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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상고전연구 [Yeol-sang Journal of Classical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열상고전연구회 [Society of Yol-Sang Academy]
  • ISSN
    1738-2734
  • 간기
    격월간
  • 수록기간
    1988~2019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한국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810 DDC 810
제46집 (22건)
No

기획논문 : 해외로 반출된 조선시대 전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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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소재문화재재단지원, 구한말 영국공사 애스턴(Aston)이 수집했던 조선시대 전적 조사의 성과와 과제

유춘동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6집 2015.06 pp.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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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했던 과제의 성과와 차후 과제 에 대한 것이다. 재단 과제의 세부 명칭은 “구한말 영국공사를 역임했던 애스턴이 수집했던 조선시대 전적조사”이며, 애스턴이 수집했던 자료의 총량, 성격, 수집 배 경 등을 밝히는 데 목표를 두었다. 조사단이 애스턴(William George Aston, 1841~1911)에 주목했던 이유 는 외교관이면서도 특이하게 우리나라의 전적문화재를 체계적으로 수집했고, 이 를 바탕으로 ‘한국학’의 시초라고 할 만한 선구적인 업적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내에서는 이러한 애스턴의 행적이 알려져 있지 못하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이러한 애스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본 조사단에게 러시 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과 동방학연구소,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에 소장 되어 있는 애스턴 전적의 전수 조사의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이에 본 조사단은 두 나라를 방문하여 그가 수집했던 우리나라의 전적을 조사할 수 있었다. 먼저 조사단이 확인한 애스턴이 수집했던 조선시대 전적은 러시아 국립대학과 동방학연구소,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 173종 969책, 85종 153책이다. 그는 조선 전적과 일본전적을 동시에 수집했고, 이때 조선어 교사와 사토(Satow)의 도움을 받았다. 이 책들은 모두 장서목록을 만들어 관리했다. 그가 수집했던 책들을 통해 서 한국어 학습과정을 알 수 있었고, 고소설로도 한국어를 학습했음을 확인했다. 애스턴 자료를 확인하면서 이와는 별도로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 초기 성경 및 선교 자료가 소장되어 있음을 밝혀냈다. 이 자료는 의료선교사 드류(Drew)가 소 장했던 것으로, 총량은 58종 63책이다. 이 자료에는 간행 부수, 가격 등이 기재되 어 있어 당시 개신교 신자들의 숫자 등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주목할 점은 교파(敎 派)를 떠나서 거시적인 안목에서 당시 조선에서 간행되었던 성경 자료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수집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러시아 국립대학, 영국 캠브리지 대학과 SOAS에 소장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전적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러시아 국립대학의 자료는 조선에 파견할 외교관 양성을 위한 교재용으로 수집한 것이다. 또한 영국 캠브리지 대학 의 경우, 웨이드 장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중국서적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전적들도 수집했다. 한편 런던 SOAS의 한국학 자료들을 다 수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 자료는 근현대 한국학 자료와 고소설로 전체 32종 49책이었다.
This paper is report of the project supported by Overseas Korean Cultural Heritage Foundation. The detailed name of this project is British Minister’s(William G. Aston) Research and Collection of Old Books At the End of Chosun Dynasty. The goal of this project is to research about amount, characteristics, and backgrounds of Aston’s collection. The reason why our research group paid attention to William George Aston(184 1~1911) was that he collected Korean old books in a systematic manner even though he was a foreign minister and that he presented a pioneering work that can be seen as the root of the Koreanology. However, this important work by Aston is not well known in Korea. Overseas Korean Cultural Heritage Foundation acknowledged the significance of Aston’s work and provided the opportunity to totally inspect the Aston’s collections that belong to Russian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and British Cambridge University. Given the opportunity, our research group visited two countries to inspect the collection, and were able to find some unexpected documents in this process. First, it has been checked that there are 969 books of 173 kinds and 153 books of 85 kinds in Russian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and Cambridge University, respectively. He collected old books of Chosun and Japan at the same time. He bought these with the help from Korean teacher and Satow. He made the library catalogue to keep the books in order. His Chosun language (korean) learning process can be seen in these collection, and he also learned Chosun language (korean) by reading old novels. It has been also checked that there are early bibles and missionary documents in Cambridge University. These books were originally owned by medical missionary called “Drew.” He collected total 63 books of 58 kinds of early bibles and missionary documents. These documents also included publication numbers and price, which allows us to estimate how many Protestants there were at that time. Above all, it is important to see that Aston was deeply interested in and collected the bibles published in Chosun. Lastly we could study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 old documents owned by Russian National University, Cambridge University, and SOAS. Russian National University had collected korean documents to educate diplomats to send to Korea. British Cambridge University owns Wade books which were collected while collecting Chinese old books. We found out London SOAS also owns plenty of Koreanology documents which mostly consists of modern Korean documents, but it also includes 49 books of 39 kinds from Chosun Dynasty.

5,1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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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캠브리지 대학 소장 한국 고전적 자료의 현황과 특색 - 개인 수집가를 중심으로 -

백진우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6집 2015.06 pp.3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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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소장하고 있는 한국 고전적 자료의 현황을 정리하고 그 특색을 밝히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특히 캠브리지 대학 소장 서와 관계된 개인 수집가를 중심에 두고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캠브리지 대학에서는 1886년에 한국 고전적 자료를 처음으로 입수하게 되었 다. Sir Thomas Francis Wade가 기증한 883종의 중국본 고전적 가운데 5종 의 한국 고전적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의도를 갖고 수집한 경우는 아니지 만, 한국 고전적이 이른 시기에 영국의 도서관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 미가 있다. 그 이후로 캠브리지 대학에서는 1902년에 62종의 초기 기독교 관련 자료를 입수하게 되었다. 이는 1890년대에 한국에 들어와 선교 활동을 펼치다가 귀국한 영국 성공회 선교사들이 수집하여 기증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자료들은 대 부분 1890년대에 한국에서 발간된 것들로서 한국 초기 기독교사와 성공회 선교사 들의 선교 활동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활용 가치가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 다음 으로는 1911년에 William George Aston이 수집했던 일본 고전적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한국 고전적 17종을 입수하게 되었다. 그간 애스톤의 장서는 대부분 러 시아에 보관된 것으로만 알려져 있었는데 이번 조사를 통해 새로운 자료들을 확인 하게 된 것이다. 이 이후로는 약 4차례에 걸쳐 소규모로 한국 고전적이 캠브리지 대학 도서관에 들어가게 되었다. 다음으로 이 논문에서 주목한 부분은 한국 고전적 수집과 관련이 있는 두 명의 인물 Sir Ernest Mason Satow와 애스톤의 활동이다. 이들은 19세기 후반에 외교관 신분으로 아시아 지역에 머물렀으며, 뛰어난 학자로서 많은 연구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들은 1880년부터 조선에 대한 관심을 가졌는데 특히 역사․ 어학․지리 분야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비록 한국과 영국 사이의 외교 관계 수립을 위한 목적이 배경에 있기는 하지만, 이들이 남긴 연구는 높은 수준으로서 오늘날에도 참조할 만한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사토 와 애스톤은 한국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고전적을 수집하게 되었는데, 이 가운데 일부가 현재 캠브리지 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따라서 이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한국 고전적을 수집하였는지, 그리고 이들이 수집한 책들이 다시 어떤 과정을 거쳐 캠브리지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끝으로 캠브리지 대학 소장 한국 고전적 자료에 대한 조사의 의의와 활용 방안 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였다. 첫째, 해외에 소장되어 있는 한국 고전적 자료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갖고 조사를 지속해야 할 필요성을 확인하였다. 이번 조사를 통해 확인하였듯이 아직 조사 연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한국 고전적 자료들이 도처 에 산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자료와 자료, 수집가와 수집가 사이의 연관성 에 주목할 필요성을 확인하였다. 물론 기록의 한계로 말미암아 당시의 정황을 정 확하게 재구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한국 고전적이 해외로 유출된 과정을 꼼꼼 하게 정리하고 파악할 필요가 있다. 셋째, 외국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 의 활용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특히 캠브리지 대학에서 소장하고 있는 구한말 초기 성경 자료의 경우 자료의 보존 상태가 좋을뿐더러 거질의 온전한 컬렉션이 존재하므로, 이를 현지에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This research and investigation is about the Korean old rare books collection in Cambridge University, England. In this article, history and the present condition of the Korean old books kept in Cambridge University library will be described. Also its distinguishing aspects will be introduced focusing on two private collectors named Sir Ernest Mason Satow(1843-1929), and William George Aston(1841-1911). These two people had worked in Japan during the late 19th century, and they collected a number of Korean old books in Japan and Korea. Most of books now kept in Cambridge library came from their collection. Cambridge University collected Korean old books since after 1886. Though the University had no intention to collect Korean books, they accepted 5 titles naturally when they received Sir Thomas Francis Wade(1818-1895)’s Chinese books collection. After that they received more than 62 titles of Christianity books published in Korea during 1890s. These books are important to research the beginning of Christianity and the missionary works in Korea. And Cambridge University accepted Satow’s and Aston’s collection in 1911. These are meaningful collection of the outflow of Korean old rare books carried out during the late 19th century. Satow and Aston collected Korean books in Japan while they stayed as diplomat. This article also outlines the future of study of Cambridge’s Korean collection. First is the need of investigating Korean old books in abroad. Even though researches are in progress in this field, there remains a lot of Korean old books which is waiting for in-depth study. Second is the study of the connection between materials and materials, collectors and collectors. As so many books are spread in the foreign country at now, we need to reveal the status clearly. Third is looking for the application plan of those collection. As we have no choice to return those books back to Korea practically, we need to make the best use of those books in ab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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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러시아의 한국 고서 수집 양상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와 동방학연구소 소장본을 중심으로 -

이혜은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6집 2015.06 pp.6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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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도서관과 동방학연구소에 소장 된 한국 고서의 서지조사를 통하여 그 현황과 특징을 확인하고 당시 한국 고서의 수집 양상을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조사 결과 한국 고서는 상트페테르 부르크 국립대학교에 84종 847책, 동방학 연구소에 200종 958책이 소장된 것으 로 확인되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에 소장된 한국 고서를 주제별로 분 석하면 사부(史部)는 55종 637책 65.4%로 가장 많았고 경부(經部)는 6종 16 책으로 7.1%, 자부(子部)는 16종 107책으로 19%, 집부(集部)는 7종 87책으 로 8.3%를 차지하였다. 특히 사부의 정법류(政法類) 자료들은 모두 18종 163책 으로 사부분류상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이를 통하여 상트페테르부 르크 국립대학이 조선에 파견할 외교관의 양성이라는 기능을 충족하기 위하여 한 국 자료를 수집하였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반면, 동방학연구소에 소장된 자료 의 성격을 보면 경부(經部)의 책은 27종 100책으로 13.5%, 사부(史部)는 64종 405책 32.0%, 자부(子部)는 23종 78책으로 11.5%, 집부(集部)는 86종 375 책으로 43.0%이다. 특히 집부의 소설류(小說類)는 59종 157책으로 가장 큰 비 중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당시 조선어와 조선문학의 연구를 목적으로 한 자료 수 집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구한말 외국인들의 한국 고서 수집이 대부분 한국 문화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에서 시작된 것이었는데 반해 상트페테르 부르크 국립대학교와 동방학연구소의 한국 고서들은 조선에 대한 정보 수집이라는 외교적인 목적을 가 진 정책적인 자료의 수집 양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The objective of this research is to examine the current status and features through the bibliographical studies of Korean rare books owned by Saint Petersburg State University Library and The Institute of Oriental Manuscripts of the Russian Academy of Sciences. As a result of the research, it was confirmed that a total of 84 titles in 847 volumes and 200 titles in 958 volumes were owned respectively by Saint Petersburg State University and The Institute of Oriental Manuscripts of the Russian Academy of Sciences. When analyzing the Korean rare books owned by Saint Petersburg State University per theme, the history category appeared to have the highest number of books with 55 titles in 637 volumes, occupying a rate of 65.4%, 6 titles in 16 volumes in the classics category occupied 7.1%, 16 titles in 107 volumes in the arts and sciences category occupied 19%, and 7 titles in 87 volumes in the literature category occupied 8.3%. In particular, the materials in the political law subcategory within the history category occupied the highest portion with 18 titles in 163 volumes, which suggests that Saint Petersburg State University sought to collect Korean materials to satisfy the purpose of cultivating diplomats to dispatch to Joseon. On the other hand, when examin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materials owned by The Institute of Oriental Manuscripts of the Russian Academy of Sciences, there appeared to be a total of 27 titles in 100 volumes in the classics category occupying 13.5%, 64 titles in 405 volumes in the history category occupying 32.0%, 23 titles in 78 volumes in the arts and sciences category occupying 11.5%, and 86 titles in 375 volumes in the literature category occupying 43.0%. In particular, the subcategory of novels in the literature category appeared to occupy the highest ratio with 59 titles in 157 volumes, which seems to reflect the intent of collecting materials with the objective of studying Joseon language and Joseon literature at the time. The collection of Korean rare books by foreigners at the end of the Joseon period mostly started from personal interest in Korean culture, however, it could be confirmed that the Korean rare books at Saint Petersburg State University and The Institute of Oriental Manuscripts of the Russian Academy of Sciences exhibits a form of collection based on policy reasons for a diplomatic objective for gathering information on Joseon.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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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喜海 장서 필사본 『高麗史』의 성격과 의의

허경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6집 2015.06 pp.8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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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정책과제 「구한말 해외 반출 조선시대 전적 현황 조사연구 : 주한 영국공사 애스톤 (W.G. Aston) 소장본」 연구팀의 일원으로 2014년 8월 23일부터 30일까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동아시아도서관[Cambridge University Library East Asian Reading Room]을 방문하여 애스톤 소장본을 비롯한 한국 고서를 조사하였다. 웨이드 컬렉션에서 “A history of Korea, by 翁樹崐, Weng Shu-k’un [In manuscript] 1814.”라는 설명의 高麗史를 찾아내고 깜짝 놀랐다. 이 책에는 ‘嘉蔭簃藏書印’․‘劉喜海印’․‘燕庭’이라는 도장과 ‘樹崑嘗觀’․‘星 原過眼’․‘星原嘗觀’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다. 翁樹崐이 筆寫한 책이 아니라 劉 喜海 藏書를 翁樹崐이 1813년에 校勘한 책이다. 139권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 을 모두 필사한 것도 놀랍지만, 금석문 학자가 한 글자 한 글자 교감한 것도 놀랍 다. 옹수곤이나 유희해 모두 이 시기에 고려시대 금석문을 연구하고 있었으므로, 『고려사』열전을 정독하고 있었다. 옹수곤은 그 이전에 일본 무역선을 통해서 고 려사를 구입했으며, 자신의 책을 빌려서 필사하려던 다른 학자들의 청을 거절하 였다. 옹수곤이 소장하고 있던 고려사에는 열전 권31, 권39 등이 빠져 있었으므로, 김정희나 이광문에게 편지를 보내어 빠진 부분을 필사해서 보내달라고 부탁 하였다. 이 책은 대부분 붉은 괘선지에 중국인이 필사했는데, 열전 권31은 검은 괘선지에 조선인이 필사해 보내주었으며, 열전 권39는 내용이 없다. 조선에서 부 탁을 받고도 보내오지 않은 듯하다. 이 책은 19세기초 청나라 학자들의 『고려사』열풍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 책이 청나라 금석문 연구에 어떻게 이용되었는지, 추가로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As a member of the policy research task force in the Overseas Korean Cultural Heritage Foundation’s A Survey Study of Chosŭn Manuscripts Transferred Overseas in the Latter Chosŭn Period: British Ambassador to Korea, W. G. Aston’s Archives from August 23 to 30, 2014, the author was surprised to find a copy of the History of Koryŏ with the explanation: “A history of Korea, Weng Shu-k’un [In manuscript], 1814” in the Wade Collection of the Cambridge University Library East Asian Reading Room. The book contains the stamps indicating the name of the archive collection, Liu’s ownership, and Liu’s pen-name (Yan Ting), as well as stamps that indicate Weng’s courtesy name. Weng did not make a copy of the book, but had compared it to others in Liu’s collection in 1813; hence his stamp. Numbering 139 volumes, it is astounding that epigraph scholars went through and compared the book with others character by character. As Weng and Liu both researched Koryŏ Dynasty epigraphs, they conducted a close reading of the History of Koryŏ. Weng purchased a copy of the book via Japanese trade routes, and refused requests from other scholars to borrow the book for copying. As the copy he possessed was missing volumes 31 and 39, Weng requested copies of the missing volumes to Kim Chŏnghŭi and I Kwangmun in his personal correspondence. Although the book was mostly copied by Chinese on red rice paper, volume 31 was copied by a Korean on black rice paper, and volume 39 has no content. Thus, it seems that Weng’s requests went unanswered. The book is evidence that early 19thcenturyQingscholarswereexperiencinga History of the Koryŏ craze, and further research is needed on how it was used in studies of Qing epigraphs.

6,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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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및 동방학연구소 소장 희귀본 자료에 대하여

권진옥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6집 2015.06 pp.113-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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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 및 동방학연구소에 소장된 한국학 자료들 가운데, 기왕의 연구에서 소홀히 넘어갔던 몇몇 자료들을 소개하고 설명한 것이다. 국립대학과 동방학연구소에 소장된 자료들은 필사본․방각본 고소설, 몇 몇 공문서 및 조사보고서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국내본의 테두리 안에 있다. 그러 나 현지에서 자료들을 직접 열람하며 목록에서 누락된 자료들을 확인하기도 하고, 목록의 誤記로 인해 사전 조사에서 소홀히 여겼던 자료들이 눈에 다시 들어오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나름 가치를 부여할 만한 자료를 거론하자면, 국립대 학 소장 『籌撮』과 『己卯錄補遺』, 동방학연구소 소장 『國朝征討錄』과 『耳溪遺 集鈔』등 4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지적으로는 유일본인 『籌撮』을 제외한 나머지 3종은 희귀본에 속하고, 내용적으로는 정치, 사회경제, 역사, 전쟁사, 문 학자료로서 유의미한 자료라 할 수 있다. 『籌撮』은 正祖 시대의 사회경제, 문물제도 등을 주제별로 일목요연하게 살펴 볼 수 있는 자료인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유일본 자료『籌謨錄』과 그 성격이 유사하다. 다만 분류 체계와 분량 면에서 『籌撮』의 서지적․내용적 가치가 더 우 수하다. 『己卯錄補遺』는 희귀본으로서 己卯士禍와 관련된 인물들의 사적을 모 아 기록한 책이다. 『大東野乘』에 편입되지 않고 단독으로 엮어진 『己卯錄補遺』는 국사편찬위원회와 국립중앙도서관, 단 두 곳에만 소장되어 있으므로 이 자료는 또 하나의 異本으로서 그 서지적 가치가 인정된다. 『國朝征討錄』은 희귀본으로 2007년에 보물 제1511호로 지정된 장서각 소장 『國朝征討錄』의 異本이다. 국립대학 소장본은 장서각 소 장본을 국내에서 轉寫한 자료로서 그 서지적 가치가 인정된다.『耳溪遺集鈔』는 희귀본으로 耳溪 洪良浩의 문집을 초록하여 엮은 책 이다. 『耳溪集』을 초록하여 엮은 책은 『耳溪集鈔』와 『耳溪集鈔略』이 국내에 현전하고 있는데, 이 자료는 抄集 형태로는 분량이 대폭 증가한 5권 4책으로 이루 어져 있고, 淨書 상태도 매우 양호하다.
This paper introduces and explains the koreanology data(including books, documents, old maps) in St. Petersburg State University and St. Petersburg Branch of the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that was underplayed in existing research result. Except for korean old novels, official documents, investigation reports, the most of koreanology data are the same domestic equivalent koreanology data. However, an invaluable koreanology data is confirmed by on-site inspections. The cases are as follows, there are juchwal(籌撮) and Gimyorokboyu(己卯錄補遺) in St. Petersburg State University, Kukjojeongtorok(國朝征討錄) and Ligyeyujipcho(耳 溪遺集鈔) in St. Petersburg Branch of the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The juchwal(籌撮) manifestly shows the economic and social institutions during the era of King Jeongjo(正祖) in the Chosun Dynasty. In terms of character, the juchwal(籌撮) is similar to the jumorok(籌謨錄) in Gyujanggak(奎章閣). By the way, the juchwal(籌撮) is better than the jumorok(籌謨錄) in terms of amount and concept classification system. The Gimyorokboyu(己卯錄補遺) is a collection of historical figures related to the gimyosahwa(己卯士禍), its bibliographical value is recognized as domestic different version. The Kukjojeongtorok(國朝征討錄) is also domestic different version, its bibliographical-content value is recognized as a national treasure's different version. The Ligyeyujipcho(耳溪遺集鈔) is an anthology of Hongyangho(洪良浩)'s whole poetry and prose. There are the Ligyejipcho(耳溪集鈔) and the Ligyejipcholyak(耳溪 集鈔略) as anthology of Hongyangho(洪良浩)'s whole poetry and prose. By the way, the Ligyeyujipcho(耳溪遺集鈔) is a lot of content, it consists of 4 volume. Besides, its handwriting level is very superior.

5,400원

일반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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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三唐”詩人的宗唐詩風與元明詩學

張景昆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6집 2015.06 pp.133-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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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tics of Yuan and Ming Dynasty(元明詩學) in China had important influence on Samdaing(三唐) Poets admiring Tang Poetry and their poeticstyle. They accepted the poeticproposition of attaching importance to the sound(聲韻) from Yang Shi-hong(楊士弘)’s Poems(唐音)and Li Dong-yang(李東陽).The anthologies of Tang Poetry such as PopularTang Poems, and corpuses of poets in the Tang Dynasty also promoted the acceptance of the Tang Poetry’s style. Because poems of the Middle and Late Tang Dynasty accounted for the majority in the anthologies of Tang Poetry, the style of Samdaing Poets’ works were close to them. Compared with, nearly contemporary, the Former and LatterSeven Masters(前後七子) of Ming Dynasty, they learned and imitated Tang Poetry in a convenient and effective way, so represented distinguishing poetic style.
中國元明兩朝詩學對“三唐”詩人宗唐詩風及其創作風貌的形成有重要影 響,“三唐”詩人接受楊士弘《唐音》、李東陽等重視聲韻的詩學主張。《唐 音》等唐詩選本和唐代詩人別集的刊印也促進了學唐風氣的接受,而且當時 的唐詩選本多選中晚唐詩,也直接影響了三人詩風的中晚唐傾向。與時代相 距不遠的中國明代前後七子相比,“三唐”詩人採取便捷有效的學唐方式,呈 現出不同的創作風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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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시가 양식과 한국의 주체적 변용

구사회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6집 2015.06 pp.155-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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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중국에서 시작된 한문시가가 한국에 들어와서 양식적 변모 과정을 거치 면서 어떻게 주체화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중국과 한국의 한문 시가 양식을 비교해보고, 한국에서의 주체적 변용 사례를 중심으로 탐색하였다. 중국에서의 문예 양식은 문체론이라는 이름으로 논의되었고, 시가 양식도 문체 의 분류 체계에서 통합적으로 이뤄졌다. 중국에서의 문체 분류에 대한 논의는 수 천 년에 걸쳐서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후대로 내려올수록 새로운 양식이 더해지면서 문체 분류의 체계화 과정이 이뤄지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대표적인 문체 분류 저작물은 조선전기에 간행된 東文選를 꼽았 는데, 대체적으로 중국 체재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그것에 대한 한국에서의 독자 적 입론은 근대 한문학자 이가원의 문체 분류를 꼽았다. 그는 한문 문체를 모두 14류로 구분하고, 그 중 시가류를 39子目으로 세분화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기 존의 분류 체계에서 볼 수 없었던 ‘東詩’ 양식의 편입이었다. 한국 한문시가의 주체적 변용과 관련하여 한국한문학은 한문에 의지하여 중국 의 문예 양식에 의지하고 있었지만 내용적으로 우리 민족의 삶을 주체적으로 담으 려고 노력해온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것은 문학 세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측면으로 중국의 시가 양식에서 벗어나 한국 한문시가의 새로운 문예 양식을 창출하면서 주체화하고 있는 사례를 찾을 수 있었다. 본고에서는 한국 한문시가의 주체적 변용 사례로 ‘한국의 과체시’, ‘<飜辭>나 <小樂府>와 같은 한국형 한문시 가의 양식’, 그리고 ‘金笠(김삿갓)의 한시 해체와 破格詩’를 꼽았다. 첫째, 고려조와 조선조에 관리를 뽑기 위해 만들어진 과체시를 독자적인 한국 한문시가의 하나로 보았다. 科體詩는 중국에 없는 한국에만 있는 시가 양식이었 다. 게다가 한국의 과체시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공령의 성격을 벗어나 그것의 제 한된 형식 범위 안에서 내용을 더욱 창의적으로 창작하여 상당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국문시가를 한역하는 과정에 중국에 없는 한국형 한문시가의 양식을 창출 해냈다. 그것은 조선후기에 시조나 가사의 한역 양식인 ‘飜辭’가 그렇고, 俗謠나 時調처럼 당대의 노래를 7언절구의 한시로 漢譯한 ‘소악부’를 그런 사례로 꼽았 다. 그리고 이들 번사와 소악부는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한역자의 관점과 문예 의식에 따라 하나의 새로운 양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셋째, 조선후기 김삿갓의 한시 해체와 그가 創出한 파격시도 한국 한문시가의 주체적 변용의 한 사례로 꼽았다. 그는 한시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무시하거나 언 문이나 파자를 사용하여 한시를 실험하였다. 게다가 한자와 우리말을 교묘히 활용 한 同音異義語나 二重字義의 手法은 기존의 한시가 지녔던 미적 典型性을 무너 뜨리며 시적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었다. 이것은 그동안 朝鮮 詩壇을 지배해온 한시문학의 보편적 흐름을 벗어나서 金笠만의 독창적인 창작 수법으로 새로운 한 국적 한시문학을 추구한 것으로 여겨진다.
The study aimed to examine the transformation process of the Chinese poetry style and its subjectivation while it was entered in Korea. For this purpose, the study compared the Chinese poetry styles between China and Korea and examined the subjective transformation examples in Korea. The literary style in China was discussed in the title of stylistics and poetry style was integrated in the classification system. The representative style classification work in Korea was Dongmunseon published in the early period of Joseon, which was generally connected to the style of China. The independent theorization in Korea was the classification of literary style by Yi Gawon, a modern Chinese literature scholar. Even though the Chinese poetry in Korea depended on the literary style of China, it was figured out that it made effort to contain the life of our nationals in a subjective manner. That is also demonstrated in the cases that go beyond the Chinese style and create a new literary style of Chinese poetry of Korea. This study found the subjective transformation cases of Chinese style in Korea including ‘Gwache style poem of Korea’, Korean style Chinese poetry such as ‘<Beonsa> and <Soakbu>, the decomposition of Chinese poetry of Kim Lip (Kim Satgat), and Pagyeok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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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본 『초사』의 문헌학적 연구 - 密陽府간본, 楊上林간본, 병술본을 중심으로 -

가첩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6집 2015.06 pp.185-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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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조선시기에 간행된 많은 초사판본 중에서 문헌적 가치가 높은 세 가지 조선간본을 선택하여 연구한 것이다. 필자의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결론 을 도출하였다. 첫째, 단종 2년(1454)에 密陽府 간본인『楚辭後語』 6권과 『楚 辭辯證』 2권은 조선에서 庚子字로 복각한 판본이고 현 국립중앙도서관과 장서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은 조선에서 간행된 초사 간본들 중에서 간행시기를 확인 할 수 있는 매우 드문 간본에 해당한다. 또한 발문과 刊記 내용이 완전하게 보존되 어 있어 지금까지 필자가 찾아낸 초사의 조선판본 중에서 가장 높은 문헌적 가치를 지닌 중요한 판본이다. 밀양부 간본은 중국의 원나라 至治 元年(1321) 建安 虞信 亨宅 간본을 저본으로 간행한 책이다. 이를 통해 元刊本인 우신형댁본은 1453년 이전에 이미 조선에 유입되고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중국 楊上林 간본인 『楚辭集注』 8권은 조선시기에 重刊되고 戊申字로 간행되었으며 현 국립중앙도 서관과 장서각, 미국 버클리대학교 등에 소장되어 있다. 양상림본이 조선에 전래된 이후로 새롭게 간각한 판본들은 원래 내용의 일부가 삭감되었다. 예컨대, 唐樞의 서문, 顧應祥의 서문, 各家楚詞書目, 「屈原傳」, 양상림의 「題識」는 삭제되었다. 또한 국립중앙도서관, 장서각과 미국 버클리대학교에 소장된 이 판본에 대해 필자 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조선시기에 양상림본인『楚辭集注』 8권만 간각한 것이 아 니라, 『楚辭後語』 6권과 『楚辭辯證』2권도 함께 간각하였는데 그것은 모두 4책 으로 나뉜다. 이렇게『楚辭集注』,『楚辭後語』, 『楚辭辯證』 세 책을 합각하여 편찬한 것은 그 당시 조선 사람들이 朱熹가 초사를 고증한 것에 대한 인식으로 보아낼 수 있다. 셋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인『楚辭』 庚申本의 간행시기는 1860년이고 장서각 소장본인 文成堂 『賦家正宗』 丙戌本의 간행시기는 1886년 이다. 병술본은 경신본의 보각본이고 두 판본은 모두 방각본이다. 두 판본의 한문 주석과 한글 주음을 근거로 보면 편찬 방식이 매우 자유롭다. 그것은 당시의 상업출 판자들이 경신본과 병술본을 출판한 목적이 돈을 벌기 위한 상업적 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두 판본을 통하여 조선후기에 초사에 대한 독자들의 수요를 적극 반영하였다. 또한 『楚辭』경신본은 지금까지 필자가 찾아낸 초사의 조선판본 중에서 유일하게 조선에서 독립적으로 편찬하고 주해한 판본이고 『楚辭』문헌이 한국에 널리 전파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작용과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Among all the versions printed and published during the Joseon Kingdom period, the three Joseon editions of Chuci of documentary value, I think, are worth my study. Through special study, I think: 1) The Miyang Prefecture edition(密陽府刊本) in 1454 (the second year of Danjong period) of six volumes of Chuci Houyu(楚辭後 語) and two volumes of Chuci Bianzheng(楚辭辯證) is a reprint of Gengzi font cover edition(庚子字覆刻本) and is stored in National Library of Korea and other libraries. It is the official edition among a few versions that can determine the publication time. Because of its postscripts and complete contents, it is an important edition of documentary value that I have ever read among all the versions during the Joseon Kingdom period. The Miyang Prefecture edition is the reprint of block-printed edition in Yu Xinheng House in Jian’an Province in 1321 (the first year of Zhizhi in Yuan Dynasty) (元至治元年(1321)建安虞信亨宅刻本)which shows that the Jian’an edition had spread to Korean Peninsula before 1453. 2) The Yang Shanglin edition of eight volumes of Chuci Jizhu(『楚辭集注』八卷楊上林本) reprinted and published in the Joseon Kingdom period is a replica of Wu Shen font edition(戊申字刊本) and is stored in National Library of Korea, Jangseogak Archives, Berkeley College in America and so on. After spreading to Joseon Dynasty, the Yang Shanglin edition has been cut short. for example, Tang Su' preface(唐樞序), Gu Yingxiang' preface(顧 應祥序), each Chuci's list (各家楚詞書目), 「Qu Yuan' biography」 (「屈原傳」), Yang Shanglin' postscript(楊上林題識) have been deleted. In addition, the reserved books in National Library of Korea, Jangseogak Archives and Berkeley College in America are a combined issue of Chuci Jizhu(Yang Shanglin edition), Chuci Houyu and Chuci Bianzheng. They are divided into four sets. The compilation of Zhu Xi(朱熹)’s Chuci Jizhu, Chuci Houyu and Chuci Bianzheng reflects the recognition for the comments on Chuci by Zhuxi from indirect sources. 3) Gengshen Year edition of Chuci Quan(『楚辭』庚申本) reserved in National Library of Korea was printed in 1860 and Bingxu Year complement edition of Fujia Zhengzong(『賦家正宗』丙戌本) stored in Wencheng Hall in Jangseogak Archives was printed in 1886. The Bingxu Year complement edition is compilated based on the Gengshen Year edition and both them are Fang Ke edition(坊刻本). The compilation of the two books is very arbitrary in Chinese annotation and Hangeul phonetic notation. In this case, the commercial publishers at that time reprinted and published the two books in order to make a great profit. What is noteworhy is that the commercial publication of them is also a reflection of readers’ huge demand for Chuci literature from the side. At the same time, Gengshen Year edition of Chuci Quan, the only edition to be independently compilated and annotated edition among all collected Joseon Chuci reprints, is an important milestone in history of the widespread of Chuci literature to Korea.

6,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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楚辭朝鮮刊本的文献学研究 - 以密陽府刊本、楊上林刊本、丙戌本爲中心-

賈捷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6집 2015.06 pp.21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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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朝鮮時期刊行的眾多楚辭版本中,筆者選出三種具有文獻價值的朝鮮楚 辭刊本進行研究。通過專門研究,筆者認爲:第一,端宗二年(1454)『楚辭後 語』六卷『楚辭辯證』二卷之密陽府刊本,爲庚子字覆刻本,現藏於國立中央 圖書館、藏書閣等處,是少數可以確定刊行時間的朝鮮官版本。又因其保存 有跋文及完整的刊記內容,是目前筆者所見朝鮮楚辭刊本中具有文獻價值的 重要版本。密陽府本是元至治元年(1321)建安虞信亨宅刻本的重刻本,由此 說明元至治元年建安虞信亨宅刻本在1453年之前已傳至韓半島。第二,朝鮮 時期重刊楚辭集注八卷楊上林本,爲戊申字刊本,現藏於國立中央圖書 館、藏書閣、美國伯克利大學等處。『楚辭集註八卷楊上林本在傳入朝鮮朝 之後,不僅在韓半島重新刊刻時內容有所刪減,如,將唐樞序,顧應祥序, 各家楚詞書目,「屈原傳」,以及楊上林「題識」刪去。而且,在以上三處所見 朝鮮刊本都將楚辭集註『山陽楊上林本與』『楚辭後語』、『楚辭辯證』三書合刻 刊行,分爲四冊。此將朱熹『楚辭集註』『楚辭後語』『楚辭辯證』進行合刊的方 式,從側面體現出朝鮮時期對朱熹註楚辭的認知。第三,國立中央圖書館藏楚辭』庚申本的刊印時間在 1860年,藏書閣藏文成堂刊賦家正宗丙戌本的刊 刻時間在1886年。丙戌本是在庚申本的基礎上重新補刻的版本,皆爲坊刻 本。從兩個版本漢文注釋语句、韓文注音來看,其編纂方式具有很大的隨意 性。由此可知,當時的商業出版者刊印庚申本、丙戌本的主要目的是爲了賺 錢牟利。值得關注的是,庚申本、丙戌本的刊印在給商業出版者帶來經濟效 益的同時,也從側面反映出朝鮮後期的讀者對『楚辭』文獻大量閱讀的需求。 同時,『楚辭』庚申本是目前筆者所收集到的朝鮮楚辭刊本中唯一一本在韓半 島獨立編選、註疏的『楚辭』版本,是『楚辭』文獻在韓國傳入過程中一座重要 的里程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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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연재 李輔相 한문소설 <五山紅燈>의 특징과 의의 - 홍경래난 서사 상업출판물계보 안에서 -

성아사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6집 2015.06 pp.233-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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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홍등>은 이보상이 1941년 6월 20일부터 1942년 1월 14일까지 약 170화 에 걸쳐 매일신보에 연재한 한문현토소설로 그의 연재물 중 마지막 작품이다. 소설을 통해 전통적 가치의 구현이라는 가치관을 반영함과 동시에 한문 식자층이라 는 독자를 노린 전략적 측면도 고려했음을 일련의 연재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근대지식인들이 역사적 인물의 가치를 재평가해 소설로 바꾸는 작업이 이루어 진 것은 일제 강점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맞물려 역사 속에서 앞길을 모색하려하는 시대적 요구도 한몫했다. 이 과정에서 서적(西賊)이자 흉적(凶賊)이었던 홍경래 는 민중의 혁명가로서 대중들의 인식 속에 자리 잡게 된다. 이보상은 홍경래난을 다룬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제목부터 홍경래를 토벌한 일곱 의사들을 기리는 의미를 담은 소설을 내놓았다. 당대 널리 퍼져있던 홍경래 에 대한 인식과 정반대로 배치된다. 오히려 주어진 시대의 논리를 무조건 따르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 독특성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당대 지식인 작가들이 역 사와 문학에 접근하는 시도가 다양한 관점에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예시로서 도 의의를 가진다 하겠다.
Osanhongdeung is a newspaper serialization story written in Chinese by Lee Bo-sang and was published in Maeil-shinbo over 170 episodes from June 20, 1941 to January 14, 1942. It is the last of the serial novel written by Lee Bo-sang. The story tried to recreate traditional values and system and appeared to have strategically targeted intellectuals familiar with Chinese literatures, which can be confirmed by a serial of novels he wrote. Korean intellectual in the modern period tried to reassess the value of historical people and wrote novels using their story. This was partly because of the demand of the age where Korea was under Japanese occupation. It is during this period and process Hong Kyongnae, a plunderer, established in the consciousness of people as a revolutionary for the mass. Lee Bo-sang, although he was writing a story about Hong Kyongnae’s rebellion, wrote a novel with a title that praised seven martyr people who suppressed the rebellion. It is diametrically opposed to the prevalent perception of Hong Kyongnae at the time. On the other hand, in that it did not follow the prevalent reasoning of the period, the novel acquires its uniqueness. It shows that there were diverse perspectives and approaches to history and literature among the intellectuals and the writers of th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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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斷公案』의 문체 연구 - 평어와 협비를 중심으로-

반재유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6집 2015.06 pp.27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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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皇城新聞』의 연재소설인 『神斷公案』은 그동안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었지만, 유독 문체 부분에서 논의의 진척을 이루지 못했다. 이는 백화체의 난무(亂舞)로 인한 작품해독의 난해함과 각 회마다 심한 변이가 보이는 변칙적 문체들로 인해 작품의 일관된 특징을 찾기가 어려워서일 것이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神斷 公案』에서 찾을 수 있는 문체적 특징이 그만큼 다양하다는 말이 된다. 본고에서 그 대표적 특징으로 꼽은 것은 ‘평어의 활용(내용․형식상의 변용)’이 다. 신문연재 소설의 특성상 해당매체의 특정의도에 따라 이 같은 평어의 형식을 차용한 것이므로, 이것이 과거 어떠한 문학형식의 영향이며 이를 통해 극대화하려 는 효과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려는 작업은 『神斷公案』이라는 작품을 온전히 이해 하기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과정이라 생각한다. 『神斷公案』평어의 변칙적 특징은 다양한 요인들이 있겠지만, 본 연구에서는 중국 평비본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는 과거 평비방식 가운데, 회중평(回中評)인 협비(夾批)가 『神斷公案』 곳곳에서 빈번히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는 문화적 소 양과는 상관없는 가급적 다양한 독자층을 포섭하기 위한 작자의 의도이며, 『皇城 新聞』이 줄곧 고민해온 독자층의 확대에 대한 방편으로 활용된 것이다.
Although many studies on 『Sindan gong'an(神斷公案)』, a serial novel in 『Hwangsong Sinmun(皇城新聞)』, have been conducted, the discussion especially about its writing style has not made enough progress. That may be because there is rampant use of colloquial Chinese which makes it hard to interpret the work and it is hard to find unifying characteristics since each series has its irregular style which varies greatly. However, the other side of it is that we can find such a variety of characteristics of writing style in Sindan gong'an(神斷公案)』. This article argues that one of the typical characteristics is the using of critical remarks. Due to the traits of serial novels, Sindan gong'an(神斷公案) employed the form of critical remarks from the intention of its relevant media, 『Hwangsong Sinmun(皇城新聞)』. Thus, in order to completely understand the work, we need to take the procedures for comprehending what literary forms had affected the work and what effects it intended to maximize. There are a variety of factors in the characteristics of critical remarks used in 『Sindan gong'an(神斷公案)』. But this study is focused on Chinese critical commentary versions, because among the forms of critical remarks frequently appears Hyeop-bi, a critical remark in parentheses. The writing style was the writer's intention of attracting as various readers as he could and it was also a measure for broadening the spectrum of readership which 『Hwangsong Sinmun(皇城 新聞)』 had always been concerned ab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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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 신위 「동인논시절구(東人論詩絶句)」의 문학사적 의의

구지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6집 2015.06 pp.30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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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논시절구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왕사정(王士禎)이다. 그 의 「방원유산논시절구(倣元遺山論詩絶句)」에 김상헌의 시가 등장하였기 때문 에, 조선 시인들의 주목을 끌었다. 이덕무의 논시절구는 왕사정의 양식을 도입한 초기 형태를 보여준다. 청의 시인과 조선의 시인을 연작 형태로 한 논시를 보여주 었고, 아울러 고려 이전의 시인을 논평하는 논시 양식을 선보였다. 신위의 논시절 구는 왕사정의 논시절구를 더욱 적극적으로 수용한 형태이다. 조선의 역대 시인을 차례로 논평하면서 조선 시의 발전 과정을 통시적으로 보여준다. 이전 시화에서 보이는 조선 시에 대한 논평의 파편들을 신위는 자신의 시관에 따라 정제하고 배 열하였던 것이다. 이 점이 개별적인 시인을 논시로 보여주는 다른 논시시와의 차 이라 할 수 있다. 통시적인 관점에서의 논평은 이후 김태준의 문학사 서술에도 영 향을 미쳤다. 김태준의『조선한문학사』의 세부적인 항목 가운데 “詩中四傑”, “海 東江西派”와 같은 항목은 신위의 논평을 도입한 것이다. 신위의 논시절구는 여타 논시시에 영향을 준 동시에 통시적으로 시를 논평했다는 점에서 근대에까지 영향 력을 미쳤던 것이다.
The greatest influence on the creation of Chosŏn’s poems on poetry was Wang Shizhen. His Thirty-two Quatrains Written in Playful Imitation of Yuan Haowen’s “Discussing Poetry” attracted the attention of Chosŏn poets as Kim Sang-hŏn’s poetry appeared in it. Yi Dŏk-mu’s poems on poetry were an early version of Wang’s form. It depicted poems on poetry by Qing and Chosŏn poets serially, and additionally pre-Koryŏ poets were historically evaluated in the form of poems on poetry. Sin Wi’s poems on poetry embraced Wang’s form even more so, and evaluated Chosŏn’s poets in historical sequence along with the development of Chosŏn poetry. Sin refined and arranged the previous fragmented “remarks on poetry” of Chosŏn poems according to his historical views. It was also different in that it showed individual poets through poems on poetry. His historical criticism also influenced the literary historical narrative of a later scholar, Kim T’ae-jun. In A History of Chosŏn Classical Chinese Literature, the headings under “Four Masters of Poetry” and “The Jiangxi School of Poetry in Chosŏn” contain Sin’s criticisms. The influence of Sin’s Quatrains on other poems on poetry and historical evaluation of poetry continued into the modern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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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科擧와 參考書, 그리고 韻書

심경호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6집 2015.06 pp.327-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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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고려시대부터 科擧를 실시하여, 과거 수험용 서적을 중국에서 수입 하거나 국내에서 편찬한 일이 많았다. 하지만 科目이나 製述文體의 변동이 여러 차례 있었음이 확인된다. 과목의 변동에 대해서는 경국대전과 대전회통 등의 법령집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나, 실제로 그 변동의 사실을 공시하는 해당 시기의 규정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특히 과거는 한문의 각종 문체를 賦課 했고, 그 문체 가운데는 有韻의 문체가 있기 때문에, 과거 응시생들은 기본적으로 韻目을 암기하여 부과된 문체의 작성에 적절히 활용해야 했다. 조선후기의 어느 시기에는 일반 작시와는 다른 형식인 공령시(행시)를 부과해 서 평측 안배와 압운 능력을 시험했는데, 이것은 한시문의 습득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평측 안배와 압운 능력을 최소한의 요건으로서 간주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운서의 경우, 조선 초에 홍무정운의 영향을 받아 중국의 현실음을 반영한 운목 체계의 변화를 시도하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 조선의 조정은 평수운 의 106운 체계를 그대로 채용하였다. 조선시대에 편집된 운서는 성모의 독음 표 기에서 정음과 속음의 구별이 있었고, 배열 순서에서도 조금씩 차이를 보였으나, 운목의 체계는 106운을 기본으로 삼았다. 이것은 과거의 제술에서 압운의 체계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조선후기에 이르러 입성을 권말에 따로 배열한 삼운통 고의 체제가 널리 유통되면서 과시에서 입성을 사용하지 않는 규칙이 차츰 널리 확산된 듯하다.
From Goryeo period, Korean government executed national examination system that was called Gwageo(科擧) until late 19th century, and many reference books were imported from China or edited domestically. There were some changes in the examination subjects and the styles of composition that we can confirm the fact with Gyeongguk-daejeon(經國大典) and Dajeon-hoetong(大典會通). And as the examination included various writing styles and some especially with rhyme, examinees had to memorize the whole Rhyme groups(韻目) so that they can utilize them properly in composition. In some period of late Joseon dynasty, examinees were asked to compose a poem with Gongryeong-shi(功令詩) style which was fairly different from ordinary verse making. It was because the ability of using rhyme and tone pattern of pingze(平仄) was regarded to be the minimum requirement for verse making. There also were some attempts, influenced by the rhyme system of Hongmu-jeongun(洪武正韻), to modify the system of rhyme group(韻目) in early Joseon period, but the rhyme system of 106 groups were adopted at last, that it stabilized the rhyme system of the examination. It is presumed that the rule of no using of rusheng(入聲) in verse making spreaded widely as the rhyme system of Samun-tonggo(三韻通考) prevailed in late Joseon which placed rusheng at the end of the dictionary separat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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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 漢詩文獻 編纂과 批評樣相에 대한 考察 - 19世紀 淸代文人을 中心으로 -

유정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6집 2015.06 pp.37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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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청대문인들이 개인적인 안목으로 편찬한 조선한시문헌 자료를 고찰 하여, 청대문인들의 조선한시에 대한 비평양상을 연구의 초점으로 다루었다. 청대 문인이 편찬한 총서 3종, 조선 문인과 청대 문인들의 직접 교유를 통해 편찬된 詩 文選集 3종, 청대문인이 편찬한 조선한시 관련 詩選集 10종, 청대문인이 편찬한 詩話 6종, 筆記類 문헌 3종을 포함하여 총 25종을 고찰하였다. 또한 청대문인이 편찬한 조선한시문헌의 간행 상황과 수록 작품의 특징도 살펴보았다. 19세기 청 대문인의 조선한시 문헌에 대한 비평양상을 序跋, 選集, 詩話, 論詩詩로 분류하 여 살펴보았다. 이와 같이 분류된 분야별의 비평양상을 통해 조선시인의 素養과 學識, 그리고 治學主張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편찬자 개인의 취향과 연결시켜 연구하였다. 청대 문인이 조선문인과 직접 교류하면서 창작한 시문에는 문인들 개 개인이 갖고 있었던 ‘詩史’의식이 드러난다. 이러한 시사의식은 역대 시선집을 근 거하여 보면 그 당시 집필된 조선한시에 대한 비평이 편찬자의 詩風 경향에 따라 달라지는 양상을 보인다. 예를 들면, 일부 편찬자는 傳統詩敎의 관념을 갖고 있 으며, 조선시인의 한시를 선별할 때도 敎化에 맞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 시기에 활동한 편찬자는 ‘당시를 추종함(宗唐)’과 ‘송시를 추종함(宗宋)’, 혹은 ‘당과 송을 동시에 추종함(唐宋兼宗)’의 입장에 따라 조선 한시를 이해하는 데에도 차이가 있었다. 또한 이 시기에 편찬된 論詩詩의 형식으로 집필된 조선 한시에 대한 평가도 잘 파악할 수 있다. 19세기 청대문인이 편찬한 조선한시문헌은 학술적으로 역 사적 가치, 시학이론의 가치, 輯佚과 校勘 등의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러한 문 헌자료는 한․중 문학 비교 연구와 한․중 문화 교류 연구에도 귀중한 토대로 활 용될 것이다.
This research focuses on critical reviews the field of Korean Chinese poetry literature during the Qing dynasty and research examines Chinese scholars' critics on Chosun's poetry related Chinese literature. We appreciate the total 22 volumes of Chosun's poetry related Chinese literature, such as Chosun selected poetry 3 volumes, which are complied by through the friendship between Chosun literary men and the Qing dynasty scholars, 10 selected poems and 6 exhibitions of illustrated poems compiled by the Qing dynasty scholars, and 3 written essays and notes. The research examines Chinese scholars' critics on Chosun Chinese poetry through forms of literature's preface, selected articles, exhibitions of illustrated poems, and the debated poetry compilation. Chinese scholars appreciated throughly on Chosun's literary men's poems through the form of literature's preface. Chinese scholars aimed to evaluate the accomplishments and knowledge of Chosun's literary men's poets in terms of corresponding with Chinese scholars' personal interests. The Qing dynasty scholars, through this evaluation, disclosed their intention of 'a history of poetry' of Chinese poetry literature, which collected through the visit to Korea. Criticisms on the Chosun's poetry are different depending upon the tendency of editors' poetic ethos. For instance, some editors have the conservative perception of poetry's theories and followed these poetry's theories when they selected Chinese poetry written by Chosun's poets. There is a difference when the editors selected Chosun's Chinese poetry according to the good appreciation of Tang's poetry, Song's poetry and togetherness of Tang's poetry and Dang's poetry. We apprehend well the evaluation of Chosun Chinese poetry in terms of the form of the debated poetry compilation during this period. Chosun's poetry related Chinese literature compiled by Chinese scholars in the 19th century, considered as the highly valued position by obtaining favourable criticism and comments, and returned to Chosun through the communication process. We understand the true nature of the possession of Chinese poetry and intercultural exchanges between Korea and China during this period. The Chosun's poetry related Chinese literature, which compiled by the Qing dynasty's scholars, will be used a valuable data for comparative study and cultural exchange between Korea and China. This kind of research will be very important to examine to understand a literary history and cultural exchange between Korea and China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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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부인 상언의 글쓰기 전략과 수사적(修辭的) 특징

황수연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6집 2015.06 pp.425-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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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김씨 부인 상언의 글쓰기 전략과 수사적 특징을 살피기 위해 작성되었 다. 상언은 설득의 글쓰기 전략과 수사적 특징을 잘 활용했을 때 성공적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1차 상언과 2차 상언의 작성 동기와 상황이 달랐던 만큼 김씨 부인은 상황과 목적에 맞는 글쓰기 전략을 세우고 적절한 언어 구사와 수사법을 활용하였다. 김씨 부인은 ‘감수성을 자극하거나 인정에 호소하는 방식보다는 ‘입증’과 ‘논리 적인 설득’을 선호하였다. 1차 상언에서는 혐의를 해소하고 신뢰감을 확보하며 설 득의 기반을 마련하였고 당대 사회의 가장 중요한 유교 가치와 여성으로서의 임무 등의 전제를 들거나 역사적 사건을 예증으로 삼아 논거를 제시하였다. 또한 사건 을 축소하여 진술함으로써 문책을 피하고자 하였다. 2차 상언에서는 과거의 환기 와 동일화의 기법을 통해 임금이 이전의 판단을 유지하고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도 록 유도했으며, 구체적인 날짜와 거리, 증인을 들어 사건을 증명하고 논박의 수사 적 방법을 활용하였다. 두 상언의 전체적인 구성은 ‘집중’과 ‘배제’의 원칙을 지켜 혐의와 문책을 줄이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김씨 부인은 여성, 노인, 적몰된 가문의 家母라는 소외되고 약자인 자신의 상황 에 대한 신세 한탄이나 약함을 드러내어 감정에 호소하기보다 입장을 해명하기 위 해 논거에 충실한 글쓰기 전략과 수사적 특징을 활용하여 설득의 글쓰기 목적을 완벽하게 수행하였다고 할 수 있다. 김씨 부인의 상언과 정치적 참여는 당대는 물 론 이후 노론계 여성을 비롯하여 조선 여성의 정체적 형성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This article was written for the writing strategies and rhetorical features of Mrs. Kim’s appeals. The appeal is writing of persuasion, so it can perform a successful mission when writing strategies and the features of rhetorical are conducted. Primary appeal and the second appeal were written under the different motivation and situation. And they were utilized the appropriate language context and performed and strategic writing. Mrs. Kim preferred the proven and logical persuasion rather than how to appeal to recognize the sensitivity or irritation. In the first appeal, she relieved the charges and secured the confidence and laid the foundation of persuasion. She cited as the most important Confucian values and assumptions of women in contemporary society, such as missions. Historical events were presented to illustrate the argument. In order to avoid the punishment, she reduced the statement about the incident. In the second appeal, she made the king maintains the previous judgments of the past through the techniques of ventilation and identification and derived to recognize as his own problem. She proved the case by mentioning the specific dates, distances and the witness. She disputed, too. The overall configuration of the two appeals. she has chosen the principle of concentration and exclusion. Mrs. Kim, who is a woman, the elderly, and the alienation of 家母 of destroyed family did not incite the king’s sensitivity and appeal to the emotions by stressing her cruel situation as a weak and beholden person. She had perfectly done the purpose of writing by using the writing strategies and the rhetorical features of the argument. The appeal and political participation of Mrs. Kim seems to have affected the identity of the Chosun woman as well as 老論 w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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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완 사행문학의 양상과 의미

조영심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6집 2015.06 pp.455-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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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아직 소개되지 않은 윤지완(尹趾完)의 사행록 「승사록(乘槎錄)」을 소 개하고 일본인과의 창수시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았다. 윤지완의 「승사록」은 본문ㆍ부록ㆍ별록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에는 총 62제 80수의 시가 실려 있는데, 그 중 31제 32수가 일본인과 관련된 시로 반 가까이가 일본인과의 창수시이며, 「유후상질(留侯像質)」ㆍ「답수호후원광국서 (答水戶侯源光國書)」ㆍ「서경윤송지구서잉제소서이증(西京尹送紙求書仍題少 序以贈)」라는 일본인에게 보내는 글도 수록되어 있다. 부록은 일본인이 윤지완에 게 보낸 시문을 엮은 것으로, 일본인 10인의 시문 32수와 문 3편이 실려 있다. 부록에는 윤지완이 사행 전 21명에게서 받았던 신장(贐章)이 수록되어 있다. 일 본인의 시문을 정리하고 있다는 점, 역관 2인의 사행록만이 남아있는 1682년 사 행에서 삼사신(三使臣)의 필담창화의 실재를 살펴볼 수 있는 텍스트라는 점, 서 얼 문사 중심의 사행 문학 연구에서 시문으로 구성된 정사의 사행록이 추가되어 새로운 연구 시각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에서 가치 있는 텍스트이다. 윤지완은 크게 승려․유자․고위 접대역 계층과 시문을 주고받았다. 승려들은 쓰시마에서 에도까지의 사행을 호행하며 조선인과 일본인의 중개자 역할을 했다. 통신사에게 이들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윤지완의 시에는 일본인 의 시문에 대해 칭찬하는 구절이 다수 드러나 있다. 그런데 유자들을 만났을 때에 는 내재되어 있던 불교에 대한 배척이 드러났다. 승려들과의 창화는 사행 여정 동 안의 안정과 편의를 위해 일본인의 시문 요구에 부응한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윤지완은 유자들에게도 시문의 역량을 높이며 칭송하곤 했는데, 윤지완은 일본인과 의 시문 교류를 시문을 다투는 장으로써 받아들이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마지 막으로 관반들에게는 공적인 행위로서 시문의 창화가 이뤄지기도 했다. 정사(正 使), 즉 ‘실무형 외교전문가’로서 통신사를 대표해 접대에 대한 감사를 시라는 수 단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윤지완은 외교의 장에서 시문의 역량과 가치를 중시했다. 일본인들이 이러한 인식 에 어느 정도 동조하고 있었을지 단언하기는 어렵다. 결국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양국 인의 시문 교류는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가치관에 알맞은 행위를 좇는 행위였고, 윤지완도 문치주의 조선의 사대부로서, 사행의 정사로서 시문창화를 이어나갔다.
This paper introduced Youn Ji-Wan’s Sahaengnok, 『Seungsarok(乘槎錄)』 which was not introduced yet and identified the meaning in the advocated poems with Japanese people. Youn Ji-Wan’s『乘槎錄』 is composed of three parts of main body․ appendix․separate record. There are total 80 poems with 62 titles and 32 poems with 31 titles are related with Japanese people and almost half of the poems are advocated poems with Japanese people and there are also the writings sent to Japanese people like 「留侯像質」ㆍ「答水戶侯源光國書」ㆍ「西京尹送紙求書仍題少序以贈」. Appendix was complied with poems and prose which were sent to Youn Ji-Wan by Japanese people and there are 32 poems and prose and 3 writings of 10 Japanese people. In the appendix, Youn Ji-Wan’s 贐章 are included which was received from 21 people before diplomatic trip. This texts are meaningful in the aspects that Japanese people arranged the poems and prose, the existence of 三使臣’s Pildamchanghwa could be identified in 1682 diplomatic trips where just the Sahaengnoks of two were left, JeongSa’s Sahaengnok were added which are composed of poems and prose in envoy travel literature researches mainly by Seol writer and new research perspective could be suggested. Youn Ji-Wan exchanged the poems and prose mostly with Buddhist monk․ Confucian scholar․Gwanban(館伴) class. Buddhist monks accompanied diplomatic trips from Tsushima to Edo and played an intermediary role between Joseon people and Japanese people. Buddhist monks accompanied diplomatic trips from Tsushima to Edo and played an intermediary role between Joseon people and Japanese people. They were positioned not to be ignored by Tongsinsa at all. In Youn Ji-Wan’s poems, there are many paragraphs to compliment about the poem and prose of Japanese people. But when he met Confucian scholars, inherent exclusion against Buddhism emerged. Changhwa with Buddhist monks had the aspect to satisfy the poem and prose demands of Japanese people for the safety and convenience during diplomatic trip. Youn Ji-Wan also used to praise the poem and prose의 capability to Confucian scholars, and he showed that he accepted poem and prose exchange with Japanese people as the place to compete the poem and prose. Finally, it was an official behavior to Gwanban and Cha`ng-he was conducted for poem and prose. He expressed the gratitude for the reception with the way of poem by representing the Tongsinsa as the JeongSa who was the highest diplomat. Youn Ji-Wan highly regarded the capability and value of poem and prose at the place of diplomacy. It is difficult to assure how much Japanese people agreed to this perception. Eventually, poem and prose exchange at pre-modern times in East Asia was the behavior to follow the behaviors which matched with their values in their individual stance and Youn Ji-Wan also maintained the exchange of Poem․Prose as the nobility at Joseon with civil administration principle and JeongSa in diplomatic trip.

7,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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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훈태평가』 소재 시조의 唐詩 수용 양상과 의미

이고은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6집 2015.06 pp.487-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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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에 간행되기 시작한 방각본은 상업 출판을 목적으로 하는 출판자 혹은 인쇄소에서 제작했으므로 독자의 구매 욕구를 증진시킬만한 내용을 구비해야할 필 요가 있었다. 이러한 목적에서『남훈태평가』는 1863년에 방각본으로 간행되었다. 본고는 남훈태평가에서 나타난 唐詩 수용 시조의 양상과 의미를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남훈태평가』가 대중을 겨냥하여 간행된 가집이라는 점에서 이 가 집에 실린 시조에 수용된 漢詩의 일면을 확인해보는 작업은 당시 대중 취향을 도 출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유효하다. 여기에서는 唐詩 수용 시조의 문학적 특성을 검토하기보다는 텍스트 연구의 차원에서 唐詩의 수용양상을 살펴보았다. 『남훈태평가』에 수록된 시조는 총 224수이며, 漢詩 수용 작품은 39수이다. 이 중 唐詩가 수용된 작품은 29수로 전체 漢詩 수용 작품의 약 75%를 차지한다. 이것은 『남훈태평가』를 둘러싼 출판자와 구매자, 당대 시조 향유층들이 유독 唐 詩를 선호했음을 의미한다. 『남훈태평가』 소재 唐詩 수용 시조 29수 중 11수는 18세기의 산물이고 5수는 19세기에 가창되었으나 『남훈태평가』간행 이전에 만들어진 작품이며, 나머지 11수는 『남훈태평가』에서 처음 확인되는 작품이다. 이를 시기적으로 구분하면 18세기에 11수, 19세기에 16수로 19세기에 보다 많은 작품이 창작되고 불렸음 을 알 수 있다. 이로써 시조의 唐詩 수용은 이전부터 있었으나 18세기 중․후반 에 활성화되었고 19세기에 들어와서 더 왕성해졌음을 알 수 있다. 『남훈태평가』소재 唐詩 수용 시조는 당시 시조와 한시 향유층이 확대되고 唐詩가 대중화되었음을 보여준다. 18세기 필사본 가곡창 가집에 수록되었던 唐詩 수용 시조는 대중화를 거쳐 시조창 사설로 향유되면서 『남훈태평가』에도 실릴 수 있었다. 한시의 향유층 또한 양반뿐만 아니라 중인, 여성, 심지어 하층민까지 확 대되어 대중화되면서 시조에 적절히 수용될 수 있었다. 이것은 19세기에 唐詩를 수용한 시조가 보다 활발히 창작되고, 시조창의 사설에 唐詩가 활발히 포섭되는 양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작품의 주제적인 측면에서 唐詩는 19세기 조선의 주정주의적 풍토의 미감 과 어울렸다. 19세기 시조에서는 ‘남녀애정’으로 대표되는 애상적 분위기의 주제 가 증가했다. 이와 더불어 한시에서는 정감을 극대화하는 낭만적 경향의 唐詩가 선호되었다. 더불어 시조의 唐詩 수용은 방각본으로 간행된 당시선집과 일정부분 관련이 있 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에는 활발히 간행되었던 唐詩에 관한 출판물, 특히 『오언당음』, 『칠언당음』, 『당시장편』, 『당음정선』등의 방각본 당시선집과 필사본 의 존재는 唐詩의 인기를 보여준다. 『남훈태평가』는 당시선집과 마찬가지로 ‘방각본’으로 출판되었다는 점에서 두 출판물 간의 영향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唐詩의 시조화가 19세기에 증가하 게 되면서 唐詩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남훈태평가』소재 노래들을 통해 唐詩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한시를 접하게 되는 이들이 늘어나게 됨에 따라 唐詩에 대한 관심도 자연히 증가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들의 영향관계 를 추적할 수 있다면 방각본 간의 영향관계를 도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요한 연 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19세기에 시조를 비롯한 통속물에 수용된 唐詩의 의미 또한 밝혀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추후 논의를 기약 한다.
The “Banggakbon(坊刻本)” began to be published in the 18th century, because the purpose of making commercial publishing has been published aimed at the public. "『Namhuntaepyeongga(南薰太平歌)』" for this purpose was published in 1863 by banggakbon. This book appears much as Sijo accepts the Chinese poetry. This paper looked at Sijo of accommodating the Tang poetry(唐詩) Sijo contained in Banggakbon 『Namhuntaepyeongga』. Tang poetry can accommodate 11 founders of the number 29 is the product of the 18th century and the 19th century, five numbers, but singing is a work created prior to publishing Namhuntaepyeongga. When seasonally separated them on 11 the 18th century, the number 16 in the 19th century. So a lot of work was created in the 19th century. But from the eponymous Tang poetry acceptance of previous been activated in the second half of the 18th century, came to the 19th century, it became more vigorous. Sijo accommodating the Tang poetry the previous time was in the 18th century, mainly Gagokchang(歌曲唱). Gagokchang is a song that can not be easily enjoyment of the general populace. However, those who enjoy the Gagokchang while negotiations with the increasing Sijochang(時調唱), Gagokchang also became known this Sijochang. Thus many people have been able to easily access the Gagok lyrics. Tang poetry inserted in Sijo are some verses that were mainly in the form used. This aspect can be enjoyed even when Tang poetry among those who enjoyed Sijo. Sijo people enjoyed increased while the buyers know the novelties Tang poetry inserted in 時 調 would have increased the interest in Tang poetry. There is a possibility that "Tang poetry of anthology(唐詩選集)" actively publishing in this banggakbon interest in this ge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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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춘향전>(1923년 작)의 지향 - 원작 고소설과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

허찬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6집 2015.06 pp.525-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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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23년에 만들어진 조선 최초의 상업영화 <춘향전>의 양상을 논의 한 것이다. 지금까지 이 작품은 일본인을 위해 만들어지고 기생으로서의 춘향의 면모가 강조된 작품으로 논의되어 왔는데, 본고에서는 선행연구에서 다루지 않았 던 원작 소설과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무성영화 초창기 에 만들어진 작품들은 현재 원본 필름이나 시나리오가 남아 있지 않아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데, 영화의 원천이 되었던 활판본 고소설에 주목하는 것은 텍스트가 없는 작품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한 방법론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먼저 당시의 신문기사와 증언 등을 중심으로 영화의 기획과정부터 개봉 후 흥행 영화평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이어 영화의 제작자이자 감독을 맡았던 하야카 와가 접했을 가능성이 높은 일역본 <춘향전> 이본을 찾아보고 내용을 비교하여 공 통점을 찾아보았다. 4종의 이본은 공통적으로 춘향과 몽룡의 첫날밤에 관한 대목 이 삭제되어 있다. 이렇게 선정적인 대목이 집중적으로 생략됨으로써, 상대적으로 기생으로서의 춘향의 면모가 약화되고 보다 기품 있고 이상화된 열녀로서의 모습 이 부각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옥중화를 포함하여 20세기에 출현한 모든 <춘향 전> 이본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인데, 일역본에서는 이 특징이 더욱 강화되 었음을 확인하였다. 이본비교와 더불어 신문광고를 살펴보았는데, 일관되게 “만고 열녀 춘향전”이라는 문구가 사용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당시에는 활판본 고소설 시 장에서 “절대가인”, “옥중가인” 등 <춘향전> 이야기를 수식하는 다양한 형태의 제 목이 존재했는데, 이 중 “만고열녀”가 선택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야캬와가 이해한 춘향 의 모습은 “열녀”이며, 영화 <춘향전>은 선행연구에서 논의 되었던 것처럼 “기생”의 표상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열녀로서의 면모를 부 각시키는 방향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기생을 춘향 역에 캐스팅하고 남 원에서 모든 촬영이 이루어지는 등 작품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한 일련의 노력 또 한 조선인 관객을 대상으로 이러한 열녀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전략이었던 것으 로 추정된다.
The objectiv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what variant was the source of <Chunhyangjeon> produced in 1923, the first silent movie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among a number of printed books of Korean old novels distributed back then. Since no original film or scenario of this work remains at present, the details are unknown. There are secondary data available such as articles in newspapers and magazines, and some existing researches reflect the cultural historical situations during those times, but the relation between the original novel and the film has been out of the picture even though examining the relation specifically can be an alternative to approach the work's substance with no original text remaining. Accordingly, examined were newspaper articles and statements of movie figures who acted back then as clues about the variant that was the source of Hayakawa(早 川)'s work, on which existing researches did not pay attention. Additionally, achievements of Hayakawa are briefly considered, and examined were variants that were distributed in time of his film production among Japanese translations of <Chunhyangjeon> that he as a Japanese living in Joseon was most likely to obtain. Based on the result, the contents of four variants in Japanese which were highly probable of becoming the source of the film were compared. In all of the four variants, the section of the bridal night of Chunhyang and Mongryong was deleted. Omitting this sensational scene weakened Chunhyang's image as a Korean geisha and highlighted her grace and idealized character as a virtuous woman. This trend was in common among all <Chunhyangjeon> variants released in the 20th century including <Okjunghwa(獄中花)>, and it was further strengthened in these four Japanese translations. In addition to comparing variants, examined were newspaper advertisements, most of which used the statement: "a story of Chunhyang, an unparalleled virtuous woman(萬古烈女)." In the market of printed books of Korean old novels, various types titles were used to decorate the story of <Chunhyangjeon> such as "an absolutely beautiful woman(絶大佳人)", "a beautiful woman in prison(獄中佳人)," etc., and it is noteworthy that the expression, "an unparalleled virtuous woman," was chosen, which indicates the image of Chunhyang that Hayakawa wanted to show cinema audiences. To Hayakawa, Chunhyang was a character of "a virtuous woman," and thus the film <Chunghyangjeon> did not focus on representing a Korean geisha, as discussed in existing researches but certainly intended to highlight her image as a virtuous woman.

7,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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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어의 재편과정과 번역 - 게일의 미간행 영역시조와 시조 담론의 계보학 -

이상현, 윤설희, 이진숙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6집 2015.06 pp.557-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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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첫째, 토마스피셔 희귀본장서실 소재 게일의 『일지』에 수록된 미간행 육필 영역시조 42수 재구작업의 결과물을 학계에 소개했다. 이를 통해 토마스피 셔 희귀본장서실 소장 『게일유고』(Gale, James Scarth Papers)를 포함한 게일 영 역시조 전반을 집성했다. 둘째, 이렇게 집성된 영역시조에 대한 계보학적 탐구를 수행했다. 게일의 한국시가를 포함한 한국문학관과 시가어 인식의 전환에 따라 1895~1922년 사이 영역시조가 (재)배치되는 문맥의 전환양상을 규명했다. 『朝 鮮筆景(Pen-picture of Old Korea)』(1912)에서 과거 한국인에게 복음전파를 위 하여 한국인이 애호하는 문학형식으로 인식되던 시조와는 다른 형상이 보인다. 게 일의 영역시조와『남훈태평가』소재 시조는 ‘옛 조선(Old Korea)’의 詩歌로 형 상화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역시조의 새로운 형상과 더불어 게일의 번역작품 선 정의 모습이 변모된다. 게일은 한국인의 구어에 근접한 작품을 위주로 번역하던 과거와 달리, 한문고전의 전고와 한문구를 담고 있는 작품을 번역대상으로 포괄했다. 또한 『일지』를 비롯한 1920년대 번역대상으로 소환된 시조작품은 단순히 시 어의 문장을 번역할 대상일 뿐만 아니라, 그 문학적이며 관용적인 의미를 해설해 야 할 주해의 대상으로 새롭게 소환된 것이다. 이에 맞춰 게일은 한국어 통사구조 속에 배치된 한문고전의 전고를 주석으로 풀이했다. 이러한 변모의 근간에는 『남훈태평가』소재 시조작 품이 1920년대 이후 사라지며 소멸되는 전통이자 고전으 로 변모되는 정황이 반영되어 있었다.
This paper's first aim is to introduce 42 pieces of unpublished handwritten English-translation Si-jo from Diary located in James Scarth Gale Papers, a collection of the Thomas Fischer Rare Book Library at the University of Toronto in Canada. Through this, we could collect all of Gale's So-jo translations which were scattered among his works. The second aim is to carry out the genealogical research based on this collection. Gale's views on the Korean literature including Korean verses and songs and its poetic words had changed. We investigated how Gale's changed view influenced on the reorganization of Si-jo pieces translated into English(1895-1928). At first Gale seemed to regard Si-jo which was one of Koreans' favorite literary forms just as an literary medium to deliver the gospel, but he had showed different views of Si-jo since Pen-picture of Old Korea(1912, 朝鮮筆景). Gale started to think that his translations of Si-jo and Si-jo pieces in The Collection of Si-jo by Nam Hoon(南薰太平歌) reflected the characteristics of the Old Korea. This new view had an effect on his selection of Si-jo pieces from The Collection of Si-jo by Nam Hoon in his translation. Formerly, he selected pieces including Korean colloquial expressions a lot, but now he also dealt with pieces including authentic precedents from Chinese classics and Chinese literary contexts. The Si-jo pieces dealt in Gale's Diary and The Korea Bookman in the 1920s were not just the object of translation, but also that of commentary which needed a note. Accordingly, Gale explained an idiomatic expression and an authentic precedent which were properly arranged in Korean syntactic structure by means notes. The ground for his change was that he thought the So-jo pieces in The Collection of Si-jo by Nam Hoon reflected the gradually disappearing Korean tradition and its transformation into the place of classic after the 1920s.

11,700원

시화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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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외시화(場外詩話) (7)

남상호, 詹杭倫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6집 2015.06 pp.619-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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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0원

자료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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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일 유고』 소재 한국고전 번역물(1) - 게일의 미간행 영역시조에 대하여-

이상현, 윤설희, 이진숙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6집 2015.06 pp.631-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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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토론토대학 토마스피셔 희귀본 장서실에 보관 중인 『게일 유고』(Gale, James Scarth Papers)에는 게일이 출판하지 못한 미간행 영역시조가 들어있 다. 『朝鮮筆景』(1912) Ⅰ장에는 과거 게일이 The Korean Repository에 연 재했던 영역시조 9수와 함께, 『게일 유고』에서만 볼 수 있는 6수의 영역시조가 수록되어 있다. 또한 시조작품의 이해를 도와주는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 3점이 들 어 있다. 『일지』(1921~1922)에는 『남훈태평가』소재 시조 1~42를 순서대로 번역한 게일의 영역시조가 수록되어 있다. 『게일 유고』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이 36수이다. 『게일 유고』소재 영역시조를 통해 게일의 역동적인 번역실천과 그의 한국문학관의 변모양상이 담겨져 있다. 게일의 작품선정의 모습이 한국어 통사구 조를 기반으로 한 시조작품에서 점차 한문통사구조를 지닌 시조작품, 중국고전의 전고를 간직한 작품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변모됨을 발견할 수 있다.
Gale's unpublished Si-jo translations are included in typed Pen-picture of Old Korea(1912, 『朝鮮筆景』) and handwritten Diary(1921-1922) both of which are located in James Scarth Gale Papers, a collection of the Thomas Fischer Rare Book Library at the University of Toronto in Canada. The first chapter of POK reintroduced Gale's 9 Si-jo translations which had been already published in The Korean Repository(1892, 1895-98); also included Gale's 6 Si-jo translations which would be reintroduced only in Diary; and remarkably included 3 illustrations by Ki San Kim Chun-gun to help English readers understand Korean Si-jo. Diary included 42 numbered Si-jo translations whose original were The Collection of Si-jo by Nam Hoon(『南薰太平歌』). 32 pieces of his Si-jo translations can be found only in Diary. Gale's Si-jo translations in Gale's Papers show his dynamic translation practices and his changing views on Korean literature. We can infer this through his selection of original Si-jo pieces. Gale at first selected Si-jo pieces based on Korean syntactic structure, but he gradually started to select those based on Chinese syntactic structure and those including authentic precedents from Chinese classics and Chinese literary contexts. It is supposed that he selected Si-jo pieces which can reflect the gradually disappearing Old Korea.

7,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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