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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상고전연구 [Yeol-sang Journal of Classical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열상고전연구회 [Society of Yol-Sang Academy]
  • ISSN
    1738-2734
  • 간기
    격월간
  • 수록기간
    1988~2019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한국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810 DDC 810
제62집 (12건)
No
1

박재 문중에 전하는『회답사일기(回答使日記)』의 형성과 의의

구지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62집 2018.04 pp.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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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는 1617년 회답겸쇄환사의 부사로서 일본에 사행을 다녀왔던 인물이다. 그의 문중에는 박재 저작의 사행록이라고 알려진 문헌이 현전한다. 내제는 “정미년회답사일기”라고 되어 있으므로, 본고에서는 편의상 『회답사일기』로 칭하기로 한다. 『회답사일기』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는 1607년 정미년 사행 관련 기록이고, 후반부는 박재가 참여한 1617년 정사년 사행 관련 기록이다. 정미년의 기록은 사행록의 체재를 따르고 있으나 “臣等”을 주어로 사용하여 상주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는 보고서이다. 이 부분은 예조 편찬의 『해행록』에서 연유했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정사년의 기록은 박재의 사행 파견과 사행 도중 공식적인 활동을 확인할 수 있는 장계와 계문들로 편집되어 있다. 『통신사등록』과 매우 유사한 편집 형태를 띠고 있다. 박재의 저작물이 아니라 두 차례 회답겸쇄환사의 파견과 관련된 공식적인 문건들이 초록, 편집되어 있는 것이다. 정미년 기록은 정사년 사행의 준비를 위해 필요했을 가능성이 크다. 정사년의 기록은 사행록이나 공식적인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수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박재의 사행일기인 『동사일기(東槎日記)』는 간략하면서도 사적인 체험에 기울어져 있고 시문이 많이 보인다.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사신으로서 왜정을 탐색하고 포로 쇄환을 위해 적극적으로 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재의 공식적인 활동을 알려줄 자료로서 박재의 문중에 회답사일기와 같은 기록물이 현전하게 되었고, 박재 편집이 박재 저작으로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Pak Chae went as vice envoy on the 1617 mission to restore diplomatic relations with Japan, and the record allegedly written by him still exists in his clan presently. As the title page is labeled 1607 Mission to Restore Diplomatic Relations Journal, this study will refer to it as thus out of convenience. The journal is divided into two parts, the first of which is a record of the 1607 mission and the second half is of the 1617 mission Pak also participated in. While the first half of the journal follows the structure of envoy records, it features “your subjects” as the subject and is written in the style of a report to the king. It is likely this format originates from the Ministry of Rites’ compilation of Record of Sea Voyages (Haehangnok, 海行錄). On the other hand, the latter half of the journal consists of reports of Chae’s dispatch as envoy and the official activities of his mission, quite similar to the format of Record of Previous Missions to Japan (T’ongsinsa tŭngnok, 通信使謄錄). This portion was not written by Pak, but compiled from official documents and extracts of the two missions he went on. It is highly likely the first half of the record was used to prepare for the second mission, and the latter half was used to write official reports or envoy records. Pak’s Journal of a Raft to the East (Tongsa ilgi, 東槎日記), while brief, leans more toward his personal experiences and contains many poems. It was difficult for him to actively fulfill the tasks of investigating the Japanese political situation and repatriating Korean hostages as envoy due to his personal circumstances. Thus, sources of Pak’s official activities such as the 1607 Mission to Restore Diplomatic Relations Journal were passed down among his clan members, and the editing of Pak’s records was distorted as his authorship.

6,900원

2

1617년 회답겸쇄환사의 사행문학 검토 - 『동사일기(東槎日記)』 수록 박재(朴榟)의 사행시(使行詩)를 중심으로 -

장진엽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62집 2018.04 pp.3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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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동사일기(東槎日記)』는 1617년 회답겸쇄환사의 부사 박재(朴榟, 1564~1622)가 남긴 일본 사행의 기록이다. 본고는 이 책을 수록된 박재의 시문 58수를 대상으로 이 시기 회답겸쇄환사의 사행문학을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본고에서는 박재의 시를 그 제재 및 주제의식에 따라 세 개의 측면에서 검토하였다. 첫째는 여행지의 풍경과 일본 견문을 읊은 시이다. 여기에는 해로 풍광의 실감나는 묘사, 일본을 이적시(夷狄視)하는 태도, 일본 정치구조에 대한 우회적 비판 등이 포함된다. 둘째는 회고(懷古)의 정과 사신의 임무를 제재로 한 작품들이다. 특히 박재 스스로 자신의 ‘외원조(外遠祖)’라고 한 포은 정몽주의 시에 대한 차운시가 많다. 포은에 대한 회고의 정은 사신의 임무에 대한 재확인을 다짐하는 태도로 이어지고 있는데, 여기에서 회답겸쇄환사 파견 당시까지 상존하고 있던 양국관계의 긴장감을 엿볼 수 있다. 셋째는 일본 승려와의 시문 교유라는 측면이다. 『동사일기』에는 일본 승려들에게 증정한 시가 10수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이정암 승려로 이 시기 조일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기하쿠 겐포(規伯玄方)에게 써준 것이 7수이며, 그 외 다이토쿠지(대덕사) 승려들에게 보낸 시가 3수이다. 이 작품들은 양국 문사의 교류가 활발해지기 이전이었던 17세기 초 통신사의 문학 교류의 맹아적 형태를 보여주는 사례로서 의미가 있다. 이상의 논의는 『동사일기』에 수록된 박재 사행시에 대한 개략적인 검토로서, 정사 오윤겸과 종사관 이경직의 사행시와의 비교를 통해 각 작품들의 함의에 대해 보다 세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작업을 통해 17세기 초 통신사 사행문학의 구체적 면모가 더욱 풍부하게 드러날 것이다.
Journal of a Raft to the East (Tongsa ilgi, 東槎日記), owned by Seoul University’s Kyujanggak, is an envoy record written by Pak Chae (朴榟, 1564~1622) of the 1617 Reply and Prisoner Repatriation Envoy to Japan. This study takes Pak’s fifty-eight poems anthologized in this record to examine the envoy literature of this mission. This study examines three types of themes and subject matter in Pak’s poems. The first are of poems describing the scenery of his travels and observations of Japan, which include vivid descriptions of his sea route, his view of Japan as barbaric, and indirect criticisms of Japan’s political system. The second are poems on themes of nostalgia for the past and the duties of the mission, particularly response poems to those of Chŏng Mongju, who Pak referred to as his ‘maternal ancestor’. He links his feelings for Chŏng Mong-ju by affirming his resolve to carry out the duties of the mission, but they also show the tension between the two countries even during this mission. The third are poems exchanged with Buddhist monks. Journal of a Raft to the East contains ten poems given to such monks, seven of which are written for Kihaku Genpō (規伯玄方), who played an important role in Chosŏn-Japan relations during this time as a monk of Iteian (以酊庵) Monastery. These poems are significant as forerunners in the 17th century of the active literary exchange that would later take place during diplomatic miss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This general examination of Pak Chae’s envoy poems in Journal of a Raft to the East calls for a more detailed discussion and comparison of chief envoy O Yun'gyŏm and assistant officer Yi Kyŏngjik’s envoy poems, which would then show a more vivid picture of early envoy literature in the 17th century.

8,200원

3

일제 강점기 호소이 하지메(細井肇)의 『장화홍련전』 번역 양상과 그 의미

유정란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62집 2018.04 pp.7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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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細井肇(호소이 하지메, 이하 호소이)의 『통속조선문고』에서 출판된 『장화홍련전』 번역본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번역의 실제 양상과 그 의미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호소이가 원문과는 달리 삭제 및 변형을 가하여 소설을 왜곡되게 번역함으로써 조선의 민족성을 부정적으로 알렸다는 기존의 논의에 문제를 제기하고, 실제양상의 분석을 시도한 것이다. 우선 호소이 하지메의 『장화홍련전』 번역 양상을 살피기에 앞서 高橋亨(타카하시 토오루, 이하 타카하시)의 번역을 검토했다. 타카하시는 일본 근세 소설에서 사용되는 문체를 통해 번역을 시도했기 때문에 소설의전달력이 상당히 약했다고 평가했다. 이후 호소이 하지메의 『조선문화사론』에 번역되어 있는 『장화홍련전』은 타카하시의 번역을 축소한 형태라고 보았다. 3장에서는 『통속조선문고』에서 출판된 『장화홍련전』 번역대본을 1915년 경성서적조합에서 간행된 구활자본 『장화홍련전』으로 규정하고 번역의 양상을 살폈다. ‘구어체 번역 및 조선 고유어 생략’, ‘서술자의 말 생략’, ‘번역 장치 활용’으로 유형화하여 검토를 진행하였는데 그 결과 호소이는 일본의 언문일치체에 맞춰 소설을 번역하였으며 왜곡된 부분이 없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어서 호소이의 조선관을 『조선문화사론』과 『통속조선문고』의 기록을 통해 살펴보고, 번역 의도가 ‘폄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해’에 있다고 파악했다.
This paper is a study on the actual appearance of the translation and its meaning using the translated version of 『janghwa-hongyeonjeon』 published in 『Tongsok joseon munko』. its raised the question of the argument that hosoi made a distorted translation of the novel by deleting and transforming it from the original text. First of all, we reviewed the translation 『janghwa-hongyeonjeon』 by Takahashi Tooru before looked at the HosoI Hajime's translation. Takahashi’s translation was rather weak in power of delivery because it tried to translate through a style used in old Japanese novels. In addition, Hosoi’s translation in 『Jeson-munhwasaron』 was a reduced type of Takahasi's translation. We reviewed it by typing “Colloquialization and omission of Joseon native language”, “The omission of the narrator”, “Use of translation devices”. As a result, the author revealed that the novel was translated into japanese modern novel style and the parts were not distorted. Then, studied Hosoi’s chosun-gwan through the records of 『joseon-munhwasaron』, 『Tongsok joseon munko』 and determined that the translation was intended to be “understanding” rather than “denigrate”.

7,000원

4

수신사 및 조사시찰단 자료의 DB 구축 과정에 대한 일고찰

이효정, 김누리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62집 2018.04 pp.10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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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사(修信使) 및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은 1876년부터 1885년까지 10여 년간 5회에 걸쳐 일본에 파견된 수신사와, 1881년 동래암행어사(東萊暗行御史)라는 직함으로 메이지 일본을 시찰하기 위해 파견된 조사시찰단을 가리킨다. ‘수신사 및 조사시찰단 자료 DB 구축 프로젝트’는 이 수신사와 관련된 여러 유형의 자료를 수집하고 해석한 뒤 이를 토대로 종합적인 DB를 구축하는 연구이다. 본 프로젝트에서는 기초적인 데이터의 뼈대-온톨로지(Ontology)-를 설계하는 과정에서부터 연구대상의 성격을 면밀히 파악하여 해당 자료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의미적 연관 관계를 전자적으로 기술할 수 있도록 하였고, 나아가 이러한 연관 관계를 시각적으로 나타낸 그래프 데이터베이스를 구상하였다. 또한 번역 대상의 원문과 현대 한국어 번역문을 동일한 스키마(Schema)의 XML 문서로 작성하여 원문의 서술과 번역문의 서술을 동기화하였다. 즉 본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디지털 세계에서의 활용 가능성과 확장 가능성(extensibility)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구축되고 있다. 본 연구의 의의는 결과뿐 아니라 과정 자체에서도 디지털 인문학적 연구수행 방법론을 도입하여, 기존 인문학 DB 구축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협업 시스템을 도입하였다는 데 있다. 위키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집단적 연구 환경 조성과 실시간 소통체계 확립 등이 그 예이다. 즉 디지털 인문학을 활용한 연구는 XML 문서, 시각적 관계망 등 실질적 DB 결과물 구축 단계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인문학적 연구와의 결합을 통해서 더욱 발전적이고 효율적인 연구방법론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지녔다 할 수 있다.
‘Susinsa’ and 'the 1881 Official Observation Group' mean the Chosun envoys sent to Japan five times from 1876 to 1884-5 and the inspection team as the title of ‘Dong-rae’ royal secret investigator dispatched to inspect the Meiji Japan in 1881, respectively. 'The Project of Data Base (DB) Construction Based on the Records of Susinsa (Chosun’s Envoys Sent to Japan in the Late 19th Century)' is a research designed to collect, translate, and interpret various types of references related to Susinsa, and to build a comprehensive database. This project aimed to electronically describe the semantic relationship of the elements constituting the data from the steps of designing the basic data ontology by closely grasping the nature of the research object. Furthermore, the project was planned to build up a graph database to visualize this relationship. In addition, we synchronized the description of the original text and the translation by writing the original text and the modern Korean translation with the XML document of a same schema. In other words, applicability and extensibility in the digital world will be the priority consideration of this project. The significance of this study is that it introduced a new collaborative system which is different from the preexisting method of the humanities DB construction by adopting digital research methodology of the humanities not only in the results but also in the process. For example, we created a collective research environment using Wiki software and established a real-time communication system. In conclusion, the research using digital humanities has the potential to be applied to the actual stage of DB production such as XML document and visual network, and to guide us to more advanced and efficient research methodology by combining preexisting humanities research.

7,200원

5

조선조 무이도가(武夷櫂歌)에 대한 평가와 차운시(次韻詩)의 양상

김영봉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62집 2018.04 pp.135-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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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문인들의 「무이도가」에 대한 평가를 알기 위해서는 「무이도가」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비평 자료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차운시의 주제를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적지 않은 그간의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차운시에 대해 주목한 논문은 거의 없다. 「무이도가」 자체에 대한 평가는 도학시인지 산수의 흥취를 노래한 시인지 의견이 엇갈리면서도 후기로 갈수록 도학시로 규정하는 흐름이 강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차운시를 통해 본 「무이도가」의 성격은 오히려 도학시와 거리가 멀다. 차운시에 나타나는 주류적인 성격은 자연 경물을 노래한 산수시의 측면이 압도적이고, 다음이 선계 지향의 도가적 성격이다. 유학자들이 주자의 시를 차운하면서도 선계 지향이 비중 있게 드러나는 것은 주자의 原詩가 그러한 성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주자의 시는 의도적으로 도학적 성격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武夷山의 산수를 읊은 서정시의 성격이 강하다. 그런데 무이산은 이름부터가 道家에서 왔을 정도로 원래부터 道敎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으며, 산 속 곳곳에 道觀도 많았다. 주자의 「무이도가」는 우선적으로 무이산과 九曲의 정경을 대상으로 읊었으므로 거기에 배어 있는 도가적 요소가 자연스럽게 시에 녹아들었던 것이다. 조선의 학자들은 학문적으로 주자에 경도되어 있었고 시에 있어서도 이념적으로 濂洛風을 선호했기 때문에 「武夷櫂歌」를 평할 때에는 일찍이 陳普가 선도했던 도학적 성격에 따르는 경향이 있었지만, 실제로 차운시를 지을 때에는 오히려 原韻의 성격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고 보인다. 여기에서 이끌어 낼 수 있는 결론은, 이론적으로는 아무리 도학시인가 순수 산수시인가 하는 두 갈래가 대립하였지만, 대다수의 문인들은 산수시로서의 성격에 동조하였고 그 결과로 극히 일부 작품을 제외하고는 수많은 차운시에서 순수 자연을 노래한 서정시로 구현되었다고 보인다. 이점은 중국의 차운시에서도 더욱 분명하게 확인된다.
Zhu Xi's “Wuyi Boating Song(武夷櫂歌)” is evaluated not only as Confucian philosophical poet but also as pure lyric. In order to understand the Joseon literary person’s evaluation of “Wuyi boating song”, it is necessary to look into the aspects of the rhyme-borrowing poems. The evaluations of “Wuyi boating song” are disagreed, but as time goes on the define as Confucian philosophical poet have a strong tendency. Nevertheless, with a few exceptions, the aspects of the rhyme-borrowing poems of “Wuyi boating song” are far from Confucian philosophical poet. The more inclination of the rhyme-borrowing poems of “Wuyi boating song” is overwhelming in lyric poetry. Furthermore, the Taoistic tendency is stronger than the Confucian philosophical tendency. It is verified through analysis of actual works. Joseon literary persons were obsessed with Neo-Confucianism and ideologically preferred Confucian philosophical poet. Therefore, some literary persons rated “Wuyi boating song” as Confucian philosophical poet, apart from the actual aspect. But this is a rather farfetched view. In China, the rhyme-borrowing poems of “Wuyi boating song” have the strongest Taoistic tendency, which are romantic naturalism trend. It is closely related to the fact that Taoism was prevalent in China.

7,200원

6

李彦經과 李春躋 父子의 燕行錄에 대하여

김동욱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62집 2018.04 pp.167-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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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李彦經과 李春躋 父子의 연행록인 「燕行聞見書啓」와 「燕行日錄」을 살폈다. 「연행문견서계」는 이언경이 1703년 겨울 謝恩使의 서장관으로 연경을 다녀와 올린 서계이고, 「연행일록」은 이언경의 아들 이춘제가 1731년 겨울 진위겸진향사의 부사로 연경을 다녀 온 기록이다. 두 자료는 1703년의 사은사와 1731년의 진향사에 관해 다룬 현전하는 유일한 기록으로서, 지금까지 연구된 바 없었다. 또한 이 기록들은 전주이씨 가문의 부자가 28년의 간격을 두고 서장관과 부사로 연행을 다녀와 남겼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이언경은 연경에서 청의 정치와 군사 정보를 수집하는 데 힘쓸 뿐 유람은 전혀 하지 않았으며, 노정 내내 강한 반청의식을 바탕으로 청의 문물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반면 이춘제의 연행록에서는 그러한 반청의식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으며, 연경에서는 동천주당, 서천주당, 남천주당을 차례로 방문하며 새로운 문물을 접할 수 있는 천주당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대청의식 및 천주당에 관한 기록 등 두 작품의 성격이 크게 바뀐 것은 17~19세기 연행록을 시기별로 구분했을 때 2기와 3기의 시대적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보다 깊이 있는 논의를 위해 추후 이언경과 이춘제의 문집을 아울러 살피고, 또한 18세기 전반 가문의 구성원이 남긴 다른 연행록들을 비교해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This article is the result of the study of the father Li Un-gyung(李彦經) and the son Li Chun-je(李春躋)’s Yeonhaengmoongyunseogye(燕行聞見書啓) and Yeonhaen- gilrok(燕行日錄). In the winter of 1703, Li Un-gyung went to Beijing and wrote Yeonhaengmoongyunseogye, his report to the king. Li Un-gyung’s son, Li Chun-je, went to Beijing in the winter of 1731 as a diplomacy and wrote down his personal diary. The two records are the only records of the diplomatic envoys of 1703 and 1731 and have not been studied so far. These records are also worth noting in that the father and son of Jeonju Lee family went to Beijing after 28 years’ interval. Father Li Un-gyung tried to collect political and military information in Beijing, but he did not travel at all. Throughout his travels, he critically looked at Qing’s culture and customs based on his strong ideology against the Qing. On the other hand, in the diary of son Li Chun-je, few such ideas were found. He then visited three of the Catholic churches in Beijing and showed considerable interest in the Catholic Church, which is accessible to western cultures. The dramatic change in the character of the two works can be seen as an example of the difference between the periods of the 2nd and 3rd era of the Yeonhaenglok during 17th and 19th centuries. For a more in-depth discussion, it is necessary to look closely at the literary works of Li Un-gyung and Li Chun-je, and to compare the other Yeonhaenglok of the same family members of the first half of the 18th century.

6,600원

7

『무경집문고(無竟集文稿)』의 변려문과 역사성 - 사적사(事蹟詞)를 중심으로 -

이대형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62집 2018.04 pp.195-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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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말에서 18세기 전반기에 남쪽에서 활동한 승려 무경은 문장이 마음을 보존하고 살피는 데 도움이 된다고 적극적인 가치를 부여하였다. 문장 내용 면에서는, 역사적 사실을 중시하는 점이 특징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관심은 󰡔무경집문고󰡕에 특유하게 보이는 ‘사적사(事蹟詞)’ 양식에서 두드러진다. 내용은 대체로 기(記)와 동일한데 ‘~기’라고 하지 않고 ‘~사적사’라고 한 것은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다른 승려들이 쓴 글 중에 ‘사적(事蹟)’과 관련된 글들을 보면 대개 변려문으로 되어 있지는 않다. 사찰에 대한 역사적 관심은 18세기를 전후로 하여 일반적 성향이 되었고 무경은 설암추붕(雪巖秋鵬)에 이어 그러한 흐름을 선도한 것으로 평가된다. 『무경집문고』는 대구 표현이 빈번하게 보이며 특히 사적사의 경우는 글 전체가 대구로 이루어져 있는 글이 많다. 무경은 변려문을 지으면서 남조(南朝) 제나라의 왕좌(王屮)나 당나라 왕발(王勃), 그리고 최치원의 글을 자주 활용하였다. 왕좌의 글은 다른 승려의 문집에서 쉽게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무경의 넓은 독서 범주를 알 수 있다.
The Buddhist monk Mugyung Jasu(無竟子秀), who lived in the late 17th century to the first half of the 18th century in the south of Joseon, gave positive values to literary which help to preserve and examine the spirit. The contents of his literary are characterized by its emphasis on historical facts. Interest in historical facts is highlighted in the style of ‘sajeoksa(事蹟詞)’ that is unique to Mugyungjipmungo(無竟集文稿). Much of the content is the same as the ki(記), but the title ‘~sajeoksa’ rather than ‘~ki’ is meant to stress historical facts. Other monks in Joseon didn't write on historical facts by pianliwen(騈儷文). The historical interest in the temple became prevalent in the 18th century, and Mugyung is believed to have led the trend following Seolam Chubung(雪巖秋鵬). Mugyungjipmungo has a lot of expressions of distich and especially in the case of sajeoksa, many writings are composed entirely of distich. Mugyung frequently used the writings of Wang Jwa(王屮) and Wang Bal(王勃), and Choi Chiwon(崔致遠) when he wrote the pianliwen. From the fact that the writings of Wangjwa can not be easily found in the writings of other monks, we can assume the wide reading category of Mugyung.

7,000원

8

金相旭 所藏 『巽窩謾錄』에 대한 고찰 - <巽窩謾錄普序> 소재 忠孝. 義烈談을 중심으로 -

李相周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62집 2018.04 pp.225-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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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돼있는 『巽窩謾錄』에는 57편이 수록돼있다. 金相旭(1947~)이 소장하고 있는 『巽窩謾錄』에는 규장각에 소장돼있는 『巽窩謾錄』에 수록돼있는 57편 이외에 거기에 수록되지 않은 52편이 실려 있다. 분량이 거의 2배가량 많다. 金相旭이 소장하고 있는 『巽窩謾錄』은 전반적인 상황으로 보아 金敬天(1675~1765)이 기술한 원본을 보고 베낀 것으로 보인다. 필사자는 金龍一(1843~1892)이다. 지금 경북 의성에 거주했으며 김상욱의 고조할아버지이다. 김상욱이 소장하고 있는 『巽窩謾錄』은 1858년에 필사하여 책으로 엮었다. 김상욱 소장본에 ‘普序’라 기술했다. 金敬天은 당시 실제로 보고 들은 일을 널리 알려 경계와 감발을 주고 개선의 본보기로 삼게 하기 위해 보서라하고 기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상욱 소장본 『巽窩謾錄』<巽窩謾錄普序>에 忠孝를 맨 앞에 義烈을 그 다음에 배치했다. 그만큼 중시했다는 증거이다. 그 당시에도 충효를 중시하고 경계해야할 만큼 패륜적 행위가 빈번했다고 보아야한다. 다음 詞章 奇遇 惡歲 恠神순으로 배열했다. 忠孝편에서는 충은 효에서 기인한다는 忠孝一元論을 피력했다. 즉 “忠臣出於孝子之門‘이라는 충효관을 고수하고 있으며 그런 사례를 기술했다. 또한 지극한 효행에 대해 神異하게 돌아온 보답의 실례를 기술했다. 義烈편의 다음 두 편을 주목하자. 「斷裾執賊」의 내용은 여인이 본의 아니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 여인은 당시 보편적 윤리도덕상으로 기준으로 정절을 지키지 못한데 대한 속죄의 방법으로 자결을 택했다. 여기서 여주인공이 자신의 음호 즉 생식기를 칼로 가르고 찢고 그리고 목을 찔러 자결했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특이한 사례이다. 「嚼舌報讐」는 엽기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본의 아니게 강간(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남편인 역관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고백했다. 남편은 성폭행을 한 남자를 복수할 계획을 그 부인에게 지시했다. 그 남자가 키스하기 위해 역관의 부인 입으로 혀를 넣은 남자의 혀를 물어 끊었다. 이를 증거로 삼아 자기 부인을 계획적으로 성폭행하기 위해 공모한 두 사람을 살해했다. 이렇듯 김경천은 이런 끔직한 사례를 매우 상세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그 정도로 당시에도 부당하게 유부녀와 성관계를 맺고 성폭행을 하는 사례가 빈번했던 것으로 보아야한다. 이런 끔찍한 행위에 대해 공적으로 처벌받지 않고 정당방위 차원에서 선처를 받았다. 부당하게 성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정당방위로 간주하여 법적으로 선처를 받는다는 사실을 백성에게 인지시키기 위해 선처했을 수도 있다. 「斷裾執賊」등 본고에서 다룬 <巽窩謾錄普序>의 내용은 그 정황을 서술하면서 그 실제 상황을 문답식 대화체로 서술한 부분이 많아 당시 사회상을 여실히 실감나게 알 수 있다. 이렇듯 김상욱이 소장한 『손와만록』은 그 당시 실상을 사실적 묘사를 하여 당시 사회사 연구의 자료로도 의의가 크며, 문학적 성취도에서도 그 의의를 인정할 수 있다.
There are recorded 57 chapters in 『Sonwamanrok, 巽窩謾錄』which belong to Seoul National University Gyujanggak. Kim, Sanguk(金相旭, 1947~)'s possession 『Sonwamanrok, 巽窩謾錄』which recorded 52chapters except 57 chapters of recorded in 『Sonwamanrok, 巽窩謾錄』in Gyujanggak did not collect there. The volumes are many almost more than double contents. Kim, Sanguk's(金相旭) possession 『Sonwamanrok, 巽窩謾錄』has to see as copy from original text which had described by Kim, Gyeongcheon in general circumstance looking. The calligrapher was Kim, Yongil(金龍一1843~1892). At that time he dwelt in Gyeongbuk Uiseong and he was Kim, Sanguk 's great-great -grandfather. Kim, Sanguk's possession 『Sonwamanrok, 巽窩謾錄』made book after transcribing in 1858. Kim, Sanguk's possession was described ‘Boseo(普序).’ Kim, Gyeongcheon intended to spread wide the things of real watched and heard at that time in order to have as example of improvement after giving alert and great feeling that can be seen. Kim, Sanguk's possession 『Sonwamanrok, 巽窩謾錄』 <Sonwamanrokboseo, 巽窩謾錄普序> consisted of Chunghyo(忠孝) just in front of the book and then next Uiyeol(義烈) distributed. This is the evidence for as much as importance. We have to believe there were immoral conduct frequently as much as that Chunghyo emphasis and alert at that contemporary. Following order, Sajang(詞章), Giwu(奇遇), Akse(惡歲), and Goesin(恠神) arranged. In Chunghyo(忠孝) part expressed Chunghyoilwonron(忠孝一元論) is that Chung(Loyalty)causes from Hyo(Filial Piety). That is to say, “Chungsinchuleo- hyojajimun(忠臣出於孝子之門)”was kept to Chunghyo viewpoint and that case was described. And it was described a case example of reward which returned marvelously and strangely (神異) about a very dutiful person. Let's notice Uiyeol(義烈) part of following two chapters. The contents of 「Dan- geojipjeok, 斷裾執賊」was that the lady was unintentionally suffered sexual violence. The lady chose self-determination, the method of redemption about undefended fidelity as the general standard of ethics moral at that contemporary. At this point the woman protagonist scared up the man who raped her, and next she cut her vulva, that is to say, the organs of generation and she torn it with knife and stab her neck, and she determined by herself. That time there was not peculiar case. 「Jakseolbosu, 嚼舌報讐」has mood like reading bizarre story. Unvoluntarily raped(sexual violence) woman waited her husband interpreter's cameback and she confessed. The husband ordered his wife the revenge plan for the sexual violence man. The man's tongue put into the interpreter's wife's mouth and then she bit to cut his tongue tried to kiss. The two persons who based on these planed collusion in order to rape intentionally were murdered. Like this, Kim, Gyeongcheon had realistic(寫實的)ally described the terrible cases in detail. We have to observe that it seemed to be abundant the case of sexual violence which was sexual relation with married women wrongfully at that time. Self-defense dimension copes with this terrible action which did not punish public(公的)ally but deserved proper dealing. Even if man murdered who had committed sexual crime wrongfully, the fact had regarded self-defense and than received proper dealing legally so this had to inform widely . Therefore it was possible to be proper dealing in order to keep to ethics moral and to prevent unjust sexual crime. Like this, Kim, Sanguk's possession 『Sonwamanrok』was realistically described social shapes at that contemporary in detail. As a result, it has great meaningful work as the study reference of social history at that time, and it can be recognized the meaning in the literary achievement.

10,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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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李鈺)의 문학에 나타난 벌레, 꽃, 물의 표상

박수밀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62집 2018.04 pp.28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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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이옥의 문학에 나타난 벌레, 꽃, 물의 표상을 분석하여 이옥의 미의식, 존재와 관계에 대한 세계관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먼저는 이옥의 꽃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옥은 꽃 자체의 미적 특질에 주목한 작가였다. 일반의 사람들이 꽃의 향기와 자태에 주목하는데 반해 이옥은 꽃에서 변화와 소멸을 발견했다. 그가 꽃에서 느끼는 미적 체험은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소멸의 애상감이었다. 애상감과 무상성이라는 이옥 문체의 특질은 문체반정의 상처 이전에 이미 이옥 안에 내재한 근원적인 감수성이었다. 다음으로는 이옥의 벌레에 대해 살펴보았다. 존재와 관심의 층위에서 이옥은 벌레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 작가였다. 이옥은 벌레에게서 연민을 느끼고 배움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옥은 벌레와 인간의 처지를 역전시켜, 벌레가 인간의 어리석음을 질책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물아균시(物我均視)는 이옥의 사물 인식을 규정짓는 말이었다. 사물과 나를 균등하게 보는 입장은 나와 벌레는 존재론적으로 같다는 생각으로 심화되었다. 이옥은 벌레와 인간의 존재성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작은 존재들을 존중하고 이들에게서 무언가를 배우려 하였다. 다음으로는 이옥의 물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옥이 사랑한 물은 노자(老子)의 물이었다. 이옥의 유약하고 조용한 성격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유약하고 고요한 노자의 물을 사랑하게끔 이끌었다. 노자의 물에 나타난 유약함과 고요함은 여성의 성질이기도 했다. 많은 연구자들이 이옥의 감성이 여성적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옥이 사랑한 노자의 물을 통해 그 연관성을 확인했다. 이옥의 벌레, 꽃, 물의 표상을 통해 살핀 그의 미의식, 존재와 관계에 대한 통찰, 차별 없는 시선, 유연한 감성이 작품에 어떤 방식으로 펼쳐지고 있는지를 계속해서 살펴갈 것이다.
This study is to analize the symbol of worm, flower and water in Ok Rhee’s literature, and to understand him more deeply. Firstly, it reveals the flower of Ok Rhee’s. He paid attention to the aesthetic feature of flower itself. People usually catch the beauty of flower in its scent and figure, but Ok Rhee found change and extinction in flower. His aesthetic experience from flower is an aesthetics of extinction. His feeling about beauty is based on his grief for extinction. Grief and transience, the feature of his writing style, is his fundamental feeling before his suffering of restoration policy. Next it reveals Ok Rhee’s worm. He had deep concern on worm. He had compassion on it and learned from it. Furthermore, he changed both’s position and considered that worm rebukes people. ‘Mul-A-Kyun-Si’(which means equal viewing self as things) is definition of his ontology. His position of equal viewing self as things is connected with his thought that self (I) and worm is the same in ontology. He placed the value of worm and people in the same place, considered small things preciously, tried to learn something from them. Finally it reveals the water of Ok Rhee’s. His water was of Noh-Ja. He was weak and quiet. This characters had him love the weak and quiet water of Noh-Ja’s, consciously or unconsciously. The weakness and quietness of Noh-Ja’s water was those of women. It will more progressively be developed to study how to reveal his aesthetic sense, his deep insight of existance and relationship, his equal view and his flexible feeling in his works.

7,200원

10

『沙石集』에 나타난 無住道曉 불교가론 - 卷五를 중심으로 -

최정선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62집 2018.04 pp.31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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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일본의 대표적인 불교설화집 『沙石集』의 권 5는 설화와 和歌 그리고 불교와 와카와의 관계를 논하는 歌論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와카와 불교의 결합을 논리화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배치되었다. 와카를 중심부에 배치하고 각각 神, 佛, 法, 僧, 陀羅尼 와의 상호작용을 설명하고 있다. 『沙石集』 전체 구조를 권 5 안에서 응축하여 불법의 소우주를 형성하였으며 와카의 기능과 역할을 불법과 관련하여 강조하는 논증의 효과를 성취하였다. 와카의 불교적 의미 발견은 언어관의 변화와 노래의 역할에 대한 인식전환에서 비롯되었다. 와카가 불교와 통하는 근거는 짧은 형식 안에 담긴 무한의 의미 창출, 일상어의 중의적 사용 등이다. 와카의 언어는 무상과 제법실상의 도리를 체득하게 하고 감정을 관조함으로써 마음의 평정을 소환한다. 와카가 곧 다라니인 근거이다. 또한 노래는 신과 인간을 감동시켜 현세적 이익을 가능하게 하는 역동성이 있다. 자국어로 부른 노래가 부처에게도 통한다는 자의식의 강화는 와카의 실용성과 결합하여 강력한 영향력을 형성하였다. 와카의 언어와 형식을 불교사유 안에서 해석하고 와카의 매력을 현실 문제 해결력으로 파악한 무주의 문학관을 반영한다. 중세 일본이 처한 혼란과 갈등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종교와 문학의 융합을 고안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대립을 완화하는 방편을 문학에서 구하였다. 특히 와카를 방편삼았다. 이는 문학적 토양이 풍부하여 자국어 문학의 생산 능력이 무르익었던 당대 문학 환경과 관련된다. 또한 문학을 포용할 수 있을정도로 불교가 사상적으로 다양화되었으며 서민불교로 대중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 결과라고 하겠다. 이러한 당대 환경은 무주의 불교와카관에 반영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서정성과 표현력을 불교적 틀에 자의적으로 맞춤으로써 결국 문학을 제한하게 된 것은 중세불교문학의 한계이다.
This paper analyzes the structure of the Volume 5 of ‘shasekishu’, which is one of the representative folktale books of medieval Japan’s Buddhism, the theoretical background behind the Buddhist interpretation of Waka, and the Buddhist interpretation projected in Waka's interpretation. The reason for choosing the volume 5 of ‘shasekishu’ is that it is the key to connecting the Buddhism, on which ‘shasekishu’ was based, and Waka. The Volume 5 consists of two parts, folktale and Waka. The first part of the Buddhist folktale explains the mistakes that could be made and the virtues that must be observed in Buddhist practice. As a medium for introducing Waka, the Buddhist monk’s motivation to compose Waka is placed in the introduction part. The latter part laid a logical and ideological foundation by explaining the reason why Waka is Darani. In addition, it explains Waka's usefulness and functions as exemplified by the works of Waka that were enjoyed by various classes of people, starting with the works of Manyo and Saikyo. Lastly, it re-emphasizes Waka as an instrument of the Buddhism by listing the life stories of Waka's Kyogi Bodhisattva.Its ideological background is wakatarani and "everything has it own nature", which are deeply related to Esoteric Buddhism. It chose literature as a way to alleviate confrontation and conflict, and used the methodology of Esoteric Buddhism as a medium of combining literature and Buddhism. The works of Waka utilize various themes and materials. This article focuses on theme of nature, life and love. By analyzing the manner in which nature, human and feeling are expressed, it is shown that Waka has contributed to the profound meaning creation by embracing Buddhism as a means of interpretation. It is noteworthy that a combination of religion and literature was devised as a way to overcome the chaos of medieval Japan. Harmonized broad-mindedness that neither discriminates nor makes a difference resolved human conflicts, and promoted emotional communication between upper and lower classes. Nonetheless, restricting literature’s own lyricism and expressiveness by arbitrary adaptation to the Buddhist framework is a limitation of medieval Buddhist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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楚辭 <橘頌>의 위상과 조선의 수용양상 연구

申斗煥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62집 2018.04 pp.343-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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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中國 詠物詩의 第一首로 평가받는 楚辭 <귤송>을 중심으로, 작품의 문학적 위상을 제고하고, 조선 문인들의 작품에 나타난 초사 <귤송>의 수용양상을 분석하여 그 미의식을 연구한 것이다. 屈原이 지은 <橘頌>은 《楚辭》 <九章>에 있는 편명으로 귤나무를 통해 자기의 소박함과 굳은 지조를 비유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총 4언 36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4구를 한절로 하여 총 9절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그 내용의 성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초사 중에는 비교적 짧은 작품이지만, 이 작품은 묘사, 비유, 상징, 의인화, 등의 표현기법들이 뛰어난 훌륭한 작품이다. 귤에 대한 의인화 기법은 굴원 자신을 타자화한 타자성이 뛰어나다. 초사 <귤송>은 귤에 대한 생태를 세밀하게 분석하고 그 이미지를 바탕으로 창출한 생태문학의 보고이며 녹색문학의 시원이다. 초사 <귤송>은 생태비평과 녹색 비평을 가능하게 하는 훌륭한 작품이다. <귤송>의 주제의식은 하늘, 땅, 사람의 합일로 올바른 정기를 받고 태어나, 조국 초나라에 대한 충성심과 애국심으로 뭉쳐진 훌륭한 자질을 바탕으로, 올곧은 지조와 절개를 지켜나가는 충신 지사의 상징이었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천인합일사상이 바탕이 되고 있다. 굴원의 초사 <귤송>은 조선의 수많은 학자들이 탐독하고 여러 방면에서 다양하게 수용한 흔적들이 각종 문헌에 나타나고 있다. 조선시대 제주도로 유배를 갔던 조선의 문인들은 제주도의 귤을 보고 굴원의 <귤송>을 떠올리며, 다양한 작품으로 그 심정을 읊었다. 초사 <귤송>은 조선 문인들의 다양한 작품에 수용되어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This paper is a study on the <Chosa(楚辭)-the mandarin song(橘頌)>’s the status and the aesthetic sense of acceptance in the Joseon Dynasty. 屈原(Qu Yuan)’s Cho-sa, <the mandarin-song> is the best <Poems on thing(詠物詩)> in china. <the mandarin-song> is Mandarin tree analogy for his firm and the simplicity of branches through the work. It consists of Four Letter Extended song, a total of two sections, consisting of a total of Four Letter A three-sixth line and a total of nine verses. The painting is a great piece of art, such as description, metaphor, symbolism, personification, and typing skills. Cho-sa, <the mandarin-song> is Based on the ecological ecology of the mandarin tree, the author wrote, " It is written on the basis of the ecology of the tree, and the author of the cave, and the spirit of the cave. " It is also a masterpiece of Chinese literature and literary works, and it is a pioneering work of ecopoetry and green literature. The theme of the faithful <the mandarin-song> was the fidelity of loyalty and fidelity from heaven and the spirit of loyalty to the faithful, based on the spirit of loyalty and patriotism. On the basis of this artwork, the whole notion of God was buried in the ground. Qu Yuan’s Cho-sa, <the mandarin-song> is Many of the scholars of the cave were sent to Ephesus by numerous scholars of Joseon Dynasty. The mandarin-song is Joseon Dynasty’s scholars from various fields show various traces of diverse texts in various fields. In Joseon, tangerines were grown in Jeju Island. The Joseon Dynasty, which was transported to Jeju Island during the Joseon Dynasty, saw the taste of a tangerine in Jeju Island, reminiscent of the song of the oyster, and expressed its feelings. Qu Yuan’s <the mandarin-song> was brilliantly illuminated in various works of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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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보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62집 2018.04 pp.389-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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