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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1집 2017.05 pp.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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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민속학자 야나기타 구니오(柳田国男)는 『옛날 이야기와 문학(昔話と文学)』에서 인간과 인간이 아닌 이류(異類)의 결혼을 주제로 한 이야기를 이류혼인담(異類婚姻譚)으로 부르며 이류가 남자인 경우를 이류사위(異類聟), 이류가 여자인 경우를 이류부인(異類女房)이라고 구분하여 불렀다. 그 결과 이류혼인담은 민속학 안에서 정착하여 옛날 이야기의 타입 인덱스(Type Index)도 이 분류를 도입하여 정비하였다. 또한 세키 게이고(関敬吾)는 『옛날 이야기의 역사』에서 이류부인담을 분석하여 이류여성이 사는 토지에 의하여 해신(海神) 처녀(바다), 숲 처녀(육지), 하늘 처녀(천공)로 분류했다. 그리고 이류부인담은 부부관계가 파국으로 끝나지만 ① 시조・탄생형, ② 조상신(氏神)형, ③ 이별형, ④ 치부(致富)형, ⑤ 양녀형, ⑥ 난제구혼(難題求婚)형, ⑦ 행복한 혼인형의 7가지의 결말이 된다고 하였다. 한편 이러한 민속학자의 연구를 시야에 넣으면서도 국문학자 이치코 데이지(市古貞次)는 『중세 소설의 연구』에서 오토기조시를 분석할 때 새, 동물, 벌레, 물고기나 기물(器物)의 이류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이류소설이라고 명명했다. 이 중 인간과 이류의 결혼을 괴혼담(怪婚談)이라고 명명하고 『학 이야기(鶴の草子)』 『쥐 이야기(鼠草子)』 등의 16작품을 새・동물・물고기・벌레・초목 5가지로 분류했다. 그 안에는 남녀로 나눌 수 있다고 했으나 결국 민속학자의 이류결혼담은 채택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치코가 말하는 괴혼담은 이류혼인담에 해당하며 현재의 오토기조시 연구는 이치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괴혼담을 사용하면서도 역시 이류혼인담의 용어를 채택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민속학과 국문학의 성과로부터 『우라시마타로(浦島太郎)』를 사례연구로 다루었다. 잘 알려져 있는 이 이야기는 남자와 여자 용의 결혼이기 때문에 이류부인담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뿐만 아니라 방생담(放生譚)・보은담(報恩譚), 그리고 이향방문담(異郷訪問譚), 전생담(転生譚)・본지담(本地譚)이라는 틀에 의하여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는 기층 문화에 불교 사상이나 신선(神仙) 사상이 들어간 모습이 강하게 보여 이러한 이류혼인담은 중세의 시대상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더우기 세키 게이고의 7분류에 따라 그 외의 이류부인담을 분석하면 그 유형이 적합함과 동시에 중세의 시대상을 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류사위담은 언급하지 못했지만 이러한 오토기조시에서 보이는 이류혼인담을 세계사 안에 자리매김시킬 필요가 있다. 그 때에 이나다 고지(稲田浩二) 책임편집의 『일본 옛날 이야기 통관(日本昔話通観) 연구편(研究編) 1 ‐일본 옛날 이야기와 몽골로이드(Mongoloid)』와 『일본 옛날 이야기 통관 연구편2 ‐일본 옛날 이야기와 고전』이 현재의 연구수준의 지표가 된다. 그러나 개별 화형(話型) 연구가 아니라 커다란 시야에서 다루고자 한다면, 오자와 도시오(小澤俊夫)의 『세계의 민화(民話)─사람과 동물과의 혼인담─』이 도움이 된다. 오자와의 도식도 안에 오토기조시의 이류혼인담, 특히 이류부인담을 놓고 보면 고대에서 현대에 걸친 과도기에 있는 중세의 시대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Kunio Yanagita柳田国男, a scholar of Japanese native folkloristics, named those folktales that human marries nonhuman Iruikonintan異類婚姻譚 in his book Mukashibanashi to Bunngaku『昔話と文学』. Yanagita calls nonhuman husband as Iruimuko異類聟 and nonhuman wife as Iruinyobo異類女房. These terms that Yanagita uses have been accepted widely in the area of folkloristics. In Keigo Seki関敬吾’s Mukashibanashi no Rekishi『昔話の歴史』, Iruinyobo is classified into three types: nonhuman wife who is originally from sea(海神の乙女), from forest(杜の乙女) and from sky(天津乙女). And in Seki’s book Iruinyobo is also assorted into seven types according to the ending of stories: ① the child between human and nonhuman finally became the progenitor of a tribal or the emperor of a country始祖・誕生型, ② nonhuman wife finally became the guardian angel of a village氏神型, ③ they break up離別型, ④ they become rich致富型, ⑤ nonhuman girl is adopted by someone as their daughter養女型, ⑥ difficult tasks have to be accomplished before getting married難題求婚型, ⑦ happiness is finally procured幸福な婚姻型. However, in Japanese literature scholar Teiji Ichiko市古貞次’s book Tyusei Syosetsu no Kenkyu『中世小説の研究』, he classified the tales in Otogizoshi『御伽草子』and those stories in which bird, beast, insect, fish or vessel appears are called Iruisyosetsu異類小説. In Iruisyosetsu, human‐animal marriage is named Kaikondan怪婚談 and 16 pieces of tales including Tsuru no Soshi『鶴の草子』and Nezumi no Soshi『鼠草子』 are assorted into five types: birds, beasts, fish, insects and plants. Ichiko also classified the tales by nonhuman’s gender. However, he did not adopt the terms that Yanagita created. Although Japanese literature scholars and folklorists use different terms to call human‐animal marriage tales and their classifications, Kaikondan怪婚談 actually equals to Iruikonintan異類婚姻譚. Therefore nowadays both of these two types of terms can be seen in the papers of Otogizoshi. Based on the research results of the areas of Japanese native folkloristics and Japanese literature, this paper takes a tale in Otogizoshi‐‐Urashima Taro『浦島太郎』as a research example. It is a well‐known folktale about a man marring a female turtle. According to Yanagita’s classification system, it is a story of Iruinyobo異類女房. However it can also be classified as the story of captive animal finally repaid someone’s kindness after being released放生譚・報恩譚, the story of visiting a strange country異郷訪問譚, the story of becoming god after being born again転生譚・本地譚. In addition Buddhist concepts and Taoist concepts can be found on the base layer of the story. Thus, a conclusion can be made that the features of Medieval Period are reflected on the Iruikonintan. After analyzing other tales in Otogizoshi, we know that Seki’s classification system of Iruinyobo or nonhuman wife can also be applied to them, and at the same time the features of Medieval Period can also be seen in the tales. In this paper, although Iruimuko or nonhuman husband is not being discussed, we need to put the tales of human marring nonhuman in Otogizoshi from the perspective of the history of the world. Here are some books that represent the level of current research. The first are Koji Inada稲田浩二’s Nihon Mukashibanashi Tsukan Kenkyuhen I & II『日本昔話通観 研究編1 日本昔話とモンゴロイド』,『日本昔話通観 研究編2 日本昔話と古典』. And the second is Toshio Ozawa小澤俊夫’s Sekai no Minwa『世界の民話─ひとと動物との婚姻譚─』which does not focus on the study of classification system, but put Otogizoshi in a global perspective. In Ozawa’s research, we also can see the features of Medieval Period in Otogizoshi, especially in the tales of Iruinyobo.
民俗学者の柳田国男は『昔話と文学』で、人間と人間ではない異類の結婚を主題とした話を異類婚姻譚と呼び、異類が男の場合を異類聟、異類が女の場合は異類女房と呼び分けた。その結果、異類婚姻譚は民俗学の中で定着し、昔話のタイプ・インデックスもこの分類を取り入れて整備した。さらに関敬吾は『昔話の歴史』で異類女房譚を分析して、異類の女性の住む郷土によって、海神の乙女(海)、杜の乙女(陸)、天津乙女(天空)に分類した。その上で、異類女房譚は夫婦関係が破局に終わるが、①始祖・誕生型、②氏神型、③離別型、④致富型、⑤養女型、⑥難題求婚型、⑦幸福な婚姻型の7つの結末になるとした。 一方、そうした民俗学者の研究を視野に入れながらも、国文学者の市古貞次は『中世小説の研究』で御伽草子を分類した際、鳥獣虫魚や器物の異類が登場する話を異類小説と呼んだ。そのうち、人間と異類の結婚を怪婚談と名づけて、『鶴の草子』『鼠草子』などの16作品を鳥・獣・魚・虫・草木の5つに分類した。その中は男女に分けられるとしたが、結局、民俗学学者の異類婚姻譚は採用しなかった。しかし、市古の言う怪婚談はまさに異類婚姻譚に相当し、現在の御伽草子研究は市古の影響を色濃く残して怪婚談を使いながらも、やはり異類婚姻譚の用語を採用している。 そうした民俗学と国文学の成果から、『浦島太郎』を事例研究として取り上げた。よく知られたこの話は男と女亀の結婚なので、異類女房譚に入る。しかし、それだけではなく、 放生譚・報恩譚、そして異郷訪問譚に加えて、転生譚・本地譚といった枠組みによって複合的に構成されている。そこには基層の文化に仏教思想や神仙思想が入り込んだ様子が色濃く見られ、異類婚姻譚は中世の時代相を帯びていた。さらに、関敬吾の7分類に従って、その他の異類女房譚を分析すると、その類型が適合すると同時に、中世の時代相を見ることができる。 この論考では異類聟譚には言及できなかったが、こうした御伽草子に見る異類婚姻譚を世界史の中に位置づける必要がある。その際、稲田浩二責任編集の『日本昔話通観 研究編1 日本昔話とモンゴロイド』と『日本昔話通観 研究編2 日本昔話と古典』が現在の研究水準の指標になる。しかし、個別の話型研究ではなく、大きな視野で捉えようとするならば、小澤俊夫の『世界の民話─ひとと動物との婚姻譚─』が有益である。小澤の見取り図の中に御伽草子の異類婚姻譚、特に異類女房譚を置いてみると、古代から現代にわたる過渡期にある中世の時代相を示している。
파괴와 복원의 변증 ─『삼국유사』와 13세기 고려의 문학적 再構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1집 2017.05 pp.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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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一然)은 13세기 고난의 시기와 그 생애를 같이 하였다. 정쟁(政爭)과 전쟁의 혼란이 가져온 결과였다. 『삼국유사』는 무너진 나라의 폐허 속에 시대의 아픔을 통감(痛感)한 지식인이 이룩한 무등(無等)의 텍스트이다. 내분(內紛)과 전쟁의 와중에서 강간(强姦), 유기(遺棄), 살인이 횡행하는 시대였다. 폐허였다. 이런 시대와 대응하여 과거의 역사 속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를 수집하는 일연의 의중에는 폐허를 복구하려는 의지가 숨어 있다. 이 글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역사적 사건을 『삼국유사』의 이야기와 견주어 분석하였다. - 최충헌(崔忠獻) 암살 시도 / 궁파(弓巴) 암살- 나무에 매놓은 아이 / 땅에 묻힐 뻔한 아이- 강요당하는 이혼 / 죽음을 불사하는 사랑이야기는 불교적 의의가 구현된 것이었다. 불교적 의의란 변증적 사고방식이 생활에 적용된 알고리즘(algorism)이다. 그런 변증의 바탕 위에 13세기 고려의 역사를 문학적으로 재구해 볼 수 있다. 이는 일연이 당대(當代)의 사실을 전대(前代)의 역사나 설화에 규준(規準)하여 그린 것이었다.
Il-Yeon(一然) lived in the 13th century, the hard times. It is resulted from the chaos of political strife and war. <Samkukyusa(三國遺事)> is the best text achieved by the intellectual who fully realized the pain in the period of national ruin. It was the time of rape, abandonment, and murder. It was devastation, itself. Il-Yeon’s will is hidden in his mind, as he responded to the times and collected the stories in the past history. The following historical accidents are analyzed comparatively with the stories from the <Samkukyusa> in this article. - A try to assassinate Choi Chung-Heon(崔忠獻) / Assassinated Gungpa(弓巴) - A tied child to a tree / An almost buried child in the ground - A Forced divorce / An immortal love The meaning of the Buddhism is embedded in the stories. The meaning is the algorism in which dialectic thinking is adopted in life. The Goryo(高麗)’s history in the 13th century can be reconstructed literary on the dialectic basis. That’s why Il-Yeon applied the fact in his time to the history and folk-tales in the previous time.
一然は、13世紀の苦難の時期とその生涯を一緒にした。政争と戦争の混乱が招いた結果であった。『三国遺事』は、崩れた国の廃墟の中に、時代の痛みを痛感した知識人が成した無等のテキストである。内紛と戦争の渦中にで強姦、遺棄、殺人が横行する時代であった。廃墟であった。こんな時代と対応して、過去の歴史の中から伝えて来る話を収集する一然の意中には、廃墟を復旧しようとする意志が隠れている。 この文では、次のような三種類の歴史的事件を、『三国遺事』の話と比べて分析したものである。 ー崔忠献 暗殺の試み / 弓巴 暗殺 ー木に結んでおいた子供 / 地に埋まる所であった子供 ー強要される離婚 / 死を不辞する愛 話は仏教的な意義が具現されたのであった。仏教的な意義とは、弁証的考え方が生活に適用されたアルゴリズム(algorism)だ。そんな弁証の土台の上に、13世紀の高麗の歴史を文学的に再構して見られる。これは、一然が当代の事実を前代の歴史や説話に規準して書いているものであった。
『剪燈新話』의 惡鬼와 超越의 倫理 ─ 「牡丹燈記」를 중심으로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1집 2017.05 pp.5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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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剪燈新話』에 등장하는 다양한 여주인공 가운데 가장 독특한 인물이 「牡丹燈記」의 符麗卿이다. 그녀는 惡鬼임에도 풍부한 매력으로 동아시아 소설에 많은 영감을 제공했다. 특히 日本에서의 人氣는 매우 이례적이었는데, 그 원인은 그녀가 소유한 慾望의 超道德性이 인류의 보편적 욕망의 실체를 용감하게 대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이를 주이상스라는 관점에서 고찰했다. 자유의지로 타자를 긍정하려는 삶의 방식이 慈悲라면 부여경은 비록 顚倒된 방식이긴 했지만 열정적으로 한 남성을 사랑함으로써 자비를 흉내 냈고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여 욕망을 추구함으로써 삶을 흉내 냈다. 이 에피고넨적 정열은 邪惡한 통로 외의 길을 찾지 못한 惡의 에너지였지만 그것이 상징하는 궁극의 삶의 양식은 운명에 대한 주체적 자기결단으로서의 윤리적 주이상스임을 알 수 있다.
The most extraordinary heroin in Jundeungshinhwa(剪燈新話) is Bu Yeokung(符麗卿) appears in Morandeungghi(牡丹燈記). Although she was an evil ghost, her fluent attractiveness has supported a lot of inspiration on the East-asian classic novels. Especially her character has won popularity among Japanese readers in pre-modern society. The reason of the popularity was that the hyper-normality of the desire she had possessed represented enthusiastically the entity of universal human desire. This treatise deals with this problem in the viewpoint of joussance. If the lifestyle that affirms another peoples for their own free will is the benevolence or Karuna, Bu Yeokung(符麗卿) imitated the benevolence through the passionative love for a man and imitated human life through the pursuit of desire denying the death though her method was perversive. This Epigonen passion wss the evil energy that got astray but the ultimate life which it symbolized was the ethical joissance as a subjective resolution on the destiny.
『剪燈新話』に登場する様々なヒロインのなかで最も独特な人物は「牡丹燈記」の符麗卿である。彼女は悪鬼であるにもかかわらず、豊かな魅力をもって東アジアの小説に多くの霊感を与えた。特に、日本における人気はとても異例的であったが、その原因は彼女の持つ欲望の超道徳性が人類の普遍的な欲望の実態を大胆に代弁していたからである。本稿ではこれをジュイサンス(Jouissance)の観点から考察した。自由意志で他者を肯定しようとする生き方が慈悲だとすれば、符麗卿はたとえ顛倒はしたものの、熱情的に一人の男性を愛することで慈悲を真似し、自分の死を否定して欲望を追求することで生を真似した。このエピゴーネン(Epigonen)的な情熱は、邪悪な通路の外の道を探せなかった悪のエネルギーであったが、それが象徴する究極な生の様式は運命に対する主体的自己決断としての倫理的ジュイサンスであることが分かる。
日本の古代文学における「新羅」と「高麗」 - その用例の文化史的考察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1집 2017.05 pp.8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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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일본 고대문학에 있어서 「新羅」와 「高麗」의 용례에 관하여 고찰한 것이다. 8세기에서 11세기에 걸쳐 일본 문학 안에는 고대 한국의 국명으로 고려, 백제, 신라, 발해 이 4 개의 이름을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용례 수가 많은 것은 「新羅」이다. 8세기에 쓰여진 『고지키(古事記)』에서 「新羅」의 용례는 6례이지만, 이들은 2개의 신화에 집중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여기에서 「新羅」는 물질적인 풍요와 선진적 기술을 소유한 나라로 묘사되는데 풍요에 대한 동경(憧憬)이 거꾸로 「新羅」를 정복해야 할 적국(敵国)으로 자리매김하게 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고대문학에 있어서 「新羅」는 적국 또는 라이벌 국가로 부(負)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요슈(万葉集)』 이후는 신라의 적대적 이미지가 희박화되고 10세기가 되면 용례 수 그 자체도 감소하게 된다. 「新羅」 다음으로 많은 용례를 볼 수 있는 것이 「高麗」이다. 「高麗」는 4가지 의미로 사용되는 점이 특징이다. 첫째는 고대의 고구려, 둘째는 한반도 전체, 셋째는 발해, 넷째는 왕건에 의해 918년에 건국된 고려이다. 흥미롭게도 한시문에 있어서는 「渤海」의 이름이 명기되어 있으나 동시대의 가나(仮名) 문학에서는 「渤海」의 용례는 전혀 없고 오직 「高麗」만 사용되고 있다. 가나 문학이 매우 포괄적인 의미로 「高麗」라는 말을 사용하게 된 것은, 「新羅」가 적대적인 이미지를 띠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高麗」가 우호적인 이미지를 전통적으로 지니고 있어서 「渤海」도 그 연장선상에 위치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新羅」를 대신하여 「高麗」의 용례가 증가한다고 하는 변화는 율령체제의 붕괴 안에서 형성된 가나 문학의 새로운 가치관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다.
This paper deal with the legend “Silla” and “Korea” in the ancient Japanese literature .In Japanese literary works written from the 8th century during the 11th century “Korea”, Baekje, Silla and Bohai are seen as a country of ancient Korea. The largest number of examples is that “Silla”. In Kojiki, written in the 8th century “Silla” examples in 6 patients, and they are intensively marked two myths. “Silla” is portrayed as a country with advanced technology and material wealth in there, but the longing for its richness made “Silla” as the enemy to be conquered .As a result, “Silla” became an enemy or rival countries with negative images in ancient Japan. However, the hostile image of Silla diluted after ‘Manyoshu’ and the examples of the number decreased in the 10th century. On behalf of this, “Korea( Koma)” got to see many examples in the 10th century. “Koma” was used in the four senses; One is Koguryo in ancient, the second is the Korean peninsula whole, the third is Bohai , the fourth is Goryeo founded in 918 by Wang‐gon. Interesting that the name of the “Bohai” clearly wrote in ancient Chinese literature in Japanese, but in contemporary Japanese Kana‐literature had no examples of “Bohai” at all. “Koma” is used exclusively in Kana‐literature. The Kana‐literature used word “Koryo” in a very inclusive sense, because “Silla” was tasked with a hostile image as opposed to “Koryo” with traditional friendly image, and “Bohai” positioned on the extension. The change increases the “Koryo” legend “Silla” on behalf of the subject reflect the new values of Kana‐letters formed in the collapse of the old Chinese rule of law system.
この論文は日本の古代文学における「新羅」と「高麗」の用例に関するものである。8世紀から11世紀にかけての日本の文学作品の中には、古代韓国の国名として高麗、百済、新羅、渤海の4つの国の名が見られる。その中で最も用例数が多いのは「新羅」である。8世紀に書かれた『古事記』における「新羅」の用例は6例であるが、それらは二つの神話に集中的に記されている。そこでは「新羅」は物質的な豊かさと先進的な技術を持った国として描かれるが、その豊かさへの憧れが逆に「新羅」を征服すべき敵国として位置づけることにもなった。結果的に見て、古代文学における「新羅」は敵国もしくはライバル国として負のイメージを帯びていると言える。しかし、『万葉集』以降は、新羅の敵対的イメージは希薄化し、更に10世紀になると用例数そのものが減少していく。これに代わって多くの用例が見られるようになるのが「高麗」(こま)である。「高麗」は、四つの意味で用いられた点に特徴がある。一つ目は古代の高句麗、二つ目は朝鮮半島全体、三つ目は渤海、四つ目は王建によって918年に建国された高麗である。興味深いことに漢詩文においては「渤海」の名が明記されているが、同時代の仮名文学では「渤海」の用例は皆無で、専ら「高麗」が用いられている。仮名文学が極めて包含的な意味で「高麗」の語を用いたのは、「新羅」が敵対的なイメージを帯びていたのとは対照的に「高麗」が友好的なイメージを伝統的に持ち、「渤海」もその延長上に位置づけられたからであると考えられる。「新羅」に代わって「高麗」の用例が増加するという変化は、律令体制の崩壊の中で形成された仮名文学の新たな価値観を反映したものと考えられる。
古代 韓中日 文化交流에 대한 考察 - 舞樂 蘇莫遮와 蘇志摩利, 吉簡을 中心으로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1집 2017.05 pp.107-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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街頭歌舞戱인 蘇莫遮는 西域의 龜玆國, 康國, 焉耆國, 高昌國 등에서 널리 공연되었다. 서역의 여러 나라에서는 소막차를 개최할 때에 짐승 모양의 가면을 쓰고 노래와 춤을 추며 거리에서 물을 뿌리면서 추위를 구하고 災殃이 없어지기를 기원하였다. 남북조시대에 서역의 소막차가 중국에 전래되어 11월이나 12월에 주로 서역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곳에서 널리 공연되었고, 중국인들은 소막차를 乞寒戱 또는 潑寒胡戱, 潑胡王乞寒戱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당나라 玄宗이 開元 元年(713)에 가두가무희로서 소막차의 공연을 금지시켰고, 이후 그것은 주로 宮中에서 舞樂의 형식으로 공연되었다. 삼국에서 전래된 고려악 吉簡은 乞寒을 가리키며, 王 2인과 10인의 陪從으로 구성된 舞人들이 그것을 공연하였다. 신라에서 전래된 고려악 蘇志摩利는 舞人이 도롱이를 걸치고 삿갓을 쓰고 춤을 추며, 기우제 때에 널리 공연되었다. 蘇莫者는 중국을 거쳐 소막차가 일본에 전래된 무악인데, 그 내용은 1인의 舞人이 원숭이 또는 귀신 형상의 가면을 쓰고 도롱이를 걸치고 춤을 추는 것이었다. 소막자의 番舞가 소지마리였으므로, 두 무악은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소지마리가 소막차에서 유래되었음을 증명해주는 자료는 전하지 않지만, 그러하였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서역과 중국에서 유행한 소막차, 즉 걸한희가 삼국에 전해졌고, 삼국은 그것을 나름대로 咀嚼消化하여 자기들의 舞樂으로 변용시킨 이후, 다시 그것이 일본에 전래되어 고려악 악곡으로 정립되었으며, 두 무악은 일본에서 시간의 경과에 따라 점차 일본화 과정을 거쳐 후대까지 전승되어 공연되었다.
The Sumuzhe(蘇莫遮), a street dancing festival, was widely performed in many Western regions countries including Kucha and Kang, Yanqi, Gaochang Country. In several Western regions countries, when celebrating Sumuzhe festival, people were singing, dancing and spraying water on the streets. They were wearing beast-shaped masks and asking for cold weather, wishing disasters away. After being introduced into China from the Western regions in the Period of Northern and Southern Dynasties, the Sumuzhe was extensively performed mainly in the resident communities of the Western regions people in November or December. The Chinese called Sumuzhe by several names such as Geolhanhee(乞寒戱), Balhanhohee(潑寒胡戱) and Balhowanggeolhanhee(潑胡王乞寒戱). In 713, T’ang Hsuan-Tsung(玄宗) banned the performance of Sumuzhe as a street dancing festival, and since then it has been performed in the style of the Dancing music mainly at Court. The Komagaku(高麗樂) Gikan(吉簡) refers to Geolhan(乞寒), and it was introduced from the Three Kingdoms. Dancers were made up of two kings and ten subordinates. The Komagaku Dancing music Sosimari(蘇志摩利) was introduced from Shilla, and it was widely performed in rain-making rituals by a dancer with straw raincoat and satgat. The Somakusha(蘇莫者) was a Dancing music introduced through China to Japan, the contents of which was a solo dancer dancing with a straw raincoat, wearing a monkey or a demon-shaped mask. Since the Tsugaimai(番舞) of Somakusha was Sosimari, it can be said that these two pieces of the Dancing music were closely related. Although there is no data which proves that Sosimari originated from Sumuzhe, it is hard to completely rule out the possibility. The Sumuzhe, Geolhanhee, was introduced to the Three Kingdoms, after being popular in the Western regions and China. The people of Three Kingdoms changed it into the Dancing music based on their own interpretation of it. They exported it to Japan where it was established as Komagaku Dancing music, and these two pieces of the Dancing music gradually passed through the process of Japanization and were passed down to later generations.
街頭歌舞戱ある蘇莫遮は西域の龜玆國、康國、焉耆國、高昌國などに広く公演された。西域諸國では、蘇莫遮を開催する際に獣の形の仮面をかぶって歌と踊り市街で水をかけながら寒さを求め災殃がなくなることを祈願っている。南北朝時代に西域の蘇莫遮が中国に伝来されて、11月や12月に主に西域人が集団的に居住する所で広く演奏され、中国の人々は蘇莫遮を乞寒戱または潑寒胡戱、潑胡王乞寒戱と呼ぶこともした。唐玄宗が開元元年(713)に街頭歌舞戱として蘇莫遮の公演を禁止させ、以来それは主に宮中で舞樂の形式で公演された。三国から伝来された高麗樂吉簡は乞寒を指し、王2人と10人の陪從に構成された舞人がそれを公演した。新羅から伝来された高麗樂蘇志摩利は舞人がみのをかけ笠をかぶって踊り、雨乞い時広く公演された。蘇莫者は中国を経て蘇莫遮が日本に伝来した舞楽であるが、その内容は1人の舞人が猿やゴースト形状の仮面をかぶってみのをかけて踊ることだった。蘇莫者の番舞が蘇志摩利だったので二舞楽は非常に密接な関連性を持った見ることができる。蘇志摩利が蘇莫遮に由来したことを証明してくれる資料は伝えないが、そうした可能性も完全に排除することは難しい。西域と中国で流行した蘇莫遮、すなわち乞寒戱が三国に伝わり、三国はそれを自分なりに咀嚼消化して、自分たちの舞樂に変容させた後に、再びそれが日本に伝来されて高麗樂楽曲で確立されており、二つの舞楽は日本での時間の経過に応じて徐々に日本化の過程を経て、後代まで伝承されて公演された。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1집 2017.05 pp.147-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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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안시대에는 도읍인 교토가 거대 도시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많은 인구가 유입되고 인적, 물적 자원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도성 밖은 부정한 곳으로 생각하는 인식이 정착된다. 9세기 들어서는 궁중 행사에서 시작된 ‘게가레(穢れ)관’은 월경이나 출산을 하는 여성을 부정한 것으로 보는 주술적 관념으로 이어지고, 10세기 이후에는 더욱 심화되어 천황을 중심으로 한 도성 안을 성스러운 곳이고, 도성 밖은 질병이나 천민, 귀신들이 있는 부정한 곳이라는 관념이 심화된다. 이에 도읍으로 질병이나 귀신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기 위해 시쿄제사(四堺祭)나 나나세불제(七瀬祓え)가 행해지게 되고, 사회적으로 음양사상이 확산되게 된다. 이에 따라 피의 부정함을 지닌 여성은 장애인이나 천민, 귀신과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배제되어 하시히메(橋姫)와 같은 요괴가 탄생하게 된다. 요괴로 변한 하시히메는 이와 같이 중세 이후 사회적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탄생한 사회적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In Heian period, its capital, Kyoto experienced a transfiguration into a metropolis and in the process of such transformation, the perspective that the area outside the castle was the unpurified one came to be settled with the inflow of large population and the vigorous interchanges of personal as well as material resources. In the beginning of the 9th century, 'Kegare thinking' begun with the court ritual led to the superstitious thinking that women during her period or maternity were filthy. After the 10th century, it was to be more consolidated. So the idea that the inner castle area centered on the emperor was the sacred place while the outside of the castle was the polluted one with diseases, the untouchable and demons was firmly settled. As a countermeasure, rituals like Sikyou-Matsuri or Nanase-Purification were performed to protect those diseases and demons from invading into the capital area while Yin-Yang Philosophy came to be expanded in society. As a result women polluted with impure blood had to be banished from society as people like the untouchable, the handicapped and goblins were treated in like manner. Finally, a monster like 'Hashihime' came to be born. So we can conclude that Hashihime transformed into a witch-monster is to be interpreted as a scapegoat of a patriarchal ideology, an outcome of deepening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in society since the Middle Ages.
平安時代には、都である京都が巨大都市に変貌する過程において、多くの人口が流入され、人的・物的資源の交流が活発になり、都城の外は穢れた所とする認識が定着する。9世紀に入り宮中行事として始まった'ケガレ観'は、月経や出産を担う女性を汚らわしい存在とみなす呪術的観念に繋がれ、10世紀以降はより深化し、天皇を中心とした都の内は聖なるところと思い、都の外は疾病や賤民、鬼の居る穢れたところだという認識が深まる。 こういう認識のもとに、都の内に病や鬼魅が入れないようにするために、四境祭や七瀬祓えのような儀礼が行われ、社会的にも陰陽思想が広まる。これによって、血のケガレを持つ女性は、障碍者、賤民、鬼と同じように社会から排除され、橋姫のような鬼が誕生するのである。鬼に変わった橋姫は、このように中世以降強まった女性への差別の深化のなかから生まれた社会的イデオロギの産物だといえる。
다케토미지마(竹富島) 다네도리사이(種子取祭)의 현행 양상 및 의례로서의 지속성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1집 2017.05 pp.169-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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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네도리사이는 오키나와 본도와 야에야마 제도의 다른 이도에서도 행해지는 의례이다. 지역적인 특색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곡물 파종에 있어서 ‘길일의 파종・성장・수확’의 이상적인 과정을 읊거나 노래하는 예축의례이다. 다케토미지마의 다네도리사이는 현지에서 ‘다나두이’라 불리며, 9일간 펼쳐지는 다양한 행사가 신앙을 근저에 둔 민속 문화로서 가치가 높다고 평가되어 1972년 국가의 중요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을 받은 후, 오늘날 다케토미지마의 최대행사로 자리매김 되어 있다. 다네도리사이는 의례 자체가 갖고 있는 전통성과 함께 다케토미지마 사람들이 이를 통해 공동체로서의 일체감을 경험하며 자신들의 독자적인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지니고 거행된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은 다네도리사이 기간에 다케토미지마를 찾는 방문객들에게도 전파되고 있다. 다네도리사이의 봉납예능을 신성한 의례의 일부로 여기고 있는 다케토미지마 사람들의 인식, 향우회를 포함한 전통예능보존회의 활동, 다네도리사이에 대한 출신자들의 연구 조사 및 홍보 노력에 방문객들의 자세까지 더하여 다네도리사이는 관광자원으로서만이 아니라 마을의 의례로서 지속되고 있다.
TANEDORISAI is a sacrificial rite performed in the main island of Okinawa and attached islands of YAEYAMA. Although it may vary in each region, it usually sings an ideal process of sowing, growing and harvesting on lucky days. As TANEDORISAI in Taketomizima is called ‘TANADUI by island people and is regarded valuable as a folk cultural ceremony based on religion, it has been designated as an important intangible folk cultural asset since 1972 and is considered the greatest event in Taketomizima. Taketomizima people can experience the sense of unity through the traditional Taketomizima ceremony and have confidence in their unique culture. People who visit the island during the ceremony period can enjoy such ceremony. As Taketomizima people have recognized it as part of a holy sacrificial rite, the traditional performing arts conservation association including ardent lovers of the island has presented diverse activities, those who came from the island have conducted consistent research and investigation on it, and visitors are enthusiastic on it, it has been sustained as an important local sacrificial rite as well as it is a tourist attraction.
種子取祭は沖縄本島と八重山諸島の他の離島でも行われる祭礼である。地域的な特色はあるとは言え、基本的には穀物の播種において、'吉日の播種・成長・収穫'という理想的な過程を唱えたり、歌ったりする予祝儀礼である。竹富島の種子取祭は9日間開かれる様々な行事が信仰に基づいた民俗文化として価値が高いと評されて1972年、国の重要無形民俗文化財に指定され、今日、竹富島の最大行事として位置づけられている。種子取祭は祭礼自体が持つ伝統性と共に、竹富島の人がこれを通じて共同体としての一体感を経験しながら自分の獨自的な文化に付いての誇りをもって行われる。そしてこのような意識は種子取祭の期間に竹富島を訪ねる訪問客にも伝播されている。 種子取祭の奉納芸能を神聖な祭礼の一部と看做す竹富島の人の認識、鄕友會を含め、伝統芸能保存会の活動、種子取祭に関しての出身子の硏究調査及び弘報の努力に訪問客の姿勢も加えて、種子取祭は観光資源だけではなく、村の祭礼として持続している。
『도사 일기(土佐日記)』에 나타난 작자 쓰라유키(貫之)의 새로운 시도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1집 2017.05 pp.1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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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 일기』의 작자 기노 쓰라유키는 산문 문학이 공공의 장을 벗어나 개인의 것이 되는데 견인차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도사 일기』제작을 통해 가나 문장의 가능성을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하고 있다. 화자를 여성으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방법은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시도이며, 여기에 창작성이 내포되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을 나열할 때도 여성을 남성의 앞에 배치하고 있으며, 문학의 세계에서 비주류라고 할 수 있는 어린 아이와 뱃사공 등을 이야기의 전면(全面)에 등장시키고 있는 것도 이전에는 없던 방법이다. 또한 긴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교통의 요충지 등에서 주연(酒宴)을 피로하는 모습이 확인되지 않는다. 그와 더불어 남녀 관계의 기술이 전무한 것도 『도사 일기』의 특색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내용과 구조는 여성의 눈을 빌려 바라본 남성 귀족 중심 문학의 편협함을 지적하는 작자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는 아닐까.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도사 일기』는 도사의 지방관으로 임명된 사람의 이야기지만, 임관과 하향 시의 모습은 일절 기술하지 않고, 임기가 끝나 귀경하기 전에 행해진 송별회의 다양한 양상과 선상에서의 하찮은 일들, 도착 시의 비애감, 삶에서 느끼는 소소한 감정 등을 리얼하게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쓰라유키의 다양한 시도는 결과적으로 여성이 가나에 의한 산문 문학의 주체가 되는데 선구적 역할을 하게 된다.
Tsurayuki Kino is a significant person who changes awareness of literature of pose from Public to Individuals through Tosa Diary. The manner of developing the story with woman speaker is truly innovative. In addition, and it is unprecedented unique method that female is placed in front of male when list male and female, and kids and boatman are presented in the whole story. Author would have intention to reflect to jeer and remind the problem of male chauvinism through these ways of developing the story.
紀貫之は『土佐日記』を通して、散文文学が公共の場を離れて個人の物になるのに牽引車の役割をしている。女性を語り手にして話を展開する方法は以前にはない『土佐日記』だけの画期的な方法である。しかも、男性と女性を羅列したり比較したりするとき、女性を男性の前に置いている。交通の要所で遊女が登場する酒宴の様子なども見当たらず、男女関係を窺わせる描写もない。また、子どもや楫取などを全面に登場させていることも以前には見られなかった方法である。これらの構造には、女性の目で見た貴族男性優越社会の問題点などを指摘する作者の意図が反映されているのかもしれない。また、土佐の地方官として任官された人の話だが、下洛に関する話は一切無く、上洛の道程だけを取り扱っている。土佐を離れる時に行われた長い餞別の様相から、船上における些細な出来事、帰着時の悲哀、日常からの細々とした感情などがリアルに描き出されているのである。このような貫之の試みは、女性が仮名による散文文学の担い手になるのに先駆的な役割を果たすようになる。
하이쿠의 종교적 요소와 서정성 - 바쇼, 부손, 잇사의 구를 중심으로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1집 2017.05 pp.21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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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근세의 대표적인 하이쿠 작가, 바쇼・부손・잇사의 구를 중심으로 종교적 요소를 선별하고 분류하여 하이쿠에 나타는 종교적 풍습, 그 형태나 의미, 종교적 서정성을 고찰하였다. 우선, 3인의 하이쿠에 나타난 종교적 요소와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불사(佛事)에는 다마마츠리(玉祭り), 염불, 다이몬지(大文字), 네리구요(ねり供養) 등이 있고, 신사(神事)에는 야쿠바라이(厄払), 가구라(神楽), 이세(伊勢)의 천궁식 등이 있으며, 신불(神佛)이 민간신앙과 결합된 형태로는 지장신앙(地藏信仰), 야쿠바라이(厄払), 마메마키(豆まき), 츠키마치코(月待講), 에비스코(恵比須講) 등의 행사가 있다. 이런 종교 행사를 토대로 인간의 무병에 대한 염원, 죽은 자에 대한 애도, 신불에 대한 감사의 마음 등을 다루고 있다. 둘째, 신사불각(神社佛閣)에 관한 구는 절 이름의 유래나 역사, 전설, 일화 등과 연결하여 신의 은덕, 산사의 계절감이나 아름다움을, 신사는 신역으로서의 존엄함이나 이세 예찬 등을 주로 다루고 있다. 셋째, 수도자에 관한 구에는 호시(法師)・보(坊)・유교(遊行) 등, 승려의 다양한 호칭이 사용되었으며, 수도자로서의 품격, 고된 수양, 일상생활 등을 다루고 있다. 넷째, 신불의 존재에 관한 구는 신불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덴마텐진(天満天神), 이즈모(出雲)신사의 신, 각 지역이나 신사의 신, 도소진(道祖神), 천연두의 신 등, 다양한 신이 등장한다. 이 신들은 인간의 생로병사를 관장하는 존재, 또는 인간과 동질적인 존재로서 다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3인의 구에 나타난 종교적 요소와 서정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바쇼는 신사불각을 순례하면서 표박(漂泊)의 삶을 통한 선(禪)의 실천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만큼, 신불에 관한 다양한 어휘를 사용하고 있다. 특히, 신불의 은덕과 승려의 고단한 수행을 토대로 자신의 삶에 투영시키고 있다. 한편, 그의 구에는 혼령위로의 불사와 이세와 같은 신불습합의 종교적 요소가 많이 나타난다. 부손은 유년시절에 접한 절과 승려들, 행각생활의 영향으로 불사와 승려에 관한 지식과 정보가 많다. 이것들을 소재로 하여 사찰의 미적 풍광, 평범한 승려의 생활, 각 행사의 분위기 등을 사생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잇사는 신불에 대해 감사하는 순응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빈곤하고 약한 존재에 대한 시선은 따뜻하지만, 당시 사회에 대한 시선은 비판적이다.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모친을 일찍 여의고 계모와의 불화로 인한 30년 이상의 방랑 생활, 50대의 결혼과 천연두로 잃은 어린 딸 등,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하였다. 그는 이런 자신의 일생을 하이쿠에 담아 당시의 세태인정을 나타내고 있다.
In this paper I tried to search for the religious behavior, the pattern and meaning, and the religious sentiment of the modern time Haiku written by such writers as Bashō, Buson, and Issa by identifying and arranging their religious elements. Buddhist events in the haikus are most often associated with Tamamaturi, Nenbutu etc, which expressed condolence to a dead person and the form of the events. Shrine’s events are most often associated with exorcism, Noh dance, which expressed human’s longing for living a healthy life without any disease. Temples or temple’s names, in relation with their histories and legends, often describe thanks for the Buddha, the beautiful shape of the temples and the season in the nature. Buddhist priests were called by such names as Hoshi, Bo, and Yugyo, which expressed the lonely life and moral training as a human being, and the dignity and virtues as a priest. As for the gods of Shinto, various gods are found in the Haiku such as Temma Tenjin, the god of Izumo Shrine, the god of the area and Shinto shrine, travelers’ guardian deity, the diversity of which, in relation with the season. Bashō kept practicing Zen and led a vagabond life of pilgrimage. Therefore, he described his life using various vocabulary about the gods and Buddha. In his haikus, there are found many religious elements combining the gods and Buddha like Tamamaturi and Ise Shrine. Buson studied hard to have much knowledge and information about Buddhist priests who he kept close relations with. He described with vigor each event, human aspiration, the aesthetic scenery of the temples, and the life of ordinary Buddhist priests as well. Issa shows a conformist attitude of Buddhism obeying the gods. He had a warm heart for a poor person or a weak existence, but was critical of the society of the time. He suffered many ups and downs during his life. His life is expressed in his haikus that show well his human empathy, critical mind, and also the social conditions of the time.
本稿では近世の代表的な俳人、芭蕉・蕪村・一茶の句を中心にして宗教的要素を分類して俳句の中に現れる宗教的風習、その形態や意味、宗教的叙情を考察してみた。 まず、3人の句の宗教的要素は次のように扱われている。 一、仏事には魂祭・念仏・大文字・ねり供養などがあり、神事には厄払い・神楽・伊勢の遷宮式などがある。神仏が民間信仰と結合された行事には地蔵信仰・豆まき・エビス講などがある。このような宗教行事を用いた句は無病の願望、死霊への哀悼、神仏への謝恩などを表している。 二、神社佛閣に関する句は寺名の由来や寺の歴史、伝説、逸話などと関連して神の謝恩、山寺の季節感と美、神域としての尊さ、伊勢への礼讃などを表している。 三、仏教の僧を扱った句には法師・坊・遊行など、多様な僧の呼称が用いられ、僧としての品格や徳目、厳しい修養生活、日常生活の有様などが表れている。 四、神仏を扱った句は神仏に対して感謝する心を表している。特に、天満天神、出雲神社の神、道祖神、いもの神などのような神は人間の喜怒哀楽を管掌する存在、あるいは人間と同質的な存在として描かれている。 そして、3人の句に表れる宗教的要素と情緒は次のようである。 芭蕉は一生神社佛閣を巡り、漂迫者として禪の実践を求めていただけに、神佛に関する多様な語彙を使っている。彼は僧の厳しい修養を通してその修養の価値や神仏との交感による自然との合一を求めていた。蕪村は幼年時代に触れ合った寺と僧、行脚生活の影響によって仏事と僧に関する学問的な知識や情報が豊富である。彼はこれらを用いて宗教的行事の雰囲気、人間の願望、寺院の美的風光、平凡な僧の生活を描いている。一茶は神仏に感謝する順応的な姿勢を見せている。彼は貧しい人や弱い存在などには暖かい視線を持っているが、社会に対してはとても批判的である。農民の子に生れた一茶は継母との不和で15歳江戸に送り出された。彼の人生は波乱万丈であった。このような人生を表した彼の句には世態人情がよく表れる。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1집 2017.05 pp.241-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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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메나가 슌스이는 인정이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런데 슌스이의 인정론은 외설적 내용에 대한 치장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주류를 이뤄왔다. 슌스이의 인정을 규정하는 것은 닌조본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슌스이는 자신의 사상을 주장하기 위해 소설을 쓰지 않았다. 슌스이는 철저하게 독자 지향적이었던 프로페셔널 작가였다. 슌스이가 개척한 독자층은 독서에는 익숙하지 않으나 사랑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젊은 여성층이었다. 이런 층위를 위한 소설에 있어서 독자에게 메시지를 주고자 할 때는 연애장면과 같은 ‘당의’의 코팅이 필요하다. 또한 그 메시지도 “소탈하고 소박한” 처세교훈이었다. 외려 교훈이 외설성을 코팅하기 위한 것이라는 반론은 실질적으로 소설 속에 사용되는 교훈의 양이 외설성을 감추기에는 부적절하게 많기 때문에 기각된다. 슌스이에게 있어서 연애장면의 자유로운 묘사가 중요했으나,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교훈도 중요했다. 슌스이는 모토오리 노리나가의 철학과 같은 정도의 레벨에서의 결론은 아니나,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행위에 사랑도 포함된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슌스이의 인정론은 여성의 사랑을 긍정하였던 것이다. 이는 슌스이닌조본이 현대의 대중문학과 대중문화콘텐츠의 보편적 특징을 선제적으로 가질 수 있게 한 배경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는 신주(心中)의 묘사를 ‘음란’하다고 평가하던 시대였다. 슌스이닌조본은 간행 당시부터도 당시의 기준으로 ‘외설’적이라고 비판받는 게 당연하였다. 이러한 비판은 근대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였으나, 쓰보우치 쇼요(坪内逍遥)는 근대의 소설론을 주장하면서 슌스이의 닌조본을 높이 평가한다. 이는 슌스이의 인정론의 보편성과 가치를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Tamenaga Syunsui defined that humanity is to understand the feelings of others. However, for the spring water humanity theory, mainstream point of view, was that only a camouflage to obscene contents. Defining Tamenaga’s humanity theory is important for understanding the character of Ninjobon. Syunsui does not write a novel to insist on his ideology. Syunsui was a professional writer who was thoroughly readers oriented. Tanaka’s pioneering readers are young women who are unfamiliar with reading but are interested in love stories. In a novel intended for women, when trying to convey some message to readers, a kind of sugar coating like a romance scene was necessary. The message also “a simple and informal” life lesson. Conversely, the objection that the lesson coats the obscenity of the novel is rejected by the huge amount of lessons learned. For Shunsui, the free portrayal of romantic scenes was important, but the lessons to convey to readers were also important. Syunsui did not conclude based on a precise theory like Motoori Norinaga. but thought that love was included in the act of understanding the feelings of others. In short, Syunsui affirmed women’s love. This will cause Syunsui Ninjobon to have universal characteristics of contemporary popular literature preemptively. However, at that time it was an era when evaluating the double suicide story as being horny. in view of the standard at the time, It was natural that Syunsui ninjobon depicting love affair was criticized as being obscene. Although such evaluation continued even in modern times, Tsubouchi syouyo highly appreciated Syunsui ninjobon while insisting on the novel theory. This was also the result of acknowledging the universality and value of Syunsui’s theory of humanity.
為永春水は、人情とは他人の感情を理解することであると定義した。ところが、春水人情論は、猥褻的内容へのカモフラージュに過ぎないという観点が主であった。春水の人情を規定するのは、人情本の性格を理解するために重要である。春水は、自分の思想を主張するために小説を書いたわけではない。春水は徹底的に読者向きのプロフェッショナルであった。春水が開拓した読者層は、物読みには不慣れであるが、恋愛ストーリは好んでいた若い女性層であった。彼女ら向けの小説の中で、読者に何かのメッセージを伝えようとする場合は、恋愛場面のような一種の糖衣が必要であった。そのメッセージさえも若い女性層も容易に理解できる程度の世話にくだけた処世教訓であった。その教訓が逆に小説の猥褻性を糖衣し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いう反論は、含まれている教訓の膨大な量によって棄却される。春水において恋愛場面の自由な描写も重要であれば、読者におくる教訓も大事であったのである。春水は、本居宣長のように精緻な理論に基づいて至った結論ではないが、他人の感情を理解する行為に愛も含まれていると考えた。すなわち、女性の愛を肯定したのである。これは、春水人情本に現代の大衆文学の普遍的特徴を先制的に持たせた原因にもなる。しかし、当時は心中物語を淫乱であると評価した時代であった。男女の恋愛を描いている春水人情本は、当時の基準からみて猥褻であると批判されるのが当然であった。このような評価は近代に入っても続いていたが、坪内逍遥は新しい小説論を主張しながら春水人情本を高く評価している。これは、春水の人情論の普遍性と価値を認めた結果でもあった。
리비 히데오(リ-ビ英雄)와 양이(楊逸)문학 비교 연구 ─ 「성조기가 들리지 않는 방」과 「왕짱」을 중심으로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1집 2017.05 pp.263-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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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소외/해체와 이동, 차이와 차별, 아이덴티티 등을 리비 히데오의 「성조기가 들리지 않는 방」과 양이의 「왕짱」을 월경에 주목하여 분석한 것이다. 리비 히데오의 작품은 월경으로 인한 아이덴티티의 혼란을 잘 보여준다.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주인공 벤의 절실한 노력을 주일미영사관을 나와 안도의 집과 신주쿠로 향하는 이동으로 표출하면서 인간 내면의 갈등과 극복에 대한 노력을 보여주었고, 양이의 작품은 남편의 도박과 바람기 그리고 이혼 후 계속되는 금전적 갈취를 피해 일본인과 국제결혼 한 왕짱의 억척스러움과 친근함을 중국 내부의 차이와 차별, 국가간의 격차와 국제결혼을 둘러싼 인간의 저속한 욕망에 대한 사실주의적 표현으로 건강하게 드러내었다. 이러한 두 작품을 월경과 차이/차별 그리고 아이덴티티 혼란과 극복을 중심으로 새로운 모색/월경을 시도하는 과정을 분석하였다.
This article is the analysis to the estrangement, dismantlement and transfer, the difference and discrimination, identity on the focus of Ribi Hideo of Seizyoukiga Kikoenai Heya and Yang Yi of Wangtsang. Ribi Hideo is the text which is showed well the mixed identity by the trans-border. For the overcome of the mixed identity, Ben shows the effort of the inner of human-beings by the single lineal run away from US consulate in Japan to the Ando of home. Yang Yi of Wangtsang shows the her toughness and intimacy getting the international married with Japanese to avoid of husband’s gamble and love affair and post-divorce connecting extortion. And she showed toughness and intimacy by the real expression to the vulgar desire surrounding the difference and discrimination of the inner China and gap between the nations. This article analysed two novels of the process as focusing on the neo-overcome of the mixed identity, the difference and discrimination.
本考は 疏外/解體と移動, 差異と差別, アイデンティティなどをリ-ビ ヒデオの 「星條旗が聞こえない部屋」と楊逸の「ワンチャン」を越境に注目して分析したのです。リ-ビ ヒデオの作品は越境によってアイデンティティの混亂をよくみせているテキストであり、アイデンティティの混亂を克服するために主人公ベンの切實な努力を駐日米領事館を出て安藤の家と新宿に向かう單線的な移動を通じて表出しながら人間の內面の葛藤と克服についての努力をみせていて、楊逸の作品は 旦那の賭博と浮気、離婚の後つづいている金錢的な喝取を避けるため日本人と國際結婚したわんちゃんの逞しさと親しみを, 中國の內部の差異と差別, 國家間の 隔差と國際結婚をめぐって人間の低俗な慾望について寫實主義的な表現で爽やかに表した。このような二つ作品を越境と差異/差別、そしてアイデンティティの混亂の克服を中心して新しい摸索/越境を試圖する過程を分析したのです。
形容動詞を語基として持つ「-的」の語基制約 ─ 自然と自然的のレジスター別コロケーションにおける 分析を中心に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1집 2017.05 pp.283-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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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레지스터에 따른 ‘自然’과 ‘自然的’의 콜로케이션 분석을 수행하여, 기존의 형용동사에 的을 추가하여 다시금 형용동사와 같은 용법을 가진 ‘-的’를 생성해야만 했던 이유를 시작으로, 형용동사와 형용동사를 어기로 갖는 ‘-的’의 특징 등을 명확히 했다. 우선, 형용동사 ‘自然’은 레지스터라고 하는 측면에서는 주로 구어에서 사용되며, 용법이라고 하는 측면에서는 서술용법이 선호된다. 반면 의사형용동사인 ‘自然的’는 ‘自然’과 반대로 레지스터라고 하는 측면에서는 주로 문어에서 사용되며, 용법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한정용법이 선호된다. 그리고 ‘自然’은 형용동사 중에서도 명사에 가까운 형용동사로, 이와 같은 명사와 같은 특성에 의해서 ‘-的’의 어기로 사용되기 쉽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구어에서 찾아볼 수 있는 ‘自然’이 비교적 더욱 순수한 형용동사의 용법을 갖는데, 이를 통해 의사형용동사인 ‘自然的’ 보다 형용동사인 ‘自然’을 구어에서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사실 또한 설명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위와 같은 고찰을 기반으로, 명사와 같은 특성을 가진 ‘自然’과 같은 형용동사는 ‘自然的’와 같이 형용동사를 어기로 가진 ‘-的’와 ‘레지스터’와 ‘용법’이라고 하는 차원에서 각각의 역할을 분담하는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고 하는 점을 분명히 했다.
In this paper, we performed the collocation analysis of registers on Shizen自然 and Shizen-teki自然的. In this paper, we clarified the reason why we had to create a ‘-teki的’ with the same usage as an ‘adjectival noun’ by adding ‘teki的’ to an ‘adjectival noun’ already existing, and the features of an ‘adjectival noun’ and a ‘-teki的’ with an ‘adjectival noun’ as root. First, the ‘adjectival noun’ Shizen自然 is mainly used in spoken registers, and the narrative method is preferred. On the other hand, the ‘similar adjectival noun’ Shizen-teki自然的 is used in the written register as opposed to Shizen自然, and relatively modification usage is preferred. And Shizen自然 is a ‘adjectival noun’ close to a noun among the ‘adjectival noun’, and it can be seen that it is easy to use it as a root of the ‘-teki的’ because of the characteristics like noun. In addition, Shizen自然 which can be found in the spoken registers has a relatively more pure usage of the ‘adjectival noun’, which explains why the ‘adjectival noun’ Shizen自然 rather than the ‘similar adjectival noun’ Shizen-teki自然的 is more common in verbal sentences(spoken registers). In this paper, based on the above considerations, it is clarified that the ‘adjectival noun;Shizen自然’ with the same characteristics as nouns has mutually complementary relations that share the roles of a ‘-teki的;Shizen-teki自然的’ with an ‘adjectival noun’ as root from the point of view of ‘register’ and ‘usage’.
本稿では,レジスターによる「自然」と「自然的」のとコロケーションにおける分析を行うことで,既に存在している形容動詞にわざわざ「的」をつけることによってまたもや形容動詞のような用法を持つ「-的」を作ら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理由から始め,形容動詞と形容動詞を語基としてもつ「-的」という言葉の特徴などを明らかにした。 まず,形容動詞「自然」はレジスターという面では主に口語文で使われ,その用法の面では述定(叙述)用法が好まれる。その反面,擬似形容動詞「自然的」は「自然」と逆に,レジスターという面では主に文語文で使われ,その用法の面では比較的装定(限定)用法が好まれる。 続いて,「自然」は形容動詞の中でより名詞に近い形容動詞であって,その名詞的な特性によって「-的」の語基として許容され易くなる。また,口語文における「自然」が,比較的により純粋な形容動詞の用法として使われていて,これをもって擬似形容動詞である「自然的」より形容動詞「自然」が口語文に多く見られることも説明できた。 以上のような考察を踏まえて本稿では,名詞的な特性を持つ「自然」のような形容動詞は「自然的」のようにそれを語基として持つ「-的」とレジスターや用法(装定・限定)という面でそれぞれの役割を分担し,補い合っている関係にあることを明らかにした。
대규모횡단 코퍼스에서 보이는 일본어학습자의 중간언어에 관한 비교연구 ─ 접속조사「から・ので」의 습득과정에 나타나는 중간언어의 양상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1집 2017.05 pp.307-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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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모어가 다른 일본어학습자들의 접속조사 「から」와 「ので」의 습득과정에 나타나는 중간언어의 양상에 대해 두 가지 접속조사의 사용기준을 전항에 접속하는 항목과의 접속형태, 오용경향, 문체라는 측면에서 분석한 것이다. 본 연구의 분석을 통해 밝혀진 일본어학습자의 접속조사 「から・ので」의 습득경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일본어학습자의 「から・ので」는 「から」를 중심으로 사용되며 학습레벨이 올라갈수록 「ので」의 사용이 늘어난다. 여기에는 학습자들의 덩어리 표현이라는 중간언어, 오용의 적극적인 회피전략 등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2) 「から・ので」의 오용에 나타나는 특징으로서 의미용법 상의 오용이 거의 없고, 접속하는 형태에 의한 오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 「から・ので」의 습득에 있어 회피가능한 대체문법항목이 존재하고, 두 가지 항목 사이의 치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타 문법항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용이 적게 나타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3) 「から・ので」가 사용된 문의 문체적 측면에서는 선행연구와는 달리 「から→정중체」, 「ので→보통체」의 형태로 사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학습자에게 있어 접속사 「ですから」가 덩어리 표현으로 정형화되어 있어 문중에서도 그대로 사용되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 있으며, 이것이 오용의 회피수단으로서도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4) 「から・ので」에 접속하는 형식을 분석한 결과, 「から」의 경우 ル형식과 접속하고 있는 경향이 강하며, 상대적으로 イ형식과의 접속이 적고, 「ので」의 경우 ル형식과 접속하는 수가 가장 많았으나 그 수는 タ형식과의 접속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から」의 경우, 학습자에게 「だから」라고 하는 덩어리가 가장 강하게 존재할 가능성이 있으며, 「ので」의 경우는 「なので」, 「たので」라는 덩어리가 사용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5) 위와 같은 사용경향은 언어유형별로 크게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는 이러한 학습자들의 유니트 형성 등의 중간언어 전략이 모어와 상관없이 비교적 보편적으로 형성되고 사용됨을 나타내는 결과라 할 수 있다.
I analyzed this study from an item located about an intermediate language to appear in the acquisition process of “Kara” and “Node” of the Japanese learner who varied in mother tongue forward, a tendency of the misuse, three sides of the writing style. The results of the analysis are as follows. (1) The use of “Kara” and “Node” of the Japanese learner is carried out around “Kara”, and use of “Node” increases as a learning level rises. It is thought that the strategies that are going to evade an intermediate language, misuse lump expression of the learner positively influence it here. (2) Most of the legal misuse for the meaning is not seen, and an avoidable substitute grammar item exists in a point that misuse by the form to be connected occupies most of, the acquisition of “Kara” and “Node”, and characteristics to emerge for misuse of “Kara” and “Node” include the point where misuse is hard to relatively in comparison with other grammar items appear because the substitution between two items is possible. (3) In the side of the writing style of the sentence that “Kara” and “Node” was used for, use in the form of “Node → plain style” was seen “Kara → formal style” unlike a precedent study. “Desukara” of the conjunction hardens for a learner, and this is made a fixed form as expression, and this is because it is just used in the sentence, and the possibility that I am used as evasion means of the misuse is thought about. (4) As a result of having analyzed a form to connect with “kara” and “Node”, in the case of “Kara,” form and the tendency that I connected were strong, and there was relatively little connection with the “I-form”. On the other hand, in the case of “Node,” there were the most cases to connect with “Ru-form and Ta-form”. It is thought that the lump by the learner is formed to a learner from such a result in each item. (5) A wide margin is not seen according to a language type, and, as for the tendency to these use, as for the intermediate language strategies such as the unit formation of the learner, it is thought that the formation is used regardless of mother tongue relatively and universally.
本研究は、母語の異なる日本語学習者の接続助詞「から」と「ので」の習得過程に現われる中間言語の様相について、前接する項目との接続、誤用の傾向、文体という3つの側面から分析したものである。分析の結果は次の通りである。 (1)日本語学習者の「から・ので」の使用は、「から」を中心に行われ、学習レベルが上がるにつれ 「ので」の使用が増える。ここには学習者の固まり表現という中間言語、誤用を積極的に回避しようとする戦略などが影響していると考えられる。 (2)「から・ので」の誤用に現われる特徴として、意味用法的な誤用はほとんど見られず、接続する形による誤用が大半を占めるという点、「から・ので」の習得において回避可能な代替文法項目が存在し、二つの項目の間の置き換えが可能であるために他の文法項目に比べ、比較的に誤用が現われ難い点が挙げられる。 (3)「から・ので」が使われた文の文体的側面においては、先行研究と異なり、「から→丁寧体」、「ので→普通体」の形での使用が見られた。これは学習者にとって接続詞の「ですから」が固まり表現として定形化され、文中においてもそれがそのまま使われるためであるとともに、誤用の回避手段としても用いられる可能性などが考えられる。 (4)「から・ので」に接続する形式を分析した結果、「から」の場合はル形式と接続している傾向が強く、比較的にイ形式との接続が少なかった。一方で「ので」の場合は、ル形式とタ形式に接続する場合が最も多かった。このような結果から、それぞれの項目に学習者に学習者による固まりが形成されていることが考えられる。 (5)以上のような使用傾向は、言語類型別に大差が見られず、学習者のユニット形成などの中間言語戦略は母語と関係なく比較的かつ普遍的に形成・使用されていると考えられる。
語義変化와 類義語의 고찰 ─ 中世 기리시탄 資料의 「懐かし」 「恋し」 「思ふ」를 중심으로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1집 2017.05 pp.333-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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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稿에서는 어의변화의 종합적인 고찰을 위하여 중세 기리시탄 문헌 중, 『天草平家物語』와 『天草イソポ物語』, 동시대의 자료인 『狂言』을 중심으로 「懐かし」와 관련해서 그 유의어인 「恋し」와 「思ふ」 등의 감정어휘를 선택하여 다른 어휘와의 차이점, 그 사적고찰 등을 분석, 정리해 보았다. 이들 감정어휘의 어의변화의 종합적인 고찰을 위해 그 사적변화의 동향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懐かし」와 연결해서 유의어인 「恋し」와 「思ふ」 등의 의미의 차이점과 그 관계에 대하여 위 문헌의 용례를 분석해 보면, 「懐かし」와 유의어인 「恋し」와 「思ふ」 등의 기본적인 의미는 ʻ그립다ʼ 과 ʻ보고 싶다, 사랑한다ʼ ʻ생각하다ʼ 로 볼 수 있다. 일본의 중세는 근대 서양문물의 수용기인 큰 변화의 시대로써, 변화의 물결은 어휘 면에서도 기존의 어휘의 변화나 새로운 어휘의 생성에 영향을 주게 된다. 古代語 「懐かし」도 그 의미 특징이 「가까이 여기다, 친숙하게 여기다」라는 과거의 의미에 미치고 않고 현대어에 보이는 것과 같은 「과거의 추억이나 먼 소재의 그리움」을 나타내게 된다. 이것은 시간·공간적으로 떨어진 사람이나 사물을 생각하는 「恋し」와 「思ふ」라는 유의어가 함께 존재했기 때문에, 중세 때 「変容」의 시대를 거쳐서 혼용되다가 現代語에 보이는 의미로 어의가 확대되어 변화해 갔다고 고찰된다. 「懐かし」는 변화의 시대인 中世를 시기로 古代와 다른 의미로 변화한 어의확대의 변화 현상이며, 또 유의어인 「恋し」의 경우 가장 큰 의미는 ‘그립다’ 라 할 수 있는데, 대상이 사람인 경우에 ʻ그립다, 슬프다, 사랑 한다ʼ 등의 의미까지 나타내고 있어 의미의 확대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中世의 「懐かし」와 그 類義語인 「恋し」「思ふ」 등의 이러한 사적 고찰을 통해서 語史를 살필 수 있고, 語義変化와 意味 관계를 함께 생각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의미변화의 사적고찰과 유의어와의 비교연구를 통해서 어휘의 통시적인 변화를 볼 수 있기에 그 가치와 의의가 크다.
In this manuscript, for an integral consideration of a vocabulary transition, the centroid of [Amakusa heike] and the centroid of [Amakusa isob] and the centroid of [Kyōgen] are basically selected to discuss and analysis synonym of sentimental vocabulary ‘missing something or somebody (Koisi)‘ and ‘think of or be considered (Omohu)’, relating to ‘Natukasi’ in kirishitan literature. Specially, a sentimental vocabulary carries distinct characteristic of definition change in the comparison of others. According to kirishitan document, which is good example of this research, it was studied intensively through analyzing of its object and example. As a considering about trend of historical transition and integral consideration of sentimental vocabulary, it can be summarized as below. In relation to ‘Natukasi’, the example of the difference of definition and relations about synonym, which are Koisi and Omohu, is carefully examined Reviewing about the object of example, an origin definition of ‘Koisi’ and ‘Omohu’, which are synonym of ‘Natukasi’ is ‘missing’ and ‘thinking of (or about)’. In the middle ages an era of change, the characteristic definition of ancient language- ‘Natukasi’ has meaning of not only ‘getting closer and becoming familiar with someone’ but also ‘missing good memories in the past or something in the distance’. The reason of this is like that existed at the same time that synonym, ‘Koisi’ and ‘Omohu’, which has meaning of the thinking of someone in the distance. Thus it is considered it appears the transition of definition during middle ages. It has historical consideration about the method of definition and transition ‘Koisi’ and ‘Omohu’ in this manuscript. As a result, the transition of definition is occurred by general transition which based on historical and social facts. In addition, it is significant that the recognition of Japanese was largely reflected throughout considering of transition of definition.
本稿では中世のキリシタン文献中、当時の日本語を知る為の貴重な資料である『平家物語』と『イソポ物語』、そのほか『狂言』を中心に「懐かし」と関聯してその類義語である「恋し」と「思ふ」の意味用法と特質、その史的変化について考察した。 日本の中世では、「懐かし」をどのような意味に用いたか、「懐かし」の類義語の「恋し」と「思ふ」はどうであるか、「懐かし」と「恋し」と「思ふ」のキリシタン物での用法はどうか、意味の変化はどうか、などについて考察した。 意味用法、そして語彙の変化においては、「懐かし」という語の類義語に「恋し」と「思ふ」という語がある。「懐かし」と「恋し」と「思ふ」の三語はいくらか、ニュアンスの差があるが、歴史的に区別された意味が明確に規定されていない。 そして平家物語とイソポ物語、そのほか狂言を中心に、「懐かし」と関聯してその類義語である「恋し」と「思ふ」の意味用法と特質、その史的変化について考察した結果、それぞれの意味は ‘なつかしいʼ ‘恋しくみたいʼ ‘思う、考えるʼ に見える。 日本の中世は変化の時代で、古代語の「懐かし」の意味が 古くは ‘みちかにしたい、慣れ親しみたいの意ʼを表わし、中世をかけて後世に、‘懷旧の思いʼをいうようになる。それには、離れている人や物に覚えるその類義語である「恋し」と「思ふ」があるからである。その類義語である「恋し」と「思ふ」の場合も ‘恋しくみたい、愛するʼ ‘思う、考えるʼ まで語義の拡大の変化がみえる。それは中世と云う時代的·社会的の要因である語義の拡大の変化の一例にみえる。又、このような語彙の史的変化を通じて語彙の通時的、変化の様相が見えてその意義と価値があると思われる。 以上、本稿では「懐かし」と関聯してその類義語である「恋し」と「思ふ」についてその意味・用法と語義変化をキリシタン資料の中で『平家物語』と『イソポ物語』、そのほか『狂言』を中心に大系的に考察して明らかにした。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1집 2017.05 pp.353-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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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吳音硏究의 일환으로 法華經 諸本 중 天台宗 學僧인 宗淵上人이 1839年(天保10) 開板한 『法華經安楽行品吳漢両音』에 기재된 吳音注와 漢音注에 대해 陽聲韻만을 대상으로 하여 字音分韻表로 정리한 것이다. 字音注의 비교를 위해 吳音注와 漢音注를 모두 기재하여 자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앞으로 본 자료를 기반으로 하여 『法華經山家本』에 대한 연구 및 中近世韻書와의 비교고찰을 통해 吳音의 變容과 정착과정을 究明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As a part of study in Sino-Japanese Go-on, this paper summarized only final of type B(陽聲韻, final in -m・-n・-ŋ・-p・-t・-k etc) into Rhyme table for Notation of Go-on and Kan-on written in Hokkekyō Anrakugyōhon Go-Kanryōon( 『法華經安楽行品吳漢両音』) issued in 1839 by Jongyeon-jyōnin(宗淵上人) who is monk of Cheontae(天台宗) among a lot of Hokkekyō. For comparison, both Notation of Go-on and Kan-on were written so that they can be used as data. Based on this data, it is necessary to investigate the transformation and settlement process of Sino-Japanese Go-on through a comparative study with Rhyme Dictionary(韻書) in the Medieval age and the Modern age and studies on Hokkekyō Sangebon( 『法華經山家本』).
中世時代の韻學の發展と共に、日遠のような韻書を中心とした法華經讀誦音の改變もあったが、宗淵のような伝統的な讀誦音を中心とする傾向も共存していた。本稿は吳音硏究の一環として 『法華經』諸本の中、天台宗の學僧である宗淵上人の1839年(天保10)開板した 『法華經安楽行品吳漢両音』に記された吳音注と漢音注について、陽聲韻のみを對象して字音分韻表に整理したのである。字音注の比較のため、吳音注と漢音注とをすべて表にして資料化した。分韻表を作成する際、聲母や聲點などが中古漢語と合わない面が多かった。これらの問題点については後続研究に残す。また、この資料分韻表を始めとして 『法華經山家本』と中近世韻書との比較考察及び呉音の変容と定着過程を究明する必要があると考えられる。
現代日本語の二字漢語に見られる促音化の諸相 ─ 調和的直列派生モデルに基づく漸進的同化過程 ─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일본학연구 제51집 2017.05 pp.377-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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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화 도출적 최적성이론(Prince and Smolensky 1993/2004: 94-95)의 틀에서 현대 일본어의 한어 어근 합성어에 나타나는 촉음화의 특징을 분석하였다. 본고는 기저의 풍요성에 의거하여 입력형의 한어 어근으로 /CVC/, /CVCV/를 설정하여 각각의 입력형에 나타나는 다양한 음운현상을 조화 도출적 최적성이론의 제한된 점진적 도출로써 설명하였다. 우선 /CVC/라는 입력형에 나타나는 자음연쇄에 대해서 본고는 음절접촉을 준수하기 위한 조음방법 동화와 모음삽입이 일어났다고 논의하였다. 또한 음절접촉을 준수하는 자음연쇄에 일어나는 동화는 일본어의 말음조건을 준수하기 위한 점진적 위치동화로 분석하였다. 또한 /CVCV/라는 입력형에 대해서 본고는 모음무성화와 무성모음의 삭제라는 점진적 모음삭제를 가정하여 자음연쇄가 생성되고 이후에는 /CVC/에서와 같은 음운현상이 일어난다고 논의하였다.
The aim of this paper is to clarify the characteristics of assimilation in Sino-Japanese root compound within the framework of Harmonic Serialism (Prince and Smolensky 1993/2004: 94-95). This paper assumes both /CVC/ and /CVCV/ as input forms based on the richness of the base and analyzes various phonological phenomena appearing from each inputs with restricted gradual derivations. First, for the consonant clusters represented by the assumption of the input /CVC/, we analyzed that manner assimilation and vowel epenthesis occured to obey syllable contact. And we analyzed the place assimilation of consonant clusters which maintain syllable contact as a result of protecting coda condition. Secondly, for the assimilation with the assumption of the input /CVCV/, we analyzed that consonant cluster was generated by gradual deletion process of devoicing of root final vowel and deletion of devoiced vowel.
本研究は調和的直列派生モデル(Prince and Smolensky 1993/2004: 94-95)の枠組みから現代日本語の二字漢語という語形成に現れる促音化を分析することが目的である。本研究は基底の豊饒性に従い、入力形の漢語語根として/CVC/および/CVCV/を両方設定し、それぞれの入力形から現れる音韻現象を制限された漸進的派生から説明した。 まず、/CVC/という入力形から現れる子音連鎖に対して、本研究は音節接触を守るために調音方法の同化と母音挿入が起こると論じた。また、音節接触を守る子音連鎖に起こる促音化を説明するために、末尾子音の条件を守るための漸進的調音位置の同化を仮定して分析を行った。次に、/CVCV/という入力形から現れる促音化を説明するために、本研究は母音無声化と無声母音の削除という漸進的母音削除を仮定し、そこから派生された子音連鎖に対して、/CVC/と同様な音韻現象が起こると論じ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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