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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상고전연구 [Yeol-sang Journal of Classical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열상고전연구회 [Society of Yol-Sang Academy]
  • ISSN
    1738-2734
  • 간기
    격월간
  • 수록기간
    1988~2019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한국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810 DDC 810
제51집 (14건)
No
1

3,000원

[기획의도]

2

민요와 디지털 박물관의 가능성

고운기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1집 2016.06 pp.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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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원

기획논문: 민요와 디지털 박물관의 가능성

3

<아리랑>의 토속성과 통속성

이용식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1집 2016.06 pp.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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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요는 가창자에 의해 일반 민중이 부르는 토속민요(또는 향토민요)와 전문소리꾼이 부르는 통속민요로 구분한다. 통속민요는 토속민요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토속민요보다 광범위한 향유층을 갖고, 각 지역문화를 대표하는 노래로 여겨진다. 토속민요와 통속민요의 밀접한 관련성은 <아리랑>에서도 찾을 수 있다. <아리랑>은 토속민요로 시작하여 일제강점기에 통속화하여 민족의 노래가 되었다. 이글에서는 <아리랑>의 토속성과 통속성을 규명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아리랑소리의 기원으로 강원도 토속민요인 <자진아라리>와 <긴아라리>를 꼽는다. 두 노래는 주로 일노래로 전승되면서 강원도의 음악어법인 메나리토리로 되었고, 4·4조의 노랫말을 부르기 위한 장단에 부른다. 강원도 토속민요가 일제강점기에 경기민요 소리꾼들에 의해 통속민요화하여 경기도 <긴아리랑> <자진아리랑> <강원도아리랑> 등의 노래가 만들어진다. 경기도 통속민요는 기본적으로 강원도 토속민요의 음악어법을 토대로 경기도 특유의 시김새와 창법을 가미하여 경기민요화한다. 3대 아리랑으로 꼽히는 <진도아리랑>과 <밀양아리랑>은 다른 경로를 겪는다. <진도아리랑>은 1930년대에 진도 출신의 대금 명인인 박종기가 토속민요인 <산아지타령>을 토대로 만든다. <진도아리랑>은 <산아지타령>과 거의 비슷한 선율과 노랫말을 갖기 때문에 판소리 명창들에 의해 연행되는 통속민요로 만들어지지만 토속민요화하여 전라도의 대표적인 민요가 된다. <밀양아리랑>은 1930년대에 만들어지면서 경기민요 소리꾼들이 부르는 통속민요인데, 음반 및 방송을 통해 전국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현재도 <밀양아리랑>은 토속민요로는 거의 기능을 못하고 통속민요로 전승된다. 그러나 ‘밀양’이라는 제목을 가지면서 <밀양아리랑>은 밀양이라는 지역음악의 대표적인 민요로 자리매김한다. 이처럼 <아리랑>은 강원도의 토속민요로 출발하지만, 일제강점기에 경기민요 소리꾼들에 의해 통속민요화하면서 민족의 노래로 자리매김 한다. 이 과정에서 토속민요의 음악어법은 유지하지만, 시김새와 창법은 통속민요화 한다.
Korean folk songs can be classified into folk song, or tosok minyo, and professional song, or tongsok minyo. The former is performed by the common people in their life, especially for the labor. The latter is sung by the professional singers who modify the folk songs. The profesinal songs have been adored by the people and have become the representative songs of regions with the musical idiom of the region. In this paper, I will explore the relationship of the folk song and the professional song through Arirang, the representative song of the Korean people. Most musicologists agree that the Arirang transmitted in Gangwon-do Province are the prototype of diverse versions of Arirang songs. The Arirang songs in the region are sung for mostly farming with the musical idiom of the region and the suitable rhythmic patter to sing the lyrics. They became the mother tune for the new Arirang songs in Gyeonggi-do Province. The new songs are sung by professional singers with the musical timbre of the region. Other regional Arirang songs have developed in other ways. Jindo Arirang was belived to be composed by Pak Jong-gi, a master musician from Jindo Island, in the 1930s. Pak made the song based on a regional folk song, Song of Sanaji, with similar melody and lyrics. Therefore, Jindo Arirang, despite its identity as a professional song, is regarded as a folk song which exhibit the genuine musical idiom of the region. Miryang Arirang was composed in the 1930s and became the favorite repertoire of professional singers. It was popularized throughout the Korean peninsula with the aid of the mass media. However, it is regarded as one of the ‘local’ songs because it contains the city of Miryang in its title.

5,700원

4

초・중등학교의 토속민요 교육 실태 및 방향

변미혜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1집 2016.06 pp.3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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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민속 예술은 초, 중·고등학교보다는 지역 문화를 보존하고 전승하는 기관에서 그 교육을 담당해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역 문화에 대한 애향심과 애호심이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다. 그러나 토속민요를 둘러싼 지역 민속 예술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보존이나 전승 면에서 관심이 점점 멀어져 마치 지역 어르신의 전유물처럼 되어가는 실정이다. 물론 지역 문화 전승차원에서 인근 학교와 연계하여 전통 문화 교육을 하는 것도 사실이나 그 효과에 있어서는 미미한 수준이라고 본다. 따라서 우리 민속 예술이 초, 중·고등학교 청소년들에게 전승교육 되기 위해서는 국가 수준의 음악과 교육과정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 초, 중·고등학교에서 사용하는 음악교과서의 제재곡으로 수록되었을 때, 토속민요를 포함한 민속 예술이 우리 민족에게 의미하는 가치를 발견하고 긍지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토속민요를 지도한다는 것은 단순히 노래 부르기 활동을 한다고 볼 수 없다. 이 땅의 토속민요는 우리 민족 문화의 원형질이자 우리 민족 삶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국악이 가지는 문화재 가치 측면을 고려하여 2007 개정 음악과 교육과정의 생활화 영역에서는 ‘우리 음악 가치 인식하기’라는 내용 요소를 두어 토속민요를 포함한 전통 문화를 이해하고 보존과 전승에 대한 당의성과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에는 자주적인 사람, 창의적인 사람, 교양 있는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으로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핵심에 토속민요가 있으며 이와 관련된 교육은 정체성, 민족 문화 자긍심, 창조성을 갖춘 한국인 육성을 가능케 하리라 본다. 현재 토속민요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은 학교 교육과 연계하여 시작된다고 본다. 그 중요성과 가치 또한 학교 교육에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토속민요 교육이 개정시기별에 따라 학교 음악과 교육과정에서 어떻게 제시되는지를 음악교과서에 수록된 토속민요 교육의 실태와 양상을 통해 살펴보았다. 제7차 음악과 교육과정(1997년〜2007년)에서 2007 개정 음악과 교육과정(2007년〜2012년), 2009 개정 교육과정(2013년〜현재)까지 세 차례 개정시기별 초, 중·고등학교 음악교과서의 토속민요 수록현황은 초등학교에서는 개정시기별 제재곡 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었다. 악곡의 기능은 놀이요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놀이요 뿐 아니라 노동요와 기타의 악곡도 다양하게 수록되었는데, 특히 노동요 중 농업 노동요의 비중이 점차 증가하였다. 교수·학습 활동으로는 가창 활동뿐만 아니라 놀이 또는 창작 연계 수업 등 다양한 교수·학습 활동을 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중·고등학교의 토속민요 교육의 경우는 세 차례 교육과정이 개정되었으나 제재곡의 다양성이나 실제 교수·학습 활동이 초등학교에 비해 매우 미흡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재곡 선정에 있어서도 초등학교 제재곡을 그대로 실은 교과서도 많아 그 위계성을 찾아볼 수가 없다. 심지어 토속민요가 없는 음악교과서로 수업을 받는 학생들의 경우 학생들의 우리 음악 문화지수는 낮은 수준에 머무르게 되며 우리 문화에 대한 정서적 공감대 및 음악적 감수성이 형성되기 어렵다. 따라서 학교 음악 수업 내용에 토속민요 지도가 반드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교과서의 내용과 교수·학습 활동에 관련된 다양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음악 수업은 교사 역량에 의해 좌우되므로 토속민요를 지도할 수 있는 음악 교사 교육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현재의 교과서나 음악 수업 시수 상으로 토속민요 지도는 상당히 어렵다고 보인다. 그러나 창의적 체험활동 수업시간과 자유학기제를 활용하여 토속민요가 갖고 있는 여러 측면의 문화적 가치를 인식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또한 무형문화재 보존회의 역할과 지원이 꾸준히 초, 중·고등학교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와 연계되어 지역 축제중심으로 토속민요 교육정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It is no exaggeration to say that the institutions which preserve and pass down local cultures have been in charge of the education of the Korean folk arts, rather than elementary, middle, and high school. Local patriotism and devoted love for local culture made it possible. However, generation after generation, local folk art including local folk songs has lost its interest in preservation and transmission, thus becoming the exclusive property to local elders. It is certainly true that the education of traditional culture has been done in affiliation with nearby schools in terms of the transmission of local culture, but its effect is considered as insignificant. Thus, in order to teach and pass down the Korean folk art to the youth of elementary, middle, and high schools, it should be addressed at the National Music Curriculum. In other words, when local folk songs are found in music textbooks of elementary, middle, and high schools, one will discover the value that the Korean folk art, including local folk songs, represents to Korean people and will be proud of it. Teaching local folk songs cannot be simply seen as a singing activity. The local folk songs of this land are protoplasm of our national culture, reflecting the history and culture of our nations’ life. Considering the value of Korean music as cultural properties, the domain of ‘musical living’ in the Revised Music Curriculum of 2007 includes an element which expresses ‘recognition of the value of Koreanmusic,’ emphasizing the necessity and importance of understanding, preserving, and transmitting the traditional culture. Furthermore, the Revised National Curriculum of 2015 aims to cultivate talents capable of creativity and convergence (STEM education) who possess good character as an independent, creative, cultured, and caring person. Education of local folk songs is a key to make it possible to foster Koreans who hold identity, pride in their national culture, and creativity. It is believed that the environment in which ones experience local folk songs begins in connections with school education. It is also believed that teaching the importance and value of local folk songs is only possible at school education. Thus, how the education of local folk songs is presented in music curriculum by each revision period was examined through the reality and trend of the education of local folk songs contained in music textbooks. From the 7th Music Curriculum (1997〜2007) to the Revised Music Curriculum of 2007 (2007〜2012) to the Revised National Curriculum of 2009 (2013〜present), the number of local folk songs included in the music textbooks of elementary has been increased. As a function of songs, play songs are a big part of the repertoire, but various songs such work songs are also included. Teaching-learning activities consist of various activities such as playing or lessons linked with creativity as well as singing. The education of local folk songs in middle and high schools went through the three curriculum revision process respectively (as aforementioned), but their actual practice is insufficient in terms of the diversity of repertoires and level of activities for learning and teaching, especially compared to the case of elementary schools. In selecting repertories, they lack a system of hierarchy; some of the songs in music textbooks of elementary are reused in music text books of middle of high schools. In case of students who take music classes with a textbook that does not contain any local folk songs, their cultural index will remain in a low level, worshipping other seemingly powerful cultures. Therefore, various plans in regards to the content of textbooks and teaching-learning activities should be arranged, so that instruction on local folk songs will take place. In particular, teacher education should be supported to train teachers who actually can teach local folk songs, since music class largely depends on a teacher’s capability. It is very challenging to teach local folk songs due to the current music textbooks and limited class hours. However, various programs should be developed to help students to recognize the cultural values of several aspects of local folk songs by utilizing creative hands-on classes and the Free Semester Program. In addition, the role and constant support of preservation societies for intangible cultural properties should be affiliated with schools in charge of the education of elementary, middle, and high schools. Consequently, educational policies on local folk songs that center on local festivals should be made.

10,200원

5

민요박물관 아카이브의 필요성과 구축 방안

김정수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1집 2016.06 pp.8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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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특성화된 주제아카이브로서 민요박물관 아카이브의 역할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하여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디지털 아카이빙 방법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선행연구 결과, 그간 다양한 주제아카이브에 관한 선행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실제 구축으로까지 이어진 사례가 있었으며, 현재 국내 32개의 공공아카이브와 22개 사설아카이브, 총 54개 아카이브가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전체 대상 기록물에 일부로 민요를 포함하거나 민요만을 대상으로 하는 아카이브는 모두 11개였다. 선행 사례와 민요의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뛰어난 가치를 고려할 때 민요박물관 건립과 아카이브 구축의 추진은, 그간 개인 또는 공공기관, 단체를 통해 산발적으로 수집, 보관, 관리가 이루어져 온 기록물들의 통합적이고 집약적인 수집과 관리를 통한 보존, 활용을 통해 미래 민요문화의 창조와 더불어 민요의 가치 제고와 확산의 계기를 마련하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This study is characterized as a theme archive aims to look at the practical and concrete way digital archiving from concerns about the role of the folk museum archives. Many previous studies have been actively conducted on various topics archive was a case that led to the actual building. Survey results also showed that operates, established the current 32 national or public archives and 22 private archives, a total of 54 archives. The archive includes some folk songs as a full subject of the records, or only for folk music is 11 archives. Promotion of folk museum built and archives building when considering these leading practices and outstanding value as an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folk-songs is, private or public institutions, collected sporadically through the organization, storage, management consists come and integration of documentary-intensive through conservation, utilization and management through the collection, with the creation of future value enhancement of folk culture and folk songs will be something very meaningful to provide an opportunity of diffusion.

5,100원

6

민요를 활용한 박물관 체험프로그램 개발

박부원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1집 2016.06 pp.107-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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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토속민요를 소재로 한 박물관 체험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박물관과 체험프로그램의 개념적 정의와 함께 국내 유사박물관에서 참고할 수 있는 디지털 활용의 최신사례를 조사하였다. 이를 통해 현재 서울시가 세우는 돈화문 민요박물관에 적용가능한 체험프로그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토속민요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생성되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되거나 단절될 소지가 있는 문화이다. 구체적인 삶의 모습에서 소리, 색깔의 형태까지 민중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원천이다. 오늘날의 박물관은 경제성장과 더불어 대중들의 라이프 스타일 변화로 인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받고 있으며, 문화적 욕구 충족과 향유를 위해 이성중심의 공간에서 감성과 이성이 조화되는 공간으로, 전시중심이 아닌 복합문화공간으로의 변화하고 있다. 21세기의 민요박물관은 최신 트렌드에 부합하는 공간으로 확장되어야 하며, 지식기반사회에 부합되기 위해서 현장감, 정보전달, 현장성의 강화의 3요소를 적절히 반영해야 한다. 민요박물관에서의 체험은 관람객 스스로 민요를 부르는 것이 기본 전제가 되어야 하며, 민요의 본질과 중요성에 대한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최신 기술을 활용하여 오감을 자극하는 콘텐츠 체험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제공하고자 하는 의도된 감성을 수급자의 지적ㆍ심미적 호기심을 자극하여 감성부합도에 맞추어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민요박물관의 시대적 소명이기도 하다.
This study examined the conceptual definition of museum and experience program along with the latest cases of digital utilization that can be reference at similar domestic museums in order to develop museum experience program with the theme of local folk songs. The goal is to utilize it for experience program applicable at Donhwamun Folk Song Museum currently in construction. Folk songs begin from relationships between people, and cannot exist without company, and it is a culture subject to change or discontinuation according to the flow of time. It is a precious cultural source that shows a cross section of the people’s lives from the actual forms and sounds of life to even the forms of color. The museums today demand a new paradigm due to the changes in the common lifestyle along with economic growth, and have changed from a reason-oriented space to a space of harmony between sensibility and reason, and from an exhibition-oriented space to a complex cultural space. Such 21st century folk song museum should reflect the three elements of reinforcing the on-th-spot characteristics through development of an experience program compatible with knowledge-based society as a space compatible with the latest trends. The experience at folk song museum should have the basic premise of the tourists singing the folk songs themselves, and the education on the essence and importance of folk songs should be conducted together. Next, through development of contents experience program kindling the five sense utilizing the latest technologies, the sensibility the folk song museum intends to deliver should kindle the intellectual/aesthetic curiosity of the recipient, which can be said to be today’s mission for the folk song museum.

7,800원

7

토속민요 자료 수집을 위한 방안 - 디지털 민요박물관의 설계를 위한 논의에 부쳐 -

김인숙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1집 2016.06 pp.143-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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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디지털 민요 박물관의 구상을 염두에 두고 마련된 것이다. 그 중에서도 현대의 문화 자원으로서 민요가 가지는 특질을 살펴보고 이에 따라 민요 자료의 수집과 그 방향성을 제시해 보았다. 민요는 사람(창자)과 행위(구연), 사설, 기능, 선율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음악학, 인류학, 민속학, 문학과 관련이 있다. 민요 수집의 초창기에는 노랫말을 채집하기 시작했고 이후 녹음기를 사용하여 소리를 담았지만 민요가 가진 현장성을 담보할 수 있는 민속적 특징이나 민요의 기능적 측면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어 왔다. 공적 기관에서 주관한 최초의 민요조사 사업은 1960년대말 KBS에서 이루어졌으나 인력과 재원의 부족으로 조사가 산발적으로 이루어졌다. 1970년대 문화재관리국의 민요조사는 민속 전반(민요, 굿, 춤, 의식, 농악)에 관한 조사의 일환으로 민요가 조사되어 부분적인 수확에 그치고 말았다. 「한국구비문학대계」 사업은 광범위한 지역에 많은 전문 인력이 투입되었음에도 모든 지역을 포괄하지는 못했다. 전국적인 규모의 가장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민요조사사업은 1990년대 공영방송인 mbc에서 주관한 「한국민요대전」 사업이다. 대규모 민요 조사 사업을 개인이 이룰 수 없는 것과 같이 민요박물관의 설립은 문화유산의 창조적 계승이라는 명제 하에 국가나 공공기관이 정책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제대로 수행되기 어렵다. 민요의 이해를 위해서는 소리 자체와 아울러 (1)현장을 담은 사진 및 동영상이 필수적이다. (2)옛 생활도구에 대한 사진이나 그림도 반드시 필요하다. (3)18~ 20세기 조선과 구한말의 풍속을 담은 풍속화도 민요의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다. (4)한문학이나 현대문학, 혹은 타음악 장르 속의 민요 관련 내용을 발췌하거나 새로운 주제를 개발하여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민요의 외연을 넓히는 방법이다. 오늘날의 민요는 과거와는 여러 면에서 비교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변화의 양상도 주목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민요의 채집과 분석, 보존과 관리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디지털 민요 박물관이 바람직하게 설계되어 우리시대 민요가 새로운 위상을 찾게 되길 기대해본다.
This thesis examines the concept of digital folk song museums. Among other things, it aims to inspect the characteristics of folk song as a contemporary cultural resource and consequently suggest how to collect folk song resources directly. Museums must appeal to public. Also, they must be open spaces that can directly contribute to cultural streams. For easy access as well as expedient utilization, it is important to make a plan to collect resources, utilize education and studies, and create. Folk music is related to musicology, anthropology, folklore and literature. At the beginning of collecting folk songs, lyrics had been collected using a recording machine, the sound (music and literature) preserved. By comparison, characteristics of folklore or functional aspects which assure on-site reality had been neglected. The very first research on folk songs using a recording machine by an official organization was accomplished from the late 1960s to the early 1970s at KBS. However, due to a shortage of labor as well as finances, this research was limited to a small area. Research on folklore achieved by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in the 1970's was a part of Folklore over all. It also was partial research.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proceeded An Outline of Korean Oral Literature(Hanguk Gubimunhak Daegye; Folksong, Stroy, Shamanistic song), however it was not possible to cover all of the area even though a large professional workforce was invested in the extensive area. The most systematic and organized research on a nationwide scale is Great series of Korean Folksongs achieved by MBC. Even now, It is considered the most innovative research on Folksongs that dealt with 9 regions of South Korea, including Jeju island. It is essential to collect photo and video clips that contain on site scenes to understand Folksongs. These sources must be utilized from not only academic materials but from various media (broadcasts, movies), and from private collections so that we can extend the understanding of folk music's background. It is necessary to have photographs or pictures of old tools and everyday goods. For instance, to understand folk songs sung in old fishing boats, we need photos or pictures of ones that have vanished. Genre paintings of the 18-20th centuries containing the customs of the Chosun and Korean dynasties could be helpful to understand folk songs. Genre paintings are portray the everyday life of people who lived in this period of time; so it is proper to convey emotions and the concreteness of folk songs. Extract folk song-related contents from Chinese language literature or from Modern literature as well as developing themes on those so that the public can easily access is one way to extend the denotation of folk songs. In any social circumstances, folk songs passed down with changes. These days' folk songs are so different from the past. However, it is necessary to keep on collecting, analyzing, conserving, and managing folk songs to focus on aspects of their changes. I expect that various sources of folk songs are reflected in the blue prints of digital folk song museums, which can function as the space of regeneration for folk music.

6,600원

일반논문

8

프랑스 낭트(Nantes) 시의 도시재생 - 낭트 섬(Ile de Nantes)의 역사문화유적의 재활용 사례를 중심으로 -

임승휘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1집 2016.06 pp.1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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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중심 도시인 낭트 시는 1960년대부터 주력 산업인 조선업의 쇠퇴로 인한 경제 위기로 침체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1990년대에 시작된 강도 높은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오늘날 이 도시는 프랑스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특별한 위상을 지닌 도시로 탈바꿈하여, “유럽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혁신도시, 녹색도시 등 다양한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이 글은 낭트 시의 역사적 배경과 20세기 말의 위기를 고찰하고,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이 항구 도시가 문자 그대로 “재생”된 과정과 원동력을 분석한다. 1989년 시행정부의 교체와 함께, 낭트의 도시재생은 도시가 갖고 있는 과거의 기억과 역사의 흔적들, 특히 낭트 섬의 조선산업 시설들에 대한 보존과 재정비를 중심축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80년대까지 거대한 3차 산업 부지가 들어설 잠재적인 부동산으로 여겨졌던 낭트 섬이 도시재생의 핵심으로 부상했고, 이와 동시에 과거에 비해 취약해진 루아르 강과 도시의 관계 역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낭트 시가 추진한 “낭트 섬 프로젝트”는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인해 낭트 시의 도시재생에 관한 모든 논의는 루아르 강과의 관계성 속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점차 명확해졌다. 20세기 후반 국제적인 경제구조의 변화와 그로 인한 도시의 경제적 위기를 거치면서 낭트시민들에게 잊혀졌던 루아르 강과 낭트 섬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시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적인 관건이 되었다. 낭트 섬은 또한 그동안 시 행정당국과 경제인들이 도시 발전과 관계없는 것으로 간주했던 도시와 강의 관계 회복을 위한 최선의 도구이기도 했다. 하지만, 도시의 재생을 목표로 한 이러한 관계 회복의 과정은 하나의 도시계획으로 해결되기에는 지나치게 복잡한 문제이다. 그것은 낭트 시민의 삶과 태도의 변화와 직결되며, 동시에 시행정부와 시민들 사이의 부단한 소통과 논란의 과정이기도 하다.
Historically, the city of Nantes was the capitol of Brittany in France was hit by the crisis in the shipbuilding industry decline since the 1960s, suffering economic downturn. But through the intense urban renewal project that began in the 1990s, Nantes is transformed an internationally famous city having titles such as "Europe's most livable city," innovative city, or Green City. This article examines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Nantes and its economic crisis of the late 20th century, and tries an analysis on the dynamic forces of its urban regeneration. With the replacement of city government in 1989, Nantes began to promote the preservation and renewal of the past memories and the industrial-cultural heritage of Ile de Nantes. Considered as industrial ruins and a potential real estate for huge site of tertiary industries until the 80's, Ile de Nantes began to be reevaluated as a new heart of the city regeneration, shedding new light on the traditional relationship between the Loire and the city. The “Ile de Nantes” project took a considerable success. Due to this success, it became clear that all the discussion about the urban regeneration in the city of Nantes must be bound to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ity and the river. The Loire and the island, forgotten during the economic crisis of the late 20th century, has become the key concern for the future of the city. Ile de Nantes was also the best tool for the recovery of the relation city-river, regarded for a long time useless. However, the recovery of these relationships play in the city aiming process is too complicated to solve problems doegie one of the city plan. It Nantes citizens are directly connected with the change of life and attitudes, it is also a process of constant communication with the concurrent debate between the government and citizens.

7,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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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록의 전자문서 편찬방법 탐구 - 역사요소를 중심으로 -

김바로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1집 2016.06 pp.203-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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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전통적으로 인문학자들이 수행하는 대상 자료의 분석·해석 작업을 디지털상에서 수행하는 방법론 중 역사요소를 중심으로 역사기록의 전자문서를 편찬하는 방법을 탐구했다. 디지털 시대에는 디지털 백과사전과 디지털 아카이브가 유기적으로 융합된 디지털 통합정보 아카이브(Digital Encyves)의 개념이 필요하다. 현재 디지털 아카이브는 한국역사정보 통합시스템으로 일부 구현되어 있다. 그러나 디지털 백과사전에 해당하는 역사요소에 대한 통합시스템은 전무한 형편이다. 기관은 개별 문중 요소의 식별값, 세부 정보 및 개별 문중 요소 간의 관계에 대한 연구와 관리를 위한 한국 역사요소 통합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또한 연구자들이 손쉽게 개별 요소의 정보를 입력하고 연계할 수 있는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개인 연구자는 대상 역사 자료에서 기본 요소(인물, 공간, 사건, 문헌, 시간)에 대해서 한국 역사요소 통합시스템에서 규정된 식별자를 부여해야 한다. 또한 개인 연구자의 요구에 의해서 형성된 용어의 경우 “용어”로 마크업하고, 속성 정보에 “편집자”와 “분류”를 기술하도록 한다. 이를 통하여 단일 객체에 대한 다양한 편찬자들의 이해와 해석을 손실 없이 완전한 데이터로 남길 수 있다.
This paper aims to suggest a compilation method of electronic documents for historical records, with the focus laid on historical elements in the records, which is one of the digital methodologies for analyzing and interpreting source materials in humanities research areas. In the digital era, the concept of “digital encyves” – a convergence of digital encyclopedia and digital archives – and its development has a significant meaning. In Korea, the Korean History Online partly covers the role of digital archives in terms of the historical elements from Korean historical records. However, a comprehensive system for the historical elements has never been established with the concept of a digital encyclopedia at all. In order to prepare a solid foundation for the development of digital encyves, a comprehensive, integrated system for Korean historical elements needs to be established at an institute level, and the ID attributes and detailed information of individual in-text elements and the relations between these elements should be studied and managed in this system. Also, the system has to be open to individual researchers so that they can add information to each element and build proper relations. Individual researchers are required to use the ID attributes determined in this system, regarding the historical elements such as historical figures, places, events, documents, and time. If a new historical element is to be added to the system by an individual researcher, the new element is required to be marked up as a “term,” and the information on its category and the writer should be included in the term’s attributes. Through this method, a diversity of understandings and interpretations from various researchers can be collected as complete data, without any l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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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수신사의 일본 견문 태도와 교류의 실제

이효정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1집 2016.06 pp.22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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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조일수호조규로 새로운 외교 체제에 편입된 조선은, 일본의 정세 탐색과 세관 등의 문제로 1880년 제2차 수신사를 파견하였다. 그동안 이 수신사는 주로 황준헌의 󰡔조선책략󰡕과 연관하여 연구되어지거나, 정사 김홍집 개인의 정치활동 중 일부분으로 간략히 언급되었다. 이는 제2차 수신사의 자료가 산재되어 연구가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본고에서는 이를 고려하여 박상식의 󰡔동도일사󰡕, 김홍집의 󰡔수신사일기󰡕, 󰡔흥아회보고󰡕 그리고 당시의 일본 신문을 바탕으로 실제 제2차 수신사가 일본에서 무엇을 어떻게 견문하였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그 의의를 밝히고자 한다. 󰡔동도일사󰡕에서 일기를 썼던 향서기 박상식은 기존의 중화주의적 시선으로 일본인들을 바라보았으며, 근대 문물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또한 수신정사 김홍집도 흔히 개화파라 일컬어지지만 일본에서의 활동은 소극적이었다. 유람을 권하는 일본인들을 거절하며 견문을 공적인 신분으로는 할 수 없다고 하고, 대신 수행원을 보내는 일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귀국 후의 보고서에는 세계 정세와 교육체계, 근대식 군대, 재정 문제 등 경험한 견문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설명하려 하였다. 비록 수동적인 견문 활동이었지만 이러한 경험이 후에 그의 온건적 개화 정책으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겠다. 이들은 또한 고위 관료나 민간의 지식인 등 다양한 일본인 그리고 청국 사람들과 교류하였다. 교유의 모습은 통신사 시절의 필담 창수와 다르지 않았다.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의 한문으로 된 글씨와 시를 얻기 원하였으며 한시를 창수하기도 하였다. 특히 이 시기는 일본에서 아시아연대론이 급부상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중화 문명의 공통 교양은 이 아시아주의의 유용한 수단이 되었다. 하지만 근대 서양에 맞서기 위한 이들의 논리 역시 ‘부국’과 ‘개화’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한문’이 아닌, 중국어와 조선어 등의 자국어를 배워야 했으며 사대교린 체제에서 벗어나 ‘자주권’을 지켜야 했다. 이러한 역설적 인식의 경험들, 문화공동체의 균열 경험이 결국 제2차 수신사 이후의 대외수교, 개화정책에 일정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Chosun, which has been incorporated into the new diplomacy system by the Chosun and Japan’s mutual recognition and action in 1876, dispatched the second Susinsa Kim Hong-Jip in 1880 to judge the situation of Japan and to resolve the issue of customs. Until recently, however, the Susinsa has been studies in conjunction with the Chosun’s Strategy written by huáng zūn xiàn or has been briefly mentioned as a part of the political activities of Kim Hong-Jip, which may have been due to the fact that the references about the second Susinsa has been scattered around the country. Considering these aspects, we investigated the contents and methods which the second Susinsa had experienced based on Dong-do-il-sa (by Park Sang-Sik), the Susinsa’s diary (by Kim Hong-Jip), the report of Kouakai, and Japanese newpapers, etc. We also tried to clarify the significance of the Susinsa’s second dispatch in this study. According to his book Dong-do-il-sa, Park Sang-Sik looked at Japanese in a viewpoint of Sinocentrism, and therefore he could neither explain nor understand the modern culture. Although Kim Hong-Jip was also considered as a member of Gaehwapa group, he was passive about the activity in Japan. For instance, he often refused Japanese's proposal of sightseeing euphemistically on the excuse of his public position, and sent his entourage instead of him. After returning to his country, however, he explained the world situation, education system, modern military organization, and financial problems in his report as objectively as possible. Although his activity appeared passive, such experience may have influenced on his moderate enlightenment policy later. They interchanged culture and experience with Japanese and Chinese as well. The feature of cultural exchange was not different from the written conversation and exchanged poems in the period of Tongsinsa. Japanese wanted Chinese writings written by people of Chosun and exchanged Chinese poems. Since the theory of Asian Solidarity had been emerging at that period in Japan, the common culture from Chinese civilization was a useful method for strengthening the theory. Because national prosperity and civilization were the tasks of Asia to stand against western countries, however, they practically had to learn not the written Chinese but spoken Chinese or spoken Chosun language, and had to escape from Sadae-Kyorin system to maintain national independence. These experiences of the paradoxical recognitions and the split of cultural community may have had a certain effects on the diplomatic relations and the enlightenment policy after the dispatch of the second Susi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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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明)ㆍ청(淸)대 평점(評點) 소설 비교를 통한 조선(朝鮮) 후기 평점 소설의 특성 연구 -『서상기(西廂記)』와 <광한루기(廣寒樓記)> 평점 비교를 중심으로 -

장예준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1집 2016.06 pp.251-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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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김성탄 평점본 『서상기』와 <광한루기> 평점 양상을 비교해 봄으로써 <광한루기> 작품 평점의 특성, 유희성, 희작성을 띠게 된 요인을 살펴보았다. 먼저 두 작품은 작품의 유통 환경 차이로 인해 작품 평점 작업 동기가 달라졌고, 이로 인해 평점 형식과 내용, 지향 등의 측면에서 전혀 달라졌음을 확인했다. 중국 평점 소설은 출판문화의 발달에 힘입은 고급화, 차별화 전략의 산물이었다. 그래서 독자의 수준, 취향, 요구 등을 상정한 ‘공적 글쓰기’가 이루어졌으며, 평점자는 논리적이고 세밀한 분석을 통해 독자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반면, 조선 후기 평점 소설은 필사본으로 유통되었고, 작자 자신 혹은 작자 주변 동료들과 돌려 읽는 차원에서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래서 불특정 다수 독자를 상정할 필요가 없는 ‘사적 글쓰기’가 이루어졌으며, 논리적인 분석 없이 평점자 자신의 감상과 생각을 부담 없이 드러낼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더욱 쉽게 유희성, 희작성을 띨 수 있었다. 아울러 조선의 『서상기』 수용 양상을 통해 봤을 때, 19세기 중후반에는 김성탄 문장에 대한 열기가 서서히 식어갔고, 『서상기』 내용 자체에 흥미를 갖는 독자들이 늘어나는 추세에 있었다. 그리고 식견이 그리 높지 못한 문인들은 여전히 『서상기』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았다. 결국 <광한루기> 평점은 애초부터 ‘유희적 성격의 독서물’로 ‘기획’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서상기』와 <광한루기> 평점을 읽어 보면,『서상기』는 냉철하고 분석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반면, <광한루기>는 정감 있는 인상을 준다. 이는 평점자가 평점문에서 보이는 서술 태도, 서술 방식, 활용하는 글의 양식 등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서상기』 평점에서는 논변 위주 서술을 활용하고 의론 양식을 취택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글이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양상을 띠게 되었다. 특히 서술 과정에서 김성탄 특유의 치밀하고 세밀한 논리 전개 방식은 작품을 깊이 있게 따지고 분석하는 데 크게 기여함으로써 냉철하고 분석적인 평점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광한루기> 평점에서는 평점자의 생각과 감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데 주안점을 두면서 논리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이를 가벼운 필치로 지적하고 제시하는 방식으로 서술해 나갔으며, 때로는 일화를 끌어와 설명하기도 했다. 그래서 평점이 전체적으로 가벼워졌다. 그러나 <광한루기> 평점의 이러한 양상이 곧 이 작품 평점을 유희성, 희작성을 띠게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각 회 평점문의 서술 방식, 평점문에서 구사되는 일화의 속성, 작품 협비의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먼저 구체적인 서술을 위주로 하는 평점문들에서 평점자의 생각과 감상을 툭툭 제시만 하고 넘어가는 서술 방식은 전체적으로 평점의 진지성을 약화시켰다. 여기에 때때로 활용된 일화는 일화 자체가 지닌 속성, 즉 사건과 묘사의 단순함, 흥미적 요소, 구현되는 주제의 단순성 등으로 인해 평점문에서 다양한 의미를 구현하는 데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고, 평점문이 유희적 성격을 띠게 만들었다. 여기에 작자와 등장인물에 바짝 다가앉아 대꾸하듯 감상과 생각을 즉각적으로 표출하는 수다스러운 협비는 이 작품의 평점의 유희성을 극대화시켰다.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characteristics, playfulness and amusement of ‘Gwanghanru-gi’ by comparing the commentary aspects of Jin Shengtan(金聖嘆)’s ‘Xixiangji(西廂記)’ and ‘Gwanghanru-gi(廣寒樓記)’. First of all, this study found out that the two novels have different commentary motives due to their different distribution environments, further leading to large differences in the aspects of commentary form, content and orientation. Chinese pyeongjeom (pingdian) novels were the fruit of sophistication and differentiation strategies influenced by the development of publishing culture. With readers’ levels, tastes and demands reflected, ‘public writing’ prevailed, and commenters had to persuade readers through logical and detailed analyses. On the other hand, pyeongjeom novels in the late Chosun Dynasty were distributed in the form of manuscript, and the commentary operation was done while the authors were sharing their works with their fellows. As a result, ‘private writing’ prevailed since it did not have to consider many and unspecified readers, and commenters could reveal their own impressions and opinions as much as they could without a logical analysis, which made their commentary novels easily characterized with playfulness and amusement. In addition, when examining the aspects of readers’ accepting ‘Xixiangji’, this study found out that in the mid and late 19th century, their zeal for Jin Shengtan’s remarkable sentences gradually was gradually cooling down, and there were also more readers getting interested in the contents of ‘Xixiangji’ itself. More importantly, literary people with superficial knowledge still had quite low understanding of ‘Xixiangji’. At last, there is a high possibility that the pyeongjeom of ‘Gwanghanru-gi’ was planned as a book characterized with playfulness in the first place. When reading the pyeongjeom of ‘Xixiangji’ and ‘Gwanghanru-gi’, this study found out that ‘Xixiangji’ gives a dispassionate and analytic impression, while ‘Gwanghanru-gi’ gives an amiable impression. It seems attributed to differences in the description attitude, description method and writing patterns that commenters showed in their pyeongjeom novels. The pyeongjeom of ‘Xixiangji’ naturally showed logical and analytical aspects by using argument-oriented descriptions and adopting discussion methods. Especially, during the process of description, Jin Shengtan’s own elaborate and detailed logic-development method greatly contributed to understanding and analyzing literary works in depth, further leading to success with dispassionate and analytic pyeongjeom. The pyeongjeom of ‘Gwanghanru-gi’, however, was described in a way of suggesting and pointing out with light strokes, while focusing on explaining the commenters’ ideas and appreciations concretely, rather than analyzing logically, and sometimes it explained literary works by borrowing anecdotes. As a result, the pyeongjeom of ‘Gwanghanru-gi’ became light in general. Nevertheless, it is difficult to judge that such commentary aspects made the pyeongjeom of ‘Gwanghanru-gi’ characterized with playfulness and amusement. It is because such playfulness and amusement are more likely to originate from the description method of each pyeongjeom novel, the attribute of anecdotes borrowed for the pyeongjeom and the inclination of insertion comments on literary works. Particularly, in the critical commentary novels, the description method that states commenters’ ideas and appreciations as they are seems to have weakened the gravity of pyeongjeom in general. Besides, anecdotes often used for pyeongjeom had limits to materializing various meanings in critical commentary novels due to their attributes, that is, simplicity of events and descriptions, interesting elements and simplicity of themes materialized, thus making the related pyeongjeom novels characterized with playfulness. Lastly, commenters adopted a way of chatty insertion comments through which they expressed their impressions and opinions right away as if they were telling back to the authors and the characters appearing in the novels in person, and it maximized the playfulness of the pyeongjeom of ‘Gwanghanru-gi’ at l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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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일 유고』 소재 한국고전번역물(3) - 게일의 미간행 육필 <홍길동전> 영역본에 대하여

이진숙, 이상현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1집 2016.06 pp.30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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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캐나다 토론대 토마스피셔 희귀본장서실 『게일유고』 소재 미간행 육필 <홍길동전> 영역본의 원문과 그에 대한 우리의 재구본을 학계에 소개하며 이에 대한 해제를 제공하는 것이다. 게일의 <홍길동전> 영역본을 경판계열 이본들과 대비 작업을 수행해보면, 번역저본일 가능성이 높은 판본은 <경판21장본>과 <경판23장본>이다. 게일의 영역본에 남겨놓은 숫자는 <경판23장본>의 장수와 행수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럼에도 <경판21장본>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는 첫째, 후반부의 몇몇 특정 번역문에서 <경판21장본>에 더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며, 둘째, 게일이 미의회도서관에 보낸 판본이 <경판21장본>이고, 이 책의 표지 위의 메모는 게일의 『일지』 18권의 육필 <홍길동전> 영역본의 서지사항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게일의 <홍길동전> 영역본을 알렌의 <홍길동전> 영역본과 대비 검토함으로 그 번역특징을 살폈다. 게일은 <홍길동전>을 한 편의 문학작품으로 인식하여 홍길동의 일대기 전반을 충실하게 완역했다. 이러한 그의 번역양상은 알렌이 <홍길동전>에서 한국의 적서차별 제도의 부당함에서 학대받는 길동에 초점을 맞추어 율도국 이후의 화소를 최대한 생략하며 저본을 축소, 확대, 누락하는 모습과는 선명히 대비된다.
The paper's first aim is to introduce to the Korean academic the unpublished handwritten English translation "Hong Kil-tong Chun" located in James Scarth Gale Papers, a collection of the Thomas Fischer Rare Book Library at the University of Toronto in Canada. The second aim is to confirm its source text. The third aim is to investigate Gale's translation practices on the comparison of the source text and Allen's “Hong Kil Tong”. The 23-chapter version and the 21-chapter version published in Seoul are very similar in their contents and length. The former can be said to be the source text of Gale's Hong Kil-tong in that Gale's memo about numbers in his handwritten paper exactly corresponds with the chapter and line of 23-chapter version. Gale's translation, however, reflects the 21-chapter version in detailed contents more than 23-chapter version. Gale also sent to the Library of Congress of America the 21-chapter Hong Kil-tong Chun on the cover of which Gale wrote about the information of his handwritten Hong Kil-tong. For the present it can be said that both 21 and 23 chapter version were used as source texts for Gale. Allen's reduction, expansion, or omission of the source text is remarkable when we compared his Hong Kil-tong Chun with Gale's. He translates liberally to give information about Korean culture. Allen omits the topic of Yuldo state completely. Allen's adaptation reflects his translation object about which he announced in the Preface of Korean Tales. Gale's translation is on the whole literal translation and he tries to translate words, phases, and sentences of the source text literally. Gale, however, omits the consummation of the minister Hong and his maid servant, that is, Kil-tong mother. Gale consistently omitted the sexual and abusive expressions in other translations like "Choon yang". This omission in Hong Kil-tong is in line with his overall translation practices. Except that Gale translated Hong Kil-tong Chun line by line and word by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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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청구풍아』의 편찬 시점과 판본 상황 재고(再考)

임미정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1집 2016.06 pp.409-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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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속청구풍아(續靑丘風雅)』와 관련된 몇 가지 이견들을 점검하여 『속청구풍아』의 성책 시점과 판본 문제를 정리한 것이다. 먼저 『속청구풍아』의 편찬 시점은 유근의 『속해동시부선』 저술 직후인 1606년경으로 상정하였다. 유근은 1605년과 1606년에 각각 『해동시부선』과 『속해동시부선』이라는 제명의 시선집 2종을 편찬하였는데, 이 두 서적은 성책과 동시에 중국에 증정되었으며 현재 일실되었다. 본고에서는 이 책들과 『속청구풍아』가 동일한 편자에 의해 만들어진 저작임에 주목하여 두 서적에 대한 기록을 살피고 이를 『속청구풍아』와 대비하여 편찬 시점을 고구하였다. 이를 통해 『속해동시부선』의 수록 작품 중에서 16세기 부분이 『속청구풍아』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논하였고,『속청구풍아』의 편찬 시점도 『속해동시부선』이 만들어진 1606년 4월 이후로 보았다. 한편 『속청구풍아』는 중국이 아닌 조선에 보급되는 목적에서, 선행하는 조선 시선집들의 수록 범위를 의식하여 기존 시선집에는 없는 16세기의 새로운 성과만을 담아내었다. 그러나 이 시선집은 편찬 의도나 선시 방향이 분명치 않으며, 편찬 과정이나 편자와 관련된 기록도 거의 전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당시 대제학이었던 유근이 계획적으로 편찬을 기획한 시선집이 아닌, 『해동시부선』이나 『속해동시부선』의 편찬 과정에서 활용된 자료가 유포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으로는 『속청구풍아』의 판본에 대해 논하였다. 이 책은 현재 두 종류의 판본이 전한다. 본고에서는 두 판본을 11행 20자본과 11행 24자본으로 구분하여 명명하고 각 판본의 소장처를 소개하고 서지사항을 정리하였다. 11행 20자본은 간기(刊記)와 『탐라지』(1653년)의 기록을 근거로 1651년에 공주에서 간행된 것으로 확정하였고, 11행 24자본은 이 11행 20자본과 내용과 체제는 동일하나 11행 20자본의 여러 오각들을 수정하고 있는 완성도 높은 후대본임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11행 24자본의 간행 시기도 필사로 전하는 간기, 책의 형태나 선행본의 수정 양상을 두루 고려하여 1675년에 간행된 것으로 보았다. 두 판본을 대비한 결과, 지금까지는 규장각에 소장된 완질 11행 20자본을 연구 대상으로 활용하였지만, 11행 24자본이 완성도 높은 선본(善本)이면서 완질로 소장된 것을 확인하였다. 11행 24자본의 완질은 현재 경상대학교 문천각에 소장되어 있다. 앞으로의 『속청구풍아』연구는 이 이본의 존재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본고는 『속청구풍아』의 성책 시점과 목판의 간행 시기와 같은 비교적 한정된 문제에 집중하였다. 이 논의가 필요한 이유는 조선 시선집의 출현과 간행이 선행 시선집의 수록 작품이나 선시 방향을 의식하면서도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속청구풍아』의 성책 시점을 『해동시부선』·『속해동시부선』과의 상관성을 통해 추정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관련이 있으며, 『속청구풍아』 간행 시점도 마찬가지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이 책이 1651년, 1675년 두 차례 간행된 것은 『속동문선』(1518년)이후 조선 시선집이 거의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청구풍아』간행 이후, 『기아』(1688년)나 『국조시산』의 목판본(1695년)이 등장하면서 『속청구풍아』에 대한 수요는 감소했고 더 이상 간행되지 않았다. 이렇듯 성책 시점이나 목판 간행의 시기는 단순히 하나의 시선집과 관련된 정보 이상으로, 조선 시선집의 사적 전개 과정이라는 주제에서 중요하게 조명될 수 있을 것이다.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time of the compilation of 『Sokcheonggupunga(續靑丘風雅)』, a collection of selected poems, compiled by Yu Geun (柳根, 1549~1627) and the issues of different versions(異本). First, this study investigated the time of the compilation of 『Sokcheonggupunga』. The book was closely related to Yu Geun’s other books of selected poems: 『Haedongsibuseon (海東詩賦選)』, and the sequel 『Sokhaebusibuseon (續海東詩賦選)』. Thus, this study compared the contents of all three collections, and as a result, the time of the production of 『Sokcheonggupunga』 was estimated as right after compiling 『Sokhaebusibuseon』. Next, this study investigated the different versions of 『Sokcheonggupunga』 and summarized. The woodblock print of the book was published twice, so the two types exist to date. The contents listed in the two types were identical, but preceding publications from later generations, they contained corrections of previously published books, thus made with a higher degree of completion. Therefore, for the accurate understanding of 『Sokcheonggupunga』, its situation of different versions needs to be studied. In addition, this study estimated the time of the publication of the two editions. As a result, the first book(初刊本) was printed in 1651, and this study corrected that the later edition was printed in 1675. By the fact that 『Sokcheonggupunga』 was published twice, it can be known that this collection of selected poems was recognized as an important compilation in the 17th century. But, when the woodblock print of 『Gukjosisan國朝詩刪』 was released in 1695, readers of 『Sokcheonggupunga』 moved to 『Gukjosi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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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서측 지역 도시재생사업의 성과와 보완책

허경진, 유춘동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제51집 2016.06 pp.433-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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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경복궁서측(서촌, 세종마을) 지역의 도시재생사업의 성과와 과제를 검토한 것이다. 서촌(세종마을) 지역은 경복궁의 서측과 인왕산 동측 사이에 있는 청운효자동(청운동, 궁정동, 신교동, 옥인동, 효자동, 창성동, 통인동, 누상동, 누하동, 통의동, 체부동, 필운동)과 사직동 일부(사직동, 내자동, 적선동, 내수동)을 말한다. 이곳은 현재 서울시에서 시행하는 도시재생사업의 대표적인 테스트베드(Test Bed) 지역 중의 하나이다. 경복궁서측 지역은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도시재생사업이 시행되면서 종합발전계획과 더불어 다양한 도시재생사업안이 시행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매력 있는 도심주거지이자 역사, 문화, 예술의 삶이 함께하는 곳’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이루어진 일련의 도시재생사업을 점검하는 일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도시에서 시행할 도시재생사업에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이 글에서 다룬 내용들은 그간의 중요 사례들과 문제점이다. 이 논의를 통하여 앞으로 지속적인 이 지역의 도시재생사업의 성공을 바라며, 무엇보다 이 지역주민들이 바라는 ‘매력 있는 도심주거지, 역사, 문화, 예술의 삶이 함께하는 곳’이 되는데 기여가 되기를 기대한다.
This article discusses the achievements and challenges of urban regeneration projects in the Seoul Seochon (Sejong village) area. Seochon (Sejong village) is an area between the west of Gyeongbok palace and the east side of Mt. Inwangsan (Cheongun-dong, Gungjeong-dong, Shingyo-dong, Okin-dong, Hyoja-dong, Changseong-dong, Tongin-dong, Nusang-dong, Nuha-dong, Toneu-ding, Chebu- dong, and Pilun-dong), and some areas in Sajik-dong (Sajik-dong, Naeja-dong, Jeokseon-dong, Naesu-dong). It is the the current Test Bed of urban regeneration projects conducted by the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As the enforcement of urban regeneration projects in Seoul promote a variety of urban regeneration-plan business proposals with a Comprehensive West-side Development Plan, various projects with the goals of 'attractive urban residential, historical, cultural, and art places' have now been established. This series of projects in this area are considered to have significant implications for urban regeneration projects in many other cities in the country. This article deals with these case studies. We hope for the success of the project through this discussion, and expect to build an 'attractive urban residential, historical, cultural, and art place' that the residents wish 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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