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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상고전연구 [Yeol-sang Journal of Classical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열상고전연구회 [Society of Yol-Sang Academy]
  • ISSN
    1738-2734
  • 간기
    격월간
  • 수록기간
    1988~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한국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810 DDC 810
많이 이용된 논문 (최근 1년 기준)
No
1

이용수:419회 【화보】민요박물관 기본설계를 위한 학술대회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1집 2016.06 p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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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원

2

이용수:354회 민요와 디지털 박물관의 가능성

고운기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1집 2016.06 pp.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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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원

3

이용수:270회 전주시 역사문화자원의 활용과 도시재생 - 전주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

홍성덕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8집 2015.12 pp.2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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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 사이에 가장 주목할 만한 도시재생의 사례로 손꼽을 수 있는 곳 중의 하나는 전주한옥마을이다. 1977년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된 이후 1995년 미관지구가 해제됨에 따라 무분별한 개발이 예정되었던 공간이 전통문화 지구단위 계획으로 단순 ‘보존’에서 특색있는 ‘개발’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본 논문은 한옥보존지구 지정으로 슬럼화한 한옥마을이 한국을 대표하는 ‘한옥마을’로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본 것이다. 전주한옥마을의 개발은 한옥보존지구의 해제와 2002년 한․일월드컵 개최도시 지정이 맞물리면서 기획되었다. 지구단위 계획을 통해서 재개발된 전주한옥마을의 성공요인은 한옥이라는 전통 주거공간과 조선왕실문화, 유교문화, 종교문화 등 다양한 역사문화자원이 반경 5백미터 이내에 밀집된 역사문화자원이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전통문화중심의 도시화 사업을 전략적으로 추진한 결과이기도 하다. 사업 추진 및 협력 주체로서 전통문화중심도시추진단은 모범적인 민관거버넌스였다. 한옥마을 공간 내 역사문화자원의 활용은 진정성을 강화하는 방향, 전통문화상품 개발 및 판매를 촉진하는 상품화 확대방안, 숨어 있는 콘텐츠를 발굴 알리는 체험과 교육의 콘텐츠 구축방안 등 세 영역으로 진행되었다. 공공영역이 민간영역의 활성화를 뒷받침하는 균형점을 이루었다. 역사문화자원의 활용은 도시정체성으로 연결되었다. 한옥마을 내에 담은 역사문화자원과 전통문화는 전주의 도시정체성으로 발전해 나갔다. 한옥마을의 공간적 확대가 불가피 하며 그 대상은 마을 밖의 구도심이다. 전라감영 복원으로 대표되는 도시재생이 이어질 계획이다. 한옥마을의 성공은 새로운 도시재생 공간의 득이 될 수도 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도시재생의 성공여부는 공간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This is a study of the urban regeneration process of Jeonju Hanok Village which had gradually become slums while it had remained as a hanok preservation zone for 20 years. Jeonju Hanok Village seems a dense area where over 700 hanoks are clustered, but, actually, it is not a traditional one but a modernized urban town. In addition, there are various cultural resources clustered from loyal families of the Joseon Dynasty, confucianism, and other religions. The real urban regeneration of Jeonju Hanok Village was begun when Jeonju was designated as a city of the 2002 FIFA Worldcup Korea-Japan. The urban regeneration proceeded focussing on three directions: to keep the authenticity of the cultural heritages in the village, make the traditional cultural resources goods favourable on the market, and develop relatively unknown contents. During the urban regeneration project, the private and public joint governance, like the Project Team of Traditional Culture-centered City, was a critical factor of its success. As a result, Jeonju Hanok Village has grown up to a famous tourist destination which over six million tourists visit a year. For everlasting success of the village, there have been lively discussions on the identity of the city. Based on the Jeonju citizens' consensus of 'the Jeonju spirit', urban regeneration of the parts which have been lagged behind is on the way again. The success stories of Jeonju Hanok Village have suggested new visions towards urban regeneration projects, and the success of new projects is as clear as day 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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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용수:179회 홍길동전 작자 논의의 계보

이윤석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6집 2012.12 pp.38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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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홍길동전>의 작자가 허균이라는 학계의 통설이 잘못이라는 것을 오랫동안 지적해왔다. 그러나 <홍길동전> 작자에 대한 합리적인 논의의 장은 제대로 열리지 못하고 있다. 현재 고소설 연구자들은 <홍길동전>의 내용은 허균이 지은 것과는 거리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지만, 허균이 작자가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려워한다. 이러한 현상의 근저에는 한국문학사를 위해서는 허균이 <홍길동전>의 작자라고 말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홍길동전> 허균 창작설의 근거는 1674년에 간행된 이식(1584~1647)의 󰡔택당집󰡕에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구절이다. 이식은 뛰어난 문장가로 높은 벼슬을 한 인물이고, 그의 문집 󰡔택당집󰡕은 조선후기에 여러 차례 간행되었다. 조선후기에 󰡔택당집󰡕은 쉽게 볼 수 있는 책이었고 허균도 유명한 인물이었으므로,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구절은 󰡔택당집󰡕을 읽은 사람이라면 대체로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보아야 한다. 김태준은 1930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조선소설사’에서 <홍길동전>의 작자 허균에 대해서 언급한 일이 있다. 그동안 국문학계에서는 이 글이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한 첫 번째 발언이라고 했다. 그러나 경성제국대학 교수 다카하시 토오루는 1927년 󰡔택당집󰡕을 인용하여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밝혔다. 조선시대 󰡔택당집󰡕을 읽은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다카하시 토오루는 󰡔택당집󰡕의 <홍길동전>과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연결시켜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말했다. 다카하시 토오루가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얘기한 후, 그의 제자들은 ‘허균이 쓴 <홍길동전>’의 연구를 더욱 심화시켜나갔다. 그리고 이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홍길동전>의 작자, 주제, 영향관계 등등의 다양한 연구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홍길동전>은 그 형식과 내용이 19세기에 유행한 전형적인 한글소설이다. 이 한글소설의 작자는 권력이나 양반지식층과는 거리가 먼 무명의 시정인이다. 그리고 이들 무명작가가 쓴 작품을 읽고 즐긴 독자들도 바로 작가와 같은 계층의 사람들이다. <홍길동전>의 의의는, 당대 서민의 꿈과 희망이 작자의 상상력을 통해서 작품에서 드러나고, 독자는 작자의 상상력에 기대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다는 점에 있다. <홍길동전>을 허균과 연결시켜 영광스러운 문학사를 서술하고 싶어 했던 1930년대 식민지 지식인의 열정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제 <홍길동전>을 원래 작자와 독자에게 돌려주고, 그들이 얘기하고 싶어 했고 또 얘기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작업이 필요한 때가 온 것 같다.
It has been many years since I first pointed out that the commonly accepted view which regards Heo Gyun (1569-1618) as the author of Hong Gildong Jeon was a false. Yet reasonable discussions on this topic seem to have not been enough. Nowadays, many scholars of classic prose fiction consider that the story of Hong Gildong Jeon is far different from the original work of Heo Gyun. But it has not yet reached the stage of denying the authorship of Heo Gyun itself. What lies at the root of this theory is the idea that it would be favorable for the history of Korean literature to identify Heo Gyun as the author of the first prose fiction. The sole basis for regarding Heo Gyun as the author of Hong Gildong Jeon is the following quotation from the Taekdang-jip(Collected Writings of Taekdang) by Yi Sik (1584-1647): “Heo Gyun wrote Hong Gildong Jeon.’’ Yi Sik was a renowned writer and high-ranking government official at the time and his Taekdang-jip had been repeatedly published in late Joseon Dynasty. Along with the popularity of the Taekdang-jip, Heo Gyun’s fame played a certain role in spreading the aforesaid quotation. Ever since Kim Taejun identified Heo Gyun as the author of Hong Gildong Jeon in his ‘History of Joseon Prose Fiction’ (a serial on Dong-A Ilbo in 1930), scholars have regarded this as the earliest remark of the attribution. However, three years earlier, in 1927, Takahashi Toru, the professor of Keijo Imperial University already confirmed the attribution by citing the Taekdang-jip. Although the Taekdang-jip was a popularly read book throughout the latter period of Joseon Dynasty, there had been no explicit indication of the link between Heo Gyun and Hong Gildong Jeon before Takahashi. The significance of his remark lied in this fact. After 1927, more profound analyses were introduced by Takahashi’s pupils and researches on various aspects of Hong Gildong Jeon have continued until the present day. Hong Gildong Jeon is a typical popular prose fiction written in Korean script during the nineteenth century. It is highly likely that the author was not an intellectual or someone in power but a common man; and most probable that its readers belonged to the same class as the author. Considering these factors, the importance of Hong Gildong Jeon lies in the fact that the story was a reflection of the common people’s hopes and dreams of those days. It could be said that the yearning to create a glorious narrative of Korean literature led colonial scholars in the 1930s to link Hong Gildong Jeon and Heo Gyun. Such yearning carried a positive meaning to a certain extent but it is time for a change. It seems now that subsequent research on this work should give back the story to its original author and readers, i.e. the common people, and shed light on what these people actually desired and talked ab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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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용수:169회 수신사(修信使)에 대한 조선과 일본의 태도 차이

허경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3집 2016.10 pp.2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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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 시대에는 조선과 일본 지식인들이 만나서 적극적으로 한시 창화를 하고 필담을 주고받았지만, 수신사와 조사시찰단 시대에는 그 분량이 현저하게 줄었다. 일본 문물을 시찰하러 파견되었으면 당연히 적극적으로 시찰하여 보고서를 작성하고, 필요한 인물들을 만나서 필담을 주고받으며 일본의 정보를 획득해야 했지만, 성공적인 결과물이 적었다. 사법제도를 시찰하러 파견된 엄세영(嚴世永)의 수행원 최성대(崔成大)가 일본 사법관 출신의 미시마 주슈(三島中洲)를 만나 필담한 기록을 보면 오히려 미시마 주슈가 적극적으로 필담을 주도했으며, 최성대의 질문은 사법제도 핵심에서 멀리 벗어나 있었다. 그나마 최성대는 필담초(筆談抄)를 가지고 귀국하지 않아, 필담록이 일본에 남게 되었다. 최성대는 일본인과의 필담, 더 나아가서는 개화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서 일본 지식인들은 조선 통신사의 지침서였던 『일관요고(日觀要考)』를 백년이 넘게 보완해 가면서 필사하여 읽었고, 250년이나 된 권칙(權侙)의 필담도 가지고 다니며 조선 문인에게 질문하였다. 조선에 대한 그들의 정보는 통신사시대부터 계속 축적되었으며, 준비된 상태에서 수신사와 조사시찰단을 상대하였다. 보고서 작성이나 필담에 소극적이었던 조선 수행원들의 태도가 개인적인 문제인지, 아니면 적극적인 개화파 인사들을 선정하여 파견하지 않았던 조선 정부의 문제인지는 나머지 자료들을 모두 분석해보아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Before the Japan-Korea Treaty of 1876, the envoys of the Chosŏn diplomatic missions met with Japanese intellectuals and actively exchanged Classical Chinese poetry and written conversations, but these interactions reduced drastically after 1876. Although the envoys were dispatched to observe Japanese civilization and write reports, as well as meet and converse in writing with important individuals to gain information about Japan, they did not have much success. Ŏm Se-yŏng’s attendant, Ch’oe Sŏng-dae, was dispatched to Japan to observe its judicial system, and his written conversations with judge Mishima Chūshū show that it was Mishima who actively led the conversation, while Ch’oe asked questions that were irrelevant. Moreover, Ch’oe left the drafts of the conversations behind in Japan. In other words, he had no interest in communicating with Japanese, nor in Korea’s enlightenment. In contrast, Japanese intellectuals read, copied, and supplemented the manual of Chosŏn envoys, Essential Survey of Observations on Japan(Ilgwannyogo) for over one hundred years, carried Kwŏn Ch’ik’s written conversations, which were 250 years old, and asked the Chosŏn envoys questions. They continued to accumulate knowledge about Chosŏn since before 1876, and were prepared to deal with the Chosŏn envoys. Further analysis of sources needs to be conducted to accurately judge whether the passive attitude of the Chosŏn envoys in writing reports and conversations stemmed from individual issues or because the Chosŏn government failed to select and dispatch personnel who favored enlightenment.

7,000원

6

이용수:154회 한국시가의 전통과 <가시리>

김진희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4집 2015.04 pp.203-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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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高麗俗謠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중 하나인 <가시리>의 문학적 특성을 한국시가의 전통에 비추어 분석하였다. 고대가요, 향가, 고려가요로 이어 지는 한국시가의 전통 내에서 <가시리>가 공유하는 구조적․律的 특성들에 대해 분석하고, 이러한 특성들이 발현될 수 있었던 외적 맥락으로서 儀式性․演行性 을 고찰하였다. 한국시가는 ‘결핍과 기원’의 내용을 詩化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시리>는 이러 한 한국시가의 전통을 반영한다. 특히 <가시리>는 군더더기 없는 짧은 시형 속에 한국시가의 구조적․정서적 전통을 녹임으로써 간결하면서도 완결된 형식미를 드 러내었다. 또한 이 작품은 한국시가의 전형적인 4행구조를 취하며 동시에 중층적 인 병렬 형식을 갖춤으로써, 리듬면에서도 전통에 기반한 미학을 구현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한국시가의 특성은 儀式性․演行性이라는 한국시가의 외적 맥 락 속에서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제의성과 닿아 있는 의식성은 ‘결핍과 기원’ 이라는 한국시가의 구조와 관련되어 있고, 의식성에 내포되어 있는 연행성은 한국 시가에 담긴 ‘구조의 리듬’과 연관되어 있다. 이렇듯 의식성과 연행성의 맥락 속에 서 한국시가의 전통은 형성되었고, 그러한 전통을 <가시리>는 잘 구현해 내었다.
This paper interpreted "Gasiri", which is one of the most famous koryo-sokyo, comparing it to the tradition of Korean classical poetry. I analyzed the structural and rhythmical features of the poem, which were found in other Korean classical poems in common. I also considered the context of the Korean classical poems in connection with rituality and performance. The poetic structure of "deficiency and pray", which is typical in Korean classical poetry, influenced "Gasiri". The parallelism of the four verse lines is also embedded in it. "Gasiri" reflected the structural and emotional traditions of Korean classical poetry in its compact form and achieved the formal beauty of simplicity. The structural and rhythmical features of the Korean classical poetry, which this paper analyzed were formed in the context of rituality and performance. The rituality was associated with the structure of "deficiency and pray", and the performance yielded the rhythmical features of the Korean classical poetry, based on the orality and parallelism. "Gasiri" realized the poetic traditions of Korean classical poetry, founded on the context of rituality and performance.

7,600원

7

이용수:147회 역사문화유산과 도시재생 - 독일 루르지역 엠셔공원의 사례 -

신명훈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8집 2015.12 pp.97-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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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루르지역은 석탄과 철을 중심으로 한 중공업지역으로서 독일 산업화의 상징적 존재였다. 1960년대 이후 기술의 발전과 세계경제의 구조적 변화로 인해 루르지역은 경기침체를 겪으며 대량실업, 환경오염, 도시의 침체, 사회적 갈등과 같은 많은 문제에 직면하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1989년부터 십년동안 진행된 엠셔공원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한 루르지역의 도시재생은 그 방향성과 목표, 집행방식, 주민들의 참여, 산업역사문화유산의 활용 등에 있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사례가 되었다. 지역이 직면한 포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로 시작된 루르지역의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지속가능성, 생태성, 새로운 산업으로의 전환, 사회적 통합 등을 목표로 하였다. 도시재생으로서의 엠셔공원 프로젝트는 엠셔강을 중심으로 한 광대한 지역에 중공업시대의 산업문화유산을 살린 경관공원과 테크노파크를 건립하고, 오염된 엠셔강을 재자연화하며, 문화와 예술을 생활 속에 스며들게 함으로써 도시재생의 새로운 모델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정부와 전문가그룹, 시민사회와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을 통해 진행됨으로써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도시문제에 대한 장기적이고 통합적인 접근, 주민들의 민주적 참여, 산업문화유산의 적극적 활용, 지역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고양시키기 위한 다양한 접근 등으로 오늘 한국의 도시재생에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The Ruhr region in Germany was a symbol for German industrialization with its coal and steal industry. However it confronted with many problems such as mass unemployment, environmental pollution, urban decline, and social conflicts due to the technical development and structural changes of the world economy since 1960s. The IBA Emscher park project was an attempt to meet such problems, which attracts attention from the whole world for its oranization, goals, participation of the citizens, reuse of industrial heritage. Its main goals as an urban regeneration project were sustainability, ecology, transformation of the economy and social integration. The Emscher park project as an urban regeneration was estimated to have created a new model for urban regeneration through the building of landscape parks and techno parks by conservation and reuse of industrial heritage, renaturalization of the contaminated Emscher river system, and revitalization of culture and arts in everyday life of the citizens. Its success lies primarily in the cooperation and participation of all involved subjects like the local governments, experts groups, civil society and citizens. It can have meaningfull implications for Korean practice of urban regeneration through its characteristics of a longterm and holistic approach to the urban problems, democratic participation of citizens, conservation and reuse of the industrial heritage, and measures for promoting of identity and pride of the region.

7,500원

8

이용수:145회 고전시가의 문화 콘텐츠 소재로의 활용 사례 분석 - 고려가요 <쌍화점>의 영화화를 중심으로 -

최선경, 길태숙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8집 2015.12 pp.261-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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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고전 작품의 현대적 활용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영화 <쌍화점>을 분석한 것이다. 고전 작품에 대한 이해와 대중의 이미지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영화 <쌍화점>을 살펴봄으로써 고전문학의 현대적 콘텐츠로의 변용과 그 의미에 대해 분석하고, 활용의 다양성을 모색해 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고려가요 <쌍화점>에 대한 문학적 해석과 영화 <쌍화점>의 창작 토대가 된 역사기록을 검토하고, 고려가요 <쌍화점>이 어떻게 영화 <쌍화점>으로 재탄생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영화 <쌍화점>은 고려 공민왕대의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창작된 영화로 다양한 역사 기록이 영화 속 사건들로 재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역사 기록을 토대로 한 여타 역사 영화와 달리 <쌍화점>은 정치적, 역사적 사건보다는 궁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이루어진 세 남녀의 일탈적 사랑과 욕망에 집중함으로써 역사 기록이라는 팩트보다 남녀상열지사로서의 노래의 해석과 대중적 이미지에 기대어 공유되고 있다. ‘일탈적 성관계’, ‘여성의 성적 욕망에 대한 긍정’, ‘관음’은 바로 고려가요 <쌍화점>과 영화<쌍화점>이 교차되는 지점으로, 주제, 이미지, 구조 등 다양한 측면에서 고전작품의 현대적 매체로의 확장 가능성을 시사해 주고 있다. 영화 <쌍화점>은 일탈적 성관계, 그러한 현장을 훔쳐보는 목격자, 성적 공간에 대한 상상과 소문의 확대, 성적 욕망의 확산이 이루어지는 담론의 현장에 대한 묘사라는 점에서 고려가요 <쌍화점>의 외연을 넓힌 영화이며, 고전 가요의 현대 서사물로의 활용 가능성을 시사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The paper was designed to analyze the movie in the aspects of modern utilization of Classics. The movie was examined in understanding classics and utilizing public images in order to analyze the transformation of classics as modern contents and its meaning and to explore the diversity of utilization. Literary interpretation of Goryeo-gayo and the historic record of creativity foundation of the movie were reviewed and how the song is adapted into the movie was studied. The movie was created on the basis of the historic record of King Gongmin era of Goryeo dynasty and the film reconstructed various historical events. However, instead of focusing on the political and historical events like any other historical films based on the true story of historic record, highlighted the intertwining story of an aberrant love triangle and their desire in a special space, such as palace. Therefore, the movie was remade in the sense of love song between male and female and shared as popular images rather than relying on the facts of historic record. ‘Deviated sexual relationships’, ‘affirmation regarding sexual desire of female’ and ‘voyeurism’ are known as the points of intersection that Goryeo-gayo and the movie are interrelated, hence its various aspects such as themes, images, structures and etc. suggests the possibility of the classic works' extension to the modern media. By depicting deviated sexual relationships, voyeuristic witness of the scene, imagination of sexual area, expansion of rumors, and the place of discourse where the extended sexual desire is realized, the movie expanded denotation of Goryeo-gayo and it suggests the possibility of flexible utilization of classical popular song as modern narrative.

7,300원

9

이용수:140회 『게일 유고』 소재 한국고전번역물(3) - 게일의 미간행 육필 <홍길동전> 영역본에 대하여

이진숙, 이상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1집 2016.06 pp.30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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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캐나다 토론대 토마스피셔 희귀본장서실 『게일유고』 소재 미간행 육필 <홍길동전> 영역본의 원문과 그에 대한 우리의 재구본을 학계에 소개하며 이에 대한 해제를 제공하는 것이다. 게일의 <홍길동전> 영역본을 경판계열 이본들과 대비 작업을 수행해보면, 번역저본일 가능성이 높은 판본은 <경판21장본>과 <경판23장본>이다. 게일의 영역본에 남겨놓은 숫자는 <경판23장본>의 장수와 행수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럼에도 <경판21장본>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는 첫째, 후반부의 몇몇 특정 번역문에서 <경판21장본>에 더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며, 둘째, 게일이 미의회도서관에 보낸 판본이 <경판21장본>이고, 이 책의 표지 위의 메모는 게일의 『일지』 18권의 육필 <홍길동전> 영역본의 서지사항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게일의 <홍길동전> 영역본을 알렌의 <홍길동전> 영역본과 대비 검토함으로 그 번역특징을 살폈다. 게일은 <홍길동전>을 한 편의 문학작품으로 인식하여 홍길동의 일대기 전반을 충실하게 완역했다. 이러한 그의 번역양상은 알렌이 <홍길동전>에서 한국의 적서차별 제도의 부당함에서 학대받는 길동에 초점을 맞추어 율도국 이후의 화소를 최대한 생략하며 저본을 축소, 확대, 누락하는 모습과는 선명히 대비된다.
The paper's first aim is to introduce to the Korean academic the unpublished handwritten English translation "Hong Kil-tong Chun" located in James Scarth Gale Papers, a collection of the Thomas Fischer Rare Book Library at the University of Toronto in Canada. The second aim is to confirm its source text. The third aim is to investigate Gale's translation practices on the comparison of the source text and Allen's “Hong Kil Tong”. The 23-chapter version and the 21-chapter version published in Seoul are very similar in their contents and length. The former can be said to be the source text of Gale's Hong Kil-tong in that Gale's memo about numbers in his handwritten paper exactly corresponds with the chapter and line of 23-chapter version. Gale's translation, however, reflects the 21-chapter version in detailed contents more than 23-chapter version. Gale also sent to the Library of Congress of America the 21-chapter Hong Kil-tong Chun on the cover of which Gale wrote about the information of his handwritten Hong Kil-tong. For the present it can be said that both 21 and 23 chapter version were used as source texts for Gale. Allen's reduction, expansion, or omission of the source text is remarkable when we compared his Hong Kil-tong Chun with Gale's. He translates liberally to give information about Korean culture. Allen omits the topic of Yuldo state completely. Allen's adaptation reflects his translation object about which he announced in the Preface of Korean Tales. Gale's translation is on the whole literal translation and he tries to translate words, phases, and sentences of the source text literally. Gale, however, omits the consummation of the minister Hong and his maid servant, that is, Kil-tong mother. Gale consistently omitted the sexual and abusive expressions in other translations like "Choon yang". This omission in Hong Kil-tong is in line with his overall translation practices. Except that Gale translated Hong Kil-tong Chun line by line and word by word.

18,600원

10

이용수:134회 1881년 조사시찰단의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 차이 -『日東録』, 『東行日録』, 『東京日記』를 비교하며

문순희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3집 2016.10 pp.5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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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의 강화도조약을 계기로 개항한 한국은 조약 직후 1876년에서 1885년까지 수신사를 5차례 조사시찰단을 1881년에 한차례 일본에 파견했다. 현재 조사시찰단을 포함한 수신사들이 남긴 사행록은 대략 20종이 확인되며 그 외에도 국가에 제출한 보고서 형식의 기록도 남아 있다. 보고서를 제외한 개인 사행관련 기록은 서술 주체, 서술 시기, 서술 내용 등 각각 기록 성격이 다르다. 이 기록들을 나란히 펼쳐봤을 때 개인마다 사행에 참여하는 태도와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본 논고에서는 일본 사행에 대한 태도, 그리고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 등이 개인마다 어떻게 달랐는지 비교 고찰하였다. 이를 위해 1881년 조사시찰단 수행원의 세 기록-강진형의 『日東錄』, 민건호의 『東行日錄』, 송헌빈의 『東京日記』를 텍스트로 선택하였다. 일본사행록을 남긴 세 인물은 동일한 시기 동일한 직책으로 일본에 파견되었는데, 세 사행록에는 각각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 차이가 나타났다. 강진형은 가장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수행원으로 도일하여 새로운 문물들을 쉽게 수용하지 못하고 근대에 적응할 수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사행록에 개인적으로 방문한 장소나 근대문물, 도시 풍경에 대한 감상 등을 기술하지 않았고 개인적으로 어떤 사물에 특별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유일하게 교류를 나눈 일본인에게 지은 시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가 일본 근대 문물에 부정적이며 문명화된 일본에 적응하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와 반대로 민건호의 경우 견문한 사물에 대한 감상이나 개인 생활을 기록에 남겼는데, 민건호는 일본 생활에 적응하여 다양한 계층의 일본인과 교류하였고 일본 문화와 풍습에 대한 관심이 컸다. 송헌빈은 사행록에 여러 제조법을 필사하는 등 근대 문물과 기술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흔한 필담이나 시문을 기록하지 않았다. 그는 민건호와 달리 일본인과의 사적 교류가 거의 없었거나 이에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처럼 시찰단 수행원은 기존의 사행의 사신들과 비교했을 때 훨씬 다양한 감정과 태도로 일본을 대하고 있었다. 이는 극변하는 시기에 기존의 일본에 대한 인식이 국내에서도 점차 변화하고 있었고, 일본에 파견된 사행원들이 전통적인 대외 사행과는 다른 역할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Korea that had opened the ports by Ganghwado Treaty in 1876 dispatched five times of Sooshinsa(修信使) from1876 to 1885 and one time of Inspectors(朝士視察團) in 1881 to Japan. Up to now, approximately 20 Sahangroks(使行錄) which had been written by Sooshinsa including Inspectors were identified. The characteristics of these records are different by writers, writing time, writing contents, and so on, which reflects the different viewpoints and attitudes on Japan by individuals, referring to each record review. In this article, the differences by individuals were investigated for the attitudes to the Japanese investigational trips and the viewpoints on Japan. To do so, three records by the attendants of Inspectors in 1881 were selected as the textbooks including Ildongrok, Donghangilrok, and Dongkyungilgy by Jin Hyung Kang(姜晉馨), Kun Ho Min(閔建鎬), and Hun Bin Song(송헌빈), respectively. Three people to leave Japanese travel records were dispatched as the same position to Japan, while their viewpoints on Japan were different in the records. Jin Hyung Kang, an attendant with the most traditional way of thinking, was shown that he had hardly accepted the new products of civilization easily not to be adaptive well to the modern times after crossing to Japan. He did not describe the places to visit personally, products of civilization, thoughts on the city scenery, and so on in the travel records, which reflected not to be interested in any objects specially. From the poem that he wrote for a Japanese person only with whom he made relationship, it was known indirectly that he was negative to the products of civilization in Japan and was not well adaptive to the civilized Japanese life. On the other hand, Kun Ho Min left the records on his personal life or thoughts on the observed objects, and he was well adaptive to the Japanese life to make the relationship with a variety of Japanese classes with high level of interests in the cultures and customs in Japan. Hun Bin Song showed the progressive attitude on the modern products of civilization and the technologies transcribing multiple manufacturing methods in the travel records, however, he did not record the common conversations by writing or the poems. Unlike Kun Ho Min, it was estimated that he had made relationship with few Japanese people personally or no interest at all. The attendants of Inspectors showed much more dynamic emotions and attitude to Japan compared to the existing envo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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