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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전문학 속 비일상 체험의 형상과 일상성 회복의 메타포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4집 2018.05 pp.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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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머리말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3년간에 걸쳐 진행된 「한・일 고전문학 속 비일상 체험의 형상과 일상성 회복의 메타포–콜로키엄을 통한 한・일 공동연구의 지평확장 모색–」이라는 대주제의 국제 콜로키엄 공동연구 내용 중, 일본 고전문학 쪽 성과를 중심으로 그 내용을 조감, 정리한 총괄 연구이다. 일본 고전문학 쪽 연구성과는 <기적과 신이, 경험과 상상의 카니발(세부주제: 이물과 이계), 문명충돌(세부주제: 균열과 틈입), 징조, 징후, 무고, 저주> , <파괴된 인륜, 문학적 아노미(세부주제: 불륜 및 외도), 살인, 동반자살, 차별과 격차, 적대, 인귀교환> , <전쟁과 재난, 붕괴된 코스모스(세부주제: 질병과 죽음), 기근과 재해, 전쟁과 가족 이산> 등으로 3년간 총 10편의 연구주제 발표와 논문의 성과가 있었다. 일본 고전문학 쪽 연구성과에서 다루어진 문학사의 범주는 일본 문학작품이 본격적으로 창출되기 시작하는 헤이안 시대에서 근세 말기까지 문자 그대로 일본 고전문학사 주요 시대를 망라하고 있다. 또한, 다루어진 연구 자료들도 대부분 일본 고전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즉 헤이안 시대의 『다케토리모노가타리』, 『오치쿠보모노가타리』, 『겐지모노가타리』, 『도와즈가타리』, 중세시대의 『금석이야기집』등 주요 설화집, 『오토기보코』나 『우키요모노가타리』 등 근세 초기의 다양한 가나조시 작품군들, 『호색일대남』 등 근세 전기의 대표적 소설가 사이카쿠(西鶴)의 여러 작품들, 근세 후기의 주요 소설가 우에다 아키나리의 『우게쓰모노가타리』와 르포작품인 「가구쓰치노아라비」, 히라가 겐나이의 『풍류지도헌전』, 근세기의 주요 군기와 군서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주요 고전 텍스트가 각 해당 세부주제의 해당 작품으로 총망라되어 3년간의 상기 10개 연구주제는 일본 고전문학의 비일상체험의 형상을 논증하는데 충분한 작품 내용과 범주를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As also stated in the preface above, this writing is a generally managed research which had a bird’s-eye view of, and organized, the contents centered on the results in the field of the Japanese classical literature from the contents of the joint research by the International Colloquium on the big topic of ‘the metaphor of the figure of the non-daily life experience and the recovery of the everydayness in the classical literature- The groping for the collaborative horizon expansion through the Korea-Japan colloquium’, which had been proceeded with for 3 years. Regarding the research results in the field of Japanese, classical literature, there had been the results of a total of 10 pieces of the research topic presentations and the theses in the 3 years, including ‘Miracles and gods, the carnival of the experience and the imagination - The detailed topics: The alien substances, the other systems, the civilization clashes- The cracks and the trespassing, the omens, the signs, the innocence, and the curses’, ‘The destroyed human race, the literary anomie- The detailed topics: The affairs and the extramarital affairs, the murders, the co-suicides, the discrimination and the gaps, the hostility, and the exchanges of the persons and the ghosts’, ‘The wars and the calamities, the cosmos that has collapsed- The detailed topics: The diseases and the deaths, the famines and the disasters, and the wars and the separations of the families’, etc. Regarding the category of the history of literature which has been dealt with in the research results of the Japanese, classical literature, it has been literally including the main eras of the history of the Japanese, classical literature from the Heian period, when the Japanese literature works began to be created, in earnest, to the end of the modern times. Also, most of the research materials that had been dealt with are the representative, classical literature works of the Japanese ancient literature. Or, in other words, because the main, classical texts that represent each period, including ‘Taketori Monogatari’, ‘Ochikubo Monogatari’, ‘Genji Monogatari’, ‘Towazu Gatari’, the main legendry of the Middle Ages, including ‘Konjaku Monogatarishu’ and the others of the like, the diverse Gana Joshi group of the works in the beginning of the modern times, including ‘Otogi Boko’, ‘Ukio Monogatari’, etc., the many works by Saikaku, a representative novelist of the former part of the modern times, ‘Ugetsu Monogatari’ and the reportage work ‘Kagutsuchino Arabi’ by Ueda Akinari, who is a main novelist in the latter part of the modern times, ‘Furyu Shidoken den’ by Hiraga Gennai, and the main, classical texts that represent each era, including the main military disciplines, the war books, etc. of the modern times, have been totally included as the concerned works of each concerned, detailed topic, it was able to confirm that the above-mentioned 10 research topics in the 3 years possessed the work details and the categories that were sufficient for demonstrating the forms of the abnormal experiences in the Japanese, classical literature.
本稿は序でも明らかにしたように、3年間「日韓古典文学における非日常体験の形状と日常性回復のメタファー─コロキウムを通じた韓日共同研究の地平拡大模索─」をテーマにした国際コロキウムを行い、その研究の内容のうち、主に日本の古典文学の成果を中心に総合的にまとめたものである。 日本の古典文学を対象としたる研究は、「奇跡と神威、経験と想像のカーニバル(詳細主題:異物と異界)、文明衝突(詳細主題:亀裂や闖入)、徵兆、徵候、標識、巫蠱、呪咀>、<破壊された人倫、文学的アノミー(詳細主題:不倫と浮気)、殺人、心中、差別と格差、敵対、人鬼交換>、<戦争と災難、崩壊されたコスモス(詳細主題:病気と死)、飢饉と災害、戦争と家族離散>など3年間合わせて10回の研究発表と論文を成果としてあげた。 対象文学としては、日本文学作品が本格的に創出された平安時代から近世末期までと、つまり日本古典文学史の主な時代を網羅している。また、研究資料のほとんども代表的な古典文学作品である。『竹取物語』、『落久保物語』、『源氏物語』、『とわずがたり』、『今昔物語集』等中世の説話集、『御伽婢子』や『浮世物語』等近世初期の仮名草子群、『好色一代男』等近世前期の代表的作家である西鶴の作品、近世後期の代表的作家である上田秋成の『雨月物語』と『迦具都遅能阿良毗』、平賀源内の『風流志道軒伝』、近世の主要軍記や軍書等、各時代を代表する古典テキストを対象に、各テーマに応じて網羅したため、3年間10の研究テーマというのは、作品の内容とカテゴリの観点から日本の古典文学における非日常体験の形状を論証するのに十分であることが確認でき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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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쿠테이 바킨(曲亭馬琴)의 수필집 『엔세키잣시(燕石雑志)』와 『겐도호겐(玄同放言)』에는 일본신화와 관련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엔세키잣시』의 「해의 신(日の神)」에서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御神)를 둘러싼 학자의 의문을 풀고, 신화 속 한자의 독음과 훈독이 어떠한지를 설명하고 있다. 『겐도호겐』에서는 히루코(蛭児)와 스사노오(素戔嗚)를 천상(天象)의 관점에서 고증하고, 신명(神名)의 발음과 올바른 한자표기에 관한 독자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 과정에서 바킨은 일본신화를 설명하고 있음에도 중국문헌을 인용하는 특징을 보인다. 한편, 바킨의 요미혼 작품인 『난소 사토미 핫켄덴(南総里見八犬伝)』과 『진세쓰 유미하리즈키(椿説弓張月)』에서 신화를 받아들여 이야기 구상에 이용하거나 직접 인용한 사례가 보인다. 『핫켄덴』에서는 등장인물을 명전자성(名詮自性)으로 명명(命名)하고 반호신화(槃瓠神話)와 난생신화(卵生神話)에서 모티프를 따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또한 『유미하리즈키』에서는 히코호호데미노미코토(彦火火出見尊) 신화에 따라 해신(海神)과 해궁(海宮)이 작품 구상에 이용되어 있고, 야마토타케루 전승에 등장하는 오토타치바나히메(弟橘姫)의 입수장면을 그대로 받아들여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바킨의 신화 내용 해석이 일반적인 해석과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지만 일부분 특수한 해석을 찾아볼 수가 있으며 이러한 해석이 그의 작품에 반영이 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듯 수필과 작품 내용의 상관관계를 살펴보고 분석된 수필 내용과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신화적 요소들을 결부시켜 고찰한다면 그의 작품 속에서 일본신화의 내용이 함축적으로 이용되어 이야기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Kyokutei Bakin(曲亭馬琴)’s essays “Ensekizasshi(燕石雑志)” and “Gendouhougen(玄同放言)” contain contents related to Japanese myths. In “God of the Sun(日の神)” of “Ensekizasshi”, we unravel the question of scholar surrounding Amaterasu Omikami(天照大御神) and explain what kind of poetry and poetry of Chinese characters in mythology are like. In “Gendouhougen”, he ascertains Hiruko(蛭児) and Susanoo(素戔嗚) from the viewpoint of the celestial state, revealing his own views on the pronunciation of the name of God and correct kanji marking. In the process, Bakin features a quote from the Chinese literature, even though it describes Japanese mythology. On the other hand, there is a case of accepting the myth from “Nanso Satomi Hakkenden(南総里見八犬伝)” and “Chinsetsu Yumiharizuki(椿説弓張月)”, which is a work of Bakin’s Yomihon(読本), and used it for the narrative concept. In “Hakkenden”, the characters are named by “名詮自性”, and the stories are developed after the motifs in Panhu myth(槃瓠神話) and Oviparous myth(卵生神話). In addition, in “Yumiharizuki”, the sea god and the sea palace are used in the design of works according to the myth of Hikohohodeminomikoto(彦火火出見尊), and the Ototachibanahime(弟橘姫)’s scene of drown herself of the Yamatotakeru legend is taken as it is and story is being developed. Although Bakin’s mythical content interpretation does not show much difference from the general interpretation, it can be seen that a special interpretation can be found, and it is confirmed that this interpretation is reflected in his work. By examining the relation between the essay and the contents of the work and analyzing the contents of the essay analyzed and the mythical elements appearing in his work. And then we can understand that the contents of Japanese myth are implicitly used in his works and play an important role in story development.
曲亭馬琴の随筆『燕石雑志』と『玄同放言』には、日本神話に関する内容が収録されている。『燕石雑志』の「日の神」では、天照大御神を巡る学者らの疑問を解き、神話の内容における漢字の音読や訓読がどのようになされているかを説明している。『玄同放言』では、蛭児と素戔嗚を天象の観点から考証し、神名の発音と正しい漢字表記に関する独自の見解を示している。その過程で馬琴は、日本神話を説明しながら中国の文献を引用する特徴を見せている。 一方、馬琴の読本作品である『南総里見八犬伝』と『椿説弓張月』に、神話を取り入れ物語の構想に利用したり、神話を直接引用した事例がうかがえる。『八犬伝』では、登場人物を名詮自性で命名し、槃瓠神話と卵生神話をモチーフにした物語の展開が見られる。また、『弓張月』では、彦火火出見尊神話に拠って海神と海宮が作品の構想に用いられ、ヤマトタケルの伝承に登場する弟橘姫の入水の場面がそのまま取り入れられ物語が展開している。 馬琴の神話内容の解釈が一般的な解釈と大きな差を見せてはいないが、一部特殊な解釈を見て取ることができ、このような解釈が彼の作品に反映されていることを確認できた。このように随筆と作品の内容における相関関係を検討し、分析した随筆の内容と彼の作品の中に見える神話的要素を共に考察するならば、彼の作品の中に日本神話が含まれ、それが物語の展開において重要な役割を果たしていることが理解できるであろう。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4집 2018.05 pp.5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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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코산개산전승(『彦山流記』『鎭西彦山緣起』)에 의하면 위나라의 승려 선정(善正) 또는 恒雄이 히코산을 열었다고 하나 전승에 지나지 않아서 누구에 의해 창건되었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히코산의 실제적인 개산자는 8세기 초에 활약한 승려 호렌(法蓮)이며 선정이나 恒雄은 전설적인 개산자로 봐야 할 것이다. 일본 수험도의 개조라 일컬어지는 엔노 오즈누(役小角)가 신라 산중에 출몰하였다는 『일본영이기(日本霊異記)』 전승 등을 참고로 하면 538년 불교공전 이전 한반도와 규슈를 오가던 무명의 수행승의 존재를 선정이라는 위나라 도래승의 이름에 가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恒雄’은 천제 환인의 아들로 태백산 신단수 아래 강림한 환웅신화의 주인공 ‘환웅’이며, 환웅의 강림신화가 제신 아메노오시호미미(天忍穗耳)의 강림전승으로 교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히코산이 위치한 소에다정(添田町)도 이러한 흔적을 남기는 지명이라 하겠다. 또 히코산 개산전승에서 가와라신(香春神) 및 하치만신(八幡神)과 관련성을 보여주는 내용도 풍부하여 부젠지역의 특색인 신라적인 문화・불교신앙 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Hikosan was the best mecca of the Shugen-do in the Kyushu region. According to the founding legend of Hikosan, the monk Seonjeong of the Wei Dynasty or the hunter Huziwarano Kannyu opened Hikosan for the first time. However, according to the history of Hikosan, the monk Horenn at the beginning of the 8th century should be regarded as the founder of Hikosan and the monk Seonjeong or Kannyu should be regarded as legendary founders. Given 『Ryōiki』 in which EN no Gyoja of the Nara period appears in the mountains of Shilla, numerous ascetic monks should have traveled between Silla and northern Kyushu at the civilian level before the official propagation of Buddhism in 538, and the existence of such unknown ascetic monks might have been represented by Seonjeong, the name of a monk from China. The hunter ‘Huziwarano kannyu’ should have borrowed the name of Hanyung and it is highly likely that the descending mythology of Hanyung was replaced by the descending mythology of Amenooshihomimi no Mikoto. In addition, there are many contents showing the relation between Kawara no Kami and Hachiman no Kami in the founding tale of Hikosan indicating that the founding tale is based on Silla culture and faith, which are characteristic of the Buzen region.
彦山の開山傳承には、中國大陸や韓半島からの渡來人の說話がからんでいる。『彦山流記』『鎭西彦山緣起』によれば、魏國の僧、善正または猟師・藤原恒雄が彦山を開いたとするが、しかしながら彦山の歷史的な開山は、8世紀初め頃活躍した法蓮法師であり、善正や恒雄は傳說的な開山者とみなければならない。修驗道の祖、役小角が新羅の山中に出沒したと記する『日本霊異記』を參考すれば、538年佛敎公傳より早い時期、新羅と北九州を往來した多くの修行僧があり、このような無名の修行僧のことを善正法師という魏國渡來僧に託したものと考えられる。獵人・藤原恒雄は、桓雄神話の主人公「桓雄」から借りた神名であろう思われる。桓因の子桓雄は太白山の山頂にある神壇樹という神木の下に降リ、神市を建てたと伝えられている。桓雄の太白山降臨神話を彦山の祭神天忍穗耳命の降臨傳承にすりかえたように思われる。また彦山開山傳承には香春神と八幡神との親密性をみせる話しも多く、豊前地方の特色である新羅的な文化や信仰を背景としていることが確められる。大分県の國東半島から英彦山にかけての豊前地方には、新羅系を包む新羅佛敎の存在した形跡がうかがわれるし、その中心が宇佐八幡宮・香春神社のある豊前地方であった。そうしたところに、彦山修驗道の發生する素地が充分に育まれたといえる。
고마치전승에 관한 일고찰 ― ‘기다리는 여성’에서 ‘거부하는 여성’으로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4집 2018.05 pp.85-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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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치는 일본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런 한편으로 그녀의 삶의 궤적은 불분명한 부분이 많다. 당대 최고의 미인이며 뛰어난 가인이었던 그녀는 말년에는 늙고 추한 모습으로 전국을 유랑하며 죽어서는 들판에 해골이 나뒹구는 신세가 되었다. 고마치에 대한 이미지만큼 시대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 인물도 없을 것이다. 고마치에 대한 일본인들의 이러한 양 극단의 평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헤이안시대에 최고의 가인이며 미녀로 칭송받던 그녀의 몰락의 이유는 무엇일까? 본고는 이러한 고마치의 삶의 궤적을 추적하여 다양한 작품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고마치상의 변화에 주목하여 그러한 고마치상이 출현하게 된 이유를 시대적 배경과 고마치의 노래에 대한 의도적인 왜곡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하였다. 시대적 필요에 따라 고마치를 남성을 거부하는 ‘강한 마음(強き心)’을 가진 여성으로 이미지화하고, 그에 의해 고마치는 죽어서도 고통을 당하는 ‘이로고노미’ 여성의 대표적 인물로 규정되고 있다. 결국 고마치는 시대가 원하는 여성상을 위해 왜곡되고 매도된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라 평가된다.
Under polygamy in Heian Period, women were forced to surrender themselves to “a mode of life waiting” men, in most cases, their husbands. A confidential tone intimating something of rejection in her poems was enough to stigmatize her as an arrogant woman. Many later literary peoples came to adopt her life as a subject matter for their works and with the decline of women's status in Heian Period the Komachi narrative came to be established centering on heroine as a figure punished for her sin of arrogance, mainly that of rejecting man, even after her death. As her life was shrouded in mystery, Komachi would have been the most suitable character for a legendary narrative. Consequently, her life was transformed into a great folklore epic to show the panoramic records of women's lives from Heian to Modern Period; it remains as a typical example illustrating what harsh lives women excluded from the protection of the institution had to suffer in each period.
小町ほど日本人に愛された人物はないと思う。その一方彼女ほどベールに包まれた人物もいない。一夫多妻制の中で女性には“待つ恋”が要求され、男性に強く出る彼女の歌は、傲慢な女性の象徴と思われた。その後彼女のイメージは多くの文学の中で、男性を拒否し、死んでからも苦痛を受ける説話の主人公となった。時代による多様な小町像は、身寄りのない女性が社会のなかで排除されていく過程をなまなまと見せるよい例である。 今までの小町研究は、地域と小町伝承を結ぶ方向や、興味本意の説話的側面が強調された感がある。今回の研究で、時代による女性地位の変化という側面から小町伝承を見直そうとする試みをしたことに意義があると思われる。これから近代に至る小町像の変化という面に焦点を当て、小町の全体像を探りたいと思う。
일영박람회에서 전시된 일본 역사와 예능 ― 대외문화홍보로서의 역사의 가시화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4집 2018.05 pp.10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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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근대초기 만국박람회에서 일본이 어떤 문화홍보를 펼쳤는지 고찰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1910년 일영박람회에서 역사를 디오라마로 시각적으로 전시했다는 것과 시대별로 예능과 연관된 장면을 설정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만국박람회는 참가하는 국가가 자국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자리이기도 했다. 근대초기 서양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일본에게는 만국박람회는 자국을 선전하는 절호의 기회였다. 일본이 만국박람회에 처음 참가한 것은 에도시대이던 1867년 파리만국박람회였으나, 메이지 신정부로서 정식으로 참가한 1873년의 빈만국박람회 이후 일본은 세계에 일본을 알리기 위해 자국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홍보할 노력을 하게 된다. 한편 메이지시대 일본 지식인과 고위관리들은 전통예능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국박람회에서는 미야코오도리와 가부키 등의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었고 일본 역사 소개에 각 시대의 예능의 소개를 포함시켰다. 본고에서는 빈만국박람회 이후 일본의 만국박람회에서의 문화홍보 양상을 살펴보며 일영박람회에서 역사와 예능을 결합한 전시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 배경과 흐름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The following paper contemplates the culturalpromotion Japan put forth at the early modern world’s fairs. This paper focusesparticularly on the visual display of Japan’s history through a diorama at the Japan-British Exhibition of 1910, and the creation of scenes related to Japanese arts over time . The world’s fair was a place for attending countries to announce their status to the world. To Japan, who was not well-known to the early modern west, the world’s fair was a golden opportunity for advertising their country. Japan’s first attendance at a world’s fair was during the Edo period at the Paris Exposition Universelle in 1867, but it was during the new Meiji government that Japan formally attended the 1873 Vienna World’s Fair. The new Japanese government composed a piece of text introducing the country’s history as a means of announcing Japan to the world. The Japanese government just so happened to also be compiling their history during this time, and the texts used at the fair to introduce Japanese history were later published as a history book. Meanwhile, Japanese intellectuals and high-level officials of the Meiji period had a generally negative perception of traditional arts. Despite this, Miyako Odori and Kabuki performances were even held at the world’s fair. This paper examines Japan’s cultural promotion at world’s fairs following the Vienna World’s Fair, and investigates the background and development of the display’s composition which combined history and the arts at the Japan-British Exhibition.
本稿は、近代初期、万国博覧会において日本がどのような文化広報を行ったのかを考察するものである。特に1910年ロンドンで開催された日英博覧会で歴史をジオラマで視覚的に展示したということと、時代別に芸能と関連する場面を設定したという点に注目する。 万国博覧会は、参加する国家が自国をアピールする場でもあった。近代初期、西欧に知られてしなかった日本にとって、万国博覧会は自国を宣伝する絶好の機会であった。日本が万国博覧会にはじめて参加したのは江戸時代の1967年パリ万国博覧会であったが、明治新政府として参加した1873年ウィーン万国博覧会以後、日本は世界に日本を知ってもらうため、歴史の紹介に力を入れるようになる。 一方、明治時代には、知識人や政府高官は伝統芸能や見世物については否定的な認識を持っていた。にもかかわらず、万国博覧会では、都おどりや歌舞伎などの公演が行われ、さらに日本の歴史の紹介に各時代の代表的な芸能の紹介を組み込むようになる。 本稿では、ウィーン万国博覧会以後、日本の万国博覧会における文化広報の様相を考察し、日英博覧会で歴史と芸能が結びついた展示がいかになされるようになったのか、その背景と流れについて明らかにする。
日本茶道의 한국 전래에 관한 사례연구 ― 영남지역의 우라센케류를 중심으로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4집 2018.05 pp.127-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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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에 있어서 다도라는 문화가 가장 먼저 정착을 한 지역으로 영호남을 들고 있다. 영남과 호남은 다도를 즐기는 분위기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모습이 약간 다를 뿐 지역에 따른 큰 편차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도를 정신적인 추구와 형식적인 면이라는 것으로 나누어 보면 형식적인면의 추구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영남이 좀 더 앞선다고 하여 세간에서 영남하고도 부산을 거론하며 다도의 메카라는 표현을 쓰는 기사도 있었다. 그리고 중국다도, 일본다도, 홍차도 등 다양한 다법을 즐기는 부류가 있는데 그 중에서 일본다도를 즐기는 차인이 많은 곳도 부산이다. 부산이 항구도시이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내륙보다는 적을 것이라는 짐작도 있지만 무엇보다 일본과 인접해 있는 곳이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물론 일본과 지리적으로 인접하여 일본의 문화를 쉽게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짐작은 있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쳤던 아픔이 있었다는 관점에서 볼 때 과연 일본의 문화를 아무런 충돌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라는 것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본 연구에서 현대인들이 즐기고 있는 일본다도가 오늘의 모습으로 향유되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전래되었으며, 받아들이고 즐기는 과정에서 변화되어 한국화되어지는 부분은 없는지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그 사례로서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향유되고 있는 우라센케다법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I’d like to investigate the Japanese historu of the tea ceremony in korea and change in the process of acceptance, esecially centering around Urasenke style through a field investigation in gyeongsang province, from 1930 to now.
現代韓国において茶道という文化が一番早く定着している地域として嶺南と湖南が挙げられる。嶺南と湖南とは茶道を嗜む雰囲気が部分的に少しの差をみせる。湖南のほうは精神的な側面が強調されるし、嶺南の方は形式的な側面が強調される部分がみえるのが、大きな差異は見えない。しかし、形式面が強調される嶺南は見られる姿が多少派手なので湖南よりは嶺南の方が活気があふれる感じもする。そして「釜山は茶道のメッカである」と書いてある記事もあるくらいに釜山は茶を楽しむ人が他の地域よりは多そうである。また、中国茶道、日本茶道、紅茶道など多様な形態の茶法が紹介されて茶人の関心を集めている所も釜山である。それは其のくらいに茶人が多いということを言ってくれるのではないか。 釜山が港町だから釜山の人々は新しい文化についての抵抗感が内陸の人々より少ないからと言われるが、それは釜山が日本と地理的に隣接している所だからと思えないか。勿論日本と隣接しているから日本の文化を手軽く受け入れたのではないかと考えられるが、日帝強占期という辛い歴史を経験した民族という立場から考えてみればそのように簡単な問題ではないだろう。異文化を単純な文化として受け入れると言っても部分的には文化の衝突があるかも知れない。まして、歴史的に辛い経験があった場合を前提として考えてみれば受け入れる姿は異なった可能性が多いだろうと思う。特に精神的な面を含んでいる文化が茶道であるから今日の姿を理解するためには日本茶道が現代韓国にどのような過程を経て伝来されて定着できたのかが考察したい。
분노사회 일본 ― 2000년대 이후 일본 사회・문화 분석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4집 2018.05 pp.151-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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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2000년대 이후 현대일본의 사회문화를 ‘분노’를 키워드로 하여 고찰한다. 일본의 ‘분노’는 세계사적으로는 1970년대 이후 진행되어 온 신자유주의, 일본적인 맥락으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잃어버린 10년’이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음이 기저에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측면으로만 일본의 ‘분노’가 모두 수렴되지는 않을 것이며 보다 다양한 원인과 형태로 분출되는 ‘분노’가 존재하리라 생각된다. 다케모토 노바라 『묻지 마 살인』, 최실 『지니의 퍼즐』과 재특회, 안전보장관련법안 반대집회와 블로그 ‘보육원 떨어졌다 일본 뒈져버려!!!’, TV프로그램 <마쓰코&아리요시의 분노 신당> <프리터, 집을 사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화제가 된 바 있는 <진격의 거인> 등을 통해 ‘분노’하는 일본사회의 현재를 조명해 보았다. 현대일본사회가 ‘분노’로 가득 차 있음은 분명하다. 문제는 이러한 ‘분노’가 어떠한 성질의 것이며 어디로 향하는가에 있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 일본의 미래가 달려 있지 않을까 한다.
This paper examines contemporary Japanese society and culture by keyword “anger.” Neo-liberalism since the 1970’s in world and the “lost decade” since the 1990’s in the context of Japan are in the background under Japan’s “anger.” All of Japan’s “anger” can not be converged in this aspect, however, there must be “anger” spurred into more diverse causes and shapes. I would like to consider Anger and Culture in Japan through Takemoto Nobara’s Torima, Choi Shil’s Gini’s Puzzle and Zaitokukai, the opposition gathering of security-related bills, blog I fell out of Nursery school. Die, Japan!!!, TV program Matsuko & Ariyoshi’s Anger Party, Freeter that Buy House and Attack on Titan etc. It is certain that “anger” in Japan is still overflowing. The problem will be on what kind of nature such “anger” is and where it goes.
本稿は、二〇〇〇年代以後の現代日本社会と文化を「怒り」をキーワードに考察する。日本の「怒り」は、世界史的には一九七〇年代から進行してきた新自由主義や、日本の文脈においては一九九〇年代からの「失われた十年」が未だに続いていることが根底にある。だがしかし、このような側面にのみ日本の「怒り」すべてが収斂されるはずはなく、より多様な原因と形に噴出される「怒り」が存在しているに違いない。 嶽本野ばら『通り魔』、崔実『ジニのパズル』と在特会、安全保障関連法案の反対集会、ブログ「保育園落ちた日本死ね!!!」、テレビ番組「マツコ&有吉の怒り新党」「フリーター、家を買う」、そして韓国でも話題を呼んだ「進撃の巨人」等々を通して「怒り」の現在を鑑みることとしたい。日本社会の「怒り」がいまなお溢れ返っているのは確かである。問題はかかる「怒り」がどのような性質のものであり、どのような方向に向かうのかにある。ここに正しく日本の未来がかかっているといえよう。
지식사회학의 관점에서 본 근현대 일본 제국주의 팽창정책과 한중 관련 서적 분포 ― 메이지 이후 일제 강점기까지의 동아담론과한중 관련 연구를 중심으로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4집 2018.05 pp.171-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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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메이지 이후 일제 강점기까지 일본에서 이루어진 동아시아 관련 연구 경향을 살피는 데 목적을 두었다. 목록류 서적의 서목 분석은 관련 연구를 정밀하게 검증하기는 어려우나 전반적인 연구 경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지식사회학의 관점에서 서목 분포를 통해 연구 경향에 나타나는 이데올로기성을 극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이 연구에서는 도쿄서적상조합에서 발행한 제5판 『도서총목록』(1918년, 博問館), 다카이치 요시오(高市慶雄)가 편집한 『메이지문헌목록(明治文獻目錄)』(1934년, 日本評論社), 하바아키오(馬場明男)의 『중국문제 문헌사전(中國問題文獻辭典)』(1980년, 國書刊行會) 속의 ‘연표(年表)’의 분류 체계와 서목을 분석 대상으로 삼고, 각 시기별 한중 관련 서적의 분포를 정리하였다. 일본에서의 동아시아 관련 서적은 1870년대부터 1945년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 정책과 관련하여 시대별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1880년대의 한국 관련 서적 증가나 1930년대의 중국 관련 서적이 급증하는 현상은 제국주의 팽창 정책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동양 또는 동아 담론의 출현이나, 조선학, 지나학이 발달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분야별 분포에서는 목록류 서적마다 다른 특징을 갖고 있지만, 문학과 어학, 실용서 등은 전반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This study aims to survey on the distribution of research on Korea and Chinese after the Meiji Restoration to Japanese Imperialism Periods in Japan. I analyzed three books. The first is the DOSEOCHONGMOKROK(complete catalog, Fifth Edition) published by Tokyo Bookstore Association in 1918. This book organized on alphabetical order, publishing office, classification and authors. The total lists were nearly twenty thousand. The second are the MEIJIMUNHEONMOKROK(catalog to be written in Meiji Periods) written by Dakaich Yoshiyo(高市慶雄) in 1934. The third is JUNGKUKMUNJEMUNHEONSAJEON(reference dictionary of Chinse problems) compiled by Haba Akio(馬場明男) in 1980. These current list of books show the tendency of knowledge. I analyzed these list of books from the sociology of knowledge perspective. I realized the distribution was influenced by expansionary policy of Japanese imperialism. The books which related with Korea and Chinese produced by imperialism’s political interest.
本研究は明治時代以降日帝強占期まで日本で行われた東アジア関連研究の傾向を探ることを目的とした。目録類書籍の書目分析としては、関連研究を精密に検証することは難しいものの、全体的な研究傾向を理解するには有効である。知識社会学の観点から書目分布を通じて研究傾向に示されるイデオロギー性が克服できる。 このため、本研究では東京書籍商組合発行の第5版『書籍総目録』(1918年、博問館)、高市慶雄編集の『明治文獻目錄』(1934年、日本評論社)、馬場明男の『中國問題文獻辭典』(1980年、國書刊行會)に示される‘年表’の分類体系と書目を分析対象とし、各時期別に韓中関連の書籍の分布をまとめた。 日本では東アジア関連書籍が1870年代から1945年まで継続的に増加し、日本帝国主義の膨張政策と関連して時代ごとに異なっている。特に1880年代における韓国関連書籍の増加や、1930年代における中国関連書籍の急増は、帝国主義の膨張政策と密接に関連するものと見られる。東洋や東亜談話の出現、朝鮮学や支那学の発達も、それと無関系ではないと考えられる。分野別分布からみると、目録類書籍ごとに異なる特徴を見せているが、文学と語学、実用書などが全体的に多くを占めていることが分かる。
일본 헤이안(平安)시대 문학에 나타난 한국 ― ‘고려(高麗)’・‘백제(百済)’・‘신라(新羅)’를 중심으로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4집 2018.05 pp.199-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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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헤이안시대 문학 속에 한국이 어떤 표현과 이미지로 등장하고 있으며, 그것이 작품세계에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가를 『우쓰호 이야기』, 『겐지 이야기』 등 모노가타리 작품과 『곤자쿠 이야기집』의 설화를 통해 살펴보았다. ‘고려’, ‘백제’, ‘신라’라는 명칭에 주목해보면, 모노가타리 작품에서는 ‘고려’의 용례가 대부분이고 ‘백제’와 ‘신라’의 예는 그다지 많지 않다. 모노가타리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를 개별화하는 관념은 희박하고, 발해를 포함한 고대 한국은 ‘고려’라는 통합적인 명칭으로 등장하여 작품세계를 형성하는데 다양하게 기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려’는 ‘고려 비단’ 등 문물 관련, ‘고려악’ 등 무악 관련, 발해인을 가리키는 ‘고려인’으로 작품 속에 나타나고 있다. ‘백제’는 가장 용례가 적으며 불교 전래와 관련하여 쇼토쿠 태자 전설과 함께 등장하고 있고, ‘신라’는 당나라와 더불어 바다 넘어 존재하는 이국의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다. 한편 『곤자쿠 이야기집』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3국과 일본과의 불교 전래와 역사적 관계에 관련된 전승들이 담겨져 있어서 모노가타리 작품과는 또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는 불교 관련에서는 고구려를 뜻하며, 모노가타리와 달리 발해를 가리키는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백제’의 경우는 불교 전파국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며 일본과의 우호관계와 백제의 패망이라는 역사적 사실 또한 관련되어 있다. ‘신라’의 경우 불교 관련과 더불어 일본과 대립관계에 있었던 역사가 그 이미지에 적지 않게 반영되어 있다. 이와 같이 헤이안시대 문학에 보이는 ‘고려’, ‘백제’, ‘신라’는 표현과 의미의 위상을 달리하면서도 서로 공명하며 다의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In this article, we investigate the images and functions of Korea in the Heian period Monogatari and Konjaku Monogatarishu. In Monogatari, most of the examples are “Koryo”, and there are few examples of “Baekje” and “Silla”. And in Monogatari, the idea of distinguishing between Goguryeo, Baekje and Silla is thin. Ancient Korea, including Balhae, has appeared in the name of “Goryeo” and it functions in various ways in the formation of literary works. On the other hand, in Konjaku Monogatarishu, “Goryeo” means Goguryeo. The examples of Konjaku Monogatarishu’s “Baekje” and “Silla” are also similar. Konjaku Monogatarishu reflects the Buddhist tradition and historical ties between Goguryeo, Baekje, Silla and Japan.
本論文では、平安文学に見られる韓国がどのような表現とイメージをもって登場し、作品世界といかに関わっているかを、『うつほ物語』『源氏物語』などの物語作品と『今昔物語集』の説話を通して考察した。「高麗」「百済」「新羅」という名称に注目すると、物語においては「高麗」の用例がほとんで、「百済」「新羅」の用例は少ない。物語では、高句麗・百済・新羅を個別化する観念は希薄で、渤海を含めた古代韓国は「高麗」という統合的な名称で登場し、作品世界の形成に様々な形で関わっていた。一方、『今昔物語集』においては、「高麗」とはほとんど高句麗のことで渤海を指す例は見られず、「百済」「新羅」の用例もほぼ同様の数が見られた。『今昔物語集』では、高句麗・百済・新羅の三国と日本との仏教伝来や歴史的関係に関わる伝承が取り込まれ、各国が固有のイメージを有しており、物語とは異なる様相を見せている。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4집 2018.05 pp.223-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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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야마시로노쿠니 후도키(山城国風土記)』・『엔기시키(延喜式)』・『마쿠라노소시(枕草子)』・『가게로 일기(蜻蛉日記)』・『곤자쿠모노가타리슈(今昔物語集)』・『사라시나 일기(更級日記)』・『헤이지 모노가타리(平治物語)』・『구칸쇼(愚管抄)』・『요시노슈이(吉野拾遺)』・『니쥬니샤혼엔(廿二社本縁)』・『이나리다이묘진루키(稲荷大明神流記)』등, 일본의 고대・중세 문예에 나타나 있는 이나리 신을 규명함으로써 이나리 신의 변모양상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고대문예에 있어서 이나리 신은, 『야마시로노쿠니 후도키』에서는 농경의 신으로서 그 신위(神威)를 나타내지만, 『마쿠라노소시』에서는 일곱 번 참배하는 대상으로,『가게로 일기』에서는 부부 복연(復縁) 기원의 대상으로,『곤자쿠모노가타리슈』에서는 남녀의 성애(性愛) 기원의 대상과 출산의 신(産神)으로, 『사라시나 일기』에서는 영험이 뚜렷한 신으로 변모한다. 중세문예에 있어서는, 『헤이지 모노가타리』에서는 구마노(熊野)와 함께 참배하는 신으로,『구칸쇼』에서는 서민 신앙의 대상으로, 요시노슈이에서는 천황을 수호하는 신으로, 『니쥬니샤혼엔』에서는 도지(東寺)를 수호하는 신으로, 『이나리다이묘진루키』에서는 불법(仏法)을 수호하는 신으로서 그 신격(神格)을 나타낸다. 즉, 농경의 신이었던 이나리 신은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이후 부부 복연 기원의 대상이나 남녀의 성애 기원의 대상 등, 서서히 현세이익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서민과 귀족들의 신앙을 불러일으키고 밀교와 습합(習合)한 후인 중세에서는 도지나 불법을 수호하는 신으로 크게 변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헤이안 시대부터 서서히 이나리 신의 현세이익적인 효능을 기대하여 연애나 일을 비롯한 소원 성취 등, 신분이 높고 낮음과 관계없이 일상생활에 밀접히 관계된 신이라는 점, 또한 이와 같은 이나리 신의 현세이익적인 신격은 헤이안 시대 중기 이후에 귀족이 앞 다퉈 수행한 밀교 수행법의 효능과의 공통점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나리 신의 실로 다양한 변모는 시대의 변천과 함께 밀교와 습합함으로써 새롭게 획득한 다양한 신격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 시대 사람들의 요구나 소원을 반영하는 신앙의 발로라고 할 수 있겠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aspects of tranforming Inari-god(稲荷神)" by focusing on the Literary Arts in Ancient・Medieval Japan. In ancient literary arts, Inari-god showed an agriculture gods in “Yamashiro no kuni Fudoki(山城国風土記)” , but it appeared as an object of the visiting Inari Shrine seven times in “Makura no Sōshi(The Pillow Book , 枕草子)”, an object of the couple reconciliation prayer in “Kagerō Nikki(蜻蛉日記)”, an object of the sexual love prayer of the man and woman・guardian deity of pregnant women, newborn babies and one’s birthplace in “Konjaku Monogatarishū(今昔物語集)”, an as god of miraculous powers in “Sarashina Nikki(更級日記)”. In the literary arts of the Middle Ages, Inari-god showed god to visit with Kumano(熊野) at the same time in “Heiji Monogatari(平治物語)”, a target of people’s belief in “Gukanshō(愚管抄)”, god to protect the Emperor in “Yoshino Shūi(吉野拾遺)”, god to protect To-ji Temple(東寺) in “Nijyunisha Honen(廿二社本縁)”, god to protect Buddhism in “Inari Daimyojin Ruki(稲荷大明神流記)”. In other words, Inari-god as an agriculture gods gathers the faith of noble general public as god gradually brings benefits gained in this world through observance of the Inari Faith. After Heian era(平安時代) it was including an object of the couple reconciliation prayer or an object of the sexual love prayer of the man and woman and so on. And it also greatly transforms that god protecting To-ji Temple and Buddhism in the Middle Ages after having done syncretization of Shinto with esoteric Buddhism. Benefits gained in this world through observance of the Inari Faith is gradually expected from Heian era, and Inari-god is god concerned with everyday life regardless of top and bottom of the social position including the desire accomplishment commencing with love and work closely and so on. However, as for really a variety of changes of Inari-god, I conclude that it was an expression of the faith to reflect demands and desires of people in the time as various divinity that it acquired newly by doing syncretization of Shinto with esoteric Buddhism.
本稿は、『山城国風土記』・『延喜式』・『枕草子』・『蜻蛉日記』・『今昔物語集』・『更級日記』・『平治物語』・『愚管抄』・『吉野拾遺』・『廿二社本縁』・『稲荷大明神流記』など、古代・中世文芸に現れた稲荷神を究明することにより、稲荷神がどのように変貌していくか、という稲荷神の変貌様相について具体的に考察してみたものである。 古代文芸において稲荷神は、『山城国風土記』では農耕の神としてその神威を現していたが、『枕草子』においては七度詣での対象に、『蜻蛉日記』においては夫婦復縁祈願の対象に、『今昔物語集』においては男女の性愛祈願の対象と産神に、『更級日記』においては霊験あらたかな神に変貌している。 中世文芸においては、『平治物語』では熊野と一同に参詣する神に、『愚管抄』では庶民信仰の対象に、『吉野拾遺』では天皇を守護する神に、『廿二社本縁』では東寺を守護する神に、『稲荷大明神流記』では仏法を守護する神に、その神格を現している。即ち、農耕の神であった稲荷神は、平安時代以降、夫婦復縁祈願の対象や男女の性愛祈願の対象など、徐々に現世利益をもたらす神として貴族や庶民たちの信仰を集め、さらに密教と習合した後の中世では東寺や仏法を守護する神へと大きく変容していることが分かる。 それは、稲荷神が、平安時代から徐々に現世利益的な効能を期待され、恋愛や仕事をはじめ、願望成就など、身分の上下に関係なく日常生活に密接に関わっていた神であり、このような稲荷神の現世利益的な神格は、平安時代中期以降、貴族が競って修させた密教修法の諸尊の効能と共通性を持つものによると言われている。しかし、稲荷神の実に多様な変貌は、時代の変遷とともに密教と習合することにより、新たに獲得した様々な神格として、その時代の人々の要求や願望を反映する信仰の発露と言えよう。
유라시아 비교의 관점에서 본 한일신화(韓日神話) 속의 좌(左)와 우(右)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4집 2018.05 pp.245-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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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신화 속에 보이는 왼쪽과 오른쪽의 상징성 및 상호 관계성을 유라시아 신화비교의 관점에서 고찰해 보고자 한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그리고 고찰의 결과, 한일신화에서는 왼쪽 우위의 서열 상징성을 일부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는 서구권의 전통적인 오른쪽 우위 관념에 반하는 것이다. 다만, 한일 신화에서의 왼쪽 우위를 서구의 오른쪽 우위에서 보는 것과 같은, 좌우간의 적대적이고도 상호대립적인 관점으로 이해하여서는 곤란하다. 한일 신화에서의 왼쪽은 단지 오른쪽보다 순서가 먼저라는 서열우위와 더불어, 상보적이고도 조화로운 관계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신화에서 보이는 왼쪽 우위와, 서구 지중해 권(그리스, 로마, 이집트) 및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보이는 오른쪽 우위의 관념은, 결국 같은 태양을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았는가 하는 보는 방향과 방위의 상대성의 문제일 뿐, 그 근본은 같음을 알 수 있다. 끝으로, 한일 신화에서 보이는 왼쪽 신체의 결여 내지 불구는, 서구권에 있어서의 오른쪽 신체의 결여 및 불구와 그 성격이 다름을 알 수 있었다. 왼쪽 신체의 불구는 비록 부정적이긴 하지만, 점차 긍정적으로 상황이 변화해가는 비 일상성과 신성성의 발현이지만, 서구권의 오른쪽 신체의 결여는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면 본래의 남성적인 강한 힘(급소, 선)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In this paper, I looked into the symbolicity and relationship of ideas of left and right of Korean-Japanese myth from the viewpoint of Eurasia comparison. First, compared with the Western “rightward advantage”, in Japan and Korea, it was confirmed that myths that can be seen as “left dominant” exist commonly. Unlike the hostile relationship between left and right in western Europe, the ideas of Korea and Japan was complementary. Second, lack of right part of the body is representing loss of masculinity or strength in western Europe’s myths, but, lack of left part of the body is representing unusuality or sanctity in Korea and Japanese myths. And, I found that the favorable idea of the Japanese to the leftward and the favorable idea of the westerner to the rightward are the same. It is due to the relative orientation of the direction.
本稿では韓日両国神話に見る「左」と「右」の観念の象徴性および関係性が西欧のそれとは相異なる点について検討してみた。 まず、西欧では伝統的に「右優位」の観念が受け継がれており、そこには「右」を「善」、「左」を「悪」と見る対立的な観念が存在している。が、日本と韓国には「左優位」とも見取れる神話が共通的に存在していることが確認できた。ただし、これらの神話に見る左と右との間の関係は、左優位という序列関係はあるものの、お互い相補的な関係性を持っていて、西欧のような敵対的な構図ではなかった。 次に、人間の身体の不具における左と右の象徴性に関しても、韓日神話では「身体の左の欠如=非日常性、神聖性」を表し、「身体の右の欠如=男性性や強さの喪失」という西欧のそれとの観点の相違点が確認できた。前者は否定から肯定へのプラス的な変化が生じるのに対し、後者は肯定から否定へというマイナス的な側面が生じるという違いが分かった。また、日本人の左方向に対する好意的な観念は南に向かって左から太陽が昇ることと関係するが、西欧人の右方向への好意も北に向かって右、あるいは東に向かって右であるという点で両者の発想は同じであることが分かった。
근세 초기 도요토미 히데쓰구(豊臣秀次)에 대한 인식과 권력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4집 2018.05 pp.269-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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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근세 초기에 도요토미 히데쓰구에 대한 인식의 정립과정과 권력과의 관계를 서술한 것이다. 먼저 『우라미노스케(恨の介)』에서는 히데쓰구 사건에 대해서는 간략히 기술되어 있을 뿐 히데쓰구의 악행은 나타나 있지 않다. 『다이코사마 군키노우치(太閤さま軍記のうち)』는 당시 권력을 지닌 히데요시의 편에서 기술되어 있는 것이 특징으로서 본서를 계기로 히데쓰구의 온갖 악행이 부풀려지고 정착된 계기가 되었으며, 하야시 라잔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보』, 아사이 료이의 『쇼군키』가 이를 계승하였다. 『주라쿠 모노가타리』는 소설로서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으며 『다마쿠시게』는 『주라쿠 모노가타리』와 『쇼군키』의 내용을 합성하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밝히는 것을 통해 본고에서는 히데쓰구의 ‘살생관백’의 악인으로서의 인물상이 확대되고 정립된 과정을 추적하였다. 한편, 『히데쓰구 모노가타리(秀次もの語)』는 히데쓰구쪽의 시점에서 기술된 것으로서 이 작품이 간행되어 그 내용이 거대한 담론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필사본으로만 남아있게 된 것은 당시의 정치권력 속에서 승자인 히데요시를 비판하고, 패자인 히데쓰구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It is not yet clear whether Toyotomi Hidetsugu planned the rebellion against Toyotomi Hideyoshi, and the villain ‘Sesyou Kanpaku’ or Hideyoshi fabricated it in order to inherit his right to Hideyori. However at that time it was common sense that Hidetsugu was a villain of the ‘Sesyou Kanpaku’, and he tried to rebel against Hideyoshi, but it was found out that was ordered to commit hara-kiri. This paper clarifie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ognizance and authority about Hidetsugu by examining seven kinds of literary works in the early years of the Edo Period. It was mixed the content of the ‘Sesyou Kanpaku’ that planned the rebellion so called “Taikosama Gunkinouchi” line, and Hidetsugu had not planned the rebellion so called “Taikouki” line. And it was a “Taikosama Gunkinouchi” that was easy to accommodate to authority as a propagandist of Hideyoshi. As a result, it was added in various kinds of stories as the villain, and became a common sense at that time.
豊臣秀次が本当に謀反を計画し、「殺生関白」の悪人であったか、あるいは秀吉が愛妾淀殿との間で生まれた秀頼に政権を継承させるため、捏造したのかは現在に至っても明らかになっていない。しかし、当時は豊臣秀次が「殺生関白」の悪人であったこと、そして豊臣秀吉に対して謀反を起こそうとしたが、発覚され、切腹を命じられたことは常識的なことであった。 本稿は近世初期の文芸作品7種を検討することにより、豊臣秀次についての認識と権力との関係を明らかにしたものである。まず、『恨の介』では、秀次事件については簡単に記述されているのみで、彼の悪行は描かれていない。それが、「殺生関白」の異常人格者として謀反を計画したという内容、つまり『太閤さま軍記のうち』と、「殺生関白」の異常人格者ではあるものの、謀反は計画していなかったという内容、つまり『太閤記』の内容が混在していた。そのうち、当時の権力と迎合しやすいのは、秀吉の宣伝物として秀次を殺すための正当性を与えた『太閤さま軍記のうち』であり、後になると本作品を基本的な骨子として、悪人としての秀次像が様々な形で付け加えられたのである。
春馬改十返舎一九作合巻『貧福交換欲得』の 書誌と創作法について ― 一九作貧福もの黄表紙『貧福蜻蛉返』との比較を端緒に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4집 2018.05 pp.289-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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슌바가 개명한 짓펜샤잇쿠의 고칸작품 『貧福交換欲得』의 저본 3종에 대해 서지적 문제점을 논한 뒤, 본 작품이 모방한 원본이라고 하는 초대잇쿠작 빈부물 기뵤시 『貧福蜻蛉返』와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 선행작에 전개되는 주요 모티브 다섯 가지를 전부 전용하고 있으므로 오늘날의 관점에서 이른바 ‘표절’이라고 비판받을 여지가 충분히 있는 반면, 20쪽에 불과한 선행작을 40쪽으로 늘리는데 있어서 도입된 많은 새로운 취향에 의해, 단순한 증보작이나 개작이 아니라 마치 다른 작품인 것 같은 인상을 독자에게 주는 점에 대해서 논했다. 구체적으로는 선행작에도 등장하는 아마노쟈키가 활약하는 장면에 유사 취향이 집중되면서 모방 수법이 두드러진다. 한편 긴피라・다이코쿠텐・칠복신과 가난신이라고 하는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켜 상이한 스토리를 구축하거나, 동일한 등장인물이어도 선행작에는 없었던 ‘성격’을 부여하거나, 전후사정을 상세히 설명함으로써 황당무계한 사건에도 현실성을 부여하는 등, 모방이라고 쉽게 결론짓기에는 주저되는 별개의 작품으로서 감상할 수 있는 여지를 지니는 희작이었다. 원래 작자 슌바가 아마노쟈키와 다이코쿠텐, 정직한 사람과 욕심쟁이, 복신과 가난신이라고 하는 이중구조를 작품의 뼈대로 세웠을 때, 선행작과의 동일한 취향과 창작담을 마치 안과 밖처럼 상호 교차시키면서 스토리를 구축하고자 하는 창작 수법이 수반되었으리라고 추론된다.
First of all, I picked up three texts and discussed the bibliographical doubts about Gokan “HinpukuTorikaebaya”. Then, I compared the first Ikku’s Kibyosi “HinpukuTonbogaeri” which is said to be the basis of reprocessing. As a result, because of having diverted all five main motifs developed in the previous work, there was plenty room to be criticized as “reprocessing” from the current viewpoint. On the other hand, when increasing only ten sheets of previous work to twenty sheets, I discussed how to read as a different work, not just a augmented work, depending on many new tastes adopted. Specifically, similar motifs concentrate on scenes where perverse person appears and is active in previous work, and the method of reprocessing is remarkably used. Meanwhile, a new story is created with Kinpira, Daikokuten, Seven lucky gods and Poor gods appearing and a different story is constructed, even with the same characters, while giving a “personality” which was not in the previous work, It was also “Gesaku” which can be enjoyed as another work such as making reality an absurd incident by explaining circumstances in detail.
春馬改十返舎一九作合巻『貧福交換欲得』について、先ずは底本三種を取り上げ書誌的疑義事項を論じた。それから、焼き直されたといわれる初代一九作貧福もの黄表紙『貧福蜻蛉返』と比較してみた。その結果、先行作に展開する主要モチーフ五つを全部転用しているので、今の観点で所謂「焼き直し」と批判される余地が十分ある反面、十丁に過ぎない先行作を二十丁に増やすに際して取り入れられた新しい多くの趣向によって、只単なる増補作や改作ではなく、別の作品のような印象をも与えることを論じた。具体的には、先行作にも登場する天の邪鬼が活躍する場面に類似趣向が集中し、焼き直しの手法が著しく駆使される。一方、金平・大黒天・七福神と貧乏神という新しい人物を登場させて別の話柄を構築したり、同じ登場人物であっても先行作にはみられなかった「性格」を付与しつつ、事細かく前後を説明するので荒唐無稽な事件にも現実味を持たせるなど、焼き直しとして容易く結論付けるには躊躇される、別の作品として楽しめる側面もある戯作であったわけである。抑も、作者春馬が天の邪鬼と大黒天、正直者と欲張り者、福の神と貧乏神という二重構造を思い立った際、同趣向と創作譚は裏表のように作用せざるを得ない創作手法であったのだろう。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4집 2018.05 pp.317-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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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내습은 중세기 일본의 중대 사건이었다. 물론 몽골의 확장은 세계사적으로 신기원을 이룩한 큰 사건이며, 일본도 동아시아의 국제 정세에 영향을 받았다. 당시 일본은 교토의 조정과 가마쿠라 막부가 병립하는 이중 권력 구조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 결과, 이러한 위기에 대한 대응 역시 다양한 양상을 보였다. 외교적 측면・군사적 경과・종교계의 반응・국내의 사회 정세 등 검토해야 할 문제는 많다. 본 논문은 이처럼 중대한 사건에 대해 문학 작품에서는 어떤 언급이 나타나고 있는지를 주제로 했다. ‘국난’로 불리는 몽고 내습에 대해 당시 사람들은 어떤 감각을 보여주고 있는가? 그리고 그 감각은 이후 일본의 대외 인식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가? 최근의 연구 성과를 참조하면서 검토한다.
The Mongol Invasion was, without doubt, one of the most decisive crises which occurred in medieval Japan. The expansion of the Mongol Empire made an epoch in world history, and then Japan was involved in the international conflicts of East Asia. At that time, there was political dualism in Japan, in which the imperial court in Kyoto and the shogunate in Kamakura coexisted. Against these backgrounds, responses to the crisis witnessed diverse aspects. There are many topics to consider, such as diplomatic aspects, military process, reactions from the religious circle, domestic social contexts and so on. This article focuses on literary works to reveal how this crucial incident was described or mentioned; what sort of perceptions or feelings did Japanese people have toward the Mongol Invasion or so-called “Kokunan (National Crisis)”? and how did those perceptions and feelings affect the foreign perception of Japanese? We will examine this topic in depth, with referencing to recent studies.
蒙古襲来は中世日本における重大な事件である。無論モンゴルの拡大は世界史の大きなエポックであって、日本も東アジアの国際情勢に参与した。日本は当時、京都の朝廷と鎌倉幕府が並立する二重権力構造の形態であった。その結果、この危機への対応は様々な様相を見せている。外交的側面・軍事的経過・宗教界の反応・国内の社会情勢など、検討するべき問題は多い。本稿はこの大事件について文学作品がどのような発言を見せているかを主題とした。「国難」と言われる蒙古襲来についての感覚はどのようなものだったか?意外なほどにその発言は少ない。その感覚はその後の日本の対外認識の形成とどう関連するかについて考察する。
엇갈림과 어울림, 한・일 문사 교류의 두 시선 ― 원중거와 축상을 중심으로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4집 2018.05 pp.343-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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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764년 계미 사행에 참가한 조선 문사와 일본 문인 축상과의 필담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들의 기록을 비교하면 4월 8일과 20일의 기록에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어느 하나가 오류 또는 사실이라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양쪽의 기록이 모두 완전치 않다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양쪽의 기록이 지니는 차이는 각자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나 기억하고 싶은 것만 선택하여 기록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 보인다. 양쪽의 기록에는 몇 가지 차이가 있지만 동아시아 보편 문명의 문화적 우월성과 일본이 동아시아 보편 문명에 들어갈 수 있는 문화적 성숙을 이루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동일성이라는 어울림이 보인다. 그러나 조선의 문화적 우위와 일본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이라는 측면에서는 엇갈림이라는 서로 다른 뚜렷한 차이를 보여준다. 양쪽의 기록들 사이에 나타나는 거리는 그들 각자가 살았던 삶과 그들이 처해 있었던 상황에 근거한 것이라 생각되는데, 이와 같은 양쪽의 기록에 나타난 엇갈림과 어울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아 보인다. 그것은 동질성을 강조하고 이질성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동질성과 이질성을 있는 그대로 밝힘으로써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이루기 위한 올바른 태도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This article is about the Japanese literary man, which were most recognized by the literary people of Joseon who participated in the diplomatic mission in 1764 and his conversation by writing texts. Comparing these data, there is a significant difference in the records of April 8 and 20, but it is not easy to say that either of these is an error or a fact. It is only possible to say that both records are not complete. This difference occurred because each person made a record only by remembering or want remember. The records show that there are some differences in the records, but they are common in the recognition of the cultural superiority of East Asian universal civilization and the agreement that Japan has achieved cultural maturity that can be incorporated into the civilization. However, there is a clear difference in the part of confidence in the cultural superiority of Joseon and pride and confidence in Japan. The distance between these records is based on the life that each of them has lived and the situation they have been in. Therefore, it is right to accept this kind of cross as it is, and to accept this kind of associate as it is. I think it is right to understand and acknowledgethe differences of each other by revealing homogeneity and heterogeneity as it is rather than emphasizing homogeneity and hiding heterogeneity.
この論文は1764年に外交使節団に参加した朝鮮文学者と文章を通じて対話をした日本人文学者についたものです。 これらの文を比較すると4月8日と20日の記録には大きな差があるが、どの一つが誤り又は事実と断定するのは容易ではありません。 両方の記録が全て完全ではないということのみが可能です。 この差は各自が記憶していることや、記憶したいことだけ記録したために発生しました。 記録には、いくつかの違いがあるが、東アジア普遍文明の文化的優越性と日本が東アジア普遍文明に入ることができる文化的成熟を達成したという点を認めるという面ではおなじです。 しかし、朝鮮の文化的優位と日本に対する自信と自負心には、おたがい 明確な違いがあります。 これらの記録との間の距離は、彼らが住んでいた生活と彼らの状況に基づいています。 この文に現れた差をそありのまま受け入れてこのような種類の同じことをありのままに受け入れることが正しいです。 それは同質性を強調して異質性を隠すのではなく、同質性と異質性を明らかにすることで、お互いの違いをありのままに理解することが正しいからです。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4집 2018.05 pp.367-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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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淸日戰爭) 시기 『미야코신문(都新聞)』과 『도쿄 아사히신문(東京朝日新聞)』에는 이순신(李舜臣)이 등장하는 두 가지 신문연재소설이 연재되었다. 그 중 하나는 임진왜란을 다룬 무라이 겐사이(村井弦斎)의 『조선정벌(朝鮮征伐)』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청일전쟁 전후 시기를 다룬 나카라이 도스이(半井桃水)의 『고사후쿠카제 속편(続胡砂吹く風)』이었다. 『조선정벌』에서 이순신은 작품 내내 자신의 입을 통해 아군인 명군을 격하하고, 적군인 일본군을 칭송하는 등의 우호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로인해 결국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로부터 조선이 일본과 화친하면 명을 칠 선봉장으로 세우기에 적격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청일전쟁이 한창 중이던 때, ‘훌륭한 조선인이 명보다 일본을 높이 평가’한 것, 또한 이순신의 측근 곽상(郭祥)이 ‘조선의 독립’을 희망하는 부분은, 청일전쟁에서의 일본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였다고 생각된다. 저널리스트였던 겐사이는 분명한 정치적 목적을 갖고 『조선정벌』을 저술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으며, 이순신은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고사후쿠카제 속편』에서의 이순신은 비록 작중 인물로서 등장하지는 않으나, 참언으로 인해 옥에 갇히어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죽게 되는 비극적 인물로서 그려진다. 조선에서 ‘유일하게 싸울 줄 아는’ 인물이었던 이순신의 이러한 비극은, 결국 조선인에 대한 비난과 현 상황을 더욱 비판적으로 만드는 장치로 사용된다. ‘유일한 인재’가 조선인 동포의 참언으로 고통 받는 것을 통해 조선의 인재대우를 묘사하며, 현재 조선에 ‘한명의 이순신도 없음’으로 연결짓는다. 인재가 한명도 없어서 겨우 좀도둑떼를 치는 데에 이웃나라의 군사를 빌린다는 전개로 이어지는 이순신의 일화는 결국 ‘조선은 반망국(半亡國)’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즉, 『고사 속편』에서 이순신의 일화는 철저히 조선을 비난하기 위한 장치로 이용된 것이다.
In the 『Miyako Newspaper』 and the 『Tokyo Asahi Newspaper』 during the Sino-Japanese War, there were two series of newspaper novels in which Yi Sun-shin appeared. One of them was 『the Conquest of the Joseon』of Murai Gensai, which dealt with the Imjin-War. The other was the 『The Wind Blowing Yellow Sand sequel』by NakaRai tosui, who dealt with the period before and after the Sino-Japanese War. In the 『the Conquest of the Joseon』, Yi Sun-sin shows favorable attitude toward Japan, such as downgrading his friendly Ming army and praising the enemy Japanese army through his mouth. When the Sino-Japanese War was in full swing, a great Korean Yi appreciated Japan better than Ming, and Yi’s friend Kwak Sang hopes to become independent of Korea. This is a device for giving legitimacy to Japan in the Sino-Japanese War. Gensai, a journalist, must have been writing 『the Conquest of the Joseon』 with a clear political purpose, and Yi Sun-sin is being used as a means to achieve such a goal. Yi Sun-sin at the 『The Wind Blowing Yellow Sand sequel』 is depicted as a tragic person, because he is imprisoned due to his colleague and his mother who heard the news dies. This tragedy of Yi Sun-sin, who was the only person to fight in the Joseon Dynasty, is finally used as a criticism against the Korean people and a criticism of the current situation. The story of Yi Sun-sin ultimately leads to the conclusion that “Joseon is a half-ruined nation.”
日淸戰爭の時「都新聞」と「東京朝日新聞」に李舜臣が登場する2つの新聞連載小説が連載された。そのうちの一つは、壬辰倭乱を扱った村井弦斎の『朝鮮征伐』であり、他の一つは、日清戦争前後の時期を扱った半井桃水の『続胡砂吹く風』であった。 『朝鮮征伐』で李舜臣は作品を通して、自分の口から味方の明君を格下げし、敵軍の日本軍を称賛するなどの友好的な姿を見せる。それによって、秀吉から朝鮮が日本と和親すると明を打つ先鋒に立てる資格がある人物だと評価される。日清戦争の最中のとき、「素晴らしい朝鮮人が明よりも日本を高く評価」したこと、また、李の側近の郭祥が「朝鮮の独立を希望する」部分は、日清戦争での日本の正当性を付与するための装置であったと考えられる。ジャーナリストであった弦斎は明確な政治的目的を持って『朝鮮征伐』を著していたにちがいなく、李舜臣は、そのような目的を達成するための一つの手段として活用されている。『続胡砂吹く風』で李舜臣は作中人物としては登場しないが、讒訴により牢に閉じ込められ、その話を聞いた母が死んであいまうという、悲劇的人物として描かれる。朝鮮で「唯一戦える」人物であったと評価される李舜臣のこのような悲劇は、最終的には朝鮮人に対する非難と日淸戰爭期の朝鮮を悲劇的に描くための装置として使われている。李舜臣の逸話は、最終的に「朝鮮は半分亡国」という結論をもたらす。
한일 근대여성문학가 다무라 도시코와 김명순의 ‘사랑’ 고찰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4집 2018.05 pp.39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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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다무라 도시코와 김명순을 대조 선상에 놓을 때, 그들이 각각 일본과 한국에서 근대 신여성 작가로서 대표할 수 있다는 기존 연구를 토대로 비교 주제를 설정하게 되었다. ‘사랑’이라는 주제는 다소 폭넓은 영역을 점하고 있지만 다무라 도시코와 김명순은 이 주제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통하여 한일 근대여성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이들의 작품을 분석하고 비교하였다. 다무라 도시코는 만년의 작품 『산길』에서 후배 작가의 남편인 19세 연하의 구보카와 쓰루지로와의 관계를 사랑을 주제로 유려하게 표현하였고, 김명순은 『애(愛)?』를 통해 상처 입은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사랑에 대한 생각을 표출하였다. 두 여성작가의 사랑에 대한 생각을 서둘러 결론지어 말하자면, 다무라 도시코의 경우는 사랑과 불륜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지의 여부에 관심을 두었다면, 김명순의 경우는 사랑 자체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야할지 부정적으로 생각해야할지, 인생행로가 사랑일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paper sets up a comparative theme based on the existing research that can be represented as a modern new age individual in Japan and Korea, respectively, when Toshiko Tamura and Myeongsoon Kim are placed on a contrasting line. Although the theme of ‘love’ is a somewhat broad, Toshiko Tamura and Myeongsoon Kim can help understand the works of modern Korea and Japan women writers through their understanding of this topic. And analyzed their works and compared them. Toshiko Tamura expressed her love affair with Tsurujirou Kubokawa, a 19-year-old young man who is a husband of a young artist in her latter days work『Road of Mountain』. Myeongsoon Kim expressed her thoughts about love in the process of healing her wounded person through『love』. To conclusively conceive the thoughts of two female writers about love, Toshiko Tamura, If you are interested in whether you can cross the border between love and affair, Myeongsoon Kim would like to think whether you think about love itself positively or negatively and whether the course of life is love you can organize.
この論文は田村俊子とキムミョンスンを対照するときに、彼女たちがそれぞれ、日本と韓国で近代新女性作者として代表しているという従来の研究を基に、比較テーマを設定するようになった。‘愛’というテーマはやや幅広い領域を占めているが、田村俊子とキムミョンスンはこのテーマについてどう理解しているかを通じ、韓日近代女性作者の作品を正しく読解するのに役に立つようになればという判断で彼女たち作品を分析して比較したのである。田村俊子は、晩年の作品『山道』で後輩作家の夫である19歳年下の窪川鶴治郎との関係を愛をテーマに流麗に表現しており、キムミョンスンは『愛?』を通じて傷ついた自分を治癒していく過程で、愛に対する考えを表出している。二人の女性作家の愛に対する考えを急いで結論をつけば、田村俊子の場合は愛が不倫の境界を越えられるかどうかに関心を置いたならば、キムミョンスンの場合は愛そのものについて肯定的に考えなければならないか否定的に考えなければならないか、人生行路が愛であるかについて疑問を抱くのに整理することができる。
어느 전공투세대의 민주주의론 ― 가토 노리히로의 전후론을 중심으로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4집 2018.05 pp.41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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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전후 첫 세대 문예비평가 가토 노리히로가 ‘전후’의 문제들과 마주하며 구상해 온 ‘민주주의’의 사상적 궤적을 검토한 것이다. 가토는 1960년대 말, 전후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적 기운 속에서 ‘민주와 평화’ 이념의 신화화를 부정(전공투운동)하며 사상 형성을 시작했다. 그리고 냉전 종결 전야에 그는 『미국의 그림자』(1985)로 논단에 데뷔했다. 여기서는 ‘반미’와 무관해 보이는 ‘전후’ 일본의 예사롭지 않은 내셔널리즘의 분출을 예감하고 내셔널리즘의 극복을 또 하나의 과제로 설정하면서 ‘젊은 민주주의자’ 에토 준과 ‘노년의 민권론자’ 나카에 조민을 횡단했다. 나아가 포스트 냉전기의 전후론을 대표하는 『패전후론』(1997)에서 그는 ‘민주와 평화’의 신화를 해체할 사상적 방법론의 확립을 시도하면서 이를 적용한 헌법 재선택론, 애도를 통한 사죄론을 제시했다. 또 근년의 『전후입문』(2015)에서는 난바라 시게루의 전면강화론과 헌법의 평화적 수정론을 제고하면서, 내셔널리즘의 극복(『미국의 그림자』)과 신화적 민주주의 재편(『패전후론』)을 하나의 연속체로 꿴 대미자립안을 개진했다. 가토는 현재 일본의 정치 상황에 대한 민주주의 실천의 ‘직접적인 커미트먼트(활동)’라는 점에서, 『전후입문」이 자신의 전후론으로서 지니는 이례성을 언급했다. ‘직접적인 커미트먼트’란, ‘전후’의 기점이 지녔던 세계성을 회복할 ‘국내적 컨센서스’를 형성하는 것이다. 거기서 그가 표방하는 민주주의는 이념 그 자체보다도 일본의 대미자립을 지탱하는 저항의 논리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후입문』 이전의 논의들과 연속해 있다.
This paper aims to disclose the whole path of Katō Norihiro’s postwar theory. As one of the first generation ‘postwar’ literary critics, he has deeply examined ‘postwar’ issues such as Constitution, US-Japan relationship, democracy and nationalism. In his latest postwar theory, Introduction to Postwar(2015), Katō reconsidered Nanbara Shigeru’s advocacy of an overall peace and the peaceful amendment of Constitution. Consequently, he proposed the idea of self-reliance from America, which synthesizes the overcoming of nationalism and the reorganization of mystical democracy in a single continuum. As Katō tries to form a ‘national consensus’ on the scheme ‘worldness of the entrance of postwar= idea of democracy and peace’ in Introduction to Postwar, his ultimate aim of Japan’s self-reliance from America seems to be a natural consequence of the previous works America’s shadow(1985) and Theory after the Defeat(1997).
本稿は、戦後第1世代の文芸評論家で、冷戦終結の前夜から「戦後」の問題に取り組んできた加藤典洋の思想の軌跡の全貌を明らかにしたものである。彼は、論壇デビュー作である『アメリカの影』(1985)において、「反米」とは無縁に見える80年代の日本からナショナリズムの噴出を予感し、江藤淳(「若き民主主義者」)と中江兆民(老年の民権論者)を交差しつつ、ナショナリズムの克服という思想的課題に取り組んだ。一方、ポスト冷戦時の戦後論の先駆けとなった『敗戦後論』(1997)においては、神話としての「民主と平和」を内破するための思想的方法論を確立し、それを踏まえた憲法「選び直し」論や謝罪論を展開した。それから、最近の『戦後入門』(2015)においては、南原繁の全面強和論や憲法の平和的修正論を見直し、ナショナリズムの克服(『アメリカの影』)と神話的民主主義の再編(『敗戦後論』)とを繋いだ対米自立案を構想した。加藤は、『戦後入門』にふれ、現在日本の政治状況への「触接的なコミットメント(働きかけ)」という点で、自分の戦後論としては異例的だと述べている。ただそれは、これまでの思想的軌跡からもわかるように、「戦後」の入り口にあった世界性、それをふまえた「国内のコンセンサス」を作り上げるためのもので、最終的には、日本の対米自立を念頭においたものであった。その意味で、『戦後入門』の異例さも『アメリカの影』や『敗戦後論』によって着実に用意されたものだと言える。
現代日本語における新動詞の形態的変異 ― 五段動詞の一段活用形について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4집 2018.05 pp.437-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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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빈도라는 언어적 요인을 바탕으로 일본어 신형 동사에 나타나는 비규범적 활용형의 출현에 대하여 논하였다. 신형 동사는 규범적으로 5단활용동사이지만 /...eru/로 끝나는 동사의 운용을 보면 비규범적인 1단활용을 사용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소리연쇄의 동사가 사전에 등재될 경우엔 하1단동사로 분류되기도 한다. 하지만 /...iru/로 끝나는 동사는 이와 달리 1단활용형으로 사용되는 빈도는 낮은 편이고 사전에 상1단동사로 정착된 예도 적다. 이러한 두 동사의 비대칭성에 대해서 본고는 타입 빈도에 의한 생산성의 차이를 보기위하여 NINJAL-LWP for BCCWJ를 통하여 /...eru/와 /...iru/로 끝나는 1단동사, 5단동사의 타입 빈도를 조사하였다. 그리하여 이러한 소리 연쇄에서 하1단동사의 타입 빈도가 가장 높은 것을 확인하였다. /...eru/로 끝나는 신형동사의 1단활용의 출현은 이러한 빈도에 의해 나타나는 생산성이 적용된 결과인 것이다.
This paper discusses morphological variations in the use of Japanese innovative verbs based on the linguistic factor ― frequency. The innovative verbs are classified prescriptively as 5-grade verb (godan verb), but the verb ending with /...eru/ can be seen to conjugated as lower monograde verb (shimo ichidan verb). Also, if these verbs are listed in dictionary, it may be classified as lower monograde one. The verb ending with /...iru/, however, is rarely conjugated as a upper monograge verb (kami ichidan verb), and there are few cases where it has been classified as a upper monograge verb in the dictionary. To explain the asymmetry of these two types of verbs, we use NINJAL-LWP for BCCWJ to see the difference in productivity by type frequency. We investigated the type frequencies of the monograde verbs and 5-grade verbs ending in /...eru/ and /...iru/.. Thus, it is clarified that the type frequency of the lower monograde verbs is the highest. The emergence of the monograde conjugation of a innovative verb that ends with /...eru/ is the result of applying the productivity expressed by these frequencies.
本研究は、頻度という言語的要因に基づき日本語の新動詞に現れる非規範的活用形の出現について論じた。新動詞は規範的に五段活用動詞であるが、/...eru/で終わる動詞の実際の言語運用を見ると、非規範的な一段活用形が現れることがある。しかも、このような音連鎖の動詞が辞書に登録される場合には、下一段動詞として現れることもある。それに対して、/...iru/で終わる動詞は、一段活用形が現れる頻度は低く、辞書に上一段動詞として定着した例も少ない。 このような二つの動詞群に現れる非対称性について、本研究はタイプ頻度による生産性の効果を見るために、NINJAL-LWP for BCCWJから/...eru/と/...iru/で終わる一段動詞と五段動詞のタイプ頻度を調査した。その結果この音連鎖の動詞の中で下一段動詞のタイプ頻度が最も高いことを確認した。/...eru/で終わる新動詞の一段活用形の出現は、このような頻度による生産性が現れた結果である。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4집 2018.05 pp.461-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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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자동사 「あく」와 타동사 「あける」를 중심으로 어휘적인 의미와 자타대응의 상관성을 고찰하였다. 짝을 이루는 자동사 「あく」와 타동사 「あける」는 동훈이자(同訓異字)라는 특수성을 가진 복수의 의미의 다의어이다. 각각의 복수의 의미와 그 자타대응의 관계를 통해서, 「あく」「あける」의 복잡하고 다양한 어휘적인 의미를 보다 명백히 밝힐 수 있었다. 쌍방의 복수의 의미가 형태적・의미적・구문적인 대응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경우를 자타대응으로 인정하고 자타대응이 성립하는 경우와 성립하지 않는 경우로 나누어, 그 조건을 파악했다. 자타대응이 성립하는 경우는 물건, 공간・장소를 나타내는 구체명사와 공기하고,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변화를 나타내는 경우임이 확인되었다. 자타대응이 성립하지 않는 경우는 크게 비유적인 용법, 관용적인 용법, 연어구조에 의한 경우로 나뉘며, 추상적인 변화를 나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공기하는 명사의 의미적인 특징이 영향을 미치는 것도 확인되었다. 짝을 이루는 자동사와 타동사의 자타대응과 비대응을 통해서 어휘적인 의미의 확장에 의해 자타대응에도 다양한 양상의 영향을 미치는 점을 확인하였다.
In this article, we provide an analysis of the intransitive verb aku ‘open’ and its transitive counterpart akeru in the pursuit of the connection between lexical meanings and the intransitive-transitive correspondence. Aku and akeru, which use different kanji words with the same pronunciation, are polysemous words with multiple meanings. Our study reveals complex sets of meanings associated with aku and akeru through the analysis of the meanings of each verb and their intransitive-transitive correspondence. A verb pair is regarded as an intransitive-transitive correspondence only if multiple meanings of each of the pair satisfy three conditions concerning morphological, semantic, and grammatical correspondences. Data are divided into the set which displays an intransitive- transitive correspondence and the set which does not, and each condition is captured. For those cases where the correspondence holds, the verbs are concurrent with concrete nouns denoting things and space and they express tangible and physical changes. For those cases where such correspondences do not hold, the observed meanings are constrained by metaphorical usage, conventional usage, and “rengo” structures, and they express abstract changes. Semantic characteristics of concurrent nouns also affect the intransitive-transitive correspondence. The present work confirms that the intransitive-transitive correspondence is not a clear-cut phenomenon, affected by the extension of lexical meanings with various semantic facets.
本稿では、語彙的な意味と自他対応の相関性をめぐって、自動詞「あく」と他動詞「あける」を中心に考察を行った。対を成す自動詞「あく」と他動詞「あける」は、同訓異字という特殊性を持った複数の意味を有する多義語である。それぞれが持つ複数の意味とその自他対応の関係を通じて、「あく」「あける」の複雑多様な語彙的な意味をより明らかにすることができた。 双方の複数の意味が形態的・意味的・構文的な対応という三つの条件を満たした場合を自他対応とみなし、自他対応が成り立つ場合と成り立たない場合に分け、それぞれの条件を把握した。 自他対応が成り立つ場合は、物、空間・場所を表す具体名詞と共起し、可視的で物理的な変化を表す場合であることが確認できた。自他対応が成り立たない場合は、大きく比喩的な用法、慣用的な用法、連語構造にしばられる場合に分けられ、抽象的な変化を表す場合が殆どであった。共起する名詞の意味的な特徴も自他対応のゆれに影響を及ぼすことが確認できた。 対を成す自動詞と他動詞の自他対応の関係を通じて、語彙的な意味の拡張により、自他対応にもゆれが生じ、多様な様相があることが確認でき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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