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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고대학 [DONG ASIA KODAEHAK ; The East Asian Ancient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동아시아고대학회 [The Association Of East Asian Ancient Studies]
  • ISSN
    1229-8298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2000~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기타인문학
  • 십진분류
    KDC 910 DDC 950
제50집 (9건)
No
1

최치원의 한시에 나타난 지명시어 연구

장준람

동아시아고대학회 동아시아고대학 제50집 2018.06 pp.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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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의 한시를 보면 전체 시의 4/5에 지명시어가 나타난다. 현존하는 최치원 의 한시 연구를 보면 지명시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없다. 최치원 한시 중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지명시어를 주목하여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고운 최치원 시집 소재 최치원 한시에 나타난 지명시어를 정리하고 분석한 결과 아래와 같은 결론을 얻었다. 지리적인 지명시어는 주로 최치원의 생애 연구와 발자취 및 교류 관계 등 연구 에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상징적인 지명시어는 최치원의 문학사상 연 구와 독특한 정신세계를 밝히는 연구에 새로운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최치원의 한시에 나타난 지명시어의 특징을 통하여 최치원이 독특한 전고 지명 시어를 사용하는 점을 보았다. 당시(唐詩)에서 봉래를 신산으로 보는 것이 최치원의 시와 비슷하다. 다른 점이라면 최치원의 봉래는 고국 신라와 은거지(隱居地)를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양제성, 봉래 등 지명시어를 통하여 우여곡절이 많 은 인생 때문에 동일한 지명시어를 사용할 때 자신의 상황에 따라서 큰 차이가 나 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If we read Choi Chiwon Chinese poems, 4/5 of them use place name noun poetic diction. There is no research on place name as nominative syllabaries in the present study of Choi Chiwon. I think there is a need to pay attention to these noun phrases which are used in Choi Chiwon Chinese poems. The results of the analysis of Goun Choi Chiwon Poems are summarized as follows. Geographical nomenclature can be an important evidence for the study of Choi Chiwon's life study, footsteps and exchange relations. I have seen the possibility that the symbolic of place name noun can be a new subject of the study on Choi Chiwon's literature and his unique spiritual world. I have seen the use of Choi Chiwon's uniqueness of using place name noun through the characteristics of nominative syllables of Choi Chiwon’s Chinese poems. Choi Chiwon’s poems are so similar with the using of Penglai as a new mountain in the Tang poetry. In other respects, Choi Chiwon's Penglai has the meaning of symbolizing the Silla and the Ulji area. It is also seen that the same nominative theoretician is used for the life with many twists and turns through the using of place symbolization such as Yangjae and Penglai.

6,700원

2

李仁老 題畵詩의 형상화 방식

박혜영

동아시아고대학회 동아시아고대학 제50집 2018.06 pp.3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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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이인로의 제화시를 대상으로 그 형상화 방식을 분석하였다. 한국 제화시 중 이른 시기의 작품으로서 이인로의 제화시는 그림을 시적 제재로 어떻게 활용해 시로 형상화하는지 그 일면을 보여준다. 총 10수의 제화시는 각각《송적팔경도》와《행화구욕도》, 대나무 그림을 보고 지은 시이다.《송적팔경도》를 소재로 한 제화시는 총 8수로 각 ‘소상팔경’이라는 공간 이미지를 묘사한다. 이때 공간의 표상화를 통해 화면 속 소상팔경이 내포하는 의미와 상징을 환기한다. 또한 이인로는 주로 전고(典故)의 방법을 사용[用典]하는데, 시구전고와 역사전고를 통해 시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행화구욕도>와 <대나무 그려진 병풍에 쓰다>에서도 구욕새와 관련된 고사와 묵죽의 대가로 알려진 ‘소동파’와 ‘문동’을 끌어와 화면에 대한 자신의 감상과 평가를 서술한다. “유운화(有韻畵)”로서의 기능을 이인로의 제화시는 압축된 언어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This paper analyzes the characteristics and meanings, focusing on the painting poetry of Lee Inro(李仁老). As a work of early period of Korean painting poetry, Lee Inro's painting poetry shows one aspect of how to use painting as poetic material and to form poetry. All 10 pieces of painting poetry are written in the form of《SongJeokpalkyungdo(宋迪八景圖)》,《Haenghwaguyokdo(杏花鸜鵒圖)》and bamboo paintings respectively. A total of 8 pieces of painting poetry, which is based on the《SongJeokpalkyungdo》, depict a symbolic spatial image of Sosang palkyung(瀟湘八景). At this time, It mainly use the method of authentic precedent(典故), and result in expanding the outline of poem through the poetry and history authentic precedent. In and , Lee Inro describes his appreciation and evaluation of the paintings, drawing the guyok-bird story, Su Dongpo(蘇東坡) and Wen Tong(文同). Lee Inro's painting poetry shows the function as Yuunhwa(有韻畵) in compressed language form.

5,700원

3

17세기 부의 현실비판의식 연구 - ‘동물우언’을 중심으로 -

구봉곤

동아시아고대학회 동아시아고대학 제50집 2018.06 pp.5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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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7세기 부 문학 작품에 나타난 동물우언의 분석을 통해 동물우언이 부 문학의 현실 비판 기능을 담당했음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본 연구는 17세기 부 문학 작품의 특징을 규명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본 연구에서는 부 작품의 동물우언이 가지고 있는 기능을 파악하기 위해 부 작품 수가 많다고 평가받는 17세기 부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 중 동물우언이 나타나는 열 한 편의 부 작품을 연구 대상으로 하였다. 동물우언이 나타나는 부 작품의 비판 대상은 당대의 정치 상황에 대한 비판과 특정 인물 혹은 계층에 대한 비판, 세태에 대한 비판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비판의 이유는 또 다시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자기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계층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기 위한 것, 둘째, 당대의 현실에 대한 토로를 통해 자기 위안을 삼는 것과 셋째, 현실의 상황을 극복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작품에 등장하는 동물의 귀천에 따라 우의의 내용을 분류해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연구를 통해 동물우언이 나타나는 17세기 부 작품의 현실 비판적 성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 문학에는 지배계층 스스로의 자기반성과 당대의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 있는 작품이 상당수 존재한다. 그 가운데 동물우언이 사용되고 있는 작품들에서 그러한 반성과 비판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었다.
This study analyzes animals~featuring satires among bu literature of the 17th century to show that the satires served as a medium of social criticism. The analysis is expected to contribute to elucidating characteristics of bu literature of the 17th century. To investigate the role of animal~featuring satires in bu literature, we chose 17th century as it was a prolific period for bu literature. Among them, we examined 11 works of bu that featured animals. Meanwhile, the objects of criticism in bu literature can be divided into political circumstances, specific figures or social classes, or overall social condition. And the reasons for criticism are mainly threefolds: to urge self~reflection for readers and their social class, to provide self~consolation through a lament of reality, and to propose solutions to resolve problems. Stories can be also classified by the class of featured animals. We could verify critical voices in works of bu of the 17th century that featured animals. Quite a few works of bu contain self~reflection of the ruling class, as well as sharp criticism over the society. Such reflection and criticism could be found in animal~featuring works of bu.

7,300원

4

人麻呂文學의 形成背景 硏究

尹永水

동아시아고대학회 동아시아고대학 제50집 2018.06 pp.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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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麻呂문학의 형성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했던 지역인 大和의 백제인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하면서 시작되었다. 특히 漢學에 뛰어난 사람들의 영향을 자연스럽게 받으며 그의 문학적 재능은 조금씩 형성되어 갔을 것이다. 人麻呂의 삶과 활동무대는 주로 大和를 중심으로 한 近畿지방이었다. 따라서 人麻呂는 大和의 지리적 배경 속에서 자라면서 山城․近江․紀伊 등을 자주 여행하였고, 서정성 넘치는 작품을 자신의 뛰어난 시적 재능을 갖고 제작하고 있다. 人麻呂를 둘러싼 이러한 지리적 배경도 그의 작품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판단된다. 한편, 人麻呂문학의 역사적 배경은 7세기 후반, 天智․天武․持統의 3대 왕조에 이르는 시기이고,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국가와 율령에 의한 지배체제가 확립되어가는 시기였다. 이러한 가운데 人麻呂의 인생과 문학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백제멸망과 壬申의 난이었다. 왜냐하면, 백제멸망으로 인해 人麻呂는 大和에서 近江로 이주하게 되었고, 人麻呂의 문학형성은 백제의 망명지식인들에 의해 초래된 近江朝의 문학적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 후 天武朝와 持統朝에 와서는 倭의 日本化 과정과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더욱 강력해지는 중앙집권국가로의 움직임, 天皇卽神과 現人神 사상의 시대적․역사적 분위기를 직접 체험하면서 人麻呂는 人麻呂歌集歌와 作歌를 계속 제작해 갔다. 人麻呂作歌에 나타나는 시적 감동은 궁정시인 또는 어용시인으로서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에는 近江朝의 흥망과 성쇠, 인간의 삶과 죽음, 절대적 왕권의 탄생이라는 역사의 커다란 소용돌이 속에서 고뇌하며 살아가는 한 인간의 개인의식․역사의식․시간관이 뚜렷이 나타나 있다. 人麻呂의 문학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역사적 배경 하에서 큰 결실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人麻呂 자신의 한문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뛰어난 시적 재능이야말로 그의 문학을 위대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人麻呂는 다방면에 걸친 그의 시인적 재능과 자질을 바탕으로 전대로부터 내려오는 일본의 문학적 전통도 최대한 활용하여 뛰어난 문학적 달성을 이루었던 것이다.
The formation of Hitomaro’s Literature started since Hitomaro was born in Yamato where most immigrants from ancient Korea lived and grew up with the people from Baekjae. It is assumed that he became good at literature while naturally getting influences of the people who were knowledgable about Chinese classical literature. Hitomaro lived and actively worked in Kinki region. Hence, Hitomaro had many chances to travel Yamasiro, Omi, and Kii region and produced the literatures with full of sensations. It is reasonable to assume that such environments greatly affected the formation of his literature. Historical background of Hitomaro’s Literature was the late seventh century when governed by Tenji, Tenmu, and Jito Emperor. At this time, there were two events which significantly affected Hitomaro’s life and work, the Fall of Baekjae and Jinshin Rebellion. Due to the fall of Baekje, Hitomaro had to move from Yamato to Omi region where his work had greatly influenced by Omi Dynasty formed by Baekje’s exiled intellecturals. In Tenmu Dynasty and Jito Dynastry when the japanization feature of Wae and power of emperor became stronger, Hitomaro kept producing poems and literature. In Hitomaro’s poems, he much wrote about a person who lived in such chaotic time when many historical events occurred such as the rise and fall of Omi Dynamsty, life and death of people, and change of emperor’s power. Actually, Hitomaro’s literature could have distinct characteristics because of these historical backgrounds. Also, Hitomaro’s knowledge about Chinese classical literature and his amazing talents as an writer made Hitomaro’s literature exceptional. By utilizing his talents and keeping literature style of Japanese culture in his work, Hitomaro made substantial achievement in Hitomaro’s literature.

8,400원

5

고구려와 고대 중국의 鼎에 대한 신화적 인식 비교 - 「대무신왕본기」 沸流源大鼎을 중심으로 -

이성재

동아시아고대학회 동아시아고대학 제50집 2018.06 pp.13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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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비류원대정과 고대 중국의 정은 그 신화적 인식에 있어 천명이나 왕권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불을 때지 않아도 열이 나는 것과 같은 신비한 능력을 지닌 점 등에서 유사성이 있다. 그러나 양자 사이에는 다양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고대 중국의 정이 대개 신화적인 남성 통치자와 관련이 있는 반면에 대정은 여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고대 중국의 정은 상징적이고 정치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대정은 신비한 능력이 보다 강조되고 있다. 또한 고대 중국의 정은 단독으로 천명을 상징하지만 대정은 천명을 상징하는 세 가지 신보 가운데 하나이다. 대정이 천명을 나타낸다는 고구려의 신화적 인식은 고대 중국의 정에 대한 일반적인 신화적 인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고구려에는 3이나 고각과 같은 천명을 상징하는 독자적인 신화․종교적 사상 체계가 있었기 때문에 정이 단독으로 천명을 의미한다는 고대 중국의 신화적 인식은 고구려로의 수용과정에서 변화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고구려인에게 정은 3이라는 신화적 요소와 결합해야만 비로소 천명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Biryuwondaejeong of Goguryeo is a mysterious jeong cauldron that heats up by itself without fire. Biryuwondaejeong bears resemblance to ancient Chinese jeong cauldrons. For example, Biryuwondaejeong symbolizes God's will(天命) and royal authority. The mythical symbolism of Biryuwondaejeong seems to have been influenced by ancient China. All the same, there is some difference between Biryuwondaejeong and ancient Chinese jeong cauldrons. Ancient Chinese jeong cauldrons are generally linked with mythical male rulers such as Huangdi, Yu, and Qi. In opposition to ancient China, Biryuwondaejeong is closely linked with female. In ancient Korea, females are frequently linked with religious priests. Furthermore, Biryuwondaejeong is one of three divine treasures along with golden royal seal and weapon. Three is a sacred number that symbolizes God's will and royal authority in ancient Korea. In short, it is reasonable to assume that Goguryeo had its own mythical religious thought system. Therefore, it seems that ancient Chinese mythical perception of jeong cauldrons had to change when it entered into traditional mythical religious thought system of Goguryeo.

6,700원

6

『씨족원류』를 활용한 과거 급제 기록 복원 연구 - 사마시ㆍ무과를 중심으로 -

양창진

동아시아고대학회 동아시아고대학 제50집 2018.06 pp.159-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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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인물의 행위와 관련 역사적 사건들을 이해하는 데는 인물의 사회적 관계가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역사 연구에서 인물 관계 정보가 중요한 연구 영역이 되고 있다. 이 논문에서 관심을 가지는 조선시대 인물 관계망을 종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과거 급제자 정보를 연구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 수 있다. 과거 급제자 정보는 급제자를 중심으로 수직적 혈연관계와 수평적 혼인 관계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조선조 엘리트의 실상과 이들의 관계망을 연구하기 위한 중요한 기초자료가 된다. 특히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한 이들이 사회를 움직이는 중추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과거 급제자들의 면모를 파악하는 것은 역사 연구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조선조 과거 급제자 중에서 문과 급제자는 『국조문과방목』에 전체적인 윤곽이 드러나 있지만 과거의 또 다른 축인 무과와 사마시는 전제적인 급제자 정보가 정리되지 않았다. 따라서 무과와 사마시(司馬試) 급제자를 정리하는 것은 인물 관계망의 확장을 통한 한국사 연구의 진전을 위한 중요한 토대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 논문에서는 과거 급제자 중에서 조선 전기의 무과와 사마시 급제자 복원을 위한 방안을 살펴보았다. 즉, 과거 급제자 명부인 ‘방목(榜目)’이 여러 요인으로 많이 소실된 조선 전기 부분을 정리하기 위해 『씨족원류』를 중심으로 하고 기타 자료들을 보조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았다. 『씨족원류』는 조선 중기에 존재하던 거의 모든 성씨의 주요 인물들과 그 가계를 기록한 책이어서 조선 전기의 기록을 비교적 잘 기록하고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이 논문에서 논의한 부분은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이하 ‘역대 인물 정보’로 약칭)에 축적된 과거 급제자 정보 정리를 위해 실제로 적용을 검토하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따라서 방목이 더 이상 수집되지 않는 한 이 방법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함을 살펴보았다.
A Person relationship information is becoming an important research area. This is because the social relations of the person can be an important clue in understanding the actions of the person and the historical events. It may be a good idea to research the civil service exam candidates in order to comprehensively study the persons network of the Joseon Dynasty. The list of candidates is a basic data for studying the actual situation of Joseon elites and their network. Especially, those who entered the office through the civil service exam formed the backbone of the society, so it is important to grasp the aspect of them in history research. However, all the candidates of the civil services exam of the Joseon Dynasty is revealed, but the other candidates of the military exam(武科) and classics and literary licentiate exam(司馬試) are not clear. Therefore, it should be an important basis for accumulating the information of the exam through the expanding of elite network to advance research on Korean history. In this paper, practical measures were examined for the restoration of the list of successful candidates for the civil service exams in the early Joseon period. The Genealogical records such as Sijok-wolyu(氏族源流) were useful for restoring the successful candidates of the civil service exam in the early Joseon period. This is because the list of successful candidates is no longer collected. The part discussed in this paper is a method that is actually being applied for organizing the information in the Korean Historical Figures DB.

7,600원

7

오래된 미래 교과서 : 안확의 『조선문명사』

金伯哲

동아시아고대학회 동아시아고대학 제50집 2018.06 pp.19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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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확은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지식인이다. 그는 다양한 분야의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특히 󰡔조선문명사󰡕는 이례적인 한국사개설이다. 첫째, 분명한 우리중심의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역사를 체계적으로 제시하였다. 타자의 인식에서 벗어나 주체를 확립하려는 뚜렷한 주제의식을 천명하였다. 둘째, 동서비교사의 관점에서 근대적 역사학을 구축하였다. 세계에서 한국사의 위치를 비정하고자 노력하였다. 셋째, 역사이론의 제시이다. 그의 붕당관은 붕당정치론으로 이어졌고, 군주독재론은 오늘날 군주상이나 왕정의 성격규명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역사학의 발전모형을 체계화하여 역사이론의 경지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현대 역사학에서도 갖추기 어려운 장점이며, 여전히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이다. 따라서 그의 역사서는 약 1세기 전에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미래지향적 성격을 담아냈다고 평가해볼 수 있다.
Ahn is a modern intellectual who represents Korea, and he has left scholarly achievements in various fields. Especially, his Joseon- Munmyeongsa is a highly unusual Korean total history book. First, it clearly shows the systematic history based on the Korean historical sense. It was clearly declared that a distinct theme was escaped from others' vision and we had to cope with our burden. Second, it was established the history on the comparative sense between East and West. Then, It was tried to set up the position of Korean history based on a global perspective. Third, It was suggested a theory of history. It led to faction politics, and his theory of autocracy are today to discuss the nature of between the monarchy and the kingship. This study has reached to the level of history theory by standardizing development models. This feature is a good thing to be able to do it in modern history, and it is still the virtue we need to pursue. Therefore, we can evaluate that it's a future-oriented nature even though it was created about a century ago.

7,300원

8

전통 자연학의 범주와 오행지학적 상관론

김일권

동아시아고대학회 동아시아고대학 제50집 2018.06 pp.225-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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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우리 역사에서 발달하였던 전통시대 자연학의 범주를 감응적 자연학과 유심적 자연학 및 생태적 자연학의 세 갈래 범주로 꼽을 수 있음을 논하면서, 그 중에서 자연과 인간의 상관성을 가장 복합적이고 특이한 방식으로 전개하였던 흐름이 다름 아닌 오행지학적 천지상관론이라 일컬을 수 있음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이 오행지학은 전통시대 역사서에서 천문지 다음에 편장되는 오행지를 기반으로 펼쳐지는 논변구조를 말하며, 내용적으로는 자연에 관찰되는 제반 현상들을 목화토금수의 오행론 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에 관련한 모언시청사의 오사론(五事論) 및 천변지이에 따른 춘추재이론이라는 매우 복합된 구조로 인식하였던 상당히 독특한 자연학 갈래이다. 현대의 우리에게는 낯설고 난해한 사유이나 전통시대 오행지학적 천지상관론이 당시로서는 실제적 자연관이자 사회관이고 인간관으로 인식되었던 것임을 고찰하였다. 주변의 자연세계를 인식하는 범주에서 예컨대 풍속과 민심의 변화조차 실제하는 자연의 일부로 간주하였던 흐름이라서 자연과 인간의 깊은 감응적 상관론을 읽을 수가 있다. 이 글에서 구체적으로 오행지학은 오행재이론과 오사재이론 및 황극재이론이라는 세 축의 해석 체계로 구성되어 있음을 분석하였고, 그 사상기반으로 공자의 『춘추』, 진시황대 『여씨춘추』, 『상서』 홍범구주론, 복생의 『홍범오행전』, 동중서의 『춘추번로』, 유향ㆍ유흠 부자의 홍범재이론, 반고의 「오행지」 재이론에 이르기까지 고대사회가 추구한 재이적 천인상관론이 일관되게 견지되고 지속되는 흐름임을 고찰하였다. 이처럼 오행지학적 재이론은 가장 전형적인 고대 동아시아적 감응자연학이자 천인감응론에 속한다.
This research discusses the traditional Korean naturology in three categories: the reciprocal, the spiritual, and the ecological. Among these the most complex and particular development appears in the Correlation Theory of Heaven and Earth based on Ohaengji (Treatise on the Five Elements). This theory refers to the argument structure of Ohaengji, that is the second most compiled treatise following the Treatise on Astronomy. It is the characteristic naturology perceived through a very complicated structure containing theories of the Five Elements of wood, fire, earth, metal, and water; the Five Matters of society that are one's appearance, speech, seeing, hearing and thinking; and the vicissitudes of history caused by natural disasters. Although it might be an unfamiliar and difficult way of thinking for the modern person, this paper examines the fact that the Correlation Theory of Ohaengji was perceived as the realistic view of Nature, society, and human. It is understandable that in the realm of Nature of their perception, even the changes in the folk customs or sentiment were considered as part of the close correlations between nature and human. The Treatise on the Five Elements is analyzed as being composed of three axes for the interpretive system. They are the theories of abnormal occurrences in the Five Elements, in the Five Matters of society, or in the great royal road. In its philosophical basis this paper examines classic books among others the Spring and Autumn Annals by Confucius, Springs and Autumns Annals of Mr. Lü, Documents of the Shang, Nine Categories of Hongbeom, Record of Five Elements of Hongbeom, and Luxuriant Gems of the Spring and Autumn Annals. These books from ancient times provide the persistent flow of correla tion between heaven and human concerning abnormal occurrences. The Correlation Theory of Ohaengji, likewise, belongs to one of the most typical naturology of reciprocity and the theory of heaven and human reciprocity in ancient East Asia.

7,000원

9

일제강점기 지역축제로서의 단오(端午)의 지속과 변화 - 서울[京城]을 중심으로 -

안주영

동아시아고대학회 동아시아고대학 제50집 2018.06 pp.255-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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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단오에 행해지는 의례들은 한국의 근대화과정, 국가의 공휴일 정책의 변화로 인해 대부분 변화되거나 소멸되었다. 특히, 농업의 세시주기에 의존하는 농촌의 농민들과는 달리 다양한 생업을 가지고 있는 도시의 도시민들에게 일상의 세시주기는 국가의 시간정책에 의해 크게 변화될 수밖에 없었다. 전통적으로 단오에는 많은 의례가 행해졌다고 기록되는데, 일제강점기 서울(경성)에서 단오는 중요한 세시풍속으로 세시의례와 놀이가 행해져왔으며, 도시의 지역축제로서 점차 발전되어갔다. 지금은 음력 오월 오일인 단오가 전통적인 세시풍속으로서의 위치를 많이 상실했으나, 한국의 4대명절 중의 하나인 단오는 일제강점기에 중요한 세시풍속으로 자리매김해갔으며, 일제강점기의 각 시기별로 지속과 변화를 겪어왔다. 본고에서는 식민지라는 상황속에서도 고래로부터 이어온 전통적인 세시풍속으로서 단오를 지켜온 서울(경성)인들의 단오날의 풍경을 당시의 신문, 잡지들 중 세시풍속 관련 기사가 가장 많이 게재되었던 『매일신보』와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일제강점기의 단오는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해서 살펴볼 수 있는데, 1925년부터 1933년까지는 단오 지역축제의 절정기로 전국에서 크고 작은 지역축제가 활발히 개최되었다. 먼저 1910년대는 일제의 무단통치기로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기까지 경성의 단오는 남묘와 동묘를 중심으로 그네뛰기와 씨름대회가 개최되었고, 창포물에 머리를 감거나 단오빔을 입고 참배를 하는 등 세시의례가 행해지는 세시명절로서 기능하였다. 1920년대의 문화정치기에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의 한국어 신문 발행이 허가되면서 조선의 전통 세시명절인 음력 단오절의 각종 행사와 축제들이 매년 보도되었고, 단오 관련 행사는 각종 신문사나 각 지역의 여러 단체들로부터 후원을 받거나 주최가 되어 개최되었다. 그러나 1930년대 중반 이후에는 일제의 황국신민화정책과 민족말살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음력 단오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가 증가되기 시작하였고,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밴 1940년대의 경성에서 단오는 더 이상 지역축제로서 기능하지 못하였고, 쇠퇴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비록 1941년부터 1945년까지는 전쟁이라는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단오축제가 중단될 수밖에 없었으나 1940년까지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는 음력 단오절을 맞이하여 씨름대회와 그네뛰기대회를 포함한 각종 크고 작은 세시 행사들이 꾸준히 개최되었고, 경성인들에게 음력 단오는 중요한 세시명절이자 지역축제로 인식되어 왔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The rituals traditionally performed at Dano were mostly changed or destroyed in the course of the modernization process of Korea due to the national holiday policy change. Especially, people in the cities who have various occupations unlike the farming people in the rural area do not place much importance on the times and seasons. To them national holiday policy is more important than the time and season of the nature. It is recorded that many rituals have been performed in Dano. In the occupation period of the Japanese Imperialism in Keijyo (Seoul), Dano was an important seasonal customs and various ceremonial rituals and plays were performed. It became gradually developed into a regional festival of the city. Although Dano, the fifth day of May in lunar calendar, lost its position as the traditional seasonal customs now, it used to be one of the four big holidays in Korea. In the occupation period of the Japanese Imperialism, it became the important seasonal customs and has undergone changes in the occupation period of the Japanese Imperialism. 'Maeil Shinbo' and 'Dong-A Ilbo' reported scenery of Keijyo (Seoul) at the seasonal customs most frequently among the contemporary newspapers and magazines. This study looked at the scenery of Dano of people in Seoul (Keijyo) who kept Dano as the traditional seasonal customs in the colonial situation and analyzed Dano in the occupation period of the Japanese Imperialism by dividing the period into three sub-periods. First, in the 1910s until 1919 when the March 1 independent movement took place, it was the period of the military government. During the rule of the Japanese military government, Dano festival was held in the city center centered on Nammyo and Dongmyo. In the festival Swing Play and Ssireum contests were held. People washed hair with water infused with sweet flags and went to worship dressed up with new dresses called Danobim. In the second period of 1920s (Period of Cultural Policies) the issuance of Korean newspapers such as 'Dong-A Ilbo' and 'Chosun Ilbo' was permitted. In these newspapers, various events and festivals of Dano, a traditional festive holiday of Chosun, were reported annually. Events related to Dano were sponsored or hosted by Newspapers and various local organizations. However, after the mid-1930s, the Japanese colonialism and national extermination policies became enforced in full scale, and negative stories about the Dano festival began to increase. In the 1940s when the shadow of the war is dark, Dano was no longer functioning as a seasonal festival, and had to suffer a decline. However, until 1940, Dano had been celebrated in major cities throughout the country holding various ceremonies, including the Ssireum and Swing contest. As a matter of fact, Dano was re cognized as an important seasonal holiday by people in Seoul (Keij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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