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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상고전연구 [Yeol-sang Journal of Classical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열상고전연구회 [Society of Yol-Sang Academy]
  • ISSN
    1738-2734
  • 간기
    격월간
  • 수록기간
    1988~2019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한국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810 DDC 810
제36집 (14건)
No

기획논문 : 해외기관 소장 한국고서 연구의 현황과 전망

1

기획의도

허경진, 유춘동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6집 2012.12 p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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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원

2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과 동방학연구소에 소장된 조선전적(朝鮮典籍)에 대한 연구

허경진, 유춘동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6집 2012.12 pp.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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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St. Petersburg State University)과 동방학연구소(St. Petersburg Branch of the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에 있는 조선전적에 대한 연구로, 전적들의 수집 과정, 총량, 연구할 가치가 높은 자료 등을 검토한 것이다. 러시아에 있는 조선전적은 모스크바 국립대학,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국립대학, 동방학연구소, 역사문화보관소, 카자흐스탄 국립도서관 등에 분산되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곳이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과 동방학연구소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은 제정(帝政) 러시아 때의 황제대학(皇帝大學)으로, 조선으로 파견할 외교관 양성을 목적으로 19세기 말부터 조선어(朝鮮語)를 가르쳤다. 이때, 교육에 필요한 자료를 이미 조선에 파견된 외교관들이 수시로 구매하여 이곳으로 보냈다. 그리고 동방학연구소는 러시아 학술아카데미의 주요 연구기관으로서, 조선어와 조선 문학의 특성을 연구할 목적으로 조선전적(朝鮮典籍)을 구매하여 소장하였다. 그 결과 현재 두 기관에는 대략 1,000책에 가까운 조선전적이 남아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에는 총 84종, 855책의 조선전적이 소장되어 있는데, 자료적 가치가 높은 것들은 대략 40여 종이다. 원래 한글로 작성된 것을 러시아어로 번역했던 󰡔개국오백사년팔월사변보고서󰡕, 조선어를 가르치기 위해 교재로 사용했던 󰡔천자문󰡕, 󰡔전운옥편󰡕, 󰡔유합󰡕, 고소설 󰡔토생전󰡕, 󰡔삼국지(권3)󰡕 등이 중요한 것들이다. 동방학연구소에는 총 264종이 확인되는데,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다룬 책이 많았고 애스톤(Aston)과 뮐렌도르프(Möllendorff)가 소장하고 있었거나 수집했던 고소설을 소장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자료들 중에는 그들 조선어교사의 협조로 당시 세책점(貰冊店)에서 대여해주었던 세책본(貰冊本)을 구매한 것들이 많다. 현재 세계 여러 곳에 조선전적이 소장되어 있지만 가장 특색 있는 곳이 바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과 동방학연구소이다. 차후 러시아 측과의 협의를 통해 목록의 보완 작업, 중요 자료내지 유일본의 현대역 및 영인, 디지털 작업 등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This paper introduces the collection of Joseon manuscripts and printed books housed in St. Petersburg State University and St. Petersburg Branch of the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by focusing on the collecting process, the total number of collected items, and some materials worth examining. The Joseon manuscripts and printed books are kept in various places in Russia, including Lomonosov Moscow State University, St. Petersburg State University, St. Petersburg Branch of the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and the National Library of the Republic of Kazakhstan. St. Petersburg State University and St. Petersburg Branch of the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hold the largest collection. St. Petersburg State University, an imperial university established during the Russian Empire, began teaching the Joseon language in the late 19th century with the intention of educating diplomats who were to be dispatched to Joseon. Teaching materials for the courses were purchased and sent to the university by diplomats already working in Joseon. St. Petersburg Branch of the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a major research institute of the Russian Academy of Sciences, purchased and stored Joseon books for the purpose of study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Joseon language and literature. As a result, approximately one thousand books are currently kept in the institutes. Out of the 84 titles in 855 volumes housed in St. Petersburg State University, approximately 40 titles are worth examining; some of which include Gaegukobaekyeonpalweolsabeonbogoseo(a report originally written in Korean and then translated into Russian), Chonjamun, Jeonunokpyeon, Yuhap(materials used to teach the Joseon language), and classic novels, such as Tosangjeon and Samgukji(volume3). The collection in St. Petersburg Branch of the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known to house 264 titles) is characterized by its many books dealing with the relationship between Joseon and Japan, as well as classic novels that were either kept or collected by Aston and Möllendorff. Many of such novels were purchased from book rental shops (sechaekjǒm) with the help of their Joseon language teachers. The Joseon manuscripts and printed books are housed around the world, yet St. Petersburg State University and St. Petersburg Branch of the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hold the most distinctive collections. The goal of this paper is to introduce the list of collected items before embarking on further research. It is hoped that by collaborating with Russia, the list would be supplemented and that modern translation, photo printing, and digitization of important materials and exclusive books would also become possible.

6,100원

3

일본 동양문고(東洋文庫) 소장 한국 고서에 대해 - 자료 개관ㆍ연구 현황ㆍ연구 과제ㆍ특징적 면모를 중심으로 -

백진우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6집 2012.12 pp.3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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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의 해외한국학자료센터에서는 2011년 7월 1일부터 2014년 6월 30일까지 3년간 일본 東洋文庫 소장 한국 고전적 자료에 대한 연구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연구 기간 동안 동양문고에서 소장하고 있는 한국 고전적 자료 전체를 전수조사한 후, 이를 간행물과 DB 형태의 전자 목록으로 만들고, 이 가운데 서지적 가치가 높은 주요 자료에 대해서는 원문이미지의 디지털화 작업과 해제 작업을 병행할 예정이다. 이 논문에서는 지난 2012년 1월 31일부터 2012년 2월 11일까지 진행한 1차 현지 자료 조사 경험을 토대로 동양문고 소장 한국 고전적 자료의 내력과 현황을 정리하고, 이에 대한 연구 과제와 특징적인 양상을 몇 가지 소개하였다. 일본 동경 소재 동양문고는 일제강점기에 국외로 유출된 우리나라의 고서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는 기관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은 조선총독부에서 행정 관료로 근무했던 마에마 쿄사쿠(前間恭作, 1868-1942)가 수집한 자료들로서, 현재까지 파악한 규모만도 854종 2,478책에 달할 정도이다. 마에마 쿄사쿠는 한국어 및 고서 서지학 분야에 있어서 상당한 학문적 식견을 갖춘 학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가 수집해간 고서는 자료적 가치가 상당히 높은 것으로 평가를 받는다. 동양문고에는 이밖에도 일제강점기에 조선을 거쳐 갔던 역사지리학자인 요시다 도고(吉田東伍, 1864-1918)와 교육관료인 시데하라 다이라(幣原坦, 1870-1953)가 소장했던 자료가 상당수 남아있으며, 1960-1970년대에 산하 연구반에서 자체적으로 구입해간 고서들도 상당하다. 현재 동양문고에서는 자신들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고전적 자료의 총수를 대략 2,000종 안팎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현지 조사 결과 이 가운데는 고서로 보기 어려운 근현대 자료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기도 하며, 자체 목록에 등재되어 있지 않은 자료를 다수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모든 자료에 대한 전수 조사를 완료한 시점에 정확한 규모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밖에 본 논문에서는 동양문고 소장 한국 고전적 자료의 향후 연구 과제 및 특징적인 면모를 몇 가지 제시하였다. 첫 번째, 목록 작성의 문제이다. 현재 동양문고에서 만들어놓은 목록은 기본적인 서지 사항만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보완할 필요가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고서의 서지 사항 기술을 위해 마련한 <한국문헌자동화목록기술규칙>을 따라 상세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주요 장서인을 소개하였다. 장서인은 동양문고에서 한국 고전적 자료를 얻게 된 경위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인 동시에 개별 자료의 유전 경로를 파악할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세 번째, 동양문고 소장 자료가 갖는 이본으로서의 가치와 방각본 및 세책본 자료를 소개하였다. 동양문고 소장 자료들은 선본이 많기 때문에 국내 소장본과 비교할 만한 가치가 높다. 또한 방각본과 세책본 자료는 주로 20세기 초반에 필사된 자료들이며, 동양문고 소장 자료 가운데 하나의 성격으로 묶어서 설명할 수 있는 특징적인 자료군이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향후 해외 소장 한국 고전적 자료 조사에 있어서 유념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정리하였다. 되도록 해당 기관 자료 전체를 파악하는 전수조사를 실시해야 하며, 유사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국내 기관들 사이에 전략적인 협조가 필요할 것이다. 그래야만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막을 수 있고, 자료의 중복 조사 및 재조사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The research and investigation on Korean old rare books collection in Toyo Bunko, Japan is ongoing from July 1, 2011 to June 30, 2014 by Korean Center for Korean Studies Materials at Research Institute of Korean Studies, Korea University. While the project is in progress, the entire Korean old rare materials possessed by Toyo Bunko will be checked, electronically cataloged in the form of DB. Also, for bibliographically valuable materials, inter alia, bibliography, commentary and digitalization of the original image will be adjunctively enacted. In this article, history and the present condition of the Korean old rare materials kept in Toyo Bunko will be described, and its distinguishing aspects will be introduced on the basis of primary field research conducted from the January 31, 2011 to February 11, 2012. Toyo Bunko located in Tokyo, Japan is the institution where houses the largest collection of the outflow of Korean old rare books carried ou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major portion of the collection is the materials collected by Maema Kyōsaku(前間恭作, 1868-1942) who served as an administrative officer in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and it has been tallied that the collection has 854 kinds, 2,478 volumes of books in it, so far. Maema was also a scholar who had wide knowledge about Korean language and bibliography of the old books, thus, his collection is highly acclaimed for its value as data. Besides, the amount of the collection from Yoshida Togo(吉田東伍, 1864-1918), a historian/geographer who worked in Joseon during the colonial period and Shidehara Taira(幣原坦, 1870-1953), an educational administrator, and old books purchased by the seminar team affiliated with Toyo Bunko in the 1960s and 70s is considerable. It is estimated that Toyo Bunko currently holds around 2,000 ancient Korean texts. However, local surveys suggest that a considerable number of these are more modern texts than antique books, and they were able to confirm that many of the texts were not listed in their catalogs. Therefore, I believe it is necessary for Toyo Bunko to complete a total inventory before we can truly know the size of this collection. This article also outlines the future of study of Toyo Bunko’s old Korean books and suggests a few distinctive aspects. First is the creation of a catalog. Toyo Bunko’s current catalog is worth keeping because it includes the basic bibliographical information. This catalog must be carefully organized according to guidelines for bibliographies of old and rare texts prepared by the National Central Library(Guidelines for Korean Machine Readable Cataloging). Second, this article introduces the concept of “ownership stamps.” Ownership stamps are an important record of how Toyo Bunko obtained their ancient Korean texts, and they also paint a picture of the ownership history of the texts. Third, the article introduces printed books(banggakbon) and copied books for rental(sechaekbon). These two types of texts were made mainly in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They makeup a large portion of Toyo Bunko’s collection and can be described and characterized as a group. Lastly, I organize a few items that require consideration regarding the future of foreign possession of old Korean texts. When possible, concerned organizations should perform total inventories. They also should pursue strategic alliances with organizations in Korea with similar goals. These two steps will help minimize financial waste and needless duplication of text investigations.

8,200원

4

북미소재 한국고서에 관하여 : 소장현황과 활용방안

이혜은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6집 2012.12 pp.7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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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지역에 소장된 한국 고서들은 일본이나 중국에 비하여 그 장서의 규모가 크지는 않으나 북미에서 한국학 연구가 활발해짐에 따라 한국학 관련 자료로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미국과 캐나다 지역의 한국 고서 소장처를 밝히고 자료가 소장된 경위를 조사하였다. 또한 각 기관별 자료의 특징과 현황을 살펴보았다. 또한 한국 고서가 학문연구의 기초 사료로서 활용되기 위하여 국내에서의 조사 상황과 자료의 공개 현황을 종합적으로 파악하여 앞으로 이들 자료를 통합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이 연구는 북미 소재 한국고서에 대한 거시적 분석을 시도한 것으로 세부자료의 학술적 가치 등은 후속 연구 과제로 남겨두었다.
With active research on Korean Studies in North America recently, historicity of Korean rare books come into play despite the fact that there are a few volume of collections in this region. The aim of this article is to find the whereabout of Korean rare books in U.S and Canada and to understand how these books were collected. Also, the characteristics of each institutions were examined. To utilize the books as preliminary data of this study, the basic status of investigation and release in Korea were systematically examined so that the data could be utilized effectively. This research is to try the macroscopic analysis on Korean rare books in North America. The value of the detailed materials is left hereafter for further study.

6,700원

일반논문

5

조선시대(17세기-20세기 초) 壽序의 문예적 전통과 壽宴 문화

최기숙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6집 2012.12 pp.99-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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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창작되고 교환된 ‘壽序’ 총 210편(남성 대상 181편, 여성 대상 29편)과 관련 자료 56편(남성 대상 49편, 여성 대상 7편)을 총합한, 총 266편의 자료를 대상으로, 조선시대(17세기-20세기 초) 수서의 문예적 전통과 조선적 壽宴 문화의 풍속화 과정에 관해 고찰했다. 수서란 단지 물리적인 수명 연장을 뜻하는 ‘장수’를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잘 나이들기’라는 가치 함축적인 개념을 치하한다는 점에서 조선시대의 문화 가치와 인문성의 징표를 보여주는 문화적 상징 기제로 간주할 수 있다. 조선시대 문인들은 수서가 명대로부터의 영향으로 시작되었다고 인식했지만, 회갑을 맞이하여 수연을 베풀고 이를 장식하는 수서 쓰기가 보편화된 것은 매우 조선적인 현상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실제로 현전하는 수서 자료의 61%가 회갑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이러한 조선 문인의 판단의 정합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회갑에 대한 수서 쓰기와 수연 문화는 100여년 사이에 조선시대에 빠르게 확산되어 보편화되었다. 부모를 여읜 경우 자신의 수연을 거절하는 것이나, 부모 중 한 분이 돌아가신 경우 살아계신 부모의 수연을 바치지 않는 것이 상례였지만, 그 경우에도 생애 가치를 기록하고 그 삶을 치하하는 수서 쓰기는 지속되었으며, 후기로 갈수록 생일을 앞당겨 미리 수연을 베풀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오래 된 경우에 수연을 마련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이러한 분석은 현재까지 󰡔문집총간󰡕에 수록된 수서 및 관련자료 총 266편에 대한 독해를 바탕으로 삼은 것이다. 현재까지 수서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의 수행이 미미하기 때문에, 수서쓰기에 관한 문화사적․문학적 의의를 해명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수서’와 ‘수연 문화’는 조선시대의 ‘복수(福壽)’ 또는 ‘덕수(德壽)’에 대한 인식을 문화적 차원에서 반영하는 것으로서, 현대적 의미에서의 ‘잘 나이들기’에 상응하는 생애 성찰의 시선과 관점을 살필 수 있다. 이 연구를 바탕으로 수서 쓰기에 투영된 생애 성찰의 가능성을 살피고, 현대사회의 ‘잘 나이들기’에 관한 성찰적 담론 구성에 필요한 자원탐색적 연구가 지속되기를 고대한다.
This paper analyzed Suseo (壽序), a short writing in Chinese characters (漢文) for celebrating the aged person's birthday, written from the 17th Century to the 20th Century during Joseon period, focusing on the formation of the genre of Suseo in Ming Dynasty in China and late Joseon Period, and also focusing on the cultural ritualization in Joseon. This paper totally analyzed 266 pieces of texts; amongst them 210 texts (181 are for men, 29 for women) are Suseo, and 56 pieces (49 are for men, 7 for women) are written with the other genres similar to Suseo. A genre of Suseo is written fot celebrating the other's aged life with the perspective of 'live long', and also with the perspective of 'aging well'. They estimated the other's 'blessed long life' as 'happy long-life(福壽) or 'matured long-life (德壽)’, and both are terms which implied humanistic values. The Joseon literati recognized the genre of Suseo were originated from Ming Dynasty of China, but the culture of celebrating one's 60th birthday and writing Suseo for the person were unique rituals in Joseon. De facto, over 61 percents of Suseo were about for the persons who reached 6oth birthday. The writing culture of Suseo and giving a feast for the person who had 60th birthday were rapidly spread and generalized during late Joseon period. In case of the person whose parents died, they didn't open their birthday feast. And also in case of one of parents died, they didn't give a party for their living parent. However, in both cases, they didn't omit to write Suseo or ask for their acquaintance to write Suseo for their parents and their partner. As days went by, the new culture surrounding 60th birthday party turn up; descendants held a party for their living parent whose partner was passed away or their parents in advanced the date. Such analysis is based on translating and literary interpreting on the 266 texts written in Chinese characters with a genre of Suseo and its similar genres by Joseon literati. The texts are neoterically published in Hankuk Munjip Cheonggan since 1960's by Minjok Munhwa Chujin Hoe. This study is my second research on Suseo besides for the study on the senescent woman written in Suseo in 2011. It has much potentialities for researches about the humanistic view and literary values. It should be approached no only with the literary perspective, but also with the historical and cultural perspective. Through analyzing the genre of Suseo, it is possible to explain what is the cultural value of Joseon literati and also their view of life. Based on this research, it can be able to shed new light on the new reflective researchs on the 'aging-well' of the contemporary aged society.

9,100원

6

새로 나온 송만재의 <관우희(觀優戱)>와 한시 작품들

구사회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6집 2012.12 pp.143-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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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필자는 송만재의 <관우희>와 그의 한시 작품이 실린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였다. 그것은 『판교초집(板橋初集)』이라는 서책인데, 일반 한시 24수가 담긴 「옥전잉묵(玉田賸墨)」과 연희시가 실린 「관우희오십절(觀優戱五十絶)」로 편제되어 있었다. 이들 작품들은 자하 신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완성되었다. 지금까지 <관우희>는 연세대학교 탁사문고에 유일하게 필사본이 수장되어 있었다. 이 논문에서는 원전비평의 관점에서 연세대본과 구사회본을 비교하여 검토하였다. 이들을 ‘누락 글자의 여부, 다른 표기, 글자 도치, 통용글자’의 순서로 검토하였다. 주목되는 것은 그동안 연세대본에서 결자(缺字) 상태로 있었던 <관우희> 50절의 제4수와 제29수의 두 글자를 구사회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書’자와 ‘節’자였다. 이외에도 표기가 다른 16자가 있었다. 서발(序跋)에도 누락 글자가 있었는데, 표기가 다른 19자가 있어서 바로잡을 수 있었다. 구사회본에도 오자가 하나 있는데 발문에 있는 ‘桑門濮上’의 ‘門’자이다. 이것은 ‘間’을 잘못 적은 것이었다. 한 마디로 이번에 새로운 필사본이 나오면서 그동안 연세대본이 가지고 있었던 부분적인 오탈자를 바로잡을 수 있게 되었다. 연세대본은 구사회본에 비해 오탈자가 많았다. 이번에 새로 나온 구사회본이 기존의 연세대본에 비해 원본에 근접하고 있었다. 한편, 이번에 나온 자료를 통해 송만재의 한시 작품 24수를 새로이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옥전잉묵」에 실려 있는 한시는 <관우희>가 창작된 1843년 즈음에 송만재가 판교에 거주하면서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 시를 통해서 그의 교유 관계도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한편, 산거 생활을 하면서 지녔던 그의 자연 미감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양반 출신이면서도 미관말직을 전전하였던 것은 서자(庶子)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울러 신위와 송만재의 연결고리는 같은 당색인 소론(少論)으로 짐작된다.
This study analyzed newly discovered <Gwanwoohee(觀優戱)> and poems in Chinese letter written by Song Man-jae. These are listed in the publications called 『Pangyochojib(板橋初集)』-its collector is GuSawhae in Sunmoon university. 『Pangyochojib』is formed of 「Okjeonyingmuk(玉田媵墨)」 composed of 24 general poems in Chinese letter and 「Gwanwoohee」 including a playing poem(演戱詩). <Gwanwoohee> written by Song Man-jae is an important material essential in study of Pansori in late Chosun dynasty. And as this time, new transcribed version of Song Man-jae was discovered, <Gwanwoohee> has two versions - Yonsei university and GuSawhae. From view of criticism on original text, version of Yonsei university and version of GuSawhae were compared each other. In the process, two letters on the fourth poem and the 29th poem of the fifty works which had remained in the state of omitted word, were identified through version of GuSawhae. The letters are ‘Seo(書)’ and ‘Jeol(節)’. It could be said that version of GuSawhae is more close to original version rather than version of Yonsei university. Moreover, through new material appeared this time, 24 general poems in Chinese letter written by Song Man-jae can be accessed though they are only 24 poems.

7,900원

7

자기항변의 소설쓰기: <염승전(廉丞傳)>

박상석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6집 2012.12 pp.179-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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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전(廉丞傳)>은 겸인(傔人) 염시탁(廉時度)을 입전 대상으로 하여 재물에 대한 청렴과 주인에 대한 충성 등 그가 지닌 미덕을 그려 보이고 있는 한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여느 전(傳)처럼 입전 대상에 대한 선양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염시탁이 실존인물인지 확인된 바가 없으며, 작품 속 그의 행적은 비현실성이 매우 강하다는 점이다. 즉 그는 허구의 인물, 혹은 허구적 인물이다. 그렇다면 <염승전>은 다만 그러한 허구의 인물, 혹은 허구적 인물을 선양하는 희작(戱作)일 뿐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염승전>의 작자 김경천(金敬天) 자신이 작품 속 염시탁과 마찬가지로 평생을 겸인으로 산 인물이라는 점이 이 같은 의문을 해결할 결정적 단서이다. 신분제 사회를 살았던 김경천에게 ‘겸인’은 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절대적 요소였다. 김경천은 곧 겸인으로서의 김경천이었다. 이렇게 본다면 그는 <염승전>을 통해 자기의 동류(同類)인 겸인 일반을 선양하고, 나아가 자기 자신을 선양하려고 했던 것이다. <염승전>은 소설을 통해 자기를 선양하거나 자기의 정치적․사회적 태도를 옹호한 일련의 작품들과 함께, 자기항변(自己抗辯)의 소설이었다. 작품 속에서 염시탁의 상전은 남인(南人)의 영수였던 허적(許積)이다. 그는 서자의 역모로 인해 죽임을 당하고 그로 인해 남인이 정계에서 축출당하는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을 초래한 문제적 인물이다. <염승전>에서 염시탁은 죽음을 기다리는 허적을 홀로 끝까지 지킨다. 허적은 주인에 대한 염시탁의 충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작품에 요청된 인물이다. 그러나 <염승전>의 목적은 염시탁을 선양하고 이를 통해 작자의 동류와 작자 자신을 선양하는 데에 있었기 때문에 허적이 지닌 문제성은 회피했다. 그래서 <염승전>은 현실에서 허적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서인(西人) 편에 서서 남인을 축출하는 데 힘쓴 김석주(金錫冑)마저 염시탁을 도와주는 의로운 인물로 설정하며 허적과 조화롭게 공존하도록 했다. <염승전>은 후에 이본(異本), 개작 소설, 개작 야담 등의 파생 작품을 양산했다. 그런데 후대의 향유자들에게 원작 속의 허적․김석주는 결코 회피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래서 남인이 주로 관여한 이본, 개작 소설에서는 허적의 의로운 인물 형상이 보존되거나 강화되었다. 반면 서인이 주로 관여한 개작 야담에서는 김석주의 의로운 인물 형상이 강화되거나 역으로 허적의 인물됨이 폄하되었다. 이렇게 <염승전>의 파생 작품은 남인․서인이 주도하는 집단적 자기항변의 장(場)이 되었다. 텍스트 뒤에서의 이면적 말하기, 향유 집단의 이해를 반영한 텍스트의 전복, 한 텍스트를 둘러싼 향유 집단 간의 투쟁. <염승전>은 ‘자기항변의 소설쓰기’란 관점에서 분석할 때 이 모든 양상들을 보여 주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Yeom-seung-jeon(廉丞傳)> is a novel written by Chinese in Korea. It enhances the hero, Yeom-si-tak(廉時度), who is a 'gyeom-in'(傔人, a kind of secretary for the nobility). But it isn't certain that 廉時度 was a man in existence, and the doings of him in the work isn't realistic. Then was the work just aimed at enhancing a man of fiction? The point is that the writer was a 傔人 as the 廉時度. In the hierarchy society '傔人' was a definite factor that fixed the identity of the writer. The intention of the writer was to enhance the fellow of 傔人, and ultimately enhance himself by the work. In the work the master of 廉時度 is Huh-Jeok(許積), who was really a leader of nam-in(南人, a political part of Joseon's dynasty). 廉時度 kept 許積 by oneself to the end, when he was to die by the political attack of seo-in(西人, also a political part of Joseon's dynasty). 許積 is a character requested for maximizing the royalty of 廉時度. But as the main concern of the work was to enhancing 廉時度, 金錫冑 who drove 許積 to death on the side of 西人 is also described as a good man who helped 廉時度. It was a device to keep away political dispute. later <廉丞傳> was copied and was revised to another novel or ya-dam(野談, a written tale). By the way, to the later reader '許積' and '金錫冑' was characters who couldn't be kept away. So in the copied works and revised novels which mainly accomplished by 南人, 許積's goodness have been kept or reinforced. The other side in the various 野談 which mainly accomplished by 西人, 許積's goodness have been weakened or 金錫冑's goodness have been reinforced. Like these <廉丞傳> and the group of following works of it was for the self-enhancing in the individual or the political group asp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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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遺事』「洛山二大聖觀音正趣調信」條의 삽화 구성과 그 의미

이강엽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6집 2012.12 pp.21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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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三國遺事󰡕 <洛山二大聖觀音正趣調信>條의 개별삽화들의 구성을 토대로 전체 조목의 의미를 조망하고자 씌어졌다. 첫째, 개별삽화들이 갖는 공통적 특성을 찾아보았다. 이 조목에는 義湘, 元曉, 梵日, 乞升, 調信의 다섯 인물의 삽화들이 이어지는데, 어느 이야기에서든 중심되는 사건은 두 차례에 걸쳐 반복되는 행위를 하도록 구성되어 전체 이야기에 통일성을 심어주면서 각 삽화들의 다양성을 짚어낼 근거가 되기도 한다. 둘째, <洛山二大聖觀音正趣調信>條의 전체 구성과 調信 삽화의 의미에 대해 살폈다. 먼저, 義湘은 眞身의 친견을 원했고, 元曉는 의상이 모신 眞身을 찾아 예불하고자 했으며, 梵日은 당나라의 고승을 만나 불법을 구하고자 했고, 乞升은 보물 구슬을 수호하려 했으며, 調信은 배필을 원했다. 그리고 그 결과, 義湘은 절을 짓고 관음보살을 친견하였고, 元曉는 眞身의 現身을 뒤늦게 깨닫지만 끝내 親見하지 못하고, 梵日은 뒤늦게 깨달은 뒤 절을 세우며, 乞升은 땅에 묻어 보물을 지키며, 調信은 잘못을 뉘우치며 절을 세우고 정진한다. 다음으로, 각 인물이 이룬 成敗의 의미를 탐색했다. 의상은 두 차례 모두 초월적인 존재의 뜻에 따랐고 원효의 모두 인간의 뜻대로 행했다면, 범일과 걸승은 한 차례는 인간의 뜻에 따라 실패하지만 한 차례는 초월적인 존재의 뜻에 맡겨 성공하게 된다. 조신은 그 처음부터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까지 모두 인간의 뜻을 고수하다가 맨 뒤에서 초월적인 존재의 뜻에 따르는 쪽으로 선회하여 정진함으로써 앞선 삽화들을 아우른다. 이는 인간의 뜻에 따라 일을 행할 때보다 하늘[혹은 부처]의 뜻에 따라 일을 할 때 더욱 큰 성취가 일어나는 것을 강조한 처사로 보인다. 끝으로, 전체구성의 관점에서 <調信> 삽화의 의미에 대해 살폈다. 다섯 인물의 俗化 정도로 따지자면 의상>원효>범일>걸승>조신의 순서로 이루어져 있어서 일정한 흐름을 보인다. 또한 <調信>삽화에서는 앞서 보인 네 삽화의 핵심적인 내용들이 조금씩 스며들어있어서 전체적으로는 종합적인 완결판처럼 여겨지게 되어 있다. 최종적으로는 앞선 삽화들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나던 관음보살의 자비와 정취보살의 지혜가 극적으로 통합하는 구성을 취함으로써 전체 조목이 하나의 주제로 응집되었다.
This paper explores the meaning of entire chapter by examining the composition and its meaning of episodes of the chapter <Avalokitesvara and Ananyagamin, two saints of Naksan and Choshin> of the Samkukyusa. Firstly, I try to find out the common characteristics of individual illustrations. Those episodes about five characters - Uisang, Wonhyo, Bumil, Girlseung and Choshin- appear to show that a central incident repeats twice in that chapter. Secondly, I examine entire composition of this chapter and the meaning of episode about Choshin. Uisang wants to meet Jinshin, kind of real body of Buddha, in person and Wonhyo desires to find the Jinshin of whom Uisang took care in order to have a Buddhist service. Bumil tries to gain the philosophy or norm of Buddhist and Girlseong wants to secure a treasure marble. Choshin wishes to have a suitable partner. As a result, Uisang builds up a temple and met the Buddhist Goddess of Mercy in person and Wonhyo, even though he realized the presence of Jinshin too late, ends up failing to meet Jinshin in person. Gaining wisdom later, Bumil builds up a temple and Gilseong keeps the treasure marble by burying it in the ground. Deeply repenting his fault, Choshin builds up a temple and then devotes himself to study Buddhism. Thirdly, I explore the meaning of the success and failure made by each character. Uisang, in both two occasions, complies with the transcendent God's wishes. Bumil and Girlseung fail at the first time because they yield to ordinary people's will, while they succeed at the second time by following the transcendent God's wishes. In contrast, Choshin sticks to ordinary people's will but, finally, he serves at the pleasure of the transcendent God's wishes and thus devotes himself to study Buddhism. Finally, I examine the meaning of the episodes about Choshin in terms of its entire composition. Considering the degree of secularization, the episode about Uisang is most heavily secularized one, the one about Wonhyo is the second and the one about Bumil is the third. The ones of Girlseong and Choshin takes the places of third and fourth. These shows a certain flow. Moreover, in the episode about Choshin, the core contents of all the episodes about four characters are integrated and describ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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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每日申報』소재 이해조 판소리 산정(刪正) 연구 - 근대적 변환과 그 효과를 중심으로 -

배정상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6집 2012.12 pp.249-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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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每日申報』에 연재된 이해조 판소리 산정(刪正)을 대상으로 삼아, 이들 작품이 지닌 당대적 의미와 효과를 밝히고자 하였다. 특히, 이해조의 판소리 산정이 명창 광대의 판소리 강연(講演)을 바탕으로 한 ‘산정(刪正)’ 작업이자, 『每日申報』라는 신문 매체에 수록된 연재물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논의를 진행하였다. 『每日申報』의 1912년 체제 변화에 따라 이해조는 1면에 판소리 산정을 4면에는 신소설을 동시에 연재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판소리 산정은 신소설과는 달리 주로 한자에 익숙한 중류 이상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기획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판소리 산정은 명창광대의 구술(口述) 텍스트를 근대적 활자 텍스트로 변환시켰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당시 유행하던 ‘구극(舊劇)’에 대한 관심과 그것의 개량과 관련이 있으며, ‘음란천착’해진 판소리를 산정하여 이를 정전(正典) 텍스트로 바꾸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또한 「江上蓮」부터는 판소리 산정을 한글 중심의 표기로 바꾸는 한편 전통음악에서의 장단 표기를 시도하여 판소리가 지닌 서사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표현하고자 했다. 그밖에도 「江上蓮」, 「燕의脚」, 「兎의肝」에는 제목 아래 ‘금전재(禁轉載)’라는 표기를 추가하였는데, 이를 통해 이해조의 판소리 산정이 당대의 출판문화와 밀접한 관련 하에 존재하는 근대적인 독서물(讀書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이해조의 판소리 산정은 당시 광무대, 장안사, 단성사 등에서 이루어지던 구극 공연을 활성화시켰으며, 단행본 출판시장에서 활자본 고소설의 부흥을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해조의 판소리 산정은 신문이라는 근대적 출판 매체에 연재된 읽기 텍스트라는 점에서 기존의 판소리와는 구별되며, 단행본 역시 근대적 출판 기구와 제도를 통해 유통되었다는 점에서 고전 문학의 근대적 수용과 변모 양상을 효과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텍스트임에 분명하다.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take the subject of Pansori digest of Lee Hae-jo that was published in Maeil Sinbo(每日申報) to demonstrate the timely implication and effect in this work. In particular, the discourse has been undertaken by paying attention to the fact that the Pansori digest of Lee Hae-jo is the 'digest' work on the basis of Pansori lecture of master Gwangdae that was published in newspaper media in the Maeil Sinbo. Pansori digest apportioned on the first page has the implication that it has changed the verbal text of master Gwangdae into modern print text for the subject of mid-class or higher level of readers who are familiar to the Chinese characters. This is related to the interest on ‘old drama(舊劇)’ and its improvement and it also reflects the drive of author to reproduce the lyrics of Pansori and its music at the same time. In addition, the indication of ‘Geumjeonjae(禁轉載)’ is assured that Pansori digest of Lee Hae-jo is very modernistic reading material existed under the close relationship with the publishing culture of the time. Consequently, Pansori Panjeong of Lee Hae-jo activated the old drama performance that had been made in Gwangmudae, Jangansa, Dansangsa and the like and took an important role to lead the Renaissance of printed old novel in the single copy publishing market. Pansori digest of Lee Hae-jo is the text that may confirm effectively for the modern acceptance and change trend of classic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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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 김만중의 송강가사 수용과 그 배경

하윤섭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6집 2012.12 pp.277-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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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서포 김만중이 송강가사를 수용하는 데 있어 그 동인으로 작용했던 측면을 집단적 차원과 개인적 차원으로 이분하여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2장에서는 17세기의 정치적 환경 속에서 송강에 대한 집단적 기억이 생성되고 그것이 서포에게 전승되어 간 저간의 과정을 추적하였으며, 3장에서는 서포가 송강가사를 수용하는 데 적용했던 개인적 기준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대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역사적 과거에 대한 현재의 기억은 자연적이기보다는 사회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혹은 장악하고자 하는 집단의 보편적 정당성 확립을 위해 인공적으로 구축되는 측면이 존재한다. 송강에 대한 서포의 기억 역시 마찬가지인데, 정국의 변동이 극심했던 17세기 중후반에 송강에 대한 기억은 정권을 장악하는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첨예하게 갈라졌다. 정치적 판도의 변화에 따라 송강에 대한 평가와 보상이 판이하게 달라지는 상황 속에서 서인들은 그에 대한 기억을 고정시킬 필요가 있었을 터, 『송강집󰡕의 重刊, <송강연보>의 작성, 기축옥사의 전말을 기록한 서책의 발간 등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집단적 기억은 당연하게도 집단에 소속된 개인의 기억들을 단일한 방향으로 유도했던바, 이선과 김만중이라는 서인 계열의 거두들이 매우 인접한 시기에 송강가사를 문자로 전사하고자 했던 것은 이와 같은 기억의 쟁투 과정이 그 기저에 깔려 있다. 한편, 서포에게는 송강의 작품을 능동적이고 긍정적으로 수용할 만한 구성된 기억이 있었고, 이에 따라 그것을 문자로 정착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 자체가 당시로서는 상당히 낯선 것이었기에, 이에 대한 나름의 변호가 요구되었던바, ‘眞詩’의 조건에 대한 서포 자신의 견해가 틈입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이다. ‘天機之自發’이라는 새로운 기준은 노래가 비록 언문으로 되어 있지만 그것이 眞情을 담보하고 있기 때문에 수용해도 무방하다는 논리적 근거로 기능한다. 이렇게 볼 때, 그가 송강의 가사작품들을 수용했던 것은『古詩選』․『詩選』등의 選詩 행위를 통해 당시의 무기력한 詩風을 교정해 보려는 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요컨대 ‘초동급부의 나무하는 소리와 물 긷는 아낙네의 소리가 학사대부의 시부보다 낫다.’라는 그의 파격적 선언은 언문이라는 표기문자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이 인간적 감정을 자유롭게 묘파할 수 있는, ‘노래’라는 형식적 기제에서 기인한 것이다.
This essay aimed to explore the political and individual dimensions that applied as agents of Seopo Kim Man Joong’s acceptance of SONGKANG GASA. Chapter 2 traced the process of the time when collective memories about SONGKANG were formed within the political environment of the 17th Century and passed down to Seopo. In addition, chapter 3 explored the individual standards Seopo applied when accepting SONGKANG GASA. Following is a brief summary. Present memories about the historical past are not naturally made but rather are constructed artificially for the establishment of universal legitimation of the group that dominates or wishes to dominate the hegemony of society. Seopo’s memory of SONGKANG is also alike, but memories about SONGKANG in the mid-late 17th Century, which experienced severe changes in political situations, are acutely divided according to the interests of the group that dominated the government. It is speculated that there was a need for the ordinary people to fixate their memories about SONGKANG in the situation where evaluation and compensation about SONGKANG completely changed according to alterations in political spectrum. Classic cases of these include the republishment of 『SONGKANG COLLECTION』, writing of <SONGKANG CHRONOLOGY> and publishment of the book recording the entire story of KICHOOKOKSA. Considering the collective memories formed in this way obviously induced the memories of individuals associated within the group in a single direction, the reason for the two prominent figures of the ordinary population, I Seon and Kim Man Joong, transcribing the SONGKANG GASA in document within coadjacent times is based on the struggles of these memories. Meanwhile, Seopo possessed enough memories to accept the works of SONGKANG in an active and positive way, and hoped to anchor them in writing accordingly. However, some justifications were required because such acts themselves were considerably strange at the time, and this is the point where Seopo’s opinions about the conditions of true writing were trespassed. Although the songs of the new standard named ‘CHEONKIJIJABAL(天機之自發)’ are in Korean characters, they guarantee honesty, therefore function as logical grounds which approves acceptance . When viewed in this way, his acceptance of the lyric works of SONGKANG does not differ much from the effort to correct the lethargic style of poetry by selecting writings including 『KOSHISEON(古詩選)』․and 『SISEON(詩選)』. To sum up, his shocking proclamation, ‘The sounds of an ordinary person cutting wood and a woman drawing water are better than the poem of a bachelor godfather’, did not arise from Korean literation but rather from a ‘song’, a formal base that can express humane emotions fre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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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계몽기 가사의 전통양식 계승과 개신

윤덕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6집 2012.12 pp.313-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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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계몽기 가사에 대한 연구사는 전통시가에서 근대시로 옮겨가는 과도기의 산물로서 부분적인 가치를 인정하거나, 아예 문학사적 가치를 부인하는 가치 폄하의 시각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이 시각의 기저에는 문학사를 현재적 관점에서만 보고자하는 전망의 결여와 문학 작품에 대한 가치 평가를 작품성에만 한정하려는 작품 위주의 사고가 놓여 있었다. 문학사를 당대의 시각에서 보며, 작품의 생산뿐만 아니라 유통 과정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근래의 견해 수정에 의하여 이 시기 문학사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인 쪽으로 바뀌어 나왔다. 본 논고는 애국계몽기 문학사의 독자적인 가치를 인정하는 연구사의 발전 방향에 편승하여, 주로 가사 장르에 관련된 실제 검증을 시도하였다. 󰡔대한매일신보󰡕소재의 가사들을 중심으로 작품 분석을 시도해본 결과, 이들 가사들은 어떤 정형적 틀에 갇히지 않고, 전통 양식을 풍부하게 활용하는 가운데 새로운 양식을 모색해 나간 뚜렷한 양식적 지향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았다. 형식은 주로 전통에 기대되, 내용을 개신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개변은 겉에서 보기에는 지루한 양식 반복이지만 내적인 개신의 활력이 넘쳐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새로운 언론 매체를 통한 유통 방식은 작자 주도의 기존 틀을 벗어나 독자가 최종적인 해석자이며, 곧 최후의 작가가 되는 전혀 다른 관습을 만들어 냄도 볼 수 있었다. 이 양식 혁명을 출발시킨 애국 계몽기 지식인들은 전대의 현실비판 가사 유통에 가담하는 선비 지식인들을 이어 받아 계몽 선도의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작품을 사유화하지 않고 독자에게 작자의 지위까지 양여하면서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양식 개발에 헌신하였다. 현실에 대한 치열한 의식을 담아내기 위한 양식 개발의 과정은 기존 현실 부정과 화해의 틈서리에서 어렵게 이끌어지면서 최종적으로 일정한 단계의 작품성을 획득하는 단계에 이르면서 다음 단계의 근대시 형성에 올라서는 주추를 놓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평가에 당도해 본 것이 본 논고의 최종 귀착점이며, 이 지점에 이르러 근대시 형성의 경로에 올라보는 다음 연구를 기약할 수 있게 되었다.
Korean traditional poetic genres had a hard trial at the moment of first decade of 20th Centuries. They had had the changes in the modes of genres arisen by inner and outer causes. The poetic genres had lost their boundaries in the classification of the ways of amusement. JAPKA(a mixed style of singing) was the nomination of that phenomena having no limitations and rules in the amusement of songs. The intellegent leaders of the late CHOSUN dynastie’s society began to have the interest in the Korean songs. They realized the values of Koean songs. The truth of not sophistcated real songs Korean people sang in the daily life, they evoked in their essays on the poetry, was more valueable than the Chinese poems imitating like a parrot. And they endeavored for the elevation of Korean song’s value. Many of songs were written under their promotion and protection. The leader of jounalism at the moment of first decade of 20th Centuries had the same roles as their precedent leaders of 19th Centuries. They endeavored for the true progress of Korean songs. They wrote many songs as the columns of daily newspapers, and the readers of them responsed immediately. Wondering numbers of songs had spouted on the newspapers every day. It was the most powerful scene in the history of Korean songs. The leaders of jounalism was not the proper authors of that evoking songs. They only pass the central ideas of the age to the readers, and the readers constructing forms following the ideas was the real authors of the songs. This way had not seen before, and the roles of readers participating in the formation of works had the important orientation for the realization of Korean modern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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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와 이형상의 <傖父詞> 연구

김진희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6집 2012.12 pp.339-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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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창부사>의 문학적 특성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병와 이형상의 가악관이 그의 악부를 통해 실현된 양상을 밝혔다. <창부사>는 <어부가>나 <도산십이곡> 등 전대의 시가를 모방하면서도 작가 자신의 개인적․사회적 상황을 보다 반영하는 방향으로 개작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국문시가의 전통과 특성을 수용․재창조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창부사>는 환로에서 벗어나 영천의 호연정에 은거하며 처사로서 지내길 원하던 이형상 자신의 삶과 생각을 반영하여 처사의 일상과 즐거움을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그것은 구조적 측면에서는 경기체가와 같은 전대 시가의 전통을 되살렸으며, 형식적 측면에서는 반복구와 집구 등 <어부가>의 시적 장치를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였다. <창부사>는 각 장의 내용과 부합하는 유의미한 반복구를 매 장마다 구성하여 각 장의 주제를 더욱 뚜렷하게 부각하였으며, 집구된 원시의 주제가 <창부사> 각 장의 주제와 유사하거나 혹은 원시의 이미저리가 집구시에 수용되는 방향으로 집구를 행하여 각 장의 내용을 보다 풍부하게 살렸다. 이와 같이 볼 때 <창부사>는 단순히 기존시가에 대한 모방작이 아니라, 국문시가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이형상이 기존의 국문시가를 수용하고 재창조한 결과물임을 알 수 있다. 이는 고악의 이상을 살리면서도 당대의 삶과 생각을 반영한 금악을 활성화하고자 했던 이형상의 가악관이 실현된 산물이었다.
This thesis investigated the literary characteristics of Changbusa and figured out how the author's opinion of the music and the poetry was reflected in his own poetic work. Changbusa was modeled on the previous poems such as Eobuga and Dosansibigok while it reflected its author's reality and recreated the tradition of the vernacular literature. Changbusa represented the reality of the author, Lee Hyoungsang, who quit office and decided to live as a scholar. It also reinvented the structural characteristics of a previous poetic genre, gyoungichega, and it used in a new way the poetic devices of Eobuga such as the refrain and the jibgu, a method of composing a poem through compiling existing poetic verses. In Changbusa, the theme of each stanza was highlighted by sensical refrains instead of nonsense one, and its meaning was enriched by the jibgu phrases. In these respects, this thesis concluded that Changbusa is not an imitation of the previous poems but the outcome of recreating the tradition of the vernacular poetry, based on Lee Hyoungsang's broad understanding of the vernacular poetic tradition. Changbusa was a realization of Lee Hyoungsang's notion of the music and the poetry, which pursued the classical ideal as well as the reality of the time.

8,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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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작자 논의의 계보

이윤석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6집 2012.12 pp.38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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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홍길동전>의 작자가 허균이라는 학계의 통설이 잘못이라는 것을 오랫동안 지적해왔다. 그러나 <홍길동전> 작자에 대한 합리적인 논의의 장은 제대로 열리지 못하고 있다. 현재 고소설 연구자들은 <홍길동전>의 내용은 허균이 지은 것과는 거리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지만, 허균이 작자가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려워한다. 이러한 현상의 근저에는 한국문학사를 위해서는 허균이 <홍길동전>의 작자라고 말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홍길동전> 허균 창작설의 근거는 1674년에 간행된 이식(1584~1647)의 󰡔택당집󰡕에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구절이다. 이식은 뛰어난 문장가로 높은 벼슬을 한 인물이고, 그의 문집 󰡔택당집󰡕은 조선후기에 여러 차례 간행되었다. 조선후기에 󰡔택당집󰡕은 쉽게 볼 수 있는 책이었고 허균도 유명한 인물이었으므로,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구절은 󰡔택당집󰡕을 읽은 사람이라면 대체로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보아야 한다. 김태준은 1930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조선소설사’에서 <홍길동전>의 작자 허균에 대해서 언급한 일이 있다. 그동안 국문학계에서는 이 글이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한 첫 번째 발언이라고 했다. 그러나 경성제국대학 교수 다카하시 토오루는 1927년 󰡔택당집󰡕을 인용하여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밝혔다. 조선시대 󰡔택당집󰡕을 읽은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다카하시 토오루는 󰡔택당집󰡕의 <홍길동전>과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연결시켜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말했다. 다카하시 토오루가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얘기한 후, 그의 제자들은 ‘허균이 쓴 <홍길동전>’의 연구를 더욱 심화시켜나갔다. 그리고 이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홍길동전>의 작자, 주제, 영향관계 등등의 다양한 연구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홍길동전>은 그 형식과 내용이 19세기에 유행한 전형적인 한글소설이다. 이 한글소설의 작자는 권력이나 양반지식층과는 거리가 먼 무명의 시정인이다. 그리고 이들 무명작가가 쓴 작품을 읽고 즐긴 독자들도 바로 작가와 같은 계층의 사람들이다. <홍길동전>의 의의는, 당대 서민의 꿈과 희망이 작자의 상상력을 통해서 작품에서 드러나고, 독자는 작자의 상상력에 기대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다는 점에 있다. <홍길동전>을 허균과 연결시켜 영광스러운 문학사를 서술하고 싶어 했던 1930년대 식민지 지식인의 열정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제 <홍길동전>을 원래 작자와 독자에게 돌려주고, 그들이 얘기하고 싶어 했고 또 얘기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작업이 필요한 때가 온 것 같다.
It has been many years since I first pointed out that the commonly accepted view which regards Heo Gyun (1569-1618) as the author of Hong Gildong Jeon was a false. Yet reasonable discussions on this topic seem to have not been enough. Nowadays, many scholars of classic prose fiction consider that the story of Hong Gildong Jeon is far different from the original work of Heo Gyun. But it has not yet reached the stage of denying the authorship of Heo Gyun itself. What lies at the root of this theory is the idea that it would be favorable for the history of Korean literature to identify Heo Gyun as the author of the first prose fiction. The sole basis for regarding Heo Gyun as the author of Hong Gildong Jeon is the following quotation from the Taekdang-jip(Collected Writings of Taekdang) by Yi Sik (1584-1647): “Heo Gyun wrote Hong Gildong Jeon.’’ Yi Sik was a renowned writer and high-ranking government official at the time and his Taekdang-jip had been repeatedly published in late Joseon Dynasty. Along with the popularity of the Taekdang-jip, Heo Gyun’s fame played a certain role in spreading the aforesaid quotation. Ever since Kim Taejun identified Heo Gyun as the author of Hong Gildong Jeon in his ‘History of Joseon Prose Fiction’ (a serial on Dong-A Ilbo in 1930), scholars have regarded this as the earliest remark of the attribution. However, three years earlier, in 1927, Takahashi Toru, the professor of Keijo Imperial University already confirmed the attribution by citing the Taekdang-jip. Although the Taekdang-jip was a popularly read book throughout the latter period of Joseon Dynasty, there had been no explicit indication of the link between Heo Gyun and Hong Gildong Jeon before Takahashi. The significance of his remark lied in this fact. After 1927, more profound analyses were introduced by Takahashi’s pupils and researches on various aspects of Hong Gildong Jeon have continued until the present day. Hong Gildong Jeon is a typical popular prose fiction written in Korean script during the nineteenth century. It is highly likely that the author was not an intellectual or someone in power but a common man; and most probable that its readers belonged to the same class as the author. Considering these factors, the importance of Hong Gildong Jeon lies in the fact that the story was a reflection of the common people’s hopes and dreams of those days. It could be said that the yearning to create a glorious narrative of Korean literature led colonial scholars in the 1930s to link Hong Gildong Jeon and Heo Gyun. Such yearning carried a positive meaning to a certain extent but it is time for a change. It seems now that subsequent research on this work should give back the story to its original author and readers, i.e. the common people, and shed light on what these people actually desired and talked ab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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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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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6집 2012.12 pp.415-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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