which is often seen as Japanese reminiscences. A character changes big with this, and person setting is changing big. Such as Tachikawa inserts the song as well as being conscious of narrating fairy tale and adding an explanation to the forequarter and the second half part, the exceptional Rewrite is indicated.

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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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記에 보이는 聖顯의 구축 양상

김승호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8집 2015.12 pp.351-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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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서사물 가운데서도 『古記』는 특히 聖顯의 구축에 남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그에 수록된 예화들은 대체로 불경과 신화의 특성을 구비하고 있어 종교서사, 신화에서 발견되는 담론적 특성을 확인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고기』의 聖顯 구축 양상을 공간과 시간의 측면에서 구체화하는 것이 본고의 지향점이다. 『고기』에서는 하늘 숭배의 상징적 대상으로 桓因을 지목하며 거듭 그를 등장시키고 있다. 이는 전래의 天觀念에 변화가 일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神聖性을 확보하는데 있어 桓因이 그만큼 적절한 신격으로 수용했음을 말해준다. 공간적 측면에서 『古記』는 天竺과 신라의 관계성 위에서 서사를 구성한다. 즉 天竺은 불교적 神聖性이 이미 확보된 이상적 공간으로 형상화된 반면 신라는 불법이 아직 전해지지 않은 무명에 덮인 곳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불보살의 도움에 의해 天竺의 神聖性이 신라로 이식되는 단계를 맞게 되고 결국 天竺과 더불어 성스러움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시간을 중심으로 『古記』의 聖顯양상을 보면 세속시간을 가능한 벗어나 원초적이고 신화적인 시간 위에서 서사를 진행한다는 특징을 보인다. 중국보다 앞서 불교를 수용했음을 표방하는 것은 물론 이 땅의 곳곳을 前佛時代의 절터, 불보살의 강림처로 확증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역사시간을 벗어나 신화시간으로 신라불교사를 편입시키는 것이야말로 성스러움을 증폭시키는 데 유효하다는 인식이 작용한 결과이다. 『古記』는 원시불교 시대 혹은 신화시대의 산물과 무관하지만 불교적 神聖性을 이야기 속에 끊임없이 주입하려했던 서사물로 규정할 수 있다. 『三國遺事』를 신이서사의 출발지점으로 인정하고 있는 터이지만 기실 『고기』가 聖顯的 역사 구축의 앞선 사례라 할 것이다.
Religious narrative tends to be aimed at promoting piety, based on the ritual of worship toward gods. People hold ritual for god or the divine and revive the holiness of their existence through the sacred stories. Few materials concentrate on the construction of saints as <古記> among early narratives. mythological discourse. Although it is not certain which of them, Buddhist scriptures or mythologies, influenced it more, the illustrations included in it confirm that it pursues sacred narratives as much as religious narratives or mythological discourse. This article aims to embody the building of saints from the perspective of space and time. From the spatial perspective, makes up the narrative based on the relation between Cheonchuk and Silla. That is to say, while Cheonchuk was embodied as ideal space which established Buddhist sacredness, Silla was perceived as the place covered with ignorance, where Buddhist teachings were not transmitted. However, thanks to the help of Buddha and Bosatsu, the sacredness of Cheonchuk was transplanted to Silla, and in turn transformed into a space sharing deity with Cheonchuk. The sacred spectrum of displays the feature of running narratives on the primitive and mythological time out of the worldly time. It is unrestrained in manifesting the acceptance of Buddhism prior to China and confirming every corner of this land as the temple site and advent place of Buddha and Bosatsu. This results from the perception that the inclusion of Silla Buddhist history as mythological time is effective to enlargement of sacredness. It was revealed that was historical legendry which tried to inject incessantly Buddhistic sacredness in the narratives. 'Sin-i sagwan' in in later times appeared actually in , and therefore it is considered related to the succession of the previous tradition of constructing sacred Buddhistic history.

6,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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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문학텍스트로서 고소설 번역본 연구(Ⅰ) - 불역본『춘향전』 Printemps parfumé에 나타나는 완벽한 ‘춘향’의 형상과 그 의미-

장정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8집 2015.12 pp.379-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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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최초로 번역된 불역본(佛譯本) 『춘향전』 Printemps parfumé는 당대 프랑스 문학계에서 활동하고 있던 소설가 보엑스(Boex) 형제가 로니(J.-H. Rosny)라는 필명으로 번역하여 출판한 작품이다. 한국어를 할 수 없었던 이 프랑스 소설가가 『춘향전』이라는 한국어 소설을 프랑스어로 옮길 수 있게 한 조력자가 홍종우이며, 그 또한 당시 불어가 유창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어 통역의 도움을 받으며 완성한 번역작업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탄생한 Printemps parfumé는 홍종우가 3년 후 불역하게 되는 『심청전』과 함께 개작 양상이 가장 심한 한국 고소설 번역본 중 하나가 된다. 본고는 이와 같은 프랑스판 『춘향전』의 개작 이유를 프랑스문학이라는 현지의 번역장 안에서 고찰하여, 고소설 번역 양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가능성에 접근하고자 한다. 즉, 프랑스판 『춘향전』을 프랑스어로 쓰인 하나의 ‘외국문학텍스트’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여, 불역본의 새로워진 ‘춘향’ 형상에 주목하고, 이를 프랑스문학의 흐름 속에서 역자의 문학적 성향과 함께 조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및 호라티우스 시학에서 요구하는 등장인물의 고귀한 품격, 그리고 프랑스문학사에서 면면히 이어오는 그러한 요청에 대한 응대의 흐름이 본고의 논거가 될 것이다.
This paper aims at investigating the Printemps parfumé as a foreign literary text. The Printemps parfumé is estimated not as a translation but as an imitation : the result of the translation in the Printemps parfumé is different from the original history, for example, I-Toreng is disguised as a woman for approaching to Tchoun-Hyang. The adaptation of the Printemps parfumé can be understood in the champs of the french literarure where the text will be read as a literary text in french. The poetics of Aristoteles and Horatius about the high virtue of characters support this explanation : all the changes in the Printemps parfumé is focused on the perfection of Tchoun-Hyang. The translation or an adaptation of the Printemps parfumé is therefore a sort of the creation that produces the another text in the change of the culture. So it is necessary to read the Printemps parfumé as a foreign literary text. This aspect is also found in the translation of Le Bois sec refleuri that will be investigated in the next article.

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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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金湖)ㆍ동호(東湖) 세책 대출장부의 실상과 특성에 대한 연구

전상욱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8집 2015.12 pp.413-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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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그 동안 향목동 세책 대출장부에 가려 자세하게 연구되지 못했던 금호 세책 대출장부와 동호 세책 대출장부의 실상을 충실히 밝히고 이 두 지역의 세책집에서 어떤 방식으로 세책업을 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 글이다. 금호 세책 대출장부는 이화여대 소장 <수호지>와 <숙향전>에서 17장 230여 건을 수습할 수 있었고, 동호 세책 대출장부는 연세대 소장 <현씨양웅쌍린기>에서 19장 290여 건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 대출기록들을 통하여 금호와 동호의 세책집에서 날짜별 대출장부를 사용했으며 대출자의 거주지를 기록하지 않았고, 담보물도 받지 않는 방식으로 영업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금호 세책으로 49종, 동호 세책으로 72종의 세책 소설 목록을 작성할 수 있었다. 금호와 동호 세책집의 영업방식은 이미 잘 알려진 향목동 세책집과 일정한 차이를 보인다. 금호․동호 세책 및 대출장부의 대표적인 특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대출장부를 기록하는 방식이 작품별이 아닌 날짜 및 시간순으로 대출 사항을 기록하는 날짜별 대출장부를 사용하였다. 동일한 제목의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향목동 세책에 비하여 금호․동호 세책은 분량(책수)이 더 많은 경우가 있다. 대출작품 중 장편소설의 비중이 향목동 세책집에 비하여 현저하게 낮다. 이 논문에서 살펴본 금호․동호 세책 대출장부와 기존에 정리된 향목동 세책 대출장부, 그리고 그 외의 나머지 몇몇 세책 대출장부들을 모두 종합하여 세책 유통의 실상에 대한 전체적인 정리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study aims to show the real state of Geumho and Dongho lending libraries account book. And the understanding of the it’s reality shoud enable to recognize the characteristic of Geumho and Dongho lending library. At the lending library account book, the title of lending books, checkout dates, borroews' names and address, pawned items are recored. Geumho and Dongho are the outskirts of Seoul, near the Han River. There are considerable people in late Joseon period, for that reason, lending library would be founded. In the same time, Hyangmok-dong lending library is operating actively in the gate of Seoul. These two lending library, in and out the gate of Seoul, are very different from each other in many points. For example, in the point of the method of record, Geumho and Dongho lending library account book is recorded in sequence of date, but Hyangmok-dong account book is recorded for each work. Above this, There are the record or unrecord of borrower’s address and pawned items, the full-length novel’s rate of all lending books, etc. in such differences, it is most important that there is not a equality of volume in the same work. For example, Geumho lending library’s Namjeongpalnangi has 19 volumes, but Hyangmok-dong’s Namjeong- palnangi has 14 volumes. Dongho lending library’s Changseongamuirok has 12 volumes, but Hyangmok-dong’s Changseongamuirok has 10 volumes. In this study we can understand that there are differences of characteristic between in and out of Seoul, or big scale shop and small scale shop. I think the study on the lending library account book is not enough to conclude, so higher organization and synthesize are definitely needed.

6,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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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표류민의 유구 표착과 송환

이수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8집 2015.12 pp.441-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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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시대에 발생한 표류 사건이 기록된 고문헌을 검토하여 조선 표류민의 유구 표착 현황을 알아보도록 한다. 조사된 표착 현황을 참고하여 하나의 표류 사건에 대한 기준 제시 문제, 출신 지역 표기 오류 문제 등에 대해 짚어보고 주요 표착 지역과 송환 경로별 특징들을 살펴보도록 한다. 조선 표류민의 유구 표착 현황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변례집요(邊例集要)』, 『표인영래등록(漂人領來謄錄)』, 『제주계록(濟州啓錄)』등의 고문헌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사건 수는 1397년부터 1870년까지 37건이고, 표류민 수는 총 398명 정도이다. 표류 사건 현황을 조사하면서 떠오른 문제는 개별 표류 사건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는 일이었다. 하나의 사건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조사하는 이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건의 기준을 표류에 둘 것인지, 송환에 둘 것인지에 따라서 사건 수에 차이가 생긴다. 이에 표류 사건 현황을 조사할 때는 하나의 사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어야 함을 논하였다. 또 다른 문제는, 조선 표류민의 출신지역이 잘못 기록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제주 표류민들에게 주로 발생하는 출신지 오기 문제에 대하여 다루어보았다. 다음은 표류민들의 주요 표착지와 송환 경로에 대해 알아보았다. 표류민들의 주요 표착지는 가자섬[臥蛇島]부터 아마미오섬[奄美大島], 도쿠노섬[德之島], 오키나와섬[沖縄本島] 북서쪽의 이에섬[伊江島], 서쪽의 구메섬[久米島], 남쪽의 미야코섬[宮古島]까지 유구 전지역에 해당하였다. 송환 경로는 유구 사신에 의한 직접송환, ‘유구→장기→대마도→조선’의 차왜에 의한 송환, ‘유구→복건→북경→조선’의 중국을 통한 우회송환의 세 가지이다. 앞으로의 표류 연구는 세부 사건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는 가운데에서, 기존 연구된 표류 사건 현황에 대한 오류를 바로잡아 보다 철저한 확인 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review and analyze the occurrence of Joseon drifters who landed in the Okinawa area during th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and the process of ‘departure - drifting - landing - repatriation’ recorded in old literature. Records on Joseon people’s drifting and landing in Okinawa are found in old literature such as Joseonwangjosilrok, Byeonryejipyo, Pyoinyeongraedeungrok, Jejugyerok, and Dongmunhwigo. There were 37 cases of drift during the period from 1397 to 1870, and the total number of drifters was 398. The repatriation of drifters between Joseon and Okinawa, which began from the late 14th century, was active until the mid 15th century. The number of cases decreased sharply for about 200 years from the 16th century to the 17th century, and then began to grow again in the 18th~19th centuries. Drifts took place usually between November and February probably because of the monsoon. They came to drift through the sea between the West/South Coast and the Jeju Island as the frequency of northerly winds went up high in the winter, and mainly under the influence of northerly winds and depending on the intensity of easterly and westerly winds, they were carried away to and landed in the Gaja Island (臥蛇島), Amamio Island (奄美大島), Tokuno Island (德之島), or Okinawa Island (沖縄本島), or Ie Island (伊江島) to the northwest, Kume Island (久米島) to the west, or Miyako Island (宮古島) to the south. The main repatriation routes were direct repatriation with an Okinawa envoy, repatriation by Chawae (差倭‐ diplomatic missionary dispatched from the Tsushima Island) through ‘Okinawa‐>Nagasaki‐>Tsushima Island‐>Joseon’, and roun- dabout repatriation via China through ‘Okinawa‐>Fuqian‐>Beijing‐>Joseon.’ While direct repatriation was made from Okinawa to Joseon until the mid 15th century, it was hardly done from the late 15th century. The routes were irregular, sometimes bypassing through the Ming Dynasty of China and sometimes passing through Japan. Then, from 1698, the route through Qing of China began to be used regularly. The last problem in the survey of drifts is that some accidents are not clearly identifiable as a unit event. Such cases include the Han Geum‐gwang’s group in 1457, Boksan’s group in 1458, Yangseong’s group in 1461, and Cho Deuk‐seong’s group in 1462. More exhaustive research is required for these cases.

6,400원

18

장외시화(場外詩話) (9)

남상호, 詹杭倫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8집 2015.12 pp.467-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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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원

자료해제

19

『게일 유고』소재 한국고전번역물(2) - 게일의 미간행 육필 <흥부전 영역본>에 대하여 -

이진숙, 이상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8집 2015.12 pp.473-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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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게일 유고』 소재 미간행 육필 <흥부전 영역본>의 원문과 그에 대한 우리의 재구본을 학계에 소개하는 것이다. 육필 <흥부전 영역본>에 대한 우리의 재구본을 토대로 번역저본을 확증하고, 저본대비를 통해 그 번역양상 및 번역용례를 면밀히 고찰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이 유고 원고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자 했다. 먼저, <경판 20장본 흥부전>, <경판 25장본 흥부전>, 『게일 유고』소재 흥부전 한글필사본과의 대비검토를 통해, 게일의 육필 영역본의 번역저본을 <경판 20장본 흥부전>으로 확증하였다. 근대 초기 알렌, 모리스 쿠랑의 <흥부전> 번역과 대비를 해보면, 게일의 <흥부전 영역본>은 전반적으로 원전에 대한 충실한 직역을 지향하고 있다. 그럼에도 게일은 서사 전개의 긴장을 유지하기 위해 단락을 누락했고 종교적 이유로 혹은 생리적 현상과 성과 관련된 직설적 표현을 배제하고자 어휘를 누락하기도 했다. 오역이나 변용을 일으키는 번역도 있었는데 이는 <경판 20장본 흥부전>을 옮긴 한글필사본의 오기로 인해 발생한 경우가 많았다. 게일 <흥부전 영역본>의 개별번역용례의 분석을 통해, 게일의 번역 원칙과 양상 그리고 어휘 차원의 문화 번역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게일의 <흥부전 영역본>은 비록 활자화되지 못한 육필 형태의 원고이고 ‘미완성된 번역물’이지만, 이 육필 형태 자체로도 충분히 한국고전번역물로서의 가치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The paper's first aim is to introduce to the Korean academic the unpublished handwritten English translation "Heung Boo Jun" located in James Scarth Gale Papers, a collection of the Thomas Fischer Rare Book Library at the University of Toronto in Canada and its typed version by a writer. The second aim is to confirm its source text as "the 20-sheet Heungboo Jun published in Seoul." The third aim is to investigate Gale's translation practices based on the comparison of the source text and its translation version. Gale's translations were on the whole literal translation. Gale, however, omitted the Nolboo' s 9th gourd scene by half in order to adjust each episode's volume and to maintain dramatic tension. It is supposed that Gale tried to avoid direct mention of religion taboos and physiological and sexual expressions. The change of meaning through translation were caused by a few different transcriptions of the Gale's Korean version from the source text. Considering Gale's translation examples through the Chinese character words, proverbs, a monetary unit etc in the source text, his "Heung Boo Jun" can be evaluated as 'more or less complete' version and placed along with his other typed versions like "Sim Chung" and "The Turtle and the Rabbit."

9,100원

[자료1]

20

게일 육필 <흥부전 영역본> 재구본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8집 2015.12 pp.517-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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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0원

[자료2]

21

게일 육필 <흥부전 영역본> 원문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8집 2015.12 pp.55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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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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