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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상고전연구 [Yeol-sang Journal of Classical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열상고전연구회 [Society of Yol-Sang Academy]
  • ISSN
    1738-2734
  • 간기
    격월간
  • 수록기간
    1988~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한국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810 DDC 810
제35집 (17건)
No

기획논문: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박물관> 소장 고소설에 대한 연구

1

기획의도

정명기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5집 2012.06 p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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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원

2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박물관 소장 고소설의 현황과 가치

정명기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5집 2012.06 pp.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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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순천시립 뿌리 깊은 나무 박물관’에 수장(收藏)된 고소설을 개관하고, 새로 발굴한 유일본 소설과 의미 있는 자료들을 소개하며, 이곳의 소장된 전체 고소설의 목록(目錄)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창기 선생이 수집한 고소설은 총 107종 520여(동종 작품 포함) 작품이다. 이 컬렉션의 가장 큰 특징은 한글 고소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컬렉션은 장편가문소설류에서부터, 경판(京板)․완판(完板) 방각본소설, 중국소설의 번역본, 활판본 고소설까지 다양하다. 이를 통해서 한창기 선생은 ‘한글 고소설이 어떻게 유통되고 읽혔는가’를 염두에 두면서 자료들을 집중적으로 수집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곳에 소장된 자료 중에서 무엇보다 가치 있는 것은 일실(逸失) 되었다고 알려진 경판 방각본 소설 󰡔월왕전󰡕의 책판(冊版)과 유일본 소설들이다. 책판을 통하여 경판 방각본 소설의 출판 과정을 구체적으로 규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이곳에 소장된 유일본 소설은 󰡔기봉회연록󰡕, 󰡔당백암󰡕, 󰡔서씨육여명행기절록󰡕 3종이다. 이 중에서 이 논문에서 살펴본 것은 󰡔당백암󰡕이었다. 이 소설은 고소설의 일반적인 서사문법과는 달리 서사주인공의 출생담이 작품 서두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 작품내적 긴장 관계를 불러일으킬 만한 서사사건의 결여되어 있다. 이러한 점 등을 두루 고려할 때, 작품의 미적 가치는 높다고 할 수 없다. 아울러 작품의 필사기와 작품의 유통 상황 등을 볼 때, 작품의 생성 시기는 최근일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일련의 논의를 통해서 한창기 선생이 생전에 수집했던 고소설의 전반적인 사항, 유일본 소설의 위상과 가치, 기타 자료의 의미 등을 확인했다. 앞으로 후속 연구를 통해서 그가 수집했던 자료들의 구체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This paper will make a general survey about the old novels(Gososeol) which the Suncheon's Ppurigibeunnamu museum's possesses. Secondly, it will introduce the newly found exclusive novel with significant materials, then will suggest the list of the materials in this museum. The old novels(Gososeol) collected by Mr. Han, Changgi is approximately five hundreds twenty ones categorized into one hundred seven types. The fact that most parts of this collection consist of old novels(Gososeol) written in Hangul is the most significant characteristic of this collection. It contains various kinds of Korean novels covering a kind of Long Family Novel, Kyongpan(京板)․Wanpan(完板), block printed novels, Chinese novels translated into Hangul and old novels by typography. Therefore, Mr. Han, Changgi seems to have collected the materials intensively, considering the way of circulation of the novels written in Hangul and the reading style of them. Above all, the Kyongpan(京板) block printed novel, wooden Printing Blocks(冊版) of wolwangjeon is the most valuable one in this museum which has been known as being lost. Among these novels, the exclusive ones are gibonghoeyonrok, dangbaekam,sessiyukmyunghanggljelrok. At fist, this paper will deal with dangbaekam. This novel may be not estimated high in an aesthetic value when it comes to it's starting without the birth story of protagonist unlike the general narrative style of an old novel(Gososeol) and to the lack of events triggering the tension of inner text. Also, judging from the year of description and the situation of circulation of the novel, it seems to have been made lately. Through such a series of works, the overall things about these novels collected in Mr. Han, Changgi's living years and the status and the value of the exclusive novel and all that sort of things have been revealed. In the future, there will be more specific discussions on his materials in Suncheon's Ppurigibeunnamu museum by the follow-up studies.

6,000원

3

<주씨청행록>과 <도앵행>의 관련 양상 및 구성적 특징

엄태식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5집 2012.06 pp.3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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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 처음으로 소개하는 <주씨청행록>은 한창기본․단국대본․박순호본의 3종이 있는데, 이본 간에 내용상의 차이점은 없다. 그리고 단국대본과 박순호본은 민소저라는 동일인에 의해 필사된 이본일 가능성이 높다. <주씨청행록>은 <도앵행>의 이본이며, <도앵행>과 내용상의 차이점은 없다. 하지만 <주씨청행록>은, <도앵행>과는 달리 서두가 주당의 이야기로 시작되고, <도앵행>에 비해 전반적으로 묘사 대목이 확대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주씨청행록>과 <도앵행>을 비교해 보면, <주씨청행록>이 <도앵행>을 의도적으로 변개한 작품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지금까지 <도앵행>은 <옥환기봉> 연작의 하나로 다루어졌다. 하지만 작품의 제목, 갈등 양상, 서사 전개, 장면 묘사 등에서 볼 때, <도앵행>은 <구운몽>을 패러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도앵행>의 작품 수준은 <구운몽>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바, 이는 작자의 창작 역량에서 비롯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Jussicheonghaengnok, which is introduced in this paper for the first time, has three versions: the Han Changgi version, the Dankuk University version and the Pak Sunho version. There are no big differences between them in content. The Dankuk University version and Pak Sunho version are likely to be different versions transcribed by the same person, Miss Min. Jussicheonghaengnok is a different version of Doaenghaeng, and their contents are not different. However, the beginning of Jussicheonghaengnok tells the story of Ju Dang. Moreover, descriptions found in Jussicheonghaengnok are more detailed than those in Doaenghaeng. After all, it is found that Jussicheonghaengnok was created by intentionally adapting Doaenghaeng. Doaenghaeng has been regarded as part of the Okhwan-gibong series. However, Doaenghaeng can be regarded as a parody of Guunmong, considering the title, discordant aspects, narration development, scene descriptions, etc. Doaenghaeng does not reach the quality of Guunmong probably because the author's creativity was insufficient.

8,100원

4

<기연회봉록> 연구

이선형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5집 2012.06 pp.7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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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연회봉록>은 남주인공 유봉상과 여주인공인 황채란, 전학선, 손롱선, 채혜운이 헤어지고 만나 가족을 이루는 내용의 소설이다. 남녀주인공이 만남과 헤어짐, 여주인공이 남주인공과 분리되었을 때 경험하는 受難과 忍苦의 과정, 극적인 재상봉 등을 다채롭게 풀어나가고 있다. 남주인공의 영웅적 면모보다는 여주인공들과의 만남을 통해 사랑 성취에 의미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기연회봉록>은 애정소설, 기봉소설의 범주에 든다고 본다. <기연회봉록>은 이제껏 작품의 그 존재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으나, ‘순천 시립 뿌리 깊은 나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본고에서 처음으로 소개하였다. 본고는 유일본인 <기연회봉록>을 구체적인 서지 사항과 작품 경개 및 구조를 소개하였다. 첫날 밤 사라진 신부의 서사 구조 속에 남녀가 나눈 신물 때문에 후일 남녀주인공이 재상봉을 한다는 이야기가 주축이 되었다. 독특한 점은 喪夫한 여주인공을 만난 남주인공이 승승장구하며 헤어진 여주인공과 상봉한다는 사실이다. 다른 고전소설에서는 찾을 수 없는 화소로 <기연회봉록>에서만 찾을 수 있다.
is a novel that depicts the separation and reunion of male protagonist Yu Bongsang , female protagonists Hwang Chaeran, Jeon Hakseon, Son Rongseon, Chae Hyeun and how they come together to form a family. portrays the male and female protagonists’ affection and farewell, the process of enduring such hardships during the momentof separation, and their dramatic meeting by diversification. This novel can be considered to be love stories or Gibong stories, as the focus is on the result of love by meetings with female protagonists rather than male protagonist’s heroic figure. Previously, the existence of Giyeonhoebongnok’s remained yet to be verified, but the museum of Suncheon Sirip Ppuri Gipeun Namu is now in the possession of this novel, and is first introduced in this script. This script includes specific bibliography, outline and structure of the only copy .

6,900원

5

뿌리깊은나무 박물관 소장 필사본 <유황후전> 연구

조재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5집 2012.06 pp.10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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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본 <유황후전>은 유태아가 황후가 되기까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한 고전소설로,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이다. 필사본 <유황후전>의 내용을 분석해본 결과, 이 작품은 기존에 널리 알려진 <태아선적강록>의 이본임을 알 수 있다. 유태아와 태자의 혼전 동거 및 동침 여부, 옥소아의 자살 여부, 만귀비의 역모와 처벌 관련 양상을 기준으로 필사본 <유황후전>과 단국대본, 국민대본 <태아선적강록>과 활자본 <류황후>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단국대본, 국민대본 <태아선적강록>은 세 가지 측면에서 모두 동일한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이에 비하여 필사본 <유황후전>은 유태아와 태자의 혼전 동침 이야기에 대하여서는 의도적으로 배제하였다. 한편 활자본 <류황후>에서는 태자와 유태아의 혼전 동거 및 동침 부분을 완전히 제거하고, 대신 이후 전개되는 유태아의 궁중 수난담에 비중을 둔 모습을 볼 수 있다. 유태아의 충직한 시비 옥소아 역시 단국대본, 국민대본 <태아선적강록>과는 다르게 필사본 <유황후전>과 활자본 <류황후>에서는 主-奴의 위치가 전복된 것에 대한 갈등이나 고민 없이 화목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악인을 징치하는 양상에 있어서도 필사본 <유황후전>과 활자본 <류황후>은 만귀비의 징치보다는 여주인공 유태아의 仁德과 그로 인한 행복한 결말에 더욱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단국대본, 국민대본 <태아선적강록>에서 만귀비가 역적이 되어 참형 당한 것과 달리, 유배를 가는 것으로 종결되거나 악인이 교화되어 선인이 되는 또 다른 보수윤리를 충실히 반영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필사본 <유황후전>은 단국대본, 국민대본 <태아선적강록>과 활자본 <류황후>에서 보이는 서사적 변개양상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is classical novel what female heroic Yutaea overcome all difficulties, finally she became an empress. It's owned by the city museum ‘Ppurigipeunnamu’. The result of 's analysis, It is version by famous novel . Yutaea and prince whether premanital cohabitation and they slept together or not, OkSoa whether she took her own's life or not, about ManGwibi's a plot of treason and an aspect punishment, it was based on them, compared with , and . It is result as fellows. (owns by Danguk Univ., Kookmin Univ.) is all the same conditions of three aspects. is made with intentional exclusion about a story of Yutaea and prince's premanital cohabitation and they slept together. One side, seems to made important suffering story in the royal court. A honesty a lady(Yutaea)-in-waiting OkSoa seems like happy and . It's never seems to any troubles. About an aspect of the wicked's punishment, , gave meaning of female heroic Yutaea's happy ending story, instead of Man Gwibi's punishment. Therefor, reflected some aspect of ethics. occupied a important position of comprehend about and 's narrative change condition.

7,300원

일반논문

6

설화로 보는 간도지역 조선인의 이주와 정착 - 조선족 설화의 역사적 의미

김창화, 박금해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5집 2012.06 pp.133-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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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조선족은 한반도로부터 중국경내로 이주한 이주(迁入)민족이다. 19세기말부터 시작된 이주, 정착 및 오늘날의 중국경내 일개 소수민족으로의 입지를 구축하기까지의 파란 많은 역정에서 조선족은 재래의 조선반도의 설화를 그대로 전승함과 아울러 기타 민족문화의 자양분을 섭취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설화도 많이 창조하였다. 본고에서 필자는 조선족의 연변지역에로의 이주와 정착에 관계되는 조선족자생설화를 텍스트로, 설화 속에 얽힌 조선족의 삶의 궤적과 그 당시의 사회상을 살펴보려는데 연구의 목적을 두었다. 이에 본고는 조선족자생설화가 생성하게 된 역사적 배경, 즉 조선인의 간도에로의 이주와 정착과정에 대해 살펴보았으며 <해란강> 등 조선족의 대표적인 설화를 통하여 조선족의 이주동기와 배경, 새로운 생존공간의 확보, 열악한 자연조건과의 싸움과 수전의 개발, 중국 지방관부와 지주 및 기타 악세력과의 항쟁, 연대의식, 민족정체성의 보존 등 방면으로 이주초기 조선인들의 겪었던 험난한 역정을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조선족의 자생설화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 즉 조선족설화 특유의 민중성 및 실화성 등 史적 의의에 대한 분석을 전제로, 조선족설화의 역사적 의미를 규명하였다.
中国朝鲜族是从朝鲜半岛迁入到中国东北境内的迁入民族。自19世纪后期移民开始直至中华人民共和国成立,朝鲜族经历了波澜壮阔的历程。在这曲折的历程当中,朝鲜族人民不仅比较完好地传承了朝鲜国内所固有的,以‘说话’为称的朝鲜民族传统的民间故事,而且不断吸取中国境内其他民族文化的滋养,创造了独有特色的朝鲜族自己的民间故事作品。本论文旨在以朝鲜族民间故事作品为研究对象,着重探讨和分析延边地区朝鲜族迁入和定居历程,窥视移居到东北之后的朝鲜族的生活轨迹。为此,本论文首先考察了朝鲜族民间故事産生的歷史背景,卽朝鮮人移居間島的歷史過程,在此基础之上以<海兰江>等作品为例,分析了朝鲜族的迁入动机和背景、生存空间的开辟、水田的开发、中国地方官府和封建地主的封建压迫与民族歧视及朝鲜族人民的反抗、各族人民之间的协同意识以及朝鲜族民族意识的形成与发展等等迁入初期朝鲜族移民所经历的艰难过程。最後,從朝鲜族民间故事所特有的民衆性,實話性等特點,论证了朝鲜族民间故事所具有的歷史价值.

7,600원

7

총동원시기 친일유림의 한시에 드러난 전쟁협력 논리 - 『성전성시집(聖戰誠詩集)』과 『축징병제실시(祝徵兵制實施)』를 중심으로 -

한길로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5집 2012.06 pp.167-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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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일제가 일으킨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친일유림단체의 전쟁협력 논리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들이 남긴 한시(漢詩) 속 시어들 사이에 내재되어 있는 협력논리와 그 근거에 대해 살피고 동원된 문학적 수사에 주목하는 것이다. 만주사변 이후 ‘전쟁총동원시기’에 발간 된 친일 유림단체의 ‘한시집(漢詩集)’으로는, ‘폭지응징(暴支膺懲)’을 외치며 일제가 일으킨 중일전쟁을 미화하기 위해 ‘경학원(經學院)’에서 발간한『성전성시집(聖戰誠詩集)』(1937)과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실시한 징병제를 환영하는 내용의 조선유도연합회(朝鮮儒道聯合會)의『축징병제실시(祝徵兵制實施)』(1943)가 있다. 위 시집들은 한문학을 통해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력하고 찬양하는 유림들의 내적 논리와 자발적 협력의지를 잘 드러내는 텍스트라 할 수 있다. 이들의 작품들은 대개 한시(漢詩)라는 형식미를 활용하여 문학적 특성을 드러내기 보다는 압축된 내용으로 일제의 정책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데 더욱 주력하고 있었다. 그 속에는 일제가 주창한 ‘내선일체(內鮮一體)’ ·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 정책을 수용한 그들의 논리가 잘 드러나 있다. 제한된 독자층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이들의 창작행위는 한자의 권위를 빌려 일제에 자신의 신념을 보이기 위한 친일의 도구이자 친일유림의 내부결속을 위한 기제이기도 했다. 이러한 작품들은 국문으로 작성된 문학작품들과 함께 ‘친일문학’의 범주에서 연구되어야 할 것이며, 나아가 동아시아 한문학의 한 조류로서 대만이나 중국의 친일문학 작품들과의 비교 연구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This Paper is Researched support war of aggression in Chinese poetry and Cooperation logic of the pro-Japanese confucianist. The『Sungjonsungsijip(聖戰誠詩集』is a Chinese poem collection which is written by the members of Gyeonghakwon to praise the Sino-Japanese War that occurred in 1937 by the Japanese, and『Chukjingbyungjaesilsi(祝徵兵制實施)』is a poem collection which has messages of the welcoming of the draft system enforced by Japan to mobilize army of Koreans to fight in the 1943 Asia Pacific War. In this paper, the perception of East Asia and wars expressed in these poems are looked at, and from it, how the pro-Japanese confucianists supported and followed Japan and what their ideas were when they promoted these ideas against the people of Korea will be studied, as well as the notion of East Asia in the huge war of these groups. Through this, the personal meaning of pro-Japanese Chinese literatures in the long history of Chinese literature that started from the united Silla era will be questioned, and the assignment related to them for the present people will be drawn.

7,300원

8

세책 <옥루몽> 동양문고본에 대하여

유광수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5집 2012.06 pp.199-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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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동양문고에 소장되어 있는 동양문고본 <옥루몽>은 세책본이다. 1908년에 필사되어 서울 지역에서 유통되던 이 동양문고본은 원 <옥루몽>의 서사를 온전히 지니고 있지 않다. 주인공 양창곡의 자녀들이 활약하는 후반부를 삭제하고 급하게 마무리한 텍스트이다. 이렇게 축약된 축약본 계열의 다른 이본들과 면밀하게 검토한 결과, 연대16장본과 가장 친연성이 높다는 것을 밝혀냈다. 동양문고본은 <옥루몽>이기는 하지만 몇 군데 <옥련몽> 화소를 차용하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원 <옥루몽>의 서사와는 다른 방향으로 개작과 변개를 시도한 이본이다. 그렇게 개작한 이유는 원래의 <옥루몽>이 지니고 있는 내용과 가치가 중세 체제중심적 가치에 부합하지 않고, 인물들의 이율배반적 행동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서이다. 그래서 동양문고본은 선악의 분명한 이분법적 대립과 체제중심적 가치를 목표로 의도적인 개작 변개를 시도했다. 그 결과, <옥루몽> 원작이 의도했던 중층서술과 미묘하게 내재시켰던 체제비판적 긴장미와 흥미, 다채로운 인물 형상화와 활성화된 배경 등의 특징이 사라지고, 조금 색다른 내용이 있는 군담소설처럼 되고 말았다. 이런 변개와 개작은 세책업자의 의도 때문이었는데, 그것은 이런 분명한 선악의 구분과 체제옹호적 가치가 당대 일반 대중의 취향과 수준에 맞을 거라도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대 문화지형에서는 이런 도식적인 위안과 쾌락을 얻는 이야기가 더 설득적이었던 것이다.
There is a lending library of at the library of DongYangMunGo(東洋文庫) in Tokyo Japan. This text was written in 1908, Seoul Chosen(朝鮮). This DongYangMunGo text had not the whole contents of the original which was created by Nam young-no(南永魯), the 19th Century. Nam young-no put the critical thinking about a diverse character, astonished affair, natural event, political issue etc into the original text with ambiguous writing. But, the manufacturer of lending library disliked the author's theme, characters, events, background and main thinking. So, the manufacturer rewrote a with his own thinking. As a result, this DongYangMunGo text had a separated the original. DongYangMunGo text corrected a reversed status with wives and mistress, and made a character clearly by deleting antinomic words and deeds, and so on. So DongYangMunGo text had a clearly division at the virtue and evil, and conservative ideology. The manufacturer of lending library had been thought about the Cultural Topology of the 19th and the early 20th Century. He had believed that the many readers would want to read a text given joy, pleasure, delight and satisfaction, not to read serious text. That's a capacity of the people had lived in that time.

7,900원

9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의 상업적 출판과 전통적 가치 계승 문제

허경진, 강혜종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5집 2012.06 pp.235-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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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환여승람』은 충남 공주(公州)의 유학자인 이병연(李秉延, 1894-1977) 이 각 지역의 유림들과 협력하고, 지방마다 보고원을 위촉하여 대전 보문사(普文社)에서 간행한 20세기 인문지리서이다. 본서는 『동국여지승람』의 체재와 내용을 계승하면서, 전통적 사회규범과 가치를 집약적으로 반영하는 사적(史的) 편찬서로 서, 당시 지역 사회의 유림의 정체성 구축과 위상 확립을 위한 목적과 읍지 편찬의 시대적 상황 등의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출현한 상업 출판물이다. 본고에서는 전통시기 인문지리지를 계승하고 있는 『조선환여승람』의 체재와 구 성, 내용 등을 전통시기 승람류, 읍지 등과 비교․분석한 후, 20세기 상업적 출판 물로 간행․유통되는 방식과 독자들의 반응 등을 바탕으로 책을 통한 근현대 시기 의 전통적 가치 계승과 형성의 측면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조선환여승람』의 체재와 구성은 전통 승람류를 대부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내용과 서술 방식에 있어서 근현대 시기의 특징을 보인다. 또한, 독립적인 군 단위 의 책을 하나의 체재 안에 묶는 출판 방식을 통해, 전통시기의 관찬서의 편찬 명분 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도 개별 군의 정보를 상세히 담아 주요 구매층의 요구에 부응하는 상업 출판물로서의 가치를 높일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유림들은 본서를 공적 가치와 권위를 지닌 매체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전통시기 와 달라진 사회적 여건 속에서 제도권에 대한 영향력이 점차 약화되는 가운데, 근대 상업 출판 시장에 책을 간행․유통시켜, 전통적 가치의 수호와 실현의 주체가 되고자 하였다. 이는 전통시기 여타의 지리서들이나 읍지들과 그 편찬 목적과 향유 방식의 차이가 발견되는 지점이며, 당대 사회의 작동 원리를 반영한 일면이다.
This paper aims to explain the commercial publication and inheritance of traditional values of Joseonhwanyeoseungram(朝鮮寰輿勝覽) through analyzing the structure, contents, the way of distribution and responses by the readers of it. Moreover, This paper also will examine the inheritance of traditional values having been formed in and out of this book in drastic change of Korean social structure. This book claims to succeed the purpose to publish Dongkukyeojiseungram(東國輿地勝覽) and follow the structure and the contents of it overall, however it differs from the pre-modern publications in terms of its containing the facts and narrative style of modern times. Actually, Joseonhwanyeoseunglam had been published one by one as an independent unit of Gun(郡) district but under one title covering Joseon, so it could not only inherit the purpose of the traditional books, but also enhance the merit of commercial publication as town chronicle satisfying the demand of the local Confucians who had been main consumers and especially had a keen interest in their districts. Joseonhwanyeoseungram seems to have been considered as a media carrying public values and authority, so the local Confucians wanted to be the main agent to select, succeed and form the traditional values, participating in the modern publishing market. This is where Joseonhwanyeoseungram shows its special characteristic as a means of Confucians' honor and the local community's for the purpose of establishing and enhancing their identity and status who tried to maintain the power against being edged out of mainstream in modern times. Also the difference between Joseonhwanyeoseungram and same kinds of books in pre-modern times can be found in this point.

6,400원

10

고수관이 부른 노래는 판소리인가

이윤석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5집 2012.06 pp.261-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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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의 기원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판소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밝혀내지 못했다. 또 판소리 가수가 부르는 노래 가사를 옮겨놓은 것이 소설이 되었다는 학계의 통설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 20세기 이전의 판소리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대부분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 기대고 있으나, 이 책의 내용은 1930년대 판소리 가수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므로 20세기 이전의 판소리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는 자료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고수관은 1760년대에 태어나 1840년대 중반 이후까지 생존한 명창이지만, 그에 대한 당대의 기록은 신위(申緯)의 시 몇 편에 나오는 것이 거의 전부이다. 고수관을 판소리 명창이라고 하지만, 그가 어떤 노래를 어떻게 불렀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영남대학교 도남문고에 소장된 󰡔춘향전󰡕은 세책계열 <춘향전>의 한 이본인데, 여기에는 다른 <춘향전>에서는 볼 수 없는 많은 서울노래가 실려 있고, 또 고수관이 몇 차례 등장한다. 소설 속의 고수관이 부르는 노래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판소리는 아닌 것 같다. 고수관은 어떤 노래를 어떻게 불렀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판소리에 대한 지식보다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할 것이다. ‘판소리’라는 용어가 언제부터 쓰였으며 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판소리 연구자들은 별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판소리’는 ‘판’과 ‘소리’가 합쳐진 것이라는 평범한 정의로는 ‘판소리’를 설명할 수 없다. 특히 초기의 판소리가 무엇이었나를 설명해낼 수 없다. 필자는 이 논문에서 1912년에서 1915년 사이의 「매일신보」 연예 기사에 나타나는 ‘판소리’의 용례를 전부 조사하여 이 시기에 ‘판소리’라는 용어가 어떻게 쓰였는지를 알아보았다. 이 신문기사를 통해 이동백이나 김창환 같은 남자 가수들은 판소리만을 부르지만, 여자 가수들은 판소리 외에 경기소리나 서도소리까지 모두 다 부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판소리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열두 마당이나 다섯 마당이 아니라 훨씬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신문기사는 보여준다. 필자는 소설의 한 대목을 노래로 부르는 것이 판소리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 「매일신보」의 판소리 기사를 정리하면서 ‘판소리’의 ‘판’이 ‘소설’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Despite a great deal of research that has been conducted on the origin of pansori, its beginning has not yet been determined. Furthermore, the theory that was generally accepted in academic circles, that the lyrics sung by pansori singers were transferred into writing to become prose fiction, has proven to be problematic in many ways. Much of what is known about pansori before the twentieth century is based on information found in Jeong Nosik’s work Joseon Changgeuksa(History of Joseon Classical Opera). It would be difficult, however, to regard the text as a reliable source on the nature of pre-twentieth century pansori, as its content is an organized compendium of stories related by pansori singers of the 1930s. Go SooGwan was a master singer who was born in 1760 and died in the second half of the 1840s, but all that is known of his life comes from a few poems composed by Shin Wi. Despite Go’s status as a master singer, almost nothing is known about how he performed his songs. A manuscript of Chunhyang Jeon (Story of Chunhyang) that preserved at the Donam Library of Yeongnam University, a variant of the rental book version of the work, not only contains many Seoul songs that is not found in any other variants of the work but it also features several appearances by Go SooGwan. The type of songs sung by Go in the story does not appear to be pansori as we know it today. So what kind of songs did Go SooGwan sing and how did he sing them? To answer those questions, we need a great deal more knowledge about pansori than we possess today. It is apparent that scholars of pansori have shown little interest in pursuing the question when the word ‘pansori’ first came into usage and what it signified. We cannot define it in the ordinary way as a combination of pan (block) and sori (sound). That characterization significance provides no insight in particular to what pansori was at its beginning. In this essay, I analyze every example of the word’s appearance in entertainment articles of Maeil Shinbo (Daily News) from 1912 to 1915, to determine how exactly it was used at the time. The newspaper articles reveal that while male singers like Yi Dongbaek and Kim Changhwan sang exclusively in pansori, female singers sang in kyunggy sori and Seodo sori as well as pansori. The articles also reveal that pansori at the time could be performed in a variety of episodes, not just in twelve or five episodes as they are today. Through this research, I consider the idea that pansori began as the singing performance of important passages from prose fiction, as the analysis of Maeil Shinbo articles on pansori raises the possibility that the word pan (printing block) is a reference to printed works of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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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의 학통적 맥락에서 본 송시열 초상화찬

김기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5집 2012.06 pp.293-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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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宋時烈(1607~1689)의 초상화가 특정 집단(老論 문인들)의 조직적인 현양 작업을 통해 학통적 상징물 내지 권력적 아이콘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송시열의 초상화에 주희(宋 朱熹, 朱子, 1130~1200) 초상 이미지의 권위를 빌어오고 덧씌우는 문학적 전략 및 집단 내부의 문화 담론을 밝히고자 시도하였다. 노론계 문사들은 17세기에서 시작, 19세기 후반까지도 한 학파 전체의 차원에서 송시열의 초상에 대한 贊(초상에 부쳐 쓰는 글)을 짓고 돌려 보면서 퇴고하기도 하며, 송시열의 초상과 초상화찬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그 초상을 매개로 송시열을 열렬히 숭모하는 전통을 만들어 갔다. 노론계 문사들은 송시열의 초상찬을 쓰면서 주희 화상찬식의 意趣를 불어넣으려 했고, 주희 초상 이미지의 권위를 송시열의 초상에 포개 놓으면서, 학파 전체를 대표할 만한 권위적 시각 표상으로 송시열의 초상화를 내세우고자 하였다. 송시열의 초상화 및 그에 대한 초상화찬이 ‘宋子(조선 내부에서 송시열을 칭송하는 별호)’의 공식적인 이미지로서 노론계 내부에서 권위를 획득하고 의미를 부여받는 과정은, 이렇듯 ‘朱子’의 초상 이미지와 관련된 문학 작품(초상화찬)을 활용하는 작업을 통하여 한층 견고하게 뒷받침되었던 것이다. 본고는 ‘초상 인식’, ‘自贊’, ‘송시열 대상 초상화찬’이라는 세 층위에서 ‘주희’와 ‘송시열’이 긴밀한 상호 관련을 맺게 되는 노론 집단 특유의 초상 문화가 갖는 윤곽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在韓.中.日的東亞古代傳統中,官僚或文人等上流階層人士們製作畫像,並用漢文為畫像題詞的文化是持續地流傳至今的文化。這種漢文文化題材‘畫像讚’大體上可以分為兩類,一類是題在他人畫像的贊,另一類是畫像的主人公在自己的畫像上題的‘自讚’。這樣分類的題詞實際上寫在畫像背景的空白處,雖然成為畫面的一部分,但是大多數流傳下來的不是寫在畫面上的贊,而是寫在特定作家的文集裡的贊。贊是基本上具有對特定對象讚美的性質的漢文文體。 宋代朱熹為自己的畫像題上了標題為<書畫像自警>的畫像自讚。從此500以年後,朝鮮的宋時烈也在自己的畫像上題上了標題為<書畫像自警>的畫像自讚。圍繞代表中國和韓國的儒學者的畫像,這兩種‘行為’和他們題上<書畫像自警>的作品,各自在文化史上具有什麼樣的意義呢?彼此之間具有什麼樣的影響關係呢?韓國的文人們是如何看待對東亞的文化和思想具有深遠影響力的代表學者-朱熹的畫像和與畫像相關的文學的呢?對此,通過‘朱熹畫像的容納史’乃至‘畫像的文化史’原稿來進行再構成,期待能夠重新發現在形象和文字兩個方面交錯的東亞文化交涉的面貌。 首先,關於朱熹的畫像認識,基於先驅者們的研究做一下簡單的介紹。包括程頤在內的宋代學者們對畫像的製作態度從表面上來看並不是很主動和肯定。畫像的製作由於和佛教式的祭儀有很大的關係,所以和佛教對立的扎根於性理學的宋代儒學者們在倫理上得到了各種排击,即使同時祭奠亡者的神主和畫像也會在儒學祭禮上引起關於是否違背了儒學法道的論爭。但是,這是表面上的論爭,在士大夫之間已經開始盛行畫像製作的11世紀,像朱熹或程頤之類的巨儒們也為士大夫文人們的畫像題詞畫贊,並記載在自己的文集裡,結果,畫像題材從根本上轉變成了非否定的折衝式的形態。 在維持儒學的名分和確立倫理方面,強勁的宋代儒學者們視畫像製作文化為部分的.折衝的,乃至一般士大夫文化的一部分,並可以享有的原因是什麼呢?這是由於畫像的製作和享有有助於儒學者們的修己的道德名分的緣故。對此具有代表性的事例要屬宋代具有代表性的儒學者朱熹了。他為自己的畫像題上了包括手記內容的自贊和銘,這為畫像在道學的見解上得到肯定的接受創下了先例。不僅如此,他還遺留下了自畫像,現存臺北故宮博物院中的<朱文公自畵像>,其背景上寫着他的有名畫像自讚之<書畫像自警>。朱熹並沒有停止於單純地邀請畫家訂做畫像上,他還親自試圖在自畫像不是很多的東洋繪畫文學方面題贊,從這點來看,在畫像製作和畫像的價值賦予方面,他是個非常積極的儒學者。 關於朱熹和畫像以及自畫像的題詞對朝鮮士大夫們的畫像認識和畫像享有文化產生了巨大的影響,從性理學的觀點來看,這為朝鮮文人們提供了可以正當化畫像效用的決定性的根據。根據朝鮮文集資料,朱熹的畫像在朝鮮各種書院的影堂中得到正式的祭拜,從教化的道上來看,這些如同士大夫們的個人崇拜對象或修身的追求者一樣,以屏風,竹子等形態來裝飾文人們的日常居所。朱熹的畫像被版刻和記錄在韓.中文集之中,是為朝鮮士大夫們所熟悉的形象,朱熹製作自畫像這一點和朱熹自畫像的盜版屬於朝鮮文人們所關心的範圍。朱熹的畫像自讚和他對自己的畫像所題的各種文體的字(如信等)在朝鮮士大夫當中也非常有名,他在成為了一個又一個被模仿的對象的同時,他還穩固地成為儒學者們對待自己畫像的態度,乃至姿態和行動樣式的標準。 雖然朱熹崇拜之風廣泛地影響了朝鮮所有的士大夫們,但關於畫像製作和享有文化,最積極地和有組織地模仿朱熹的集團是朝鮮的朱子格之宋時烈和繼承他的學統的老論學者們。原稿中從17世紀~20世紀初,老論系文人們的各種事例試圖證明這一點。 依據韓國的某個美術史學者,性理學的世界觀和儒教的祭禮從根本上被正式接受是在朝鮮初中期,金宗直, 趙光祖, 李珥等具有代表性的性理學者們不僅不製作畫像,而且甚至還出現了王的畫像暫時消失的現象。其實,比起人類的外形,更重視精神的性理學的立場不僅變得極其嚴格,而且還存在否或抑制畫像的意義和必要性的倫理因素。根據筆者的調查結果,朝鮮初中期,朝鮮時代的各種個人文集裡記載的畫像贊的整體數量也非常少,畫像贊創作的增加大概是從17世紀開始的。直到17世紀為止,像尹拯, 宋浚吉之類的當代巨儒們拒絕製作自己的畫像,或者因為弟子們的懇請而不得不接受的同時,同時代的宋時烈生前製作過好幾幅自己的畫像,還為他人的畫像題畫像贊和畫像自讚等,相對來說,他具有積極的畫像認識。宋時烈引用朱子的‘宗子接受兩個主’這句話,極力主張說同時尊奉木主和影幀不會對禮產生任何問題,完全模仿朱子的畫像自讚中的標題之<書畫像自警>的畫像自讚首次在韓國出現。依據朱熹的權威,從性理學的觀點來看,這是正當化畫像的效用的立場,這種畫像認識被他的後來學者們所繼承。繼承宋時烈學統的老論系文人們一般對朱熹的畫像和隨附其中的畫像自讚,以及朱熹為他人的畫像題的畫像贊都非常感興趣,宋時烈以後,<書畫像自警>標題自讚創作的傳統一直活躍地持續到19世紀。根據目前為止的確認情況,標題為<書畫像自警>的畫像自讚在朝鮮時代一共有9篇。第一部作品由宋時烈所作,第二部作品由繼承宋時烈學統的尹鳳九所作,19世紀的作家中大多數為老論系學者。如果在文淵閣四庫全書CD中檢索‘書畫像自警’的話,就可以得知該標題畫像自讚只有兩篇。中國歷代主要的禪文集中收錄的<書畫像自警>標題作品也沒有脫離這兩篇的範圍。據此,採用<書畫像自警>標題來題畫像自讚的傳統,和起源地之中國相比,容納地之朝鮮有可能更加活躍,積極地主導容納的集團正是以宋時烈為首的老論系文人們。於此類似,以包括為自我畫像題上手記內容的朱熹的<寫照銘>為典範,在作品的題目,形式,內容,構成和表現方面充分地模仿朱熹的先例對自我畫像起銘的風俗也是在19世紀以老論系文人們為中心形成的。 老論系文人們從17世紀到19世紀後半為止也以學派的形式對宋時烈的畫像題贊,並對此吟味和推敲,他們一直對宋時烈的畫像和畫像贊充滿興趣,並以該畫像為媒介創出了熱烈地崇拜宋時烈的傳統。在各個過程中,朱熹親自創作的畫像贊,或者以朱熹的畫像為對象由他人所題的畫像贊成為了重要的參考資料。朱熹為熟人的畫像所題的畫像贊,或者朱熹的後來學者們對朱熹的畫像所題的畫像贊被宋時烈的弟子和後來學者們完全借用至宋時烈題畫像贊的位置上,18~19世紀的一些老論系文人對這種意圖性的借用痕跡明確地給予了證明。老論系文人們在題宋時烈的畫像贊的同時,還試圖將朱熹畫像贊式的意趣也添加進去,將朱熹畫像形象的權威累加在宋時烈的畫像上,他們試圖通過代表整個學派的權威的視覺表象來樹立宋時烈的畫像。 根據原稿,特定人的畫像形象-宋時烈的畫像-是一個黨派-老論-的學統的象徵物,可以表現乃至具有權利的標誌意義的傳統時代畫像史的某個局面。此外,在朝鮮後期畫像史的發展中,全新地發現了朱熹的畫像和與畫像相關的文學是如何發展過來的,或者是如何根據朝鮮的狀況被並用的。韓.中士大夫階層所共有的儒學者們的畫像製作和畫像崇拜文化從朱熹的畫像到宋時烈的畫像為止,以及從中國的宋代到朝鮮的19世紀末為止,形成了大體上雖然不同,但內部卻存在着相互關聯性的兩國各具特色的畫像文化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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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 의원필담(醫員筆談)에 구현된 조일(朝日) 의원의 성향 연구 - 관심 분야와 화제(話題) 분석을 중심으로

김형태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5집 2012.06 pp.333-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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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통신사 의원필담에 드러난 조일 양국 의원의 관심 분야 및 화제에 따른 성향을 병인 진단의 관점, 약물에 대한 관심, 임상적 태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첫째, 병인 진단의 관점 상, 일본 의원들은 대부분 병인 진단에 있어 심병(審病)의 방법들을 골고루 동원하는 데 반해 조선 의원들은 주로 한 가지 방법에 의존하는 전통적 성향을 보인다. 즉, 일본 의원들은 표(表)에 드러난 정보와 기술의 종합을 통해 리(裏)에 접근해 들어가는 반면, 조선 의원들은 심병의 통찰력을 최대한 활용한다. 일본 의원들은 외부로 표출되는 병의 증상을 중시하여 그 정체성 규명에 주목했지만, 조선 의원들은 전통적 의학 이론에 입각해 병인에 접근해 들어가 정체성은 물론 병의 근원을 밝혀내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풍토병과 전염병에 대한 둘의 견해 차이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약물에 대한 관심에 있어서 조선 의원들은 임상의 전제 조건인 약물에 대한 관심이 소극적 성향인데 반해, 일본 의원들의 그것은 집착이 매우 강하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우선 의약(醫藥) 분업의 영향이다. 둘째, 약재 조사를 위한 일본의 사전 작업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본 의원의 질문은 박물학적 관심과 조선의 산물 조사를 위한 목적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에 조선 의원들은 시종일관 소극적 답변 태도를 견지했는데, 이는 중요한 정보 노출을 최대한 꺼렸고, 의약의 분업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약재를 포함한 각종 생물의 정체성까지 규명할 필요는 없었던 당시 조선 의원들의 경향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의원의 주된 관심 영역은 약재의 주산지와 제법(製法) 등인데, 이는 일본에서 생산되지 않는 약재를 대륙으로부터 입수하기 위해 사전에 계산된 의도가 반영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조선은 철저히 실증적 이론을 바탕으로 약재의 효과 등 실용성에 보다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셋째, 임상적 태도에 있어 당시 일본에서 송(宋)대 성리학과 깊은 관계에 있던 이(李)·주(朱) 의학은 에도시대 말에 고학(古學)이 대두되면서 그 세력이 감소되어 후세가(後世家)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고, 이른바 고방의학(古方醫學)이 새롭게 일어나게 되었다. 반면, 조선 의원은 전통 의학에 입각한 임상적 처방과 󰡔동의보감󰡕의 영향으로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처방을 중시했다. 통신사 의원필담에는 이상과 같이 동일한 직업을 가진 외부인의 객관적 시각이 담겨 있고, 그 문화사적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양국 의원들의 정체성과 사고방식을 비교적 소상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기록 비교를 통해 당대 동아시아 의학의 경향을 확인할 수도 있다.
In this paper, revealed in a written answer of the medical members[醫員筆談] to the Tong-sin mission[通信使] of Korea and Japan both countries' interests and topics according to the doctor examined the orientation. The criteria is diagnostic point of view of the pathogenesis, interest in drug, clinical attitude. The first, Japanese doctors to diagnose the cause of the disease pathogenesis and finding ways to use them. Japanese doctors symptoms of the disease seriously and pays attention to clarify its identity. But the Chosun[朝鮮] dynasty doctors find the cause of the disease should take full advantage of insights. Chosun[朝鮮] dynasty doctors of traditional medicine theory, the references should want to reveal the cause of the illness. The second, Chosun[朝鮮] dynasty doctors were reluctant attention to the drug. Japanese doctors were very interested about the drug, the herb are also included here. The cause of the first is the influence of pharmacists. Second reason is because medicinal purposes for the study of Japanese. Therefore, questions of the Japanese doctors associated with the natural history of Chosun[朝鮮] interests and herbs for the purpose of research is embedded resistance. On the other hand, Chosun[朝鮮] dynasty doctors was careful about information disclosure, medicines because there was no need to investigate. And the effects of medicines, including the important thought of the practicality. The third, Highly medicine[古方醫學] in Japan at that time took place in the medical world. It was popular in Japan at the time of the academic community is the effect of The old academic[古學]. Chosun[朝鮮] on the basis of traditional medicine doctors prescribe important clinical thought. And under the influence of 󰡔Donguibogam(東醫寶鑑)󰡕 easy to get around the center of the prescription drugs that were seriously. The medical members[醫員] to the Tong-sin mission[通信使] through a written answer of the 17·8th century Chosun[朝鮮] and Japan doctors learn more about the identity and way of thinking can be. In addition, by recording the time and customs trends in East Asian medicine may be examined. Because of this, a written answer of the medical members[醫員筆談] to the Tong-sin mission[通信使] has important cultural and historical va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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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俗謠 노랫말의 兩層性과 律格 意識에 關한 考察

朴慶禹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5집 2012.06 pp.363-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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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고려속요의 율격 체계를 노랫말의 구어적 성격과 문어적 성격이라는 언어적 양층성의 관점에서 살펴본 것이다. 고려속요의 언어적·율격적 양층성을 고려해야 하는 까닭은 속요 장르의 다잡성과 복합성 때문이다. 비련시체와 연장체의 공존, 합성 편사된 악곡의 존재, 중국 음악으로부터의 영향 여부, 각편마다 드러나는 율격적 이질성 등 독립된 하나의 장르로 묶이기에는 시 장르 내적 공통소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다. 기왕의 연구에서 율격논의의 전제로 삼고 있었던 것은 고려속요는 시문학이므로 서양 시의 율격론처럼 언어학적 기저자질에 의해 율격 현상을 파악할 수 있다는 암묵적 동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노래와 시의 층위는 다르고, 그 언어적 배열 방식 역시 다른 것이어서 노래가사인 현전 고려속요에서 시적 질서를 찾으려는 것은 원천적으로 잘못된 접근법이다. 말하자면 詩律과 歌律은 그 토대가 문어와 구어로서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고려속요는 그 원천인 민요가 구어에 바탕을 두고 있었기에 구어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 사악과 곡의 영향으로 인해 문어적 성격 역시 공존하고 있었다. 본고에서는 언어의 양층성을 고려하여 고려속요 노랫말의 성격과 구성의 遠因과 近因을 고찰하고 속요 율격론을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살폈다. 遠因으로는 외래악의 수용(詞樂과 散曲)을, 近因으로는 采詩의 전통과 전대 가요로부터의 영향을 들었다. 고려시기 詞와 散曲의 수입으로 인한 궁중악의 재편은 고려속요의 가사 배열에 간접적 영향을 주었다. 사와 산곡의 문어적 성격 또는 歌詩로서의 성격이 고려속요에 미친 영향은 사문학의 화려한 수사법과 작품 속 화자(여성)의 설정, 산곡의 연 구분과 합성편사 등을 생각할 수 있으며, 구어적 층위(歌詞로서의 성격)로 보았을 때는 사 문학의 다양한 가사 재배열 방식이나 산곡의 구어체 사용이 관련 있다. 큰 틀에서의 구어 층위(가사 층위)의 율격 의식이 반영된 부분과 문어 층위(歌詩 층위)의 율격 의식이 반영된 부분은 대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으로 채시를 통해 우리 노래에 대한 전통적인 관심과 노래를 한시와 동등하게 보았던 시가의식이 속요의 문어적 층위를 강화시켰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In this study, I searched the metric system of Goryeo Sokyo(高麗俗謠) from a verbal point of view which lyrics have two different layers, which are literary and colloquial. The reason why we should consider the verbal and the metrical layers of Goryeo Sokyo lies on its complexity and hybridity as a genre. Sokyo lyrics have no definite common factors as the same genre. We can find genre disaccord such as co-existence of stanza style and non stanza style, existence of reused lines from other lyrics, influence from china music and metric disagreement among works. I think the assumed premise in previous studies is that we can find metrical rule of Goryeo Sokyo by distinctive feature in linguistic as same as western metrics because sokyo is as same poetry genre as western poetry. But that is originally wrong theoretical approach in that the layer of songs is different from the layer of lyrics, and their verbal arrangements are also quite different each other. Because lyrics of Sokyo are metricized by the rule of song, not by verse. Namely, I say poetic meter is different from that of song. Lyrics of sokyo are not only based on colloquial language in which fork songs are produced, but also based on literary language influenced by Chinese old poetry(Sa(詞) and Sangok(散曲)). I researched indirect causes(influence of Sa(詞) and Sangok(散曲)) and direct causes(tradition of collecting fork songs and influence of previous songs) what had influenced to formation of lyric and its characteristic considering of verbal layers, and then how to approach to metrics of sokyo. Rearrangement of court music caused by imported chinese music(Sa(詞) and Sangok(散曲) in goryeo(高麗) dynasty had influenced the lyric arrangement indirectly. Some literary features of Sa(詞) and Sangok(散曲) had affected Sokyo such as expressive rhetoric in Sa(詞), putting stanza and reuse of same line in Sangok(散曲). On the other hand, tradition of collecting fork songs and consciousness of the equal value of their own poetry for chinese poetry would reinforce literary language layer of So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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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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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가사 필사본 <님낭자가랴>에 대하여

구사회, 김영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5집 2012.06 pp.399-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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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자료 한글필사본 <님낭자가랴>는 사대부가 여인 임낭자의 삶을 노래한 소설체 형식의 가사이다. 두루마리본으로 크기는 가로 791cm, 세로 26cm이며, 본문은 무려 352행, 글자 수는 7,000여 자에 달하는 장편가사이다. 말미에 ‘신 구월 증양일 등셔랴’라는 필사 기록이 있는데, 본문에 나오는 ‘우포’라는 어휘를 통해서 구체적인 시기를 가늠할 수 있다. 추정되는 필사 시기는 1884년 우정총국 설립 이후에 해당되는 신사년, 즉 1941년 9월 9일이다. <님낭자가랴>는 문학적으로 가사의 성격과 서사구조의 소설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독창적인 작품이지만, 국어학적으로도 경상도 지역의 방언의 요소를 풍부히 내포하고 있어 문자생활 연구에도 일조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당시의 문자 활용과 향유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어휘의 표기 형태와 음운, 문법적 특징들을 고찰하였다. 그 결과, 1940년대에도 전통적 표기법과 현대 한글맞춤법과 서로 공존한 채, 필사ㆍ유통ㆍ향유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다양한 경상도 방언의 실태를 확인하였다.
The new material Hangul-gasa manuscript is a nonfiction styled gasa which describes the life of Nimnangja(임낭자), a laday from a Sadaebu(士大夫) family. It is a scroll 791 centimeters wide and 26 centimeters long. The text of this full-length gasa contains nearly 352 lines and 7,000 words. With the transcribed passage '신 구월 증양일 등셔랴' at the end of the text, the word 'Upo(우포, 郵票)' can also be an evidence to estimate the specific time. The estimated period of this transcription is Sinsa(辛巳), Sep. 9, 1941, the year after the foundation of Ujeongchongguk(Centeral post office) in 1884. is a creative work which features the descriptive structure of novel as well as the characteristics of gasa in literature, it, moreover, is full of the elements of Gyeongsang dialects in Korean linguistics that is a contributing factor to the study of Korean characters in life. In conclusion, this study has been focused on the utilization and enjoyment of letters of those days and studied in its word notations, sounds, and grammatical characteristics. Furthermore this work has verified that traditional notations and modern orthography coexisted, at the same time, being transcribed, distributed, and enjoyed even in 1940's and identified the actual status of Gyeongsang dial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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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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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朝 외교활동과 조선여성시문의 편찬 및 전파

張伯偉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5집 2012.06 pp.43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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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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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17

휘보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5집 2012.06 pp.471-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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