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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상고전연구 [Yeol-sang Journal of Classical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열상고전연구회 [Society of Yol-Sang Academy]
  • ISSN
    1738-2734
  • 간기
    격월간
  • 수록기간
    1988~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한국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810 DDC 810
제26집 (18건)
No

특집1 한일 양국 문학에 나타난 상호 인식의 문제

1

일본 고대문학 속의 신라인 -8세기자료를 중심으로-

사이토 아사코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6집 2007.12 pp.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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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8세기의 문헌인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 풍토기(風土記), 회풍조(風藻), 만엽집(万葉集)에 기술된 ‘신라인’에 초점을 맞추어, 고대일본인의 타자인식을 고찰한 것이다.고사기에서는 윤공천황이 즉위할 때, 신라의 명의가 윤공천황의 지병을 치료했다고 기술되어 있다. 신라왕자의 자손인 다지마노 모리(多摩毛理)가 도코요노 구니(常世, 불노불사의 낙원)에서 불노불사(不老不死)할 수 있는 나무를 가지고 왔던 전승을 소개한 것이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일본이 신라가 주술에 뛰어났음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일본서기에도 신라인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여기에서는 윤공천황의 즉위할 때 신라의 명의가 왔던 일, 또 윤공천황을 조문하기 위해 온 신라조문사절이 일본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없었던 일, 신라인의 산악신앙에 대한 지식이 일본 측에서도 어느 정도 있었던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풍토기에서는 신앙형태가 다른 타자로서 신라라는 국명이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신라인을 파괴자로 명기하고 있는 점은 주목된다. 이것은 고래부터 전승되어 온 내용과는 다른 새로운 신라관이 형성된 것으로, 신라를 침입자파괴자로 보았음을 말해준다. 풍토기 편찬자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보여 진다.이와 같이, 이들 문헌은 신라인의 정신적 세계관과 관련된 조약(調藥)에 대한 지식, 산악신앙 등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은 일본인에 있어서 신라인의 모습이 물질보다는 지식 또는 정신적인 면이 부각되어 있음을 말해 준다. 회풍조의 신라인은 한시를 통해 일본인과 함께 문예세계를 형수(享受)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여기에서는 ‘筆海’가 행해지고, 나가야 오(長屋王,나라(奈良)시대 전기의 정치가)의 주변관료는 신라인과의 한시를 통해 창작의욕에 자극받았다. 또, 만엽집의 신라 비구니는 오오토모(大伴)씨의 사호(佐保)저택에서 30여년을 가족과 함께 보냈고, 만엽을 대표하는 일본의 여성가인의 정신세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는 비록 국가는 다르더라도, 인간으로서의 따뜻한 교류가 전개되었음을 보여 준다.이들 문헌은 공히 8세기라는 시대에 편찬된 자료이지만, 다양한 신라인에 대한 타자인식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이 같은 차이는 각 문헌의 편찬사정, 또 시대적 배경에 따른 것이다.

6,100원

2

16 · 17세기 동아시아적 경험과 기억으로서의 일본인 형상 -조선후기 역사소설을 대상으로-

권혁래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6집 2007.12 pp.3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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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후기 역사소설에 그려진 일본인 형상의 양상을 제시분류하고 형상화의 의미를 분석한 글이다. 조선후기 역사소설에 그려진 일본인 형상은 16-17세기 동아시아적 경험과 기억의 일부로서, 이러한 형상에서 조선후기 한 작가 및 민중들의 역사의식과 내적 성찰을 읽어낼 수 있다.역사 계열 <임진록> 이본의 작가들은 비교적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외적의 발흥과 군사행동을 인식하고 서술하였다. 하지만 작품의 뒷부분에는 구비설화의 상상력을 반영하여 사명당 정왜담(征倭譚)을 삽입함으로써 민족적 신화를 재현하였다.설화 계열의 <임진록> 이본에 나타난 일본인 상은 기본적으로 통속화된 역사, 문학적 유희의 산물이다. 풍신수길, 청정, 행장 등 일본 장수들은 단지 조선 측의 승리를 돋보이게 하는 기능적 존재이다. 따라서 이들의 형상에서 진지한 역사의식이나 성찰의 흔적을 찾아보긴 힘들다. 역사의식 및 내적 성찰의 면에서 <최척전>이나 <김영철전>, <강로전>에 그려진 일본인 상은 긍정적이다. <최척전>의 작가 조위한은 사실적 시각을 유지하며 조선의 여인에게 도움을 베푼 선량한 일본인의 형상을 그렸다. <김영철전>과 <강로전>에서는 항왜인(降倭人)들의 용맹과 충절을 그리며 강홍립의 투항과 대비하였다.

7,200원

3

일본 현대 소설에 나타난 한구의 이미지 - 西村京太郞『韓國新幹線を追え』와 『伊集院靜 仔犬のお札』를 중심으로 -

이토 타카오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6집 2007.12 pp.6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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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일본 소설 속에 나타난 ‘한국의 이미지’에 관한 연구는 주로 근대문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근대 문학에 나타난 ‘한국의 이미지’의 특징은 정한론으로부터 시작되는 한국에 대한 관심과 일제 강점기의 식민자로서의 긍정적 혹은 부정적(반성적) 시각을 그 특징으로서 들 수 있다.한편, 이와 같은 주제로 일본 현대 소설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미흡한 상황이라 할 수 있으며, 선행연구로서는 시바 료타로(司馬遼太)나 카지야마 토시유키(梶山季之)의 작품에 관한 것을 몇 가지 찾아 볼 수 있는 정도이다.그런데 한 마디로 ‘현대소설’(1945년 이후)이라 해도, 1945년 당시와 현재와는 상당한 변화와 차이가 있다. 특히 2002년의 월드컵과 근년의 이른바 ‘한류’붐의 영향으로, 일본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극적으로 변했다고 할 수 있다.따라서 본고에서는 가능한 한 현재에 가까운 시점에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그 속에 나타난 한국의 이미지를 추출하는 데 목적이 있다.이와 같은 목적에서, 본 연구에서는 2006년에 발간되었고, 한국이 무대로 설정되어 있는 두 개 작품, 즉 西村京太의 韓新幹線を追え와 伊集院의 仔犬のお를 대상으로 선정했다.사실, 그들의 작품은 대중소설의 성격이 강해서 문학연구의 대상이 될 일은 드물다. 이 두 개 작품을 선정하게 된 이유는 요즘 발간된 순수 문학 중에서 한국을 무대로 한 것을 찾아볼 수 없다는 현실도 있지만, 그들의 작품이 일본 대중들에게 미치고 있는 영향과 본 연구의 목적을 감안하면, 작품선정의 타당성은 있다고 본다.먼저 韓新幹線を追え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를 내포하면서도 힘차게 민족적인 자존심과 자부심을 가지고 사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과, 단기간에 놀랄만한 경제발전을 이루어낸 역동적인 모습이 묘사되고 있었다.또한 한국계 일본인 작가가 쓴 仔犬のお에서는, 구체적인 한국의 이미지라기보다는 문화적 차이를 넘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기술방법을 통해 중요한 메시지를 일본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저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현대 일본 소설에 나타난 한국의 이미지는 근대소설의 그것과 또 다른 새로운 모습을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형성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의미에서는 이른바 순수문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현대 문학작품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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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무꾼과 선녀>와 일본<날개옷> 설화의 비교연구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가능성

김환희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6집 2007.12 pp.8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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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의 목적은 한국의 <나무꾼과 선녀> 설화와 일본의 <날개옷> 설화에 관한 기존의 비교연구의 문제점을 점검하고, 새로운 한일 설화 비교연구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있다. 한국에서 <나무꾼과 선녀> 설화는 학자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크게 네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선녀가 나무꾼의 곁을 떠나는 것에서 끝나는 선녀승천형, 나무꾼이 두레박을 타고 천상계로 올라가는 것으로 끝나는 나무꾼승천형, 천상에 올라 간 나무꾼이 처갓집 식구들이 내주는 과제를 치루고 행복해지는 천상시련극복형, 천상에 올라간 나무꾼이 어머니가 그리워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수탉유래형이 있다. 이 네 가지 하위유형 가운데 세 번째 것인 ‘천상시련극복형’은 189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근 90년간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각편이 채록된 유형이다. 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채록된 <나무꾼과 선녀> 설화인 가린-미하일로프스의 박씨도 천상시련극복형이다. 초기 구전설화의 채록 상황을 고려할 때 천상시련극복형이 지니는 가치는 매우 크다. 하지만 기존의 한일비교연구는 천상시련극복형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 가장 큰 이유는 1910년에 다카하시 도오루가 편찬한 조선물어집에 실린 선녀의 날개옷이 나무꾼승천형이고, 1920년대에 일본인 학자들이 조선동화집 류에 실은 <나무꾼과 선녀>가 거의 나무꾼승천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석재가 일제강점기에 채록하고 1987년 이후 한국구전설화에 소개한 각편들을 살펴보면 천상시련극복형이 가장 많이 실려 있다. 또 한국구비문학대계에도 천상시련극복형의 각편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이 두 구전설화집 총서를 살펴보면 이 유형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기존의 한일 비교연구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천상시련극복형을 살펴봄으로써 <나무꾼과 선녀> 설화와 <날개옷> 설화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살펴보았다. 일본의 <날개옷> 설화도 여러 유형이 있는데, 천상시련극복형과 유사한 하위유형으로는 ‘천상방문형’ 또는 ‘칠석유래형’이 있다. 이 두 유형의 일본 <날개옷> 설화에서 주인공은 하늘로 올라가서 장인이 내주는 과제를 선녀 아내의 도움으로 치룬다. 천상에서 선녀-아내와 행복하게 사는 경우도 있지만,많은 설화에서 남편은 장인의 계략에 속아서 참외를 잘못 자르는 바람에 은하수가 생겨서 지상으로 추락한다.이 두 유형의 일본 <날개옷> 설화와 일본의 고사기를 한국의 <선녀와 나무꾼> 설화와 비교해보면 여러 공통된 모티프를 발견하게 된다. 특히 쥐, 넝쿨식물, 화살 등은 상고시대에 한일 양국 간에 있었을 설화 교류를 짐작하게 하는 모티프들이다. 오호쿠니누시 신화에서는 쥐가 조력자로 출현해서 불의 위기에 처해 있는 영웅을 구해주고 장인 스사노오가 쏜 화살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일본에서 채록된 각편 가운데는 밤메꽃, 호박, 완두 등 넝쿨식물이 천상계와 지상계를 연결하는 우주목으로 등장하는 설화들이 많이 있다. 일본에서 이러한 화소들이 등장하는 각편들이 채록된 지역이 한국의 남쪽지방과 가깝다. 따라서 이즈모 지방과 백제 또는 신라의 문화교류로 한국의 <나무꾼과 선녀> 설화가 일본의 오호쿠니누시 신화와 <날개옷> 설화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7,300원

특집2 연민화 어떻게 할 것인가

5

7,600원

특집2 연민학 어떻게 할 것인가

6

연민선생과 『열하일기』번역

서현경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6집 2007.12 pp.151-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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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기본적으로 연민 이가원 선생을 기리는 글이다. 본 연구는 연민 선생의 국역열하일기의 특징과 가치를 살펴본 후, 새로운 열하일기 번역을 위해 검토할 점들을 다루었다. 우선, 연민 선생이 번역한 국역열하일기의 특징과 가치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국역열하일기는 풍부한 이본 비교를 거친 최초의 전문적인 완역이다. 둘째, 국역열하일기는 새로운 목차를 제시한 특징이 있다. 셋째, 국역열하일기는 교합본 원본텍스트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다음은 새로운 열하일기 번역을 위한 검토점이다. 첫째, 기본적으로 국역열하일기의 텍스트 비교 성과를 계승하되, 좀 더 강도있는 텍스트 비교가 필요하다. 둘째, 과거보다 발전된 공구서를 이용하여 주석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 셋째, 어려운 말이 주석 없이 본문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도록 상세한 번역을 할 필요가 있다. 넷째, 오역에 대해서는 번역의 수정이 필요하다. 다섯째, 번역자의 관점에 따라 번역문이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을 점검하여 객관적으로 번역할 필요가 있다.

7,900원

7

“玉溜山裝詩話”의 특성에 대하여

구지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6집 2007.12 pp.187-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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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논문

8

東陽尉 申翊聖의 駙馬로서의 삶과 문화활동

김은정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6집 2007.12 pp.215-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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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陽尉 申翊聖(1588~1644)은 17세기초 조선의 문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간 인물이다. 駙馬는 입신할 수 없다는 신분적 제약이 있었지만, 신익성은 부마로서 누리는 혜택을 동원하여 다양한 문화활동을 펼친 것이다. 부마로서 누리는 혜택이란 왕실을 통해 얻게 되는 최신의 문화정보와, 무엇보다도 문화사업을 벌일 만한 경제력의 확보를 의미한다. 신익성은 경제적인 여유를 바탕으로 近畿에 대규모 전장을 경영하였고, 이것은 후에 그의 예술문화활동의 기반이 된다. 그가 벌인 문화활동은 첫째, 독자적인 서적의 출판과 간행이다. 家塾에 집안의 활자를 소장하고 부친 신흠의 문집을 간행하였고, 이와 같은 전통은 후손에까지 이어졌다. 둘째, 서화취미와 대규모 장서이다. 신익성은 예술적인 기질이 남달라 서화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였고, 특히 明 서화 및 서적을 적극적으로 수집하고자 하였다. 셋째, 산수유람의 풍류를 즐겼다. 사회정치적 진출의 기회가 없는 부마의 신분이었던 신익성은 명산대천 속에서 仙分을 과시하고 승려와 교류하였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풍류가 목적이었는데, 그의 유람에 동행한 이들의 면면이 시인, 악공, 기생 등이었다는 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유람의 풍류를 다양한 문학 형태로 남겼다.이와 같은 신익성의 문화활동은 조선후기 京華士族의 것과 거의 유사한 면을 지니고 있다. 18세기의 京華士族은 京邸와 近畿 別墅를 오가며 지내며,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대규모 장서와 서화 취미를 즐겼다. 또한 眞景山水의 그림과 시를 위해 금강산 등지를 여행하였다. 이러한 경화사족의 문예 취미는 이미 17세기 초의 신익성이 펼친 문화활동 속에 포함된다. 경화사족은 정치적 안정 속에 문화적 사치를 즐길 여가를 획득할 수 있고, 전대의 문예적 성취를 계승하여 조선의 현실에 맞는 새로운 문학 영역을 확충해 나갔다고 할 수 있는데, 곧 신익성이 그 선구가 된다 할 수 있다.

8,500원

9

사행록의 역사적 전개와『일동기유』

정훈식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6집 2007.12 pp.255-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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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행문학의 역사적 흐름에서 보면 수신사행록은 통신사행록의 전개가 거의 종결되고 근대적 기행문으로 변화되기 시작하는 이행기 기행문의 한 갈래라 할 수 있다. 사행왕래의 기간이 짧고 그 기록도 많지는 않지만, 전근대 해외 사행록의 소멸과 근대적 기행문의 탄생이라는 전환 시대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수신사행록은 매우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다. 국문학에서 수신사행록에 대한 연구는 그다지 활발하지 못한 편이다. 본고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최초의 수신사행록인 일동기유를 중심으로 사행록의 지속과 변모라는 관점에서 그 현상과 요인을 다시 고찰해 보았다. 일동기유는 사행록의 전형적 모습을 따르고 있지만, 변화된 사행의 조건에서 사행록의 말로를 예견케 하는 대목들이 산견된다. 새로운 운송수단 등 사행의 여러 조건과 양상이 달라져 이것이 사행기록의 글쓰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 또한 사행에서 중요한 문화적 교류였던 시문창화가 수신사행록에서도 이어졌지만 그 양상은 조선통신사와 비교했을 때 사뭇 달랐다. 이렇게 사행록의 여러 성격이 변화한 것은 세계사적 범위에서 일어난 역사적 격변에 기인한다.또한 그동안 일동기유를 다룰 때 중요하게 논의되었던 일본인식의 문제도 다시 살폈다. 사실 이 시기 조선은 여전히 중세체제에 머물러 있었으며 일본은 이미 근대라는 시간으로 건너가 있었다. 따지고 보면 수신사행은 일본이라는 공간을 여행한 것 외에 근대라는 시간여행을 한 셈이다. 근대 일본에서 사행을 수행하는 동안 일본은 조선에 근대로 이행할 것을 줄기차게 강요하였다. 일본은 조선으로 하여금 자국의 근대화를 두루 유람하고 이것을 적극 수용할 것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중세 지식인의 관념과 시각으로 근대일본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수신사행록 일동기유는 조선의 근대 수용전후의 인식의 양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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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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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하버드대학 예칭도서관본 <별춘향전>에 대하여 -안성판 20장본과 완판 29장본의 비교를 중심으로-

임성래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6집 2007.12 pp.319-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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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하버드대학 옌칭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별춘향전>이라는 작품의 <춘향전> 이본으로서의 특징을 살펴본 것이다. 그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기로 한다.옌칭본은 일본인 橋本蘇洲의 부탁을 받은 안성의 선비 유양근이 1897년에 필사한 <춘향전> 이본이다. 이 옌칭본은 <춘향전> 이본으로서 특이한 내용의 구성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곧 이도령과 춘향의 첫 만남을 광한루에서 이루어지도록 하지 않고 춘향 집에서 이루어지도록 했다. 이것은 춘향을 사대부 처녀화하려는 작자의 의도에서 설정된 사건으로 보인다. 또한 이 작품에는 신관의 생일연이 열리는 날 이도령이 옥중의 춘향을 찾아가서 죽지 말라고 당부하는 내용이 삽입되어 있어서 다른 이본들과 차이를 보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표현 내용은 완판 <별춘향전>과 상당한 관련 아래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작품의 대부분의 단락에서 같거나 유사한 표현들이 많이 발견됨을 보아서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이상에서 살핀 점들을 고려할 때 옌칭본은 완판 <춘향전>과 밀접한 관련 아래 이루어진 이본이지만 이도령과 춘향의 첫 만남을 광한루가 아닌 춘향의 집에서 이루어지도록 한 점이나 신관의 생일연이 열리는 날 이도령이 옥중의 춘향을 찾아가는 사건을 설정한 점 등에서 이본으로서의 독자성을 갖는다. 바로 이런 점들이 옌칭본만이 갖는 <춘향전> 이본으로서 독특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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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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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금방울전』활판본 원고에 대하여

이윤석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6집 2007.12 pp.373-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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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판본 고소설은 19세기 말에 들어온 새로운 활판인쇄로 출간된 고소설을 말한다. 1910년대 초부터 많은 양의 활판본 고소설이 출간되었는데, 이 활판본 고소설을 간행한 출판업자들은 이 원고를 어떻게 구했을까 하는 점이 그동안 의문이었다. 필자는 몇몇 활판본 고소설과 세책 고소설의 내용비교를 통해, 활판본 고소설의 원천이 세책 고소설일 가능성이 크다는 발표를 한 일이 있다. 이 논문은 이러한 필자의 가설을 증명할 수 있는 구체적 증거인,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된 활판본 고소설 원고에 대한 글이다.19세기 독자가 한글 고소설을 만날 수 있는 경로는 다음의 세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방각본, 두 번째는 세책집에서 만든 세책, 그리고 세 번째로 이들 세책이나 방각본을 개인이 필사한 것 등이다. 조선에서 방각본 고소설이 출판된 곳은 서울과 경기도 안성, 그리고 전라도 전주 세 곳 뿐인데, 여기에서 간행된 소설의 유통범위는 그 지역을 넘어서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세책집은 서울 이외의 지역에는 없었다. 그러므로 고소설이 전국적으로 읽힌 것은 활판본이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해졌다.방각본이나 세책 고소설이 아무런 법률적 규제 없이 간행될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활판본 고소설은 1907년의 신문지법이나 1909년의 출판법에 정해진 규정에 따라 간행된 것이다. 활판본 고소설을 출판하기 위해서는 관계기관에 원고를 제출해서 출판허가를 얻어야만 했다. 연세대학교 도서관에는 1910년대에 조선총독부의 출판허가를 받기 위해 만든 <금방울전> 원고가 있다. 이 원고의 표지에 ‘檢閱濟’, ‘出版許可’, ‘朝鮮總督府警務總監部印’ 등의 도장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아 출판허가를 받은 것임은 분명하나, 실제로 책으로 출간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이 원고의 내용을 세책본 <금방울전>과 비교해보면 두 본의 내용은 완전히 일치한다. 이것은 세책본 고소설이 활판본 고소설의 원고로 이용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금방울전> 원고의 예 하나를 모든 활판본 고소설에 확대적용할 수는 없지만, 활판본 고소설의 출판업자들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원고로 세책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다.이 원고에 대한 필자의 관심은 활판본과 세책본의 관계에 한정되어 있지만, 이 원고는 식민지 시기 검열 문제를 연구하는데도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또 이 <금방울전> 원고에는 수정된 곳이 많이 있는데, 주로 중국적인 내용을 조선적으로 고친 것이다. 이러한 수정태도는 최남선이 세책 <춘향전>을 바탕으로 <고본춘향전>을 만들 때의 수정태도와 상당히 비슷하다. 이 방면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에게도 흥미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6,900원

14

송강가사 전승사실의 맥락

윤덕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6집 2007.12 pp.403-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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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가사는 정파적 지향을 함께 하는 동류 당인들에게는 충군 이념을 사실로써 확인하는 지표의 역할을 하면서, 다른 당파의 수용자들에게는 충신연주지사의 일반적 주제로서 포용되었다. 노소분쟁의 치열함이 유지되던 18세기 말까지 이러한 전승의 면모는 지방으로의 전승권 확산을 수반하면서 유지되었다. 송강가사는 몇 단계의 전승 과정을 거쳐 정본이 수립되고 정본 수립 후에는 작품의 미학적 가치를 심화하는 번사 작업이 뒤따라서 전승을 완성하고 있다. 이런 단계들마다의 전승가담자들은 각 단계에 해당하는 특징으로 구별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송강 추숭과 서인-노론 당론 강화의 두 지향에 의해 이끌리고 있다. 그리고, 이 전승가담자들은 해당하는 가사발전 단계에 따라 송강가사를 수용하는 방식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 작가와 가까운 시대에는 정본이나 작자성을 추구하는 수용이 이루어졌다면 뒷 시기로 갈수록 송강가사를 시대적 문맥으로 재해석하거나 또는 송강가사의 유형을 확대 신장하는 창작으로 관심이 옮겨감을 볼 수 있다. 이런 과정들은 결국 가사의 향유층이 확대되거나 가사 작품의 세계가 개신되는 분위기와 맞물려 가사발전사를 진전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종래 이 전승 사실들은 개별로 파악되어 그 맥락을 잡을 수 없었다. 이에 면밀한 자료 재검증이 요구되었던 터에 전승자와 전승 사실들을 단계별로 정리하면서 전승 사실들이 관계 가지는 맥락을 잡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전승 사실들을 전승자 중심으로 재배열하면서 그 사실들이 송강가사 전승 체계에서 가지는 의미를 모색해 보았다. 송강 당대로부터 사후 경모 추앙의 분위기 속에서 송강가사가 전승되는 모습을 재구할 수 있었으며 나아가 이 전승과정이 가사 발전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을 거쳐 17세기 이후의 가사 발전을 송강가사 영향권의 확대 과정으로 재편할 수 있었으며 송강가사의 문학사적 의미를 재정립할 수 있는 계기를 잡아낼 수 있었다.

14,100원

15

『三國遺事』「紀異」篇 敍述原理

이강엽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6집 2007.12 pp.48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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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三國遺事 紀異의 神異에 초점을 두어 그 서술원리에 대해 논의한 것이다.첫째, 紀異 편 敍를 검토한 결과, 그 신이함은 이야기 주인공의 ‘영웅적인 행위’와 함께 ‘하늘의 표지’와 ‘땅의 변화조짐’이 함께 일어나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다. 가령, <고조선>의 경우, <제왕운기> 등과는 달리, 환인이라는 하늘의 뜻만 중시되는 것이 아니라 환웅의 의지, 삼위태백이라는 땅의 상태, 자식을 갖기를 소망하는 웅녀의 마음 등이 함께 드러난다.둘째, 三國史記 등의 자료와 비교한 결과, 三國遺事 紀異 편의 자료는 고조선, 고구려, 백제 등의 자료에서는 天의 표지와 地의 변고가 대칭으로 드러나면서, 상대적으로 국가 건국 등의 공식적 행위에 대한 관심이 적고 민족의 계통 등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혁거세, 탈해, 알지 등등의 자료에서는 임금을 맞이하는 과정을 서술하면서, 天의 의지 역시 人의 호응에 맞물려 함께 일어나는 것으로 서술한다. 김유신, 장춘랑파랑, 김(박)제상의 경우는 등장인물의 비범성이 하늘과 땅의 照應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파생한 결과로 나타난다.셋째, 紀異 편의 서술의 신화적 맥락을 살핀 결과, 우선 기이의 제1과 제2의 구분이 신라의 흥망성쇠의 기준에 따른 것으로, 국가가 흥하고 망하는 이치가 신화적으로 서술된 것이 紀異이겠는데, 이는 신화 주인공[제왕, 영웅]이 하늘의 표지와 땅의 변고를 제대로 이해하고 대응하는가에 따른 것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중국 중심의 동양신화 전통에서 찾을 수 있는, ‘창조’가 아닌 ‘운행’의 관점에서 쉽게 이해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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龜旨歌 敍事의 封祭機能 硏究

오태권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6집 2007.12 pp.52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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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국문학 영역에서 이제까지 삼국유사 소재 가락국기의 기록을 신화나 농경(農耕)제의(祭儀)의 일환으로 연구하던 방법론에서 벗어나 새로운 연구방법론을 찾고자 시도하였다.가락국의 건국은 AD42년이다. 이 시기는 동아시아 전체가 보편주의 세계관으로 통합되어가던 시기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이제까지 전통적인 입장에서 지키려 하였던 국가 사전(祀典) 제도의 골격이라 할 수 있는 삼례(三禮)를 중심으로, 왕조내의 질서를 부여하게 되는 시기로 한반도에 나타난 집단들도 초기 율령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면서 성장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동아시아에서 초기 국가의 건설과 정립과정을 통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천명사상(天命思想)의 발달이다. 하늘의 천명에 따라 국가의 흥망도, 천자의 왕권 정통성도 성립되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인하여 천제(天祭)로 나타난 것이 ‘봉선제(封禪祭)’이며 그중에서도 특히 ‘봉제(封祭)’이다. 가락국(가야국)도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이시기 율령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발전하게 되면서 천명사상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국가와 군주가 하늘의 명을 받고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며, 이러한 인식은 개황록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삼국유사 소재 가락국기의 기록은 신화적 색채를 가지고 있으나 신화로 해석되기 보다는 구전과 기타의 기록을 통해 전해 내려오던 가락국의 건국 ‘봉선제’가 개황록에 원환적이며 전통적인 시각을 통하여 신화로 정착되었다가 후대에 삼국유사에 이르러 보편주의와 한문학에 의해 재해석되어 ‘영신군가(迎神君歌)’혹은 ‘주술적 농경제의’의 의미를 부여받아 정착된 기록으로 파악해야한다. 삼국유사가 정리되던 시기는 신화적이며 원환적인 세계관이 붕괴되면서 신화적인 인식보다는 역사적 인식체계가 강하게 나타난 시기이다. 따라서 <구지가>는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던 ‘封禪祭’에서 나타난 군왕의 즉위에 따른 찬가(讚歌)가 자신의 조상을 신성시 하기위한 신화적 인식에서 의미체계의 변화를 겪은 후, 영신군가로 변하여 수로왕 전승에 개입되어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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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암의 남명 상사구렁이 토치 유형‘ 전설에 나타난 인물 형상화의 체계와 부정적 서술시각의 역사적 맥락

권도경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6집 2007.12 pp.559-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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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내암 전설의 ‘남명 상사구렁이 퇴치 유형’에 나타난 인물형상화의 체계와 부정적 서술시각의 역사적 맥락을 고찰하였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국면으로 전개되었다. 첫 번째는 내암 전설의 ‘남명 상사구렁이 퇴치 유형’에 나타난 인물 형상화의 상징적 메타포의 체계이다. 남명학파의 위상과 관련된 학문적인 국면에서 내암의 인물 형상은 남명학파의 수제자란 긍정적인 캐릭터와 남명학파의 파괴자란 부정적인 캐릭터로 나타나며, 그 중간에 가치중립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한편, 내암 전설의 ‘남명 상사구렁이 퇴치 유형’에 나타나는 인물 형상의 정치적인 국면은 내암이 십년 독재상으로서 보유하고 있었던 정치적인 권력, 폐모 논란과 관련된 반역자, 그리고 정치적인 희생양이라는 세 가지 차원으로 존재한다. 두 번째는 내암 전설의 ‘남명 상사구렁이 퇴치 유형’에 나타난 부정적인 서술시각과 향유의식의 역사적 맥락이다. 내암 전설의 ‘남명 상사구렁이 퇴치 유형’에 나타난 부정적인 서술시각은 내암이라는 한 역사적인 인물을 형상화함에 있어서 일관되게 회퇴변척소 사건과 폐모 사건이라는 특정한 역사적인 지평과 관련한 내암 전설의 전승 담당층의 부정적인 인식과 관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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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18

휘보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6집 2007.12 pp.599-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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