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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상고전연구 [Yeol-sang Journal of Classical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열상고전연구회 [Society of Yol-Sang Academy]
  • ISSN
    1738-2734
  • 간기
    격월간
  • 수록기간
    1988~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한국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810 DDC 810
제31집 (14건)
No
1

서양선교사 출판운동으로 본 조선후기와 일제초기의 상업출판과 언문의 위상

마이클 김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1집 2010.06 pp.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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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기에 활발하게 진행된 상업출판에 관한 사료는 오늘날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서양 선교사들의 출판활동은 이렇듯 학계에서 주목을 많이 받지 못한 조선말기 방각본 사업에 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선교사들은 기독교 서적을 최대한 많이 팔기 위해서 조선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그들의 출판문화를 완벽히 이해를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투자했다. 그들은 언문시장의 특징과 언문의 언어적 위상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그들은 상상도 못한 만큼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결국 선교사들은 조선의 서적 수요 규모가 크고 서적의 보다 효율적인 유통은 수익을 올리는 결정적인 요인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이들의 출판사업 정착과정의 실패와 성공은 더 나아가 조선의 상업출판시장의 범위와 성격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기독교 서적의 유통은 서적들의 지역 별 판매량과 어느 지역 판매량이 가장 높았는지에 대한 귀중한 자료가 되고, 한문 서적과 언문서적의 비율은 당시 조선인들의 독서능력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언문서적은 거의 없는데, 여러 요인 중에서도 언문에 대한 사회적 냉대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언문으로 출간된 서적들의 내용은 저속하다는 인상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던 사회적 분위기였다. 결국 선교사들은 조선사회에 내제되어 있는 언문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깨지는 못했지만, 선교사들은 이러한 언문을 체계화하고 언문의 잠재력을 파악해서 그의 위상을 올리는데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There is little evidence that remains today of the vibrant commercial publishing of the late Chos.n period. However, the various publication efforts of Western missionaries in the late nineteenth and early twentieth centuries provide important insights into this otherwise little-understood area. The missionaries made every effort to have a clear understanding of the language and print culture of Korea, so that they could operate a profitable enterprise. Western missionaries learned through trial and error that the cash market in Chos.n for printed books was considerable and that effective distribution could have an immense impact on book sales. The distribution of Christian literature reached levels that could only be found in few places around the world. The records left behind from their immense publishing efforts provides a rare glimpse into the scope of the late Chos.n period and early colonial period print markets. The distribution of Christian texts can provide valuable regional data about where books could achieve the highest circulation. The ratio of Chinese character books versus vernacular books also provide important information about the reading abilities of Koreans at the time. Missionaries encountered considerable social prejudices against the vernacular script. Books published in the vernacular were associated with vulgar content in the minds of Korean readers in the late Chos.n period, but the efforts of missionaries may have helped to systemize and elevate the perceived value of the native script.

7,200원

2

경판방각소설 숙향전 판본의 재검토

이창헌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1집 2010.06 pp.3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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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판방각소설 숙향전 자료가 새로 나타났다. 현전하던 자료(<하30장본>, <상20장본>, <중21장본>, <하23장본>)에 근거하여 이미 그 존재가 추정되었던 자료(<상33장본>)를 포함하여,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자료(<단44장본>)까지 나타났다. 숙향전 <상33장본>은 “戊午九月冶洞新板”이라는 간기를 가지고 있으며, <단44장본>은 “乙巳十月 由洞新板”이라는 간기를 가지고 있다. 이들 행문을 중심으로 판본 사이의 관계를 살핀 결과 <상33장본> <하30장본>으로 된 <상하63장본>에서 <단44장본>이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단44장본>에서 <상하63장본>이 나온 것도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 결과 <상하63장본>과 <단44장본>에 선행하는 판본을 공동모본으로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또한 <단44장본>에 나타나는 을사년은 1785년으로, <상33장본>과 <하30장본>에 나타나는 무오년은 1798년으로 비정하였다.
There are three kinds of Seoul Block Print : 2 vols, "newly engraved at 冶洞 Yadong in the year 戊午(1798); 3 vols, "newly engraved at 冶洞 Yadong in the year 戊午(1798); 1 vol, "newly engraved at 由洞 Yudong in the year 乙巳(1785). The blocks of 2 vols is converted into the blocks of 3 vols. The blocks of 2 vols differs from the blocks of 1 vol in many respects. The blocks of 2 vols is not converted into the blocks of 1 vol, and also the blocks of 1 vol is not converted into the blocks of 2 vols. There will be one more blocks of 1 vol, sixty odd leaves probably. It is newly engraved on the blocks of 1 vol at Yudong, tenth month, 1785. And so it is newly engraved on the blocks of 2 vols at Yadong, from nineth month to tenth month, 1798. And some day the blocks of 2 vols is converted into the blocks of 3 vols.

7,300원

3

안성판과 경판의 거리

최호석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1집 2010.06 pp.6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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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세기 후반에서 1920년대까지 안성에서 간행한 방각본의 특성과 가치를 규명하기 위하여 작성하였다. 이를 위하여 안성판의 현황을 검토한 다음 안성판과 경판을 비교한 결과 새롭게 밝혀진 것은 다음과 같다. 박성칠은 1910년대에 북촌서포와 박성칠서점을 경영하면서 19세기 말에 동문리에서 간행한 방각본 고전소설 7종 가운데 3종의 판목만 인수, 간행하였다. 그리고 동문리에서 간행한 적이 있는 작품인데도 이를 활용하지 않고 새로운 판목을 조성한 것을 볼 때, 박성칠이 동문리 방각소를 운영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안성판 방각소설은 경판 방각소설의 자장(磁場) 안에 있었지만 경우에 따라 경판 방각소설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1920년대에 안성에서 간행된 실용서적과 아동용 학습서는 서울에서도 유통이 되었지만, 안성을 중심으로 하는 상당히 넓은 배후지에 유통되었다. 이처럼 안성판 방각본은 경판 방각본과 관계를 맺으면서 때로는 자체적인 필요에 의해 생산, 소비되었다. 그리고 안성판 방각본이 안성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 다양한 지식을 전파하였다는 점에서 당대의 지역 사회, 문화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고 하겠다.
This article is made for investigating the characteristics and value of Banggakbon which had been published in Anseong from the late 19th century to 1920s. As a result of the investigation of the status of Anseongpan and the comparison of Anseongpan with Gyeongpan, New findings are come out as follows. Park Seong Chil took over and published only 3 kinds of wood block among 7 kinds of classical Banggakbon novel published in Dongmun-ri in the late 19th century while he was running Bukchonseopo and Park Seong Chil Seojeom in 1910s. In addition, it seemed that he had not operated Dongmun-ro Banggakso as he formed new blocks not utilizing such works which had been ever published in Dongmun-ri. Besides, Anseongpan Banggak novel was belonged to an area of Gyeongpan Banggak novel, but situation gave it opportunities to rather have an influence on Gyeongpan Banggak novel. In addition, Practical books and learning materials for children published in Anseong in 1920s were distributed not only in Seoul but the wide range of hinterland centering around Anseong. As such, Anseongpan Banggakbon entered into a relation with Gyeongpan Banggakbon and sometimes became the subject of production and consumption as necessary. It may be recognized that Anseongpan Banggakbon gave substantial contribution to the local society and culture of the age as it diffused various knowledge to the area centering around Anseong.

5,800원

4

완판 방각본 출판의 문화사

이태영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1집 2010.06 pp.9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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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전북 전주를 중심으로 출판한 판매용 책(방각본)에 대하여 문화사적인 배경을 살펴보려는 데 목적이 있다. ‘완판본’은 ‘전주에서 발간한 옛 책’을 말하는데 그 중 ‘완판 방각본’은 ‘전주에서 판매를 목적으로 발간한 옛 책’을 말한다. ‘완판 방각본’은 서울, 대구와 더불어 전국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였다. 완판 방각본이 발달하게 된 요인으로는 전라남북도와 제주도를 관할하던 전라감영의 위치와 역할, 전주 시장의 기능, 한지의 대량 생산, 쌀이 생활의 중심이 되었던 시대에서 중농의 역할과 욕구, 전라도에서 탄생한 판소리의 소설화 과정, 일제시대 한글 교육 및 2세 교육, 지역민의 근대화 욕구 등 매우 다양한 문화적 배경이 존재한다. 이 논문에서는 이들 문화적 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시도하고 있다. 많은 양이 출판된 완판본은 이 지역민들을 개화시키고, 민주화 시켰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은 서울의 경판본에 비교하여 양과 질이 매우 우수하여 후대의 소설 발달에 큰 공헌을 하였다. 아쉽게도 활자 인쇄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완판 방각본은 쇠락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research on historical background of ‘Wanpan banggakbon’ culture that was published in Jeonju. The ‘Wanpanbon(完版本)’ is the old books that was published in Jeonju. the ‘Wanpan panggakbon(完版 坊刻本)’ is the old books that was published in order to sell in Jeonju. The development of ‘Wanpan panggakbon(完版 坊刻本)’ have various factors as like as a role of the ‘Chollagamyeong’, a production of ‘Hanji’, a role and hobby of the rich farmers, relation of ‘Pansori’ and novel, education of ‘Hanguel’ and the next generation, etc. in this thesis, we have tried concrete argument on cultural backgrounds. The various, many ‘Wanpan panggakbon(完版 坊刻本)’ have enlightened, democratized on peoples of this area. especially ‘Wanpanbon hangeul old novels(完版 한글고전소설)’ have greatly contributed to development of korean modern novels. but ‘Wanpan panggakbon(完版 坊刻本)’ have became weak gradually by the cause of a modernized printing type.

6,300원

5

방각본 연구의 몇 가지 문제

이윤석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1집 2010.06 pp.117-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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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 필자가 얘기한 것은 다음과 같다. 방각본 연구를 위해서는 먼저 방각본은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하고, 나아가서 방각본 같은 상업출판물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하는 문제도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말했다. 다음으로 최초의 방각본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문제도 추상적인 논의보다는 개별 방각본 연구를 축적해나갈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필자가 관심을 갖고 있는 몇 가지 방각본, 즉『문자류집(文字類輯)』,『십구사략(十九史略)』,『고사성어고(故事成語考)』와 논란이 있는『임경업전』에 대해 간단히 언급했다.
本稿は、これまで筆者が提起した坊刻本研究におけるいくつかの問題を論じたものである。始めに、坊刻本が社会の変化を表す指標であることを明らかにすべきであり、ひいては坊刻本のような商業出版物が社会を如何に変化させたのか、という問題までに踏み込むべきであると述べた。次に、どの本が最初の坊刻本であるかを確定する問題について、抽象的な議論よりは個々の坊刻本に関する研究を蓄積していく必要性があるという点を指摘した。そして、これらの点を踏まえた上で、筆者のこれまでの研究してきた坊刻本、すなわち『文字類輯』、『十九史略』、『故事成語考』と、議論の余地がある『林慶業傳』について簡単に言及した。

6,400원

6

한글방각소설 신자료 고찰

전상욱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1집 2010.06 pp.143-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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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에서 근대초기에 고전소설이 본격적으로 대중적이고 상업적으로 유통되는데, 그 대표적인 형태가 세책본, 방각본, 활판본이다. 이러한 대중적⋅상업적 유통 형태는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면서 텍스트가 고정되어 간다는 점에서 고전소설 연구의 가장 기초적인 연구 대상으로 중요성을 지닌다. 이 논문은 방각본으로 간행된 한글고전소설 가운데 그 동안 학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거나 존재 자체만 알려졌을 뿐 구체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없었던 자료 몇 종을 소개함으로써, 방각본 소설 연구의 외연을 확장하고 상업적 유통망에서 텍스트가 어떻게 변모해 나가는지를 확인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본고에서 다룬 작품은 <별월봉기>, <세민황제전>, <소대성전>, <장풍운전> 등이다. <별월봉기>는 1823년 전주 구곡(龜谷)에서 간행되었는데, 완판본 한글고전소설 가운데 간행시기가 가장 이른 작품으로 의미가 있다. 현재 하권 48장본만이 전하고 있다. <세민황제전>은 1864년에 간행된 작품으로 어휘나 서체를 통해 볼 때 완판본으로 추정된다. 현재 상권 50장본만이 전하고 있다. <소대성전> 가운데는 완판 40장본, 경판 17장본, 경판 16장본 등을 소개했다. <장풍운전> 가운데는 완판 36장 초간본을 소개했다. 이들 판본들은 경판방각소설과 완판방각소설의 텍스트 변모 과정을 보다 소상하게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본고를 바탕으로 각 판본의 보다 자세한 이본 연구와 심층적인 의미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이고, 이를 통해 방각본 고전소설의 역사적 전개 과정과 유통사적 의미를 완성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Through late Chosun and early modern period, the lending library(貰冊本), Woodblock print(坊刻本), modern printed book(活版本) were located in the center of the commercial circulation of the Korean old novels. This essay aims to introduce the new discovered Woodblock print texts, and study up on the bibliographical meanings. In this essay, We can obtain the new information about Byeol-Weolbonggi(별월봉기)-Jeonju edition 48 leaves, Seminhwangjejeon(세민황제전)-presumed Jeonju edition 50 leaves, Sodaeseongjeon(소대성전)-Jeonju edition 40 leaves, Seoul edition 17 leaves and 16 leaves, Jangpungunjeon(장풍운전)-Jeonju edition 36 leaves, etc.

6,300원

7

방각본『남훈태평가』의 간행 양상과 의의

김유경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1집 2010.06 pp.169-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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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에서는 상업 출판된 유일한 가집인『남훈태평가』의 간행 양상과 의의를 살폈다. 먼저『남훈태평가』의 체제상의 특징을 살폈다. 서두에서 악조명이 악곡명과 섞여 악곡과 같은 차원에서 제되는 현상은 19세기 연희 현장에서 찾을 수 있는 현상이며, 1910년대 활판본 가집의 체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이다. 이 시기 가창 문화에서 농․락․편 이외의 기존 악곡들은 구분이 불필요해졌거나 미약해진 현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서두에 악곡을 제시하는 순서가 일반적인 가곡창의 순차와는 달리 삭대엽의 변주곡을 가장 앞세운 것은 당대에 유행하던 인기순일 것이다. 가사와 잡가 가운데 잡가를 앞세운 것도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남훈태평가』는 노랫말을 적은 가집이다. 그러므로 창법에 익숙한 수용자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렵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시조창의 성행은 향유층의 확대를 가져왔으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기량의 시조창이 존재하게 되었을 것이다. 한글독서층에서 시조를 이해하는 방식의 한 예를 ≪만언사≫의 이본인 연대 소장『규호소적』의 <만언답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배객이 머무는 집의 안주인이 <만언사> 화자에게 들려주는 답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서술자가 등장하여 <만언사> 화자의 노래를 노래 같기도 시조 같기도 하다는 인식을 드러낸다. 시조창은 전문가에 의해 고급한 정도로 연창되기도 하였지만 낮은 수준으로 시행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다양한 층위의 시조창에 접하게 된 대중은 그 노랫말에 흥미를 가지게 되고 따라서 ‘노랫말의 구독’이라는 수요까지 가지게 되어, 방각본『남훈태평가』가 탄생한다. 다음으로, 그간의 논의에서 전혀 규명되지 못하던 1920년 이후의 간행 양상을 밝혔다. 판권지에 따르면 인쇄일은 모두 1920년 8월 25일이되, 발행일은 8월 30일, 9월 9일, 9월 30일로 차이가 난다. 본고에서는 이 가운데 9월 9일 발행본은 출판법에 따라 조선총독부에 납본된 것이었으며, 발행 ‘즉시’ 검열 받아야 한다는 규정에 맞추기 위해 발행일을 수정한 것이었음을 밝혔다. 9월 30일 발행본은 납본 후에 시판한 본임을 밝혔다. 그리하여 1920년 9월 초에 한남서림에서『남훈태평가』를 인쇄한 것이 확실함을 밝혔다. 또한 간기 중 ‘석’자가 깎인 본의 1920년 8월 30일 발행이라는 판권지 정보는 믿을 수 없음을 지적하였다. 다른 두 본과 달리 판권지에 도서 광고를 겸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여, 도서 광고에 등장하는 서적들의 신간과 납본일을 추적함으로써, 1920년이 아니라 1922년 2월 이후에 인쇄한 것이 확실함을 밝혔다. 또한 인쇄․발행일 표시에서 대정 연호가 사라진 것을 근거로 그 시기는 다이쇼가 사망하는 1926년 12월 25일 이후일 것으로 추론하였다. 끝으로, 1920년 이후의『남훈태평가』 재간행은 1910년대에 왕성하게 공급된 활판본 가집의 성행에 힘입은 것이었으며,『남훈태평가』는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 에 편승할 수 있었을 것임을 지적하였다. 아울러 1910년대 활판본 가집의 성행은 1863년에『남훈태평가』가 최초로 열어놓은 ‘읽는 노랫말’의 대중적 보급이 토대가 된 것임도 지적하였다.
Throughout literary history, "Namhuntaepyeongga" stands out as meaningful pulished book. Since it is the only one commercially published anthology. In this study, I research the publication aspects and significance of "Namhuntaepyeongga" all over 19th and 20th century. Firstly, I underdraw Ujo and Gyemyon were used as titles of musical pieace. And the order of listing pieces on the beginning was different from other general piece's that. Since "Namhuntaepyeongga" is collection of songs, if users who are unfamiliar with those sort of book would be not much accessible. However, with great prevalency of Shijochang and its growing user groups, Shijochang developed in various level and aspects. In means, Shijochang was produced and practiced in socially high level as well as lower level. So then the needs for subscriping lyrics of them has came. That was the driving motif of the publication of "Namhuntaepyeongga". For the second, I studied on the publication aspects after 1920's which was not shown by any other academic approahces. Accroding to copyright inforamtion, all of "Namhuntaepyeongga" were imprinted at 25th, Aug. of 1920 but the dates of publication were shown different from it as 30th, Aug., 9th Sept., and 30th, Sept.. Among those, I showed that the issue of date 9th Sept. was submitted to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following the current Publication Law. Then I also showed the issue of date 30th, Sept. was released on market after the submission. And I exclaimed strong question on the argument that among the colophons, the issue including scratched 'Suk' character was 30th, Aug. Moreover, I focused on the issue holing copyright page were used as advertisement unlike other two issues then I compose the dates of print and publication chronologically according to each style of advertisement of "Hannamseolim". Thus, I reached the conclusion that the issue whose publication date was printed as 30th, August was not printed out at 1920 and rather after Feburary of 1922. Moreover, since there is no more era name of Taisho, I suggest that the publication time of it would be after the death of Taisho, 25th, December of 1926. For the last, I arrange the meaning and value of the republication of "Namhuntaepyeongga". It was attributed to great trend of printed anthology on 1910's and this puularity of printed anthology was caused of the popular distribution of 'readable lyrics' which "Namhuntaepyeongga" has started throughout general people.

9,100원

8

非小說 漢文坊刻本 刊行에 대한 書誌的 고찰

옥영정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1집 2010.06 pp.21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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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한문으로 간행된 비소설방각본에 대해 기존의 연구에서 다소 부족한 면이 있는 서지적 고찰을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연구대상인 한문방각본은 방각본 가운데 그 서사 문자가 한글이 아닌 ‘漢文’인 것을 말한다. 다만 본고에서는 한문 방각본 가운데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소설류는 연구대상에서 제외하였다. 먼저 방각본의 정의와 특징에 대한 기존의 논의 가운데 몇 가지 주요 쟁점을 검토해보았다. 우선 방각본에 대한 서지학적 논의를 통하여 정의를 재고하였다. 방각본의 정의는 민간의 범주와 상업성의 성격을 고려하여 “민간이 영리를 목적으로 간행한 목판본 또는 고활자본”을 일컫는 것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방각본의 특징을 살펴본 후 한문방각본의 내용과 특징, 형태서지적 특징, 간행의 유형 등을 다루었다. 내용적 특징과 형태서지적 분석, 간행의 유형은 방각본의 특징을 서지학적 관점에서 고찰한 것이다. 특히 간행의 유형에서는 국내판본의 전승, 국외판의 번각, 새로운 간행으로 구분하여 해당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국내 전존하고 있는 한문방각본의 원류를 파악하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onduct bibliographical consideration on commercially woodblock-printed books of nonfiction written with chinese characters, centered on what has been insufficiently coped with in previous researches. The subject, commercially woodblock-printed books with Chinese characters, indicates the ones written with not Korean but Chinese characters, but fiction occupying much of the commercially woodblock-printed books with Chinese characters is not included in this study. The author examined several main issues among the existing discussions on the definition and characteristics of commercially woodblock-printed books. First, the definition was reconsidered through bibliographical discussion on commercially woodblock-printed books; the author clarified that the definition of commercially woodblock-printed books should be adjusted to be "block books or old movable-type books that were published on the purpose of profit by common people," by consideration of the scope of common people and characteristics of commercial viability. After characteristics of commercially woodblock-printed books were established, contents and characteristics, material bibliographical characteristics, and types of publication of commercially woodblock-printed books with Chinese characters were coped with. Content characteristics, material bibliographical analysis, and types of publication indicate that the characteristics of commercially woodblock-printed books were considered from bibliographical aspect. As for types of publication, in particular, the author presented methodology to understand the origins of the commercially woodblock-printed books with Chinese characters in Korea by dividing into transmission of domestic printed books, reprinting of foreign printed books, and new publication and providing relevant cases respectively.

8,800원

9

韓國八景詩의 전개에 있어서 金時習의 역할

안장리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1집 2010.06 pp.255-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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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한국팔경시의 전개에 있어서 전환점을 이룬 김시습의 팔경시를 살펴보았다. 팔경시는 8개 景 각각에 소표제가 있고 이 소표제는 각 경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어 중요하므로 본고에서는 조동일이 山水詩의 특징으로 분류한 ‘경치’, ‘흥취’, ‘주제’ 등이 팔경시에 구현된 양상을 소표제를 통해 따져보았다. 본고에서는 한국팔경시에 있어서 ‘주제’의 구현은 김시습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밝혔다. 즉, 중국의 瀟湘八景詩, 한국 서거정의 漢都十詠詩 등의 소표제를 보면 중국의 소상팔경시는 洞庭秋月(지명+景象) 즉 ‘경치’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도십영시는 濟川翫月(지명+事業)으로 달을 감상하는 ‘흥취’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김시습의 山中十景詩는 放曠狂疎(사업+사업)으로 이루어져 ‘주제’를 나타내고 있다. 본고에서는 김시습이 집필한 5편의 팔경시를 창작단계별로 ‘모방’, ‘자립 모색’, ‘자립’의 단계로 나누고 창작순서도 그에 준할 것으로 추정하였다. 즉, 모방의 단계에는 중국의 소상팔경시, 서거정의 永平八景詩 차운을, 자립 모색의 단계에는 한양의 변두리를 읊은 京都十景詩를, 자립 단계는 지명도 제시하지 않고 은거지에서 자신의 생활을 읊은 鄕中十景詩, 山中十景詩 등을 설정하였다. 김시습이 산중십경시에서 구현한 주제는 ‘養生의 도’를 추구하는 도가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士林派 道學者의 팔경시에서는 유가적인 ‘주제’가 읊어진다. 본고에서는 이를 의식한 대표적 작가로 李滉과 李庭龜 등을 들었다. 본고에서는 김시습이 한국팔경시에 있어서 ‘흥취’를 ‘주제’로 전환시킨 작가로서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밝혔다. 아울러 김시습 팔경시의 창작단계를 통해 산중십경시의 창작 장소와 연대를 추정하여 당대 김시습의 인식을 이해하는데 기여할 수 있게 하였다.
This is a proposal about the Palgeongsi(八景詩) of Kim si-seup. It concoverts Korean Palgeongsi. The Palgeongsi is a kind of nature poetry(山水詩). Nature poetry is composed of three kinds. First is Discriving the scene of nature. Second is exposing the plesure with scene, and the last is representing theme. A strapline of the Sosang Palgeongsi(瀟湘八景詩) is Tongjeongchuwol(洞庭秋月). It is composed with toponym and situation. A strapline of the Hando sibeongsi(漢都十詠詩) is Jechenwanwol(濟川翫月). It is compesed with toponym and action. The action is pleasure. The strapline of the Sanjung sibgeongsii(山中十景詩) is Fangguangguangso(放曠狂疎). It is compesed with action and action. The action is theme. Kim si-seup has characterized the point of action in Palgeongsi with theme. Kim si-seup wrote five Palgeongsi. First, he imitate Sosang Palgeongsi and Youngpeyong Palgeongsi(永平八景詩), and second he seeking to self-reliance with keyongdo sibeongsi(京都十詠詩). Third, he characterized with Hayangjung sibgeongsi(鄕中十景詩) and Sanjung sibgeongsi. The theme of Kim si-seup is Daoism. Lee hwang(李滉) and Lee jeung-gu(李庭龜) wrote Palgeongsi in Confucianism. Kim si-seup converts pleasure into theme. That is important in literary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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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 변용을 통해 본 시인의 세계인식 태도

윤성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1집 2010.06 pp.29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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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은 우리 고전 가운데 문제적 인물이다. 동해용의 아들로 출발하였으나 혼란스러운 시대의 복판에서 아내의 불륜 앞에 무기력했던 인간인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그 시대에 문신(門神)이 되어 사람들의 추앙을 받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본디 <처용가>는 시대와 화합하지 못한 아웃사이더의 페이소스를 바닥에 깐 노래이다. 국문시가 쪽에서 신라 처용은 용자(龍子)에서 인간(人間)으로, 다시 문신(門神)으로서의 신분 전이를 거치며 각기 조무(助巫)․관무(官巫)․국무(國巫)로 격이 상승되었다. 고려 처용노래 겉면에 드러난 강한 무당의 위용은 궁중연행에서 의 주술성과 송도성이 어우러져 나타난 결과였다. 조선 처용은 권능이 왜소해진 무당의 처지를 드러내었다. 무당의 지위 하강에 따라 당대인의 처용을 향한 인식 태도도 비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시 쪽에서는 고려말 산대극의 영향으로 인해 처용 형상화가 노래보다는 나례로서 춤과 놀이의 부분이 주가 되었다. 조선 때는 처용에 대한 긍정적 마인드가 우세하였다. 설화의 신성성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태평성대를 바라는 마음이 표상화되었기 때문이다. 조선후기에는 실학의 영향으로 처용의 신성성을 부정하는 작품들이 다수 나왔다. 현대시 쪽에서 신석초의 경우는 연민과 공허의 이미지로, 김춘수는 억압과 고뇌의 이미지로, 서정주는 관용과 훈도의 이미지로, 그리고 한광구는 상처와 좌절의 이미지로 각기 처용을 재구해내었다. 박제천, 윤석산 등의 작업도 주목할 만하다. 이전 시대와는 달리 숱한 가치관의 충돌, 그 대립과 갈등을 넘어 구축한 작가의 정체성이 작품에 투영되어 나타난 바, 그만치 같은 시대를 지나오면서도 시인 저마다의 세계관을 쌓아왔음을 일러준다. 처용은 가장 신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존재이자, 한국적 신앙의 원류이면서 또한 상처 받은 사내의 원형으로 남고 말았다., 처용문화는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든 것이다.
Chuyong is a problematic character in Korean classics. On the one hand, he was born as a son of dragon of the East Sea, but a man of languor who could not cope with his wife's adultery. On the other hand, he was revered as the spirit of the door. From the first, Chuyong-ga originated from the song based on pathos of outsiders who have been in discord with the times. In the case of Korean poetry, Chuyong of Shilla has ascended from a son of dragon to a human, and to a helper of shaman, an official shaman, a shaman of the state. The majestic appearance of shaman in the Song of Chuyong in Koryo results from the occultism in the royal court rite. Chuyong in Chosun reveals the poor position of shaman. According to the descent of status of shaman, the recognition and attitude towards Chuyong have been changed. In the case of Chinese poetry, the part of dance and play were central to the characteristic of Chuyong, in the influence of Sandaegeuk[山臺劇] in the last period of Koryo. Meanwhile, some positive mind to Chuyong prevailed in Chosun, because the divinity of the fable was accepted at face value. In the last period of Chosun, the works which denied the divinity of Chuyong were appeared in huge majority in the influence of Silhak[實學]. In the case of modern poetry, Chuyong has been transformed to images of pity and emptiness in Shin Seokcho, images of oppression and agony in Kim Choonsoo, images of tolerance and instruction in Seo Jungjoo, and images of hurt and frustration in Han Gaanggoo. In modern transformation, the characteristics of Chuyong have been reflected collisions among values and quite different identities of poets. Chuyong is both most divine and most human being, the origin of Korean religious belief, and the architype of wounded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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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7세기 승려 奇巖 法堅의 산문 연구

이대형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1집 2010.06 pp.32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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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당 대사의 제자인 奇巖 法堅은 스승과 마찬가지로 승병장으로 활약했던 인물이다. 문집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찾기 어려운데, 강화도에서 탄환을 주조하기 위해 보시를 권하는 글을 통해 이와 관련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조선 승려들의 문집도 유자들의 경우와 같이 한시가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간혹 산문이 비중있게 게재된 경우도 있다. 그 중에서도『奇巖集』의 경우 祝疏와 勸善文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이 양식들은 불교에 고유한 것이라는 점에서 불교적 특성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기암의 글에는 많은 문헌들이 활용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보면 기본적인 유학 서적은 두루 섭렵했음을 알 수 있다. 불교 문헌의 경우『法華經』과 禪문헌인『碧巖錄』이 자주 인용되었다.『법화경』은 전래적으로 인기 있는 경전이고,『벽암록』은 조선시대 禪宗의 유행과 관련된다. 기암의 산문 가운데 다수가 왕실에서 금강산 유점사의 중수를 후원한 사실과 관련 있다. 선조의 비 仁穆王后와 광해군의 비 柳氏가 후원을 하였고, 惟政이 시작한 불사를 기암이 마무리 하였다. 불교에 관심을 기울인 건 왕실만이 아니다. 유자들은 심성 문제 등과 관련하여 승려들과 대화를 마다하지 않았으니, 기암은 환영받는 상대였다. 기암은 유불 개념의 차이보다는 상통하는 보완 관계에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불교 의례가 불교만의 행사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장자』를 비롯하여 도교적 어휘도 인용하는 모습을 보인다.『장자』는 호방한 禪味를 펼쳐내는 데 적합하기 때문이며, 기타 도교적 어휘는 도교 행사를 포용한 기반 위에 수사적 차원으로 수용하고 있다고 하겠다.
Giam Beopgeon奇巖 法堅, who was a pupil of Sameongdang四溟堂 Buddhist master, was a leader of monk soldiers like his master. We can find this fact through his writings to ask for an alms in order to produce bullets in Gangwhado江華島. The poetry commands an overwhelming majority in collections of monks' works, which are like collections of Confucian scholars' works in Chosun朝鮮. But the prose occasionally accounts for a majority. In collection of Giam's works, Chookso祝疏 and guonsunmun勸善文 occupy a majority. Chookso and Guonsunmun are characteristic style of Buddhist literature. Social-Cultural backgrounds of his prose are Confucian society. Because reconstruction of Yujeomsa楡岾寺 in Mt. Geumgang came true by royal family's financial support, he needed to communicate opinions with Confucian scholars about the commonness between Confucianism and Buddhism, and he often quoted a lot of Confucian literatures so as to have a good reputation with the intellectu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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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영재우적>조에서의 노래․공간․구도자․도적의 의미

길태숙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1집 2010.06 pp.35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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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고전의 현대적 활용을 염두에 두고 캐릭터, 공간, 행위 등 스토리텔링의 주요 요소를 중심으로『삼국유사』<영재우적>조와 <우적가>에 대한 그간 의 연구 성과를 살펴보았다. <영재우적>조의 주요 캐릭터인 영재와 60인의 도적은 대립적 성격을 보인다. ‘성골계(性滑稽)’한 영재는 구도자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를 확장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개성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반면 60인 도적은 사회와 떨어져 생활하고 있지만 속(俗)에서 사는 중생보다 더 세속적 가치에 탐닉하며 사는 무리라는 정형화된 도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영재우적>조의 주요 배경공간인 ‘대현령’은 노래의 창작지이자 도적의 생활공간이며 영재의 통과공간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다층적 의미를 지닌 공간은 캐릭터의 행위를 유발하여 스토리텔링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유효한 콘텐츠라고 볼 수 있다. <영재우적>조에서 캐릭터의 극적 행위를 이끌어 낸 요인은 바로 <우적가>이다. <우적가>는 난해한 향가이지만 도적과 영재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을 재현함으로 써 피은과 구도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재와 도적이 갖는 캐릭터 이미지, 노래의 창작지이자 영재와 도적이 만나는 공간배경, 영재와 도적의 과거 현재 미래를 표현한 <우적가>와 노래의 감성 자극을 통한 도적의 행위의 전환은 <영재우적>조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면서 각각 그 자체로 활용될 가치를 지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This article is designed to investigate the result of previous researches on 'Youngjaeujeok(永才遇賊: Youngjae met plunderers)' and 'Ujeokga(遇賊歌: a song of meeting plunderers)' in Samgukyusa(三國遺事) focused on the important elements of storytelling such as characters, space and action, having applicability of traditional culture to modernization in mind. Youngjae and 60 plunderers, the main characters of 'Youngujeok' are contrary in character. Youngjae is humorous character unlike most truth-seekers', so we can expand our images of monks not only sublime, but also humorous. The 60 plunderers are expressed in greedy hooligans like a stereotype of thieves. Daehyeonlyeong(大峴嶺), the major background of 'Youngjaeujeok' has the meaning which is the creating place of 'Ujeokga', the living space of thieves, and the ground of a rite of passage of Youngjae. The space which has the multi layers of meaning is a feasibility for making a storytelling. The main factor which provokes plunderers' act of finding truth dramatically is 'Ujeokga'. 'Ujeokga' is known as a difficult song to decode, but it implies the actions of past, present, and future of Youngjae and 60 plunderers, so it delivers common people the meaning of practicing asceticism with emotional stimu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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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지역에 따른 <손병사 이야기>의 전승 연구

황은주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1집 2010.06 pp.379-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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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사 이야기>는 손씨 성을 가진 병마절도사에 관한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판은 혈연과 지연 등 오랜 기간 축적된 관계망을 토대로 만들어지는데, 특히 <손병사 이야기>는 지역 사회와 이야기 속 인물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이야기판의 여러 조건이 상호 작용하는 양상 또한 첨예하게 나타날 수 있는 자료라 볼 수 있다. 따라서 본고는 일직손씨의 연원과 <손병사 이야기> 간의 관계를 재고하여 지역에 따른 이야기 전승 양상을 비교하였다. 아울러 <손병사 이야기> 내용이 이야기판에서 연행자의 성격과 상호 작용하는 양상을 살펴보았다.
The Tales of Son Byeong-sa is a narrative of a military commissioner whose family name was Son. A storytelling context is generally made on the base of long accumulated relationship network of blood ties or regional relation, and as a narrative of complicated relationship between a community and the character in the narrative, the Tales of Son Byeong-sa shows a sharp interaction aspect between many conditions of storytelling context in the course of the narratives performance. Therefore, this is compared the aspects of the tradition of the tales of Son Byeong-sa according to region by reconsidering the relation between the origin of Sons from Iljik and the Tales of Son Byeong-sa. And contents of the Tales of Son Byeong-sa examined a interactive aspect with performers' personality at storytelling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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傾蓋如故, 同氣相求 —洪良浩與紀昀交遊攷述

徐毅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31집 2010.06 pp.409-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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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양호와 기윤은 18세기 중후기에 각각 조선과 청조 문단에서 최고의 문인이며 사림의 숭앙을 받는 학자이다. 그들의 교류는 갑인년(1794, 정조18년, 건륭59년)에 홍양호가 동지겸사은정사의 신분으로 연경에 갔을 때부터 시작된다. 홍양호는 당시 청조 예부상서인 기윤과 만나 교유하였다. 그들의 교류관계를 고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첫째, 이것은 중국과 한국의 학술 대가들의 교유이다. 청조와 조선의 건국 이후 고층간, 높은 수준의 학술교류는 이것이 처음이다. 그러므로 이전시기의 중한 문인교류와 다른 특징을 나타낸다. 둘째, 그들의 교류는 한번의 만남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書信, 贈文, 贈詩 및 贈物 등의 빈번한 왕래를 하였다. 그들의 교류는 전면적이고 깊이 있게 진행되었다. 그들이 교류 중에 논술한 학술사상은 중한 관각문단의 학술경향을 대표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학술사상의 동이점을 비교하면 곧 당시 중한 학술경향을 파악할 수 있다. 이상의 두 가지 연구 의의에 근거하여 본고는 연대순에 따라 다양한 문헌자료를 종합하여 홍양호와 기윤의 교류를 상세하게 고찰하였다. 두 사람은 갑인년부터 무오년까지(1794-1798) 매년 편지와 시문, 선물 등을 통해 서로에 대한 우정을 전달하며 지속적인 교류를 하였다. 두 사람의 “傾蓋如故”한 감정은 知音을 얻기 어려운 것에 대한 감탄과 얻은 후의 기쁜 심정, 상대방에 대한 존경과 격려의 마음, 지음에 대한 그리움 등 세가지 측면에서 표현된다. 문학에 있어서는 창작의 목적, 창작의 동기와 취지, 문학 비평 등 면에서 서로 합치된 관점을 갖고 있다. 본고는 홍양호와 기윤의 교류를 고찰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어냈다. 개인적인 관계로 놓고 보면 두 사람의 교류는 성공적이다. 두 사람이 만년에 건립한 학술적 우의는 중한 관각 문인들의 교류의 모범이 되었다. 국가간의 관계로 본다면 18세기말 중한 양국의 관각 학술경향은 일치하였다. 즉 양국은 모두 전통적 유교를 회복하기를 희망하였다. 홍양호와 기윤은 모두 당시 최고의 문인 학자으로서 그들의 빈번한 학술교류는 개인적인 교유의 범위와 의미를 넘어 18세기 중한 관각학술의 최초의 진정한 교류라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洪良浩與紀昀分別是十八世紀中後期朝清兩國文壇上享有盛名, 執學術牛耳, 為士林所宗仰的學者。 他們的交往, 緣於甲寅年(即1794年, 正祖十八年, 乾隆五十九年)洪良浩以冬至兼謝恩正使的身份出使燕京。 當時, 他與禮部尙書紀昀相識, 並展開交流。 攷述他們之間的交遊關係有着極其重要的意義:一方面這是中韓學術大宗師間的交遊。 清朝, 朝鮮立國後, 如此高級別, 高水平的學術交流, 這是首次, 因而, 它必然會顯示出不同以往中韓文人交流的特點;另一方面, 他們之間的交流不僅僅是一面之緣, 書信, 贈文, 贈詩和贈物等在他們之間往復頻繁, 他們的交流是全面而深入的, 中韓的學術火花在他們之間踫撞摩擦。 他們在交流中所論述的學術思想, 代表着中韓官方學壇的學術導向。 因此, 比較他們學術思想的異同, 即可把握住當時中韓學術的傾向。 基于以上兩方面的研究意義, 本文首先以年代為序, 綜合多方面的文獻資料, 詳細攷述了洪良浩與紀昀交往的過程。 從兩人的交遊經歷, 可以看出, 從甲寅年到戊午年(1794-1798), 每年他們都通過書信, 寄詩或贈物等形式向對方傳達惺惺相惜之意。 雙方“傾蓋如故”的情感主要表現為:一, 對知音難求的慨嘆, 以及求得之後的欣悅之情;二, 對對方的崇敬, 期勉之情;三, 是對知音的相思之情。 洪良浩有詩句云:“文章契遇自古難, 同氣相求非我衒。”稱自己與紀昀文章契遇, 同氣相求。 這正是兩人知己之交的最大特點, 也是與其他中韓文人關係的不同之處。 他們的“同氣相求”, 即對詩文之道的共同取向與高度契合, 對高尚人格的塑造, 是維繫二人情誼的基石。 兩人文學精神上的契合主要表現在三個方面:一, 就創作的目的, 兩人都對“文以載道”傳統的衰微感到痛心, 都指明文章當以載道為要, 於世有益;二, 就創作的動因和旨歸, 兩人都指出“情”, “志”為詩歌之原, “溫柔敦厚”乃是詩歌之旨歸;三, 兩人都主張評論文章, 獎掖人材當秉以公心, 反對門戶之爭, 地域之見, 認為 “文章之患, 莫大乎門戶”。 本文通過詳細攷述洪良浩與紀昀的關係, 得出結論:就人與人之間的個體關係而言, 洪良浩與紀昀的交遊是成功的, 其兩人晚年建立起來的學誼是中韓官方文人交流的典範。 他們二人年紀相同, 地位相當, 雖白首相交, 但相見恨晚, 情誼深重,可謂是“傾蓋如故”。 他們之間雖未有筆談記錄存留於今, 但以書信, 贈文, 贈物等形式展開的交流是深刻的, 尤其對文學之道, 儒家理想的理解和追求, 在他們之間形成了精神上的高度契合, 可謂是“同氣相求”。 就國與國之間的關係而言, 中韓兩國的官方學術傾向在十八世紀末期是一致的 即兩國都企望回復傳統的儒家之道, 其重要的載體就是詩文。 洪良浩與紀昀交往之時, 兩人皆是官方文壇的執牛耳者。 因此他們間深刻而頻繁的學術來往, 已經超越了個體交流的範疇和意義, 是十八世紀中韓官方學術第一次真正意義上的重要交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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