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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상고전연구 [Yeol-sang Journal of Classical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열상고전연구회 [Society of Yol-Sang Academy]
  • ISSN
    1738-2734
  • 간기
    격월간
  • 수록기간
    1988~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한국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810 DDC 810
제57집 (14건)
No

기획논문 : 연민선생의 문체론과 연암 연구

1

[기획의도] 연민선생의 문체론과 연암 연구

허경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7집 2017.06 p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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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원

2

淵民 李家源의 文體論과 한국문학의 가치

안장리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7집 2017.06 pp.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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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이가원의 문체론에 대한 논문과 1952년에서 1968년까지 집필한 한국문학 관련 글을 엮은 󰡔韓文學硏究󰡕의 분석을 통해 이가원의 문체론과 한국문학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밝히고자 하였다. 문체론에 대한 논문을 분석한 결과 이가원은 중국과 한국의 문체분류를 통시적으로 살핀 뒤 자신의 독자적인 15가지 문체를 제시하였다. 근대를 기점으로 舊派와 新派로 구분하고 舊派에서는 󰡔文選󰡕의 39가지 문체, 󰡔文心雕龍󰡕의 20가지 문체, 󰡔經史百家雜抄󰡕의 11가지 문체 등으로 점점 항목은 적어지더라도 포괄 범주가 넓어짐을 평가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傳奇小說이나 小品文 등이 제외된 한계를 밝혔다. 新派에서는 龍伯純, 梁啓超, 蔡元培 등의 문체론에 비해 施畸의 문체 분류가 독자성이 있다고 보았고 이가원 스스로의 독자적인 15가지 문체 분류 및 설명을 제시하였다. 이 설명에서는 조선의 科體詩를 문체의 하나로 설정하는 독자성을 보였다. 그러면서 이가원은 문체 분류는 시대적 변화와 문의 체제를 복합적으로 반영해야 된다고 하였고, 문학은 ‘역사에 남을 가치가 있는 문채가 나는 글’이어야 된다고 하였다. 󰡔韓文學硏究󰡕에서는 한국문학에 대한 중국의 영향과 한국의 독자성 고찰에 주력했는데 「鄭瓜亭曲」이나 󰡔春香傳󰡕 등 한국의 대표적인 작품에서의 중국의 영향을 밝혔으며, 아울러 申光洙의 문학에서는 東詩, 樂府, 艶體詩, 傳奇小說 등이 한문 작품이지만 한국의 독자성을 부각시켰음을 평가하였다. 본고에서는 이가원이 한문학을 반민족적 행위로까지 보던 시대에 문학연구자로 활동하면서 文史哲을 아우르는 문의 개념을 견지하여 문체 분류를 하고 문자에 구애받지 않고 한국문학을 설명할 수 있는 문체를 분류하였으며, 분과적 세태에 맞게 소설, 시가 등의 연구를 수행하고 한시와 소설 등에 있어서 중국의 영향을 얘기하되 그래서 중국과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켰으며, 중국과 차이나는 점을 열등한 것으로 보지 않고 독자적인 것으로 평가하여 한국한문학을 문학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가치 있는 존재로 부각시켰다. 나아가 우리에 맞는 새로운 문체를 창출하는 문학을 특별히 거론하여 우리문학의 가치를 높이려 한 것으로 평가된다.
This study set out to investigate Lee Ga-won's concept and value of literature by analyzing his papers on stylistics and his Study on Korean literature, which included texts about Korean literature in 1952~1968. The analysis results of his papers on stylistics show that he examined the classifications of writing styles diachronically both in China and Korea and proposed his 15 independent ones. He divided the writing styles into the Old and New Schools around the modern times and found that the number of items decreased in the Old School from 39 classifications in Munseon through 20 classifications in Munsim- joryong to 11 classifications in Gyeongsabaekgajapcho with the encompassing categories expanding. He also added that there were limitations around the exclusion of biographical novels and vignettes in spite of the development. He believed that Sigi's classification of writing styles had independent quality compared with the stylistics of Yong Baek-sun, Yang Gye-cho, and Chae Won-bae in the New School, providing his own independent classifications of writing styles and their explanations, in which he claimed independence for his classifications by setting the Gwachesi of Joseon as a writing style. He maintained that the classification of writing styles should reflect the changes of the times and the systems of sentences in a complex manner and that literature should contain "beautiful coloring worth a mention in history." In his Study on Korean literature, he focused on the influence of China on Korean literature and the independence of Korea in literature and shed light on the Chinese influences in some of Korea's representative works including Jeonggwajeonggok and Chunhyangjeon. He also assessed that Shin Gwang-su highlighted the independence of Korean in literature despite his works in Chinese including children's poems, Akbus, Yeomchesis and biographical novels. In short, the present study demonstrated that Lee Ga-won classified writing styles by keeping his concept of literature to encompass literature, history, and philosophy as a literature researcher in the times when Chinese classics were regarded as anti-national activities and proposed the classifications of writing styles to explain the Korean literature regardless of characters. He also did research on novels and poems according to the fragmented conditions of society and talked about the influence of China on Korean poems and novels in Chinese. He highlighted that Korean literature was different from Chinese literature and assessed the difference to be independent instead of inferior to Chinese literature, arguing that it expanded the literary diversity. Furthermore, he made a special discussion about the literature of creating a new writing style fit for the Korean people, trying to raise the value of Korean literature.

6,000원

3

연암 문학에 대한 당시대인의 인식 - 이재성의 「제박연암문」을 중심으로 -

정재철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7집 2017.06 pp.3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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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 이가원 선생이 단국대에 기증한 연암저작 필사본 중에는 그 존재가 처음 밝혀진 『부록』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연암의 친구, 인척, 제자 등이 지은 「제문」 4편과 「만장」 34제 131수가 수록되어 있다. 본고에서는 연암의 처남인 이재성이 지은 「제박연암문」을 중심으로 연암 문학에 대한 당시대인의 인식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는 이 글에서 연암 문학의 특징은 사물에 의해 촉발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방식으로 기이함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 그는 연암이 구사한 寓言과 諧笑는 궤변이나 非情한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이 새로움과 기이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하였다. 연암이 구사한 우언의 문학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로 저자 미상의 「열하일기서」가 있다. 저자는 이 글에서 『장자』의 우언은 헛된 이야기를 황홀하게 늘어놓은 궤변에 불과하지만, 『열하일기』의 우언은 治亂과 利用厚生의 도리를 담론한 실용적인 글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연암이 구사한 해소의 문학적 의미에 대해 설명한 글로 연암의 아들인 박종채가 지은 『과정록』을 들 수 있다. 박종채는 이 책에서 연암이 해소가 섞인 순정하지 못한 문체를 구사했다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목적으로, 연암이 열하 지역을 지나며 체험한 사물의 情態를 곡진하게 묘사하기 위하여 다수의 諧笑를 구사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재성은 「제박연암문」에서 연암이 “기뻐서 웃고 성내어 꾸짖는 것이 타고난 본성[天眞]을 드러냈다.”고 하였다. 당대 사람들은 성정의 바름[性情之正]을 추구하는 재도문학에 기초하여, 위와 같이 연암이 기쁘고 성난 감정을 여과 없이 문학으로 드러낸 것은 성정의 바름을 잃은 것이라고 비방하였다. 이와 달리 연암은 이와 같이 성정의 바름만을 강조하는 것은 사람의 감정이 왜곡될 수 있다고 비판하고, 타고난 본성에 따라 사물에 의해 촉발된 감정을 여과 없이 표출하였다. 이로 보아 이재성이 위의 글에서 연암 문학의 특징으로 제시한 ‘天眞’은 ‘性情之正’으로 대표되는 재도문학과 차별화된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것으로 생각된다.
Yeonmin, Gawon Lee donated some copies of Yeonam's writings to Dankook University. Among the books, The Appendix was included, in which 4 pieces of "memorial addresses" and 131 pieces of "funeral odes" categorized by 34 titles written by Yeonam's relatives, and disciples were printed. This study examined the contem- poraries' awareness about Yeonam's literature focused on Jueyeonammun題朴燕巖文 written by Jaeseong Lee李在誠, Yeonam's brother-in-law. He emphasized that the characteristic of Yeonam's literature was to pursue eccentricity and originality by the way of disclosing his emotion excited by things without filtering. Therefore, he understood Yeonam's freely used allegories and humor were not sophistry or cruel stories, but came out in the process of pursuing these eccentricity and originality. In order to understand the literary significance of Yeonam's eccentricity, Yeolha- ilgiseo熱河日記序 of unknown authorship could be helpful. In the writing the author asserted the allegories in Zhuangzi莊子 were nothing but sophistries that ornately arranged vain stories, but the allegories in Yeolhailgi熱河日記 were very practical stories discussed the ways for peace reigns and social welfare. Another book which explained the literary meaning of humor Yeonam freely used is Goajeolok過庭錄 written by Jongchae Park, Yeonam's son. For the purpose of clearing his father's charge of using impure literary style, he asserted in his book that Yeonam used a lot of humor to euphemistically describe the stillness of things he had experienced while passing Yeolha熱河 area. Jaeseong Lee insisted in his book, Jueyeonammun that Yeonam had revealed his real nature by expressing joy and anger with laughter and reproach. Based on morality literature, the contemporaries with Yeonam criticized him for losing the righteousness of nature by betraying delighted and angered emotions without filtering through literature. But Yeonam claimed that Just emphasizing the righteousness of nature could distort emotions and exposed his feeling which was touched off by things with the true character. In this regard, the innocence which Jaeseong Lee presented as the characteristic of Yeonam's literature seems to contain symbolic meaning differentiated from morality literature that considered the righteousness of nature to be their central idea.

7,300원

4

安義縣監 朴趾源이 보여준 북학의 실천과 治績 - 연민 선생의 북학에 관한 연구와 연관선상에서 -

김동석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7집 2017.06 pp.6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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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연민 선생의 북학에 대한 연구를 살펴보고, 나아가 연암 박지원의 安義 현감 시절에 주목하여 그의 치적과 작품 활동을 북학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기 위하여 작성되었다. 연암이 북경과 열하를 다녀오고 나서 강조한 북학 사상은 안의 현감으로 와서 구체적인 건축물이나 樓臺의 명칭, 농기구 같은 것에서 나타난다. 하풍죽로당과 백척오동각, 공작관 같은 건축물이나 연상각 같은 현판의 당호로 표현된 것이 있었고, 颺扇과 織機, 龍骨, 龍眉, 水轉, 輪碾 같은 농기구도 있었다. 북학과 관련된 행동은 안의현감 시절에 집중적으로 나타난 현상으로 박지원이 면천군수와 양양부사로 있으면서 보여준 행적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이 시기 연암은 『열하일기』 같이 자유분방한 글쓰기 방식에서 벗어나 공문서 같은 실용문에 치력하던 때이기도 하다. 정조는 연암의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덕무와 박제가 등이 지은 『武藝圖譜通志』와 이덕무가 지은 『御倭諸論』을 보고 연암의 문체와 같다고 지적하였다. 이어 정조는 남공철을 통해 연암에게 순정한 글을 바치라는 명령을 한다. 정조의 지적에는 천주교에 빠져있던 남인들이 벽파의 공격을 받게 되자 정조는 남인들이 천주교에 빠진 것을 지적하는 동시에 노론의 문체를 지적하여 당파의 균형을 취하려고 했다는 정치적인 배경도 있었다. 이를 계기로 현감으로 있던 연암은 그동안 『열하일기』 같은 편에서 『장자』를 인용하거나 백화체를 사용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점자 주자의 서간문이나 陸宣公의 奏議 같은 글을 탐독하여 문체도 일신하게 된다. 정조가 연암의 문체를 문제 삼고 난 후 연암은 그동안 지은 자신의 저술을 정리하여 「연상각선본」과 「공작관문고」라는 책의 卷으로 정리하여 국왕에게 받치려고 했다. 결국 이 편명은 훗날 『연암집』이 편찬될 때 1권, 2권, 3권이 된다. 안의현감 시절 단편의 글은 40여 편에 이르고 면천군수 시절에는 10여 편에 이른다. 그리고 1년도 채 못 되는 양양부사 이후의 시절에는 겨우 몇 편에 그쳤으니 사실상 작품생활은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안의현감시절의 글 중에는 감사의 부름을 받고 獄事에 관하여 전말을 기록한 글이 있으며, 안의현의 현안 문제를 다룬 글로 함양군수와 주변인들에게 준 편지가 있다. 그리고 안의현 관사의 주변을 정돈하고 각종 건축물의 記文을 남기고 있다. 아전들이 받드는 郭侯에 대한 記文도 남기고 있어 안의현감 시절 연암 저술 활동을 살필 수 있다. 연암이 안의현감으로 있으면서 남긴 행적은 실학의 실천이라는 시각에서 살펴보았다. 함양에 홍수의 피해가 발생하자 안의현감으로서 사람을 동원하여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한 과정, 공덕비를 마다하는 청렴, 해학이 있는 좋아는 매력 같은 것을 살펴보았다. 특히 안의현에 보관되었던 저치곡 9,000석을 확보하고 호조에 보내어 심이지가 혜경궁 홍씨를 위한 잔치에 사용할 수 있게 도운 것은 연암의 중요한 행적 중의 하나이다. 안의현감시절 연암을 살펴본다는 것은 그의 전체 작품생활을 이해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본다. 그가 『열하일기』와 같이 호방하고 자유로운 글쓰기 방식에서 실용문 위주의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바로 안의현감시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정조는 연암의 문체를 거론하였고, 함양군수 윤광석은 연암이 오랑케 풍속을 따라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연암은 안의현감을 거치면서 내외적으로 자신이 구현하려고 한 북학사상이 현실적인 난관에 봉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정조에게 순정한 글을 지어 바친 것은 안의현감 시절부터 시작하여 면천 군수 시절에 와서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면천 군수 시절 「課農小抄」, 「서이방익사」, 「沔陽雜錄」 같은 편이 완성되었지만, 이중 「과농소초」와 「면양잡록」은 이미 안의현감 시절부터 구상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안의현감 시절의 연암은 글쓰기 방식으로서의 문체와 필생의 역점사업이었던 북학이 쟁점으로 떠올랐던 시절이었다. 안의현감 시절을 독립시켜 살펴본다는 것은 이런 변화의 추이를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연암 작품의 창작연대와 배경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은 시공간의 영향을 받는 연암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not only to examine I Kawŏn’ Northern Learning (Pukhak, 北學) but also to evaluate Pak Chi-won’s works related with his experience in envoy to Qing (Yŏnhaeng 燕行) an official trip that made Pak Chi-won to emphasize Northern Learning. The experience in Qing le Pak to transform his thought and it was represented in his nomenclature of architectures and farming tools, e. g. Hap’ungchukno dang 荷風竹露堂, Paekch’ŏkodong kak 百尺梧桐閣, Kongjak guan 孔雀館 for architectures, and yangsŏn 颺扇, gikki 織機, and yongkol 龍骨 for farming tools. His experience of Anyi county magistrate (Anyi hyŏn’gam 安義縣監) is significant in that most of his activities were deeply rooted in Northern Learning comparing with his other government services, such as Yŏnch’ŏn magistrate (Yŏnch’ŏn kunsu 沔川郡守) and Yangyang governor (Yangyang busu 襄陽副守). During his government service in Anyi, Pak Chi-won devoted his times and efforts to horning his practical writings skills, thus trying to escape from his ordinary, wild literary style-so-called “Yonam’s literary style (yonamch’e 燕巖體).” Diary of Yorha (Yŏrha ilgi 熱河日記), a representative work of Pak‘s, were full of yonamch’e and other intellectuals, I Dŏkmu and Yu Tŭkgong, paid their attention to the unique literary style. King of Chŏng was also interested in yonamch’e. He, however, criticized Pak’s literary style, pushing him to write in different way; in other words, he commanded Pak to write an official document with simple structures and traditional word usages. King of Chŏng’s condemnation on literary style was related with his political purpose to keep a balance between power of Southerners (Namin 南人) and power of Westerners (Sŏin 西人). For this reason, Pak Chi-won pored over epistolary literature (sŏganmun 書簡文) or model essays for official document and to reform his literary style; given the fact that his former literary work, Diary of Yorha, ofen cited the lines of Zhuangzi 莊子 and employed modern chines style (paekhuach’e 白話體), this change generated a big difference. The change of his literary style was reflected on Yŏnsangkak sŏnbon 煙湘閣選本 and Kongjakguan mungo 孔雀館文稿 which were released during his periods of Yŏnan county magistrate. His writings in that periods, illuminates his diverse activities; he wrote relatively many essays in Yŏnan compared to other government service periods. Specifically, most of his activities were related with Silhak 實學. The most conspicuous record of Pak is that he acquired the surplus grains stored in Anyi county and sent them to Ministry of Taxation (Hojo 戶曹), thus helping to utilize the redundant grain for Hyegyŏnggung Hong Ssi. To sum up, his activities as Yŏnan county magistrate provide meaningful, various evidences to grasp his writings in Yŏnan county; given the fact that he wrote more writings- not with formal, pragmatic style but with wild, unconstrained style, in Yŏnan county than in other places, his periods of Yŏnan county magistrate is important. In this respects, this paper gives better understanding not only on the change of his writings but also the transformation of his thoughts.

7,200원

일반논문

5

『朝鮮通信總錄』의 구성과 편자에 관한 고찰

정영실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7집 2017.06 pp.97-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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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 다루고 있는 『朝鮮通信總錄』은 일본 국립 공문서관 소장본의 10권 10책, 약 1650여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통신사 관련 자료군으로 1607년 정미사행(1차)부터 1763년 계미사행(11차)까지 에도 막부의 통신사 대응 변천사를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는 문헌이다. 그러나 와분(和文)과 소로분(候文)이라는 일본 특유의 기록 방식으로 인해 분석에 어려움이 따르고, 편찬자에 대한 학계 차원의 합의 부재로 인해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 조차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본 연구는 먼저 『조선통신총록』에 대한 소개를 통해 수록 자료에 대한 가치를 밝히고, 편자로 거론되어 온 아라이 하쿠세키(新井 白石)와 린케(林家)에 대하여 그 가능성에 대해 고찰하였다. 결국 『조선통신총록』은 린케 중심의 통신사 관련 문서집이며, 조선통신사 파견이 일본의 일반 백성들에게 미친 영향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평가할 수 있겠다.
Joseon Tongsinsa Chongrok(朝鮮通信總錄) is a literature material to understand the history of changes to the Edo shogunate's responses to the Joseon Tongsinsa(朝鮮通信使) from its first envoy trip in 1607 to its 11th one in 1763, consisting of ten volumes and ten books. This group of Joseon Tongsinsa materials is expansive with approximately 1,650 pages. There has been, however, no active research on it even in Japan as well as in the South Korean academic circles due to the difficulty of data analysis according to the unique Japanese recording techniques called Wabun(和文) and Soroubun(候文) and the uncertainty of its compiler. Rinke(林家, Hayasi Family), who is likely to be the compiler, is known as part of the school that was devoted to the establishment and succession of Zhu Xi studies during the Edo period. It is, however, not known to the public that they supervised exchanges between the Joseon Tongsinsa and the Japanese literary men and were in charge of censoring Pildam(筆談) Changhwa(唱和). Responsible for reacting to the Tongsinsa, Rinke must have been able to collect data about the Joseon Tongsinsa naturally. This study thus set out to introduce the content of Joseon Tongsinsa Chongrok and discuss the reasons why Rinke should be considered as its compiler

6,700원

6

고전문학콘텐츠의 발전 방향에 대한 연구 - 증강현실과 춘향전을 중심으로 -

손종흠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7집 2017.06 pp.12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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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빅데이터(big data), 유비쿼터스(Ubiquitous), 비콘(beacon), 사물인터넷(IOT) 등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문명의 발달이 본격화하면서 문화적 패러다임이 바뀌게 되고, 문학예술에 대한 향유방식 또한 크게 변화화고 있다. 문학예술에 대한 향유는 가락과 텍스트 등을 중심으로 하는 가창, 음영, 낭송, 독서 등을 통해 감상하고 즐기던 종래의 방식을 벗어나 이것들을 하나로 아우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가상현실과 실재현실을 결합한 증강현실 기법을 통해 종합적인 정보를 입체적이면서도 체계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쪽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은 문화의 범주에 속하므로 문화적 패러다임이 변하면 그것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시대와 이념이 바뀌게 되면 과거의 것은 사라지고 새로운 장르의 문학이 발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명의 발달이 문화의 변화를 낳고, 문화의 변화가 문학의 향유방식을 바꾸는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문화 전반에 나타나는 이러한 변화는 문학과 그것의 향유에 대한 종래의 생각과 방식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문학에 대한 향유가 종래에 행해졌던 텍스트 중심에서 벗어나 종합적이면서도 입체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미 서서히 그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즉, 문화와 문학에 대한 요구는 수요자가 필요로 하는 것들은 무엇이든 종합적이면서도 입체적인 방식으로 표현되는 형태여야 할 것이며, 첨단기술로 무장한 다양한 도구를 통해 수용자에게 맞춤정보 방식으로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그것은 수용자에게 외면당하게 될 것이며 퇴보하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20세기 말에서 21세기에 이르는 시기가 인문학의 위기로 일컬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학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중에서도 어렵게만 느껴지는 고전문학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어떻게 살려낼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고전문학은 민족문학의 뿌리로 현대와 미래의 문학을 지탱하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민요와 설화 등에서 출발하여 가창, 음영, 낭송, 독서 등의 방식으로 향유되던 문학은 새롭고 발전된 형태의 콘텐츠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 바로 지금인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커다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발전된 문명의 기술과 변화한 문화적 환경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를 창조해나는 길 밖에 없다. 그리하여 현재 가장 합당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증강현실이다. 고전문학은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적 증거물이나 유적 등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작품과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면서 첨단기술을 통해 재현되는 가상현실과의 융합을 통해 종합적이면서도 입체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고, 사람들은 증강현실의 기법을 통해 체험되는 정보에 대해 한층 더 많은 관심과 흥미를 갖게 될 것이다. 작품의 생성공간이나 관련 유적 등이 존재하는 사물현상과 영상, 텍스트, 음성정보 등을 보여주는 가상현실을 결합하는 방식의 문예콘텐츠야 말로 고전문학이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줄 것으로 확신한다. 본 논문은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춘향전을 대상으로 하여 증강현실 콘텐츠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In the 21st century, as the development of digital civilization based on big data, ubiquitous, beacon, and the Internet of Things (IoT) has become full-fledged, the cultural paradigm has changed as well as the way literature and art are enjoyed. Enjoying literature and art is moving away from the traditional way through singing, reciting, reading and so forth centered on rhythm and text into more broadened way of enjoying them altogether. This is because the augmented reality technique combining virtual reality and actual reality is changing the way of collecting comprehensive information in a stereoscopic and systematic manner. Literature belongs to the part of culture, so if the cultural paradigm changes, literature will be influenced by it. This is why the old literature disappears and a new genre of literature rises as the times and ideologies change. The development of civilization induces a change of culture, and, in turn, this produces a chain reaction that transforms the way of enjoying literature. This change in culture as a whole requires the replacement of traditional approaches to and ideas about literature and its enjoyment with new ones. It shows that literature should be enjoyed in a comprehensive and stereotypical way, away from the conventional text based way, and the trend is already gradually moving in that direction. In other words, the requirement for culture and literature for whatever the consumer needs should be expressed in a comprehensive and stereotyped manner, and must be transmitted to the audience through customized information system with various tools equipped with advanced technology. If not, it will be ignored by the consumers, and be degenerated or vanished in the end. This is reason why the period from the late 20th century to the 21st century is called the crisis of humanities. Literature seems to have a similar situation, and so it is important to consider how people can be more attracted and interested in classical literature though it seems to be quite difficult. This is because, as the root of national literature, classical literature is the driving power supporting and developing modern and future literature. Literature began with folksongs and fables, and was enjoyed in such ways as singing, reciting, and reading and now is a time when this literature must be reborn into new and improved forms. The only way to overcome the difficulties of humanity crisis is to create new forms of content while actively accepting developed civilized technologies and a changed cultural environment. As a result, augmented reality emerges as the most reasonable solution at present. Classical literature is quiet often related to realistic evidence or relics. Consequently, it is possible to provide comprehensive and stereoscopic information through mergence with the virtual reality, which is directly related to the artwork and reproduced through advanced technology, and people will become more interested in information learned through augmented reality techniques. I am confident that classical literature will provide a stepping stone for a new move into the way of combining the literary phenomena where the creation space of works and related relics are present, and virtual reality where visuals, texts, and voice are displayed. Based on this idea, this paper presents the rationale for the augmented reality contents for Chunhyang-jeon.

7,600원

7

多田正知 가집 연구의 방향 고찰

유정란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7집 2017.06 pp.159-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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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30년대 가집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연구되었는지 살피기 위해 재조일본인 학자 多田正知의 성과를 고찰했다. 다다는 1930년대 한국에 거주하면서 조선 문학에 관한 약 30여 편의 논문을 제출했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다다의 가집 연구에 대한 학계의 관심은 전혀 없었다. 이에 본고에서는 다다의 연구 성과를 검토하기 위해 1930년대 가집연구 동향을 우선 살폈다. 이 시기 연구 동향은 기존의 가집을 단순히 재출판하는 움직임 또는 고시조 집성 및 앤솔로지 발간, 마지막으로 이를 바탕으로 한 연구비평으로 집약된다. 다다의 가집 연구는 동시대 조윤제의 가집 연구에 비해 훨씬 더 실증적이고 체계적인 방법론을 기초로 하고 있다. 조윤제의 가집 해제가 단편적 사실을 나열하는 수준에 그쳤다면, 다다는 일본 제국주의의 실증주의 학문경향에 따라 일종의 가집사를 편성하려고 했다. 나아가 이러한 연구는 조선문학 부재론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선 문학의 우수성을 발견하면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더 가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중 가집이 다다의 연구 활동에서 가지는 의미는 바로 노래로서의 시조에 대한 관심이다. 다다는 이병기, 안확, 함화진과의 교류를 통해 조선의 가곡문화를 연구했다. 즉 그는 독서물인 가집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다는 가창의 현장에서 활용되는 가집에 보다 더 주목한 것이다.
This article is for considering how a collection of poems in 1930s underwent canonization by looking up the research results of Tada Masatomo, the Japanese scholar residing in Joseon. Tada Masatomo had submitted around 30 theses about Joseon Literature while residing in Korea. Nevertheless, there has been no interest so far by academic world. Hence, this article has inspected trend of poem research in 1930s to examine the research results of Tada Masatomo. The trend of poem research at those days was just republishing the existing collections of poems, collecting classic Sijo, publishing anthology, and finally led to criticism of research of the time. The poem collection research of Tada Masatomo was based on much more empirical and systematic way than Jo Yunje in the same period. The remarkable point in his research activities was that he considered the collection of poems as a song. In other words, he did not take poem collections as reading materials but paid attention to the poem collections as singing materials on the spot. In short, the research of poem collection by Tada Masatomo kept a close eye on musicality and literary value of Si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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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강태공전 : 초역(抄譯) 현상을 통해 본 방각본 소설시장의 일면

주형예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7집 2017.06 pp.187-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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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소설시장 성장의 주요한 조건이다. 중국소설은 조선의 방각본 소설시장에서 의미 있는 작품 공급원이었다. 조선에는 중국소설을 그대로 읽는 독자와 번역해서 읽는 독자, 번역․편집해서 읽는 독자가 있었다. 방각본 소설시장의 독자는 세 번째 부류에 해당된다. 이 논문에서는 방각본 소설시장에서 중국소설을 번역하고 편집하는 양상에 주목하였다. 중국소설 「봉신연의」는 17세기 경 「서주연의」로 완역되었고 대략 19세기에 이르러 「강태공전」으로 초역되었다. 초역된 「강태공전」은 「서주연의」와 다른 경로로 번역된 것으로 보이며, 발췌된 부분의 서술은 현존하는 「봉신연의」와 더 친연성을 보이기도 하였다. 초역된 「강태공전」을 작품 구성 자체는 세책본 유통 단계에서 이루어져서 편집․판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소설시장에서 표준화된 텍스트로 기능한 것은 방각본 「강태공전」이었다. 「강태공전」은 「봉신연의」의 가장 주요한 구성 개념 ‘봉신’을 제거하고 인물의 일대기로 재편했고, 「봉신연의」의 방대한 에피소드 중에서 조선의 시정에서 공유하고 있는 가족 제도나 상식 윤리를 기반으로 하여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선택하였다. 이러한 현상을 통해서 볼 때, 방각본 소설시장에서 이루어지는 번역은 ‘자기 지식’의 범주 내에서 이루어진 시도였다. ‘자기’의 외연을 넓히고 객관화시키는 번역의 이상(理想)을 확연하게 이루지는 못 했지만, 자본과 인재 등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시정의 지식을 형성하는 미미한 행보를 보였다. 이 논문에서는 「강태공전」 초역 분석을 통해, 방각본 소설이 줄거리 중심의 편집이라는 기존 논의를 심화시켜 지식을 편집하고 구성하는 양상을 구체화하고자 하였다. 방각본 소설에서 새로운 지식을 수용하면서 기존 시정에 유통되던 지식의 성격을 드러냈다. 이 작품 형성 과정에서 드러난 ‘자기’는 시정에서 유통되었던 기존 지식, 가족 관계 경험, 효의 윤리 정도였다. 소설 상품으로서 「강태공전」은 중국소설에 대한 초역을 통해 강태공에 대한 일대기를 구성하는 성과를 냈으나 서술기법을 시험하거나 창의적 영역을 구축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소설시장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낸 점은 분명하지만, 한계 또한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The important element in growth of novel market is steady production of new contents. In the block print edition novel market, Chinese novels are significant contents sources. Chinese novels’ readers in Joseon Dynasty are three groups. The first group read novels in chinese letters, the second group read novels in translated Korean alphabet, and the third group read in selected translated Korean alphabet. The readers of the block print edition novel market are the third type. In this study focused background of translation in Chinese novels in the block print edition novel market. Chinese novel 「Hoshin Engi(封神演義)」 made a complete translated in 「Seojooyeon(西周演義)」 around the 17th century and was translated selected passages in 「Kang- tae-gong-jeon(姜太公傳)」 in the 19th century. The selected translation 「Kang-tae- gong-jeon(姜太公傳)」 is not the same source with 「Seojooyeon(西周演義)」, instead is similar to 「Hoshin Engi(封神演義)」. But the selected translation 「Kang-tae-gong- jeon(姜太公傳)」 is made of the work not in the phase of the block print edition novel but in the phase of circulated books probably. 「Kang-tae-gong-jeon(姜太公傳)」 removed the word “封神(:set up god)” and reorganized one man’s life story, and chose episodes being comprehensible under the family system and experiences of their lives. Through the phenomena, we knew the translation in the block print edition tried within self-knowledges. They cannot achieve ideal that objectify and broaden ‘self’ but in spite of the lack of resources-capital, writers, publishers etc.-they showed process of producing street knowledges. This study showed the criteria in editing and composing knowledges. When they accept new knowledges, they chose them as existing their criteria. In the process of selected translation, they identified themselves. Composing this work, they showed street knowledges, family life, filial duty roughly. As a result, the product 「Kang-tae- gong-jeon(姜太公傳)」 cannot try narrative techniques, cultivate original ideas. It is quite evident that their novel market makes new contents but revealed their limitations as well.

7,600원

9

구월산 삼성사 복원 과정을 통해 본조선 초기 사대부의 신이인식 - 황해도 기이담론 연구의 일환으로 -

박성지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7집 2017.06 pp.22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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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진행된 조선시대 기이담론 연구는 주로 귀신담에 국한되어 있었으며, 성리학과 이단(무속, 불교, 도참 등), 혹은 사대부와 일반 백성이라는 양 축을 전제한 후, 그 담론적 경합을 다루고 있다. 기이담론의 연속성과 담론 구도의 다각화를 위해서는 황해도 지역을 무대로 한 기이담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고의 연구대상은 세종부터 성종 초에 이르는 기간 동안 황해도 구월산 삼성당 복원을 둘러싸고 진행된 담론이며, 이를 통해 유교적 합리주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대부 신이인식의 특징과 의미를 규명하고자 했다. 아울러 사대부와 뚜렷이 구별되는 왕실 신이인식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했다. 논의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황해도 문화현 문화 유씨 가문의 유관, 유사눌이 세종에게 올린 상서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사대부가 민간담론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도 이를 수용했으며, 민간음사인 구월산 삼성당을 복원시키기 위해 정치적 노력을 아끼지 않았음을 살폈다. 둘째, 김일손의 <회로당기>와 비교하면서 사대부의 민간 신이담론 수용이 향촌사회의 지배력을 행사하기 위해서였음을 밝혔다. 셋째, 이선제의 상서를 통해 고려 이래의 신이사관이 계승되고 있음을 분석했다. 유관, 유사눌조차 일정한 거리를 두며 언급을 삼갔던 신이사관을 이선제가 전적으로 받아들인 일차적 계기는 기근이었다. 막다른 상황에서는 민간 음사라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넷째, 왕실은 사대부들의 요청에 일절 응답하지 않은 채 침묵으로써 거부의사를 밝혔다. 왕실은 국초부터 단군과 관련된 신화적 요소를 제거하고 역사화 시키고자 노력해 왔다. 조선 건국주에게만 신이를 적용하려는 배타적인 인식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대부와 왕실의 신이인식이 구별되는 지점이다.
It is known that the scholar-gentry class of Joseon Dynasty, which adopted the ideology of Neo-Confucianism as the governing ideology, rejected the heretical symbol system of the people-shamanism, Buddhism, Feng Shui and Taoism. However, the discourse on the restoration of Samseong Temple of Guwol Mountain in Hwanghae Province during the period from King Sejong to early King Seongjong shows that this common sense did not work properly. The perception of the sacred by the scholar-gentry class and the royal family varied greatly depending on the political situations they were in. The scholar-gentry class accepted the people’s beliefs and supported their gods for an efficient governing of the country districts and furthermore as a way to overcome a national disaster. However, the royal family completely ignored it. This was because they had an exclusive recognition to apply the concept of the sacred to the founder of Joseon.

7,900원

10

초기 <춘향전> 연구의 한 양상 - 김종무의「아관춘향전」에 대하여 -

전상욱, 허찬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7집 2017.06 pp.257-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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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28년 경성제국대학 예과 학생잡지 『청량』에 기고된 김종무의 일본어 논문 「아관춘향전(我觀春香傳)」을 소개하고, 그 성과와 한계를 가늠해 보는 데에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먼저 저자인 김종무의 생애와 학술적 활동, 그리고 저작 목록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아관춘향전」의 구성과 내용을 장별로 꼼꼼하게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일본어 논문 전문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부록으로 붙였다. 김종무는 「아관춘향전」에서 <춘향전>의 줄거리를 상세하게 소개하면서, 작품의 주제, 문체, 플롯, 인물설정 등 문학작품의 분석에 활용되는 여러 분야에서 나름의 해석을 시도하였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춘향전>이 우수한 문학작품임을 말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그의 <춘향전> 논의에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특징이 있다. 첫째로 김종무는 <춘향전>에 관한 논의를 전개하기 위해 서양의 다양한 작품을 거론하고 있다. 이는 지식과 독서량을 과시함으로써 자신이 전개하는 논리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보다 우월하다고 전제한 서양문학작품과의 비교를 통해, 역설적으로 <춘향전>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였다. 다음으로 김종무는 이 글에서 <춘향전>과 『서상기』의 정밀한 비교를 시도하였다. 경성제국대학 교수 다카하시 토루가 일찍이 <춘향전>을 『서상기』의 아류작으로 규정하였기 때문에, 김종무의 입장에서도 『서상기』는 자세하게 다루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춘향전>이 『서상기』의 어떤 대목과 유사한지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였는데, 이는 유사성을 간략히 언급한 다카하시의 논의에서 진전된 성과라 할 수 있다. <춘향전>에 관한 방대한 논의가 축적된 현재의 관점에서, 「아관춘향전」의 내용에는 여러 가지 오류나 논리적인 모순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근대교육기관인 경성‘제국’대학의 조선인 학생이 일본어로, <춘향전>의 가치를 주장하기 위해 집필되었다는 자체로 주목할 만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아관춘향전」은 일본학자의 선행연구를 극복하고 조선 문예를 향토예술로서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로 평가할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introduce “Agwan-Chunhyangjeon(我觀春香傳)” written by Kim Jongmu(金鍾武) and published in ”Cheongryang(淸凉)” a student journal in the Preparatory Program of Keijo Imperial University(京城帝國大學). To do that, this article initially looked into its author, Kim Jongmu, focusing on his academic accomplishments. Also, this article, in addition to providing a full Korean translation of “Agwan-Chunhyangjeon” overviewed its composition and content of each chapter thereof. Kim Jongmu, in “Agwan-Chunhyangjeon” introduced synopsis of “Chunhyangjeon (春香傳)” in detail. And he sought to present his own interpretation in various fields (e.g., the work’s theme, style, plot, character creation) used to analyze literary works, and thereby tried to ultimately state that “Chunhyangjeon” was an outstanding literary work. Kim Jongmu’s discussion on “Chunhyangjeon” thus organized had a few notable characteristics. Kim Jongmu, to make arguments on “Chunhyangjeon,” mentioned various Western literary works. It seems that this was to demonstrate his knowledge and wide range of reading and thereby enhance persuasiveness of his logic. And it was paradoxically a strategy to make “Chunhyangjeon” more valuable through comparison with Western literary works premised as superior. Kim Jongmu, in “Agwan-Chunhyangjeon” tried a detailed comparison between “Chunhyangjeon” and “Xīxiāng Jì(西廂記).” It seems that since the Keijo Imperial University professor Takahashi Toru(高橋亨) earlier concluded “Chunhyangjeon” as an imitation of “Xīxiāng Jì,” Kim Jongmu had no choice but to cover “Xīxiāng Jì” in detail. He gave specific examples of the parts of “Chunhyangjeon” similar to those of “Xīxiāng Jì,” which can be deemed as advancement from Takahashi’s arguments thereon mentioning the similarity briefly. Kim Jongmu, despite searching for and presenting similarities he himself found between the two, emphasized that “Chunhyangjeon” was not just an imitation and consistently advocated excellence of “Chunhyangjeon.” At this point in time when a vast amount of discussions on “Chunhyangjeon” are accumulated, various errors or logical contradictions can be found in “Agwan- Chunhyangjeon.” Nevertheless, “Agwan-Chunhyangjeon” can be deemed a noteworthy material in the fact alone that an ethnic Korean student attending Keijo ‘Imperial’ University, a modern educational institution at that time, wrote it in Japanese to prove “Chunhyangjeon” valuable. “Agwan-Chunhyangjeon” can be evaluated as output from an effort to overcome a Japanese scholar’s preceding study and regard Joseon Dynasty’s literature in a positive light as native art.

13,300원

부록 : 「아관춘향전」 번역

11

아관춘향전(我觀春香傳)

김종무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7집 2017.06 pp.29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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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0원

일반논문

12

대학생을 위한 고전시가 교육 사례 연구 - 김상용의 <사랑이 거짓말이>의 현대적 변용사례를 대상으로 -

김태웅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7집 2017.06 pp.329-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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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2014년부터 필자의 문학관련 교양수업을 수강한 학생들과의 강의, 발표, 토론 등을 토대로 진행되었다. 고전의 의미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그것을 이해해 가는 교육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교육현실은 ‘고전이니까 좋은 것이고 그러니 그냥 읽어라.’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각 대학들은 ‘필독서’를 만들고 학생들에게 읽기를 강요한다. 하지만 왜 고전이 되었고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은 가르쳐 주지 않는다. 물론 대학은 그 과정을 배우는 곳이기에 해답을 알려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왜 읽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면 좀 더 쉽게 고전에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 이 연구는 필자 스스로의 반성에 의해 시작되었고 연구가 계속 진행되는 과정 속에 처음으로 진행된 것이다. 그래서 미흡한 점도 많고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많다. 이 연구를 시작으로 고전문학을 학생들에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접근시키기 위해 좀 더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노력할 것이다. 최소한 필자에게 배운 학생들은 ‘고전문학’이 지루하고 재미없고 현대에는 필요가 없는 분야가 아니라 재미있고 보편적 정서를 담고 있으며 현대에 반드시 필요한 분야라고 말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시조는 그 시대의 가장 인기 있는 노래였다. 현재 아이돌 노래와 같다고 할 수 있는데 김상용의 ‘사랑 거짓말이’를 가곡창으로 들어보면 13분이라는 긴 시간 불리기에 3분이 넘지 않는 노래에 익숙한 현재 학생들에게는 지루하고 어렵고 재미없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영화 <해어화> OST ‘사랑 거짓말이’는 현대 음악에 맞춰 편곡을 했기에 학생들이 거부감 없이 듣고 과거의 음악이 이렇게 훌륭한 음악으로 바뀔 수 있는 것에 놀라는 것을 직접 목격하였다. ‘사랑’이라는 보편성은 조선시대 ‘시조’나 현대 아이돌 ‘노래’나 그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시조’를 학생들에게 주입식으로 가르친다면 앞으로 ‘시조’는 시험에나 나오는 장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라도 새로운 방식의 연구와 학생들 의견을 수렴해 현대적 변용이 잘 된 작품을 선별해 원작품과 현대변용작품을 비교하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면 고전시가의 경우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그 생명성을 연장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study was based on several classes, presentation, discuss while this writer was teaching the class related in literature. Meaning of classic is itself, and educational process to understand what it is. We easily speak that “the classic is right, so just read it”. Each university demands to read classic books to students. However, university’s class doesn’t teach the reason why classic is important. University doesn’t need to teach the reason why classic is needed. However, teaching the reason is helpful to raise possibility This study is started from this writer’s regret and during other reaserach. So this study has weakness and lacking points. Starting with this study, I will do my best for what students can easily teach and approach classic literature. At least, I hope the day will come when students whom taught from me say that classic literature has own funny and universal emotion for contemporary age. Sijo was most popular songs. Now, Sijo was same with Idol song but it is boring to hear because it is too long time to hear students who are adjusted 3 minutes song length. However, ‘Love is lie(사랑 거짓말이)’ in movie ‘LOVE, LIES(해어화, 解語花)’ was arranged as contemporary music, students could hear this song well without any repulsion, with admiration. Love as universality is same between Sijo in Joseon age and Idol song in contemporary age. If Sijo are taught only in textbook, Sijo will be genre only in text for school. Fron now on, if Sijo were taught in way that was accommodated comparison between original songs and contemporary arranged songs, classic poetry and songs could renew its academical life.

7,300원

13

豊西 柳應斗의 「農謳十四章」에 대한 고찰

이상주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7집 2017.06 pp.36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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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應斗(1847~1914)의 「農謳十四章」은 姜希孟(1424~1483)의 「農謳」를 온고지신한 작품이다. 유응두가 「農謳十四章」을 지은 목적은, 열심히 농사를 잘 지어 생활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는 마음을, 노래를 통해 暗誦하게 하여 지속적으로 농사에 열중하고자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데 있었다. 유응두는 韻字를 붙이는데 있어 章의 제목을 기억연상하기 쉽게 제목에 들어있는 글자를 운자로 썼다. 즉 유응두는 <誇農>에 韻字를 붙이는데 있어 2구, 4구, 6구, 8구, 10구, 12구, 14구, 16구, 18구에 農字를 붙였다. 제 1구에도 붙였다. 농사를 짓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며 노래를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농사에 대한 자긍심을 갖도록 하기 위한 조치이다. 이렇듯 유응두는 조선말 곤궁한 시대에 살면서 농사를 통한 민생안정을 도모하고자 했던 것이다. 유응두의 「農謳十四章」의 내용의 특징을 9가지로 분류해볼 수 있다. 첫 째 雨暘의 혜택의 直感性과 임금의 혜택의 隱微性, 둘째 근면함과 나태함 그 결과의 차이에 대한 인식, 섯째 농기구의 활용에 따른 旱水害 예방과 貧富의 격차, 넷째 잡초 제거와 對比하여 조정 관료 등용에 대한 충언, 다섯째 육체노동을 통한 농사 소득에 대한 자부심, 여섯 째 새참의 효용과 그 제공시간의 중요성, 일곱 째 飢餓解決의 최저 수준에 滿足, 여덟 째 물닭의 울음소리에 投影된 住居 食生活의 수준, 아홉 째 농작물의 관리 후 濯足하며 洗心의 境地 吟味이다. 유응두의 「農謳十四章」은 강희맹의 「農謳」의 형식을 본떠 지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시에 당시 농민의 실상을 상세히 묘사하여 寫實性이 높다. 따라서 유응두의 「農謳十四章」은 1800년 대 말 1900년대 초 지금 북한 황해도지역 농촌의 어려운 농경 실상을 여실히 알 수 있는 수작이라 할 수 있다. 李衡祥(1653~1733)의 강희맹의 「農謳」를 본떠 「次農謳」와 「後農謳」를 지었다. 조선말 유응두는 강희맹의 「農謳」의 형식과 구조를 본떠 「농구십사장」은 지었다. 유응두는 형식적인 면에서는 강희맹의 농구를 본떴으나 구조적인 면에서 句數를 거의 2배 이상 늘였다. 그러다 보니 내용을 풍부하게 묘사하여 사실성과 구체성이 뛰어나 당시의 정황을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권면성과 교훈성도 제시되어 있다. 이렇듯 유응두의 「농구십사장」은 한문학의 전통을 근대까지 계승하여 그 맥을 이었다고 그 문학사적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Yu, Eungdu(柳應斗; 1847~1914)'s 「Nonggusipsajang(農謳十四章)」 is a piece of reviewing the old and learning the new from Gang, Heemaeng(姜希孟; 1424~1483)'s 「Nonggu農謳」. By the way, it has many almost more than double of Gang, Heemaeng's stanza number(句數). With that at that times Farmers' reality and their psychological aspect were described in detail and expression rhetorics was fine. Yu, Eungdu(柳應斗)'s 「Nonggusipsajang(農謳十四章)」's contents characters can be divided 9 variety. At first, Wuyang(雨暘)'s intuition(直感性) of benefit and King's Eunmiseong(隱微性) of benefit, second, diligent and idle, the cognition of difference from the result, third, prevention of flood damage(旱水害) according to utilization of farm machines and implements and gap of rich and poor(貧富), fourth, advice of the Court bureaucrat promotion contrast with(對比) weed removal, fifth, pride of farming income through physical working, sixth, importance of serving time and utility of elevenses, seventh, satisfaction(滿足) from minimum level of starvation solution(飢餓解決), eighth, food, clothing, shelter housing(住居), dietary life(食生活) level by projection(投影) cry of water hen, ninth, appreciation(吟味) of Sesim(洗心) state(境地) and washing foot(濯足) after crop management. Yu, Eungdu(柳應斗)'s 「Nonggusipsajang(農謳十四章)」 was composed imitated of form of Gang, Heemaeng(姜希孟)'s 「Nonggu農謳」. However, he described reality of farming in his poems in detail at that times so factuality(寫實性) was high. And He suggested properly encouragement(勸勉性) and Instructive(敎訓性). Therefore Yu, Eungdu(柳應斗)'s 「Nonggusipsajang(農謳十四章)」 was an excellent work which can be known the difficult reality of farming in farm village of Huang- haedo(黃海道) district in North Korea contemporary late 1800 years to early 1900 years, so ti can be given the meaning.

9,100원

부록

14

휘보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7집 2017.06 pp.405-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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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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