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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상고전연구 [Yeol-sang Journal of Classical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열상고전연구회 [Society of Yol-Sang Academy]
  • ISSN
    1738-2734
  • 간기
    격월간
  • 수록기간
    1988~2019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한국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810 DDC 810
제34집 (11건)
No
1

申維翰의 海遊錄 재론․Ⅰ — 朝日 필담창수 자료 대비를 중심으로

고운기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4집 2011.12 pp.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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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亥使行은 그동안 申維翰의 ꡔ海遊錄ꡕ을 제외하면 그다지 주목 받지 못하였다. 18세기 초에 이르러 朝日關係가 안정을 보이고, 비록 조선에서는 小中華意識이 고착되어 가는 시점이나, 신유한의 ‘순수한 관찰자적 시점’이 획득된 사행이 기해년이었다. ꡔ해유록ꡕ은 그 같은 신유한의 현재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신유한의 보고인 ꡔ해유록ꡕ만 아닌, 일본 쪽에서의 기록 곧 ꡔ蓬島遺珠ꡕ와 ꡔ客館璀粲集ꡕ같은 책을 통해 그의 사행이 가진 의의를 다시 살필 필요가 있다. 뒤의 두 책은 기해 사행단이 나고야에 머문, 에도로 향하던 길의 9월 16일과 돌아가는 길의 10월 25일 밤을 그리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ꡔ해유록ꡕ에 남기지 않은 신유한의 시와 산문을 두 책에서 찾아 처음으로 소개하며, 신유한의 나고야 滯在와 그 의의를 재구하였다. 신유한은 기해 사행 길에 나고야에서 이틀 밤을 묵었다. 그러나 에도로 가는 길에 머문 하룻밤은 와병으로 필담다운 필담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돌아오는 길의 단지 하룻밤이 그를 상대한 館伴으로 하여금 각각 한 권의 책을 낼 만큼의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밤 새워 나눈 시와 이야기, 이별을 슬퍼하고, 알건 모르건 사행단과 관반 사이에 인사를 나누는 마무리—아침 해가 떠오르자 ‘꿈에서 막 깬 듯하였다’는 하룻밤 밤샘의 경험은 사행의 정치적 굴레와 상관없이, 문사의 자유롭고 感慨스러운 교류 속에 얻은 어떤 문화적 만남의 극점처럼 보인다. 신유한은 신유한대로, 館伴은 그들대로 각자 겪은 사행의 일을 자신의 관점에서 적었다. 확대와 축소가 교차한다. 모르긴 해도 그것은 주변의 눈을 의식한 결과일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생긴 그들의 겉과 속을 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文士間의 의기투합은 文士만의 특권이었다. 아침 햇빛에 빛나는 황홀한 꿈이었다. 여기서 18세기 朝日 사이에 만들어진 하나의 문화적 풍경을 읽을 수 있다.
己亥使行に対しては、その間、申維翰のꡔ海遊録ꡕを除けば、あまり注目され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18世紀初に至って、朝日関係が安定を見せて、たとえ朝鮮では小中華意識が固着して行く時点であるけど、申維翰は‘純粋な観察者の時点’を獲得するのに成功した。ꡔヘユロックꡕはその同じ申維翰の現在をよく見せてくれる. これは申維翰の活動とꡔ海遊録ꡕが持った価値にふさわしい評価だったが、己亥使行が申維翰一人だけの成果ではない、使行全体の性格究明のために、また振り返る必要がある。この使行だけの特徴的な事案が見えるからだ。 申維翰の表がꡔ海遊録ꡕで現われたら、その裏を表示のためにꡔ蓬島遺珠ꡕとꡔ客館□粲集ꡕを察しようとする。二つの本は己亥使行団が名古屋に泊まった、江戸に向けた道の9月16日と帰る途中の10月25日夜を描いている。 ここで裏と言うことは単純に知られなかった他の記録を言うだけだ。事実や本当の次元ではない。私たちには長い間、申維翰の記録だけで申維翰の行績を伝えて聞いた。それで自分的で優越的な態度を勘案して入っても、何がどんなにそうか確かに分かりにくかった。ちょうど同じな日夜の仕事を詳らかに書いた'あちら'の記録はここで一定するように役目する。この役目を裏だとしよう.  別離を悲しんで、分かるのは分からないとか、あいさつを交わすこのひと晩徹夜の仕上げ―朝日が浮びがろう‘夢でちょうど覚めたようだった’という経験は、使行の政治的くびきと構わずに、文士の自由で感慨的な交流の中に得た、どんな文化的出会いの極点のように見える。 申維翰は申維翰なりに、木下は木下なりに、彼らが経験した使行の仕事を彼らの観点で書いた。拡大と縮小が交差する。分からなくはあっても、それは周辺の目を意識した結果であるでしょう。私たちはそこで生じた彼らのそんな表と、だまされる彼らが各々残した記録を対照して見ながら分かった。それにもかかわらず、文士間の意気投合は文士だけの特権だった。朝日の光に輝く慌惚な夢だった。ここで18世紀、朝日の間に作られた一つの文化的風景を読める。核心語 : 己亥使行, 申維翰, 海遊錄, 蓬島遺珠, 客館璀粲集, 木下蘭皐, 朝比奈玄洲, 名古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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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갑신사행시 필담창수집과 『일관창수』의 誤記 문제

진영미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4집 2011.12 pp.3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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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1764년 갑신 사행시 필담창수집과 ꡔ일관창수ꡕ에 수록되어 있는 추월이 일본문사들에게 지어준 창수시를 중심으로 오자를 살펴보았다. 먼저 오기의 유형을 살펴본 뒤에, 그것을 바탕으로 관용적 표현과 평측의 부조화 및 대구의 불일치에 해당하는 용례를 통해 오자를 판별하였고 동시에 다시 그것을 바탕으로 오자를 바로잡아 보았다. 본고에서 활용한 21종의 필담창수집 가운데 ꡔ표해영화ꡕ․ꡔ객관창화ꡕ․ꡔ상한필어ꡕ․ꡔ동도필담ꡕ 등에서는 오자가 하나도 나오지 않은 반면에 ꡔ갑신사객평수집ꡕ이나 ꡔ갑신한인창화ꡕ 등에서는 오자가 상대적으로 많이 나왔다. 오자의 편차가 크게 나타나는 것은 필담창수집을 엮은 편자의 여러 가지 상황에 기인한 점도 없지 않겠지만, 무엇보다도 조선사신들의 다양한 筆體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대부분의 필담창수집에서 오자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는 것은 그만큼 필담창수집에 수록되어 있는 시들이 완벽하지 않음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필담창수집을 번역할 때는 물론 연구를 진행할 때도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筆談唱酬集和ꡔ日觀唱酬ꡕ中收錄了秋月寫給日本文士的唱酬詩, 本稿以些唱酬詩為中心, 具體分析其中出現的誤字。首先分析誤字的各種類型, 然後在分析結果的基礎上, 通過與習慣性的表現·平仄的不協調, 以及對句的不一致等相關的具體實例來判別誤字, 并同時對判定的誤字進行糾正。本稿所廣泛利用的21種筆談唱酬集中, 既有像ꡔ表海英華ꡕ․ꡔ客館唱和ꡕ․ꡔ桑韓筆語ꡕ․ꡔ東渡筆談ꡕ等一個誤字也沒有出現的, 也有像ꡔ甲申槎客萍水集ꡕ和ꡔ甲申韓人唱和ꡕ等相對來說誤字出現較多的。 出現多種誤字偏差的原因, 與編輯筆談唱酬集的編者情況脫不了關係, 筆者還認為這與朝鮮使臣們所使用的多種筆體有著相當大的關係。在大部分的筆談唱酬集里都能發現不少的誤字, 這也可以說筆談唱酬集里收錄的詩并不是那么完美無瑕的。因此, 筆者認為在翻譯筆談唱酬集及進行相關研究的時候一定要充分的考慮到這一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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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나라 가계기록의 세 가지 유형

윤현숙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4집 2011.12 pp.6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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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서적이나 문서 등을 일정한 기준에 맞춰 유형화하는 일은 고되지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일이다. 특히 우리나라 가계기록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우수한 연구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에 합당한 연구가 이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범주화와 유형화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族譜 뿐만 아니라, 世譜, 派譜, 世系, 家藏(狀), 文獻錄, 世稿, 家乘 등을 포함하는 가계기록의 범주 설정은 우리나라 가계기록에 대한 거시적이고 종합적인 이해를 위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틀에 속하는 개별 기록물을 ‘혈통 관계’, 또는 ‘문학적 유산’을 중요하게 다루거나, ‘혈족의 역사’를 중요하게 다루는 것으로 유형화함으로써 우리나라의 가계기록은 체계적인 기록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가계기록의 가장 큰 특징은 피를 나눈 사람들이 수대에 걸쳐 직간접적으로 소통하는 수단으로서 기록한 문헌이라는 점이다. 가계기록은 다양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바는 가계의 역사와 사람 사이의 관계, 또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 등이다. 다른 기록물과 달리 독자와 編者, 주체와 객체 관계가 자유롭게 뒤바뀔 수 있다는 것도 독특하다. 무엇보다도 가계기록은, 골동품처럼 유물로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유산으로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독특한 기록문화를 형성하였다. 우리나라의 가계기록은 가장 한국적인 문화유산일 뿐만 아니라 학술자료로서도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의 수는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이며 족보에만 한정되어 있는 연구 환경 등의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가계기록에 대한 본격적이고 적극적인 재조명이 필요한 시점임에는 틀림이 없다. 본고의 유형 분류가 그 작은 시발점이 되어 줄 것으로 기대한다.
To classify old books and documents into specific types based on certain standards is very hard, however, it is critically necessary at the same time. In particular, genealogy records of South Korea are excellent materials for research in terms of quality and quantity, but unfortunately appropriate studies or researches on this area have not been continued. Therefore, it is urgently required to classify and categorize genealogy records of Korea. It needs to categorize genealogy records, including genealogy books, genealogical tables, family trees and many other similar materials in order to provide a broad and comprehensive understanding of Korean genealogy records. It is also possible to make Korean genealogy records as national written cultural heritage in a systematic way by dealing with individual 'lineage', 'literary legacy' and 'the history of blood relatives' within genealogy records. The most distinctive feature of genealogy records is that they are documents which play a role as communication tools directly and indirectly among the people who are from the same bloodline. Genealogy records are comprised of a variety of sentences, however, they try to deliver the history of mankind, the relationship among human and stories of people ultimately. Unlike other documents, readers and writers, subjects and objects are changeable in genealogy records freely. Most of all, genealogy records have been reproduced continuously as a living legacy, not a relic like an antique. Genealogy records of Korea are one of the most important cultural heritage and have limitless values. Although there are numerous documents both in private and public places and the current researches are mainly focused on genealogy books, we are sure that it is time to rethink about genealogy records in earnest and proactively. The author hopes that this paper's categorization will help trigger extensive resear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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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小樂府 제작 동기에 보이는 국문시가관

윤덕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4집 2011.12 pp.95-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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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樂府의 명의는 “絶句적 小詩의 악부” 에 요약되어있다. 小詩는 小曲이라고도 하는데 大曲에 대한 대칭으로 쓰였다. 이 글에서는 자국 고유 문화에 대한 애긍심이 동기가 되면서 중국의 형식을 본뜨는 가운데 독창적인 양식 개발을 성취한 역대 소악부의 성립 과정을 살피고자 하였다. 고려말의 益齋 李齊賢 이후 잠복해 있던 소악부 제작이 재기하는 것은 19세기의 紫霞 申緯에 이르러서였다. 윗대로 올라 갈수록 자료가 빈한해지기 때문에 맥락을 잇는 한도에서 19세기 申緯 당대의 풍부한 자료를 소급 적용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하나의 소악부 문학사를 재구하는 가운데 소악부 제작에 담긴 국문시가에 대한 견해를 포착하려고 하였다. 風과 雅, 變과 正의 구별을 기반으로 하는 시가관은 조선 후기 사대부들이 우리 시가의 위상을 판정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사대부들이 지향한 세계는 雅正을 위주로 하였지만, 變風을 인정하는 여유 속에서 우리 시가의 존립 공간이 확보될 수 있었다. 益齋는 민심의 기미를 파악하기 위한 도구로서 소악부를 택하였고, 紫霞는 후대에 전하여질 수 있는 詞曲의 온전한 상태를 보존하기 위하여 소악부를 제작하였다지만, 橘山 李裕元에 이르러서는 빠르게 변하여 가는 가악 풍토 가운데 소악부의 본령을 재인식하는 방안으로서 선배들을 모의한 것으로 읽힌다. 우리나라의 소악부는 태생을 역사 격변기에 대고 있기 때문에 그 가운데 자기 정체성 모색으로서의 역사의식이 들어가기 마련이었다. 국가의 정체가 바뀔 정도의 변화에 대한 예민한 감성을 담지하는 문학양식은 여러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사회구성원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표기 수단이나 주제 수용에 있어서 집단의 경계를 뛰어넘는 방안을 지녀야만 하였다. 소악부가 울리고자 하는 공감대는 사회에 널리 전파된 노래를 대상으로 하면서 작자층의 사유를 지배하는 한문 영역을 탈피하여 구어전승의 세계와 화해를 모색하면서 이루어졌다. 애정과 취락은 雅正 위주의 세계에서는 수용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조선 후기로 넘어가면서 점차 소악부 주제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이는 날로 달라져 가는 당대 가악 풍토의 반영이기도 하였다. 또한, 익재의 후배들에 대한 소악부 제작 독려의 동기가 교화의 관념이 아니라 개별 대상의 구체성에 바탕한 감성적 동화이었음은 자하에 이르기까지 소악부 발전사의 향방을 가늠하는 중대한 의미를 지닌 사실이다. 민속과 민요에 바탕함이 소악부의 본령이기도 하지만, 백성들의 참상에 동정하거나, 그들의 취향에 동조하는 한국 소악부의 전통은 자국 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합쳐져서 중국과는 다른 고유의 양식 개발을 달성하였다. 이 논문은 소악부 양식 전변의 계기에 작용하는 주체적 대응의 양상을 밝혀서 한국 문화의 독자적인 존립 방식에까지 생각을 뻗어 보려고 하였다.
In this paper I studied the process of Korean SOACKBOO(小樂府) mode’s formation. SOACKBOO(小樂府) is the Chinese mode of poetry transformed from the folk songs. It usually deals with love affairs, and is called as the little piece of music(小曲). In Korea it has some poets, and they lived in the turning periods of the dinasties’ late time. At these periods they had the crisis consiousnesses about the identities of their nations and they also had the prouds of their nation’s own cultures. As seen in the example of Lee Jae-Hyun(李齊賢), patriotic politician and sincere poet at the colonial age of Won empire, the poet chose the most popular folk songs and translated them in the quatrians with chinese seven characters in each line. Those quatrians had the both-sided meaning, one universal, and the other individual. The universal meaning was that the poet seeked the same mode as the Chinese poets, and the individual meaning was that those folk songs selected by him were different from Chinese folk songs. Those Korean folk songs had the trends of inclining towards the inward sorrow arisen from departure between lovers. The degree of depth in the inwardness seeking the admiration for the losing love in Korean folk songs was higher than the Chinese folk songs. It was the Koean character, and Lee caught it as he composed the Korean SOACKBOO(小樂府). The Korean SOACKBOO(小樂府) had endured in the late period of the Korea dinasty, and it’s reappearance was seen at the late period of the Chosen dinasty. Shin Wee(申緯), the famous poet and calligrapher chose the most popular folk songs in his age and tranlated them in the same mode as Lee Jae-Hyun’s SOACKBOO(小樂府). But the folk songs selected by him was different from Lees’. In 19th centuries, people enjoyed the mode of song called SIJO(時調), three lined poem sung on the certain musial score. Shin Wee had the capability of discrimination in the SIJO singing and he reflected this capability on the composition of SOACKBOO(小樂府). His inclination towards some themes in that composition showed this reflection. One was the love affair. The admiration for the complete love affair dominated the minds of late Chosen dinasty’s people, and most of songs were played with that theme. The other was the pleasure of drinking, which was related with the love affair. One drinks without the concerning about outer worlds, denies the general values. His hope of constant drunken state means the denial of the awaken real world. The losing state in love affair and the hope of not awaken state’s duration in Shin Wee’s SOACKBOO(小樂府) works was saying about the poet’s attitude about the world. He was not satisfied with the condition of life in his time, and he hoped the another world which would satisfied him.

6,700원

5

俗謠律格의 理論

손종흠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4집 2011.12 pp.123-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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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는 시이면서 노래이고, 노래이면서 시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시가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소리현상인 율동에 의해 발생되는 율격을 기반으로 하는 형식에 의해 완성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형식은 형태를 완성하는 주체이므로 율격은 시가를 시가답게 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시가는 형식을 통해서 예술적 아름다움을 완성하기 때문에 시가의 예술적 아름다움을 올바르게 분석하기 위해서는 율격에 대한 논의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점은 세계 모든 시가문학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우리 시가도 예외일 수 없다.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시가의 율격론과 형식론은 표현수단인 언어와 표기수단인 문자가 일치하는 단계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는 성격 강하게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율격과 형식에 대한 논의는 표기수단을 근거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시가의 율격을 논의하는 데에는 시가를 노래하는 표현수단과 그것을 기록한 표기수단이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이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 시가에 있어서 표현수단과 표기수단이 서로 다를 경우 작품의 율격에 대한 논의가 어렵다는 점으로 인해 형식론을 세우는 데에 있어서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 시가는 우리말을 표현수단으로 하는 노래지만 그것을 기록할 때는 여러 가지 표기수단을 사용하였다. 초기에는 한자를 사용했고, 신라 시대에는 鄕札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기록수단들은 모두 우리 고유의 문자가 아니라 한자를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말을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한국 시가를 우리말과 가장 가까운 상태로 표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한글이었으므로 우리 시가를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하는 것은 한글이 창제되고 난 후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그것의 최초 작품이 고려시대의 노래인 속요이기 때문에 한국 시가의 율격에 대한 이론은 속요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역사적 당위성을 가지게 된다. 앞 시대의 작품으로 한자를 표기수단으로 했던 고대의 시가나 향찰로 표기된 향가 등에서는 소리의 주기적 반복에 의해 형성되는 율격에 대한 논의가 어렵거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시가 율격의 이론을 속요에서 시작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동안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한국시가의 율격적 본질을 밝히려는 노력이 끊이지 않고 있어왔으며, 상당한 성과를 축적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외국에서 다른 나라의 언어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이론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론들은 한국어를 표현수단으로 하는 시가의 율격적 본질에 접근하여 우리 시가가 지니고 있는 예술적 아름다움을 밝혀내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해갈 수 없다. 왜냐하면 기존의 이론만으로는 한국시가가 가지는 율격적 정형성과 특수성을 올바르게 밝혀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 시가의 율격론은 한국어가 지니고 있는 언어적 특성을 바탕으로 할 때만이 율격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한국 시가에 대한 율격의 이론이 우리 언어의 특성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전제를 근거로 할 때 한글로 기록된 최초의 작품인 속요를 대상으로 율격론을 전개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는 점을 쉽게 인지할 수 있다. 우리 언어는 문장 중에서 활용을 하지 않는 명사, 대명사, 語幹 등과 그것에 붙어서 활용을 함으로써 문장의 성격을 결정짓는 수식어, 조사, 어미 등의 결합에 의해 구성되는 특성을 지니는 膠着語다. 시가는 이러한 언어의 범주를 절대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언어의 규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므로 언어를 기반으로 하는 시가의 율격 역시 이러한 언어의 규칙과 밀접한 관련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명백해진다. 이 점은 한국 시가의 율격에 대한 이론이 바로 우리 언어가 가지고 있는 특성에서 출발해야 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본고에서는 속요의 율격에 대한 이론을 소리의 길이를 기준으로 하는 ‘平長과 독립된 최소의 의미 단위인 ‘名’, 명과 명의 결합으로 구성되는 ‘句’, 구의 중첩에 의해 형성되는 ‘行’ 등에서 출발하도록 하였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조사로 이루어지는 ‘명’이 생략됨으로써 長音으로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에 의해 소리의 장단이 정해지고, 이러한 변화에 의해 율격적 특성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즉, 작품에서 쓰인 모든 음절은 平音과 長音으로 나누어지며, 이것들이 결합함으로써 만들어내는 ‘명’이라는 단위에 의해 표현의 의미와 성격이 정해지고, ‘명’이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구’가 율격적 단위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구’가 율격적 단위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단위로 반복되는 ‘행’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네 개의 율격적 요소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이론을 바탕으로 할 때 속요의 율격적 특성은 평음과 장음을 바탕으로 하는 두 개의 ‘명’이 하나의 ‘구’를 이루며, 세 개의 ‘구’가 하나의 ‘행’을 형성하는 ‘三句六名으로 정식화할 수 있게 된다.
Poetry has its dualistic nature being a song as well as a poem, and is composed of verse meters generated from rhythm of repeating words. Verse meter is a core factor that makes up poetry as a frame of the poetic structure contributing to poem's artistic greatness. Therefore, it is necessary to study versification to fully analyze the poetry and eventually to evaluate its artistic value, and this is true to every kind of poetic literature in the world including Korean Poetry. Analyzing Korean Poetry, however, has encountered its limitation since classical Korean Poetry was written not in the Korean alphabet but Chinese characters. This difference between describing language and written characters makes a form of a poem hard to be studied. Thus, it becomes clear that poetry versification and format can be investigated only when language for its descriptions is in accordance with characters for its writings. Korean Poetry was written in many different forms such as Chinese characters or 'Hyangchal' in the Silla Period although it was Korean language based. These kinds of recording formats were unable to describe how each word in a poem was pronounced since they were based on Chinese character. As a result, only Korean Poetry written and passed down after the Korean alphabet(Hangul) was invented is the oldest form of poems whose versification can be theoretically analyzed as Hangul is the most likely to completely describe pronunciation of Korean. Therefore, it can be suggested that theoretical analysis for the versification in Korean poetry can be performed by looking at 'Sokyo' from the Goryeo Period, the first poem recorded in Hangul. On the other side 'Hyangga' recorded in the form of 'Hyangchal' or any other poems written in Chinese characters older than 'Sokyo' are hard to determine its structure of verse because the versification is produced from repeating words of sound. This is another reason why Sokyo has been chosen to be focused on in this research for theoretical approach to the versification of Korean poetry. Many researchers have tried to clarify the features of versification in Korean Poetry, and their results seem somewhat successful. However, they all have the common problem in which their analysis is based on foreign theories aiming for different languages. These theories seem to fail to define the true artistic value of Korean poetry with no accessing to the features of Korean language and also the nature of the versification. In other word, such old existing theories cannot fully illustrate fixed-format and features in the versification of Korean poetry. Therefore, the nature of the versification in Korean poetry can be assessed only when Korean's lingual characteristics are taken into consideration. More importantly, at last, it also evidences that 'Sokyo' would be an appropriate model to be analyzed in terms of its versification. Korean is an agglutinative language composed of noun, pronoun, a stem of a word or such a word not used alone in a sentence, with addition of modifier, postposition, ending of a word or such a word determining a characteristic of the former. Poetry is dependent on the category of language, and thus features of Korean language have a strong influence on its poetry as well. This re-affirms a strong connection between the features of a language and its poetic versification, emphasizing that the nature of Korean language has to be understood first so as to analyze the versification of Korean poetry. In the basis of such ideas, this research analyzes and defines the versification of 'Sokyo' by focusing on 'Peyongjang(平長)' in which length of a sound is an important measure, 'Name (名, Myeong)', which is the smallest unit of an independent word, 'Phrase (句, Goo)', that is made of 'Myeong' and 'Myeong', 'Verse(行, Haeng)', which is produced from repetition of phrase, and so on. Here, it is important to notice that a prolonged sound(長音, Jangeum) is produced by omitting 'Myeong' that is made of postposition because it determines rhythm of a sound, and so features of versification is also determined by these changes. All of syllables in Korean poetry are divided into lax consonants(平音, Pyeongeum) and a prolong sound, and their further combinations build an unit called name(名) responsible for meanings and features and bindings of the names create phrase that is an unit for versification. In order for phrase to be completely made up, the four units for versification are intimately connected to one another with repeating verse. From this theoretical background, Samguryukmyeong(三句六名) can be defined where lax consonants(平音) and prolonged sounds are produced from three phrases that are composed of two verses each.

7,900원

6

한풀이로 본 조선후기 여성 自傳의 계층별 술회 양상

김승호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4집 2011.12 pp.159-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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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에 이르면 남성은 물론이고 女性도 존재감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담론의 주체가 된다. 여전히 가부장적 권위가 지배하는 사회였으나 조선후기에 다가서면서 여성들에게도 스스로를 성찰하는 자각이 싹트는 것이다. ꡔ閑中錄ꡕ, ꡔ苦行錄ꡕ, ꡔ덴동어미화전가ꡕ는 신분적 층차없이 주인공 스스로가 생애에서 가장 깊게 각인된 자취를 한탄조로 털어놓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話者들이 王家, 班家, 平民여성으로서 신분은 다를지라도 지위와 상관없이 ‘나’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물론 ‘나’의 생을 속박, 억압하는 세계와의 갈등을 공통적으로 드러낸다는 특징이 있다. 중세시기 여성들에게 自傳은 對사회적 존재로서 활약상에 초점을 맞추는 남성들의 시각과 달리 억압하는 세계, 남성에 갇혀 형성된 원한의 실체를 밝히고 나아가 누적된 한을 풀어내는 데에서 담론의 의미를 찾고 있다. 여성 자전 찬술의 동기를 보면 자기 과시적이며 가문의 천양이라는 목적성을 앞세우는 남성들과 전혀 다른 점이 포착된다.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전하는 여성들의 술회는 신분차이에도 불구하고 피억압적 존재로 일관한 데 대한 회한이 강하게 표출되기도 되기도 한다. 그러나 삶의 표출이란 자기부정이 아니라 위무감을 얻어가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할 터이다. 논의대상으로 삼은 3작품은 해원의 정도가 일치하지는 않으나 자신의 한스런 자취를 돌출시킴으로써 한풀이에 이를 수 있다는 술회적 동기는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As Korean history came to the late era of Joseon Dynasty, both men and women became independent subjects of discourses in revealing their sense of presence and original identity. The contemporary people in this era still lived under the traditional rule of patriarchal authority, but the women who lived in premodern era of Korean history had more and more tendencies to reflect on their self than before. “Hanjungnok(閑中錄)”, “Gohaengnok” and “Dendong-eomi Hwajeon-ga” are representative life stories about woman protagonists who confessed—as if to regret—deepest imprinted marks on their heart in their lifetime beyond any gap of social positions. These three stories demonstrate that speakers raise questions to any identity of ‘I’ no matter which social positions they had, although they actually belonged to different social classes such as royal family, noble family and ordinary family, and there are a consistent series of conflicts with a world pressurizing and binding on their life. As long as the autobiography is concerned, medieval Korean women came to accept it as a means of discourse to exert a utility in making clear any reality of grudges formed in their heart under the control of oppressive world and masculism and thereby venting a pile of spites, which is contrary to medieval Korean men's viewpoints focused as social being upon any reputable merit. The motivations of premodern women to write autobiographic works read in quite different ways from those of premodern men who pursued any objectivity of self-display and self-praise about family. The reminiscence that women delivers in their ending phase of life speaks strongly out any regret about their life marked consistently by a being oppressed beyond any gap of social positions. However, it is reasonable to conclude that simply revealing their life—even though it was marked by a life of bitter grudges- possibly helped them find a sort of comfort. None of the 3 life stories discussed in this study successfully reaches any full vent of grudges in life. Nevertheless, it appears that woman speakers have a strong sense of expectation about meeting potential readers even in the future enough to commit themselves to writing their own life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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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소대성전의 한문본 大鳳記 연구

이대형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4집 2011.12 pp.189-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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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大鳳記>는 한문으로 기록된 <소대성전>으로서, 학계에 처음 소개되는 이본이다. <대봉기>에는 경판본과 완판본의 성향이 혼재되어 있는데, 아직 확정할 수는 없으나 이전 이본들을 보고 후대에 취합하면서 부연한 것으로 보인다. 장편 분량이라서 그런지 回章을 구별하고 제목을 붙여 회장체로 구성하였는데 몇몇 부분에서 비평적 또는 감상적 언급을 하는 것 이외에 여타 회장체의 특성을 구현하지는 않았다. 마지막 회인 12회의 경우는 한글본과는 다른 특유의 내용을 담고 있다. 소대성이 왕으로 책봉된 이후에 천자의 나라에 가뭄이 들게 된다고 하여 문제를 다시 설정하고 이 문제의 해결 과정을 통해 소대성은 본래 모습인 용왕으로 복귀한다고 하였다. 여기에 유교와 仙道가 복합되어 있는데 이는 <소대성전> 본래의 모습이므로 작품 성격에 맞게 부연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대봉기>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찬술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데, 이 시기에 소설이 한역되었다는 것은 소설이 그만큼 사회적 공인을 얻어 한문 식자층까지 소설을 인정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The Daebonggi 大鳳記 held in the Sogang University library is a different version of the Sodaeseongjeon 소대성전. It was recorded in literary Chinese (hanmun) by an anonymous person. While it contains diverse aspects as can be found in many different versions, these aspects are mostly related to the xylographic version of Jeonju. This novel seems to have expanded the xylographic version of Jeonju. Although it is divided by chapter, yet it has no other features of a dividing style (hoejang che 回章體). The last chapter of the Daebonggi has it's own narrative structure. It contains a story of Sodaeseong 소대성 who brought the severe drought to an end, thereby recovering his original body, namely the dragon king. The story thus shows a syncretic trend of Confucianism and Taoism, and this is the original aspect of the Sodaeseongjeon. It is thought that the Daebonggi was composed in the late 19th century to the early 20th century. On the basis of the textual evidence of the Daebonggi and from the comments of Lee Bo-sang 李輔相 who translated the Honggildongjeon 홍길동전, we may assume that the novel as a genre was socially acknowledged and that hanmun-based intellectuals appreciated its value in that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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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유씨삼대록」의 감정 규칙과 독서경험

주형예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4집 2011.12 pp.215-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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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유씨삼대록」의 감정 규칙과 그것을 결정하는 이야기의 논리를 분석하여 그 시기 독자들의 독서 경험 논의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 작업을 바탕으로 앞으로 조선후기 장편소설의 감정 규칙을 구성하는 조건과 저항하는 의지가 사회문화 변동의 흐름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유씨삼대록」에는 젠더와 지위에 따라 허락되는 감정 표현의 방식이 마련되어 있었다. 남편에 대해서는 제도적 제약에서도 아내의 희생을 전제로 한 개인적 감정의 출구를 열어 놓았으며, 아내에 대해서는 규범화된 감정 표현을 엄격하게 적용하였다. 그럼에도 서사적으로는 여성의 개인적 감정 표현이 미세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있었고, 현실 규범적 요인이 서사적 감정 표현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별도로 서사적으로 감정 표현을 통해 인물을 형상하는 기법을 마련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감정 규칙은 독자의 동의나 저항 등의 심리적 협상 과정을 거쳐 독서 효과에 이르렀다. 감정 규칙 분석 결과는 독자 반응의 일반적 방식에 비추어 서사적 강제와 저항의 문화적 의미를 예측할 수 있는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paper aims to analyze the feeling rules related the reason of narrative on 「유씨삼대록Yussisamdaerok」. This trial is the first step to know sociocultural changes which got shown on full length novels in the late of Chosun Dynasty. The data would be designated as the power of alliance or the opposition forces about the feeling rules. In 「유씨삼대록Yussisamdaerok」, there are the methods to present feelings according to gender and the status of their family. The husbands gain admission to resolve their desire with the sacrifices of their wives, but their wives are applied to strict feeling rules. However, that women of the text revealed personal feelings minutely. In addition, the narrative make means of characterizing by arrangement feelings of the characters. The results represent that the feeling rules provide criteria to their ju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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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완판 <춘향전>과 <춘향가>의 서두 비교

임성래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4집 2011.12 pp.245-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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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서 판소리가 소설이라는 문자 텍스트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러한 시각에서 판소리 연구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려고 했다. 판소리 연구가 문자 텍스트의 영향을 배제하는 순간 판소리 연구는 왜곡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은 기존 판소리 연구를 반성하자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오늘날 가창되고 있는 여러 창자들의 <춘향가>에는 문자 텍스트라 할 수 있는 완판 <춘향전>의 영향이 부분적으로 나타난다. 이 글에서 다룬 <춘향가>의 서두부만 하더라도 완판 <춘향전>의 내용을 일부 수용하여 그 나름의 사설로 정착시킨 부분이 장재백본과 박봉술본에 보이고 있다. 또한 많은 창자들이 <춘향가>의 서두로 활용하고 있는 대목도 구비문학 특유의 도제전승에 의해 오랫동안 전승되어 내려왔다기보다는 몇몇 창자가 신재효의 남창 <춘향가>의 텍스트를 활용해서 자신의 사설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현재 불리고 있는 <춘향가>의 일부 대목은 판소리 창자에 의한 기존 문자 텍스트의 수용일 가능성이 있다. 바꿔 말하면 판소리 발생 초기에는 판소리에서 판소리계 소설로의 이행이 일어날 수 있었겠지만 후대에 이르러는 오히려 판소리가 판소리계 소설이라는 문자 텍스트를 활용하여 그 나름의 변모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은 완판 <춘향전>이 <춘향가>의 영향으로 형성되었으리라는 기존의 논의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This study tries to prove that the Pansori to be sung could be affected by the literary text of <Chunhyang-Jeon>, the later form of novel. If it is true, we must re-examine all the studies performed until now, because all the present studies exclude the influential possibilities of the literary text of <Chunhyang-jeon>. The several versions of the <Chunhyang-ga> to be sung nowadays is partly based on the literal version of the Jeonju Edition of <Chunhyang-geon>. We can notice this fact through both the prologues of two versions, Chang-Jaebak and Park-Bongsool. In the beginning the literal version of the Pansori, the novel had been written from the singing version to be sung, but later the singing version of Pansori was transformed by the literal version of <Chunhyang-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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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춘향전> 외연의 한 양상—한문본 <春香新說> 및 일본어본 <鷄林情話春香傳>을 중심으로

전상욱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4집 2011.12 pp.273-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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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종을 상회하는 다양한 <춘향전> 이본들은 모두 이전 작품에 대한 개작자의 의견과 의도가 반영되어 있는 개작이다. 따라서 이런 <춘향전>들에는 공통적인 요소와 차별적인 요소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공통적인 요소를 춘향전의 ‘내포’라고 할 수 있고, 차별적인 요소까지 모두 포함한 것을 ‘외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논문은 기존의 <춘향전>의 지평 위에서 개작자의 의도와 상상력이 잘 드러나는 외연의 양상과 의미에 대하여 한문본과 외국어 번역본을 대상으로 살펴본 것이다. 19세기에 생성된 한문본 <춘향신설>과 일본어 번역본 <계림정화춘향전>은 대중적으로 유통된 국문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다 개성적인 변모의 결과가 담겨 있다. <춘향신설>에서는 이도령 선조의 가계가 구체적으로 서술되고, 옥에 갇힌 춘향을 동정하여 회유하려는 신관, 이도령을 만나기 위해 옥졸의 도움을 받아 잠시 옥에서 탈출하는 춘향, 그리고 월매의 죽음 등의 화소가 개작자의 의도가 적극 반영된 대표적인 장면이었다. <계림정화춘향전>에서는 이도령이 광한루에서 춘향을 바라볼 때 춘향이 그네를 타는 것이 아니라 일본식 곡수의 연회를 즐기고 있었고, 이도령이 서울로 올라갈 때 춘향과 이도령이 말없이 눈물만 흘리면서 애절하게 이별하였고, 거지차림의 이어사가 단 한 명의 농부를 만나 남원 지역의 민정을 모두 파악하는 것으로 처리하였고, 신관의 생일잔치에 이어사가 당당히 참석하여 금준미주 시를 자원해서 쓰는 것으로 변모되었으며, 시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 개작자의 의도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개작의 양상과 변모의 의미를 보다 많은 이본들을 통해 분석해냄으로써, 개작사로서의 <춘향전> 전승사를 분명히 인식하고, 과거는 물론 현재와 미래에도 고전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춘향전>의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Chunhyang-jeon has many various versions, as a novel there are the lending library like Namwongosa, commercial woodblock prints like Chunhyangjeon(30-leaf) Seoul edition and Yeolleochunhyangsujeolga(84-leaf) Jeonju edition, in addition the book of song for pansori. Becoming modern peroid, new media versions like drama and film was appeared. Each version of these Chunhyang-jeon is the adaption that intended by adapter. And it has two parts, one is a common element as a connotation, the other is a union of every versions, as a extension. In this study I examined the extension of Chunhyang-jeon, especially Chinese version (Chunhyangsinseol) and other foreign language version(Gyeorimjeonghwa- chunhyangjeon). Through these special versions we are able to realize a highly indivisual imagination of adapters. The study on the extension of Chunhyang-jeon is important that the history of Chunhyang-jeon is the same as the adaption's formation and transformation. And from past to present and future, the meaning of Chunhyang-jeon as a classic will be enlarged by these study on the extension.

6,600원

11

휘보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4집 2011.12 pp.30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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