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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상고전연구 [Yeol-sang Journal of Classical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열상고전연구회 [Society of Yol-Sang Academy]
  • ISSN
    1738-2734
  • 간기
    격월간
  • 수록기간
    1988~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한국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810 DDC 810
제32집 (18건)
No
1

鄭夢周 시의 역학적 해석

韓繼鎬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2집 2010.12 pp.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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圃隱 鄭夢周의 학문은 ‘四書五經’을 바탕으로 하여 현실생활에 실천 수행하는 행동의 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몽주는 儒學의 여러 경전가운데서도 尊信되여온 ꡔ周易ꡕ을 愛讀하였으며 漢詩로서 그 감흥을 읊조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정몽주의 易學에 관련되는 漢詩가 갖고 있는 풍부한 함의는 卦象에 대한 정확한 파악을 통해서야만이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ꡔ圃隱集ꡕ에서 <ꡔ주역ꡕ을 읽고 세상의 도에 느낀 바 있어 자안․대림 두 선생에게 지어 부치다(讀易寄子安大臨两先生有感世道故云)> 등 易學과 관련되는 일곱 수의 한시를 뽑아 읊조린 卦象을 파악하고, 象傳、卦辭를 통하여 정몽주의 한시에 대한 정확하고 깊이 있는 이해를 시도하고자 한다.
Poeun Chung Mong-Joo's scholarly attainments is based on the Four Books and the Five Classics and expressed it by the practice in real life with conscience of action. Among the Confucianism Classics Chung Mong-Joo loves and admires The Book of Changes, which can be seen by his Chinese poems. In order to deep understand Chung Mong-Joo's Chinese poems, we must know and grasp The Book of Changes. This paper attempts to extract several Chinese poems from collection of poeum, such as after reading The Book of changes and understanding the human socioty rule, compose and send for Master za-an and dae-rim, trying to deep understand the richful implication fo Chung's Chinese poem which are related to Changes Studies by grasping the meaning and explanation of hexagrams.

5,500원

2

김운초(金雲楚)의 ‘잡시(雜詩)’ 세 편에 대한 고찰

李麗秋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2집 2010.12 pp.2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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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조선후기의 대표적 기녀시인 김운초의 작품에 대해 고찰하였다. 주로 시형이 일정하지 않아 기존연구에서 ‘잡시’로 분류된 <억진아(憶秦娥)>, <임강선(臨江仙)>과 <기도화(寄桃花)> 세 편의 작품을 고찰하였다. 그 결과 <억진아>는 제목이 사패(詞牌)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형식에 있어서도 중국의 사(詞)의 율격과 같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임강선> 역시 제목은 사패로 되어 있지만, 내용이 자유로운 장단구(長短句)이고, <기도화>는 더욱 자유로운 형식을 취한 장단구로 판명되었다. 또한 운초 자신의 경우와 처지를 결합시켜 표현수법과 창작 특색을 분석했다. 특히 <기도화>라는 작품을 통해 운초의 작품집에 나타난 작품 순서의 혼선 문제를 파헤쳐 분석했다. 이상의 분석을 통해 운초의 장단구 작품의 문학사적 의의를 규명하였다. 일단 조선시대 문학에 대한 중국문학의 영향이 사대부에 그치지 않고 운초와 같은 여성시인에게도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 고유의 지명을 작품에 등장시켜 조선시대 문학창작의 특색을 반영한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운초의 기녀 신분과 결부시켜 기녀가 당악을 배웠다는 사실을 감안하여 조선시대의 기녀들이 음악을 통해서 사문학을 접했던 것으로 추측하였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사와 장단구 작품의 판명으로 인해 시, 사(詞), 부(賦), 층시(層詩), 산문 등 매우 다양한 작품을 남긴 운초의 문학이 조선시대의 여성문학을 풍부하게 만들었다는 데 그 문학사적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中文概要> 本文对朝鲜后期代表性妓女诗人金雲楚的作品进行了考察, 主要考察对象为≪忆秦娥≫、 ≪临江仙≫和≪寄桃花≫。 由于这三首诗作形式比较独特, 因此在之前的研究中均被认为是“杂诗”。 本文经过论证认为, ≪忆秦娥≫为一首典型的词作, 采用的词牌和形式均符合中国的词作格律。 ≪临江仙≫虽然采用了中国的词牌, 但形式并不符合相关格律, 因此可以认为是一首采用了中国词牌的长短句习作。 ≪寄桃花≫没有采用中国的词牌, 但也是一首形式自由、采取了一定格韵的长短句。 同时, 本文还结合这三首作品的内容, 分析了其创作手法和特色, 并且根据最后一首≪寄桃花≫的内容推断出了金雲楚作品集中收錄的初期作品排序错误。 本文通过以上分析, 总结出了这几首诗作的文学史意义。金雲楚的这几首长短句作品反映了中国词文学对朝鲜诗文学的影响不仅止于男性, 同时还涉及到妓女这一边缘创作群体。 同时, 这几首作品也像一些其他朝鲜男性诗人的作品一样, 加入了朝鲜的固有地名, 富有鲜明的朝鲜时代创作特色。 此外, 结合金云楚的妓女身份, 考虑到妓女接受的唐乐教育, 推断出朝鲜时代的妓女通过音乐接触到了词文学, 因此这几首作品也反映出了朝鲜时代妓女与词文学有一定的关係。 最后, 这几首词作与长短句作品的发现, 证明了金云楚作品题材十分广泛, 涉及诗、词、赋、层诗、散文等等, 丰富了朝鲜时代的女性文学。

6,700원

3

표류민 이지항과 아이누인, 일본인 사이의 의사 소통

허경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2집 2010.12 pp.5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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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에 살던 무인(武人) 이지항(李志恒)이 1696년 봄에 일본에 표류했다가 1697년 봄에 부산으로 돌아와, ꡔ표주록(漂舟錄)ꡕ을 기록하였다. 자발적인 기행문이 아니라, 3월 5일 부산포에 돌아왔다가, “다음날 아침 관아로 들어가 공술한” 것이다. 이지항 일행은 아이누인이 사는 북해도 서북쪽 섬에 상륙해 손짓 발짓을 해가며 의사 소통을 하다가, 일본인들을 만나 필담을 나누거나 통역을 통해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지항은 무인이지만 한시를 잘 지었기에, 한시를 지을 줄 아는 관원이나 승려와는 한시로 의사를 소통했다. 조선 관아의 공술 기록인 ꡔ표주록(漂舟錄)ꡕ에는 한시가 많이 실리지 않았지만, 일본 관아의 공술 기록인 ꡔ표류조선인이선달정사(漂流朝鮮人李先達呈辭)ꡕ에는 한시가 많이 실려 있다. 이지항 일행은 통신사 사행단같이 공식적인 역관이 없었지만, 동래에서 일본어를 주워들은 김백선(金白善)을 통해 의사 소통이 가능했다. 그러나 김백선의 일본어보다는 이지항의 한시가 더 환대를 받았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아이누 지역에서 표류와 만남이 시작되었기에, 이들은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을 단계적으로 다양하게 체험하였다. 이지항이 일본 관청에서 공술한 기록 ꡔ표류조선인이선달정사(漂流朝鮮人李先達呈辭)ꡕ에는 한시와 필담이 실려 있었지만, 통신사 일행의 필담창수집같이 출판되지는 않았다. 일본 관청에서 필담과 창화를 시도한 목적이 상업적인 출판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표류과정을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환대하기 위한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이지항 일행은 손짓발짓과 일본어, 필담을 거쳐 한시까지 동원해 의사를 소통했는데,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결국 한시가 가장 고급 단계의 의사 소통 수단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Lee Ji-hang, an warrior who lived in Dong-rae, draft with the current to Japan in spring, 1696. After coming back to Busan in spring 1697, he wrote ꡔPyojurok (漂舟錄)ꡕ which was a travelogue written in a government office not spontaneously but compulsorily. A party of wrecked people landed in Hokkaido where Ainus lived, and they communicated in nonverbal language at first. After they met Japanese people, they could have conversation by writing. Lee Ji-hang who was expert in writing poetry communicated with officials and monks by Chinese poetry. Even though there are not enough number of poems in an official record, ꡔPyojurok (漂舟錄)ꡕ, we can find a lot in a Japanese record, ꡔPyoryu Josun-in Lee Seon-dal Joeongsa(漂流朝鮮人李先達呈辭)ꡕ. Although there was no public interpreter among their party, one of them, Kim Baek-Sun could speak Japanese roughly. However, people in Hokkaido preferred Lee Ji-hang's poems than Kim Baek-Sun's talking. The wrecked party experienced in East Asian culture gradually. In the public record ꡔPyoryu Josun-in Lee Seon-dal Joeongsa(漂流朝鮮人李先達呈辭)ꡕ, which was written by Lee Ji-hang in Japan, we can find a lot of poems and writings. However those were not published like books of conversation between Tongsinsa(通信使) and Japanese. That's because the Japanese office did not intend publishing this record but just identify the situation. After all, we can make sure that Chinese poetry is the highest level of communication methods in East Asian culture.

7,000원

4

1682년 한일 문사 교류 담당층의 확립과 소통의 확대

구지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2집 2010.12 pp.8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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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2년 임술사행의 필담창화집을 대상으로 하여 교류 담당층이 확립되어 가는 과정을 추적하고 소통방식을 고찰함으로써 양국 문사 교류의 구체적 실상을 탐색하여 다음과 같은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일본 유력자들의 한문 문화에 대한 욕구가 양국 문사 교류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에 따라 한문 능력을 갖춘 유학자들이 번과 막부에 소속되어 필담을 대행했고, 조선 쪽에서는 제술관 · 서기 등이 응대했다. 둘째, 藩의 학문 장려에 따라 필담 주제가 확대되었다. 일본 유자층은 유교 경전 뿐 아니라 본초학을 비롯한 다양한 한문 서적을 섭렵해야 했으며,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조선 문사와의 필담 화두로 등장했다. 셋째, 민간의 일반 유자가 학연을 매개로 교류에 참여할 가능성을 보였다. 京學派를 중심으로 하는 일반 유자층이 두터워지면서, 이후 양국 문사 사이에 다양한 개인적 교류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1682년 임술 사행을 통해 양국 문사 교류 담당층이 확립되었고 필담 주제와 소통에 있어서 확대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With the pildam-changhwa-jip(bookofresponsorywritings) of the 1682 Imsul Visit as the subject of study, this paper traces the course by which the class in charge of exchanges with Joseon becomes established and considers the communication method involved, and there by investigates the specificfacts of the exchanges of literary men between the two countries and confirms the following characteristics. First, the desire of the Japanese rulers for Chinese literary culture became the starting point of the exchanges of literary men between the two countries. Accordingly, Confucian scholars with the ability to read Chinese classics were assigned to the Han(domains) and the bakufu(shogunate) and they served as proxies for the responsory writings; from the Joseon side, Jesulgwan(officials in charge of writing) and scribes wrote the replies. Second, with the encouragement of scholarship by the han, the responsory writing topics expanded. The Confucian scholar class in Japan had to bewell-read not only in the Confucian classics but also in a variety of Chinese literature including botany, and consequently, knowledge of diverse fields emerged as the talking points of the responsory writings with the Joseon men of letters. Third, the possibility of Confucian scholars in general, unaffiliated with the government, participating in exchanges based on school ties was shown. As the Confucian scholar class centered on the Capital School (京學派) became stronger, the possibility of diverse personal exchanges taking place between the literary men of the two countries was shown. Through the 1682 Imsul Visit, the class in charge of the exchanges of literary men between the two countries was established and the possibility of expansion of the responsory writing topics and communication was shown.

6,700원

5

<환처(宦妻)> 다시 읽기-여성 담론을 읽는 한 방법적 시론

박무영, 김성은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2집 2010.12 pp.11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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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처(宦妻)>는 여성 화자를 내세워 자기의 경험담을 진술하도록 하는 서술전략을 사용한 한문 단편이다. 그러나 ‘늑혼’의 형태로 실현되는 작품 속의 섹슈얼리티가 과연 여성주체에 의한 여성 섹슈얼리티의 실현인가에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이 글이 남성 작가가 남성 독자들을 위해 한문으로 번역해 놓은 것이라는 특징을 미루어, 남성 주도적 문화 내부에서 ‘여성주체’와 ‘여성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았다. 이러한 시도는 비슷한 종류의 다른 여성담론을 읽는 하나의 방법적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환처>는 겹겹의 중층구조를 이루고 있고, 여성 화자를 통해 이야기하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남성들의 성적 욕망과 언어적 충족’이라는 지점에서 만난다. 비록 여성화자가 여성의 성을 다루었을지라도 이를 말하는 여성화자는 작가의 담론권력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결국 여성의 성은 남성들만의 이야기공간과 그 권력관계 안에 포섭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 일차적으로는 남성/하층/성적 소수자의 성이 대상화되고 놀림감이 되며, 이차적으로는 여성의 성이 대상화되고 농담거리가 된다. 그 건너편 주체의 자리에는 견고하게 남성이 자리 잡고 있다. 결국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여성의 성은 엄밀하게 말해서 ‘남성이 생각하는 여성의 성’이며, 그것을 ‘말하는 목적’은 남성 자신의 언어적 쾌락을 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환처>에 등장하는 여성의 상은 ‘새로운 여성상’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이것이 ‘남성이 상상하는 새로운 여성’상이고, 따라서 ‘남성욕망의 음화’일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is a short story in Chinese writing which uses a female narrator describing her own experience. However, considering the contents that she married a monk by threatening him, it may be doubted whether the female sexuality in this story is truly realized by “female subject”. In this paper, we are going to look over how female sexuality and female subject appear on the story which wrote for male readers by a male writer. This attempt can be one methodological model on reading other female discussions. Even though this story has multi-layer structure and one female speaker, it satisfies male's sexual and linguistic desire. That is because this female narrator, who talks about female sex, is subordinated to men's conversation and power structure. In this story, sex of male/low social class/sexual minority is objectified and fooled first, and female sex is objectified and ridiculed secondly. Therefore, female images in this story is ‘what men think toward women’. Even though the type of woman character in this story was a new woman's type at that time, this can be ‘woman's type imagined by men’ and ‘indirect delivery of men's desire’ after all.

7,200원

6

조선시대 규훈서에 나타난 여성에 대한 기대와 경계

황수연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2집 2010.12 pp.143-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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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5세기부터 18세기 조선사회에서 사대부 개인이 ‘여성’을 ‘교육’하기 위해 제작한 ‘규훈서’를 대상으로 작가와 내용, 서술 방식, 기능과 역할 등을 살피기 위해 작성되었다. 예치(禮治)를 통해 가부장제 권력을 확립하고자 한 조선왕조는 여성을 교육하기 위해 중국에서 책을 수입하거나 국가에서 발간하는 일에 앞장섰다. 학자이면서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사대부 작가는 집안의 딸과 아내, 누이동생에게 유교적 덕목과 일상의 행동 지침을 제시하기 위해 규훈서를 제작하였는데 17세기와 18세기에 이르러 규훈서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여러 문체를 이용한 다수의 작품이 지어졌다. 본 연구에서는 김굉필의 규훈서를 비롯하여 이전에 소개되지 않았던 작품을 제시하였고, 개인 창작 규훈서의 등장을 기존 연구에서 밝힌 시기보다 앞선 시기로 수정하였다. 교육의 내용은 당시대가 요구하는 이념과 가치, 제도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규훈서의 내용을 살펴본 결과, 조선 초기에 비해 17,18세기에는 결혼제도의 변화로 인해 여성에게 부과되었던 책임과 의무가 무거워지며 이에 따라 규제가 강화됨으로써 규훈서의 항목도 다양해짐을 알 수 있었다. 규훈서는 분명한 목적에 의해 지어진 글이지만 작가와 대상의 개인적 처지, 상황, 시기에 따라 개성적 면모를 드러내기도 한다. 남성들은 규훈서를 통해 추상적인 담론을 일상생활에서의 구체적 실천과 연결함으로써 여성의 사고 영역을 지배하고자 하였다. 남성들은 여성에게 유순하게 가정과 제도에 적응할 것을 ‘기대’했고,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했다. 본고에서 다룬 시기 이후에 등장하는 규훈서는 17,18세기와는 다른 목적에서 제작되는데 규훈서를 사적으로 조망하는 작업을 통해 규훈서의 지속적 측면과 변화된 면모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This paper concerns about the writer, contents, the form of description, the function and role of the Kyuhunseo(閨訓書) which is written to educate the woman by the nobleman in the 15th Century to the 18th Century in the Chosun Dynasty. The Chosun Dynasty took the lead in importing the Kyuhunseo from China and in publishing to establish the patriarchal system through the courteous control by educating the woman. The nobleman who were a scholar and a head of household wrote the Kyuhunseo to suggest virtues and daily guidelines for their wives, daughters and sisters. Because there was a sharp rise in demand of Kyuhunseo, various types of writing of Kyuhunseo have increased. I suggested the new Kyuhunseo including Kim Koing Pil's which have naver been mentioned in the precedent research and changed the product time earlier. The contents of education differs by the ideology and the value and the system of the day wants. As a result of studying the Kyuhunseo, the itemes of the Kyuhunseo increased because the responsibility and the woman's bounden duty has strengthened by the change of the marriage system in the 17th Century and the 18th Century. Although the Kyuhunseo was made to appeal the clear purpose, they have distinct individuality through the writer's and the object's personal status and situations and the time. The nobleman wanted to control the woman's thought by connecting the abstract concepts to the concrete daily doing through the Kyuhunseo. The nobleman asked the woman to adopt the house and the social system amenably and stood upon their guard on the woman not to derange the social order constantly. The Kyuhunseo of the 19th Century and the 20th Century were made on the different purpose of the 15th Century and the 17th Century's, so I'm going to keep up my study to reveal the continuous and the changeable aspects by surveying the Kyuhunseo historic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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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0세기 여성 문사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여성의 사회 참여 방식 -『송설당집(松雪堂集)』과 『소파여사시집(小坡女士詩集)』을 중심으로-

강혜종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2집 2010.12 pp.173-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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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한시작가의 마지막 세대로 불리는 최송설당과 오효원은 20세기 초 다수의 시편이 수록된 시문집을 간행하고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친 여성으로 주목받았다. 이들은 전통적 가치관의 수호와 전근대적 구습의 폐기 사이의 갈등이 첨예했던 시기의 사회 구조적 변화를 겪으면서, 적극적으로 전통적 가치를 실천하면서 사회적 명망을 쌓을 수 있었다. 공공의 장에서 여성이 주체적 사회 구성원으로 ‘선언’되고, 여성의 사회적 ‘실천’이 이루어지는 분위기 속에서, 두 여성은 전통시기의 가치관에 대한 전복적인 근대성을 지향하기 보다는 유교적 가치의 수행과 능숙한 한문 실력을 바탕으로 전통시기 사회문화적 수단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근대적 여성성의 한 유형을 보여주었다. 이들에게 시문집은 자신의 삶의 궤적을 기록하고, 정체성을 구축하며, 사회적 소통의 매체로 기능했다. 최송설당과 오효원의 문집 간행은, 이전시기에 비하여 공공의 장을 구성하는 계층적 구획 느슨해지고 문집 편찬이 근대적 출판방식과 맞물리는 시대적 조류 속에서 이루어졌다. 이들은 문필활동과 사회활동을 펼친 ‘예외적 여성’이라는 시선을 받아야만 했던 시대적 한계를 겪고 있었지만, 전통시대에 비하여 여성의 진일보한 주체적 정체성을 확립하였고, 여성의 시문집이 공공의 장에서 수용되고 실천적으로 가능했다는 측면에서 후대의 여성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 모순이 개선될 수 있는 지점에 다가갔다. 또한 이들은 교육제도에 참여함으로써 기존 가치관을 재고하고 새로운 가치관의 창조를 주도할 수 있는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사회의 가부장적 시선은 여성을 남성의 기준으로 평가하면서 타자화시켜 이후 젠더문제의 숙제로 남겨졌다.
Choe Song-sul-dang(崔松雪堂) and Oh Hyo-won(吳孝媛) named last generation of Korean Chinese poetry composers, having lived from the end of nineteenth century to early twentieth century, have been focused as women who had done positive social activity and had their collections of poetry published. This study aims to explain the way of description of literary women and the women's social participation analyzing Songsuldangjip(松雪堂集) and Sopayosasijip(小坡女士詩集) which were published in early twentieth century. Having experiencing politically Japanese occupation period and culturally inter-generational conflict between traditional values and modern values, they chose to perform Confucian values rather than to be against the traditional values. Choe Song-sul-dang(崔松雪堂) and Oh Hyo-won(吳孝媛) perform Confucian values such as the thought of loyalty and filial piety, which were showed through their collections of poetry. They could read and write Chinese characters and were proficient at traditional writing which officially had been open to only men. According to their collections and other media at that time, they were described as the literary women positively, so we can infer that their ability in writing was advantageous for them to participate in society. These two women can be said to be one type of modern Korean women using their traditional writings and performing traditional values in strategic way. For them, the collections of poetry were the means to participate in society and establish their identity. Considering the way of description of them, although we can also find that they were accepted as exceptional women, it is meaningful for them to enter area only open to men before. Furthermore, contributing to founding schools, they played the role to make educational system and this can be the important step to gain upper hand to create new social values and reform unreasonable systems for women.

7,600원

8

『民俗叢談』 硏究

안제인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2집 2010.12 pp.207-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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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41~1942년에 편찬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ꡔ民俗叢談ꡕ이라는 笑話集에 대한 의미를 탐색한 글이다. ꡔ民俗叢談ꡕ은 기존의 패설집들에서 남녀의 성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가려 모은 叢集의 성격을 갖는다. 그런데 ꡔ民俗叢談ꡕ은 그 구성에 있어 4자 제목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기존 패설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데 비해, 논평부를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패설의 전통을 벗어난 이중 구조를 지닌다. 이 이유에 대하여는 ꡔ民俗叢談ꡕ이 생성된 시기가 식민지 시기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통 시대의 패설집들은 그 편찬 목적을 문학적 효용에 두었다. 그러나 ꡔ民俗叢談ꡕ이 생성된 시기는 식민지 시기로 민족적 정체성 확립이 요구되는 때였다. 이 점이 바로 ꡔ民俗叢談ꡕ에서 기존 패설의 논평부가 누락된 이유이다. ꡔ民俗叢談ꡕ이 ‘破睡’ 형태의 제목을 취하지 않고 제목을 ‘民俗’이라 한 것은 이를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ꡔ民俗叢談ꡕ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전통의 패설집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첫째는 수록된 이야기들이 대체로 짧은 양으로 강한 웃음을 유발하고 있으며, 둘째는 ‘方言’의 소개를 통해 민족적 정체성 확립을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글은 ꡔ民俗叢談ꡕ이 기존의 패설집에서는 보이지 않는 이런 몇 가지 특징에 주목하여 그 의의를 살펴보았다.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investigate meanings of a So Dam Jib (jokebook) so called which is estimated to be published between 1941-1942. has a characteristic of collection that gathered stories particularly related to sex between men and women among previous folktale collections. However, while succeeds tradition of previous folktale stories by maintaining a 4 characters title in its composition, it also has a dual structure which breaks tradition of previous folktale stories by excluding critical parts. For this reason, we have to focus on the fact that the period when was created was a colonial period. Folktale stories in tradition period had their publishing purpose on literary purpose. However, when was published, it was a colonial period that required establishment of national identity. This is why critical part was omitted in unlike previous folktale stories. It reflects such fact by not adopting a title in a form of ‘Pa Su’ in but by naming its title with ‘Min Sok : folk.’ shows big differences with traditional folktale collections in two distinctive aspects. First, collected stories are short and produce strong laughter in most cases; second, it induces establishment of national identity by introducing ‘Bang Eun : dialect.’ This thesis paid attention and investigated its meaning in above a few characteristics of which were not shown in the previous folktale collections.

7,000원

9

구활자본 <적성의전>의 두 연원에 대하여

유광수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2집 2010.12 pp.237-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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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적성의전>의 여러 구활자본 텍스트들과 방각본, 세책본, 필사본들을 상호 비교ㆍ대조ㆍ검토하여, 구활자본 텍스트의 연원을 추적하였다. 그 결과 <적성의전> 구활자본에는 두 연원이 있고, 이를 각기 ‘경판본 계열’과 ‘세책본 계열’로 부를 수 있음을 알았다. ‘경판본 계열’에는 세창서관본(1915.5), 영창서관본(1917)이 있다. 세창서관본은 안성판19장본을 대본으로 조판한 것으로 몇몇 어휘의 오류 등이 있으나 충실히 안성판19장본을 따랐다. 영창서관본은 세창서관본을 대상으로 오류를 수정하려 노력한 텍스트로 결국 안성판19장본과 동일한 내용이다. ‘세책본 계열’에는 한성서관본(1915.8), 박문서관본(1917), 회동서관본(1926), 세창서관본(1962)이 있다. 한성서관본은 석 달 먼저 출현한 세창서관본을 의식해 의도적으로 다른 텍스트를 대본으로 삼고자 했는데, 그것이 바로 향목동 세책본이었다. 한성서관본은 세책본을 대본으로 충실히 조판하려 했지만, 세책본 2권의 19장과 20장을 뒤바꿔 조판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박문서관본은 그런 한성서관본을 따르지 않고, 다시 세책본을 대상으로 온전히 조판한 이본이다. 회동서관본이나 세창서관본(1962)은 모두 이런 박문서관본을 따랐다. 이렇게 구활자본의 연원이 두 계열로 나뉠 수 있다는 점이나, 그것이 각기 대중적 텍스트였던 방각본과 세책본이었다는 사실, 또 1915년 즈음에는 출판사마다 경쟁적으로 의미 있는 텍스트를 제작하려 했던 사실 등은 조선 후기 고소설의 대중적 상황을 가늠하는데 중요한 지점이다. 앞으로 이런 점을 다른 고소설 텍스트의 경우까지 확대해 분석할 경우, 본고의 논의와 결과가 더 분명해질 것으로 생각된다.
This Study is about the origin of printed books of . has many diverse printed books. That books are different each other. I studied the origin of that books, because a printed book is very important to make popularity clear in the eariy 20th century. A result of my study, there are two different origins about printed books of . One origin is called ‘GyungPan(京板) group’ and the other is called ‘SeChek(貰冊) group’. GyungPan are Xerographic texts published in Seoul and nearby Seoul like a AnnSung(安城), and SeChek are transcribed texts for lending to many people in Seoul. GyungPan group includes the prints of SeChangSerGhwan(世昌書館) and YoungChangSerGhwan(永昌書館). The origin of this group is a AnnSungPhan(安城板). SeChek group includes the prints of HanSungSerGhwan(漢城書館), ParkMunSer- Ghwan(博文書館), HeoDongSerGhwan(匯東書館) and the other books of SeChangSer- Ghwan(世昌書館) published in 1962. The origin of this group is a SeChek written in HayangMokDong(香木洞) for lending to many people. The foregoing study will be investigated on the original text and revealed many various variant's states including any other novels' texts. So, the foregoing study will make my results of this study cl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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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각본 『수호지(水滸誌)』의 판본과 성격에 대한 연구

유춘동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2집 2010.12 pp.27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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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다루려는 것은 방각본으로 간행된 ꡔ수호지ꡕ이다. 학계에 알려진 방각본 ꡔ수호지ꡕ는 “경신츈(庚申孟春)”의 간기(刊記)를 지닌 <2권2책본>과 간기가 없는 <3권3책본>이 있다. 그러나 두 종 모두 연구자들이 검토하기 어려웠다. <2권2책본>은 원본이 프랑스 파리 국립동양어대학교에 소장되어 있기 때문에 국내에는 소개되지 못했고, <3권3책본>은 영인(影印)되어 일찍이 학계에 알려졌지만 영인의 상태가 좋지 못해 판독이 거의 불가능했다. 이처럼 방각본으로 간행된 ꡔ수호지ꡕ는 원본에 접근하기 어려운 문제에다가 이미 소개된 판본조차 읽어내기가 어려워, 두 본의 관계나 판본이 지닌 특성에 대해서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다음과 같이 논의를 진행하였다. 첫째, 먼저 실본 조사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던 방각본 ꡔ수호지ꡕ의 판본을 개관하고, 판본 간의 관계, 판본의 추가 간행 문제를 살펴보았다. 논의를 정리해 보면, 방각본 ꡔ수호지ꡕ는 경판본 <2권2책본>과 <3권3책본> 두 종으로 나뉘는데, <3권3책본>은 경판본 <2권2책본>을 적절히 <3권3책본>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안성판본이 아닌 경판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경판본 <2권2책본>은 중국원본 ꡔ수호지ꡕ와 대조해보았을 때, 전체 분량 중에서 53회에서 끝이 나는 점이라든가, “하회 분셕라”라는 마지막 구절을 통하여 추가로 간행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신문관(新文館)에서 발행한 활판본 ꡔ수호지ꡕ의 간행사를 통해서 <2권2책본> 이외에는 더 이상 간행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둘째, 방각본 ꡔ수호지ꡕ가 지닌 번역본으로서의 특징을 중국 원본과 대조하여 살펴보았다. 방각본 ꡔ수호지ꡕ는 관련 기록을 통해서 볼 때, 중국본 ꡔ충의수호지ꡕ를 저본으로 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두 본을 면밀히 대조하면서 살펴본 결과, 방각본 ꡔ수호지ꡕ는 원본의 120회 내용 중에서 대략 53회까지의 내용을 축약해 놓았다. 원본에 있던 시(詩), 사(詞), 평어(評語), 삽입시(揷入詩), 편지, 상소문 등은 모두 생략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경우 비중을 감안하여 일부만 등장시켰고, 인물의 이름 또한 임의로 만들기도 했다. 번역의 양상은 원본을 크게 삭제한 부분과 원분을 비교적 충실하게 반영한 부분이 주목된다. 전자는 서사전개를 늦추는 경우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관군들을 죽이는 내용에서, 후자는 무송, 이규, 석수와 양웅의 이야기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무송의 일화이면서 독립적으로도 볼 수 있는 ‘반금련과 서문경의 이야기’는 방각본에서 자세하게 기술해 놓았다. 이러한 논의를 통하여 방각본 ꡔ수호지ꡕ의 전반적인 성격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서 방각본 ꡔ수호지ꡕ의 성격과 번역본으로서의 특성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 중국 장편 연의소설이 조선에서 방각본이라는 상업출판물로 만들어 졌을 때, 어떠한 경향과 특성을 보여주는지도 확인해 보았다.
本文考述了以坊刻本刊行的ꡔ水滸誌ꡕ. 學術界現知坊刻本ꡔ水滸誌ꡕ有兩種, 一種是印有“庚申孟春”刊記的<2卷2冊本>, 一種是沒有刊記的<3卷3冊本>. 但是這兩種版本, 研究者都很難接觸. 因爲<2卷2冊本>原本所藏在法國巴黎國立東洋語大學, 國內沒有介紹, <3卷3冊本>雖然已經影印出版, 但影印狀態很不好, 字跡幾乎無法辨認. 因此對這兩種坊刻本ꡔ水滸誌ꡕ的相關關系, 版本特征等問題至今還沒有研究成果. 本文從這一問題出發, 考察了以下事項。 第一, 首先通過實本調查, 考察了坊刻本ꡔ水滸誌ꡕ的版本概況, 版本刊行關系, 版本後繼刊行的問題. 總而言之, 坊刻本ꡔ水滸誌ꡕ分爲京版本<2卷2冊本>和<3卷3冊本>兩種, <3卷3冊本>是把京版<2卷2冊本>適當改變而成的, 因此它不是安城板本, 而應看作是京版本. 京版<2卷2冊本>和中國原本ꡔ水滸誌ꡕ對照, 它只記載了中國原本的1至53回部分就結束, 並有“下回分解”的字樣, 由此可以推測可能有後繼出版.但是看新文館發行的活字版ꡔ水滸誌ꡕ的刊行詞, 可知除了<2卷2冊>之外, 再沒有刊行. 第二, 與中國原本對照, 考察了坊刻本ꡔ水滸誌ꡕ具有的翻譯本的特點. 通過有關記錄, 坊刻本ꡔ水滸誌ꡕ是以中國版ꡔ忠義水滸誌ꡕ爲底本的可能性很大. 因此仔細對照這兩個版本的結果, 坊刻本ꡔ水滸誌ꡕ是把中國版原本120回內容中的1到53回的內容縮約而成. 原本中的詩, 詞, 評語, 插入詩, 書信, 上疏文等都省略掉了. 出場人物也酌其比重, 有些人物沒有登場, 人物的名稱也任意修改制造. 翻譯特點有兩點, 大刀闊斧刪掉原本內容的部分和忠實地翻譯原本內容的部分. 前者是在敘事緩慢, 有倫理問題和殺官軍的部分上進行的, 後者是在武松, 李逵, 石秀, 楊雄等人物的故事上進行的. 尤其把武松的故事, 即又可當作獨立故事的“潘金蓮和西門慶的故事”, 坊刻本詳細的記述了這部分. 通過這些考察, 考述了坊刻本ꡔ水滸誌ꡕ的全面特征. 不僅又確認了坊刻本ꡔ水滸誌ꡕ的特征和作爲翻譯本的特點,也確認了中國長篇演繹小說在朝鮮制作成坊刻本形式的商業出版物的時候, 是具有怎樣的傾向和特點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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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판 춘향전 Printemps Parfumé의 개작양상과 후대적 변모

전상욱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2집 2010.12 pp.307-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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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은 조선후기 이후 지금까지 한국의 고전소설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외국인들의 관심을 받아왔고, 19세기 말에 벌써 많은 외국어로 번역된 작품들이 출판되었다. 1882년 일본인 나카라이 도스이(半井桃水)가 ꡔ오사카 아사히신문(大阪朝日新聞)ꡕ에 연재한 일본어판 「鷄林情話春香傳」, 1889년 미국의 선교사 알렌(H.N. Allen)이 Korean Tales라는 책에 수록한 영어판 ‘Chun Yang, the faithful dancing-girl wife’, 1892년 프랑스 소설가 로니(J.-H. Rosny)가 번역한 프랑스판 Printemps Parfumé, 1895년 독일인 아르노우스(H.G. Arnous)가 번역한 독일어판 ‘Chun Yang Ye, die treue Tänzerin’ 같은 번역본이 19세기에 번역된 춘향전 외국어본들이다. 본고에서는 이 가운데 프랑스판 춘향전 Printemps Parfumé에 논의를 집중해서, 19세기 조선에서 프랑스로 건너간 <춘향전>이 그곳에서 어떻게 변화했고, 그 변화된 프랑스판 춘향전이 이후 또 어떻게 다른 모습으로 변모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그 결과 프랑스판 춘향전은 한국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 홍종우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 소설가 로니에 의해 번역되었는데, 번역의 모본이 된 텍스트는 경판 23장본 <춘향전>을 비롯한 경판계열 춘향전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일반적인 <춘향전>과 달리 춘향의 신분을 기생이 아닌 평민으로 설정하는 변화를 시도함으로써, 여장(女裝)화소가 나타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방자와 노파의 역할이 커지게 되었다. 그리고 번역의 한계로 말미암아 기쁨과 슬픔을 극대화하는 노래나 사설이 생략되고, 줄거리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는 양상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프랑스판 춘향전은 1892년 출판된 이래, 모나코에서 발레 <사랑의 시련>으로, 베트남에서 <춘향낭자> 등으로 또다시 변모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프랑스판 춘향전은 <춘향전>이 우리의 손을 떠나 외국으로 전파되면서 어떠한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고,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모델을 제시해 준다고 하겠다.
Chunhyang-jeon is the most famous and representative work in the Korean old novels from the late Choseon period to now. Therefore not only Korean but also foreigners have shown an interest in this story. As this reason, Chunhyang-jeon has already been translated into foreign languages in the late 19th century. For example, There are Japanese edition ꡔ鷄林情話春香傳ꡕ(1882, 半井桃水), English edition ‘Chun Yang, the faithful dancing-girl wife’(1889, H.N. Allen), French edition Printemps Parfumé(1892, J.-H. Rosny), Deutsche edition ‘Chun Yang Ye, die treue Tänzerin’(1895, H.G. Arnous). Among these translations, this essay focused on the French edition. French edition Chunhyang-jeon Printemps Parfumé was translated by J.-H. Rosny who is a French famous novelist in its day. He recieved help from Hong Jong-u(洪鍾宇) who is a first Korean student in France. Printemps Parfumé was adapted for the French style, so heroine Chunhyang's social position was set to not Gisaeng(妓生) but the common people. As a result, hero Lee(李道令) had no choice to dress up as a woman for the meeting. For this distinctive motif, Bangja(房子) and the old woman's role grew in the work. Finally, Printemps Parfumé is translated the Korean old novel Chunhyang-jeon into French language, in the process of translation the original work is tansformed into French style partially. Since Printemps Parfumé is publicated in France Paris 1892, this work is spread to another countries. Printemps Parfumé is based on the Ballet de Monte Carlo's in Monaco 1936, and the Tissot's textbook version in Vietnam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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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설화에 나타난 웃음의 의미와 기능

이강엽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2집 2010.12 pp.337-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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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笑話인 바보 설화의 웃음의 의미와 기능에 대해 살핀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설화에서 바보를 보는 시각에 따라 의미를 추출해 보고, 실제 구연현장 자료를 토대로 그 웃음의 기능에 대해 탐구했다. 첫째, 바보 인물이나 바보짓을 보는 시각은 크게 ‘텍스트의 안, 텍스트와 세계, 구연자와 청중’에서 살폈다. 먼저 텍스트 안에서의 문제로, 바보 인물에 대한 조롱과 동정으로 나뉜다. 다음으로, 텍스트 속에서 펼쳐지는 세상과 텍스트 바깥의 실제 세상과의 조응 문제이다. 어떠한 바보짓은 그럴법함을 띠면서 가볍게 웃어넘기거나 실제 삶에서의 문제를 노정하거나 교정하려는 의도를 끌어낼법한 것이지만, 어떤 바보짓은 실제 현실에서는 전혀 일어날 수 없는 과장과 허풍에 의해 그저 웃음을 터뜨리는 데 머물고 마는 것도 있다. 끝으로, 텍스트를 구연하는 현장에서 구연자와 수용자가 맺는 관계이다. 여기에서는 구연자와 청중 간의 소통이 중요한 문제로 한편으로는 잘 모르던 이야기가 빚어내는 돌발이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잘 아는 이야기를 함께 공감하며 적절한 흉내나 몸동작 등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둘째, 바보설화 웃음의 의미와 기능에 대해 살폈는데, 바보와 상대자와의 관계에서 ‘거리 넓히기와 좁히기’, 텍스트와 세계의 관계에서 ‘현실과 공상을 넘나들기’, 구연자와 수용자의 관계에서 ‘웃음을 통한 상호 소통’으로 정리되었다. 먼저, ‘거리 좁히기와 거리 넓히기’는 웃음에 꼭 필요한 거리에 대한 이해의 문제이다. 이는 笑話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문제로 귀결되어, 경멸과 동정으로 갈린다. 다음으로, ‘현실과 공상을 넘나들기’는 바보설화의 웃음이 때로는 현실적인 내용에 기인하지만 때로는 전혀 있을법하지 않은 공상의 영역에 닿아있음을 의미한다. 끝으로, ‘웃음을 통한 상호 소통’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구연자가 탁월한 언어 구사 능력을 통해 구연할 때, 또 청중의 반응이 적극적일 때 웃음의 효과가 커지는 경우이다.
This is a study on the significance and functions of laughter implicated in the fool stories, a genre of orally transmitted folklore tales in Korea. To that end, this study first sought to analyze significance of laughter in fool stories by the angles on fool. I inspect the angles through ‘in text, text and world, story-teller and audience’ First of all, in text, the points of view to fool are divided into ridicule and sympathy. Next, in text and world, a correspondence between the world and the text is important. Last, the communication between the storyteller and the audience is important in the field of storytelling. Second, this study also explores the significance and functions of laughter in the fool stories. First of all, laughter also directly hinges upon understanding, with the ‘extendability and reduction of distance’. generated by laughter. Laughter depends on how the listener views or thinks of the character generating laughter in the orally told stories. Next, ‘The crossing of reality and fantasy’ means that fool stories sometimes contains the real content, sometimes unrealistic content. Last, ‘Interact with a laughter’ is an indispensable element in these stories by creating the dynamism of narration. When narrator tells these stories with a superior linguistic fluency and when the audiences respond to the stories actively, laughter is multi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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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담론의 연행과 젠더화 전략

김영희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2집 2010.12 pp.369-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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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성적(性的) 담론으로 기능하는 구전이야기 연행을 분석하여, 이와 같은 성적 담론의 연행이 성적 표상으로서의 섹슈얼리티를 규제하고 특정 젠더 경계를 자연화․규범화함으로써 특수하게 범주화된 젠더 규범과 질서에 부합하는 젠더화된(gendered) 주체를 생산해내는 효과를 발휘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성적(性的) 담론의 층위는 다양하지만 여기서 성적 담론으로 범주화한 구전이야기는 일반적으로 생물학적 성(性, sex)으로 분류되는 대상 외에, 신체 내 부위를 포괄하는 성적 표상과 성적 행위 및 욕망을 포함하는 섹슈얼리티(sexuality), 그리고 사회적․담론적으로 구성되는 젠더(gender) 권력과 규범을 다루는 영역까지 포괄한다. 성적 담론으로 기능하는 구전이야기를 연행하는 ‘여성’ 주체는 담론의 효과로 구현되는 젠더화 전략에 자발적으로 순응하면서 동시에 이로부터 탈주하는 복종과 불복종의 운동을 반복한다. 따라서 성적 담론을 통해 구성되는 ‘여성’ 주체는 필연적으로 이중적이며 분열적일 수밖에 없다. ‘남성’ 주체의 우울이나 불안, 혹은 그것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일정한 혐의를 자신의 것으로 그대로 답습하는 수행을 반복하면서, 이와 같은 반복을 통해 조금씩 ‘여성’ 주체 스스로의 상실을 애도하는 연행으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성적 담론의 연행이 ‘여성’ 섹슈얼리티의 부정과 혐오, 성적 욕망의 부인과 결핍에의 고착을 정체성의 내용으로 반복 수행할 때 젠더 주체는 우울증적 주체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여성’ 주체의 구전이야기 연행에서 성적 담론의 우울증적 효과를 벗어나는 애도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여성’ 연행자들만으로 구성된 수평적 연행의 틀 내에서 성적 담론의 연행을 통해 ‘여성적 표상’과 ‘여성의 성적 욕망’, 그리고 ‘성적 욕망의 실현 의지’에 대한 긍정과 적극적 의미 부여가 시도되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 주체의 ‘거세 콤플렉스’ 극복을 암시하는 동시에, 젠더화된 주체를 억압하는 젠더 경계와 젠더 규범의 동요를 징후적으로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This study is intended to analyze performance of the oral-narrative dealing with the sexual imagination and desire. As a result of the analysis, we can ascertain facts that the performance effects producing the gendered subject by naturalizing gender category and gender norm, and regulating the gendered body and sexuality. In this study, the oral narratives categorized as sexual discourse will include not only the narratives dealing with biological sex generally, but also the narratives about the sexuality meaning sexual behaviour and desire, and the narratives covering the gender norms and power to be constructed on social discourse. Female subject who perform the oral-narratives is participating on her own initiative in the gendered strategy to be given body by effect of the discourse and is flighting from it at the same time. Therefore the female subject constructed by the sexual discourse, necessarily, are characterized by duplicity. Because female subject accepting the suspicion of male subject's melancholy and anxiety, or female sexuality to be made for protecting the melancholy and the anxiety, repetitively performs the oral-narratives, and through this repetitiveness moves gradually to the performance of mourning for loss of female subject. The gendered subject can not escape from the subject suffering from the depression, so long as the performance of sexual discourse repeatedly is connected with the negation and the disgust of female sexuality, and denial of sexual desire. But it is possible to detect potential for mourning to escape from the depression in the perfor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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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가와 한시의 장르적 상보 관계 고찰

김혜은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2집 2010.12 pp.423-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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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에서 우리말 시가와 한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삼국시대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한 한시는 격조 있는 시문학으로 자리 잡았고, 이에 대하여 우리말 노래에 대한 갈증을 한자를 차용하여 향가라는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 냄으로써 해소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시-향가․향가-한시가 원텍스트와 2차텍스트(번역작)의 관계로 맺어진 작품들이 생성되었다. 이것은 당대에 향유되었던 장르의 상보적 관계 속에서 생겨난 현상으로, 역시(譯詩)와 역가(譯歌)가 시가문학의 지평에서 차지하고 있는 의의이기도 하다. 본고에서는 향가와 한시가 역시와 역가의 관계로 맺어진 세 텍스트를 설정하였다. 신라 향가인 월명사의 <도솔가(兜率歌)>와 이것을 한역한 일연의 한역시, 고려 때 균여의 향가 「보현시원가(普賢十願歌)」와 최행귀의 한역시 「보현시원송(普賢十願頌)」, 마지막으로 고려 예종의 한시와 역가 관계에 있는 <도이장가(悼二將歌)>가 그것이다. 이 세 텍스트는 각각 ‘신라-고려 초-고려 중기’라는 시기적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이들 작품의 시대적 추이를 짚어보며, 각각이 지니고 있는 동시대의 문학관 내지는 번역관을 살펴보았다. <도솔가>의 7언 절구의 한역시는 변괴를 사라지게 하고자 했던 가의(歌意)를 좀 더 깊이 있게 읊었고, 「보현시원가」를 한역한 「보현시원송」에는 최행귀가 국외로는 당나라 사람들에게 보현보살의 깊은 뜻을 알리고, 국내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볍게 부르고 마는 노래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뚜렷한 의도와 목적 있었으며, 예종은 자신의 심정을 먼저 한시로 풀었지만, 남은 한을 풀지 못해 향가 <도이장가>를 짓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본고는 번역작품을 단순히 이중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등장하게 되는 필연적인 결과로 이해하여 2차 텍스트의 가치를 절하하는 시각을 비판함과 동시에 각 작품이 번역되는 양상을 장르간 보완성을 다양한 측면에서 다뤄봄으로써 신라~고려시대 번역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의를 밝히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In Korean classical literature, Korean poetry and Chinese poetry are closely related with each other. Chinese poetry which made rapid progress after the Three Kingdom Period became a refined literature of poetry. In those days people created a new style of poetry hyang-ga(鄕歌, old Korean folk songs) by borrowing words from Chinese characters, in order to quench their thirst on Korean poetry. Under these circumstances, Chinese poetry and hyang ga which are in the relation of the original text and translation were created and vice versa. This is a phenomenon which resulted from complementary features of genres. Further, it shows an importance which yeok-shi(譯詩, translated Chinese poetry) and yeok-ga.(譯歌, translated hayng-ga) have in literature of poetry. This research adopted as texts three hayng-ga and three Chinese poems which are in the relation of yeok-shi and yeok-ga: (1) Weol Myeong Sa's (月明寺) , hyang-ga in the Shilla Dynasty, and Il-Yeon's(一然) Chinese poem translation of it, (2) Kyun-Yeo's(均如) 「Bohyeonshiweonga(普賢十願歌)], hyang-ga in Koryo Dynasty, and Haeng-Guy Choi's 「Bohyeonshiweonsong(普賢十願頌)」, Chinese poem translation of it, and (3) a Chinese poem written by King Yeyjong in Goryo Dynasty and 「Doijangga(悼二將歌)」, his hyang-ga translation of it. The above three texts show the difference of the times the Shilla Dynasty, the early Goryo Dynasty and the middle of the Goryo Dynasty, respectively. This research looked into the temporal development of the three texts and examined viewpoints of literary and translation of the respective times which were drawn from these texts. These viewpoints are as follows. First, the Chinese poem translation chileonjeolgu (七言絶句, a quatrain with seven Chinese characters in each line) of hyag-ga expressed more deeply a poetic turn of mind which tried to eliminate an extraordinary disaster. Second, Haeng-Guy Choi, who wrote 「Bohyeonshiweonsong(普賢十願頌)」, had an obvious intention and purpose to introduce bohyeonbosal's(普賢菩薩, Buddhist saint Bohyeon) profound meaning to Tang's people internationally and to hope that Korean people would not neglect the meaning domestically. Finally, King Yeyjong portrayed his feelings through the Chinese poem and then created 「Doijangga(悼二將歌)」 to resolve his deep resentment that he did not fully express himself in the Chinese poem. In conclusion, this research criticized viewpoints from which translated poems are understood as an inevitable consequence and devalued because two languages were simply used. Further, this research attempted to make clear the importance of translated poems of the Shilla Dynasty to the Goryo Dynasty by discussing each of the translations from various angles (e.g. supplementation of genre,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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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에서 승려 형상화의 문화적 의미

허왕욱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2집 2010.12 pp.453-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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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나 한시의 창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승려들이 시조 창작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승려가 등장하는 작품의 양이 적지 않고, 이러한 시조 작품의 향유 정도는 높은 수준이다. 승려 스스로 자신의 처지나 심회를 표현하지 않은 상태에서 승려를 바라보는 제3자의 ‘시선’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승려가 등장하는 시조에 나타나는 시선에 대한 기존의 견해는 ‘타락한 승려와 불교 사회에 대한 풍자’로 요약된다. 이와 관련하여 창작과 향유의 과정에 관련한 시선들을 현실적 맥락에서 꼼꼼하게 살펴보아야 시선의 성격을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시조의 ‘시선’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통해 시조 문학의 문화적 성격에 대해 이해하는 기초를 마련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이 글은 조선시대에 찬집된 주요 가집을 통해 승려가 등장하는 시조 작품들에서 승(僧) 이미지를 찾아 읽으면서 시조가 당대의 사회와 문화를 어떻게 그려나갔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창작과 향유에 참여한 주체들의 인식과 욕망을 어떻게 담아냈는지 살펴보고자 했다. 시조에 나타나는 승(僧) 이미지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선승으로서의 이미지이고, 다른 하나는 속화된 승려로서의 이미지이다. 앞의 경우는 주로 유명 작가의 평시조에서 나타나고, 뒤의 것은 대부분 작가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사설시조에서 나타난다. 향유의 차원에서 보면, 속화된 승 이미지를 담은 작품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주조를 이루게 되고, 선행 연구들도 대부분 이러한 작품에 집중되어 있다. 속화된 승려 이미지를 담은 사설시조의 표현에 주목해 볼 때, 대화체의 사용, 묘사의 사실성, 작품의 이야기 구조, 의성어와 의태어를 통한 분위기 표현 등은 다른 양식에서도 사용된 조선후기 민중의 언어 표현에 가깝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속화된 승 이미지를 담은 사설시조가 평민층의 목소리에 가깝게 접근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선’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하여 조선 후기 승려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승려들이 비승비속(非僧非俗)의 상태에 놓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배층은 승려의 속화를 사회 문제로 인식하기보다 승려의 속화에 일정한 이득을 얻고 있었고, 국가적으로도 승려들의 양민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홀로 지내는 여인들도 승려의 속화를 기대하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수도(修道)의 자리에서 벗어나 진세(塵世)로 향한 승려의 발길을 지켜본 이들은 평민층이거나 이들과 가까운 계층의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들의 시선에 비친 승려들은 현실적인 삶의 조건에 따라 움직이는 속화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시선은 대상을 공격적으로 비판하고 경계하는 대신, 이전에는 접근하기 어려웠던 세계를 문학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정서적인 소통을 시도한 것이다. 이 시선에 포함된 여성 화자의 경우에는 사회 제도가 부여한 질곡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성적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계기로써 승려를 바라보기도 하였다. 성에 대한 여성 화자의 적극적인 관심 표명이 이루어진 점도 시조 문학이 보여주는 풍속도(風俗圖)의 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조선 시대 시조 문학은 풍속의 충실한 재연이라는 차원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본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ad the images of the Buddhists in Sijo written in Joseon Dynasty. Although the Buddhists didn't write Sijo works, the images of the Buddhists were expressed in Sijo variously. It is important who looks the Buddhists in Sijo works, because the aspects of what kinds of images are decided according to observer's eyes. Generally, the holy images of the Buddhists were showed in Sijo. But the love affairs of the Buddhists and women were expressed in Saseol-Sijo. Most of preceding studies have focused on the love affairs. They have regarded love affairs with the Buddhist and women as unsound(or corrupted) things. And they understood that attitudes appeared in Saseol-Sijo which described the love affairs of the Buddhist and women were satires(or offensive criticisms). This study focused on attitudes of a poetic speakers(or viewpoints of observers), situations of the Buddhist, and expressive usages, etc. Through this study process, poetic speakers(or viewpoints of observers) expressed not a negative criticism on the Buddhist, but a sexual desire of women themselves. This study found that situations of the Buddhist were very poor. The Buddhist were mobilized in building castles and producing enormous amount of paper, and they had to bear a heavy burden offered by officials. A government official hoped that the Buddhist priests would become a common people. In addition, this study examined that expressive usages written in Sijo contained narrative conventions used by lower people. In conclusion, this study identified that Sijo works which described situations of the Buddhist had portrayed faces and desires of lower people in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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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로서 가사의 본모습 찾기

윤덕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2집 2010.12 pp.483-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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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가 노래라는 명제를 확인하기 위하여 향유 당대의 사례를 검증하고 근래의 연구 시각- 특히 장르론과 관련된 세부 사항들을 교정해보았다. 담헌 홍대용은 18세기 시가사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 이의 가사에 대한 인식과 직접 가사를 짓는 정황을 통하여 가사가 즉발적인 감흥에 의지하는 노래로서의 성격을 지님을 확인하였다. 가사 장르론의 혼잡은 원래 노래로서 인식되던 대상을 다르게 규정함으로써 일어난 것인데, 이를 바로 잡는 일은 노래의 범주 설정을 다시 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했다. 노래는 반드시 악곡을 수반하는 정격 가악을 지칭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감흥이 실린 상태의 표출 행위- 낭음이나 또는 낭독(소설 같은 서사물을 대상으로 할 경우)까지 아우르는- 전반을 포괄할 수 있다. 운문으로 들어나는 모습이 노래인 증좌라고 할 때, 노래이어서 운문이냐, 아니면 운문이어서 노래이냐 라는 선후 관계도 노래를 어디까지 보느냐에 따라 손쉽게 가려진다. 우리 시가의 긴 노래 가운데에는 산문적인 요소가 다대하다. 장편 악장, 서사무가, 그리고 소설 낭송(송서)에 이르기 까지 줄거리나 서술 방식에 서사성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노래라고 부르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이들을 짓고 즐기는 과정에는 짧은 노래에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감흥의 유출 경로가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같은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그를 가사로 노래할 경우에는 이지적인 거리가 아니라 감성적인 동화가 개재한다. 홍대용은 이런 상태를 “미친” -곧 이성적 제어를 벗어나 정신의 통합 상태에 이른 것으로 인식하였다.
In this survey, I have verified the exemplars of entertaining GASA works at the contemporaly years of it's production and have corrected the past views on GASA's genre. The main exemplar is HONG DAE-YONG's who travelled China in the year of 1765, and sang the works of GASA as he past across the borderline of the YALU river. He called this song as “Mad song” which means the sprit's integration over the reason's control. The complication of GASA's genre theories has been arisen through the regulation of the song's boundary in incorrect way. GASA's original meaning is the words of the song. Although that words are long enough for the prose works, those are only the song's words as long as those are sung. The condition that GASA's works should be sung makes the propsition that “GASA is one kind of song” unchangeable. Korean old songs have various kinds of performing ways- singing, reciting, and dictating. Many Korean old songs have the musical scores which are performed with various musical instruments. In this case, we need not hesitate to call that performances as songs. But, in many cases the songs have not any score and are performed without any instrument. They are only recited with a certain rythme, which has the changing tones-high, even, low. Koreans have named them songs, and their naming of song have been extended to the dictating of the works in prose. The dictation of the novel had some rhythmical patterns similar to the reciting. SONGSEO( the dictating of the novel) is the one kind of song in Korean old song's convention. I think, the resolution in which genre GASA belongs is not important to clarify the GASA's essential character. The more important thing is the way of performing GASA's works and the entertainer's reception of GASA genre. And I think that GASA's performing belongs to the song, and the length of works is not necessary condition for determining their gen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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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문학의 향유 전통과 현대적 계승

최혜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2집 2010.12 pp.515-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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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현대에도 지속적으로 향유되고 창작되고 있는 ‘가사’를 향유전통과 현대적 계승의 측면에서 고찰한 것이다. 이를 위해 가사의 향유 전통을 다면적으로 살피고 현재에 계승되고 있는 모습도 다양하게 살펴보았다. 먼저 가사 향유의 전통을 가사의 향유 주체, 향유 방식, 향유 공간, 향유 목적, 향유 내용으로 나누어 살폈다. 현대적 계승의 측면에서는 자료의 발굴과 보존, 창작, 문학교육, 연행적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가사 문학이 현대적으로 수용되고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가사는 전통문화의 전승, 혹은 지역콘텐츠로서의 개발을 위해서도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는 가사의 율격적 특성과 복합 갈래적 특성이 지금도 경쟁력을 가지고 유의미하게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가사의 현대적 계승 형태와 발전 가능성을 타진하고 우리 문학의 전통을 새로운 시대에 맞게 향유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 가사는 사라져가는 장르가 아니라 되살아나는 장르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내적 정서를 가장 적확하게 표현해주는 전통적인 자질을 가사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우리들에게는 바로 가사의 문학적 자질이 필요하다. 그러한 점에서 가사의 현대적 계승이 올바르게 이루어지도록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This study considers that Gasa is still a creative enjoyment. For this purpose I investigated how traditional ‘Gasa’ has succeeded in the present. First, The enjoyment tradition of Gasa is divided into subtopics of the Enjoyment, Enjoyment way, Enjoyment space and Enjoyment purposes. Second, In terms of modern succession, Gasa is divided into the excavation and preservation of data, creation, literature education and performance. It was found Gasa-literature is accommodated and be used in contemporary literature. Gasa has the value for of traditional cultural tradition, and is even important to the development as regional literature. Because Gasa has rhyme characteristics and complex nature of genre. Gasa has rhyme characteristics and complex nature of genre. Therefore we need a preparation for Gasa's modern succession, development and enjoyment for our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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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대학의 ‘국어국문학’ 과목 편제와 ‘고전강독’ 강좌의 탄생

최기숙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2집 2010.12 pp.547-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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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1950년대 대학의 국어국문학과에서 학과목이 편제되고 세부 전공으로서의 ‘고전 문학’ 과목이 배치되는 과정에서 ‘고전 읽기’를 둘러싼 ‘전공 학문’으로서의 특성이 구축되는 과정을 해명하고, 국문학 내부에서 ‘현대문학 연구’와 구분되는 ‘고전문학’의 배타적 정체성이 형성되는 계기에 관한 역사ㆍ사회적 맥락을 규명하고자 했다. 식민지 시기 東京帝大의 ‘국문학’ 강좌에는 ‘강독’ 과목이 편제되지 않고 주로 분석적 ‘연구’에 집중된 데 비해, 경성제대의 문학 강좌구성에는 별도로 ‘강독’이 배치됨으로써 일본문학 및 조선문학에 대한 원전 읽기를 주요한 강의 내용으로 강조하고 있었다. 원전 강독 강좌는 현재도 한국 대학의 국어국문학 내에 편제된 고전문학 강좌 구성의 주요한 영역으로 배치되어 있다. 식민지시기에 경성제대에서 ‘일본문학’을 대상으로 한 ‘국문학’의 개념은 ‘조선어조선문학’의 과목 편성과 대응 관계를 갖고 있었다. 경성제대의 ‘조선어조선문학’의 강좌들은 오늘날의 ‘고전문학’에 해당하는 것이 중심을 이루었는데, 대상 텍스트가 ‘한문’이었기 때문에 한문 해독력을 주요한 학적 소양으로 요구했다. 이는 고전문학 강좌를 ‘강독’과 ‘연습’을 중심으로 편제하는 형식으로 제도화되었다. 동시에 이는 ‘학문으로서의 문학’을 ‘고전학’과 등치시키는 학적 관행을 형성했다. 경성제대가 ‘국문학’과 ‘조선문학’의 양면에서 ‘고전’을 강좌의 중심에 둔 것은 일본 본토에서의 ‘문학’에 대한 학적 범주의 조선적 이식인 동시에, ‘국민국가’의 ‘자기동일성’을 문학적 차원에서 입증하고 수립하려는 근대기획의 의도가 관철된 것이었다. 이는 ‘일본문학’을 ‘국문학’으로 배우는 조선 대학생들에게 ‘일본인’과 ‘문학사적 지식’을 공유하게 함으로써 ‘일본인’이 알아야 국민으로서의 교양을 습득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여기서 조선인을 일본의 국민으로 소환하기 위해 일본의 고전문학 강좌를 개설하여 문학사적 공통 지식과 공통 감각을 교육의 대상으로 삼았을 가능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겠다. 이는 학적 소양의 차원에서 ‘국문학(=일문학)’에 대한 지식의 습득에 일본의 고전문학에 대한 ‘리터러시의 확보’가 포함되었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의 ‘가까운 과거’가 아닌 11-12세기 중심의 ‘먼 과거’의 문학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문학의 범주 설정으로서의 ‘가까운 과거’에 대한 공부는 ‘근대와의 접속 문제’, 곧 식민지 상황에 대한 현대적 이해로부터 일정한 거리두기를 상정하도록 작용했다. 1950년대 대학에서 ‘학문적 자질’, ‘교육 내용’으로서의 ‘리터러시’의 확보 문제는 세 가지 측면에서의 역사적ㆍ제도적 맥락을 함축하고 있었다. 첫째, 고전문학이 ‘강독’ 과목의 편제를 통해 ‘고전’에 대한 ‘리터러시의 확보’를 가장 긴요한 학문적 자질로 간주해 온 학적 전통이 수립되는 과정에 있었다. 둘째, 그러한 학적 전통은 대학 교육을 받은 1세대 국문학자의 교육적 경험과 학문적 배경과 긴밀한 관련성을 맺고 있었다. 셋째, 텍스트 이해 능력으로서의 ‘리터러시’는 외국어 소통능력과 더불어 교양을 섭렵하기 위한 학적 능력의 표지로 간주됨으로써, 교양과 전공의 양자에서 요구되는 주요한 학문적 소양으로 인식되었다. 고전문학의 학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텍스트에 대한 리터러시의 확보 문제는 사실상 1950년대 대학에서 일반적인 학적 소양으로 요청된 것이기도 했다. 문과대학에 소속된 대부분의 학과에서는 ‘원전 해득력’을 전공 소양 및 능력으로 간주했으며 ‘강독 과목’을 배치하여 이를 제도화했다. 이때 강독 텍스트의 선정은 전적으로 담당 교수에게 위임되었으며, ‘교재’로 선정된 텍스트는 사실상의 ‘정전’으로 자리매김 되는 구조를 형성했다.
This paper tried the historical and cultural approach on the formation process of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in the university during 1950's, especially focusing on the Korean Classical Literature part.; what was the distinctive characteristics of research methodology about Korean classical literature? Was it possible to premise there was a unique methodology on Korean classical literature? If it was possible, what was the main points which were different from the methodology of Korean modern literature or literature itself? To approach such questions, this paper analyzed the historical process of formation of reading classes, only arranged in Korean classical literature part in case of the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During colonial period in Korea, at the Kyungsung imperial university, which were influenced from the Tokyo imperial university, the concept of ‘national literature’ meant practically Japanese literature, not Korean one. However, during the same period, there weren't organized any reading classes amongest Japanese literature part in Tokyo imperial university. A series of reading classes were organized only in Kyungsung imperial university, moreover those classes were about the ancient times literature written by chinese characters, not Korean alphabet, Hangeul, which could be considered as far past, contrast concept of the early modern age. Understanding Chinese writing which were written in Chosŏn Period by Chosŏn writers was the main ability of university students who were majoring Japanese literature and also Chosŏn literature. Such system made organize the reading classes and practice classes, in the latter, the students played main roles as presenters in those classes, as the main ones of Japanese and Chosŏn literature parts at Kyungsung imperial university. In such process, the study of classical literature came to be regarded as a study of literature itself, not contemporary literature. In such historical process, the literacy itself was regarded as the important ability of university students who were trained academically through completing a college courses in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especially in the classic part, from 1950's and until now. The professors had the decisive role by selecting and translating the texts which should be read in the reading classes with the students arbitrarily. There weren't any other process to decide those things; What text was the original version? What text should be read in the university classes? And what was the canon which regarded the important text, all the Korean people and the graduates who majored Korea classical literature should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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