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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일본학 [Comparative Japanese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양대학교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Global Center for Japanese Studies]
  • pISSN
    2092-5328
  • 간기
    연3회
  • 수록기간
    1993 ~ 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일본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309 DDC 300
제26집 (8건)
No
1

에도(江戸)시대의 이국정취(exoticism)

김지영

한양대학교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비교일본학 제26집 2012.06 p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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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0원

16세기 포교와 무역을 목적으로 일본에 온 포르투갈인을 통해 형성된 이들 문화에 대한 동경과 관심은 17세기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하는 이국 문화의 적극적인 수용으로 나타났다. 이 무역 교류를 통해 유입된 이국의 문물은 대중의 일상 공간 속에서 다양 한 형태로 출현하였다. 타국 간에 형성되는 사람과 물품의 상호 교류를 통한 문화의 수용과 이해는 이국인과 이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였다. 문화 전파 과정 에 있어서 물품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수용활동은 다양한 형태로 변용, 확산되었다. 이 국문화의 대중적인 생산과 소비는 이국취미로 전달되면서 대중화현상으로까지 확대되었다.

The admiration and the interest in people culture formed through the Portuguese who came appeared to Japan by the aggressive accommodation of the foreign country culture to do led by the Netherlands in the 17th century for the purpose of propagation and trade in the 16th century. The foreign civilization flowed in through this trade interchange appeared with a variety of forms in daily life space of the public. I am going to watch it well how Japanese understood a foreign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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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원

본 논문은 경상북도의 독도인식과 정책을 지방정부의 영토문제라는 관점에서 분석했다. 일반적으로 영토문제은 중앙정부의 외교 문제로 인식되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독도를 직접 관할하고 있는 경상북도의 독도 정책은 지금까지 연구의 대상이 되지 못하거나 간 과되어 왔다. 본고에서는 경상북도의 독도 관련 내용을 가장 풍부하게 담고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경상북도 의회 회의록(이하 도의회 회의록이라 함)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담당자와의 인 터뷰 내용을 보조적으로 사용하였다. 논문에서는 영토문제에 대한 지방정부의 정책적 논의 레벨을 밝히고, 또 지방정부(경상 북도)와 중앙정부의 상호작용도 검토했다. 특히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독도문제에 대한 인식의 갭과 그에 따른 정책수행 과정에서의 갈등도 지적했다. 그것은 개발을 중시하는 지방정부와 독도의 보존과 외교문제를 우선하는 중앙정부의 인식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이 었다. 요약하면 지방정부의 저위정치(低位政治, low politics)와 중앙정부의 고위정치(高位 政治, high politics)의 갭이다. 지방정부 레벨의 독도 인식 및 정책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독도문제에 직접관련이 있는 시마네현(島根県)의 의회 의사록을 분석하는 등 한일양국의 지방자치 단체의 독도인식 및 정책을 비교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과제로 삼기로 한다.

従来、韓国では独島(竹島)問題が中央政府間の外交問題として扱われてきた傾 向が強かった。したがって行政的に独島を管轄している慶尚北道と独島の関連性、 および慶尚北道の独島政策などは看過されてきた。こうしたことを踏まえ、本論文で は、慶尚北道の独島認識及び政策などを中心に分析を行った。資料としては、主に慶 尚北道の議会会議録を用い、慶尚北道の政策担当者へのインタビュー内容を補充的に 使用した。今後の課題は、島根県議会の議事録を分析し、両地方自治体の独島認識と 政策を比較考察することである。 慶尚北道議会の議事録で示されている慶尚北道の独島の認識は、中央政府のそれ とは異なる側面がある。中央政府は独島に対する領有権主張の根拠として、歴史的、 国際法的な側面を強調しているが、慶尚北道は、地理的近接性と経済的側面を最も有 力な根拠としている。このような経済的側面を重視する慶尚北道の独島認識は、独島 の開発を通じて、実効的支配力と領有権を強化する狙いを持つものである。2008年の 新構想発表を転機として慶尚北道が独自の独島政策を推進しようとする動きを見せて いることは、特記すべきである。しかし、独島開発を軸とする新構想に基づいた慶尚 北道の積極的な独島政策の展開は、中央政府の独島政策と葛藤を引き起こす可能性が ある。

3

캐나다 일본계의 커뮤니티 조직과 활동

정현숙

한양대학교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비교일본학 제26집 2012.06 pp.5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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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원

캐나다 일본계는 그 수는 적지만 130년이 넘는 오랜 이민역사 속에서 형성된 강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독자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수십 년째 이어져 오는 지역축제를 개최하고, 독자적인 문화공간을 확보해 활발한 문화활동을 전 개함으로써 일본계로서 강한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고, 캐나다 사회에서도 높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계는 전시기의 캐나다 정부의 강제이동과 재산몰수 조치에 대해 보상을 요구하는 운동을 전개하였고, 그 결과 캐나다 정부로부터 받은 커뮤니티 기금 을 이용해 커뮤니티를 재건하였다. 최근 일본계의 국제결혼이 증가해 문화적 혼합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그 후손들을 일본계 커뮤니티의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여 역 사적, 문화적 전통과 유산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에스닉 그룹으로서 일본계는 캐 나다 사회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カナダ日系人はカナダ社会において、その数は少ないものの、130年を越える長い 移民歴史の中で独自のコミュニティを築き、活発な活動を行っている。彼らは独自の 文化活動をとおして日系としての強いアイデンティティを保っており、カナダ社会に おいて強い影響力を発揮している。日系は、戦時期におけるカナダ政府の強制移動と 財産没収の措置に対して補償を求める運動を行い、カナダ政府からもらったコミュニ ティ基金を文化施設の建立に使うことによって、コミュニティ再建の基盤を築いた。 最近、日系の国際結婚が増加し、文化的混合が急速に進んでいるにも関わらず、その 子孫を日系のコミュニティのなかへ抱き込み、歴史的、文化的伝統と遺産を受け継い でいるという点で、日系はカナダ社会において独自の位置を占め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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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0원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 『치인의 사랑』에는 당시대 대중들이 즐긴 여가를 시작으로 갖가지 ‘근대적’인 문화가 그려져 있다. ‘여가’의 유행은 근대 중류계급의 탄생 과 함께 정착했기에, 말하자면 ‘여가’는 근대의 산물이자 그 행위 자체가 적극적으로 근대를 표상하고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치인의 사랑』에 등장하는 여가문화를 실 마리로 192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 일본의 근대가 정착되어지는 사회적인 상황을 밝혀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근대 이전의 전통적인 여가가 서구화되는 과정을 통하 여, ‘일본의 근대’라는 특수한 성격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방법론적인 시각이 제시 되기를 기대한다.

谷崎潤一郎の小説『痴人の愛』には当時代の人々が興じた余暇をはじめとするさ まざまな「近代的」な文化が描かれている。「余暇」の流行は近代中流階級の誕生と ともに生まれ、定着した。いわばそれ自体が近代の産物そのものといっても過言では ない。それで本稿では『痴人の愛』に登場する余暇文化を糸口として、1920年代を前 後し、日本の近代が定着された社会的な状況を捉えることを目的とする。また、日本 伝来の伝統的な余暇が西欧化される過程を通じて、「日本の近代」といった独特の性 格が新たに解釈できる一つの方法論的な視覚を提示することをも期待している。

5

7,000원

일본의 상대문헌에 나타난 ‘韓(한)’의 모습은 동일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한’ 에 대한 연구는 텍스트마다 다른 ‘한’의 모습을 일괄적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 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의 전체상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각각의 텍스트 분석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본고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상대문 헌에 나타난 ‘한’을 비교하고, 특히 『고사기』『일본서기』의 ‘한’이 각각의 텍스트 속 에서 어떻게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는지 밝히고자 했다. 이것은 텍스트 분석론으로, 역 사적 사실을 밝히려는 작업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한’은 조선남부의 마한, 진한, 변한을 가리키고, 후에 백제, 신라. 가야로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인데, 일본 고대 율령의 ‘한’은 고(구)려, 백제, 신라, 당과는 구분되어, 구체적인 도래 물품의 이름에 붙여져 있는 예가 있을 뿐이다. 그에 반해, 『풍토기』의 ‘한’은 그것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명확하지 않은 곳을 제외하면 모두 신 라를 가리키고 있고, 『만엽집』의 ‘한’은 당 또는 조선남부를 가리키고 있는 등 텍스 트에 따라 ‘한’의 모습은 다르게 나타나 있다. 1장은 한적, 금석문, 『만엽집』『풍토 기』속의 다양한 ‘한’의 모습을 고찰하면서 왜 『고사기』『일본서기』의 ‘한’을  일괄지어 생각해선 안 되는지 밝히려 한 장이고, 그 속에서 『고사기』에는 존 재하지 않은 ‘삼한’의 용례, 특히 ‘삼한=고구려, 백제, 신라’의 개념은 신라통일 이후에 만들어진 것임을 밝혀냈다.   2장, 『고사기』에 있어서의 ‘한’은 스사노오의 자손(韓神)이라는, 아마테라스로부터 이어지는 천황의 세계와 같은 근원을 가지는 세계이다. 『일본서기』처럼 번국으로서의 ‘한’이 아니기 때문에 ‘한’에 대한 부정의 요소를 가지지 않고, 전래기술이나 전래품이 도래되는 곳으로 나타난다. 『고사기』에 있어서의 ‘한’은 외국도 번국도 아닌 천손과 이어지는 국신의 자손으로서 천황의 치하에 수렴되는 종족으로서 표시되는 것이다. 그에 반해, 3장『일본서기』의 ‘한’은 고대중국의 중화사상(중심의 중국, 주변의 번 국)을 모방한 일본류의 중화적 세계관(중심의 일본, 번국=삼한, 고(구)려, 근린국가= 당)속에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서기』의 ‘한’은 『고사기』처럼 천황의 세계와 같은 근원을 가지는 나라도 아니고, 문물, 기술의 전래국도 아니다. 『일본서기』의 ‘한’은 ‘일본’과는 차별화된 정치적 색채가 강한 개념의 번국으로 나타난다.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작업이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텍스트는 편자에 의해 윤색, 각색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고사기』든 『일본서기』든 텍스트 속의 ‘한’의 모습 그대로를 실재 역사로서 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조선기사에 대해서는 한일 모두 각각의 충분한 텍스트 분석 없이 일괄지어 전체상을 말하는 연구가 주류를 이루어 왔고, 그렇게 만들어진 허구의 역사는 끊임없는 한일역사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는 사실 논쟁 이전에 있어야 할 텍스트 이해, 싸움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타자 이해의 과정을 소홀히 해 왔던 게 아닐까? 생략 없이 가감 없이 처음으로 돌아가 상대의 얘기를 들어보는 것, 그것이 달성되었는지는 차치하고 이 것이 본고가 의도했던 연구 방법, 『고사기』『일본서기』의 텍스트 분석이다.

The description of ‘韓(Han, Kara)’** is different among various ancient Japanese texts. However, conventional studies have disregarded the differences among these texts, and had a tendency to treat it uniformly. My aim is to compare the description of ‘韓’ in these texts, especially ‘古事記(Kojiki)’ and ‘日本書紀(Nihonshoki)’ and clarify what each text is trying to convey. I want to state in advance that this is a textual analysis and has no implication on historical facts. It is widely accepted that ‘韓’ refers to the ancient countries of southern Korea namely ‘馬韓(Mahan, Bakan)’, ‘辰韓(Jinhan, Shinkan)’, ‘弁韓(Byonhan, Benkan)’ which later developed into ‘百済(Baekje, kudara)’, ‘新羅(Silla, Shiragi)’, ‘加羅(Kaya, Kara)’. However, the term ‘韓’ seen in the Ancient law codes is distinguished from ‘高麗 (Kokuryo, Koma)’. ‘百済(Baekje, Kudara)’, ‘新羅(Silla, Shiragi)’ and ‘唐(Tang, Kara)’, and only used prefixally to the names of imported goods. On the other hand, with some exceptions that are unspecific in location, all ‘韓’ seen in ‘風土記(Fudoki)’ refer to ‘新羅’, and ‘韓’ seen in ‘万葉集(Manyoshu)’ refer to either ‘唐’ or southern Korea. ‘韓’ seen in ‘古事記’ is a land of the descendant of ‘Susanoo’(Karakami, 韓神), which means it shares the same genealogical root with the imperial family that is related to ‘Amaterasu’. Therefore, it is not treated as a foreign barbaric country, so we see no negative description in ‘古事記’, and it is depicted as a place where new technologies and goods are brought in. Having the same genealogical background, ‘韓’ is signified as a ethnicial group that is subject to direct imperial rule in ‘古事記’. Whereas in ‘日本書紀’, ‘韓’ is positioned as a ‘蕃国(Bankoku, babarian countries)’ outside ‘中華(Chunghwa, the central world. In this case, Japan is considered to be the center of the world)’, the idea which is borrowed from the ancient Chinese political philosophy. In contrast to ‘古事記’, ‘韓’ in ‘日本書紀’ is not related to the ancestors of the Japanese emperor, and it is not a country that introduces advance technologies and goods. ‘韓’ is strictly differentiated from ‘日本’, and it is a foreign barbaric country with a strong political impl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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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航海献酬録』의 번각과 연구

박찬기

한양대학교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비교일본학 제26집 2012.06 pp.129-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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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0원

이 원고는 일본 동경도립중앙도서관 소장의 『航海献酬録』을 번각․번역하여 소 개하고 간단한 개요를 덧붙인 것이다. 1719년 9월 4일 오사카에 도착한 조선통신사 일행은 니시혼간지(西本願寺)에서 5 일간 체재한다. 이 숙소에서 조선 학사와 일본 문인들과의 다양한 형태의 교류가 행 하여진다. 그 중 제술관 신유한을 비롯한 조선 학사들과 구마모토(熊本)에서 찾아온 미즈타리 헤이잔(水足屏山) 부자와의 학문적 교류의 모습은, 일본의 에도 시대에 행하 여진 조선통신사의 방일에 있어서, 하나의 특징적 모습이기도 하며 양국의 학문적 교 류를 돈독히 하는 기회이기도 하였다. 肥後(지금의 구마모토 지역) 제일의 학자로 그 재능을 인정받은 미즈타리 하쿠센 (水足博泉)은 비록 단명하기는 하였지만 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저술 활동을 통하여 후대에 업적을 남겼다. 이러한 일련의 경위는 13세 때 조선 학사들과의 만남을 통하 여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즉 그의 명성 또한 조선통신사의 제술관 신유한으로부터 학문적 재능을 인정받은 것에서 출발한 것이고, 그가 후대에 남긴 博泉이라는 호칭도 조선 학사로부터 명명된 것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本稿は日本東京都立中央図書館所蔵の『航海献酬録』を翻刻し、またハングルで 翻訳して紹介したものである。その内容は、1719年9月8日から数日間、大阪の客舘 西本願寺で行われた、朝鮮通信使の製述官として訪日した申維翰をはじめ、三使の書 記らと熊本からやってきた水足屏山父子との筆談․唱酬の漢詩文贈答の様子である。 後日、「肥後第一の学者」とその才能が認められた水足屏山の子水足博泉は、惜 しくも早逝はしたものの、多くの門弟を養成し、著作活動を通して優れた学問的業績 を残した。こうような一連の経緯は、彼が十三歳の1719年、朝鮮学士との出会いから 出発したのであり、その学問的成果を通して名を広く知られ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 る。また、水足安方が後に水足博泉と呼ばれるようになった「博泉」という称号も朝 鮮学士の申維翰から命名されたということも興味深い。

7

5,400원

본고는 영상소재인 드라마를 교재로서 활용하고, 학습 목적에 맞춘 이용법의 실천 예를 소개한 것이다. 수업에서는, 워크시트를 이용하고, 학습자가 혼자, 때로는 페어나 그룹에서, 주어진 태스크(task)를 해결하면서 학습을 진행하는 형식을 시도했다. 결과로 서, 이 형식의 수업에서는, 각 활동을 통해서 드라마 시청시 애매하고 불분명했던 부분 을 확인할 수 있고, 학생들의 이해도를 높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모든 활동 에서 듣기, 읽기, 쓰기, 말하기의 4기능을 담게 함으로, 종합적 학습 능력의 개발에 효 과를 얻을 수 있었다.

Writing has utilized the drama which uses the picture materials for learning materials, and introduced a practice example for the learning goal. At the session, the worksheet is utilized and a learner has tried the form whichprocesses the lesson settling tasks given by learner himself or pair or group. As a results, the part which is ambiguous and unclear could be confirmed, in case of drama, through each activity at the session by this form. And the thing which raises the intelligibility of the students could be confirmed. And the effects for the general development of learning ability containing four(4) functions of hearing, reading, writing and speaking.

8

4,000원

최근 수 년 동안 진행된 중세의 화상자료 연구는 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바, 그 가운데 문학 작품으로서 그림 두루마리(絵巻, 에마키)에 대한 접근은 중요한 연 구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그림 두루마리를 둘러싼 논의를 과거, 현 재, 미래로 나눠 살펴보고, 이 그림 두루마리는 왜 만들어졌는가, 지금 어떻게 읽혀지 고 있는가, 그리고 디지털 기술의 진보는 그림 두루마리의 연구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 올 것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In the recent decades, studies on medieval visual materials, particularly on picture scrolls, have received a great attention in the academic circle. Among them, approaches to picture scrolls as literary works became a significant topic. This short paper examines a number of matters in this regard, especially including medieval theory on painting, literary contributions through pictures and the rapid development of the new electronic enviro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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