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Home

열상고전연구 [Yeol-sang Journal of Classical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열상고전연구회 [Society of Yol-Sang Academy]
  • ISSN
    1738-2734
  • 간기
    격월간
  • 수록기간
    1988~2019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한국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810 DDC 810
제27집 (13건)
No

기획논문

1

4,000원

2

자산 안확에게 있어서의 민족 · 무도(武道) · 역사

박노자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7집 2008.06 pp.41-72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자산 안확(自山 安廓, 1886-1946)이 조선인들이 하나의 “민족”으로 규정되어 서구인, 일본인 제국주의자들에 의해서 “열등 민족”으로 하위 배치됐던 비극적인 시대를 살았던 학자이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그가 서구인, 일본인들의 멸시적인 시선을 전복하여 조선 민족이 여태 민족들과 동등하거나 오히려 더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강렬한 욕망을 지녔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국주의자들의 멸시적인 시선을 전복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제국주의자들의 사고방식의 기본틀을 그대로 내면화하는 일이었다. 안확이 그 당시의 지배적인 담론이라 할 사회진화론을 개화기 및 일제강점기 초기에 철저히 익혔으며, 조선인들의 “우월성”을 사회진화론적인 논거를 이용하여 입증하기에 이르렀다. 즉, 그가 조선인들이 단군 시대 이래로 신앙에 입각한 “단합력” 등 “도덕적 힘”과 함께 뛰어난 “무사(武士) 정신”을 지녔다고 강조했으며 이 “무사 정신”이 가장 완벽하게 발휘된 것으로 여겨졌던 고구려사를 조선사 전제 전개 과정 중에서 가장 부각시켰다. 조선에 대한 중국 문화의 영향에 관한 가치 평가의 문제 등 여러 차원에서 안확이 그의 저명한 선배 신채호(1880-1936)와 견해를 달리 했지만, 고대 한민족을 “정복자”로 자랑스럽게 보고 한민족이 타(他)종족들을 정복, 동화했다는 것을 그 “위대한 역량”의 결정적 ‘증거’로 여기는 데에 있어서 매우 비슷한 견해를 지녔다. 결국 안확, 신채호 등이 성립시킨 “고구려, 발해 위주의 사관”은 해방 이후의 남북한 역사학과 대중적인 자국사관(自國史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다.
An Hwak(courtesy name: Chasan, 1886-1946) lived in a tragic epoch when Koreans were for the first time conceptualized as a modern “nation” and simultaneously defined as a “inferior nation” by the majority of Western contemporaries and Japanese imperialist ideologues. In such circumstances, An Hwak, naturally enough, wished to subvert the contemptuous gaze from the outside and establish his nation as either equal or even superior to its peers elsewhere. But a precondition for such an intellectual subversion was acceptance of the dominant Social Darwinist discourse of the imperialist epoch. An Hwak became a convinced Social Darwinist in his formative age in the 1900s-1910s, and then from the very beginning of his literary and scholarly activity began trying to “prove” the “superiority” of the Korean people by using typically Social Darwinist argumentation. He emphasized that “from the times of Korean’s progenitor Tan’gun”, the Korean nation possessed unparalleled “moral strength” based upon shared tribal religious beliefs, but also unmatched “warlike spirit” best shown by the warriors of Koguryǒ(ca. 1st century B.C.–668 A.D.). Although his value judgment of the Chinese influence upon Korean culture differed greatly from much more xenophobic ideas of his famed elder contemporary Sin Ch’aeho(1880-1936), he shared Sin’s belief in Koreans as “great conquering nation” of the antiquity able to “assimilate” the conquered heterogeneous tribes. The “Koguryǒ/Parhae-centred” view of Korean history established by Sin and An in 1900s-1930s, exerted crucial influence of the official historical narratives of both South and North Korea after 1945, as well as the popular perceptions of Korea’s past in both parts of Korea.

7,300원

3

위당 정인보와 강화학파

심경호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7집 2008.06 pp.73-116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9,100원

4

崔益翰의 전통주의 비판과 전통 이해의 방식

김진균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7집 2008.06 pp.119-156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崔益翰(1897~?)은 영남 유림 宇 郭鍾錫의 문하에서 전통 학문을 수학하다가, 1917년 경부터는 서울에서 중동학교와 YMCA에서 근대 학문을 접하였다. 독립군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921년부터 1924년까지 징역을 치렀고, 석방된 후에는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유학하면서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사회주의자로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1927년부터 1935년까지 징역을 치렀다. 최익한은 사회주의 활동가였을 뿐만 아니라, 전통학문과 근대 학문을 두루 접하고 국학 고전의 근대적 의미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근대 지식인이었던 것이다.그는 허생의 실적(1925)이란 글을 통해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의 실제 모델을 추적해보며 고전에 대한 근대적 이해의 한 국면을 보여준 이후, 국학 고전의 다양한 유산들을 근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글들을 발표한다. 특히 주목받은 여유당전서를 독함(1938)을 통해 다산 정약용의 학문적 유산을 철저히 탐구하여, 정약용의 진보적 측면과 시대적 한계를 동시에 밝혀내며, 칭송 일변도의 연구 태도와는 경향을 달리하였다. 최익한은 스스로 전통 탐구의 현대적 의의(1939)라는 글을 통하여 국학 고전을 탐구하는 올바른 자세에 대해 선언하였는바, 전통이란 현재적 진보의 필요에 의해 재구성되는 과거일 뿐이며 과거 전통을 우상화하거나 이상화하여 전통 그 자체에만 매몰되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사회주의적 ‘과학성’을 담보하는 논리를 국학고전에 적용한 것이다.
Choi Ik-han (1897~?) studied classics under Myeon-woo Kwak Jong-seok, Confucianist in the Yeong-nam Province, and began to experience modern sciences at the Jungdong School and YMCA from 1917. He was arrested for raising war funds for the National Independence Army and imprisoned from 1921 to 1924. Released from the prison, he studied at Waseda University in Japan and accepted the socialist ideology. He was again arrested while acting as a socialist and served another term from 1927 to 1935 in prison. Choi Ik-han was not only a socialist activist but also a modern intellect who experienced both traditional and modern sciences and deliberated deeply on the modern meanings of Korean classics. In his writing ‘Heosaeng’s Real Life’(1925), he traced the real model of Yeon-am Park Ji-won’s Heosaengjeon, and displayed an aspect of his modern understanding of the novel, and from that time on he published a number of writings that reinterpreted various Korean classics from a modern viewpoint. Particularly through the spotlighted work ‘Reading Yeoyudangjeonseo’ (1938), he thoroughly examined scholastic heritages from Da-san Jeong Yak-yong, and explained Jeong Yak-yong’s progressive aspects and his imitations in his days. In his writing ‘The Contemporary Meaning of Studies on Traditions,’ Choi Ik-han declared by himself the right attitude toward the study of Korean classics. According to his contention, tradition is the past restructured if necessary for today’s progress, and people should not idolize or idealize past traditions and should not be engrossed in them. That is, he applied the logic that guaranteed socialistic ‘scientificity’ to Korean classics

8,200원

5

김태준 문학사 방법론 재고(1) -『조선소설사』-

이상욱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7집 2008.06 pp.157-184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6,700원

6

李明善의 한국문학 인식

김준형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7집 2008.06 pp.185-207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이 글은 이명선의 한국문학 인식을 살피는 데에 목적을 둔다. 이명선은 1934년에 경성제대에 입학한다. 1934년부터 1940년까지 이명선은 한국문학 연구 방법으로 실증과 실용주의 노선 사이에서 고민한다. 당시 주된 학풍이 실증인데 반해, 이명선은 실용에 기반하여 한국문학을 이해한다. 그렇지만 실증에 대해서도 손을 놓지 못한다. 그 결과는 당시 구비설화와 동요를 수집하여 기록한 이야기와 조선 동요 자료집을 남긴 데서도 알 수 있다.1945년 이후, 이명선은 혁명의 도구로 한국 문학을 이해한다. 대중에 기반을 둔 혁명 문학. 그것이 대중문학이며, 민족문학이다. 그것이 반제국, 반외세의 문학이다. 그것이 새로운 조선을 만드는 희망이었다.
This thesis aims to study on Lee, Myeong-seon's perception of Korean Literature. Lee entered the GyeongSeong imperial college at 1934. He studied Korean Literature, and also deliberated the methodology of study about Korean Literature from 1934 to 1940. They were the positivism and the utilitarianism. The main stream of methodology was the positivism, but Lee selected the utilitarianism as the method of study on Korean Literature. Of course he, even if partly, was inclined to positivism. This fact could be found that he collected oral tales and children's songs and published the「Yiyagi」and「Children's songs of Choseon」 After 1945, Lee understood the Korean Literature as methods of communist revolution. The revolutional literature based on common people. It was a sort of popular literature and also national literature. And also, it was the literature of anti-imperialism and the literature against the external invasions. It was the hope of new Choseon to him.

6,000원

일반논문

7

허균의 <東征賦> 연구 -정철의 <관동별곡>과 김창협의 <동정부>와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

곽미선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7집 2008.06 pp.209-245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이 논문은 허균의 금강산 기행체험을 형상화한 <동정부>를 중심으로 정철의 <관동별곡>, 김창협의 <동정부> 등 세 작품의 관련성을 고찰한 글이다. 辭賦와 歌辭는 수사적인 운용면에서 유사성을 지니는데 敷衍性, 對偶, 그리고 用事를 들 수 있다. 논문의 연구대상으로 설정한 정철의 가사작품과 허균, 김창협의 賦작품은 양식상의 차이를 뛰어넘어 금강산 유람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에 비교고찰이 가능한 작품이다. 허균은 친구인 권필과 이안눌을 통하여 당파를 서로 달리 했던 정철의 <관동별곡>을 입수할 수 있었다. 허균의 <동정부>는 정철의 <관동별곡>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데, 주관적 감흥의 표출, 자연친화의 의지,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 면에서 구체화되어 드러난다. 허균의 <동정부>는 賦라는 문체적 특성을 잘 살리면서 遊山의 흥취를 장편의 편폭 속에 담아 잘 드러나게 하고 있는데,『와유록』에 수록되어 훗날 금강산여행을 떠나는 문인들에게 여행지침서로 되었다. 김창협은 21세의 나이에 금강산으로 떠날 때,『와유록』을 가지고 올라『와유록』에 수록된 허균의 <동정부>에 깊은 공감을 느끼고, 허균과 같은 제목으로 <동정부>를 지었는데, 이 작품은 김창협에게 기행체험을 적기 위한 참고문헌의 역할을 하였다.
This article considers the relevance of three works such as Heo-Gyun's "Dongjungbu", Jung-Chul's "Gwandongbyulgok" and Kim,ChangHyup's "Dongjungbu(東征賦)". Sabu and Kasa have similarity on the rhetoric using, there are amplification, contraposition and quotation of classics. Because Jung-Chul's Kasa and Heo-Gyun, Kim,Chang-hyup's Bu handle the same subject―Geumgangsan tour, comparison of the three works is possible. Heo-Gyun acquired Jung-Chul's "Gwandongbyulgok" form his friends Gwon-Pil and Lee,An-nul. Heo-Gyun's "Dongjungbu" is similar to Jung-Chul's "Gwandongbyulgok" in style. It appears on expression of one's fun, will of natural affinity and the way of showing the subject. Heo-Gyun's "Dongjungbu" was collected in "Wayurok" and it became a trip indicator book to the writers who went to Geumgangsan. Kim,Chang-hyup felt deep sympathy in Heo-Gyun's "Dongjungbu" when he was 21 years old and made a composition in the same title. This work did the role of references to write a book of travel experience.

8,100원

8

洪大容 집안에서 편집한 『燕杭詩牘』

허경진, 천금매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7집 2008.06 pp.247-298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이 논문에서 최근에 새로 발견된 필사본 燕杭詩牘을 소개하고, 조선과 청조 인사들의 교류양상을 살펴보았다. 하버드대학 옌칭도서관에 소장된 필사본을 토대로 하여,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필사본 2종을 더 발견하였다. 序, 跋 등 편찬정보가 없어 편찬자나 편찬시기를 확인하지 못하였으나 규장각 소장본은 1932년, 1933년에 필사된 것임이 밝혀졌다. 연항시독은 청조 인사들이 조선 인사들에게 보낸 편지와 시를 모아 편찬한 책이다. 그 속에는 청조 인사 20명이 조선 인사 9명에게 보낸 편지 71통, 시 23題 36수 및 曾襲侯가 李鴻章에게 보낸 편지 1통이 수록되어 있다. 첫 번째 부분은 1765년 사행을 갔던 洪大容 金在行 李, 洪檍 일행이 燕京에 있을 때와 귀국한 이후에 陸飛 潘庭筠 嚴誠 朱文藻 朱德 翟允德 孫有義 嚴果 徐堯鑑 鄧師閔 趙煜宗 嚴昻 등에게서 받은 편지와 시이다. 潘庭筠이 역관 李白石, 洪檍의 아들 洪光에게 보낸 편지, 郭執桓이 朴齊家에게 보낸 편지도 이 부분에 포함시킬 수 있다. 두 번째 부분은 1826년 연행을 갔던 홍대용의 손자 洪良厚에게 보낸 李伯衡 李璋煜 許乃 王筠, 潘恭壽의 편지이다. 이 부분은 홍양후가 선조의 뒤를 이어 청조 인사들과 활발히 진행한 교류를 살펴볼 수 있어 중요하다. 세 번째 부분은 1875년 연행을 갔던 李裕元에게 보낸 李鴻章 游知開의 정치 외교적 성격의 편지이다. 연항시독은 한 世紀를 넘는 교류사를 보여주며, 이 책에 수록된 편지들은 대부분 지금까지 다른 문헌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특히 홍대용이 귀국 후에 청조 인사들에게 받은 편지가 상당수 수록되어, 杭傳尺牘만으로 항주 선비들과의 교유의 전모를 파악하기에 부족했던 공백을 메워주고 있다. 홍대용의 숙부인 洪檍부터 홍양후까지 헤아리면 4대가 된다. 연항시독은 홍씨 가문 4대의 對淸 문화교류를 보여주는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这篇论文主要介绍了新发现的资料燕杭詩牘』,并依此基础研究了朝鲜和清朝文士的文化交流和友谊。这个资料首先在美国哈佛大学燕京图书馆发现,在此基础上继而发现首尔大学奎章阁也收藏着2种抄本。可惜没有序跋等关于编撰的情报,还不能确定编撰者和编撰时期, 但奎章阁收藏本是分别由1932年,1933年抄录的。燕杭詩牘』是一本收录着清朝人士写给朝鲜人士的书信和诗篇的笔抄本。共有20名清朝人士写给9名朝鲜人士的书信71封和诗23题36首,及一封曾袭侯写给李鸿章的信。这本书内容大体上可以分三个部分。第一部分是1765年出使清朝的洪大容、金在行、李烜、洪檍等人在燕京时和回国后由陸飛、潘庭筠、嚴誠、嚴果、嚴昻、朱文藻、徐堯鑑、朱德翽、翟允德、孫有義、鄧師閔、趙煜宗等友人收到的书信和诗篇。潘庭筠写给翻译官李白石及洪檍的儿子洪葆光的信、郭執桓写给朴齊家的信,也可以包括在这一部分里。第二个部分是1826年燕行清朝的洪大容的孙子洪良厚收到的李伯衡、李璋煜、許乃賡、王筠、潘恭壽等人的信。从这一部分我们可以考察洪良厚继承先祖的遗迹与清朝人士进行广泛交流的情况,具有重要意义。第三部分是李鴻章、游知開写给1875年出使过清朝的李裕元的信,这些信具有政治外交性质,从中可以了解到当时的国际政治形势。燕杭詩牘』 展现出一个世纪之久的交流史, 他所收录的书信大部分是其他文献中未曾发现的。尤其收录了相当多的洪大容回国之后从清朝友人那里收到的信,这些资料弥补了仅由杭傳尺牘』所不能全面了解洪大容与杭州三才交流的空白之处。从洪大容的叔父洪檍到洪大容的孙子洪良厚,一家四代都与清朝人士有过交往。燕杭詩牘』 正是记录了洪氏家族4代与清朝人士进行文化交流的珍贵资料,史料价值相当高。

10,300원

9

明 王世貞의 문학사상과 李彦瑱의 한시

李春姬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7집 2008.06 pp.299-332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明나라 문인 王世貞은 18세기 조선 문단에서 별로 환영 받지 못했으며, 그의 문학사상 역시 추종(推從)하는 이가 드물었다. 이러한 문단의 분위기를 고려할 때, 왕세정의 문학사상을 준거로 삼았던, 18세기 중반에 활약한 李彦의 문학실천은 독특하다. 과연 이언진은 왕세정의 문학사상을 어떤 방식으로 수용했으며, 또한 그것을 토대로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어떻게 구축해 놓았을까?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왕세정의 문학사상과 만년의 변화, 이언진의 문학취향과 왕세정, 이언진 한시의 특징 등을 고찰했다. 결과적으로 이언진은 왕세정의 문학사상이 만년에 와서 자아교정을 거쳐 자아완성으로 나아갔던 점을 이어받았으며, 그것을 한시 창작으로 실천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고찰은 이언진의 독특한 문학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한 작업으로, 18세기 조선 문단에 존재했던 다양한 흐름을 보다 입체적으로 인식하는 데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한다.
明の文人王世貞は18世紀の朝鮮文壇において、それほど歓迎されていなっかたし、その文学思想もあまり推賞されていなかった。このような文壇状況を背景にしてみた場合、王世貞の文学思想を準的にしていた18世紀半ばに活躍していた朝鮮の文人李彦瑱の文学は独特の存在だと言えよう。果たして李彦瑱はどの方法で王世貞の文学思想を受容し、またそれを土台にして自分の文学世界を築き上げたのか。このような問題意識をもって李彦瑱の文学をアプローチした場合、そこから18世紀の朝鮮文壇の多様な流れを感じ取ることができるだけでなく、さらにその時代の文学について立体的な認識をもつことができよう。また、本稿が資料として使っている「東槎余談」などの考察を通じて、通信使をきっかけに日本に大いに文名を馳せた李彦瑱と日本の文人劉維翰との筆談をもとに、当時の日本文壇の状況を把握することにもあるていど役立であろう。

7,600원

10

<萬家春設>의 개관과 소설적 특성

이대형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7집 2008.06 pp.333-359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만가춘설>은 여기서 처음 소개되는 한문장편소설이다. 회장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것은 6회인데 아마도 전반부에 6회 정도가 더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작품의 전체를 보면, ‘선을 쌓은 집안에는 후손에게까지 남은 경사가 있다’는 복선화음의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는데 윤리적 문제에 대한 형상화가 주목된다. 특히 음식 재료로 살상되는 가축들의 아픔을 거론한다는 점이 특색이다. <만가춘설>은 전체적으로 남성 주인공의 시각에서 서술되고 있지만 작품 일부에서 여성들만의 독자적인 서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여성들은 그들만의 詩會를 열고, 사회적 문제가 되는 하천의 교량을 건설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외적이 침입하자 군사를 이끌고 출정하여 적들을 굴복시킨다. 이렇게 여성들의 사회적 역량을 강화시킨 것은 여장군계열 군담소설이나 <명행정의록> 등의 가문소설의 경향들과 관련지어 볼 수 있다.한편, 한문소설은 글쓰기 공부의 방편으로 이용되기도 했는데 <만가춘설>에서도 그러한 점이 확인된다. 詩詞가 다수 등장하는 것은 물론이요 상소나 훈계문 등이 장황하게 서술되고 있다. 이런 부분들은 서사적 흥미보다는 교육적 목적에 초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종합해 보자면 <만가춘설>은 19세기 이후에, 한문 소양을 갖춘 이가 자신의 文才를 피력함과 아울러 초학자들에게 읽게 할 만한 글을 흥미롭게 엮고자 한 데서 나온 작품으로 보인다.
Mangachunseol is the novel written in Chinese characters, and it is first introduced here. It is thought that the work was written after the 19th century. Its writer still is not known. Current text is composed of 6 chapters, but original text may be composed of 12 chapters. The main theme is like this. "Keep on doing good deeds and your family will be blessed." Partly this work deals with pains of livestock killed for men's food ingredients. Mangachunseol is narrated by hero's point of view, but some portion is not. These are women's story. Heroines hold a poetry party, plan to construct the bridge which is necessary to the town, have the invading enemy submitted to. As it is cited before, Mangachunseol strengthens the social ability of heroines, which is related with Gundam(軍談) novels and Gamun(家門) novels. Generally speaking, Chinese writing novel is utilized to promote the capability of writing, and Mangachunseol is also. The text is comprised of some sangsomuns(上疏文) as well as a lot of poems. In this points, this work has more educational intentions rather than interests. Consequently, it is thought that someone who has literary attainments wrote Mangachunseol to manifest the his own talents and let the children read it.

6,600원

11

세책 대출장부 연구1 - 세책 대출장부의 유형과 실상 -

전상욱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7집 2008.06 pp.361-396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필자는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세책 대출장부를 통해 당시의 세책집에서 어떤 방식으로 세책이 유통되었는가를 살펴보는 데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시키고 있다. 세책 대출장부에는 대출자의 거주지 및 이름, 대출한 작품의 제목 및 권차, 대출한 날짜, 대출시 저당을 잡혔던 담보물, 그리고 대출자의 외상 여부 등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세책 대출장부를 통해서 세책 고소설의 유통양상을 실증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본고는 현재까지 필자가 확인한 세책 대출장부의 소재처 및 총량, 그리고 대출장부의 유형을 밝히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그리고 필자가 복사본으로 확보하고 있는 대출장부의 실상과 이를 이해하기 쉬운 도표로 변환하여 제시함으로써 세책 대출장부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하였다. 현재까지 확인된 세책 대출장부는 동양문고(일본), 고려대, 이화여대, 연세대 등에 소장되어 있는 17종의 세책 고소설의 표지 및 본문에 배접지의 형태로 남아서 전해지고 있다. 그 수량은 총 631장이고, 총 대출기록은 4200여 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동양문고본에서 발견된 대출장부가 544장이다. 세책 대출장부는 장부를 기록하는 방식에 따라 날짜별 대출장부와 작품별 대출장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화여대본, 동양문고본 등에서 발견된 장부는 날짜별 대출장부이고, 동양문고본, 고려대본 등에서 발견된 것은 작품별 대출장부이다. 앞으로 대출장부의 기록을 Database화하여 보다 구체적인 유통양상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筆者は、19世紀後半から20世紀初盤にわたって記録されたと推定される貰冊の貸出帳簿を通じて、当時の貰冊屋(日本での貸本屋に該当する)においてどのような方式で貰冊が流通されたのかに関心を持ち、研究を進めている。貰冊の貸出帳簿には、借り手の居住地及び名前、貸し出した作品の題目とその卷次、貸し出した日付、その時に抵当に入れた担保物、そして借り手の掛け金があるか否か等が記録されていて、これらを通じて貰冊古小説の流通の様相が実証的に把握できると考えられる。本稿は、現在まで筆者が確認した貰冊の貸出帳簿の所在先及び総量、そして貸出帳簿の類型を明らかにすることに目的をおいた。同時に、筆者が複写本で確保している貸出帳簿の実狀を図表に変換し、これを提示することで貸出帳簿の理解を補うことを試みた。これまで確認された貰冊の貸出帳簿は、東洋文庫(日本)、高麗大、梨花女大、延世大などに所蔵されている17種の貰冊古小説の表紙及び本文に褙接紙という形で残されたものである。その数量は、総631張くらいで、すべての貸出記録は4200餘件に至る。そのなかで東洋文庫本から発見された貸出帳簿が544張くらいである。貰冊の貸出帳簿は帳簿を記録する方式により、日付別の帳簿と作品別の帳簿に分類できる。梨花女大本、延世大本などで発見された帳簿は日付別の貸出帳簿で、東洋文庫本、高麗大本などで発見されたのは作品別の貸出帳簿であった。今後、貸出帳簿の記録をデータベース化し、より具体的な流通様相の把握ができることを期待している所である。

7,900원

12

『애국부인전』의 연설과 고소설적 요소 - 그 면모와 유래

박상석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7집 2008.06 pp.397-485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1907년에 발행된 역사전기물『애국부인전』은 프랑스의 여성 영웅 잔다르크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잔다르크를 소재로 한 여타의 기록물에는 보이지 않는 두 가지 특성이 나타난다. 잔다르크의 긴 연설이 작품의 한 회(回)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과 작품 곳곳에 고소설적 요소가 들어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본고는 이 두 가지 특징적 면모를 살피고, 이들이 작품 속에 나타나게 된 유래를 탐색하였다. 『애국부인전』과 가까운 시기에 나왔으며, 외국의 영웅들이 주인공인 번역 역사전기물들 중에서 연설이 들어간 작품들을 몇 편 확인할 수 있다. 인물의 연설을 삽입하는 것이 당시 번역 역사전기물들에서 하나의 문학적 관습이었음을 알 수 있다.『이태리건국삼걸전』은 영국의 원작을 일본이 번역하고, 일본 작품을 중국이, 중국 작품을 한국이 다시 번역한 것이다. 여기서 영국의 원작에 이미 연설이 들어가 있고 이것이 일본, 중국, 한국의 작품에서 차례로 번역되었다. 역사전기물에 연설을 삽입하는 방식이 서양, 일본, 중국을 거쳐 한국에서 전해졌음을 추정할 수 있게 한다.『애국부인전』에 연설이 삽입된 것은 이와 같이 동서양을 관류하는 대규모의 문학적 흐름 속에서 생겨난 일이었다. 『애국부인전』은 고소설적 면모를 지향하였다. 그런데 역사화된 잔다르크의 서사는 본래 군담적 화소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애국부인전』은 특히 군담소설적인 색채를 강하게 띠게 되었다. 외국의 영웅을 주인공으로 한 역사전기물에 고소설적 요소를 활용하는 방식은 앞서 나온 중국의『瑞士建國誌』에 이미 보인다.『애국부인전』은『瑞士建國誌』로부터 고소설을 활용하는 발상을 얻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실제 작품 창작에서는 조선의 고소설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애국부인전』의 연설과 고소설적 요소는 이처럼 근대 초기에 한국을 관류한 역동적인 국제 문화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Aekukbuin-jeon(愛國婦人傳)』(1907) is a biography of Jeanne d'Arc, the heroin of France. This work has two distinctive features. One is a long speech of Jeanne d'Arc, and the other is old novel's style. This paper examined those features, and searched for the origin of them. Some translated biographies which was published nearly at『Aekukbuin-jeon』also have speeches. It informs us that insertion of speech was a kind of literary custom.『Italy-geonkuk-samgeol-jeon(伊太利建國三傑傳)』's original text is a British's. Japan translated British's, China translated Japan's, Korea translated China's. The British's already has a speech. It translated by Japan, China, Korea in order. It informs us that the use of speech in a biography transmitted from western to Japan, China, Korea in order. The use of speech in the『Aekukbuin-jeon』occured in the large stream of literary like this. 『Aekukbuin-jeon』pursued old novel's style. In addition to that this work has a kind of war story. As a result『Aekukbuin-jeon』specially exhibits the color of war story(Gundam-novel, 軍談小說). The use of old novel's style had been tried at『Seosa-geonkuk-ji(瑞士建國誌)』, Chinses novel. It implies that『Aekukbuin-jeon』got the idea of using old novel's style from『Seosa-geonkuk-ji』. And『Aekukbuin-jeon』seems to have used the Korea's old novels in the actual writing. Like these『Aekukbuin-jeon』’s speech and old novel style reflect the dynamic stream of international culture in the early days of modern ages in Korea.

15,900원

13

휘보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27집 2008.06 pp.437-445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4,000원

 
페이지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