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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상고전연구 [Yeol-sang Journal of Classical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열상고전연구회 [Society of Yol-Sang Academy]
  • ISSN
    1738-2734
  • 간기
    격월간
  • 수록기간
    1988~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한국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810 DDC 810
제29집 (14건)
No

기획논문

1

問槎畸賞의 性格에 대하여-주로 批評者의 視角을 중심으로-

임채명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9집 2009.06 pp.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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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차 사행(1711~2년)은 사행 목적과 전혀 관련 없는 빙례 개변이라는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럼에도 왕성한 문화교류로 다종의 필담창수집이 간행되었고, 그 가운데 問槎畸賞은 필담창수에 참석한 일본 측 문사들이 荻生徂徠와 일정한 학연을 맺고 있어 하나의 경향성을 보여주었다. 須溪와 孤山, 徂徠에 의해 輯校되고 비평된 問槎畸賞은 조선 문사의 시문에 대해 貶下 위주의 시각을, 일본 문사의 시문에 대해서는 襃揚 위주의 시각을 견지하였다. 물론 전적으로 조선 문사의 시문을 폄하만 하고 일본 문사의 시문을 포양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徂徠가 고문사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균형 잡힌 시각을 취하려 애쓴 반면, 조선 문사 전체의 문재를 폄훼하고 일본 문사 전부의 문재를 포양하는 데서 불거지는 시각의 공정성 논란을 피하기 위한 의도적 배려일 수도 있었다. 결국 問槎畸賞의 성격을 해명하는 관건은 徂徠 시각의 신뢰 여하에 달려 있다. 시문의 감식 능력을 갖춘 최고의 비평 시각으로 공정한 잣대를 적용하였는지 아니면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었는지 문제인데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한편, 개인적인 친분에 구애된 모습도 눈에 띄었다. 徂徠가 이러한 면모를 보인 이유는 아마도 대외적으로 조선 문사와의 문운을 건 자존심 대결에서 일본 문사의 우수성을 알리고, 대내적으로 자신의 社인 蘐園의 고문사학적 위상을 일본 전체로부터 공인받으려 한 것과 일정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片語에 나타난 문면의 의미로만 본다면 徂徠의 시각이 객관적이라 할 수 있으나 그의 내밀한 대내외적 의도를 되짚어 볼 때, 비평자로서의 시각에 일말의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보다 더 객관적인 안목에서 시문 자체를 정치하게 분석하는 品藻 능력이 뒤따라야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8th dispatch of envoy(1711~2) was full of complications because of the political issue such as the change of diplomatic relations. In spite of that, vigorous cultural exchange made lots of books of conversation by writing. Among them, Munsakisang was showed a certain tendency because Japanese literary men who were participated in conversation by writing formed a regular academic relations with Juksaengjorae. Munsakisang collected and checked by Sugye, Gosan and Juksaengjorae was adhere strictly to the viewpoint of denouncing Chosun’s literary men’s poetry and prose but on the other hand they partly put much value on Japanese literary men’s poetry and prose. As a scholar of ancient writing, Juksaengjorae tried to have well-balanced viewpoint. But this was likely an intentional consideration to avoid criticism of impartiality. After all, the key point of explication of Munsakisang depends on the trust of Juksaengjorae’s viewpoint. To sum up, it is a matter of applying fair judgement or personal estimation of Juksaengjorae. In some part, he tried to maintain objective viewpoint but in other part he showed a biased judgement by personal acquaintance. That was because Juksaengjorae had an intention of informing superiority of Japanese literary men over Chosun’s literary men and also he tried to win recognition of his ancient writing society Hwonwon in Japanese. According to the writing in Pyeono, Juksaengjorae’s viewpoint was somewhat objective but by his confidential domestic and foreign intention, his viewpoint as a critic was not to be trusted. This can be solved by more objective insight that analyzing and discriminating poetry and p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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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桑韓醫談>과 <桑韓醫問答> 비교 연구-대화 방식 및 내용적 특성을 중심으로-

김형태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9집 2009.06 pp.4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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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통신사행을 계기로 출현한 상한의담과 상한의문답은 30여년의 간격을 두고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의학 필담집이다. 두 텍스트에 공통적으로 표기된 ‘한문훈독’은 의학 필담이 전문 의서에 속하는 점을 고려해, 향후 이 책을 참고할 의원들의 오독(誤讀)을 방지하고, 의원이 아닌 다수의 일반인도 고급 지식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두 책 모두 목판본으로 간행했다는 점도 다수의 독자를 염두에 둔 것이다. 1711년 제8차 신묘통신사행 때 일본 의원 기타오 슌포에 의해 만들어진 상한의담은 ‘확인을 위한 문답’ 방식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장황한 질문에 비해 기두문의 답변이 매우 간결하다. 이는 혼란스러운 사행 분위기 때문에 양국 의원들 간에 만남의 기회가 짧았던 것과 기두문의 과도한 업무에 기인한 것이다. 상한의담은 ‘치험례’적 내용을 바탕으로 의학을 현실과 접목시키려는 태도를 보여주고, 각종 병증과 약재, 처방에 대한 내용이 매우 자세하다는 특성을 지녔다. 1748년 제10차 무진통신사행 때 카와무라 슌코에 의해 만들어진 상한의문답은 평화로운 사행 분위기에 힘입어 의원들 간 문답을 행할 시간이 충분했기 때문에 각자 가지고 있던 의론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이론에 치밀한 비평을 가하는 ‘토론’의 방식을 보이게 되었다. 상한의문답은 ‘의론’적 내용 위주이기 때문에 의학 서적 중심의 이론과 실제 처방을 직접 확인할 수 있으며, 당시 유행했던 전염병과 동양의학의 흐름까지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따라서 이들 텍스트를 참고하면, 18세기 일본과 조선 양국 의원들이 주로 참고했던 의학적 이론과 처방 등을 확인해 동양의학의 역사적 맥락을 짚어볼 수 있고, 그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던 의학적 문제를 살펴볼 수 있다.
‘Pil-dam-chang-su-jib’(collection of conversation by writing about poetry or sentences) which was remained in Japan through the dispatching of Tong-sin mission belong to the Joseon dynasty is a valuable historical records directly to verify sincere relationships with Korea and Japan in the past. At the center of the ‘Pil-dam-chang-su-jib’, a conversation of senators who was technocrat both countries at that time was not a little contained. Because they need to exchange information and opinions which they had been curious at an appointed hour, the most impending medical problems of that period had to be brought out in the senator’s ‘Pil-dam-chang-su-jib’ and the value of material is high as much. If you examine the ‘Pil-dam’ records which was exchanged from senators to senators of both countries at that time, you can directly confirm the universality and difference of the medical science and medicine tradition of various East Asian countries. Also it can be an opportunity to organize the customs history through the studying an illness, medicines and a remedy. The necessity of the investigation about medical related conversation by writing is in this place. The purpose of a paper was in consolidation to a base of translation and investigation hereafter to consider the characters embodied in medical conversation in the first half of 18th centuries. The researcher translate the 1711 data ‘Sang-han-ui-dam’ and 1748 data 'Sang-han-ui-mun-dab’ up to now. Two data were published at an interval of about 30 year’s in Japan. That was regularized medical conversations between Korean and Japanese senators and it was display the essence through the each originality enough. ‘Sang-han-ui-dam’ was collection of conversation between Du-mun Kim and a herb doctor Syunpo Gitao in Ogaki, Gifu province, Japan at same year. ‘Sang-han-ui-mun-dab’ was collection of conversation between Seung-su Joe and a herb doctor Seunko Kawamura in Dong-kyung, Japan at the same year. The first half of 18th century medical conversation by writing had been a foundation of the rational description system at the coming medical conversation to change the description system according to the envoy’s coming situation. The other side, to use of questions and answers form gives presence and reality at the conversation by writing. So, conversation was let the readers to gain the feeling of movement. Also, the contents are substantially reflected the long history of Eastern medical and revealed medical science, treatment reality at that time. Not correspondent with normal collection of conversation by writing, the medical conversation by writing shows a special quality at rich material to confirm the technocrat’s identity. After considering with the all factors above, the first half of 18th century’s medical conversation materials are certificated remarkably valuable materials to the cultural history around the physician at tha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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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2차 통신사 필담집의 특징-對禮餘藻의 주자학 담론을 중심으로-

구영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9집 2009.06 pp.8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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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년의 12차 통신사행은 조선시대 마지막 통신사로서 역지되고 축소된 와해와 변질의 통신사로, 혹은 믿음의 교류로, 반대로 비교린적 폐쇄적 교류로 다양하게 이해되었다. 필담집 「대례여조」는 사상적 변화 속에 새롭게 등장한 일본의 관정 주자학자들과 개국 이래 400년간 주자학의 적통임을 자부하던 조선의 사행원들 간의 필담 창화한 내용의 일본 측 기록이다. 「대례여조」에서 이들 간의 주자학 담론을 살핌으로 조일의 다른 함의의 주자학의 실상과 양국이 얻고자 한 바를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그것은 12차 통신사행의 특징을 읽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19세기초 마지막 통신사행의 주자학 담론에는 일본 측의 주자학으로의 변화를 천명함과 조선 측의 환영하는 태도로 우호적인 분위기와 공경과 신의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주자학 담론에서 양측은 서로 다른 관심과 함의를 가지고 대화하고 있었다. 일본은 행동의 실제에 적용하는 문제에 관심을 드러내고 있었고 조선은 개인적 수기(修己)의 문제로 해명하고자 하는 태도를 나타내고 있었다. 즉, 조선은 주자학의 형이상학을 더 깊이 추구한 도덕론의 강조로 나아가고 일본은 주자학의 형이하학에 치중하여 사회적 윤리를 세우기 위한 치세론으로 나아간 주자학 담론의 장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다른 주자학의 담론 가운데서 양측의 기대도 각자 다른 것이었다. 서로 다른 함의의 주자학 담론을 알아차린 조선 측에서는 굳이 지적하지 않고 조선의 주자학적 영향이 계속되기를 기대하고 있었고, 일본 측에서는 빈주읍양의 예로 접대하는데 주자학 담론을 활용함으로써 일본의 높아진 국체를 기대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811年の12次通信使行は朝鮮時代最後の通信使として易地されてし、縮小された瓦解と變質の通信使で、あるいはしんらいの交流で、ぎっくに非交隣的な閉鎖的交流に多樣に理解された。筆談集「對禮餘藻」は思想的變化のなかにあらためて登場された日本の寬政朱子學者たちと開國以來400年間朱子學の嫡統であることをしるした朝鮮の使行員たちのあいだの筆談唱譁した內容の日本がわの記錄です。「對禮餘藻」に これらの朱子學の談論をしらべて朝日のほかの含意の朱子學の實像と兩國が得ろうことしているもの讀めると思い、これは12次通信使行の特徵をよむひとつの方法がてきるてしょう。19世紀初最後の通信使行の朱子學の談論には日本がわの朱子學に變化を天明すると朝鮮がわの歡迎する態度で友好的な雰圍氣と恭敬と信義の共感帶を形成している。しかし朱子學の談論に兩側はお互いにことなる關心と含意おもつて對話しようとする。 日本は行動の實際に適用する問題に關心をあらわしていたが朝鮮は個人的修己の問題て解明しようとする態度をあらためている。すなわち,朝鮮は朱子學の形而上學をよりふかく、すすめた道德論の强調であったことがわかる。日本は朱子學の形而下學に置重して社會的倫理を 前たてるための治世論にすすんだ朱子學の談論の場であったことがわかる. このようになる朱子學の談論のなかに兩側の期待もそれぞれことなるものだった。 お互いにことなる含意の朱子學の談論をきづいた朝鮮がわでは無りやりに指摘せず、朝鮮の朱子學的影響がつつけることを期待しているが, 日本がわでは賓主揖讓の礼に接對することに朱子學の談論を活用するによって日本のたかまっの國體を期待していたことがす推測ることができる。

7,900원

특별기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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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논문

5

戊申通信使(1428)와 朴瑞生

한태문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9집 2009.06 pp.139-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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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는 조선시대에 전반에 걸쳐 일본에 파견된 교린외교사절이자 문화사절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학계의 연구는 자료가 영성한 조선전기 통신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 조선후기 통신사에 집중된 것이 사실이다. 이 논문은 이러한 연구경향에 대한 반성으로 조선 최초의 통신사인 戊申通信使(1428)와 사행의 총책임자인 朴瑞生을, 사행의 파견배경과 사행노정, 문장가ㆍ개혁가로서의 박서생 등으로 나누어 조명한 것이다. 무신통신사는 室町幕府 5대 장군 足利義持를 제사지내고, 6대 장군인 足利義敎의 장군직 계승을 축하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그 노정은 1428년 12월 7일 서울을 출발하여 약 100여 명의 인원이 ‘부산-對馬島-壹岐島-朴加大(博多)-赤間關-黑石西關(上關)-多可沙只(鎌刈)-都毛梁(鞱浦)-小尾途津(下津)-胸比(日比)-牛澹(牛窓)-無路(室津)-一場(一谷)-兵庫-王部落(京都)’등을 왕복한 뒤 1429년 12월 3일에 왕에게 보고하는 것으로 사신행차를 마쳤다. 박서생은 東文選에 使行詩 3수를 남기고 있다. 그의 使行詩는 왕명을 수행하는 사신으로서의 책임감과 사행의 험난함은 물론, 일본 음식이나 경치 등 이국적 체험을 잘 표현하여 문장가로서의 면모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밖에 세종이 송희경에게 사행록 저술을 명령한 사실을 통해 비록 현전하진 않지만, 박서생의 일본사행록도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또 박서생은 사행을 끝난 뒤 사행에서 느낀 바를 왕에게 보고하는 「復命」에서 자신의 개혁의지를 드러낸다. 「복명」에는 일본 정세의 정확한 탐지를 통한 합리적인 외교정책안의 제시, 화폐의 원활한 유통과 산업의 활성화 유도, 자동 水車와 유용한 식물의 재배를 통한 농업정책의 효율성 제고 등 외교관ㆍ경제정책가ㆍ농정개혁가로서의 그의 개혁의지가 명확히 반영되어 있다. 이처럼 조선 최초의 통신사인 무신통신사의 총책임자 박서생은 사행문학 뿐 아니라 국가정책에도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This study is about Mooshin Tongshinsa(1428), the first communications man of Joseon and Park Seo‐Seng. The summary of the result is as follow. First, Mooshin Tongshinsa’s dispatch background and journey. Mooshin Tongshinsa had performed a religious service to Shogun Ashikaga Yoshimochi(足利義持)the 5th generation of Muromachibakuhu(室町幕府)and was dispatched to celebrate the succession to Shogun title of Ashikaga Yoshinori(足利義敎) the 6th generation of Shogun. The journey started in December 7th 1428 from Seoul and it ended in December 3rd 1429 with the report to the King after 100 members have made a round trip of ‘Busan(釜山)‐Tsushima(對馬島)‐Iki(壹岐島)‐Hakada(博多)‐Akamagaseki(赤間關)‐Kaminoseki(上關)‐Kamagari(鎌刈)‐Tomonoura(韜浦)‐Ushimado(牛窓)‐Murotsu(室津)‐Hyogo(兵庫)‐Kyoto(京都)’. Second, it’s the appearance of Park Seo‐Seng reflected as a fine writer in Sahaeng literature. The fact that Sejong ordered Song Hee‐Kyung(宋希璟)to write the Sahaengrok, In Dongmoonseon there are three poems that were written during the Sahaeng so there’s a big possibility that the Sahaengrok of Park Seo‐Seng actually existed. Also Dongmoonseon in the poem written during the honored going of the envoy, the difficult journey and the responsibility as the envoy executing the order of the King, the exotic experience such as Japanese food and landscape are all well described and displaying his ability as a fine writer. Third, Park Seo‐Seng’s will of a reform reflected in the report letter to the King. In Park Seo‐Seng’s report, ‘rational foreign policy proposal through a precise detection on the situation in Japan, induction of smooth circulation of money and industry activation, improvement of agricultural policy efficiency through automatic water mill and useful plant cultivation’, his strong will of reform as a diplomat, economic politician, agricultural policy reformer is well reflected. In this way, Park Seo‐Seng was the first communications man of Joseon dynasty who left his mark in Sahaeng literature and national policy as the responsible of Mooshin Tongshinsa through the honored going of the env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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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한․중 기녀시인 金雲楚와 柳如是비교연구-자의식을 중심으로-

李麗秋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9집 2009.06 pp.169-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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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기녀라는 특수한 신분의 작가를 주목하여 기녀로서의 자의식, 작가로서의 자의식, 여성작가들과의 동류의식으로 나누어 조선후기의 대표적 기녀시인 金雲楚(1800〜1850년 이후)와 명말청초의 대표적 기녀시인 柳如是(1618∼1664)의 자의식을 비교했다. 떠돌아다니는 삶에서 비롯된 漂泊感, 妓籍에서 벗어나 안정된 삶을 도모하고자 하는 기적탈주욕망 등이 두 시인의 시에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삶의 喜怒哀樂을 시에 담고자 하는 작가의식을 보여주었고, 시작 활동의 어려움을 인식하고 자신을 알아주는 知己를 만나기 어렵다고 탄식했다. 두 시인이 모두 시재에 대한 겸손을 나타냈지만 자신의 시작행위에 대해 갈등과 반성이 콤플렉스에 가까운 金雲楚의 모습이 柳如是와 대조가 된다. 또한 시를 짓는 것은 내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金雲楚와 달리 柳如是는 자주적으로 문학을 창작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 시집 편찬도 했다. 이처럼 문학에 대한 두 시인의 다른 태도가 조선후기와 명말청초의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평가기준과 태도와도 무관하지 않다. 명말청초에는 여성들의 문학적 재능을 인정하고 문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어느 정도 조성되었지만 조선후기 여성들에게 있어서 문학적 재능보다 부덕이 더 강조되었기 때문에 운초의 시에도 이러한 갈등이 드러난 것으로 추정된다. 金雲楚의 시에는 다른 소실 작가들과의 동류의식을 나타냈지만 柳如是의 시에서는 그러한 여성작가들과의 동류의식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는 조선후기와 명말청초 기녀(또는 소실)시인의 특수한 예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三湖亭詩社를 결성하여 집단적 문학 활동을 벌였지만 명말청초의 기녀시인들이 그러지 못했다. 그 이유는 기녀와 소실이라는 신분의 차이와 주로 가족단위로 이루어진 시회에 기녀시인들이 참여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으로 분석하였다. 본 연구는 한․중 기녀문학 비교연구의 일환으로 대표적 기녀시인 金雲楚와 柳如是의 자의식을 비교했다. 앞으로 본 연구의 기초 위에서 다른 시인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계속하여 동아시아 기녀문학사 전개의 공통성을 발견한다면 여성문학 연구 나아가 양국의 비교문학에도 매우 의미 있는 연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This paper compared the self consciousness between Kim Uncho, typical gisaeng poet of late Chosun Dynasty, and Liu Rushi, typical gisaeng poet during late Ming Dynasty and early Qing Dynasty, through self consciousness as a gisaeng and writer, and consciousness of kind. Drifting flu from wandering all the life, desire of freeing herself from membership as a gisaeng and living a stable life have been appeared in both of their poems. It showed the awareness as a writer to try to put the emotions such as , pleasure, angry, sorrow and happiness into the poem. They also sighed about the difficulties of composing poems and finding an intimate friend who can understand her. Although two poets shows modesty about their poetic genius, complications and reflection of Kim Uncho when composing poems is mch more like complex, which forms a striking contrast to Liu Rushi. Kim Uncho thinks composing poem can help her man, but Liu not only did creative literature by herself, but also compiled collection of poems. Different attitude on literature between two poets is also resulted from men's valuation standard on women of late Chosun Dynasty and late Ming Dynasty early Qing Dynasty. In late Ming Dynasty and early Qing Dynasty, the social environment recognized the women's capability of literature and allowed them to involve in it. But in Late Chosun Dynasty, female virtues has been emphasized much more than literary talent, and this contradictions can also be found in Kim's poets. Consciousness of kind with other concubine writers appeared in Kim's poets, but it can not be found in Liu's poets. This shows a special different example between gisaeng (or concubine) poets from late Chosun Dynasty and late Ming Dynasty and early Qing Dynasty. And Samhojeong Poetry Society has been organized only in Korea. The reason can be the difference between identity as gisaeng and concubine, and also it was very difficult for the gisaeng poets to join in the society formed by unit of family. This study focused on comparing Kim and Liu's self consciousness, the typical gisaseng poets of two country, as one part of comparing study on gisaeng literature of Korea and China. The common feature and difference of two country has been confirmed through this comparison. On the basis of this study, to find common feature of gisaeng literature'f history in east asia by continuing the study on others poets, will make it a much more meaningful study to both women's literature and comparative literature of two coun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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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문자류집(文字類輯) 에 대하여

이윤석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9집 2009.06 pp.199-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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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방각본(坊刻本)은 고소설 연구자들만이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방각본은 한글 소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의 한문 방각본이 있으나, 여기에 대해서는 연구자들이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정확한 목록조차 나온 것이 없다. 본고에서 다룬 문자류집(文字類輯)은 한문 방각본의 하나이다. 문자류집은 한문으로 글을 지을 때 필요한 자구(字句)를 찾아보기 쉽도록 편찬한 유서(類書)이다. 작자와 정확한 간행시기를 알 수 없지만, 19세기 말부터 방각본(坊刻本)으로 여러 군데서 나왔고, 이를 증보하고 교정한 증정문자류집(增訂文字類輯)도 목판본과 함께 활판본으로도 간행되었다. 이 논문에서는 문자류집의 이본, 내용, 그리고 원천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 등을 살펴보았다. 필자는 문자류집의 원천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문자류집의 간행이 새로운 독자층의 대두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문 방각본의 독자와 한글 방각본의 독자는 그 성격이 다르겠지만, 이들 모두는 방각본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독자층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에 관한 문제는, 앞으로의 방각본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며, 특히 지식의 대중화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다루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これまでの坊刻本に対する学界の関心は古小説研究者のそれに限られてきた。しかし、朝鮮時代の坊刻本はハングル小説のみではない。相当な数の漢文坊刻本は現存するが、これらに対する学界の関心は乏しく、いまだに正確な文献目録さえ存在しない。本稿で扱っている文字類輯はこうした漢文坊刻本の一つである。文字類輯とは、漢詩を詠むとき必要な字句を探しやすくするために編まれた類書であった。作者や正確な刊行時期を知ることはできないが、十九世紀末から坊刻本として数多く出版され、これを増補し校訂した增訂文字類輯も活版本として木版本とともに刊行された。本稿は、文字類輯の異本や内容、そしてその源泉は何かという問いに対する考察である。筆者は、文字類輯の起源を明確に捉え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が、 文字類輯の刊行が新しい読者層の台頭と連関するという点を指摘した。漢文坊刻本の読者と、ハングル坊刻本の読者の性格はそれぞれ異なるものであろうが、両者はいずれも坊刻本という新しいメディアの読者層である点において共通している。ここに関わる問題は、今後の坊刻本研究における極めて重要なテーマであり、とりわけ知識の大衆化という問題を研究するためには必須の条件として取り扱わなければなら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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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김택영의 한시를 통해 본 망명 전후 의식세계의 변모

곽미선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9집 2009.06 pp.227-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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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창강 김택영의 한시를 구체적으로 검토하기 위하여 시도된 것이다. 김택영은 망명을 전후로 내면세계의 변화와 발전을 가져왔다. 김택영이 망명 이전에 지은 한시에서 진취적이고 幽興적인 생활의지를 보여주었다면, 망명 이후에 지은 시에서는 애원의 정조를 부각시키면서 우국충정과 망국의 한을 표출하였다. 고려의 遺民으로 살아가려던 김택영의 의식은 망명을 계기로 조선의 유민의식으로 승화되었다. 망명지에서 김택영은 조선의 遺民으로 생활하면서 조국광복에 대한 열망이 보다 강해졌으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문장보국의식을 실천에 옮겨 주목된다. 김택영은 중국으로 망명한 후 중국 지식인들과 교유하면서 그들의 사상에 감화를 받아 근대계몽을 지향하는 의식이 싹트게 되었다. 이를테면 중국의 새로운 학풍을 높이 평가하거나, 신해혁명을 찬성하면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부단히 발전 변화하는 개방된 의식을 드러낸 점을 꼽을 수 있다.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을 경험하면서 김택영의 의식은 많은 변모를 가져왔는데, 우리는 이 변모과정을 김택영 사상의 발전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김택영이 보여준 의식세계의 변모는 근대계몽기 지식인들이 지닌 사유와 문학의 특징적 면모를 이해하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다.
This paper aims to look over poetry of Changgang KimTaekyoung. He had an internal change and improvement during the age of modern enlightenment. The poetry in his early period shows progressive and pleasure characteristic, while the poetry during his second period shows his intense patriotism and lamentation over the national ruin with pleading sentiment. His decision to spend his life as a migrant of Goryeo dynasty changed into the consciousness as a migrant of Joshon dynasty. In China, as a migrant of Joshon dynasty, he got stronger passion for the independence and put literal patriotism into practice to overcome his irresistible yearning for Joshon. After he came to China as an exile, he made friends with Chinese intellectuals and became eager for modern enlightenment. For example, he valued Chinese new academic atmosphere and supported Chinese revolution. In conclusion, he got open consciousness in accordance with the dynamic period. By experiencing many historical events, his consciousness had changed a lot and we need to consider this process as his ideological improvement. The transformation which Changgang showed can be a basic step to understand the thinking and literature of intellectuals who lived in the period of enlightenment.

7,600원

9

처가식구-사위 관계 서사민요의 구조적 특징과 의미

서영숙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9집 2009.06 pp.261-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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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서사민요 중 처가식구와 사위와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서사민요를 택하여 그 구조적 특징과 서술방식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들 노래에 나타난 향유층의 의식과 의미를 고찰하였다. 처가식구—사위 관계 서사민요에는 <자형에게 항의하는 처남> 유형과 <장인장모를 깔보는 사위> 유형 두 가지가 있다. <자형에게 항의하는 처남> 유형은 자형이 누이를 내버려두고 장기바둑과 다른 여자에 빠져있자 처남이 누이를 데려오고 자형에게 항의하는 내용이고, <장인장모를 깔보는 사위> 유형은 지체 높은 가문의 사위가 낮은 가문의 장인장모를 깔보아 인사도 하지 않고 오자 아내가 항의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두 유형 모두 처가식구와 사위 관계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노래하되, 사건의 발단과 전개 과정만 제기할 뿐 뚜렷한 해결을 제시하지 않는 ‘양면복합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사위와의 관계에서 늘 열세에 놓여 있던 처가식구나 시집간 여자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시집간 여자들이 그러한 현실의 변화에 대한 ‘기대’와 변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좌절’을 함께 지니고 있음을 드러낸다. 한편 이들 노래는 대부분 서술자의 설명보다는 인물들 간의 대화를 통한 직접적인 장면 제시 방법으로 사건을 서술하고 있으며, 이때 사위의 목소리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아내를 비롯한 처가식구의 목소리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는 이들 노래의 주향유층인 시집간 여자들이 노래 속 인물인 처남과 아내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들의 남편에 대한 불만과 기대를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양상이라 할 수 있다. 즉 여성들은 처가식구—사위 관계 서사민요를 통해 자신에게도 자신을 아껴주는 든든한 후원자인 친정식구가 있음을 표현했고, 남편이나 시집식구가 자신의 가문이나 친정식구를 천대하는 것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자존감과 비판의식을 드러냈다.
This paper concerns about the structural characteristics and meaning of folk ballads about relation between man and his wife's family. Folk ballads about relation man and his wife's family consists of two types. (1) A man who makes a protest to his sister's husband against his unfaithfulness to his sister. (2) A man who looks down on his wife's parents. In the type (1), a man doesn't care of his wife. The brother in law brings his sister to his home. The man asks his brother in law to meet his wife. But the brother in law refuses it and makes a protest to his sister's husband against his unfaithfulness to his sister. So the structure is composed with the desire and frustration mixed type, because the conflict between a man and his brother in law has been not solved even though his brother in law made a protest. In the type (2), A man in high class is married with a woman who is in low class. He is passing by them meanwhile his parent's in law is working in the field. The man doesn't bow them and passes away. When he comes back home, his wife and kids makes a deep bow. His wife makes a protest to him against his looking down on her parents. The structure is composed with the desire and frustration mixed type, because the conflict between a man and his parents in law has been not solved even though his wife in made a protest to him. The meaning and consciousness of women abstracted from the structural characteristics of these folk ballads about relation between man and his wife's family are as follows; 1) These songs are made of dialog between a man and his family in law, but mainly composed with the voices of his family in law. It is the reason why these songs are sung by women. Women express their mind through the characters in song. Therefore voices of women are penetrated in the voice of brother in law and wife in song. Women ask for their husbands's love and make a protest against their looking down on their family indirectly through voices of character 'brother in law' and 'wife' in songs. 2) The origin of an affair starts from the fault of the son in law. In the type "A man who makes a protest to his sister's husband against his unfaithfulness to his sister" The sister's husband doesn't take care of his wife. In the type "A man who looks down on his wife's parents", he doesn't make a bow to his parent's in law. Therefore these songs exhibit the consciousness to criticize these wrong reality. 3) The structure is composed with the desire and frustration mixed type. The conflict between man and his wife's family is not solved even though the brother in law and wife make a protest to him against his fault. This shows the reality that the distance between man and his wife's family in law is very long and their conflict is not solved easily. These songs are composed of a dramatic narrative story and contains the frankness in women's consciousness. They could, therefore, be got very important valuation in literal estimation. We ought to study all types of folk ballads delicately and investigate the nationwide aspects of transmission through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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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전> 갈등구조의 양상과 그 소설사적 의미

최재우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9집 2009.06 pp.29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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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는 우리 서사문학사에서 소설이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17세기 초에 창작되었다고 보이는 <운영전>은 17세기적 변화가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많은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아 왔다. 기존 논의에서는 <운영전>의 구조를 액자 구조와 몽유 구조라는 틀 속에서 분석해 왔지만, 몽유 구조로 분석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이 작품은 전기의 틀을 수용하면서, 새롭게 소설적 구조를 개척한 작품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기존 논의 검토에서 드러난 구조 분석의 미진한 부분에 착목하여 <운영전>의 구조를 갈등을 중심으로 장르론적 입장에서 분석하고, 그 소설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우선 <운영전>은 기존 연구자들에 의해 지적되어 왔듯이, 중층 구조를 이루고 있다. 갈등구조를 중심으로 한 장르론적 관점에서 보면, 크게 두 층위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유영의 이야기를 형상화하고 있는 큰 틀에서의 傳奇구조이고, 다른 하나는 운영과 김진사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액자 속의 소설적 구조이다. 이 작품의 큰 틀을 도식화해 보면, 그 구조가 ‘a. 세계와 불화 관계에 있는 X가 있다./ b. X는 사회적으로 정합관계에 있지 않은 Y와 느닷없는 만남을 경험한다./ c. X는 Y와의 만남을 계기로 존재적 변화를 겪는다.’라는 세 가지 특징으로 파악되는데, 이러한 특징은 그 이전 시대의 전기 작품들의 구조적 특징과 일치한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에 더하여 초점화 대상이 주인공 한 명에 고정되어 있다는 점도 이전 전기와 마찬가지이다. 유영 이야기 틀에서 화자가 유영이 존재하는 시공을 벗어난 지점에 주목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화자가 주목하는 초점화 대상이 주인공 유영으로 제한된다는 의미이다. 초점화 대상이 유영을 벗어나는 경우가 없다는 점에서, <운영전> 역시 운영과 김진사가 겪는 소설적 갈등과는 별도로 유영이 겪고 있는 또 다른 전기적 갈등이 존재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다는 점을 지적했다. 작은 틀인 운영과 김진사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유영 이야기의 틀이 지니는 전기의 갈등구조와는 전혀 생소한 형상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두 가지로 지적되었는데, 하나는 세계와의 대결 양상이 ‘직접 맞섬의 관계’로 형상화되어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맞섬의 관계가 상호 우위에 입각해 있다는 것을 명백히 해 주기 위한 장치로서 ‘초점화 대상이 다극화’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운영과 김진사의 이야기 틀에서 우리는 운영을 비롯한 궁녀들과 안평대군의 갈등, 김진사와 안평대군의 갈등, 김진사와 노비 특의 갈등, 운영․김진사와 무녀와의 갈등 등 다양한 갈등 관계를 추출할 수 있었다. 이들의 갈등은 화자 진술이나 특정한 인물의 발화를 통해 간단하게 서술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맞서는 지점들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갈등이 화자의 진술이나 다른 인물의 발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 자신의 발화를 통해, 독립적인 입장에서 명확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을 보였다. 나아가 인물들이 갈등을 빚고 있는 모습을 그리면서, 인물 관계가 상호 우위에 입각해 있는 지점을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갈등 주체들을 독립시켜 형상화시키는 것을 본고에서는 초점화 대상의 다극화로 개념화했다. 이상의 분석을 근거로 하여, 본고에서는 <운영전>에 보이는 갈등구조가 우리 소설사에서, 이전 시대 전기의 틀을 수용하면서도 소설적 갈등구조를 명백히 확보했다는 점, 애정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애정의 문제를 넘어 애정에서 부수되어 발생하는 갈등 지점에 착목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갈등이 상호 우위에 입각해서 전개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또 <운영전>이 우리 영웅․군담소설에 전형적으로 보이는 ‘순환구조’가 최초로 보이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후대 소설과의 영향관계에도 일정하게 기여하고 있다는 점도 함께 언급했다. 본고의 분석을 통해 이제 우리의 서사문학이 전기의 틀로는 더 이상 형상화할 수 없는 문제 지점들에 착목하기 시작했으며, <운영전>에서 비로소 그러한 문제 지점들이 작품으로 형상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The 17 century is the period when the novel takes a central position in the history of Korean narrative literature. Woonyung-jun was written in the 17 century and is note worthy shows the 17 century’s changes were formed concretely in this work. Woonyung-jun’s structure has been studied from the view of the ‘frame-structure’ and the ‘structure of the sleep-play’ in existing studies. However this analysis is not sufficient, because this work has to be regarded as the work that opened up the structure of the novel while accepting the structure of the Jungi(傳奇). This paper analyzed the woonyung-jun’ structure from the view of the genre’s theory, and investigated its meaning in the history of the novel. Woonyung-jun’s structure is formed in the fold structure. If the structure of conflict is inspected from the view of the genre, this work can be divided into two. One is the Jungi(傳奇)’ structure being told about ‘Youyung’. The other is the novel’s structure being told about ‘Woonyung and Kimjinsa’. The Youyung’ structure has three kinds of special features. 1. X who is in discord with the world existence. 2. X unexpectedly meets Y, who doesn’t have asocial relationship with X. 3. X endures change as a result of this meeting. These are the same with the Jungi(傳奇)’ structure. It is also similar in that the focus is fixed on one man who is the hero. The narrator doesn’t pay attention to the space-time that Youyung doesn’t exist. The structure of Woonyung and Kimjinsa’s tale has a different feature than that of the Youyung’ structure. There are two kinds. One is the feature that the relationship of the hero and the world is described as directly opposing each other. The other is the point of view that the object of the focus is variously to show that the relationship is based on mutual predominance. We can draw various relations in the conflict in woonyung-jun for example, the conflict of thecourt ladies to Anpyung, Kimjinsa to Anpyung, Kimjinsa to male servant-Teuk, Woonyung․Kimjinsa to the female shaman. It is important that these conflicts, which directly oppose each other, are exhibited concretely. On the basis of the above mentioned, we estimate that Woonyung-jun has three meanings in the novel’s history. 1. This work secured the structure of the conflict like a novel, while accepting the Jungi’s framework. 2. The conflict of this work is developedby being based on mutual predominance. 3. This work’s circulation- structure is still contributing to future works. Through this analysis of this thesis, we concluded that our narrative literature began to pay attention to the spot that can’t be described by the frame of Jungi(傳奇), and this spot is described from the viewpoint of Woonyung-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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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신화에 나타난 악인형 여성 캐릭터의 이미지 연구-<문전본풀이>와 <차사본풀이>를 중심으로-

길태숙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9집 2009.06 pp.327-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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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캐릭터가 작품 내적인 서사적 기능에 한정된 존재가 아닌 무한한 세계를 창조하는 존재라는 관점에서 제주도 본풀이 중 <문전본풀이>와 <차사본풀이>에 등장한 노일제대귀일의 딸과 과양셍이 처를 대상으로 악인형 여성신 캐릭터의 이미지에 대해 분석하였다. 노일제대귀일의 딸과 과양셍이 처가 갖는 전형적 악행의 성격은 탐욕, 유혹, 거짓, 살인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런데 서사 내에서의 노일제대귀일의 딸의 악행은 그녀가 상대신에 대응하는 적대자로서 기능하기 위한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면, 과양셍이 처의 악행은 무질서, 혼돈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변복을 통한 불완전한 변신, 다수의 하찮은 생물의 집합체, 권모술수 등의 서사를 통해 노일제대귀일의 딸은 다중적 자아를 지닌, 상대자의 성격에 맞춰 다양한 악행을 범할 수 있는 캐릭터 이미지를 형성한다. 과양셍이 처는 삼형제의 가짜 어머니, 저승왕인 염라대왕의 이승행차를 통해 징치될 수밖에 없는 서사를 통해 풍요로움을 방해하고 무질서, 혼돈을 창출하는 캐릭터 이미지를 보이고 있다.
In this article, I analyze characteristics of two female villain deities in Jejudo bonp'uli(Myth of Jeju island, 제주도본풀이)by applying the concept of polyphony; the main characters are Noiljedaekuil-Ttal(노일제대귀일 딸) in the subcategory, Munjeonbonp'uli(문전본풀이) and Kuayangseangi-Cheo(과양셍이 처) in the subcategory, Chasabonp'uli(차사본풀이). These characters vividly portray a female villain archetype as avaricious, treacherous, licentious, and murderous. Despite these similar characteristics in both figures, they have their own unique representation through the narratives. For instance, Noiljedaekuil-Ttal’s wicked behaviors can position her as an antihero against the protagonist, Nokdiseanoin(녹디셍인), one of her step sons, who transcended into a benevolent deity. On the contrary, Kuayangseangi-Cheo’s behavior emblematizes chaos or disorder. More specifically, the character, Noiljedaekuil-Ttal demonstrates how her persona in the narrative can display multiple selves through frequent shape-shifting and trickeries to defeat her opponents. In the case of Kuayangseangi-Cheo, her character demonstrates a female villain deity, who prevents prosperity, but creates chaos and disorder within the narrative: she falsely pretends to be a mother of three sons, but is eventually destroyed by the god of the underworld(염라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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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야담 소재 귀신담의 귀신욕망과 욕망의 실현방법

윤혜신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9집 2009.06 pp.363-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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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어우야담에서 귀신이 욕망의 실현을 직접 시도하는 「성적관심 요구」 귀신담과 「장례 요구」 귀신담을 대상으로 욕망의 내용, 성격, 욕망을 실현하는 과정과 방법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여귀와 남귀의 성차(性差)에 따라 욕망의 실현과정과 방법이 다름을 밝혔다. 어우야담 귀신담에서 귀신은 성적 관심과 장례를 요구한다. 성적 관심 요구는 요구 자체보다는 그 너머의 것 즉, 무의식상의 욕망을 가리킨다. 성적 관심을 요구하는 것은 곧 애정을 욕망하는 것이며 장례를 요구하는 것은 상징계(the symbolic)에 편입하고자 하는 욕망을 뜻한다. 애정 욕망은 남녀 간 애정을 바라는 것이고 상징계 편입 욕망은 사회 속에서 기표(signifier)를 가짐으로써 자기 존재를 타자(the other)가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같은 무의식상의 욕망은 결국 대상의 욕망이 되고 싶은 욕망이므로 귀신담에서 여귀는 ‘타자(the other)인 남성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은 욕망’을 반복한다. 또 생물학적으로는 죽었으나 장례를 치르지 못해 상징적으로 죽지 못한 귀신은 장례가 치러질 때까지 즉, 장례의 기표를 얻어 상징계에 편입할 때까지 인세에 귀환한다. 욕망을 실현하는 과정과 방법은 귀신의 성차(性差)에 따라 다르다. 여귀는 성적 자질을 이용하고, 남귀는 비일상적 존재로서의 힘을 권위화하여 상대를 압도한 후 자신의 욕망을 실현한다. 「성적관심 요구」 귀신담에서 여귀는 남성이 혼자 있을 때 출현하며 미모, 교태어린 말로 유혹한다. 여귀의 능력 중에서 가장 효용이 높은 능력은 바로 성적 자질에 바탕을 둔 능력이며 이 사실은 남성의 긍정적 반응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남성을 유혹할수록 여귀의 결핍이 강조되고 드러난다. 죽은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과 사랑을 나눌 자격이 안 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결핍은 존재론적 결핍으로 노력해서 해소될 수 있는 결핍이 아닌, 애초에 해소될 수 없는 결핍이다. 남귀는 여성의 동의를 구하지 않는다. 강압적으로 여성을 죽여 자신의 존재 기반인 이계(異界)로 데려간다. 일방향의 힘(power)이 욕망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사용된다. 「장례 요구」 귀신담에서도 여귀는 성적 자질을 이용하여 상대의 책무감을 유발하고 이로써 욕망을 실현한다. 남성의 책무는 ‘장례 치러주기’가 되며 피하지 않고 이를 수행한 남성에게는 보상, 복록이 따른다. 「장례 요구」 귀신담에서 남귀는 비일상적 존재의 힘을 이용하며 이 힘은 권위가 된다. 남귀는 비일상적 이기(異氣), 예를 들어 한기(寒氣), 이광(異光), 이음(異音) 등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이에 남성은 비일상적 존재의 출현을 감지하며 점점 압도된다. 마침내 남귀는 남성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이어 부탁의 말을 전하며 남성은 이를 들어준다. 여귀는 자신의 요구를 남성에게 전달할 언어가 없어서 우회적으로 실현했던 반면, 남귀는 직접적으로 자신의 요구를 언어로 전달할 수 있었다.
Ou Yadam, written in the early 17 Century (1623), has the narratives dealing with the desire of gwishin, Korean ghosts, compared with the previous narratives in Yongje Chongwha (15 C.), and Yongcheon Damjeokgi (16 C.). The narratives are divided into two types based on the ghosts' desires: the ghost desires but does not know how to demand or accomplish its desire; the ghost desires and strongly demands another, a human being, to accomplish its desire. The ghost which doesn't know how to resolve its desire repeats a traumatic tendency and the ghost which intends to resolve itself shows its desire and finds a way to resolve it. The desire is expressed in the form of demand and the two main demands are the demand for sexual attention and demand for receiving a funeral. These demands indicate the desire, affection and entering into the symbolic. This research illuminated what the demands are and what are the characteristics of the desires in the narratives that the ghost intends to resolve. Under the mythical world view and Buddhistic world view, gwishin was a supernatural and external being. It was placed outside of human beings in the myths and early narratives. However, as gwishin came to be known as a spirit of the dead, it became close to having human mind and psyche. Human sentimentals substituted gwishin's transendentals: need, demand, desire, anxiety, and trauma. Compared to the previous narratives, the gwishin in Ou Yadam expresses their demand concretely: verbal announcement and behaviour toward another, a human being. According to the Lacanian Psychoanalysis Theory, there is always a gap between need and demand. Therefore the gap stimulates constant desire. The repeated demands indicate the unconscious desire, that is, the passion for the being. In the narratives, gwishin demand sexual attention and a funeral. These indicate unconscious desires, a desire to be an object that the other desires. In the narratives, the demand becomes a desire for affection and a desire for receiving a signifier in the symbolic. Getting a signifier means being a subject in the society. Therefore, gwishin comes back to the society and ceaselessly demands the missing signifier of a recognised death. The process and method to realise the desire was different depending on the sex. The female gwishin appears to a man and uses its sexual features: its beauty, gestures and lure. Meanwhile, the male gwishin appeares to a man and uses its power as supernatural being and suppresses the other and makes him act. In the future, research is needed to explain what is the background and main stimuli of the change in gwishin narratives of Ou Yadam. Furthermore, comparative study is needed in the diachronic sense from the 15 C. and to the 18 C.'s literary tex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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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20세기 초 서구인이 본 기생-서구인의 견문록에 나타난 기생관련 기록을 통하여-

문순희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9집 2009.06 pp.403-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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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개항 이후에서 20세기 초에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많은 서구사람들이 선교사, 학자, 여행가, 외교관 등의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하였는데, 이들은 귀국한 후 극동의 미지의 나라 조선에 대한 소개서들을 견문록의 형태로 연이어 출간하였다. 19세기 말ㆍ20세기 초라고 하는 격동의 시기에 한국에 체류한 외국인들의 관심은 주로 한국의 역사나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관한 것이 중심을 이루었으나, 한국 문화나 민속의 하나로 서구인들은 조선의 ‘기생’에 관해서도 기록했고 귀국 후 자신의 저서에서 소개하였다. 본 글은 개항 이후 1910년 이전에 한국을 방문한 서구인들이 남긴 기생에 대한 기록의 분석을 목적으로 한다. 당시 서구인들이 남긴 견문록에 나타난 기생관련 기록의 특징은, 첫째로 기생의 외양에 관한 기술이 많다는 점이며, 둘째로는 기생과 기생제도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정보에 관해서는 대부분이 주변 사람들에게 듣거나 이전에 나온 서구인들의 견문록을 참고로 한 것들이 많은데, 대체로 기생과 제도에 관한 일반적인 소개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로는 그들의 기생에 대한 성적 호기심이다. 이런 견문록에 나타난 기생관련 기록을 통하여 서구 남성들이 기생에 대해서 동양여성에 대한 환상과 이미지가 전제로 깔려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서구 남성들의 기록과 대비하여, 비숍은 여성의 입장으로서 기생에 탐닉하는 남성들을 비판하면서 기생을 통하여 조선 사회를 비판하였다. 그러나 비숍은 개인적으로 기생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그들을 사회의 악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서구인의 견문록에 나타난 기생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제국의 시선과 젠더의 시선이 동시에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19世紀末、特に開港以降から20世紀初頭まで、アメリカ、ドイツ、フランス、イギリスなどの世界各国から多くの人々が朝鮮に訪れた。彼らは、宣教師、学者、探検家、外交官などの身分で訪れた後、本国に帰国、極東の未知の国である朝鮮に関する本を朝鮮紹介書として見聞録の形態で出版した。19世紀末~20世紀初頭という激動の時期に朝鮮に滞在した外国人らの興味の矛先は、歴史や当時の政治情勢に向けられるのが主であった。しかし、その中でも民俗や文化に関心を向けその一部として朝鮮の妓生に関しても少なかれ記録を残した。本稿はこの時期に朝鮮を訪問した西欧人らが残した記録を対象に、当時の妓生の様相、そして西欧人の妓生をどう捉えていたかを調べてみた。当時、西欧人らが残した朝鮮見聞録に見られる妓生に関する記録の特徴としては、まず妓生の容姿に関するものが多いという点である。美人、美しい、大人しい、やさしいなどで表現された内容からは、外見に関する否定的な発言は見られられなかった。さらに二つ目としては、妓生自体や制度に関する説明が細かく記述されていることである。彼らの知識は周囲から得たものと、それよりもっと以前に発刊された先学者たちの書籍を参考としており、正確でありながらも時折主観的な解釈が目にとまる。そして三つ目には、妓生に対する性的な好奇心を隠さず表している点だと言える。この時期妓生はすでに朝鮮の名物として有名になっており、朝鮮を訪れる外国人らは妓生に会うために努力を惜しまなかった。このような記述の方法や内容から、西欧の男性らが妓生を通して、東洋の女性に対する憧れやある種のファンタジーを持っていたことが分かった。これは帝国の視線とジェンダーの視線が混じりあい反映されたものであるといえるだ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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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록

14

【휘 보】외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9집 2009.06 pp.435-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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