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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44집 2015.01 pp.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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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불교미술에는 타자를 표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타자」란 자기와 구별되는 외부자를 말한다. 운강석굴(雲岡石窟) 조상(造像)에 나타나 있는 호복인물상(胡服人物像)은 시주(施主)가 낙원으로서의 이계(異界)에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 중국 당대(唐代)의 사리(舎利) 용기에 보이는 이국적 습속의 도상은 내용물이 부처의 사리가 맞음을 보증함과 동시에, 여러 나라들이 다 같이 동등하게 부처의 사리를 구할 수 있다고 하는 불교의 관용성도 보여준다. 호류지(法隆寺) 오중탑의 이국상(異国像)은 국왕이 여러 나라의 사람들을 받아들였음을 보여줌으로써 국왕이 보살왕임을 상징한다. 그런 까닭에 이국도상은 「덕치의 상징」으로도 기능했다.
We can often find figures in the clothing of the other race in the Buddhist arts of east Asia. “Others” are people distinguished from oneself. Figures in the clothing of the Western Regions or hufu at Yungang Cave function for the commissioners to exist in a paradice. Figures in the exotic clothing on the relics container of Tang dynasty ensure that the relics inside are genuine, and represent that all the countries can have the relics in their hand. Therefore the figures show tolerance of the Buddhism. The figures in the clothing of the other race at the stupa of Horyuji show that the king accepted people from other coutries, and show that the King is the Boddhisatva. Thus the such figures symbolize that the country is settled by virtue of the King.
東アジアの仏教美術には、他者を表現する場合がしばしばある。「他者」とは、自己と区別される外部者である。雲岡石窟の造像にあらわされる胡服人物像は、施主が楽園としての異界にいることを象徴している。中国唐代の舎利容器に見える異国習俗の図像は、内容物が正しい仏舎利であることを保証するとともに、諸国が等しく仏舎利を手にす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仏教の寛容性をも示している。法隆寺五重塔の異国像は、国王が諸国人を受け入れたことを表し、国王が菩薩王であることを象徴する。異国図像は、それゆえ「徳治の象徴」としても機能した。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44집 2015.01 pp.2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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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고는 8세기 신라의 대일외교 성격과 전개, 그리고 신라인의 대일본·발해인식에 대하여 살펴본 것이다. 日本書紀에서 神功皇后의 신라 정벌 이래 신라와 고구려, 백제가 日本國의 蕃國이 되었다고 전하지만, 그대로 믿기 어렵다. 701년 大寶令 반포 이후에 일본은 唐을 隣國, 신라를 蕃國이라고 규정하였고, 이러면서 동시에 신라가 일본의 蕃國이 된 淵源을 神功皇后의 新羅征伐에서 附會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때 신라는 日本을 唐과 같은 宗主國으로 섬겨야 할 大國이 아니라 交隣의 대상이나 또는 잠재적인 敵國으로 인식하였다. 8세기 전반에 日本은 新羅 使臣을 蕃國 使臣의 禮에 따라 대우하였고, 신라는 이러한 일본의 태도에 대하여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당시 신라가 일본의 요구를 수용한 것은 그들이 일본 중심의 世界秩序와 天下觀을 받아들여 그들의 蕃國이라고 스스로 自認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일본의 침략을 우려하여 취한 외교적인 제스처(Gesture)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고 보기 어렵다. 730년대 초반에 신라인들은 自國을 중국과 대등한 유교문화를 발전시킨 君子國이라고 자부하였고, 반면에 日本과 渤海를 문화적으로 낙후된 夷狄國으로 貶下하여 차별하였다. 이때 신라인은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수용하면서도 自國은 중국과 동등한 유교문화를 발전시킨 君子國이라고 자부하는 한편, 일본과 발해는 신라보다 문화적으로 낙후된 야만적인 夷狄國으로 貶下하여 나름 대내외적으로 자존감을 드러내려 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신라는 730년대 이후에 일본을 夷狄으로 인식하는 對日本觀을 바탕으로 일본에 파견한 自國 使臣들을 번국 사신의 예로서 대우하는 일본측의 태도에 대하여 강력하게 항의하였고, 이에 대하여 일본은 大寶令의 규정에 따라 신라가 蕃國의 예를 준수하기를 고집하였기 때문에 두 나라 사이에 외교적 분쟁이 잦았다.
This paper examined the character and process of Silla’s diplomacy toward Japan, and Silla people’s perception of Japan and Balhae. Although Nihonsyoki(日本書紀) tells us that Silla, Goguryeo and Baekje became the savage country(蕃國) of Japan after Empress Jinggu(神功皇后)’s conquest of Silla, it’s hard to believe it as it is. After the promulgation of Taihoryo(大寶令) in 701, Japan stipulated Tang Dynasty as a neighboring country(隣國) and Silla as a savage country. Simultaneously, they seemed to make an excessively forced analogy that the legend that Empress Jinggu conquered Silla was an origin for Japan’s decision to define Silla a savage country. At this time, Silla perceived Japan as an object of good-neighbor diplomacy(交隣) or a potential enemy, not as a big country like Tang that served with a suzerain state. In the early 8th century, Japan treated Silla’s envoys as envoys of the savage country and this treatment did not meet with big opposition from Silla. But this acceptance from Silla was not because Silla acepted the Japanese world order and the Japanese view of the world or admitted itself as a savage country of Japan. It is hard to say that Silla’s acception was more than a diplomatic gesture from concern about Japan’s invasion. In the early 730s Silla people were self-confident of their country and regarded themselves as people of a country that was a noble-man country(君子國) that developed Confucian culture comparable to that of China. On the other hand, Silla derogated and discriminated Japan and Balhae an uncivilized barbarians country(夷狄國) that fell behind culturally. So it can seem that Silla people tried to show off the internal and external self-regard of a nation through this. After 730s Silla lodged a strong protest against Japan’s treatment that treats its envoys as savage country’s envoys based on its view of Japan that regarded Japan as a barbaric outlander. Since Japan adhered to their prior decision to treat Silla as a savage country according to the rules of Taihoryo, these two countries conflicted each other frequently.
本論考は、8世紀新羅の対日外交の性格と展開、そして新羅人の大日本·渤海認識について考察したものである. 日本書紀で神功皇后の新羅征伐以来、新羅と高句麗、百済が日本國の蕃國になったと伝えるが、そのまま信じるは難しい. 701年大寶令頒布後に、日本は唐を隣國、新羅を蕃國と規定しており、こうしながら、同時に新羅が日本の蕃國になった淵源を神功皇后の新羅征伐で附會たものと見られる. この時、新羅は日本を唐と同じ宗主國に仕えるべき大國ではなく、交隣の対象又は潜在的な敵國に認識した. 8世紀前半に日本は新羅使臣を蕃國使臣の禮に応じて待遇し、新羅はこのような日本の態度について大きく異議を提起しなかった. 当時新羅が日本の要求を受け入れたのは、彼らが日本中心の世界秩序と天下觀を受け入れ、彼らの蕃國だと自ら自認したためではなく、日本の侵略を恐れて取った外交的なジェスチャー(Gesture)以上の意味を持った見るのは難しい. 730年代前半に新羅人は自國を中国と対等な儒教文化を発達させた君子國だと自負しており、一方、日本と渤海を文化的に遅れた夷狄國に貶下で差別した. この時、新羅人は、中国主導の世界秩序と天下觀を収容しながらも、自國は、中国と同等の儒教文化を発達させた君子國と自負している一方で、日本と渤海は新羅より文化的に遅れた野蛮な夷狄國に貶下で内外に自尊心を表わそうしていたものと見ることができる. 新羅は730年代以降に日本を夷狄として認識する對日本觀をもとに、日本に派遣した自國使臣を蕃國使臣の禮として扱う日本側の態度について強く抗議し、これに対し日本は、大寶令の規定に基づいて新羅が蕃國の禮を遵守することを頑固たので、二国間の外交的紛争が多かった.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44집 2015.01 pp.5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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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웅을 형상화한 한시의 분석을 통해 한시 속에 형상화된 영웅이 작자의 희 망과 기원의 표상이라는 것과 그 표상은 작자가 처한 시대 상황과 의식의 변화에 따 라 변한다는 것을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영웅이란 그를 영웅으로 인식하고자 하는 대중들의 희망과 기원이 상징해 낸 觀念의 形狀으로,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무엇을 이루었느냐 하는 것은 영웅이 되기 위한 절 대 조건이 아니다. 그 보다 그의 삶 어떤 부분과 그가 이루어 낸 어떤 것이 대중들의 희망과 기원에 부합하는가가 중요하다. 영웅으로 간주되는 인물의 삶은 그가 영웅이 되는 순간 재구성된다. 대중들의 꿈을 표상하는 영웅은 만들어진 이후 많은 역할을 한다. 대중의 기원과 희 망을 표상하는 단계에서부터 자신을 창조한 대중을 선도하는 단계까지 영웅의 역할 은 다양하다. 다양한 영웅의 역할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대중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 는 기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대중들은 영웅을 통해 자신들의 희망과 기원을 표상 하고 꿈을 구체화한다. 조선조 한시 속에 형상화된 다기한 영웅의 다양한 의미가 바 로 이 지점에 있다고 생각된다.
This paper is, through analyses of Sino-Korean poems visualizing heros, to examine that heros visualized in Sino-Korean poems were symbols of poets’ hopes and wishes and that the symbols were changing in accordance with poets’ temporal situations and changes of their consciousness. A hero is a symbol of notion which hopes and wishes of people who want to perceive him as a hero symbolize; and what kind of life to live and what to achieve are not necessary conditions to be a hero. Rather, it is important whether parts of his life and something he achieved match with people’s hopes and wishes. A life of a person whom people consider as a hero is reconstructed when he becomes a hero. A hero representing people’s dreams diversely functions after he is made a hero. From a stage in which a hero represents people’s wishes and hopes to another stage in which the hero leads people who make him hero, the functions of a hero vary. The most basic among various functions of a hero is to be a hopeful object providing dream and wishes to people. People visualize their hopes and wishes through heros and definitize their dreams. Diverse meanings of various heros visualized in Sino-Korean poems during Joseon dynasty can be found at this point.
本稿では、英雄を形象化した漢詩の分析を通し、漢詩の中に形象化された英雄が作者の願望を祈願の表象であることとその表象は作者の置かれた時代の状況と意識の変化により変わるものであることを探ってみた。英雄は彼を英雄として認識しようとする大衆の願望と祈願が象徴する観念の形状であって、彼が如何なる人生を送り何を成したかは英雄になるための絶対条件ではなかった。それよりは彼の人生のどのような部分と彼が出した成果のどのような部分が大衆の願望と祈願に符合するかが重要である。英雄に見做される人物の人生は彼が英雄となる瞬間再構成される。英雄は大衆の夢を表象するものとして造られた後、多くの役割を担われる。大衆の祈願と願望を表象する段階から自身を創造した大衆を先導する段階に至るまで英雄の役割は実に様々である。そのうち最も基本的な役割は大衆に夢と希望を与える祈願の対象になることである。大衆は英雄を通して自分たちの願望と祈願を表象して夢を具体化する。朝鮮王朝時代の漢詩に形象化された多岐な英雄の多様な意味が現にこの点にあると言える。
天皇과 日本의 교착과 분열 - 초국가주의자 4인의 <현실> <비전> <천황>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44집 2015.01 pp.79-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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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오카와 슈메이, 기타 잇키, 곤도 세이쿄, 미노다 무네키의 현실인식, 이 현실인식과 관계된 비전, 이 비전에 내재된 천황의 위상을 검토하는 것이다. 오카와, 기타, 곤도는 메이지유신 그 자체를 제외한 메이지유신 이후의 일련의 일본의 정치사에 부정적이다. 이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제각각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천황이라는 존재가 부정적인 현실과 장밋빛 미래를 동시에 체현하고 있으며, 그들의 사상에 내재되어 있다. 예외적으로 미노다는 메이지유신 및 메이지 헌법 체제하의 천황・천황제의 절대성을 한층 고양시켜 천황제의 종교화에 매진했다. 즉 앞의 3인이 일본의 과제를 적출한 후 급진적 혁명론과 동양의 정치이념을 빌려서 일본의 개조를 추진하려 했다면, 미노다는 개조 자체와 방법에 내재된 혁명론적인 사고와 외래적인 사고를 비판한다. 하지만 방향은 달라도 이 4명이 모두 1930년대의 일련의 쿠데타와 테러의 주인공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또한 혁명과 개조의 결과가 일본을 초월한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들의 사상을 모두 우익사상의 범주에 포함시켜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In this paper I want to investigate Ookawa Syumei, Kita Ikki, Kondo Seikyo, and Minoda Muneki’s ultra-nationalism. Ookawa, Kita, and Kondo do not ciritisize Meiji Restoration itself, but political history after Meiji Restoration. They propose the alternatives to solute these problems. But in common Tenno is inherent in their thoughts, embodying negative reality and brilliant future. Of course, there is a exception. Minoda Muneki boosts Meiji Restoration and Tenno(and Tenno System) under Meiji Constitution System. and makes Tenno System absolute and religious. That is to say, after Ookawa, Kita, and Kondo encountered Japanese dilemas, they had chosen radical revolution and pushed forward Japanese reformation. But Minoda had criticized revolutionary ideas and outer thoughts, and the will itself to reformation. As a result, there are differences among them. However, they were main actors in the 1930s’s linear incidents. Further they had not pursued the universality beyond Japan. If we consider the limits, we ought to name them all right thinkers.
この原稿は、四人の超国家主義者大川周明, 北一輝, 権藤成卿、蓑田胸喜の現実認識、この現実と関わるビジョン、このビジョンにおける天皇の位相を検討するものである。大川、北、権藤は明治維新そのものではなく、明治維新以後の一連の日本政治史について否定的であり、この問題を打開するために各々の解決策を提示している。しかし、共通的に、天皇という存在が、否定的な現実や薔薇色の未来を同時に体現しつつ、彼らの思想に内在している。例外的に、蓑田胸喜は明治維新や、明治憲法体制下の天皇・天皇制の絶対性を一層高めて、天皇制の絶対化や宗教化に邁進したといえる。すなわち、先の三人が日本の宿題を認識したあと、急進的な革命論や東洋の政治理念を借りて、日本の改造を進めようとしたとすれば、蓑田は、改造を行うための方法に内在している革命的な思考や外来的な思考を批判すると同時に、改造しようとする意志そのものを批判した。しかし、この四人がみんな1930年代の一連のクーデターやテロの主人公であった事実は否認てきない。それに、革命や改造の結果が、日本を超える普遍的なものではないという点からすれば、みんなが右翼思想家だとしても、それほど差し支えはないと思える。
에도초기 다이묘차(大名茶)의 특징 고찰 - 「엔슈와 오리베의 문답서」를 중심으로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44집 2015.01 pp.10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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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7세기, 에도시대의 근세평화건설시기에 장군의 다도사범(茶匠)으로 활약 한 고보리 엔슈의 차에 있어서, 센 리큐와 후루타 오리베의 정신이 어떻게 영향을 끼 쳤는지 「엔슈와 오리베의 문답서」를 통해서 고찰했다. 이 문답서에서 엔슈는 오리베 에게 다도 일반의 고도의 기법에 대해서 묻고 있으며, 오리베도 무가차(武家茶)를 보 다 번영시킬 후계자로서 엔슈를 인정하고 자세히 지도하였을 것으로 사료된다. 전국시대는 불안정한 상황이었으므로 정신성을 강조한 와비차가 필연적으로 생겼다 고 생각한다. 그러나 에도초기에는 신분과 격식을 중시한 다이묘차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다이묘차를 완성한 인물이 고보리 엔슈이다. 엔슈의 다도는 리큐차에서는 부정 되었던 히가시야마(東山)의 명물 및 왕조문화의 문학적 요소를 받아들여 다이묘차를 확립하고, 기레이사비라는 새로운 미의식을 창조했다. 이 「엔슈와 오리베의 문답서」의 고찰을 통해서 엔슈의 질문에 대한 오리베의 가르침 이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지, 후루타 오리베와 고보리 엔슈의 사제관계를 확인하고, 다이묘차의 기본양식과 데마에, 그리고 회석요리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In the early the Edo-era, when the society became peaceful, the tea ceremony got popular among the Daimyo as a method to associate with each other especially for Generas visiting Sukiya to see Daimyo. The book of 「Souhoukou- koorie-otazunegaki」 is a record file in which Mr. Enshu Kobori asked his tea ceremony teacher Mr. Oribe Furuta about the detail consideration in tea ceremony or the high technique of Oribe’s. There was a deep human trustworthy relationship between them. Oribe regards Enshu as a successor of his tea ceremony about the way of thinking, positioning and how to prevail his tea ceremony. This mamuscript examines what the teachings of Oribe emphasizes regarding Enshu’s questions. It promises to serve as a basis for understanding the 17thcentury initial Edo Daimyo-Cha’s basic style and tea utensils while confirming Oribe and Enshu’s mentor-student relationship. Oribe’s originality, the respet for Japanese classics as well as his command of Japanese tea utensil production passed on to Enshu, which became the foundation for his growth as a tea meister in Kaneitimes.
今までの日本茶道研究は主に千利休時代の侘び茶研究に集中して来た。本稿は17世紀、江戸の近世平和建設時期に第一の茶匠として活躍した小堀遠州の茶において、利休、古田織部の精神がどのように影響を与えたのかをこの「宗甫公古織へ御尋書」の中に探そうと思う。「宗甫公古織へ御尋書」では、遠州が織部に茶道一般の細かい配慮や高度の技法について尋ねている 。そこに遠州と師織部の人間的な絆の深さが窺われる。遠州が頻繁に織部を尋ねたのは、織部の日常性の中から、茶道に対する考え方、今後の茶道のあり方などを受け継ぎ、織部にしても、彼なりに展開させた大名茶をより繁栄させる後継者として遠州を認め、事細かに指導をしている。内容は茶道具の位置と置き合せ、座敷の飾り、茶点前から炭・花に対する部分、露地建築などに関する心得が説かれている。また、お客としての心得は初心になる事や道具以外はほめない事、武家茶に似合う会席料理と飾り付けや相伴者としての作法についても記している。これらの時期は遠州の20代半ばから30代半ばまでの約10年間の事であるが、その期間の教えが遠州茶道の中心であり、官僚として活動していた時期に茶道を多様に活用できる土台にしたと考えられる。千利休の茶道は一期一会とか一座建立等の精神的な部分を強調し、遁世的な茶道を志向したが、遠州の茶道は、「宗甫公古織へ御尋書」に書かれているように、武家相応の茶を志向し、現実的な茶道だといえる。
일본 역신(疫神)설화의 일고찰 - 오모노누시를 중심으로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44집 2015.01 pp.127-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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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일본에 있어서 공동체 구성원 전체의 생명을 위협하고 국가적인 위기를 야기했 던 역병은 신의 분노가 초래한 재난이라 여겨졌다. 역신에 관한 최고(最古)의 문헌 기 록인『고지키』와 『니혼쇼키』에는 스진천황(崇神天皇)대에 발생한 역병의 원인 을 오모노누시노카미(大物主神)때문이라 전한다. 역병을 일으킨 이 신의 신체(神體) 는 뱀으로 그려지고 있다. 역신이 용과 뱀으로 인식되는 것은 이들이 모든 생명의 근 원인 물의 정령이자, 땅과 물과 하늘을 자유로이 오가며, 동면과 탈피를 반복하는 죽 음과 재생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특히 고대 농경사회에 있어 물과 뇌우(雷雨)를 관장 한다는 것은 곧 농경의 풍흉과 한발, 홍수 등을 좌우하는 능력을 가졌음을 의미한다. 흉년이 들어 사람들의 영양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질병에 더 취약해지는 까닭에, 고 대의 기근과 역병의 유행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또한 홍수의 발생 역시 고대 도 시의 역병 발생과 필연적인 관계에 있는 만큼 역신은 곧 용사신의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다. 특히 양면적 속성이 뚜렷한 일본의 사신(蛇神) 오모노누시는 잘 제사하면 적절한 비 와 햇볕을 내려 풍요로운 수확을 가져다주는 농경의 수호신이 되지만, 자칫 대접을 소홀히 하면 가차 없이 천변지이(天変地異)를 일으키고 병을 유행시키는 재앙의 신이 되기도 한다. 그가 인간 처녀와의 신성한 혼인을 통해 낳은 소녀는 신화 상 일본 최초 의 천황인 진무의 황후가 되어, 천황가에 제왕의 필수 덕목인 물의 통제력을 보장한 다. 한편 이 신이 일으킨 역병 등의 재난을 잠재울 수 있는 것도 오로지 이 신의 후손 이 주관하는 제사뿐이다. 이처럼 일본의 역신은 농경의 풍흉 및 일기를 관장하는 용 사신(龍蛇神)의 여러 속성 중 거칠고 부정적인 일면을 나타내는 신이다. 그런 까닭에 용사신에게 늘 신의 후손의 탄생을 전제로 한 신혼담이 수반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신설화에도 신혼 전승이 수반되는 특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It was believed that a plague in ancient Japan that threatened the lives of the community members and caused national crisis was considered a disaster caused by the wrath of God.‘Kojiki’and Nihon Shoki,’which are the oldest extant records, said the plague occurred during the reign of Emperor Sujin and was caused by the deity named Omononusi. The divine body of the god that caused the epidemic is depicted as a snake. It is common for the god of medicine, or epidemics, to be depicted as a dragon or snake in various mythologies in Korean, Chinese, Greece-Roman, and other cultures. The Japanese recognize the gods of epidemics as dragons and snakes, because they are the spirit of the water; which is the origin of all living things. The dragons and snakes can freely move between land, water, and sky. They are symbols of death and rebirth, because they repeat the cycles of hibernation and molting. Especially in the ancient agricultural society, the gods were seen as controlling the power over whether the harvest would be rich or poor. They did this by governing water and thunderstorms, which was equivalent to having control of life or death. When there is less water, famine occurs and results in poor nutrition that makes people more vulnerable to disease. Therefore, famine and plagues were closely related. Omononusi controls the rain and sunshine. He has a distinctly ambivalent personality and when the Japanese treated the god with respect, as shown through a sacrifice, he could be the guardian of agriculture, ensuring a rich harvest with timely rain and sunshine. If neglected, he could be changed into the god of disaster, who relentlessly causes an extraordinary natural disaster and outbreaks of disease. He had a sacred marriage to a human virgin who gave birth to a girl who later became the Empress of Japan’s first emperor Jinmu. The daughter passed the magic power to control water to her husband and their descendants. Power over water is considered an essential quality for ancient kings of the Japanese imperial household to possess. In addition, the direct descendants of Jinmu can soothe the disasters, such as plagues caused by the god, by making a sacrifice. As you can see, the god of epidemics in Japan is the negative aspect of the god of dragons and snakes’ personality. The story of the god of epidemics usually includes a story of a sacred marriage.
古代日本において共同體全体の命を脅かし、国家的危機を惹き起こした疫病は神の祟りによる災いとされていた。疫神関連記事の最古の文獻である古事記と日本書紀は、崇神天皇の時代に全国的に流行った疫病を大物主神の起こしたものと記している。疫病を起こしたとされるこの神の神體は蛇であると思われているが、醫神や疫神(門神)を龍か蛇と観念しているのは韓国や中国、ギリシア・ローマ神話においても同様である。疫神が龍蛇と思われるのはこれらがすべての生命の根源である水の精霊であり、地と水と空とを自由に往来し、冬眠と脱皮を繰り返す死と再生の象徴であるためである。殊に古代の農耕社会において水や雷雨を司り、農耕の豊凶を左右する能力は、即ち人間の生死に関わる問題として重んじられていた。というのは、凶作の年には人々の栄養状態が悪くなり、免疫機能も弱まって病気にかかりやすくなるため、古代の飢饉と疫病の流行とは密接な関わりを持っているからである。両面的な属性の著しい古代日本の龍蛇の神、大物主は、手厚く祭れば太陽と雨を恵み豊かな収穫をもたらす農耕の守り神になるが、万が一疎かにもてなすと、容赦なく天変地異を引き起し病を流行らせる祟り神になる。彼と人間の娘との間で生まれた少女は日本の神話上の最初の天皇の神武の后となり、天皇家に古代の帝王に欠かせない水への呪力を与える。一方、この神が引き起した疫病などの災いを治められるのも、唯一この神が人間の娘を娶って生んだ神の子が主宰する祭司だけである。このように日本の疫神は農耕の豊凶を司る龍蛇神の荒らくて否定的な一面であるだけに、龍蛇神と同じく神の子の誕生を前提とした神婚譚が伴われる。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44집 2015.01 pp.149-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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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중세 역사이야기 “増鏡 ”의 後鳥羽院에 대한 서술을 검토한다. “増鏡”는 보통 편년체로 정의되지만, 권의 내용에 따라 생각하면 “帝紀”라고 부를 수 있다. 그리고 작품 전체를 後鳥羽院 이야기 · 後嵯峨院 이야기 · 両統迭立기 ·後醍醐天皇 이야기의 네 부분으로 생각하고 역사 이야기가 시작되는 後鳥羽院 이야기의 성격을 검토했다. 後鳥羽院 이야기는 3권이다. 그것은 그가 일으킨 조큐의 난 전후에 대응하고 있다. “増鏡 ” 속 그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와카(和歌)및 귀족 문화를 중심으로 회화 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다른 기록에서 비판되고 있는 점을 의도적으로 사상(捨象)하고 있다. 또한 와카(和歌), 무사(武士), 귀족정치의 역사를 설명하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이상적인 고대의 전통을 제시하고 있다. 그가 일으킨 전쟁은 표현되어 있지 않다. 그의 의도도 전투 경과도 나타나 있지 않다. 다른 중세 문학 작품에서는 그가 군사적인 것에 관심이 높고 무사(武士)정권에 대한 불만이 강하여 스스로 싸움을 계획 한 것이 명확하게 적혀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신의 가호가 없었다는 것을 기록하고 한결같이 천황이 무사(武士)에게 패배한 부조리를 한탄한다. 그것은 일본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저자는 이 싸움에 정당성이 없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암시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도성을 떠난 後鳥羽院의 생활은 그의 와카(和歌)에 의해 서정적으로 말해진다. 後鳥羽院 이야기는 문화의 주재자로 묘사하여 비판하지 않을 수 없는 싸움에서는 모습을 감추고 도성에서 떨어진 이도(離島)에서 부활한다. 서문과 함께 읽는다면, 그의 이야기는 귀족이 권력을 잃는 과정의 시발점이다. 이것이 이 작품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이다.
In this paper I consider the narrative of the Gotoba-in in medieval history story “Masukagami”. Usually, “Masukagami” is defined as chronological, but considering the contents of the volumes, it can be referred to as “record of emperors”. And thinking the whole work with 4-parts of Gotoba-in story, GoSaga-in story, two courts period*, Godaigo story, we examined the nature of Gotoba-in story that this history story is started. Gotoba-in story has 3 volumes. It corresponds to the front and back of Jōkyū War that he has caused. The evaluation of him in “Masukagami” is positive. It is pictorially described as the chairman of the waka and aristocratic culture. Author have deliberately abstracted the point that has been criticized in another recording. In addition, it is necessary to note outlines the history of waka, samurai, aristocracy. These presented the ideal ancient traditions. He is not represented for the battle he caused. The both of his intention and the course of battle are not shown. In other medieval literary works describes that he was more interested in military things, dissatisfaction with samurai regime was strong, and he pursued the plan for the battle clearly. However, it is noted that none of the blessings of God in this work, steadily to bemoan the absurdity of that emperor was defeated by samurai. It was the first defeat on the Japanese history. The author was aware that there is no sufficient reason to this battle. However, he did not directly state it, and chose a way to imply. The life of Gotoba-in leaving capital, told in lyrical by his poetry. Gotoba-in is portrayed as president of culture, and disappeared in the battle under criticism, and resurrected in the isolated island. When read in conjunction with the preface, his story is situated on the starting point of the process of aristocracy lost power. This perception set the nature of this literary work. two courts period*-period which emperors were crowned from the two houses by turn.
この論文では中世歴史物語『増鏡』の後鳥羽院についての叙述を検討する。『増鏡』は通常編年体と定義されるが、 巻の内容によって考えると「帝紀」と呼ぶことができる。そして作品全体を後鳥羽院物語・後嵯峨院物語・両統迭立期・後醍醐天皇物語の4部構成と考えて、この歴史物語が開始される後鳥羽院物語の性格を検討した。後鳥羽院物語は3巻である。それは彼が起こした承久の乱の前後に対応している。『増鏡』の中の彼の評価は肯定的である。和歌や貴族文化の中心として絵画的に記述されている。他の記録に批判されている点を意図的に捨象している。また、和歌・武士・貴族政治の歴史を概説する点をも注目する必要がある。これらは理想的な古代の伝統を提示している。彼が起こした戦いについては表現されていない。彼の意図も戦いの経過も示されない。他の中世の文学作品では彼が軍事的なことに関心が高かったこと、武家政権に対する不満が強く、 自ら戦いを計画したことが明確に書かれている。しかし、この作品では神の加護が無かったことを記して、一途に天皇が武士に敗北したことの不条理を嘆く。それは日本歴史上初めてのことであった。作者はこの戦いに正当性がないことを意識していた。 しかし、それを直接的に記さず、 暗示する方法を選んだ。 都を離れた後鳥羽院の生活は、彼の和歌によって叙情的に語られる。 後鳥羽院物語は文化の主宰者として描かれ、批判せざるを得ない戦いでは姿を消し、都を離れた離島で復活する。 序文と併せて読むと、彼の物語は貴族が権力を失う過程の起点である。これがこの作品の性格を決定しているのだ。
이노우에 히사시(井上ひさし) 『新釋遠野物語』의 『遠野物語』 수용 양상 - ‘설화적 웃음’의 복원이라는 관점에서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44집 2015.01 pp.173-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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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이노우에 히사시의 『신석 도노 모노가타리』가 야나기타 구니오가 편찬한 『도노 모노가타리』를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참고하였는지, 그 수용 양상을 분석한 논문이다. 현재 일본사회에서 『도노 모노가타리』는 거의 성전(聖典)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노우에의 『신석 도노 모노가타리』는 『도노 모노가타리』를 패러디하여 탄생했지만, 다른 작가의 패러디 작품과 비교할 때에 매우 이색적인 문학작품이다. 이노우에가 거의 성전처럼 인식되는 야나기타의 『도노 모노가타리』에 반발하여, 의도적으로 ‘설화적 웃음’의 세계를 복원하고자 시도하였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무엇보다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도노 모노가타리』에서 『신석 도노 모노가타리』로의 패러디 과정을 분석하였다. 말하자면 『신석 도노 모노가타리』의 중요한 특징을 『도노 모노가타리』에 대한 저항 패러디에서 찾고자 하였다. 우선 『도노 모노가타리』와 『신석 도노 모노가타리』의 내용을 대조하여 분석한 결과, 『도노 모노가타리』에 수록된 총 119편의 이야기 중에서 어떤 이야기가 어떤 방식으로 『신석 도노 모노가타리』에 수용되었는지를 밝히고 표로 정리하여 제시하였다. 이어서 이노우에가 의도했던 ‘설화적 웃음’의 복원에 관해서 그 구체적인 양상을 고찰하였다. 그 과정에서 야나기타가 성 담론을 의도적으로 회피한 데 대해서, 이노우에는 외설적이고 해학적인 성적 표현을 대담하게 구사하는 수법으로 ‘설화적 웃음’의 세계를 복원하고자 하였다는 점을 주목하였다.
This paper aimed at analyzing the receptive analysis regarding how Hisashi Inoue’s <Sinsyaku Tonomonogatari> referred to <Tonomonogatari> complied by Gunio Yanagita . Inoue’s <Sinsyaku Tonomonogatari> was created by parodying <Tonomonogatari>, however it is very unusual work compared to other writers’ parody works. Because Inoue tried to restore the world of ‘tale laugh’ intentionally, by resisting to Yanagita' <Tonomonogatari>, recognized almost as the bible. This research analyzed the parody process of <Tonomonogatari> into <Sinsyaku TonoMonogatari> by keeping this point in mind above all things. First of all, as the result of analyzing the content of <Tonomonogatari> and <Sinsyaku Tonomonogatari> closely in contrast, the researcher investigated which stories among the total 119 stories in <Tonomonogatari> were included in <Sinsyaku Tono monogatari> in which way, and suggested by arranging with the table. Also, this research considered the concrete aspect of the restoration of ‘tale laugh’ which Inoue intended. In this process, this research paid attention to the point that Yanagita intentionally evaded sexual discussion, compared to Inoue, who tried to restore the world of ‘tale laugh’ with the technique of boldly making use of naughty and humorous sexual expression.
本稿は、柳田国男の『遠野物語』がどのように井上ひさしの『新釈遠野物語』に受け入れられたのか、その具体的な様相を細部にわたって分析したものである。井上ひさしの『新釈遠野物語』は、もっぱら柳田国男の『遠野物語』に述べられた話を基にして成り立った。しかしながら『新釈遠野物語』は、決して『遠野物語』からのたんなる模作でも、パロディでもない。井上ひさしは、柳田国男の『遠野物語』にかなり不満を感じていたようである。その不満とは、彼自身東北出身の作家として、「遠野」という「周辺」の事情に詳しくない(と思われた)柳田国男への不満でもあり、また柳田国男が『遠野物語』をかきとめる過程において、あまりにも綺麗な文学作品に仕上げてしまったことへの不満でもある。特に井上ひさしは、柳田国男が『遠野物語』のなかから「説話的な笑い」を欠落させてしまったことに抵抗を感じていたと見られる。ここで言う「説話的な笑い」とは、昔話が語られる場において語り手と聞き手が共に作り上げていく諧謔的な笑いである。井上ひさしは『新釈遠野物語』を著わすことによって、柳田国男が欠落させてしまった「説話的な笑い」を取り戻し、それらを再構築しようと試みたのである。これは柳田国男への一種の挑戦とも言えるであろう。本稿では、『遠野物語』と『新釈遠野物語』の文章を丹念に読み比べてみることによって、井上ひさしが再構築しようとつとめた「説話的な笑い」を細かに確認することができた。特に井上ひさしは、話に登場する男と女のあいだの性愛の場面をエロチックかつ大胆に描くことによって、「説話的な笑い」を再構築しようとしたことを明らかにした。例えば、合せて9話の短編で構成された『新釈遠野物語』の中でも、「冷し馬」、「狐つきおよね」、「狐穴」などの話にこのような特徴が目立つ。
植民地朝鮮と日本の怪談 - 日韓併合前後における「怪談」概念の変容をめぐって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44집 2015.01 pp.199-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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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에 개봉된 공포영화 『여고 괴담』,『링』 등의 히트로 시작된 한국의 호러 붐은 영화, TV, 인터넷소설 등의 문화콘텐츠의 보급과 함께 정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의 ‘괴담’ 역사는 최근에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무서운 이야기를 즐기는 괴담문화는 1930년대 일제식민지기에 일본에서 도입되었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일제 당시, 일본식 ‘괴담’은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정착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본고는 ‘괴담’의 수용 과정을 규명하는 일단계로서 당시 조선에서의 ‘괴담’ 이라는 단어의 개념을 검토하고 있다. 한일합방 이전에 간행 된 『大韓毎日申報』(1904-1910)는 합병 후 조선총독부의 기관지로서, 『毎日申報』로 그 이름을 개명했다. 1910 년 한일합병을 계기로 하여 이들 신문의 ‘괴담’의 개념은 ‘괘씸한 이야기’ ‘근거 없는 이야기’라는 뜻에서, 귀신이 나타나는 ‘무서운 이야기’로 변모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배경에는 언뜻 보면 정치와 관계가 없는 ‘괴담’이라는 오락적인 읽을거리를 통해 지식층 외의 민중독자를 획득하여 일제의 정치성을 교묘하게 발신하는 프로파간다의 맥락이 있었다. 종주국 주관하의 조선어신문에 의해 본래의 순수한 민중의 생활관습이나 문화가 정치적 의도와 결부되어 자연스럽게 조선민중 속에 스며들어가 ‘문화의 왜곡’을 초래했던 것이다.
In the late 1990s, the Korean horror genre that was begun with the hit horror films, “Ghost Story Series of Girls’High School” and “Ring,” etc. has been well- established through the popularzing of the cultural content of films, TV and the Internet-novel, etc. Actually, the history of these Korean Ghost stories has a longer duration. The culture of the Ghost-story, wherein one enjoys the scary stories introduced from Japa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n the 1930s, is already generally recognized. However, the manner and timing of the settlement of the Japanese “ghost story” were not clear so specifically at the time, This paper reviews the concept of the word “ghost story” in Korea during the colonial time period as being the first step of the investigation, and reveals the facts of the process of the acceptance of the “ghost story.” The 「Dae-han Maeilshinbo」daily newspaper (1904-1910) that was published before the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was renamed as 「Maeilshinbo」, serving as an organ for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after the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With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in 1910, The concept of ‘ghost stories’ from these news papers was transformed into a “scary stories” which ghosts appeared from the meaning of “intolerable story” and “baseless story”. In this background, there was a context the propaganda that revealed artful political inclinations of the Japanese empire that tried to acquire not only the intellectual classes but also populace readers through the pleasure of reading of the ‘ghost stories’ which looked like non-relationships with any politics. In other words, these ghost stories was inserted in the Korean language newspaper published with political purpose by the Japanese empire, the Japanese cultural could be entered spontaneously without any aversion to the pure living customs and culture of Korean people.
1990年代後半に公開されたホラー映画『女高怪談』、『リング』などのヒットにより始まった韓国のホラーブームは、映画、テレビ、インターネット小説などの文化コンテンツの普及とともに定着した。ところが、このような韓国の「怪談」の歴史は最近に始まったわけではない。怖い話を楽しむ怪談文化は、1930年代を中心に日帝植民地時代に日本から導入されたとの見方が一般的である。だが、日帝当時にこれら日本式の「怪談」が、具体的にいつ、どのような形で定着したのかは明らかではない。本稿はこうした植民地期における「怪談」の受容過程を解明する一段階として、当時使われていた「怪談」という言葉の概念を検討している。日韓併合以前に出版された『大韓毎日申報』(1904-1910)は、合併後の朝鮮総督府の機関紙として、『毎日申報』とその名を改名した。1910年韓日合併を境にしてこれらの新聞における「怪談」の概念は「不謹慎な話」「根拠のない話」というものから、幽霊などが現れる「怖い話」へと変容と遂げていった。しかし、これらの背後には一見政治とは結び付かないように見える「怪談」という娯楽的な読物を通して、知識層以外の民衆読者をも獲得し日帝の政治性を巧妙に発信するというプロパガンダ的脈略があった。宗主国主管の朝鮮語新聞によって、本来の純粋な民衆の生活慣習や文化が、政治的な意図と結びついてごく自然なものとして朝鮮大衆の中に溶け込んでしまうという〈文化の歪み〉がもたらされていたのである。
양산을 쓴 여인과 자포니슴 - 『매일신보』 연재소설을 중심으로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44집 2015.01 pp.225-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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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매일신보』의 연재소설 속에 등장하는 ‘양산을 쓴 여인’이라는 모티브를 통 해 우리의 문화 속에 유통되고 기억되는 하나의 이미지가 얼마나 다양한 문화적 경로 를 통해 성립되었으며, 그러한 이미지가 일본인 화가들에 의한 『매일신보』의 신문 연재소설의 삽화를 통해 어떻게 한국에 유입되었는가를 고찰하였다. 개화기, 주로 활자에 의존하던 종래의 신문과 달리 『매일신보』는 적극적으로 사진, 삽화, 광고 등을 통해 근대적 혹은 전근대적 이미지를 유포하였는데, ‘양산을 쓴 여인’ 의 이미지도 1912년에, 처음 시도된 삽화가 들어간 연재소설을 통해, 한국사회에 유 입된 경우에 해당한다. 기실, 이 모티브는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은 모네의 대표적 자포니슴 작품인 《양산을 쓴 여인》을 비롯해 많은 인상파화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소재인데, 일본이 서양미술 을 수용하면서 자국의 영향을 받은 자포니슴을 최첨단 화풍으로 재수용하게 된 것이 다. 일본으로 역수입된 자포니슴인 ‘양산을 쓴 여인’은 일본인화가들에 의해 다시 한 국에 유입한 경우로 『매일신보』의 연재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발표 후 딱지본, 연극 , 영화 등으로 차용되면서 연재소설 속의 이미지 또한 다양한 형태로 변용되었다.
This paper examines the one image, which is distributed and remembered, was established by how various cultural routes through the ‘woman with a parasol’ motif that appeared in the Maeilsinbo‘s serial novel and also how those images through a novel series of illustrations of the Maeilsinbo by the Japanese artist was introduced in Korea. The time of enlightenment, the Maeilsinbo spread modern or pre-modern images actively through letterpress pictures, illustrations, advertisements differently than mostly conventional newspaper. and the image ‘woman with a parasol’ was introduced through serial novel’s illustrations in Korea, the first attempt case. In fact, this motif was the material many Impressionist painters work including Monet’s typical Japonism work, “woman with a parasol” were favorite used. Japan was re-accommodated Japonism work who have been affected by own country as State-of-the-art painting style while Japan’s acceptance of Western Art. The “woman with a parasol”, a Japonism work re-accommodated into Japan, imparted again to Korea by the Japanese painter and thanks to the popularity of Maeilsinbo’ s serial novel, as in the case of Ttakjibon, theater, cinema, etc. after announcement, that novel’s image was also changed in a variety of forms.
本稿は『毎日新報』の連載小説のなかで登場する‘日傘をさす女性’というモーティブがわが文化のなかでどうのような形でイメージかされているか、また、そのようなイメージが日本人の挿絵作家を通してどのように韓国のなかで作られていたかを考察した。1910年代前後、近代的イメージは印刷メディアを通じて韓国の社会に大量に複写、流通された。主に活字中心だった従来の新聞と違い、『毎日新報』は積極的に写真、挿絵、公告などを通じて近代的、または前近代的なイメージを流布されたが、‘日傘をさす女性’のイメージも1912年、挿絵入れの連載小説を通じて韓国社会に入ってくる。ところが、このモーティブは浮世絵の影響をうけたモネのジャポニスム作品である《日傘をさす女性》を始め、多くの印象派画家が好んで用いた素材であるが、日本が西洋美術を受け入れる際に自国の影響をうけたジャポニスム画風を最先端の画風として再度受け入れた。‘日傘をさす女性’は日本に逆輸入されたジャポニスムが日本人画家により、また韓国に輸入された場合で、『毎日新報』の連載小説の人気に支えられ、断行本、演劇、映画などと作られることにより、連載小説のなかのイメージもまた韓国の社会のなかで、多様な形に変化しながら変容されることとなる。
타자화된 여성들, 일본 영화 속 ‘조선인 위안부’ 표상 - 오하루(お春)와 쓰유코(つゆ子)의 사이에서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44집 2015.01 pp.251-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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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60년대 중반에 일본에서 제작/상연된 두 편의 영화 속 ‘조선인 위안부’ 표상에 주목 한 것이다. 영화 『피와 모래(血と砂)』의 조선인 위안부 오하루(お春)는 전후 일본의 전장을 체험한 남성 세대가 ‘맨발의 천사’로 규정하는 ‘위안부’ 상에 근거하여 표상되고 있다. 전 일본 군 병사인 원작의 작가 이토 게이이치(伊藤桂一)와 오카모토 기하치(岡本喜八), 나아가 전후 의 남성세대가 공유하는 위안부상으로서의 오하루는 전장의 남성들에게 성적인 의미를 포함 한 위안을 제공했던 에로틱한 여신이자 어머니로서 여성적 타자이며, 이와 동시에 그녀의 조 선성이 특별히 부각되지도 은폐되지도 않는 당연한 전제로 존재하며 나아가 이를 표상하는 것 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민족적 타자이면서 전후의 포스트 콜로니얼리즘적 시공간의 문제점을 시사하는 지점이다. 한편 스즈키 세이준(鈴木清順)의『춘부전(春婦伝)』속 쓰유코(つゆ子)의 존재는 원작 속 조 선인 위안부인 여주인공으로부터 분리/분열된 존재이다. 이 분열은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 병사의 연애이야기가 가지는 두 항의 공존 불가능성을 의미하는데, 이렇게 분리된 제 3의 인 물 쓰유코는 원작 속 육감적인 위안부상으로부터 분리되어 두 주인공과 이야기 전체를 조망/ 재단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 분리로부터 그녀는 원작 속 일본군과 천황제를 비판하는 본연 의 역할에 충실하고 타자적 위치에서 전쟁 그 자체를 비판하는 지평으로 기능할 수 있게 되었 다. 그런 그녀는 일본과 일본인을 재단하는 타자이나, 이 타자성은 소설과 영화 속 오하루가 가지는 타자성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여기에는 피식민지민의 ‘응시’의 가능성이 제시 되고 있다.
This article focuses on two symbols of Korean comfort women in Japanese movies in the 1960s. Oharu, a Korean comfort woman from the movie “Blood and Sand” is based on the image of “Angel of Flesh” as described by men who experienced the full length of postwar Japan. The writer and director, former Japanese soldiers, as well as postwar generation considered Oharu an erotic goddess that provided comfort for soldiers with sexual implications as well as “female other” as a mother. She is “national otherness” in a sense that her quality as a Korean that is neither overt nor covert exists as prerequisite. Moreover, this image of comfort women implies problems of post-colonialist space and time of postwar Japan. Meanwhile, symbol of Tuyuko in “The story of prostitute” by Suzuki Seijun exists separately from the female antagonist that is Korean comfort woman, which implies impossible coexistence of love stories of Korean comfort woman and Japanese soldier. As such, Tuyuko emerges as a third character that views the whole story and two antagonists independent from the voluptuous image of comfort women. She is then able to assume her duty of criticizing Japanese soldiers and emperor system as well as war itself as other. Although she is “other” that judges Japan and Japanese soldiers, her otherness is essentially different from that of Oharu in novel and film. Here, the possibility of “review” of colonized is implied.
本稿は、1960年代の日本映画のなかの‘朝鮮人慰安婦’表象に注目したものである。映画血と砂のなかで朝鮮人慰安婦であるお春は、戦後日本の‘戦中世代’である男性作家が、‘素肌の天使’であると規定する慰安婦像に基づいて表象されている。元日本軍兵隊である作家伊藤桂一と岡本喜八監督、また戦後の男性世代によって共有された慰安婦像としてのお春は、戦場の男性たちに性的な意味を含む‘慰安’を提供していたエロティックな女神であると同時に、母性たるものとしての‘女性的な他者’である。また彼女は、その朝鮮性が特別に浮彫りにされることもなく、また隠蔽の意図もなく表象されたという点で‘民族的な他者’でもある。ここでは戦後のポスト・コロニアル的な時空の問題点が示唆されている。一方、鈴木清順の春婦伝のなかの‘つゆ子’像は、原作のなかで朝鮮人慰安婦である主人公から分離・分裂した存在である。この分裂は、朝鮮人慰安婦と日本軍兵隊の恋愛ストーリがもつ、二項の共存不可能性を意味するものであるが、ここで分離された第3の人物であるつゆ子は、原作の人物像から離れ、物語全体を眺望し裁断する存在となる。この分離から彼女は、原作のもつ戦争批判という本来の役割に忠実し、他者的な立場から戦争そのものを批判する地平として機能することができたのである。このように、つゆ子は日本と日本人を裁断する他者であるが、ここの他者性はお春のそれとは全く異なる性格をもつ。ここには、非植民地民の‘ミミクリ(mimicry)’の可能性が提示されているのである。
한국어 연결어미 ‘-다가’에 대응하는 일본어 형식에 대하여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44집 2015.01 pp.277-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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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본고에서는 한국어 연결어미 ‘-다가’의 의미를 「전환/원인, 근거/조건/대조/반복」으로 분류하고 각 의미별로 대응이 성립하는 대표적인 일본어 형식의 양상 및 의미적, 어휘적 조건 등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고찰결과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다가’가 「전환」의 의미를 나타내는 경우의 일본어 대응형식은 크게 ‘-て’형이나 ‘중지형’, ‘-途 中で/-ていて’형식, ‘-ところを’형식, ‘-(よ)うとして’형식으로 나누어진다. 2. ‘-다가’가 「원인, 근거」의 의미를 나타내는 경우는 ‘-ていて’형식이 대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3. ‘-다가’가 「조건」의 의미를 나타내는 경우는 ‘-と/-たら/-ば’’형식이 대응한다. 4. ‘-다가’가 「대조」의 의미를 나타내는 경우는 ‘-が’가 대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5. ‘-다가’가 다른 동작의 「반복」을 나탸내는 경우는 ‘-たり-たり’형식의 대응이 자연스러우나 동 일동작의 「반복」을 나타내는 경우는 ‘∼に∼’형식의 대응이 자연스럽거나 ‘-(つづけて)いるうちに ’형식의 대응이 자연스러운 경우로 나누어진다.
In this paper, I have categorized the meanings of ‘-daga’, a Korean connective ending into the following meanings such as “transfer/cause and basis/condition/contrast/repetition”. And then, I have examined not only the aspects of the typical Japanese forms but also the semantic and lexical conditions of the typical Japanese forms that approve the respective respondence by each meaning. The result of study is briefly summarized as follows. 1. In the case of ‘-daga’ signifying a meaning of “transfer”, the Japanese responding forms are widely sorted into type ‘-て’, the type of a combining stem, type ‘-totyuude/-teite’, type ‘-tokorowo’, and type ‘-(yo)utosite’. 2. In the case of ‘-daga’ showing a meaning of “cause, basis”, the type of ‘-teiteていて’ responds generally. 3. In the case of ‘-daga’ representing a meaning of “condition”, the type of ‘-toと/-taraた ら/-baば’’ responds. 4. In the case of ‘-daga’ having a meaning of “contrast”, the type of ‘-gaが’ responds generally. 5. In the case of ‘-daga’ representing a repetition of a different action, the respondence of type ‘-tari-tari’ is natural. But in the case of ‘-daga’ showing a repetition of the same action, either the respondence of type ‘∼ni∼’ or the respondence of type ‘-(tsuzukete) iruuchini’ is natural.
本稿では韓国語の接続形‘-다가’の意味を「転換」「原因、根拠」「条件」「対象」「反復」に分類し、各意味別に対応の成立する代表的な日本語形式の様相及び意味的、語彙的な条件などについて調べてみた。考察の結果を簡単に要約すると次の通りである。1.‘-다가’が「転換」の意味を表す場合の日本語の対応形式は大きく‘-て’形または‘中止形’、-途中で/ーていて‘形式、’-ところを‘形式、’-(よ)うとして‘形式に分けられる。2.‘-다가’が「原因、根拠」の意味を表す場合は‘ーていて’形式が対応するのが一般的である。3.‘-다가’が「条件」の意味を表す場合は‘ーと/ーたら/ーば’形式が対応する。4.‘-다가’が「対照」の意味を表す場合は‘ーが’が対応するのが一般的である。5.‘-다가’が違う動作の「反復」を表す場合は‘ーたりーたり’形式の対応が自然であるが、同じ動作の「反復」を表す場合は‘∼に∼’形式の対応が自然な場合と‘ー(つづけて)いるうちに’形式の対応が自然な場合に分けられる。
일본의 오코토(ヲコト)點과 한국의 點吐口訣의형태에 관한 연구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44집 2015.01 pp.299-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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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의 點吐口訣과 日本의 오코토점은 單星點과 線點과 複星點의 체계를 사용하고 있다. 點吐口訣과 오코토점의 單星點에 대한 文法은 助詞, 助動詞, 선어말어미, 연결어미, 동명사어미, 말음첨기 등의 語尾類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1字 表記가 중심이 된다. 다음으로 點吐口訣과 오코토점의 線點은 2字 表記 이상이 중심이며, 點吐口訣의 文法은 여러 語尾類와 助詞가 결합된 형태가 거의 대부분이다. 특히 「다」 動詞와 결합된 助詞나 여러 語尾類가 많이 차지하고 있다. 訓點資料에 있어서 빈번하게 기입되는 動詞活用語, 助動詞, 名詞, 動詞와 助動詞의 결합형 등이 많이 나타나는 것은 點吐口訣과는 다른 특징이다. 點吐口訣과 오코토점의 複星點은 2字 表記 이상이 중심이며, 線點과는 다르게 제한된 자료에서 사용되고 있다. 複星點의 點吐口訣의 文法的인 특징으로서는 助詞나 여러 語尾類로 사용되고 있으며, 「다」 動詞 등과 결합된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또한 오코토점의 文法的인 특징도 線點과 마찬가지로 動詞와 助動詞, 助詞의 결합, 또는 助動詞와 助詞의 결합 형태가 많은 점은 點吐口訣과 매우 다른 점이다.
Korea’s Jeomtokugyol and Wokototen of Japan are using system of one star point and line point and double star point. Grammar of one star point of Jeomtokugyol and Wokototen was used most a postposi tion or auxiliary verb or the ending of words, and 1 letter spelling becomes the center. 2 letters spelling of line point and double star point of Jeomtokugyol and Wokototen is center. Double star point of Jeomtokugyol and Wokototen is limited unlike line point. Jeomtokugyol’s grammar is ,for the most part, form that several the ending of words and a postposition are combined. Specially, a postposition or the ending of words combined with Hada verb all most be. Wokototen in materials of Hunjeom that often-used a verb conjugation, auxiliary verb, kind of noun, a verb and auxiliary verb combined forms appear much is other characteristic with Jeomtokugyol.
韓國の點吐口訣と日本のヲコト点は單星點と線點と複星點の體系を用いている。點吐口訣とヲコト点の單星點の文法は助詞や助動詞や種々の語尾類が最も多く用いられており、1字表記が中心となる。點吐口訣とヲコト点の線點は2字表記以上が中心であり、點吐口訣の文法は種々の語尾類と助詞が結合された形がほとんどである。特にhata(다)動詞と結合された助詞や種々の語尾類が多く占めらている。訓點資料において頻繁に加点される動詞活用語、助動詞、名詞、動詞と助動詞の結合の形などが多く現れるのは點吐口訣とは異なる特徵である。點吐口訣とヲコト点の複星點は2字表記以上が中心であり、線點とは異なって限られた資料において用いられている。點吐口訣の文法的な特徵としては助詞や種々の語尾類であり、hata(다)動詞などと結合されたものが壓倒的に多い。ヲコト点の文法的な特徴も線點と同様に動詞と助動詞と助詞、助動詞と助詞の結合の形などが多く占められている。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44집 2015.01 pp.32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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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한자음 연구영역 중에서 일본오음진섭의 주요모음도 하나의 중요한 연구내용이다. 진섭의 모음 은 일본오음중에서 i, u, e, o 등 네가지 모음으로 나타나며 비교적 복작한 모음형태를 드러낸다. 진섭에는 ≪진순진문흔혼흔≫등 일곱개의 운목이 있다. 일본오음 중에서 ≪진순진문흔혼흔≫의 공 통점은 ≪진≫ 이외기타 부분에서 모두 모음o가 나타나는 것이다. 기타 부분에서는 일련의 특수한 상황이 있는데, 예를 들면 ≪진운≫은 i를 위주로 하면서 동시에 e, o를 가짐으로써 상황이 아주 복 잡하다. 위진남북조 시가운각의 각도로부터 분석하면 본 논문은 진섭 중에서 나타나는 주요모음을 집중 연 구 토론하고자 한다. 여기에는 주로 아래와 같은 두개 내용이 포함되는데 하나는 모음의 성질로부터 보면 진섭 중에서 나타나는 주요모음은 어느 유형에 속하는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섭 중의 공통성 특점은 구체적으로 어느 시대의 어음특징을 반영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왕리, 주조모 등의 연구성과는 첫번째로 가장 보귀한 자료로 제공해 주었다. 이 선인들의 연구성과 는 주요모음을 분석함에 있어서 중요한 근거로 된다. 진섭의 주요모음의 유형을 확정하려면 비교의 대상이 필요하다. 압운을 예로 하여 보면 위진남북조시대에서진섭자는 산섭자와 상압할 경우가 있 다. 산섭에는 ≪한환산산 선선>> 등 여섯개의 운목이 포한된다. 산섭의 주요모음은 저모음이다. 선인들의 연구 로부터 보면 위진남북조 전기에서 진섭자는 저모음자와 압운하였지만 후기에는 이런 상황이 점차적으로 줄어들어 진섭이 독립되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시가운각의 각도에서는 진섭의 주요모음은 아마 하나 반모음이라는것을 알수있다. 이러한 주요모음이야말로 일본오음 중에서 반합 모음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In the field of phonetic research on Sino-Japanese, the Central vowels of Japanese Go-on Sinsetu is also an important research content, which mainly contains four kinds of vowels like “i, u, e, o”, with quite complex form of vowels. Sinsetu includes seven Yunmu “Zhen zhunzhenwenxinhunwen”, whose common features are that they all have the vowel “o” except “zhen”, and there are also some special cases in other aspects, for example, the “zhenyun” mainly consists of vowel “I” and sometimes has “e ” and “o”, as well which is quite complex. This paper focuses on the central vowel in Sinsetu from the point of poetries’ metrical foot in the period of Wei, Jin and Southern and Northern Dynasties. First, this paper studies and discusses the types of central vowel in Sinsetu according to their characteristics. Second, the paper explores the common features of Sinsetu and the period they reflect. Some former experts, for example, Wangli and Zhouzumo have provided some precious materials by their research results, which are the basis of analyzing the central vowel. A comparison object is important for determining the type of central vowel in Sinsetu. From the example of rhyme, “Sinsetuzi” sometimes rhyme with “shanshezi” in the the period of Wei, Jin and Southern and Northern Dynasties. “Shanshe” contains “hanhuansha” the six yunmu, and its central vowel is open vowel. According to the previous studies, during the period of Wei, Jin and Southern and Northern Dynasties, Sinsetuzi was rhymed with open vowel, but Sinsetu began to be independent little by little after that time. Thus it can be seen that the central vowel in Sinsetu may be an open-mid vowel from the point of metrical foot in poetry. This is also the reason why the central vowel reflects the close-mid vowel ‘o’ in Japanese Go-on.
日本漢字音研究分野において、日本呉音の臻摂における主母音は重要な研究内容である。臻摂は日本呉音の中でi、u、e、o等四つの形態を持ち、複雑な母音形態を呈している。臻摂は「真諄臻文欣魂痕」等七つの韻目が含まれる。日本呉音の中で「真諄臻文欣魂痕」の共通点は、「臻」を除き、その他の部分でいずれも母音oが現れることである。また他の部分では特別な状況も見られる。例えば、「真韻」はiを主なものとしながら、同時にe、oを備えているのである。魏晋南北朝時代の詩歌韻脚を分析する角度から、本稿では主に臻摂の主母音について検討する。本稿の検討内容は主に以下の二つの部分に分かれる。一つは、母音の性質から見て、臻摂に現れる主母音はどのような種類のものであるかという点である。もう一つは、臻摂における共通的特徴は、どの時代の音韻状態を反映したかという点である。王力・周祖謨等の研究成果は貴重な一次資料を提供している。このような前人たちの成果は主母音分析において重要な根拠となってくる。臻摂の主母音を確定するにあたり、比較の対象が必要となってくる押韻実例から見ると、魏晋南北朝時代において、臻摂字は山摂字と韻を踏む。山摂には「寒桓刪山先仙」等六韻が含まれる。山摂は広母音である。前人の研究から見ると、魏晋南北朝時代前期において、臻摂字は広母音字と韻を踏むが、後期になるとこのような現象は減ってくるようになり、臻摂は独立に向かう。したがって、詩歌韻脚の角度から見ると、臻摂の主母音は半狭母音であった蓋然性が高い。正にこのような母音が日本呉音の中で半広母音として現れてきたのであろう。
「ものだから」の意味機能 - 「もの」の意味変化の効果を中心に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44집 2015.01 pp.339-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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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모노다카라”의 의미기능을 밝히기 위해 “모노다카라”를 복합조사로서 인정할 수 있는 구문적 조건을 알아보고, “모노다카라”문에서 발생하는 “핑계, 변호, 비난”의 뉘앙스를 설명하기 위 한 문법적 테스트를 실시하였다. “모노다카라”문은 주제P의 유무를 기준으로 ‘PはQものだから’문과 ‘Qものだから’문으로 나눌 수 있 으며, 주제P를 가지지 않는 ‘Qものだから’ 구문에서의 “모노다카라”만이 복합조사로서 인정된다. 또 한 ‘Qものだから’문의 종속절과 주절(“모노다카라”가 종조사로서 사용되고 있는 경우는 “모노다카 라”문의 선행문)의 관계에서 “핑계, 변호, 비난”하는 의미가 발생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복합조사로서 인정되는 경우의 “모노다카라”는 주로 자신의 행동이나 자신과 관련된 사건에 대해 이유를 설명하는 문, 사태가 발생한 이유를 자신(화자)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문에서 사용되는 데, “모노다카라”가 사용될 경우 종속절에서는 주제어 “나는(私は)”과는 같이 쓰일 수 없으며, 이로 인해 “모노다카라”가 자신의 의견이 아닌 것처럼 말하는 의미변화의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모노다카라”를 사용함으로써 주절과 종속절의 주제가 다른 것처럼 표현되어, 단순하게 주 절의 이유나 원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이 아닌 것처럼 책임전가를 하고 있는 듯 보 이게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모노다카라”는 “핑계, 변호, 비난”의 뉘앙스를 표현하는 문장에서 사 용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In this study, it finds out syntactic condition which accepts “Monodakara” as a compound particle in order to clarify semantic function of “Monodakara” and grammatical test has been applied for explaining nuance of “excuse, defence, criticism” that occurs in sentence of “Monodakara”. “Monodakara” is only accepted as a compound particle in sentence of “Q(explanation) Monodakara” which has no subject P and at the same time it comes to have meanings of “excuse, defence, criticism” in relations between subordinate clause and main clause. “Monodakara” accepted as a compound particle is used in sentence which mainly explains one’ s behavior or reason about a case related to oneself. In case “Monodakara” is being used, it cannot be used with subject “I” in subordinate clause and it might have an effect which tells not like one’s opinion. Due to this effect “Monodakara” is different with “Kara”. “Monodakara” is used not in sentences of simply showing reason and cause of main clause but in sentence of expressing nuance of “excuse, defence, criticism”.
本稿では、「ものだから」の意味機能を明らかにするため、「ものだから」を複合助詞と捉えることができる構文的条件と、「ものだから」文で生じる「言い訳、弁解、非難」のニュアンスを説明するための文法的テストを行った。「ものだから」文は「PはQものだから」と、「Qものだから」に分けられ、「Qものだから」構文での「ものだから」のみが、複合助詞として捉えることができた。また、「Qものだから」文の従属節と主節(「ものだから」が終助詞として使われている場合は「ものだから」文の先行文)の関係で「言い訳、弁解、非難」のニュアンスが生じることがわかった。また、複合助詞としての「ものだから」は、主に自分のことについて理由を述べる文、事態が発生した理由を自分(話し手)の観点から述べる文で使われるにもかかわらず、「私は」とは共起できず、自分のこと(意見)ではないように述べる意味変化の効果が表われた。すなわち、「ものだから」を使うことにより、主節と従属節の主題が異なるように捉え、「ものだから」節は、単なる主節の理由の提示だけではなく、自分の意見ではないように、責任を他に転嫁していると捉えられる。そのため、「ものだから」は「言い訳・弁解・非難」のニュアンスを持つ文に使われるのであると考えら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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