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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상고전연구 [Yeol-sang Journal of Classical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열상고전연구회 [Society of Yol-Sang Academy]
  • ISSN
    1738-2734
  • 간기
    격월간
  • 수록기간
    1988~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한국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810 DDC 810
제61집 (15건)
No
1

[화보] 원효대사와 현대문화 학술발표회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61집 2018.02 p.6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에 따라 개인회원에게 무료로 제공됩니다.

기획논문 : 원효대사와 현대문화

2

[기획의도] 원효대사와 현대문화 기획의도

고운기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61집 2018.02 p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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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원

기획논문:원효대사와 현대문화

3

同伴者型 설화 속의 元曉 - 해골바가지 사건의 새로운 해석을 중심으로 -

고운기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61집 2018.02 pp.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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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의 생애에서 요석공주와의 만남은 파계였고, 도당행(渡唐行)의 중단은 포기였다. 파계와 포기가 실패로 연결되지 않고 그의 생애와 구도의 길을 한 차원 높이는 계기로 작용한다. 그는 ‘기뻐 날뛰면서(歡喜踊躍) 사방에 노닌다(遊於四方)’는 경전(經典)의 가르침을 ‘모든 마을 모든 부락을 돌며 노래하고 춤추면서 다녔는데, 노래로 불교에 귀의하게’ 하는 것으로 실천하였다. 『삼국유사』의 원효 관련 기사는 그런 삶을 구체적으로 그린 것이다. 핵심은 동반과 패배였다. 누군가와 늘 동반하는 사람으로 그려진 원효는 늘 지는 쪽이었다. 지는 자는 동행자와 대응한다. 원효는 지는 자의 위치에서 동행자의 역할을 완성한다. 그리고 끝내 함께 이기는 자가 된다. 일연(一然)이 『삼국유사』에 그린 원효이다. 문제는 해골바가지 사건이다. 일연은 이 이야기를 싣지 않았다. “마음 밖에 법이 없으니 어찌 따로 찾으리오.”라는 매력적인 선언 때문에 이 이야기의 전승력은 막강하다. 그러나 나는 경전의 변주된 원효의 이 선언이 전승의 과정에서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본다. 일연도 그렇게 보았던 것 같고, 무극(無極) 또한 원효가 두 차례 모두 의상과 동행했다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 다만 흔한 구절이라도, 깨달음의 정황이 실감나게 정합(整合)할 때, 전승은 강력한 배후의 힘을 얻는다. 원효가 등장하는 어떤 일화보다 해골바가지 사건은 그 같은 조건을 갖추었다. 이광수와 김선우는 각각 『원효대사』와 『발원』에서 해골바가지 사건을 포함하였다. 그러나 이광수는 이 일이 중국에서 일어난 것으로, 김선우는 꿈속에서 나타난 것으로 쓴다. 허구로 보았을 가능성의 암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유사』에 실린 이야기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 해골바가지 사건은 실제 같은 허구, 허구 같은 실제의 감동을 주고 있다. 원효가 만나는 다중의 동반자 구조가 화학적 반응을 만들어내는 자리에서 그는 새로운 동반자와 만난다. 그것은 바로 당대의 민중이다.
It means apostasy that Wonhyo(元曉) meets Yoseok(瑤石) princess, and give up that he stops going to China in Wonhyo’s life. But the apostasy and give up are not connected to failure, they work as occasions to raise his life and seek after truth. ‘Singing and dancing all around the village, he came to believe in Buddhism with songs’. That’s why he practiced the lesson ‘dancing about for joy and playing around’ in the Buddhist scriptures. The articles about Wonhyo in are what embodied his life. The keywords are accompany and loss. Wonhyo, who is described to accompany by someone, loses all the time. The loser corresponds to the partner. Wonhyo completes the partner’s role in the position of loser. And finally he becomes the winner together. That’s what Ilyeon(一然) describes in Samkukyusa. The skull affair is the key. Ilyeon didn’t include this story. “If with true mind, how can it be somewhere?” With this attractive saying the story is handed down powerfully. But I think Wonhyo’s varied saying in the Buddhist scriptures was possible to be made newly while being handed over. Even if it’s common phrase, when the condition of enlightenment makes sense with reality, it is handed down to others powerfully. The skull affair has better condition than any other anecdote. Lee Kwang-su(李光洙) and Kim Seon-woo(金宣佑) included the skull affair individually in , and . Lee Kwang-su wrote it as the affair happened in China, but Kim Seon-woo, in dream. It suggests the possibility of fiction. However in the other aspect of the story in the skull affair is impressive as the fiction like reality, and the reality like a fiction.

6,700원

기획논문 : 원효대사와 현대문화

4

분황 원효의 여래장 인식과 불성 이해 - 원효가 한국불교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

高榮燮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61집 2018.02 pp.3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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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분황 원효(芬皇 元曉, 617~686)의 주요 논지인 여래장 인식과 불성 이해가 한국불교에 미친 영향에 대해 논구한 글이다. 불교의 유식사상에서는 ‘본성은 청정하지만[本性淸淨] 객진에 오염되어 있다[客塵所染]’는 ‘청정’(淸淨)과 ‘염오’(染汚)의 이중구조를 아뢰야식(阿賴耶識)을 통해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유식사상은 부처의 마음 상태를 보여주는 ‘본성청정’보다는 범부의 의식 상태를 해명하는 ‘객진소염’에 더 치중하였다. 반면 여래장(如來藏)사상은 ‘본성청정’에 입각하여 ‘객진소염’과의 통합을 시도하였다. 이것은 『보성론』을 비롯한 유가행파의 경론에 ‘일체 중생은 여래의 태아를 가지고 있다’[一切衆生有如來藏]는 구절이 나타나 있는 것처럼 범부를 부처로 만드는 수증론(修證論)에 집중해 있기 때문이다. 분황 원효는 『대승기신론』의 일심 이문(一心二門) 구조를 유식사상의 아뢰야식과 여래장사상의 여래장(如來藏)의 관계를 해명하기 위한 탁월한 체계라고 파악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여래와 범부의 동일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이 둘 사이의 차이성을 강조하는 이론적 배경을 확보할 수 있었다. 즉 가능태로서 여래와 범부의 동일성을 드러내는 ‘본성청정’과 현실태로서 여래와 범부의 차이성을 나타내는 ‘객진소염’의 구도가 두 사상의 입각점과 강조점을 모두 보여준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통일신라시대까지는 원효의 여래장 인식과 불성 이해의 지형에 영향을 받은 저작들이 일부 간행되었다. 고려시대에 이르러서 원효는 의천의 주청에 의해 ‘화쟁국사’(和諍國師)로 추존되었고, 그의 교장목록(敎藏目錄)에 44부의 저작 이름이 입장(入藏)되어 주목을 받았다. 김부식과 이규보는 시를 통해 그를 기렸고, 체원(體元)은 원효의 저술을 두어군데 인용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서거정(徐居正)은 『동문선』에 그의 6종의 『종요』(宗要) 「대의문」(大意文)을 실어 유자(儒者)가 읽을 수 있게 하였다. 설잠(雪岑, 金時習) 등은 원효를 기리는 시를 썼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유일(有一)과 의첨(義添)의 공부노트인 『기신론』 사기(私記)의 간행과정에서 『원효소』를 참고했을 정도였다. 조선 후기에 교학(敎學)이 쇠락하고 선학(禪學)이 성한 조선후기의 이력과정(履歷科程)에 『대승기신론』이 잠시나마 등장해 그에 대한 관심이 일어났으나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그 결과 원효의 여래장 인식과 불성 이해도 이어질 수 없었다. 조선 이후의 불교 지식인들은 화엄과 선법에 몰입하면서 여래장과 불성 에 주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원효는 지식사회에서 존재감을 지니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는 왜란과 호란 등 국난의 위기 때마다 민중들 속에서 질긴 생명력을 지니면서 ‘민족의 상징’으로 되살아났다. 조선 후기와 대한시대(1897~남북한 통일)에는 원효를 기리는 영정과 벽화들이 그려졌고, 그에 대한 설화들도 산발적이지만 민중 속에서 끊임없이 되살아났다.
This paper examines the influence of Wonhyo (617 – 686) on Korean Buddhism through his core ideology, that is, his understanding of Tathagata-garbha and Buddha-nature. According to Yogâcãra Buddhism, our Buddha-nature is inherently pure but is defiled by adventitious afflictions(āgantuka-kleśa). The dual structure of these aspects, the purity and the defilement of the Buddha-nature, is explained by the concept of ãlaya consciousness in the Yogâcãra school. Yogâcãra Buddhism focuses more on defilement because it can account for an unenlightened person’s present state of mind rather than the purity that describes everyone’s inherently undefiled state of mind as a Buddha-to-be. Conversely, Tathagata-garbha thinkers focus on purity while attempting to integrate both concepts into the perspective of purity. This perspective is well represented in their sutras, such as Baoxing lun (Ratnagotravibhāga-mahāyānôttaratantra-śāstra (寶性論), where they said, “every sentient being has intrinsically pure Tathagata-garbha.” Wonhyo viewed the structure of one mind, two aspects in The Awakening of Mahayana Faith as an excellent way to achieve unity between the Yogâcãra school’s ãlaya consciousness and the Tathagata-garbha thinker’s Tathagata-garbha. Instead of focusing on the similarities between the awakened state of mind and the unawakened state of mind, he focused on their differences and was able to offer a new perspective in unifying Yogâcãra and Tathagatha-garbha. It is significant that Wonhyo’s understanding of one mind, two aspects includes the intrinsically pure state of mind as well as the defiled state of mind. Because of Wonhyo’s influence, several books were published during the Unified Silla era (668–935). During the Koryŏ period(935 – 1392), Wonhyo was honored by Seon Master Uichon, with the title of National Teacher of Reconciling Dispute. His 44 books were recognized by the public and by many scholars of the era, such as Booshik Kim and Gyubo Lee, who venerated him in their poems. Chewon borrowed lines from Wonhyo’s works in two places in his book. During the Chosŏn era, Gujong Seo introduced six kinds of Wonhyo’s “Great Doctrine” in Zongyoa in his own book, Donmoonsun, for Confucian scholars to study. Suljahm Sisub Kim honored him in his poem and during the mid-Chosŏn era, Yooil and Uichum referred to Wonhyo’s Commentary for The Awakening of Mahayana Faith when they wrote Private Notes on the Awakening of Mahayana Faith. During the late Chosŏn era, when the doctrinal approach waned and the Seon(zen) approach began to make its mark, The Awakening of Mahayana Faith began to lose popularity and Wonhyo’s concept of Tathagata-garbha and Buddha-nature did not flourish. After the Chosŏn era, the Buddhist intellectual class focused on Huayan and Seon, ignoring the concepts of Tathagata-garbha and Buddha-nature. Although Wonhyo was ignored by the intellectuals, he remained a symbol of nationalism for the public, especially during the difficult times of war with Japan and China. During the late Chosŏn era and the Korean Empire, he was remembered in Korean history and revered by the public in many portraits, paintings, and stories.

9,000원

일반논문

5

한국 영화 속에 나타난 원효 -『신라성사원효』와 『원효대사』를 중심으로-

서재길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61집 2018.02 pp.83-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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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삼국유사』의 문헌설화에서 비롯된 원효의 이야기가 1942년 이광수의 역사소설 『원효대사』와 1940년대 후반의 영화 시나리오 『신라성사원효』를 거쳐 1962년의 역사극 『원효대사』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나타난 원효에 대한 문화적 표상의 변화를 살핀 것이다. 이광수의 역사소설은『삼국유사』에서 비교적 가볍게 다루어진 ‘파계’라는 문제를 전면화함으로써 대일 협력 시기 작가 자신의 내면을 여성의 정조 상실 혹은 불승의 파계와 같은 것으로 동일시하고 있었다. 원효대사에 대한 최초의 영화화 시도인 『신라성사원효』의 경우 소설 『원효대사』에서 대부분의 이야기를 가져오면서도 이광수가 공을 들였던 ‘파계’라는 주제와 신라의 고신도에 대한 서술은 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흥행예술로서의 성격에 부합되게 원작을 각색한 것으로 파악된다. 원효라는 역사인물을 영화로 완성한 『원효대사』의 경우 ‘오도설화’ 부분을 삭제하는 대신 영화적 볼거리로서의 활극적 서스펜스와 인물들의 코스튬을 강조하였다. 이 영화는 원효를 일세의 풍류남으로 설정하고 주변의 여성들과의 러브라인을 스토리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흥행에 성공하면서 구도자로서의 원효의 삶과 내적 고뇌를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표현함으로써 사상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수작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This paper examines the changes in representations of monk Wonhyo in various cultural texts, including novels and films such as Yi Kwangsu’s novel Great Monk Wonhyo (1942), the film script Wonhyo, the Holy Monk of Shilla in the late 1940s, and the historical film Great Monk Wonhyo (1962). By highlighting the theme of the violation of the Buddhist commandments—which was neglected in Samguk- yusa, the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by Iryon—Yi Kwangsu’s historical novel Great Monk Wonhyo identifies the author’s mind with that of a spoiled monk or that of a woman who lost her virginity as Yi was collaborating with the Japanese colonial authority at that time. The film script Wonhyo, the Holy Monk of Shilla was the first attempt to depict the Wonhyo story in film, and the adaptation seemed to succeed as a popular culture text by excluding both the theme of a monk’s violation and a detailed description of Kosindo, a Korean traditional religion, although the adaptation drew from many episodes from Yi’s novel. Great Monk Wonhyo, the first completed film about the monk Wonhyo, emphasized suspense and splendid costumes as cinematic spectacles, whereas it removed the famous episode of Wonhyo’s spiritual enlightenment. This film gained box office success by characterizing Wonhyo as a playboy of the age and by putting the love stories about his relationships with many women at the center of narrative. This film could also be considered a great artistic and philosophical film that expressed the life of Wonhyo and his inner conflict as a truth-seeker through the performances of the film’s excellent stars.

6,400원

6

송강가사의 선본 재고

김진희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61집 2018.02 pp.109-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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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현전하는 송강가사의 세 판본을 비교하여 그 선본을 재고하였다. 송강가사의 판본에 대한 연구는 일찍부터 이루어졌지만, 판본 간의 관계 및 선본에 대한 의식은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이에 본고에서는 어학적 측면과 문학적 측면의 양 방면에서 세 판본의 차이점을 검토하고, 이를 통해 시대적 선후 관계 및 문학적 의미를 고찰하였다. 그리고 이에 앞서 판본들의 발문을 비교하여 선본에 대한 간행자들의 의식을 파악하고 그간 잘못 알려졌던 영인본의 오류도 교정하였다. 어학적 측면에서 볼 때 시기적으로 빠른 면모를 보이는 것은 ‘이선본’이다. 본고에서는 ‘이선본’을 성주본 및 관서본과 비교하여 실제로 ‘이선본’이 나머지 두 판본에 비해 어학적으로 더 고형을 지님을 밝혔다. 성주본과 관서본에서는 구개음화와 원순모음화 등의 음운 규칙, 그리고 분철과 혼철 등의 표기법을 더 자주 사용하여 후대적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문학적 측면에서 볼 때도 ‘이선본’은 성주본에 비해 더 의미가 있다. 구절이나 행뿐 아니라 단어나 형태소 등에서 차이를 보이는 부분에서도 ‘이선본’은 내용적․형식적으로 보다 자연스러운 면모를 지니고 있다. 본고에서 검증한 것처럼 어학적 측면에서 ‘이선본’이 고형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이선본’이 현전하는 세 판본 중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본이며, 관서본의 모본이 된 관북본 혹은 의성본으로 이것을 볼 가능성이 더욱 크다는 점을 말해준다. 또한 ‘이선본’은 문학적 측면에서도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성주본에 비해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이선본’이 지니고 있는 선본으로서의 가치는 보다 더 확고히 정립될 필요가 있다.
This paper investigates the best version of Songgang kasa. The existing three wood block-printed versions of Songgang kasa have been studied earlier on, but it is yet to be clear which version is the best and how the versions affected one another. In this paper, I examined the differences among the versions from the linguistic and literary points of view. I also compared the postscripts of the versions and the compilers' ideas and corrected mistakes in the most well-known facsimile edition of the original. The version of Yi Seon is the earliest one from the linguistic point of view. I compared this version with the version of Seongju as well as the version of Kwanseo, and I verified the version of Yi Seon contains older linguistic forms. Both the versions of Seongju and Kwanseo present later linguistic forms such as palatalization, vowel rounding, and syllabication. The version of Yi Seon also has some greater significance in the light of its literary characteristics. It contains more natural forms and contents in phrases, words, and even in morphemes. Considering the linguistic and literary features as presented in this paper, the version of Yi Seon is the earliest and best among the three existing versions. It also contains higher possibility to be the primary version of Kwanseo, that is the version of Kwanbuk or the version of Uiseong; none of them exists today. Thus, the authority of the version of Yi Seon should be more clearly established.

7,500원

7

완판방각본의 유통 연구

이태영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61집 2018.02 pp.143-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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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주로 20세기 초에 완판방각본이 서울, 대구를 비롯한 여러 지역으로 유통된 과정을 연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도서목록, 판권지, 도장, 광고, 필사 기록, 책판의 이동 등을 종합적으로 살핀다. 완판방각본은 호남 지역에 판매하기 위해 출판하였으나 인기가 높아지면서 서울과 대구 등의 서점과 일찍부터 협약을 맺은 것으로 추정된다. 전주의 西溪書舖, 多佳書舖, 七書房, 梁冊房 등은 전국의 여러 서점과 유통을 하고 있었다. 전주 서점들의 판권지에 ‘京鄕各書館’이 發賣所로 나오고, 고무 도장이 찍힌 책들이 서울과 대구 등에서 발견되고 있다. 다가서포의 도서목록에도 서울과 거래하여 중국 책과 신소설, 활자본 등을 판매한 내용이 나온다. 완영본이 방각본으로 다시 출판이 되어 전국에 판매되었고, 태인방각본이 다시 출판되어 전국에 판매되었다. 중국 책들이 전주로 유입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study the distribution of the Wanpanbanggagbon to various regions including Seoul and Daegu. in particular, I will comprehensively examine the list of books, copyright papers, stamps, advertisements, transcripts, and movement of wooden platters. Wanpanbanggagbon is published for sale in Honam area. however, the popularity of classic novels, saseosamkyeong, and practical books published by Jeonju increased. therefore, it is presumed that they made sales consultation with bookstores in Seoul and Daegu early on. Firstly, the Pangyakhappyeon issued by Seogyeseopo in Jeonju, was sold in Seoul and Daegu. in addition, the book with the rubber stamp of this bookstore is found in Seoul. Secondly, in the copyright papers of the Jeonju bookstore, several bookstores nationwide appear as sales offices. this is evidence of distribution dealings with bookstores nationwide. the book list of Dagaseopo also shows the sale of chinese books, new novels, and printed books already taken in Seoul. Thirdly, the books taken at Jeollagamyeong were reprinted in Jeonju and sold nationwide. in addition, the Taeinbanggagbon were republished in Jeonju and Daegu and sold nationwide. finally, the Hoedongseogwan in Seoul was exchanged with the Gyogeongsanbang in Shanghai, China, and imported the Chinese books. This books were distributed to Jeonju.

6,900원

8

통신사행로 표기 유형과 문제점 - 1763,4년 사행록을 중심으로 -

진영미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61집 2018.02 pp.17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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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12차례의 통신사행이 이루어졌고, 통신사 일행은 그때마다 정해진 사행로를 왕래하였다. 통신사 일행이 지나간 사행로 가운데 일본의 주요 지역만 보더라도 60여 곳이 넘고, 또한 사행로와 관련된 州가 20여 곳이나 된다. 그런데 사행록을 보면, 사행로 관련 주와 지명 가운데 동일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표기가 존재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명의 위치가 바뀌어 있는 경우도 있고, 지명과 그 지명이 속해 있는 주가 사행록마다 달리 기록되어 있는 경우도 있으며, 나아가 사행록에 나온 지명을 일본지도[고지도 포함]에서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1763,4년 통신사행과 관련된 사행록 곧 趙曮의 『海槎日記』와, 南玉의 『日觀記』, 成大中의 『日本錄』, 元重擧의 『乘槎錄』, 吳大齡의 『溟槎錄』, 閔惠洙의 『槎錄』, 卞琢의 『隨槎錄』등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사행로 관련 지명과 그 지명이 소속된 행정구역명을 알기 쉽게 표로 정리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먼저 일본지명의 표기 유형을 지명의 이칭 표기, 지명의 음차 표기, 행정구역명의 중국식 표기 등으로 세분하여 살펴보았다. 이어 일본지명에 대한 표기 방식의 문제점을 노정기 상의 위치 오류, 특정 지명에 대한 오기, 행정구역과 지명의 불일치 등으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그 결과, 지명의 이칭에는 약칭ㆍ병칭ㆍ별칭 등 다양한 표기가 존재하였고, 또한 표기에 유래가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州名이나 지명의 음차는 대부분 일본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나, 간혹 음차와 일본음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는 표기도 있었다. 州는 일본의 지방 행정 구분 단위인 國의 이칭인데 州를 생략한 채 표기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오기가 적지 않게 나왔는데, 대부분 자형이 유사하거나 발음이 같아 잘못된 경우가 많았다. 『해사일기』 「노정기」에 일부 지명의 위치가 바뀌어 있음을 알고 바로잡아 두었다. 소속된 州가 사행록마다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지명이 있는가 하면 두세 곳으로 나뉘어 있는 지명도 있었다. 통신사행로 관련 지명과 행정구역명에 대해 고증학적으로 살펴본 본 연구는 통신사행로 관련 주나 지명과 연관된 후대의 연구와 번역에 있어서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In late Chosun dynasty, envoys were dispatched for 12 times, and they have come and gone to given route of envoy activities. Those Chosun envoys have passed Japan’s 60 major regions and 20 states. In envoys’ records, among the places and states where involved with envoys’ pathways, there are many different marks for those places and states even if it is the same place. On top of that, the location of some places were changed, and some states were recorded differently in respective envoys’ records. Moreover, some places in envoys’ records cannot be found from map of Japan. Therefore, we have examined those drawbacks by searching many different envoys’ records from 1763 and 1764 such as Um Cho’s Haesa-Ilgi(海槎日記), Ok Nam’s Ilgwan-Gi(日觀記), Dae Joong Sung’s Ilbon-Rok(日本錄), Jung Gur Won’s Seungsa-Rok(乘槎錄), Daeryung Oh’s Myungsa-Rok(溟槎錄), Hyesoo Min’s Sa-Rok(槎錄), and Tak Byun’s Soosa-Rok(隨槎錄). We organized the name of the envoys’ road and its administrative Firstly, we have examined the marking type of Japan’s places in detail by each places’ another name, Eumcha(音借), and chinese style marking of administrative district’s name. Subsequently, we have searched and divided some problems of the marking styles of Japan’s places by location error of an itinerary, incorrect marking of specific places, and the discordance between administrative district and places. Consequently, many different kinds of marking type were existed such as abbreviation, 2 words with same pronunciation but different characters, and epithet of another name of the place. Furthermore, those markings contain causes and reasons in many cases. Mostly, Eumcha(音借) of states(州) and plaes are closely related to Japanese pronunciation. However, occasionally, it is very difficult to find the link between Eumcha(音借) and Japanese pronunciation from several marks. State(州) is the another name of Kook(國); division unit of Japan’s administrative region. Nevertheless, many places did not mark the state(州). Lots of incorrect marks were found mainly due to similar character shape or same pronunciation. Corrections were made on mislocation of several places in Nojung-Ki inside Haesa-Ilgi. Some states were named as one state or divided into 2~3 different states in each individual envoys’ record. Ultimately, this research, name of places and administrative district associated with the pathway of envoy activities, may be helpful in some sort to future generation’s research and translation in relation to the name of the states(州) or places of envoy activities’ pathway.

9,600원

9

심층적 문학체험과 문학양생

안동준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61집 2018.02 pp.22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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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주로 시가를 중심으로 심층적 문학체험의 일종인 문학양생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았다. 문학양생은 문학을 양생과 관련지어 다루는 영역인데, 일반적인 문학작품을 심층적으로 체험하는 분야이다. 문학작품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창작하는 체험을 양생학의 관점에서 다루는 점에서 일반적인 문학체험이나 문학치료와 구별된다. 일반적인 문학체험이 감성의 영역에서 다루어진다면, 심층적 문학체험은 감성의 저변에 있는 에피스테메까지 건드려 의식의 차원을 깊게 접근한다. 정신 건강이 신체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문학양생학은 문학작품을 통해 심리적, 정신적, 신체적으로 손상된 병리적 상태를 회복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정신적 인식의 변화에 따른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을 동시에 도모한다. 이러한 점에서 문학양생은 문학치료와 다른 차원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언어예술로서의 문학은 미적 정서의 심층적 층위에서는 내면적 의식을 발현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왜냐하면 언어문자를 통해 내면의식을 고양함으로써 새로운 내면세계를 열어나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면세계의 확장은 정신건강을 도모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신체적 건강까지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여기서 얻은 심층적 문학체험이 의식의 지평을 확장시킨다는 점에서 심층적 문학체험으로 얻은 이미저리는 종교적 깨달음과 동일한 성격을 지닌다. 왜냐하면 초월적 정신적 경지를 체험하게 함으로써 인류 본연의 ‘궁극적 관심’을 관철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심층적 문학체험은 종교적 체험과 구분된다. 문학양생의 대상작품은 일반적인 문학작품이고, 그 목적은 어디까지나 문학의 본연에 충실하자는 데 있다. 문학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할 때 그 부수적인 효과가 양생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문학에 대한 체험을 심화하는 과정에서 양생의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In this paper, I examined the possibilities of literary regimen studies, which is a kind of in-depth literary experience mainly focusing on poetry. Literature regimen is a regimen related to literature, and it is a field to experience general literary works in depth. It is distinguished from general literary experience or literature therapy to deal with the experience of deep understanding and creation of literary works from the perspective of regimen. Typical literary experience deals with areas of emotion, on the other hand, in-depth literary experience touched even episteme under the emotion, and approaches the dimension of inner consciousness deeply. Just as mental health has a profound effect on physical health, Literature regimen is not limited to restoring psychological, mental, and physically impaired pathological conditions through literary works. Here, one step further promotes physical and mental health according to changes in mental cognition. In this sense, literature regimen needs to be discussed at different levels from literature therapy. Literature as a language art has the function of expressing inner consciousness on the deep layer of aesthetic sentiment. This is because it opens up a new inner world by raising the inner consciousness through the language characters in the cognitive field. These expansion of inner world emotions and consciousness not only promotes mental health but also maintains physical health. In addition, since the in-depth literary experience gained here expands the horizon of imjeri, the image obtained through in-depth literary experience has the same character as religious enlightenment. This is because the ultimate interest of mankind is pursued by experiencing transcendental spirituality. In addition, since the in-depth literary experience gained here expands the horizon of consciousness, the imagery obtained through in-depth literary experience has the same significance as religious understanding. This is because the ultimate concern of mankind is pursued by experiencing transcendental spirituality. However, these in-depth literary experiences are distinguished from religious experiences. The works handled in the literature regimen are generally excellent literary works, and its purpose is to faithfully implement the essence of literature. When we deepen our understanding of literature, the resulting mental effect appears as so-called regimen. In other words, the effect of regimen appears in the process of deepening the experience of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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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사호도와 초한연의소설의 영향

전효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61집 2018.02 pp.253-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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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호도(四皓圖)는 전한시대 역사서에 등장하는 네 명의 노인 사호(四皓)를 제재로 한 그림으로,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왕실․사대부 문인들에게 은거의 절개와 입조 양 면에 있어 유교적 교훈을 일깨워주는 감계화(鑑戒畵)로 큰 애호를 받았다. 사호도의 인기는 19세기에 이르면 문인 남성을 넘어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까지 확산되는데, 이는 서화 구득 계층의 다양화와 서화 유통의 발달이라는 조선 후기 서화 시장의 변화상 외에도, 사호 고사의 대중적 인식을 확산시킨 초한연의소설(楚漢演義小說)의 광범위한 보급과도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초한연의소설은 19세기를 전후하여 번역본 출판의 활성화와 구전 유통을 통해 폭넓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따라서 소설의 확산과 사호 이야기의 인기와 더불어 사호도에 대한 대중의 관심 역시 함께 상승한 것으로 이해된다. 조선에서 가장 활발히 유통된 초한연의소설은 󰡔서한연의(西漢演義)󰡕로, 여기에서 사호는 태자의 황제 등극을 도와 이야기의 대단원을 이끌어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이자 신선으로 부각된다. 실제로 19세기에는 신선 이미지가 부각되는 사호도가 여염집의 장식 그림으로 널리 활용되기도 한다. 사호도의 성행과 연의소설 간의 영향관계를 뚜렷이 보여주는 사례로, <신(信)>에 대응하는 도상으로 사호도가 등장하는 문자도(文字圖)가 있다. 각 문자에 상응하는 상징 고사의 구성과 도상은 사호가 연의소설의 등장인물로서 인기를 얻어 활발하게 그려진 정황을 잘 보여 준다.
Shihaotu(Shihao Painting), the painting style based on the story of Shihao from QuinHan(Former Han) Dynasty, was greatly appreciated by royal families and noblemen throughout the Joseon Dynasty as confucian didactic painting, which symbolized both the fidelity to seclusion and attendance to the government. In the nineteenth century, the popularity of Shihaotu spreaded beyond the noblemen to various levels of people. In addition to the diversification of the painting collectors and the development of the painting distribution market, this prevalence of Shihaotu was also closely related to the widespread dissemination of Chu-Han historical novels. Since the nineteenth century, Chu-Han historical novels were extensively disseminated to a wide range of people through the active distribution of translation copies and oral transmission. Therefore, as the novel spreaded and popularity of the story increased, it can be inferred that popular interest in Shihao and Shihaotu also increased. In Xihanyanyi which was the most actively circulated Chu-Han historical novels in the Joseon Dynasty, Shihao was depicted as a crucial role in leading the conclusion of the story, helping the prince to become the emperor and Taoist immortals(Xian). Actually, Shihaotu of Taoist immortals images emerged as the widely used decoration paintings of middle class houses in the nineteenth century. Munjado(literally meaning “characters”), in which Shiahotu appears as a symbol corresponding to the character of , is a clear example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prevalence of Shihaotu and Chu-Han historical novels. Through an iconographic analysis of the way in which the symbolic story corresponding to each character was drawn, it is revealed that Shiaho was drawn because of their popularity as the character of these nov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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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당(任再堂)의 도망시(悼亡詩) 연구

임미정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61집 2018.02 pp.28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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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임씨 가문의 선비인 임재당(任再堂, 1686-1726)이 쓴 『갑진일록(甲辰日錄)』이라는 일기에는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102수의 도망시(悼亡詩)가 수록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임재당의 도망시를 소개하고, 발굴의 성과를 밝히는 목적에서 임재당 도망시의 내용과 서술상의 여러 특징들을 고찰해 보았다. 임재당의 도망시는 무엇보다 양적으로 주목되는 자료이다. 지금까지 파악된 한국의 도망시가 400여 편 정도인 상황에서 임재당의 도망시는 100여 편이 넘기 때문에 수량만으로도 이목을 끈다. 또한 일기 속에 시가 소재(所在)한 특징상 창작 시점과 전후 배경을 확인할 수 있어서 도망시의 창작 배경을 정확하게 고구할 수 있는 자료로 가치가 있다. 임재당은 도망시에서 자녀 없이 부부 중심으로 살았던 삶의 자취와 후사에 대한 여러 고민들을 가감 없이 드러내었다. 아내의 평소 언행과 가정 경영의 공을 상세하게 기술하여, 아내를 추억함과 동시에 덕과 능력을 겸비한 아내의 부재가 곧 자신의 고통임을 표현하였다. 다만 일반적인 도망시가 아내에 대한 애도나 칭양에서 그치는 것에 비해, 임재당의 경우는 부인이 오랜 기간 난임 치료를 하다 약물 중독으로 세상을 떴고 후사도 정하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책과 자기 비관적 서술이 짙게 나타난 특징이 보인다. 임재당의 도망시는 전하는 편수가 많고 또 일기와 함께 기록되었기 때문에 서술 방식 상 주목되는 부분들이 있다. 도망시를 짓고 후서(後序)를 추가로 배치하여 아내의 행적이나 시를 부연 설명하는 형식은 다른 도망시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임재당 도망시만의 독창적인 모습이다. 또한 전하는 많은 시편 속에서 죽은 아내를 향한 자기 고백적 언술과 표현들을 자주 보여주고 있어서, 이를 임재당 도망시의 주된 표현 방식으로 주목해 보았다. 현재 임재당은 조선에서 가장 많은 도망시를 남긴 작가이다. 임재당은 죽은 아내에 대한 감정을 다수의 도망시 창작을 통해 다양한 각도로 드러내고, 또 자신의 애통함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슬픔을 승화시켰다. 임재당의 도망시 102수는 한국 도망시 자료의 확대, 연구 방향의 편폭 확장과 관련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introduce Domangsi (悼亡詩, poems of sorrow and reminisce) written by Im Jae-dang (任再堂, 1686-1726), a seonbi (scholar) from the Im(任) family of Jangheung(長興) and find out the implication in the literature history by taking a look at several tendencies of Domangsi of Im Jae-dang. Domangsi of Im Jae-dang is recorded on 󰡔Gapjinilrok(甲辰日錄)󰡕, his diary began to write pending the passing of his wife. Domangsi appearing on 󰡔Gapjinilrok󰡕 is consisted of a total of 102 poems, and considering that Domangsi is generally conveying one or two in the individual collection of writing, it requires attention for the fact of having many works herein. In addition, Domangsi of Im Jae-dang delivers the post-script attached to the poems and diary recorded before and after together that it demonstrates accurately of the motivation and purpose of creative poetry. Domangsi of Im Jae-dang confirms several characteristics in its writing techniques. The technique to arrange the postscript after the poems and the frequent use of the Oeonjeolgu (五言絶句, 5-word poems) that almost is not used in the Domangsi genre would be the characteristics not found in existing Domangsi. In addition, contents of narration are also beyond the typical style. Im Jae-dang and his deceased wife Hong(洪) had no off-spring, and with his wife about to die first, the sense of loss for Im Jae-dang had to appear stronger than other Domangsi writers. Therefore, rather than the poems to console the dead souls, there are more simple poems to express his sorrowful status or sadness. Furthermore, his Domangsi demonstrated the appearance of home management and high praise of words and manners of his wife. As if proving the intimate husband and wife relationship, the characteristics of the Im Jae-dang poetry are shown frequently with confession-like writing as if he is paying tribute for his deceased wife. Domangsi of Im Jae-dang is the data gaining the attention by its existence along under the situation that there are only some 300 poems in Korea known to this point. Im Jae-dang drew his deceased wife in diverse angles, and enthusiastically consoled his lamentation for himself, and sublimed his sorrow through poetry. Those 102 poems of Im Jae-dang display the new possibility in relation to the expansion of Domangsi data and enlargement of studies.

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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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아권동화총서’에 나타난 제국의 시각과 아시아 전래동화총서의 면모

권혁래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61집 2018.02 pp.315-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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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 논문에서 1942~1944년에 일본 増進堂 출판사에서 간행된 ‘대동아권동화총서(大東亞圈童話叢書)’(전6권)를 아시아 아동문학 연구의 관점에서 조망하였다. 이 동화총서는 1941년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으로 편입한 인도네시아, 중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 베트남의 6개 지역의 옛이야기들을 일본의 아동문학 작가들이 일본 아동들을 위해 선별․개작한 전래동화집이다. 간행주체는 일본소국민문화협회이다. 간행인은 일본의 아동들이 6개국의 동화를 읽고 그 나라들의 생활, 역사, 자연과 지리에 친근감을 느끼고 장차 그 나라에 진출했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내었다. 작가들은 자신의 경험, 지식, 취향, 시각에 따라 각 지역에서 의미있게 여긴 고전에서 옛이야기를 선택하여 ‘동화 풍’으로 스토리텔링하여 각 나라 사람들의 생활과 역사, 문화를 표현하였다. ‘대동아권동화총서’는 특정 정치상황에서 정치와 문학 간의 역학 관계를 고찰할 수 있는 연구사례이다. 또한, 1940년대 제국 일본의 문화역량과 한계가 발현된 ’아시아동화총서’로서,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으며, 해당 국가의 근대 설화․동화 연구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In this paper, I evaluated the meaning of The Great East Asian Fairy Tales Collection (6 volumes) published in Osaka, Japan from 1942 to 1944, from the perspective of children's literature. This fairy tales collection is based on the folktales of the six East Asian countries of Indonesia, China, Malaysia, the Philippines, India, and Vietnam which were incorporated into the so-called Greater East Asia Co-Prosperity Sphere. The publishing organization is Nihon Shoukokumin Bunka Kyoukai [the Japan Small Civil Cultural Association]. This association has planned the publication of the collection for the purpose of the Greater East Asia Co-Prosperity Sphere. Interestingly, the authors sincerely investigated the literature and oral literature data in their own way, carefully selected old stories and adapted them to fairy tales. Because of this, the collection has the aspect of an Asian fairy tales collection. This collection will be a case study that can examine the relationship between politics and literature in a particular political situation. And it is necessary to carry out research from various perspectives as the Asian fairy tales collection of the 1940s, which is a cultural scale and capacity of the Imperial Japan.

7,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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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世紀韓中古典文學中的女性譚比較研究 - 以『於于野譚』與『聊齋誌異』為中心 -

王夢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61집 2018.02 pp.349-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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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야담』은 유몽인에 의해 편찬되었고, 조선 중ㆍ후기(약 1622년 경)에 완성되었으며, 『요재지이(聊齋誌異)』는 포송령(蒲松齡)에 의해 채록되어 편찬되었고, 강희(康熙) 18년(약 1679년)전후 완성되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하나는 한국의 작품이고 하나는 중국의 작품이라 거리가 멀지만, 꼼꼼히 따지고 본다면 묘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양자는 모두 양국의 마지막 봉건 왕조 때 편찬된 작품집이고, 민간의 짧은 이야기를 채록하여 편집된 것이다. 즉 갈래의 특성 면에서 매우 유사한 것이다. 특히 두 작품 속에 여성과 관련된 이야기가 적지 않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필시 주목할 만하다고 본다. 이들 여성의 신분도 귀족, 평민, 기생, 노비, 무녀, 여승 등 매우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 두 작품집에 수록된 여성의 이야기 가운데 일부는 부모나 시부모를 잘 봉양하는 효녀, 난을 당하여 자결로 정조를 지키거나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하는 열녀,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현모 등과 같이 전통적인 여성상을 다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작품집 속에서 절대 다수의 분량만은 아니더라도 늦은 밤에 담을 넘어 자신이 사모하는 남자에게 고백하는 여성,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르는 여성, 출가했음도 불구하고 곤경에 처한 자신의 집안을 지키기 위해 원수와 끝임 없이 투쟁하는 여성, 사통하는 여성 등의 이야기도 꽤 존재하는 편이다. 이처럼 다양한 신분과 다양한 성격의 여성들을 다루는 『어우야담』과 『요재지이』는 조선 중․후기와 중국 청대 여성들의 생활양상과 편찬자의 여성관을 이해하기 위한 연구 자료로서 그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한․중 양국에서 각각 『어우야담』의 여성담과 『요재지이』의 여성담에 대한 연구는 따로 많이 진행되어왔지만 비교연구면에 있어서는 여전히 매우 부족하다고 본다. 본고에서는 『어우야담』의 여성담과 『요재지이』의 여성담을 검토하여 양국의 여성담의 대비를 통해 드러나는 변별점과 공통점들을 제시하는 동시에 이런 점들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 살폈다. 즉 조선 중ㆍ후기의 여성과 동시대의 같은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에 속한 중국 청대의 여성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조선 중ㆍ후기 여성의 특징을 도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어우야담』의 여성담과 『요재지이』의 여성담에서 공통점을 아래와 같이 네 가지를 발견했다. 첫째, 인간 여성의 이야기와 비인간 여성의 이야기가 모두 존재한다. 둘째, 유교와 관련된 이야기 외에 불교, 무교 등 다른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도 없지 않다. 셋째, 여성의 성적인 욕망에 대해 회피하지 않는다. 넷째, 여성의 신분은 상층부터 하층까지 다양하다. 이처럼 공통점을 갖고 있는 동시에 네 가지 면에서의 변별점도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양국의 작품집에 비인간의 여성담이 모두 존재하지만, 『어우야담』의 비인간 여성담은 전체 여성담의 12.7%를 차지하는 반면 『요재지이』의 비인간의 여성담은 전체 여성담의 54.3%를 차지한다. 이와 같은 차이점의 존재는 결국 신선ㆍ요귀에 대한 편찬자의 관념, 그리고 편찬자의 편찬 동기와 긴밀한 연관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양국의 여성담에는 유가 사상 외에 다른 사상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지니지만, 한국의 경우 도가와 관련된 여성담이 없는 대신 무녀의 이야기가 종종 발견되는 반면, 중국의 경우 무속이 아닌 도가와 관련된 여성담이 종종 발견된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가 드러남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차이점은 도교가 그 당시 조선에서 백성들의 신앙에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민간에서 한국본토의 무교처럼 널리 보급될 수 없었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요재지이』에서는 정욕을 추구하는 여성의 성적인 욕망은 『어우야담』보다 노골적으로 묘사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또한 전자 속에 악처들의 이야기도 후자보다 편수도 많을 뿐만 아니라 악처들의 악행의 수단도 더 폭력적이다. 넷째,『어우야담』속에는 사족 여성, 평민 여성, 기생의 이야기들이 고루 포함되어 있고, 『요재지이』속에는 평민 여성의 이야기의 비중에 있어서 다른 신분 여성 이야기의 비중을 훨씬 능가함을 알 수 있다. 또한 기생에 관한 이야기의 경우 『어우야담』에서는 세 번째로 높은 비중인 30.2%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요재지이』의 경우 해당 이야기의 비중은 2.5%에 불과하다. 이는 청나라 기생문화의 특징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Eouyadam (『於于野譚』) which was written by Ryu Mong-in(柳夢寅)in the late Joseon Dynasty(about 1622), and The Strange Tales of Liao Zhai(『聊齋誌異』)which was written by Pu Songling(蒲松齡) in the reign of Qing Emperor Yongle(about 1679). One is a Korean work, one is a Chinese work. It seems far away from each other, however, if we pay further attention to these two works, we'll find that there exists a subtle attachment between each other. For example, they are all wrote in seventeenth Century, and they are all short story(folktales) collected from the people. It is worth noting that the two works have concentrated female related stories, their identity varied from the aristocracy to the civilians, from the family women to prostitutes, from the madams to slaves, covering almost all sectors of society. These Women's Stories are very useful to study how did the women live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is article mainly talks about Women's Stories of Eouyadam and The Strange Tales of Liao Zhai. Regardless of national differences of China and Korea in these two works, Women's Stories based on its universal symbolic has som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which is well worth us to study. The comparative research between these two works can also explain the reasons for this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This paper summarizes four similar points. Firstly, the two works both focus on "human women" and "non - human women." Secondly, although the stories of women which are about Confucianism accounts for the vast majority, but there are also some stories about Buddhism, Taoism, and witchcraft. Thirdly, the two countries work on women's desire are not avoid. Fourthly, the status of women in various nobles, wives, daughters, meid, prostitutes and so on. This paper also summarizes four different points. Firstly, the difference in the proportion of "human women" and "non - human women". Secondly, the difference in the story of the women's desire. Thirdly, the difference in the proportion of prostitutes. Fourthly, the difference in the story of Religion.

8,4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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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學駢支》考論

武楚茗, 周遠富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61집 2018.02 pp.389-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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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인 전보신(田寶臣)이 저술한 《소학변지(小學駢支)》는 총 8권으로서 위무림(魏茂林)의 《변아훈찬(駢雅訓籑)》의 기초에서 《변아(駢雅)》의 일부 조목에 대하여 진일보 연구하였으며 주음(注音), 석의(釋義), 서증(書證) 등 면에서 보완하고 수정하였다. 또한 변자(駢字) 사이의 쌍성첩운(雙聲疊韻) 관계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나름의 “전어(轉語)”이론을 제기하였다. 이 책은 변자 연구사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는 한편 음리(音理) 면에서는 일정한 누락이 있다.
Tian Baochen worte “Xiao Xue Pian Zhi” which is consist of eight volumes in Qing Dynasty. Based on Pian Ya Xun Zuan, Tian Baochen had done further research and given a large number of supplement on its phonetic, paraphrase and documentary evidence. Meanwhile, Tian Baochen put forward his “Zhuan yu”theory by means of analysing the relationship of “alliteration and assonance”among the words. “Xiao Xue Pian Zhi”is of great significance in the history of “Pianzi”. However, this book is weak at phonology theory.
清人田寶臣所著《小學駢支》共八卷,在魏茂林《駢雅訓籑》的基礎上,對《駢雅》的部分條目作進一步研究,在注音、釋義、書證等方面有所補正。同時,通過分析駢字間的雙聲疊韻關係提出了自己的“轉語”理論。該書在駢字研究史上有重要價值,在音理方面有一定疏漏。

4,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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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보]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61집 2018.02 pp.405-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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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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