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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의 국가적 위기 속에서 최제우가 창도한 동학은 종교, 사 상적으로 진공상태에 빠진 당시 농어민대중에게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는 동학이 지배층의 탄압, 부패와 외세의 사회경제적 침략에 따른 위기를 구할 수 있는 참신한 메시아적 존재로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학사상은 기존 봉건사회 질서와 지배세력의 기득권을 위협 하는 원리와 요소로 인식되어 제1세 교조 수운은 혹세무민의 죄목으 로 처형당하였다. 이후 동학의 교세는 잠시나마 위축되었으나 그의 제자인 해월 최시형(1827-1898)에 의해 1870년 후반에 이르러는 교단의 지도체제가 확립되었고, 동학의 기본경전이 간행되었으며, 동 학의 주요 종교의식과 제도가 확립되면서 그 교세가 점차 확대되었 다. 이 과정에서 동학에 대한 탄압은 계속되었다. 이에 1890년 초 에 들어서면서 동학교단은 교조신원운동이라는 합법적인 청원, 공인 운동을 전개하여 국가로부터 인정받고자 하였다. 그러나 복합상소에 의한 왕의 호소에 대한 직접 상소마저 실패하게 되자 그들은 교조신 원운동이라는 온건한 종교운동의 범위를 벗어나 과감히 정치적 성격 을 띤 집단적 민중운동으로 전환하여 갔다. 해월 중심의 교도들은 보은집회를 개최하였고, 이 시기 전라도 금구현 원평에서도 금구집 회가 열리고 있었다. 금구집회는 수운의 신원을 위해 계획 실행된 종교적 성격의 보은집회를 척왜양의 기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정치적 집회로 전환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특히 고창태생으로 茂長에서 대규모의 봉기를 실현시킨 민중혁명가 녹두 전봉준을 주축으 로 한 금구집회는 이후 동학지도부의 노선 과 달리하면서 투쟁의식을 강화해 동학농민혁명운동의 주도적이고 독자적인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곧 동학의 교조신원운동은 각 큰 집 회를 통해 반봉건, 척왜양창의의 반외세의 기치를 내건 정치적 대정 부 투쟁으로 발전하면서 이후 민족의 근대적 사회개혁을 실현코자 한 동학농민혁명운동의 이념적, 조직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동학접주 전봉준(병호․명숙․泳準․녹두)은 유교의 교양과 수운의 동학사상 을 익힌 선비로 30대 후반 고부민란때 수천명의 동학농민군을 이끌 고 관아를 습격, 자유 정의 진리의 반봉건․반외세․반부패에 반기 를 들고 나섰다. 그러나 고부군수의 탐학이 중지되지 않자 같이 고 향인근인 고창 무장에서 4천명의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대규모의 전 쟁형태인 제1차 동학농민혁명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는 인간의 오륜 오상, 四維 등을 살리는 유교의 인간성회복과 동학에서의 내 것을 지켜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보았으니 이는 그가 외세를 배척하려는 동학사상에서 출발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곧 선비정신을 구비한 훈장 접주로서 현실개혁의 변혁사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혁명 적 투쟁이었음을 분석적으로 해석 평가해 볼 수 있겠다.
At the end of 19th century, korean society confronted a big crisis caused by western impact and exploitation of feudal govern class. Meantime Choi Jewoo attained spiritual enlightenment which contains principle of humanism, anti-feudalism and doctrine and independence, Donghak. This idea was spreaded in korean people because it awakened them to realize social absurdity and to demand their human rights. But the government executed Choi Jewoo because they accepted Donghak as a menace of their interest. Even the execution, the Donghak organization was well developed. They organized their association, published their sacred books and settled their religious ritual. Consequently many people joined in Donghak but this provoked another suppression of government. To obtain the freedom of faith, Donghak organization appealed to government for remission of Choi Jewoo and demonstrated in 1890. Despite of their efforts including appeal to the king, they could not achieved their final goal. And religious movement became social and political movement. Donghak believers collected in Boeun and Keumgu. The Keumgu congregation, lead by Chon Bongjun, developed into political movement which insist national independence against western and japanese power, and soon became main influence of Donghak peasantry movement despite of Donghak organization leading group's moderate opinion. Chon Bongjun, the leader of Keumgu congregation and Donghak peasantry movement, was an intellectual who learned Choi Jewoo's idea with confucian background. He leaded Kobu rebellion in which thousands of farmers participated because of corruption of provincial governor. As corruption had not been stopped, he ession . Such movement became anti-government struggle and ssion he raised with revolt, the first Donghak peasantry movement, leading 4000 peasantry army. His idea of rebel was based on confucian humanism and Donghak's independent id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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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동학농민혁명운동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동학의 후 천개벽사상이 갖는 궁극의 목표와 이것의 실현 방법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최시형의 단계에 이르면 동학사상은 도덕지상주의적인 종교성과 인본주의 사회사상을 아우르며 근대적 인본주의의 성격을 강화하게 된다. 이러한 근대적 성격은 갑오동학농민혁명운동을 전국 적으로 확대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갑오동학농민혁명이 고부 에서 시작한 것은 이 지역의 높은 생산성과 이에 따른 탐학에 있었 다. 고부농민봉기에 대한 탄압으로 봉기는 무장 지역으로 확대되었으 며, 이는 전라도 일대로 퍼져나갔다. 봉기가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지역의 동학 조직과 지역 특유의 반골 정신에 기인한 바 크다. 이 들이 포고한 창의문은 전통적인 유교의 가치관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농민과 동학교도의 광범위한 호응을 얻었다. 이후 봉기가 발전하면서 동학농민군은 봉건적 신분제 폐지와 부패한 집권세력 응징을 통한 새 로운 정치질서 구현이라는 목표를 선언한다. 또한 이들은 삼정문란으 로 인한 경제문제의 해결에 주력하였다. 이는 곧 동학의 인본주의적 후천개벽사상이 구체화된 것이었다. 이러한 봉기의 전개과정은 근대 적 민중의식의 성장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To understanding the historical meaning of Donghak peasant movement, we have to begin with Donghak's messianic reformist idea and its way of actualization. Choi Sihyeong developed Donghak containing human social idea as well as moral religious idea. Such modernity made Donghak peasantry movement spread nation-wide. It began in Kobu because of Kobu's high productivity and also worst corruption in this area. Suppression on Kobu peasantry rebellion widened uprising into Mujang area and into all Cholla Province. Donghak organization and revolt nature of people in this area were base of such phenomenon. Leaders of this movement declared a manifesto which emphasized traditional confucian value. This did appeal to peasants and Donghak believers. Then they pronounced next goal-new political order actualized by abolition of feudal caste and overthrow of corrupted govern class. They made effort to resolve the economic problem caused by inequal taxation. This effort was realization of Donghak's messianic reformist idea. And the development of uprising shows the growth of idea of modern peoples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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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은 民權 民生의 바탕 위에 우리 민족의 자주의식과 자주독립의 정신적 근간을 이루고 人權 및 자유의 존엄 성을 일깨워준 이 나라 최초의 민권운동이며 농민을 위주로 한 민중 항전으로서 새 역사 창출의 민족적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엄청난 역사적 혁명을 주도했던 전봉준의 태생 과 성장에 대해서만은 그동안 여러 설이 분분한 채 혼미일색이었다. 더욱이나 황토현전적 등 古阜 지역이 당시 역사의 현장이 되고 보 니 전봉준도 역시나 고부 사람일 것이라는 보편적인 推論에 의해 근 래에까지 그렇게 여겨져 왔었으나, 이에 반해 高敞 堂村 태생설이 또한 東學史의 기록에서까지 끈질기게 제기되고 있어 이곳에 살고 있는 향토사가의 입장인 필자로서는 고창문화원장을 맡게 된 1963 년이래 수십년동안 이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전봉준의 태생설 규명에 혼신의 정을 다해왔었다. 물론 전봉준은 결과적으로 역적행위의 중심인물이 되고 있어 三族 을 멸한다는 당시의 제도적장치하에서는 그 입증자료가 後事가 두려 운 주변사람들에 의해 철저하게 인멸해버리는 습례가 있어 증거확보 가 극히 난감한 현실임을 간파하게 된 필자는 전봉준의 인적사항 흔 적을 찾는 방법으로 그가 생존시에 간행된 족보기록에 초점을 두어 이에 주력을 다한 결과 丙戌譜(1886년 간행)를 찾아내고 壬戌譜 (1862년 간행)의 간행사실을 확인하게 되어 우선 확보된 병술보의 기재사실을 근거로 고창 당촌 태생설을 전국향토문화연구발표회 (1989. 10. 26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발표함으로써 이후 전봉준의 당촌 태생이 확실시되었는데, 지난 2003년 12월 19일 정 읍에서 실시한 「동학농민혁명 정신선양을 위한 학술토론회」를 통해 우윤(전주역사박물관장)의 「전봉준장군 출생지 정립」논문에서 전봉 준은 고부 南部面 鎭長門下 次福里 근처에서 출생하여 유년기에 고창 당촌으로 이주하였다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됨에 그동안 평생을 발로 뛰어 현장조사 위주로 고창 당촌 태생설을 주장하였던 필자는 1980년에 기히 확인해 둔 임술보의 기록 제시를 근거로 하여 확고 한 고창 당촌 태생설을 재 규명 해내고자 2004년 10월 6일 고창청 소년수련관에서「동학농민혁명과 고창과의 관계정립을 위한 학술회의 」를 통해「전봉준의 가계와 태생설에 대한 재조명」의 논문으로 아래 와 같이 고창 당촌 태생임을 재조명한다.
The Donghak Peasantry Movement in 1894 was the first people's right movement which wakened korean people to the idea of independence and human right. But we have very little knowledge of the birth and growth of Chon Pongjun, the leader of this movement. Since main field of the Donghak Peasantry Movement was Kobu, so most studies supposed that Chon Pongjun was born in Kobu. But, we can find some description which expalins that Chon Bongjun was born in Kochang Dangchon in Donghaksa (history of Donghak). Chon Bongjun was executed as a traitor, most of documents concerns about him were eliminated. So I analyzed the genealogical table of Chon clan in 1886 (Byeongsulbo, 丙戌譜) which indicates his born place is Kochang Danchon. Then I found the genealogical table of Chon clan in 1862 (Imsulbo, 壬戌譜) which shows he had been born in same place. By these two documents, I can conclude Chon Bongjun's native place was Kochang Danchon, despite many other theories concerns this prob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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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중국 배상제교(拜上帝敎)의 신관과 한국 동학의 신관 (神觀)을 비교한 것이다. 배상제교는 태평천국 운동을 이끌었던 배 상제회의 종교로 홍수전(洪秀全, 1814-1864)이 서양의 기독교를 자 기 나름대로 재해석한 종교다. 배상제회 회원들이 섬겼던 최고신 ‘황상제(皇上帝)’와 동학에서 섬긴 최고신 ‘한울님’의 상호비교를 통 해서 이 두 종교의 신관을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특히 이 논문은 홍수전의 신비체험 자료와 최제우(崔濟愚, 1824-1864)의 신비체험 자료를 분석하여 그 가운데 나타난 신에 대한 설명을 종합 검토하였다. 홍수전의 경우는 햄버그(T. Hamberg)의 저 술 The Visions of Hong Siu Tsheun and Origin of the Kwang si Insurrection(Hong Kong, The China Mail Press, 1854)에 나오는 신 비체험 을 주로 분석하고 太平天日과 그의 형들이 지은 王長兄次 兄親耳親目共証福音書를 보조적으로 검토하였다. 최제우의 경우는 「 안심가」, 「포덕문」, 「논학문」, 도원기서 , ‘공술기록’, 동학 주문 등에 묘사된 신비체험 내용을 중심으로 그의 신관을 살펴보았다. 결론은 공통적인 모습과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누어 모두 아홉 가지 항목으로 정리하였다. 1) 공통적인 모습: ① 천신(天神)적인 신, ② 민간신앙의 샤머니즘 적인 신, ③ 기독교적인 신, ④ 민족적인 신, ⑤ 슬퍼하는 신, 무능한 신, 아버지 신, 2) 서로 다른 모습: ① 다신론적인 신, 유일신적인 신, ② 초월적 인 신, 내재적인 신, ③ 혁명의 신, 개벽의 신, ④ 무서운 전쟁 의 신, 자비로운 교육의 신. ‘천신적이다’, ‘혹은 기독교적이다’라고 하여 ‘∼적이다’라는 표현을 쓴 것은 ‘천신 그 자체는 아니다’, ‘기독교의 신 그 자체는 아니다’라 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황상제나 한울님은 모두 ①번부터 ⑤번까지의 성격을 지니고 있고 ⑥번 이후에 제시한 성격도 부분적 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 모습만을 가지고 그 모습을 한정 시킬 수는 없다. 서로 다른 모습의 ①부터 ④의 경우 두 신의 성격을 대비적으로 살펴보았다. 예를 들어, 홍수전의 신은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 지만 다신론적이 성격이 강하다. 즉 많은 신들이 황상제 주변에 존 재한다. 한편 최제우의 신은 샤머니즘의 다신적인 환경에서 발생하 였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유일신의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홍 수전의 신은 초월적인 모습이 뚜렷하다. 최제우의 한울님은 초월적 인 모습도 있기는 하지만, 홍수전의 황상제에 비하면 내재신의 성격 이 강하다. 홍수전의 신은 또 혁명적인 신이다. 그가 반란을 일으켜 태평천국 의 세운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신은 혁명을 수행하는 신이 고 따라서 매우 전투적이다. 그러나 최제우의 한울님은 세상을 ‘개 벽’하는 신이다.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의미에 있어서 혁명과 개벽은 비슷하지만 혁명은 인위적인 반면에 개벽은 ‘자연적’이다. 인 간의 입장에서 볼 때 개벽은 절대자의 의지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 다. 그래서 수동적인 의미가 강하다. 그러한 입장이 반영되어서인지, 최제우 신의 모습에는 자비로운 신, 인간을 가르치고자 하는 교육의 신으로서의 모습이 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신에게 정성을 다 하고 신의 가르침을 잘 익히고 따름으로써 새로운 개벽을 맞이하는 것이다.
This paper compares the view of God between the God Worshippers of China and Dong-Hak of Korea. The God Worshippers leaded by Hong Xiu Chuan(1814-1864) raised Taiping Revolution. Hong Xiu Chuan established the religion of The God Worshippers through reforming Christianity. Dong Hak was established by Choi Je woo(1824-1864) in 1860 of the late Chosun Dynasty. This paper attempts to compare between Huang- Shang-Di and Han-Ul-Nim. The former is the absolute god worshipped by The God Worshippers, the later is the absolute god of Dong-Hak. In particular, the paper examines the description about the gods in the document on the mystical experiment of Hong and Choi. Concerning the Hong Xiu Chuan's view of God, this paper mainly uses the T. Hamberg's book The Visions of Hong Siu Tsheun and Origin of the Kwang si Insurrection(Hong Kong, The China Mail Press, 1854). Concerning the Choi Je Woo's view of God, this paper uses An-Sim-Ga, Po-Deok-Mun, Non-Hak-Mun, and so on. The paper concludes Hong's and Choi's view of God as follows: 1. The same images : 1) The heavenly god, 2) The shamanic god of folk belief, 3) The god of Christianity, 4) The god of nationalism, 5) The god in grief, the do-nothing god and the father god, 2. The different images : 1) The god of polytheism vs. The god of monotheism, 2) The transcendental god vs. The immanent god, 3) The god planning the revolution vs. The god planning the beginning of the world, 4) The dreadful god of war vs. The merciful god of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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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세 가지 신종교에 나타난 가르침의 특징을 고찰하였다. 이번에 인용한 자료는 모두 그들 교단이 발족하 던 당시 가장 초기에 집필된 교조들의 가르침이다. 여기에는 아직 정리되어 있지 않은 교조의 사상과 당시 민중의 목소리가 그대로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 특징을 다시 한번 정리해본다면, ⑴ 민중 구제 (치병 중심) ⑵ 이 세상에 대한 변혁사상(‘후천개벽’, ‘다시 바꿔 세움(立替え立 直し)’등) ⑶ 몰려오는 외국세력에 대한 위기감, 혐오감의 표명 의 세 가지 사항을 들 수가 있을 것이다. 사상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마지막의 반서구적인 경향은 매우 중 요하다. 이것을 단순한 ‘민족주의’의 발로로 이해하려는 점에 대해서 는 유보를 필요로 한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은, 근대국가건설을 추구한 ‘공정(公定) 민족주의’와는 달리, 이들의 종교적일 발언에는 때로는 근대화(=서구화)를 추진하려고 한 자국정부에 대한 격렬한 적의조차도 표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들의 발언을 종교적 애향주의(religious patriotism)라고 하는 조어(造語)를 사용하여 표 현한 것은 바로 그러한 민족주의와 다른 차이를 강조하기 위한 것 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다시 한번 강조해두고 싶은 것은 초기단계에서 이 러한 배외적인 경향을 지닌 이들 교단들이 모두 나중에는 세계에 대 해서 개방적인 가르침으로 바꾸는 자기변혁을 하였다는 점이다. 앞으 로도 이들 교단의 지역주의(localism)와 세계주의(universalism)사이 를 오간 사상적인 움직임에 대한 연구는 좀더 심도 있게 해나가지 않 으면 안 될 것이다.
日韓の3つの新宗敎の敎えに現れた特徵を考察してきた。今回引用 した資料は、全てその敎團發足當時、最初期に著された敎祖の敎えで ある。ここには、まだ整理されていない敎祖の思想、もしくは當時の 民衆の聲がそのまま生々しい形で殘っている。その特徵をもう一度ま とめるなら、 ⑴ 民衆救濟 (治病中心) ⑵ この世の變革思想 (「後天開闢」, 「立替え立直し」など) ⑶ 迫り來る外國勢力に對しての危機感 嫌惡感の表明 の三點が擧げられるであろう。思想史的觀點から見ると、最後の反 西歐的傾向は大變重要である。これを單純な「ナショナリズム」の發露 と捉えることには留保を要する。というのも、近代國家建設をめざす 「公定ナショナリズム」とは違って、これらの宗敎的な言說には、時に は近代化(=西歐化)を推し進めようとする自國政府への激しい敵意さ え表明されているからである。私がこれらの言說を宗敎的愛鄕主義 religious patriotismという造語を使って表現したのは、それとの差異 を强調するためである。 しかし、ここで改めて强調しておきたいのは、初期段階でこのよう な排外的な傾向を持ったこれらの敎團が、全て後には世界に對して開 かれた敎えとなるように、自己變革した點である。今後もこれらの敎 團のlocalismとuniversalismの間を搖れ動いた軌跡の硏究を深めてい かなければならないだ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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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동학과 칸트의 도덕철학을 비교한다. 칸트는 근대사회를 상징하는 인간의 자율, 자유, 자치의 철학적 기초를 ‘선한 자유의지’ 에서 찾아내는 선험적 형이상학을 체계화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선 험적으로 선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유로우며 자율적 이며 자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운은 ‘내 마음이 네 마음이다 (吾心卽汝心)’이라는 말을 하늘로부터 들어 인간 마음은 본래 자유 이며, 자율이며, 평등하다는 도덕 형이상학을 수립하게 된다. 양자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이 논문은 분석한다. 다음으로 동학과 칸트의 도 덕행위론을 비교분석한다. 칸트는 ‘타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 하라’는 덕론(德論)을 형이상학적 정언명령으로 제시하고, 동학은 ‘사람을 하늘과 똑같이 섬기라(事人如天)’는 도덕실천론을 주장한다. ‘타인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도덕률이 형이상학적 이성의 명 령에서 나온다면 ‘타자를 하늘로 섬기라’는 동학의 도덕행은 타인과 나는 하나의 기운이라는 존재론적 동일성의 체득에서부터 나온다는 점에서 다르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wo points. First, comparing the moral philosophy of Kant and Donghak. Kant founded the transcendental philosophical ground of the freedom and autonomy of modern man. According to him as man is transcendentally given the free-will to good, everybody had free and autonomous and can govern by themselves autonomically. However Suwoon's moral philosophy came out from his spiritual experience. Suwoon heard that ‘My mind is your mind’ from God in April 5, 1860. So he realized that man is absolutely free, autonomous and equal by nature, from this spiritual experience he founded a new morality metaphysics. Second, this article compares the conception of moral practices of Kant and Donghak. Kant's categorical imperative of 'treat humanity as an end' comes from his moral metaphysics, however Donghak's practical sermon 'serve humanity as the God' comes from the realization of the universal Oneness of all beings. In Donghak the Universal Oneness is not a metaphysical thinking but a awakened soul's perceptive exper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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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레닌주의와 동학의 개벽사상을 부분적으로 비교하 였다. 레닌주의는 사회를 변혁의 대상으로 한다. 반면 동학은 우주 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를 같이 사고하고 있다. 이러한 천명사상은 한국의 전통적인 변혁론으로, 3.1운동 선언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요소이다. 한편 동학사상이 갖는 사회변혁적인 요소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의 전파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1920년대의 한국 공산주 의자들은 천도교 단체와의 협력을 위해 노력했다. 아울러 현재까지 도 북한에서는 천도교 청우당이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곧 두 사상이 갖는 유사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측된다.
This assertion compares Donghak's reformist idea and Leninist revolution theory. The object of revolution in Leninism is the society. But in Donghak's reformist idea depends on the universal change as well as social revolution. Such heaven-order idea is a traditional one. We can find such idea in the manifestation of 3.1 movement. We suppose that Donghak's reformist idea helped acceptance of Marx-Leninism in Korea. In our work, we found lots of similarity between Donghak and Leninism. Korean communists made efforts to cooperate with Chodogyo organization. Even now, Chondogyo Chongwoo Party works in north Korea. Such evidence may be caused by the similarity of two ideas - Donghak and Leni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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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통일운동의 전위단체로 결성된 것이 동학민족통일회이다. (이하 동민회) 동민회는 “동학이념의 사회적 구현과 민족의 자주, 민주, 통일을 실현”하는 목적으로 1991년 등장했다. 즉, 동민회는 천 도교의 정의 영역을 담당하고자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이다. 동민회 는 과거 동학 천도교의 위대한 이상과 실천성을 계승하고 그들이 구상한 지상천국 이상사회를 구현해야 할 역사적 숙명을 지닌 천도 교 활동공간의 전위단체인 것이다. 천도교는 교정쌍전에 입각해 창도 이래로 오랜 기간을 한국 민족 주의 운동의 핵심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천도교 청우당으 로 대표되는 전위단체에 의해서 행해 졌는데 청우당은 후천개벽을 이 땅에 실현하고자 계몽운동, 문화운동 그리고 민족통일운동을 주 도했었다. 이 시대 천도교의 전위단체는 동민회이고 그 활동의 중심 에는 통일운동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통일운동이 가장 현실적인 곳 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종교의 통일운동은 민족의 삶의 이상을 제시하는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종교의 통일운동은 다소 비현실적 이라도 원대한 이상과 목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가장 큰 의의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창도이래 민족운동에 가장 앞섰던 천도교의 통일운동을 그들이 제시하는 통일 이념과 원칙 그리고 기본 방향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같은 전통을 바탕으로 천도교의 통일의 원칙과 기본방향 ①精神開闢(gai-byok)과 同歸 一體(Dong-gwi-il-che), ②自主와 中立, ③ 平和와 民主, ④自由와 平等이고 이들이 이상 하는 통일 조국상은 다음과 같다. 첫째. 통일조국의 國號는 上古때부터 우리 조상들이 써오던 朝鮮 으로 하고 國旗는 역사상 처음으로 제정된 太極旗로 한다. 둘째. 우리의 통일조국은 道德文明 先進國이어야 할 것이다. 셋째. 우리의 統一祖國은 民族自主의 理想的 民主國家가 되어야 한다. 넷째. 우리의 통일조국은 人間을 지극히 尊重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다섯째. 우리의 統一祖國은 同歸一體의 정신에 맞는 새로운 경제 제도가 실현되어야 한다. 천도교 이념에 입각한 동민회의 통일운동은 많은 한계에도 불구 하고 계속되어야 한다.
Donhak national unification society is made as the entity as the society for the national unification. "The Society(Dongminhoe) is made in 1991 for the purpose of "Realization of Donghak idea in society and realization of self-realization, democratization and unification". Dongminhoi is made up for the role of Chundogyo belief system. It is the forward group for the call of history and high good society. In order to realize its vision of Heaven-on earth, Donghak(Chondogyo) endlessly sought ways to combine religion with politics as its Gyo-jong-il-chi and Gyo-jong-ssang-jon ideas stipulated. A practical expression of Gyo-jong-il-chi appeared in Donghak's Hu-chon-gai-byok doctrine and a vanguard organization, the Chongwudang Party, was organized to put this political doctrine into practice. The political ideas of Chongwudang can indeed be considered as the modern expression of the political ideas of Donghak and the very embodiment of Hu-chon-gai-byok idea originally articulated by Suwun Choi Jai-wu, the founder of Donghak philosophy. This is particularly so because the fundamental aim of Chongwudang was to realize an ideal society on earth based on the In-nai-chon thesis. The principles and basic orientations for national reunifications is said suggested by Chondogyo. 1. Spiritual Innovation(gae-byok and Dong-gwi-il -che) 2. Self-reliance and Neutrality 3. Peace and Democracy 4. Liberty and Equality The vision of unified mother land idealized by Chondogyo 1. The Chosun is desirable because of historically rooted meaning and National flag is desirable for "Taekeukgi" 2. The our unified mother land must be civilization in morality. 3. Liberal democracy state of national independence 4. The state of being respect for individual identity 5. The state of economic institutions by Dong-gwi-ill- che spirit This movement should be continued in any difficulty and the high call of Chundogyo is realiz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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