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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불살생(不殺生)과 자비(慈悲)를 근간으로 하는 종교다. 이렇게 자비와 생명살림이 핵심이기 때문에 다른 생명을 해치는 것을 대단히 엄중한 죄악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중생을 향한 수행자의 자비심은 곧 자식을 보살피는 어머니의 간절한 모성애(母性愛)에 비유되곤 한다.오늘날 환경오염에서 비롯된 생태적 위기는 한 생명의 살생이나 학대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생태계의 파괴는 지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존재들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살생과 자비라는 불교의 전통은 생태위기에 직면하면서 생태적 의미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요청을 받는다. 그동안의 생명윤리와 자비가 개인적 윤리로 한정되어 왔다면 오늘날과 같은 위기의 상황에서는 전체론적이며 생태적인 윤리로 확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대의 올바른 수행자의 삶이 되기 위해서는 불교와 선사상에 내재되어 있는 전체론적 윤리를 다시 확인하고 불자의 실천윤리로 수용해야 한다. 보살은 고통에 처한 다른 생명을 구제하는 것을 자기 자신의 일 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따라서 모든 생명의 터전인 생태계를 위기에서 구하는 것은 불살생계에 대한 가장 대승적 실천이자, 참다운 자비의 실천행이 된다. 그러므로 생태학적 담론에 참여하고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는 지혜로운 해답을 탐구하는 것은 자비와 불살생을 생명처럼 내세우는 불교의 당위적 문제이다.
팔만대장경으로 일컬어지는 불교의 經書는 모두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서 만들어진 法門이다. 경전은 다 사람의 마음을 밝히기 위한 도구로써 그것은 마치 달을 가리킨 손가락이나 강을 건너기 위한 배와 같은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禪宗의 宗旨가 담겨져 있어서 선수행의 지침서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선으로서 중생교화의 방편을 제시하고 있는 경전을 禪經이라고 한다.중국과 한국선종에서 애독되었던 여러 선경 중 능엄경은 중국 선종에서는 당대이후 송원명을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와 여러 종파를 가리지 않고 널리 애독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남송원대를 거치는 사상사적 전환과정에서의 선종계의 간화선 성행은 그 내용이 수행에 대해 이론과 실천 부분에 있어 직설적으로 설명한 부분이 많으며, 또한 禪旨와 계합하는 바가 있는 능엄경의 사상적 위치를 급속히 향상시켜, 중국선종의 중요한 소의경전의 하나로 확립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 선종에서도 여실히 나타나는데, 고려 중기 선종의 부활과 간화선의 수용이라는 새로운 변화과정에서 폭넓은 사상적 기반을 마련하는데 능엄경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까지도 능엄경은 조계종의 강원 교과목의 사교과 중 맨 처음에 두고 선학인의 필독서로 규정되어 오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禪思想 특히 『金剛經』을 중심으로 한 禪經에 드러난 선사상을 고찰함으로써 현대과학 특히 현대물리학을 중심으로 한 자연과학과 선의 회통을 시도하였다. 선의 과학적 이해의 한 시도로서 『금강경』에 드러난 生物觀과 物質觀을 과학적으로 살펴보았으며, 이들과 현대과학의 생물관과 물질관과 비교하여 보았다. 다아윈의 進化論을 바탕으로 생물의 진화발달 과정이 비슷한 유형끼리 분류한 魚類, 鳥類, 兩棲類, 爬蟲類, 哺乳類의 五類分類와 불교의 輪廻論을 바탕으로 생명의 탄생과정이 비슷한 유형끼리 분류한 四生分類 즉 난생, 태생, 습생, 화생의 분류는 상호배타적이지 않으면서 각각 분류상 완전성을 취득하여 상호호환적임을 살펴보았다. 또한 그리스 자연철학의 原子論에서 시작되어 현대물리학의 초끈이론에 이르는 과학의 물질관에서는 ‘물질의 근원을 소립자다, 파동이다, 에너지다, 혹은 끈이다.’라고 하는 관점과 불교의 물질관에서는 ‘모든 물질은 실상이 아니며, 허상이다.’라고 주장하는 관점과 비교 검토하여 보았다. 만약 이러한 불교의 생물관 및 물질관이 충분히 과학적인 것으로 밝혀진다면, 과학자들은 禪修行을 과학의 방법론으로 수용하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과거 약 15년 동안 현대 서양사회에서 명상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불교의 성장세는 가히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선과 과학의 학술적 만남은 초기 단계로 볼 수 있다. 양 분야의 상호접근이 활발하여 불교의 과학적 이해와 과학의 불교적 이해가 학술적으로 이루어질 때 불교는 敎化의 현대적 창구를 마련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불교의 응용성을 높여갈 수 있고, 과학은 미래의 연구방향에 대하여 불교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또한 불교의 방법론 즉 禪修行을 원용할 때 과학의 혁신적 발전을 이룰 수 있겠다. 이러한 시도들이 다양한 禪典을 통하여 이루어져 선과 과학이 선수행의 방법론으로써 회통하여 함께 발전할 때 우리는 현대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팽배한 총체적인 위기를 심리적 정신적으로 극복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과학기술을 새로운 패러다임 안에서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 의심치 않는다.
현대의 의학상식에서 볼 때 이견의 여지가 있지만 智는 1400년 전 당시의 醫學에 정통하고 있었고 특히 정신상의 병상과 치료법을 규명하는 방법으로 합리적이고 학문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할 것이다. 智는 四大로부터 구성된 선천적인 신체기능에 즉한 治病法을 설한 것이다. 우리들의 심리 작용에 의해 疾病을 對境으로 治病하는 것이다. 藥物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治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 그 자체의 본래 가지고 있는 기능에 기인해서 일상생활 그 자체를 治病으로 전환해 가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리고 止觀에 의해 治病해 가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해준 것이다. 그래서 智는 병의 원인과 그 처방을 6가지로 설하고 있으며 수행자의 나침반으로 삼을 수 있도록 제시해 주고 있다. 그리고 사종삼매의 十乘觀法을 가장 이상적인 치료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과연 석가모니 붓다는 수정주의(修定主義)를 버렸는가」불교 수행의 거의 대부분은 선정 수행으로 짜여져 있다. 그러므로 모든 불교의 가르침은 선정론으로 귀결된다 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불교학 관련의 책에서 ‘석가모니 붓다는 수정주의를 버렸다’라는 표현이 여기저기에 나타나 있다. 심지어는 국내 불교학 연구의 중심 역할을 하는 동국대의 대표적인 불교 개론서조차 명백한 사실처럼 기술되어 있으며 계속해서 또다른 형태로 비약적인 주장이 재생산되어 있다. 본고는 이러한 주장의 연원이 일본학자에 있음을 밝히는 것과 함께 다시 이러한 잘못된 이해가 한국불교학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선정주의이고 수정주의이다. 경전의 어느 곳에서도 선정이나 수정 자체가 경시되어 쓰이거나 부정적인 함의로 쓰인 언급이나 맥락을 찾아볼 수 없다. 만약 ‘붓다가 수정주의를 버렸다’라고 한다면 더 이상 선정 수행을 닦지도 않았을 것이며 불교 수행 가운데 중심을 이루는 실천법으로 강조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선정을 버린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없다. 단적인 예로 석가모니 붓다는 선정 수행을 통해 열반 해탈을 성취했고 여래의 본질로써 10력 가운데 하나인 선삼매력(禪三昧力)의 구족이나 반열반 시의 구차제정의 언급은 붓다의 마지막 삶까지 선정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붓다의 삶은 근본적으로 선정과의 분리할 수 없다. 교리적으로도 계 정 혜를 떠나 열반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삼학의 중심은 8정도의 정정진, 정념 그리고 정정으로 모두 수정(修定)이고, 반야바라밀 가운데 선정 바라밀도 이에 해당된다. 다시 선정주의와 수정주의는 ‘선정의 완성’을 의미하는 선정 바라밀이라는 말에서도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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