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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발생한 천태종은 섬세한 사상체계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침을 거듭하였다. 이는 한국 천태종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그 사상을 온전히 계승하지 못한 점에 기인한다고 하겠다. 그것은 천태교관이 가지는 특성인 다양성과 총합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따라서 본 논문은 천태교관을 종합적으로 고찰하기 위한 방향성을 재고해보고자 한다.첫째, 천태사상은 복잡하다는 선입견을 지울 수 없다. 차제와 원돈, 교학과 실천, 그리고 수반되는 복잡한 방법들이 함께 섞여 있어 입문자들의 이해에 어려움이 있다. 물론 지의는 다양한 근기를 위해 시설했다고 하지만, 그 다양성들이 총합적 회향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쉽게 알 수 없으므로 천태학은 또한 어렵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인도인들의 분류적 사고와 이를 완충하려는 천태의 총합적 사고가 시도되었지만, 여러 경설이 중국에 소개되는 시점의 과도기적 역할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둘째, 중국선종에서 보듯 중국인들의 사고는 번쇄한 분류보다 간명하고도 현실적인 부분을 원했다. 천태학은 지나치게 도식화되거나, 法數 개념에 충실하거나, 복잡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 다양성은 곧 백과사전과 같아서 어느 일부분을 통해 교관의 전체적인 구도를 이해하는데 있어 어려움이 수반된다.셋째, 현재의 천태학 연구는 연구자들에 의해 어느 한 부분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므로 천태교관에 대한 종합적전체적인 고찰을 해볼 기회가 드물었다. 따라서 천태교관의 심층적 이해를 천태사상의 구조를 알아보는 시도가 꼭 필요한 것이다.넷째, 본 연구는 현대 한국의 중창 천태종의 대부분 사찰 법당에서 회삼귀일과 삼제원융의 종지를 내세우고 있음에도 그 연구가 미흡했다는 점을 들을 수 있다. 천태종의 종지 연구를 위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긴요한 논문이라 하겠다
이상 본고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慧諶은 특히 看話禪的 方法과 視覺을 가지고 풍부한 禪法들을 소화해 내어 조사로서의 기개를 드날렸다. 교학적 내용도 시종일관 선적 기틀로 재편하여 활용하였음을 보이고 있다. 한편, 혜심의 저서 중『眞覺國師語錄』이 그의 看話一門 思想을 직접 살펴 볼 수 있는 자료임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특히 법어와 편지글인 書答에서, 그가 승속을 불문하고 入寺者들에게 話頭와 禪詩를 참구하도록 종용하고 있음을 확인 하였다.특히 Ⅱ장 話頭參究法과 Ⅲ장 禪詩에 나타난 話頭參究에서는, 話頭參究法과 禪詩가 표면상으로는 평범한 듯이 보이지만, 내용상으로는 무한한 함축성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고찰하였다. 이러한 話頭參究法과 禪詩를 통하여 法語와 禪詩가 어떠한 말, 어떠한 형용이 되었든지간에 그 근원은 한결같이 禪의 진리에 통하고 있으며, 言語를 초월하여 모든 分別을 없애고 形式을 없앤 다음 自覺의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十乘觀法의 수행규정에 관한 논리구조는 비록 觀陰入界境段의 수행규정을 무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湛然說을 따르고 있다. 湛然系의 학설에는 中根의 행자가 十乘觀法의 前七法을 수행해야 하는 觀禪定境의 수행규정을 채용하고 있다. 諦觀系는 前六法을 수행해야 하는 觀病患境의 규정에 의거하고 있다. 그러나 上根이 觀不思議境의 一法만 수행한다는 점에서 두 계통은 일치하고 있다. 그 범위내에서, 觀不思議境이 十乘觀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위를 점하는 것으로 존중된 것이다. 그래서 觀不思議境의 一法에 특별한 意義를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분야에 많은 연구성과가 있는 安藤俊雄의 天台學과 池田魯參의 摩訶止觀硏究序說등에 의하면 이러한 구분을 비판하고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安藤俊雄의 설과 池田魯參의 설을 살펴보면 둘 다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上根의 圓頓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면 천태종이 자랑하는 ‘모든 근기의 多方便的 수용’이라는 특성을 잃을 염려가 있다. 圓頓이냐 아니냐는 十境十乘觀法 가운데에 어느 觀境 어느 觀法을 이용하느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法界의 不思議한 동일성과 一念三千說의 互具性을 一心三觀의 자세로 일관되게 관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의해서 결정된다. 智의 互具主義는 마음과 세계와 깨달음에도 다 응용되므로, 十境과 十乘觀法의 하나 하나가 다른 九境과 九乘觀法을 포함하고, 그러한 觀心은 그대로 圓頓觀이 된다. 그렇지만 실제적 수행에 있어서 이러한 一心三觀의 자세로 일관되게 觀하게 되는 것이 잘되는 수행인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는 수행인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차이를 智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예리하게 구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上根三法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지난 반세기 동안 강대국의 문물이 여과 없이 물밀 듯이 밀려오면서, 국민의 정서와 생각은 급격히 많은 변화(無常)를 가지게 되었다.6.25 동란 후 가난하고 힘들었던 우리에게 자신의 종교를 전해준 강대국에서는 막상 사향 길을 걷고 있는 기독교나 카톨릭 등의 종교가 유독 이 땅에서는 번성하여 세계의 가장 큰 지점이 한국에 존재하게 된 사정은 무엇이며, 이 땅을 이끌고 있는 서양교육을 자신의 것 인양 교육받은 지식층이나 대중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들이 광적으로 서양에서 전래 된 자신들의 종교를 선전하는 모습들을 볼 때, 가난해서 우리를 보호하거나 지킬 힘이 없었으며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했으며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서슴치 않던 세태가 먹고 살만한데도 여전히 지속되는 것을 보면 앞으로 이 나라의 미래가 심히 염려스러운 실정이다.뿐만 아니라 강대국들이 전해준 종교는 단순히 종교와 가르침을 전해준 것이 아니라, 그 강대국에는 한국에 전해준 종교의 본부가 있어, 매달 우리 국민의 수입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외국으로 유출되고있으며, 그 결과 우리보다 훨씬 부강한 강대국들을 매달 보태주는 웃지 못할 현실에 대한 뼈아픈 각성도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여기 부처님의 중도(中道) 가르침을 통하여 물질과 정신이 양극단을 달리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고,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통하여 오늘날 우리가 맞고 있는 현실 상황의 원인(因)과 과정(緣)과 결과(果)에 대한 바른 분석으로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는 안목에 도움이 되고, 미래의 방향 설정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불경의 대부분은 무명에 의하여 어리석은 마음을 지혜로운 밝은 마음으로 깨달아 나아가도록 하고 있다. 특히 이 『金剛經』은 최상의 깨달음의 마음 즉 阿多羅三三菩堤心을 일으킨 사람에게 그 마음을 어떻게 머물며, 어떻게 항복 받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명쾌하게 대답해주고 있다.먼저 잘못된 마음을 항복 받는 수행이란 무엇인가?我의 실체를 바로 아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어리석은 我는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에 집착하여 我의 실상을 바로보지 못한다. 만약 마음이 깨끗하고 청정하여 지혜롭다면 모든 상의 실체는 고정된 相의 실체가 없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我의 실체를 통달한다면, 無我相無人相無衆生相無壽者相이 되고, 無我見無人見無衆生見無壽者見이 되어 진실된 보살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고정된 상의 실체는 없기 때문이다. 이 경의 말미에 “一切有爲法은 如夢幻泡影이며, 如露亦如電이기 때문에, 應作如是觀하라”고 가르치고 있다.그러므로 철저히 我의 相이 無我임을 깨닫는 수행이다. 그 다음 어떻게 그 마음을 바르게 머무는 수행을 해야 할 것인가?我의 실체가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의 집착에서 벗어나 있다면 모든 중생을 차별 짓지 않기 때문에 자비심으로 가까이 다가 갈 수 있다. 그러므로 보시를 행하되 응당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하게 되며, 머무는 바 없는 자유자재의 보시행은 그 어떤 복덕 보다 크다는 것이다. 보살이 청정한 마음을 일으켜 나아가는 길은 모든 경계 즉 色聲香味觸法에 머물지 않고 그 마음을 낸다.그러므로 이러한 보살은 일체의 相에 초월하여 머무르기 때문에 阿多羅三三菩堤心을 얻게 된다.이처럼 이 경의 핵심은 無我를 깨달아 “應無所住 而生其心”을 통해서 보살행을 함으로써 최상의 깨달음의 마음 阿多羅三三菩堤心을 얻는다.이 최상의 깨달음의 마음은 어리석은 마음을 멀리 여이고 지혜로운 마음이 되어 언제 어디서나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는 보살이 되는데 있다.우리가 어리석음으로 방황하는 것은 위 경전에서 보았듯이 我의 실체를 바로보지 못하고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에 집착하여,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위의 논문에서 이러한 사례를 분석하면서 얻은 결과는 자기 자신을 과거의 생각이나, 미래의 생각에 유난히 집착되어 있는 사람은 마음에 큰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마음의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서, 이 경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我의 실체인 無我를 깨닫고 마음에 집착을 여인 다면 허상에 얽매여 고통 받는 이들의 마음을 치유 할 수가 있는 것으로 확인 할 수 있었다. 이 경은 적어도 최상의 깨달음은 얻도록 우리를 인도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어리석은 마음을 지혜로운 마음으로 나아가게하고, 집착에 의해 고통 받는 이들을 마음을 치유하는 데는 좋은 경전임을 확인 할 수 있다.
宗敎는 죽음을 비롯한 인간에게 내재된 많은 모순과 문제들에 대한 불안감의 해결을 위해 존재하며, 宗敎儀禮는 그러한 인간 제반 고민의 해결을 위해 제시된 궁극적 목적을 향한 순차적 과정의 정형화된 행동규범으로 해당 종교의 인간관, 시간관, 내세관 등을 내포하고 있다. 喪葬儀禮 역시 종교별로 그 방법과 의미를 달리하는데 佛敎의 상장의례는 불교의 궁극적 목적인 解脫을 위한 방편으로 표현되고, 의례를 중시하는 儒敎의 경우 그 목적인 仁과 孝의 실천을 복잡한 상례의식의 과정을 통해서 표현한다. 불교식 상장의례는 死者에 번뇌와 업장을 소멸하고 불생불멸하는 열반에 이르라는 기원과 生者도 죽음 이후에 같은 길을 걸을 수 있기를 염원하는, 처음부터 그 마지막 순간까지 관조와 깨달음을 촉구하는 법문으로 이어지는 특징을 갖는다.葬法은 그 시신을 보존 또는 환원하는 방법에 있어 각자 주어진 기후와 토질 등 자연 지리적인 환경과 문화와 종교적인 습속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 되어왔다.유교식 埋葬法은 보다 넓은 공간을 장기간 死者에 할애하고자 하는 반면에, 불교에서 다비로 표현되는 火葬法은 짧은 시간 동안 공간의 활용을 극대화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용적인 특징을 갖는다. 이에 拙稿는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고비용ㆍ저효율이던 기존의 장례문화에 대한 대안으로 불교의 상장의례법인 다비의 현대적 활용방안을 제시하였다.
이 논문은 논문의 제목이 말해주듯 일행삼매의 연원을 추적해 보고, 전개된 양상을 조사해 봄으로써 그 의의를 살펴보고자 함에 있다. 소논문의 특성상, 시대로 보면 隋에서 唐代로 한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논문은 天台의 출생년인 538년에서 圭峰宗密의 입멸년인 841년에 걸쳐있다. 논의의 순서로는 일행삼매의 意義와 功能에서 시작하여 일행삼매를 수행하였던 몇몇 선사들, 즉 天台와 道信, 信秀와 慧能, 圭峰宗密의 순으로 언급하였다. 일행삼매는 一相인 法界(法界一相)에 마음을 고정하여 흔들림이 없는 삼매이다. 그것은 불안이나 동요가 없는 마음을 필요로 한다. 문수반야경 등을 기원으로 하는 일행삼매는 여러 수행자들에 의해 그들이 처하였던 환경과 견해에 맞추어 적절히 선택되고 변모되어 왔다. 예를 들면, 혜능은 그의 새로운 견해로, “일행삼매란 언제 어느 때나 곧은 마음, 즉 ‘直心을 행하는 것”이라 한 것과 같다. 물론 그 근원조차 완전히 변한 것은 아니었다. 禪家에서는 흔들림이 없이 좌선을 수행하였으며 淨土系에서는 일심불란하게 염불을 수행하였다.생각컨대 일행삼매만이 최상의 삼매수행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그러나 경전이나 이 삼매를 수행하였던 선사들의 법어를 통해보면, 일행삼매는 모든 삼매 수행 가운데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최상의 길 중 하나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우리의 본성을 볼 수는 없는 것이니, 왜냐하면 누구나 삼매를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며, 더군다나 일행삼매의 最高性을 증명하기란 곤란한 것이 이 논문이 동시에 지니고 있는 한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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