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Home

열상고전연구 [Yeol-sang Journal of Classical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열상고전연구회 [Society of Yol-Sang Academy]
  • ISSN
    1738-2734
  • 간기
    격월간
  • 수록기간
    1988~2019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한국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810 DDC 810
제49집 (20건)
No
1

3,000원

기획논문 1

2

[기획의도1] 한글연행록 연구의 동향과 실상

한영균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9집 2016.02 pp.9-10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에 따라 개인회원에게 무료로 제공됩니다.

기획논문1

3

18세기 한글본 연행록 연구 - 정녀묘와 천주당 견문기록을 중심으로 -

김정경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9집 2016.02 pp.11-42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본 논문에서는 18세기 한글본 연행록 가운데 정녀묘와 천주당 견문 기록을 검토하여 18세기 한글본 연행록에 나타난 글쓰기와 독서 방식의 특징을 읽어내고자 했다. 18세기 그리고 그 이전까지 열녀에 관한 기록과 독서는 일반적으로 전고에 등장하는 역사 속 인물의 삶에 근거하여 입전 대상인 열녀의 삶을 평가하고 기리는 방식으로 행해졌다. 하지만 본고에서 검토한 바에 따르면 18세기 한글본 연행록의 작자들은 자신의 관점을 토대로 열녀를 둘러싼 담론들을 읽고 평가했다. 이처럼 열녀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이 정녀묘 견문기를 작성하는 데에 커다란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은 독자들 역시 이 텍스트를 읽기 위해 전고를 알아야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연행록을 읽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한 글쓴이의 개인적인 관점과 경험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18세기 한글본 연행록의 천주당 견문기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검토가 가능했다. 천주당의 회화들은 어떠한 전고도 마련되지 않은 텍스트로 연행사들 앞에 놓였기 때문에 천주당 회화에 대한 기록은 연행사들을 압도한 그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18세기 한글본 연행록에 나타난 천주당 견문기를 대상에 대한 개인적인 미적 체험의 기록으로 정리했다. 또한 이러한 개인적인 미적 체험의 기록을 읽은 독자들이 이제 작자의 경험을 추체험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연행록의 독자들은 중세의 공통 문법에 근거하여 대상을 읽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경험의 기록을 읽고 경험의 주체와 자신을 동일시하여 그 경험을 자신이 해보았음직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는 데에서 독서의 의미와 흥미를 찾는다는 것이다. 한편 본고에서는 천주당 회화를 보고 연행사들이 느낀 충격을 ‘두려운 낯설음(uncanny)’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연행사들의 미적 체험은 서양인의 재현 능력에 대한 감탄보다는 재현이라는 관념 그 자체의 변화에 대한 충격에 가깝다고 보았다. 18세기는 이전 시기의 보편적 관념 혹은 이후의 새로운 세계관 어느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시선이 등장한 시기라는 것이다. 요컨대 본고에서는 18세기 한글본 연행록에서 글을 읽고 쓰는 것이 개인을 드러내고 개인을 읽는 작업으로 변화하는 양상과 조선 후기 재현 방식의 변화에 대한 당대인들의 ‘두려운 낯설음’이라는 반응을 읽어낼 수 있었다.
In this study, I tried to find out traits of writing and reading in Yeonhaengrok in Korean Version from 18th century. Until 18th century, people evaluated Yeolnyeo based on the life of Yeolnyeo, which was written in cannon. But the life of Yeolnyeo written in Yeonhaengrok in Korean Version was reviewed depending on the perspective of the writer. The writer of Yeonhaengrok read and evaluated discourses of Yeolnyeo depending on the perspective of themselves. Of course, this manner of writing would have affected even reading method. In other words, readers also, did not need to know the cannon in order to read this text. Therefore, it can be observed through the Yeonhaengrok in Korean Version that the work of reading and writing books changed the work of reading and writing the individual. The travelogue of the Catholic Church is also the same as it. In fact, paintings Catholic Church was very strange to Yeonhaengsa. They felt afraid or strange to see it and this feeling can be called 'uncanny'. And, this leads personal reading naturally. Readers identified themselves with the writer individuals. In short, 18th century Yeonhaengrok in Korean Version has a close relationship with the process of converting the writing and reading texts in a very personal thing.

7,300원

4

노가재 『연행일긔』 국문본의 이본 고찰 -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 박물관 소장본을 중심으로 -

신효련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9집 2016.02 pp.43-65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이 글은 노가재 김창업의 <연행일긔(燕行日記)> 이본(한문본 8종, 국문본 3종) 중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 박물관에 소장된 권10과 또 다른 국문본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을 비교함으로써 국문본 이본들 간의 관계를 밝혀 보고자 하였다. 이 두 이본은 각각 권1, 2, 4와 권10만이 현전하고 있기 때문에 내용의 대조를 위해 규장각 소장 한문본도 함께 살펴보았다. 2장에서는 권10과 기존의 국문본, 그리고 규장각 한문본의 내용 구성을 비교․검토하였는데 내용의 유사성과 배열 순서, 각 이본의 내용적 오류 등을 살핌으로써 권1이 다른 이본들보다 연행과 가까운 시기에 쓰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3장에서는 국문본 이본들에서 나타나는 언어적 현상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는데, 한 이본에서 다른 이본보다 앞선 시기의 언어 현상이 관찰되기도 하고 이후 시기의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여, 근대국어의 전반적인 특징인 언어현상의 변화와 혼재를 이 자료들에서도 볼 수 있었다. 내용적 측면과 언어 사용 측면에 있어서 각 이본들의 관계를 정리해 본 결과,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인 국문본이 규장각 소장 한문본이나 뿌리깊은나무 박물관의 권10보다 앞선 시기에 쓰인 것일 가능성이 높다.
Nogajae's Yeonhangilgi has two types of different versions, eight Chinese and three different Korean versions. This paper compares the Korean versions held at the Deep Rooted Tree Museum and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and discusses their relevance. Because these two versions have only volumes 1, 2, 4 and 10 presently, for contrasting purposes the Chinese version of Kyujanggak Archives is also considered. In conclusion, it is quite probable th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s version is the earliest one compared with the Deep Rooted Tree Museum's version and the Kyujanggak Archives's version.

6,000원

5

한글 연행록류의 서지와 산출 시기

한영균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9집 2016.02 pp.67-94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이 글은 현재 전해지는 산문 한글 연행록류의 전체 목록을 작성하는 한편, 각 자료의 표기법 및 음운변화 반영 양상을 토대로 자료의 산출 시기를 확인하고 그를 통해서 필사본 산문 한글 연행록류의 국어사적 가치를 검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현전하는 산문 한글 연행록은 14종인데, 지금까지 확인된 한글 연행록류의 목록을 사행 시기를 고려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朝天日乘』:1624 ② 『됴텬녹』:1625 ③ 『연ᄒᆡᆼ일긔』:1712 ④ 『상봉녹』 :1727/1741 ⑤ 『셔원녹』:1765/1769 ⑥ 『을병연ᄒᆡᆼ녹』:1766/1769~1771 ⑦ 『기축연ᄒᆡᆼ녹』:1770 ⑧ 『승사록』:1790/1790~1791 ⑨ 『경술열하기』:1790/1791 ⑩ 『휴당연ᄒᆡᆼ녹』:1793/19세기 초? ⑪ 『무오연ᄒᆡᆼ녹』:1798~1799/1798~1799 ⑫ 『연암열하일긔』:1780/(1799?/1859?) ⑬『븍연긔ᄒᆡᆼ』:1813/1816 ⑭ 『연ᄒᆡᆼ녹』:1858 2장에서는 이들 14종의 한글 연행록류의 사행 관련 정보, 현존본, 소장처, 이본 등을 정리하였고, 3장에서는 ① 어두 자음군의 표기 ② ㄷ 구개음화의 반영 양상이라는 두 가지 국어사적 변화가 각 자료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를 살피고, 그를 바탕으로 한글 연행록의 번역 내지 필사의 선후 관계를 추정하였다. 4장에서는 2장 및 3장에서의 검토 결과를 바탕으로 현전하는 한글 연행록류의 산출 시기에 따른 선후 관계를 정리하였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③『연ᄒᆡᆼ일긔』:1712/18세기 전반, ② 『됴텬녹』:1625/18세기 이후, ⑤ 『셔원녹』:1765/18세기 후반, ④『상봉녹』:1727/18세기 후반, ⑦ 『기축연ᄒᆡᆼ녹』:1770/18세기 후반, ⑧『승사록』:1790/18세기 말, ⑨ 『경술열하기』 :1791/18세기 말, ⑩ 『휴당연ᄒᆡᆼ녹』:1793/19세기 전반, ① 『朝天日乘』: 1624/18세기 말 혹은 19세기 초, ⑥ 『을병연ᄒᆡᆼ녹』:1766/19세기 전반, ⑬ 『븍연긔ᄒᆡᆼ』:1813/19세기 전반, ⑪『무오연ᄒᆡᆼ녹』:1798/19세기 전반, ⑫ 『연암열하일긔』:1799/19세기 중반 이후, ⑭ 『연ᄒᆡᆼ녹』:1858/19세기 후반
This paper aims to list the whole prose version of Yeonhaengnoks written in Korean and to clarify the bibliographic characteristics and to estimate the dates of the production of each text by investigating historical-linguistic characteristics. 14 Yeonhaengnoks have been analysed which are dating from 17th century to 19th century. In chapter 2, we examined the bibliographic characteristics of 14 Yeonhaengnoks and summerized the various version of each text. In chapter 3, the author amde an assumption on the the dates of the production of each text by investigating historical- linguistic characteristics-namely t-palatalization and changes in spelling of consonant- clusters. In chapter 4, we summerized the ordering of the texts by the dates of their productions.

6,700원

6

동경대 소장 한글본 『熱河記』의 번역 양상

조미희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9집 2016.02 pp.95-130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이 글은 연암의 『熱河日記』를 번역한 동경대 소장 한글본 『熱河記』의 번역 양상을 살펴봄으로써, 원문과 번역본의 관계를 정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①책의 형식과 기록을 통해 책이 형성된 시대와 배경을 추정하고, ②내용을 한문본과 대조함으로써 내용의 출입과 개작 양상을 살펴 보았으며, ③문장에 쓰인 한자어 서술어를 통해 한글본 독자에게 쉽게 읽힐 수 있는 문장이 사용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한글본 『熱河記』는 한문본 『熱河日記』의 충실한 번역물이 아니라, 비교적 자유롭게 개작되어 민간에서 흥미 위주로 소비되었다는 것을 밝혔다. 이로써 한글본 『熱河記』가 조선에서 한글 산문의 창작 능력을 기르는 초기 단계의 한 예로서 가치를 가짐을 새로이 알 수 있었다.
This paper aims to determine relationship between Chinese version of "Yeolhailgi" and its Korean translation "Yeolhagi" considering the following evidences. ①"Yeolhailgi" is made in 19th century judging by form and content, when business of sechaek(book rental) was brisk. ②The liberal tendencies of translation and lots of modification are observed. ③"Yeolhailgi" the book is written in easy sentences to Korean readers. These facts draw a conclusion that "Yeolhagi" is not a literal translation of "Yeolhailgi" but a liberal translation which have characteristic of creative work.

7,900원

기획논문2

7

[기획의도2] 문화콘텐츠의 창작소재와 국문학

고운기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9집 2016.02 pp.131-134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4,000원

8

창작소재로서 원효 이야기의 재구성

고운기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9집 2016.02 pp.135-168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신라 승려에게 성인 만남은 절실했다. 성인 만남은, 다소 세속적인 표현이기는 하나, 득도(得道)의 확정이라는 점에서 버릴 수 없는 가치를 지녔다. 여기에 또 다른 의의를 부여할 여지가 있다. 그것은 불교에 대한 주체적 인식이고, 본지수적(本地垂迹)과 불국토 사상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귀일(歸一)하는 사람이 원효(元曉)이다. 원효에게는 생애 동안 두 번의 선언이 있다. 첫째, 요석공주를 만나 설총을 낳을 때, ‘하늘 괴는 기둥을 자르겠다’고 한 것. 제1선언이다. 둘째, 의상과의 도당행(渡唐行) 중 홀연히 돌아서며, ‘마음 바깥에 법이 없다’고 한 것. 제2선언이다. 순서는 파계 이후 도당(渡唐)이 이어지는 것으로 본다. 도중에 돌아온 원효는 소성거사(小姓居士)라 칭하고 거리로 나섰다. 무애행(無碍行)은 원효에게 궁극의 깨달음이다. 두 번의 선언 끝에 무애행으로 이어지는 원효의 삶은 생전사후의 평가가 사뭇 다르다. 꺼리는 시골 승려에서 성인(聖人)의 반열로 승화한다. 그 변곡점은 중국과 일본에서의 높은 평가 그리고 그것이 신라 안으로 유입되는 때에 맞춰진다. 진정한 평가란 이렇듯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일연은 『삼국유사』를 통해 결정적으로 원효의 지위를 확인해 놓았다. 13세기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시대에 일연은 중국을 보되, 불교를 생각하되, 바람 앞의 등불이 꺼지지 않으려면 취해야 할 자세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원효의 발견이었다.
It is acute for a priest of Silla as for the encounter of the saint. It is secular expression, but has the value that I cannot abandon at the point called the decision of the profit degree. The person that we are united into one eventually here is Wonhyo(元曉). In Wonhyo, there is 2 degrees declaration. During the life of Wonhyo there are two declarations. First, birth to Seolchong(薛聰), “I will cut the pillars supporting the sky.” Second, turn around go to China, he said, “There is no law on the outer mind.” Returned on the way, Wonhyo went to the town. It is a start of Muaehaeng(無碍行). 2 degrees declaration, life of Wonhyo leading to Muaehaeng again are totally different in a post mortem evaluation during the lifetime. He sublimate in a group line of the saint from a priest of country. The point of inflection is the time when high evaluation and that of China and Japan flow in Silla society. With the genuine evaluation, It needs time in this way. There is not the person that one of Wonhyo is dramatic, and one of a life of Wonhyo does not have a dramatic case.

7,600원

9

정조(正祖) 스토리텔링의 구조와 의미 - 소설 『영원한 제국』을 중심으로 -

최민성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9집 2016.02 pp.169-194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이 글은 정조 스토리텔링의 구조와 의미를 분석하기 위해 가장 영향력 있었던 초기 작품인 󰡔영원한 제국󰡕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이 작품에서 주목한 부분은 철저히 영남 남인(南人)의 시각을 채택해서 정조의 이야기를 전개했다는 점이다. 그것이 단순히 작가의 세계관을 나타내는 정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정조 스토리텔링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조 이야기의 출발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죽음에서부터 촉발된다. 영조 대에는 사도의 죽음이 영조와 세자 사이의 불화에서 비롯되었다는 데 합의가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정조가 사도에 관한 기록을 제거하면서 이 사건이 당시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의 기억에 의존하여 기록될 수밖에 없었고, 여기서 해석의 다양성, 당파성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새로이 정조에 의해 기록된 「현륭원지문(顯隆園誌文)」이 공식적인 사도에 대한 평으로 확정된다. 그 이후로 정조는 조금씩 사도 추숭의 강도를 높이며 그것으로 당파들의 의리를 조정하는 정치 전략을 썼다. 이 과정에서 특히 당시 소외받던 당파들이 집권 노론을 견제하면서 사도세자를 높이는 새로운 의리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특히 정계 복귀를 꿈꾸던 남인 계열에서 당론서를 저술하면서 강력하게 전개됐다. 이 당론서들은 이후 사도세자와 관련된 노론음모론, 정조독살설 등이 확산되는 단서가 된다. 영남 남인의 직계 후손인 작가는 집안의 당론을 뼈대와 정신으로 󰡔영원한 제국󰡕을 창작한다. 소설 󰡔영원한 제국󰡕은 20세기 말에 세련된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채색된 새로운 당론서이자 가장 성공적인 당론서라고 말할 수 있다. 소설 󰡔영원한 제국󰡕이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남인의 정신을 대중이 호응하는 방식으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첫 번째 비결은 추리 소설의 모티프를 따서 남인 당론서의 의리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금등’을 둘러싼 퍼즐을 맞춰가는 추리 스토리의 구조를 당의(糖衣)로 활용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남인의 의리에 따라가도록 만들었다. 또 󰡔영원한 제국󰡕에서 주인공을 정조가 아닌 규장각 각신 이인몽으로 잡아 이야기 속에 쉽게 감정이입하게 한 것도 효과적이었다. 독자들은 이인몽의 세계관에도 자연스럽게 동조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가 골남(骨南)으로서 가지는 세계관, 입장에 자연스럽게 동조하는 결과를 낳는다. 스토리텔링의 층위에서는 정조를 비극적 영웅으로 설정함으로써 자연히 정조를 흠모하게 하고 그를 숭상하던 남인의 정조에 다가가게 만들었다. 또 정조의 적대세력으로 노론을 획일적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적으로서의 능력을 과장함으로써 대중적 이분법을 설정함과 동시에 노론을 절대악으로, 남인을 절대선으로 인식하게 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결국, 추리기법을 활용하고, 골남인 이인몽에게 감정이입하게 하고, 정조의 능력을 극대화하며 동시에 적대자인 노론의 사악함도 과장하는 스토리텔링의 방법들을 통해 󰡔영원한 제국󰡕은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고, 그 바탕이 되는 남인의 세계관을 대중들에게 광범위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비주류에 불과하던 남인의 정조 해석이 주류가 되는 대역전의 흐름이 만들어졌다.
This article took to the study of the most influential early work of Eternal empire to deal with the essence of the story-telling mood. Works that point by adopting the vision of Namin(南人) a fully deployed the story of JeongJo. It's not just about staying in representing the world of writers, JeongJo has confirmed that dominates both the structure and meaning storytelling. Eventually can say that the novel Eternal Empire colored Dangron book. stylish new storytelling techniques in the late 20th century. The first secret to this novel could get a response to the public is due after the motif of the mystery had passed the loyalty of Namin Dangron book. It caught the protagonist of the novel Gyujangak gaksin Yi, InMong is a good choice for us to talk easily in empathy and deliver the pleasure to see live the 18th century shipbuilding. Do not easily grasp the intention of the JeongJo, the level of protagonist a hero to conspiracy Noron fits well with our eye-level living a normal life. One of the reasons Eternal Empire could succeed because that is also establishing a new phase of the Joseon king Jeongjo. Make the story more interesting character is also harmful should never be powerful, but equally powerful. In the novel Noron simplified and gives a powerful and wicked enemy forces than the actual Noron him. Since the late 20th century as a popular story of the Eternal Empire on the success essay, Namin, including minority union of this catch was captivated public, it suffered a sophisticated storytelling power of the Eternal Empire said that.

6,400원

10

웹툰 『조선왕조실톡』의 역사소재 활용방식

김대범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9집 2016.02 pp.195-237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최근의 웹툰은 다양한 장르로 구분되면서 사람들로부터 대중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특히, 역사를 소재로 한 웹툰 『신과 함께』, 『조선왕조실톡』은 글과 이미지로만 구성된 만화로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영화, 드라마 등으로 OSMU 되어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이 글에서 다룰 웹툰『조선왕조실톡』은 태조에서 철종까지 25대 임금이 다스렸던 472년 동안의 기록이 담긴 『조선왕조실록』을 역사소재로 하여 작가의 상상력을 더하여 재구성한 작품이다. 주목할 것은 『조선왕조실록』이 역사적 사건의 요약이라기보다 서로가 주고받는 대화를 적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모바일 메신저(카카오톡)의 형식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웹툰『조선왕조실톡』의 성공 요인을 몇 가지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첫째, 어렵고 딱딱하다고 느끼기 쉬운 『조선왕조실록』을 사진 첨부 및 이모티콘, 읽음 및 친구초대, 그 밖의 기능들을 활용하여 누구나 읽기 쉽고 이해하기 편하게 내용을 구성했다는 점이다. 특히 모바일 메신저(카카오톡)의 기능은 상대방을 이해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메시지로 커뮤니케이션의 특징을 반영시켰다. 이러한 기능은 표현방식이 친숙하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결국은 『조선왕조실록』 DB의 정확한 사실에 기반을 두었기에 이와 같은 성공도 이끌 수 있었을 것이라 판단된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문화콘텐츠 영역에서 흔히 말하는 ‘창작소재’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전통 창작소재가 기능상의 변화로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영화 ‘왕의 남자’나 ‘광해’의 경우 『조선왕조실록』 DB의 일부 대목을 소재로 활용하였던 것에 비하여, 웹툰 『조선왕조실톡』은 『조선왕조실록』 DB 전체를 보다 더 전면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한 것이다. 둘째, 『조선왕조실톡』은 역사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가의 기획력과 상상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중 흥미를 이끌어 낼만한 소재를 선택하여 에피소드를 구성했다는 점과 에피소드별로 창의적인 제목을 덧붙인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고 그 에피소드를 시작하기 전 프롤로그에서 궁금증을 유발시킬 수 있는 그림이나 짧은 글로 호기심을 유발시키기도 했다. 아울러 역사기록에는 기록되지 않은 작가의 상상력이 덧붙여져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상상의 부분은 역사왜곡의 문제를 벗어나는 장치로 ‘기록에 없는 것’으로 정리해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카카오톡의 기능을 통한 희곡적 서사전개의 특성을 서사전개에 활용했다. 예를 들어 등장인물들 간에 서로 주고받는 극적 대사를 통하여 이야기 하고 있는 경우이다. 그 결과 웹툰 『조선왕조실톡』에서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극적 대사를 통하여 이야기 하며 각 편마다 전달하고자 하는 극적 내용이 명확하고, 제한된 카카오톡 메시지 창 안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완결시켰다. 이처럼 모바일 메신저(카카오톡)의 기능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특성을 잘 반영했다는 점, 역사적 사실을 극적 대사로 활용하여 희곡적 서사로 전개해 나갔다는 점이 웹툰 『조선왕조실톡』의 성공요인이라 하겠다. 웹툰『조선왕조실톡』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소재를 창작소재로서 활용할 때, 기능적인 활용방식, 예를 들어 카카오톡의 기능적인 부분의 활용, 『조선왕조실록』 DB를 충분히 응용한 중요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중요한 차례의 의미와 차후 소재 개발을 위한 방향을 다루어 보았다.
Recently the webtoon is distinguished into various genres and is obtaining the popular support. Particularly, 『Joseon Dynasty Siltok』 following 『with God』, a webtoon based on the history, is not limited to the cartoon consisting only of texts and images but is comprised by movies and dramas under OSMU to develop with the people's active participation. The webtoon 『Joseon Dynasty Siltok』 to discuss in this paper is a work based on 'Annals of Joseon Dynasty containing the record for 472 years governed by 25 kings from Taejo to Chuljong and is reorganized by adding the writer's imagination. Particularly, 『Joseon Dynasty Siltok』 is being used as a form of the mobile messenger (Kakaotalk) considering 'Annals of Joseon Dynasty contained conversations each other shared rather than a summary of historic incidents. The success elements of the webtoon 『Joseon Dynasty Siltok』 can be analyzed as follows. First, 'Annals of Joseon Dynasty that was considered as difficult and solid was composed for everyone to read and understand easily by means of photo attachment, imoticon, reading & friend invitation, and other functions. Consequently, the function of mobile messenger (Kakaotalk) is, using purposefully pre-constructed messages to easily get the message out to its viewers, which strongly reflects a characteristic of communication itself. Although it can be a success factor that the expressive method is familiar in terms of function, eventually this success is attributed to being based on the exact fact of 『JWS』 DB. In this part, we can know the importance of the 'created material' we commonly say in the cultural contents area. Because the traditional created material anyone knew could lead a new change by the functional change. While the movies 'King's guy' and 'Gwanghae' utilized some parts of 『JWS』 DB as a material already, the webtoon 『JWJ』 utilized the whole of 『JWS』 DB more completely, which is remarkable. Also, the artist's planning power and imagination which interpreted the history in a modern way are excellent. There is a reason why the episode was organized by choosing materials that could attract interest among the record of 'Annals of Joseon Dynasty and why the creative title was added to each episode. And it aroused the curiosity by the picture or short text that could arouse curiosity at the prologue before starting that episode. It was interpreted in a modern way because the artist's imagination was added which was not recorded in the history record, and the imagination part is a device to escape from the problem of historic distortion and is regarded as what does not exist in the record. This is to utilized unique and well-known Kakaotalk's function as a narrative device to take advantage of the characteristics of dramatic narrative development. Author speaks his mind through exchange of dialogues between characters in the webtoon. Based on historical facts, each episode of webtoon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clearly portrays its message via dialogues between characters and complete the story within the constraints of Kakaotalk chat room message window. Ultimately, the success of webtoon 『Joseon Dynasty Siltok』 are the effective usage of function of mobile messenger (Kakaotalk) to reflects a characteristics of communication and historical facts as narrative device to unfold dramatic narrative development. When using the historic material we know as a creation material like this, we can pay attention to the functional use method because it is certain the webtoon 『Joseon Dynasty Siltok』 is a case that fully utilized 『JWS』 DB by using the functional part of Kakaotalk well. Also, its study value is high because it contributed to expanding the direction of the applicability of DB largely. It is expected the constant attempt to develop materials will be made starting from this study.

9,000원

[일반논문]

11

18세기 후반 서적유통 및 세책(貰冊) 문화 비교 연구(Ⅰ) - 한국과 슬로바키아의 사례를 중심으로 -

이민희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9집 2016.02 pp.237-281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국내에 세책본 소설을 중심으로 한 세책 문화 관련 연구가 짧은 기간에 상당 수준 이루어졌다. 그러나 자료 부족으로 세책 문화 이해에 한계가 있다. 국내 세책 문화의 특징을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교해 그 보편성과 특수성을 확인하고 세계문학사적 이해를 꾀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고는 그 일환으로 국내에 아직 소개가 전무한 동유럽 국가 중 슬로바키아의 세책문화를 살펴 국내 세책 문화의 특징을 변별함으로써 세책문화 비교론을 시도해 보고자 했다.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와 유럽에서의 서적 유통과 세책문화의 형성, 발전 과정은 18세기 후반에 서울에서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는 상업적 서적 유통망의 형성과 맞물려 세속문학이 발달하고, 새로운 독자층이 등장한 것과 관계된다. 18-19세기에 양국에서는 소설로 대표되는 자국어 세속문학 작품을 즐겨 향유하는 새로운 독자층이 형성되었다. 이런 독서 욕구가 충족될 수 있었던 사회 문화적 요인으로 서적 행상과 세책업에 의한 상업적 서적유통이 적잖은 기여를 했다고 보았다. 기득권을 갖고 있던 보수층에서 출판과 도서 보급, 유통을 막으려는 시도가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독서물인 소설과 비종교적 서적에 대한 독서 욕구가 하나의 트렌드로 나타나자 세책업이 자연스럽게 그 욕구를 충족시키며 발전해 나간 것이 18세기 후반의 모습이다. 세책 독서문화는 상업적 서적 유통 시장이 형성되고, 민족어문학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일종의 여가 활동이자 문화 활동이었다. 독자의 수요와 작가의 공급이 상업적 유통의 형성과 맞물려 새로운 지식 문화를 이끌었으며, 공동문어문학이 아닌 자국어문학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독서 환경의 조성은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동력이 되었다. 이때 새로운 세책 독서문화의 주체는 여성 독자, 또는 도시민이었다. 이런 현상이 한국과 슬로바키아 문학사에서 두드러졌던 것은 문화권의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에 위치해 있으면서 라틴어문학과 한문학으로 표상되는 기득권 세력과 새로운 자국어문학과 세속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문학 담당층 간 갈등이 문화적 욕구로 표출된 결과이다. 상업적 서적 유통의 구축은 새로운 작가, 독자, 그리고 작품(자국어문학)의 요구를 충족시키며 독서 문화를 증폭시킨 장본인으로 양자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책문화와 도서 유통의 전반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정치적 검열 제도(금서), 경제적 상업 활동(유통과 생산, 소비), 자국어 문학의 발달, 독자층의 형성, 독서 욕구 등 제반 요소의 종합적 고찰이 필요하다.
This paper attempted to outline book distribution's features in the case of Korea and Slovakia. This is made under the assumption that East Asia and Eastern Europe are similar to reading history's book distribution. One of the areas where features of this book distribution are well captured in the literature is Slovakia and Korea. It is identified in common that book peddler appeared and activated before emerging of circulating libraries and bookstores as a principal of book distribution. Books which were handled in circulating libraries in both Korea and Slovakia in the late of 18th century, were not such noble religious books and canons, but usually books like romance, secular literature which emerged at that time. The readers who read books of a new taste with favor were female readers, or lower classes, and they also were readers of the national language literature. It means that a reading culture changed to a lower class or female from male intellectuals with a vested interest, and to secular literature from religious books. Especially circulating library devoted attention to the upcoming novels and books of various anti-religious tendencies. In addition, it is natural that censorship and crackdown is bound to be limited, a new trend appeared to devour the novel and unexplored documents. The two countries were not the center of civilization commonly. And the conflict between readers(=nobles) who liked to read Latin(or Chinese) literature and ordinary readers who were interested in reading literary works in national language, was commonly well exposed to literary history through change of book distribution culture and development of circulating book business. It is also common that circulating library business was more developed in the relatively peripheral country than cultural center. It can be given a value in that history of book distribution has the special meaning in literary history of the countries.

9,300원

12

배지를 활용한 완판본 연구

이태영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9집 2016.02 pp.282-312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이 논문은 완판본의 배지에 나타난 여러 인쇄적 특징을 고찰한다. 그리하여 몇 가지 완판본의 특징을 살피는 데 목적이 있다. 관청에서 나온 책의 경우, 고문서를 여러 장 붙여서 표지를 만들었다. 그러므로 고문서의 다양한 종류를 확인할 수 있다. 고문서에 나타난 기록을 통하여 책의 정확한 출판 연대를 찾을 수 있다. 판매하는 책의 경우, 출판사에서 출판한 책의 한 면을 그 표지의 배면에 인쇄한 경우가 많다. 이를 통하여 책의 유통 경로를 파악할 수가 있다. 완판본의 경우, 배지에 다양한 고전소설과 판매하는 책이 인쇄되어 있다. 그래서 출판한 연대와 출판사, 이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한 태인본이 전주에서 다시 출판되는 정보를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완영본이 방각본으로 출판되는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배지에 나타나는 다양한 특징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 서지학적인 사실은 물론, 문화사적인 특징도 파악할 수 있다.
This paper examines the various printing characteristics indicated on the back of Wanpanbon. Thus it aims to look at the features of several Wanpanbon. the book of Whitehall made the cover by attaching multiple copies of the archives. So we can see the various types of archives. we can find the exact dating of the book publishing through the records appear in the archives. For the book to sell, the one side of the book published by the publisher is often printed on the back surface of the cover. we can determine the distribution channel through the book. For Wanpanbon, there is a variety of classic novels and books for sale are printed on the back. so we can get a year of publication and the publisher, information other editions of the book. we can also determine in detail the information that this Taeinbon published again in Jeonju. On the other hand we can get specific information which Wanyeongbon is published in the Banggakbon. Thus look at the various features that appear on the back surface, a number of bibliographic fact, of course, would also be able to identify features cultural history.

7,200원

13

조선과 일본 문헌에서의 통신사행원 명단 비교 고찰 - 『통신사등록』과 『조선통신총록』을 중심으로 -

진영미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9집 2016.02 pp.313-345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조선 후기 통신사행 때, 적게는 300여명, 많게는 500여명의 사행원이 일본에 다녀왔다. 그런데 조선 측 문헌과 일본 측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사행원의 명단을 비교 고찰해보면, 동일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성명이 각각 달리 소개되어 있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 점에 초점을 맞추어 조선 측 문헌 『통신사등록(通信使謄錄)』과 일본 측 문헌 『조선통신총록(朝鮮通信總錄)』을 기본 텍스트로 선정하여, 각각 어떤 문헌인지 서지적 검토를 한 뒤 이어 동일인물로 추정되는데 양국 문헌에 달리 소개되어 있는 통신사행원들을 중심으로 이들의 성명이 어떻게 달리 표기되어 있는지 그리고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등을 고구해보았다. 그 결과, 한편으로는 유사한 한자로 인한 오기(誤記), 동음(同音)으로 인한 오기, 탈자와 뒤바뀜으로 인한 오기 등이 발견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름 대신 자호(字號)와 관직명으로 기록한 경우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대부분 조선 측 문헌인 『통신사등록』에는 오기가 적은 반면, 일본 측 문헌인 『조선통신총록』의 기록에 오기가 많았다. 일본 측 문헌에 오기가 많은 이유는 조선에 비해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고, 또한 필사본을 보고 다시 필사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고유명사란, 어느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을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고유의 기호를 붙인 이름인데, 이처럼 사행원 명단에 적지 않은 오기가 발견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어, 다양한 방증자료를 통해 명단의 오기를 바로잡는 데에도 역점을 두었다.
In late Chosun dynasty, between 300~500 Korean correspondents went to Japan. By the way, based on a comparison study of Chosun literature and Japan literature, we can considerably discover that many correnspondents’ names were written differently in each literature, even if they are the same person. In this paper, Chosun’s literature (Tongshinsadeungrok) and Japan’s literature (Chosuntongshinchongrok) will be reviewed and studied bibliographically to find out why this phenomenon happened and how correspondents’ names were written differently. As a result, we have discovered some differences such as misspelling due to similar Chinese character, same pronunciation words, an omitted words, and a reversed words. On the other hand, person’s name was written in one’s literature where person’s job position or Nichname was written in other literature. There were much fewer errors found in Chosun’s literature (Tongshinsadeungrok) compared to Japan’s literature (Chosun- tongshinchongrok). The main reason why there are more errors in Japan’s literature is because it was not easy for Japan to collect accurate information of Chosun, and they often transcribe the manuscript which can lead to errors. Ultimately, the main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orrect the errors of one significant correspondent’s name which listed differently in two different literature.

7,500원

14

조선후기 유럽에 대한 지리적 상상력 - <외이죽지사>와 <이역죽지사>를 중심으로 -

박혜민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9집 2016.02 pp.347-393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본고에서는 조선후기 외국을 소재로 하는 죽지사를 통해 유럽의 형상화를 고찰 할 것이다. 천하는 황제의 것이며,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인문학적 지리체계로 나라와 나라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중국인은 물론이고 그 지리체계를 공유하는 조선인에게 있어 ‘非向所臣屬之國’인 유럽의 존재와 그들이 전달하는 지리지식-둥근 지구에 다섯 개의 대륙이 있으며 중국은 그 중에 한 대륙에 존재하는 나라뿐이라는 실재-는 존이불론(存而不論)의 대상이 되거나 알 수 없고 모호한 『산해경』의 어느 해외 지역으로 배치되었다. 이와 같이 조선 후기 텍스트에서 유럽에 대한 인식을 본다는 것은 전통적 지리체계의 공고함 혹은 변화의 양상을 분석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조선후기 세계 여러 나라를 소재로 하는 죽지사로는 조수삼의 <외이죽지사>․<해중제이>와 이유원의 <이역죽지사>가 있다. 조선은 교섭국인 청, 일본, 류큐 등을 제외하고 외국과의 접촉이 거의 전무하였으나 아시아 지역은 물론 유럽까지 사신을 파견한 청말에 창작된 사신들에 의한 외국 소재 죽지사는 조수삼과 이유원의 죽지사와는 다른 층위를 가진다. <외이죽지사>와 <해중제이>의 지명을 고증하고 지역별로 분류하여 ‘외이’는 중국 정사 외국전 내 전통적인 이역(異域)인 인도양 지역의 나라들로 구성되고, 그 외의 지역과 유럽대륙은 ‘해중제이’에 배치된 것을 밝히었다. 그리고 불랑찰과 물누다 조의 경우 정백이의 󰡔방여승략󰡕에서 발췌한 것이나, 홍모국의 경우 동남아 지역으로 묘사된 것은 이전 연행기록과 표류기록에서 범한 오류가 반복된 것이다. 비록 홍모국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나 주어진 자료를 종합하여 유럽을 재구성하고 그 존재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이는 문헌을 통한 외국에 대한 방지학적 기술을 목적으로 한 우통의 <외국죽지사>의 서술목적을 계승한 것이다. 그리고 조수삼에 있어 유럽은 전통적인 이역과 다른 전혀 새로운 어떤 곳이었고, 그의 심상지도 상에서는 미지의 나라와 함께 배치되면서 그 낯설음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반면 이유원은 『해국도지』를 열람하고 당대 중국 지식인의 근대적 지리체계로의 변화를 인식하면서도 죽지사 창작에 있어서는 『황청직공도』의 지리체계를 요약하면서 전통적 지리체계를 재확인한다. 그에게 있어 <이역죽지사>는 당시 출몰하는 주요 서양열강들의 국명과 그들을 간편히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의 풍속 혹은 특징으로 집약되어 편집된다. 그것은 사료적 가치나 당대성을 담지하지 않으며, 기존의 익숙한 직방세계적 관점에서 소재차원으로 다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This research is to study the imagery of Europe through examining Zhuzhici Poetry of the late Joseon Dynasty that employs foreign nations as its subject matter. To Chinese people, their geographical system based on humanistic understanding dictated how their nation and its relations with other nations exited, thus led them to believe that the world belonged to Emperor and China was the center of it all. In the world of Korean people who shared the same geographical system, the existence of Europe, other than tributaries of China, and their knowledge of geography-the reality that there were five continents on the round earth and China was merely one of the continents-was not mentioned, thus it was ignored or imagined as one of fantastic countries. Therefore, to see their awareness of Europe in the late Joseon Dynasty text becomes a way to analyze the solidness of traditional geographical system or changing conditions of the time. Zhuzhici Poetries of the late Joseon Dynasty employing various countries around the world as subject matter include WaiyiZhuzhici(外夷竹枝詞) and Haizhongzhuyi(海中諸夷) by Cho Su-sam(趙秀三) and YiyuZhuzhici(異域竹枝詞) by Lee Yu-won(李裕元). Geographical locations of WaiyiZhuzhici and Haizhongzhuyi were researched and categorized by region, and “Waiyi(外夷)” consisted of countries in the Indian Ocean region which were tributaries to China in the Records of Foreign Nations(外國傳) of China’s official record of history, and other regions and the European continent were allocated in “Haizhongzhuyi” From this, it can be known that Cho Su-sam imagined that Europe was considered as an unknown country, or “a new foreign country” that was different from familiar tributaries. “小西洋” in YiyuZhuzhici meant India, and “大西洋” Italy. But, “小西洋” was Africa in Haigoutuzhi(海國圖志) the Qing Dynasty world geography which was widely read by Korean intellectuals at the time. “西洋” during the Ming Dynasty meant tributaries in the Central Asia and Indian Ocean region (Southeast and Southwest Asia and south of Africa). Therefore, Matteo Ricci was introduced as “大西洋人” which means he came from farther west than the region, and after that, all countries around Central Asia and Indian Ocean were called “小西洋.” Because of this, “少西洋” in YiyuZhuzhici and Haigoutuzhi was reduced to a certain region within the boundary of the countries in the Indian Ocean region. YiyuZhuzhici thoroughly summarized Zhigongtu(職貢圖) in which Europe might be included in China’s version of the civilized world(職方世界), or Europe was imagined as a region with such a possibility.

9,600원

15

한ㆍ중 속담에 나타난 불보살(佛菩薩)에 대한 인식 비교 고찰

이황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9집 2016.02 pp.395-430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본고는 한․중 속담에 나타난 불보살에 대한 인식을 비교 고찰한 글이다. 불보살은 부처와 보살을 함께 아우르는 명칭으로, 본고에서 필자가 대상으로 삼은 불보살이 직접 등장하는 속담은 한국 속담이 50여개, 중국 속담이 170여개이다. 먼저 한국과 중국 속담에 등장하는 부처와 보살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를 속담 속 칭호를 중심으로 그 양상을 살펴보았다.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전래받은 한국은 자연스레 중국에서 음차하거나 번역한 용어를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기에 대다수의 불교용어들은 중국어와 한국어라는 발음상의 차이를 가질 뿐 거의 동일한 뜻을 갖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Buddha를 음차한 한자어 ‘佛陀’(Fótuó)는 한국에서 ‘부처’라는 한국만의 칭호로 정착하였으며, ‘보살’은 한국과 중국에서 각기 다른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다음으로 불보살에 대한 인식을 비교 고찰하였다. ‘보살’이란 용어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인식이 서로 다른데, 그러한 인식이 속담에도 반영되어 나타난다. 한국에서 보살은 불교를 믿는 여자 신도를 지칭하기도 하고, 여자 무속인을 지칭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중국에는 없는 뜻이다. 반면 중국에서 보살은 넓은 의미의 부처로 인식되며 보통 부처를 보살로 칭하는 경우가 흔히 있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경우가 드물다. 또한 마음씨가 착하고 자비심 많은 사람을 비유하는 용어로 한국에서는 부처가 흔히 사용되는데 반해 중국에서는 보살이 그런 존재로 여겨진다는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한국의 돌부처와 중국의 금부처, 불보살을 대하는 태도, 향공양[燒香], 성불(成佛)을 소재로 한 속담들을 통해 한국과 중국의 불보살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This study aims to compare the awareness of Fopusa(佛菩薩), or the Buddha and the Bodhisattva through Korean and Chinese proverbs. Fopusa(佛菩薩) refers to both the Buddha and the Bodhisattva, and proverbs used as the subject of this study that included the Buddha and the Bodhisattva were over 50 Korean proverbs and over 170 Chinese proverbs. First, it looked into what kind of the Buddha and the Bodhisattva were there appeared in Korean and Chinese proverbs, focusing on titles used in proverbs. Since Buddhism came to Korea via China, most of Buddhist terminologies used in Korea was either borrowed or translated from the Chinese language, thus sharing almost the same meanings. The difference lied in the fact that the Chinese word referring to the Buddha, or “佛陀’(Fótuó)” became a uniquely Korean word, “부처(Bucheo)” in Korea, while the word referring to the Bodhisattva had different meanings in Korea and China. Next is to compare the awareness of the Buddha and the Bodhisattva. The awareness of the term “Bodhisattv” were different in Korea and China, therefore such difference was reflected in proverbs. In Korea, a Bodhisattva can also mean a faithful female Buddhist, or at times a female shaman, but there’s no such thing in China. In China, on the contrary, the Bodhisattva means the Buddha in a broader sense and the Buddha is often referred as the Bodhisattva. In Korea such meanings are rare. Also in Korea, to call a person with a good and generous heart the term Buddha is used as a figure of speech but in China it is the Bodhisattva that is used in a similar way. In addition, this study confirmed the difference between the awareness of the Korean Buddha and the Bodhisattva and the Chinese Buddha and the Bodhisattva, through proverbs featuring the Korea’s stone Buddha and the China's gold Buddha, attitude toward the Buddha and the Bodhisattva, incense prayers(燒香) and attaining Buddhahood(成佛).

7,900원

16

필담창화집 『홍려필담(鴻臚筆談)』에 대하여 - 위작과 그 의의를 중심으로 -

조영심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9집 2016.02 pp.431-456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본고는 일본 가가와대학(香川大学) 간바라문고(神原文庫)에 소장되어 있는 『홍려필담(鴻臚筆談)』에 대해 소개하고 분석했다. 『홍려필담』은 1711년도 통신사(辛卯․正徳)의 정사 조태억(趙泰億), 부사 임수간(任守幹), 종사관 이방언(李邦彦), 제술관 이현(李礥) 등과 당시 에도 막부의 집정관이었던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가 주고받은 서간문 및 필담이 기록되어 있는 텍스트이다. 아라이 하쿠세키의 처남인 구사카베 가게히라(日下部景衡)가 편집한 텍스트이자, 아라이 가문의 가장본(家藏本)으로서 ‘비서(秘書)’로 소장되어 왔다고 지어(識語)에 기록되어 있다. 『홍려필담』에는 14편의 서간문 및 필담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고비(古碑)․전각(篆刻)․종이 등 양국 문화에 대한 많은 화제가 제시되는 필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일본에서 한국을 거쳐 중국으로’ 전해졌다는 일본 ‘다호비(多胡碑)’의 탁본 문제가 기록되어 있어 관심을 끈다. 현재 학계에서 다호비에 대한 정보는 1763-4년 조선통신사가 일본학자 사와다 도코(沢田東江)를 통해 조선에 들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와다 도코 및 주변의 인물들과 1764년도 사행단원의 교류를 담은 『경개집』이라는 필담창화집을 확인한 결과, 『홍려필담』은 『경개집』을 거의 그대로 베낀 위작 텍스트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아가 장서인 등을 통해 고증해보면 『홍려필담』은 1711년보다 적어도 150년 이상 후대에 작성된 텍스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위작이 확실시 되는 부분은 『홍려필담』의 필담 부분으로, 앞쪽에 실린 서간은 위작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 만약 서간 부분이 실제 아라이 하쿠세키와 통신사가 남긴 기록이라면, 1711년도의 조일 교류뿐만 아니라 조태억과 이방언의 대일인식 및 아라이 하쿠세키의 조선인식을 보여주는 단서로서 활용될 수 있다. 이러한 위작을 작성한 의도에 대해서는 확정할 수 없으나, 확실한 것은 아라이 하쿠세키와 조선통신사의 만남이 있었던 1711년에서부터 적어도 150년 이후 아라이 하쿠세키가 다시 호명되었고, 더불어 조선통신사도 재언급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일본 내에서 통신사를 둘러싼 필담창화집이 위작을 발생시킬 정도의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This manuscript introduces and analyzes the Hongnyeopildam(鴻臚筆談) which is currently stored in Kanbaraboonko(神原文庫) at Kagawa University(香川大学). The Hongnyeopildam is a series of correspondences and written conversations that were exchanged between the 1711 Tongshinsa(辛卯․正徳) delegation which included Jeongsa Cho Tae-eok(趙泰億), Busa Im Su-Gan(任守幹), Jongsagwan Lee Bang-Un (李邦彦), and Jesulgwan Yi Hyun(李礥), and the Japanese executive official of the time, Arai Hakuseki(新井白石). The Hongnyeopildam was edited by Arai Hakuseki’s brother-in-law Kusakabe Kagehira(日下部景衡) and is mentioned in the JiUh(識語) to have been kept by the Arai family as a secret manuscript. The Hongnyeopildam contains 14 letters of correspondences and written conversations. One point of interest is a written conversation that focuses on cultural aspects that include memorial stones(古碑), engravings(篆刻), and writing papers. This written conversation mainly deals with the Dahobi(多胡碑), a engraving that made its way to China from Japan while going through Korea. Contemporary information on the Dahobi state that this engraving arrived from Japan with the return of the 1763~1764 Tongshinsa delegation that had met with the Japanese scholar Sawada Doko(沢田東江) during their journey. Upon analyzing the Pildamchanghwaejib Gyunggaejib, which contained information on the interaction between Sawada Doko and Tongshinsa delegation, and contrasting it with the Hongnyeopildam, we have identified the Hongnyeopildam to be a forgery manuscript that plagiarizes the Gyunggaejib. Additional analyses on the ownership stamp of the Hongnyeopildam, show that this manuscript has been written at least 150 years later than 1711. The written conversations in the Hongnyeopildam are identified to be plagiarism, but the situation with the correspondences is uncertain. If these correspondences are true, they hold clues that show more than just the exchange between Joseon and Japan in 1711, but also highlight how Cho Tae-eok and Yi Bang-Un viewed Japan and how Arai Hakuseki viewed Joseon. Although the motive behind the forgery cannot be identified, the fact remains that 150 years after Arai Hakuseki met with the Joseon delegation, the name Arai Hakusuki and his meeting with the Joseon delegation was brought into light was again. This mentioning of the past led to the forgery of the Pildamchanghwaejib.
この発表では、香川大学神原文庫所蔵の『鴻臚筆談󰡕について、その紹介及び分析を試みる。 『鴻臚筆談』は江戸中期の政治家․新井白石と、1711年(辛卯․正徳)の朝鮮通信使の正使․趙泰億らなどが取り交わした、現在までに知られていない書簡と筆談が載せられたテキストである。 識語には、新井白石の義弟である日下部景衡の編集にかかり、新井家家蔵の「秘書」とされてきた、とある。 本書には14編の「書簡文」に加え、両国の文化に関する様々な話題が提示された「筆語」が収録されている。 その中でも、特に「日本から韓国を経て中国に」伝わった東アジア文化交流の端的な一例である「多胡碑」の拓本に関する話題が記されている点は、注目に値する。 現在韓国の学界では、「多胡碑」は1763-4年の通信使が沢田東江を通じて朝鮮に伝えたものとされており、『鴻臚筆談』の内容が正しければ、この認識を大きく改めることになる。 しかし、沢田東江らと1764年度の通信使間の交流を示した『傾蓋集』を確認した結果、『鴻臚筆談』はこの書をもとにして、1711年より約150年以上のちに偽作された筆談唱和集にみられる。 本書が偽作された理由について今は明確にできないが、一つ確実なのは新井白石と朝鮮通信使との出会いから約150年以上の後に、新井白石の名が再び呼び覚まされ、朝鮮通信使との交流が再言及された点である。 たとえ本書が偽作であったとしても、それは通信使に関する筆談唱和集が、偽作が出るほどの位置に置かれ、必要とされた証と言えるだろう。

6,400원

17

許蘭雪軒과 朱淑眞의 詩文學에 드러난삶의 殘影과 그 同異 - 유교적 질곡에 대응했던 韓ㆍ中 두 여류시인의시적 지향을 중심으로 -

王潔清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9집 2016.02 pp.457-483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본고는 전통시대 한․중 두 나라를 대표하는 여류시인인 허난설헌과 주숙진의 시세계를 비교한 글이다. 허난설헌은 한국의 여류시인들 가운데 중국에 가장 널이 알려진 인물로 만력 연간 1605년에 사신으로 조선에 왔던 朱之蕃에 의해 처음으로 대륙에 소개되면서 주숙진과 이이안 등과 같은 중국의 역대 여류문인들과 비교되기 시작했으나 시적 경향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 없었다. 허난설헌과 주숙진은 비록 시간과 공간을 달리했지만 이런 성리학적 사고가 지배했던 시대를 살면서 남편과의 불화를 겪으며 여성으로서 감내해야만 했던 삶의 한을 시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이들 두 여류문인의 시세계에 드러난 같고 다른 점을 검토해 본 결과, 비슷한 환경에 놓여 있던 허난설헌과 주숙진은 전통시대 여인들의 절절한 정한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사회에 대한 불만과 풍자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주숙진의 경우는 소극적 여심에서 벗어나 시대를 조롱하는 시도 남겼으며 허난설헌보다 성리학적 이데올로기에 대해 한층 더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점을 알 수 있었다. 허난설헌의 시적 경향의 특징은 전통시대 아녀자들이 겪어야했던 규방의 한을 유선시를 통해 승화시켰다는 점이며 이를 통해 문학적 상상 공간으로 선계를 지향함으로써 번민으로 가득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주숙진의 경우는 허난설헌과 다르게 詠史詩를 통해 역사와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주었다. 주숙진도 성리학적 관념이 지배했던 시대에 여성으로서 감당해야 했던 사회적 제한을 영사시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주숙진의 이런 시적 지향성은 허난설헌이 보여주는 선계에 대한 지향성과 또 다른 측면에서 문학적 돌파구를 보여주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본고에서는, 현실을 바꿀 수 없던 그녀들은 시공을 달리해 서로 다른 방법으로 자신이 처한 현실 사회에 대한 불만을 시문학으로 승화시켜 전통시대 여성문학의 極點을 보여주었던 것이라 평가했다.
This study compares the poetic world of Heonanseolhun and Ju sook-jin, each of them representing Korea and China’s woman poets. Heonanseolhun, the most well-known woman poet of Korea in China, was first introduced to the mainland China by Ju Ji-bun, an envoy sent to Chosun in 1605, and was compared with past Chinese woman poets such as Ju Sook-jin and I I-an. However, yet, there were no discussions on the differences of the poetic inclination between Heonanseolhun and the past Chinese poets. Though Heonanseolhun and Ju Sook-jin lived in different times and places, they share something in common; they spiritualized the resentment they had to endure while experiencing discord with husband in the period Confucianism was dominant. Examining the differences and similarities of the two woman poets shown on the poetic world has confirmed that the two ladies are reaching the level of satire and complaint though their works are based on both desperate affection and resentment of traditional women. Especially, Ju Sook-jin escapes from the traditional passive image of women and criticized the ideology of Confucian even stronger than Heonan- seolhun, leaving a poem making a mockery of the times. The feature of the poetic inclination of Heonanseolhun is that she sublimated the resentment and sorrow traditional women experienced through Taoist poem and that she pursued Sungye as a place for literary imagination in order to escape from the reality filled with anguish. On the other hand, Ju Sook-jin showed active interest in history and reality through historical lyrics. This is the different literary breakthrough from the pursuit of Sungye by Heonanseolhun. In this study, I estimated that the two woman poets, who was not able to change the reality, recorded the spike of traditional woman literature by sublimating the dissatisfaction of real world to poetry through changing the time and the place.

6,600원

18

한주 이진상의 미발설

이종우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9집 2016.02 pp.485-506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中庸󰡕의 未發은 朱子에 이르러 수양론으로까지 전개되었고, 湖洛논쟁에 이르러 선악여부에 대한 논쟁으로 전개되었다. 그 후 寒洲 李震相은 심의 미발을 리의 靜이라고 주장하면서 호락논쟁의 당사자들이 그것을 氣의 靜이라고 여겼다고 하여 비판하였다. 또한 한주는 그 상태가 바로 지각이 어둡지 않으며 사려가 아직 싹트지 않은 상태라고 말한다. 그것은 주자가 『중용』의 미발을 思慮未萌과 知覺不昧라고 해석한 것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는 心卽理이므로 미발상태에서 순선하고 그것은 성인 뿐만 아니라 범인도 모두 그러한 상태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주자는 성인과 범인이 모두 미발상태가 있다 말하기도 하고, 성인만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에 한주는 전자를 주자만년정설, 후자를 초기미정설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주자는 성인과 범인에게 미발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었고 오히려 미발시 공부를 강조하였다. 훗날 호락논쟁에서 南塘과 巍巖이 성인과 범인의 미발시 선악여부에 대하여 논쟁을 벌였고, 한주가 그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하였던 것이다. 한주가 미발을 순선하다고 말한 것은 호락논쟁의 巍巖과 상통하지만 전자는 리의 정, 후자는 기의 정이라고 여긴 것이 그와 다른 점이다. 한주는 未發 상태에서의 공부에서 戒懼를 강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已發 상태에서의 공부에서도 그것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退溪는 계구를 미발 상태에서의 공부에 국한시켰고, 반면에 한주는 이발 상태에서의 공부까지 확장시켰던 것이다.
Before Aroused of Mind is written in the Doctrine of the Mean, one of the Four Books. After that, Zhu Xi developed to theory of self-cultivation. After that, Horak debate between Neo-Confucian scholars of Joseon Dynasty developed whether pure good or, good and bad. Finally, Hanju Yi Jinsang argue quiet of li on Before Aroused of Mind and critique quiet of ki in Horak debate. He supposes that Before Aroused means quiet of li and ki immobile. This is perception dark, he say, and is influenced Zhu Xi, annotation on Before Aroused in the Doctrine of Mean. But Zhu interpret as perception dark and considering didn't arise about it. Hanju emphasize the perception because this is basis which mind is li. That is, the perception is basis which mind govern nature and feelings, and governing means li. Consequently, Before Aroused has pure good, both sage and person. But Zhu says they have Before Aroused or only sage has it. At the case, Hanju interpret resonable argument of Zhu on the former and not resonable argument him on the latter. But Zhu has not interest about it, meanwhile he has interest about the cultivation. After that, Oiam and Namdang, Horak debate, have interest about it. Thus, Hanju is influenced them. Hanju emphasizes cautiousness and apprehensiveness when mind has Before Aroused and After Interacts. But Toegye emphasizes cautiousness and apprehensiveness when mind has only Before Aroused. Consequently, Hanju extend Toegye's it.

5,800원

19

사행록을 통해서 본 일본 법제도에 대한 인식

박상휘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9집 2016.02 pp.507-534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본고의 목적은 16세기 말엽부터 18세기 후반 사이에 기록된 일본 사행록을 검토하여 일본의 법제도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탐구하는 데에 있다. 일본 사행록에는 일본의 엄격한 형벌제도와 철저한 감시체제에 대한 위화감과 관심이 나타나며, 사행원들은 마침내 도쿠가와 막부가 어떠한 법질서에 따라 사회를 통제하는지 예리하게 관찰하는 데에 이르렀다. 본고는 이 점에 착안하여 연구를 진행한 것이다. 일본의 법제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살피기 위하여 본고는 다음의 세 가지 사항, 즉 형벌제도, ‘고사츠’(高札), ‘세키쇼’(關所)에 대한 인식을 분석하였다. 분석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선 일본 형벌제도에 대한 인식을 살펴 사행원들이 일본의 잔인한 형벌방식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였음을 밝혔다. 다음으로 사행원들이 ‘고사츠’를 통해 일본의 치안이 유지되었던 사실을 포착하였으며, ‘세키쇼’가 철저한 감시의 기능과 아울러 군사요새로서의 기능을 겸비하였다는 사실도 지적하였음을 드러내었다.
This paper investigated the changes in the perception about the Japanese Legal System. For conducting this research, the paper examined ‘Sahangrok’ (diaries written by Korean emissaries to Japan) from the end of 16th century to the late of 18th century. The Korean emissaries showed great interest and disharmony about the severe punishment and thorough surveillance system of Japan. They keenly observed the Tokugawa Shogunate (Japanese government) and investigated how (by imposing what kind of law and order) the government had controlled the society. This paper conducted the research by paying attention to this particular point. The paper examined the perception regarding the ‘Punishment system’, ‘Kosatsu’ and ‘Sekisyo’ to study conversion in the awareness about the Japanese Legal System. The result of this study is as follows. Firstly, this paper confirmed that the Korean emissaries had showed negative understanding about the severe punishment system in Japan. This paper also verified the following points. The Korean emissaries had discovered that Kosatsu had played an important role in establishing public security. They also pointed out that Sekisyo had served the dual function of monitoring and being a military fortress.

6,700원

[시화연재]

20

장외시화(場外詩話) (10)

남상호, 詹杭倫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49집 2016.02 pp.535-542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4,000원

 
페이지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