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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네(大峰)산의 여인금제 - 시비(是非)논쟁과 결계(結界)도전을 중심으로 -
한양대학교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비교일본학 제27집 2012.12 p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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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여인 결계와 여인결계에 도전한 여성들의 도전사에 대해 조명 해 본다. 특히 오오미네산의 여인금제 사상에 대해 검토하고, 여성들의 결계도전 사건을 중심으로 그 배경과 흐름을 요약․검토함으로써 메이지 이후의 여인결계 변천사의 흐름을 파악해 보고자 한다. 우선 오오미네산의 여성금제 도전이 한마디로 여성항쟁의 역사라고 볼 때, 현재도 변함없는 여인금제 성산의 이미지는, 여성의 사음을 제일 꺼리고 있으며 여성을 신앙 수행자라기보다는 신의 영역을 더럽히는 부정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오늘날에도 여성금제가 해금되지 않은 근본 사정은 있다. 부정관의 민속학적 고정관념이 불교의 사음관과 습합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강하게 여성의 「성」을 부정함으로써 여성 「성」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깊은 이해가 없었다는 점에서 일본 불교계, 내지는 종교계의 반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아가 여인금제 도전사건에 대한 일람표를 작성해 본 결과, 오오미네산은 현재까지도 변함없이 여인금제를 유지하는 희유의 성지이지만, 메이지 이후, 이 산의 여인 결계를 돌파하려고 한 여인들의 도전이 급격하게 증가하였다는 점이다. 메이지 개화기라는 시대배경에 따른 여성들의 의식전환이 크게 영향을 준 것으로 이해되는 부분이다. 여인금제를 확실히 지키려고 하는 신도들에게 여인결계 도전 사건은 종교에 대한 거부행위이며, 오오미네산이라고 하는 종교영역에 대한 파괴 활동이라고도 하겠지만, 종교가 추구하는 구원이라고 하는 주제를 잘 이해할 경우, 신의 영역에서의 남녀 차별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本稿では、女人結界と女人禁制に挑戰した女性たちの挑戰史について照明してみる。特に、大峰山の女人禁制思想について檢討し、それに挑戰した事件を中心に整理することでその結果として、明治以後の女人結界の變遷史の流れを把握してみようとする。まず、大峰山の女性禁制の挑戰が一言で、女性抗爭の歷史であると考える時、現在にも相変わらず女人禁制が存續する聖山のイメージは、女性の邪淫を一番憚っていたことである。女性を信仰のための修行者という観念よりも、神の領域を穢れる不淨な存在として認識している点が、何よりも今日も女性禁制が解禁されていない根本的理由であろう。そして、女性不淨觀の民俗學的固定觀念が佛敎の邪淫觀と習合される過程で、むしろもっと強く女性の「性」というのを否定していたことがわかる。女性の「性」について真の意味で深く理解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という点に日本仏教係、乃至は宗教界の反省がなければならない。本硏究を通じて、女人禁制に挑戰した女性たちの事件について一覽表にまとめてみると、大峰山は現在までも相変わらず女人禁制を維持する稀有の聖地であるが、明治以後、この山の女人結界を突破しようとした女人たちの挑戦が急激に増えている。これからは日本社會の明治開化期という時代的な背景と絡み合った女性たちの意識の轉換が大きく影響したことがわかる。女性禁制をしっかり守ろうとする信徒たちにおいては、女性結界突破が宗教に対するテロ行為であり、大峰山という宗教施設に対する破壊活動という考えも重要であろうが、宗教が追い求める救援という主題をよく理解する場合、当然神さまの領域での男女差別は決してあってはならないことであろう。そして、今までの女人禁制に対する女性たちの挑戰は、歷史的な流れのなかで、一つ一つの個別的な事件として知られてきたのが殆んどであったけれど、本稿で女人禁制に挑戰した記錄や女人結界の變遷史について、目瞭然に檢討․整理․要約することで、修験道の總本山の大峰山の女性の禁制挑戰の行步という意味上有意な意味を持つことと考えら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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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전후일본사회에서 통합되어 가는 귀환자(引揚者)들의 ‘전후상’을 고찰하여 전후일본의 민족내셔널리즘을 재조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귀환사업을 둘러싼 다양한 담론을 검토하고, 귀환자들이 전후일본사회 속에서 느꼈던 실존적 존재 의식을 살펴보았다. 특히 일본현대문학의 대표 작가이기도 한 아베 고보(安部公房)가 만주에서 일본으로 귀환되어 온 후 의식하기 시작하는 자아 정체성을 ‘이단자’라고 규 정하고 있는 의미를 분석의 예로 들어 보았다. 패전후 일본은 국민의 재정비에 의한 신일본국 건설을 위해 전력을 다해 왔다. 여기 서 귀환사업(引揚事業)은 민족 대통합의 근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구식민지의 귀환 자들이 겪었던 피난의 여정을 기록하고 있는 ‘귀환 체험담’은 전쟁의 희생자인 일본민 족의 수난사로서 기능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귀환자들은 식민지의 침략자였던 일본인 의 위화감을 자각하고 있음과 동시에 이방인과도 같은 전후일본사회에서의 피차별자로 서의 자화상을 갖고 있었다. 또한 귀환자의 의식에는 외지 식민지출신 일본인과 본토 의 순수일본인이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며 실존적으로 혼란을 겪게 된다. 그러나 귀환자들이 느꼈던 위화감은 국민국가 재건을 위한 전후일본의 통합이데올 로기 속에서 재단되게 된다. 영원한 희생자라는 공적 기억이 유포됨에 따라 그들의 실 상은 묻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귀환자들의 ‘전후상’을 재검토함은 전후일본의 민족내 셔널리즘에 내재하는 <균열>을 가시화하고, 이를 통해 일본의 단일민족 신화가 이룬 위업을 해체하여 그 허상을 밝히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本論文は、戦後日本社会で統合されていく引揚者たちの「戦後像」を導き出し て、戦後日本の民族ナショナリズムへの再照明を試みることである。そのため、引揚 に対する多様な言説を検討して、引揚者が戦後日本社会の中で感じた実存的な存在意 識を探ってみた。特に、日本現代文学の代表的な作家でもある安部公房が引揚げされ てきてから意識する自分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異端者の視座から読み直してみた。 敗戦後、日本は、国民の再統合による新日本建設を指して力尽くしてきた。そし て、その民族大統合の根幹となったのが引揚事業であると言えよう。引揚者たちの避 難の旅程を物語っている「引揚げ体験記」は、戦争の犠牲者である日本民族の受難史 としての役割を担ってきたのである。が、彼らは植民地の侵略者としての日本人とい う自覚や、戦後日本における異邦人のような厄介者としての自画像を抱いていたこと が分かる。さらに引揚者の意識には、外地の植民地出身と純粋日本人との乖離によっ てもたらせる、実存的な混乱があった。 しかし、引揚者たちの違和感は、国民国家再建のための戦後日本の統合イデオロ ギーによって裁かれてきた。永遠な犠牲者としての公的記憶の中から、彼らの真の姿 は消されてしまったのである。したがって、引揚者たちの「戦後像」を浮かび上がら せる作業は、戦後日本の民族ナショナリズムに内在する<裂け目>を確かめて、日本 の単一民族神話という偉業を解体し、その虚像をあばくことでもあると考え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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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추량표현의 추이를 명확하게 하기 위한 첫 단계로, 근세 후기 에도시대의 작품을 중심으로 당시의 추량표현의 상황을 살펴본 것이다. 조사 대상으로 한 자료는 근세후기 에도어에 한정하여 式亭三馬의 『浮世風呂』의 為永春水의 『春色梅兒譽 美』를 사용하였다. 구체적인 분석의 범위 및 방법은, 양 작품의 회화문 중에 나오는 추량의 형식을 취하는 「だろう」형식과 「う」형식을 모두 조사하여 그 가운데 추량의 뜻으로 사용된 예문만을 조사 대상으로 하였다. 작품별, 성별로 분류하여 고 찰하였으며 더 나아가 화자와 청자의 계층이나 사용된 장면까지 분석하였다. 그 결과 대개 다음과 같은 사실로 요약할 수 있겠다. 첫째, 당시 추량표현으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 형식은 「だろう」이다. 다만,『浮 世風呂』에서 「だろう」를 사용하는 여성들은 90% 이상이 하류 계층이며, 상대방은 대등한 신분이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장면에서 대부분 나타난 사실로 보아 「だろう」를 사용하는 데는 신분상의 제약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둘째, 현대 일본어에서는 「だろう」와 「でしょう」는 추량의 용법으로, 그리고 의지 및 권유의 용법은 「う」가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으로 되어 있지만, 「う」를 上接하는 語로 나누어 분류해 본 결과, 上接하는 語의 종류에 따라 용법이 다르게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세 번째, 형용사의 추량형은 양 작품에서 대부분「かろう」형으로 나타났다. 네 번째, 현대 일본어에서는 회화문에서 과거추량의 용법으로 주로 「ただろう」 를 사용하지만 당시에는 남녀 모두 「たろう」형식만 보였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당시에는 구어체와 문어체의 구별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으 며 추량용법을 사용하는데 있어서도 성별, 계층별, 그리고 화자와 청자와의 관계 등 에 따라 상당한 제약이 따른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This is the first series of the study to clarify the trend of the ‘Expressions of Supposition’ in Japanese language by looking into the ‘Expressions of Supposition’ used in the post modern, Edo period, literature. Referenced literature work is limited to those written in post modern Edo period language, which are “Ukiyoburo” written by Sikitei Samba and “Syunsyoku Umegoyomi” written by Tamenagasyunsui The range of analysis and method used in this study is; 1, Selected all colloquial clauses, だろう(DARO) and う(U) in the referenced literature work. 2, From the selected clauses, only ‘Expressions of Supposition’ are used for the study. Expressions in each literature are further analyzed for speaker's gender and also considerations are taken for social class of both speaker and listener and situation of the conversation. Output of the study can be summarized as; Firstly, the most frequently used ‘Expressions of Supposition’ is だろう(DARO). In “Ukiyoburo”, female who used だろう(DARO) is mostly(more than 90%) low class, talking to an equal social class in relaxed conversation. It can be assumed that there is a social restriction in using だろう(DARO). Secondly, in modern Japanese, DARO and DESYO are generally used as an ‘Expressions of Supposition’ and U is used as a ‘Wish’ or ‘Suggestion’. However, U is used in different ways depending on its prefix ‘Uh’. Thirdly, adjective format of ‘Expressions of Supposition’ used by both sexes is KARO in both literature work. Fourthly, in modern Japanese, TADARO is commonly used as a past tense ‘Expressions of Supposition’ in colloquial writing, however both male and female only used TARO. Based on the findings, it is possible to assume that in Edo period Japanese, the distinction between colloquial and literary expression is not clear. And also, using ‘Expressions of Supposition’ has considerable limitations depending on gender, social class, and relationship between speaker and liste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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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최대규모의 고대도래씨족인 하타씨는 일본의 경제, 문화, 예능, 산업 등 다방 면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씨족이다. 도래인 하타씨의 출신지에 대하여 『일본 서기』와 『고사기』는 한반도라고 하고 있으나 『신찬성씨록』에는 중국 진시황제 의 후손으로 설명하고 있다. 현재 하타씨는 가야계신라 도래인으로 보는 것이 거의 정설화 되어 가고 있지만 여전히 하타씨를 중국계, 또는 한반도 경유 중국계, 유대계 로 하는 등 다양한 설이 존재한다. 하타씨의 출신지에 대한 연구는 문헌사료 이외의 다각도의 연구방법이 요구되는데, 이러한 관점에서 고대 예능 또한 연구수단으로서 가치 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본고는 하타씨와 고대예능과의 관계에 대하여 고찰하 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하타씨와 예능과의 관련은 노가쿠의 대가 제아미에 의해 하타노가와가쓰가 사루가쿠의 조신이 된 것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루가쿠 이전의 다수의 고대 예능이 이미 하타씨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중에서도 특히 기악, 구구쓰 인형극, 가구라, 마쓰리를 중심으로 하타씨와 신라와의 연관관계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기악은 백제인 미마지에 의해 일본에 전래되었는데, 미마지가 기 악을 배웠다는 ‘구레’를 낙동강 유역의 ‘구례’로 해석하는 선행연구를 살펴본 후 하타 씨와 그 자손에 의해 기악이 습득, 전수되었음을 사료를 통하여 접함으로써, 일본에 서 신라식 기악이 연행되었을 가능성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이어 소노가라신제, 구구 쓰인형극, 기온마쓰리와 치고마이 등의 일본고대예능과 하타씨와의 연관, 나아가 신 라와 관계에 대하여 고찰하고자 하였다.
日本最大規模の古代渡来氏族、秦氏は日本の経済、文化、芸能、産業など多方面 にわたって影響を及ぼした氏族である。『日本書紀』と『古事記』には秦氏が韓国か ら渡来してきたという記事が登場する。しかし、『新選姓氏碌』には中国の秦の始皇 帝の後孫と書いているため、秦氏の出身地についてはまだ明らかではないが、一般的 に加羅新羅系ではないかという説が説得力をえている。でも、多数の学者が中国起源 説や韓国経由説などを相変わらず主張している現時点で、秦氏が新羅渡来人であるこ とを確実にするためには、史料以外の多角度の研究方法が必要で、そのため、芸能は よい手段になるかもしれない。このような観点から、本稿は秦氏と古代芸能との関係 について考察するのを目的とする。秦氏と関連のある数多くの芸能の中、特に、伎 楽、くぐつ、神楽、祭りを中心に秦氏、新羅との連関関係を探ってみた。伎楽は百済 のミマジにより日本へ伝わってきたが、ミマジが伎楽を学んだという'クレ'を洛東 河流域の'久穫'と解釈する説も存在し、秦氏とその子孫によって伎楽が伝授された ことを史料を通じて調べてみた。続いて、園韓神祭、くぐつ人形劇、祇園祭り、稚児 舞と秦氏との関連を取り調べることで秦氏の日本古代芸能と新羅との関係について考 察しようとした。
동일본대지진과 일본 다문화정책의 과제 - 東北型 다문화현상과 문제점 -
한양대학교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비교일본학 제27집 2012.12 pp.99-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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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18만명을 넘는 거주외국인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의 이민정책은 소극적인 자 세로 일관되어 왔다. 한편, 중앙정부의 정책부재에 대하여 일본지자체는 독자적인 다 문화프로그램과 시책을 실시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일본의 다문화정책은 중앙정부의 법률과 제도부재로 지자체별, 유형별, 대상별 정책 격차가 커지고 있다. 정주외국인이 다수 거주하고 있는 간사이, 간토지방은 올드커머와 일본계브라질인 이 다수 거주하고 있어서 외국인집주도시회의 등, 다문화네트워크가 활발하다. 반면, 한국과 중국, 필리핀출신의 결혼이민자가 많은 도호쿠지방에서는 일본정부가 국제결 혼을 개인문제로 인식하고 있어서 충분한 다문화정책이 실시되지 못하고 있다.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도호쿠지역에서 결혼이민자와 자녀들은 일본인으로서 정체성 을 강요당하거나 외국인임을 드러내지 않는 불가시화(不可視化) 전략을 취하는 경우 가 적지 않다. 이로 인하여 일본어습득이 늦거나, 정보부족으로 불이익을 받는 등, 다 문화사회와 거리가 먼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3.11동일본대지진을 통해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3.11대지진은 결혼이민자와 다문화자녀가 많은 도호쿠형 다문화에서 일본정부의 정책부재로 인한 위기현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심각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約218万人を超える外国人を抱えているにも関わらず、日本政府の移民政策は消極 的な姿勢で一貫してきた。一方、中央政府の政策不在に対して、日本の自治体は独自 の多文化プログラムと施策で、多くの成果を得てきたという評価が一般的である。し かしながら、日本の多文化政策は中央政府の法律と制度の不在で自治体ごとに格差が 大きく、地域別、対象別のギャップが目立ちつつある。定住外国人が多く居住してい る関西と関東地方はオールドカマーと日系ブラジル人の多くが住んでおり、外国人集 住都市会議など、多文化ネットワークも活発である。一方、韓国と中国、フィリピン から結婚移民者が多い東北地方では、日本政府が国際結婚を個人の問題として捉えて おり、きちんとした多文化政策が実施されていない。 外国人に対して閉鎖的で、保守的な東北社会への適応のために、多くの結婚移民 者とその子女は、日本人として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強要され、不可視化戦略を取る 場合が少なくない。そのため、日本語の取得が遅れたり、情報不足で不利益を被った りことで、真なる多文化社会を形成するとはとても言えない状況である。 このような問題点は3.11東日本大震災を通じて明らかになっている。3.11大地震と 外国人対策は結婚移民者とその子女が多い東北型多文化における日本政府の政策欠陥 を露呈しており、大きな課題として登場している。
『에혼조센군키(繪本朝鮮軍記)』의 번각과 〈조선군기물〉연구
한양대학교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비교일본학 제27집 2012.12 pp.119-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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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조선 침략전쟁(임진왜란 정유재란)을 소재로 한 일 련의 작품군이 일본의 근세기에 다수 저술되었다. 17세기 초에 성립된 『조센세이바 쓰키(朝鮮征伐記)』, 18세기 초에 성립된 『조센다이헤키(朝鮮太平記)』와 고조루리 『조센다이헤키(朝鮮太平記)』, 『조선군키다이젠(朝鮮軍記大全)』, 그리고 19세기 초 기에 성립된 『에혼조센군키(繪本朝鮮軍記)』, 중기에 성립된 『에혼조센세이바쓰키 (繪本朝鮮征伐記)』등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소재로 하여 성립된 문헌을 조사해 보면, 히데 요시의 출생에서 일본 전국통일의 과정에 주목하여 기술된 것과, 히데요시의 조선침 략 전쟁과 그의 사망에 이르는 과정을 기술한 것 등 더욱 다양한 형태의 문헌이 존 재한다. 전자를〈태합기물〉, 후자를 〈조선군기물〉이라 칭하고 있다. 또 〈태합기 물〉도 『다이코키(太閤記)』와 같이 히데요시의 출생에서 천하통일의 과정, 임진왜란 의 기술 등을 다룬 넓은 의미의 〈태합기물〉과 임진왜란의 기술을 생략한 협의의 〈태합기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본 연구의 중심이 되는 『에혼조센군키(繪本朝鮮軍記)』는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 전쟁에 취재한 〈조선군기물〉에 속하는 것으로 요미혼(讀本)으로 성립된 작품이다. 에도 후기에 성립된 『에혼조센군키(繪本朝鮮軍記)』를 비롯한 일련의 〈조선군기 물〉작품에는 히데요시의 조선침략 전쟁이 초래한 전쟁의 피해나 황폐, 기아의 참상 보다는 히데요시의 비천한 출신으로 성장하여 천하를 통일하고 외국(조선)까지도 침 략한 도량이 넓은 영웅담의 창출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환언하면, 에도후기의 작 품에 묘사되는 히데요시의 입지전적인 영웅담의 창출에 힘입어 독자층이 확대되고 다양한 〈조선군기물〉의 작품이 성립되기에 이른다. 이어서 에도 후기에 성립된 다케우치 가쿠사이 작 『에혼다이코키』의 영향을 받 아 명치 이후 성립된 일련의 〈조선군기물〉작품군 『에혼조센군키』에도 히데요시 의 영웅담은 그대로 전승되고 있어, 명치 이후 히데요시 인물상의 정착에 크게 기여 하고 있다.
豊臣秀吉による朝鮮侵略戦争を題材にした一連の作品群が、日本の近世期に様々 な形で成立、流布、上演されていった。その中、読本として成立された『絵本朝鮮軍 記』(1800年)は十巻十册のもので、題名通り挿絵を載せて朝鮮侵略戦争を展開してい る。 本稿では、江戸後期(1800年)に成立した読本『絵本朝鮮軍記』を中心に翻刻․ 考察し、これと関係すると思われる堀杏庵(正意)『朝鮮征伐記』(1644년),馬場 信意『朝鮮太平記』(1705年)、釈姓貴『朝鮮軍記大全』(1705年)等の江戸期に成 立された「朝鮮軍記物」の作品群と『太閤記』を始めとする豊臣秀吉の出生から天下 統一の過程、そして朝鮮侵略戦争の記事を取入れた「太閤記物」の作品群を紹介し、 各作品に表れた豊臣秀吉の戦争評価の流れとその変化について具体的に言及したい。 また、「太閤記物」の系譜に位置づけられる『絵本太閤記』が明治以後成立され た『絵本朝鮮軍記』と題する作品群にどのような影響を及ぼし、継承․変容していっ たのか、という問題も一つの課題である。
히라바야시 다이코의 『혼자 가다(一人行く)』론 - 여성 사회운동가 <나>의 희구(希求) -
한양대학교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비교일본학 제27집 2012.12 pp.14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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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히라바야시 다이코의 전후(戰後) 최초 작품인 『혼자 간다』를 통해서, 여 주인공 <나>의 발병으로 인한 냉혹한 현실인식과, 여성 사회 운동가로서의 평범한 결혼 생활에 대한 희구를 고찰하였다. <나>는 인민전선사건과 관련하여 남편의 대신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그러나 남편이 자수하자, 이번에는 <나>의 사상을 문제 삼아서 석방하지 않는다. <나>는 유치장에서 출소하면 복수할 생각을 하면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큰 병에 걸리고 만다. 그 결과, 애타게 기다리던 출소를 하게 되지만, 치료는커녕 우선 거주할 곳도 없었 다. 부부가 모두 유치장에 들어감으로써 생활의 근거지가 완전히 없어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면서도, 부조리한 사회의 희생자로 인생을 마 름하고 싶지 않다는 강한 의욕을 보인다. 또한, <나>는 경제적인 궁핍으로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되자,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후회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모성보다 사상을 우선시 한 결과 아이가 죽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다이코는 <나>을 통해서, 자신이 부당한 이유로 오랫동안 유치장에 있을 수밖 에 없었던 사회 부조리와, 남편의 출소 후는 여성 사회 운동가로서의 생활에서 벗어나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고 싶다는 희구를 나타내고 있다
本稿では、平林たい子の戦後最初の作品である『一人で行く』を通して、女主人 公<私>の発病による冷酷な現実認識と、女性社会運動家として平凡な結婚生活への 希求に対して考察した。 <私>は人民戰線事件と関連して、夫の代わりに警察署に拘留された。しかし夫が 自首をしても、次は<私>の思想を問題にして釈放されない。<私>は留置場で出所す れば復讐する考えで日々を送っていた。しかし、ついに命をも失いかねない大きな病 を患う。 その結果、待ちこがれた出所を果たすが、治療どころかまずもって住む場所もな かった。夫婦ともに留置場に入ったことで生活の根拠地を完全に失くしたのだ。しか し<私>は、生死の境を彷徨いながらも不条理な社会の犠牲者として人生を終わらせ たくないという強い意欲を見せる。また、<私>は経済的な窮乏で治療を受けられな くなると、決して平凡でなかった自分の人生を振り返り後悔する。そして、何より自 分が母性より思想を優先とした結果、子供を失ったという罪悪感から抜け出せずにい る。 結局、たい子は<私>を通じて、不当な理由で長い間、留置場に留め置かれた社会 の不条理と、夫の出所後は、女性社会運動家としての生活から抜け出して平凡な家庭 主婦で生きたいという希求を現わしている。
参与観察と事後インタビュー調査による海外日本語教育実習の実践と評価
한양대학교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비교일본학 제27집 2012.12 pp.157-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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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삼육대학교 일본어과가 2012년 6월에서 7월에 걸쳐 4주간 말레이시아에 서 실시한 교생실습에 대한 연구이다. 실습에 참가한 두 여학생을 연구 대상으로 하고 실습 중의 직접 관찰과 실습 후의 인터뷰를 통해 얻은 자료에 분석을 실시했다. 문제 해결 학습법을 사용하여 실습 중에 실습생은 문제점을 모아 그것에 대해 유효 한 해결 방법을 찾도록 했다. 인터뷰는 귀국 후 1개월 경과하여 어느 정도 실습 경험이 정리된 시점에 그 문제점을 재검토하고 그것이 실습생들에게 실습 중과 실습 후에 어 떠한 의미를 가졌는지를 물었다. 또한 실습생에게는 밝히지 않고 문제를 발견하는 시점 및 문제에 대한 접근에 자문 화상대주의적 입장에 서 있는지를 분석함으로 글로벌적인 교원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해외에서의 교육 교육실습에서 배양된 과정도 평가했다. 결론으로서 본고는 두 실습생의 문화적 시점의 차이를 분명히 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한 실습생에 대해 말하자면, 자문화상대주의와 그 학생의 독자적인 공리주의 사 이에 존재하는 모순점을 발견했다. 이들 성과는 실습생에 대한 앞으로의 지도에 도움이 될 것이다.
This article explains how the overseas teaching practicum works in Malaysia and examines the latest practice, which allowed 2 Korean female students to have a onthe job training as teachers in a local Sabahan secondary school for 4 weeks in July 2012. This endeavor was originally planned to develop a sense of multiculturelism and cultural relativism for the future global educators. The authors employed the method of problemsolving practice. An author (Yamashita) observed the practicum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and provided a help both to find out problems in the school as well as their personal ones. After coming back to Korea, the students explained their findings and its solutions to the other author (Kim), which were video recorded. By the authors, the interviews have been transcribed and collaboratively analyzed to illuminate how much the students were able (or not able) to look at their own culture as well as the local culture relatively. In their interviews, even though the students showed they have been partly aware of the difference of the cultural standpoints, they need more experience and help to look at their own culture objectiv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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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중심 과제는 구용포의 일본인 이주자의 실태를 당시의 간행물, 총독부의 문 서, 고지도등을 중심으로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다. 연구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것이 밝혀 졌다. 종래 구용포의 형성은 19세기 말 이래의 일본의 국내 인구의 급격한 증가의 해결 책으로서 새로운 수산자원을 찾아 뛰어난 어장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通漁의 거점으로 서 발달했다고 보여지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일본의 통치 정책에 의해서 구용포가 형성 된 것처럼 생각되고 있지만 본고에서는 일본의 식민지 통치에 의한 영유 전부터 이주 를 했고 구용포의 경우는 일본의 한반도의 영유 이전부터 있었던 通漁와의 관계가 깊 은 것으로 사료된다. 또한 구용포의 형성에 영향을 준 것은 일본 통치기 이전부터 어업 을 통해서 길러 온 어민들의 정보원의 네트워크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By study of the actual situation of the japanese immigrant to kuryongp'o in Korea the faindings are as follows. About kuryongp'o there were few studies conventionally from an economic aspect. Japan had the issue of sudden population growth from early period of Meiji era. Therefore the town was developed. The emigration was carried out before possession by the colony rule of Japan. The relations with the commute fishing that there was from the possession past of the Japanese peninsula. The opportunity of the development has appeared in the time of fishery method called kayoigyo. In kuryongp'o, living was performed the domiciliation of Japanese fishermen. However, there is a little different aspect in kuryongp'o. And they were not simple migrant workers. In addition, It is thought that the power of the information network of fishermen in kuryongp'o affected the construction of the town. And it is important that the network of fishermen that formed their movement and the population of the thing was continued from the p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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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1927년에 발표한 시나리오 「유혹」을 분석대상 으로 하여 작품 속에 드러난 영화성을 고찰하고 작가의 영화인식을 조명하는 것을 목 적으로 한다. 1920년대 중반은 무성영화가 전성기를 이루던 시대였고, 영화에 대한 대 중들의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문단에서도 영화를 강하게 의식했던 시대였다. 소설을 영화화하고, 영상을 언어로 치환하는 작업들은 문학자들이 문학의 영역을 다시 생각하 는 계기가 되었다. 아쿠타가와의 시나리오 ‘유혹’에는 영화가 본질로서 갖는 환상성이 라는 주제, 그리고 무성영화 특유의 청각적 환영성과 운동성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작 가의 영화에 대한 깊은 인식과 통찰력에 토대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This study is to research “Temptation” which was published by Akutagawa Ryunosuke in 1927 in the view of signification of language and images. The Silent film had its glory days in the mid 1920's. Due to the growing interest in the film, the literary world also paid much attention to the film. There is no doubt that filmizing novels and replacing images with language made literary men rethink the literary area. The scenario, “Temptation” by AkutagawaRyunosuke tried to realize fantasy and mobility of the silent film through language. This study is to provide a new point of view towards the study of Akutagawa's work and the Japanese modernism by analyzing his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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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본의 세습2세의원에 대한 연구이다. 일본은 세습2세의원의 비율이 평 균 30% 정도이고, 자민당의 경우 소속의원의 40% 정도가 세습의원이다. 최근에는 총선 거가 실시될 때마다 세습후보에 대한 논란이 있어왔다. 의원직 세습이 논란이 되는 것 은 그것이 불공정한 경쟁으로 인해 다양한 인재 충원의 통로를 제한하여 비민주적이고, 자질이 부족한 정치인을 양산한다는 인식에 기인한다. 이 글은 다양한 구분이 가능한 의원직 세습의 개념을 정리하고 그 현황을 살펴본다. 그리고 신랄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의원직 세습이 만연하고 있는 요인에 대해 설명을 시도하는 여러 연구들을 검토한다. 많은 분석가들이 의원직 세습의 이유를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으나, 그 설명이 부분적인 측면만을 조명하거나, 시간의 흐름에 따른 다양한 요인들의 상호관계를 포착하지 못하 고 있다. 이 글은 기존의 논의들을 검증하여 의원직 세습의 배경요인에 대한 보다 포괄 적인 이해를 높이고자 한다. 일본에서 의원직 세습이 만연하는 것은 어떤 하나의 원인이 있다기보다는 서로 밀 접히 관련된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선거구제도, 개 인위주 또는 후원회 중심의 선거운동 방식, 정당 내부 인사 관행, 자민당 장기집권, 이 익유도형 정치 등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장기간에 걸쳐 제도화고착화되고, 기 득권 구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하나의 요인이 제거된다고 해서 그러한 관행이 크게 감소하지는 않을 것이며, 언급한 모든 요인들이 단시일 내에 없어지는 상 황도 기대하기 어렵다. 궁극적으로 의원직 세습에 대한 논의의 전제는 세습이 선거 승 리에 대단히 유리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익유도형 정치이든 정당간 정책경쟁 선거이 든, 중선거구이든 소선거구제이든, 개인위주의 선거이든 정당주도의 선거이든, 일당우월 체제이든 양당제에 가까운 체제이든 간에 세습 정치인이 당선 가능성이 높다면 의원직 세습의 인센티브는 유지될 것이다. 한 가지 변화의 가능성은 정당이 공천 과정에서 세 습 후보자를 자발적-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것이다. 2009년 총선거에서 의원직 세습에 대 한 부정적 여론이 민주당으로 하여금 세습후보 배제를 공약하도록 했다. 2012년 총선거 의 선거운동 중에도 민주당은 여전히 세습후보의 배제를 중요한 쟁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향후 일본의 의원직 세습 관행은 이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어 주도적인 규범을 형성 하게 되면 어느 정도 억제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This article is about hereditary politicians in Japan. In recent years, there has been much criticism about the practice of inheriting political positions in Japan. Many Diet members are second or third generation politicians who ran for Diet seats in electoral districts once held by their fathers or grandfathers. By inheriting political funds, name recognition and support organizations, these politicians have much higher chance of winning compared to nonhereditary candidates. This is regarded problematic mostly because it prevents fair competition among candidates. Despite criticism, however, political inheritance is widespread, particularly in the Liberal Democratic Party. This article will first clarify the concept of hereditary politicians in Japan, followed by a review of past research on the subject. Subsequently, we will consider various structural, institutional, historical factors behind the persistent prevalence of political inheritance in Japan. Many explanations are offered such as the nature of the electoral districts, incentives based on rational calculations, internal dynamics within parties, among others. This article finds that rather than being influenced by a single factor, practice of political inheritance is a product of multiple factors interacting over time. Fielding a candidate from a political family was advantageous in winning elections, given personalized electoral campaigns in mediumsized electoral districts. It is closely linked to patronclient politics of the LDP. Over time, institutionalization of career path within the LDP also rewarded hereditary politicians. The introduction of single member district has not substantially changed this dynamic.
梁石日 文學의 儒敎的 世界觀, 그리고 狂氣와 異端 - 『血와 骨』을 中心으로 -
한양대학교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비교일본학 제27집 2012.12 pp.257-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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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석일 소설(『피와 뼈』등)은 일제강점기 이후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조선/조선인’ 의 정신적인 근간인 유교적 세계관을 문학적 원점으로 삼는다. 그리고 재일 코리언의 부(負)와 한(恨)의 역사를 내향적인 형태의 ‘자기탈각’ 작업이 아닌 타자(외부세계)와의 관계를 통해 승화시키고, 그 과정에서 광폭한 무뢰한의 역주행을 통해 상실된 민족정 신과 실존적 자아회복의 의지를 피력한다. 또한 재일 코리언의 부의 역사를 “오직 무 겁고 괴로운 형태의 이야기”가 아닌 “유머러스한 홍소(哄笑)로 가득한 세계”, “질주감 넘치는 경쾌한 세계”, “오탁(汚濁) 자체가 광채로 승화되는 세계”29)에서 양석일 문학의 독창성, 즉 ‘초월성’과 엔터테인먼트 지점을 확인하게 된다.
本稿は、梁石日の小説から‘ねじり’形態の‘超越性’とカリスマとして表象される荒 仕事、女性遍歴、暴力、金(賭博)、殺人など狂暴的な異端の世界に内在する文学的な 意味を考察してみた。整理すると、まず彼の小説(『血と骨』等)は、日帝強占期以後 の激動期を穿鑿し、‘朝鮮/朝鮮人’の精神的な根幹である儒教的な世界観を文学的な原 点とする。そして解放以後の冷戦体制から強力に作動する‘日本/日本人’の自己(自国) 中心的なイデオロギーと拮抗する周辺/周辺人の抵抗意識を浮彫りにさせる。また、 梁石日の小説では在日コリアンの負と恨の歴史を内向的な形態の‘自己脱却’作業では なく、他者(外部世界)との関係を通して昇華させ、その過程で体化した伝統精神と儒 教的な世界観を、非対称な形態にもつれさせる文学的な仕組みを見せている。例え ば、狂暴な無頼漢の逆走行を通して人間本来の実存的価値を浮彫りにさせながら喪失 した民族精神と自我回复の意志を披瀝する。よって、梁石日の小説『血と骨』の強力 な非対称的形態のねじり(逆走行)は単純な逆走行ではなく、主流/中心に向かう‘身体 的’抵抗であり、主流/中心に対する非主流/周辺の‘アンチ’の表象で、人間の実存に対 する自己救済へのあがきだと言える。もちろん、在日コリアンの負の歴史を“ただひ たすら重く苦しい物語”ではなく、“ユーモラスな、哄笑にみちた世界”、“疾走感あふ れる軽快な世界”、“汚濁がそのまま輝きに昇華する世界”から梁石日文学の独創性を 確認し、強力なねじり式の逆走行が創出するカリスマ的イメージが、梁石日の小説の 文学的‘超越性’とエンターテイメントの顕在的支点であることは明らかであると思わ 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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