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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상고전연구 [Yeol-sang Journal of Classical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열상고전연구회 [Society of Yol-Sang Academy]
  • ISSN
    1738-2734
  • 간기
    격월간
  • 수록기간
    1988~2019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한국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810 DDC 810
제38집 (19건)
No

기획논문: 완판 방각본의 새로운 이해

1

기획의도

이태영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8집 2013.12 p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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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원

2

완판본(完板本)의 개념과 범위

이태영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8집 2013.12 pp.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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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호남에서 출판된 완판본이 가지는 그간의 내용과 개념을 검토하고, 완판본의 개념과 범위를 확 대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기존 완판본의 개념은 경판본과 대비되는 전주에서 출판된 한글고전소설에 초 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후 한글고전소설이 판매용 책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완판 방각본’이란 용어 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 결과 ‘완판본’은 ‘전주에서 발행된 판매용 책’이란 개념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개 념은 전체적으로 완판본과 경판본, 안성판본, 달성판본이 서로 유기적인 관련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어서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그러나 이처럼 완판본이 가지는 협의의 개념으로는 전주에서 출판된 옛 책이나, 전라북도에서 발행된 옛 책을 다 포함하여 적용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완영본의 경우, 분명히 전라감영에서 발행된 옛 책에 모 두 ‘완영’의 표기가 있어서 서지적으로도 경상감영의 ‘영영판’과 비교가 되며 이들 모두는 조선후기의 방 각본 발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전북도민들은 이제 전라북도에서 발행된 옛 책들을 모두 ‘완판본’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지역민들의 문화의식의 발달에 따른 것이어서 완판본의 개념을 새롭게 확장할 필요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완판본의 개념을 기존의 협의의 개념에다 새로운 광의의 개념을 넣어서 새롭게 개 념화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전주에서 발간된 옛 책’은 물론, ‘전북에서 발간된 옛 책’, ‘전라감영이 관할하 던 호남에서 발간된 옛 책’을 완판본의 개념 속에 넣고자 한다.
This paper is attempting to expand the scope and the concept of wanpanbon, looking at the contents of Wanpanbon that was published in Honam. The concept of the existing wanpanbon was focused on the Hangul classic novel. This attitude is due to wanpanbon and gyeongpanbon Hangul classic novel had a very contrasting characteristics. because Hangul classic novel was books for sale, it was called 'wanpan banggakbon'. As a result, 'wanpanbon' had the concept of 'the books for sale published in Jeonju'. This concept made ​​in organic relation to each other gyeongpanbon, wanpanbon, Ansungpanbon, dalsungpanbon However, with such a narrow concept of wanpanbon, is difficult to apply to old books published in Jeonju or old books published in Jeollabuldo. Wanyeongbon, the old books published in Jeollagamyeong has the 'wanyeong markers', therefore Wanyeongbon is comparable with Yeongyeongbon. All of these had a decisive role in the development of the banggakbon in late Joseon. Jeollabukdo residents is calling the old books published in Jeollabukdo ' wanpanbon'. Because of the cultural awareness of local residents have incresed, new concepts of the wanpanbon must to expand. In this paper, a new concept for wanpanbon would like to add. So 'old books published in jeonju' as well as 'old books published in Jeonbuk', 'old books published in Honam Jeollagamyeong ruled' should be inserted in the concept of wanpanbon .

6,700원

3

완판(完板) 『조웅전』의 판본

유춘동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8집 2013.12 pp.3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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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기획주제에 일환으로 완판 『조웅전』의 판본을 검토한 것이다. 완판 『조웅전』에 대해서는 여 러 논의가 있어왔지만 판본(板本)에 대해서는 류탁일과 조희웅의 논의를 제외하면 별다른 성과가 없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기존에 알려진 것과 새로 발굴한 판본을 살펴보았다. 완판 『조웅전』은 유간기본(有刊記本), 판권지(版權紙)가 부착되어 있는 본, 이를 저본으로 만든 활판본 까지 총 13종이 확인된다. 13종은 판식(板式)과 분권(分卷)의 위치, 내용을 기준으로 4계열로 나뉜다. 각 계열의 대표본은 정사-완서행동본, 계유-을묘본, 봉성신간본, 무술계동완남본이다. 1계열에 속하는 것은 정사-완서행동본, 임진완산신간본, 병오맹춘완산개간-기유중추완산개간임진완산 신판본, 광무7년계묘하완산북문내중간-계묘맹추완산중간 본, 다가서포본, 활판본 박문서관본이다. 2계열에 속하는 것은 계유-을묘본, 무술중추완산신판본, 서계서포 판권지 부착 91, 89, 89장본, 활판본 덕 흥서림본, 양책방본이다. 이외 3, 4계열에 속하는 본은 봉성신간본, 무술계동완남본 84장본 한 종씩이다. 그러나 3․4계열에 속하는 본은 내용상 정사-완서행동본을 저본으로 했기 때문에, 사실상 완판 『조웅전』의 판본은 1,2계열, 두 계열로 구분된다. 이러한 완판 『조웅전』을 통해서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은 각 계열마다 104>97>95>97>88장본, 96>94>91>89장본 식으로 계속해서 장수(張數)의 축소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것은 기존에 알려진 것 과는 다르게 후대에 나온 완판 방각소설의 경우, 생산 단가를 절약하기 위한 방안으로 선행 판본의 장수 를 줄이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방각본 소설이 지닌 일반적인 특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완판 방각소설이 후대로 갈수록 장수가 확장된다는 일반적인 생각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목할 점은 서계서포에서 여러 종의 완판 『조웅전󰡕을 동시에 간행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 서 포에서 단일 판목으로만 간행된 것이 아니라 여러 종의 판목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시장 수요에 맞게 소설 을 간행한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활판본 『조웅전』의 경우, 경판본이나 세책본이 아닌 완판본을 저본으로 간행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조웅전』의 경우 다른 상업출판물과는 달리 그만큼 완판 『조웅전』이 내용에서 우위를 차지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활판본의 저본이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단서도 제공한다. 활판본의 경우, 무작위로 경판본, 세책본, 완판본 중의 하나를 가져다가 간행했던 것이 아니라, 작품의 내용면에서 우위를 보였거나 당대 독자들에게서 인기를 끌었던 것을 활판본의 저본으로 삼았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 수 있다. 차후 이에 근거를 둔 정밀한 후속연구를 진행할 것이다.
There have been several discussions on the edition wanpanbon(完板本) <Joungjeon>, but regarding its printings, there has not been much result. This article has examined the editions of it that have been found previously and also newly. <Joungjeon> consists of total 13 kinds including Yugangibon(有刊記本), copyright-attached editions, and also printed ones taking it as its original. According to the result of examining the 13 types of editions, in terms of the types of printing, positions to divide the books, and also contents, the study has categorized edition <Joungjeon> into four lines: 1. Jeongsa-Wanseohaengdonggaepan 104 pages editions, 2. Gyeyuchodongwanseojunggan 96 pages editions, 3. Bongseongsingangbon 95 pages editions, & 4. Musulgyedongwannambon 84 pages editions. The thing that could be found newly through examining edition wanpanbon <Joungjeon> is that in each of the lines, the number of pages kept being reduced. This is different from what has been known to us before. The editions of commercial novels that came to be released later did choose the way to reduce the pages of the advanced editions as a means to save production cost. This is not very estranged from the general features which commercial novels have. People generally tend to think the pages are increased in the later editions of commercial novels, but this idea needs to be reconsidered. And what is noticeable is that Seogyeseopo did publish several types of edition <Joungjeon> at the same time. From this, we can figure out a new aspect that a bookstore did not publish books with a single block but possessed several types of blocks and issued novels differently according to the market demand. Lastly, printed <Joungjeon> was published taking as its original the edition, not revised or rental editions. This was so because unlike other commercial publications in <Joungjeon>, edition <Joungjeon> was superior to others in terms of its contents. This also provides a new perspective to find out the first edition among the printed editions. It allows us to realize a new fact that printed editions came to be published not just taking any one of the revised, rental, or editions randomly but adopting as their original the one that was either superior to others in terms of contents or popular to the readers of the time.

6,300원

4

상업출판의 관점에서 본 19세기 고지도

이윤석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8집 2013.12 pp.6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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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상업출판물에 관한 연구는 주로 고소설 연구자들이 해왔기 때문에 기존의 상업출판 연구는 세책과 방각본 한글소설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한글 방각본과 세책에는 작자나 출판업자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기 때문에 고소설의 작자가 누구인지, 또 누가 고소설을 출판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한글 방각본보다 훨씬 많은 양이 간행된 한문 방각본에는 저자나 출판업자에 대한 약간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한문 방각본을 통해서 한글 방각본의 간행에 대한 추정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19세기에 나온 여러 가지 지도를 상업출판물의 관점에서 접근하여, 낱장 지도가 방각본으로 간행된 것임을 밝혔다. 그리고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와 <청구도>가 영리를 목적으로 한 상품이라는 점과 김정호의 직업이 출판업(방각본과 필사본 지도 제작)이라는 점도 아울러 얘기했다. 19세기 지도가 상업출판물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지도 연구자들도 이미 지적한 바 있으나, 조선후기 상업출판의 전체적인 구도 속에서 이 문제를 다루지는 않았다. 조선후기 상업출판물에 이제까지 이 분야 연구에서 전혀 논의되지 않았던 지도가 들어감으로서 앞으로 이 시기 상업출판 연구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Research on the commercial publications of the late Joseon dynasty has been conducted mostly by scholars of classical vernacular fiction. As a result, prior works on the publishing industry have dealt predominantly with printed books of vernacular fiction that were lent out to readers for a fee. Such printed loan-out books, however, provide no information on their authors or their publishers so it is impossible to identify the original writers or the companies that produced them. But in the case of books written in Chinese characters, which were published in much greater numbers than vernacular works, a marginal amount of information on the authors and publishers is available. By elucidating the publication process of Chinese-character writings, we can surmise that of vernacular works as well. This article examines various nineteenth-century maps in the context of the publishing industry of the period, demonstrating that such maps were published commercially in printed sheets. I further show that Kim Jeongho’s works Daedongyeojido and Chunggudo were both produced for profit (Kim worked in the publishing industry as an editor of both printed and hand-written books). While scholars of maps have already pointed out that nineteenth-century maps were produced for a commercial purpose, none have examined them in the general context of late Joseon dynasty publishing industry. Since research on the period’s commercial publications have not dealt with the issue of maps, an exploration of the topic will deepen our understanding of the industry.

8,100원

일반논문

5

<단발령(斷髮嶺)>과 <금상첨화(錦上添花)>의 전래 서사 수용 및 변전 양상 연구

강현조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8집 2013.12 pp.10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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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1913년 신구서림에서 출판된 <단발령>과 <금상첨화>가 전래 서사를 수용하되 신소설에 가까운 형태로 변전시킨 작품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후, 두 작품이 전래 서사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변전 양상을 고찰하였다. 나아가 이러한 현상이 갖는 문학사적 함의를 고구(考究)함으로써 이 시기에 출 판된 활자본 소설 전반에 대한 더욱 정밀하면서도 철저하게 검증이 진행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논증하 였다. <단발령>은 19세기 후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필사본 고소설 <화산중봉기>의 핵심 대목인 진가쟁 주담 부분을 수용하여 집필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화산중봉기>를 단순히 ‘복원’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주로 기법적인 측면의 변화로 인해 신소설 양식과 유사한 형태로 변전되는 양상이 나타난다는 점 을 확인하였다. 아울러 <단발령>은 암행어사의 활약을 다룬 야담 1편을 삽화의 형태로 결합시킴으로써 이른바 서사 조 합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단발령>의 삽화와 가장 뚜렷한 유사성을 보이고 있는 작품 은 조선 후기의 야담집인 󰡔청구야담󰡕 권 5의 제 138화 <남매의 혼례를 치러준 여동식>이다. 서사 조합에 의한 작품 집필 방식은 신소설의 등장 초기인 1908년에 발표된 이해조의 <원앙도>에서도 나 타난 바 있다. 여기에 1910년대 초반에 발표된 <단발령>의 서사 조합 사실은 지금까지 신소설로 알려져 있던 작품들이 실제로는 전래 서사의 조합적 변형을 통해 한 편의 작품으로 완성되었을 수 있으며, 이러 한 방식으로 집필된 작품이 추가로 확인될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음으로 이 논문에서는 <금상첨화>가 조선 후기에 야담과 필사본 고소설 등의 형태로 전해 내려오던 < 옥소선 이야기>를 수용하되 <단발령>과 마찬가지로 신소설의 기법을 활용하여 새롭게 집필한 작품이라 는 사실을 규명하였다. 그런데 <금상첨화>는 <소설인규옥소선>과 <월하선전> 등 대표적인 <옥소선 이야기> 유화의 기본적인 얼개를 제재로 취하고 있으면서도 중반 이후부터는 여주인공의 봉욕‧수난담이 확대 서술되어 있다는 점 에서 기존의 <옥소선 이야기>군(群)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1930년대의 유화들이 비교적 짧은 야담 형태의 <옥소선 이야기>를 단순 재수록하고 있는 점과도 구별되는 <금상첨화>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금상첨화>는 조선 후기에 야담 및 고소설의 형태로 널리 향유되었던 서사 <옥소선 이야기>를 제재로 차용하되, 이른바 가정소설계 신소설로 명명되어 온 작품들의 전형적인 화소를 반영하여 대폭적 인 변형을 가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금상첨화>는 전래 서사와 이 시기에 새롭게 등장 한 신소설의 서사적 모티프가 일종의 조합 형태로 결합되어 있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단발령>은 이른바 진가쟁주담 계열의 서사가 누대에 걸쳐 문학적 형상화의 제재로 선택되어 왔음 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7세기 초 실사를 토대로 집필된 이항복의 <유연전>을 효시 로 볼 수 있는 진가쟁주담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이후 <옹고집전>과 <화산 중봉기>에 제재 및 모티프의 차원에서 수용된 바 있다. 여기에 <단발령>이 추가됨으로써 진가쟁주담 계 열의 서사는 전근대와 근대에 걸쳐 다양한 양식으로 재현된 작품군을 확보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유 연전>‧<옹고집전>‧<화산중봉기>‧<단발령> 등을 거쳐 계승‧변용되었던 진가쟁주 모티프의 문학사적 함 의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 점은 <금상첨화>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10년대 활자본 소설 중 양반-기생 간의 애정결연담 계열의 서사로 분류될 수 있는 작품은 <금상첨화> 외에도 <이화몽>과 <일타홍 이야기>를 수용‧변전시킨 <천 연정> 등 2편이 더 확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들의 모티프 또한 멀게는 <춘향전>과 <옥단춘전> 등의 고소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계열의 서사 또한 <단발령>과 마찬가지 로 전래 서사의 근대적 수용 및 변전 현상 및 계보의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함께 고찰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이상의 사실들을 종합해볼 때 지금까지 신소설 혹은 신작 구소설 등으로 알려져 온, 그 결과 이 시기에 들 어와 새롭게 창작된 것으로 간주되어 온 작품들의 유래 및 제재적 원천을 확인하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전 개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아울러 근대 초기 활자본 소설의 연원에 대한 더욱 엄밀한 고찰을 통해 전래 서 사의 자기 갱신 과정 및 근대소설 형성에 미친 영향이 새롭게 조명될 수 있으리라고 사료된다.
In this paper, it is proved the fact that the work was transition as close to a sinsoseol(a kind of a novel in early modern). Works of <斷髮嶺> and <錦上添花> as a sinsoseol were published from Singusurim in 1913, have been classified into sinsoseol in particular, actually it revealed the fact that was written and contains folk narratives a variety of such ancient novel. First, <斷髮嶺> is contained, but more directly, it is affected the same episode, certain old works of fiction <華山重逢記>. However, it is covalently similar content it may be to be found a clear difference full novel. There is a surface due to changes in technical aspects, and the substation in a form similar to the form of the new novel mainly I confirmed the point. For this reason, to define the type ancient novel simply this work is that there is a hard surface also not be denied. In addition, <斷髮嶺> is also a work by coupling in the form of illustrations Part 1 storyteller depicting the success of your insidious history, is showing the appearance of compounding narratives. It is showing the similarity of the most striking illustrations and bobbed ordinance with <Dong-sik Yu that made the wedding of brother and sister> of 138th episode of 󰡔靑邱野談󰡕. Work writing method based on a combination of Scrivener is Ihejo manifestation of which was announced in 1908 appeared early in the new novel even <鴛鴦圖>. Magnificent compounding was announced in the early 1910′s here of <斷髮嶺>, in fact, work was known as a new novel so far, finished in work through the compounding deformation of the ancestral transition in fact is significant in that there is a possibility that, as suggested could be confirmed by additional work was written in this manner. Next, the case of <錦上添花>, it can be compounded with the aspect receiving the legacy scribes is clearly appears relatively. To accommodate the story has been handed down, such as <The Story of 玉小仙> in the form of a manuscript ancient novel and storytelling. However, <錦上添花> is even while taking the theme of the basic mechanism of the story that has been extended description, is showing a major difference a group of <The Story of 玉小仙> of existing. This can be <錦上添花> which are distinguished also that oil painting of the 1930s is simply recorded a relatively short form of Yadam <The Story of 玉小仙> features and unique . Shortly <錦上添花> is to borrow the theme of which is enjoyed widely in the form of ancient novel and storytelling of Yadam <The Story of 玉小仙> spectacular, but it has been named so-called domestic fiction world new novel it can be a work to reflect the typical pixel of the work, has made ​​significant deformation. In this context, it is possible to see in a production which appeared new at this time is bound in the form of a compounding of some sort. On the other hand, <斷髮嶺> is based on the due diligence of the early. 17th century notable in that it shows that the transition of the so-called “眞假爭主談” have been selected in the sanction of literary figuration over that can be seen as a pioneering figure. To ensure that it has directly affected is difficult, and motifs sanctions so that to ensure a work group which is reproduced in a variety of ways and modern premodern by <斷髮嶺> is added here. There is a need for discussion of literary history implications of “眞假爭主談”, transformation handed down through a serial story is made. This point <錦上添花> does not change greatly. Printed novels in 1910, work that can be classified as epic of love marriage fence system of the parasite, was a compounding <The Story of 一朶紅>, <梨 花夢> and <天然停>. And it can be viewed as inspired by ancient novel, such as <玉丹春傳> and <春 香傳> is far motif of this work, also magnificent of this series, as well as <斷髮嶺> I think there is a need to be considered together in terms of the formation of lineage and substation phenomenon and modern acceptance of a transition. If you try to synthesize the above facts, had been known for, such as new district and novels, as a result the origin of the work that has been deemed to have been entered at this time, has been created anew I see that there is a need to deploy continuously work to confirm the source vindicatory. In addition, I suspect for the genesis of print books novels of early modern, and whether there will be that its influence on the formation of the modern novel and self-renewal process of legacy scrivener through more rigorous consideration is illuminated anew.

7,500원

6

한국 전통연희의 도상성과 미학 - 경복궁 중건 시역 때의 대공연을 중심으로 -

윤주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8집 2013.12 pp.134-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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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경복궁 중건 시역 때 놀아졌던 대공연은 한국 전통연희의 도상성과 미학적 질서를 전해준다. 그것 은 인공 무대를 활용한 산희(山戱) 방식의 길놀이와 마당을 이용한 야희(野戱) 방식의 판놀이로 대별된다 . 전자에서는 <금강산>, <연화대>, <서유기>가 유명했다. 이들은 기존의 고사나 선행 연희에 가탁하는 연출 원리를 구사하면서, 상하 질서를 옹호하고 숭고한 미의식을 나타내며 경복궁 중건에 대한 송축의 도 상성을 띠었다. 후자에서는 <탈춤놀이>가 눈에 띄고, <범탈놀이>를 계승한 <호렵도>가 유명했다. 이들 은 그 자체의 사건을 전개시키면서, 부역터의 사방 질서를 옹호하고 골계미를 나타내며 투쟁과 노동의 도 상성을 띠었다. 그러나 산희와 야희, 길놀이와 판놀이는 대립적이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신명풀이 미학을 구현했다. 이를 산대놀이의 파계승 과장으로 추정되는 <탈춤놀이>, 대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한 <백자도놀이>를 통해 분 석할 수 있었다. 그러한 미학은 싸움의 승패를 난장춤과 타령소리를 통해 화합으로 바꾸거나, 어린애들의 산만한 행위와 송축 행위를 통합하면서 수직적 질서의 유연함을 확장하는 연출 방식에서 나타났다. 산희 와 야희는 독자적 연출 원리를 지니고 있지만, 신명풀이의 미학에 의해 상하․사방의 질서를 통합한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공연문화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The grand festivities, which performed at starting work of Choson royal palace Keong-Bok-Gung's rebuilding 1865, lets us know the iconicities and aesthetic orders of Korean traditional play. Its divide broadly into 2 groups, processing play of mountain stage style and ground play of field stage style. The former were <Mt. Geumgang>, <Stage of Lotus> and <The Monkey Goes to West> famous. These had the pretending dramatugies on old stories or preceding rites, supported vertical order, and were in iconicity of blessing on Keong-Bok Palace's rebuilding. The latter were <Play of Korean Mask> outstanding, <Painting of Tiger Shoot> which suceeded the legacy of <Play of Tiger Mask> famous. These performed the dramatugies of events themselves, supported horizontal order of the work place, and were in iconicity of struggle and labor. However, although processing play and ground play, or mountain stage style and field stage style were oppositive, they generally realized aestheics of Shinmeong-Puri. I analyzed it through the act of apostate monk in <Play of Korean Mask>, <Play of 100 Children Screen-Painting> which performed lastly. The aestheics came out from the dramtugies that the former changed victory and defeat of the struggle into harmony by the orgy dance and the song of Ta-Reong, or the latter enlarged flexibility of the vertical order by the combination between loose acts of the children and ritual ceremony of blessing.

7,800원

7

『부담(浮談)』의 발견과 패설사적 의의 - 자료 소개를 중심에 두고

정명기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8집 2013.12 pp.169-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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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일실된 것으로 알려진 『부담(浮談)』을 새로 발굴하여 그 자료가 갖는 패설사적 의의를 밝히 는 데에 그 목적을 둔다. 이병기 선생은 1949년에 『요로원야화기』를 번역 출간하였는데, 이 책에는 <요로원야화기> 외에 여러 작품집에서 발췌한 이야기들도 실려 있다. 그 중 『부담』에서는 총 3편의 이야 기가 발췌되어 실렸다. 그러나 정작 『부담』의 실물은 최근까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런데 현재 이 책 은 서울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부담』에는 총 9편의 작품이 실렸다. 2화와 7화는 제목이 없는 반면, 나머지 7편은 제목을 붙이고 있다. 이는 작품의 출처가 동일하지 않은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부담』은 한글본으로 전한다. 기존에 있던 한문본을 번역한 텍스트를 대상으로 하여 『부담』은 이를 다시 전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근거는 이 책에 실린 제6화 <향규문답>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향규문답>은 서강대본 『정향전』에 부록 에도 보이는데, 두 작품은 전혀 다른 경로로 한문을 번역하였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부담』은 패설 장르의 형식적 변환과 내용상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전환기 패설의 향방과 운동성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라 할 만하다. 특히 문헌이 주류였던 중세의 패설과 달리 근대전환기 에는 구비적 속성의 가치가 강화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패설의 장르적 변환과 독자층의 확대 라는 측면에서 『부담』은 패설사적 의의를 갖는 자료집이라 할 만하다.
This paper aims to introduces a new-found Paeseul Budam. This book’ title was well-known. However, details of the book were not announced. As the title says, Budam is short narrative which has a distinctive goal of arousing laughs. There were 9 articles with narrative-style in Paeseul Budam. Of these, the seven story has titled, the two story has not. It is based on different origin. Budam is demonstrate the change in views of Paeseul’s formations during the transition period into modern times. It is became reading of a great number of people. And, it is emphasizes oral tradition literature characteristic in Budam. I could look for meaning that Budam keeps in Paeseul history. This is a new attempt of change in Paseul.

7,600원

8

농암 이현보의 국문시가와 우리말로 노래하기의 전통

김유경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8집 2013.12 pp.20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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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에서는 농암 이현보의 국문시가 창작 및 향유 특징과 우리말로 노래하기의 전통과 흐름을 고찰하 였다. 먼저 농암 국문시가의 표현미적 특질을 고찰하였다. 기존의 논의들에서는 강호가도라는 면을 중심 으로 내용적 측면을 다루었을 뿐, 작품 분석이 세밀하게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효빈가>에서는 <귀거래사>의 구절을 인용할 뿐 아니라 <귀거래사>의 뱃길 여정까지 활용하였다는 의 미가 있다. <농암가>는 오랜 동안 떠나있던 고향에 돌아간 뒤 느끼는 이질감을 극복하고자 예전과 변함 없는 자연에서 위안을 찾는 심정을 나타냈다. <생일가>에는 분수론을 내세워 자신의 공명과 장수와 부귀 에 대한 자족감을 드러냈으며 그것을 ‘역군은’이라는 관습적 표현을 통해 임금에 대한 감사로 변환하였다 . 농암은 서로 개별적으로 전승되던 <어부장가>와 <어부단가>를 연결하여 한 부의 노래로 불렀다. <어 부단가>에서는 표현과 구성의 면에서 대조법과 대구법을 두드러지게 활용하였다. 문집에 전하는 15-6세기 시조들의 대부분은 대조와 대구와 함께 특히 반복적 표현이 두드러진다. 수사법 에서 반복은 강조의 효과를 갖기도 하지만 자칫 단조로운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런데 농암의 작품들에 는 동시기의 작품들과 비교할 때 이러한 반복 표현 또는 반복 구성이 거의 없고 대신 대구법만이 적극적 으로 활용된다. 농암과 교유한 이황과 주세붕의 기록을 통해, 농암의 국문시가 창작과 향유의 실상을 다각도로 살폈다. 이황은 농암의 <어부가> 개작에서 노래하기에 적절한가, 전승하기에 적절한가 하는 점을 중시하였다. 또 주세붕의 기록을 통해, 농암이 <어부가>를 접하기 이전에 노래로 부르기 위해 모았던 한시문의 목록을 밝혔다. 농암 이전 시기부터 이루어져온 전래 <어부가>의 향유 방식과 의식을 고찰하였다. 사대부 문인 들이 스스로의 노래 또는 기생의 노래로 향유하였으며, 관직에 있으면서도 강호를 지향하는 지취를 드러 냈다. 농암 이후 여러 차례 <어부가>가 만들어졌으나, 농암의 <어부장가>는 계속 호응을 받았다. 12가사 의 하나인 <어부사>는 농암의 <어부장가> 가운데 6장만이 생략된 8장 형태로 정착되었으며 1863년에 방각본 󰡔남훈태평가󰡕에도 농암의 <어부장가>와 같은 형태의 <어부사>가 수용되었다. 농암의 이러한 국문시가 향유를 이어받은 퇴계는 한시는 노래로 부를 수 없기에 노래로 부르기 위해서는 국문시가가 필요하다고 선언한다. 이러한 의식은 심수경, 이수광, 신흠, 홍만종 등 후대인들에게도 계승 되었다.
This study considered Kukmunsiga (poetry and song written in Korean language) by Nong-am Lee Hyun-bo and the trend of Korean songs. <Hyo-bin-ga> was written based on situation on boat as wellas verses from <Gui-geo-rae-sa>. <Nong-am-ga> is a song about the feeling of getting consoled from everlasting nature to get over a sense of distance that being back home after a long time felt as if he were in a foreign place. Most of Sijo in the 15th-16th century from literature is characterized by repetition along with antithesis and parallelism. Repetition might be an effective expressive style for accentuation, but be bland. Unlike contemporary poets, Nongam mainly adopted antithesis instead of repetition. Through writings by Hwang Lee and Saebung Ju, this study examined Nongam’s creation of Kukmunsigaand its enjoyment in many ways. Hwang Lee put a value on <Eo-bu-ga> adapted by Nongam in that it was appropriate for being sung and passed down. Also, Saebung Ju’s writings included a list of Chinese character poetry already collected to be sung before Nongam knew about <Eo-bu-ga>. <Eo-bu-jang-ga> adapted by Nongam was widely accepted. Twaegye, following Nongam, emphasized the necessity of songs written by Korean language because Chinese poetry could not be sung. This awareness was passed down to the future gener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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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림(鄭元霖)의『동국산수기(東國山水記)』- 신자료(하버드대 옌칭도서관 소장본)의 소개와 분석을 중심으로 -

허경진, 박순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8집 2013.12 pp.236-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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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림(鄭元霖, 1731∼1800)의 『동국산수기(東國山水記)』는 학계에 그 서명만이 알려져 있는 자료로서 조선조의 산수유기(山水遊記) 53편을 모아놓은 책이다.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유일본이다. 본고는 이 자료를 소개하고 분석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작성되었다. 『동국산수기』는 3권 3책의 필사본으로, 서유구(徐有榘, 1764~1845)가 『소화총서(小華叢書)』라는 대규모의 총서를 편찬하기 위해 필사한 것이다. 서유구는 판심에 ‘자연경실장(自然經室蔵)’이라 새긴 자신의 전용원고지를 사용하여 본인이나 다른 사람의 저작을 필사하였는데, 『동국산수기』도 그러한 자료 중의 하나이다. 이 책의 편집자인 정원림은 조부와 부친의 대를 이어 지도 제작에 일가를 이룬 지리학 전문가이다. 수록된 산수유기를 보면 관동(關東) 지방에 대한 글이 가장 많지만, 전국토의 경승지에 대한 기록을 지역별로 고루 싣고자 한 듯하다. 작자를 보자면 허목(許穆)의 글이 13편이나 실려 있어 압도적으로 많으며, 김종직․남효온․이황․이이․김창협․김창흡 등의 유명 인물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본고는 먼저 『동국산수기󰡕의 제작 배경에 대해 추론하였는데, 이 책이 단순한 산수유기 총서가 아니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증수(增修)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수집한 자료 모음집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다음으로 『동국산수기』의 구성과 작자군(群)을 밝혔는데, 이 저서가 어떠한 편집 방식으로 구성되었으며, 어떠한 작자의 산수유기가 수록되어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 다음 장에서는『동국산수기』에 실려 있는 개별 산수유기를 잘 알려지지 않은 자료를 중심으로 일람하였다. 결론부에서는 본고의 논의를 정리하면서 『동국산수기』의 특성과 가치를 밝혔으며, 부록에서 『동국산수기』내에 실린 53편의 산수유기 전체를 간략하게 개관하였다.
『DongGukSanSuKi(東國山水記)』by Jung, Won-Rim(鄭元霖, 1731∼1800) is a kind of series of 53 Travels(山水遊記) volumes in the Joseon Dynasty which is nearly not known in the academic world. This paper is written for introducing these materials and examining the contents and the characteristics. 『DongGukSanSuKi』is copy of manuscript of 3 books, by Seo, Yoo-Gu(徐有榘, 1764~1845). He copied these for compiling 『SoHwaChongSeo(小華叢書)』a big series. He used his own paper with ‘JaYeonKungSilJang(自然經室蔵)' carved in the Pansim(版心) to copy his or others' work and 『DongGukSanSuKi』is one of these. The editor Jung, Won- Rim who is one of the authority in making map field from his grandfather to father. As we can see from Travels, lots of the contents are about Gangwondo(江原道) but it seems that he has been trying to say about places of natural beauty from all over the country. In Authors part, 13 pieces of writing of Hur, Mok(許穆) was put into them which is overwhelmingly a lot, and writings of popular people like Yi Hwang(李滉)․Yi Yi(李珥)․Kim, Jong-Jik(金宗直)․Kim, Chang-Hyup(金昌協)․Kim, Chang-Hup(金昌翕) was also in there. This paper, fist of all, inferred about the purpose of production that make 『DongGukSanSuKi』. This book seems to be a collection of sources to revise 『The new edition-Donggukyeojiseungram(新增東國輿地勝覽)』, not a just series of Travels(山水遊記). And, we search how it was edited and what are the references of this and then see about authors. And, we see each Travels in 『DongGukSanSuKi』, mainly with nearly unknown sources. In conclusion, we check the summary of this paper, and see the characteristic and value of 『DongGukSanSuKi』. Finally, it's attached the brief summary about whole contents in 『DongGukSanSu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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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韓中) 인물기사(人物記事)의 한 국면(局面) - ‘난리’를 기사화한 정약용(丁若鏞)과 모기령(毛奇齡)의 경우 -

정난영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8집 2013.12 pp.287-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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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당대 사회를 뒤흔들었던 사건을 취재한 記事 중 독특한 특징을 지닌 茶山 丁若鏞의 기사와 명말청 초의 인물인 毛奇齡의 기사를 비교․검토하여 각각의 양상과 그 보편적 의미를 규명하였다. 이는 아직 그 면면이 확인되지 않은 기사의 총체적 면모와 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한 준비 작업의 일환이다. 중국의 경 우와 비교․검토를 한 것은 우리나라 기사를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시각을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 모기령의 인물기사는 주로 당대의 전란을 통과하면서 드러난 인물의 충효열을 기록한 작품이 중심을 이 루고 있다. 또한, 작품 속에 사건에 대한 의론이 개진되는 경우가 드물고, 사건 그 자체를 곁가지 없이 있 는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다산의 기사에는 자신이 겪은 ‘辛酉邪獄’과 그로인해 파생된 사건을 통해 알게 된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 겨있는데, 여기에는 모두 ‘모함’과 ‘무고’, ‘억울함’이 관통하고 있다. 또한 사건 그 자체보다는 사건이 일 어나게 된 원인에 무게중심을 싣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은 사건을 재조명하여 그 이 면을 드러내고 있다. 두 경우 모두 서사․서술적 측면에서 변화의 양상이 감지되는 당대 기사의 흐름에서 ‘사건 전달’이라는 기 사의 본래적 특성에 충실하여 자기시대의 사회적 이슈에서 파생된 사건들을 즉사적으로 기록하였고, 의 론이 드러나지 않는 작품이 대부분이라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그러나 모기령은 작가에게 있어 직접적일 수도 있지만 간접적으로도 볼 수 있는 ‘전란’이라는 경험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다산은 자신이 직접 겪은 일에서 양산된 일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또한 모기령은 단순히 사건을 전달하는 데 목적을 둔 데 반해, 다산은 사건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또한 내․외부의 구분 없이 ‘기사’ 장르라는 통합적인 시각에서 보면, 두 경우 모두 사건을 객관적으로 전달 한다는 목적 아래 기존 환경의 변화 속에서 자신의 입지를 지켜내고자 하는 인간 본능이 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국경을 초월한, 기사의 보편적인 양상 중 하나로 읽혀진다.
The thesis performs a comparative examination of the historical writings on the incidents that jolted the contemporary society, particularly the distinctive ones by Jeong Yak-yong whose pen name was Dasan and those by Mao Qiling who lived in the late period of Ming Dynasty and in the early period of Qing Dynasty, and elucidates their aspects. And this is intended to grasp the total configuration and significance of the historical descriptions of which the details have yet to be verified. The comparative examination with the Chinese case is designed to ensure a more objective view of the historical descriptions of the incidents that took place in Korea. The historical writings by Mao Qiling focused on featuring the loyalty to the monarch and to parents that revealed itself through the contemporary wartime upheavals. Also, opinions were rarely presented on incidents in the writings, while a factual description of the incidents was provided. Dasan's historical writings include details about Shinyu Saok ('Heresy Case in Shinyu Year of 1801') that he experienced and personages that he came to know through the incidents derived from it, and they are pierced by 'slander', 'false accusation', and 'distress from innocence'. Furthermore, the center of gravity is placed not on the incident itself but on its cause, through which new light was brought on the incident that entirely changed his life, to reveal its hidden side. Both authorships are vivid recordings of incidents that derived from respective contemporary social issues and include writings mos of which don't reveal opinions. On the other hand, while Mao Qiling's writings were backgrounded by his experience of 'wartime upheavals' which could be either directly or indirectly related to the author, Jeong Yak-yong wrote about things that proliferated from what he was personally involved in. Furthermore, while Mao's purpose lay in presenting incidents, Jeong put his focus on narrating his case by revealing incidents. Accordingly, their descriptions are seen as diverg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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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기 지방 유림의 성격과 전쟁 협력시의 실상 - 전남 유림의 『황군위문사(皇軍慰問詞)』를 중심으로-

한길로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8집 2013.12 pp.325-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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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당국이 주도하고 지역의 유림이 참여하여 간행한 『황군위문사(皇軍慰問詞)』는, 중일전쟁에 참전한 일본군의 승전을 기원하는 한편 이들의 침략 행위를 유가적 관점에서 미화하며, 조선 민중들의 적극적인 협력을 독려하는 내용의 시집이다. 오언절구가 대다수인 시집은 전남 도내 2부 14군 185명의 시를 싣고 있는데, 이들은 시를 통해 일제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침략전쟁을 성전(聖戰) 혹은 폭지에 대한 응징이라고 여긴 채 중국을 야만의 국가로 인식하고 있었다. 시집은 중일전쟁 발발 후 3개월만인 1937년 10월경에 발간된 것으로 중앙의 경학원(經學院)에서 발간한 『성전성시집(聖戰誠詩集)』(1937, 12)보다 앞서는데, 이는 중일전쟁 이후 최초로 발간 된 전쟁협력 한시집이라는 의의를 갖는다. 그리고 최초의 조선 문인의 시집으로 평가받는 임학수의 『전선시집戰線詩集)』보다 2년이나 빠른 것으로 당시 조선문단의 대응보다 지역의 유림집단의 한문학적 대응이 더욱 빨랐음을 보여준다 하겠다. 시를 수록한 인물들의 인적구성 가운데 두드러지는 부분은 군수․도회의원․면협의원와 같은 지방 관료이면서 일제의 농촌수탈 기구라 평가받는 수리조합 및 금융조합에 깊이 연관된 인물들이 다수라는 것이다. 즉 유림이 지역의 관권과 경제권에 매우 밀접함을 드러내고 있다. 또 이들 중 상당수는 지역 향교에서 교임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이는 일제 말 지방 향교가 관에 의해 유지․관리되면서 사실상 지방의 식민교화기구로 전락되었음을 보여준다 하겠다. 이는 지역 사회에서 유림 세력과 향교가 여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간파한 일제가 지역의 하급 관리들을 유림으로 포섭하고 향교를 장악하여 지방 통치에 적극 활용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총동원시기 지방 유림의 대응과 협력활동의 일면을 드러내는 동시에 굴절 된 유가 이념을 담지한 한시 창작의 일면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국문이 아닌 한자로 작성된 친일문학으로서의 정체성을 웅변하고 있다.
Published through the efforts led by Jeollanam-do and engaging the region's Confucian scholars, Hwanggunwimunsa (皇軍慰問詞 'Consolation for Imperial Army') is a collection of poems that expressed wishes for the victory of the Japanese armed forces participating in the Sino-Japanese War, glorified their invasion from the Confucian standpoint, and argue that Koreans should cooperate aggressively. The poetry collection mostly composed of quatrains with five Chinese characters in each line carries poems by total 185 poets in fourteen groups and in two sections, and the authors of the poems provided justification to the Imperialist Japan and saw China a savage nation while regarding the invasion as a holy war or a retaliation against violence. Moreover, the authors justified the Japanese invasion based on Confucian rationale and rallied the Korean people into an active cooperation. The collected poetry was published around October 1937, just three months after the end of the Sino-Japanese War, which came before Seongjeonseongsijib (聖戰誠詩集 'Collected Poetry Dedicated to the Holy War'; December 1937) published by Gyeonghakwon (經學院 'Confucian Academy'), which makes it the first Sino-Korean poetry book supporting the war, published after the Sino-Japanese War. This came two years before Jeonseonsijib (戰線詩集 'Warfront Poetry Book') by Im Hak-su, which is touted as the first poetry book of a Korean man of letters, and it shows that the response from the regional Confucian scholars came before the collaborative action from the Korean literary world. What is notable about the persons who contributed their poems is that most of them were at once regional bureaucrats such as county mayors, provincial assembly members, and myeon council members and key figures closely related to irrigation association and financial coop, which are understood as Japanese colonialist arms for exploiting the local agricultural communities. A considerable portion of these people were also in charge of teaching at regional hyanggyo ('regional confucian academy'), which shows that hyanggyo in each region in the late Japanese occupation period was under government control, having practically fallen into a regional institution for colonialist indoctrination. In conclusion, as what reveals an aspect of Sino-Korean poetry creation that at once betrayed a facette of the regional Confucian scholars' response in the period of total mobilization and their collaborative activities, this work holds the identity of pro-Japanese literature, written in Sino-Korean instead of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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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8년 조선 양의(良醫)와 일본 관의(官醫)와의 필담 출현과 서적담화 양상

구지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8집 2013.12 pp.369-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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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이후 조선은 일본에 12차례의 사신을 파견하였다. 회가 거듭할수록 사행은 문화 학술교류의 성격을 드러낸다. 양국의 지식인들은 말 대신 한문을 통해 대화를 나누었고, 이 필담이 책으로 간행되기도 하였다. 1636년 처음 독자적인 필담창화집이 편집되었고 1682년에 이르러 급격히 증가하였고, 이후로 더 증대되는 양상을 보인다. 일본인과의 필담창화는 제술관(製述官)이 주관하였는데, 일본인의 문사욕구에 부응하여 1682년부터 설치된 새로운 직임이었다. 이와 함께 새로이 나타난 직임이 양의(良醫)였다. 양의(良醫)는 일본에서 요청이 있으면 의술에 정통한 자를 선발해 보내는 임시 직책이었으나 한번도 빠지지 않고 파견되었다. 일본의 문사들은 한문을 통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능력 때문에 번(藩)에 고용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고 박물학까지 아우르는 잡다한 지식의 수집자들이었다. 전문적인 지식을 탐구한다는 측면에서, 양의와 신분적 특성이 비슷하였다. 그런데 1748년에 이르면 막부의 관의(官醫)를 중심으로 갑자기 상당수의 의학관련 필담집이 출현한다. 江戶 막부 성립 이후 막부의 관의 제도가 정비되었고, 중기에 이르면 대대적인 약재 조사 사업 및 박물지의 편찬 사업이 진행되었다. 아울러 약초, 특히 조선인삼의 국산화 정책이 추진되었다. 이러한 막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중앙의 의원들은 조선 의학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진행해 왔었다. 이들은 1748년 통신사가 江戶에 머무는 동안 여러 차례 만나면서 이미 서적을 통해 접했던 지식을 조선 의원들을 통해 확인하고 정정할 기회를 가졌다. 필담에는 다수의 서적목록이 등장한다. 여기에는 중국 의서, 조선 의서, 일본 의서가 망라되어 있고, 현전하지 않는 서적도 포함되어 있다. 이 서적 목록은 당시 조선과 일본 의원들의 지식 원천에 해당되는 것이다.
After the 17thcentury, Joseon sent envoys to Japan 12times. As the trips became more frequent the envoys became more prominently cultural and scholarly in their character. The intellectuals of the two nations communicated through written Chinese rather than through conversations, and these written communications were at times published as books as well. The first independent collection of written communications was edited in 1636, and such books began to appear much more frequently starting from 1682. Their volume generally increased even more afterwards. The written communications with the Japanese were being supervised by Jesulgwan (製述官), which was a position newly created in 1682 in order to satisfy the wishes of the Japanese men of letters. Another new position that appeared at this time was Yangui (良醫) or physician. It was a temporary position where someone who was well-versed in medical practice was selected to go as part of the envoy when requested by Japan, and physicians were sent with every envoy without exception. The men of letters in Japan were often employed by the government (藩) for their ability to acquire knowledge by reading Chinese writings, and they were collectors of various kinds of knowledge, even pertaining to the study of nature and natural history. They were similar in their characteristics as Joseon’s physicians in that they were seekers of specialized knowledge. Then in 1748, numerous collections of written communications related to medicine suddenly began to appear centered around the official physicians (官醫) of the feudal government in Japan. After the establishment of the feudal government in Edo, the governing system became more organized and, by its middle-period, an extensive program of searching for medicinal materials and compiling knowledge concerning natural history was being carried out. At this time, a policy of domestically producing medicinal herbs, especially Joseon ginseng, was pursued. Backed by such support from the feudal government, the central government’s physicians investigated and carried out research on Joseon medicine. In 1748, while Joseon envoys were staying at Edo, the Japanese physicians met with them many times and had an opportunity to confirm what they had already encountered through books and to revise their knowledge. In the written communications, many catalogues of books appear. In those catalogues are listed Chinese medical books, Joseon medical books, Japanese medical books, and also books which no longer exist. These lists reveal the knowledge source of the Joseon and Japanese physicians of that time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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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漢詩西傳舉隅 ― 以《楊文公談苑》爲例

蔡毅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8집 2013.12 pp.40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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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한시의 서전(西傳, 중국으로의 전파)은 필자가 최근 연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연구과제이다. 지금까 지 중국과 일본의 한시의 교류에 대한 연구는 예외 없이 일본 한시에 대한 중국 고전시가의 압도적인 영 향에만 주목하고 있을 뿐, 일본의 한시가 중국에 전해져서 적게 혹은 많게 반향(反響)을 일으켰던 것에 대 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었다. 이러한 원인은 쉽게 설명할 수 있는데, 한시의 ‘역수입(逆輸入)’은 중일(中日) 한시 교류에 있어서 적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중국의 시단(詩壇)에 특기할만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혹 언급하는 연구자가 있다 하더라도, 사적인 전개와 문화적인 측면에 대해 깊이 있 는 연구를 진행하지 못하고, 재미있는 화젯거리 정도로 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연구과제가 오랫동 안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도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나 여러 사서와 전적을 보면 견당사를 파견했던 때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일본 한시의 서전(西傳 ) 궤적을 추적해볼 수 있다. 이러한 역사 사실의 확인은 중일문화 교류사 연구에 있어서 간과할 수 없는 의의가 있다. 우선, 고대 동아시아 사회에서 한자문화는 특수한 유대로 문화가 서로 다른 여러 나라들을 긴밀히 연결시켰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둘째, 문화교류에는 주체와 종속, 강함과 약함, 높음과 낮음이 존 재하지만, 교류는 일방적이지 않으며 상호 작용의 산물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셋째, 중국에 전해진 일본 의 한시는 ‘시서지국(詩書之國)’의 사자(使者)로서 일본에 대한 고대 중국인의 인상을 긍정적이게 했다. 그래서 필자는 어쩌면 ‘비주류’로 보이는 이 연구과제가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본고에서는 송대 양억(楊億)의 『양문공담원(楊文公談苑)』에 수록된 일본 한시에 대해 논의함으로서 이 러한 문화적 현상의 한 측면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日本漢詩的西傳,是筆者近年來感興趣的一個課題。迄今爲止,但凡談到中日漢詩交流,均無一例外地矚目中國古典詩歌對日本漢詩的壓倒性影響,而反之日本漢詩也曾傳入中國,並或多或少引起若干反響的現象,卻幾乎無人染指。其原因是顯而易見的:這種日語稱之爲“逆輸入”的中日漢詩往還,若就數量而言,雙方完全不成比例,更談不上對中國詩壇有什麽反轉性影響,偶或有人提及,也多止于搜奇獵異,以助談資,而非對其作深入的歷史考察和文化觀照。正緣於此,這個課題被打入冷宮,束之高閣,也就似屬理所當然。然而,按諸史籍,自遣唐使以迄近代,日本漢詩的西傳軌迹,雖不能說觸目皆是,卻也斑斑可考,不絕如縷。這種史實的確認,對中日文化交流史的研究,有著不可忽視的認知意義:首先,它再次強有力地說明了在古代東亞,漢字文化作爲一條特殊的紐帶,把文明互異的各國緊密地聯繫在一起;其次,它印證了文化交流在有主從、強弱、高下之分的同時,也是雙向互動的産物,而非“單邊貿易”,有往無還;再次,它還作爲來自“詩書之國”的信使,對古代中國人的日本印象,起到了相對積極的作用。因此,筆者這一看似“邊緣”、“非主流”的研究課題,應該並非小題大做,而自有其一定的學術價值。本文擬選取宋代楊億《楊文公談苑》所收日本漢詩加以考述,以顯示這種逆向反饋文化現象的一個側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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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김시습 초상화의 개모(改模) 과정과 그 의미

양승민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8집 2013.12 pp.416-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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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매월당 김시습 초상화를 僧服本, 僧儒 혼합본, 그리고 儒服本이라는 세 키워드로 조망한 글이 다. 과거에 김시습 초상화는 수량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그 버전도 다수였다. 본고에서 조선시대 전래 과 정과 초상화를 둘러싼 뒷이야기를 고찰하였다. 우선 김시습 자화상 원형과 그 유전 양상을 추적한 결과, 본래 김시습이 무량사에 남긴 것은 삭발에 염주 가 달린 승려의 형상을 그린 작은 화상이었다. 조선시대 그의 초상은 거듭 移模되는 가운데 그 무량사 원 본 계열의 ‘승복본’이 수적인 우세에 있었다. 정치적으로 소론에 속하는 파평윤씨가의 주도로 17세기 화 단의 대가 이징을 불러서 그린 이모본이 가장 대표적인 자화상 원형계열의 화상이다. 이후 박세당도 수락 산에 淸節祠를 건립해 무량사 원본계열 화상을 다시 모사해 봉안한 바 있다. 이밖에도 곳곳의 사당과 사 찰 등에 김시습의 승복본 초상화가 널리 유전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초상화는 결국 자화상 원형 그대 로 유전되지 못했다. 현전 화상은 모두 ‘改模本’으로, 본래의 무량사본을 그대로 계승한 것은 하나도 전하 지 않는다. 이들 개모본은 ‘僧儒혼합본’과 ‘儒服本’으로 나뉜다. 대표적인 혼합본으로는 『梅月堂詩四遊錄』소재 模刻本과 김수증 이모본이 있다. 그리고 제일 유명한 현전 무량사본은 대표적인 儒服本 화상으로 , 자화상 원형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는 개모본이다. 한때 김시습 화상은 유학자들의 김시습 끌어안기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상황에 따라서는 그 원형인 승복 본 초상화마저도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특히 소론을 중심으로 그랬다. 그러나 결국은 개모본들이 김시습 화상의 진면목을 지닌 원본계열을 밀어냈다. 심지어 오늘날 무량사에 남아 있는 사찰소장본마저 유복본 초상화로 뒤바뀌고 말았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김시습에 대한 이미지나 전설은 조선후기 유 학자들(특히 노론)이 만들고 덧씌운 혐의가 짙다. 특히 17세기 이후 유학자들의 정치적 명분과 실리가 맞 물려 김시습이 충절의 화신으로 추존되는 가운데 그의 초상화도 크게 변모되는 수난(?)을 겪었다.
Kim Si-seup(金時習, 1435~1493) is one of the great poets and writers that the nation boasts highly. In the past, there were many of his portraits in various versions. This paper presents an investigation into the transmission process of his portraits during Joseon, trying to promote the understanding of him as a "person" and stimulating new ideas for his interpretation in the literary history by looking into the episodes about his portraits. The study first traced the originals and transmission patterns of his self-portraits and found the one he left at Muryang Buddhist Temple(無量寺) was a small portrait of a Buddhist priest. His portraits continued to be copied during Joseon, and there were more of them in the original line of Muryang Buddhist Temple. The copy produced by Lee Jing(李澄), a master painter in the painting circles in the 17th century, became the most representative portrait of his original self-portrait line. In addition, his self-portraits depicting him as a Buddhist priest were widely transmitted at shrines and Buddhist temples across the nation. However, his self-portrait was not transmitted in its original form in the end. The currently remaining portraits of Kim are all revised copies. None of them are in the original line of Muryang Buddhist Temple. His portraits even the version of the original in which he was depicted as a Buddhist priest were revered by the Confucian scholars, but the revised copies eventually overwhelmed the original line with the true character of his self-portrait. Even the one housed at Muryang Buddhist Temple today has been replaced with the version in which he is depicted as a Confucian scholar. It is highly likely that the images and legends of Kim Si-seup known today were created and added by Confucian scholars in the second half of Joseon.

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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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은담에 나타난 인간과 동물의 화해 양상

김수연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8집 2013.12 pp.457-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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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동물이 정을 통하고 결혼을 한다는 것은 인간과 동물 사이의 ‘대칭적’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과 동물은 결혼을 통해 서로 가족관계를 맺고 공존하는 관계를 이루었다. 비 대칭 사회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결합이 비극적으로 끝나는데, 이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호혜적인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과 동물의 결합담이 비극적으로 끝나거나 사라졌다고 해서 인간과 동 물이 소통하는 이야기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비대칭적 사회에서도 역시 인간과 동물 사이에는 모종의 방 식을 통해 화해가 이루어졌다. 인간과 동물 사이를 소통할 수 있는 인간 역시 나타난다. 그런데 문제는 소 통의 방식, 화해의 방식이다. 어떤 방식으로 서로 소통하고, 화해하느냐에 따라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달 라진다. 인간과 동물의 결혼담이 사라진 자리에 동물 보은담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동물 보은담에서는 인간 과 동물은 보은을 통해서 서로 호혜적 관계를 맺는다. 대칭 사회의 사람들은 인간과 동물의 호혜적 관계 를 인간과 동물의 결혼의 형식으로 상징화했다. 은혜를 갚는 보은이라는 행위 역시 선물을 주고 받는 증 여의 일종이다. 은혜를 받았으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 행위, 즉 선물을 해야 하는 것이 예의이다. 즉, 결혼 과 증여, 보은은 동일한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오공장> 설화는 두꺼비와 뱀(지네)의 설화 역시 동물 보은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인간과 동 물 간의 결합과 소통을 복합적으로 보여준다. <오공장>설화에서 두꺼비가 뱀(지네)을 죽이는 것은, 두꺼 비와 뱀(지네)의 상극 관계를 넘어서서 대칭 사회에서 비대칭 사회로의 전환을 뜻한다고 봐야할 것이다. 대칭 사회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결합이 가능했고, 결합을 통해 새로운 것이 창조될 수 있었다면, 비대칭 사회에서 인간과 동물은 더 이상 소통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세계에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동물에게 인 간적 언어를 가르쳐서 통할 수밖에 없다. 즉 동물이 인간화가 되어야 가능하다. 뱀(지네)의 죽음이 대칭 사회의 종말을 나타낸다면 처녀와 두꺼비의 관계는 비대칭 사회에서 인간과 동물의 새로운 관계를 보여 준다. <오공장> 설화는 전형적인 동물 보은담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실은 이 이야기는 대칭사회와 비대 칭 사회 속에서 인간과 동물이 화해하는 방식과 그 변이를 보여주고 있다.
The stories of love and marriage between humans and animals are symbolic events that show 'balanced relationships' between humans and animals. Humans and animals built family relationships and coexisted through marriage. In unbalan ced societies, the union of humans and animals ended in tragedy because their reciprocating relationships were broken. However, this does not necessarily mean that the story of communication of humans and animals disappeared. Humans and animals reconciled even in unbalanced societies. The issue is the method of communication and reconciliation. The relationship between humans and animals are established by how they communicate and reconcile. The story of marriage between humans and animals have been replaced with the story of animals' debt repayment. Humans in balanced societies symbolized the reciprocating relationships between humans and animals with marriage. The act of debt repayment is also exchanging gifts. It is courtesy to give an appropriate return when one is indebted. In other words, the acts of marriage, gift, and debt repayment have the same mechanism. Humans and animals have established reciprocating relationships through debt repayment, but humans perceive animals from the personified view. In other words, humans tame animals in the order of human life and assign an appropriate place to animals. The todd's debt repayment to the lady in 「The Myth of Ogongjang」 shows this. 「The Myth of Ogongjang」 shows the change in the relationship between humans and animals in the transition from unbalanced society to balanced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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關於江戶時代後期對於漢詩的認識 -以津阪東陽《夜航詩話》為線索 -

道坂昭廣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8집 2013.12 pp.486-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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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 일본 문인들은 많은 시화를 지었고 그 중 津坂東陽의《夜航詩話》는 에도시대 중국 고전문학 연구에 있어 수준 높은 저작의 하나이다. 津坂東陽 자신은 비록 두보, 이백을 위주로 하는 唐詩를 추구하 였지만 또 동시에 아무런 비판 없이 중국 古文辭派와 宋詩推薦派를 수용하는 문학관, 그리고 단순히 중국 시를 모방하는 동시대의 한시창작 학풍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다. 東陽은 민족성이 강하게 반영된 악부의 창작이나 자신의 학문을 과시하는, 즉 배율과 같은 장황한 시의 창작을 비판하였다. 다른 면에서 그는 또 作詩의 규칙을 지킬 것을 선도하고 율시 창작에 있어서는 중국 과 일본을 구별하는 그러한 경향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배우기만 하면 창작이 가능한 율시에 서 민족이나 지역을 뛰어넘는 세계 문학의 가능성을 인지하였다. 그는 정확한 규칙을 지키고 정확한 표현 과 시어를 사용하며 정확하게 일본을 묘사한다면 율시 역시 일본문학의 문체 중 하나로 확립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그는 이 같은 율시를 창작할 경우, 창작자는 모방자가 아니라 일본인으로서 세계(혹은 동아시아) 지식인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다고 생각하였다. 《夜航詩話》에서 볼 수 있는 津阪東陽의 한시 인식은 통상 모방과 추수(追隨)로 쉽게 여겨지는 일본의 한시 창작에 있어서, 동아시아 한시 문학의 공통성과 독자성의 고찰에 있어서 모두 참신한 시각을 부여하 였다.
在江戶時代,日本人寫了許多詩話。其中,津坂東陽的《夜航詩話》,是顯示江戶時代中國古典文學研究 的水平高度的著作之一。他自己雖然以杜甫李白為代表的唐詩為理想,同時,卻對毫無批判地接受中國古 文辭派和宋詩推薦派的文學觀,單純模仿中國詩的同時代的漢詩創作狀況產生了疑問。東陽批判了創作強 烈反映民族性的樂府、以及創作徒然誇耀自己學力的,像排律那樣冗長的詩。另一方面,他提倡遵守作詩 的規則,主張在創作律詩時並無中國日本這樣的區別。他感受到了只要學習就可以創作的律詩中,有跨越 民族地域的世界文學的可能性。他認為,只要遵守正確的規則,使用正確的表現和詞語,正確地描寫日本 ,就能夠使律詩成為日本文學的文體之一確立起來。而且可以說,他認為創作這樣的律詩,還可以使作者 不是作為模仿者,而是作為日本人獲得參加世界(或說東亞)知識份子社會的資格。《夜航詩話》中所展 示的津阪東陽對於漢詩的認識,為往往容易被認為是模仿追隨的日本的漢詩創作的意義,以及對於東亞的 漢詩文學的共通性和獨自性的考察,提供了一個嶄新的視點。

4,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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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곡(月谷) 오원(吳瑗)의 산수유기(山水遊記) 연구(硏究) - 금강산 유기인 「유풍악일기(遊楓嶽日記)」를 중심으로 -

백진우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8집 2013.12 pp.50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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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후기 영조 시기에 활동한 문인인 吳瑗의 산수유기를 분석한 것이다. 오원은 고문을 전범으 로 하여 창작된 이전 시기까지의 산수유기 창작 전통을 계승하였지만, 그 범주 안에서 나름대로의 문학적 개성을 발휘하였다. 오원은 14편의 산수유기를 남겼는데, 본 논문에서는 그 가운데 아버지의 脫喪 직후 금강산을 유람한 뒤에 지은 「遊楓嶽日記」를 중심에 두고 분석을 진행하였다. 작품의 창작 배경이 독특하 고, 이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작가의 산수유람 의식과 산수묘사 방식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조선후기 산수유기에 대한 최근의 연구는 주로 18세기 이후 성행한 小品體 遊記에 집중되어 있다. 물론 이 시기에 창작된 소품체 유기로부터 독특한 시선과 문학적 성취를 찾을 수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전 대의 창작 전통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일련의 작품들에 대한 연구가 병행되지 않으면 당대 산수유기의 창 작 양상을 온전한 모습으로 재구하기 어렵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본 논문에서는 오원의 산수유기를 후자 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상정하고 분석을 진행하였다. 이를 통해 다채로운 모습으로 발전하였던 18세기 이 후 산수유기 창작 양상을 구체적으로 해명하는데 일조하기를 기대한다.
In this paper, I analyzed essays on landscapes written by Oh Won. He had lived during the King Youngjo era, in the late Chosun dynasty. While he inherited the tradition of former writers, he tried to show his originality through writing essays on landscapes. Among his 14 essays, I took special note of an article named Diary after travelling Keumkang mountain(遊楓嶽日記). He wrote it just after the expiration of the period of mourning. Because the creation background was unique, and the view of landscape sightseeing was also individual. Researches on essays on landscapes are leaning on the side of literary sketches. Though we can catch the literary value and unusual view from it, we cannot reconstitute the literary aspects in its entirety if we don't concentrate concerns about general writing style. For this reason, I analyzed Oh Won's essays on landscapes as it represent such style. I hope this would help explain the aspects of writing style in the period of late Chosun.

8,4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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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운영전>의 여러 양상 - 일역본 <운영전(雲英傳)>과 한글본『연정 운영전(演訂 雲英傳)』, 영화 <운영전-총희(雲英傳-寵姬)의 연(戀)>의 관계를 중심으로

허찬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8집 2013.12 pp.541-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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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된 이래 필사본으로 소수의 사대부들 사이에서 향유되었던 <운영전>은 1920년대에 들어와 일역본(日譯本)과 한글활판본․영화 등 다양한 대중매체와 만나게 된다. 이들 세 종(種)의 <운영전>의 관련양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한문본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으로 논의되어 왔던 한글활판본 󰡔연정 운영전󰡕은 호소이 하지메가 번역한 일역본을 저본으로 중역(重譯)된 것이다. 한글본과 일역본의 텍스트 비교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1925년 개봉한 영화 「雲英傳-寵姬의 戀」와 일역본에 관계에 대해 논의하였다. 현대적인 의미의 시나리오 작법이 갖추어지지 않았던 당시의 제작여건 상 고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의 대본은 해당 고소설 자체였다. 그런데 영화 「운영전」이 나오기 전까지 일역본을 제외하고는 <운영전>은 활판본은 물론 어떤 형태의 상업출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당시의 조선영화는 기획부터 개봉까지 모든 단계가 일본인들과의 협업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런 정황을 감안할 때 영화 「운영전」은 일역본을 대본으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영화는 비록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대중들에게 <운영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창서관이 한글활판본 <운영전>을 기획하고 간행한 것은 이러한 영화의 후광이 상업적인 성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영화를 연상시킬 수 있는 소설을 만들기 위해서는 영화의 토대가 되었던 일역본이 필요했으며, 영창서관본이 일역본을 중역한 것은 이러한 상황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지금까지 <운영전>은 한문본을 중심으로 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으나 일역본과 영창서관본은 고소설 연구자들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일역본은 번역자인 호소이 하지메의 주관이 강하게 개입되어 좋은 번역이라 할 수 없지만, <운영전>이 활판본 한글소설과 영화라는 대중매체로 거듭나는 동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Wunyeongjeon(雲英傳)”, distributed only as a manuscript since its creation, has been encountered in various mass media such as a Japanese version, a printed book written in Korean, and a movie in the beginning of 1920s. In looking into the relationship between those three “Wunyeongjeon”, the following may be noted. “Yeonjeong Wunyeongjeon(演訂 雲英傳)”, discussed as based on a Chinese character version, is a re-translated version from Japanese one. The study presumed what was the script of the movie, “Wunyeongjeon-Chongheuieui Yeon(雲英傳-寵姬의戀․)”, which was first shown in 1925. Given the conditions of the times when the writing technique of a scenario in a contemporary meaning was not prepared, the script of the work used for the film of the old novel was the old novel itself; however, before the release of the movie “Wunyeongjeon”, except for a Japanese version, not only the printed book but also any form of commercial publication of “Wunyeongjeon” was made. Also Joseon movies back then were produced in cooperation with the Japanese in all stages from planning to screening. Given this situation, it would be reasonable to see the movie “Wunyeongjeon” as being created with the Japanese version as a script. Although the movie was not a box office hit, it became an opportunity to promote “Wunyeongjeon” to the public. The reason that Yeongchang seogwan(英昌書館) planned and published “Wunyeongjeon”, the printed book written in Korean, must be because of the judgment that the halo of such a movie would bring about a commercial success. It was necessary to have a Japanese version, which became the basis of the movie, in order to create a novel that may remind us of the movie, and the re-translation of the Japanese version appears to be an outcome of the reflection of such a situation. Up to date, the Japanese version and Yeongchang seogwan version have failed to draw great attention from researchers of old novels. Although it may not be a good translation since the subjectivity of its translator was strongly involved, it is meaningful in that “Wunyeongjeon” became the driving force to be reborn as items of mass media, namely the printed novel written in Korean and the movie.

7,500원

부록

19

휘보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8집 2013.12 pp.567-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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