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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학연구 [The Journal of Japanese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Institute for Convergent Humanities in East Asia (ICHEA)]
  • pISSN
    1598-737X
  • eISSN
    2465-8448
  • 간기
    연3회
  • 수록기간
    1997 ~ 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일본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730 DDC 492
제45집 (16건)
No

【日本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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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원

본고는 1950년대에 소설가, 평론가, 시인, 극작가 사이에서 이루어진 시극운동에 대해서 고찰한 것이다. 이 운동은 당시 문단과 연극계에 만연하고 있었던리얼리즘을 타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1956년을 전후로 활발하게 전개된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시와 극의 융합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한 모임이있었다. 그것이 기시다 구니오(岸田国士)를 중심으로 1951년에 결성된 ‘구름회(雲の会)’이다. 잡지 『연극(演劇)』을 중심으로 비평 활동을 벌인 이 모임은, 그러나 기시다의 죽음으로 3년여의 활동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그 후 시극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어 많은 사람들이 시극에 대해서 여러가지 의견을 피력하게 되었다. 그 의견들을 분석해 보면, 시극의 정의 자체가애매모호하다는 점, 근대 이후의 일본어의 빈약함이 시극창조를 곤란하게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서 일본의 고전극 연구의 필요성을주장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야마모토 겐키치(山本健吉)로, 그는 노(能) 를 시극으로 인정하고, 노는 본래 공동체의 감정을 대변하고자 한 것이라고논하고 있다. 따라서 노의 양식과 드라마를 추구하는 것이 현대의 연극이 잃어버린 극장성(Theatricality)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시극운동에서 드러나는 것은 근대 이후 서양화를 추구해 온 일본이잃어버린 전통을 회복하고자 한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패전 후 일본인으로서의공동체적 감정을 회복하고자 한 것이다.

This paper is to review poetic drama campaign developed among novelists, critics, poets, dramatists in 1950s. This movement aims to do away with realism spread in the literary circles and drama world then, and around 1956 the movement develops actively. But previously there was a meeting which reacted sensitively regarding the fusion of poetry and drama. That is ‘Kumo no kai(「雲の会」, Cloud Meeting)’. ‘Kumo no kai’ was formed in 1951 with the head of Kishida Kunio. This group which deployed the activity of criticism centered on the magazine『Engeki(演劇, Drama) 』 put an end of more than 3 years’ activity with Kishida’s death. After then poetic drama movement developed in earnest and a number of people came to put various opinions over poetic drama. Analyzing the opinions, people point out the definition itself of poetic drama is ambiguous, and that the weakness of Japanese since modern times makes it difficult to create poetic drama. And as for the solution, they assert the necessity of the study of Japanese classical dramas. The typical figure Yamamoto Kenkichi, who recognizes Noh(能) as poetic drama, and argue that Noh in itself represents the emotion of community. Therefore, to pursue the form of Noh and drama is the way that modern drama restores lost Theatricality, he mentions. What is revealed in this poetic drama campaign, is the point that Japan in pursuit of westernization after modern times attempted to restore lost tradition and the object to recover the community emotion of the Japanese after the war through it.

本稿は、1950年代に小説家、評論家、詩人、劇作家の間で行われた詩劇運動につい て考察したものである。この運動は当時文壇や演劇界において蔓延していたリアリズ ムの打破を目的としたもので、1956年を境に活発に展開される。しかし、その前にも すでに詩と劇の融合に注目した会があった。それが岸田国士を中心として1951年に結 成された「雲の会」である。雑誌『演劇』を通して批評活動を行っていたこの会は、しか し、岸田の死によって3年余の活動に終止符を打つことになる。 その後、詩劇運動が本格的になされ、多くの人が詩劇について意見を披瀝すること になる。それを分析してみると、詩劇の定義の曖昧さ、近代以後の日本語の貧弱の問 題が詩劇創造における難しさとして指摘されていることがわかる。その解決策として ギリシャの悲劇に注目し、ひいては日本の古典劇の研究の必要性を主張することにな る。その代表的な人物が山本健吉で、彼は能を詩劇として認め、それが元々共同体の 感情を代弁するものとして作られたことを述べている。したがって、能の様式やドラ マを追求することが現代の演劇が失ってしまったシアトリカリテイを回復させるのに 繋がると主張した。 これらの詩劇運動から浮き彫りにされるのは、近代以後西洋化を目指してきた日本 が失った伝統への回復、そして、それを通した戦後日本人としての共同体の感情の回 復であるということ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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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0원

메이지 신정부는 막말 이래 최대의 외교적 현안이었던 조약개정을 위해 1883년에 본격적인 외빈접대시설 로 쿠메이칸을 완공, ‘문명국 일본’의 자기증명의 장으로 삼았다. 그곳에서는 유럽인의 문명적 이미지에 맞춘 유 럽산 무도회가 열렸다. 그러나 1887년, 조약개정 교섭의 실패로 화려한 ‘로쿠메이칸 시대’는 조기에 막을내리고, 이후의 로쿠메이칸 무도회는 구미문명의 표면적인 ‘원숭이 흉내’(조르주비고), 또는 경박부조한 ‘야단법석 소동’(고바야시 기요치 카)으로 희화화되었다. 한편, 문학에서는 피에르 로티의 「에도의 무도회」(1889)의 등장인물을 시점화자로 설정한 아쿠타가와 류노스 케의 「무도회」(1924)를 효시로, 미시마 유키오의 「로쿠메이칸」(1956), 야마다 후타로의 『에도의 무도회』 (1983), 가제노 미치오의『로쿠메이칸 도촬』(2010) 등, 다이쇼기 이래, 로쿠메이칸 무도회를 다룬 작품들이 발표됐다. 로쿠메이칸 무도회의 희화적 이미지와 상호텍스트성을 지닌이들 ‘로쿠메이칸 문학’은 로쿠메이칸 무도회를 조소와 자조의 대상인 ‘빌려온 댄스파티’에서, 근대일본이라는 독자적인 변신의 드라마로 거듭나게 하였다. 이로써 로쿠메이칸 무도회는 유럽문명이라는 타자표상에서 근대일본이라는 자기표상으로 전생하게 된 것이 다.

The new Meiji government completed the construction of Rokumeikan, a foreign guest house in 1883 in order to revise the unequal treaties reached with Western powers and used it as a place for the self- identification of ‘civilized Japan.’ This ambitious work by the ‘Japanese theater company’ composed of select high-ranking government officials was a European ball that completely catered to the ‘civilized’ Western style of Europeans. However, the ‘era of Rokumeikan’ ended with the failure to amend the treaty in 1887 and since then, a Ball in Rokumeikan has been remembered as a failure of the past with derision of ‘monkey show’ and self-mockery of ‘a wild spree’. Meanwhile, since the Taisho period, Rokumeikan has been well represented in the genealogy of ‘Rokumeikan literature’ with the emergence of Akutagawa Ryunosuke’s “A Ball”(1924), Mishima Yukio’s “Rokumeikan”(1956), Yamada Futaro’s “A Ball in Edo”(1983), and Kazeno Michio’s “Candid shot of Rokumeikan”(2010). These works used a ‘caricature’ image of Rokumeikan as a subject of work instead of simply denying it. ‘Rokumeikan literature’, which has intertextuality with such ‘caricature’, is shaping a ball in Rokumeikan as a drama of the transformation of ‘modern Japan’ rather than the ‘borrowed dance party’, which was the subject of ridicule and self-mockery.

明治新政府は、幕末以来の最大の外交的懸案であった条約改正のため、1883年、本 格的な外賓接待の施設として鹿鳴館を建て、〈文明国日本〉の自己証明の場とした。そ こでは欧米流の舞踏会が催され、欧米人の瀟洒な文明イメージに沿うかたちでの演出 がなされたのである。だが、1887年、条約改正交渉の失敗により、華麗なる〈鹿鳴館 の時代〉は早々に幕を下ろすこととなった。以後、鹿鳴館の舞踏会は、欧米文明の表面 的な「猿真似」(ジョルジュ・ビゴー)として、あるいは軽佻浮薄な「乱痴気騒ぎ」(小林清 親)として、しばしば戯画的にイメージ化されることとなった。 一方、文学においては、ピエール・ロティの「江戸の舞踏会」(1889)の登場人物を視 点話者とした芥川龍之介の「舞踏会」(1924)を嚆矢として、三島由紀夫の「鹿鳴館」 (1956)、山田風太郎の『エドの舞踏会』(1983)、風野真知雄の『鹿鳴館盗撮』(2010)等、大正期以来、鹿鳴館の舞踏会を扱ったさまざまな作品が書かれた。鹿鳴館の舞踏会の戯 画的イメージとの間で間テクスト的な関わりを持つ、これら〈鹿鳴館文学〉の系譜は、 鹿鳴館の舞踏会を、単なる嘲笑と自嘲の対象たる〈借りてきた舞踏会(ダンス・パー ティー)〉から、近代日本の独自の変身のドラマへと生まれ変わらせることに成功し た。鹿鳴館の舞踏会は、欧米文明という他者の表象から、近代日本という自己の表象 へと、転生を遂げていった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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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0원

엔카(演歌)는 일제강점기에 도입된 우리 대중가요사에 최초 외래문화라고 할수 있다. 엔카는 조선의 가요와 음계가 비슷하여 더욱 자연스럽게 다가올 수 있었다. 1930여 년부터 1940년 전후는 대중가요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데 이때 집중적으로 엔카의 대부라 불리는 고가 마사오(古賀政男)의 노래가 번안되어 불려졌다. 고가 마사오의 노래는 우리 정서에 맞고, 곡조의 친숙함으로 조선인들도 즐겨부르게 되었다. 조선 전통의 민 요나 대중가요가 청소년기를 조선에서 보낸 그의음악적 형성에 큰 밑바탕이 되었으며 엔카가 한국에서 비롯 했다는 주장의 빌미가되기도 했다. 그는 태평양전쟁 이후 전시체제에는 시국가요를 만들기도 했다. 채규엽은 조선 최초의 대중가수로, 고가 마사오의 노래를 가장 많이 불렀으며, 일본에서 조선의 트로트를 알 리기도 하였다. ‘고가멜로디’를 창출한 고가 마사오는 일본뿐 아니라 우리 대중가요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고 말할 수 있 다.

In this paper, A study on the japan’s pop songs. Especially focusing on koga masao Enka is the first access to the feelings of Koreans in the Japanese occupation of foreign culture can be replaced by the introduction. Enka The popularity of Japan’s record label also as a result of this year, but in the midst of the Joseon Kingdom in song and musical scale is more because they’re about to come naturally. 1930’s glory days of popular songs from around 1940 is our year! on Masao Koga called the godfather of Enka Masao Koga’s song is on our emotions and, of Koreans in tune with the intimacy they have come to sing was. Value of Korean traditional folk or pop in his musical formation in South Korea sent a teenager was big indeed the foundation of allegations that he and Enka, including in the country, criticsI did to be.Songs the situation in a war footing since the Pacific War, he also raised.

演歌は日本植民地時代の大衆歌謡史に最初の外来文化の導入という面で意味を持つ ことができる。 演歌の流行は日本のレコード会社が朝鮮に入った結果でもあるが、朝鮮の歌謡と音 階が似てから、自然に受け入れることができた。 朝鮮で1930年から1940年の前後は大衆歌謡の全盛期と言える。この時、集中的に演 歌の代父と呼ばれる古賀政男の歌が翻案されており、蔡奎燁によって多くの曲が歌わ れた。 古賀政男の歌は韓国の情緒に当たって、曲調のなじみで朝鮮人たちも好んで呼れ た。朝鮮伝統の民謡や大衆歌謡が朝鮮から生活した彼の音楽的形成に大きな基盤と なっており、演歌が朝鮮で始まったという主張の口実となったこともある。 彼は戦時 体制には時局歌謡を作ったこともある。 蔡奎燁は朝鮮の初じめの大衆歌手として、日本でも古賀政男の歌を歌っており、朝 鮮のトロットを知らせた。 ‘古賀メロディー’を創出した彼は、日本だけではなく、韓 国の歌謡史にも重要な影響を及ぼしたといえる。

【日本文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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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0원

본고는 일본고대의 우네메에 대한 노래를 문학적으로 해석하여 그녀들의 은폐된 사정을 밝히고, 말하지 못한 채 죽은 그녀들의 심정을 밝히려고 하는 것이다. 문학에서 본 우네메는 슬프고 가련한 존재이다. 각 지방의 호족들의 딸이나여동생은 야마토 궁중에 불러들이게 되고 나서 일시적인 위안거리로 농락당할수도 있는 가장 낮은 신분이 되었다. 구니미(國見)에서 천황가가 지방호족의처녀들에게 보였던 국신(國神)이나 무녀(巫女), 그리고 신처(神妻)와 같은 종교적 존경심은 이미 사라지고 그녀들은 그저 왕권에 복종하여 침묵을 지켜야만하는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궁중에 와서 이 사실을 알게 된 우네메들은 치욕(恥辱)과 비탄(悲嘆)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왕권을믿고 따라온 그녀들의 심정(心情)이 유린(蹂躪)되었기 때문이다.

This is the study to make clear the meaning of Uneme’s songs which were recorded in the ancient Japanese literature. There are some songs on Uneme but most of them are sad and sorrowful. Some songs to console Uneme’s sorrow are to mourn for dead Uneme by suicide. The songs of Hitomaro Kakinomoto on Unemes are to depart their soul to heaven. In the ancient times of Japan Yamato tribe tried to dominate surrounding areas. They believed that the earth is blessed by the marriage of heavenly gods and native gods that has been lived on Japanese Islands. So emperor of Yamato as the descendant of heavenly gods tried to marry daughters of baronial families in the local areas as the native gods. Becoming big country the emperor of Yamato order baronial families in the local countries to send sister or daughter to the palace in Nara. It is Uneme system. But when Unemes come to palace they knew that they are like hostages. And many Unemes come to suffer. Songs for Unemes are to mourn for the Uneme’s ghost. Songs for Unemes appears the sorrow by the trample upon the heart of virgins who follow the sovereign.

今まで采女の歌を采女の立場に立って文學的に鑑賞したり、解釋した硏究はほとん どない。それは采女の實態がはっきり把握されていなかったり、采女に關する資料が 少ないからだけではなく、人間としての采女の心情にあまり關心が向けられてこな かったからである。采女は地方豪族の娘や妹として地方においては名門出身の身分に あったにもかかわらず、大和の宮中に送られてからは、最低の卑しい立場に陥れられ た。地方の父や兄の政治的運命を担った彼女たちの立場は、逃げようにも逃げること のできない苦しい立場であった。 采女の靈魂を鎭魂しようとする人麻呂の歌からもわかるように采女に關する歌のほ とんどは、采女の死に対する挽歌であり、悲しみと嘆きの歌である。彼女たちが死を 選んだ理由は、宮中に来てから受けた悲痛に耐えられなかったからであり、彼女たち の心情が蹂躪されたからである。大和が王權を掌握してからの地方豪族たちの妹や娘 たちは、もはや国見で見られるような神妻として天皇と神婚儀禮をするような貴重な 存在としては扱われなくなり、宮中での彼女たちは予期しなかったさまざまな苦痛を 受けるようになる。以上のように本稿では「萬葉集」を中心に古代文學に記錄された采女に關する歌を通して今まで顧みられることのなかった采女たちの悲しい事情と心情 を明らかに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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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0원

일제강점기, 조선신궁을 건립할 때 제신을 단군으로 해야 한다는 신도측의 주장이있었다. 하지만 당시 신도측 에서 말한 단군이란, 한국의 건국시조가 아니라 일본 근세를통해 스사나오와 합체되어 왔던 단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근대 한국에는 전혀 다른성격의 두 단군이 존재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일본의 고대신화나 역사기록의어디에도 스사노오와 단군이 일체화되는 경향을 찾아볼 수 없다. 양자의 일체화가 본격화하는 것 은 근세에 이르러서다. 그러한 점에서 스사노오와 단군의 관계는 “근세신화”의한 유형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근세에 갑자기 스사노오와 단군의 일체화가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 바꾸어 말하자면, 고대 이래 로 스사노오와 ‘삼한’의 관계는 없었던 것일까, 있었다고 한다면어떻게 인식되었을까, 등의 의문에서 본 연구 는 출발한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니혼쇼키』이후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삼한’ 인식이 어떻게 변용하는 지를 확인하고, 또한스사노오와 ‘삼한’의 관계가 발생하는 경로를 찾아들어가고자 한다. 더욱이 근세에 이르 러 유학의 합리적 이해를 기반으로 역사를 해석하면서도 일본을 세계의 시원으로 인식하거나 신화적 모순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재해석하려는 등 근세 특유의 신화해석이 행해진다는 점에서 근세신화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검토해 보고자 하였다.

During the Imperial Japan Republic of Korea period, the Shinto side insisted that Dangun should be the enshrined deity of Chōsen Jingū. However, we can infer that Dangun claimed by the Shinto side was not the founder of the Korean nation, but rather Dangun associated with Susanowo originated during the Japanese Early Modern period. This means that two separate Dangun existed during the Early Modern period in Korea. On top of that, there is no trend connecting Dangun and Susanowo in the historical sources of the Classical and Medieval period. This trend genuinely started during the Early Modernperiod. Therefore, I will refer to this association as a kind of “EarlyModern mythology”. Incidentally, questions arose within me as to why Susanowo and Dangun were suddenly seen as one deity and, considering that the Nihon Shoki mentions Susanowo and Silla, when Susanowo was associated with Samhan as a whole. Therefore, this paper discusses how the changing interpretation of Samhan arose after the Nihon Shoki from the Medieval period to the beginning of the Early Modern period, and explores how Susanowo became associated with it. On top of that, this paper underlines the new potential for research on Early Modern mythology shown by the mythological interpretations characteristic to this period such as the understanding of history on the base of Confucian logic while interpreting Japan as the origin of the world, and the logical interpretation of contradictions in mythology.

日帝強占期、朝鮮神宮を建立するに際し、祭神を檀君とするべきであると いう神道側の主張があった。しかし、当時の神道側でいった檀君とは、韓国 の建国始祖ではなく、日本近世を通してスサノヲと合体してきた檀君であっ たことがわかる。近代韓国には全く異なる性格の二人の檀君が存在したとも いえるであろう。ところが、日本の古代神話や中世までの歴史記録どこにも スサノヲと檀君との一体化する傾向は見当たらない。両者の一体化が本格に なされるのは近世からである。そこで、スサノヲと檀君との関係は「近世神 話」の一類型ともいえる。 では、なぜ近世に突然スサノヲと檀君との一体化が生じるであろう。言い 換えれば、古代以来スサノヲと「三韓」の関係はなかったのか。あったとすれ ばどのように認識されてきたであろう。という疑問から本研究は出発する。 そこで、本稿では『日本書紀』以降から近世初期に至るまで「三韓」認識がどの ように変容するかを確認し、またスサノヲと「三韓」との関係が生じる経路を 辿ってみたい。さらに、近世に至り、儒学の合理的な理解を基盤として歴史 を解釈しつつも、日本を世界の始原として認識したり、神話的な矛盾を合理的に再解釈するなど、近世特有の神話解釈が行われるという点から、近世神 話研究の新たな可能性をも検討してみた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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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0원

일본신화에 있어서 ‘다마(玉)’는 이자나기로 인해 등장하여 신대의 종장인초대천황이 탄생하기까지 여러 양상으로 나타난다. ‘다마(玉)’가 표상하는 바를신화의 흐름과 함께 이해하고자 계보상의 신과 ‘다마(玉)’를 주제로 이야기 구조로써 고찰하였다. 이자나기의 ‘다마(玉)’는 권위의 상징으로 대물림하는 형식으로 그려지고 아마테라스에게 주어진 ‘다마(玉)’는 주술적 위력을 가진 세력 통합의 상징적 신물로 나타난다. 동생인 스사노오와의 서약의 과정에서 생명의 ‘다마(玉)’는 물과 함께 신성한 신을 낳는 영적도구가 된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아마테라스 자신을 불러내는 초혼의식에서 제의적 도구로써 쓰인다. 이때 폐물로써의 ‘다마(玉)’를 제작하고 그것을 운영하여 제사 행위를 주체하는 신 또한‘다마(玉)’와 관련한 이름을 가지는데 야사카노마가타마(八坂曲玉)를 만드는 신은 다마노오야(玉祖命)이며 이자나기의 아이로서 나타나고, 그 ‘다마(玉)’를 통해 제의식을 행하는 신은 후토다마(布刀玉命)이다. 이들은 계속해서 신성한 황실의 기원을 이야기하는 니니기의 천손강림 신화에서도 보이며 삼종의 보물로서 천상에서 지상으로 이동하는 ‘다마(玉)’는 이자나기로부터 니니기에까지 천손의 권위를 표상하며 영속적으로 이어진다. 니니기의 아들인 야마사치의 ‘다마(玉)’는 해신(海神)의 주력을 가진 구슬로써 천손이 바다의 세력을 얻게 된다는 신화 속에서 그 영력의 매개물로 나타난다. 이로써 하늘에서 내려와 지상을 다스리고 바다까지 통합하는 천손의 정당화된 혈통을 이야기하며 영혼이 깃드는 처녀를 의미하는 여신 다마요리비메(玉依 姫)가 초대 천황 진무(神武)의 모후가 된다는 것으로 신대가 마감된다. 이러한영속성으로 인해 일본신화 상에서 천신들에 의해 대물림되어 온 ‘다마(玉)’의생명이라는 표상은 천황가로 이어져 신성한 권위의 상징이 된다.

As the structural aspects of the couple appear in the flow of the 'Kamis on 'Tama' of the Japan myth tells seen captured. Jade by 'Izanagi' successively until the birth of the first emperor, begin 'Ninigi' a sign, which symbolizes spiritual power or life. The consideration in the form in order to talk in terms of myths say this lineage of Tenjin. 'Izanagi' is a 'Kami in Japan first to the independent thinking, began and concretization of images. In comparative mythology and Zeus are side by side addition. Be evaluated as having high spirituality of 'Kami. Because of that, jade symbolizes the soul and life appeared by such as 'Izanagi' that inevitably had said. And have continued up to three generations of 'Amaterasu' in ''Izanagi'' and daughter Jade represents kingship through their spiritual power is drawn to 'Kami. Represents a sea followed in the myth of 'Ninigi''s son, jade will have been transmitted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in gradually evolved in are evident. In jade symbolizes the enchantment of the sea 'Kami, and through this power of the sea tenson on transfer modalities will be drawn. Appear 'Tama' ancestors on the other hand, related to Jade's Yasaka 'Amaterasu' and 'Ninigi', looks in common with Amano-iwato shop door and 'Kami's descendant advent myth and thick jade 'Kami. 'Kami make 'Tama'-that represent the Majesty of the 'Kami's descendant by Jade takamagahara 'Amaterasu' commanded as 'Kami to Act enshrines in its 'Tama', accompanied by 'Ninigi'. Jade have mystical powers and 'Kami is the, and symbolizes the Act of psychic or spiritual ability to, as life is connected to the last chapter of the myth of the birth of the emperor. On the analytic representation this study through myth and jade says, ultimately I think jade is evident in Japan ancient Japanese literature widely seen. And could be seen assumed more empirical imagination alive ancient Japan.

玉を通じて見た日本神話、神代に表れる幾つかの様相を、物語る構造として捕らえ て見た。玉はイザナギによって表れ初め初代天皇の誕生まで、引き続いて霊力または 生命を表象している。これを天神の順序的流れという観点で語りながら考察した。イ ザナギは日本神話で最初に主体的思考をする、人間像の具象化され始めた神である。 比較神話学的にはゼウスと並べて論ぜられる。高い精神性の持つ神として評価される からである。そのゆえ、霊魂と生命を象徴する玉が、そのようなイザナギによって登 場されているのは必然的なことたと言えよう。そしてイザナギと娘であるアマテラス の三代まで引き続いている玉は、その霊力を通じて王権を表す神物として描かれてあ る。続いてニニギの子息、山幸の神話では天神として手にいれる海神の霊能を表して いる。具体的にイザナギの美頸玉、アマテラスの八尺曲璁五百津美須麻流之珠、ニニ ギの三種神寶としての玉は、次第に進化した形として代々に伝わってきたようにも見 える。そして山幸の潮滿瓊・潮涸瓊は海神の呪術性を象徴する玉で、これを通じて海 の力が天孫に移伝される様相が描かれている。 一方、アマテラスとニニギの八坂の曲玉と関連して、天岩屋戸と天孫降臨神話で共 通的に見える玉祖と太玉という神が表れる。玉を作る神·その玉で祭る行為をする神と して、高天原のアマテラスが命じてニニギに伴っているため、玉によって天孫の威厳 を表すということだ。玉の物と神は、いずれも、神秘的な力を持って、霊魂、また は、霊能を祭る行為を象徴し、神武天皇の誕生という神話の終章まで生命として繋 がっている。 この考察を通じて神話の中の玉が言う表象を分析的に把握した結果は、ひいては日 本上代文献に表れている玉を幅広く研究できる指標になる。そして日本古代を生きて いた人々の想像力をもっと実証的に想定してみることができ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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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0원

본고는 安政期의 魯文글<膝栗毛물>合巻 세 작품을 중심으로 출판업자 추정 외에 서지학적 문제점을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특히 『岐蘇街道栗毛弥次馬』의 출판업자추정을 위해서는 해당 작품의 서지뿐만 아니라 해당 작품 전후로 간행된 『東海道中栗毛 弥次馬』・『日光道中膝栗毛』를 축으로 여타 魯文글 <膝栗毛물>合巻을 시야에 넣고 서지를 조사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새로운 견해를 얻을 수 있었다. 첫째, 永壽堂은 安政二年(1855)에 점포를 유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合巻 ⓐ 『東海道中栗毛弥次 馬』의 출판업자는 「永壽堂」일 것이라고 추측 가능한 토대가 마련된다. 둘째, 安政三年 (1856) 3월에 鈍亭魯文글・一盛斎芳直그림으로 合巻 ⓑ 『岐蘇街道栗毛弥次馬』를 간행한 출판업자에 대하여 선행연구에서는 「新庄堂糸屋庄兵衛」라고 했으나 「當世堂品川屋 久助」일 것이다. 그 근거는 『日光道中膝栗毛』의 魯文서문 「伯楽街, 西与가 요구한 弥二 馬에, 東海道를 쭉 타서 그 돌아오는 말에 木曽街道는 小伝馬街의 当世堂이 부탁하는그대로 적었다」등에 의한다. 셋째, ⓗ 『日光道中膝栗毛』의 서문・본문・마지막 페이지(巻尾)를 통하여 魯文글<膝栗毛물>合巻 간행에 대한 출판업자 新庄堂의 의지가 엿보이는 가운데, 대부분 광고하는 그대로 출판하고 있다. 현존하는 魯文글 <膝栗毛물>合巻으로서 9작품을 직접 조사할 수 있었는데 그 중에 新庄堂板이 합계 6작품이라고 하는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으로부터도 본 시리즈에 대한 新庄堂 그의 열의를 가늠할 수있는 바이다.

This paper mainly the three Gokan of Robun’s work “Hizakurige group”, intends to investigate the estimation of the publishers and bibliographical problems. Especially, in order to estimate the publishers of ⓑ “KisokaidoKurigenoyajiuma”, mainly ⓐ “TokaidochuKurigenoyaziuma” and ⓗ “NikoodochuHizakurige” that was published back and forth the work, it was also necessary to examine the bibliography of Gokan of Robun’swork “Hizakurige group”. As a result, the following three points was found. The first, publisher of Gokan ⓐ is “Eizyudo”that maintain the shop in 1855. The second, the publisher that 162 《日本學研究》第45輯 published ⓑ in March 1856 is “Sinsyodo” in the previous research but according to Robun’s preface of ⓗ, it is the “Toseido”. The third, through the preface, text and final page of ⓗ, the enthusiasm of publisher “Sinsyodo”is suggesting for publication for Gokan of Robun’s work “Hizakurige group”

本稿は安政期の魯文作<膝栗毛もの>合巻三作を軸に、板元推定の他、書誌 学的問題点を究明することを目的とする。特に『岐蘇 街道栗毛弥次馬』の板元推 定の為には当該作の書誌のみならず、当該作を前後して刊行された『東海 道中栗 毛弥次馬』・『日光道中膝栗毛』を中心に、他の魯文作<膝栗毛もの>合巻をも 視野に入れて書誌を調べる必要があり、その結果次の新知見が得られた。一 つ、永壽堂は安政二年に店を維持しており、よって合巻『東海 道中栗毛弥次馬』 の板元は「永壽堂」であろうと推測できる。二つ、安政三年三月に鈍亭魯文 作・一盛斎芳直画にて合巻『岐蘇 街道栗毛弥次馬』を刊行した板元について、先 行研究では「新庄堂糸屋庄兵衛」とするが、「當世堂品川屋久助」であろう。その根拠は『日光道中膝栗毛』の魯文序「伯楽街、西与が需の弥二馬に、東海道を乗通し、そが戻り馬の木曽街道は、小伝馬街の当世堂が、ゆだねるまに/\綴りなせり」等による。三つ、『日光道中膝栗毛』の序文・本文・巻尾を通して、魯文作<膝栗毛もの>合巻版行に対する板元新庄堂の意気込みが窺え、ほぼその広告通りの出版をものにしている。現存する魯文作<膝栗毛もの>合巻 として九作が管見に入っており、その中で新庄堂板が合計六作という大多数を占めることからも並々ならぬ板元の熱意が窺えよ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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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고보가 말하는 ‘변경’은 토착성을 가진 농경문화 혹은 대지로 대표되는고유한 것이 붕괴된 장소로, 이동 성을 가진 도시적인 장소이다. 아베는 이를이단성으로 대변되는 유태인적인 특성에 비유하며 국경이나 국가 에 대한 의식마저도 붕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국경에 관한 의식이 없는 장소인 ‘내부의변경=도시’로 망명을 하는 것을 동시대의식으로 인식한다. 국경에 대한 의식을버리고 비국민이나 질서파괴자와 같은 이단자의 입 장을 취하는 것이 ‘내부의변경’의 핵심인 것이다. 『상자 인간』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기피 대상이자 사회부적응자와 같은 성격을 가진 상자 인간은 아베가 말 하는 유태인적인 특수성을 함유하고 있다. ‘상자’ 의 반전하는 공간성은 새롭게 소생하는 도시의 힘을 암시한 다. 내적 망명을 의도하는 아베 고보의 작가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아베의 유태인 계나 망명 작가에 대한 인식은 역사로서의 식민지주의에 대한저항감과 정통성을 강요하는 국민-됨에 대한 위 화감에서 기인하고 있다. 패전이후 일본으로 송환된 ‘귀환자’의 처지에서 느꼈던 아베의 탈국가적 방법은내부 의 변경을 향한 망명이라는 대항적 형태로서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상으로 본고에서는 귀속을 거부하고 국가로부터 이탈해 가는 아베 고보의사상적, 문학적 세계를 규명해 보 았다. 그리고 그의 ‘불온’한 상상력을 통해상대화하고 있는 국가관을 ‘외지 귀환파’의 탈경계적 관점에서 확인 해 볼 수있었다.

Abe Kobo’s works seem to represent the escape from country or community by the abolition of nationality, or by the repetition of destruction and resuscitation. This tendency, that is included the idea on self-identity, makes one feel the heretical vision, which includes aspects of transnational personality and transcendental attitudes. Therefore, I have tried to analyze the organizational relationship between his boundary recognition and the description in this paper, focusing mainly on The Box Man which has seemed his model for expressing his image of closed and isolated space. As seen in the reputation for his confronting the Japanese nationalism, Abe perhaps acquired this tendency through the experience of denationalization in Manchuria. There are various aspects of a borderless character in Abe’s works, which transcend not only the borders of the state but also ethnic- cultural boundaries. His transnational personality is related to the Creole vision which he attained in Manchuria where he saw stateless area. Abe emphasized the recreated world by expressing the Creole reconstruction in his The Creole Soul and The Ideology of the Desert. In these essays, he talked about the heretical vision as the new global terms, denying the governmental structure and national identity.

安部公房が語る「辺境」とは、土着性を帯びる農耕文化あるいは大地として代表され る固有なものが崩壊された場所であり、移動性をもつ都市的な場所である。安部はこ れを異端性を代表するユダヤ人的な特性に準え、国境や国家に対する意識さえも崩壊 すべきであると語る。国境に関する意識が存在しない場所の「内なる辺境=都市」に亡 命を試みるのを同時代意識として認識する。国境に対する意識を捨て、非国民や秩序 破壊者のような異端者の立場を取ることこそが「内なる辺境」の核心である。 『箱男』では、周りの人々から忌避対象であり、社会不適応者という性格をもつ箱男 が、安部が語るユダヤ人的な特殊性を内包している。「箱」の反転する空間性は新しく 蘇生する都市の力を暗示する。内的亡命を意図する安部公房の作家意識が反映してい ると言えよう。そして安部のユダヤ人系や亡命作家に対する認識は、歴史としての植 民地主義に対する抵抗感や正当性を強いる「国民たる」ことに対する違和感によるもの である。敗戦以降、日本に送還された「引揚者」の立場から感じた安部の脱国家的な方 法は内部の辺境を目指す亡命という対抗的な形として表れている。 以上のように本稿では、帰属を拒んで国家から離脱していく安部公房の思想的、文 学的世界を究明した。そして彼の「不穏」な想像力を通して相対化されている国家イ メージを「外地引揚派」の脱境界的な観点から確認することができ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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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패전 이후의 일본에서 문학자들의 전쟁책임 추궁이 비교적 이른시기에 자발적으로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용두사미로 소멸하게 되는 궤적을, 당시의 문단 주변 상황과 동시대 지식인들의 전쟁책임 논의, 그리고사타 이네코의 소설 「허위」가 놓인 맥락을 통해 조명해 본 것이다. 패전 직후, 문학자들의 대외적인 책임추궁 열기와는 달리 내부적으로는 자신들의 익찬행위가 “괴로운 견딤” 혹은 “방편적 협력”이었다는 자기 방어적 목소리가 있었다. 사타 이네코 역시 전시 중에는 자신의 전쟁협력이 오류라고는 자각하지 못한작가 중 한 명이었는데, 이러한 ‘무자각’은 그녀의 소설에 의하면 전쟁협력이‘전향’의 진정성을 가장(假裝)하는 방편으로 사용된 것과 관련 있다. 표면적으로는 전쟁책임 추궁을 대대적으로 선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참작’하거나 ‘우선시’해야 할 집단적 논리를 내세워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심리는 일본의 여타전쟁책임 논의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자책과 해명이 공존하는 「허위」의주인공 도시에의 형상화는 이러한 패전 직후의 전쟁책임 논의 및 추궁의 방식과도 무관하지 않다.

The war responsibility calling on the Japanese literary people after the defeat of the war was voluntarily done in the relatively early timing. However, their discussion on the war responsibility could not be clearly concluded but ended up in anticlimax. Different from the questioning on the war responsibility which looked hot externally, there was the internal voice of self-defense that their cooperation to war had been ‘hard tolerance’. Accordingly, there was a circumstance-consideration theory as well as a probation theory. One of the reasons for this anticlimax is the psychology, in which they tried to evade the responsibility by finding a collective reason which can be ‘considered’ at the responsibility calling. This study explored the track of war responsibility calling on Japanese literary people and the war responsibility discussion by the contemporary intellectuals through the context of the novel ‘Kyogi’ (虚偽) authored by Sata Ineko.

戦争責任追及は戦後日本における文学運動の重要なテーマの一つであった。しかし 対外的に見られる追及熱気とは裏腹に内部的には自分の戦争協力の行為が“辛い我慢” であったという知識人の自己防御的な声もあった。そして情状酌量論や執行猶予論も 内部的に提起されていた。表面的には戦争責任の追及を大々的に宣言しながら、一方 では斟酌されるべき集団的な理由を探し出す方法で戦争責任を回避しようとする心理 があったと考えられる。本論文は敗戦後の日本における文学者の戦争責任追及が早い 時期に自発的に提起されていたにもかかわらず、結局尻窄まりに終わった軌跡を、当 時の文壇状況と知識人の戦争責任をめぐる幾つかの論議、そして佐多稲子の小説「虚 偽」の置かれていたコンテクストに照らし合わせて検討したものである。

【日本語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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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최적성이론에 기반하여 기후현 다지미시를 중심으로 사용되는 다지미 방언에나타나는 모음축약현상과 일본어의 세 방언(오와리 방언, 시즈오카시 아시쿠보오쿠구미방언, 도쿄 방언)에 나타나는 모음축약의 유형을 제약의 상호작용으로써 분석하는 것을목적으로 한다. 다지미 방언의 축약모음은 축약 전의 첫 번째 모음의 특징이 그대로나타나고 있는데(V1V2 → V1:), 이는 축약 전의 두 모음에서 저모음성의 보존이 가장중요시되고 그 다음으로 원순성의 보존이 작용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일반화를 바탕으로 본고는 정도평가제약을 바탕으로 한 계승유형을 통하여 각 방언의 모음축약유형을 설명하였다.

This paper examines vowel coalescences pattern in Tajimi Japanese comparing to three dialects of Japanese -- Owari Japanese, Shizuoka Japanese, and Tokyo Japanese -- within the framework of Optimality Theory (Prince and Smolensky 1993/2004, McCarthy and Prince 1999). Tajimi Japanese exhibits very different coalescence pattern to three dialects; that is, two vowels are coalesced to first vowel (i.e., V1V2 → V1:). This pattern results from the different feature preservation system: lowerness is most preserved feature in this dialect and roundness is more preserved than frontness. I will analyze these coalescence type based on factorial typology with gradient constraints.

本研究は最適性理論の枠組みから多治見方言に起こる母音融合の類型を分析することを目的とする。この方言は二つの連母音から母音融合が起こる 時、融合母音は第一母音の特徴をそのまま受け継ぐものになる(V1V2 → V1:)。 これを素性の観点からすると、融合前の低母音性の保持が最も重視され、次 に円唇性の保持が働いた結果であると考えられる。本研究は、この一般化を もとに、ミクロ的言語類型論の観点から勾配的制約の階乗類型を通じて、多 治見方言と尾張方言・足久保奥組方言・東京方言の母音融合の仕組みおよび その類型を明らかに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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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新常用漢字 2136字 중 通攝에 속하는 154字에 대해 漢和辭典 6종을 대상으로 그 字音 규정을 고찰 한 결과,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1) 開口1等 東韻의 陽聲字는 吳音에서 -u형, -uu형, -o형, -ou형이 혼재하고있지만, 대부분의 사전에서 -u형 을 吳音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로 인해 [空][同][弄・籠][總]字의 吳音을 [ク][ズ][ル][ス]로 기재 하는 등의오류가 나타나며, [同・洞・胴・動・童・銅]字의 吳音 [ドウ]를 慣用音으로 규정하는 등의 오류가 나타 난다. 2) 開口1等 冬韻에서도 [冬・統][農]字의 吳音을 [ツ][ヌ]로 기재하는 오류가나타난다. [宗]字의 現音 [シュ ウ]에 대해 대부분의 사전에서 慣用音으로 처리하고 있지만, 이는 吳音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어 吳音으로 분 류해야할 것이다. 3) 開口3等 東韻 을류에서 牙音字의 [弓・宮・窮]과 같은 陽聲字는 吳音에서–u형과 -uu형이 혼재하고 있지만, -u형만을 吳音으로 규정한 사전이 있다. 脣音系에서 [風豊]字의 漢音은 [ホウ], 吳音은 [フウ]와 [フ] 두 가지에 해당하지만, [フ]나 [フウ] 어느 한 쪽만을 吳音으로 처리하고 다른 쪽을 慣用音 으로 처리하는 오류가 나타나며, 또한 [フウ]를 漢音으로 처리하 는 오류도나타난다. [崇]字의 吳音形은 제각각이며, 現音 [スウ]를 모든 사전에서慣用音으로 처리하고 있는 데, [スウ]는 サ行子音의 口蓋性에 의해 출현한吳音으로 보아야 한다. 4) 開口3等 東韻 갑류 陽聲字에 대해 많은 사전에서 그 吳音形을 [ユ・チュ・ ジュ・ニュ・リュ・シュ]와 같이 1拍 의 拗音形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보인다. -ju형과 -iu형의 두 표기는 吳音자료이건 漢音자료이건 주로 ヤ行의[ ユ/イウ]와 サ行의 [シュ/シウ]에 집중되며 나머지 行에서는 [キウ・チ ウ・ニウ・リウ]와 같은 2拍의 -iu형으 로 출현한다. 따라서 현재 그 자음형에 [ユ/シュ]를 유지하고 있는 것만을 吳音으로 처리해야 하며, 나머지는 모두 -iu>-juu형으로 통일해야 할 것이다. 5) 合口3等 鍾韻 을류 脣音系의 陽聲字는 吳音에서 [フウ/ブウ]와 같은 2拍形 과 [フ/ブ]와 같은 1拍形이 혼재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전에서 [フ/ブ]와같은 -u형만을 吳音으로 다루는 경향이 강하며, 이로 인해 [封]字 의 現音 [フウ]를 慣用音으로 처리하는 사전이 있다. 6) 合口3等 鍾韻 갑류에서도 陽聲字에 대해 많은 사전에서 그 吳音形을 -ju형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보인다. 이 로 인해 吳音에 해당하는 [勇ユウ][龍リュ ウ][從ジュウ]를 慣用音으로 처리해 버린 사전이 존재한다.

This paper discussed the classification of consonants for 154 characters that belong to group Tong among 2,136 new usual Sino-Japanese characters(2010) in 6 Sino-Japanese dictionaries, and the following conclusions were drawn. 1) Open syllable gradeⅠ rhyme Dong(東) appear as -u, -uu, -o and -ou types in Go’on. but only -u type classified as a Go’on almost dictionaries. 2) Many dictionaries also shows an error of recording Go’on of [冬・統][農] characters as [ツ][ヌ] in open syllable gradeⅠ rhyme Dong(冬). 3) Many dictionaries recorded differently as a -u type and -uu type of Go’on in Open syllable grade Ⅲ rhyme Dong(東) β(contained medial-ï). 4) Many dictionaries have a tendency to define their Go’on type only as -ju type in open syllable grade Ⅲ rhyme Dong(東) α(contained medial-i) 5) Many dictionaries recorded differently as a -u type and -uu type of Go’on in Closed syllable grade Ⅲ rhyme Zhong(鍾) β(contained medial-wï). 6) Each dictionaries also shows an error of recording Go’on of [勇][龍][從] characters as [ユ][リュ][ジ ュ] in Closed syllable grade Ⅲ rhyme Zhong(鍾) α(contained medial-wi).

本稿では、新常用漢字2136字の中で通摂に属する154字について、6種類の漢和辞書 を対象にその字音規定を考察した結果、次のような問題点が現れた。 1) 開口1等東韻の陽声字を、多くの辞書で-u形のみを呉音と規定する傾向が見られ る。 2) 開口1等冬韻の[冬・統][農]字の呉音を[ツ][ヌ]と記載した誤謬が見られる。 3) 東韻乙類に属する牙音字の-u形のみを呉音形と認めている辞書がある。 4) 東韻甲類の陽声字について、1拍の拗音形のみを呉音と規定する傾向が見られ る。 5) 鍾韻乙類の唇音系の陽声字について、-u型のみを呉音と規定する傾向が見られ る。 6) 鍾韻甲類の陽声字についても、その呉音形を1拍の拗音形として規定する傾向が 見ら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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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문말 표현 형식에 「と思う/と思います」가 출현해, 「と思う」의 유무와 관계없이 수신자에게 문강의 뜻이 전달되는 일인칭 주체의 문장에 관해, 「왜 굳이 『と思う』 를 사용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에 대해, <인용의 「と」+사고 동사 「思う」>라는 관점으로부터 고찰한 결과 보고이다. 선행 연구에서는 「배려」의 기능으로서 파악한 논고가많이 관찰되었지만, 본 논문에서는 「애매성」을 중심적 기능으로서 파악할 것을 제안하였다. 또, 「と思う」가 「인용의 『と』」, 「사고 동사 『思う』」의 기본적인 의미・역할을 하고있다고 생각해(본 논문에서 취급하는) 「と思う」의 【기능】 및 그 원리를 제시하였다.

This paper reports a result of the consideration about “TO OMOU / TO OMOIMASU” of the end of a sentence expression. Particularly, from the view of “particle of the quotation “TO” and verb of thinking “OMOU””, first person-based sentence that the meaning of the sentence reaches the addressee regardless of presence/absence of “TO OMOU”, it examines the question that why the sentence dare to use the expression “TO OMOU”. In the precedent study, a lot of studies to catch as a function of “consideration” were confirmed. However, the writer proposed regarding “ambiguity” as a central function in this paper. In addition, the writer thinks that “TO OMOU” serves as a basic meaning, function of “particle of the quotation “TO”” and “verb of thinking “OMOU””, and shows [function of the root] of “TO OMOU” and the principle.

本稿は、文末表現形式に「と思う/と思います」が出現し、「と思う」の有無 にかかわらず受信者に文意が伝達される一人称主体の文に関し、「あえて『と 思う』を用いるのはなぜか」との疑問に対し、<引用の「と」+思考動詞「思う」> との視座から考察した結果報告である。先行研究では、「配慮」の機能として 捉える論考が多く観察されたが、本稿では「曖昧性」を中心的機能として据え ることを提案した。また、「と思う」が「引用の『と』」、「思考動詞『思う』」の基 本的意味・役割を果たしていると考え、(本稿で扱う)「と思う」の【機能】、およ び、その原理を提示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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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코퍼스와 선행연구 및 사전에서 수집한 데이터에 근거하여 일・한・중3개국 언어의 “N+V”형 합성 동사의 어휘형성의 특점과 상이점을 밝히려고 시도하였다. 고찰과 분석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선, 전체적으로 “N+V”형 합성동사는 일・한・중 3개국 언어에 다 있는 형태이지만일본어에는 그 숫자가 적 고 한국어에는 많는데, 이것은 상대적으로 일본어에 “N+Va”형합성명사가 생산적인 것과 관계가 있다고 판단 된다. 다음으로, “N+V”형 합성동사의선행명사와 후행동사의 격 관계인데 일본어와 한국어에서는 주격과 대 격에 의한 결합이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중국어는 중국어 자체의 문법적 특성에 의하여 대격에 의한 결합형태 가 존재하지 않고 “주술격” 구조와 “부사어+서술어” 구조뿐이다. 또한 일본어에서는주격과 대격에 의한 결합 이 대체적으로 반반이지만 한국어에서는 대격에 의한 결합이70% 이상을 차지한다. 세번째로는 “N+V”형 합 성동사는 보통 “N+V”형 구조의 동사구의 단숙형으로 이해되고 있는데 특히는 일본어에서 “N+V”형 합성동 사가 “N+V”형동사구로 환원될수 없는 점으로 보아 “N+V”형 합성동사 형성과정에는 좀 더 복잡한어휘형성 의 메커니즘이 있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네번째로 한국어의 “N+V”형 합성동사는 양적으로 일본어의 약 7배에 달하는데 그 이유의 하나로 한국어에는 보조동사처럼 많은 명사들과 결합하여 합성어를 만드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후행동사가 많은것을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N+V”형 합성동사의 형성에 있어서 일본어와 한 국어에서는 “우핵심 규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후행성분이 전체 합성어의 품사를 결정하지만 중국어에서는 후 행 성분이 동사라고 하여도 전체 합성어가 명사나 형용사가 되는 경우가많다.

Based on the data that is collected from corpus, previous studies and dictionaries, this paper attempts to identify the features of the word combination about N‐V compound verbs among Japanese, Korean and Chinese. As the results, the findings from the comparative analysis are as follows: Firstly, N‐V compound verbs exist in all three languages. However, there are a great number of N‐V compound verbs in Korean, while the number of N‐V compound verbs is limited in Japanese. Secondly, the pre‐nouns and the post‐verbs in the compound verbs are combined together based on the case relations. Most of N‐V compound verbs in Korean and Japanese are combined under the nominative and the accusative case relations between pre‐nouns and post‐verbs. However, due to the Chinese grammar, the accusative case relation doesn’t exit in Chinese N‐V compound verbs, but there are the subject‐predicate relation and the adverbial‐predicate relation. In Japanese, generally the half of N‐V compound verbs are formed under the nominative case relation, and the other half of N‐V compound verbs are under the accusative case relation. In Korean, 70% of N‐V compound verbs are combined under the accusative case relation. Thirdly, it can be analyzed that N‐V compound verbs are formed from N‐V verb phrases. But Japanese N‐V compound verbs cannot be reverted into N‐V verb phrases. It could be considered that there is a far more complicated mechanism in the word combination of N‐V compound verbs. Fourthly, Korean N‐V compound verbs are 7 times as many as Japanese N‐V compound verbs. One of the reasons is that there are a great number of post‐verbs in Korean, which can be compounded with nouns greatly just as Korean auxiliary verbs do. Finally, in the combination of N‐V compound verbs, due to the adaption of Non‐core Rule in Korean and in Japanese, it can be analyzed that the post‐component can be considered as parts of speech in Korean and Japanese N‐V compound verbs. While in Chinese, although the post‐components are verbs, the whole compound words also can be considered as nouns or adjectives.

本稿では、コーパスと先行研究ならびに辞書から収集したデータに基づい て、日・韓・中3言語における「N+V」型複合動詞の語形成の特徴や異同を明 らかにしようと試みた。その考察と分析の結果は以下の通りである。まず、全体的に「N+V」型複合動詞は日・韓・中3言語のいずれにもある 語構成の1つのタイプであるが、日本語にはこの種類の複合動詞がそれほど 多くないのに対して韓国語にはかなり多い。これは、韓国語に比べて日本 語には「N+Va」型複合名詞が豊富であることと関係があると思われる。次 に、「N+V」型複合動詞の前項名詞と後項動詞の関係において、日本語と韓国 語では大半が主格と対格による結びつきであるのに対して、中国語にはその文法的特長により、対格による「N+V」型複合動詞が存在せず、「主述式」構造 と「副詞語+叙述語」構造のみである。また、日本語では主格と対格による結 びつきがほぼ互角であるのに対して、韓国語では対格による結びつきが7割 以上をしめている。3つ目に、「N+V」型複合動詞は一般的に「N+V」型句構 造の短縮形と思われがちであるが、とりわけ日本語では多くの「N+V」型複合 動詞が「N+V」型句構造に還元できないことから、その語形成過程にはもう少 し込み入った複雑な語作りのメカニズムがあると考えなければならない。4 つ目は、韓国語の「N+V」型複合動詞は量的に日本語の約7倍に達している が、その理由の一つとして、韓国語には後項動詞が日本語における補助動詞 のように、幅広くいろいろな名詞と結びついて複合語を作る機能をもつもの が多いことが挙げられる。最後に、「N+V」型複合動詞の形成において、日本 語と韓国語では「右側主要部規則」にしたがっているので、後項にくる品詞が 全体複合語の品詞を決めているが、中国語は後項が動詞であっても複合語全 体は名詞や形容詞の場合も少なく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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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일본 문장어에서의 「女」관련 어휘의 사용실태를 파악하고자 「現代日本 語書き言葉均衡コーパス」(日本國 立國語硏究所)의 <白書 1976-2005, 2001-2005 년><敎科書 2005-2007년><弘報紙 2008년> <블로그 2008년> 을 분석하였다. 행정적인 보고서 <白書>는 「男女」「女性」「女子」의 형태가 97%. 「男女」는 항목별 수치 제시를 위한 분류기준으 로 「女性」은 취업과 사회활동에 관련된 어휘로 「女子」는 「女性」으로 대체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규범적 문장 <敎科書>에서는 「男女」「女性」「女子」가 52%,「女子」는 4%. 「女」 「彼女」「少女」, 특히 「女」「女**」「** 女」의 점유율 증가가 두드러진다. 「男女」는男女共同․平等, 「彼女」「少女」는 번역어나 방관자적 기술로 「女」는 작품명으로제시된다.

The study analyzed the general language use of ‘ONNA’ in contemporary written Japanese by doing a comparative analysis of <White papers 1976-2005, 2001-2005><Textbooks 2005-2007><Public relations magazines of 2008> and <Blogs of 2008> from ‘Balanced Corpus of Contemporary Written Japanese’ of the National Institute for Japanese Language and Linguistics. <White papers> were administrative reports and forms such as 「DANJO」「JOSEI」「JOSHI」 accounted for 97%. 「DANJO」was used as a standard of classification to present numerical values by items. 「JOSEI」 was used as a vocabulary related to employment and social activities. 「JOSHI」 showed a tendency to be replaced to 「JOSEI」. <Textbooks> contained normative sentences and 「DANJO」「JOSEI」「JOSHI」 accounted for 52%. 「JOSHI」 accounted for 4%. The increase of the proportion of 「ONNA」(ONNA ONNA****ONNA)「KANOJO」「SHOJO」 was conspicuous. 「DANJO」 was used as a vocabulary related to gender equality. 「KANOJO」 and 「SHOJO」 were used as translated words and descriptions of spectators. 「ONNA」 was used to present the titles of literature and art. <Public relations magazines> contained promotional sentences and had a high proportion of 「DANJO」 and 「ONNA」. 「DANJO」 was used for topics such as 「Gender-equal participation」 and 「Gender equality」. 「JOSHI」 was used for the name of schools and sports games. 「ONNA」 was used as a standard to present numerical values by gender. <Blogs> contained personal sentences and had various forms of vocabulary related to 「ONNA」 but 「DANJO」only accounted for 4%. The increase of the proportion of 「ONNA」 (ONNA ONNA** **ONNA) 「ONNANOKO」「KANOJO」 was conspicuous. 「KANOJO」 accounted for 17% and contents about <girl friend, lover> was increased. The order of sisters also had high frequency.

「現代日本語書き言葉均衡コーパス」(日本國立國語硏究所)の<白書 1976-2005、2001- 2005><敎科書 2005-2007><広報紙 2008> <ブログ 2008>を対象に現代日本語書き言葉に おける「女」関連語彙の使用実態を分析した結果、次のような内容がまとめられた。 行政的文章の<白書>は「男女」「女性」「女子」の提示形態が97%。「男女」は項目別の数 字提示の分類基準、「女性」は就職および社会活動に関する語彙、「女子」は「女性」に交 替する傾向を見せている。 規範的文章の<敎科書>は「男女」「女性」「女」が58%、「女子」は4%。「女」(女 女** ** 女)「彼女」「少女」の増加が目立つ。「男女」は男女共同․平等、「彼女」「少女」は翻訳語や 傍観的記述、「女」は作品名で提示される回数が多い。 広報用文章の<広報紙>では 「男女」「女」の占有率が高い。「男女」は「男女共同参画」 「男女平等」、「女子」は学校名やスポーツ競技、「女」は性別基準の数値などに提示され ることが多い。 私的文章の <ブログ>における「女」関連語彙の提示形態は多様であるが、「男女」は 4%にすぎない。「女」(女 女** **女)「女の子」「彼女」の占有率が高い。「彼女」は17%で <女の友だち、恋人>の意味が増加し、長女・次女などの姉妹順の頻度も高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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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관용표현 「손을 대다」는 신체부위인 「손」을 사용한 관용구 중에서도가장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손을 대다」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들은크게 물리적 접촉·신체적 접촉·관계적 접촉의 3가지로 분류하였으며, 모두 12가지의 하위분류로 정리하였다. 그러나 일본어 관용표현 「手」에서는 「손을 대다」 와 같이 많은 의미를 내포한 관용구는 없었다. 따라서 「손을 대다」의 의미에대응이 가능하거나 유사한 의미를 가진 일본어 「手」관용구의 용례를 추출하여비교하였다. 그 결과 「手を出す」는 물리적 접촉의 「식음·일의 시작」에서, 신체적접촉에서는 「피부접촉/이성 관계/폭력」에서, 관계적 접촉에서는 「관계/조처/취득」에서 가장 폭넓게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와는 반대로 「관계/교섭」 의 의미에 대응하는 일본어 관용구로는 「手を出す/手を取る/手を組む/手を結ぶ/手を握る/手を広げる/手を付ける/手を携える/手を染める」등이 사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정성을 들이다/공들이다」를 의미하는 일본어 표현 「手をかける/手 がかかる/手が届く」에 대응하는 한국어는 의미 분류에 제시되지 않았다. 이처럼「손을 대다」라는 한국어 관용구 하나에는 다양한 일본어 관용표현이 사용되고 있었으며, 앞으로 심도 깊은 고찰이 이루어질 경우 兩 言語 모두에서 의미의확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Korean Idiom “손을 대다”, which means “to touch the hand” in English, has a variety of meaning in expression among the idioms using a body part, hand. This study classified and summarized the meanings implied by “to touch the hand” into three in large, which are Material Contact, Physical Contact, and Relational Contact, along with 13 subcategories in total. However, in Japanese expressions using “hand”(「手」), there was no such expression that has multiple meanings like “손을대다” in Korean. Therefore, this study extracted severalcases of Japanese idioms using “hand”(「手」) that are corresponding or have similar meaning with Korean one and compared the expressions. As a result, it was found that 「手を出す」 is used for “to eat food” and “to start work” under Material Contact. It also represents “relation, taking actions, and acquisition” under Relational Contact, and is widely used related to “skin contacts, relationship with opposite sex, and violence” under Physical Contact category. Meanwhile, Japanese idioms such as 「手を出す·手を取る·手を組む·手を結ぶ·手を 握る手を広げる·手を付 ける·手を携える·手を染める」 are used corresponding to the meaning of “relationship” and “negotiation”. Among the subcategories of the meaning of 「손을 대다」, there is few idioms that correspond to the meaning of “approaching, getting closer”, and “purchase and sales” and “borrow” and “use” under Others category. On the contrary, Korean idioms corresponding to 「手をかける手がかかる」 which means “ to dedicate with sincere attitude/ make sincere efforts” are not suggested for the classification of meanings. As such, to indicate the meaning of “손을 대다”(touch the hand), many Japanese Idioms are used in various ways. If profound investigation is done further, there would be expansion of meanings in both languages of Japanese and Korean.

韓国語の慣用表現の中で「ソンウルテダ」は、「手」が入った慣用語句の中で一番多く の意味をもっている。「ソンウルテダ」が含んでいる意味を大きく物理的接触・身体的 接触・関係的接触の3種類に分類し、それを12種の下位分類にまとめた。しかし、「手」 が入る日本語の慣用表現の中では、「ソンウルテダ」のように多くの意味をもっている 慣用語句はなかった。そこで、「ソンウルテダ」の意味に対応する表現や似たような意 味をもっている「手」の慣用語句の用例との比較を行った。その結果、「手を出す」は物 理的接触の意味として「食飲、物事のはじめ」の意味で、身体的接触の意味として「皮 膚接触・異性関係・暴力」の意味で、関係的接触の意味として「関係・措置・取得」、 一番幅広く使われていることをわかった。これに対して「関係・交渉」の意味に対応す る日本語の慣用語句としては「手を出す・手を取る・手を組む・手を結ぶ・手を握 る・手を広げる・手を付ける・手を携える・手を染める」などが使われていた。そし て日本語の慣用表現「手をかける・手がかかる・手が届く」に対応する韓国語は意味分 類には提示されていなかった。 このような「ソンウルテダ」の慣用句には多様な日本語の慣用表現が使われています し、もっと研究を進んで深度ある考察ができれば韓日両語に意味の拡張があろうと考 えら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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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와 한국어에는 소위 ‘이중 주어 구문’이라고 하여 주어가 두 개 이상존재하는 특수한 구문이 있다고 지 적되어 왔다. 하지만 그 문장의 구조를 어떻게파악할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일본어학계에서는 ‘주어유무 논쟁’ 그리고 한국어학계에서는 ‘서술절구 논쟁’이라 하여 이견이 있었다. 본고에서는 우선 소위 ‘이중 주어 구문’을 대상으로 한 일본어의 ‘주어유무논쟁’과 한국어의 ‘서술절구 논쟁’이 서로 관련성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ⅰ)대용언을 통한 진단법, (ⅱ)복문 구성을 통한 진짜주어 찾기 진 단법, (ⅲ)주어존대를 통한 진단법, (ⅳ)결합가 이론(=논항구조)을 통한 진단법과 같은 네 가지진단법을 이용 해, 소위 ‘이중 주어 구문’에 대해서 ‘서술절’ 설정의 부당성, 즉‘Yが’나 ‘Y이/가’를 ‘주어’로 보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였고, ‘서술구’ 설정의필요성과 당위성, 즉 ‘Yが’나 ‘Y이/가’를 ‘보어’로 보아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소위 ‘이중 주어 구문’은 ‘기술동사(형용사)’와 관련된 유형과‘심리술어’와 관련된 유형으로 나 눌 수 있음을 보였다.

This paper aims to compare the controversy about the presence and absence of subject in Japanese ‘double suject constructions’ with the controversy about ‘predicate clause’ or ‘predicate phrase’ in Korean ‘double subject constructions’. This paper uses four diagnoses to verify above problems. Analysis results are as follows. (ⅰ) There is only one subject in Japanese/Korean ‘double subject constructions’. (ⅱ) The subject of Japanese/Korean ‘double subject constructions’ is not the ‘Yga’ or ‘Yi/ga’ but the ‘Xun/nun’ or ‘Xwa’. (ⅲ) The Japanese/Korean ‘double subject constructions’ have the ‘predicate phrase’, but not ‘predicate clause’. (ⅳ) There are two types of Japanese/Korean ‘double subject constructions’. One is concerned with the ‘descriptive verbs’ and the other type is associated with the ‘psych-verbs’.

本稿では、日本語と韓国語における、いわゆる「二重主語構文」を対象にして、当該 文が主語を有するかどうかという点と当該文が節(叙述節)、あるいは句(叙述句)を含む かという点について検討を行った。以上のような問題を検討するために四つのテスト を用いた。そのテストから得た結果を簡単にまとめると次のようである。 (ⅰ) 韓国語と日本語の、いわゆる「二重主語構文」において、   - 主語を二つを有するのではなく、一つのみを有するのである。   - その主語は‘Xun/nun’、あるいは‘Xは’であり、‘Yi/ga’、あるいは‘Yが’は主語 ではなく、補語(=非主語)である。   - 含んでいるのは叙述節ではなく、叙述句である。 (ⅱ) 韓国語と日本語の、いわゆる「二重主語構文」は記述動詞(形容詞)と関わるタイ プと心理述語と関わるタイプとに分類することができ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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