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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12)
2000 (15)
1999 (15)
1998 (14)
1997 (5)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3집 2018.01 pp.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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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다 아키나리(上田秋成, 1734-1809)의 「가구쓰치노아라비(迦具都遅能阿良毗)」는 덴메이(天明) 8년(1788) 1월 30일에 발생한 교토 대화재를 기록한 글이다. 당시 아키나리는 오사카 교외의 아와지노쇼(淡路庄)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우연히 유람하기 위해 상경하여 후시미(伏見)에서 매화를 본 후 친구인 마쓰무라 고슌(松村呉春, 1752-1811)의 사조 히가시노토인(四条東洞院) 집에 머물고 있었다. 30일 새벽에 「조모(焼亡, 불이야)」라며 사람들이 소란을 떠는 소리를 듣고 가모가와(鴨川)의 동측에서 화재가 발생하였음을 알게 된다. 최종적으로 고쇼(御所)나 이조성(二条城)을 비롯하여 시가지의 8할이 소실되었다는 미증유의 대화재였으며, 고슌의 집도 불에 타 쇼고인(聖護院) 근처에 있던 친구 기토(几董)의 집으로 피난을 갔다고 한다. 저녁에 아키나리는 배를 타고 오사카에 돌아가고자 시가지를 가로질러 후시미로 향하고, 그 과정에서 보고 들은 것들, 구체적으로 교토 소사대(所司代)나 신천원(神泉苑)이 불에 탔다, 이조성이 위험하다, 고쇼도 불에 탔다는 등의 재난 정보, 천황과 상황이 어디론가 피난을 갔다는 등의 소문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아키나리 자신의 눈에 비친 아이를 앞뒤로 따르게 하며 노인의 손을 이끄는 여성, 이불채로 운반되는 환자, 억지로 걷고 있는 임산부,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사람, 말다툼을 하는 사람, 신불을 원망하는 사람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문장의 수식을 억누르고 광경을 정확하게 그려내는 르포르타주풍 화문(和文)으로서 같은 대화재를 기록한 반 고케이(伴蒿蹊) 『가구쓰치노아라비(かぐ土のあらび)』나 천추노인(千秋老人) 『하나모미지 미야코바나시(花紅葉都噺)』가 읽을거리로서 사건을 윤색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가구쓰치노아라비(迦具都遅能阿良毗)」는 화문이 르포르타주의 문체로서 가능한지를 시험한 아키나리의 실험이었던 것이다.
“Kagutsuchi no Arabi” is a memory about Kyoto big fire occurred on 30th of January in 1788, by Ueda Akinari. He lived in Awaji no sho village then, countryside of Osaka. Akinari was in trip to Kyoto and staying at the place of Higashi no toin, uncle of Akinari’s friend Matsumura Goshun, after apricot blossoms viewing on that day of the big fire. He had heard people troubled outside and was aware of the big fire happened. It was an unheard-of disaster which destroyed 8/10 of the city, including gosyo and nijojo. Akinari’s friend Goshun was unfortunately one of who lost their houses and evacuated to other places like their friends’ places. Akinari had seen and heard things regarding with the disaster in the way back to Osaka next evening. His writing shows that nijojo was in danger, gosyo was also destroyed, Kyoto shoshidai and shinsenen were burnt out, and that an emperor and a retired sovereign emperor excaped at that night. Additionally many scenes he had seen like women taking hands of the old and children, patients in being removed packed in a blanket, expectant mothers slogging forward, people bickering each other, finding their children, and cursing at the disaster beyond their capability. Sentences of this article are very simple with the least adjectives and reveal a striking contrast from Ban Kokei “Kagutsuchi no Arabi” or Senshu rojin “Hanamomiji Miyakobanashi”, both of which are describing Kyoto big fire like a spectacle. As it were, Akinari’s writing may be an experimental try if sentences written in ancient Japanese style can be a form of reportage.
上田秋成(1734-1809)の「迦具都遅能阿良毗」は、天明8年(1788)1月30日に起こった 京都大火について記した文章である。当時秋成は大阪郊外の淡路庄村に住んでいた が、たまたま遊覧のために上京し、伏見で梅を見てから友人の松村呉春(1752-1811)の 四条東洞院の家に泊まっていた。30日の未明に「焼亡」(火事だ)と人々が騒ぐ声がし て、鴨川の東側から火事が起こったことを知る。最終的には、御所や二条城をはじめ、市街地の8割が焼けたという未曾有の大火で、呉春の家も焼けて、聖護院近くに いた、これも友人の几董の家に避難したりしている。夕方、秋成は淀舟で大阪へ戻ろ うと、市街地をつっきって伏見に行くが、そこまでの間に見聞したこと、具体的に言 えば、京都所司代や神泉苑が焼けた、二条城が危ない、御所も焼けたなどの罹災の 情報や、天皇や上皇がどこそこへ避難したなどの噂が記され、また秋成自身の目に映った、子を前後に負って年寄りの手を引く女、布団のまま担がれる病人、無理に歩かせられる妊婦、迷子を捜す人、小いさかいをする人、神仏を恨む人の姿が描かれ る。文飾を抑え、情景を正確に写していくようなルポルタージュ風の和文で、同じ大 火を記した伴蒿蹊『かぐ土のあらび』や、千秋老人『花紅葉都噺』が、読み物風にでき 事を潤色しているのとは対照的である。「迦具都遅能阿良毗」は、和文がルポルタージュの文体になり得るかどうか試みた、秋成の実験であった。
전근대 한국 문학 속의 자연재해 ― 18세기와 19세기의 자연재해를 중심으로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3집 2018.01 pp.3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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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8・19세기에 발생한 자연재해를 중심으로 전근대 한국 문학에 나타난 자연재해의 양상을 조사하고 분석하였다. 전근대 시기에는 정부측 기록이나 역사서에 자연재해 기록이 상세하게 실려 있고, 그 사료를 활용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반면에 문집과 필기, 일기를 비롯한 문학 작품에도 작품이 풍부하게 실려 있으나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먼저 이상기후와 대기근, 대홍수, 폭풍피해 등 당시에 빈발한 자연재해를 묘사한 작품의 개황을 소개하고 역사기록을 보완하는 작품의 풍부함과 가치를 확인하였다. 본론에서는 18세기의 사례로 향촌사회에 거주하는 士族의 작품을 분석하였다. 壬子年(1732)과 癸丑年(1733)에 전라도 장흥 지역의 대기근을 묘사한 장편 한글가사 「壬癸歎」을 대상으로 향촌사회 지식인의 자연재해를 보는 시각과 정서를 살폈고, 그에 대비하여 壬寅年(1782) 대기근에 安山 지역 양반인 柳慶種이 지은 수십 편의 한시를 분석하여 부유한 문인의 재해 묘사에 나타난 특징을 살펴보았다. 19세기의 사례로는 서울에 거주하며 관직생활을 하는 관료의 작품을 분석하였다. 우선 辛巳年(1821)에 大洪水와 뒤이은 콜레라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成海應 등이 지은 작품을 분석하여 재해의 엄청난 실상과 그에 따른 공포와 우려를 살펴보았고, 壬辰年(1832) 대홍수에 徐淇修가 쓴 작품을 분석하여 재해를 고발하는 방식을 살펴보았다. 다양한 시각의 작품을 통해 피해자나 목도한 자의 시선에서 자연재해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증언하며, 공포와 분노 등 정서적 반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재해의 실상을 고발하는 특징을 찾아냈다. 문학 작품이 정부측 기록이나 역사사료와 다르게 지닌 큰 특징을 새롭게 부각시켰다.
This paper analyzes the various portrayals of natural disasters in pre-modern Korean literary works. The focus is on the 18th- and 19th-century disasters. In pre-modern Korea, natural disasters were recorded in detail in official court and other historical records. In-depth studies of these writings have been carried out by scholars in relevant fields. However, there is also an abundance of references to natural disasters in literary works; they have not received much attention. This paper examines literary works that are specifically about the frequently- occurring natural disasters, such as severe weather, great famine, great flood, and storms. The paper argues that the literary works are rich in information that complement archival writings about the natural disasters. For works dealing with 18th-century disasters, the paper examines writings by local scholars living in rural communities. In particular, it examines “Imgyetan” (壬癸歎, “Black Rat Black Ox Lamentation,” author unknown), a long poem written in Hangeul. The poem laments miseries caused by a severe famine that ravaged the Jangheung area, Jeolla Province in 1732 (the Year of Black Rat) and 1733 (the Year of Black Ox). The paper argues that this work shows a local intellectual’s perspective and sensitivity to the pains brought on by a great natural disaster. The paper also examines dozens of hansi --poems in Classical Chinese-- written about the great famine of 1782 by YU Gyeong-jong (1714~1784), an Ansan-area yangban. Here the perspective of a wealthy man of letters is examined. For the 19th-century disasters, this paper examines mostly works by government officials who lived in Seoul. SEONG Hae-eung describes the outbreak of cholera following the great flood of 1821; he focuses on the enormous scale of damages and the prevalence of fear and worries. SEO Gi-su describes the great flood of 1832; the focus of his writing is on exposing the corruption and incompetence of public offices. The various writers take on different perspectives, some that of a victim, others that of a sympathetic yet neutral witness. These literary writings are detailed records of and witnesses to the natural disasters of the times, and yet they also contain active emotional responses, such as fear and anger. Some of them also have the characteristics of an exposé on the man-made nature of the disasters. Thus this paper highlights an aspect of the literary works dealing with natural disasters that distinguishes them from official and archival records.
本論文は、18・19世紀に起きた自然災害を中心に、前近代の韓国文学における自然災害の様相を調査して分析した。前近代には政府側の記録や歴史書に自然災害の記録が詳細に収録されており、その史料を活用した研究が行われた。その反面、文集・筆記・日記をはじめとする文学作品にも作品が豊富に収録されているにもかかわらず関心の対象にならなかった。まず、異常気候と大飢饉、大洪水、暴風の被害など、当時に頻発に起こった自然災害を描写した作品の概況を紹介し、歴史記録を補う作品の豊富さと価値を確認した。 本論では、18世紀の事例として、鄕村社会に居住する士族の作品を分析した。壬子年(1732)と癸丑年(1733)に全羅道長興地域の大飢饉を描写した長編ハングル歌辞「壬癸歎」を対象に、鄕村社会の知識人の自然災害を見る視覚と情緒を探った。そして、それに対して壬寅年(1782)の大飢饉に安山地域の兩班である柳慶種が作った数十首の漢詩を分析して裕福な文人の災害描写に現れた特徴を調べた。まず、辛巳年(1821)に大洪水とその後のコレラ伝染病が発生した時、成海應らが作った作品を分析して、災害の凄まじい実状とその恐怖と不安さを見て、壬辰年(1832)の大洪水に徐淇修が書いた作品を分析し、災害を告発する方法を探った。 様々な視覚を持つ作品を通して、被害者や目撃者の視線から自然災害を詳細に記録・証言し、恐怖や憤りなど、情緒的反応を積極的に表現して災害の実状を告発する特徴を明らかにした。文学作品が政府側の記録や歴史史料とは異なる大きな特徴を新たに浮き彫りに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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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을 둘러싼 노부나가・히데요시의 이야기는 에도시대의 도쿠가와 사관으로부터 황국사관・제국사관으로 옮겨진다. 중화제국 명의 멸망과 이민족국가 청의 성립을 맞아 군국주의의 일본문명을 의식해서 쓰여진 군서(軍書)는 19세기 유럽과 미국으로부터의 압력에 의해 내셔널리즘의 바탕으로 바뀐 것이었다.
How to tell the story of ODA Nobunaga and TOYOTOMI Hideyoshi over the role of Japanese invasion of Korea 1592-1598 is shifted to the empire Historical view from the tokugawa historical view in the Edo period. When the Chinese Empire Ming was ruined ,Unlike Korea, the military histories were written with consciousness of the Japanese civilization of militarism. They changed in a source of nationalism under the pressure from Europe and the United States in the 19th century.
文禄・慶長の役をめぐる信長・秀吉の語り方は、江戸時代、徳川史観のそれから皇国史観・帝国史観のそれへとシフトする。中華帝国明の滅亡と異民族国家清の成立を受け、尚武の日本文明を意識して書かれた軍書は、十九世紀の欧米からの圧力によってナショナリズムの原資として転変したのである。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3집 2018.01 pp.89-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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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7세기 두 번의 동아시아 전란을 통과하며 겪은 민인들의 삶을 「최척전」과 「김영철전」을 통해서 재조명한 것이다. 종래 이 두 작품을 동아시아 전란과 관련하여 주로 가족 이산과 체험을 개별적으로 밝히거나 함께 논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두 작품을 ‘귀향의 서사’라는 점에 초점을 맞춰 주인공의 귀환 과정과 그 현실성 및 낭만성을, 즉 같으면서도 다른 점을 밝혀 결과적으로 가혹한 민인들의 삶이 전란 속에서 여하히 굴절되었는가를 따져 보았다. 우선 「최척전」은 완벽하게 복원된 가족을 통해 역으로 이런 현실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환기시켜 준다. 이에 반해 「김영철전」은 불가항력적인 고난을 뚫고 귀환한 김영철을 통해서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게 한다. 따라서 환상적으로 믿고자 하는 현실을 그려내거나(「최척전」), 현실로 믿어야 하나 받아들일 수 없어 환상으로 밖에 치부할 수 없는(「김영철전」) 사례라 하겠다. 즉 이들 주인공들에게 과부하가 걸린 전란 체험은 억지이거나(「최척전」), 너무 가혹한(「김영철전」)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붕괴된 세계에서 개인과 가족은 오롯이 그들 자체로 당해내야만 했던 현실을 두 작품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같은 목표를 가지고 구현한 셈이다. 전란으로 인한 거대한 폭력 앞에 개인과 가족은 얼마나 초라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비록 귀환이라는 희망고문을 상정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지난한 것인지 되묻고 있다 하겠다.
This study aims to analyse 「Choi Cheok Jeon」 and 「Kim Yeong-cheol Jeon」 in order to review the life of the people who had to go through 17th Century’s East Asian Wars. In relation to the Wars, these two pieces were discussed together or individually to determine family separations and war experiences. In this study, the focus is on the pieces’ returning-home narrative which helps to determine what the main characters had gone through on the way back home and how romantic and realistic those are in order to finally examine the harshness people had gone through because of the war. 「Choi Cheok Jeon」 shows a perfectly restored family which derives the thought that this fantasy could not happen in reality. On the other hand, the reflection of Kim Yeong-cheol who had been through so much hardship in 「Kim Yeong-cheol Jeon」 makes it difficult to accept the harsh reality. The first one sketched a romantic scene which people would want to believe that it is real while the second shows a case where the reality sketched is so harsh that people would want to take it as a fake story. The pieces show the reality that individuals and families had to face in a collapsed world. Both of them reached the same objective by using different ways of expression. They both were devoted to show how people stand so helpless against massive violence caused by war and they are questioning how difficult it is to reach the goal of ‘returning home’ which could only be a vain hope.
本稿は17世紀の中、2回の東アジア戰亂を経験した民人の生を「崔陟傳」と「金英哲傳」を通じて再照明するものである。元々この二つの作品は東アジア戰亂に関して、主に家族の離散や体験を個別的に明かしたり、一緒に論じられたりしてきた。しかし本稿は二つの作品の「帰郷の叙事」と言う点に集中して主人公の帰還過程やその現実性‧浪漫性に、つまり同じようで異なる部分に注目し、民人の生が戰亂の中でとのように屈折したのかを確認した。先ず「崔陟傳」は完璧に復元できた家族を通じて、逆にこのような現実の不可能さを認識させる。それに対し「金英哲傳」は不可抗力的な苦労を越えて帰郷した金英哲を通じて、現実を受け入れ難くしている。だから二つの作品は信じたい現実を幻想的に描いた(「崔陟傳」)場合と、現実として信じるべきだが受け入れられなくて、幻想としてしか考えられない(「金英哲傳」)場合である。つまりこの主人公たちに過負荷された戰亂の体験は無理な嘘だったり(「崔陟傳」)、ごく残酷な(「金英哲傳」)形で私たちに迫る。崩れた世界で個人や家族がそのままやられるしかなった現実を、この二つの作品は違う方法で、でも同じ目標をもって再現している。戰亂における巨大な暴力の前で、個人や家族がどんなに無力な存在でいるしかなかったのか、そして帰還って言う希望拷問を想定するが、それがどれほど至難なものだったのかを問い返している。
홍수설화의 서사적 변주와 인식의 전환 ― 동아시아의 경계를 넘어 <설국열차>까지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3집 2018.01 pp.117-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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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홍수설화에 담겨 있는 향유층의 인식에 대해 주목하였다. 홍수설화는 홍수로 인한 재창조라는 기본적인 구조로 전개된다. 그런데 이 구조 속에 설화 향유층의 다양한 인식들이 함께 자리하면서, 서로 다른 양상의 홍수설화가 전승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홍수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시작하여, 홍수 이후 세상에 대한 제도적 접근까지 다양한 인식의 추이를 홍수설화를 통해 만날 수 있었다. 홍수설화에서는 홍수에 대한 다양한 원인이 제시되지만, 가장 보편적인 원인은 인간의 악성이다. 악한 인간 때문에 홍수가 나고, 인류가 멸절의 위기를 겪는 것이다. 이렇게 홍수가 이해되며 살아남은 사람과 죽은 사람들은 선악이라는 기준으로 이분화 된다. 하지만 홍수가 선악을 구분하며 찾아오지 않기에 점차 선악의 이분법은 신에 대한 구체적 믿음의 여부로 전환된다. 홍수를 내리는 신에 대한 믿음의 여부가 홍수에서의 생사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거기에 더해 근친상간의 금기 위반이라는 장치가 마련되며, 인간은 신을 탓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홍수의 원인을 자신들로 돌리게 된다. 그럼에도 계속된 홍수는 근친상간의 금기 위반 자체를 탈락시키는 방향으로 홍수설화를 변주시킨다. 남매로 제시되던 생존자가 서로 다른 부모를 가진 사람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금기의 자리에 계급이라는 새로운 담론이 자리하게 된다. 신에 대한 관념으로 구체화되던 홍수설화가 당대 향유층이 갖던 계급의 당위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이런 홍수설화의 변주는 현대 콘텐츠인 <설국열차>에 이르면 더욱 강화된다. 다만 <설국열차>는 계급의 당위성을 제시하는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런 계급에 대한 전복과 새로 열린 세상에 대한 희망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홍수설화로서의 지평을 연 것이다. 이렇게 홍수설화는 계속해서 변주하며, 새로운 인식의 추이를 함께 제시하는 방향으로 전승된다고 할 수 있다.
In this article, I paid attention to people’s awareness in flood narrative. The basic structure of flood narrative is flood and recreation. In this structure, various awareness of people are included. In flood narrative, the biggest cause of flooding is human malice. So people are differentiated on the basis of good and evil. But floods do not come from the distinction between good and evil. So humans depend on God and flood narrative’s content is changed by the belief in God. Furthermore, the problem of incest is also inserted in flood narrative. So human beings can not blame God and turn all causes to themselves. But the flood continues. In the end, it completely eliminates the incest problem in flood narrative. The sibling turns into a person with a different parent. In this process taboos are replaced by the class. Flood narrative was to explain the validity of the class. The variation of flood narrative is further strengthened on Snowpiercer. Snowpiercer shows overthrow of the class and hope for a new world. Namely, flood narrative continues to change and inherits a new awareness.
本稿は、洪水説話に含まれている享有層の認識について注目した。基本的に洪水説話は洪水によって再創造する構造で展開される。ところが、この構造の中に説話の享有層が持っている多様な認識が重なることで、お互いに違う様相の洪水説話が伝承され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のだ。特に洪水を眺める観点から見ると、洪水説話を通じて洪水の以来世間に対する制度的なアプローチなど、多様な認識の推移を見渡すことができる。 洪水説話では洪水に対する多様な原因が提示されるが、最も普遍的な原因は人間の悪性である。悪い人間のため、洪水が発生し、人類が絶滅の危機に陥ったことだ。このように洪水が理解され、生き残った人と死んだ人たちは善悪という基準で二分化された。しかし、洪水が善悪を区分し訪れていないので、次第に善悪の二分法は神に対する具体的信頼の有無に転換される。洪水を下す神に対する信頼の有無が洪水での生死を決定することになるのだ。なお、それに加えて近親相姦のタブー違反という装置が設けられ、人間は神のせいにせず、継続して洪水の原因を自分たちのせいにするようになる。 それにも関わらず続けられた洪水は、近親相姦のタブー違反そのものを脱落させる方向で洪水説話を変奏させる。兄妹として提示された生存者がお互いに他の親を持った人に置換されるのだ。この過程でタブーの立場に階級という新たな談論が表す。神に対する観念で具体化された洪水説話が当代享有層が持った階級の当為性を確保する方向へと変化したということだ。このような洪水説話の変奏は、現代コンテンツである<雪国列車>に至ってはさらに強化される。 ただ、<雪国列車>は階級の当為性を提示することに止まるのではなく、そのような階級に対する転覆と新たに開かれた世界に対する希望を共に見せることで、新たな洪水説話としての地平を開いたのだ。以上のように洪水説話は継続して変奏しながら、新しい認識の推移をともに提示する方向に伝承されていると言えよう。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3집 2018.01 pp.147-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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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한국과 일본의 대중음악은 식민지와 본토라는 지정학적 특수성 속에서 문화적으로는 일본의 우위 속에서 상호간 영향을 주고받았다. 일제 강점기는 일본으로부터 유입된 ‘트로트 음악’이 국내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고 상업 음반의 유통이 시작되는 대중음악의 맹아기였다. 해방 이후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를 거쳐 2000년 제3차 일본대중문화 개방 이전까지 일본의 대중음악은 국내에 음성적으로 유입되면서 알게 모르게 한국의 대중가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왔다. 이따금씩 불거지는 일본가요 표절시비는 문화개방 이전 시기 우리 가요계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특정한 몇몇 아티스트의 일본 진출이나 민간 차원의 교류가 있었을 뿐이었던 양국은 김대중 정부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후 본격적인 교류의 물고를 트게 된다. 본 논문은 한・일 대중가요 교류의 역사와 함께 2000년대 이후 활발해진 양국 대중가요의 번안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대중가요를 통한 쌍방적 문화교류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점검하고자 하였다. 또한 일반적으로 노래 가사의 중심적 메시지가 담긴 ‘주제 문장’이나 ‘주제어’의 배치는 주선율과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파악되므로, 가사와 더불어 악곡 분석을 통해 번역 또는 번안 과정에서 언어의 차이로 인한 선율 변화와 액센트의 재배열에 주목하여 그 변화 양상을 고찰해 보고자하였다. 특히 활발했던 한국가수들의 일본노래 번안사례에 한정하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96곡을 기준으로 분류와 분석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모사적 재구성, 전폭적 재구성, 선율의 재구성의 3가지 항목으로 분류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일본노래를 번안하는 성향을 정리할 수 있었다. 또한 국내 작사가들의 원곡 해석 및 변형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 졌는지 분석할 수 있었다. 다만 양국의 번안곡의 수치에 있어 일본곡을 번안한 사례가 많아 양국 문화 교류의 한계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범위를 한층 넓혀 번안곡 전반에 대한 연구, 일본음악이 한국음악에 끼친 영향에 대한 연구에 대한 필요성이 인지되었고 이는 차후의 연구과제로 하겠다.
In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Korea and Japan were interconnected in a geographical relationship that defined a colony and its mainland, with Japan solely controlling and leading the direction in culture for both countries. While Korea was liberated in 1965 and limitations were set on the distribution of Japanese pop culture in the peninsula until finally undergoing the third Japan-Korea open-door policy in 2000, Japanese pop music has always remained a powerful influence in the Korean music scene. This study has examined the possibilities and limitations of bilateral cultural exchange between Korea and Japan through popular music by looking at the history of their exchanges and instances of song adaptations made for each country since the year 2000. In addition, as the main ‘topic sentence’ for song lyrics and the arrangement of the ‘topic keywords’ is seen as being in an organic relationship with the melody of a song, focus has been put on the change of melodies and rearrangement of accents due to differences in language in the translation process in analysis of the lyrics and melody to better consider the transformations. As a result, this study divided the main elements into the three categories of copied rearrangement, full rearrangement and melodic rearrangement. Based on these findings, the propensities in adapting Japanese songs could be identified and analysis was made into the methods in which Korean composers interpreted and changed the original songs. This study has recognized a need to conduct further research on the influences of Japanese music on Korean music and will base future studies on its findings.
20世紀の始めに、韓国と日本の大衆音楽は、植民地と本土という地政学的な特殊性のもとで、文化的には日本の一方的なリードの中におかれていた。また日本から流入された‘トロット音楽’が韓国に根を下ろし、商業的な流通がはじまった時期でもある。終戦後、1965年韓国と日本の国交正常化をへて、2000年、日本の大衆文化を開放するまで、日本の大衆音楽は、韓国の国内では陰性的に流入され、韓国の大衆音楽界に少なからず影響を及ぼしてきた。その中で日本の歌謡曲の剽窃の問題は、日本文化の開放以前、韓国の大衆音楽界に暗いかげをおとした。 韓国のアチーストのうち、何人かは日本に進出し、私的な交流があったが、本格的な両国の文化交流は1998年以後のことである。 この論文は、韓国と日本における大衆音楽の交流の歴史を顧み、特に2000年以後盛んになってきた両国の翻案歌謡を検討して、日本の歌謡曲を韓国語で翻案するときどういう類型がみられるかを考察したものである。分析の対象にした曲は、韓国音楽著作権協会に登録された96曲である。分析の結果、翻案曲は,模写的再構成、全幅的再構成、旋律の再構成など、三つの類型で分類できるとし、韓国の翻案曲がどういう方法を講じ、傾向にあるかを検討した。これからの課題としては、韓日両国の音楽の交流の歴史と影響に関する諸問題である。
일본 코미디영화의 웃음 코드와 기능 ― 2013~2014 흥행작을 중심으로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3집 2018.01 pp.171-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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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2014년의 일본의 흥행작 코미디를 분석한 결과 일본영화 특유의 웃음 코드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일본어의 특수성에 기인한 것과 일본 코미디의 전통이 결합한 것을 들 수 있다. 같은 발음을 가진 일본어를 재배치, 오해, 유추하는 과정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방언이 주는 뉘앙스적 웃음이 발견되었다. 두 번째는 만담의 형식을 차용한 것으로 형식적으로 익숙한 웃음 코드이면서 ‘마’라고 불리는 속도, 간격과 관련한 연출이 결합하여 웃음을 유발하고 있다. 세 번째로는 과장된 캐릭터인데, 어떤 특정한 인물이나 그 인물의 성격을 과장시키는 경우를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면 일본 사회에서 코미디영화는 어떤 사회적 기능을 하고 있는가? 비판과 통합이라는 틀로 분석해 보자면, 2013년~2014년 흥행작 코미디에서는 비판의 기능이 상대적으로 강함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소재 자체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기적인 영향도 있다. 즉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겪은 일본 사회에서 분출된 비판과 자성,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추구 경향, 주체적 삶에의 지향 등과 연관된다고 생각한다.
After the analysis on Japanese hit comedy films in 2013~2014, I can summarize the specific comic code of Japanese film. First is the combination of linguistic specificity and the tradition of Japanese comedy. I found that the process of rearrangement, misunderstanding, analogy of words with same pronunciation causes laughter, and that dialect causes laughter with subtle nuance. Second is the borrowing of Manzai form. It is the familiar comic code to the Japanese people, and the direction related with ‘Ma’ (speed and interval in dialogue) causes laughter. Third is exaggerated character. It is often found that a particular person or his character is exaggerated. Then what is the social role of comedy film in Japanese society? The critical role is relatively strong in Japanese hit comedy films in 2013~2014 from the point of view the analysis framework with critics and integration. That is from the subject matter on the one hand, but on the other hand it is from the influence of that times. In other words, I think that the critical tendency in that films is closely linked to the critics and self-examination after the Great East Japan Earthquake, the pursuit of new life style, and the aim to the independent life.
2013年~2014年の日本のヒット作コメディを分析した結果、日本映画特有の笑いコードを幾つかにまとめてみることができる。まず、日本語の特殊性に基づくものと日本のコメディの伝統が結合したものが挙げられる。同じ発音の日本語を再配置し誤解、類推する過程を通して笑いを引き起こしているのがわかる。また方言がもたらすニュアンス的な笑いも見える。二つ目は漫才の形式を借りたもので、形式的に親しむ笑いコードであると同時に‘間’と呼ばれる速度、間隙と関わる演出が加わり笑いを誘っている。三つ目は誇張されたキャラクターで特定の人物やその人物の性格を極めて誇張させる場面がよく見られる。四つ目は他のエンターテインメントや日本映画から引用したりパロディーすることである。では、日本社会でコメディ映画はどういう社会的な機能を果たしているのだろう。批判と統合というカテゴリーで分析してみると、2013年から2014年までのヒット作では批判の機能がより強いのがわかる。これは素材そのものに基づくこともあるが、一方では時代の状況がもたらす影響もある。つまり2011年の東日本大震災を経験した日本社会から噴き出した批判と自省、新しいライフスタイルへの追求、主体的な生き方への志向などに連関していると思われる。
만엽편찬(萬葉編纂)에의 의도 ― 오토모노야카모치(大伴家持)를 중심으로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3집 2018.01 pp.197-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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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카모치(家持)는 많은 노래를 만요슈에 남겼고, 많은 족적을 남겼다. 만요슈란 거대한 문집을 편찬했고,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일들도 생겼다. 야카모치는 오토모가(大伴家)의 중심적인 인물이었고, 정신적 지주였다. 가문을 지키며 돌보아야하는 책임과 의무감에 생활하는 가문의 수장이었다. 이러한 정신적 고통을 여성을 통해 채우려 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를 일찍 잃고, 아버지마저 어린 시절에 잃었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오토모 가문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 관념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야카모치는 가문을 지키기 위해 도성에서의 생활 보다는 정치적 관심이 적은 외곽에서 생활했다. 그러나 이런 것이 결국 동족의 신뢰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야카모치는 인간의 생은 무상한 것이라 했다. 아버지인 타비토의 노래와 같이 무상을 느꼈던 것이다. 인생의 무상함, 덧없음, 공허, 모든 것을 느낄 나이가 되었고 마지막으로 만요라는 돌파구에서 가집을 편찬해서 남기려 했던 것은 아닌가? 히토마로(人麻呂), 오쿠라(憶良)등과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할 선인들과의 같은 가집을 만들어 후세에 전하려 했던 것이다. 이와 함께 여성들과의 사랑을 통해서 여성들과의 흔적을 만요슈에 남기려 했던 것은 아닌지? 가문을 위하여 남기고 싶어 했던 노래들을 만요라는 가집을 통해 편찬한 것은 아닌지? 가문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던 야카모치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본 논문은 이러한 야카모치의 만요편찬 의도를 살펴 본 논문이다.
Yakamochi made many songs in Mayoushu. There are many descriptions in Manyōshū and many things have happened in the process. Yakamochi was a central figure in the Ōtomo’ spiritual anchor. He was the head of the family responsible for the family. These mental anguish may have been used to satisfy women. The yearning for a mother who lost his mother early in his childhood and lost his father in childhood would be an obsession to preserve his mother’s family. Yakamochi lived outside the city with less political attention than his life in order to protect his family. However, this resulted in the loss of mutual trust. In the end, Yakamochi said that the human life was free. Like the songs of Tabito, he felt free. Is it the age of life, vanity, emptiness and everything you want to feel and lastly, you were trying to compile. He attempted to make the same fate by creating the same fate as the nobles of the relationship including those who had joined the shoulders of Hitomaro, and Okura. You can read the thoughts of Yakamochi, who tried to do his best to protect his family. This thesis is a treatise on the compilation of the Yakamochi dictionary.
家持は多くの歌を『万葉集』に歌い、また、多くの足跡を残した。 『万葉集』という巨大な文集を編纂して作る過程において、いろいろなことも起こった。 家持は大伴家の中心的な人物で、精神的な支柱であった。家門を守り、面倒を見なければならない責任や義務を感じながら生活する家門の頭であった。このような精神的苦痛を女性を通して満たしていたかもしれない。早くに母を亡くし、父さえも幼い時に亡くした大伴は、家族に対する恋しさのため家門を守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強迫観念念が根ざしていたのであろう。家持は家門を守るために都城での生活よりも政治的関心が少ない外郭で生活した。しかしこのようなことが、同族の信賴を失くしてしまう結果を招いてしまった。結局、家持は人間の生は無常であるといった。父、旅人の歌のように無常を感じでいたのである。人生の無常観、つかの間の虚しさ、あらゆることを感じる年齢になって、最後に『万葉集』を突破口として歌集を編纂し、残そうとしたのではないだろうか。柿本人麻呂、山上憶良と共に肩を並べて先人たちのように歌集を作り、後世に伝えようとしたのである。家門を守ろうと最善を尽くした家持の思いが読み取れる。 本論文はこのような家持の『万葉集』編纂の意圖を考察したものである。
古代文献に見える星に関する考察 ― 『万葉集』と郷歌を中心に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3집 2018.01 pp.219-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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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부터 일본에서는 별에 대한 관심은 주로 칠석전설의 직녀성, 견우성뿐이고 다른 것은 주목되지 않았다. “니혼쇼기”에는 별의 신이 등장하지만 일본신화에는 거의 볼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별의 신이 악신(悪神)으로써 그려져 있기 때문인가. 그 이유를 모색하면서, 사람이 별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노래했는지 주목했다. 고대 일본에서는 중국 천문학의 영향이 미치고 있었는데 태양은 천황의 상칭이었다. 금성은 중국의 음양오행(陰陽五行)설에 있어서는 불길한 징조였다. 왜냐하면, 성식(星蝕)하기 때문 태양으로 상징되는 천황의 존재를 위협하는 별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신라 향가에서도 역시 혜성을 불길한 징조로 간주하고 있다. 그것을 융천사(融天師)가 음양적이며 밀교적인 힘으로 해결하는 초인으로 만들어져 있다. 만요가에서는 유우주쯔 어원으로 알타이지방 천문 사상을 반영한 것이라는 선행 연구가 있는데, 추가하여 중국의 도교, 역학의 영향으로 별이 둥근 점으로 만들어졌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말했다. 본 논문은 고대 신앙을 언급하고, “만요슈”와 향가 노래를 중심으로 고대 문헌에 보이는 별에 관해서 살펴보는 것이다.
In the past, interest in the stars in Japan was primarily about stars of the Tanabata legend. In the episode of “Nihonshoki”, although the god of the stars appears, almost nothing can be seen in Japanese mythology as well. Is it because the god of stars is depicted as evil spirit?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larify how people perceived stars and how they sang while exploring the reasons. In ancient Japan, the influence of Chinese astronomy had spread, but the sun was a symbol of the Emperor, whereas Venus was regarded as a village in China. It was recognized as a star that threatens the existence of the Emperor whose Venus symbolizes the sun, where the star attack erode the sun. Silla in the Korean Peninsula also saw the comet as a bad guy as well. In the Manyo song, pay attention to the origin of the evening sun, reflecting the astronomical thought of Central Asia Altai region, and then mention the influence of Taoism and Eastern Studies in China. This paper refers to the fundamental principle of ancient faith, considering the stars that can be seen in ancient literature, centered on “Manyoshu” and “Hyanga”.
かつてより日本での星に対する関心はおもに七夕伝説の織姫星・牽牛星くらいでほかは疎遠であった。『日本書紀』には國譲りのエピソードに星の神が登場しているのに日本神話にも殆んど見られない。それは星の神が悪神として描かれているからだろうか。その理由を模索しながら人が星をどのように捉え、どのように歌ったのかを明らかにすることが本論文の目的である。 古代日本では中国天文の影響が及んでいたが、太陽は天皇の象徴であり、それに対して金星は中国の陰陽五行説において凶兆とされていた。その解釈には諸説があるが、そのなかで江戸後期の国学者である平田篤胤の説を追究した勝俣隆の金星説は、天津甕星・天香香背男の名義・実態・悪神の視点から綿密に考察されている。それによると金星が太陽を蝕む星蝕が太陽に象徴される天皇の存在を脅かす星として認識されていたという。朝鮮半島の新羅郷歌でもやはり彗星を凶兆と看取した。それを融天師が陰陽的および密教的な力で解決する超人として描かれている。万葉歌では夕星の語源に着目して、中央アジアアルタイ地方の天文思想を反映したものであるという先学に、追って中国の道教・易学の影響で星が丸い点で示されていることなどについて述べる。本論文は古代信仰の根本原理を言及し、『万葉集』と郷歌を中心として、古代文献に見える星に関し考察するものである。
『금석이야기집(今昔物語集)』의 이계(異界)・이향(異鄕) 관련 설화에 관한 고찰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3집 2018.01 pp.247-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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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今昔』일본부에 수록된 ‘이계’와 ‘이향’ 관련 설화를 고찰한 것이다. 고찰의 결과를 시간적・공간적 ‘경계’의 문제를 시야에 넣고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지옥관련 설화에서 가장 많은 유형은 ‘지옥소생담’으로서 지옥에서 염마왕의 심판을 받고 현세에서의 어떤 공덕에 의하여 용서를 받고 현세로 돌아오는 패턴이 대부분이다. 이계와의 경계는 시간적으로 ‘사후’가 되며, 공간적으로는 현세의 연장선에 있는 ‘수평타계관’이라 할 수 있다. 정토의 경우는 사후에 경험하는 세계라는 점에서 ‘지옥’과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정토에 대한 기술은 빈약하고, 정토방문담의 예는 극히 드물다. 오니와의 조우는 비일상적인 경험으로 밤에 출몰하는 오니와 조우한 그 공간 자체가 ‘이계’로 화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공간적으로는 오니가 사는 공간과 인간의 거주공간이 비교적 구분되는 예와 공간적 경계가 모호한 예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향관련설화는 대부분 사람들이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혹은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이향을 경험하고 있으며, 민담의 ‘이향방문담’의 모티브구성과 매우 유사하다.
This study investigated tales re;ated to ikai(different world) and ikyoo(strange world) that appear in Konjaku Monogari. The result of the study, considering the “kyookai (boundaries)” in terms of time and space, is as below. In the tales related to jigoku(hell), mostly founded is “jigoku sosei tan”, in which one receives judgement by Enma Daioo in jigoku(hell) and then returns to gense (real world) because of the virtue that he practiced before. In these tales, the boundary between ikai and gense can be said to be “sigo(after death)” in terms of time, and “suihei takai kan (the other world horizontal; an extension of gense)” in terms of space. The jodo(pure land) can be said to be the same as jigoku(hell) in that it is the world of sigo(after death), howeber, there are only a few records mentioning the details of jodo and there can be seldom found tales related to “jodo homon tan”. “Encounters with oni” have characteristics in that the space itself where one encounters with oni appering at night turns into “ikai”. When considering in point of space, there can be found two types of tales; one which is clearly divided between the living space of oni and the living space of human, and the other which has a very vague distinction of the two spaces. Lastly, in the most cases in tales of ikyo, one experiences the other world when he loses the way in the mountains or drifts by wind and waves in the ocean, which has the very similar composition of motifs found in “ikyo homon tan”.
本稿は『今昔』本朝部に収録された「異界」と「異郷」関連説話を考察したものである。考察の結果を時間的・空間的「境界」の問題を視野に入れてまとめると次のようになる。地獄関連説話で最も多い類型は「地獄蘇生譚」であり、地獄で閻魔王の審判を受けて、現世でのある功徳によって許されて、現世に戻るパターンが大半である。異界との境界は時間的に「死後」となり、空間的には現世の延長線上にある「水平他界觀」といえよう。浄土の場合は、死後に経験する世界という点で「地獄」と同じであるが、浄土に対する記述は貧弱で、浄土訪問譚らしき例は極めて珍しい。 「鬼との遭遇」は夜に出没する鬼と遭遇したその空間自体が「異界」と化すという点が特徴である。空間的からいうと、鬼が住む空間と人間の居住空間が比較的区分される例と空間的な境界が曖昧な例がある。最後に異郷関連説話は多くの場合、人が山の中で道を失い、或いは海で風浪にもまれて漂流して異郷を経験している。昔話の「異郷訪問譚」のモチーフの構成と非常に類似している。
동아시아 세계의 화이(華夷)의 관련 양상 ― 오삼계(吳三桂)를 중심으로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3집 2018.01 pp.271-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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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동아시아는 명 왕조의 붕괴로 중화세계가 소멸한 가운데 모두가 자신의 풍습(態)을 강조하는 자기주장의 각축장처럼 변해 있었다. 이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했다. 일본에서도 정성공 부자가 반청 세력을 이끌면서 명청 교체기를 다룬 다양한 작품이 등장해 인기를 끌었다. 그 중에서도 극작가인 지카마쓰의 『고쿠센야캇센』이 주목을 받았다.『고쿠센야캇센』에서는, 순수한 일본인보다 와토나이(和藤內)라는 중국인과 일본인의 혼종적 성격의 인물에 주목하면서 중국을 무대로 봉건적 윤리 체계의 완성을 지향했다. 전통적인 중화의 부재 속에서 만주풍습(夷態)을 몰아내고 중국적인 것을 회복하자는 것이 『고쿠센야캇센』의 작품 세계이다. 작가는 만주족에 의해 촉발된 국속(國俗)의 자각을 바탕으로 『고쿠센야캇센』을 통해 봉건적 윤리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이른바 중화 상실의 시대에 이민족이 유교적 중화 질서를 강조한 것으로 이질적인 존재가 실체와 명분을 일치시키려고 한 ‘경계인(지쿠라)의 중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Up to the 17th century, various peoples’ ethnic identities couldn’t be embodied in East Asian literary works. The resistant spirit that the father of Zheng Cheonggong was hostile to Qing dynasty in Japan had a great influence upon a lot of Japanese literary works. Above all things, Japanese playwriter Chikamatsu’s works attracted public attention. Chikamatsu attempted to dramatize the restoration of the Chinese feudal ethics system in China through a character of Chinese and Japanese mixed blood named “Watonai” rather than a Japanese pure bloodline. In the 17th century East Asia, the collapse of Ming Dynasty brought about the failure of a traditional Chinese world, which resulted in the appearance of each ethnic group’s idiosyncratic custom. It can be safely assumed that Chikamatsu’s “Cokusenyagassen” managed to portray the establishment of feudal ethical consciousness by the energy of treason and fidelity.
東アジアを舞台にした十七世紀には多様な人物が登場する。日本では鄭成功の父子が反清の勢力のシンボル的な存在になることによって多様な作品が創作されるようになった。その中でも劇作家である近松の作品が注目を集めたのである。近松は『国姓爺合戦』で純粋な日本人よりは和藤內という中国人と日本人の混種的な性格の人物に注目しながら中国で中華の復元という封建的な倫理大系の完成を指向した。十七世紀の東アジアは明王朝の崩壊で中華世界が消滅し、各民族の自らの風俗を強調する競演の場になっていたのである。伝統的な中華の不在の中で夷態を追い出し、新たに中国的なものを回復させようとしたのが『国姓爺合戦』の作品世界である。『国姓爺合戦』で近松が指向したのは混種性に基づいた「反」と「忠」という新しい変革のエネルギの創出と封建的な倫理意識の構築といえよう。
동파체(東坡体)와 우소지(嘘字)의 문자변형・배열방식 비교 ― 글자 개수별 조합을 중심으로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3집 2018.01 pp.295-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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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 이상의 글자를 새로 조합하여 세상에는 없는 가짜 한자를 만든다는 점에서는 중국의 한자문자유희인 동파체(東坡体)와 일본의 한자문자유희인 우소지(嘘字, 또는 譃字)는 서로 같지만, 조합되는 글자의 개수에 따라 문자변형 및 배열방식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인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일본의 우소지에서 보이는 문자변형 및 배열방식의 특징을 중국 동파체와의 비교를 통하여 살펴보았는데, 특히 조합되는 글자의 개수가 늘어남에 따라 어떠한 변형과 배열이 이루어지는지에 주목하였다. 왜냐하면,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의 문자유희의 전개에 대한 이해는 한자를 구성하는 글자개수의 증가에 따라 발생하는 변화에 대한 이해로 연결되는 측면이 있으며 중국 창작한자와 일본국자간의 방식상의 상이점에 대한 이해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동파체의 두 글자 조합에서 보이는 세 가지의 문자변형방식(부분변형재독, 부분교체생략, 띄우고 끼워 넣기)과, 우소지의 두 글자 조합에서 보이는 한 가지 문자변형방식(좌우대칭반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세 글자 이상 조합에서 보이는 문자배열방식의 경우, 가운데 글자를 감싸듯이 둘러싸는 우소지 특유의 문자배열방식의 특징을 알 수 있었다. 동파체와 우소지에서 보이는 문자변형 및 배열방식의 이러한 특징은, 획수가 많은 고자나 이체자, 부적 글자, 또는 현대중국의 창작한자 및 현대일본의 문자 수수께끼 등에서도 또한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본 고찰의 필요성이 인정된다 하겠다.
In this paper, I tried comparing and examining the method of character deformation and arrangment of Tungp‘o’s characters play and Usoji’s Chinese character play. First, in case of the method of character deformation of Tungp‘o’s characters play, I have found that partial deformation of letters and rereading, partial abbreviation of combined letters and replacement of letter, and divide the letters into two to create a space and put new spelling into the space. Next, in case of the method of character arrangement, I have found to surrounding the middle letter by othere letters in Usoji. And it is very interesting to stack letters vertically stacked like a tower. But I couldn’t it’s some regularity from Usoji.
本稿では中国の東坡体と日本の嘘字に見える文字変形および文字配列方式の特徴を二つの文字の組み合わせの場合や、三つ以上の文字の組み合わせの場合の二ケースに分けて比較検討してみた。 まず、文字変形方式の場合、東坡体からは文字の部分的な変形や再読、組み合わさった文字の一部省略や取り換え、あるいは、文字を割って空間を作り、その空間に別の文字を挟む方法などが確認できた。また、嘘字からは、組み合わさった二つの文字のうち、左の文字を右の方に反転させ、二つの文字を向き合わせて意味を表す方法が確認できた。 次に、文字配列方式の場合、基本的には漢字の造字パターンに従うものの、真ん中の文字を囲む方法がとくに嘘字に発達していることが分かった。字を塔のように縦に積み上げる嘘字の方法における規則性は確認できなかったが、現代中国の創作漢字や護符からは反復の規則性が確認できた。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3집 2018.01 pp.317-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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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일본 근세기의 에도막부가 유일하게 정식 국교를 맺은 나라로 양국은 활발한 교류를 이루었다. 조선의 문물은 일본에 전파되었으며, 이를 접한 근세 문인들은 자신의 수필집에 이에 대한 고증내용을 기술하게 된다. 고증수필집에 기록된 조선관련 문물은 조선의 물건(조선의 먹, 대모갑 비녀, 신발 등), 문자(비석에 ‘나무아미타불’ 한글표기 등), 조선본(『징비록』,『진법』,『표해록』등), 조선인(나가사키에 온 조선인, 이매계, 박사부 등)이 있다. 또한 이와 같은 일본 문인들 사이에서 조선의 상평통보, 호랑이 그림, 조선통신사 행렬도에 대한 지적 교류가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조선에서 건너간 먹의 모양, 조선 신발의 밑바닥 모양 등에 관한 조선 측 자료는 찾아보기 힘든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근세중후기의 고증수필 속 조선 관련 기사는 그들이 어떠한 조선 문물을 접했는지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조선 문물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Joseon was a country which had formal diplomatic relations with the Edo shogunate. Joseon and Edo had a active cultural exchanges. Japanese literatians of the 17th and 8th centuries interested in Joseon cultures and wrote in what they thought about it. Joseon articles in the research essay of the early modern japan have not been attracting much attention in studying Japanese modern literature. The articles related to Joseon in the research essay are Joseon goods(ink stick, tortoiseshell, shoes etc), Joseon books(『Jingbirok(懲毖錄)』『Jinbeob(陣法)』『pyohaelog(漂海錄)』 etc), Joseon characters (such as Hangul notation of “Namiamidabu” engraved on a stone monument), Joseon person(the person who came to buy Japanese books in Nagasak and Park sa-bu, Lee Me-gae etc). Among these the characteristics of ink stick form and the characteristics of Joseon shoes sole are are very important materials in the study of Joseon culture and customs. It should also be noted that there was an intellectual exchange about the Joseon’s money ‘Sangpyeongtongbo(常平通寶)’and the paintings of the tiger etc.
朝鮮は江戸幕府と正式な国交を結んだ国で、両国の間には活発な文化交流が行われた。17・8世紀の日本の文人たちは、朝鮮の文物に興味を持ち、それについて考証した内容を随筆に記した。このような考証随筆にみられる朝鮮関連の記事は、日本の近世文学と朝鮮との関わりを研究する上で、あまり注目されてこなかった領域であった。考証随筆に記されている朝鮮に関する記事は、朝鮮の物(朝鮮の墨、朝鮮鼈甲、朝鮮沓など)、朝鮮の文字(石碑に刻まれている「南無阿弥陀仏」のハングル表記など)、朝鮮本(『懲毖錄』『陣法』『漂海錄』)、朝鮮人(長崎に日本の本を買いに来た朝鮮人、朴射夫、李梅溪など)に分類できる。この中には、朝鮮から渡って墨の形態上の特徴、朝鮮沓の裏側の特徴などは、朝鮮の文化・風俗の研究においても非常に重要な資料であると言える。また、日本の文人の間では、朝鮮の常平通寶、虎の絵、朝鮮通信使行列図なのをめぐる知的交流が行われたことも注目すべきである。 このような近世中後期の考証随筆にみられる朝鮮関連記事は、彼らがどのような朝鮮の文物に接したのかだけでなく、彼らの目を通して朝鮮の文物を考える上でも重要な価値を持つ資料であると言える。
기쿠치 칸(菊池寛)의 <아버지 돌아오다(父帰る)> 번안 공연에 나타난 특징과 연극사적 맥락에 관한 연구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3집 2018.01 pp.335-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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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쿠치 칸의 <아버지 돌아오다>는 1920년대에 이미 한국(조선)에 유입되어 공연되기 시작했다. 애초에는 <아버지 돌아오다>가 교육(수업) 텍스트로 선정되었지만, 이내 공연 대본으로 변모하여 연극으로 제작되었고, 지방 순회공연을 통해 부산과 대구 등지에 알려지기에 이르렀다. 이후, <아버지 돌아오다>는 1927년 취성좌에 의해 ‘신극회’ 공연 레퍼토리로 선정되었고, 취성좌의 후신 격인 조선연극사에서도 공연 예제로 선택되었다. 193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당시의 대표 극단 격인 태양극장과 동양극장이 이 작품을 주요 레퍼토리로 다루었고, 동양극장의 후신 격인 아랑은 1940년대 공연작으로 선택한 바 있다. 이러한 공연 수용사적 맥락은 일정한 연맥을 형성하면서, 이 작품의 인지도를 조선 전역에 확산시켰다. 실제로 일제 강점기 조선의 극단은 <아버지 돌아오다>를 다양한 방식으로 공연하였으며, 이로 인해 이 작품은 일본 작품의 한국 공연에서 주요한 이정표를 남기곤 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아버지 돌아오다>의 공연사적 흐름을 조사하면서, 아울러 당시 공연이 가진 특성과 의의를 살펴보고자 했다.
Father Return which was written by Kikuchi Kan, has already flown into Korea (Korea) in the 1920s and began to perform. In the first place, Father Return was selected as an education(class) text(script), but it was transformed into a play script soon and was made into a play, and it became known in Busan and Daegu through a local touring performance. After that, Father Return was selected as a repertoire of new theater performances by Chiseongjwa in 1927 and was selected as a performance repertoire in Choseonyeongeuksa as the successor of Chwiseongjwa. In the mid 1930s, Taeyanggeukjang and Dongyang Theater which were the representative theaters of the time, treated Father Return as a major repertoire, and the followers of the Dongyang Theater, Arang has chosen Father Return as a 1940s performance. The context of this performance acceptance history spread the recognition of this work throughout the Choseon area while forming a certain flow. In fact, Korean(Choseon) theater of the colonial period played the Father Return in various ways, and this work by Kikuchi Kan left a major milestone in the history of Korean performance of Japanese works.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flow of performances of Father Return. In addition, this study examined the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of Korean performanc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菊池寬の<父帰る>は、1920年代には既に韓国(朝鮮)に流入して公演し始めた。そもそもは、<父帰る>教育(授業)のテキストに選ばれたが、通常の公演の台本に変貌して演劇で製作され、地方巡回公演を通じて、釜山と大邱などに知られているに至った。以降、<父帰る>は1927年の聚星座で新グクフェ公演レパートリーに選ばれ、聚星座の後身格朝鮮演劇舍も公演レパートリーに選ばれた。1930年代半ばに入り、当時の代表極端格太陽劇場と東洋劇場が<父帰る>を主なレパートリーで公演し、東洋劇場の後身格阿娘が1940年代共演作として選択した。これらの公演収容私的な文脈は、一定の流れを形成しながら、この作品の認知度を朝鮮全域に拡散させた。実際に植民地時代の朝鮮の劇団は<父帰る>をさまざまな方法で公演し、これにより、菊池寬のこの作品は、日本の作品の国内公演で主要なマイルストーンを打ち立てた。本研究では、このような<父帰る>の公演私的流れを調査しながら、併せて当時の公演が持つ特性と意義を探るた。
1970년대라는 시대의 투영과 ‘악녀’ ― 아리요시 사와코(有吉佐和子)의 『악녀에 대해서(悪女について)』를 중심으로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3집 2018.01 pp.36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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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78년에 발표된 아리요시 사와코(有吉佐和子)의 소설 『악녀에 대해서(悪女について)』를 중심으로 주인공인 스즈키 기미코(鈴木君子)라는 인물이 시대를 반영하여 조형되었다는 점, 그리고 ‘악녀’라고 사회에서 치부하는 여성에 대해 다각적인 시점을 제시함으로서 이 작품이 그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다는 점을 논한 것이다. 첫 번째로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요코미조 마사시(横溝正史)를 중심으로 한 환상 추리소설 붐이 『악녀에 대해서』의 스토리 전개 방법과 인물조형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논하였다. 두 번째로는 패전 후 혼란 속에서 하층에서 상류층으로 올라가고자 꿈을 꾸는 여성이 그 시대와 사회 속에서 성(聖)과 속(俗)의 이중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고찰하였다. 마지막으로는 이 작품이 우먼 리브 운동의 중요한 쟁점이었던 여성의 성의 해방과 낙태와 중절의 권리, 모성애의 문제를 스즈키 기미코라는 인물조형을 통해서 드러냄으로서 남성중심사회에 대한 상대적인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고찰하였다.
This writing centered on Ariyoshi Sawako’s novel Regarding a Wicked Woman(『悪女について』) published in 1970, and argued that the heroine character called Suzuki Kimiko(鈴木君子) reflected the times and was modeled, and suggested multilateral points as to a woman called ‘a wicked woman’ in the society and cast an issue over it. First, we argued that the boom of the fantasy mystery novel centered on Yokomizo Masashi(横溝正史) after the middle of 1970s had an effect on the story development method and character modeling of Regarding a Wicked Woman. Second, we studied that a woman named Suzuki Kimiko who dreamed to rise from the bottom class to the high class in the confusion after the defeat of war was forced to have duplicity of the sacred and the worldly. Finally, we reviewed the point that it revealed woman’s sex liberation and rights of abortion and artificial abortion which was an important issue of woman liberation drive then, matter of mother love through character modeling called Suzuki Kimiko, and presented a relative vision against a male-dominated society.
本稿では1978年に発表された有吉佐和子の小説『悪女について』を中心に主人公鈴木君子という人物が時代を反映して造型された点、そして「悪女」と社会で扱われている女性について多面性を与えることでそれに関する問題を提起した点について論じた。 初めは1970年代中頃から横溝正史を中心にした幻想的な推理小説ブームが『悪女について』のストーリーの展開方法と人物造型に影響を及ぼしたことを論じた。 二番目は戦後の混乱の中で下層から上流界に這上がろうとした女性が夢を叶うために聖と俗という二重性を備えるしかなかったことを考察した。 最後に『悪女について』という作品が当時ウーマンリブの重要な争点であった女性の性の解放と中絶の権利、母性愛の問題を鈴木君子という人物造型を通して浮き彫りにすることで男性中心社会に関する相対的な視点を提示していることについて考察した。
相互文化と日本語教育 ― 言語文化学習につながる教室活動の実践分析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3집 2018.01 pp.385-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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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언어능력은 물론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가치관의 차이를 극복하고 원활한 교섭이 가능한 언어문화교육으로서 상호문화적 관점에서 교육실천 방안을 제안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Firth&Wager(1997) 등이 학습자 개인의 인지발달만을 중시해 왔던 제2언어습득연구를 비판하면서 이후, 이문화간 커뮤니케이션 뿐만 아니라 동적 커뮤니티 속에서의 언어사용과 상황에 따른 대응능력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시대의 상황에 맞는 교육적 변화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지만 상호문화를 실제 학습활동으로의 실천과 학습방안에 관해서는 명시되지 못한 실정이다. 본 연구에서는, 다언어사회 커뮤니티 속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육성을 목표로 교실수업에서의 활동을 통한 교육실천을 분석함으로써 언어문화교육의 방향과 일본어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에 관하여 논한 것이다. 상호문화교육의 실천에 관해서는, 일본어교육을 위한 언어능력을 정의하고 한일어번역을 통한 상호언어의 차이를 이해하는 개별 활동과 상호문화이해를 통한 문화콘텐츠를 개발하는 그룹 활동으로 상호문화 커뮤니케이션능력을 양성하는 방안을 고찰했다. 또한, 언어문화교육의 방향에 관해서는, 언어배경・문화이해에서 수용으로의 프로세스, 언어교육과 한일문화콘텐츠의 연계, 한일문화권 콘텐츠 기획사례를 통한 교육으로의 활용을 고찰했다. 더불어, 한일 문화융합을 목표로 한 문화콘텐츠 교수・학습에 관하여 제안하고, 발전적인 외국어교육의 방향을 고찰했다.
It has been argued that language and culture are independent. They have their own characteristics respectively. Since Firth&Wager(1997) criticized the cognitive development approach which look emphasis on the cognitive development of the students, a new approach has focused on the dynamic community in which inter-cultural communication and context dependent communicative competence should be utilized. This study is trying to suggest some useful proposals in the field of language teaching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cross-cultural communication. As for the past Japanese language teaching in Korea in general, it is pointed out that the teaching has been linguistically over-emphasized, neglecting the importance of cultural understanding in verbal/nonverbal behaviour between/Japanese and Korean, It is recommended that the focus of the teaching should be moved to the student-oriented, the open opportunity class-experienced-oriented, the out-of-the textbook-oriented. It has been proposed that this new approach contributes to the mutual understanding between Japanese and Korean teaching Japanese more effectively.
多文化言語社会となった今日、外国語教育では母語話者のような流暢さ及び文化の同化が暗黙的に強調された既存の教育だけでは充分ではないと指摘されていた。このような限界を乗り越える一環として、1990年代後半から、Firth&Wager(1997)などによって、個々の認知発達のみを重視する第二言語習得研究が批判されることを皮切りに、動的なコミュニティー中での言語使用と状況の対応力などが叫ばれるようになった。このように、社会の変化に応えられる教育の変化として、異文化間コミュニケーション教育が活性化されたが、文化を学習活動でどのように活かせるか、学習活動の実践に関する具体的な方案とその中での学びについてはまだ明らかにされていない。 本研究では、多文化言語社会のコミュニティーでのコミュニケーション能力の育成に焦点をあて、相互文化を理解しながら協力し課題解決に向けて、リーダーシップを発揮する力を育んでいくという教育実践を分析することで、言語文化教育の方向と日本語教育の新たな可能性について論じた。相互文化教育の実践に関しては、多文化言語社会に求められる言語能力を定義した上で、韓日語翻訳を通して相互言語文化の違いを理解する個別活動と、それに基づき、相互文化理解による文化コンテンツを開発するグループ活動を行い、相互文化コミュニケーション能力を養うことを、言語文化教育の方向に関しては、言語背景・文化理解から融合へのプロセス、言語教育と韓日文化コンテンツの連携、文化融合を目指した文化コンテンツの授業モデルの提案を考察した。その上で、相互文化的観点からの外国語教育の方向を提案した。
日本語の条件表現における中間言語に関する研究 ― 学習者のユニット形成と学習レベルとの関連性について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3집 2018.01 pp.409-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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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레벨이 다른 일본어학습자의 조건형식 「たら」, 「と」, 「ば」의 습득과정에 나타나는 중간언어의 양상에 대해 해당 형식의 전후에 위치하는 항목과의 접속에 의해 형성되는 유니트를 중심으로 분석한 것이다.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본 연구의 학습자들의 조건형식의 습득은 「たら」를 축으로 이루어진다. 「たら」는 3개의 조건형식 중에서 가장 빈번히 사용되며 전후에 다양한 형식의 문법항목과 접속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학습자들에게 있어 「たら」는 가장 범용성이 높은 조건형식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다. (2) 조건형식에는 특정한 형식과 품사와 빈번히 접속하여 사용하는 경향이 보인다. 이번 분석에 의해 밝혀진 유니트로는 「ナ형용사+だったら(でしたら)」,「명사+だと(ですと)」,「ある+ば」,「ば+いい」,「イ형용사+と(특히「ない+と)」등이 있다. (3) 이와 같은 유니트 형성의 양상은 학습자의 레벨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조건표현 유니트는 학습초기부터 보이고 학습중기에 가장 많이 사용되며, 학습후기에는 다소 감소되는 공통점이 보인다. (4) 일단 형성된 유니트는 소멸하지 않고 학습레벨의 상승에도 그대로 유지되거나 유사한 유니트로 변화・분화하는 등 그 모습이 다양하다.
The study analyzed the common points and differences in the level of the unit seen in the process of learning the condition expressions. The following is the summary of the points clarified by this study. From the above analysis, the following points have been clarified : (1)The acquisition of the learner's condition expressions in the study is the axis of study. “tara” is the most commonly used in three conditional formats, and is connected to the various forms of grammar in the form of a variety of forms. In this sense, it is possible for learners to be recognized as the most versatile type of condition expressions. (2)The condition tends to be used frequently in conjunction with specific forms and parts of speech. Examples of these studies include “na-adj+dattara(deshitara)”, “noun+ dato(desuto)”, “aru+ba”, “ba+ii”, and “i-adj.+to(nai+to)”. (3)The state of the unit formation is different depending on the level of the learner. The unit of condition expressions in terms of learning were commonly used in the early stages of learning, and was commonly used in the middle of the study period in the latter half of the study period, and it was common in the latter half of the study. (4)The unit formed once does not disappear, and varies from one kind to the same shape, even if the level is changed and the same shape is changed.
本研究は、レベルの異なる日本語学習者の条件形式「たら」、「と」、「ば」の習得過程に現われる中間言語の様相について、前後に位置する項目との接続によって形成されるユニットを中心に分析したものである。分析の結果は次の通りである。 (1)学習者の場合の条件形式の習得は、「たら」がその軸となっている。「たら」は3つの条件形式の中で最も多く使用されており、前後に多様な形式の文法項目と接続されている。その意味で学習者にとって「たら」は最も汎用性の高い条件形式として認識されている可能性がある。 (2)条件形式には特定の形式や品詞と頻繁に接続して使用する傾向が見られる。本研究の分析によって明らかになったユニットとしては、「ナ形容詞+だったら(でしたら)」、「名詞+だと(ですと)」、「ある+ば」、「ば+いい」、「イ形容詞+と(とりわけ「ない+と)」などが挙げられる。 (3)このようなユニットはの形成の様子は学習者のレベルによって異なる。条件表現のユニットは学習初期から見られ、学習中期(本研究では中上級)に最も多く使用され、学習後期には少し減少するという点で共通してい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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