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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상고전연구 [Yeol-sang Journal of Classical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열상고전연구회 [Society of Yol-Sang Academy]
  • ISSN
    1738-2734
  • 간기
    격월간
  • 수록기간
    1988~2019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한국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810 DDC 810
제37집 (19건)
No

기획논문 : 송만재 <관우희> 원형 복원을 위한 예비적 검토

1

<觀優戱> 번역 상의 문제들

이대형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7집 2013.06 pp.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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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희>는 선인들의 놀이 문화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귀한 문헌이다. 그러나 문헌이 발견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의미를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板橋初集󰡕이 발견되어 연세대 소장본의 오탈자들을 보완할 수 있게 되어 다시 번역을 시도했으나 여전히 의문점들이 많이 남는다. <관우희>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위해서는 판소리는 물론이요 줄타기나 꼭두각시놀이 등에 대한 정심한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함을 확인하고 이를 과제로 남겨두면서, 몇몇 난해한 구절들에 대해 질정을 구한다.
Kwan-uhui觀優戱 is literature which contains information of Chosun's entertainment culture. But still it's meaning does not have been decoded entirely. Recently Pangeo-chojip板橋初集 was discovered, it includes other version of Kwan-uhui. Therefore we can read more exactly than before. But interpretation of it is still very difficult. In advance we must investigate pansori, tightrope etc. Here I mentioned some problems which we did not interpret, and hope to other scholar's interpre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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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송만재의 <관우희>를 통해 본 19세기 시정문화의 한 국면

박애경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7집 2013.06 pp.3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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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희(觀優戱)>는 판소리와 관련하여 한국 연희 문화의 실상을 알리는 자료로 널리 공유되어 왔다. 2012년에는 『판교초집(板橋初集)』소재 <관우희>가 새롭게 발견되면서 관련 연구가 새롭게 활기를 띠고 있다. 이 글에서는 관우희가 판소리를 중심으로 한 연희예술 뿐 아니라 19세기 시정예술의 동향을 폭넓게 반영하고 있는 자료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 글에서는 <관우희(觀優戱)>의 레퍼토리 중 ‘타령’과 ‘요령’에 주목하여, ‘타령’이 본류적 정통성을 지니지 못한 잡성류의 노래임을 당대 용례를 들어 밝혀 보았다. 또한 ‘요령’은 본 레퍼토리에 속하지 않은 재담, 노래 등 여흥의 장기를 소개한 항목일 가능성도 제시해 보았다. 이 글에서는 특히 <관우희(觀優戱)>가 관변문화와 시정문화, 창우들의 놀이와 문인 취향의 풍류, 지역을 초월하여 명성을 날리던 명창의 존재가 드러나는 자료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를 통해 문화권 간의 교섭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신분에 따른 예술 향유의 위계화라는 관습이 급격하게 무너지면서 예술이 통속화되는 순조-고종 연간 시정예술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아가 <관우희(觀優戱)>는 20세기 초 부상하기 시작한 극장문화의 전사(前史)로도 기능하고 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광대와 재인 등 천민 예술인의 스타화, 알려진 이야기를 노래와 몸짓으로 재현하는 판소리와 민간의 노래에 뿌리를 둔 잡가의 인기 등 20세기 초 예술 향유의 관습은 이미 19세기에 배태되고 있음을 <관우희(觀優戱)>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The main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nquire into the trends and aspects of the urban culture in the 19C through analyzing the texts of <Kwanuhui>. For a long time <Kwanuhui> has been being regarded as the materials which reports the fact of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 especially proves the existence of 12 pieces of Pansori before the 19C. Recently as “Pangyochojib”, a new version of <Kwanuhui> has been found, the research on <Kwanuhui> enters into the next stage. In this paper I paid special attention to the cultural dynamics of 19C which meditated entangling and hybridization among different cultural areas. To clarify the meaning of the text, this paper analyzed the repertoires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 as seen on <Kwanuhui> in a cultural perspective. In the process of accessing to the cultural context surrounding <Kwanuhui>, this paper paid attention to the fact that there had been a significant changement in the reception of art. The convention of enjoying art, according to the hierarchical status shifted rapidly to the broad reception of art ranging diverse cultural areas.

6,000원

3

연희시가의 전통에서 본 <관우희>

윤주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7집 2013.06 pp.5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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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본 <관우희> 50수와 서․발문은 한국 고전연희사에 있어 획기적인 자료이다. 최근에 『판교초집󰡕이라는 필사본 형태의 구사회교수 소장본 <관우희>가 소개됨으로써 새로운 연구의 전기를 맞이하였다. 이 새 자료를 중심으로 본고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견해를 제시하였다. 『판교초집』은 중년의 송만재가 판교에 거주했던 시절의 첫번째 시편을 애벌로 모은 것으로 추정된다. 『판교초집』의 전반부인 「옥전잉묵」은 적어도 1833년(37세)-1842년(46세)의 8, 9년간의 작품을 수록한 시 모음집이며, 그 후반부에 수록한 <관우희> 50수와 서발문은 1843년-1845년 사이에 지어진 것이다. 그러나 『판교초집』은 신위(申緯) 집안에서 편집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신위가 「관극시」 「소악부」 등의 새로운 시풍을 진작시켜 소론을 중심으로 하는 후대시단에 끼친 영향을 반영한다. <관우희> 제1장은 광대놀음에 대한 개괄적 정보를 담고 있다. 그 가운데 광대소리는 화랭이가 소리를 길게 늘려 본사연의(本事演義)의 방식으로 연희하는 것을 묘사했다. 또한 광대소리는 꼭두각시극과 같은 전문적 기예로 인식하고 있음도 나타내었다. 구사회본 <관우희>는 총50수의 내용을 ‘영산’ ‘타령’ ‘요령’ ‘긍희’ ‘장기’ ‘총평’으로 구획하였으며, 연세대본에는 없는 ‘요령’의 구간이 있어 주목된다. 이는 가곡 광대가 판소리 타령에 앞서 목 다스림으로 숭고한 미의식의 영산을 앞세우는 것처럼, 재인 광대가 줄타기와 땅재주를 보이기에 앞서 재담을 통해 골계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마지막 ‘총평’ 부분에서는 당대까지의 조선의 연희사를 광대 중심으로 비평한 것이다.
Guan-Woo-Hee i.e. 50 pieces of audience poetry watching on entertainer's performance are astonishing resources in Korean history of traditional play. Recently with introduction of another Guan-Woo-Hee script in Pan-Gyo First Anthology owned by Professor Gu Sa-hoe came a turning point in the study of it. In this reseach paper I presented several views concerning the new one. I assume that Pan-Gyo First Anthology was the one to pile Shong Man-jae(宋晩載)'s poems first during his peoriod of dwelling in Pan-Gyo. However, it might be filed by family of Shin Wi(申緯), which it reflected that he enhanced a new atmospher of poetry written in Chinese and influenced later generation of Sho-Ron's poetry group. The first poem of Guan-Woo-Hee contains general information about performance of Gunag-Dae i.e. Korean traditional entertainer. Especially Guang-Dae Sori(songs) is represented as type of amplifying meaning on a source story by Hua-Rang(class of female shaman's husband). Also it is appreciated as professional artistic abilities as a puffet play. In Guan-Woo-Hee script owned by Prof. Gu overall 50 poems are devided into 6 parts of Young-San, Ta-Rheong, Yo-Rheong, Geong-Hee, Zhang-Gee, and Chong-Peong. Among these, Yo-Rheong is remarkable because there is not such devison in the script collected by Library of YonSei University. That part is considered as a process that acrobat Guang-Dae produced an comic atmosphere through Jae-Dam(series of gag) before walking a thightrope and playing of ground acrobat, like that singer Guang-Dae first let Young-San precede to create sublime beauty before singing a Pan-Sori Ta-Rheong as control of his throat. The last part of Chong-Peong i.e. general critique are to review the play history of Choseon dynasty till that time concentrated with class of Gunag-Dae.

6,300원

일반논문

4

1906년 臺灣 李逸濤 漢文本 『春香傳』고찰

朴現圭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7집 2013.06 pp.8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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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대만 李逸濤가 각색한 『춘향전』을 국내 학계에 처음으로 소개 분석하였다. 이일도 『춘향전』은 『漢文臺灣日日新報』에 1906년 8월 17일부터 22일까지 5차례 나누어 연재되었다. 이일도는 한국 『춘향전』을 텍스트로 삼아 중화 문화 의식과 신식 소설 기법을 도입하여 내용을 새롭게 각색했다. 이일도가 참고한 한국 『춘향전』은 경판 또는 안성판의 계통본으로 추정된다. 이일도는 전통적인 가치관을 간직한 인물이다. 극중의 춘향이 정절을 굳게 지키는 모습에 감동하여 『춘향전󰡕을 지었다. 이일도 『춘향전』은 한국 『춘향전』에 없는 내용이 많이 보인다. 그 중에서도 가장 파격적인 줄거리는 남원 협객 李孟俠이 춘향을 탈옥시키고, 춘향이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절식했다가 나중에 다시 소생한 대목이다. 당시 신소설에서 자주 등장한 트릭 기법을 적극 활용했다. 이일도 『춘향전』의 출현은 한국 고전물 『춘향전』의 외연 확대에 크게 주목할 가치가 있다. 중화 지역에서 시기가 가장 빠른 작품이었고, 그 무엇보다도 현대극에 못지않게 대폭 각색된 작품인 점에서 커다란 의의가 있다.
本論文是學界的首次對臺灣李逸濤改寫的漢文本『春香傳』進行了具體分析. 李逸濤是日帝統治臺灣時期的文人, 作爲『臺灣日日新報』的記者. 李逸濤的漢文本『春香傳』在1906年8月分五次連載在『漢文臺灣日日新報』上. 李逸濤以韓國古典『春香傳』爲原文, 加入了中華文化意識和新式小說的寫法, 對內容重新進行了大幅的改寫. 李逸濤所參考的韓國古典『春香傳』, 被推測爲是京板, 安城板的系統本. 李逸濤是一位重視傳統價值觀的人物. 他被劇中春香恪守貞節的樣子所感動, 寫作了『春香傳』. 李逸濤的『春香傳』中有很多韓國古典『春香傳』中沒有的內容. 其中, 最爲突出的內容是南原俠客李孟俠幫助春香逃獄, 春香忍受不了殘酷的刑罰而絶命, 後又起死回生的一幕. 積極活用了當時新小說中經常出現的掩人耳目戱法. 李逸濤『春香傳』的出現對於韓國古典『春香傳』流傳的擴大有需極爲矚目的價值. 在中華地區, 它是時間最早的作品. 最重要的是, 它是最早被改寫成不比現代劇遜色的作品, 這一點有着很重大的意義.

7,200원

5

새 자료 이원묵(李元默)의 『행대만록(行臺漫錄)』과 순조21년(1821) 신사연행(辛巳燕行)

구사회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7집 2013.06 pp.11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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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대만록』은 순조21년(1821) 10월 11일에 ‘사은겸진주사(謝恩兼進奏使)’의 서장관으로 갔던 이원묵(李元默, 1767-1831)이 지은 연행록이다. 『행대만록』은 48,000여자에 이르는 장편 연행록으로 그가 사행 보고서인 등록(謄錄)을 만들기 위해서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행대만록』의 말미에는 별록인 「연행록총목록(燕行錄總目錄)」이 있는데, 그것에는 당시 연행단의 명단과 규모를 확인할 수 있다. 사행 인원이 모두 157명이었고 말 102필이 동원되었다. 일반 사행의 절반 정도의 규모였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발굴된『행대만록』을 통해서 그동안 작자 미상으로 알려졌던 연행록 『간산북유록』의 작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간산(簡山) 손병주(孫秉周, 1781-1836)가 『간산북유록』의 작자였는데, 그는 정사 이호민의 반당(伴倘)으로 연행에 참여하고 있었다. 『행대만록』은 지금까지 나온 많은 연행록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그것에는 중국을 상대로 경종 3년(1723)에 있었던 임인옥사를 바로잡으려는 조선 관인들의 치열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행대만록』에는 사행을 떠나기 훨씬 이전인 문제 발단부터 시작하여 나중에 돌아와서 복명을 하고 종묘에 나아가 조종께 아뢰는 일체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이들 사행단이 연경에 도착하여 20여 일 동안에 왕명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세밀히 적혀 있다. 그런 점에서 『행대만록』은 당시 사행의 실무책임자였던 서장관이 저술했던 연행록의 다른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행대만록』의 서술 방식은 일기체 형식의 편년체를 채택하여 날짜와 날씨, 일정과 일과 등을 꼼꼼히 적고 있다. 작자인 이원묵은 주관적인 감회나 감정을 절제하고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기술하고 있었다. 이것은 당시 사인(私人)으로 연행에 참여하여 자신만의 시각을 드러냈던 손병주의『간산북유록』과 대비가 되고 있다. 물론 『행대만록』은 이원묵이 지었던 사적인 연행록이지만, 한편으로 사행 보고서인 등록(謄錄)을 만들기 위해 만들었던 공적인 자료의 성격도 함께 갖고 있었다.
『Haengdaemanrok』 is a ‘Yeonhaengrok’ composed by Yi-WonMuk who was Seojanggwan of the Sahaeng at the 21st year of reign of King Sunjo. It is a lengthy Yeonhaengrok with more than 48,000 words which seemed to be written to make Deungrok, a report. While 『Haengdaemanrok』 is one of many kinds of Yeonhaeongrok so far, its contents contain severity of the Joseon officials to correct Iminoksa taken place at the 3rd year of reign of King Gyeongjong against China. In 『Haengdaemanrok』, every detail is described from the beginning of the problem through the completion of the mission and report to the royal government at Jongmyo. In particular, detailed efforts to complete royal commission as public officers for 20 days at Yeongyeong are described. In this sense, 『Haengdaemanrok』shows the typicality of Yeonhaengrok described by Seojanggwan, the person in charge of Sahaeng. Lastly, the description method of 『Haengdaemanrok』is a choronological form with the type of keeping diary for date, weather, schedule and tasks minutely. The writer was very restrictive in expressing personal feeling and emotion but describing relics and sights objectively and in factual basis. This is a good comparison with 『Gansanbukyurok』of Son Byeong Ju who joined Yeonhaeng as a private figure.

6,100원

6

<자운가> 연구 -『소현성록』과의 상호텍스트성을 중심으로

정대혁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7집 2013.06 pp.137-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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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가>(紫雲歌)는 국문장편소설인 『소현성록』(蘇賢聖錄)의 인기에 힘입어 창작되어 조선후기에 널리 유행한 가사이다. 그런데 <자운가>에 대해서는 아직 별다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본고에서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우선 <자운가>의 전개 방식을 살펴보면 전반부에서 ‘자운산’을 묘사하고 후반부에서 소부의 사적과 그 전승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전개 방식은 『소현성록』과 동일한 것이다. 또한 <자운가>는 『소현성록』의 말미에 붙어 있는 <자운산몽유록>과 비교해 볼 때, 그 제명을 비롯하여 내용과 구조면에서 상당히 유사하다. 그렇다면 <자운산몽유록>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자운가>는『소현성록』을 기반으로 생성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자운가>는 『소현성록』의 방대한 소설 내용 가운데 자운산(소부) 구성원과 관련된 사건들을 중심적으로 다루는 동시에 소설에서 구현하는 동일한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자운가>는 『소현성록』의 영향을 받은 파생 텍스트로써 기본적으로 소설의 서술시각을 견지하는 작품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대본 <자운가> 계열은『소현성록』의 서술시각과 상이한 인식을 드러내는 몇몇 시행들을 가지고 있다. 반면 성대본 <자운가> 계열과 시기적으로 떨어져 있는 이본인 연대본 <자운가>는 그러한 시행들이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현성록』의 서술시각과 상당히 부합하는 시행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와 같은 이들의 차이는 <자운가>의 전승 및 유통 가운데 『소현성록』의 서술시각에서 벗어나는 향유자들의 새로운 인식이 반영된 결과이다. 그리고 향유자들의 새로운 인식이 생성된 데에는 『소현성록』이후에 출현한 여러 국문소설의 독서 경험으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정리하여 연대본 <자운가>와 같은 이본이 전승 및 유통되는 가운데 여러 국문소설의 독서 경험으로 말미암아 생성된 향유자들의 새로운 인식이 반영된 결과로써 성대본 <자운가> 계열에서처럼 일부 시행들이 변이 혹은 탈락되었음을 알 수 있다.
<Jawunga> is a famous Kasa heavily influenced by 『Sohyonseong-rok』, a popular novel written in Korean, in late Chosun Dynasty era. Since there has been no further study on <Jawunga> up until now, this study here focuses on the subject. First, regarding the way <Jawunga> unfolds its story, we see description of ‘Jawun-mountain’ in the first part. In the latter half, it mentions episodes of Sohyonseong’s family and how those have been passed on to others over the years. The same method can be found 『Sohyonseong-rok』. Moreover, <Jawunga> shows much similarity in contents and plot, as well as titles, compared to <Jawunsan-mongyurok> in the『Sohyonseong-rok』. This can be interpreted that <Jawunga> is close to <Jawunsan-mongyurok> in many aspects and shares 『Sohyonseong-rok』as its origin. <Jawunga> shows the common theme reflected on the entire episodes by selectively dealing with the events of Sohyonseong's family among the vast contents of 『Sohyonseong-rok』. Meanwhile, Sungkyunkwan universtiy version of <Jawunga> is the most similar to others, except Yonsei university version of <Jawunga>. The other versions in Sungkyunkwan-uni version of <Jawunga> category have lines with different narrative perspective of 『Sohyonseong-rok』. On the other hand, Yonsei-uni version of <Jawunga>, the oldest, does not have such lines. This means Yonsei-uni version of <Jawunga> reflects 『Sohyonseong-rok』's narrative perspective most thoroughly. These differences in versions resulted from the readers' attempt to project different views in 『Sohyonseong-rok』's narrative perspective. These different views were attributed to the appearance of various novels written in Korean after 『Sohyonseong- rok』. With all considered hitherto, the different views from the reading experience have led versions in Sungkyunkwan-uni version of <Jawunga> category to have omitted and transformed lines throughout the distribution of Yonsei-uni version of <Jawunga>.

8,500원

7

명말청초 문학과 북학파 문학의 변별점 - 연암 박지원과 형암 이덕무를 중심으로

朴在慶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7집 2013.06 pp.177-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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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연암 박지원과 형암 이덕무를 중심으로 18세기 북학파가 보인 문학양상이 명말청초의 그것과 어떤 변별점을 갖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대의명분과 경세의식이 두드러지게 대두된다는 점을 ‘모기령’의 비판적 태도와 문학인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모기령의 변절과 주자비판에 대한 비판적 입장과는 별개로 그의 경학과 학문적 성과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조선 문인들의 독특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존 주자학의 논리에 배치된다고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던 이전 문인들의 경향과 달리, 배울 점이 있다면 어떤 대상이든 간에 감상적인 평가와 별개로 배우고 활용할 수 있다는 북학파의 합리주의적 경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는 춘추대의를 중시하는 것과 경세의식을 중시하는 부분이 만나 북학파에게 있어 새로운 의식을 배태하게 하는데 그것이 바로 ‘실질적 명분론’이다. 그 결과, 연암일파는 명말청초 문학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냉정한 비판적 태도를 갖게 되었다. 그것이 그들이 명말청초 문학과 구분되는 점이다. 이것은 주관적인 자신의 취향에 따른 호오선택이 아닌 객관적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연암일파의 문학비평론 기준을 엿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그래서 그들이 구현한 ‘실사구시의 글쓰기’는 청초 실학에서 보이는 것과 유사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조선만의 특색을 잃지 않고 있다. 같은 경세의식에 대한 강조도 문학론으로 확장하지 않은 중국 실학의 것에 비해 조선은 그것이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경향으로 일체화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포착되어 설명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그러한 경향이 실질적 명분론을 비롯, 구체적인 북학에 대한 주장이나 경제와 관련된 정책의 제시는 물론이고 문학의 효용론적 관점을 강조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연암일파의 사고 전반에 깔려 있는 새로운 형태의 글쓰기 전범이라고 보아야 그 전모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manuscript examined the differences between 18C Bukhak-pa's literature aspect and late Ming Dynasty and early Ch'ing Dynasty's. As a result, Mo gi-ryung(毛奇齡)'s critical attitude and realization about literature confirmed that the justification and awareness of administration were on the rise. Apart from Mo gi-ryung's apostasy and critical attitude to criticize ChuHsi(朱子), Korean literary society in late Chosun Dynasty distinctively conceded his study of Chinese classics and academic performance. Different from the writers who unconditionally criticized anti-Chutzu, Bukhak-pa's rationalism turned out to be separate sentimental estimation and studying no matter what it is if there are something to learn. This way of thinking mixed considering the justification as well as considering awareness of administration, and it cause Bukhak-pa to germinate new consciousness which is called ‘Actual justice’. Consequently, Yeon-am faction had specific and objective critical attitude about late Ming Dynasty and early Ch'ing Dynasty literature. This fact distinguish them from late Ming Dynasty and early Ch'ing Dynasty literature. It offers Yeon-am factions' literature-criticism criterion since they attempted to approach objectively, not by one's subjective preference. Therefore, emprical tradition writing that they pictured looks similar to writing of early Ch'ing Dynasty's Realist School of Confucianism but they kept Chosun's characteristic. About the same emphasis in administration should be explained differently that Chosun’s tendency was to integrate with literary theory unlike Silhak in China. It is possible to figure out the whole picture by regarding these tendency as a new type of writing in general Yeon-am faction's thought including actual justice, opinions of specific Bukhak, an economic policy, and even emphasizing pragmatic view of literature.

7,000원

8

제주도 신화와 ‘고통’의 문제 - <초공본풀이>를 중심으로

신연우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7집 2013.06 pp.207-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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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포도업침․천지왕본풀이․초공본풀이>는 제주도 굿의 처음 부분에 연행되며 또 천부지모형 신화라는 서사구조상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각 무가에서 구현되는 고통의 문제가 체계적으로 제시되어 있어서 이들을 묶어서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서 제주도 굿이 인간의 고통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그 의미가 우리에게 어떤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는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베포도업침>에서는 자연으로 인한 인간의 고통을 제시했다. <천지왕본풀이>는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사회적 고통을 보여주었다. <초공본풀이>의 아기씨는 자신이 왜 어떤 이유로 고통을 겪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신이 내리는 고통은 이유가 없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겪을 수밖에 없는 실존적 고통이기 때문이다. 노가단풍 아기씨가 대표로 겪는 무지의 고통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수명장자 징치 실패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그리고 노가단풍 아기씨의 삶의 고통이 현실에서 반복되는 것처럼, 이 지상에는 고통이 종식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냉철한 현실 인식이 이들 신화에는 들어 있다. 레비나스는 고통 속에 있는 타인이 보여주는 얼굴, 표정, 신음, 외침, 한탄이 우리로 하여금 그를 주목하게 한다고 본다. 고통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주어지고 그 앞에서 우리는 어찌할 수 없게 된다. “고통은 순수하게 당하는 것, 어떠한 도피처도 없이 굴복당하는 것, 굴복 그 자체에 굴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를 바라보는 청중도 자신의 고통에 대하여는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뭔가 모르겠지만 자기 것이 아닌 고통의 타자성에 대한 막연한 인식은 아기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통을 대상화하는 것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보인다. 아기씨의 고통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서 함께 노래를 듣고 아기씨의 고통을 공유하는 같은 자리의 다른 청중과도 대면한다. 심방은 <초공본풀이>를 부르면서 자주 운다. 심방의 울음은 노가단풍 아기씨의 울음이면서 심방의 것이다. 심방의 것이면서 청중의 것이다. 심방과 청중은 아기씨의 삶과 자신들의 삶을 포개어 놓으니 눈물이 난다. 이를 통해서 내가 아닌 약자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게 된다고 보인다. 아버지 없는 아이를 낳아 가난 속에서 혼자 기르는 많은 여성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이들의 고통을 함께 하며 보편화하는 인식의 발전이 있다. 그 어머니 밑에서 자라는 삼멩두같은 아이들의 고통도 함께 자기화할 수 있다. 약자들을 서로 돕는 윤리적 자아가 자연스럽게 생성된다. <베포도업침>과 <천지왕본풀이>를 통해 보면 자연이나 사회적 관계로 인한 고통은 해결될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나 해결 이전에 고통에 대한 이해와 고통을 통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방법에 대한 탐색이 필요하다는 문제를 <초공본풀이>가 제기한다. 고통은 전면적이지만 어떤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인식은 삶을 무의미하게 또 황폐하게 할 수 있다. 부질없는 고통이기만 한 삶을 어째서 지속해야 하는가 하는 실존적 질문으로 연결된다. <초공본풀이>는 노가단풍 아기씨를 통해서 고통은 목적이 없고 그 자체로 의미가 없지만, 고통의 타자성 속에서도 고통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서 고통을 이해하고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공감을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된다. 이 공감에 의한 실천이 민중적 도덕성을 이룬다. <초공본풀이>에서 보여주는 고통의 모습을 <이공본풀이>, <세경본풀이> 등 제주도의 다른 서사무가와 비교해 보았고, 또한 그리스 신화에서 여주인공들이 교만으로 인해 비극으로 삶을 마감하는 것과 좋은 대조가 된다는 것도 살펴보았다.
I have examined the problem of human suffering through the three pieces of shaman epic of Jeju Island. <Bepodoupchim> shows us the sufferings from nature itself. <Chonjiwang Bonpoori> is about the sufferings from man of power/wealth. The heroine of <Chogong Bonpoori> does not know the reason why she had to go through such a hardship or ordeal. It is the sufferings from existence. we all have the same kind of suffering from unknown cause. These myths show us the sober assessment of the human situation by telling us that there will be always sufferings with us; as shown in the failure of punishing the villain ‘Soomyong Jangja’, and the insoluble and cascading suffering of the lady of <Chogong Bonpoori>. Her face, moan, cry and lamentation talk to us. we can not help noticing and hearing her suffering. We become share her sorrow. The shaman and the audiences share the tears with the heroine. That way, it seems to be possible for us to understand the others, the weak, as Emmanuel Levinas, a French Philosopher, taught us. I also have compared the aspects of human suffering with that of other Jeju shaman epic <Igong Bonpoori> and <Segyoung Bonpoori>. I have checked some contrast between <Chogong Bonpoori> and a Greek tragic myth <Niobe>, the ‘ignorance’ of the lady of <Chogong Bonpoori> and the ‘hubris’ of Niobe, the daughter of Tantal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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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의 재당시기 한시 고찰 - 『계원필경집』에 수록되지 않은 시를 중심으로 -

이황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7집 2013.06 pp.237-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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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최치원이 당에서 생활하며 지은 한시, 즉 ‘재당시’에 대해 고찰하였다. 본고에서는 『계원필경집』 에 수록된 시는 그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이는 권17의 「기덕시」 30수는 고변의 공로와 업적을 칭송한 헌시이며, 권20에 수록된 30수의 시는 거의가 귀국기에 쓰여진 시라는 창작시점의 특수성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현존시 중 28수가 재당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았다. 최치원의 재당생애는 크게 과거급제시기, 율수현위시기, 고변막부 시기로 나눌 수 있다. 과거급제시기(8수)에는 과거급제 후의 기쁨과 웅대한 포부,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방랑해야하는 자신의 처지와 가난을 걱정하고 한탄하는 모습도 보이게 된다. 이 시기에 지은 시들은 이미 습작의 수준을 넘어 작품수준 면에서 많은 발전을 보인 시기라 할 수 있다. 율수현위시기(5수)에 지어진 시 가운데 4수가 『천재가구』에 수록되어 있는 데, 이로 보아 이 당시에 지은 작품은 빼어난 예술성을 가진 작품들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만당시풍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기는 할 것이지만, 비교적 안정된 생활과 정신적인 여유도 이 시기의 시 창작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고변막부시기(15수)는 최치원이 고변에게 중용을 받기 시작한 881년 5월을 기준으로 두 시기로 나누어 살폈다. 중용을 받기 전에는 자신의 재능과 포부를 마음껏 펼칠 수 없는 현실 한탄이 주조를 이룬다. 881년 5월 이후 최치원은 고변의 부름을 받아 종사하게 되고, 7월에는 <격황소서>를 통해 문명을 천하에 떨치며 고변의 두터운 신임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로 인해 주변의 시기와 배척을 받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 시기는 최치원이 당에서 지내왔던 그 어느 시기보다 희로애락이 매우 복잡하게 뒤얽혀 있었던 시기였으며, 그로 인해 다양한 풍격의 시가 지어졌다. 최치원의 재당시를 통틀어 현전하는 오언시는 단 3수밖에 안되지만, 이는 칠언시가 더 유행했던 만당 문단의 경향과도 관계있을 것이다. 또한 최치원은 당에서 당시의 저명 시인들과의 친분과 교류를 통해, 그리고 당시의 문학풍조와 시풍을 몸소 체험하며 시 창작에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또 외국인인 신라인이었기에 그의 시에는 당나라 문인들과는 또 다른 감성과 고민이 담겨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This study considers Chinese poems written by Choi Chi Won while he was staying in Tang, that is, ‘Jaedangsi(poems written during a stay in Tang)’. This article excludes the poems contained in 『Gyewonpilgyeongjip』 from its study subjects. This author assumes that the existing 28 pieces were written in the period of his stay in Tang. In the period of passing the state exam (8 pieces), he showed not only the ecstasy and great aspiration after passing the exam but also his aspects of worrying and bemoaning the circumstances he had in which he had to wander about and poverty as well. The poems written in this period exceed the level of mere practice but show great development as real pieces of art. 4 pieces among those written in the period of Yulsuhyeonwi (5 pieces) are contained in 『Cheonjaegagu』 . This seems to show that many of the works written in this period exhibit superior artistry. This may be not just because he was influenced by the style of the late Tang poetry but because the quite stable life and mental composure he had then affected his poetry writing in this period. The period of Gaopian's shogunate (15 pieces) was examined as two periods with May, 881 as the point of division when Choi Chi Won began to get important post from Gaopian. Before getting important post, most of his poems bemoan the reality that he cannot exhibit his talent and aspiration to the fullest. After May, 881, Choi Chi Won got to have Gaopian's confidence. However, because of this, he also suffered from jealousy and exclusion from those around him. Therefore, this period is mingled with all different feelings more complexly mixed than in any other period he lived in Tang, which made him write poems showing more diverse features. From all Choi Chi Won's Jaedangsi, oeonsi still existing are only 3 pieces; however, this may have been associated with the trends of late Tang's literary circles in which chileonsi was more popular. Also, as having friendship and exchanges with many famous poets in Tang then and experiencing the literary trends and the styles of poetry in Tang in person, Choi Chi Won may have been influenced very much in terms of his poetry writing. However, since he was a foreigner, a person from Shilla, we can see that his poems contain emotion and consideration different from those of the literary persons of T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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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維翰의 海游錄 재론ㆍⅡ ― 필담창수집 『桑韓星槎答響』과의 대비를 중심으로

고운기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7집 2013.06 pp.27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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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桑韓星槎答響』을 통해 『海遊錄』의 이면을 살펴보았다. 『桑韓星槎答響』은 己亥年(1719) 사신의 행렬이 돌아오는 길에 벌써 大坂에서 출판된 것으로 주목을 받은 책이다. 우리는 여기서 申維翰이 써서 남긴 시를 발견하고, 제술관으로서 거리낌 없이 불교에 관해 논의한 내용과, 군신간 충의가 도드라지는 고사에 儒者로서 보인 관심을 확인한다. 이 글에서 처음 그 내용이 소개되는 『桑韓星槎答響』은 신유한을 비롯한 제술관과 서기 등이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일본의 館伴과 나눈 창화 기록이다. 對馬島에 도착한 뒤 6월 29일의 첫 대면부터 8월 19일 赤間關까지이다. 『桑韓星槎答響』은 月心이 주도하여 출판되었다. 두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창화한 작품을 신속하게 정리하여 출판에 부친 월심의 노력은 가상하다. 아마도 신유한 등 사신 일행이 3개월 뒤 오사카로 돌아왔을 때 보여주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고 보인다. 월심과 창화한 신유한의 시는 5題 9首 실려 있다. 같은 기간의 『해유록』에 신유한은 3題 27首를 실었다. 두 책에 겹치는 시는 한 편도 없다. 『桑韓星槎答響』의 5題 9首를 통해 두 사람이 창화한 시를 볼 때, 실제 신유한이 그의 시에 대해 내린 평가가 『해유록』에 기록한 것처럼 낮다고만 할 수 없을 듯하다. 다소 인상적인 평가를 남겼을 뿐, 창화하는 자리에서 아주 무성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리어 입국 전 갖고 있었던 선입관이 월심을 통해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보인다. 신유한과 월심 사이에 나눈 장문의 필담은 불교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물론 시처럼 이 필담도 신유한은『해유록』에 싣지 않았다. 그러나 신유한의 불교 논의는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통신사행이 이어지는 동안 금기시한 것 가운데 하나가 불교 논의였다. 이런 분위기는 신유한의 사행 길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桑韓星槎答響』의 편찬자가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실은 데에는 그런 희소성이 한몫했으리라 보인다. 赤間關의 고사는 『해유록』과 『桑韓星槎答響』에 같이 나온다. 이 기사는 상대 관반과의 필담도 아니고 창수시도 아니다. 저들의 대화 속에 나오는 한 부분을 신유한이 얻어 옮겨 놓았을 뿐이다. 『桑韓星槎答響』에 실린 8題 10首의 시를 신유한은 이 가운데서 5수만 『해유록』에 옮겨 적었다. 유교적 군신관계에 익숙한 신유한에게 이 사건은 매우 친숙하게 다가왔다고 보인다. 신하가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는 일은 칭송하고, 그로 인해 곤궁한 처지에 몰리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심정이다. 월심은 신유한이 이렇듯 관심을 보인 데 고무되어, 『桑韓星槎答響』을 편찬하며 책 끝에 붙였던 것 같다.
この文では, 『桑韓星槎答響』を通じて, 『海遊録』の裏面を見た.『桑韓星槎答響』は, 己亥年(1719)使臣の行列が帰って来る途中に, もう大阪で出版されたことで注目を引いた本だ. 私たちはここで申維翰が書いて残した詩を見つけて, 製述官として憚りなく仏教に関して論議した内容と, 君臣間忠義が目立つ故事に, 儒者として見えた関心を確認する.  この文で初めてその内容が紹介される『桑韓星槎答響』は, 申維翰を含めた製述官と書記などが, 日本に到着するあとすぐ会った日本の館伴と交じった唱和記録だ. 対馬島に到着した後, 6月29日の初対面から8月19日の赤間関までだ. 『桑韓星槎答響』は, 月心が主導して出版された. 2ヶ月余りな期間の間唱和した作品を, 速かに整理して出版に付けた努力は可賞する. たぶん申維翰などが3ヶ月後, 大阪に帰って来た時, 見せてくれようとする意図が隠れていたと見える.  月心と唱和した申維翰の詩は, 5題9首が積まれている. 同期間の『海遊録』に申維翰は, 3題27首を積んだ. 二つの本に重なる詩は一篇もない. 『桑韓星槎答響』の5題9首を通じて, 二人が唱和した詩を見る際, 申維翰が彼の詩に対して下った評価が, 『海遊録』に記録したように低いとばかりできないようだ. ちょっと印象的な評価を残しただけ, 唱和する席でとてもお座成りではなかったというのだ. 返って, 入国の前に持っていた先入観が, 月心を通じて変わるきっかけになったとも見える.  申維翰と月心の間に交じった長文の筆談は, 仏教に関する内容が主である. もちろん詩のように, この筆談も申維翰は『海遊録』に積まなかった. しかし申維翰の仏教論議は相当な意味を持つ. 通信使行がつながる間, タブー視したことの中の一つが仏教論議だった. こんな雰囲気は, 申維翰の使行道にも特に違わなかったようだ. 『桑韓星槎答響』の編者が, この部分を集中的に載るところには, そんな稀少性が一役したであろうと見える.  赤間関の故事は, 『海遊録󰡕と『桑韓星槎答響󰡕に一緒に出る. この記事は, 相手館伴との筆談でもなくて, 詩でもない. 彼らの対話の中に出る一部分を, 申維翰が得て移しておいただけだ. 『桑韓星槎答響』に積まれた8題10首の詩を, 申維翰は, このなかにで5首だけを『海遊録』に書き写した. 儒教的な君臣関係に慣れた申維翰に, この事件は非常に親しく近付いたと見える. 臣下が王に忠誠をつくす事はほめたたえて, それによって困窮した境遇に追い込まれることを称える心情だ. 月心は申維翰がこのように関心を見せたのに鼓舞されて, 『桑韓星槎答響』を編纂して本末に付けたようだ.

8,1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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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정록』과 나선정벌 노정 연구 - 회령-목단강시 구간을 대상으로 -

권혁래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7집 2013.06 pp.313-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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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8년 신유가 지휘한 조선군의 나선정벌은 역사적으로나 문학적으로나 매우 중요하고 흥미로운 사건이다. 필자는 신유의 진중일기 『북정록』을 연구하면서 ‘지리 공간 및 노정’의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나선정벌의 일부 구간인 함경북도 회령 - 흑룡강성 목단강시 구간을 답사하며 조사한 결과를 이 논문에 기술하였다. 이 논문의 주요 내용은 다음의 두 가지다. 첫째, 위 구간의 실제 지명과 이동 경로를 확인․비정한 내용이다. 확인하기 어려운 고 지명도 많았으나, 남아 있는 옛길을 따라 이동하면서 이동 경로도를 그려낼 수 있었고, 古羅耳嶺(현 海關嶺), 羅汗嶺(현 天橋嶺), 末古里(현 馬蓮河), 柏子嶺(현 老松嶺), 도강처(현 石巖鎭), 행복촌, 영고탑성, 해랑강, 목단강 등 주요 지역의 위치를 비정하였다. 확인한 지명과 노정은 GPS 좌표 기록 작업을 하여 지도로 나타내고, 경관은 사진으로 제시하였다. 둘째, 길과 주변 공간이 신유의 인식과 감회와 어떠한 연관 관계를 지니는지, 자연 지리공간이 어떻게 문학적으로 형상화되는지 고찰하였다. 신유의 『북정록』은 객관적 사실과 임무 수행에 관련된 일을 기록한 전쟁 수행일기에 가깝다. 두만강 도강부터 영고탑성 입성까지의 일기는 내용이 단조로운 편이나, 신유는 주요 행군 노정을 일기에 빠짐없이 기록하였으며, 특히 울창한 백자령 숲에 대한 감회나 석암진 도강처에서의 상황과 힘겨움, 영고탑 성문밖에서 느끼는 고뇌와 피곤함, 영고탑성의 장수, 정세, 토지풍속 등에 대한 감회를 절제있게 표현하였다. 이러한 지리 공간에 대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문학지도’ 제작의 필요성, 『북정록』과 허구적 개작이 이뤄진 <북정일기>, <배시황전>, <북행일록> 등의 작품을 새롭게 비교연구할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In Shin Yu's Bukjeongrok, there is a realistic account of the 1658 Russian invasion by the sea near Heilong Jiang(Amur River) that was defeated by the Joseon marine forces. I consider the ‘geographical space and path’ to be important in the study of Shin Yu’s diary, Bukjeongrok. Therefore, the on-site surveys of the section from Hoiryeong to Mudanjiang are included in this paper. First, the real names of the locations and routing were checked and confirmed. There are many old names that are currently difficult to check, but I can draw the moving path along the old roads, and confirmed the locations of the major campsites, including Go-rai-ryeong, Na-han-ryeong, Mal-go-ri, Baek-ja-ryeong, Seok-am-jin, and Yeonggotap-seong. The location names and the moving path confirmed were included on the map after the coordinate transformation to fit the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and the views were presented in the form of images. Second, the depictions of the paths and natural geographical spaces in the literature were reviewed. Shin Yu recorded major marches thoroughly in his diary. In particular, he depicted the march through the Baekjaryeong Woods, the difficulties of crossing the river at Seokamjin, the anguish he felt at Yeonggotap-seong, and the memories of the anthropogeography at Yeonggotap-seong.

7,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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橘山 李裕元의 『體論類編』ㆍ『國朝謨訓』저술 양상과 그 의의

권진옥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7집 2013.06 pp.345-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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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의 정치적․문화적 현상을 연구함에 있어서,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은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만큼 제 전공분야에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본고는 이유원이 남긴 저술에 주목하여, 아직 학계에서 주목받지 않은 자료를 소개하고, 이와 동시에 그 저술 양상과 의의를 밝히고자 한다. 이유원의 동시대 지식인들은 청대 고증학의 영향으로 차기(箚記) 형태의 유서(類書)를 통해 지식을 체계화하고 정리하는 데 부단히 노력하였다. 이유원 역시 젊은 시절부터 이러한 학문태도를 견지했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체론류편(體論類編)』과 『국조모훈(國朝謨訓)』이다. 『체론류편』은 중국의 역사에 대한 기록을 유서로 만든 책이다. 방대한 지식을 부문과 조목으로 구별하여 관련 정보를 집적하는 학문 태도를 본격적으로 드러낸 자료라 할 수 있는데, 처음으로 이유원이 자신의 지식 창고를 만들려고 시도한 결과라 하겠다. 『국조모훈』은 『체론류편』을 완성하고서 바로 착수한 유서인데, 『국조보감(國朝寶鑑)』 가운데 가장 감계(鑑戒)가 될 만한 것들을 뽑아서 엮은 것이다. 『국조모훈』은 비록 제왕학과 관련된 내용이지만 자신의 관심 분야에서는 기민하게 대응하여 관련 지식 정보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학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체론류편』과 마찬가지이다. 『체론류편』과 『국조모훈』은 이유원의 대표적 유서인 『임하필기(林下筆記)』와의 친연성을 확인할 수 있다. 『임하필기』는 만년인 1872년에 최종적으로 마무리된 책이지만, 그 이전에 이미 습작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었음은 자명한데 『체론류편』과 『국조모훈』이 그 증거가 된다. 이후에도 이유원은 문장 공부에서의 『제자백준(諸子百雋)』․『전국책절요(戰國策節要)』, 서법(書法)에서의 『한례총회(漢隷䕺薈)』, 집안 가승(家乘)에서의 『이씨금석록(李氏金石錄)』, 생활 관련 유서인 『유하쇄록(榴夏瑣錄)』 등 꾸준히 다방면의 유서들을 편찬하면서 자신만의 온전한 지식 공간을 확대하였고, 결국 『임하필기』를 완성하게 이르렀다. 이렇게 이유원은 방대한 장서들을 바탕으로 긴요한 방면에 각각의 유서를 차례차례 만들어 가면서, 자신의 학문적 성취를 동시대는 물론이고 이후 세대에게 지식 백과사전의 양태로 제공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Political and cultural phenomena of the 19th century, Lee, Yu-won(李裕元) is an important figure. This research introduces his work that does not pay attention in academia, and says that the significance. Due to the influence of the qing dynasty's documental archaeology, through the commonplace book in the form of Ryuseo(類书), he organized and summarized knowledge. The result is Cheronryupeon(體論類編) and Kukchomohun(國朝謨訓). Cheronryupeon(體論類編) is made to Ryuseo(類书), has recorded the history of China. he distinguished clause vast knowledge, integrated the relevant information. First he is made to their knowledge base. Kukchomohun(國朝謨訓) has been written the becoming an example items in Kukchobogam(國朝寶鑑). He has shown an attitude that organized knowledge in the field of their interest, this is like Cheronryupeon(體論類編). Two books can be found the affinity with his Imhapilgi((林下笔记). Even after he compiled consistently the various Ryuseo(類書), Jyejabaekjun(諸子百雋), Jeonkukchaekjeolyo(戰國策節要), Hanyechonghoi(漢隷䕺薈), Leesikumseokrok(李氏金石錄), Ryuhasoairok(榴夏瑣錄), etc. Then, in later life he finally completed Imhapilgi((林下笔记). he completed the various Ryuseo(類書) of critical aspects based on his extensive collection, provided own academic achievement to contemporary and future generations as an aspect of the encyclopedia.

6,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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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句六名에 대한 연구

손종흠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7집 2013.06 pp.375-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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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때부터 만들어지고 불렸던 향가에 대한 언급으로 『均如傳』에 등장하는 표현인 삼구육명에 대해서는 그 동안 여러 연구자에 의해 다양한 각도에서 고찰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자료의 부족과 표현의 간명성으로 인한 해석의 어려움 때문에 아직까지 이렇다 할 정설이 확립되지 못한 상태이다. 삼구육명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는 첫째, 향가의 형식에 국한시켜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 둘째, 민족시가의 보편적인 형식에 대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 셋째, 신라와 고려의 음악과 관련을 가지는 음악적 단위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 등으로 종합해 볼 수 있다. 필자는 삼구육명은 민족시가의 형식적 특성에 대한 표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그것에 대한 접근 방법으로는 한국어가 지니고 있는 언어적 특성과 결부시켜서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삼구육명과 대비되는 표현으로 등장하는 五言七字의 의미를 함께 고찰하는 것 또한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오언칠자는 중국 한시의 형식적 특성을 지칭한 것으로 보아야 하고, 삼구육명은 한국 시가의 형식적 특성을 지칭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데, 그럴 경우 오언칠자는 중국어의 특성과 연결시켜 해석해야 할 것이며, 삼구육명은 우리말의 특성과 연결시켜 해석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으로 접근할 때 오언칠자에서 五言은 한시의 聲韻을 의미하고, 七字는 한시의 형태를 지칭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삼구육명에서 三句는 하나의 행을 이루는 句의 숫자를 의미하고, 六名은 구를 이루는 구성요소인 名의 숫자를 의미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삼구육명이란 표현은 향가의 형식적 특성만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민족시가의 형식적 특성을 나타낸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볼 때 한국 시가는 하나의 행이 세 개의 구로 형성되며, 하나의 구는 두 개의 명으로 이루어지는 특성을 지칭한 것이 바로 삼구육명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된다. 行의 주기적 반복으로 구성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 우리 민족의 시가는 불교사상이 중심을 이루던 남북국시대와 고려시대까지는 삼구육명의 형식이 중심을 이루었고 儒學을 정치이념으로 하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하나의 행이 네 개의 구와 여덟 개의 명으로 구성되는 四句八名의 형식이 중심을 이루는 방식으로 발전해 온 것으로 보인다.
Samguryukmyong(三句六名) is a template of rhyme in Hyangga which is the Korean Siga(詩歌) sung during the Silla period, and is concisely mentioned in Kyunyeogeon(均如傳). There have been many studies that thrive to define and clarify the meaning of Samguryukmyong from various aspects. The definition still, however, remains unclear due to lack of records and difficulties of understanding it from Kyunyeogeon. At the end, these studies have come to bring out three feasible ways of how to interpret Samguryukmyong; restricting its meaning within the boundary of Hyangga(鄕歌), or considering it as one general trend of the Korean Poetry, or as one sort of music from the Silla and Goryeo dynasty. This paper suggests that the interpretation should be started by looking at Samguryukmyong as one kind of the Korean Classical Poetry as well as by relating to linguistic characteristics of Korean. In order to enlighten this hypothesis, Ounchilja(五言七字) might need to be taken into the place, which has comparable characteristics to Samguryukmyong. Since Ounchilja and Samguryukmyong are regarded to represent unique characteristics of the Chinese Hansi(漢詩), and of the Korean Siga each, it is reasonable for them to be interpreted with consideration of each characteristics of Chinese and of the Korean language. As a result, Oun(五言) of Ounchilja indicates Seongun(聲韻) of Hansi, and chilja(七字) can be interpreted to point out a structural feature of Hansi. Similarly, Samgu(三句) of Samguryukmyong implies Gu(句) that builds up Haeng (行), and Ryukmyong(六名) means the number of Myong(名), which is a component of Gu. Therefore, Samguryukmyong does not only involve structural characteristics of Hyangga, but of the Korean Classical Poetry, as well. From this fact, Samguryukmyong can conclude that one Haeng in the Korean Poetry is composed of three Gus and one Gu is made up of two Myongs. In the North and South Kingdom Period and the Goryeo Period where Buddhism was a central religion, Samguryukmyong was the main trend of the Korean Classical Poetry that has distinctive features of consistent repetition of Haeng. Different from that, Joseon that accepted Confucianism as political ideology, appeared to create Sagupalmyong(四句八名) where four Gus and eight Myongs produce Haeng.

7,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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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역학(共感力學)’의 장(場), 조선후기 판례집의 내러티브

강혜종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7집 2013.06 pp.409-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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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조선후기 옥안과 판부의 서술 양상에 나타난 감성적 공감의 표상과 작동 방식을 분석하기 위하여, 조선후기 대표적인 판례집인 『추관지』, 『심리록』,『흠흠신서』와 함께, 전통시기 형정 인식과 법감정의 문제를 고찰할 수 있는 문집 및 왕조실록 등의 고전적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이는 특히 옥안과 판부의 내러티브의 표면과 이면의 요소들로 형성되어 작동하는 ‘공감역학’을 감정의 문제를 중심으로 고찰하여, 공공의 장에서 용인․배제․위계화 되고, 상상되거나 강요되는 감정의 양상과 공감의 성격, 공감의 표상화와 공감 표상의 작동 방식 등을 압축적으로 살피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조선후기 형정체제가 정비되는 과정에서 옥안 작성법의 개선 움직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점이 인지되고 있었던 당시의 옥안과 판부의 서술 양상 중 공감의 내러티브와 법감정 관찰에 유효한 사례로 『흠흠신서』에 수록된 <원수 갚음에 대한 용서[復雪之原]> 조목의 사례들을 『심리록』에 수록된 관련 사례들과 함께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과학적인 검험과 법 추론이 충분히 행해지지 않아 논쟁점들이 부각되는 지점에서, 정황을 재구성하는 사건 재현의 내러티브들이 확장되고, 감성에 호소하며 공감을 촉구하는 문예적 글쓰기의 특징이 두드러짐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법리적 해석과 법집행에 관여하는 위계화 된 관리들과 피고인 등이 사건해석을 둘러싼 공감 경합을 벌이는 과정에서, ‘五刑’의 적용보다 ‘五品’이 우선시 되는 禮治가 반영된 옥안과 판부의 서사가 구성되는 가운데, 지배 규범적 가치 하에서 용인되지 않는 특수한 감정이 공감되기는 힘들었던 맥락을 규명하였다. 즉, 규범화/계급화 된 표상으로서의 감정이 공감되고, 규범적 가치에 반하는 감정이 배제되거나, 타자화 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형정의 집행과 옥안과 판부의 서술이 지배층, 즉, ‘유가적 가치관을 실현시키려는 남성 관리들’이라는 특정 집단에 의해서만 작성될 수 있었다는 점 등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관련이 있었으며, 被治者들에게는 ‘유가적 가치의 감정적 표출’이 감형을 위해 관리들의 공감을 유도하는 전략이었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金允植(1835-1922)의 글에서는, 유가적 윤리 규범의 실현을 위한/실현으로서의 법이, 적극적으로 습득해야 할 지식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이를 통해, 법리 적용에 핵심 기준이었던 강상윤리가 보편적 도덕으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전통적 법감정의 요소가 공감에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지고, 이전 시기와는 다른 법감정이 형성될 변화의 기미를 예측해볼 수 있었다.
This paper aims to analyze the representations of emotional empathy and how they have been operated in narratives of legal writings-Ok’an 獄案 and P’anpu 判付 of Chosŏn dynasty. The representative books of juridical precedents, Ch’ugwanji 秋官志, Simnirok 審理錄, and Hǔmhǔmsinsǒ 欽欽新書 published in late Chosŏn, not only show how Korean legalization or legal imagination has existed, but also a realistic portrayal and narrative of the age. Also, they deeply reflects the awareness of reality and figuration of the times as well as the discursive practices. However, during late Chosŏn, the way of legal writing by officials were regarded as an one of the serious problems which should be improved for a penal system. Considering these aspects, this paper deals with diverse materials related to aforementioned books, such as collections of literary works of literati and the Annals of Chosŏn dynasty. This work is especially done to contemplate language itself as a critical factors as a representation of cultural convention with the other factors having been formed behind language in and out of legal documents written by penal administrators and also written judgements by a King. Especially, focusing on the emotional empathy in narrative of legal writings which have been approved, excluded, being hierarchically arranged, imagined or forced, this research elucidates the feature of empathy and the operation of empathetic representation in public sphere compressively. As suitable cases to contemplate empathetic narratives, the five precedents of <Forgiveness to avenging[復雪之原]> from Hǔmhǔmsinsǒ were analyzed with Simnirok’s cases together focusing on where the argument and controversy were magnified. It also focuses on parts of the texts in which abundant emotional expressions were applied rather than scientific inquest and legal reasoning. In this context, specific emotions which were not accepted as ‘Confucian emotion’ were excluded and seldom won the empathy. This was directly related with the fact that legal writings such as Ok’an and P’anpu could be written only by male officials who pursuit to enhance the orthodoxy and ideology of Confucian society. Also, when empathy competition was generated between hierarchic literati in charge of juridical interpretation and the accused, or among the literati themselves, the indoctrinated Confucian norms were put before than other factors. This was why the ruled appealed the fact they were realizing Confucian values through exposure of emotion which was a strategy for inducing empathy to receive reduced sentence. The last part of this research suggests the trend of change in perspective on law through Kim Yun-sik 金允植(1835-1922)’s writing. In his writing, the law as a tool for the realization of Confucian norms was regarded as a knowledge which must be acquired by all the people. This means that Confucian moral principles 綱常倫理 which functioned as critical standard for jurisprudential application started to be replaced to other one and this change also affected the change of legal emotion.

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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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전>의 공감화 맥락 : ‘공/사’의 경계 구분과 공생적 공공성

최기숙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7집 2013.06 pp.449-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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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전>은 상상적 차원에서 개인의 불행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한계와 초과 영역에 대한 처리 방식을 서사화한 소설이다. 이 논문에서는 <심청전>을 대상으로 개인의 고통이 어떻게 공공의 문제가 될 수 있으며, 이웃의 불행에 대한 동정의 한계선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동정을 넘어선 차원의 ‘공생’을 위한 ‘돌봄’의 처신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한국인의 정서구조를 공감대의 차원에서 해명하고자 했다. 텍스트의 내부에 등장하는 심청의 이웃은 극빈으로 고통 받는 심청과 심봉사 가족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따뜻하게 돌보는 ‘공생’의 태도를 지향했으며, 이는 ‘십시일반’의 공생 규약을 확정하고 있었다. 이웃은 심봉사 가족을 위해 공양미 삼백석을 마련해 주지는 못했지만, 생존 이상의 희망을 원하는 심봉사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동정의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심봉사의 꿈’은 이웃이 도울 수 있는 한계선을 넘어선 것이었기 때문에, 심청은 인당수에 투신하는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심청전>의 서사 구조는 심청을 환생시키고 왕후가 되게 함으로써, 개인의 불행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관심을 제고했다. 동시에 인간 세상을 관찰하고 상벌을 가하는 ‘수궁 세계’라는 환상적 장치를 설정함으로써, 현실 세계의 도덕적 완결성을 지향하고자 했다. <심청전>은 개인과 사회,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개인/가정과 사회/국가의 허용 가능한 교섭 지점과 역할, 방식에 대한 사유를 이야기의 형태로 모색하는 동시에, 이에 대한 상상적 응답을 제안했다. <심청전>의 세계에서 딸로서의 효심과 국모로서의 은전이 명백히 구분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으며, 감정의 공/사 경계의 불확실성은 주체의 삶의 영역과 사회적 위치에서 배태되는 정체성의 복합성에 대한 인지로 이어졌다. 심청이 효심이라는 사적 욕구 때문에 맹인 잔치라는 공적 명분을 동원한 것은 한 개인의 내면에서 공/사의 경계가 어떻게 중첩되고 착종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인 동시에, 욕망과 명분, 동정과 책임이 사실은 명백히 구분될 수 없다는 심리적ㆍ사회적 공통 영역에 대한 인정구조가 형성되었음을 시사해준다.
Simcheongjeon is one of the representative Korean classical novels which were narrated the discernable meaning of the private and the public by issuing the personal painful problem as like penury and blindness of the main character Simbongsa and pious morality of Simcheong. This paper analyzed this novel with eight versions with regard to the sympathetic context as follows; how the personal pain can be the public issue? what is the borderline of the compassion toward the suffered neighbor, and how does it come to such a decision? how should we take care of neighbor who undergo painful experience and should make symbiotic society peacefully as community members? The neighbor in the novel showed warm and sincere attitude continually to care of Simcheong's family with ordinary consideration and they oriented symbiotic life. The neighbor couldn’t resolve completely Simcheong and Simbongsa's painful and unhappy life. Blind Simbongsa hoped to be opened his eyes, and the neighbor sufficiently understand his painful situation so they showed serious consideration to Sim family and watched their lives with sympathetic attitude. The dream of Simbongsa couldn’t be realized with the neighbor’s ordinary small help, so Simcheong had to face the tragic; throwing herself into the river in a condition of getting lots of money which could be donated to the temple for realizing her father’s wish. However the novel made the story a decisive turning point, as it were, Simcheong was given rebirth to in a dragon palace which was placed in a deep ocean and became a queen who could gain the higest public status. This story was narrated with fantastic way, but it was a result of pursuing a complete morality amongst incomplete reality. Simcheongjeon suggested the literary imagination on the borderline of between individual and society, private sphere and public sphere, individual and family, society and nation and their intersections. In the novel, it was portrayed as impossible to discern clearly what was the piety as a daughter for the father and what was the benefit as a queen for the poor people. And also it was narrated the uncertainty of the borderline between emotional publicness and privateness and such phenomenon was linked with the recognition on the complex identities of female character Simcheong. It is an example to explain how can overlap and confuse the publicness and the privateness in a person’s inner mind and how can the private desire link with public justification. This paper proved that it is impossible to strictly discern between compassion and responsibility, individual desire and public justification and psychological and social intersections by analysing the narrative and sympathetic context of Simcheongjeon.

8,1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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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도서관 소장 고소설의 서지적 연구

유춘동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7집 2013.06 pp.487-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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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울의 남산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소설 17종을 대상으로, 서지(書誌), 각 책의 계통과 특징을 검토한 것이다. 서울의 남산도서관에는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한문 방각본 소설 『구운몽』1종, 한글 필사본 『구운몽』1종(3책), 경판 방각본 『구운몽』, 『당태종전』, 『조웅전』, 『백학선전』, 『삼국지』(2종), 『신미록』, 『심청전』, 『양산백전』, 『양풍전』, 『임장군전』, 『장한절효기』, 『정수경전』, 『제마무전』14종, 등사본(謄寫本) 『열여춘향수절가』1종이 소장되어 있다. 이 책들은 모두 이화여대에서 국문과 교수를 역임했던 강윤호 교수가 기증한 것으로, 검토한 결과 대부분 학계에 알려진 것들이었다. 그러나 경판 방각본의 경우 대부분 한남서림(翰南書林) 판권지가 모두 붙어져 있었고, 경판 방각본 『삼국지』는 원래 있었던 간기(刊記)의 일부를 지운 채 유통되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서 1910년대 한남서림에서 인수했던 경판 방각본 소설의 종류, 『삼국지』의 유통 양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이 글은 이러한 서울 남산도서관 자료의 실상과 특성을 알리는데 주안을 두었다.
This article targets Seventeen types of Gososol in the Seoul Namsan Public Library to examine the bibliography, system, and characteristics of each. Among the Seventeen types, Hanmun banggakbon Guunmong, Philsabon Guunmong, Hangul banggakbon gyeongpanbon Guunmong, Dangtaejongjeon, Choungjeon, Bakhaksunjeon, Samgukji, Shinmirok, Simchungjeon, Yangsanbaekjeon, Yangpungjeon, Limjanggunjeon, Janghanjeolhyogi, Jungsukyungjeon, Jaemamujeon, Chunhyangjeon have been already found in Korea, too. As of this article was a Gososol argument in the 1910s through the Hannamseolim could determine the type and distribution aspects. This article will focus on promoting the reality of these materi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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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白月二聖의 창작 저변과 서사적 의의 -『顯應錄』소재 曇翼傳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

金承鎬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7집 2013.06 pp.509-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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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遺事』소재 南白月二聖 條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논의가 이루어졌음에도 선행 서사와의 관련성을 타진한 사례는 찾기 어려웠다. 본고는 이 작품이 출현하기까지에는 선행서사의 영향이 있었다고 보는 입장에서 동일 유형의 문헌설화를 범주화하고 이들과 남백월이성의 관련성 및 유사성을 살폈다. 이 작품의 출현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 문헌으로 『高僧傳』, 『法苑珠林』, 『顯應錄』, 『佛祖統紀』등 4편을 거론할 수 있다. 이중 『顯應錄』의 曇翼傳은 어느 작품보다 남백월이성의 창작적 전거의 역할을 했다고 보았는데 공히 ‘미녀의 修行僧 유혹’ 모티브를 수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건, 상황의 제시가 동일하며 수행승의 持戒的 면모를 극적 구성을 통해 선명히 부각시킨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아울러 본고는 선행서사를 넘어서 남백월이성이 나름의 서사적 변별성을 어떻게 확보했는지도 주목했다. 그 결과, 선행서사의 일인성도담 형식을 탈피하여 동반성불담으로 내용과 형식 측면에서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밝혔다. 그리고 서사전개의 큰 틀이 바뀜으로써 나타난 인물기능적 변화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주제적 측면에서 선행담론이 持戒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남백월이성에서는 보살행을 강조했다 하겠는데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동시 성불을 통해 주제를 극적으로 표출시킬 수 있었다. 요컨대 남백월이성은 관행을 따르기보다 기존 서사를 적극적으로 변개시키는 방법으로 성도담의 지평을 열어 놓았다 할 수 있다.
There have been lots of discussions on a narrative “Nambackweoliseong,” which was included in the book “the Heritage of the Three States.” However, few studies have ever attempted to look for connections between it and earlier narratives.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categorize literature narratives of the same type and to examine the relationship and similarities between these narratives and the narrative “Nambaekweoliseong” on the assumption that the creation of this work would be under the influence of earlier narratives. Four literature narratives could be said to have a direct or indirect impact on the creation of this work: “Goseungjeon,” “Beopweonjurim,” “Hyeoneungrok,” and “Buljotonggi.” Specifically, the work “Hyeoneung- rok” seems to have affected this work more than any other work in that the motif of the work was a temptation of a Buddhist monk by a beautiful woman. In addition, the two works dealt with the same incidents in the same situations and dramatically highlighted the Buddhist monk's observance of the Buddhist commandments. In this study, how the work “Nambaekweoliseong” was differentiated from earlier narratives was discussed. In this work, there was an attempt to make great changes in content and form by describing joint attainment of Buddhahood by two or more people, whereas Ilinseongdodam was dominant in earlier narratives. The paradigm shift of narrative development was followed by more narrative changes in diverse elements such as characters, narrative structure and style of writing. In terms of theme, earlier narratives focused on observance of the Buddhist commandments, but the author of this work concentrated his attention on bodhisattva(enlightenment-being)'s action and attaining Buddhahood. It's possible to accentuate the theme by describing the attainment of Buddhahood by Budeok and Daldal. In a word, the work “Nambaekweoliseong” could be said to open a new chapter for Seongdodam by giving drastic changes to existing narratives instead of merely sticking to existing narrative practices. This study is of significance in that it attempted to look into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work and earlier narratives to shed light on the creation background of it and its meaning in narrative literature from an objective perspective.

6,4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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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목동 세책의 대출장부에 대한 고찰

전상욱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7집 2013.06 pp.535-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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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소설을 빌려주고 반납하는 일련의 과정을 기록한 세책 대출장부는, 대출자․대출작품․대출권차 및 기간․담보물 등 자료가 보여주는 구체적인 유통의 실상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전모가 온전하게 정리되어 공개되지 못했기 때문에 전면적인 검토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세책 대출장부 자료가 누구나 수월하게 접근하여 정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료의 조사 및 정리 작업이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보완되고 있는 상황인데, 이 논문 역시 그러한 과정의 한 결과물이다. 이 논문에서는 조선후기-근대초기에 서울의 향목동에 있었던 세책집에서 작성했던 대출장부 기록을 바탕으로 세책의 분량과 대출기록의 절대연도를 추정해 보고, 낱장의 대출기록 사이의 연관성을 파악하여 대출작품의 제목을 밝히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현재까지 정리된 자료를 통해 본다면, 향목동 세책집에서 사용했던 대출장부는 낱장으로 630여 장을 확보할 수 있고 여기에는 4820여 건의 개별 대출기록이 담겨 있다. 이 대출기록 가운데 가장 많은 권차 정보를 담고 있는 자료는 <당진연의> 권13 제14장에 배접되어 있는 대출장부 [당진 13-14]이다. 여기에는 184권까지 대출된 기록이 나타나는데, 현재 알려져 있는 고전소설의 일반적인 존재상황을 고려할 때에 이 작품은 <윤하정삼문취록>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대출 권차가 100권이 넘어가는 대장편소설의 대출기록으로 볼 수 있는 장부는 17장 정도가 확인된다. 반대로 1권 1책으로 유통된 세책도 존재했다는 것을 [삼국 34-26] 등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대출장부에 기록된 대출날짜는 연도표기는 없고, 월일(月日)만 기록되어 있어서 절대연도를 추정하기가 어려운데, 61장의 대출장부에서 윤월(閏月)이라는 표기가 나타나기 때문에 이를 통하여 연도를 추정해 볼 수 있다. 그 결과 향목동 세책 대출장부는 대체로 1911년을 전후한 기록이 많고 1900년을 전후한 기록도 일부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향목동 세책집에서는 작품별로 대출장부를 따로 만들어 사용했기 때문에 각 장부책의 첫장이 아니라면 대출작품의 제목이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낱장으로 흩어져 있는 630여 장의 대출장부는 대출기록에 담겨있는 정보를 세심하게 분석하여 연관성을 발견하여야만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연관성을 바탕으로 [당진 13-18]-[당진 06-17]-[삼국 29-18]-[삼국 29-20]-[삼국 29-09]-[당진 13-15]-[당진 13-16]이 연결되는 대출기록이며 141책본 <임화정연>이 9개월 동안 대출되었던 기록을 담고 있는 대출장부라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또한 42책본 <열국지>, 69책본 <삼국지>의 대출장부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외에 연결되는 대출장부를 5종 12장 찾아낸 것도 성과라고 할 수 있다.
At the lending library account book, the title of lending books, checkout dates, borroews' names and address, pawned items are recored. Now we have scattered 630 sheets, 4820 checkout records of Hyangmok-dong lending library account books. This essay aims to search for the correlation between every sheets and records of account books. the results of this searching are follows. Hyangmok-dong lending library account books are mostly recorded for the time 1900 and 1911. Probably [Dangjin 13-14] is the lending record of Yunhajeongsammunchuirok over 184 volumes. [Dangjin 13-18] - [Dangjin 06-17] - [Samguk 29-18] - [Samguk 29-20] - [Samguk 29-09] - [Dangjin 13-15] - [Dangjin 13-16] are the continuative rending records, and its title of books is Imhwajeonyeon. And then we found the lending records of Yeolgukji and Samgukji etc.

6,900원

부록

19

휘보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7집 2013.06 pp.564-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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