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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학연구 [The Journal of Japanese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Institute for Convergent Humanities in East Asia (ICHEA)]
  • pISSN
    1598-737X
  • eISSN
    2465-8448
  • 간기
    연3회
  • 수록기간
    1997 ~ 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일본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730 DDC 492
제59집 (8건)
No

【日本學】

1

4,900원

본고는 일본 하기의 도공 집안 사에키 가문에 관해 고찰한 것이다. 그들은 조선 여인의 후예였다. 다시 말해 조선의 외손이었다. 그들은 하기 도예의 종가 이경으로부터 기술을 배워 도자기를 시작한 사람들이었으며, 17세기 중엽까지는 하기번의 어용가마를 보조하는 역할을 미와가와 함께 했던 가문이었다. 그들은 「한로쿠」라는 이름을 대대로 사용하며 도예집안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도예가문으로서는 6대에 그치고 말았다. 6대에 이르는 동안 우여곡절이 너무 많았다. 2대는 일찍이 부친을 여위고 나이가 어려 자신의 가마를 미와가에 양도되는 일을 겪었고, 3대는 양자로 들어가 성씨를 사에키에서 하야시로 바꾸어 심기일전을 시도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4대는 활약상이 희미하다가 5대에 이르러 활약이 두드러진다. 특히 그의 기술은 높이 평가되었으나, 아들이 과실을 범하고 타 지역으로 달아나는 바람에 그의 가마는 강제로 폐절당하고 만다. 그 후 그는 성씨를 고바야시로, 이름을 사헤이로 바꾸고, 타지로 전전하면서 손에서 그릇 굽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후카와에서 최후를 맞이했고, 그에 따라 조선여인의 후예 도예가문인 사에키가도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의 일족으로 추정되는 마쓰에(松江)의 라쿠잔 가마의 한로쿠도 3세대를 계승하고 그만 두었다. 이로써 일본 도자사에 있어서 한로쿠라는 이름을 가진 도예가문은 영구히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Joseon Potter Saeki family in Hagi, Japan. They were descendants of Korean women. In other words, they were the child of Joseonʼs daughter. They learned from the head of Hagi pottery Lee, Kyeong and started pottery, and by the middle of the 17th century, they were the family members who served with Miwa Family as a supporter of the kiln. They used the name “Hanroku”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and maintained a family of pottery. But these did not last long, lasting only six generations as a ceramic family. There were too many twists and turns in the six generations. The second generation, whose father had passed at an early age, transferred his kiln to Miwa Family and the third generation was adopted into another family and changed the name from Saeki to Hayashi, and, the following fourth generation was faint in performance but reached the fifth generation, who had excellent performance. His technique was especially appreciated but he was forcibly shut down his kin because of his sonʼs fault and fleeing to another area. After that, he changed his last name to Kobayashi, changed his first name to Sahei, wandering another place, where he never ceased to burn porcelain. Then he ended at Fukakawa, and accordingly, and accordingly Saeki family, a descendant of the Joseon woman, also closed the door. And Hanroku of the Rakuzan kiln of Matsue, presumed to be his clan, succeeded only in the third generation. Thus, in the history of Japanese ceramics, the pottery family named Hanroku disappeared permanently.

本稿は日本萩の陶工佐伯家に関して考察したものである。彼らは朝鮮女性の末裔であった。彼らは萩焼きの開祖で朝鮮陶工の李敬に技術を習い焼物を始めた人であり, 17世紀半ばまでは三輪家と共に萩藩の御用窯を補助する役割をした家柄であった。彼らは「半六」という名前を代々に使用した。しかし陶工という家業は長く続かなかった。6代で終わった。6代に到るまで迂餘曲折も多かった。2代は早く父親に失われ年齢が幼いということで自分の窯を三輪家に譲った。3代は養子に入り姓氏を佐伯から林に変え心機一転を試みたが, そのあとを受け継いだ4代は活躍は薄かった。5代に到りやっと高く評価され, 陶工として大活躍をしたが, 息子が過失を犯し脱藩したので, 彼の窯は強制的に癈絶されてしまう。その後, 彼は姓氏を小林に, 名前を佐平に変え, 客地に転々しながら焼物を作り, 最後は深川で迎えた。それにより朝鮮女性の末裔の佐伯家は終わったの。その一族として推定される松江の楽山焼の半六も3世代を継承でした終わった。これで日本の陶磁史における半六という名前を使う陶工は歴史の中に跡を消えた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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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0원

안중근은 대한제국 시대 조선의 독립운동가이다. 한국과 일본의 입장에 따라, 안중근에 대한 평가는 정반대이다. 역사인식의 차이가 있으니 이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안중근에 대한 평가는 생각보다 다양하고 사람에 따라 그 평가는 상이하다. 이처럼 안중근에 대한 관심은 양국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관심은 1909년 10월 26일에 있었던 안중근 의거, 당시 국제적으로도 큰 이슈가 되어 주목받았고 역사적으로도 의미있는 사건이었으므로 이와 관련된 연구는 상당히 많다. 그러나 당시 일본 내 자국민들, 즉 일본인들에게 안중근 의거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대한 구체적 연구는 아직 미흡하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1909년부터 1910년까지 일본인 대상으로 발행된 일본 내 신문에 실린 안중근 의사와 관련된 신문 기사의 분석을 통해서 안중근 의거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전수범위를 1909년부터 1910년까지로 정한 것은 의거 후 당시 일본에서의 안중근 의거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했는지에 대한 상황을 살펴보고자 함도 있으며, 이 시기가 일제강점기 전 일본이 무단정책을 실시한 시기였음으로 일본인들이 한국인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시기라는 점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이러한 본고 「안중근 의거, 아사히・요미우리・마이니치 신문을 통해 -1909년부터 1910년까지-」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1909년부터 1910년대까지, 즉 일제강점기 중 한국인에 대한 탄압이 심했던 시기에 안중근 의사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이 어떠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를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둘째, 실증적이고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일제강점기 당시의 안중근 의사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을 파악할 수 있고, 일본인들의 의식에 대한 접근 및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셋째, 1909년부터 1910년대, 당시 안중근 의거에 대한 정보, 예를 들어 안중근 의사에 대한 기본 정보,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상황, 의거 장소, 의거 시간 등 가장 기초적인 정보들이 일본 내 일본인들에게 어떻게 전달되었는지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일본 정부의 정책, 목적 내용의 변천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연구이다. 이는 당시 일본제국주의의 실상이나 일본인 의식에 관한 객관적 자료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자료는 일본의 정책과 여론 등의 파생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다섯째, 정치적 이유로 한일관계는 악화 일로에 서있다. 그러나 한국인, 일본인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감을 갖게 된다면, 동아시아의 평화를 원하셨던 안중근 의사의 뜻을 이어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An Jung-geun was a Korean independence activist, nationalist. On October 26, 1909, he assassinated Itō Hirobumi, a four-time Prime Minister of Japan and former Resident-General of Korea, following the signing of the Eulsa Treaty, with Korea on the verge of annexation by Japan. Ahn was posthumously awarded the Order of Merit for National Foundation in 1962 by the South Korean government, the most prestigious civil decoration in the Republic of Korea, for his efforts for Korean independence. In this study, 󰡔Japaneseʼ Cognition of Ahn Jung-Geun-Focusing on The Asahi Shimbun, The Yomiuri Shimbun, The Mainichi Shimbun, From 1909 to 1910󰡕 is the following meaning. The First, Korea under Japanese rule(from 1909 to 1910), it will serve as an opportunity for the Japanese people to recognize the direction of Ahn Jung-geun. The Second, Korea under Japanese rule(from 1909 to 1910), It will also be able to understand the patriotic deed of An Jung-geun were conveyed to the Japanese. The Third, it can present objective data on Japanese imperialism and Japanese consciousness, and can be helpful in deriving Japanese policies and public opinion.

本稿で取り上げる「安重根(アン・ジュングン)」は、大韓帝国時代の朝鮮の独立運動家である。立場が違えば「歴史認識が違って当然」で、正反対の評価が下されるということはしばしばある。日本では安重根への評価は、様々で、時代によって変遷して、人によって大きく異なる。特に韓日の安重根の評価の違いは、韓日両国の永続的な確執の象徴になった。 本稿の「安重根義挙、朝日・読売・毎日新聞を通じて-1909年から1910年まで-󰡕は次のような意味を持っている。 第一、1909年から1910年まで、日帝强占期のうち韓国人に対する弾圧がひどかった時期に、安重根義士に対する日本人の認識がどのような方向に流れているかを把握できる契機になることである。 第二、実証的、具体的資料を通じて日帝强占期のうちの安重根義士に対する日本人の認識を把握できている。 第三、1909年から1910年まで、安重根義挙に関する情報など、最も基礎的な情報が日本内の日本人たちにどのように渡されたかも把握することができる。 第四、日本政府の政策、目的の内容の変遷を把握するのに必要な研究である。これは当時、日本帝国主義の実態や日本人意識に関する客観的資料を提示することができるものであり、このような資料は日本の政策と世論などの派生の研究に役立つことができる。 第五、政治的理由に韓日関係は悪化の一途に立っている。しかし、韓国人、日本人がお互いを理解できる共感を持つようになったら、東アジアの平和が欲しかった安重根義士の意味を引き継いでいく土台を築くことができる。

【日本文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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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원

일본 전후시 속에서 도시는 단순한 무대배경으로서의 소재를 초월해, 작가의 시적 상상력을 언어로 변환하는 특별한 수사적 장치로 볼 수 있다. 전후 1세대의 핵심 잡지인 『황지』와 『열도』의 시인들은 각각 전대의 모더니즘 시와 프롤레타리아 시를 비판하는 자세에 입각해, ‘언어도시’의 관점에서 전후 일본사회에 대한 의식과 관심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전쟁이라는 과거 역사의 특별한 기억을 도시 속에서 재현하 는 가운데, 시간이 흐를수록 도시생활 속의 일상을 응시하는 태도로 변화하고 있다. 문명 비판을 강조한 『황지』와 노동자의 현실을 에워싼 정치적 인식과 풍자를 중시한 『열도』 모두 언어에 대한 집중과 관심을 나타내며, 도시는 이러한 특징을 주체적으로 자각하는 핵심적 공간이다. 도시를 고도경제성장기로 대변되는 메마르고 건조한 전후 일본사회의 관념적 상징물이자, 비인간적 문명의 폐해를 환기하는 기호적 텍스트로 간주한다. 이 과정에서 선명한 어휘구사에 주력하면서도, 극단적 언어유희나 경직된 사상성을 배제하 고 언어의 예술적 승화를 추구하고 있는 점에서, 도시는 언어중심주의를 표방한 일본 현대시의 핵심적 문학 토포스로 볼 수 있다.

Cities in the post-war poems of Japan can be regarded as a special rhetorical device that transforms the writer’s poetic imagination into language, transcending the subject as a simple stage setting. Poets of 『Arechi』 and 『Retto』, the key magazines for the first generation of the post-war, clearly show their consciousness and interest in post-war Japanese society from the perspective of the language city, each based on its critical attitude toward the modernism poetry and proletarian poetry of previous generation. They have a special past memory about the war in common, and as time goes by, that memory turns into an attitude of staring at everyday life. In this process, both 󰡔Arechi󰡕 that emphasized the criticism of civilization and 『Retto』 that valued political perceptions and satire that surrounding the realities of workers all reveal their concentration and interests in language. Cities are key spaces that aware of such features autonomously. They regard cities as conceptual symbols of the post-war Japan represented by a period of rapid economic growth and symbolic texts reminding us of the evils of inhuman civilization. Above all, in terms of pursuing the artistic value of language without extreme plays on words and rigid thoughts as well as focusing clear commanding vocabulary, it’s enough to regard cities as a key topos in modern Japanese poetry, which advocated language-centrism.

日本の戦後詩における都市は単なる舞台背景としての素材を超え、作家の詩的想像 力を言語に変換する特別な空間と言える。戦後第一世代の中心的な雑誌である『荒地』と『列島』の詩人たちはそれぞれ前代のモダニズム詩とプロレタリア詩を批判する姿勢 に基づき、‘言語都市’の観点から戦後の日本社会についての意識と関心をはっきりと 表している。彼らは戦争という過去の歴史の特別な記憶を都市の中に再現し、時間が 経つにつれて都市生活の中の日常を凝視する態度の変化を伴っている。このような流 れの上で文明批判を強調した『荒地』と、労働者の現実をめぐる政治的な認識と風刺を 重視した『列島』は、言語への集中と関心を明らかにしていく。都市はこういった特徴 を主体的に表す核心的な存在である。彼らは都市を戦後の高度経済成長期の観念的な 象徴物ひいては人間性を失った文明の弊害を物語る記号的テキストと見做す。この過 程で鮮明な言語表現に注力しながらも、極端的な言語遊戯や硬直した思想性を排除 し、言語の芸術上の価値を求めている点、都市は言語中心主義を掲げた日本現代詩の 中核的トポスと言えよ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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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0원

다무라 도시코 문학 연구사에서 오랫동안 소외되어 왔던 작품 『파괴하기 전』 고찰의 결과, 주인공 미치코의 앞으로의 향방은 작가 다무라 도시코 자신의 향방과 다르지 않음 이 밝혀졌다. 스즈키 에쓰를 좇아 캐나다행을 결심하게 된 과정이 『파괴하기 전』의 미치 코의 심리 묘사로 상세히 그려졌기 때문이다. 또한 표제의 ‘파괴’는 미치코가 R과의 관계 맺기를 위하여 F와의 관계 파괴가 전제되 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고, ‘미치코’라는 이름은 미치코가 F와 R 사이에서 고민 하던 생활의 길과 예술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임을 나타낸다. 여기에서 미치코의 선택, 즉 예술의 길로의 선택 기준으로 ‘공감’이라는 감정이 크게 작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미치코의 선택은 미치코에 대한 R의 공감, R에 대한 미치코의 공감이 있었기에 가능 했던 선택이다. 물론 타인을 사랑한다고 하여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공감으로부터 사랑의 감정이 싹틀 수 있다는 공감 관련 이론을 통해 미치코의 선택은 예술과 사랑으로 향해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다무라 도시코의 창작 의도가 재차 증명되는 지점이다.

A Study on Toshiko Tamuraʼs literature research instituteʼs long-term displaced works “Before Destruction”, Michikoʼs future direction was not different from that of Toshiko Tamuraʼ s. In other words, she decided to go to Canada in pursuit of Etsu Suzuki and described the process of her decision in Michikoʼs psychological description. While the author implied that through Michikoʼs name he would choose between the way of life and the way of art between F and R, she tried to destroy her relationship with F in order to establish a relationship with R through the title. In this process, we could see that Michikoʼs choice of R, or “sympathy” as a criterion of choice for the way of art, played a great role. The theory of empathy, which says that love is not something to be empathized, but that loveʼs emotions can spring from compassion, allows us to see that Michikoʼs choices are directed toward art and love. This is where Toshiko Tamuraʼs intention to create is proved again.

田村俊子文学研究史から長い間疎外されてきた作品󰡔破壊する前󰡕を考察した結果、 主人公である道子の前方の行方は、作家田村俊子自身の行方と変わらなかったことが 明らかになった。つまり、鈴木悦を追ってカナダ行きを決めたその過程が道子の心理 描写で見事に描かれているからである。また、表題の「破壊」は道子がRとの関係を結 ぶためにFとの関係破壊が前提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意味が含まれており、「道 子」という名前を通じて道子がFとRとの間で悩んでいた生活の道と芸術の道との中で 一つを選択するようになれることが分かる。ここで道子の選択、つまり芸術の道を選 択したその基準は「共感」であった。愛情があるから共感できるわけではないが、共感 できるから愛の感情が芽生えるという共感関連理論を通じて、道子の選択の結果は芸 術と愛に向かっていることが分かる。田村俊子の創作意図が改めて証明される地点で ある。

【日本語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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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0원

본고는 吳音硏究의 일환으로 法華經 諸本 중 天台宗 學僧인 宗淵上人이 1839年(天保 10) 開板한 『法華經安樂行品吳漢両音』에 기재된 吳音注와 漢音注에 대해 陰聲韻만을 대상으로 하여 字音分韻表로 정리한 것이다. 字音注의 비교를 위해 吳音注와 漢音注를 모두 기재하여 자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앞으로 본 자료를 기반으로 하여 『法華經 山家本』에 대한 연구 및 中近世韻書와의 비교고찰을 통해 吳音의 變容과 정착과정을 究明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As a part of study in Sino-Japanese Goʼon, this paper summarized only final of type A(陰聲 韻, final in -∅․-i․-u etc) into Rhyme table for Notation of Goʼon and Kanʼon written in Hokkekyō Anrakugyōhon Go-Kan ryoʼon(『法華經安樂行品吳漢両音』) issued in 1839 by Syuuʼen-zhonin(宗淵上人) who is monk of Cheontae(天台宗) among a lot of Hokkekyo. For comparison, both Notation of Goʼon and Kanʼon were written so that they can be used as data. Based on this data, it is necessary to investigate the transformation and settlement process of Sino-Japanese Go-on through a comparative study with Rhyme Dictionary(韻書) in the Medieval age and the Modern age and studies on Hokkekyo-Sangebon(『法華經山家本』).

中世時代の韻學の發展と共に、日遠のような韻書を中心とした法華經讀誦音の改變 もあったが、宗淵のような伝統的な讀誦音を中心とする傾向も共存していた。本稿は吳音硏究の一環として『法華經』諸本の中、天台宗の學僧である宗淵上人の1839年(天保 10)開板した『法華經安樂行品吳漢両音』に記された吳音注と漢音注について、陰聲韻の みを對象して字音分韻表に整理したものであり、同學術誌51輯の『西來寺藏』法華經安樂行品吳漢兩音『字音點分韻表(二)』の前半にあたる。字音注の比較のため、吳音注と 漢音注とをすべて表にして資料化した。分韻表を作成する際、聲母や聲點などが中古 漢語と合わない面が多かった。これらの問題点については後続研究に残す。また、こ の資料分韻表を始めとして『法華經山家本』と中近世韻書との比較考察及び呉音の変容 と定着過程を究明する必要があると考えら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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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0원

본고는 「V(-タ)トコロデ」의 역접의 의미와 구문적 특징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종래의 연구에서는 각각의 의미용법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으며 의미용법간의 관련성에 대해 서는 거의 고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본고에서는 「V(-タ)トコロデ」의 역접 의 의미와 구문환경을 시간절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ところ」의 의미의 추상화와 연속적 인 관점에서 해명하고자 하였다. 본래 「ところ」는 공간을 나타내는 명사이고 시간, 상황의 의미로 추상화 된다. 「V(-タ) トコロデ」의 의미는 명사 「ところ」의 의미의 추상화와 연속하며, 「V(-タ)トコロデ」의 역접의 의미는 「ところ」의 시간적 상황의 의미에서 확장된 것이라 할 수 있다. 「V(-タ)トコロデ」의 의미에는 주절의 형식과 사태의 성질이 관여되어 있고 그러한 구문적 제약에 의해 역접의 의미가 발생한다고 생각된다. 우선 구문적으로는 「Xしたと ころで、Yしない」와 「Xしたところで、(それは)Yではない」의 두타입이 존재하고 주절 의 형식은 광의의 판단문에 한정된다. 또한 종속절에서는 긍정, 부정표현 모두 가능하나 실례조사에 의하면 긍정표현으로 나타나기 쉽다는 특징도 가지고 있었다. 의미적인 면에 있어서는 본래 주절의 사태가 이루어지는 시간적 상황을 나타내는 「V(-タ)トコロデ」가 전건의 상황이 성립하더라도 예측된 사태 (바라는 결과 또는 통상 생각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주절의 판단에 의해 역접의 의미로 해석되고 있음 을 알 수 있었다.

This paper aims to examine the concessive meaning and structural characteristics of “V-ta-tokorode”. Originally, tokoro is a noun expressing place and is abstracted in a temporal meaning. The meaning of “V-ta-tokoro” is continuous with the abstraction of the meaning of the noun tokoro and the concessive meaning of “V-ta-tokorode” is an extension of the meaning of a temporal situation. The meaning of “V-ta-tokorode” involves the form of the main clause and the nature of the event. First of all, there are two types of constructions; “X-sitatokorode Y-sinai” and “X-sitatokorode (sorewa)Y-dewanai” and it has a modal constraint in the main clause. Also, in the subordinate clauses, both positive and negative forms are possible, but an example survey shows that it is likely to be positive. semantically it expresses that the predicted situation (the desired result or the situation normally considered) does not occur even if the antecedent situation is established.

本稿は「V(-タ)トコロデ」の逆接の意味と構文的特徴について考察したものである。 従来の研究ではそれぞれの意味用法の記述が中心となっていて、意味用法間の関連性 についての考察はほとんどなされていない。そこで本稿では、「V(-タ)トコロデ」の逆 接の意味と構文環境を時間節との関係を中心に、「ところ」の意味の抽象化と連続的な 観点から明らかにすることを試みた。 本来「ところ」という名詞はある空間を表すものであり、そこから時間、状況を表す ものへと抽象化していくとされている。「V(-タ)トコロデ」の意味は名詞「ところ」の意 味の抽象化と連続しており、「V(-タ)トコロデ」の逆接の意味は「ところ」の時間的状況 の意味から拡張したものであると思われる。「V(-タ)トコロデ」の意味解釈には主節の形式や事態の性質が関与していて、構文的 制約によって逆接的な意味が生じると考えられる。まず、構文的には「Xしたところ で、Yしない」と「Xしたところで、(それは)Yではない」の二つのタイプがあり、主節の形式は広義の判断文に限られる。また、従属節の中には肯定表現、否定表現をともに 含みうるが、実例調査によると肯定形式でよく用いられることが示されている。 意味の面からみると、本来ある事態が行われる時間的状況を表す「V(-タ)トコロデ」 が、前件の状況が成立しても、予測される事態(望まれる結果あるいは通常考えられる 事態)が生じないという主節の判断によって、逆接的な意味に解釈されるのだと考えら 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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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0원

본고는 이해미(2014)에서 분석한 <신정보 제시 수동문 패턴(수동문이 여러 문과 유기 적으로 결합해서 독자의 시점을 조정하여 신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소설의 언어적 장치)>의 기능과 유효성을 강화하기 위해 패턴이 사용된 모든 사용 장면을 분석하고 영화에서의 구현 여부 및 방법을 비교하였다. 주요 신정보가 <수동문 패턴>과 동일한 배열로 영화언어인 설정 쇼트, 객관적 시점, 클로즈업 쇼트가 사용되고 <수동문 패턴> 내 수동문과 클로즈업 쇼트가 동일한 역할을 담당하며 수신자의 시선과 시점을 컨트롤하 는 것을 알았다. 소설과 영화의 언어적 장치를 비교하여 수동문의 시점 컨트롤을 시각적 으로 확인 및 분석하였다.

In this study, <Passive sentence pattern of new information presentation(It is called ‘Passive pattern’ afterwards)> which is used to communicate new information efficiently to readers in novels. According to the survey results, the functions: creating a reader’s sense of realism, eye-catching, increasing dramatic effect, appeared in movies with the camera angle change and the frame configuration as it was in novels. It also controled audiences’ viewpoint and their eyes. Subjects of passive sentences in the Passive pattern were in close-up on the screen or in the center of frame. And that played a decisive role when movie described important things. It is clear that the Passive pattern has effectiveness that communicate a story efficiently as it is an exact match in the movies after adaptation.

本稿は李海渼(2014)において分析した<新情報提示受身文パターン(受身文があらゆ る文と有機的に結合して読者の視点をコントロールし、新情報を効率良く伝える小説 での言語的な装置)>の機能と有効性を強めるため、パターンが用いられたすべての使 用場面を分析し、映画と使用可否および方法を比較した。主な新情報が<受身文パ ターン>と同じ配列で映画言語である「設定ショット」「客観的な視点」「クローズアップ ショット」が使われ、<受身文パターン>内の受身文とクローズアップショットが同一 の機能をし、受信者の視線と視点をコントロールすることが分かった。また、小説と 映画の言語的な装置を比較し、受身文の視点コントロールを視覚的に確認・分析し 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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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術大會 및 交流協定 彙報 외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9집 2020.01 pp.167-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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